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1 버스 통학의 어려움
이번 주는 개강 수업이 많다. 수업 첫 날에는 수업 소개를 하는 OT를 하는 편이라 학교 갈 때 가방이나 책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 교수님들마다 성향이 다르겠지만 의외로 첫날부터 수업 진도를 나가시는 교수님은 꼭 한 명씩 있다. 지금까지 몇 몇 첫 수업을 들으면서 다행히 첫 수업에도 열정적인(?) 교수님은 없었다.
개강한지도 얼마 안 되었고 수강변경 기간도 아직 남아 있는 상황이라 요즘에는 거의 빈 손인 채 즐기는 마음으로(?) 학교를 간다.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열공 모드에 돌입해도 충분하니까.
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집에서 출발하교 학교에 도착하는데만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위치상 학교가 거리가 먼 편이다. 그래서 버스 타고 타니는 것만 해도 고역이다. 운이 없으면 만원버스를 탈 수도 있고 그렇다고 손님이 없다고해서 좋은 점도 없다. 혼자서 버스를 타는데 1시간 내내 앉아 있으면 너무나 지루하고 졸립다. 전날에 일찍 잠을 잔다고해도 버스에 앉기만하면 서서히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버스를 타다보면 꾸벅꾸뻑 졸 때도 있지만 선잠에 불과하다.
더구나 버스 안에서 잠을 안 잘려고하는 가장 큰 이유는 꾸벅꾸벌 졸다가 머리가 창문에 부딪히거나 자신도 모르게 벌어진 입술 사이에 침이 흘릴 수 있는... 아주 난감한 상황이 연출하게 된다. 버스에 타고 있는 주위 사람들이 제대로 보지 않는다면 괜찮겠지만...
그나마 잠을 깰 수 있는 방법으로는 스마트폰이다. 음악을 듣는다거나 게임을 한다. 하지만 버스 타는 내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기에는 시간 낭비이며 건강상으로는 좋지 못하다. 스마트폰을 자주 이용하다보면 시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나중에 사용하다보면 목이 뻐근하기 때문이다.
Scene #2 나, 이런 사람이야...
그래서 항상 버스 통학을 하면 가방 안에 읽을 책 한 권은 꼭 가지고 다닌다. 통학 이외에도 수업 마치고 집으로 귀가할 때도 스쿨버스를 타게 되는데 주로 이 시간 때 읽는 편이다.
요즘에는 무거운 전공교과서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서 학교를 가게 되면 읽을 책 한 권을 들고 다닌다. 달랑 책 한 권만 들고 학교를 다려보니깐 편하고 좋다. 하지만 버스 안에서 책을 읽는다고 해도 잠이 안 오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흥미롭고 집중 몰입을 할 수 있는 내용의 책이라면 괜찮은데 대부분 몇 페이지 정도 읽고나면 졸리기 시작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흔들림이 잦은 버스나 지하철, 기차 내에서 책을 읽게 되면 시야 초점이 맞춰질 수 없기 때문에 눈이 피로해진다. 그러니 책을 읽어도 당연히 졸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시력을 떨어지게 만드는 습관이기도 하다.
그래도 버스 타는 내내 멍때리거나 온종일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것보다는 독서가 낫다고 본다. 적은 시간을 통해서도 책 한 권을 통해서 새로운 지식과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비어 있는 시간을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의미로운 행위이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 버스에서 읽고 있는 책이 조세희의 <난쏘공>이다. 이 책을 중학교 3학년 때 구입해서 처음 읽어봤는데 그 이후로는 읽지 않은채 책장에 꽃혀 있다가 8년 만에 드디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오랜만에 펼치게 된 이유는 이번 주 월요일에 '한국정부론' 이라는 수업에 조세희의 <난쏘공>을 소개하는 EBS 'e 지식채널' 동영상을 본 이후로 오랜만에 읽어보고 싶었다. (조세희의 <난쏘공>에 대한 지식채널 동영상에 대한 감상은 내일 안으로 페이퍼로 작성하겠다)
그래서 그 수업을 듣고 다음 날인 화요일, 그러니까 어제 <난쏘공>을 한 손에 쥔 채 학교에 갔다. 아무래도 월요일에 있었던 수업에도 소개된 책이라 주위 친구들의 반응을 기대한 의도도 있었다.
