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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발견 -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
박상훈 지음 / 폴리테이아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마르크스는 아니다, 마키아벨리가 필요하다?
작년에 신문을 보다가 참으로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하였다. 그 때 내가 본 신문은 보수적인 성향의 중앙일보였는데 마키아벨리에 관련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에 대한 짤막한 기사였다.
어떻게 보면 정치적 무관심에 빠진 신문 구독자들 대다수는 크게 관심이 가지 않은 기사 내용일 수도 있었지만 정치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구독자들에게는 기사의 표제를 보는 순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을 것이다.
진보학계 거장 최장집 ‘ 한국 정치의 길’ 을 말하다 - “ 마르크스는 아니다, 마키아벨리가 필요 ”
그런데 딱 기사 제목을 보는 ' 마키아벨리 ' 라는 이름을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 구독자들은 분명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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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왜 하필이면 권모술수를 상징하는 마키아벨리를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이 사람의 주장,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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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교수에게 마키아벨리란 , , , ?
니콜로 마키아벨리 (1469~1527)
하지만 이 기사를 자세히 보니 최장집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을 간략히 압축하여 소개한 것이었다. 지금 한국정치에는 마르스크보다는 마키아벨리가 필요하다는 내용만 드러나고 있을뿐 정작 왜 마키아벨리가 필요한지에 대한 이에 이유를 알 수 있는 최 교수의 설명은 소개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은 자사 언론에서 내고 있는 특별섹션의 인터뷰 기사를 은근히 홍보하기 위해서 만든, 쓸데없는 지면 낭비에 불과한 일종의 지라시 형식의 기사였던 것이다.
이처럼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오늘날에도 학자와 대중들 사이에서 평가가 극명하게 갈린 인물중의 한 사람이다. 후세에 '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 ' 이라고 불리게 되는 권모술수적 정치가의 등장을 주장하는 내용을 담은 그의 책 <군주론>은 정치학의 불후의 고전이 되는 동시에 사상이 위험한 불온한 서적이라는 엇갈린 명예를 얻게 되었다. 책의 저자인 마키아벨리는 죽어서도 ' 권모수술의 화신 ' 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악의에 찬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만했다.
그런 문제적인 인물을 작년에 후마니타스 출판사가 주최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정치철학 강의에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마이카벨리즘을 재조명,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한 것이다.
최장집 교수는 인터뷰를 통해서 예전부터 진보 사상에서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마르크스 사상이 실패한 이유가 정치적 역할이 없다는 것임을 지적하며 우리나라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푸는 것만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정치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 마르크스 이론의 치명적 결함은 정치의 역할이 없다는 점이지요. 마르크시즘이 현실 속에서 작동을 못하고 실패한 이유는 거기에 있어요. 정치는 없이, 이상과 규범만 강요됐기 때문에 권력의 문제를 잘 다룰 수 없었지요. 그런 이상과 당위의 논리는 우리에게 넘쳐요. 오늘 한국 사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그런 규범이 아니라 좋은 정치를 이끌 실력이라고 봐요.”
- [중앙일보] 인터뷰 중에서 -
그리고 마키아벨리야말로 이상의 정치학이 아닌 현실의 정치학을 인식한 인물이며 권력과 폭력 그리고 악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정치의 영역으로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최 교수의 인터뷰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는데 (그것도 같은 날에!) 최 교수의 강의계획서에 있는 메모 일부를 인용하고 있는데 그의 마키아벨리에 대한 생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마키아벨리] 폭력과 악을 정치의 중심에 놓기 : 도덕으로서 폭력과 악을 극복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다룰 수 있는가? 또 이를 극복할 방법은 무엇인가? 폭력과 악에 정면으로 대응한 최초의 정치철학자 마키아벨리.
- [오마이뉴스] 인터뷰 중에서 -
결국에는 최 교수는 실제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적인 정치에만 좇기보다는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실현 가능한 정치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실의 정치를 할 수 있는 출발점이 바로 우리에게는 ' 폭력과 악 ' 으로 상징되고 있는 권력인 것이다.
박상훈 대표에게 막스 베버란 , , , ?
