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만 해도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책방이 생기길 바랐다. 작년에 필자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필자는 대구에서 가장 낙후한 서구에 오래 살았다. 작년에 ‘서재를 탐하다’ 책방이 서구 원대동(신 주소: 고성로)으로 이전하면서 처음으로 서구에 자리 잡은 책방이 되었다.
하지만 ‘책방을 탐하다’는 대구 서구에서 최초로 문을 연 책방이 아니다. 책방이 처음으로 문을 연 자리는 북구 침산동(신 주소: 옥산로)이다. 책방이 있었던 자리에 큰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대구 전체를 어둡게 만든 코로나19의 그림자가 좀처럼 걷히지 않았던 시기에 서구에서 ‘아가 책방’이 태어났다. 아가 책방의 이름은 담담책방(약칭: 담담). 책방 이름처럼 아가 책방은 코로나19의 그림자를 서서히 걷어내고, 서구 주민들에게 다가서기 위해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다.
담담은 올해 3월에 서구에서 태어났다. 필자는 여름에 담담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담담이 있는 동네에 마을도서관이 있다. 필자는 마을도서관에 가다가 우연히 담담을 발견했다. 책방에 가기 전에 담담 책방지기가 만든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구경했다.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책방 내부를 찍은 사진들이 있다. 그냥 사진만 봤을 뿐인데, 책방 내부는 무척 깔끔해 보였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우주지감’ 연말 모임 전날인 16일(목요일)에 지인과 함께 책방에 갔다. 필자와 동행한 지인은 ‘대구 페미니즘 북클럽 레드스타킹’의 남성 멤버다. 이분은 공연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분의 성함은 ‘송승○’인데, 이 글에서는 특별히 가명을 사용했다. 이제부터 송승○ 씨를 ‘송승환’이라고 부르겠다.
필자의 집에서 책방까지 걸어가는 데 걸린 시간은 15~20분이다. ‘서재를 탐하다’까지 걸어가는 시간과 거의 비슷하다. ‘서재를 탐하다’와 담담책방 사이의 거리도 그리 멀지 않다. 버스 타고 조금만 더 걸어가면 금방 도착할 수 있다.
담담이 살아있는 시간은 오후 1시부터 6시까지다. 일요일, 월요일은 책방이 숙면하는 날이다. 가끔 책방지기의 사정에 따라 책방이 조금 늦게 눈을 뜨거나 아니면 일찍 잠들 수 있다. 책방을 만나기 전에 책방 공식 인스타그램을 미리 확인해야 한다.
책방은 3층에 있다. 승강기는 없고, 계단만 있다(다리가 불편한 손님은 계단에 오르는 일이 벅찰 수 있다). 계단 주변에 아기자기한 소품과 장식이 배치되어 있고, 싸늘하게 느껴질 하얀 벽에 여러 점의 그림들이 붙여져 있다.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벽에 붙어 있는 ‘담담책방 이용 팁’을 발견할 수 있다. 담담은 커피나 그 밖의 음료를 팔지 않는다. 책방에 있는 차와 커피는 손님이 직접 타서 마셔야 한다.
책방 입구에 두 개의 문이 있다. 회색 철제문이 활짝 열려 있으면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오면 된다. 미닫이문 근처에 손 소독제가 있다. 그런데 담담책방의 미닫이문은 한 번 열면 잘 닫히지 않는다. 문이 완전히 닫힐 때까지 손잡이를 잡고 밀어야 한다. ‘서재를 탐하다’와 ‘읽다 익다’ 책방의 문도 미닫이문인데 역시나 한 번에 닫히지 않는다. 세 책방의 작은 결점(?)이 비슷하다.
책방지기의 첫인상은 정말 좋았다. 책방지기를 보면 약간 살이 빠진 ‘yureka01’ 님이 생각난다. 책방지기가 책방에 처음 온 필자를 위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대접했다.
미닫이문 오른쪽에 작은 책상이 있다. 책상 위에 책방 이름이 적힌 여러 종류의 책갈피가 놓여 있다. 미니어처 서재는 책방지기가 손수 조립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대형 TV에서 음악이 나온다. 성탄절을 코앞에 둔 시기에 맞게 책방 내부에 캐럴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책방지기의 가족은 제주도에서 생활하다가 대구에 정착했다. 책방지기는 제주도에 있는 모든 책방을 가봤을 정도로 제주도 여행에 대해 잘 알고 계신다. 그래서 제주도와 관련된 책과 인쇄물을 따로 놓아둔 책장이 있다. 혼자서 제주도를 여행하고 싶은 분은 담담책방에 있는 책방지기를 만나라. 그러면 책방지기가 친절하게 여행 정보를 알려준다.
책방지기의 부인은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한다. 책방지기는 부인을 만나면서 앤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같은 취향을 공유하면서 지내는 부부의 모습이 정말 보기 좋다.
책방지기는 대구에서 가장 낙후한 서구에서 책방을 열었을까? 그가 책방을 열려고 한 목적과 이유는 단순하다. 책방지기는 서구 주민들이 편안하게 방문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어 했다. 책을 사고 싶은 손님이 오는 책방이 아니라 책을 보러 오는 손님, 잠시 책방에서 쉬고 싶은 손님, 그리고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고 싶은 손님들도 올 수 있는 편안한 쉼터 같은 문화 공간. 담담책방은 ‘책방’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공간이다. 담담책방의 진짜 주인은 바로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다. 책방을 찾는 손님의 목적에 따라 책방의 용도와 내부 분위기는 달라진다.
필자와 송승환 씨는 책방지기와 대화를 나누다가 우리가 하고 있는 독서 모임 활동을 언급했다. 그러자 책방지기는 우리에게 독서 모임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질문했다. 세 사람은 40분 동안 독서 모임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우주지감’ 연말 모임이 있던 금요일에 다시 담담에 갔다. 두 번째 방문이다. 그날 오후를 담담에서 보내다가 담담이 문 닫을 때 연말 모임 장소인 ‘서재를 탐하다’로 갈려고 했다. 연말 모임에 항상 하는 행사가 있는데 ‘책 선물’을 모임 참석자에게 주는 일이다. 필자는 담담에서 선물용으로 고른 책 한 권과 ‘빨간 머리 앤’ 북 스탬프를 샀다. 포장지도 함께 샀다. 책방지기가 아주 정성스럽게 책을 포장했다.
책방지기는 얼마든지 책방에 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싶은데, 맨손으로 책방에 와서 맨손으로 나가는 일은 여전히 어색하고 괜히 죄송스럽다. 다음부터는 책방에서 신간을 사야겠다. 그러면 담담을 오랫동안 만날 수 있다. 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무럭무럭 자라는 담담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