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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 ㅣ 파커 시리즈 Parker Series 1
리처드 스타크 지음, 전행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0월
평점 :
2004년, 박찬욱 감독이 과거 영화잡지 《KINO》에서 꼽은 컬트 영화 베스트 10 목록을 좇다가 존 부어맨 감독, 리 마빈 주연의 초현실주의 하드보일드 필름 누아르 〈포인트 블랭크Point Blank, 1967〉를 보게 되었고, 덕분에 리처드 스타크/도널드 웨스트레이크라는 작가의 파커 시리즈에 관해서도 알게 됐다. 그 후 멜 깁슨이 주연을 맡은 〈보복Payback, 1999〉 극장판도 보았고, 2006년에 브라이언 핼겔랜드 감독이 자신의 의도를 살려 다시 편집한 〈보복〉 감독판도 보았고, 만화가 다윈 쿡이 스타크의 원작을 그래픽 노블로 옮긴 파커 시리즈 세 권도 전부 보았다. 그렇게 여러 재해석을 거치며 11년이 흐른 뒤에야, 마침내 스타크의 원작을 정식 한국어판으로 읽을 수 있게 됐다. 저작권 개념이 희미했던 시절 출간한 일본어판 중역 『인간 사냥』을 개정 노력 하나 없이 가격만 올려 재간한 후 지금껏 팔고 있는 동서 미스터리 북스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꿋꿋하게 기다린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또한 요즘 같은 시대에 인기 얻기 쉽지 않을 이 시리즈를 새로 출간해 준 알에이치코리아에 깊은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그런데 그토록 오랜 시간 공을 들이며 스타크의 원작 읽을 날을 손꼽아 기다린 딴에는, 사실 이 이야기의 설정이나 줄거리 자체에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파커라는 악질 프로 범죄자가 어느 날 아내와 동료에게 배신당한다. 그 동료는 어느 범죄 조직과 관계하던 중 실수를 저질러 빚을 갚아야 했고, 이를 위해 파커를 배신했다. 그런데 일이 정리되고 시간이 흐른 후, 총을 맞고 죽은 줄로만 알았던 파커가 다시 돌아와서 복수를 감행하는가 싶더니 급기야는 자기 돈 내놓으라며 혼자서 범죄 조직 전체를 협박하기 시작한다. 재미없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별반 새로울 것도 없다. 파커 외에 딱히 돋보이는 인물도 없다. 그나마 파커 자체도 빛나는 개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1년에 한두 건 정도 팀을 꾸려 일감을 해치우는 독립 사업가다. 계획한 일을 철저히 해내기는 하지만, 딱히 완벽주의자나 프로 중의 프로라는 식으로 칭송받지는 않으며, 독특한 범행 수법이나 버릇도 없다.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번 돈을 펑펑 쓰며 논다. 어떻게 노는 지는 모르겠지만, 평소 하는 꼴로 보건대 술 마시고 섹스하는 수준의 유흥을 벗어나지 않을 듯하다. 가까운 인간관계도 없다. 자신을 배신한 아내를 사랑했다고는 하는데, 과연 그것도 사랑일까 싶다. 취미 생활도 없고, 지병이나 기벽이나 외모상의 특징도 없다. 성형 수술로 얼굴을 바꿔야겠다는 결심마저 아무렇지 않게 한다. 파커는 구체적인 캐릭터라기보다는 차라리 어떤 개념들의 집합처럼 보인다. 모든 금기와 의무로부터 자유로운 극악무도한 악당이라는 개념. 대중문화평론가 김봉석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파커를 '반영웅'이자 '나쁜 남자'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그는 차라리 비(非) 영웅, 비 인간에 가까워 보인다. 이런 부정성은 결코 독자를 잡아끌 만한 특질은 아니다. 비슷한 유형의 캐릭터로 묶이기 쉬울 트래비스 맥기나 잭 리처, 심지어 마이크 해머와 비교해 보면, 파커가 매력이 없는(non-attractive) 음(-)의 캐릭터임은 더욱 두드러진다.
