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4월 21일은 ‘과학의 날’이다. 이 특별한 날을 맞아 오늘부로 ‘담담 책방’은 ‘과학책방 담다’로 새롭게 변신한다. ‘담다’는 책방 이름 ‘담담’의 ‘담’과 영국의 생물학자 다윈(Darwin)의 ‘다’를 합쳐서 만든 이름이다. 서울 삼청동에 ‘과학책방 갈다(갈릴레이+다윈)’가 있다면, 대구 비산동에 ‘과학책방 담다’가 있다.
4월 19일은 다윈이 세상을 떠난 날이다. 지금으로부터 90년 전인 1934년 4월 19일에 과학 대중화 운동 단체 ‘발명학회’가 ‘과학 데이’를 정했다. ‘과학 데이’는 우리나라 최초 과학 기념일이다.
* 이오진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 (제철소, 2023년)
‘과학책방 담다’를 책임질 주인장은 바로 나, ‘과학책에 미친 해성이’다. 나는 ‘문과 남학생’으로 살아왔지만, 어린 시절 과학자가 되고 싶은 꿈이 1.5g 정도 남아 있다. 과학자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아주 작은 꿈이다. 그래도 이 꿈은 내겐 매우 소중하다. 이 꿈이 다 녹아서 사라졌다면 과학책을 펼쳐 보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룰 수 없는 꿈은 ‘개꿈’으로 취급받는다. 제대로 펼치지 못한 꿈은 그 꿈을 소중히 간직했던 사람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차갑게 식어 버린 꿈은 흐르는 시간에 씻겨서 사라진다.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 꿈을 반쯤 펼쳐라. 내 수준에 맞게 꿈 이름을 바꾼다면 접힌 꿈을 반 정도 펼칠 수 있다. 나는 ‘과학자가 되는 꿈’을 ‘과학책방 주인장이 되는 꿈’으로 바꾸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과학책방 담다’를 만들었다. 내 꿈을 이루게 해준 ‘담담 책방’ 책방지기 정의식 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과학책방 담다’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추천 도서는 총 여섯 권이다. 까다롭게 책을 좋아하는 나의 추천 도서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내가 산 책들. (2) 알라딘에 내가 쓴 서평이 있는 책.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추천 도서 한 권만 서평을 쓰지 않았다. (3) 많이 알려진 책들은 제외했다. 모든 책방에 ‘베스트셀러’ 과학책이 한두 권 있다. (4) 독자들의 손길과 시선을 많이 받지 못한 책들. 언젠가 독자들에게 인정받을 가능성이 있는 책들. (5) 그래서 출간된 지 얼마 안 된 신간 도서를 두 권 이상 고를 것. (6)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되는 책들. 생각날 때마다 펼쳐 볼 수 있는 편안한(책방 주인장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과학책이다. 책방의 넓은 책상에서 편안하게 읽어도 된다.
* 칼 세이건, 홍승효 옮김 《브로카의 뇌: 과학과 과학스러움에 대하여》 (사이언스북스, 2020년)
<서평>
[새로운 지식을 만나는 회의주의자의 올바른 자세] 2021년 2월 2일 작성
‘과학이란 무엇인가?’ 누군가가 과학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이 책을 추천하겠다.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의 대표작 《코스모스》가 책장에 꽂힌 책방은 많다. ‘담담책방’에 《코스모스》가 두 권이나 있다. 그런데 ‘과학책방 갈다’를 제외한 다른 책방에 왜 《브로카의 뇌》, 이 책은 없는 것일까?
《브로카의 뇌》는 《코스모스》(1980년 출간)보다 일 년 먼저 나온 책이다. 다양한 주제로 한 에세이를 모은 책이라서 틈틈이 읽기 좋다. 세이건과 친해지고 싶은데 ‘많이 팔린 과학 벽돌 책’ 《코스모스》 완독이 부담스러운 독자라면 《브로카의 뇌》를 만나면 된다.
과학자는 가설이 타당한지 검토하기 위해 관찰하고 실험한다. 가설이 진리로 확정되었더라도 새로운 오류가 발견되면 다시 한번 실험한다. 과학은 자연 현상을 차근차근 이해하려고 하는 상당히 느린 학문이다. 세이건은 이런 과학을 좋아하는 태도를 ‘과학적인 마음가짐’이라고 했다. 《브로카의 뇌》를 읽는다면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과학(을 좋아)하는 마음’ 한 움큼 쥘 수 있다.
