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알라딘신간평가단님의 "알라딘 13기 신간평가단 첫번째 리뷰도서! "

우아~드디어 책이 오네요.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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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모든 것 안녕, 내 모든 것
정이현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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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모든 것>Bye 혹은 Hello?

 

나와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작중인물들이라 소설 속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세미, 준모, 지혜

 

서울의 한 보습학원에서 중등사회를 가르치던 지혜가 어느 날, (정확히는 2011년 12월 19일) 자신을 찾는 전화가 왔다는 동료의 말에 눈앞이 아뜩해지는 그런 장면으로부터 소설은 시작한다,

 

기억할 수 있는 학창시절을 오롯이 함께 한 세 명의 아이들.

각자의 집안 사정과 각자의 개인적인 생각들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들은 조금씩 성장해간다.

 

부모의 이혼으로 부자인 조부모 집에 들어가 살게 된 세미. 부자로 살았던 아버지라는 사람은 너무도 나약해 빠져서 사업이 실패하고 사람들이 들이닥치자, 일단 이혼으로 눈앞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엄마를 미국으로 떠나보내고 세미는 할머니댁에 맡겨버린다. 그러고선 동남아의 휴양지 어딘가로 골프여행을 떠났다던가...성적이 중간쯤이라 IN서울 대학은 갈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하는 나이에 덩그러니 남겨진 세미는 존재를 고민해야 하며 낯선 조부모와 그저 발랄한 부잣집 딸로 유유자적하는 고모에게 적응해야 하기도 했다. 그나마 시원시원한 고모에게 정을 줄 무렵, 고모는 마담 뚜가 추천하는 김 검사에게 시집을 가버린다. 할아버지의 사망 이후 급격히 기울어진 가세로 남은 사람들은 으르렁...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세미는 무뚝뚝하고 무섭기만 했던 할머니에게 정이라도 생긴 건지...할머니를 위해 한동안 봉인해두어야 할 비밀을 만들게 된다.

 

뚜렛 증후군을 앓는 이유로 끊임없이 욕설 틱을 중얼거리며 사람들에게 불쾌한 시선을 받아야 하는 준모.

점점 심해지는 틱을 받아 줄 친구를 겨우 만나 우정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 우정이 사랑으로 변할 즈음 남모를 사랑의 아픔을 껴안고 덴마크 유학을 결심한다.

 

교수 부부의 딸로 태어났고, 기억력이 비상하게 좋지만 그걸 숨기려고 항상 조용하게 지내는, 그러나 친구 세미 앞에서는 무지무지 많이 떠드는 지혜. 늘상 싸워대는 부모의 험담을 하곤 하지만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부모를 미워할 수 없는 아이. 남의 눈에 띄기 싫어 수능 시험에 잠을 자서 시험을 일부러 망친 아이. 그러나 친구 셋이 같이 만든 봉인된 기억의 그 날 이후, 재수를 하고는 대학에 들어간다. 재수학원에서 광고용으로 쓸 만큼 확연히 오른 점수를 가지고...

 

이 셋은 1994년 김일성의 죽음과 한여름의 기록적인 폭염,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시간을 함께 했고, 1995년 대구 지하철 폭발 그리고 삼풍백화점의 붕괴까지, 요동치는 90년대 중반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사이이다.

그러던 그들이 1996년 5월의 어느날, 기억 속에 봉인해 버려야 할 비밀을 만들어야 했던 날. 그 이후로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안녕, 내 모든 것.

 

기억의 봉인이 끝끝내 풀리지 않기를 그들은 빌었을까? 아니면, 어서 빨리 해제되어 폐부 깊숙이로부터 큰 한숨을 들이쉬고, 내쉰 다음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밝은 태양을 바라보고 싶었을까? (사실, 지혜는 평소에 시커먼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다니긴 한다.)

지혜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지혜는 세미와 만났고, 과거는 다시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안녕, 내 모든 것.

내가 걸어온 길들이 두려워 되돌아보지 않았더니, 이 책이 다시 나의 과거를 돌아보게 한다. 안녕의 의미가 Bye~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네. Hi, Hello~였네.

