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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자유 - 로쟈의 책읽기 2000-2010
이현우(로쟈) 지음 / 현암사 / 2010년 9월
평점 :
어느 학생회장의 단식 투쟁
신문을 보다가 아주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하였다. 이름만 들어면 알만한 K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회장이 학교 단과대에서 운영하고 있는는 교육 제도 프로그램에 반발하여 며칠째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일반적으로 대학교 학생 시위라고 하면 대부분 등록금 제도 인상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내가 본 이 기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학생 시위 내용이었다.
K 대학교 정경대에서는 소속 학생들의 인문적 소양을 기르기 위한 목적으로 학과별 필독도서와 추천도서 그리고 학생이 결정한 도서들을 종합하여 2010학년도 신입생부터는 총 12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게 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정경대 소속 학생회장이 이 교육 제도 프로그램에 반발하여 1인 단식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시위 중인데 횟수로는 17일째라고 한다) 시위를 벌이고 있는 학생회장은
"독서 권장 프로그램를 이수하지 못하면 장학금 신청이나 해외 연수 프로그램 등에 지원하지 못하게 하는 제한 규정이 있다" 며 "책을 읽기 싫다는 게 아니라 학생들에게 부담을 주면서까지 독서를 강제하는 게 잘못됐다는 것" 이라고 주장했다.
학생회장의 주장에 대해서 정경대학 측에서는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학생 소양에 필요한 책을 읽자는 교육 목적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강제성은 피할 수 없다"며 "학생들 의견을 반영해 추천도서를 4권으로 줄이고 우수이수자는 장학금 신청 때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면서 독서 권장 프로그램의 목적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장했다.
신문상에서는 이 내용에 대해서 크게 중점적으로 보도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 기사 내용이 흥미로웠다. 내가 다니는 학교도 아닌데도 이 문제의 상황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졌다. <책을 읽을 자유>를 쓴 '로쟈' 이현우 씨가 말했듯이, 이것도 어떻게 보면 어떤 주제이든지 간에 '조사' 하고 '탐구' 하는 싶은 고질병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를 신문 기사자체로만 보는 것을 떠나서, 직접 K 대학교 정경대 게시판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 학생회장, 그 학장의 사정
학교 게시판에는 학생회장의 단식 투쟁에 대한 내용으로 시끌벅적하고 있었으며 학생회장의 시위에 대해서 찬반 논란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 논란의 중심에는 이번 사태에 대한 학생회장이 쓴 장문의 글도 올려져 있었다.
학생총회에서는 수 차례나 정경대 학장과의 면담을 시도했고, 250명의 학생의 서명이 있는 독후감 제출 거부 서명서를 제출을 해도 학장의 답변은 냉담했으며 학생들의 태도가 독서가 싫어서 투정부리고 있다면서 면담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회장은 이번 시위의 목적은 인문학적 가치가 살아 숨쉬고 학생들의 자기 결정권이 존중받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1학년 학생대표들이 학과실로 불러들이는 것이 마음 아프며 독단적인 선택이지만 어쩔 수 없이 단식투쟁을 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 학교 게시판에 올려져 있는 학생회장의 글 http://community.khu.ac.kr/forum
K 대학교 사이트의 정경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독서 권장 프로그램에 대한 학장, 학과장의 입장에 대한 공지사항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공지사항에 대한 내용을 발췌해 소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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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장과 학과장 일동은 학생회장과 몇몇 학생들이 게시한 대자보들에 현재 본 사안과 관련하여 진행되고 있는 내용들이 심히 왜곡되어 전달되고 있어, 우리 정경대 학생들이 사실과 동떨어진 인식을 하게 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매우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프로그램 도입 초기부터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많은 회의와 토의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 일자별 회의 주제와 내용 요약
9월 15일 : 정경대 학생회 주관 학생총회 실시
9월 17일 : 각 학과 1학년 대표 행정실에 건의사항 전달 - 프로그램 취지 동의하지만, 장학금 신청금지 조항 폐지, 다양한 수준의 책 선정, 독후감의 분량(띄어쓰기 포함 1,500자) 조정, 프로그램 이행 기간 연장
