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반양장) - 지금 우리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가 서머싯 몸은 인간이 얼마나 복잡하고 계량할 수없는 불가해한 존재인가를 그려내는 데 평생을 바쳤다. 의학을 전공한 작가답게 과학적 객관성에 입각해 인간의 정신을 해부하는 데 전 생애를 보낸 그였지만, 몸은 자서전에서 “나는 여전히 인간을 모르겠다”고 썼다.

 

인간을 이해하는 공부는 그만큼 어렵다. 인간의 합리성과 이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연구하는 경제학도 마찬가지다. 경제학은 모든 사회적인 현상들에 대해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학문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불리한 비합리적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경제학 이론의 출발점이다. 남보다 더 잘살아 보겠다는 인간의 이기심과 경쟁심은 경제학을 지탱해주는 두 개의 버팀목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연구를 통해 대부분 이론이 실제 현실과는 많은 괴리가 존재한다는 점들이 밝혀졌으며 이와 관련 최근 들어서는 완전하게 합리적일 때보다는 약간은 비합리적일 때가 더욱 합리적일 수도 있다는 논리가 제기되었다.

 

우리는 기상예보가 틀리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지만, 기상통보관은 적어도 현재 기상상태에 대해서는 80%의 정확도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다. 반면 경제학자들은 경기예측은 차치하고 현재의 경제 상태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한다. 새해가 다가오면 각종 경제 관련 연구소들이 앞다투어 경제전망치를 내놓는다. 물론 예측의 어려움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전망치와 실적치가 몇 배씩 차이가 벌어진다면 아무래도 전망치들이 틀렸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경제정책 선택을 잘못하면 현세대에만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에도 고통이 전달된다. 잘못된 정책의 선택은 두고두고 말썽이 된다. 그래서 장하준은 경제학이 ‘심각한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한다.[1]

 

경제학자들 가운데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보통 극단적인 예측과 독설로 주위의 관심을 끈다. 반대로 밋밋하거나 방향성 없는 예측을 하는 경제학자는 인기가 없다. 기상예측은 틀리면 난리지만 경제예측은 맞으면 오히려 난리다. 우리 사회가 경제예측의 오류에 더 관대한 덕분에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틀려도 별문제 없이 살아간다. 여기서 경제예측을 실패한 경제학자들 자체를 비판할 의도는 없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데도 ‘심각한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힌 경제학자들이 문제다. 한 가지 슬픈 것은 잘못된 예측을 되풀이하는 경제학자들이 여전히 각종 미디어에 얼굴을 내밀며 또 다른 엉터리 예언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이 신봉하는 경제이론을 근거로 경제를 예측한다. 거듭된 오판에도 여전히 자신의 경제학이 과학이라며 떠들고 다닌다. 이들은 어쩌다 우연히 홀인원을 넣을 수 있다. 그러나 경제 위기를 포착하지 못한다면 점점 더 알 수 없는 블랙홀로 빠져든다.

 

경제이론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설명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가정과 추상화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론은 태생적으로 불완전하다. 문제는 이론과 현실 간의 간격 자체가 아니라 이론의 현실 설명력이다. 과거에 잘 맞던 이론이 지금은 아닐 수 있고, 특정 시대에서 잘 통하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현실은 늘 변하며 그것을 느낀 다음에야 기존 이론의 결함을 발견하게 된다. 경제학의 잣대로 문제에 접근할 때 반드시 다양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런 다양성을 고려하면 경제학이라는 일반적 원칙이 적용되더라도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전략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경제학은 ‘자기충족의 학문’이 아니다. 경제학은 다양성을 수용하고, 그 다양성 속의 혼성(Hybrid)을 축복하는 지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장하준은 서로 다른 학파의 만남을 시도하는 것을 '이종 교배'라고 표현했다) 재벌로부터 기금을 두둑이 받아 설립한 자유경제원은 좌익을 ‘시장경제의 적’으로 설정하여 한국사회를 국정 파탄의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성장이냐 분배냐, 시장이냐 정부냐 등의 기존 좌우 담론은 모두 철 지난 유행가에 불과하다. 세상을 움직이는 게 여전히 이념이란 믿음은 시대착오적이다. 기득권 세력이 대항세력을 좌익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대항세력이 기득권 세력을 극우 반동이라고 규정하는 것과 똑같이 무의미한 도발이요 치우친 시각이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시에 이타적이고 경쟁하는 동시에 협력하는 존재다. 기존 이론을 수정하고 새로운 이론을 개발하려는 경제학자들의 꾸준한 노력 없이 현실 경제가 발전할 수는 없다. 충분한 해답은 아니더라도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게 해주는 것이 바로 경제이론이다.

