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국민은 최순실이라는 ‘민간인’ 대통령의 이름을 역사 한 페이지에 치욕이라는 단어와 함께 새기게 됐다. 영예롭지 못한 최순실 대통령과 시녀 박근혜의 주종 관계는 국민의 정치혐오를 날로 심화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공교롭게도 오늘 10월 26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18년 장기집권이 마감한 날이다. 박 전 대통령은 쿠데타로 집권했다가 부인 육영수 여사를 문세광의 총탄에 잃고, 자신도 총탄에 스러짐으로써 독재 정권의 말로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은 집권 말기 비밀장소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호사스러운 연회를 벌이는 등 권력의 도덕적 타락함의 극치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의 죽음은 개발과 독재 그리고 장기집권으로 상징되는 유신 시대가 종막을 고한 순간이었지만, 또 다른 군부의 등장으로 좌절돼버렸다.
최순실에 기댄 정권은 만회하기 힘든 패국에 빠지고 말았다. 박근혜가 명목상 대통령이 되기 전에 ‘수첩공주’라고 찬양했던 지지자들도 멘붕에 빠진 상태다. 우파 언론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최순실 게이트’에 침묵하고 있다. 뉴데일리는 JTBC의 최순실 관련 보도와 조선일보의 ‘하야’ 언급을 ‘청와대를 겨냥한 좌우협공’이라고 표현했다. JTBC와 손석희 비난 보도를 꾸준히 해온 미디어워치는 최순실 게이트에 침묵하는 중이다. 미디어워치는 ‘대통령 개헌 제안’에 긍정적 반응을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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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는 이 날을 기다렸는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추억을 끄집어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연설문을 교정한 과정을 소개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찬양한다. 혼자서 연설문을 교정하지 못한 박근혜가 한심스러워서 짜증이 밀려올 법한데, 조갑제는 본인이 존경하는 박정희를 칼럼에 소환해서 억지로 분통을 삼켰다.
조갑제의 ‘박정희 연설문’ 칼럼은 자신이 지지하던 세력이 점점 파열되는 조짐을 애써 잊으려는 추억팔이에 불과하다. 불만투성이 현실의 유일한 탈출구는 과거다.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최고의 위안은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라는 애틋한 감정이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조갑제는 과거에서 행복을 찾고 있다. 특별히 연설문을 쓸 일이 없는 사람은 오늘 공개된 조갑제의 칼럼을 정독할 필요 없다. 조갑제의 칼럼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그래도 그때 박정희 시대가 좋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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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 우린 좆됐다. 박근혜가 탄핵 국면까지 가거나 하야를 한다 해도 내년에 박근혜보다 더 강한 존재가 등장한다. 보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도 우린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될 것이다. 2017년은 한반도의 미래가 달린 아주 중요한 대선의 해이면서도 박정희 출생 100주년이다. 우파 골수분자들은 여전히 박정희를 떠나보내지 못한다. 경북의 장년층들이 최순실 게이트와 사드 문제로 박근혜에게 등을 돌렸어도 ‘박정희 사랑’은 여전할 것이다. 박정희 향수(鄕愁)를 온몸에 향수(香水)처럼 뿌리고 다니는 사람들은 내년에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역시 딸보다는 아버지가 대통령이었을 때 좋았어. 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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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는 매년 박정희 탄신제와 추모제를 성대하게 진행했다. 당연히 내년에 맞추어 대대적으로 박정희 우상화 사업을 시작할 것이다. 세금을 쏟아 붓는 지자체의 우상화 사업을 반대하는 여론도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심을 외면한 지 오래된 새누리당은 구미 지자체의 우상화 사업을 밀어줄 것이다. 새누리당은 균열한 경북 지역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다시 메꾸지 못하면 내년 대선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된다. 그들은 또다시 박정희를 찾고 싶어 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예상해보자면, 내년에 등장할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박정희’를 여러 차례 언급하리라. 새누리당은 ‘박정희 정신’을 부르짖으면서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국민들에게 호소할 것이다. 아, 물론 ‘종북 타령’도 같이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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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의 행적들은 가슴 깊은 곳에 쑤셔 박아 놓으면 되고, 과거는 미화되기 일쑤다. 어차피 세상은 불완전하므로 이상을 추구하는 숙명을 가진 인간이 불행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그러다 보니 과거의 낭만에 흠뻑 빠져들어 현실을 외면한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험난할 것 같다. 박정희라는 이름의 과거의 무덤을 헤집으면서까지 이상으로 둔갑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작태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박근혜가 박정희 관련 행사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더라도 우파 골수분자들은 박정희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자신들을 보호해줄 새로운 권력자의 얼굴을 찾아 박정희의 가면을 씌우는 일이다. 우파 골수분자들은 슬슬 자신들을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다음 달 28일에 한국사 국정교과서가 공개되고, 내년부터 전국의 학교에 교과서를 배포할 예정이다. 골치 아픈 일이 너무나 많다. 그러려면, 일단 박근혜가 탄핵당하던지 아니면 하야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린 내년에 박정희, 유명무실한 최순실 대통령 그리고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 없는 우파 골수분자들의 구태의연한 모습까지 봐야 한다. 그걸 지켜 봐야하는 국민들이 괴롭다. 벌써 ‘발암 국정’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