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히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인 입장이란 환상에 불과하다.

현실에서 우리가 취하는 어떤 입장도 정치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민경, 《페미니스트 선생이 필요해》 63쪽)

 

 

 

 

대구중앙도서관동성로에서 걸어서 충분히 갈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내일모레(23일)에 동성로 일대에서 제10회 대구퀴어축제가 열립니다. 뜻깊은 행사에 맞춰 박차민정 님의 《조선의 퀴어》(현실문화, 2018)를 읽어보고 싶어서 중앙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했습니다. 이때가 5월 중순이었고, 때마침 나온 《지금 여기 페미니즘X민주주의》(교유서가, 2018)도 같이 신청했어요.

 

 

 

 

 

한 달 지나고 나서 신청도서 처리 결과를 확인했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한 권은 취소됐습니다. 그 한 권이 《조선의 퀴어》였습니다. 취소 사유는 이렇습니다. “여러 연령대의 이용자가 이용하는 공공도서관 소장 도서로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어 제외되었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근대의 틈새에 숨은 변태들의 초상’입니다. 혹시 사서가 이 책을 ‘변태들’이 나오는 음란한 도서라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원래 퀴어(queer)‘괴상한’, ‘기묘한’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였고, ‘괴상한 존재’, ‘변태’로 취급받은 동성애자를 멸시하는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조선의 퀴어》는 ‘변태’로 오인된 근대 조선의 퀴어들을 재조명한 책입니다. 박차민정 님은 오래전부터 퀴어 이론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하신 분입니다. 퀴어 페미니스트뿐만 아니라 여성주의 연구가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책이 바로 《조선의 퀴어》입니다.

 

그런데 이 책이 ‘공공도서관 소장 도서’로 적합하지 않다니…‥. 퀴어라는 주제도 페미니즘인데 어째서 《조선의 퀴어》는 공공도서관에 들어갈 수 없었을까요? 아마도 사서는 퀴어를 진짜 ‘변태’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이 책이 청소년의 정서에 해로운 내용이 있을 거로 판단한 것 같습니다. 공공도서관에 ‘페미니스트 사서’ 채용이 시급합니다. 대구중앙도서관 사서가 정말로 ‘퀴어’를 싫어하는지 궁금해서 《페미니즘을 퀴어링!》(봄알람, 2018)을 신청했습니다. 책 제목에 ‘페미니즘’이 들어가 있으니 이번에는 사서가 올바른 결정을 할 거로 믿습니다.

 

 

 

 

 

 

 

 

 

 

 

 

 

 

 

 

 

 

 

 

 

 

 

 

 

 

 

 

 

 

 

 

* 애너매리 야고스 《퀴어 이론 : 입문》 (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12)

* 수잔 스트라이커 《트랜스젠더의 역사》 (이매진, 2016)

* 케이트 본스타인 《젠더 무법자》 (바다출판사, 2015)

* 주디스 핼버스탬 《여성의 남성성》 (이매진, 2015)

 

 

 

과거에는 ‘변태성욕자’, ‘동성애자’를 욕할 때 ‘퀴어’를 사용됐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퀴어는 다양한 성적 정체성, 성 지향성이 있는 ‘성소수자’를 아우르는 단어로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퀴어를 ‘변태’, ‘해롭고 위험한 존재’로 인식하고 비하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퀴어 혐오(트렌스젠더, 게이, 레즈비언 혐오)를 일삼는 사람, 동성애와 퀴어 축제를 반대하는 보수 기독교인, 그리고 ‘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m)로 알려진 트랜스-배제적 페미니스트가 있습니다.

 

 

 

 

 

 

 

 

 

 

 

 

 

 

 

 

 

* 쉴라 제프리스 《래디컬 페미니즘》 (열다북스, 2018)

 

 

 

트랜스-배제적 페미니즘은 ‘젠더 비평적 페미니즘(Gender-Critical Feminism, GCF) 또는 ‘문화(주의) 페미니즘(Cultural Feminism)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TERF’로 통일하여 쓰겠습니다. TERF에 속하는 쉴라 제프리스제니스 레이먼드는 트랜스젠더 자체를 부정해서 성별 불화를 겪는 사람을 ‘트랜스섹슈얼리즘’이라고 부릅니다. 그녀들은 성전환 수술을 허용하는 의료 정책에 반대합니다.