준모가 뚜렛 증후군 치료 겸 유학 차 떠났을 덴마크의 언어로는 각각 파르벨, 고다그...였던가.

 

90년대의 나는 반짝반짝 빛났던가?

아니면 거짓으로 덕지덕지 치장된, 차마 찬란한 실없이 흘리고 다녔던가.

아프고, 고통스러운 과거. 기쁘고 달콤했던 과거.

쌉쓰름한 치커리가 들어있는 샐러드를 달콤한 허니 머스터드 소스에 버무려 먹는 듯.

달콤 쌉싸름했던 나의 과거가 되살아난다. 이를 어쩌나...

 

어정쩡하게 책을 읽어서 갑작스레 마주친 나의 과거의 기억은 확실히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어렴풋하게나마 90년대의 추억이 떠오르면서, 이제는 나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던가 싶기도 하다. 속시원히 밝히지 못할 가정사로 인해 항상 주변 언저리에서 빙빙 돌며, 책 속으로 한없이 침잠해 들어가기만 했던 그 때. 친구들은 나를 말없는 아이로 기억하고 있겠지만, 아줌마가 된 지금은 동네 아낙들과 수다 떨 때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아마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나를 못 알아볼지도 모르겠다. 조용하고 음울했던 책 뒤에 가려진 아이가 밝고 시원한 웃음을 웃으면서 자기를 툭 치며 아는 체를 하면, “누구세요?”..할 걸?, 아마도...

그 시절의 가리고 싶고, 숨기고 싶은 기억들은 세미와 준모와 지혜가 봉인해버린 그 사건과도 맞먹을 것이다. 나는 지금 그 봉인해버린 기억들을 그들처럼 공유하고 있지 않기에, 나 혼자 마음속으로 떠나보내는 의식을 했고,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털어놓았고, 조금은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살고 있다.

안녕, 내 모든 것.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할 것들을 빨리 떠나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이해야 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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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마이리뷰 당선작

8점
이 순간의 풍경 - 꼼쥐
<노랑무늬영원>
특별하지 않은 일들은 그저 멀뚱히 바라보는 편이 좋다. 평소보다 눈에 힘을 반쯤 빼고 멍하니 바라보노라면 흔하디 흔한 일들도 마냥 아름답게만 보인다. 그래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슬몃 놓쳐버린 일들, 무채색의 흐릿한 일상도 시간이 멀찌감치 흘렀을 때는 분명 아름답게 보인다. 그렇게 흘려버린 일들을 생각할 때면 과거에는 매우 소중하게 느꼈었던 것들과 별 것 아니라고 내팽겨쳤던 일들이 일순 자리바꿈을 하곤 한다. 후회는 그렇게 시작된다. 이렇듯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후회는 어쩌면 가치관의 혼란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10점
이 사랑이 비록 연애의 끝이라고 해도 - readersu
<그 남자의 연애사>
사랑은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연인이란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 두 사람. 연애는 연인 관계인 두 사람이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것. 사랑이 발전하면 연인이 되고 연인이 되면 연애를 하게 되는 것. 여기 그런 연애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 있다. 나, 너, 혹은 그 여자, 그 남자, 그들의 연애사! 내가 아는 사랑은 달달하다.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드라마와 연애 소설로 다 보았으니 등장하는 남자는 당연 멋진 남자. 여자는 아름답거나 그렇지 못하면 귀엽기라도 한 캐릭터. 그리고 그들...

10점
똑똑하게 다이어트하기 위한 필독서 - 쾌락적독자
<다이어트 진화론>
확실히, 몸은 우리 시대의 가장 핫한 이슈임이 틀림없다. 성형에서 다이어트, 건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설과 이론들이 난립하고 있으니 말이다. 졸업 선물로 성형 수술을 해달라고 조르는 학생, 면접을 잘 보기 위해 얼굴을 디자인하는 취업재수생, 온국민의 입방아에 올라도 살만 빠지면 그만인 다이어트 프로그램 출현자들, 아름다워지기만 하면 동굴에라도 들어갈 사람들이 즐비하다. 한편으로 나이가 들면 또다른 걱정거리가 생겨난다. 피로와 스트레스, 음주와 비만 등으로 숱한 질병에 시달린다. 이제 삼십 대에 노화의 산물인 병을 앓고 있는 사람도 ...

