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이 나에게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어떤 책을 읽고 싶은지 물었다. 나는 책을 정하고 나서 카톡 메시지로 보내겠다고 했다. 동생이 일하는 회사는 복리 후생 차원으로 직원에게 도서상품권 2만 원을 준다. 직원들에게 독서를 장려하는 것이다. 책을 다 읽었으면 독후감을 작성해서 회사 인트라넷 게시판에 제출해야 한다. 동생은 나보다 책을 덜 좋아하는 편이다. 졸업 이후로 독후감을 써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내가 동생 대신에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다. 동생 덕분에 실로 오랜만에 신간 도서를 살 수 있었다. 그 책이 바로 《박종훈의 대담한 경제》(21세기북스)였다. 그 회사는 특이하게 독후감 작성 원칙이 정해져 있다. 주제, 책을 읽은 후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 느낀 점, 그리고 현업에 적용할 점 등 총 다섯 항목의 글을 최소 250자 이상 최다 3,000자 이내로 써야 한다. 제일 쓰기 힘들었던 것이 현업에 적용할 점을 썼을 때였다. 《박종훈의 대담한 경제》는 재벌과 정부 친재벌 정책을 비판하는 책이다. 내 생각을 솔직하게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다. 재벌 비판적인 어조로 글을 써서 제출했다가는 어렵게 얻은 동생의 일자리가 위태로울 수 있다. 내가 이 사실을 동생에게 설명하자, 그녀는 괜찮다고 말했다. 글을 열심히 써봤자 보는 사람이 없다나 뭐라나. 그래도 동생에게 민폐를 주고 싶지 않았다. 정부와 재벌을 거세게 비판하는 표현을 자제했다.

 

내 친구도 직원에게 독서를 권장하는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이 친구는 오랫동안 책과 담쌓은 녀석이다. 그래서 내가 친구 대신에 독후감을 썼다. 그런데 이 회사의 독후감 작성 원칙이 동생 회사보다 특이하다. 회사가 책을 선정하고, 무조건 A4 5장 이상 분량으로 독후감을 써야 했다. 독후감을 제출하지 못할 경우, 업무성과 평가에 불이익을 받는다. 친구가 그 회사에 일하는 동안, 내가 독후감으로 쓴 책은 《논어》(홍익출판사)와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김영사)이었다. 두 권 모두 가지고 있던 터라 나는 친구에게 받은 책을 알라딘 중고매장에 팔아 새 책 구매비용을 충당했다. 책 읽고 글 쓰는 일이 일상적인 생활이라서 친구의 부탁이 귀찮지 않았다. 그러나 친구는 강압적으로 독서를 권하는 회사에 불만이 많았다. 아쉽게도 친구는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두 가지 경험을 겪은 나는 독서 문화 장려에 힘쓰는 기업의 노력이 잘못 되고 있다는 점을 느꼈다. 첫 번째 문제는 업무와 관련된 독서를 강요하는 기업이 많다. 책과 관련해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상투적 표현이 성공하는 사람의 습관이 독서라는 말이다. 언론과 교육기관, 그리고 기업인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성공한 사람 곁에 항상 책이 있었다. 독서로 인생을 달라져 성공할 수 있다. 이러한 캐치프레이즈를 소개할 때마다 빌 게이츠, 워런 버핏, 스티브 잡스가 특별 출연한다. 이 세 사람은 독서로 통찰력을 얻은 대표적인 부자로 알려졌다. 국내 기업인들은 그들을 롤모델로 삼아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독서가 성공하기 위한 확실한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의 지도자는 부하 직원들 앞에서 성공의 지름길을 향해 손짓한다. 부하들아, 나를 따르라. 지도자(leader)는 리더(reader)가 된다. 그런데 이런 지도자 밑에 일하는 직원들이 고생한다. 그들의 임무는 책 속에서 업무에 적용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것. 이건 백사장에 떨어진 진주 한 알을 찾는 격이다. 성공하고 싶은 지도자는 책을 성공이 부화하는 황금알로 여긴다. 책을 품은 부하 직원들은 최고의 성과를 만들기 위해 기업이 품종 개량한 존재들이다. 성공을 간절히 바라는 지도자는 강압적으로 부하 직원에게 책을 품도록 지시한다. 직원들은 불만이 있어도 꾹 참는다. 나의 승진을 위해서 지루하기 짝이 없는 책을 들여다본다. 직원이 바라는 성공이란 승진과 연봉 상승이다. 이런 목적의 독서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독서가 부담스러운 직원들은 책 알레르기에 걸린다. 이 증상에 걸리면 책이 원수처럼 보인다. 재미로 읽어야 할 책을 업무 때문에 읽게 되면 슬슬 짜증이 난다. 오직 일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일의 노예처럼 산다.