 

 

 

 

 

 

워마드(WOMAD)는 TERF을 표방하는 여초 성향 커뮤니티입니다[1]. 본인들이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직 생물학적 여성의 권리 신장을 지향합니다. 워마드는 남성은 절대로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워마드는 게이와 트랜스 남성의 여성 혐오에 대항해 ‘미러링’으로 비판합니다만, 문제는 게이와 트랜스 남성을 비꼴 때 쓰는 워마드 용어가 ‘성 소수자 혐오표현’이라는 점입니다.

 

 

 

 

 

트랜스 여성도 워마드가 적대하는 대상입니다. 워마드는 트랜스 여성을 ‘남성’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여성 운동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트랜스 여성의 성전환 수술을 비꼬기도 하고, 트랜스젠더를 싸잡아서 ‘젠신병자(트랜스젠더+정신병자)라고 비하합니다. 이 단어에 성별 불화를 겪는 트랜스젠더를 ‘정신장애인’으로 바라보는 비하적인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지만 트랜스젠더는 더 이상 정신장애가 아니며, 이를 질병으로 규정하면 실제로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 및 낙인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 홍성수 《말이 칼이 될 때》 (어크로스, 2018)

* 김승섭, 레인보우 커넥션 프로젝트 외 《오롯한 당신》 (책공장더불어, 2018)

 

 

 

혐오표현은 소수자를 부정하고 차별하거나 배제하려는 언어입니다. 따라서 ‘젠신병자’는 트랜스젠더라는 성소수자를 여성 운동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배제하는 효과를 낳는 혐오표현입니다. 쉴라 제프리스는 트랜스섹슈얼리즘을 ‘인권 침해’로 규정하면 의료적 트랜지션 즉, 성전환 수술 · 호르몬요법 등을 불법화하는 데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그녀의 주장에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성 소수자 차별과 억압이 워낙 강고해서 트랜스젠더에 대한 실태 파악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 국내 의학 전문가들은 트랜스젠더들이 제대로 의료서비스를 받았는지 관심을 주지 않았어요. 의학 교육 과정에서 의료적 트랜지션에 필요한 지식 및 기술에 대한 수련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요. 의료적 트랜지션을 규제하면 부작용이 생길 우려가 있습니다. 트랜스젠더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불법 의료적 트랜지션이 음지에서 성행할 수 있습니다.

 

 

 

 

 

저는 ‘페미니즘’과 ‘퀴어’가 서로 연관이 없는 별개의 단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퀴어/퀴어 이론’을 흠집 내기 위한 수단으로 페미니즘과 퀴어를 따로 구분 지어 사용되는 것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달에 1차 불법촬영 편파 수사 규탄시위가 열렸습니다. 이 시위는 미투 운동이 확산된 이후에도 바뀌지 않는 사회 전반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시위였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시위 참가 조건이 문제 있다고 봅니다. ‘생물학적 여성’ 자체를 인정한다는 건 결국 페미니즘이 꾸준히 비판했던 젠더 이분법의 함정에 빠지게 되는 일입니다. 젠더 이분법의 선택지는 단 두 개입니다. ‘생물학적 남성’과 ‘생물학적 여성’이죠. 젠더 이분법은 성소수자인 ‘제3의 성’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젠더 이분법에 기초한 시위 참가 조건은 트랜스 여성의 참여를 막는 것이고, 트랜스 여성에 대한 차별입니다. 트랜스 여성도 성희롱 · 성폭력(시스젠더에 의한 성폭력과 성소수자 간의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성소수자 사회 안에서도 성폭력을 인지하고 제기할 수 있도록 공론화되어야 하는데 아직 그런 기회가 부족합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동성 간 성소수자 간의 성폭력을 공론화하기 더 어렵게 만듭니다.

