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작가 막심 고리키의 단편소설을 찾아 읽으려고 《고리키 단편집》(최윤락 역, 지식을만드는지식), 《은둔자》(이강은 역, 문학동네), 《어머니/밑바닥/첼카쉬》(최홍근 역, 동서문화사) 이 세 권의 책을 들여다봤다. 《고리키 단편집》에는 고리키의 첫 단편 「마카르 추드라」와 대표작 「첼카쉬」 등 총 7편이 수록되었다. 《은둔자》는 초기, 중기, 후기 때 발표한 대표작을 엄선한 단편선집이다. 그 대신 「마카르 추드라」는 없다. 《어머니/밑바닥/첼카쉬》는 앞의 두 번역본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이 있다.
* 목차
《고리키 단편집》 :
마카르 추드라, 이제르길 노파, 첼카시, 심심풀이, 코노발로프, 스물여섯 사내와 한 처녀, 인간
《은둔자》 :
거짓말하는 검은방울새와 진실의 애호가 딱따구리, 첼카시, 이제르길 노파, 스물여섯 명의 사내와 한 처녀, 첫사랑, 은둔자, 카라모라
《어머니/밑바닥/첼카쉬》 :
첼카쉬, 아르히프 할아버지와 렌카, 에밀리안 필랴이, 매의 노래, 나의 동행자, 어느 가을날, 이제르길리 노파, 마카르 추드라, 단추 때문에 생긴 일, 두 친구, 심심풀이, 코노발로프, 스물여섯 사내와 한 처녀, 인간
세 권의 책을 다 같이 읽다가 정말 황당한 사실을 발견했다. 《고리키 단편집》과 《은둔자》에 수록된 「첼카쉬」와 「이제르길 노파」 분량에 차이가 있었다. 두 권의 책을 번갈아가면서 꼼꼼하게 읽어봤는데, 《고리키 단편집》에 일부 내용이 빠진 사실을 발견했다. 심각한 점은 문장 몇 줄만 빠진 게 아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등장인물의 대화 일부가 통째로 삭제되었다. 《고리키 단편집》의 번역이 얼마나 최악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시라.
Scene #1


* 사진 설명 : 《고리키 단편집》 49~50쪽. 가난한 도둑 첼카쉬가 돈이 청년 가브릴라에게 돈 벌 기회를 주기 위해 함께 일하자고 제안한다. 두 사람은 어두운 밤에 보트를 타고, 값비싼 물건을 훔치려고 한다.

《고리키 단편집》에서 삭제된 내용은 밑줄로 그었다.

* 사진 설명 : 《은둔자》37쪽, 41쪽. 첼카쉬는 가브릴라와 같이 일하기로 한 뒤에 선술집에서 술을 마신다. 가브릴라는 술에 취해 뻗어버린다. 《은둔자》37~41쪽은 첼카쉬와 가브릴라가 선술집에서 술 마시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고리키 단편집》은 이 장면이 삭제되었다.
Scene #2


* 사진 설명 : 《고리키 단편집》 60~61쪽. 첼카시는 밤바다 풍경을 감상하면서 잠시 회상에 젖는다. 그러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다가 잠을 청한다. 상황 전개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유가 있다. 첼카쉬가 잠 자기 전 상황이 '누군가'에 의해 사라졌기 때문이다.



《고리키 단편집》에서 삭제된 내용은 밑줄로 그었다.
* 사진 설명 : 《은둔자》 60~62쪽. 배에 노를 젓던 가브릴라는 첼카쉬의 명상을 방해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어본다. 일행이 향하는 곳은 장물아비 세엘카시가 있는 배. 이곳에 일행은 늦은 잠을 청한다. 《고리키 단편집》에 세엘카시가 잠깐 등장하는 장면이 삭제되었다.

《고리키 단편집》은 ‘원전으로 삼아 옮긴 것’이라고 알렸을 뿐, 발췌 번역한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원래 지만지 출판사는 원전을 발췌한 번역본을 출판하면 ‘편집자 일러두기’를 통해서 발췌한 사실을 알렸다. 발췌 번역을 완역본이라고 거짓말하는 비양심적인 출판사보다 나은 행동이다. 그러나 지만지는 《고리키 단편집》을 원전 번역으로 속인 채 펴냈다. 「이제르길 노파」 경우 번역 누락이 상당히 심하다. 이제르길 노파의 처녀 시절 이야기만 삭제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은둔자》와 같이 읽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이다. 번역 누락된 부분이 한두 번 정도가 아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고리키 단편집》의 역자 최윤락 씨는 고리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노어노문학 전공자다. 그리고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나온 고리키의 장편소설 《어머니》를 번역하기도 했다. 고리키를 전공한 사람이 고리키 작품 번역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엉터리 번역을 묵인하고 버젓이 책을 판매한 출판사는 독자를 기만하는 태도다. 이런 일이 생기면 우리 독자는 책 앞에서 지갑을 열 이유가 없다.
가끔 출판사 직원이 알라딘 회원 또는 비회원으로 접속해서 ‘비밀 댓글’을 다는 경우가 있다. 혹시 내 글을 본 지만지 출판사 직원이 비밀 댓글을 달 수 있다. 내 블로그에는 비회원으로 댓글을 달 수 없도록 했다. 내 글에 문제가 있어서 반문하고 싶으면 비밀 댓글로 설정하지 말고, 떳떳하게 공개 댓글을 달았으면 좋겠다. 해당 출판사 책의 악평을 비공개해달라고 요구하는 치졸한 내용의 댓글은 사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