 

두 번째 문제는 독서만능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다. 독서는 최고의 지적 행위다! 맞다, 자명한 사실이다. 애서가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그러나 독서의 장점을 과신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래서 독서만능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이들은 독서를 해야 인생이 성공할 수 있다고 맹신한다. 책은 정적인 지식 도구다. 지식은 문자가 되어 책 속에 남는다. 반면 책 밖에 떠도는 세상의 지식은 동적이다. 대학 강연, 세미나, 그리고 개인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과 정보는 협력적으로 생산하고 공유한다. 상호 협동적인 참여와 소통이 집단지성이라는 거대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집단지성에 참여한 인간은 스스로 정보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책에 없는 생생한 지식을 몸으로 체득한다.

 

 

 

 

사진출처: 서울경제신문 (네이버 포스트)

 

 

어떤 신문은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답시고 괴상한 논리를 내세웠다. 세계적 부호는 집 안에 책을 쌓아두고 읽으면서 배우지만, 중산층은 대학이나 세미나에서 배우려고 한다. 과연 이 말이 맞을까? 책으로 배우는 지식과 대학에서 배우는 지식의 수준을 비교하는 방식에 무리가 있다. 대학이 ‘취준생 양성소’로 변하는 바람에 쫄딱 망했어도 책 밖에서 배우는 지식을 무시할 수 없다. 오히려 집 안에 갇혀 책 읽는 부호야말로 성공하기가 어렵다. 기업인들은 비싼 돈을 내면서 특별 인문학 강의를 신청한다. 그들은 책에서만 정보를 얻는 방식에 한계가 있음을 알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정보는 달라진다. 급속한 변화의 흐름을 파악하고, 적응해야 할 세계적 부호가 책만 붙잡고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런데 독서만능주의자들은 ‘책뽕’에 단단히 취해 있다. 그들은 독서를 멀리하는 사람을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들과 비교한다. 독서만능주의자의 눈에는 독서를 안 하는 사람은 경제적으로 빈곤하고, 성공을 위해 노력을 하지 않는 무능력자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부자들은 다독가라는 말이 성립된다. 재산 많은 빌 게이츠가 다독가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1%의 부자의 삶과 완전히 거리가 먼 평범한 중산층에서도 다독가가 많이 있다. 살림살이가 여유롭지 않음에도 책이 좋아 꾸준히 사 모으거나 틈틈이 시간을 쪼개 책 읽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힘들게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책을 진심으로 좋아할 뿐이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애서가요, 다독가다. 독서만능주의자들아! 알라딘 서재 구경 한 번 해보시라.