 

 

 

 

 

 

 

 

 

 

 

 

 

 

 

 

 

 

 

* 권김현영 엮음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교양인, 2018)

* 이민경, 최현희, 최승범 외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해》 (동녘, 2017)

 

 

 

정희진 님은 성소수자와 이성애자를 구별하는 차별하는 태도가 가부장제의 원리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퀴어는 인간의 성별을 양성으로 고정하려는 가부장제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젠더들이라고 말합니다. 여성 순혈주의는 불가능합니다[2]. 현재의 워마드는 여성 순혈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페미니스트는 이 심각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내부 비판을 하지 못하는 걸까요? 루인 님은 국내에 페미니즘과 퀴어의 상호 관계성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면서 논쟁적 문제에 ‘몸을 사리는’ 페미니스트들의 태도를 지적했습니다[3].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 모두 공부해야 할 것들이 많은 학문입니다. 둘 중 하나를 공부하는 건 벅찬 일이에요. 하지만 공부하지 않은 것을 모른다고 해서 복잡한 논쟁 주제를 자꾸만 피해야 할까요? 내가 관심 있는 학문이 조금씩 뭔가 잘못되고 있는데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어야 할까요? 아무것도 모른다는 이유로 논쟁을 피하려는 태도, ‘나중에’ 생각해보겠다면서 신중한 척하는 태도. 이 모든 행동은 잘못된 현상을 유지하게 해주는 ‘몸 사리는’ 태도입니다. 달리는, 아니 모든 사람이 행복할 때까지 달려야 할 페미니즘에 ‘중립’은 없습니다[4].

 

저는 지난 달 초에 공개적으로 약속했습니다. 싸다구 맞을 각오로 페미니즘을 공부하겠다고요[5]. ‘중립’이라는 이름에 숨어서 페미니즘 내 문제를 소극적으로 지켜봐야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쉽게 결론 내리기 어려운 페미니즘 논쟁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내놓아도 어차피 욕먹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타당한 비판도 받을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1] 워마드 회원 전체가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건 아닙니다. 워마드 일부가 성소수자를 혐오합니다.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 있는 워마드 회원을 실제로 만나봤습니다.

 

[2] 정희진,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215쪽.

 

[3] 루인, 『트랜스젠더 운동, 페미니즘과 동성애 운동과의 관계: 미국과 한국의 경우』, 2012년 3월 1일, ‘Run To 루인’ http://runtoruin.com/1955

 

[4]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하워드 진).

 

[5] [싸다구 맞을 각오로 공부하기] http://blog.aladin.co.kr/haesung/10078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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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18-06-21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 진보운동사 원로 여성운동가들은 독재와 군부에 저항하며, 민주화와 노동운동과 같이 여성운동을 전개했지만, 워마드 등장에서 그분들의 노력이 무너지는 걸 보면서 참 안타까울 뿐입니다.

cyrus 2018-06-22 11:57   좋아요 0 | URL
페미 강연 때 어느 여성주의 연구가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제는 사회주의 여성 페미니스트들의 삶과 업적에 주목해야 한다고요. 워마드 중심의 급진 페미니스트 활동이 크게 부각되고 많이 알려지고 있는 상황이 페미니즘 발전을 고려할 때 바람직하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페미니즘이 워마드의 페미니즘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다른 관점으로 여성 문제에 접근하는 페미니즘이 상당히 많아요. 여러 갈래로 이루어진 페미니즘이 발전하려면 페미니즘 내부 비판과 성찰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페미니즘이나 여성 운동가의 업적도 알려야 합니다.

syo 2018-06-21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퀴어 책을 도서관에 들여놓으시려는 사이러스님의 노력을 비롯해, 전개하신 모든 논지에 대부분 동의합니다. 근데 퀴어 책을 들여놓지 않는 이유에 대한 사이러스님의 추측은 뭔가 좀 귀엽습니다ㅋㅋㅋㅋ 설마 그래서일려구요 ㅋㅋㅋㅋ

도서관이 페미니즘 책도 웃으면서 들여놓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페미니즘 책 신청을 거부하는 일부 도서관에 대한 제보도 있잖아요. 별로 맘에 안들지만 안 들여놓으면 난리치겠지, 하는 마음에 어거지로 들여놓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근데 가뜩이나 페미니즘 책도 맘에 안 드는데, 이제 퀴어놈들까지 설쳐? 근데 퀴어 책은 안 들여놨다고 난리 치는 분위기도 아니고, 퀴어는 여성에 비해 훨씬 더 마이너하니까, 어렵지않게 나가리시키는 건 아닐까요?