막스 베버 (1864~1920)
현재 후마니타스 출판사 대표인 박상훈 대표는 자신의 정치학 강의 내용을 담은 <정치의 발견>이라는 그렇게 많지 않은 분량의 책을 발간하였다. 정작 책에서는 박상훈 대표가 참여했다던 강연이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지 않지만 저자가 ' 후마니타스 출판사 대표 ' 라는 사실을 알면 대충 무슨 강연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최장집 교수의 마키아벨리 강의를 주최했던 출판사가 후마니타스다)
박상훈 대표의 이력을 살펴보면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수여받은 적이 있는데 최장집 교수로부터 지도를 받았으며 <정치의 발견> 서문에서도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가르쳤던 교수가 최장집 교수라는 것을 살짝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작년에 출간된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개정 2판에도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번에 박 대표가 쓴 책도 최 교수의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보이기도 하다. 박 대표가 정치학 강연을 하기 시작하여 하나의 책으로 만든 취지가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의 문제점을 무엇인지 파악하고 지금보다 나은 정치의 가능성을 찾기 위해 탐구하려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박 대표 역시 최 교수처럼 오늘날에도 여전히 마르크시즘에 천착하고 있는 진보의 모습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으며 마르크시즘은 체제 전체를 이끌어가기 위한 정치적인 역할을 부여하지 않았으며 권력마저 부정한 나머지 대중들에게 정치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불어넣는 원인으로 설명하고 있다.
<철학의 빈곤>에서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 노동계급은 그 발전 과정에서 낡은 시민사회를 계급과 계급 적대를 배제하는 결사체로 대체할 것이다. 그리고 이른바 정치권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정치권력이란 시민사회 내에 존재하는 적대와 반목의 공식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
(중략)
마르크스주의가 갖고 있는 이른바 정치 부재론 내지 정치 종언론은 정치를 부정적인 것으로 만들기 쉽다. 오로지 혁명이 중요하고 혁명 이후에는 하나의 진정한 정치형태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인데, 사실 그것만큼 위험한 생각은 없다. 정치는 인간이 천사가 되지 않는 한 언제나 꼭 있어야 하는 불가피한 것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길은 정치를 선용하는 방법을 찾는 데 있지 정치 없는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 <정치의 발견> p 138~139 -
그리고 선(善)함만을 강조하는 신념의 윤리만 추구하는 정치보다는 하나의 집단 체제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리더쉽이 충만한 지도자적인 역할이 있느 정치 역시 필요하며 그 역할을 충당할 수 있는 권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 중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폭력과 악으로 점철되고 있는 냉혹한 정치 세계의 현실을 인식하고 있으며 정책 결정 시 신중한 판단을 요구하는 책임의 윤리를 가져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정치가란 모든 폭력성에 잠재되어 있는 악마적 힘들과 기꺼이 관계를 맺기로 한 사람이다. "
- p 28,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재인용 -
박 대표가 인용하고 있는 막스 베버의 책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다거나 정치가라는 직업은 대의정치에 입각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사회 질서를 바로 잡는 역할이라는 생각을 가진 독자들에게는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심기가 불편했을 것이다. 박 대표도 실제로 강연 중에 막스 베버의 글을 인용했을 때 수강자들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고 회고하고 있다.
막스 베버가 주장하고 있는 올바른 정치가의 모델은 마키아벨리의 표현보다 과격하기만 하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우와 같은 간사한 책략과 사자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신의가 두텁고 고결한 인격을 가진 선량한 사람처럼 보일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막스 베버는 마키아벨리보다 한 술 더 떠 정치가들을 악마의 힘과 관계를 맺어야한다고 비유하고 있다.
마키아벨리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기사 제목을 보면서 당황하는 구독자의 느낌처럼 그 당시 강연에 참석했던 청중들도 막스 베버의 표현을 듣는 순간 적잖이 놀랬을 것이다.
