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잘 나가 중학년을 위한 한뼘도서관 28
노혜영 지음, 김선배 그림, 강금주 도움글 / 주니어김영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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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잘나가>

 

반 평균의 체중을 올리는 아이로 낙인찍혀 따돌림 당하는 여자아이 한나

얼굴에 점이 있고, 부모님이 이혼했다고 기를 못펴는 아이 남우.

 

대체로 외모에 콤플렉스를 가진 아이들이 따돌림을 당하는 교실의 풍경이 실감나게 그려지는 이야기이다.

뚱뚱하다고, 키가 작고 얼굴에 큰 점이 있다고 이들이 마냥 찌그러져 있을까 보냐!

<내가 제일 잘나가>는 제목에서 외치듯이 한나와 남우가 ‘멋진 나’로 거듭나는 발랄한 도전기이다.

 

한때, ‘등골 브레이커’가 패러디되어 장안의 화제로 흩뿌려졌던 것을 기억하는가. 외국의 뉴스에도 알려져 국제적인 망신거리가 되었던 것을. 우리네 아이들의 교실에는 엄연히 옷차림으로 인한 계급이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한다. 주로 많은 것이 부족한, 특히 자존감이 부족한 아이들이 무리에 섞여 조금이라도 소외감을 덜어보려고 무리해서 부모를 졸라 옷에 투자를 한다. 그러면 무리들로부터 인정받는다고 여기며, 그 순환의 굴레는 불합리한 과소비를 불러일으키고 자칫 비행으로 연결될 수 있는 고리를 만들어낸다. 남우는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바로 그 단계에 접어들었고 한나 또한 아이들의 놀림에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면서 그로 인해 길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가는 사건을 겪게 된다.

일어나고야 말 일은 언제고 꼭 터지고 마는 것. 곪고 곪은 상처가 때가 되면 터지게 마련이듯이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들이 무너져 버리고 한숨만을 내쉬며 자포자기한다면 미래를 이끌어갈 새나라의 어린이들은 어디에서 위로를 받으란 말인가.

우리의 한나와 남우는 자신들의 빛나는 장점을 살려 그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엄청난 도약을 한다. 한나는 3분 스피치 대회에서 ‘외모’를 주제로 발표하고, 남우는 숨겨져 이TEjs 손기술을 발견해내곤 '발명왕‘의 칭호를 얻게 된다.

 

어쨌든,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나 내 자신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마음을 먹는 순간, 남우와 한나는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자존감은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내면을 환히 밝히면서 획득하는 것!

진정한 아름다움을 외모나 번쩍이는 옷에서 찾지 않고, 내면에서 찾을 때 자신감 혹은 자존감은 차오르는 것임을, 우리 아이에게 새겨 주어야 하겠다.

그렇다고 어려서부터 자존감을 키워주어야 한다며 무턱대고 “아이구, 잘한다”를 남발하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므로, 그 방법은 자제하도록 하고...

또 하나, 아직 초등 저학년, 유치원생인 우리 아이들이 직접 겪어야 할 교실 생활에 엄마가 끼어들어 감놔라 배놔라 하면 한나의 경우처럼 자칫 더욱 왕따를 만들 위험이 있으니 조심해야겠다.

치맛바람의 위력도 거센 아이들의 입담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중심이 곧은 아이여야 세찬 외부 폭풍에도 흔들리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굳세어라, 채원이, 규원이!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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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신간 에세이>

 

작가의 입담이라든지 필력을 느낄 수 있는 에세이를 구경하고 싶다.

글 잘 쓰는 사람의 글에 흠뻑 빠져 이 더운 한여름의 찌뿌드드함을 잊고 싶다.

그래서 되도록 여행 에세이는 이번 달의 선택에 넣지 않았다.

 

1. 성석제의 이야기 박물지, 유쾌한 발견, 성석제, 하늘연못

 

 

 

 

 

 

성석제만이 내는 특유의 경쾌한 위트가 살아 있는 산문집. 무엇을 읽든 그 이상을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2. 여름의 묘약-프로방스, 홀로 그리고 함께, 김화영, 문학동네

 

 

문학 평론가이자 불문학자인 김화영 교수. 단순한 여행의 기록이 아니라서 마음에 들었다. 이십 대를 유학으로 보낸 프로방스의 여름. 학자가 되어서 다시 찾은 그 곳에서 어떤 마음의 울림을 담아왔는지...느껴보고 싶다.

 

 

 

 

 

 

 

 

3. 야밤산책-매혹적인 밤, 홀로 책의 정원을 거닐다

리듬, 라이온 북스

 

 

독서 에세이라. 리뷰를 남기는 블로거의 입장에서 파워 블로거의 글솜씨가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해서 더욱....읽고 싶다. 한 작가의 한 가지 책 설명에만 그치지 않고 숨겨진 이야기나 다른 작품에까지 영역을 넓혀 쓴 글.

