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부아르>를 다 읽었는데요...

 

 

 

며칠 전에 붉은돼지님의 글(제목: <오르부아르>를 다 읽었는데요...)을 읽고 피에르 르메트르 작가의 성격을 다시 봤다. 사실 나는 르메트르 작가의 소설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다. 이 작가가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내는지 잘 모른다. 그냥 작가의 이름만 스쳐봤을 뿐이다. 르메트르는 자신의 소설 《오르부아르》의 ‘감사의 말’에 여러 작가와 유명인 들을 오마주한 사실을 밝혔다. 르메트르는 소설을 출간하면 집필에 영향을 준 사람들에게 고마운 심정으로 이름을 열거한다. 즉 자신은 이 사람들의 작품 일부를 빌렸다고 떳떳하게 밝힌다. 표절해놓고 절대로 아니라고 발뺌하는 어떤 작가보다 훨씬 낫다.  (신경숙 의문의 1패)

 

 

 

《오르부아르》의 ‘감사의 말’에 있는 인물 명단은 붉은돼지님의 글에서 가져왔다.

 

 

1. 호메로스

2. 라 로슈푸코

3. 앙투안 프랑수아 프레보 (아베 프레보)

4. 드니 디드로

5. 빅토르 위고

6. 오노레 드 발자크

7. 쥘 미슐레

8. 스티븐 크레인

9. 마르셀 프루스트

10. 에밀 아자르

11. 조르주 베르나노스

12.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13. 안토니오 무뇨스 몰리나

14. 카슨 매컬러스

15. 가즈오 이시구로

16. 파트릭 랑보

17. 잉마르 베리만

 

 

18. 루이 아라공

19. 제럴드 오베르

20. 미셸 오디아르

21. 장 루이 퀴르티스

22. 조르주 브라상

23. 장 루이 에진

 

 

 

 

한 작가가 이 23명이나 되는 인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시했다. 1번부터 17번까지 번호를 붙인 인물들은 국내 번역본이 나와 있다. 호메로스, 라 로슈푸코, 쥘 미슐레, 잉마르 베리만을 제외하면 소설 한 편 정도는 써본 작가들이다. 호메로스는 너무나 잘 알다시피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남긴 고대 시인이다. 쥘 미슐레는 프랑스의 역사가로 그의 책 《바다》(새물결, 2010)는 2010년 8기 ‘인문’ 분야 신간평가단 도서로 선정된 적이 있다. 잉마르 베리만은 스웨덴 출신의 영화감독이다. 라 로슈푸코는 잠언집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사상가다. 솔직히 처음에 앙투안 프랑수아 프레보가 누군지 몰랐다. 알고 보니 《마농 레스코》의 작가 아베 프레보의 본명이었다. 이런, 읽을거리 하나 더 생겼네.

 

 

17번을 제외한 18~23번 인물은 생소한 이름이다. 루이 아라공앙드레 브르통과 함께 초현실주의 그룹에 참여한 시인 겸 소설가다. 그의 작품 중 유일하게 번역된 것이 김남주 시인의 번역시집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푸른숲, 1995)에 수록된 시다. 하지만 이 시집은 절판되었다. 아라공의 대표작 중에 <바젤의 종>(Les Cloches de Bâle)이 있는데, 피터 박스올의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마로니에북스, 2007) 추천도서로 나온다. 아라공에 관한 정보가 있는 책이 많지 않다.

 

 

나머지 인물들의 약력이 궁금해서 검색해봤다. 미셸 오디아르는 프랑스의 유명 영화 시나리오 작가다. 그의 아들도 영화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 루이 퀴르티스는 1947년에 공쿠르 상을 받은 작가다. 조르주 브라상은 싱어송라이터로 알려진 샹송 가수다. 제럴드 오베르, 장 루이 에진에 관한 정보는 발견하지 못했다. 누군지 모르니까 일단 젖혀두자.

