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조이스는 소설을 발표하기 전에 서평을 쓴 적이 있다. 한 번은 ‘아카데미’라는 잡지의 편집장 루이스 하인드로부터 서평 청탁을 받았다. 하인드는 조이스에게 서평 도서 한 권을 주었고, 칭찬 일색의 서평을 기대했다. 그러나 하인드의 예상과는 달리 조이스는 책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룬 내용의 서평을 작성했다. 조이스가 악평을 내놓자 하인드는 불평했다. 이런 식의 서평을 쓰면 앞으로도 잡지에 서평을 게재할 수 없다면서 으름장을 놓았다. 글쓰기로 밥벌이하는 조이스를 궁지에 몰아넣는 협박이었다. 그렇지만 조이스는 편집장의 협박 앞에서 기가 눌릴 사람이 아니다. 편집장에게 자신이 악평을 쓴 이유를 알려줬다. 그는 자신의 역할이 책 속에 발견한 미적 가치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워드가 건네준 책에는 미적 가치라고 할 수 없는 내용이 없어서 쓰레기통에 쳐 넣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했다. 조이스는 평생 글을 쓰는 데 있어서 진정한 ‘개썅마이웨이’였다. 자신이 쓰고 싶은 글에 대한 기준이 확고했다.

 

사실 조이스가 생각하는 서평 작성의 기준은 애매모호하다. 왜냐하면, 조이스가 생각하는 ‘미적 가치’가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미적 가치’라는 단어 안에는 조이스 스스로 부여한 주관적인 가치가 내포되어 있어서 하인드처럼 조이스의 악평을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조이스는 서평을 쓸 줄 아는 사람인 건 분명하다. 그는 서평을 읽는 독자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또 무엇을 전달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다. 독자가 서평을 읽음으로써 얻게 되는 지식은 문장에 난삽하게 버무려 놓은 서평가의 지식이 아니다.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책 속의 메시지야말로 진짜 책 속에 있는 지식이다. 서평은 독자 앞에 열려 있는 문이다. 독자가 이 문을 여는 순간, 책의 텍스트에 도달한다. 즉,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서평이란 독자가 이 책을 읽게 싶게끔 초대하는 친절한 문이 되어야 한다. 현학적 수사를 남발하면서 얄팍한 지식을 뽐내려는 서평은 독자가 열 수 없는 문이다. 독자가 아무리 열심히 힘(서평 내용을 이해하려는 생각)을 줘도 지식으로 완전 무장한 문장의 자물쇠를 손쉽게 풀지 못한다. 독자는 서평가의 현학적 탐구열과 지적 수준이 묻어난 서평을 긍정적으로 동의할 수도 있다. 한 편의 멋진 서평이라고 칭찬한다. 그렇지만 정작 서평에서 얻어야 할 진짜 지식은 발견하지 못한다. 그냥 잘 쓴 서평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내용을 거의 다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서평이 단순한 요약에 가까운 북 다이제스트와 동등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줄거리만 요약한 서평은 책을 읽으려는 독자에게 책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단점을 꼽자면, 독자가 북 다이제스트 같은 서평을 읽게 되면 서평 도서를 읽은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책의 미적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서평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다. 하늘에 있는 조이스가 어떻게 마음에 들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책의 미적 가치란 독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 냄새’ 나는 진솔한 내용이다. 독일의 소설가 마르틴 발저는 책이 독자의 인생에 자극을 주지 못한다면 단지 종이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독자는 책 속에서 우리가 경험했던 인생의 체취를 맡고, 아픔과 불안을 느낀다. 발저는 독자가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을 책의 철자가 만들어 내는 고유한 색깔이라고 비유한다. 과장되지 않되 진솔한 인생의 감동을 고이 간직하는 책이 훌륭하며, 그 책의 장점을 독자에게 알기 쉽게 전달하는 서평 또한 훌륭하다. 독자는 책의 장점을 직접 느끼려면 그 책을 읽어봐야 한다. 그러면 독자도 책의 미적 가치를 공감할 수 있다. 내가 지금까지 쓴 서평이나 책에 관한 잡문은 책의 미적 가치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고, 현학적 자기도취에 빠진 딜레당트의 한계가 드러나 있다. 부족한 내용의 서평을 좋아하는 사람은 봤지만, 부족한 내용의 서평을 제대로 꼬집은 사람은 많이 보지 못했다. 후자는 서평을 제대로 읽는 사람이다. 서평가가 만든 문을 열고 책 속의 세계를 확인한다. 서평에 소개되는 미적 가치에 공감하여 그 책을 직접 읽어봤을 것이고, 더 나아가 책에 대한 서평가의 입장을 논리적으로 비판할 수 있다.

 

 

 

 

 

그러니 독자들이여, 서평가가 만든 문을 여시오. 여보세요, 지금 제 글에 ‘좋아요’를 누르신 분! 오늘 하루를 그냥 좋은 서평에 ‘좋아요’만 누르지 말고 서평도서를 읽어보시오. 책의 미적 가치를 느껴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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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5-15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 냄새가 나는 글.... 가장 쓰기 어려운 글 입니다.

cyrus 2015-05-16 21:54   좋아요 0 | URL
맞아요. 가장 쓰기 어렵고, 만나기 쉽지 않은 글이죠.