10월 4일 : 학장 주재 학과장 회의 - 1학년 대표 건의사항 논의 : 자기추천도서를 1권에서 4권으로 늘려 학생의 도서 선택의 폭을 넓히고 독후감 분량을 띄어쓰기 포함 1,800자로 축소
10월 5일 : 정경대학장 각 학과 1학년 대표 면담 - 학과장회의에서 논의된 수정안 전달
10월 11일 : 정경대 학생회장 및 부학생회장 단식 시작 - 교양교육프로그램 미이수시 적용되는 불이익 폐지 요구
10월 14일 : 학과장 및 각 학과 1학년 대표 면담 / 학장주재 학과장 회의 - 2차 수정안 협의 및 협의 결과 전달, 중간고사 이후 각 학과 1학년 총회 개최 후 재논의 하기로 결정
출처: http://khsma.khu.ac.kr/contents/bbs/bbs_content.html?bbs_cls_cd=001001008&cid=10102911465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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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장이 게시판에 올린 글은 10월 21일에 작성되었으며 정경대 사이트에 있는 공지사항은 10월 29일에 작성되었다. 아마도 교육 제도 프로그램에 대한 논쟁이 뜨거워지자, 정경대 측에서는 식을 줄 모르는 논쟁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정경대 1학년 학생대표들과 논의하기로 결정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잘못된 교육환경이 낳은 '독서' 논쟁
정경대가 도입한 프로그램은 학생들에게 독서를 통해서 대학생으로써 교양을 쌓는 동시에 이에 대한 참여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학생회장은 독서 권장 프로그램에는 학생들의 자율권을 박탈하며 1학년 학생들에게 독서에 대한 자유를 보장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K대 학생회장의 글이나 정경대 공지사항으로나마 이 논쟁이 누구 말이 맞다고는 단정짓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단지 독서에 대한 자유를 찾기 위해서 며칠 동안이나 단식투쟁을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추운 날 아무 것도 먹지 않는, 자신의 몸이 망가지게 하여서 자신의 주장에 대해 동정을 요구하기 보다는 자신이 왜 독서 권장 프로그램에 반대하는지 정경대 학생들, 그리고 정경대 교수들과 진지한 대화를 해보면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무턱대도 교육 제도를 도입하지 말라고 반대하기보다는 독서 교육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여 좀 더 나은 독서 권장 프로그램이 되도록 개선하는 쪽으로 진행하면 지금과 같은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의 문제에 대해서 다 함께 토론을 하는 것이 학생회장이 바라는 인문학적 가치가 살아 숨쉬는 일, 그리고 플라톤이 자신의 저서 <향연 Symposion>에서 말하고자 한 생활 또는 학술상의 중요한 문제를 공동의 장소에서 철저하게 토론하고 해결하는 것이 심포지엄의 정신일텐데 말이다.
그리고 정경대 학장이 학생회장의 면담을 거부하는 것도 옳지 않은 처사이다. 단식투쟁 시위가 계속되자 1학년 학생대표들만 불러 모으면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도 아니다. 독서 권장 프로그램이 1학년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제도라고 하지만 이제 막 고등학생의 티를 벗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학생들이 이 회의에 진자하게 고민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전 학년 학생대표들, 독서 교육에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여 전방위적으로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찾아야 할 것이다.
결국, 이 해프닝은 '독서' 라는 것을 강제로 해야될 것이냐, 안 해야되냐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 뿌리 깊게 자리잡은 교육 환경 구조상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문제로 봐야할 것이다.
독서를 외면하고 있는 우리나라 교육 제도와 환경
<책을 읽을 자유>의 '독서 강국으로의 길' 이라는 글에서 이현우 씨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책을 안 읽는 이유가 우리나라 사회적 제도와 여건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독서' 와 '공부' 는 분리된 상태이다. 교과서에 수록된 글을 읽는 것도 어떻게 보면 학생들이 인식하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하는 독서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이는 학생들이 자기 스스로 책 속 문장을 이해하고 생각하는, 올바른 독서 방법은 아니다.
교실에서 교과서를 펴게 되면 평소에 책을 읽는 것처럼 정독하고 스스로 글을 쓴 저자의 생각에 대해서 생각할 수 없다. 문학 교과서에 수록된 최인훈 작가의 <광장>을 읽는다고해서 소설 속 주인공 명준의 죽음을 통해서 학생들이 직접 이데올로기가 낳은 인간성 상실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소설 속 주인공 명준의 죽음에 대한 의미를 그대로 주입하여 앞으로 그들이 치게 될 학력고사나 수능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보장받을 수 있는 중요 내용으로만 생각할 뿐이다.