 

 

 

 

 

 

4. 일 센티 플러스-인생에 필요한 1cm를 찾아가는 크리에이티브한 여정

김은주 글, 양현정 그림. 허밍버드.

 

 

작가의 직업이 카피라이터란다. 그래서 제목도 특이했구나. 글과 그림이 함께 있어 쉽게 읽힐 책인 듯 싶다. 한 편의 짤막한 글과 한 컷의 그림으로 많은 것을 응축했다 하니, 그 솜씨에 구미가 한 번 당기고, 카피라이터의 상상력과 관찰력에 두 번 관심이 생긴다.

 

 

 

 

 

 

 

 

5.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어느 책방에 머물러 있던 청춘의 글씨들

윤성근 (엮은이) | 큐리어스

 

 

박원순 서울시장이 오늘의 청춘들에게 권하는 책. 헌책 갈피에 숨겨놓았던 당신 그리고 우리들의 기억을 만난다. 서울 응암동에 있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의 주인장이 한 권 한 권 모아온 헌책 속의 손글씨 메모들을 책으로 엮었다.

헌책방. 이름만으로도 아련한 마음이 되게 만들어 벌써 책의 세계로 인도하는 단어. 헌책방에서 책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니던 그 행복했던 추억을 되살리는 좋은 매개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읽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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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 2013-08-06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에세이 분야의 13기 신간평가단의 블로그를 다 둘러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네요.(파트장도 아니면서 사서 하는 고생입니다) 12기 신간평가단을 하면서 다른 블로거분들과 교류가 전혀 없었기에 아쉬웠거든요. 반갑습니다. ^^

남희돌이 2013-08-06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저도 반갑습니다.
 
클라이머즈 하이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박정임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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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머즈 하이>-우리는 어떤 줄을 당기게 될까

 

한여름의 작열하는 태양이 매미의 몸에 내리꽂히고, 그 뜨거운 열기에 감전이라도 된 양, 깜짝 놀란 매미는 온몸을 쥐어짜며 울어젖힌다.

“맴...찌짓, 맴...찌짓”

애벌레 상태로 5년을 땅 속에 묻혀 있다가 드디어 허물을 벗은 매미는 길어야 3주간, 짝을 짓고 알을 낳기 위해 감전되는 듯한 뜨거운 열기를 이겨내고 뱃속 깊이 몸통을 노래를 부르고 찰나의 생을 마감한다.

강렬한 여름 태양만큼 찬란하고 순수한 삶을 살다가는 매미.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 유키 가즈시마는 매미를 닮았다.

한낮의 추욱축 늘어진 뇌를 깨우는 강렬한 사건과 읽는 이를 휘몰아치는 빠른 전개에 매미의 한 살이가 농축되어 있는 듯.

몰입해서 책을 읽고 난 뒤에야, 내 귀를 파고드는 저 따가운 매미 소리.

아파트 베란다 방충망에 붙어 생을 다해 노래를 부르는 매미의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왱~찌짓, 왱~찌짓.”

 

유키 가즈마사는 군마 현 지방 신문 킨타칸토의 기자다. 경력은 오래 되었으나, 데스크로의 승진을 거부하고 사내 최고참 기자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중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 응어리진 기억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에 서툴렀던 유키는 신입 모치즈키 료타를 죽음의 길로 내몰았다는 죄책감에 사표를 쓰려고도 했으나, 징계 없음으로 그 사건은 일단락되었었다. 그럼에도 그는 현역 기자를 자처하며 승진을 마다하고 있는 중이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일을 하는 그에게 최근의 활력소는 털북숭이 안자이와의 산행뿐. 안자이와는 몇 번의 산행 연습 후 ‘악마의 산’으로 알려진 쓰이타테이와 암벽에 오르기로 약속을 했다. 하지만 쓰이타테이와로 출발하려는 날 밤, 지역에 있는 산인 오스타카에 524명의 사상자를 낳은 최악의 항공기 추락 사고인 여객기 JAL 123편의 추락 사고가 발생한다. 유키는 이 사건 보도의 총괄데스크로 지명되고 안자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끓는 가슴을 안고 보도 전쟁을 지휘하게 된다. 한편, 산으로 출발한 줄 알았던 안자이는 산에 올라보지도 못하고 엉뚱한 장소에서 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되어 버렸다.