책임의 윤리이냐, 신념의 윤리이냐
최장집과 박상훈, 이 두 사람은 사제지간에다가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정치관도 일치해서 어떻게 보면 그 선생의 그 제가가 하나같이 과격하면서도 독단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내용은 근본적인 연구를 하지 않고 주관적인 편견으로 섣불리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최 교수와 박 대표가 최근에 마키아벨리와 막스 베버를 재조명하기 전에 이미 17년 전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국내에 초판 번역했던 강정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해제에서 마키아벨리와 막스 베버의 정치적 윤리관의 유사성에 관해서 논하고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1994년 초판 출판 때 쓴 강정인 교수의 번역본 해제는 지금도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개정판에도 실려 있다)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윤리관은 막스 베버가 " 소명으로서의 정치(Politics as a Vocation) " 에서 구분한 ' 확신의 윤리 (ethics of conviction) ' 와 ' 책임의 윤리 (ethics of responsibility) ' 중 책임의 윤리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베버에 따르면 확신의 윤리는 인간이란 선한 존재란 전제하고, 동기가 선하면 주어진 행위는 그 결과에 상관없이 선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서 책임의 윤리는 인간의 평균적인 악을 전제하고, 이를 감한하여 행동해야 하며, 따라서 동기의 선함보다는 결과의 선함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베버의 이러한 구분은 일부 문제가 없지 않지만, 기독교적 윤리관은 확신의 윤리에,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윤리관은 책임의 윤리에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 <군주론> (개정 3판), 마키아벨리, 강정인 역, p 242 -
그러나 마키아벨리와 막스 베버의 정치적 윤리관이 일맥상통한다고 해서 이들이 확신의 윤리, 즉 신념의 윤리를 완전히 도외시했다고 왜곡적으로 받아들어서는 안 된다.
인민들의 호의로 군주가 된 사람은 그들의 환심을 계속해서 사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인민들이란 단지 억압당하지 않는 것만을 원하기 때문에 이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민들의 의사에 반해서 그리고 궈족들의 호의에 의해서 군주가 되었을 때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인민들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며, 이는 당신이 그들을 보호함으로써 쉽게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군주론> 마키아벨리, 강정인 역, p 71 -
마키아벨리는 인민들의 호의를 토대를 바탕으로 강력한 군주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호의적인 인민들을 확보하는 것도 필수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반면에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신념의 윤리와 책임의 윤리는 서로 조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지만 막스 베버는 단지 신념의 윤리에만 치우치지 말 것을 종용하고 있다. 최고의 신념 윤리가라 할 수 있는 혁명가도 ' 종말론적 예언자로 돌변 ' 하여 현실적인 정치 문제에 무감각해지며 반대로 책임의 윤림에만 너무 추구하다보면 권력 자체를 숭배하게 되어 정치력을 왜곡시키는 가장 해로운 형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박상훈 <정치의 발견> p 34)
위기에 맞설 수 있는 책임감 있는 정치
의사들이 소모성 열병에 대해서 말하는 바가 이 경우에 해당됩니다. 그 병은 초기에는 치료하기는 쉬우나 진단하기가 어려운 데에 반해서, 초기에 발견하여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진단하기는 쉬우나 치료하기는 어려워집니다. 국가를 통치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나하면 정치적 문제를 일찍이 인지하면 (이는 현명하고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문제가 신속히 해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식하지 못하고 사태가 악화되어 모든 사람이 알아차릴 정도가 되면 어떤 해결책도 더 이상 소용이 없습니다.
- <군주론> 같은 책, p 25 -
강정인 교수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주장하고 있는 내용을 ' 위기의 정치학 '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질병을 비유하여 마키아벨리가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정치가란 자신의 눈 앞에 찬아온 정치적인 문제(위기)를 일찍이 인지를 하고나서 신속히 해결하고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역량을 가지고 있는 군주, 즉 정치가가 되기 위해서는 현명하고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자만이 가능하다고 부연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역량이라는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힘은 단지 특별한 능력을 가진 군주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의 세계에서 사용하는 권력은 일반적으로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을 가리키고 있다. 그 권리와 힘은 국민의 대의를 위한 올바르고 합법적인 과정에서도 사용할 수 있지만 간혹 폭력적이고 강제적인 과정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수많은 정치가들이 발에 담그고 있는 이 거대한 정치판은 선과 희망이 가득한 에덴 동산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가는 그런 권리와 힘이 지배하고 있는 정치의 세계 앞에서 뛰어든 이상 자신이 다스리는 국가 내에 커다란 정치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무조건 방관하고 차일피일해서는 안된다. 