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서는 지역과 시대를 막론하고 늘 존재해왔다. 서양 중세에서는 주로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내용들과 기성 질서에 이의를 제기하는 책들이 교황청으로부터 금서 처분을 받았다. 시민혁명의 열풍에 휩싸인 18세기 이후에는 근대적 시민사상을 담은 책들이, 계몽주의 시대에는 과학 · 학술 · 기술 등 관련 지식을 집대성한 《백과전서》조차 금서 목록에 들어갔다.
보들러리즘(bowdlerism)은 책의 외설적인 문장을 무단으로 삭제하는 것을 뜻하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18세기 영국의 출판편집자 토머스 보들러(Thomas Bowdler)에서 유래됐다. 1818년에 보들러는 셰익스피어(Shakspeare)의 작품들에서 외설적이라고 판단한 부분을 삭제하여 편집한 『The Family Shakspeare』을 펴냈다.
* 베르너 풀트 《금서의 역사》 (시공사, 2013)
금서와 검열의 역사는 길고 길다. 금서와 검열의 역사는 도덕과 금지의 규범에 대한 저항의 역사를 만들었다. 많은 책들이 검열되고 불태워졌지만 그 책들은 질기게 살아남았다. 금서들 중 상당수는 살아남아서 이젠 불멸의 고전으로 추앙받는다.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도 금서였고,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율리시스》도 금서였다. 두 작품 모두 외설 시비에 휘말렸다. 권력자들은 종교, 국가, 미풍양속을 거스른다고 ‘위험한’ 책들을 금서로 만들었다. 금서는 기성 체제를 뒤흔들고 권력의 기반을 무너뜨린다. 중상비방과 추문이라는 오물을 뒤집어 쓴 채 금지된 책들이 결국은 낡은 사회를 뒤엎고, 새로운 사회를 향해 나아가게 한다. 권력자들이 그런 책에 진저리를 치고 광분하는 것도 그들의 처지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금서와 검열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재진행형이다. 국가 차원에서 검열을 가하지 않더라도 사람들 스스로 알아서 책을 검열하고, 미워하기 때문이다. 주관적인 검열의 기준은 검열하려는 자의 취향에 따라 달라진다. 당연히 검열 기준이 애매모호하고, 일관성이 없다. 무슨 이유에서 문제가 되는지 선뜻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창작자들은 자기 검열의 늪에 빠지게 된다. 다양한 문화 담론 형성과 역동적인 예술적 창조가 불가능해진다.
* 린 헌트 엮음 《포르노그래피의 발명》 (알마, 2016)
* 로버트 단턴 《책과 혁명》 (알마, 2014)
인간의 편견과 두려움은 책을 몰살시킬 뿐만 아니라 타자의 취향마저 억압하려고 애를 써왔다. 하지만 인간의 불온한 생각과 취향은 사라지지 않는다. 금서와 검열의 역사는 불온한 일탈과 이를 검열하려는 힘 사이의 끊임없는 줄다리기였다.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금서목록에 포함된 책은 포르노그래피(pornography)일 것이다. 프랑스 혁명 이전의 금서목록에는 포르노그래피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금서로 지정된 포르노그래피는 대중이 즐겨 보는 베스트셀러였으며 봉건적 구체제(ancien regime)를 뒤흔들만한 선동적인 내용이 수록되었다. 프랑스 혁명 이전까지 포르노그래피는 성적 표현을 동원해 종교적 · 정치적 권위를 비판하는 ‘언어적 무기’였다. 이러한 정치적 포르노그래피의 기원은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6세기 이탈리아의 작가 피에트로 아레티노(Pietro Aretino)는 대화 형식의 포르노그래피를 썼는데, 이러한 형식은 17세기 포르노 작가들이 즐겨 쓰는 클리셰가 된다. 《포르노그래피의 발명》(알마, 2016)과 《책과 혁명》(알마, 2014)은 프랑스 혁명과 민주주의를 촉발한 포르노그래피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책이다.
* 게일 루빈 《일탈 : 게일 루빈 선집》 (현실문화, 2015)
* [절판] 캐서린 매키넌 《포르노에 도전한다》 (개마고원, 1997)
* [절판] 안드레아 드워킨 《포르노그래피 : 여자를 소유하는 남자들》 (동문선, 1996)
그러나 정치적 포르노그래피는 세상을 급진적으로 바꾸려는 세력의 전유물이 되지 못한다. 보수적인 왕당파들은 혁명파를 공격하는 선동적인 포르노 팸플릿을 만든다. 위기감을 느낀 그들이 ‘반격(backlash)’에 나선 것이다. 보수 세력의 반격이 거세질수록 포르노그래피에 ‘음란물’ 이미지를 덧씌우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검열과 규제는 더욱 강화되었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법학자 캐서린 매키넌(Catharine Mackinnon)은 1980~90년대 반포르노 운동을 주도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안드레아 드워킨(Andrea Dworkin)과 함께 ‘반포르노법’ 제정을 추진했다. 매키넌과 드워킨이 제안한 반포르노 법은 포르노를 ‘영상 또는 언어를 통해 여성을 복종시키는 성적 묘사물’로 규정한다. 매키넌과 드워킨은 여성이 결박당하거나, 고문당하는 장면이 나오는 포르노도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만드는 묘사라고 비판한다. 이렇듯 반포르노 세력은 사도마조히즘(Sadomasochism)을 포르노의 정의와 특징에 포함하는 반포르노 운동을 펼친다. 이로 인해 사도마조히즘, 즉 SM 문화는 성적 학대의 대명사로 알려진다.
게일 루빈(Gayle Lubin)은 반포르노 운동을 비판한 SM 레즈비어니즘 페미니스트다. 그녀는 최초의 레즈비언 SM 단체 ‘사모아(Samois)’의 공동 창립자 중 한 사람이다. 루빈에게 SM은 개인의 ‘성적 기호’이자 ‘실천’이다. 그녀는 SM을 포르노와 동일한 해로운 현상으로 취급하는 반포르노 이데올로기를 비판한다. 이로써 SM과 포르노를 반대하는 페미니즘 세력과 SM을 옹호하는 페미니즘 세력 간의 대립이 지속되었고, 이 과정에서 루빈은 반포르노 페미니스트들로부터 중상모략과 인신공격을 받기도 했다.
검열의 본질은 두려움이다. 반포르노 세력은 포르노가 위험한 성적 행동에 일조하는 해로운 매체라고 주장한다. 도덕 유지를 강조하는 보수주의자들은 포르노, 심지어 성적 욕망마저 사회의 끔찍한 문제의 희생양으로 만든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왔던, 국민 통제를 쉽게 하기 위한 프로파간다이다. 권력은 포르노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권력은 포르노의 악영향을 강조하여 음란물뿐만 아니라 사회 통념에 어긋나는 섹슈얼리티까지도 단속한다. 소수의 성적 취향은 ‘음란한 일탈’로 낙인찍히고, 다수의 대중은 일탈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분노와 적개심을 드러낸다. 과거보다 더 지능적이고 교묘한 검열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국가에 의한 무자비한 검열은 차별과 혐오를 재생산하는 일상화된 검열로 진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