 

경제학자와 정치인들이 손잡아 이익집단 간의 상충한 이해관계를 정당이나 개인의 권력 확장을 위한 기회로 활용하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경제학의 지적 토양을 피폐화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비효율을 초래하여 국가경쟁력을 약화하고, 우리 국민 모두의 삶의 수준이 저하된다. 이러한 과대망상증 경제 선동가 · 정치꾼들 때문에 중요한 경제문제들이 정치적 이슈의 홍수 속에 잠겨 정책 시행의 타이밍을 놓치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런 경제 선동가를 비판하지 못하고 정치꾼들을 계속 선출해 준 우리 모두에게도 책임은 있다. “그래, 다 좋은 얘기 같기는 한데, 그래서 도대체 어쩌라는 말이야?”[2]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이 있을 거고, 경제학이 전문적 권위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 학자들은 비아냥거리면서 말할 것이다. 사람들은 정치와 경제에 점점 더 무관심해졌다. 예전에는 위대한 한 개인의 노력이 그 시대 사회개혁을 가능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바람직한 경제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경제현상에 대한 기본 지식은 이 시대 우리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우리 개인은 잘해야 ‘제한적 합리성’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경제를 공부할 때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되도록 많이 만나는 게 좋다. 토론과 비판은 기본이다. 그래야 엉터리 경제학자나 ‘블랙 스완(black swan)‘을 만나더라도 덜 충격 받는다.

 

 

 

 

[1]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25쪽

[2] 같은 책, 4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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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7-01-16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경련·자유경제원이 좀 그랬지요. 우측으로 너무 함몰된... 전 이 책이 상당히 균형(?)잡힌 서술이었다고 생각한답니다...^^

cyrus 2017-01-16 00:13   좋아요 0 | URL
자유경제원은 자신과 다른 생각이나 학파를 적 또는 무용한 것으로 설정하여 까내립니다. 자유경제원 소속 사람들의 페북 계정을 봤는데, 지적 우월감에 빠져 있어요.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상대하고 싶지 않게 만듭니다.

경제학을 제대로 공부하면 이 책에 문제점이 있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싶습니다. ^^

2017-01-16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1-16 00:15   좋아요 1 | URL
어제(15일)가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리뷰 이벤트 응모 마감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동안 이 글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 평소보다 더 열심히 썼습니다. ^^;;

yureka01 2017-01-16 0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느 학자인지 경제이론중에 경제이론의 가정부터가 틀렸다고 지적하더군요..인간은 항상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경제활동을 한다고 전제 했던 기존의 입장과 달리, 인간은 비이성적이고 감성적인 경제활동도 자주 하고 뻔한 오류도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군요...얼추 이해 되더군요..대구 경북지역에 조희팔의 사기에 4조씩이나 떨려서 당하는거 보면요....경제적 이론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것인데도 말이죠. 과욕과 탐욕이 이성과 논리적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한 이유 아닐까 싶습니다...

cyrus 2017-01-16 15:04   좋아요 0 | URL
인간은 오래 살아봤자 죽으면 모든 활동이 정지되고, 죽을 때까지 완벽할 수가 없습니다. 실수를 하고 생각이 틀립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당연한 약점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고집을 부리기도 합니다.

북프리쿠키 2017-01-16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경제학 전공자로서 아직 21세기자본도 읽기 버거워 이러고 있네요
싸이러스님의 다양한 독서에
박수를 보냅니다!!

cyrus 2017-01-16 15:05   좋아요 1 | URL
저는 피케티의 책을 안 읽어봤습니다. 경제학 원론조차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서 원론 그 이상의 내용의 경제학 책은 일부러 피하고 있습니다. ㅎㅎㅎ

꼬마요정 2017-01-16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계효용의 법칙도 사실 불완전하죠. 사람이란 정말 알 수 없는 존재니까요. 이제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cyrus 2017-01-16 15:07   좋아요 0 | URL
패러다임이 바꾸려면 일단 자유경제원 같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부터 싹 바뀌어야 합니다. 아니면 자유경제원을 해체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나와같다면 2017-01-16 14: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가 생각하는 걸 나도 생각한다고
그가 생각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행동은 최고의 이득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을 고려한 최선의 선택을 한다.. 는 균형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존 내쉬 교수가 생각나네요..

그 분의 업적보다도 정신분열증을 극복해내는 의지가 존경스러워요..

cyrus 2017-01-16 15:09   좋아요 1 | URL
존 내쉬의 명언이 좋군요. 박근혜를 좋아하는 자유경제원 소속 사람들은 자신들만 옳게 생각한다고 믿지, 자신과 다른 상대방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을 간단하게 종북주의자로 몰아세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