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소설가 스탕달의 묘비명은 딱 세 마디다. “살고, 쓰고, 사랑했다.” 스탕달은 숨을 거두기 20년 전에 이미 자신의 묘비명을 만들었다. 원래 스탕달이 처음 생각해 낸 묘비명은 쓰고, 살았고, 사랑했다였다. 그런데 스탕달이 세상을 떠난 뒤에 사람들은 단어의 순서를 바꿨다. 단어의 순서가 달라져도 간결한 묘비명에는 작가 한 사람의 삶이 농축되어 있다.

 

 

 

 

 

 

박범신 작가는 성희롱 논란이 불거지자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사과문을 올렸다. 박 작가는 스탕달의 묘비명을 인용했다. 트위터리안들의 비난이 이어지자 사과문을 삭제했다. 어느 정신건강 전문의가 박 작가의 사과문을 해석했는데, 두 가지로 나왔다. 첫 번째 해석, 작가 자신이 젊었을 때는 자신의 행동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두 번째 해석, 나이가 들면 성적 매력이 떨어지므로 여자들을 만나면 (성희롱으로 간주하는) 행동을 하게 되었다. 결국, 자신이 오래 사는 바람에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

 

세기의 작가, 예술가들의 곁에는 늘 뮤즈(Muse)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이들의 관계를 생각할 때면 남성 예술가와 여성 뮤즈를 많이 언급한다. 뮤즈가 예술가에게 창작의 영감과 재능을 불어넣는 특별한 존재로 평가받지만, 한편으로는 남성 예술가들이 엉큼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찾는 남자들의 부속물’로 전락하기도 했. 박 작가를 포함한 문제 있는 남성 작가 및 예술가들은 자신의 성적 매력 발산을 뮤즈를 찾으러 다니는 순수한 예술가의 낭만으로 포장하고 다녔다.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르누아르는 생전 화가로서의 부와 명예, 자유, 그리고 남성적 욕망을 마음껏 누렸을 거로 생각한다. ‘행복을 화폭에 옮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화가를 꼽으라면 르누아르라고 단언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르누아르의 그림은 화려한 빛과 색채로 늘 행복을 담고 있다. 그 속에 세상의 시름이나 어둠을 찾아볼 수 없는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다. 잘 알려졌다시피 르누아르는 여성을 중심으로 한 인물화와 누드화를 많이 남겼다.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한 여성은 어린 소녀의 얼굴에 풍만한 여체로 묘사되었다. 지금으로선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지만, 르누아르는 만일 신이 여성의 가슴과 엉덩이를 만들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화가가 되지 않았다라고 했다. 그는 여성의 신체를 찬미했으면서도, 여성의 정신이 남성보다 낮은 수준으로 이해했다.

 

 

 

 

말년의 르누아르는 폐병과 류머티즘으로 고통 받으면서도 창작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손이 심하게 비틀려 손가락 사이에 붓을 끼우고 붕대로 고정시킨 채 그림을 그려야 했다. 그럼에도 그의 그림은 절망과 분노가 아닌 행복으로 충만하다. 괴로운 일들이 너무나 많은 세상에서 그림은 영혼을 씻어주는 선물이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유달리 장미꽃, 아이들, 그리고 여인들을 주로 그렸다. 르누아르의 둘째 아들이자 영화감독인 장 르누아르는 어린 시절에 바라본 르누아르의 아틀리에 정경을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 집은 여자들로 가득했다. 어머니와 가브리엘 르나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하녀나 모델 같은 온갖 여성들로 해서 참으로 비남성적인 경향을 띠었다.” (장 르누아르, 예경 Art Classic 시리즈의 르누아르192)

    

 

르누아르는 전문 모델보다 가족과 친구 등 주위 사람들을 그리기 좋아한 화가였다. 특히 르누아르에게 가브리엘 르나르는 가장 중요한 뮤즈였다. 르누아르의 아내 알린의 사촌인 르나르는 둘째 아들 장이 태어날 무렵 르누아르의 집에 유모 겸 하녀로 들어왔다. 그리고 르누아르의 말년까지 모델을 했다. 심지어 그녀는 누드모델이 되기도 했다. 보통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한집에 사는 아내의 친척이 누드모델로 나섰다는 점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아내는 남편의 작업 방식을 이해해줬을까? 르누아르에 대한 아내의 증언이나 일기 같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서 그녀의 속마음이 어떤지 알 수 없다. 물론 르나르가 르누아르의 예술적 열정을 이해하고, 누드모델이 되어주기를 흔쾌히 수락했는지 정말 궁금하다.