8점
그대도 깊고 진한 길을 가고 있어요. - 오후즈음
<서른, 나는 나에게로 돌아간다>
초등학교 때부터 쓴 일기를 아직 가지고 있다. 가끔 읽을 여유도 없지만 오래전 일기를 들춰보고 싶은 마음이 자주 들지 않는다. 이유는 오랜 일기를 읽고 나면 지금의 내 모습이 많이 우울하기 때문이다. 분명 일기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대단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쓴 부분을 너무 많이 읽어 봤기 때문이다. 어떤 나이가 되면 정말로 그런 직업을 하고 있을 것 같았던 유년시절의 일기는 더욱 서글픈 현실에 서글퍼지곤 한다. 하지만 그런 일기라도 들춰보고 나면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후끈 달아오르는 빈 공간이 생기기 때문에 가끔, 아주...

8점
괜찮다면 즉시 와 주게, 괜찮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네 - 아잇
<셜록 케이스북>
셜록. 셜록. 어쩌다 우리가 홈스를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는가. 셜로키언들의 압사당할 정도의 주석과 멋들어진 삽화로 중무장한 고급 하드커버가 셜록 홈스의 ‘끝판 왕’이라고 생각했을 적에는, 적어도 그때는 그것이 추론의 과학을 예술로 승화시킨 모델에게 합당한 대우라고 여겼음에 다름 아니다. 환상보다 더 환상 같은 환상을 만들어낸 위대한 자를 단순히 ‘셜록’이라고만은 부를 수 없었던 것일 터다. 더욱이 밀레니엄을 지나오면서 몇 차례나 거듭된 셜록 홈스 이야기들과 더 이상은 새로울 것이 없었던 책들 또한 쏟아지기를 반복했는데, ...

10점
관심을 갖자고 말하는, 작지만 울림이 깊은 책 - 다락방
<지식 e - 시즌 8>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죠." 출근 17시간 만의 휴식눈 좀 붙이려고신문지로 가린 형광등 "100만 원이라도 일정한 수입이 생기니까‥‥사실 경비의 '경'자도 몰랐어요." 아파트 경비원 대다수 60대 이상 남성 본래업무인 감시, 단속 외에분리수거주차관리택배관리환경미화‥‥ "눈이 오면 밤새 치워야 하죠.아이들 넘어지면 경비원 탓이 되니까‥‥아파트 경비원이 슈퍼맨이라니까요." 화장실 변기가 고장났다고형광등 나갔다고TV가 안 나온다고수시로 울리는 인터폰 "한국의 아파트 경비원은 낮은 임금에 고용된 하인에 가깝...

10점
마음속 기억으로 나 있는 홈, 새겨진 길을 따라서. - Nussbaum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너무나 유명한 영화 <러브 레터> 의 한 장면.이 영화에는 후지이 이츠키가 읽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가 나온다. 영화의 얼개와 잘 맞아떨어진 느낌. 두툼한 양장본으로 되어 있던, 하얀 표지의 책. 아픈 추억, 좋은 느낌을 담은 기억의 단편의 향기를 다시 꺼내 놓으라 한다. 잊은 줄 알았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이별과 재회 또는 죽음과 부활의 이야기이다. (...) 작품 세계의 저변을 이루고 있는 것은, 우리가 부단히 죽어 가고 있다는 세네카식의 인식이다. 특히 망각현상이 그 극명...

