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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의 끝과 시작 - 책읽기가 지식이 되기까지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20년 4월
평점 :
나는 책을 읽고 난 후에 서평을 쓰지 않으면 허전하다. 그때 그 느낌은 밥을 맛있게 먹었는데 배가 부르지 않은 것과 같다. 독서 후 글쓰기 활동은 아주 중요하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이 책을 보면서 얻은 지식과 그것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은 서평 쓰는 일을 어렵게 생각하거나 부담스러워한다. 서평은 독후감보다 좀 더 체계적인 사고를 필요로 한다. 독후감은 말 그대로 독서 활동 이후에 나온 개인의 생각과 느낌을 정리해 쓰는 글이라면 서평은 책을 평가해 다른 사람들이 그 책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글이다. 서평을 쓰려면 책과 약간의 거리를 둔 채 책의 내용을 의심하면서 읽어야 한다. 독후감 쓰기에 익숙한 독자들은 자신들이 책을 평가할만한 자격이나 능력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여 서평 쓰기를 주저한다. 어떤 사람은 서평의 형식과 비슷한 글을 쓰고 있으면서 자신의 글을 독후감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책에 대한 내용을 비판하면서 서평을 쓰는 일에 자격이 필요하나? 서평은 지식인이나 전문 서평가만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다. 또 책을 평가하는 글쓴이의 입장이 논리적으로 정리된 서평이 독후감보다 훨씬 수준이 높은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독후감도 서평처럼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또는 책을 주문하도록 유도하는) 글이 될 수 있다.
서평 쓰기의 목적을 잘 이해한다면 서평 쓰는 일이 어렵지 않다. 철학, 역사, 사회과학 분야의 책의 서평을 써온 강유원의 서평 모음집 《책 읽기의 끝과 시작》은 서평의 기본적인 기능과 쓰는 방식을 알려주는 책이다. 책 읽는 목적은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책 속 내용을 공부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강유원은 독서를 지식을 얻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으면서 획득한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면 자신만의 방식으로 책 내용을 정리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 일이 바로 서평 쓰기다.
서평은 책을 대하는 사람들 또는 그 책을 읽은 나에게 보내는 편지다. 서평 쓰는 일은 사적인 독서에 해당한다. 글쓴이는 자신이 쓴 서평을 읽으면서 책 내용을 복습할 수 있다. 서평을 쓴 과거의 ‘나’는 몇 년 후의 본인이 책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그때 넌 이 책을 이렇게 읽었는데, 알고 있지?” 다른 사람이 내가 쓴 서평을 읽고 책을 구매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사적인 독서는 공적인 독서로 확대된다. “당신도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거예요.” “이 책은 별로예요. 책을 사기 전에 잘 생각해보세요.” 서평 쓰기와 서평 읽기는 독서만큼이나 중요한 행위다. 강유원은 ‘책 읽기-서평 쓰기-서평 읽기-책 읽기’가 반복되는 과정이 이루어지면 지식도 쌓이고, 책을 고르는 안목이 생긴다고 말한다.
서평 작성의 8할은 책을 요약한 내용이다. 쉬워 보이는 일이지만, 서평 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책을 요약할 때 실수를 저지른다. 그들은 책을 읽은 동기나 책에 대한 내용을 장황하게 설명한다. 나도 서평을 쓰다 보면 종종 이런 실수를 저지른다. 모든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서평은 책 전체 내용을 다 담아낼 수 없다. 고작 몇 줄의 문장만으로 책 전체 내용을 요약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서평을 잘 쓰려면 책의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서평 모음집이 책 읽는 방법까지 세세하게 알려주는 이유가 있다. 아무리 글을 잘 쓴다고 해도 책 읽는 방법이 잘못되면(저자가 이 책에서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지 모른다면) 좋은 서평이 나오기 힘들다. 《책 읽기의 끝과 시작》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책 읽는 방법이, 2부는 서평 쓰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3부는 강유원이 쓴 서평으로 채워져 있다. 서평을 잘 쓰고 싶은 독자들은 당연히 2부를 먼저 볼 것이다. 책을 읽는 순서는 독자들의 마음이지만, 그렇다고 1부를 지나쳐서는 안 된다. 기본이 제일 중요하다. 서평 쓰기의 시작은 책 읽기다.
이 책의 부록은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소설 《장미의 이름》 번역본에 대한 비평적 서평인 《장미의 이름 읽기》(미토, 2004) 전문이다. 《장미의 이름 읽기》는 이미 절판된 책이다. 《책 읽기의 끝과 시작》은 강유원의 서평을 좋아하는 독자들을 위한 ‘원 플러스 원(one plus one)’과 같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