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적으로 어쩔 수가 없다
이시카와 마사토 지음, 이정현 옮김 / 시그마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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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점   ★★☆   B-






생물학적으로 어쩔 수가 없다.’ 책의 제목이 도발적이다. 인간의 본성은 교육으로 바뀔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눈을 부릅뜨면서 이 책을 노려봤을 것이다. 본성 대 양육이라는 주제는 하루 이틀의 논쟁이 아니다. 인간의 기질은 과연 타고나는 것인가, 아니면 길러지는 것인가? 이 책을 분노의 눈길로 바라본 사람이라면 후자의 관점을 옹호하는 환경 결정론자일 수 있다. 생물학적으로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은 유전자가 인간의 기질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는 유전자 결정론자(또는 생물학적 결정론자)’의 입장에 가깝다. 일본의 진화심리학자가 쓴 생물학적으로 어쩔 수가 없다는 인간의 본성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의 한복판으로 뛰어든다.

 

책의 저자는 유전자의 명령에 따라 인간의 행동과 능력이 만들어졌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없는 현실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우리를 조종하는 유전자의 힘이 워낙 강력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실현하지 못하는 일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양육과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51가지 사례를 제시한다. 이 모든 사례는 인간의 생물학적인 한계. 환경 결정론자는 꾸준히 배우면서 노력하면 분명 기질을 바꿀 수 있으며 태어날 때부터 가지지 못한 능력을 후천적으로 습득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저자는 한 사람을 위한 조언으로 둔갑하기 쉬운 환경 결정론자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노력만 하면 똑같은 기질과 능력을 갖출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타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서 내가 무조건 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반대로 내가 잘하는 일을 아무리 노력해도 하지 못하는 타인도 있을 것이다. ‘유전자의 힘을 거스를 수 없어서 생물학적으로 어쩔 수 없다고? 해보지도 않고 벌써 포기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양육의 효과를 맹신한다. 교육으로 인간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 사회는 개인의 한계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지 못하거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 그러고는 더 노력해보라면서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노력해! 노력해! 노력해!

 

진화심리학은 진화에 인간의 심리에 연관 지어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학문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을 수렵 채집 시대’, 즉 석기 시대를 살아오면서 우리 몸에 각인된 삶의 흔적이 있는 동물로 규정한다. 가파른 속도로 발전해와 지금의 모습을 이루고 있는 문명사회에 인간의 심신은 적응이 덜 되어 있다. 아직도 인간의 몸과 행동에 수렵 채집 생활의 흔적이 배어 있다. 따라서 석기 시대에 살아가는 방식과 완전히 다른 현대 사회와 불협화음을 빚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과식을 선호하지만, 그에 따른 각종 성인병과 비만을 경계한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면서 살이 찌는 상황은 생물학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석기 시대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식량이었다. 식량을 구하기 쉽지 않은 시대를 살아온 인류는 어떻게든 식량을 구해서 최대한 많이 먹었다. 그래서 인간은 음식을 많이 먹어서 충분한 영양분을 미리 쌓아 두게끔 진화했다. 하지만 식욕을 멈추는 절제심은 진화하지 않았다. 세상이 변하고 발전할수록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의 종류가 많아졌다. 이제는 얼마든지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다. 우리는 먹거리가 넘쳐나는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과식을 선호하는 오래된 우리의 본성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식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유전자의 힘을 극복하지 못한 인간의 한계를 솔직하게 받아들인다. 생물학적으로 어쩔 수 없으니 포기하면 편하다. 그렇다고 저자가 노력에 따른 결과와 양육의 장점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어쩔 수 없다아무리 노력해도 안 될 거야라는 패배주의적인 메시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저자는 노력해도 할 수 없는 것을 과감히 포기해서 노력해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내가 노력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라면,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양자 모두 자신만의 개성이 될 수 있다.