8점
파국을 통해 다시 꿈꾸는 연습 - 드팀전
<파국의 지형학>
지금 누가 세계의 파국을 말하는가? 파국은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로지 대중문화의 이미지 속에서만 존재한다. 극장은 파국을 스릴로 즐기는 '재미의 성전'이 될 뿐이다. '고도'는 극이 끝나도 무대 뒤에서 발만 비비꼬고 있을 뿐이며 '유토피아'는 '달의 어두운 면'에 새겨져 있다. 그리고 달은 언제나 달아나는 달, 잡히지 않는 달이다. 현실 세계에서 파국은 부분적 공모자들이 돌리는 술 잔 속에 자기 연민과 함께 순회한다. 지긋 지긋한 세상이 확 한 번 엎어지길 바라는 소시민의 소회를 담아 숯불 위에서 몸을 재빨리도 뒤...

10점
올바른 약 복용의 예 - oldies
<컴퓨터 커넥션>
출판사 폴라북스의 "미래의 문학" 시리즈로 앨프리드 베스터의 작품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반가움보다도 걱정이 앞섰다. 베스터의 휘황찬란한 영광은 첫 두 장편 소설 이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 그간의 통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작가의 최고작만을 골라 읽으며 눈먼 숭배를 바치고 신성을 부여해대는 건 꼴불견이긴 하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지난 10여년 동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빼어난 두 작품을 남긴 독보적인 SF 작가'로 떠받들어 왔던 사람이, 뒤늦게 소개되는 힘 빠진 후기작 한 권 때문에 '각종 부침이 있었고...

8점
色彩を持たない多崎つくると、彼の巡礼の年 - Jeanne_Hebuterne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photo by Reuters 말문을 연 아이의 단어만큼이나 많은 수식어, 한여름의 폭염과 비만큼 상반된 생각을 여럿에게서 불러오는 작가. 이름이 브랜드 처럼 여겨지는 작가. 작품만큼이나 이름 하나로 주목받는 작가. 그의 단어, 문장, 이야기를 이제 다시 한 번 들여다 보아야 할 것 같은 작가. 평일 낮 대형매장에 독자들이 줄 서서 새로 나온 이 책을 받아들고 돌아갔다. 그보다 먼저 일본에서는 많은 이들이 발매 당일 자정에도 서점에서 직접 책을 사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출간 전, 제목만 알려졌을 뿐 내용 포함해 모든 것은 비밀에 ...

8점
아마 우리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 맥거핀
<적군파>
1972년 2월 28일, 각종 테러와 범죄, 파괴활동방지법 위반으로 경찰의 추적을 받던 연합적군의 최후의 생존자 5명 전원은 일본 나가노 현의 아사마 산장에서 10일 동안 산장의 여주인을 인질로 잡고 농성을 벌이다가 경찰에게 결국 체포되었다. 사건은 끝난 것처럼 보였고, 모든 진상은 드러난 듯이 보였으며, 이들에게는 긴 수형생활만이 남은 듯했다. 그런데 이들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사건의 숨겨진 나머지 부분이 드러났고, 그것은 경찰은 물론 전 일본인을 깜짝 놀라게 했다. 아사마 산장에서 사건이 벌어지기 전,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평균나...

10점
90세 한 노인의 투신을 희망이라 부르는 까닭 - Soli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90세 한 노인의 투신을 희망이라 부르는 까닭[서평] 스페인 만화대상 수상작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길찾기그가 처음부터 아나키스트가 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지독한 가난에 포위된 채, 폭력으로 억누르며 생존의 당위만 강조하던 아버지와 형제들, 담을 쌓아 경계를 나누며 서로를 증오하고 탐하던 이웃들 사이에서, 그는 "모름지기 사람은 인류 외에 다른 고향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욕망은 곧 절망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고향 페나블로를 떠날 결심을 한다. 그가 떠나고자 했던 것은 고향이 아니라, 온갖 야만...