 

뮤즈들을 단순한 남성 예술가의 연인으로 바라보는 건 편견에 치우진 착각이다. 하지만, 남성 예술가들이 뮤즈를 찾은 이유가 절대 예술의 이상에 도달하기 위한 것만이 아닐 수도 있다. ‘뮤즈라는 이름은 여성을 속박하는 언어의 감옥이 되기도 한다. 그때의 남성 예술가들이 강조했던 예술’은 남성의 어두운 욕망의 또 다른 이름으로 변질된다.

 

 

 

 

[] <박범신 삭제 사과문 해석> (조선일보, 20161024)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023&aid=000322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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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11-02 20: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르느와르 생존 당시 그리고 그 이전부터 세습되어 온 시대 분위기에 기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남성과 여성은 성역할 뿐만 아니라 차별에 의해 존재감이 달랐다고 알고 있습니다. 중세 마녀사냥으로 여자들이 다수 희생되었어도 남자는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신분제도도 그렇고 초야권이 있었음은 상상하기 힘들지요 남자가 여자의 목숨조차 하찮게 여기는 시대였고, 그런 성차별 마인드가 사회적으로 공인되는 시대였죠. 계몽시대라고 해서 세상이 변하는 속도에 따라 사람이 빨리 바뀌지는 않았을 겁니다. 안타깝지만요.

cyrus 2016-11-03 11:01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성차별이 암묵적으로 공인되는 시대 분위기 때문에 여기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천관우 주필의 말을 인용하자면, ‘연탄가스에 중독된 시대’에 살고 있었습니다. 남성들이 만들어 낸 연탄가스에 남성, 여성 모두 문제의 심각성을 몰랐던 거죠. 그 상황 속에 용기 있게 저항하는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있었지만, 조용히 묻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과거의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이제부터 낡고, 잘못된 생각의 인습에 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왜 이제야 뒷북 치냐고 따지는 사람들의 의견은 무시해도 됩니다.

2016-11-02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1-03 11:04   좋아요 0 | URL
강자는 자신의 이익을 누리기 위해서 약자의 희생을 강요합니다. 그러기 위해 강자는 자신의 막강한 힘뿐만 아니라 편견과 차별을 동원합니다.

북프리쿠키 2016-11-02 2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세기가 지난 오늘날의 우리는 왜 르누아르의 그림이 그렇게도 당시 사람들에게 비웃음과 분노를 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의 우리는 겉으로 보기에 스케치 풍으로 보이는 것이 경솔함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며 오히려 예술적인 지혜의 소산이라고 어려움 없이 인식한다. 만약 르누아르가 각 세부까지 세세히 다 그렸다면 그의 그림은 진부하고 생동감없게 보였을 것이다. <서양미술사-521쪽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그림설명중>

밝은 색채의 즐거운 혼합물을 보여주고 쏟아지는 햇빛의 효과를 연구하고자 했던 인상주의자 르누아르네요.

특히나, 인상주의 그림을 감상할 때 몇 걸음쯤 뒤로 물러나서 보면 이러한 혼란스러운 색점들이 갑자기 우리의 눈 앞에서 제자리를 차지하고 생기를 띠게 되는 기적과 같은 기쁨을 맛보게 된다는 사실을 대중들이 알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하네요.

싸이러스님의 르누아르 그림에 대한 리뷰를 보니 서양미술사에서 배웠던 부분을 다시 언급하여 기억에 남겨봅니다.^^;

cyrus 2016-11-03 11:08   좋아요 1 | URL
르누아르는 말년에 인정받아 성공한 케이스입니다. 르누아르는 자신의 그림이 살롱에 인정받고 싶어서 친했던 인상주의 화가들과 거리를 두었죠.