[책 관련 주제] 과학, 사이비 과학(유사 과학), 회의주의
[4월에 태어난 신간 도서]
* 텔모 피에바니, 김숲 옮김 《불완전한 존재들: 결함과 땜질로 탄생한 모든 것들의 자연사》 (북인어박스, 2024년)
<서평>
[큰 그릇은 완성되지 않는다] 2024년 4월 5일 작성
‘완벽’이라는 높은 벽을 넘어서기 위해 힘겹게 매달리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과학책. 《불완전한 존재들》은 완벽주의자의 지친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면서 말한다. “모든 것은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았고, 전보다 더 나은 상태인 지금도 완벽하지 않아.” 이 책은 진화가 ‘완벽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 아님을 보여준다. 모든 존재는 진화를 통해서 자신의 결함을 인정한다. 그리고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결함을 안고 살아간다.
‘완벽한 상태’와 ‘완전한 상태’를 선호하는 인간은 결함과 오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간을 불편하게 만든 결함과 오류는 늘 환영받지 못한다. 다윈을 지지한 ‘자칭’ 진화론자들은 인간은 진화를 거쳐 지구상 가장 완벽한 존재라고 믿었다. 정작 다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너무나도 단순한 믿음만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불완전한 존재’를 완벽하게 제거하기.
자칭 진화론자들이 생각하는 ‘불완전한 존재’는 제대로 진화하지 못한 실패한 존재이며 완벽하지 않다. 또한 이 세상이 발전하는 데 전혀 유익하지 않다고 봤다. 자칭 진화론자들은 ‘우생학’이라는 학문을 만들어 반드시 제거해야 할 ‘불완전한 존재’ 일 순위로 장애인을 지목한다. 대중, 학자들, 정치인들 모두 우생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우생학에 열광한 사람들은 장애인을 이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로 인식했다. 우생학을 지지한 정치인들은 장애인을 따로 격리하여 수용소로 보내거나 장애인 학살을 허용하는 국가 정책을 내세웠다. 우생학은 사라졌어도, 장애인을 ‘불완전한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은 일상 곳곳에 있다.
그러고 보니 어제가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이었다. 그런데 달력에 왜 ‘장애인의 날’이라고 적혀 있지? ‘장애인을 위한 날’은 아닐 텐데.
[책 관련 주제] 진화, 다윈
[3월에 태어난 신간 도서]
* 레이철 E. 그로스, 제효영 옮김 《버자이너: 과학의 ‘아버지’들을 추방하고 직접 찾아 나선》 (휴머니스트, 2024년)
<서평>
[내 이름은 버자이너 울프] 2024년 3월 13일 작성
“말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고 기억하지도 못합니다. 우리가 말하지 않으면 그것은 비밀이 됩니다. 비밀은 부끄러운 것이 되고 두려움과 잘못된 신화가 되기 쉽습니다. 나는 언젠가 그것이 부끄럽지도 않고 또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오기를 바라기 때문에 입 밖에 내어 말하기로 했습니다.”
(이브 엔슬러의 희곡 《버자이너 모놀로그》 중에서, 류숙렬 옮김, 북하우스, 2009년, 22쪽)
‘버자이너(Vagina)’는 한 권의 과학책이 되어 말하기 시작했다. 내 몸을 사랑한다면 이름을 제대로 불러달라고. ‘거기’, ‘아랫도리’가 아니라 ‘질(膣)’이라고.
“내가 자주 가는 책방들을 운영하는 분들 대부분은 여성이다. 그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고, 책방에 이 책 한 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모든 책방에 이 책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담다’ 주인장이 알라딘에 남긴 《버자이너》 100자 평)
[책 관련 주제] 몸, 질, 자궁, 출산, 의학, 건강, 페미니즘
* 여인형 《여인형의 화학 공부: 완전히 새로운 화학 입문》 (사이언스북스, 2023년)
<서평>
[교과서 같지 않은 화학 교과서] 2024년 1월 24일 작성
여인형 교수는 대학생들을 위한 화학 교재를 쓴 이력이 있다. 하지만 그는 강의 시간에 학생들이 자신이 쓴 교재나 우리말로 번역된 어려운 외국 교재를 보면서 공부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고민한다. 화학 전공 학생들과 과학 비전공자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화학 교재를 어떻게 써야 할까? 저자는 우리 일상 곳곳에 흔히 일어나는 자연 현상을 예로 들면서 화학 법칙을 설명한다. 그리고 반드시 외워야 할 화학 지식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자신이 만든 암기법을 소개한다.
생긴 건 ‘벽돌 책’이지만,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된다(물론 화학에 관심이 있으면 완독해도 좋다). 알고 싶은 화학 용어가 있으면 책 뒤쪽에 있는 ‘찾아보기’를 먼저 보라. 화학 용어가 언급된 쪽수를 확인했으면 그 부분을 찾아서 읽는다. 분량이 얇든, 두껍든 간에 과학책을 무조건 완독해야 한다는 믿음은 버리시길.