10점
<가벼운 나날>, 형태에서까지 삶을 담아버리는 소설 - 고리오
<가벼운 나날>
*당신은 내면을 믿는가. 진심을 믿는가. 혹은 표면과 내면을 구분할 수 있는가. 그냥 마음과 진짜 속마음을 가려낼 수 있는가.제임스 설터의 <가벼운 나날>에 대해 말하기 전에 이러한 몇 가지 질문을 겹쳐 보고 싶었다. 누군가가 언제나 표면적이고 겉도는 말만 한다면 그 사람은 전혀 믿을 수 없는 사람일까. 내면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는 과연 누군가의 내면을 알 수 있기는 한가? 한국식으로 포장마차에서 코가 삐뚤어지게 소주병을 기울이며 ‘속 얘기’를 밤새도록 하고 나면, 그를 ‘깊게’ 알 수 있게 되는 것인가?“...

10점
환멸을 딛고 다시 시작하기 위한 세밀화 - 헤르메스
<가벼운 나날>
여름은 끝났다. 날들은 온기를 잃었다. 사람들로 가득 붐비던 여름의 해변은 황량하게 버려졌다. 가을이 찾아온 것이다. 가버린 여름의 축제를 아쉬움으로 곱씹게 만드는 계절, 다가올 혹독한 겨울에 대한 예감으로 한층 더 움츠리게 되는 계절이. 75년. 제임스 설터의 '가벼운 나날'이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을 때 미국은 그런 계절이었다. 72년 닉슨의 워터게이트와 75년 베트남 전쟁 패배로 그동안 미국인들이 믿고 있었던 자신의 나라와 거기에 투영되었던 이상이나 꿈들은 광풍에 휩쓸린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 버렸다. '윙윙' 메마른 바람소리...

8점
‘소설’이라 부르고, ‘다큐’로 읽는다. 『소설 출판 24시』 - 구단씨
<소설 출판 24시>
미리 고백하건대, 유감스럽게도 내가 이 책을 순수한 의도로 구매한 것은 아니었다. ‘소설 출판 24시’라는데, 그 24시라는 기준은 누구의 입장에의 시간인지, 어떤 이야기로 변명을 포장하려 하는 것인지 싶은, 조금은 삐딱한 시선이었다. 현재 출판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이 참여해 쓴 소설이란 점에서 정말 솔깃했다. 철저하게 독자로, 돈을 주고 책을 사는 소비자로만 살아온 내가 요즘처럼 시끄러울 때 이 책을 펼쳐보게 된다면, 그들이 하는 말을 조금은 더 생생하게,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기는 했다. 결...

10점
늙은 크프우프크의 이야기, 그리고 우주의 영원한 팽창 - WiredHusky
<우주 만화>
네, 그렇습니다. 마침내 소설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20년간 헤매던 미로에서 드디어 출구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문을 나서는 순간 햇빛이 쏟아져 내려 질끈 두 눈을 감았습니다. 눈을 뜨자 내 앞에 거대한 이야기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내가 미로를 헤매는 동안 아무도 돌봐주지 않은 이야기들이 거기 그렇게 죽어있었던 것입니다.오열하는 슬픔이라기 보다는 바위처럼 묵직한, 차가운 슬픔을 안고 나는 무덤을 올랐습니다. 무덤은 생각보다 크고 높았습니다. 나에게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있었나 놀라울 정도였죠. 높은 곳에 올라가 바람이라도 쐬...

10점
역사의 격량에 휩쓸려 잊혀진 그 이름, 이쾌대 - cyrus
<이쾌대>
♣ '이O대'라는 글자로만 남은 화가 이쾌대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 1948~1949년 혹시 이쾌대라는 이름의 화가를 아는가. 올해가 이쾌대 탄생 100주년이다. 이쾌대는 이인성과 함께 우리나라 근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손꼽힌다. ‘월북작가’로 낙인찍혀 이름 없는 화가로 남아 있었다. ‘쾌’(快) 자가 빠진 채 ‘이O대’로만 알려졌다. 1991년 서울 신세계미술관에서 ‘월북작가 이쾌대’전이 열리면서 그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보기 드문 대작, 그리고 근대미술에서 찾아보기 힘든 군상으로 당시 미술계를 깜짝 놀라게 했...

