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tvN ‘비밀독서단’ 7회(10월 27일 방송)를 본 사람이라면 특이한 주제를 다룬 책 한 권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제목이 재미있다. 《연필 깎기의 정석》(프로파간다, 2013). 전국에 있는 ‘수포자(수학 포기자의 준말)’들을 분노케 한 <수학의 정석>이 생각나는 제목이다. 이 책의 저자는 연필 깎기 장인이라고 한다. 그는 주머니칼을 비롯한 각종 도구로 연필을 깎는 기술을 선보일 줄 안다. 실제로 이 사람의 직업은 연필 깎는 일이다. 이런 괴짜가 쓴 책은 독자의 웃음을 유발한다. 혹시 ‘비밀독서단’ 방송에서 김범수 아나운서의 추천 책으로 《연필 깎기의 정석》이 소개되었을 때 나온 멘트를 기억하시는가. 방송 자막은 ‘2013년 A서점 선정 올해 가장 놀라운 괴작’으로 나왔지만, 방송을 다시 보면 김범수 아나운서가 ‘A서점’을 ‘알라딘’이라고 말한 목소리를 또렷이 들을 수 있다. (그런데, 2013년에 알라딘에서 올해의 괴작 도서를 선정한 적이 있었나? 어리둥절?)
사람들이 괴작을 즐겨 찾는 이유는 분명하다. "등신같지만 멋있어."
괴작(怪作)의 정의를 아시는가. 국어사전에 없는 단어이다. 온라인상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다. 대중의 취향에 많이 벗어나 ‘쓰레기’ 취급을 받거나 B급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 등을 가리켜 ‘괴작’이라고 한다. ‘싸구려’, ‘쌈마이(‘삼류’를 의미하는 일본어)’, ‘병맛’ 코드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괴작은 대체로 ‘막장’에 가까운 엽기적이면서 파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마추어에 가까울 정도로 심하게 부족한 면이 역력히 나는 작품도 괴작으로 취급한다. 이런 괴작들을 발굴하고, 세상에 알리는 블로거들(가장 대표적인 블로거는 페니웨이™. ‘괴작열전’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하고 있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그 덕분에 괴작을 직접 찾아서 보는 마니아가 생겨났다.
괴작 목록에는 거의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책이 포함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아직까지 괴작으로 분류되는 도서만 소개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혹시 활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알려주시라) 그래서 괴작 도서를 찾아내고, 세상에 알리고 싶은 열망을 느끼게 되었다. 헌책방에 다니다 보면 정말 특이한 책 한두 권씩은 발견할 때가 있다. 책값이 싸게 매겨져도 사는 손님은 없다. 표지와 내용만 봐도 사고 싶지 않은 책이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괴작 도서라 말할 수 있다. 오직 특이한 취향에 관심 있는 소수의 사람만이 그 책의 진가를 알아보며 책의 병맛 매력을 몸소 느낀다.
페니웨이™님의 ‘괴작 열전’처럼 괴작 도서를 소개하는 글을 써보려고 한다. 목표 권수는 50권. 특이하고 병맛스러운 책을 50권이나 찾는 일이 쉽지 않지만, 최대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겠다. 연재 글 제목을 정하느라 나름 고민했다. ‘괴작 도서’는 ‘괴도(怪圖)’로 줄여서 부르기로 한다. 첫 번째 제목 후보는 ‘괴도 열전’. 하지만 페니웨이™님의 ‘괴작 열전’를 따라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패스. 두 번째 제목 후보는 ‘세상에 이런 책이’. 신기한 사건들을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 제목과 ‘요지경 박물관 시리즈’로 알려진 책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가 연상되어서 이것도 패스.
괴작을 소개하는 글에 어울리는 병맛스러운 제목이 필요하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정한 제목이 바로 ‘괴도 놈팡’. 모리스 르블랑의 추리소설 시리즈 주인공 ‘괴도 루팡’을 패러디해서 ‘괴도 놈팡’이라고 지었다. ‘놈팡이’는 백수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앞으로 ‘괴도 놈팡’이라는 제목으로 싸구려 취급받는 책과 그걸 찾고 싶어 하는 놈팡이의 무모한 여정을 기록할 것이다. 진부한 서평만 나열되는 알라딘이 지루한 분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주는 역할이 되었으면 좋겠다. 병맛스러운 책도 재미있다는 걸 보여주겠다. 기대하시라. (엠블럼으로 사용된 그림은 마그리트가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