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한 주부는 장 보는 습관부터 다르다. 생활 속에서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아낀다. 똑똑한 장보기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쉬운 방법은 ‘장바구니 목록’을 활용하는 것. 꼭 필요한 물품만 목록에 작성하면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다. 그러나 ‘초특가 기획 판매’라는 유혹이 곳곳에 널려 있다. 아무리 쇼핑목록을 작성하고 ‘불필요한 물건은 눈길도 주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한다 하더라도 커다랗게 적힌 ‘할인 판매’라는 글자 앞에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게 주부의 마음이다. 생활비 지출을 줄이려면 ‘장바구니 목록’을 작성하는 습관을 갖고, 목록에 있는 물건들만 사야겠다는 약속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결국, 내 마음 속에 있는 ‘지름신’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장바구니 목록’을 작성하는 일은 시간과 돈을 절약하는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을 건강하게 만들기도 한다. 최근 미국 의학저널에서는 장바구니 목록 작성이 건강과 체중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논문이 실렸다. 먹거리를 사기 전에 미리 장바구니 목록을 작성하면 더 건강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장바구니 목록을 작성하는 사람과 목록을 작성하지 않고 시장에서 즉석 구매를 하는 사람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체중을 분석한 결과, 즉석 구매를 한 사람의 체중이 목록을 작성한 쪽보다 2kg 이상 많았다. 이 실험만 가지고 장바구니 목록 작성과 체중의 상관성을 명확히 규정을 내리기 어렵지만, 장바구니 목록을 작성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건강에 해로운 음식을 충동적으로 구매할 가능성은 적다.

 

그렇다면 애서가가 책을 사기 전에 장바구니 목록을 만든다면 지름신과의 싸움에 승리할 수 있을까? 나는 반반이라고 생각한다. 충동구매의 유혹을 이겨내려는 강인한 의지만 있다면 지름신을 쫓아낼 수 있지만, 유혹의 손아귀에 빠져나오지 못하면 목록을 만들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나는 인터넷 서점을 애용하는 독자의 장바구니(또는 보관함)에는 사야 할 책이 꽉꽉 차 있다. 주로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책을 고르긴 하지만 가끔 자신도 모르게 장바구니에 담는 책들이 있다. 이런 경험은 한 번쯤은 있으리라 생각된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가입한 지니는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고 자신의 회원 계정에 있는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다음에 다른 책들도 둘러보고 역시나 마음에 드는 책을 몇 권씩 고른다. 너무나도 읽고 싶은 책이 많아서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넣으면 저장된 책이 수십 권 이상 족히 넘어간다. 지니는 장바구니에 쌓여가는 책들을 보며 달콤한 설렘과 고민을 동시에 느낀다. 이 많은 책을 다 사고 싶은데 이 중에서 무얼 사야 할까? 한참 동안 생각하던 지니는 한 달 전에 읽고 싶어서 장바구니에 담은 책은 사지 않고, 몇 분 전에 ‘자스민 공주’라는 닉네임이 운영하는 알라딘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모 작가의 신작 도서를 구매했다. 지니가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다는 것은 구매 의사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지니는 구매의사가 있었던 책을 구매하지 않고, 장바구니에 포함되지 않은 책을 구매한다. 이런 구매 성향을 반복할수록 장바구니에 저장한 책은 점점 많아질 뿐, 정작 사지 못한다.

 

책 사는 비용 지출을 절감하기 위해 정말 원하는 책만 장바구니에 저장하는 애서가도 있지만, 대부분 자신이 찜을 한 책보다는 유명 서평가나 블로거가 추천하는 책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도서정가제가 시행되기 전, 알라딘에 반값 할인이 허용되었던 시절에는 장바구니는 무용지물이었다. 나는 신간보다는 구간도서(판 끊어진 책도 포함)를 사는 편인 데다가 충동구매를 할 때도 있어서 장바구니 기능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 북플의 ‘읽고 싶은 책’ 기능은 알라딘 보관함에 연동되었는데 현재 87권의 책이 저장되어 있다. 북플을 처음 시작했을 땐 ‘읽고 싶은 책’ 기능을 이용했지만, 요즘은 쓰지 않는다. 북플에서 만난 이웃들 덕분에 읽어볼 만한 책들을 많이 알게 되어서 ‘읽고 싶은 책’에 저장했지만 부끄럽게도 구매한 책은 단 한 권도 없다. 그렇지만 읽고 싶거나 사고 싶은 책들을 엑셀에 써넣는다. 관심 있는 책들을 나름대로 분류하고 목록으로 만든다. 엑셀로 만든 목록은 스마트폰에 저장하여 오프라인 서점이나 헌책방에 책을 살 때 참고한다.

 

 

 

 

 

 

 

 

 

 

 

 

 

 

 

 

 

 