 

무엇보다 현장이다. 아무리 명령이나 지시를 내린다고 해도 사건을 담당한 것은 되지 않는다. 기자직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현장에서 눈으로 본 것 외에는 자랑할 수 없다.-49

 

여객기 사고의 데스크로서, 지방신문의 기자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일에 임한 유키는 생각이막힐 때마다 안자이를 떠올리고, 오르지 못했던 산을 생각하며 현실의 일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간다.

유키 앞을 가로막은 두 개의 산. 그 때마다 안자이의 말, “내려가기 위해 오르는 거지.”를 떠올리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유키.

 

클라이머즈 하이-흥분으로 인해 공포감이 마비되어 버리는 것.

뜻밖의 장소에서, 그 클라이머즈 하이가 풀리는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마음속에 모여 있던 공포심이 한꺼번에 분출하기 때문이죠. 암벽을 오르고 있는 중간에 풀려버리면 더 이상 한 발자국도 오를 수 없게 됩니다.

 

여객기 사고를 담당하며 이렇다 할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던 유키에게 여객기 추락 사고의 원인을 밝혀낸 특종이 도달했다. 시각을 다투는 일이었으나-

 

후회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수긍한 채 사고의 원인인 ‘격벽’을 묻었다.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특종의 유혹을 억눌렀다. 그런데 후회하고 있다. -302

 

이 순간이 바로 유키가 클라이머즈 하이에서 풀려버린 순간이리라.

그 이후의 순간을 유키는 어떻게 극복할까.

 

이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본다.

특종에 대한 통제할 수 없는 욕망과 프로 저널리스트로서의 치열한 고뇌, 신문사라는 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비열한 암투.

점점 클라이맥스를 향해 전개되던 이야기가 탁 풀려버렸을 때, 그 긴장감이 사라진 상태의 “무”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17년 후, 식물인간이었던 안자이의 장례식을 마치고, 안자이의 아들과 함께 쓰이타테이와에 오르는 유키.

산을 오르며 유키는 진정한 과거와의 삶에 화해를 청한다.

훌륭한 아들을 남기고 간 안자이에 대한 감사도 함께...

 

매미처럼 짧고 강렬한 일생을 살다가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아무 일도 없이 미미한 존재로 숨만 쉬며 살다가 생을 마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떠한 삶을 살건, 각자가 골라가며 살아갈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 앞의 생을 마주대하는 자세를 평소에 갈고닦아야 한다.

불이 뜨겁다는 것을 꼭 만져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듯, 우리는 소설 속의 여러 삶을 통해서 간접경험을 할 수 있다.

클라이머즈 하이에서 안전하게 풀려나는 법

유키의 경우가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나는 이 책에서 이런 방법도 있다 하는 것을 배우고 간다.

내려가기 위해 오르는 인생. 내려가지 않고 보내는 인생.

어떤 줄을 당기게 될지는 모르는 일.

클라이머즈 하이를 읽는 동안은 그 두 가지 경우를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한다.

 

 

12년 기자 경력이 이 한 권의 책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무엇이 기자 정신인지, 기자의 자세란 어떠해야 하는지. 이 책에서는 유키와 (책의 서두에 언급되었던 사고사 당한 후배 기자의 친척인) 아야코를 통해서 진정한 기자에 대한 인물상이 정립되는 듯하다.

‘인간의 생명에는 커다란 생명과 작은 생명이 있는 것이지요.’

 

치밀한 구성력과 긴장감 있는 서술은 단 몇 시간만에 책을 독파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10년간의 공백을 깨고 발표한 소설 <64>도 훌륭했지만, 그 이전에 이 작품 <클라이머즈 하이>도 당당히 요코야마 히데오의 출세작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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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 웃긴 사진관 - 아잔 브람 인생 축복 에세이
아잔 브람 지음, 각산 엮음 / 김영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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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도 웃기다.

우리의 삶은 한 쪽 눈만 감고 보면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두 눈을 다 뜨고 살다 보니 슬프고 웃긴 일로 가득한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절묘한 제목에 찬탄을 금치 못하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읽어 나간다.

 

주말, 아이들과 딱지치기에 열올리는 남편의 모습을 보라지.

큰 딱지, 중간 딱지, 작은 딱지.

크기만큼 각각의 힘을 가지고 있는 딱지들을 한 군데 모아놓고 아이들의 호승심을 엮어내기에 안간힘이다.

자, 이 큰 딱지 가지고 싶은 사람은 아빠한테 작은 딱지 5개 주기.

아이들은 기를 쓰고 서로 차지하려고 앞다투어 교환할 딱지를 챙기고 아빠 앞으로 들이민다.

아이들도, 아빠도 즐거운 한 때이지만,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그 흔한 진리를 놀이라는 신성한 공간에 개입시켜 경쟁을 부추기는 아이 아빠도, 참~ 보는 나로 하여금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누나, 남동생 사이에서도 딱지치기를 하는 데 있어서는 남매의 정이란 오간데 없이 사라지고 없다.

