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아주 멋진 일이다. 이 행위에는 정성이 깃들어 있다. 그렇게 정성을 쏟으면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 하지만 일하는 데 있어서 더 중요한 것은 ‘일에 대한 애정’이다. 자신에게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해서 좋아하지 않는 일을 계속하면 과연 본인과 다른 사람이 만족하는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계속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일만 하는 바보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른다.
좋아하지 않는 일이라도 노동의 결과물이 잘 나오고, 그것이 잘 팔리면 ‘잘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일해서 벌어들인 수익이 적거나 혹은 아예 없으면 ‘실패한 일’이 된다. 때론 노동으로 취급받지 못하곤 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돈이 되지 않는 일을 꺼린다. 먹고 살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은 분명 나 자신을 위한 노동이다. 그러나 평생 소득을 얻기 위한 일을 하게 되면 ‘나’라는 정체성이 희미해진다.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한 일에는 ‘나만을 위한 삶’이 배제되어 있다.
* 섭 편집부 《매거진 섭 sub : No. 1 코로나 시대의 사람》 (tampress, 2021)
작년 10월에 나온 비정기 로컬 창작 잡지 《매거진 섭(sub)》 창간호의 주제는 ‘코로나 시대의 사람’이다. 여기서 ‘사람’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하는 노동자를 뜻한다. 잡지 편집자이자 책방 <서재를 탐한다> 운영자 김정희 님은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일’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분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을 좋아하는 그녀는 자신을 ‘읽고, 쓰고, 그리고, 만드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창간호 집필진 모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매거진 섭》은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즐겁게 일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무언가를 만들 뿐만 아니라 각자 자신만의 삶을 계속 만들어가고 있다.
내가 자주 가는 디저트 카페 <카페 클리어>를 운영하는 제이(lovely J) 님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일’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분이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디저트를 만들기 위해 매일 고민하고, 열심히 만든다. 그뿐만 아니라 소잉(sewing) 작업도 같이 하고 있다. 스카프, 파우치, 마스크 등을 직접 만들어서 판매한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기는 쉽지 않다. 사실 정희 님과 제이 님은 하루에 두 가지 이상의 일을 동시에 하는 ‘n잡러’다. 그녀들이 하는 집안일도 노동이다. 그렇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자기만의 방(정희 님의 작업실은 <서재를 탐하다>라면, 제이 님의 작업실은 카페 3층에 있다)’에서 하는 데 힘든 게 대수인가.
김정희 님과 제이 님, 이 두 분은 앞으로도 자신만의 속도로 만들고 자기 삶을 계속 만들면서 살아갈 것이다. 올해 두 분의 행보가 매우 기대된다.
* 소준철 《가난의 문법》 (푸른숲, 2020)
사족: 《매거진 섭》에 《가난의 문법》 서평[주1]이 실려 있다. 서평을 쓴 사람은 최해성이다. 그런데 이 최해성이란 작자(作者)[주2]의 자기소개가 가관이다. 그는 ‘책을 읽은 뒤에 서평 쓰기가 하루 중에 제일 중요한 일’이라고 소개했는데, 내가 아는 최해성은 작년부터 서평을 꾸준히 쓰지 않고 있다. 게으름뱅이가 됐다. 최해성은 마카롱 세 개를 먹는 것이 하루 중에 제일 중요한 일이라고 내게 말했다.
[주1] <보이지 않은 노동>, 2021년 3월 8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12475756
[주2] 작자(作者)
1. 글을 쓰거나 문학 작품, 악곡 따위의 작품을 지은 사람
2.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