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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보급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평점 :
Scene #1 하늘에서 우주의 과거를 보다
태양은 하루 종일 서쪽을 향해 조용한 항해를 계속하면서도 가슴속 깊이 묻어놓은 용광로에 풀무질을 한다. 힘겨운 풀무질로 녹여낸 이글거리는 황금색 쇳물을 응축시켜 아무도 모르게 내면 깊숙이 숨겨둔다. 이윽고 서편 하늘에 도착하면 아련한 청산들이 겹겹으로 웅크려 잠들어 있는 곳에 허공과 청산의 계곡마다 쇳물을 흩뿌린다. 눈물겨운 석양을 하늘 가득히 채워 놓고는 황혼이 그 검은 장막을 내리기 전에 서둘러 서산 너머로 아스라이 사라진다.
낮에서 밤으로 바뀌는 순간에 서쪽 하늘에 뜨는 낭만적 노을은 지상에서 인간의 눈으로 감상할 수 있는 유일한 일종의 우주 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날이면 날마다 반복되는 이 노을 현상은 태양이라는 거대한 항성의 인력에 종속돼 지구가 궤도를 이루고 주기적으로 자전과 공전을 계속하는 날까지 이루어 질 것이다.
천문학적인 개념으로 볼 때 애초의 태양은 태양계와 비교적 가까운 오리온좌에서 태어났다. 은하계 안에서는 가장 큰 우주의 가스와 먼지들이 복잡하게 압축된 오리온성운 속에서 형제들과 떼를 지어 함께 탄생한 것이다. 오리온성운을 망원경으로 관찰하면 지금도 어둡고 침침해 보이는 구름의 내면 깊숙이 새로 태어나고 있는 거대한 항성들,즉 태양의 동생들이 찬란한 빛으로 눈부시게 발광하고 있다. 이렇게 태어난 아기 항성들은 오리온성운을 뛰쳐나와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는 길을 떠난다.
이렇듯 하늘을 보는 일은 우주의 과거를 보는 셈이다. 낮에 우리에게 밝은 빛을 주는 태양은 이미 8분전에 태양을 떠난 것이다. 지금 보는 북극성은 800년 전의 모습을 보는 것이고,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은하 안드로메다는 220만 년 전의 모습이다.
Scene #2 우리는 별의 자녀
인류는 명백히 우주의 산물이다. 먼저 인간과 생명체를 이루는 원소들이 모두 별의 폭발에서 만들어졌다. 초기 우주는 수소와 헬륨뿐이었지만 별이 핵융합을 하다 신성(또는 초신성) 폭발로 생을 마무리하는 과정을 반복함에 따라 탄소 산소 질소 마그네슘 황 등 무거운 원소가 생긴다. 칼 세이건은 “DNA를 이루는 질소, 치아를 구성하는 칼슘, 혈액의 주요 성분인 철 등 원자 하나하나가 모두 별에서 합성됐다. 그러므로 우리는 별의 자녀”라고 말한다.
태양도 주변 초신성 폭발 후 탄생했을 것이며 태양으로부터 자외선이 닿아 지구 최초의 유기물이 생겨났을 것이다. 공룡이 사라진 덕분에 포유류가 번성하고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진화하게 된 것도 우주적 환경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사실 우주를 들여다볼수록 인간의 존재는 경이다. 거꾸로, 인간의 눈으로 우주를 바라보기에 경이롭게 보이는 측면도 없지 않다. 예컨대 인간은 기적적으로 낙원 같은 지구를 만난 것이 아니라 지구 환경에 적응한 결과물이다. 지구에 산소가 풍부해진 것은 인간에게는 행운이지만 산소 없이 살던 미생물들에게 재앙이었다.
화성인 논란은 또 어떤가. 로웰 천문대를 세운 퍼시벌 로웰은 화성 표면을 가로지르는 선들이 거대한 운하라고 생각했고, 행성 규모의 토목공사를 벌이는 고등한 지적존재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물론 순전히 그의 바람이었다.
