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기 논란 자음과모음 이번엔 갑질’ (한국일보, 2015년 3월 27일)
작년 3월 초에 민음사가 직원 6명을 해고했다가 이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되자 사흘 만에 해고를 철회한 소동이 있었다. 민음사 소동에 대한 논란이 커지게 되면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열악한 출판계 노동 현실의 고질적 문제 또한 수면 위에 떠올랐다. 민음사 같은 대형 출판사에서부터 중소형 출판사까지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 일을 일종의 관행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암묵적으로 용인했다. 이는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는 행위이다.
최근 자음과모음 출판사가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고용을 강행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소식을 최초로 알린 유일한 언론 매체는 한국일보다. 그래서인지 작년 민음사 논란에 비하면 잠잠하다. 해당 출판사 직원이 회사의 부당한 고용을 폭로했는데 사실 이 내용만 가지고 자음과모음 출판사가 근로기준법을 어기면서까지 직원들에게 갑질 행세를 했는지 판단할 수 없다. 양측 입장을 좀 더 자세히 들어본 뒤에 사실을 명확하게 밝혀내어 누가 잘못했는지 따져봐야 한다.
그렇지만 자음과모음 사장과 주자음 대표의 진술이 엇갈린 점으로 보아서 자음과모음에 대한 의혹을 쉽사리 지울 수 없다. 특히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계약이 법을 어기는 행위임에도 이를 관행이라고 주장하는 주자음 대표의 발언은 놀랍다. 작년 민음사 소동으로 출판계 전체가 발칵 뒤집었던 적을 잊어버린 걸까 아니면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인가. 어쩌면 지금도 일부 출판사 안에선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이 비일비재하게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주자음 대표가 저런 발언을 할 수 있는 것은 노동과 근로기준법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출판사 대표를 맡는다 하더라도 책을 만드는 사람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출판사는 좋은 책을 만들지 못한다. 또 출판사가 제대로 운영될 리 만무하다. 출판계 노동에 무지하고 외면하는 출판업계 종사자들이 우리나라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책을 만드는 현실이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