그 부정성이 역으로 매력이 된다고 말한다면 역시 말장난처럼 들리려나? 실체가 인간적이지 않은 어떤 힘, 자연물에 가까운 어떤 재난이 인정사정없이 육박해 들어오는, 순수한 벡터의 쾌감. 어떤 지'점'이 매력적이라기보다는 점이 가차 없이 이동하며 긋는 선의 움직임이 매력적이다. 파커는 무엇보다도 행동주의자이며, 스타크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배신한 동료를 찾아내고 혼쭐을 내는 파커의 계획에는 무릎을 칠만한 독창성은 없다. 스타크는 대신 끊임없이 움직이는 파커의 행동을 꼼꼼히 따라감으로써 보기 드문 활력을 불어넣는다. 파커와 스타크는 정체된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목표가 숨어 지내는 곳으로 추정되는(그런데 심지어 독자는 목표가 그곳에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건물을 감시하는 대목조차도 잠복 감시의 나른함이나 망상과는 거리가 멀다. 파커는 끊임없이 상황을 파악하고, 가정한 상황에 맞는 대책을 수립하고, 이를 망설임 없이 실행에 옮긴다. 창가에 가만히 앉아 건너편을 감시할 때는 담배가 액션을 만든다. 담배가 다 떨어져 창가를 벗어나야 하는 상황조차 위기가 되며, 위기가 역으로 파커에게 에너지를 불어넣어 움직임을 촉발하고, 움직임 끝에 다음 상황이 발생하고, 다시 다음 행동이 이어진다. 김봉석이 서문에서 파커가 "진짜 남자"임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이라는 수식어구는 보기보다 더 정곡을 찌르고 있다.
스타크는 여기에 시간과 시점의 생략 및 변환을 더한다. 챕터와 챕터 사이를 부드럽게 연결한다기보다는 과격한 생략을 끼워 넣어 독자를 화들짝 놀라게 하며 서사를 가속한다. 직선 일변도로 내달려도 좋을 이야기를 크게 네 덩어리로 나누어 놓고 결정적인 전환점에 이르렀을 때 구두점을 탕! 찍은 다음 시점을 바꾸거나 시계를 거꾸로 돌려 긴장을 유발한다.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회상 장면은 앞으로 나아가던 이야기를 일시 정지한 다음 뒤로 돌아가는 속성이 있어서 맥이 빠진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스타크에게는 그토록 방향성이 뚜렷한 서사 속에서 느닷없이 시점을 바꾸거나 시간을 뒤로 돌리더라도 속도가 느려지거나 진행이 멈춘다는 기분이 들지 않도록 하는 신기한 재주가 있다. 어째서일까. 특정한 시점, 특정한 인물의 매력을 중심으로 사건을 따라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일까? 아니면 전체 이야기가 너무나도 단순명료한 덕분에 오히려 다소간의 변주를 환영하게 되는 걸까? 이유가 무엇이든, 『사냥꾼』은 파커 이상으로 서사를 전개하는 서술자의 화법 자체가 주인공처럼 느껴지는 책이다. 무슨 모더니즘 소설스러운 자의식을 갖추고 겹겹이 틀을 짜고 자신을 가리켜대지도 않는데 말이지.
그리하여, 이번에도 '과연 이런 이야기를 또 재미있게 즐길 수 있으려나' 하며 집어 들었다가도 결국 기쁜 마음으로 마지막 장을 덮고 말았다. 불쾌하고 폭력적인 쾌락보다는 오히려 상쾌한 뒷맛을 안은 채로. 유일한 불안이라면 역시 그래 봐야 이런 식으로 파커 시리즈를 대하는 독자는 많지 않을 테고, 이런 소설이 한국에서 인기를 얻을 리도 만무하니 시리즈의 전망이 밝지 않아 보인다는 정도다. 뒷날개를 보아하니 적어도 시리즈 세 번째 작품까지는 계약한 듯한데, 과연 그 뒤도 있으려나 모르겠다. 알에이치코리아가 마이클 코넬리도 내고 제프리 디버도 내고 빈스 플린도 내고 존 르 카레도 내고 심지어 제임스 엘로이도 내는 등 하여튼 근성 있는 출판사인 건 맞는데, 그리고 최근에는 『마션』으로 돈도 좀 벌었을 테지만, 그래도 이 시리즈의 생명력은 역시 불안하다. 오랫동안 파커를 기다려온 사람들, 리처스 스타크/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다른 책을 읽고 싶은 사람들, 흥미가 생겨 나중에 인연이 닿으면 한 번쯤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당장 있을 때 좀 잘해주는 편이 좋지 않을까.
참, "헌터"가 아니라 "사냥꾼"으로 나와서 정말 기쁘다. '세련미'를 추구한답시고 빤히 번역할 수 있는 제목을 굳이 영어 독음 표기하는 저열한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