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다닐 때 대구의 남산동 헌책방에 쭈그려 앉아 몇 시간씩 낡은 책을 뒤적일 때가 있었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현대사를 헌책방에서 배웠고, 하늘처럼 떠받들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왜 문제 많은 독재자인지 알게 되었다. (『안도현의 발견』중에서, 104쪽)
가끔 책을 읽다가 (헌)책방에 관한 언급이 두 줄이라도 나오면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린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한동안 보지 못했다가 오랜만에 어딘가에서 만날 듯한 예감처럼. 책방에 가서 책을 뒤적거렸을 글쓴이의 행동이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그러면서 나도 직접 책방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하필 대구 남산동이라니. 또 한번 가고 싶군.
이곳도 한때 책방이 많았다. 풍문에 들리자면 1970~80년대에 동인동(대구역 지하차도 부근에 밀집했음)과 더불어 책방 수십 개가 빼곡히 늘어설 정도로 형성되었다고 한다. 인근 학교가 개학하면 학생 손님들이 몰려 찾아오기도 했다. 지금은 대형서점과 온라인 서점 거기에 알라딘 중고서점의 등장으로 사람 냄새 책 냄새가 가득했던 책방의 풍경은 많이 사라져버렸다. ‘헌책방 골목’이라는 지명만 남은 지금, 이름은 이름일 뿐 예전 그때 그 풍경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 책방 안에는 오랜 세월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는 곰팡이 내만 남아 있다. 책방에 잠들어버린 책들은 새 주인이 찾아와 자신을 깨워주기를 기다린다.
이 문장 세 줄을 읽으면서 갑자기 궁금하게 느껴지는 점 하나. 과연 시인이 학창시절 방문했던 남산동 책방은 어떤 곳이었을까? 이런 사소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남산동 헌책방 골목으로 갔다. (라고 써보지만, 사실 책을 사고 싶어서 가는 거다)
헌책방 골목은 남문시장 사거리에 내려서 건너가면 나온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제일 먼저 ‘코스모스북’이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6.25 전쟁 때 이곳에서 터를 잡은 오래된 책방이다. 당시 이 일대에 고등학교가 많이 밀집해 있던 터라 서점이 장사하기에 아주 좋은 터였다. 지금 코스모스북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장님은 1980년에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코스모스북 1대 주인장 채해기님이 작고한 뒤인 1985년에 인수하게 된다. 책방 불황에도 불구하고 코스모스북은 전국의 애서가들의 발길이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대구 헌책방 처음으로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온라인 판매를 병행하기 시작한 곳도 코스모스북이다.
코스모스북 건물 뒤로 몇 발자국 걸어가면 또 다른 책방 세 개를 발견할 수 있다. 해바라기 서점과 대도서점 그리고 골목으로 더 들어가면 월계서점이 있다. 손님의 발길이 드문 책방 특성상 평일에도 문을 닫는 경우가 있다. 어제는 해바라기 서점이 문을 열지 않았다. 찬바람이 외투 안으로 파고들어 살이 얼얼하게 느껴지도록 추운데도 대도서점 주인장님은 좁은 문을 활짝 연 상태에서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주인장님 앞에는 끈으로 묶은 책들이 바닥에 쫙 깔려 있다.
월계서점은 이제 곧 대학에 입학하게 될 자녀(로 추정함)를 둔 중년의 여 주인장님이 운영한다. 목소리가 나긋나긋하고 무척 친절하신 분이다. 코스모스북보다 월계서점을 자주 들리는 데 그 이유가 여 주인장님이 친절한 점도 있지만, 항상 음악이 흐르기 때문이다. 여 주인장님이 선호하는 8090 가요를 들을 수 있다. 나도 8090 가요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이곳에 오면 책과 음악 때문에 눈과 귀가 즐겁고 북 카페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다.