수이 2015-05-16 00: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은 글도 많고 읽고 싶은 책도 많지만 인간의 한계가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특히 북플을 시작하면서 말이죠 ㅋㅋ 푹 찔리고 돌아갑니다~~

cyrus 2015-05-16 21:55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ㅎㅎㅎ

fledgling 2015-05-16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이스 전집 사주세요! ^^

cyrus 2015-05-16 21:56   좋아요 0 | URL
너무 비싸요 ㅋㅋㅋ

양철나무꾼 2015-05-16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그래 `좋아요`만 누르려다가 댓글 남겨요~ㅅ.
전 서평도서 종종 읽는데, 제겐 북플도 죽음이지만 이곳 알라디너들도 그렇고, 서평도서들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이 완전 지름신이걸랑요~^^
책으로 탑쌓기 대회 같은거 개최하면 전 분명 수상권 안에 들 자신 있습니다~!

cyrus 2015-05-16 21:58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좋은 서평을 만나면 그 서평도서를 안 읽어요. 그래도 제가 읽었던 책의 서평을 만나면 꼼꼼하게 읽습니다. 저는 알라딘 대구점 구매왕 이벤트를 하면 수상권 안에 들 자신이 있습니다. ^^

stella.K 2015-05-16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마지막 말이 참...!
요즘 서평집이 그 어느 때 보다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잖아.
그런데 그 책은 읽지 않으면서 서평책만 읽는 오류에 빠질까 봐
그것도 경계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들긴 하더라구.
그런데 또 그런 서평을 읽으면 그 책을 읽는데 도움은 되더라구.

니가 너의 서평글에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하니? 나는 어쩌라구...ㅠ
나는 점점 서평을 못 쓰나 봐.
좋아요도 그렇게 많지도 않고 최근엔 당선작이 돼 본적이 없고
이젠 점점 자신감이 없어지더라구.
어떤 땐 그놈의 좋아요가 은근 적극적으로 비교의식을 부추기고 있잖아.
늪이고 양날의 칼이란 생각이 든다.ㅠ

cyrus 2015-05-16 22:10   좋아요 0 | URL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읽은 서평집이 로쟈님 책뿐이에요, 최근에 나온 <정희진처럼 읽기>나 <집 나간 책>은 안 읽어봤어요. 북플에 접속하면 이웃들이 쓴 서평 수십 편 이상은 읽으니까 서평집 읽을 필요성을 못 느꼈어요. 여기 알라딘에서도 서평을 잘 쓰시는 분들이 많으니까요. ‘좋아요’ 수, 댓글 달린 수, 블로그 조회수가 적다고해서 블로거가 글을 못 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 글에 ‘좋아요’ 수가 많은 것은 제가 다른 이웃 블로그에 남긴 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아서 그래요. 저는 제 블로그에 댓글을 달거나 ‘좋아요’를 눌러주는 이웃의 글에도 ‘좋아요’를 눌러줘요. 일종의 호혜성 이타주의적 관계예요. 거기에 너무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단발머리 2015-05-16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이 너무 좋은대요~~*^^* 좋은 서평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구요~ 저도 cyrus님 의견에 적극 공감해요.
좋은 서평이란 결국 그 책을 읽게끔, 사게끔 이끌어 줘야한다고 말이지요.
저같은 경우는 책이 궁금해서 서평을 읽는 경우도 많지만, 서평을 쓴 사람의 생각이 궁금해서 읽는 경우도 많거든요. 저도 `사람 냄새`를 중요시하는 사람인가봐요~~~ㅋㅎ

cyrus 2015-05-16 22:14   좋아요 0 | URL
책에 대한 서평가의 생각이나 느낌이 진솔하게 나타나면 책을 읽어보고 싶어져요. 단발머리님의 말씀처럼 서평가의 생각이 궁금하게 되고, 만약에 책을 읽어서 서평에 언급했던 서평가의 생각에 공감하면 책을 잘 읽었다는 기분이 들어요. 그러면 좋은 책을 소개해준 서평가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어요. 줄거리만 있는 서평은 영혼 없는 글 같습니다.

에이바 2015-05-21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저도 서평이라고 쓰곤 있지만 어떤 게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어떤 책은 느낌만, 어떤 책은 줄거리부터 구구절절 샅샅이 훑어가며 늘어놓게 되는데요. 정보제공이란 목적에 어긋나잖아요. 너무 길게 쓰면... 아무래도 애정의 차이인 듯 해요. 생각해보면 제가 쓰는 글은 다른 이들에게 좋은 책을 소개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제 즐거움을 위한 거라 그런가봐요.

cyrus 2015-05-21 20:57   좋아요 0 | URL
줄거리만 쓰는 서평은 장단점이 뚜렷해요. 책의 핵심 내용을 원하는 독자가 읽으면 좋지만, 단점이 출판사 서평에 소개된 줄거리 위주로 썼다면 독자서평을 쓰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저도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면서, 불특정 다수 독자에게 좋은 책을 알리고 싶은데 이 두 가지 장점을 균형 있게 맞추는 게 쉽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