알라딘의 장바구니, 보관함, 마이리스트 그리고 북플의 ‘읽고 싶은 책’ 기능은 책과 관련된 ‘목록’ 그 자체다. 지금도 누군가는 장바구니에 읽고 싶은 책을 보관하며 어떤 이는 ‘마이리스트’를 만들어 관심 있는 책을 따로 정리하고 있다. 북플에 이제 막 가입한 사람은 ‘읽고 싶은 책’을 몇십 권씩 골라서 체크할 것이다. 우리가 목록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심리 속에는 인간의 소유 욕망이 꿈틀대고 있다. 고대인들은 우주처럼 한계가 없는 대상을 마주쳤을 때 그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대상의 속성을 무한히 나열했다. 반면 우리는 한계 없는 소유 욕망을 마주쳤을 때 간접적으로 충족하기 위해 사물을 끊임없이 나열하고 있다. 목록의 무한성은 현기증을 불러일으킨다. 난장판처럼 흩어진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욕망은 목록 작업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되듯이 책을 소유하고 싶은 애서가 혹은 장서가는 목록 작업으로 소유 욕망을 해소한다. 점점 양이 많아지는 목록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애서가는 혼돈에 이르고 만다. 목록에 포함된 이 많은 책 중에 무엇을 사야 하나. 움베르토 에코는 목록의 무한성을 즐거운 혼돈으로 받아들이고 즐기자고 말한다. 애서가는 책을 장바구니나 보관함에 저장하면서 즐겁고도 괴로운 고민에 빠진다. 장바구니에 하루에 몇 권씩 늘어나는 책들을 보면서 언제 살 수 있을지 한숨 쉬며 걱정한다. 여기서 무언가를 더 읽으려는 욕구가 솟아난다. 독서 욕구는 애서가의 본능이며 책에 대한 사랑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오늘도 책의 유혹에 벗어나지 못하는 애서가 동지들이여, 즐거운 혼돈을 즐기시라.

 

 

 

 


댓글(2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다이제스터 2015-05-11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구입에 파산 직전입니다. ㅠㅠ 요즘 대부분 중고 책 나오길 기다리며 추가 구매 억제 중 입니다.

cyrus 2015-05-12 20:49   좋아요 0 | URL
저는 신간도서를 언제 구입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매주 알라딘에 접속하면 읽고 싶은 신간이 한 두 권씩 발견하는데 샀으면 아마도 책값이 10만 원을 넘었을 겁니다. ^^;;

붉은돼지 2015-05-11 2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같아서는 책장에 무슨 부적이라도 하나 붙여야할것 같아요 ㅠㅠ

cyrus 2015-05-12 20:51   좋아요 0 | URL
지름보살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05-11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런 글 좋네요. 지름신이 강한 이유가 있었군요. 지름신 강림하고 나면 항상 후회`를... 10권 사면 7권은 사지 말아야 할 그냥 그런 책을 요즘 계속 구매하게 되네요.... 확률이 무척 떨어졌습니다. 고민 중입니다. 확률을 높일 방안을 모색해야 겠어요.

cyrus 2015-05-12 20:53   좋아요 0 | URL
사지 말아야 할 책을 사고 나면 그 중에 몇 권은 안 읽거나 중고서점이나 헌책방에 파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제 경험입니다. ^^;;

개암나무 2015-05-11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플에도 여러 기능이 있네요. 눈팅용으로만 써서 아직은 뭐가 뭔지..

cyrus 2015-05-12 20:56   좋아요 0 | URL
저도 북플은 눈팅용이라서 북플로 글이나 사진을 올린 적이 한번도 없어요. ㅎㅎㅎ

에이바 2015-05-11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끔 보관함보며 배부르다고 착각(?)을 유도합니다. 잘 되진 않는 것 같지만요;; 반값 세일 때는 괴롭지만 행복했는데요... 요즘은 북플 때문에 보관함 터질 지경입니다. ㅠㅠ 따로 목록을 만드는 건 좋은 생각이에요. 팁 고맙습니다.

cyrus 2015-05-12 21:01   좋아요 0 | URL
알라딘 장바구니나 보관함은 로그인하면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어서 사지 않은 책들을 보면 신경이 쓰여요. 목록은 책을 살 때만 확인합니다. 이렇다보니 신간도서보다는 이미 사놓고도 읽지 않은 책에 더 관심 가게 되더라고요. 에이바님에게 제 방법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만병통치약 2015-05-11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장바구니에 책 500권 가격으로 천 만원 어치 있습니다. ㅋㅋㅋㅋ

cyrus 2015-05-12 21:04   좋아요 0 | URL
장바구니 안에 있는 책 500권 중에 몇 권은 절판되거나 품절되었을 겁니다. ㅎㅎㅎ

돌궐 2015-05-11 2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레나에 투입할 검투사들의 신체와 나이, 치아 상태들을 점검하기 위하여 인력시장(도서관)에 먼저 신청해서 간을 봅니다. 그래도 쓸만하다 싶으면 그제서야 사지요. 아 물론 가끔 스파르타쿠스급이 뜨면 바로 사긴 합니다.

cyrus 2015-05-12 21:07   좋아요 0 | URL
스파르타급! ㅎㅎㅎ 비유가 아주 좋습니다. 이런 책은 표지만 봐도 고릅니다.

수이 2015-05-11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기기 쉽지 않아 ㅋㅋ

cyrus 2015-05-12 21:08   좋아요 0 | URL
요즘 신간도서를 즐겨 읽으시던데 배부른 소리를 하십니다. ㅎㅎㅎ

지금행복하자 2015-05-12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손꾸락을 부여잡고 있습니다. 숙제를 해야해서요~ ㅎ
장바구니는 담아만 두는걸로~~~

cyrus 2015-05-12 21:12   좋아요 0 | URL
장바구니 기능은 책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요물 같은 존재인 것 같습니다. 사고 싶은데 망설이거나 미루면 장바구니에 담으면 그만이잖아요. ㅎㅎㅎ

transient-guest 2015-05-12 0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을 늘 줄이고 줄여봐도, 금방 채워집니다. 다른 취미를 끊고 책에만 올인해도 모자랄 지경이네요.

cyrus 2015-05-12 21:14   좋아요 0 | URL
저는 신간도서는 구입하지 않지만, 헌책방이나 중고서점에 있는 구간도서를 구입하고 있어서 여전히 책 욕심을 줄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

럭키언니 2015-05-12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배송중...

cyrus 2015-05-12 21:15   좋아요 0 | URL
`배송중`이라는 단어만 보면 책이 얼른 집에 도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