북프리쿠키님은 저보다 미술사를 열심히 공부하시는군요. 솔직히 저는 <서양미술사> 521쪽을 읽어보지 않았어요. ㅎㅎㅎ

:Dora 2016-11-02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범신 트위터 계폭했어요.. 박진성 일 터지고 좀있다 줄줄이 나오니까 감당 안 되었겠죠...사실 저 트위터 내용도 꼴 보기도 싫음 역겨움

cyrus 2016-11-03 11:09   좋아요 0 | URL
박근혜, 박진성, 박범신. 요즘 박 씨가 문젭니다. ^^;;

처음에 올린 트위터 사과문이 수정된 사실을 확인했을 때, 진짜 어이가 없었습니다.

:Dora 2016-11-03 11:49   좋아요 1 | URL
저도 박인딩...;;;;

cyrus 2016-11-03 11:51   좋아요 0 | URL
죄송합니다. 제가 큰일 날 소리를 했군요. 문제 많은 세 명의 박씨 때문에 가만히 있는 박씨들이 피해를 받습니다...

:Dora 2016-11-03 11:53   좋아요 0 | URL
아녀요 잘못된 건 지적하고 고쳐야죠!! 나쁜 소수때문에 안그런 다수가 피해입는 오류도 없어야하구용

cyrus 2016-11-03 11:56   좋아요 0 | URL
사실 저는 최 씨입니다. 그래서 최 모 아줌마가 싫어요..

책한엄마 2016-11-03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르누아르가 그런 사람이었군요.
박범신에 대한 정신과의사 분석이 참 인상 깊네요.
이번에 새로 출간될 예정이었던 유리라는 책 볼 일 없게 될까요?
박범신 작가님이 타계하시면 재조명될라나요?
고산자 대동여지도 영화도 그닥이었지만 박범신 작가 원작도 별로였어서 그닥 후기를 쓸 의지가 없었네요.백자평이나 간단히 남겨야겠어요.

cyrus 2016-11-03 11:14   좋아요 0 | URL
르누아르의 그림을 알아도, 그가 어떻게 살았고, 생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어요. 화가에 대한 기록들을 살펴보면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내용들을 알 수 있습니다. ^^

저는 박 작가의 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 독자들 중에는 박 작가의 안 좋은 소식을 접했을 거고, 다 알고 있을 겁니다. 그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작가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어준다면 괜찮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모르거나 작가의 문제점을 강하게 부정하는 독자들이 문제죠. ^^;;

transient-guest 2016-11-03 0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의 욕망을 자리나 명예, 위치를 교묘하게 이용해서 폭력적으로 투사한 결과가 오늘의 박범신, 아니 한국 사회의 수많은 박범신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과는 직설적으로 미안합니다 하는 것이지 ~했다면 미안하다는 물러날 지점을 잡아놓은 사과행위지요. 추하게 늙지 않도록, 늙어서 하는 짓거리가 추하지 않도록 죽을 때까지 노력할겁니다...저렇게 되는 거 너무 싫어요..

cyrus 2016-11-03 11:17   좋아요 0 | URL
요즘은 사과문을 글로 공개만 하면 전부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글로 표현한 사과문은 사과를 한 사람의 진심 어린 반성을 표현하기가 어려워요. 저는 올해 사과문 비슷한 글을 한 두 차례 쓰면서 그렇게 느꼈습니다. 아무리 내용을 길게 써도, 제 진심이 온전하게 전해졌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부끄러워도 차라리 피해를 준 사람에게 직접 찾아가서 사과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심성 2016-11-03 1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추행 파문을 일으키고 사과문이랍시고 스탕달이 말한 묘비의 내용을 인용하여 포장하듯 끄적인 자체가 역겹군요. 진정한 문호라면 자신 밥벌이로 써먹던 달콤한 포장이 아니라 미안합니다. 사과합니다. 등 직설적이고 진심 어린 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과가 불특정다수를 위한 sns 보다 피해를 입은 당사자에게 먼저 해야하는게 우선이 아닌가 싶군요. 박범신 작가의 은교를 볼때처럼 그 알 수 없는 스멀스멀한 불쾌감이 왜 드는지 알 것 같군요. 역시 창작물은 창조주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인가 봅니다.

cyrus 2016-11-03 19:02   좋아요 0 | URL
사과하는 자세가 잘못됐죠. 묘비명을 인용하는 건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나는 유식한 작가이니까 불미스러운 일과 전혀 관련 없다는 식의 뉘앙스를 드러내서 논란의 중심에 빠지려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