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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역습 ㅣ Idea Ink
우치누마 신타로 지음, 문희언 옮김 / 하루(haru) / 2016년 6월
평점 :
책 읽는 사람이 줄어드는 세상을 살다 보니 이런 생각마저 든다. 독서는 삶의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라고. 좋은 책과의 우연한 만남, 정말 가슴 설레는 일이다. 이 아름다운 우연은 잊힌 책을 다시 세상의 중심으로 불러들인다. 그게 운명을 결정짓는 필연이 된다. 책 한 권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그들만의 최고의 책으로 남거나 출판시장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거나 또는 어느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는 사실은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우연이 아니다. 독서가 좀 더 즐거운 만남이 될 수 있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서점이 많아져야 한다.
동네 책방을 운영하는 우치누마 신타로는 ‘책과 사람과 우연의 만남을 만든다’고 믿는다. 책은 읽는 사람의 공감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저 어떤 한 사람이 지어낸 시시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책의 운명은 어떤 독자와의 만남의 순간에 정해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만약 내가 한 권의 책이라면, 누가 나를 집어 드는가 하는 게 내 운명을 결정하는 셈이다. 그러나 책과 서점의 미래는 불길하다. 이미 동네서점들이 문을 닫았으며 몇 안 되는 서점들도 경영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스마트폰과 영상매체에 밀려갈수록 책의 입지가 흔들리고, 특히 학술서적과 교양서적의 판매량 감소추세가 점차 가속화되고 있다. 만화책, 수험서 같은 실용서 등이 시장 규모를 키우며 출판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마디로 잘 팔리는 자기계발서와 실용서적만 만들겠다는 출판경향은 ‘지식 전파’라는 출판 본연의 임무를 잊어버린다. 실용서적은 교양서적을 즐겨 읽었던 독자층의 입맛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탄탄했던 독자층이 사라지면 동네서점이 설 자리도 줄어든다.
운영난에 허덕이는 서점들은 베스트셀러만 잘 관리하면 불황을 타개할 수 있다는 식의 임기응변에 머물러 있다. 출판이 차지하는 사회적 중요성과 비교하면 그동안 정부와 사회의 관심은 너무 적었다. 일본의 상황도 국내 현실과 너무나도 닮았다. 그렇지만 우치누마 신타로는 꿋꿋이 자신만의 기획을 펼쳐나가면서 동네 책방을 운영한다. 그가 만든 책방 ‘B&B’는 맥주와 책을 파는 서점이다. 책방 이름은 책(Book)과 맥주(Beer)의 첫 글자에서 따왔다. 《책의 역습》은 도발적인 제목이다. 서점의 위기를 바라보는 저자의 자신만만한 심정을 드러낸 것이다. 책 판매에 의존하는 서점들이 수익을 위해 특정 장르의 책이나 베스트셀러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과 달리, B&B는 고객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폭넓은 세계와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특별한 장소다. 책 매출에 매달리지 않기 때문에 서점이 추천하고 싶은 책들을 당당하게 진열할 수 있다. B&B는 개점 이래 매일 거르지 않고 유명 작가를 초청한 강연이나 전문가들과의 대화 등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하고 있다. B&B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이벤트는 고객 유치에 크게 기여한다.
우치누마 신타로는 불황이야말로 책을 위한 역습을 시도할 수 있는 적절한 시기라고 말한다. 그가 알려주는 아이디어를 들어보면 ‘아, 이렇게도 책을 팔 수 있겠구나’라는 발상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문득 년째 계속돼 온 서점의 탄식이 다시 음미 되었다. 지금도 간신히 문을 여는 서점들이 책에 의존해 살림을 꾸려가는 현실은 안다. 그러나 이 장기불황에서 탈출하는 궁극적인 방도는 ‘대박의 꿈’이 복권처럼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달라진 독자의 요구를 간파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책장을 통해 독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세계의 범위가 좁아지는 사태야말로 서점에는 치명적인 문제이다.
종이책을 파는 것만이 ‘앞으로의 동네 서점’의 일은 아닙니다. 우선 결정한 것이 매일 이벤트를 개최하는 것, 맥주를 비롯하여 음료수를 제공하는 것, 책을 진열한 책장을 중심으로 가구를 판매하는 것, 이 세 가지입니다. (194~195쪽)
한 번쯤 ‘동네 가까운 곳에 여가를 보낼 공간이 있었으면...’이라고 꿈꿔본 적이 있다. 어느 때나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쉴 수 있고, 원하는 교양 강좌를 들을 수 있는 공간. 우치누마 신타로는 책만 팔아서는 이익을 내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고객들이 서점에 들어와서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만으로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런 변화의 도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의 역할이다. 달라진 독자의 요구를 파악하고 그걸 담아낼 책을 소개하는 데 더 골몰하는 서점이 없다면 독자인식의 변화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동네 서점은 자본력이 달려 이 같은 방식은 언감생심이다. 서점으로서 소중한 것을 지키는 동시에 다양한 수익원을 균형 있게 확보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막강한 자본력을 갖춘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만 생존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출판산업 생태계 속에 우리나라 서점들이 역습할 힘이 너무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