그것과 별개로 하나만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사이러스님은 퀴어 이론이 페미니즘의 하위개념이나 부분집합이라고(혹은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거나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계신가요??

cyrus 2018-06-22 12:01   좋아요 0 | URL
syo님의 생각이 그럴 듯합니다. 아마도 사서는 중앙도서관에 페미 책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거예요. 중앙도서관에 <퀴어 이론 : 입문> 있고요, 중앙도서관은 다른 대구 공공도서관들보다 동성애, 레즈비언 관련 책들을 더 많이 갖추고 있어요. 십 년 전에 나온 페미니즘 책들은 서고가 아닌 자료실에 있어요. 중앙도서관은 페미니즘, 퀴어를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가 다량으로 보관되어 있는 곳이에요. 취소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아서 도서관 홈피 게시판에 글을 남기려고 해요. ^^

퀴어 이론이 페미니즘의 ‘하부 개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은 원래 ‘하나’였습니다. 왜냐하면, 페미니즘과 퀴어 모두 가부장제 사회가 만들어낸 성차별을 해체하려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의 학문에는 여러 갈래의 길(급진적 페미, 사회주의 페미, 레즈비언 페미, 에코 페미 등)이 있어요. 퀴어 이론도 ‘여러 갈래의 길’ 중에 하나에요. 저는 페미니즘과 퀴어가 처음에는 한 길로 쭉 가다가 어느 순간부터 두 갈래로 나뉘어졌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페미니즘과 퀴어를 가르는 간격이 너무나 많이 커졌어요. 이 간격을 좁힐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터야하는데 그게 바로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이에요. 그런데 TERF는 상호교차성 페미니스트를 ‘쓰까페미’라고 부릅니다. 급진적 페미 관점에서 퀴어 페미 또는 상호교차성 페미를 비판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자신들의 페미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쓰까’라고 놀리고 멸시하는 건 분열과 갈등을 초래하는 일입니다.

syo 2018-06-22 12:49   좋아요 0 | URL
으음, 사이러스님의 말씀이 제 눈에는 퀴어 이론이 페미니즘의 ‘하부 개념‘ 혹은 ‘부분 개념‘ 이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페미니즘의 여러 갈래 중 한 갈래‘ 라는 표현은 그야말로 퀴어 이론이 페미니즘의 지류라는 뜻이지 않겠습니까?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이 가부장제 사회가 만들어 낸 성차별을 해체하려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말씀은 정론이지만,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두 학문이 ‘하나‘ 이거나, 한 학문이 다른 한 학문의 ‘갈래‘의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당위가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저는 원래 두 학문이 같은 학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A는 B이다˝가 참이라고 해서 A와 B가 등가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B는 A이다˝가 붙어야지요. 퀴어 이론이 페미니즘과 ‘하나‘의 학문이려면 ˝퀴어 이론은 페미니즘이고, 동시에 페미니즘은 퀴어 이론이다˝ 라는 말이 합당해야 하는데, 그렇게 느껴지시나요? 이 문장이 마치 ˝천문학은 과학이고, 동시에 과학은 천문학이다.˝ 라는 문장만큼 어색하게 느껴지시지는 않으시는지요. 만약 그렇다면 사이러스님께서는 ‘하나‘라는 표현을 통해 페미니즘이 퀴어 이론을 ‘품고‘ 하나가 된 그림을 그리고 계신건데요.