10점
형태를 잃어가는 과일로부터 길어낸 60대 여성 킬러 이야기..'파과' - 흔적
<파과>
구병모 작가는 그로테스크한 작품성으로 현실을 반영하는 솜씨가 돋보인다. 그런데 그로테스크함의 현실성이 아닌 60대 여성 킬러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의 낯선 현실성이라면 어떨까? 이 생각은 킬러라는 낯선 작품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란 화두를 던져주는‘파과’로 인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작가가 형태와 본질을 잃고 일부 흔적만이 남은 과일로부터 죽음을 떠올리고 쓴 작품이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이 명상이나 초기 불교의 부정관(不淨觀) 같은 의식(儀式)이 아닌 죽임의 세계를 다룸으로써 죽음에 대한 사유를 현실화...

10점
노름마치-소리가 들린다. 도도도도(圖到道導) - 남희돌이
<노름마치>
<노름마치>-소리가 들린다. 도도도도(圖到道導) 진옥섭의 글을 눈으로 좇으니 진양조에서 시작한 것이 중모리를 거쳐 점점 빨라지는 심박수와 함께 자진모리, 휘모리로 몰아친다. 소리가 귀로도 들리는 듯 하여 책을 읽던 내내 눈을 들어 가끔 허공을 바라보곤 했다. 내 귀에 그네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도도도도(圖到道導).종종걸음 치며 밀려온다. 점점 거세진다. 파도가 된다. 나는 거기에 휩쓸려 내 몸을 잊었다. 실현과 미실현. 이 책을 읽기 전의 나는 노름마치의 세계, 우리 전통문화의 세계에 대해 아직 잘 ...

8점
슈테판 츠바이크와 막스 갈로의 반대편에 이 책이 있다. - 가연
<오늘 만나는 프랑스 혁명>
슈테판 츠바이크의 명성에 비하면 조금 그 빛이 바래는 감이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역사 전기 작가인 막스 갈로의 명성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유려하면서도 짧은 호흡으로 쓰여지는 그의 역사 소설들은 쉽게 읽히기도 하고, 동시에 독자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이번에 출간된 프랑스 대혁명, 도 바로 이 막스 갈로의 책인데, 여간한 야심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 혁명이라는 정말 거대한 사건을 하나의 줄기를 잡아서 그대로 써내려간 작품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에 고증이 부족한 것은 또 아니다. 하나의 소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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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문학동네 세계 인물 그림책 2
아나 후앙 그림, 조나 윈터 글, 박미나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프리다는 프리다, 너는 너!

프리다를 닮고 싶어하는 내 딸에게--

 

매미는 뜨거운 햇볕에 매맞는지 맴맴...시끄럽게도 울어대네. 여름은 더워야 제 맛이라고 어느새 도서관으로 향하는 우리 온 몸에서 땀들이 송송 솟아오르고 있었어.

제대로 여름을 느끼며 겨우 도착한 도서관은 곳곳에 얼음이 박혀 있는 듯 서늘한 기운을 내뿜으며 우리의 더운 몸을 감싸 안았지. 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책 있는 곳으로 잽싸게 달려간 너와 나는 어린이 책 서가 비슷한 곳을 빙빙 돌며 책을 찾다가, 으흠~우리 두 쌍의 손이 책 한 권 앞에서 만나게 되었어.

<프리다>

초등학교 2학년. 위인전을 슬슬 접하게 해 주어야지 하는 때인데, 프리다 칼로의 위인전은 어른들, 청소년을 위한 것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서 너에게 적당한 책을 찾기가 참 힘들었다. 그런데 그 때, 내 눈에 이 책이 띄었던 것이고, 이 책을 집어 든 나의 손 위에 너의 자그마한 손이 슬그머니 얹혀졌지. 보통은 네가 책을 스스로 고르고, 나는 한 두 권 정도 덤으로 ‘엄마의 초이스’ 선으로 고르게 되는데, 그게 겹치는 일은 별로 없었지.

그런데, <프리다>를 보고서는 나와 너의 마음이 통했나 보다.

나는 <프리다>를 너의 눈높이에 맞게 보여줄 책을 발견해서 기쁜 마음이었고, 너는...필시<프리다>의 강렬한 표지에 마음을 빼앗겼던 것일 테지.