 

 

몇몇 사람을 제외하면 나머진 르메트르와 같은 프랑스 출신이다. 나는 르메트르가 머리가 비상한 작가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또 다른 독서의 즐거움을 선사해주니까. 르메트르가 소설을 쓰면서 인용한 정보들은 한마디로 말하면 ‘이스터 에그(Easter egg)’라고 할 수 있다. 이스터 에그란 게임 개발자가 자신이 개발한 게임에 숨기는 자신만의 메시지다. 요즘에는 이스터 에그만 전문적으로 찾아서 소개하는 사람도 있다. 《오르부아르》를 읽는 독자는 소설이라는 허구의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와 같다. 상식이 풍부한 독자라면 작가가 숨겨놓은 오마주를 찾아내고 싶어 한다. 어떤가?, 무척 재미있지 않은가. 독자가 작가의 오마주를 찾아내고 확인하는 재미에 몰입하면 《오르부아르》를 두세 번 이상 정독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웬만한 소설들은 한 번 읽고 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르메트르의 소설은 다르다. 르메트르의 '이스터 에그'는 독자가 자신의 소설을 두 번 이상 읽게 만드는 기발한 전략이다. 참고로 르메트르는 작가가 되기 전에는 시민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강사로 일한 적이 있다. 이쯤 되면, 르메트르는 소설 한 권으로 독자들의 독서를 장려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런 작가가 활동하는 나라가 부럽다. 자신에게 영감을 준 인물들을 향한 고마움을 표시할 줄 안다. 작가의 겸소한 성품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작가가 오마주한 인물들은 대부분 같은 나라 출신이다. 외국 문학보다 자국 문학을 각별하게 여기는 작가의 애정이 돋보인다. 이런 애정을 확인하는 독자들은 자국 출신 작가의 소설의 가치를 알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 작가는 글 쓰는 센스가 없다. 그리고 눈치도 없다. 신 모 작가는 일본 작가의 문장이 좋아서 표절했다지. 표절을 증명해주는 근거가 발각되었으면 사죄하면 될 것을 계속 아니라고 우긴다. 그러고는 어떻게든 시끄러운 논란을 잊으려고 다음 작품 집필을 위해 전념하겠다? 다음 작품을 잘 쓴다고 작가의 허물이 완전히 덮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출판사들은 한술 더 뜬다. 자신들의 눈에는 작가의 글이 완전한 표절로 볼 수 없단다. 에라이, 이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외면하는 거다. 사람들이 너무 책을 안 읽는다고 투정부리지 마시라. 사필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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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2-03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치가..... 없긴 없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yrus 2016-02-04 17:52   좋아요 0 | URL
독자 마음도 몰라주는 작가가 어찌 독자들의 마음을 노리는 글을 만들겠습니까? ㅎㅎㅎ

보물선 2016-02-03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라이~ 저도 읽어야겠어요!^^

cyrus 2016-02-04 17:53   좋아요 0 | URL
한국소설 잘 안 읽는 제가 한국 작가들을 욕할 일은 아니라고 봐요. 저도 관심을 가져야죠. 독자 반응에 상관없이 열심히 작품들을 내는 훌륭한 작가들이 있으니까요. ^^

보물선 2016-02-03 2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스터 에그라는 말 배웠어요^^

단발머리 2016-02-04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일단 저는 <오르부아르>에서부터 시작해야겠어요.
소개한 작가들은 그 다음에 만나는 걸로~^^

cyrus 2016-02-04 17:55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르메트르가 언급한 작가들을 먼저 읽는 일이 부담스럽습니다. 그중에 프루스트도 끼여 있거든요. 진정한 끝판왕이죠. 이건 장기 독서 프로젝트감입니다. ㅎㅎㅎ

붉은돼지 2016-02-04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그머니,,,,이스터 에그라는 게 있군요...ㅎㅎㅎㅎ(썰렁하군요ㅜㅜ)
소생은 항상 cyrus 님의 박람강기에 깜짝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

cyrus 2016-02-04 17:57   좋아요 0 | URL
썰렁해도 이런 거 좋아요. ㅎㅎㅎ

돼지님의 글이 무척 흥미 있어서 이것저것 찾아봤습니다. 저도 찾으면서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았어요. 그리고 르메트르라는 작가의 면모도 알게 되었습니다. 돼지님의 글이 아니었으면 르메트르를 모르고 그냥 지나칠 뻔 했습니다. ^^

서니데이 2016-02-04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yamoo 2016-02-04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단락에 격하게 공감합니다.ㅎ

cyrus 2016-02-05 10:47   좋아요 0 | URL
이제 책 안 읽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떠드는 뉴스를 더 이상 믿지 못하겠습니다. 이유가 많죠. 스마트폰이 책보다 재미있는 건 사실이고요. 독자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작가와 출판사도 문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