 

 

 

 

 

 

이름만 들어도 넉넉하게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이 사람’도 책을 사랑해서 열심히 읽는다. 어찌 감히 서민이 책 안 읽는 무능력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독서만능주의자들의 궤변은 진짜 애서가들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책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항상 이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 ‘책을 읽어야 인생이 성공한다’라고 주장하는 독서만능주의자. 이들은 기업인들의 앞잡이가 되어 책 안 읽는 사람들을 교화시키기 위해 자신만의 독서 예찬론을 설파한다. 이 인간들은 ‘책부심’이 강하다. 자신이 천 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고 자랑한다. 많이 읽는 게 전부가 아니다. 독서가 좋다는 식의 같은 말만 반복하지 말고, 천 권 이상의 책을 읽는 능력을 직접 보여주시라. 빌 게이츠처럼 부지런하게 서평을 남겨보라는 말이다. 독서만능주의자들이 독자들이 읽기에 좋은 책과 읽으면 좋지 않은 책을 확실히 선별해준다면 나는 그들의 독서 능력을 인정하고 배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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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6-01-13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사에서 복리후생비로 책값을 내주다니 부럽네요. 근데 독후감 작성원칙은 진짜 영 아닌데요. 책값을 내줄테니 독후감을 쓰라는 자세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네요. 노동자들의 복지혜택에 조건을 걸다니! 기본이 안 된 회사들이군요

cyrus 2016-01-14 18:10   좋아요 1 | URL
작성 원칙까지 정하는 건 웃기는 일이죠. 직원들의 글을 검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몰래 볼 겁니다. 꼼꼼하게 읽진 않겠지만요. 이 회사가 치사한 게 책 구입하고 남은 거스름돈을 직원들에게 주지 않습니다. 2만 원 이내 가격의 책 한 권 구입하면 끝입니다.

찔레꽃 2016-01-13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과 출세와 독서를 연결짓는 자기 계발류의 책들 -- 리딩으로 리드하라 류의-- 에 대해 회의가 많았는데, 님의 글을 읽고나니 동지를 얻은 듯 하여 기쁘네요. 그러나, 한 때는 저도 그런 유의 책에 환호했었다는 사실. 부끄.

cyrus 2016-01-14 18:12   좋아요 0 | URL
저도 과거에 자기계발서의 헛된 꿈을 믿었습니다. 부끄부끄. 군 복무를 하고 나서야 진짜 현실을 깨달았습니다. 1년 반 개월 동안 젊은 시간을 허비하는 게 아깝지만, 나름 부대 안에 여러 사람들과 부대끼면 좋은 공부를 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책보다 경험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

만병통치약 2016-01-13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정말 말 그대로 취미일뿐인데 과도평가하는 분위기죠 ^^ / 저도 대장님께 복리 후생비로 책 값은 자유롭게 받고 있죠. 술담배 그리고 다른 취미가 없는 관계로요ㅋㅋ

cyrus 2016-01-14 18:13   좋아요 0 | URL
책 읽는 사람을 너무 과하게 띄우니까 책 안 읽는 사람들이 우리 같은 사람을 싫어해요 ㅋㅋㅋㅋ

살리미 2016-01-13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편의 회사는 연차 하루당 교보문고 도서쿠폰 하나가 지급되는데 도서쿠폰으로는 아무리 비싼 책이라도 쿠폰 하나당 한권이더라고요. 그리고 독후감을 올려야 한다거나 하는 조건도 없고요. 다만 도서쿠폰이 기한이 있으니 책 안사고 있으면 쿠폰 기한이 다되어간다고 연락이 와요.
업무에 관련된 책들은 최신간까지도 회사에 비치되어 있으니까 도서쿠폰으론 정말 자기가 원하는 책을 사 볼 수 있어요. 저희집은 주로 제가 베고 잘 만한 책들을 사는데 씁니다만 ㅋㅋ
요즘 직장인들은 대부분 시간이 없으니까 도서요약본들을 애용하는 것 같아요. 회사의 도서 사이트에도 보면 요약본들이 엄청 올라와서 안 읽어도 읽은 척 하기 좋겠더라고요. 물론 요약본을 보고 대강의 내용을 본 후에 보고 싶은 책을 고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근데 독후감을 써내라거나 인터넷에 올리라는 건 정말 너무하네요!

cyrus 2016-01-14 18:16   좋아요 0 | URL
제 동생 회사보다 조건이 좋은데요. 이상하게 제가 아는 회사만 독후감을 쓰라고 시키는지 참... ㅎㅎㅎ 독후감을 읽지도 않고, 잘 써도 인센티브를 주지 않으면서 왜 이걸 시키는지 모르겠어요.