대학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만난지 올해만 포함하면 2년이다. 군대 2년을 제외하면 오랫동안 사귄 편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보니 내가 독서를 좋아하는 것을 잘 모른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만난 꽤 친구들은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다보니 내가 독서를 좋아하는 것까지 취미, 습관을 다 꿰뚫고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대학교 친구들은 오히려 나라는 사람을 말 많고 먹는데 엄청 밟히며 특히나 술 좋아하는 과탑이라는 존재로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대학교 친구들 앞에서 나의 지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 스스로 과장한 것도 있지만 우리나라 사회문제를 다룬 소설을 읽는 사회의식이 뚜렷하게 가지고 있는 대학생으로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평소 독서와는 거리가 먼 대학생 친구들에게 괜한 큰 기대감을 가졌다. 정말로 책에 대해서 무관심한건지 아니면 일부러 안 보는 척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하루동안 만난 친구 10명 중에 아무도 내가 들고 있는 책 한 권에 단 한 명도 관심을 쏟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따라 오히려 한 손에 달랑 쥐고 있는 <난쏘공>이 더욱 허전하게 느껴졌다.
Scene #3 책을 알리는 나만의 방법
친구들이 나의 새롭고도 지적인 면을 보지 못한게 아쉽다기 보다는 이런 좋은 책이, 그것도 곧 사회라는 거대한 세상을 알아야 할 대학생들이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욱 아쉽게 느껴졌다. 200쇄를 돌파한 우리나라 최대의 문제작이며서도 한 때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추천될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이아면 꼭 기억해야할 책인데도 말이다. 대학생들이 그저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권력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철거민들의 생활에 대해서 안중에 없듯이 <난쏘공>의 내용도 대학생들에게는 자신의 삶과과 거리가 먼 그저 '남 이야기' 에 불과한 것이다.
나는 어떻게든 <난쏘공>이라는 이 좋은 책의 가치를 딱 한 사람이로도 알려주고 싶었다. 물론 그런 좋은 의도 뒤에는 지적인 면모를 어떻게든 알리고픈 졸속한 마음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
그래서 이런 방법을 써봤다.
1) 평소에 성격이 어른처럼 성숙하고 진지한 면이 있는 마음씨 착한 친구 한 명을 지목한다.
꼭 진지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 의외로 책을 읽을 줄 알기 때문이다.
2) 그 친구가 가방을 들고 다니는지 확인한다.
3) 가방을 들고 다닌 것을 확인한 후, 내가 지금 책 한 권 들고 다니니가 불편하니 잠시만
가방에 넣어줄 것을 부탁해본다. 마음씨 착한 친구는 이런 작은 부탁에도 잘 들어준다.
4) 그러고는 친구에게 책을 건네주면서 살짝 책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다. <난쏘공>이
어제 수업에 소개된 책인데,, 교수님이 소개하길래 다시 한 번 읽어보려고
한다는 식으로..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이 정말 좋다고 찬사의 미사여구를 늘어놓는다.
5) 책이 친구의 가방에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난 후에는
일부러 책을 받으러 가지 않는다. 즉, 모르는 척 하는 것이다.
그 친구는 나중에 집에 도착하고 난 뒤에서야 가방 안에 맡기고 있었던
책을 확인하게 되는데 90%는 이런 경우에도 다음 날에 책을 안 돌려주는 편이다.
왜냐하면 책을 돌려주고 싶어도 굳이 학교까지 가는데
가방 안에 들고다니기가 은근히 귀찮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자주 만나니깐 나중에 돌려줘도 된다는 식으로 미루게 되는
일종의 귀차니즘적 생각을 하게 된다.
대충 이런 시나리오(?)를 예상하면서 실행을 하게 되었는데 딱 맞아떨어졌다. 오늘 그 친구가 나에게 책을 가져가지 않은 사실을 알려주었는데 본의 아니게 책을 자기 집에 놔두고 왔다고 하였다.
나는 겉으로 까맣게 잊어버린 척하면서 괜찮다고 대인배 모드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내가 맡긴 그 책, 좋은 책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시간이 나면 집에서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한다. 그리고 다 읽고나면 천천히 돌려줘도 된다고 말한다.
그 친구는 <난쏘공>을 읽어보겠다고 대답은 했긴 했는데 그 친구가 정말로 읽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대답만 하고 책을 방치해두고 있다가 기간이 좀 지난 뒤에 돌려줄 수도 있기 때뭉이다.
그래서 농담삼아 그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다.
" 천천히 돌려주는 대신에 원고지 200자 이내로 <난쏘공> 독후감 써 와라.
독후감 안 써오면 책을 안 읽는걸로 간주할께"
그 친구에게 농담삼아 책 읽어보라고 권했지만 내 마음의 진심이 그 녀석이 통하기를 그저 바랄 뿐이다. 이렇게 해도 안 읽는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만약에 이런 경우에는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한 페이지조차도 읽어보지도 않으면서 책을 돌려주지 않는 것. 이런 행위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다. 정말로 읽어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독서 행위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좋은 의미로 그냥 넘어갈 수는 있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쭉 지켜봐야할 듯하다. <난쏘공>이 영영 못 받게 되는 최악의 상황이 안 일어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