그러다보니, 중. 고등학생 통틀어 6년이라는 청소년 시기에는 독서를 읽을 시간이 없다. 이들을 유혹하는 컴퓨터 게임이나 감각적이고 일시적인 것에 빠지는 청소년들의 정서를 자극하는 것들이 있기에 독서를 멀리하는 것도 있지만, 정작 정신적으로 유익한 활동인 독서를 배움의 장소인 학교가 외면한 것은 큰 문제이다. 학생들에게는 오직 학교 시험과 수능 시험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독서를 할 수 있는 여건이 그리 마땅치가 않다. 멋드러진 교내 도서관에 수많은 장서를 보유한다고 해도 학생들이 마음 편히 책을 읽을 수가 있을까? 수능시험 걱정이 눈 앞에 있는 학생들에게는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독서하는 능력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청소년들이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책을 읽지 않게 된다. 학생들의 독서하는 습관을 유도하기 위해서 대학교 내에서 권장도서 100권 목록을 만든다고 해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읽을 리 만무하다. 대학교에 와서도 학생들에게는 책을 읽을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막 입시 전쟁터에서 탈출한 고등학생들이 대학교에 오자마자 향하는 것은 저 넓은 캠퍼스가 아니라 취업 전쟁터이다. 고등학생 때 수없이 끼적거리던 수학의 정석, 맨투맨 영어문제집을 뒤로 한 채 이제는 TOEIC 문제집과 공무원 시험 교재를 펼치고 있다.
그래서 K 대학교 정경대와 같은 경우네는 학생들의 독서 향상을 위해서 단순히 권장도서 목록만 들이내미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나은 실질적인 방법이랍시고 독후감 쓰기까지 권장하고 있는데, 오히려 학생들에게는 독서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다. 지금 취업이 중요할 판에 여유롭게 책 읽고 독후감이라니? 장학금 인센티브 때문에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참여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래서 대학생들이 책을 읽게 되는 단기적인 효과는 있겠지만 독후감 활동이 추가된 독서 권장 프로그램 역시 학생들에게 독서 활동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만드는데 그 장기적인 효과를 주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책을 읽을 자유가 없는 우리나라 국민
이현우 씨는 이런 고질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책으로 사이토 다카시의 말을 빌어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대학입시나 입사시험에도 독서력을 묻고 평가하는 방식이 도입되는 것을 고려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런 제도를 통해서 학생들이 멀리하고 있던 책을 가까이 하겠지만 이들이 평생동안 책을 읽게 한다는 보장이 없다. 우리나라에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독서능력평가가 실시하고 있지만 대부분 학생들은 특목고 입학 목적 및 특별활동 기록에 의의를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형적인 사회 환경 때문에 영영 책 한 권 제대로 읽을 수 없는 불행한 민족인 것일까? 정부와 교육 기관에서는 학생부터 어른들까지 다양한 연령의 국민들이 독서 습관을 형성하기 위해서 다양한 프로그램과 제도들을 도입하고 있으며 지금도 실시하고 있는 것들도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의 독서 수준은 선진국의 독서 수준과 비교하면 많이 낮은 상태인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유치원 때부터 조기교육으로 영어 공부한다고, 책을 외면하고,
초.중,고등학생이 되면 책을 읽고 싶어도 학교 시험 그리고 수능시험에 집중하느라, 책을 외면하고,
대학생이 되면 취업 준비하느라, 책을 외면하고,
그나마 생활이 보장된 직장을 구했지만 자식들 먹여 살리기 위해서, 그리고 가족들이 살기 위한 집을 마련하기 위해 고생해서 일을 하다보면, 책을 또 외면하고.
정년 은퇴하여 이제 좀 편안해진 여생에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읽으려고 해도, 예전보다 많이 떨어진 시력 때문에 책의 문자를 읽지 못한 상황이라면. . . . . 너무 분하고 억울할 일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책을 잘 읽지 않은 것에 대해 우리나라 국민들 특유의 독서 기피증, 그리고 현실과 동떨어진 독서 권장 프로그램과 권장도서 목록의 양산으로만 원인으로 몰아세우기 보다는 우리나라가 모든 사람들이 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땅인지 그 근본부터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미국 워싱턴 한국전기념관 벽면에는 'Freedom is not free' 라는 글귀가 새져겨 있다.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책을 읽기에는 척박한 지대이지만 환경 탓만 할 수는 없다. 힘들겠지만 우리 스스로 책을 읽을 자유를 찾아보고 조금이라도 책을 읽으려는 노력을 가져야 한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자유 역시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 기사 출처 [조선일보] 2010년 10월 23일자
http://blog.naver.com/ndolphin?Redirect=Log&logNo=20060149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