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
모두 잠든 후에 나에게 편지를 쓰네
- 신해철 노래 <나에게 쓰는 편지> 중에서 -
오늘 진행되는 ‘니체(Nietzsche) 읽기 모임’을 위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줄여서 ‘차라투스트라’)를 오랜만에 펼쳤다. 11년 만에 다시 읽었다.
* 프리드리히 니체, 김인순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열린책들, 2015)
* 프리드리히 니체, 홍성광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이번에 읽은 번역본은 열린책들 판본이다. 11년 전에 읽은 책은 펭귄클래식 판본인데, 그때도 읽기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 읽었다. 지금도 11년 전의 읽기 모임을 기억하고 있다. 왜냐하면 처음으로 발제를 맡았기 때문이다.
당시 읽기 모임에 관한 기록이 알라딘 블로그에 있다. 읽기 모임 날짜는 2011년 3월 12일, 그날도 토요일이었다! 20대의 나는 발제를 준비하느라 니체와 관련된 책들을 찾아가며 읽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책만 잔뜩 빌렸지 제대로 읽지 않았다. 어떻게든 발제문을 잘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이 앞섰고, 니체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책의 내용을 발췌했다. 내 기준으로 괜찮은 내용을 모아 짜깁기한 셈이다. 허술하게 발제문, 아니 발췌문을 만들었으니 모인 진행이 미숙했다. 모임 후기도 썼는데, 이 글에 발제문이 수록되어 있다. 니체의 철학을 간략하게 정리한 발제문이라기보다는 니체의 생애를 요약 정리한 글이다. 글이 허접하다. 내용이 너무 뻔한데다가 《차라투스트라》를 읽으면서 접한 니체 철학에 대한 내 견해가 단 한 줄도 없었다. 니체를 만난 20대의 내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과거의 나를 볼 수 없어서 슬프면서도 부끄럽다. 그때 책을 읽었을 때 나를 잊어버린 걸까, 아니면 지적 허영심이 강해서 책을 제대로 읽은 나를 잃어버린 걸까?
읽기 모임을 하기 5일 전에 쓴 글에 나는 이렇게 썼다. 늘 그랬지만, 과거에 쓴 글은 비문에다가 띄어쓰기가 엉망이다.
만약에 니체의 사상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면 본격적으로 니체의 다른 책들도 섭렵하고 싶다. 단순히 독서 모임 발제를 위한 수박 겉핥기식 독서보다는 깊이 있으며 나의 정신적인 성장을 위한 거쳐야[주] 할 어려운 공부라는 마음으로 독서하고 싶은 것이다. 혼자서 어려운 고전을 공부한다는 게 무모한 일이지만 스스로 즐긴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P.S
이 책들 이외에도 니체의 사상에 대해서 읽어볼만한 책들이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주] ‘성장을 위해 거쳐야’라고 써야 한다.
이 글을 쓰고 10년 후에 나는 ‘본격적으로 니체의 다른 책들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작년 5월에 시작한 니체의 저서 열 권을 읽는 독서 모임에 참석했다.
*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어떤 변화를 겪어서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세창출판사, 2019)
* 프리드리히 니체, 강영계 옮김 《30% 원서 발췌, 선악의 저편: 미래 철학의 서곡》 (지만지, 2020년)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선악의 저편》 (아카넷, 2018)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도덕의 계보》 (아카넷, 2021)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우상의 황혼》 (아카넷, 2015)
첫 번째 책은 《이 사람을 보라》다. 니체가 자신의 생애와 철학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쓴 마지막 책이다. 이어서 읽은 책은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우상의 황혼》이다. 코로나19 재유행으로 인해 《우상의 황혼》을 마지막으로 읽기 모임이 중단되었다. 만약에 읽기 모임이 계속 진행되었으면 올해 여름에 읽기 모임 마지막 책인 《차라투스트라》를 완독했을 것이다. 오랜 휴식기를 마치고 《차라투스트라》로 읽기 모임이 다시 시작된다.
철학에 무지했던 20대의 나는 추신으로 니체와 관련된 책을 추천해달라고 말했다. 20대의 싸군(싸이러스 군)! 네가 정말로 니체 철학을 제대로 알고 싶으면 《이 사람을 보라》부터 먼저 읽어. 《차라투스트라》는 나중에 읽어. 당부하건대, 제발 시간에 쫓기듯이 책을 급하게 읽지 마.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아침놀》 (책세상, 2004)
니체는 글을 느리게 쓰는 편이야. 그래서 《아침놀》 서문에서 자신의 책을 ‘느린 가락의 친구’라고 했어. 니체의 친구들을 읽으려면 인내심이 있어야 해. ‘깊이 생각하면서, 섬세한 손과 눈으로, 천천히, 깊이, 전후를 고려하면서(《아침놀》)’ 읽어야 해. 그러면 니체를 잘 읽을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