현재 퀴어 이론이 대부분 페미니즘의 자장 아래 연구되고 있는 현실이나 페미니즘이 퀴어 이론에 제공하는 양분에 대해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구요, 퀴어 이론을 연구하시는 논퀴어 연구자들의 노고를 부정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남성이 아무리 페미니즘을 열심히 연구하고 실천하여도 남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결코 접근할 수 없는 경험, 해서는 안 되는 발언, 페미니즘 학문 안에서 움켜 쥐려고 해서는 안 되는 헤게모니가 있는 것처럼, 퀴어 이론 안의 논퀴어 페미니스트에게도 마찬가지의 제약조건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지점들은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이 함께 어깨를 겯고 앞으로 나가는(실제로는 페미니즘이 퀴어 이론을 부축하고 함께 가는 양상임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구요) 동등한 별개의 학문의 꼴로 귀결될 수 밖에 없도록 하는 근거가 아닐까요.

‘하나‘라는 말씀으로 주장하고 싶으신 윤리적 당위성에는 저도 100퍼센트 동의합니다. 함께 가야죠. 그렇지만 ‘페미니즘‘이라는 깃발 하나만 들고 싸워 나가다 보면 쉬이 간과될 수 있는 그 ‘차이‘가 종국에는, 되돌리려면 어마어마한 비용을 감수해야 할 결정적 틀어짐을 낳을까 우려합니다. ‘인간 해방‘에서 말하는 인간이 백인 부르주아 남성만을 부르는 말이었듯, ‘성 해방‘에서 말하는 성이 논퀴어만을 부르는 말이 되지 않게 하려면, 아직 상대적으로 미약하고 의존적인 학문일 수 있지만, 퀴어 이론의 독자성과 자생성을 끝까지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요? 제 생각입니다.

만약 처음 사이러스님께 드렸던 질문에 퀴어 이론이 페미니즘의 하위개념이라고 생각한다는 대답을 주셨다면, 저는 아, 그러시구나, 하고 말았을 것 같아요. 그건 그냥 견해차이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길고 구구절절 택도 없는 개인 의견을 피력한 것은, 사이러스님의 대답과, 그 대답 뒤에 이어지는 설명들이 정합적이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포스트를 통해 사이러스님이 말씀하시고 싶었던 말씀에는 하나도 반대하는 게 없는데도, 지엽적인 이야기로 이렇게 스압공격을 가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ㅎㅎㅎ

허허허....

cyrus 2018-06-22 15:30   좋아요 0 | URL
사과하지 않아도 됩니다. syo님의 의견은 올바른 지적입니다. 제 생각이지만, 레드스타킹 멤버들이 질문하고, 소신 있게 의견을 밝히는 syo님을 만나면 엄청 좋아할 것 같습니다. ^^

다시 생각해보니까,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은 하나’라는 주장이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의 ‘연대’를 강조하기에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에 쫓겨 급하게 생각하고 댓글을 쓰다 보니 앞뒤가 맞지 않는 의견이 나와 버렸네요.

페미니즘이 단순하게 ‘여성을 위한 학문’이었다면 퀴어 이론은 ‘페미니즘의 하부 개념’, ‘페미니즘의 부분 개념’으로 볼 수 있어요. 그렇지만 성차별에 고통 받는 존재는 여성만 있는 게 아니라, 남성, 성소수자, 장애인도 포함합니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포함한 가부장제의 억압, 성차별에 억눌려 있던 모든 사회구성원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학문입니다. 남성,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이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듯이 가부장제 사회를 해체하는 방식도 다릅니다. 그래도 저는 여러 갈래로 나뉜 페미니즘이 ‘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동일한 가치와 입장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서 협력하고 연대하면 공통 목표를 달성할 수 있어요. 하지만 공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다른 가치와 입장을 가진 사람들도 연대할 수 있어요. 후자의 연대는 각자 고유의 가치와 입장을 존중하는 전제로 공통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협력과 연대가 이루어지면 어떤 특정한 가치와 입장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위계질서가 없어야 해요. 이 위계질서가 작동되면 연대가 불가능해요.

