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무도 없어요 ㅣ 최측의농간 시집선 1
박서원 지음 / 최측의농간 / 2017년 5월
평점 :
누구나 잊을 수 없는 기억 하나쯤은 있다. 어떤 이들은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기억에 몸서리치기도 한다. 슬픔, 고통 등 온갖 부정적 현상들은 뇌리에서 영원히 지우고 싶어 하는 게 어쩌면 인지상정일 수 있다. 안 좋은 기억은 잊을수록 좋다. 아름다운 추억의 빛이 바래져서 희미해지면 서글프다. 달콤한 꿈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눈을 감자마자 사라질까 봐 두려울 때도 있다. 죽는 것보다 더 아픈 건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힌다는 것이다. 그 누구로부터 잊힌다는 것. 그것은 이 세상과 멀어지는 일이다.
시 속에는 하나의 세계가 있다. 그 세계는 현실을 뛰어넘은 곳이다. 시인은 현실에 묶여 있어서 늘 그곳을 벗어나려 한다. 박서원 시인의 시 세계는 어두침침한 방과도 같다. 또한, 그러하면서도 늘 무언가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을 놓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그 ‘그리움’ 때문에 시인은 온몸으로 현실과 철저하게 거부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생명수가 완전히 고갈될 때까지 시 밖의 세계인 현실에서 거침없는 언어를 토했다. 밖의 세계 이곳저곳 부유하는 그녀의 언어는 다시 시 세계로 편입되어야 한다. 언어는 시인의 피와 살이 녹아든 것들이다. 그런데 뱉어낸 언어를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시인의 시 세계, 즉 시인의 방은 공허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공기가 흐르는 ‘어둠의 방’이 된다. 정말 그곳에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어요.
원고지도 비어 있고
화병도 비어 있어요.
하루 종일 노딜다 간
햇살도
벌써 가고 없어요.
거울 속에는
내 얼굴만 있군요.
근데 얼굴은 없고
생각만 이리저리
굴려 다녀요.
약이 떨어진 볼펜은
권태롭고
약속해주지 않은 채
하루는 가고 있어요.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데
너무 억제되어 박혀 있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걸까요.
벌써 불을 끌
시간이군요.
가만,
드디어 계단에
발소리가 들리는군요.
누군가 나를 채워주려
오나 봐요.
그러나 역시 아무도
안 와요.
나는 물만 마셔요.
차라리
그리움이 그리움을
삭발하고
거울 앞에 설레요.
(『아무도 없어요』, 61~63쪽)
시인은 방 안에 홀로 서서 대체 무엇을 기다렸을까? 그녀의 세계, 즉 방 안에는 시인 자신의 지나온 삶을 비추어주는 거울이 있다. 그 거울 속에는 사랑과 열정, 그리움과 후회, 상처 등이 흑백필름처럼 스치고 지나갔을 것이다. 시인은 거울 표면에 맺힌 그리움의 흔적을 응시한다. 그렇지만 바다 밑바닥 같은 어둠이 깔린 방에서는 볼 수 없다. 『아무도 없어요』는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밤과도 같다. 밤은 공포의 시간이다. 시인은 자신의 마음에 악착같이 매달리는 검은 흔적을 두려워한다.[1] 그것은 ‘악몽’으로 재현된다.
밤에 잘 때
은순이는 눈을 뜨고 잔다
눈을 뜨고 꿈을 꾸면서
살아 있는 것들과
죽어나는 것들의 싸움을
풍랑이 이는 바다와
파선되는 고깃배를 본다
은순이는 꿈속에서,
꿈속에서 볼 수 있는 것만
보고도
10년 동안의 인생살이를 겪고
잊혀 가는 많은 일들을
제자리로 한 데 모아
길고 긴 상처를 만든다
(『악몽』 중에서, 37쪽)
은순이(시인의 ‘분신’으로 해석하고 싶다)가 그리워하는 것들은 쓸쓸한 상징이 되어 다시 아픔과 슬픔을 불러낸다. ‘잊혀 가는 많은 일들을 제자리로 한 데 모아’ 만든 ‘길고 긴 상처’는 시인의 마음을 자극한다. 흔들리는 삶 속에서 단 한 줄의 시를 쓰는 것마저도 쉽지 않은데도, ‘잊혀 가는 많은 일’을 부단히 떠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시인을 자극하는 것이다.
누구나가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지만 난 그게 왜 그리 어려웠을까
제기랄, 근데 실패하고 말다니 연습이 아니었는데도 그건 살아있는 파멸이었어 검은 밧줄, 괜찮은 유희였는데도 말야
(『실패』 중에서, 22쪽)
시인의 삶 역시 우리들의 보편적인 삶과 같다. 우리는 자기만의 세계에서 ‘고독’을 앓고 있다. 시인은 세상과 타협하지 못한 자신의 삶을 ‘실패’로 규정했다. 그렇지만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는 열정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생을 담보로 언어를 만들어냈고, 시인의 피와 살에서 떨어져 나간 것들은 시인의 방을 새롭게 구축하는 재료가 되었다. 시인의 방은 곧 시인의 의식이며 언어가 있는 곳이다. 시인이 그 방에 있다는 것은 그곳이 현실을 떠난 곳임을 말해 준다. 그곳은 시인의 도피처이면서 시인의 세계이다. 시인은 죽어서도 이 방에 남아 있다.[2] 시의 탄생은 시인의 죽음과 같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떠난 지 5년 만에 그녀의 첫 시집이 다시 태어났다. 지금도 시인의 방은 열려 있다. 《아무도 없어요》는 시인의 세계를 통한 바깥세상 읽기다.
[1]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2] “나비는 죽어서도 이 땅에 남는다.” (박서원 『나의 나비』, 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