[책 관련 주제] 화학, 원소, 주기율표
* 레이 브래드버리, 조호근 옮김 《레이 브래드버리: 태양의 황금 사과 외 31편》 (현대문학, 2015년)
<서평>
[우주를 가린 ‘아름다운 환상’의 커튼을 걷어라!] 2017년 9월 21일 작성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는 미국의 SF(과학소설) 작가다. 그가 쓴 소설에 묘사된 과학은 ‘상상력을 한가득 품은 과학’이다. 레이의 소설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당황할 것이다. “이 글, 정말 SF 맞아요?” 과학 법칙에 소재로 한 SF를 즐기는 독자는 레이의 글이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 칼 세이건은 ‘과학스러운 과학소설’을 높이 평가했다. 유사 과학을 비판한 학자답게 과학소설 속에 묘사된 유사 과학을 경계했다. 그의 견해는 《브로카의 뇌》에 수록된 『SF 소설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라는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SF라고 해서 무조건 과학적인 사실이 묘사되어야 하나? 이 견해에 동의하는 독자가 있으면 따지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람들이 SF를 안 봐요‥….
과학을 음식으로 비유하면 한 입 깨물면 씹기 힘들 정도로 단단하다. 과학을 어렵게 생각하면 과학이 맛없어 보인다. 과학을 제대로 씹는다고 해도 그 맛은 엄청 맵다. 그래서 내가 과학의 매운 맛을 좋아해서 심각한 중독(中毒/重讀) 수준에 이르렀다. 매운 과학책을 계속 눈으로 먹으면 지겨울 때가 있다. 이럴 때 달콤한 맛이 나는 레이 브래드버리의 소설을 읽으면서 뇌에 에너지를 보충해 보자. 단편 선집 《레이 브래드버리: 태양의 황금 사과 외 31편》은 과학책이나 과학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를 위한 아이스크림이다. 일명 ‘레이 브래드버리 32’다. 단편 선집은 ‘골라 읽는 재미’가 있다. 32편의 단편을 매일 한 편씩 읽는다면 당신은 레이 브래드버리 아이스크림의 다채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
작가 이름에 ‘브래드’가 있지만, ‘빵(bread)’은 아니다. 그래도 그의 소설을 빵으로 비유하면 허니브레드다.
[책 관련 주제] SF, 우주
* 후지하라 다쓰시, 박성관 옮김 《분해의 철학: 부패와 발효를 생각한다》 (사월의책, 2022년)
《불완전한 존재들》을 다 읽었을 때, 나는 이 책의 짝꿍이 될 만한 책 한 권이 생각났다. 그 책이 바로 《분해의 철학》이다. 이 책은 2022년에 샀다. 다 읽긴 했는데, 서평을 쓰지 못했다.
진화의 의미를 착각하는 사람들은 ‘진화에 완벽히 성공한 유일한 존재’가 인간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진화가 늘 항상 더 좋은 쪽으로 변하는 과정이 아니다. 퇴화도 진화의 한 과정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진화를 거친 모든 존재는 절대로 완벽해질 수 없다.
《불완전한 존재들》이 ‘결함’을 인정하고, 결함이 주는 불편함에 적응하기 위해 ‘땜질’하는 진화를 강조한다면, 《분해의 철학》은 ‘부패’와 ‘발효’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우리는 결함이 있는 물건을 못 쓰게 되면 ‘쓰레기’라고 부른다. 시간이 지나면서 품질 상태가 좋았던 물건은 점점 낡아지고, 결국에는 분해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면 노화가 진행되고, 죽음을 맞이한다.
만약 지구에 쓰레기의 양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아지고, 그 많은 쓰레기 전부 썩지 않는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더럽고 악취가 진동하는 ‘디스토피아’가 우리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소설에서 일어날 법한 상황이 아니다. 썩지 않은 플라스틱이 지구에 너무 많이 남아 있다). 쓰레기를 버릴 줄만 아는 인간은 부패 현상 덕분에 지금까지 잘 살아 있다. 인간은 썩어가는 과정을 썩 좋아하지 않지만, 자연은 부패와 분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죽은 동물의 사체는 또 다른 동물들의 먹이가 된다. 미생물과 곤충은 사체의 부패 속도를 빠르게 해준다. 미생물과 곤충은 크기가 아주 작은 존재들이지만, 지구를 살리는 그들의 존재감은 크다.
‘분해의 철학’이라는 제목만 보면 철학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생태학’을 다룬 책이다. 생태학의 정의를 쉽게 말하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관계를 지향하는 ‘친환경적인 과학’이다. 생태학은 부패와 발효를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번성하는 데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분해의 철학》을 추천 도서로 정했다. 이 책을 추천한 이유는 그것뿐만 아니다. 《분해의 철학》을 펴낸 출판사 이름이 ‘사월의 책’이다.
[책 관련 주제] 생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