여러 갈래의 페미니즘이 있는데 딱 한 길만 좋다고 해서 그것만 갈 수 없어요. 이 길도 가고, 저 길도 가보는 거죠. 아니면 두 개로 갈린 길의 간격을 없애는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페미니즘의 연대가 ‘공통 목표(가부장제 사회가 만들어 낸 성차별을 해체)를 달성하기 위해 페미니스트들이 여러 갈래의 길 위를 달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페미니즘과 퀴어는 하나’라는 표현을 썼는데, 제가 봐도 아닌 것 같습니다.. ^^;;

이 답글의 의견이 이해되지 않거나 그래도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말씀해주세요.

syo 2018-06-22 18:20   좋아요 0 | URL
대구에 내려가면 사이러스님 손에 붙들려 얄짤없이 레드스타킹에 참여하게 되는 건가요ㅋㅋㅋㅋㅋ 어쩐지 사이러스님이 syo 너 이놈 내려오기만 해라, 하며 벼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저의 착각인가요 ㅎㅎㅎ

cyrus 2018-06-23 11:25   좋아요 0 | URL
레드스타킹은 해치지 않아요.. ㅎㅎㅎㅎ 이분들과 계속 만나보면 마음이 편해질 거예요. 페미 뽕에 제대로 취합니다.. ^^

2022-06-15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22 12:16   좋아요 0 | URL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워마드가 ‘생물학적 여성’을 지향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처음 알았습니다. 어제 쓴 글에 밝혔듯이 워마드가 TERF를 표방한다고 해서 워마드 전체가 성소수자를 혐오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부’가 성소수자 혐오를 하고 있다면, 또 다른 ‘일부’는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이 있습니다.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 있는 워마드 일부는 ‘젠신병자’, ‘똥꼬충’ 사용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근본 없는 페미니즘>, 꼭 읽어보겠습니다. 어제 글을 쓰고 나서 그 책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저도 ****님을 위해 페미니즘 문헌을 추천합니다. 나영 님이 학술지에 게재한 글입니다. 제목이 <지금 한국에서, TERF와 보수 개신교계의 혐오선동은 어떻게 조우하고 있나>입니다. 레드스타킹 멤버가 공유한 글입니다. 저는 나영 님의 글을 참고해서 워마드를 비판하는 글을 썼습니다.

http://www.academia.edu/36485411/%EC%A7%80%EA%B8%88_%ED%95%9C%EA%B5%AD%EC%97%90%EC%84%9C_TERF%EC%99%80_%EB%B3%B4%EC%88%98_%EA%B0%9C%EC%8B%A0%EA%B5%90%EA%B3%84%EC%9D%98_%ED%98%90%EC%98%A4%EC%84%A0%EB%8F%99%EC%9D%80_%EC%96%B4%EB%96%BB%EA%B2%8C_%EC%A1%B0%EC%9A%B0%ED%95%98_.pdf

2018-06-22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22 14:23   좋아요 0 | URL
링크 화면 중앙에 ‘READ PAPER’라는 작고 희미한 글자가 보이시나요? 화면 아래로 스크롤 내리면 그 글자 바로 밑에 본문이 뜹니다. ****님이 말씀하신 비밀번호가 PDF 다운로드할 때 입력해야 하는 비밀번호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본문 화면이 나오지 않으면 다시 알려주세요. 제가 이 글을 보는 방법을 알아볼게요.

2018-06-22 1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22 15:51   좋아요 1 | URL
트페미 중심으로 전개되는 ‘탈 코르셋 운동’이 강압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하는 여성들이 있어요. 네, 페미니즘도 사람이 만든 학문이라서 무조건 완벽할 수 없고, 비판받을 수 있어요. 페미니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좋아요. 하지만 단순히 문제점이 많다는 이유로 ‘페미니즘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페미니즘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은 동의하기 힘듭니다. 저는 TERF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TERF도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TERF는 비판 받을 만한 페미니즘입니다. 제가 ‘워마드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제 입장을 ‘팔이 안으로 굽는 태도’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워마드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는 발언이 페미니즘을 왜곡하고, 편견을 재생산한다고 생각해요. 반 페미니스트는 워마드와 다른 노선의 페미니즘을 공격할 때도 ‘너희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페미니즘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특히 남성)이 페미니즘을 판별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은 일입니다.