결국, 남산동 헌책방 골목에 남아있는 책방은 총 네 곳. 안도현 시인은 커다란 빌딩이 들어서면서 사라져버린 책방들 그리고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 책방 네 곳 중 아무 데나 들려서 탑처럼 쌓인 책더미 사이를 뒤적거렸을 것이다. 마음 내기는 대로 들릴 수 있는 책방이 남산동에 많았을 것이다. 고작 세 줄로 표현된 시인의 책방 추억이 너무나도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 지금도 입지가 불안한 책방의 현실이 안타깝다. 지금 내가 자주 가는 책장 네 곳도 몇십 년 뒤에 다시 갈 수 없는 추억으로 남으면 안 되는데. 많지 않은 애서가 손님들의 발길을 잊지 못해 사시사철 기다리면서 책방을 열고 있는 네 곳의 책방 주인장님이 무척 고마울 따름이다.
비록 시인의 책방 흔적을 찾을 수 없었지만, 책방에 두 시간동안 확인한 끝에 아주 귀한 절판본을 발견했다. 토마스 메취와 페터 스쫀디의 『헤겔 미학 입문』(종로서적, 1983)과 에드워드 카의 『러시아 혁명』(나남, 1983)이다.
『헤겔 미학 입문』은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1』(휴머니스트, 2014)에 수록된 ‘정신의 오디세이’ 편 참고문헌이다. ‘정신의 오디세이’ 편은 헤겔의 미학을 요약, 설명하는 글이다. 이 책은 영화 ‘미인’을 연출한 여균동 감독이 서울대 철학과를 재학하고 있을 때 번역했다. 책의 1부는 토머스 메취의 『Hegel und die philosophische Grundlaegunder Kunstsoziolo 』를, 2부는 페터 스쫀디의 『Poetilc und Geschichtphilosophie I』의 일부를 저본으로 삼았다. 1980년대 당시 헤겔 미학 원서를 우리말로 읽기 쉽지 않은 시절이라서 이 책은 헤겔 미학의 호기심에 목마른 독자들의 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오아시스 같은 책이었을 것이다. 의외로 헤겔 미학 개론서가 많이 나오지 않은 사실이 놀랍다. 최근에 나온 헤겔의 『미학 강의』서론을 해설한 『헤겔 미학 개요』(박배형, 서울대학교출판부, 2014)이 헤겔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개론서로 가장 근접한 책이다.
에드워드 카의 『러시아 혁명』은 1917년부터 1929년까지 준비한 방대한 저작물 '소비에트 러시아사'를 일반 독자를 위해 1977년에 쓴 개론서이다. '소비에트 러시아사'는 총 4부작으로 '볼셰비키 혁명'(The Bolshevik Revolution, 1917~1923), '공위기간'(Interregnum, 1923~1924), '일국사회주의'(Socialism in One Country, 1924~1926), '계획경제의 기초'(Foundations of a Planned Economy, 1926~1929) 등으로 되어 있다. 레닌에서 스탈린까지 집권하는 시기인 1920년대 러시아의 발전경로를 다루고 있다. 특히 카는 소비에트의 공업화와 계획정치를 다룬 장을 알렉 노브(Alec Nove)의 『소련경제사』(창비, 1998)을 참고했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1997년에 『러시아 혁명』은 새 표지로 다시 나왔지만, 알렉 노브의 책과 함께 절판되었다.
헤겔 미학과 러시아 혁명. 전공자가 아닌 이상 학교에서 이런 내용을 가르쳐주지 않을 것이며 자세하게 배울 수도 없을 것이다. 평범한 독자들이 시도하기 어려운 주제이다. 특히나 러시아 혁명에 관한 책을 읽으면 요즘 '종북'으로 의심받기 딱 좋다. 1980년대에 카의 『러시아 혁명』은 불온서적으로 취급받았고, 이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옥고를 치른 사람이 32년 만에 무죄가 선고한 것을 보면 아이러니하다. 하긴 대학생 필독도서인 『역사란 무엇인가』도 불온도서로 오명 받은 시절이 있었다. 카의 책이 최근에서야 낡은 냉전 이데올로기가 만들어 낸 편견의 딱지에서 벗어난 건 다행이지만, '마르크스', '레닌'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도 북한으로 떠나라고 감정 섞인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북한의 세습주의를 엄청나게 싫어하고 북한식 사회주의의 환상에서 여전히 헤어 나오지 못한 일부 진보 세력의 태도를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생각이 전혀 다른 입장을 완전히 배격하기 위해 이성적 검증을 배제한 종북 프레임을 내세우는 보수 세력은 소리만 요란한 빈 깡통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