물소 눈썹에 강인한 얼굴, 그 한가운데 형형한 눈빛을 한 살아 있는 눈의 프리다를 보고 마음이 안 움직일 수 없었을 테지.

누구라도 그녀의 실제 모습(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마음을 빼앗긴단다.

 

                   

 

#그림책 속으로

 

어린 프리다가 나오니 너의 시선이 저절로 책 속으로 향하는구나. 일곱 살에 소아마비라는 장애로 절름발이가 된 프리다. 딸만 여섯을 둔 프리다네 집에서도 프리다는 외로움을 많이 느꼈을 듯 해.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에 상상 속의 프리다를 불러 내어 같이 놀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 사진 작가인 아빠에게서 붓을 사용하는 법, 사진 위에 그림을 그리는 법을 배웠대. 관찰하기도 좋아하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고...너와 닮은 점이 많네? 그러다 열 여덟 살이 되던 해에 버스, 전차의 충돌 사고로 프리다는 거의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지. 프리다는 절망했을까?

아니야, 사진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눈으로 본 것 위에 마음으로 본 것을 그려 나갔어.

그리고 프리다만의 그림을 그렸지. 어때, 그림으로만 봐도 프리다의 개성이 느껴지지 않아?

이 책에는 프리다가 나고 자란 멕시코의 코요아칸이라는 마을이 소개되지. 그 곳은 다리가 불편한 프리다의 온 세상이나 다름없었겠지. 멕시코의 민속 예술품에 나오는 재미난 모습의 해골과 작은 악마, 귀여운 표범이 그림책 곳곳에 숨어 있는 거, 혹시 찾았니? 프리다가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것들이니 프리다의 그림에도 그대로 녹아 있음직하지 않니? 프리다의 그림을 볼 때, 잘 찾아보도록 해.

짤막한 글과 강렬한 색의 환상적인 그림들이 한 눈에 쏙 들어오지?

표지 그림을 보고 완전 반했듯이, 책을 다 보고 나서도 프리다의 삶이 네 머릿속에 콕 박혀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거야.

프리다 만세! 프리다 영원하라! 라고 쓴 문구를 들고 서서 프리다를 응원하는 저 캐릭터의 무리 속에 너도 끼어들고 싶지 않니?

 

#프리다의 그림에 대한 감상

 

자, 프리다의 그림을 보았을 때, 너는 무엇을 느꼈니?

 

“그림 속의 프리다는 웃고 있지 않아.”

“많은 고통을 당한 것이 그림에 그대로 나타나는 것 같아.”

 

책 말미에 소개된 프리다의 그림-<원숭이가 있는 자화상>, <내 마음 속의 디에고>, <목걸이를 한 자화상>, <디에고 리베라의 초상화>를 보고 너는 이렇게 말했어.

그렇지.

프리다는 강인한 여성이었어. 고통 속에서 힘겨운 하루하루를 살아나갔지만, 그 고통이 그림에 대한 열망에서 그녀를 끌어내릴 수는 없었어. 프리다는 ‘엑스보트’로 자신의 심정을 표현했어. 엄마도 잘 몰랐는데, 이 책에서 알게 된 거야. 자기가 아플 때는 자신을 위해 엑스보트를 그렸대. 마술 같은 장면을 그린 다음 그 밑에 글을 써 넣는 것을 멕시코에서는 많이 그렸대. 아픈 사람들을 위한 기도 같은 거랄까? 프리다의 간절한 기도는 그녀의 그림에 힘을 불어 넣었어.

네가 본 것처럼 웃고 있지 않는 물소 눈썹의 프리다는 실제로 많이 아파했던 거겠지.

그렇지만, 그것을 회피하지 않고 뒤로 물러서지 않고 당당히 마주하면서 그림으로 그려냈던 거야. 끈기와 열정, 불굴의 의지의 화신이라 할 만하지 않겠어?

집에 있는 프리다의 그림 중에서 네가 따라 그린 그림 있잖아.