페크pek0501 2018-06-23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리는, 아니 모든 사람이 행복할 때까지 달려야 할 페미니즘에 ‘중립’은 없습니다[4].˝
이 문장을 읽고 이런 글이 생각났어요.
˝언어의 세계에 중립이란 없기 때문이다, 지성의 반대말은 절충, 균형, 원칙... 이런 사고들이다.˝(정희진처럼 읽기, 202쪽.)

cyrus 2018-06-25 12:32   좋아요 0 | URL
첨예한 갈등이 나오는 문제에 한 가지 대답을 선택하는 건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예요. 그러나 계속 피하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요원해질 것이고, 문제에 휘말린 당사자들은 더 괴로울 거예요. 욕을 먹거나 비판을 받더라도 자신의 의사를 밝혀야 합니다. 자신이 말한 입장이 아니면 잘못을 떳떳하게 인정하면 됩니다.

마립간 2018-07-05 08: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cyrus 님의 제게 언급한 페이퍼이기에 반복해서 읽고 곰곰이 생각 ... 중입니다.

1) 단편적으로 앞 선 댓글 대화로 페미니즘의 비판을 거부한다면 워마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2) 퀴어 이론이 페미니즘보다 상위 개념이다. (보편성에 비춰.)
3) 정희진처럼 읽기 ; 지성의 반대말은 절충, 균형, 원칙이라면 ... 지성과 비슷한 말은 독선, 불균형, 무원칙일까...
4)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하워드 진) ; 하워드 진의 중립 기준은 무엇일까. 지구? 태양? 우리 은하? 아니면 13차원의 우리 우주 universe?

제가 읽은 책은 <여성의 남성성>뿐이지만, 우리 나라 (또는 알라딘에서 언급되는) 페미니즘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알 수 있죠. 흑백 인종을 갈등으로 남녀불평등을 덮으려는 것은 비겁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남녀불평등(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빌미로 인종 갈등, 퀴어 문제를 덮으려는 것을, 저는 더 비겁하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에는 인종 갈등이 없기에 남녀불평등만 문제로 보는 분도 계시구요.

비로그인 2019-03-11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adical Feminist가 아닌 TERF라는 멸칭을 아무런 설명 없이 사용하시는 데서 악의를 느껴집니다
글쓴 분께서는 워마드와 트랜스젠더리즘에 반대하는 모든 스탠스를 묶어서 혐오라 말씀하고 계시는데 이는 옳지 않습니다. 게이 커뮤니티의 여성혐오와 트랜스젠더리즘의 여성혐오적 측면, 전환수술의 부작용 등에 대해 얘기하는 건 분명히 필요하고 이러한 태도를 혐오로 낙인찍으며 발화를 막는 퀴어커뮤니티의 경향에 대해서도 재고해보시길

cyrus 2019-03-11 22:57   좋아요 0 | URL
TERF에 대한 정의를 설명했는데요. TERF라는 용어와 그 의미를 제가 만들었습니까? 렏펨을 TERF라고 단정적으로 규정하면서 명시한 적이 없습니다. 이 글의 첫 번째 각주에 ‘워마드 회원 전체가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썼습니다. TERF나 워마드를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고 쓴 적도 없고요. 나현 님의 논리대로라면 페미위키의 ‘TERF’ 항목 작성자도 악의적으로 렏펨을 보는 사람이겠네요.

이번에 나온 <미투의 정치학>의 머리말은 정희진 님이 쓰셨어요. 머리말 중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최근 몇 년간 일부 페미니스트(렏펨, 터프.....) 역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주장하고 있다.” (30쪽)

정희진 님이 ‘터프’와 ‘혐오’를 언급하셨는데, 여기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게이 커뮤니티의 여성 혐오도 분명 심각한 문제인 것 맞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렏펨이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미러링으로 성소수자 전체를 혐오하는 방식은 오히려 성소수자 혐오를 재생산하고 확대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