냉혹한 정치 현실을 스스로 인식하고 이를 기꺼이 받아들여 특별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교회 개혁을 내세워 새로운 피렌체의 통치체제를 시도하려다 반대파에 의해 화형당한 사보나롤라를 ' 무기를 든 예언자 ' 로 비유하여 정치의 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개인 또는 집단들 간의 이해 관계를 파악하지 못한 채 실질적이지 않는 언명만 내세우는 역량은 도리어 화를 부른다고 말하고 있다. 똑같이 막스 베버는 소박하고 순수하기만하고 특별한 책임 의식이 없으며 내적으로 무력한 자는 정치가를 직업으로 삼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 책을 읽게 되면 박 대표가 진보적인 성향이며 정치학 강연에 참석한 이들 대부분 역시 진보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 대표는 책의 서문을 통해서 진보와 보수가 서로 대화하면서 정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기를 바랬다. 그러나 박 대표의 정치적 윤리관은 진보만 들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을 떠나 정치적 위기를 인식하고 고민할 줄 아며 이를 맞설 수 있는 책임감을 가진 적극적인 정치가야말로 현실적인 감각을 지는 정치가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최대의 정치적 위기가 바로 관용과 타협적인 대화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단절된 상태의 보수와 진보세력의 모습이다. 지금도 수많은 정치가들은 치명적인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채 자신들의 권력을 앞세워 서로 자신들의 밥그릇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면서도 대중들 앞에서는 자신들은 권력에 집착하지 않으며 권력만 앞세우는 자를 혐오하는 선량한 정치인마냥 행동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국민들 사이에서 생겨나고 있는 정치적인 질병들을 치유하려는 책임감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글을 조국 교수의 인터뷰 내용으로 마무리하겠다. 권력을 ' 오용 ' 하고 있는 우리나라 정치가들과 반대로 권력을 ' 오해 ' 하고 있는 대중이라는 우리나라 정치 현실을 조국 교수 역시 이미 파악하고 있었으며 자신의 주장을 막스 베버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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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베버는 " 정치인은 악마적 힘과 손잡는 사람 " 이라고 갈파한 바 있어요. 정치권력을 다름 아니라 악마적 힘입니다. 이 힘과 손을 잘못 잡으면 악마에게 내가 넘어가죠. 이 힘을 포기하면 반대 정파가 이 힘을 사용하여 나를 억누르죠. 그러나 그 힘을 정확히 사용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에 능한 것을 넘어, 그 권력을 잡았을 때 이를 잘 다투어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거죠. 진보, 개혁 진영의 사람들은 권력 행사를 혐오하는 경향을 버려야하며, 권력을 유능하게 행사하는 기술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 <진보집권플랜> 조국 & 오연호, p 253~2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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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독자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책일수록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 내용에 대한 독자들의 반발과 반문도 비례하기 마련이다. 막스 베버를 인용하여 책임 윤리를 강조하는 권력, 순화하면 리더십을 가진 정치적 윤리관을 주장하는 박상훈 대표의 주장에 대해서 여전히 거리감을 느끼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르크시즘이 정치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지적하는 최 교수와 박 대표의 주장에 대해서 반문을 가질 수 있겠다.
그러니 순전히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어떤 일말의 해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채 이 책을 읽지 말았으면 좋겠다. 희망만 가득한 채 읽을수록 내용에 대해서 실망감을 가질 수 있다. 사실 나 역시 막스 베버의 글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안 읽었으면 이 책, 그냥 실망만 안겨주는 그저그런 책으로 될뻔 했다.
마르크시즘에 대해서 깊이 있는 지식도 없거니 전문적으로 정치를 공부해본 적이 없어서 나 역시 이 내용에 대한 작은 설명도 남지기 못했다. 그렇다보니 책에 대한 감상이 주관적이면서도 편협적으로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해서 좋다고 나쁘나고 평가를 하지 않겠다. 오히려 그런 평가는 정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나에게는 무의미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책의 내용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평가는 어디선가 이 책을 읽고 있을, 그리고 이제 막 읽기 시작하려는 독자들의 몫인 것이다.
* 자료 출처
[최장집, " 나는 왜 마키아벨리에 주목하는가? "] 오마이뉴스,2010.7.24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20838
[최장집 “마르크스 이론 치명적 결함은 정치의 역할이 없다는 것이죠”]
중앙일보 섹션 J, 2010.7.24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4335025&cloc=olink|article|defaul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