그 그림을 처음 본 네가 “괴물”이라고 말했지.

괴물을 직접 따라 그려 본 소감이 어땠어?

정말, 그리기 싫을 만큼 징그럽고 무서웠니?

아니지?

 

 

괴물은 자신도, 타인도 납득할 수 없는 존재를 말하는 거야. 도저히 인간이 아닌 어떤 것. 중국의 <산해경>에 나오는 온갖 괴물들처럼 머리가 둘이거나 다리가 하나이거나, 머리가 아예 없고, 눈 코 입이 몸통에 달려 있는...기이한 형상을 한 것들. 영화 <에이리언>에 나오는 에이리언처럼 입이 얼굴을 다 차지하고 있는 생물 같은 것 말이야.

그렇지만 프리다의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마음 속에서 “자꾸 들여다 보고 싶다”하는 생각이 솟아오르는 걸 느끼게 될 거야.

그래...

그림을 그리면서 얼마나 아팠을까, 여러 대의 화살을 맞은 흔적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 사슴이 무섭기는커녕, 아픈 사슴을 어루만져 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고...

프리다도 아마 같은 심정이었을 거야.

힘없고 여린 자기 자신을 애서 감추지 않고 드러내면서 당당한 사람으로 나서고 싶었을 거야. 네 말대로 그림을 그리면서 아픈 마음이 조금씩 치유도 되었겠지.

그걸 바로 '고통을 예술로 승화한다‘라고 하는 거야.

 

#프리다를 따라 하고 싶다고?

 

그래. 훌륭한 인물의 삶을 보면 꼭 따라 하고 싶다는 말을 하게 되지.

그래, 프리다의 어떤 점이 닮고 싶은데?

프리다의 개성 있는 그림?

프리다의 강인한 정신력?

일생 동안 그녀를 지탱했던 그림에 대한 열정?

현실을 이겨내려는 끊임없는 노력?

그렇지. 배울 점은 참 많아. 닮고 싶은 점도 많지.

그렇지만 프리다는 그녀의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이야.

네가 프리다를 따라 하고 싶다고 프리다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프리다는 프리다의 길을 따라 가다 보니 훌륭한 인생을 완성한 것이고, 너는 너의 길을 찾아 가야 너다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지.

엄마는 누구를 닮은 삶을 사는 너를 바라지 않아.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했니?

화가가 되고 싶다고 했어?

아직까지는 여러 개의 꿈을 먹고 사는 너일 수 있어. 그러니, 그 꿈을 최대한 많이 누리렴.

프리다가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자리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지, 누군가를 따라 했기 때문이 아니었어.

네가 네 얼굴에 물소 눈썹을 그리고 두 명의 너를 심장으로 연결시키는 그림을 그린다고 너를 칭송해 주겠니?

 

그저, 잘 따라했다고 감탄이나 하겠지.

위인전이나 위대한 인물의 이야기를 읽는 까닭은 다양한 삶의 모습에서 배울 점만을 취하기 위해서야.

누구를 따라 사는 것은 너를 속이는 짓이지. 너는 너를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하는 거야. 엄마는 너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너의 그 자그마한 손으로 꼭꼭 눌러 닮은 그림을 그려내거나 모양 좋게 비슷한 그림으로 바꾸어 내 놓는 것은 너의 일이 아니다. 지금은 어리니 “모방”의 단계라고 치자. 프리다도 어렸을 때는 많은 그림을 따라 그렸으니. 그렇지만, 점차 너의 그림을 그리고, 너의 인생을 만들어 나가리라고 생각한다.

엄마도 비교하거나 누구 닮았으면 하고 절대 강요하지 않을게.

프리다는 프리다의 삶을, 너는 너의 삶을 살면 그 뿐!

 

한 권의 책을 통해 이렇게 많은 말을 쏟아내게 될 줄은 몰랐다.

우리 착한 채원이, 순수한 채원이.

엄마와 함께 할 날 동안 엄마의 날개와 그늘 아래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 본 다음, 세상에 나아가렴.

당당한 프리다의 모습만은 닮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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