지금행복하자 2016-01-13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그냥 읽어야합니다. 목적도 없고 심심할때는 자연스럽게 책으로 손이 가게 해 주면 되는데... 쩝!!
초등학생들 하는 독서마라톤이 성인들에게 까지 ..

cyrus 2016-01-14 18:17   좋아요 0 | URL
제가 생각하는 독서의 의미를 아주 잘 설명했습니다. 맞습니다. 도서정가제 때문에 진짜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환장하고, 정부는 억지로 독서를 권장하니까 책 안 읽는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어요. 세상 잘 돌아갑니다. ㅎㅎㅎ

해피북 2016-01-13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다보니 예전에 도둑이 되었던 독서왕 사건이 떠오르네요 ㅋㅋ 저희 신랑회사는 몇년 전 아내 생일에 이십만원 상당에 물건을 사고 청구할 수 있는 혜택이 있었더랬죠. 어떤 가정은 아내의 가방을 사기도 했고 집에 필요한 물건을 사기도 했는데 저희 집은 못샀던 책을 왕창사며 무척 기뻐했던 기억이납니다. 하지만 한 두번 만에 없어지구 요즘은 외식문화상품권으로 나와서 무지 슬펐던 기억이나네요 ㅋ

cyrus 2016-01-14 18:19   좋아요 0 | URL
경기 침체가 길어지고 회사가 쪼달리기 시작하면 직원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줄어들어요. 서글픕니다. ㅠㅠ

망고林 2016-01-13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조차도 그저 즐기지 못하고 뭔가 효용을 찾아내고 이용하려 드는 게 참 안타깝네요ㅠ 퇴근 후에 업무에 써먹을 책을 읽어오라니 그건 그냥 업무의 연장 아닌가요ㅋㅋㅋ
그리고 카드뉴스는 두번째 슬라이드도 어불성설이네요ㅋㅋ 가난한 사람들과 부자들의 독서량 차이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텐데 말이죠...
그리고 요즘은 읽어서 독이되는 책들이 너무 많아서, 책을 고르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책 맹신은 이런 면에서도 많이 위험한 것 같아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6-01-14 18:22   좋아요 0 | URL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 잠잘 시간에 독후감을 써야하는 직원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애잔합니다. 이런 걸 요구하면 소설 같은 책을 고를 수가 없어요. 어떤 기업 인사 직원은 신입사원 뽑은 면접에서 소설 책을 즐겨 읽는다는 지원자의 말을 듣고, 왜 그런 책을 읽느냐고 한심하게 말했다고 해요. 예전에 이런 사연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어요.

stella.K 2016-01-14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는 이직도 독서 의식이 후진성을 못 면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해.
우리나라가 책을 안 읽는 국민이라는 것도 솔직히 다 믿을 건 못되는 것 같고.
우리나라 사람들 뭐 좋다면 쏠리는 현상이 있는데
그 좋은 독서를 아주 안 한다고? 평균치가 낮아서 그렇지 하는 사람은 열심히
한다고 생각해. 뭐든 평균적으로 높으면 좋은데 말야.

이러고 저러고 지간에 2만원 얘기하니까 알라딘 이달의 당선작이나 좀 늘리면 좋겠다.
마음에 안 들어.>.<;;

cyrus 2016-01-14 18:24   좋아요 0 | URL
매년 독서 통계 뉴스를 보면 이해가 안 돼요. 십년동안 달라진 게 없고, 독서 인원의 수가 점점 줄어드는 게 말이 됩니까? 그래서 저는 이런 통계 결과를 완전히 믿지 않아요. ^^;;

서니데이 2016-01-14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따뜻하고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