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과거에 쓴 리뷰를 보곤 한다. 혼자 보기 때문에 부끄러움은 온전히 내 몫이다. 좋든 나쁘든 독서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과거의 리뷰를 본다. 풋내기 시절에 쓴 리뷰를 찬찬히 보다 보면 허술한 논리,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비문과 오자 등을 여러 개 발견한다. 부끄러워서 당장 지우고 싶지만, 일단은 그대로 놔둔 상태다. 왜냐하면 고쳐야 할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고쳐 쓰면 글은 전보다 좋아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글쓰기 실력이 부쩍 늘어나는 건 아니다. 글을 고쳐 쓰기 전에 ‘왜 고쳐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수험생들은 큰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오답 노트를 만든다. 모의시험을 칠 때마다 정답을 맞히지 못한 문제들이 있다. 그런 문제는 다시 풀어보고 오답 노트에 풀이 과정을 기록해야 한다. 오답 노트가 있으면 틀렸던 부분을 재차 확인하고 취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 독서 행위와 리뷰 쓰기를 시험 문제를 푸는 일에 비유하는 표현이 좋다고 볼 수 없지만(왜냐하면 이런 표현은 논술 시험에서 고득점을 받기 위해 독서를 하는 것처럼 비치기 때문이다), 열심히 공부한 사람은 쉬운 문제를 틀릴 수 있듯이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오독을 할 수 있다.
* 조현행 《독서의 궁극 서평 잘 쓰는 법: 읽는 독서에서 쓰는 독서로》 (생애, 2020)
평점
3.5점 ★★★☆ B+
독서칼럼니스트 조현행 씨는 어떤 책을 읽었으면 무조건 글을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쓰기’는 책의 내용을 되새기게 하고, 이해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행위이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다. 조 씨의 표현에 따르면 독서를 마친 후에 쓴 글, 즉 서평(리뷰)은 글쓴이의 정신에 남겨진 지문(指紋)이다. 책 읽는 인간을 지문 인식 기계라고 생각해보자(사람을 기계에 비유한 점을 너그러이 이해해주시라). 지문 인식 기계는 종종 지문을 잘못 인식할 때가 있다. 이러한 오작동의 원인은 단순하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기계가 처음에 등록된 지문을 다른 사람의 지문으로 착각해서 일어난다. 완벽한 기계도 오작동을 일으킨다.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는 다독가도 오독한다. 지문 인식 오류를 고치려면 기계를 고치거나 지문을 다시 찍으면 된다. 내가 쓴 리뷰에 오류가 있으면 고쳐서 쓰면 된다. 고쳐 쓴 리뷰는 새로운 지문이다. 이제 그 지문을 내 정신에 꾹 눌러 등록하면 된다.
사람은 완벽한 신이 아닌 이상 자신이 했던 실수를 반복한다. 실수를 다시 하지 않도록 하려면 실수한 일을 꼼꼼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실수도 글의 주제가 될 수 있다. 나는 오독도 사람이라면 할 수 있는 실수라고 본다. 그래서 지난달에 ‘오독 노트’라는 서재 범주(카테고리, category)를 새로 만들었다. 예전에 나의 오독을 분석한 글을 몇 편 쓴 적이 있다. 역시 기록으로 남아서 그런지 확실히 과거에 내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무엇을 실수했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오독 노트’에 포함될만한 글들을 골라 분류했다. 현재 ‘오독 노트’에 분류된 글은 총 다섯 편이다. 이 다섯 편의 글은 나의 실수와 오류가 담겨진 일종의 정오표이며 공개 사과문이자 반성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잊으려고 하면 더 기억이 남는다. 내가 기억력이 좋아서 이런 건 아니다. 이것은 오독에 대한 기록이 글쓴이인 나에게 준 긍정적인 효과다. 기록하지 않았으면 과거의 실수를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앞으로 내 서재에 남아 있는 잡문들을 살펴보면서 오독이 반영된 글을 발굴할 생각이다. 고쳐 써야 할 책 리뷰가 있으면 내가 다시 그 글을 ‘리뷰(review)’하여 ‘오독 노트’에 공개하려고 한다. 오독을 일삼고, 겉멋을 부린 과거의 ‘나’를 오독오독 씹어줘야겠다. 이러다가 먼 훗날에 내가 이 글마저 비판할 것 같다.
※ Mini 미주알고주알
이 글은 책 리뷰가 아니지만, 그래도 책 내용이 언급된 잡문이다. 그러므로 책에 있는 오자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독서의 궁극 서평 잘 쓰는 법》 152쪽의 부록에 오자가 있다. ‘데리 이글턴’은 오자다. 정확한 표기는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