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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ㅣ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평점 :
“네가 정말 싫어.”, “싫으면 시집가.” 어릴 때 친구들과 놀 때, ‘싫다’라고 말하면 그 말에 붙여 ‘싫으면 시집가’라고 대꾸하던 기억이 있다. 옛날 여자가 시집살이를 시작하면 처가에 자주 들릴 수 없게 된다. 부모님들은 딸에게 장난으로 말한다. 이 집구석 싫으면 얼른 좋은 사람 만나서 시집이나 가라고. 그러면 부모님은 딸 속 썩이고, 반항하는 행동을 못 볼 테니까. 장난 같은 말이지만 여기에 혼기에 찬 딸을 염려하는 부모님의 진심이 숨어 있다.
혼자 살기도 벅차서 연애하기도 힘든 청춘이 늘고 있다. 그들 앞에 이런 말장난을 쉽게 하지 못한다. 당사자의 부아를 돋을 수 있다. 좋은 사람 만나 시집가고 싶어도 시집가기 위한 경제적 형편이 마땅치 않다. 얼마 전까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삼포 세대. 그리고 내 집 마련, 인간관계를 포기하는 오포 세대. 꿈과 희망마저 포기하는 칠포 세대까지 나왔다. ‘n포 세대’도 있다. 아예 모든 걸 포기하는 세대이다. 열심히 일해서 다 되는 건 아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평균적으로 산다는 게 힘든 현실이다. 잘 나가는 기성세대들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쉽게 말하면서 젊은이들에게 아픔을 겪은 만큼 그들의 미래를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청춘의 불만은 ‘헬조선’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사회가 팍팍할수록 그 사회의 모순을 예리하게 묘사한 소설, 드라마, 영화 등이 인기를 얻는다. 그것들을 많이 찾는 사람 대부분은 팍팍한 사회 속에서 고생하고 있다. 예를 들면, 윤태호의 웹툰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를 통해 미생도 되지 못한 청춘들은 노동시장으로 내던져진 청년층의 고단한 처지에 공감했다. 고졸 출신이 대기업 비정규직으로 입사해 멋지게 성장하는 이야기가 어느 영웅담 못지않은 카타르시스를 주는 이유도 그만큼 현실에서 실현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장강명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소설 《한국이 싫어서》의 제목만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낀 독자가 많았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이 카타르시스만 주는 작품으로 기억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소설로 돈, 학벌, 취업 문제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사는 한국인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만족해선 안 되고, 행복한 인생을 위한 해답을 찾아서도 안 된다. 기자 출신 작가는 실제로 호주 시민권을 취득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20대 후반 여주인공 계나의 삶을 구성했다. 그렇지만 계나처럼 ‘이민’이 자신만의 행복을 찾을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지 않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내가 아는 것은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 쪽이야.” (152쪽) 계나가 말하는 ‘어떻게’를 독자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어떻게 하면 호주 이민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한 독자가 있을 거고, 계나처럼 어떻게 자존심을 지키면서 행복하게 사는지 고민하는 독자도 있다. 이 책으로 ‘어떻게’에 대한 질문의 해답을 찾으려고 한다면 오산이다. 현재의 기쁨을 만족하는 ‘현금흐름성 행복’, 아니면 미래를 위해 차곡차곡 준비하는 ‘자산성 행복’을 위해 살아갈지 고민해야 한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 속에 사회에 대한 불만을 하나씩 품고 산다. 우리는 ‘헬조선’의 쳇바퀴에 벗어나지 못한다고 불만을 늘어놓지만, 지금 어디서 누군가는 비정규직 신세에 벗어나지 못해 이 쳇바퀴에 오를 자격이 못 된 채 살기도 한다. 《한국이 싫어서》의 계나는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선에 있는 중간 지점에 있는 인물이다. 그녀처럼 돈이라도 있으면 행복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라도 있지, 아예 없으면 행복을 위한 도피를 꿈꿀 수조차 없다. 이 소설의 해피엔드는 팍팍한 사회에 지친 독자들을 위한 판타지적 선물처럼 느껴진다. 한국이 싫은데 이 불만을 어떻게 참고 살아야 할까. 뭐라도 손에 쥐면서 이게 뭘까 저게 뭘까 고민이라는 걸 하고 싶다. 이런 답답한 현실 앞에 대고 ‘싫으면 시집가’라는 농담도 할 수 없으니, 참. ‘한국이 싫으면, 시집가!’, 이 한 마디 농담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