 

이 책에서 유일하게 진화심리학이 언급된 문장은 이 책의 부제다. 저자는 후기에 진화심리학을 생물학적 관점에서 심리를 설명하는 것(282)’이라면서 두루뭉술하게 언급했는데, 사실 이것만 보고 진화심리학이 어떤 학문인지 파악하기가 힘들다. 이러면 대중은 진화심리학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느낄 것이고, 이 학문에 선뜻 접근하지 못한다. 진화심리학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저자의 글은 대중이 진화심리학에 거부감을 느끼게 만든 주범이다. 이 책에 알맹이가 빠져 있다. 책의 빈틈을 메꾸지 못한 역자도 잘했다고 볼 수 없다. 역자는 진화심리학의 강점과 약점을 비중있게 다루면서 진화심리학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는 후기를 썼어야 한다. 대부분 사람은 모든 진화심리학자를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보수주의자와 결탁한 유전자 결정론자라고 비난하는데, 꼭 그렇지만 않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유전자의 힘과 환경의 영향이 상호 반응해서 인간의 기질이 형성되거나 변화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저자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들의 원인을 모두 석기 시대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살아온 조상들의 모습에서 찾는다. 하지만 우리는 아주 오래된 석기 시대의 환경과 생활상을 알지 못한다. 이것은 진화심리학의 약점이다. 인간의 기질이 수렵 채집 생활에 적응하도록 형성되었다고 보는 진화심리학자들의 입장은 모호한 추측을 양산한다.

 

저자는 인간이 고독해지는 것을 생물학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고독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그는 고독하게 지내는 것을 개성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낮에도 고독하게 지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의 마음은 대부분 사이좋은 협력 집단에 어울리는 쪽으로 작동하게 되어 있다. 이것 역시 수렵 채집 시대의 흔적이다. 온종일 다른 사람과 교류할 일이 없다면 마음은 쉽게 병들고 만다. (60)

 


낮에 고독하게 지내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저자의 입장은 고독의 긍정적 효과를 외면하고 있다. 온종일 다른 사람과 교류할 일이 있으면 마음이 쉽게 병드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최대한 줄이면서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한다. 그렇게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는데 집중할 수 있다. 물론 고독을 긍정하는 사람들도 때때로 외로운 감정을 느낀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소중하게 여긴다. 세상과 단절한 채 생활하는 은둔형 외톨이는 타인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편이다. 은둔형 외톨이처럼 고독하게 지내는 것이야말로 바람직하지 않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 심취한 저자는 택시 운전사가 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한다(98), 택시 운전사가 아닌 내가 봐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택시 운전사도 비 오는 날에 일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빗길 운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빗길을 지나는 차는 평상시보다 미끄러지기 쉽다. 사고 없이 안전하게 운전해야 하는 택시 운전사는 비 오는 날에 예민해진다.

 

그리고 저자는 SM 플레이를 좋아하는 건 생물학적으로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아픈 게 좋다는 마조히스트를 이해하지 못한다.

 


 SM 플레이에서는 사디스트가 채찍으로 마조히스트를 때려서 서로 만족을 얻는다. 소리에 비해서 아프지는 않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아픈 게 좋다는 마조히스트의 고백은 이해하기 어렵다. (219)

 


대중은 사디스트와 마조히스트를 왜곡한 정보를 접해서 SM을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면 SM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점점 더 불어난다. 저자는 SM 플레이를 단순히 지배 복종 관계에 대한 충동을 승화시키는 성행위로 보면서,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계약 관계를 지향하자고 주장한다(220). 한술 더 떠서 SM 플레이 대신에 그것과 비슷한 효과(통증을 참으면서 느끼는 성취감)가 있는 스마트폰 게임을 하자고 제안하는데 SM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저자는 SM을 오해하고 있다.

 

SM 플레이는 도미넌트(Dominant, 줄임말은 ’, 지배 성향이 있는 사람)와 서브미시브(Submissive, 줄임말은 ’, 지배당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 간의 상호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성행위다. SM 플레이를 안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규칙과 응급처치 요령이 마련되어 있으며 대화를 통한 파트너 간의 상호 합의를 강조한다. 그래야 SM 플레이 도중에 일어날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할 수 있고, 성범죄를 방지할 수 있다. SM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습득한 도미넌트와 서브미시브는 적당히 선을 지키면서 쾌락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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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1-03 23: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 새해 복 많으받으세요~올해는 사이러스님의 리뷰 작년보다 더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mini74 2022-01-03 23: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다보니 이해가 ㅠㅠ특히 낮에 고독한게 바람직하지 않다니 너무 편파적인거 같아요. 오랜만이라 더 반가운 리뷰 ~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새파랑 2022-01-04 00: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포기하면 편하긴 할거 같은데 문제는 포기하는게 쉽지가 않다는 거겠조? ㅎㅎ cyrus님 오랜만에 뵈어서 너무 반갑습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이하라 2022-01-04 08: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tella.K 2022-01-04 15: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