하지만 우주를 탐사하고 관측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화성에 이끼 같은 생물을 살게 하고, 덕분에 지표가 어두워져 더 많은 태양빛을 흡수하고, 얼음이 녹고, 얼어붙었던 대기가 풀려나 언젠가 인류가 화성에 거주하게 되리라는 상상은, 사람의 지적 능력이 아니라 꿈꾸는 능력에서 나온다. 화성인이 침공하는 공상과학과, 화성인이 산다는 로웰의 생각이 없었다면 과연 화성탐사선 프로젝트가 현실이 됐을까.
언젠가 화성의 극관(極冠, 화성의 극에서 얼음으로 덮여 하얗게 빛나 보이는 부분)에서 녹아내린 물을 적도 지대에서 받아쓰도록 거대한 운하를 건설할 날이 올지 모른다. 그 날이 오면 우리가 바로 ‘로웰의 화성인’이라고 세이건은 말하고 있다.
Scene #3 만약 외계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무한의 공간’인 우주를 탐험하는 지적 존재는 과연 인류뿐일까? 인간만이 고등한 기술을 갖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을까? 외계인과의 만남은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환상’이다. 그러나 소수지만 어른이 돼서도 이 꿈을 진지하게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이건은 조바심치며 외계인과 조우를 고대하는 아이와도 같다.
전파는 외계의 존재를 확인하는 수단인 동시에 인간의 존재를 외계에 알린다. 지구에서 유래한 전파신호는 빛의 속도로 전 우주로 퍼져나간다. 세이건은 언젠가 외계 문명이 해독할지도 모를 인간의 TV 전파를 우려하기도 한다. 인류라는 존재는 고작 아무 생각 없는 광고, 끊임없는 국제 분쟁, 지지고 볶는 가정사에 얽매여 산다니. 도대체 외계 문명인이 인류를 뭘로 보겠는가.
외계 생명체의 모습이 지구인과 닮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여러 유기체에 분산 존재하는 지적 개체’ 같은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인간처럼 상온에서 전기신호를 주고받는 뉴런이 아니라 저온에서 작동하는 초전도 소자 뉴런을 가진 외계인이라면, 그들은 1,000만배나 빠른 속도로 생각을 하고, 동떨어진 뉴런끼리도 전파를 주고받을 것이다. 그래서 분신들이 여러 행성에 흩어져 존재하면서 하나의 총체적 자아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우주의 주인이 인간만이 아니라고 여긴다면 우주적 시야에 걸맞은 윤리를 따라야 한다. 예를 들면 고래와 같은 지구의 지적 생물을 저잣거리에서 파는 물건으로 취급할 게 아니라 이해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고래와 돌고래는 사람만큼이나 다채로운 언어를 구사한다. 긴수염고래는 20㎐의 소리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이처럼 낮은 주파수는 바다에서 거의 흡수되지 않아 지구 정반대편의 고래와도 대화할 수 있을 정도다.
보이저 호는 이 광막한 우주에서 얼마나 오래 날아가야 생명체를 만날 수 있을까. 아마 못 만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레코드판에 수록된 정보의 수명은 10억 년은 된다고 하니, 그 사이에 새로운 우주 생명체가 탄생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인간이 멸종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후손은 외계 지적생명체의 대답을 들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우주의 저쪽 그 먼 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실제 풍경들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현란한 광경이다. 현대의 최첨단 망원경으로서도 감지할 수 없는 세계이다. 인간의 의식이나 사고로서만 상상할 수 있는 추상적 개념의 우주의 풍경들을 점토를 빚어 형상화하는 것이 천문학자의 역할이다.
세이건은 우리에게 우주로 나아가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당당한 우주의 일원이 되라고 말하고 있다. '모험'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인간은 이제 겨우 달에 두 발을 디뎠을 뿐이다. 화성까지 유인우주선을 보내는 것도 아직은 힘겨워 보인다. 하지만 우주로의 모험이 시작된 이상 인간 종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