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작가 몬터규 로즈 제임스(Montague Rhodes James)의 단편소설 『포인터 씨의 일기장』은 책 수집가에게 일어난 기이한 현상을 섬뜩한 분위기로 담아낸 작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제임스 덴턴은 고서를 모으는 책 수집가다. 그는 윌리엄 포인터라는 사람이 쓴 오래된 일기장을 주문한다. 덴턴과 같이 사는 고모는 조카의 고서 수집벽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고모님의 잔소리를 한 번 들어보자. 덴턴이 처한 난감한 상황이 남 일 같지가 않다.
일요일 오전, 교회에 다녀온 다음 그의 고모가 서재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서탁에 놓인 네 권의 묵직한 갈색 가죽 장정 서적을 보고는 하려던 말을 잊어버렸다. “이게 대체 뭐니?” 그녀는 의심으로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새로 산 거지? 아! 이것 때문에 내 꽃무늬 커튼을 잊은 거니? 그럴 줄 알았어. 끔찍하구나. 여기에 대체 얼마나 쏟아부었는지 궁금하구나. 10파운드가 넘는다고? 제임스, 이건 죄악이야. 그래, 이따위 물건에 낭비할 돈이 있으니 우리 생체 해부 반대 모임에도 꽤나 많은 돈을 기부해 줄 수 있겠구나. 정말이야, 제임스. 네가 그러지 않는다면 나는 정말 기분이 나쁠…‥ 잠깐 누가 썼다고? 애크링턴의 포인터 씨? 그래, 이웃의 고문서를 모아들이는 일 자체야 흥미로울 수도 있지. 하지만 10파운드라니!” 그녀는 조카가 든 것 말고 다른 일기장 한 권을 집어 들고는 아무 쪽이나 펼쳐 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책장 사이에서 집게벌레 한 마리가 기어 나오는 것을 보고는 기겁하여 책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덴턴 씨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책을 집어 들었다. “불쌍한 일기장! 고모님은 포인터 씨에게 너무 가혹하게 구시는 것 같네요.” “그랬니, 얘야? 미안하지만 나는 저런 끔찍한 벌레들은 견딜 수가 없단다. 어디 책이 망가지기라도 했는지 한번 보자꾸나.” (391~392쪽)
덴턴처럼 고서를 수집하지는 않지만, 헌책방에 있는 오래된 책을 좋아한다. 헌책방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는 책들의 상태는 온전치 못하다. 종이 색깔이 누렇게 변색하였고, 퀴퀴한 곰팡내를 풍긴다. 그렇다 보니 이런 책을 사 오면 가족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내 동생은 간혹 내 서재를 구경하다가 오래된 책을 발견하면 “이런 책을 왜 샀어? 재미있어?”라고 묻는다. 나는 “재미있으니까 샀지.”라고 짧게 대답만 한다. 어머니는 내 방 안에 가득한 책들을 볼 때마다 그만 사라고 말씀하신다. 말씀을 잘 안하셔서 그렇지 눈치 빠른 어머니는 아들이 야금야금 생활비로 책을 사는 것을 알고 있다.

책 주문할 때마다 가족들 눈치받기 싫어서 ‘편의점 픽업 서비스’ 또는 ‘중고매장 픽업 서비스’를 많이 이용한다. 퇴근할 때 편의점이나 중고매장에 도착한 택배를 받으러 간다. 그러면 가족들 모르게 책을 주문할 수 있다. 하지만 중고매장 픽업 서비스를 자주 이용하게 되니까 또 다른 문제점이 생겼다. 중고매장에 진열된 책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택배 물품 찾으러 매장에 가면 책을 더 사게 된다. 택배 물품만 들고 매장 밖으로 나간 적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다. 이러한 소비 습관이 안 좋을 줄 알면서도 중고매장에 택배 물품 찾으러 가는 날이면 에코백을 챙긴다…‥. 나란 놈은 ‘스튜핏’이다.
책을 사 모으는 일, 알라딘 서재에 글 쓰는 일 모두 가족에게 비밀로 하고 있다. 나의 독서 행위가 공개되는 범위는 한정되어 있다. 알라딘/북플, 책 관련 온 · 오프라인 커뮤니티(출판사 공식 카페, 독서모임 등)뿐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책 좋아하는 취향을 밝혀서 남들한테 좋은 소리 들은 적이 많지 않다. 어떤 사람은 내게 ‘놀 줄 모른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말을 듣고 난 후부터는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면 절대로 내가 먼저 책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독서는 혼자 즐길 수 있는 유희다. 여러 사람과 함께 하면서 즐길 수 있는 유희에 익숙한 사람들은 혼자 즐기는 유희의 즐거움을 잘 모른다. 책을 많이 사도 스튜핏!, 책을 읽어도 스튜핏! 스튜핏 소리 계속 듣더라도 내 갈 길 가련다. 개썅마이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