아빠도 예외는 아니어서 있는 힘껏 팔을 내리쳐 그 한 장 넘겨서 따 보겠다고 “으랏차차” 새삼 커다란 기합을 넣는다.

한바탕 웃음거리로 훈훈한 모습을 연출하며 끝나긴 했지만, 아빠의 엄격한 눈초리가 없었더라면 곧바로 어린 남매들은 이전투구. 서로 서로 자기 룰을 들이대며 딱지 한 장 더 가지려고 난리일 터였다.

아이들에게 놀이를 하는 도중, 도를 설법할 것인가.

아이들과 신나게 놀고 있는 아빠를 도중에 나무랄 것인가.

^^

그저 웃으며 바라보는 수밖에.

 

일부러 져주는 미덕을 무조건으로 쳐 주기엔 세상이 너무나 각박하기에...

아이들에게 근성을 일찌감치 가르쳐주는 아빠를 나무랄 수도 없는 세태이기에...

그럼에도 아이들은 아직 우리 어른들보다는 너무도 깨끗한 존재이다.

세상을 많이도 살아, 이제 세상의 때가 덕지덕지 끼어 있는 우리들은, 티 없이 맑고 밝은 아이들에 견주어 너무도 많이 모자라다.

그럴 때, 이 책 <슬프고 웃긴 사진관>은 하나씩 내려놓기의 방법을 슬그머니 제안한다.

 

산 속의 호수는 완전히 고요할 때만, 하늘에 떠 있는 달과 별 뿐 아니라 호수를 둘러싼 숲의 아름다움고 진실까지도 정확하게 비출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산 속의 호수와 같습니다. 욕망의 바람이 멈추고 통제를 완전히 놓아버릴 때, 우리의 마음은 온전히 고요한 상태가 됩니다.-서문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하다 태국의 고승 아잔 차를 찾아가 전통적인 명상을 배운 아잔 브람. 호주의 퍼스 시에 브람 명상 센터를 세우고 거기서 법문을 펼쳤다. 아잔 브람 특유의 유머와 통찰력이 빛나는 법문을 글로 옮긴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인생은 그 자체로 축복.

그것을 깨닫는데, 우리는 왜 그리 멀고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지.

아잔 브람이 펼쳐 보이는 서른 여덟 장의 슬프고 웃긴 사진들을 들여다 보면, “별 거 아니었네.”하는 말이 툭 튀어나올 것이다.

그 별 것 아닌 것을 깨닫기가 그리 힘겨워서, 우리는 명상을 하는 아잔 브람에 인생 사진을 그림과 함께 읽고 또 읽다가 무릎을 탁 치는 게 아닌가

 

아이들이 꼴찌 성적표를 받아왔을 때

“불교에서 보살은 매우 존경받는 위치에 있단다. 네가 바로 오늘 보살인 거다. 너는 일부러 반에서 꼴찌를 하려고 결심을 한 거였지. 넌 그렇게 자비로운 아이야 네 친구들은 모두 이기적이어서 자기 자신만 생각하지만, 넌 일부러 너 자신을 희생하겠다고 결정한 것이었지. 그렇지만 보살하는 건 이번 딱 한 번만이다. 다음번에는 그만 하는 거다.”

-65

 

우와~이런 말을 술술 내뱉는 부모는 진정 명상가의 대가 중의 대가이다.

나는 죽었다 깨나도 이런 말 스스로는 못한다.

이 책을 읽고 난 뒤라면 정신적 감화를 받아, 한 번쯤 해볼 수도 있겠다, 싶지만...

절레 절레. 쉽지 않은 일이다.

 

저는 인도의 델리에서는 횡단보도 앞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질 때마다 어떤 글씨가 나타난다고 들었습니다. 그 글자는 바로, ‘relax’라고 합니다. 멈춤 신호가 아니라 ‘릴렉스’ 신호입니다. 저는 이것이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적절한 때에 쉬고 휴식할 수 있도록 여러분도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으십시오 .-89

 

 

가벼운 옷차림으로 졸음 명상에 빠져든다. 더운 여름날.

이도 저도 생각하기 싫을 때, 땡땡땡 울리는 시계소리의 압박 없이 그냥 잠에 빠져들고 싶다.

그게 진정한 내려놓기...명상의 시작일 터.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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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마치 - 진옥섭의 사무치다
진옥섭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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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마치>-소리가 들린다. 도도도도(圖到道導)

 

진옥섭의 글을 눈으로 좇으니 진양조에서 시작한 것이 중모리를 거쳐 점점 빨라지는 심박수와 함께 자진모리, 휘모리로 몰아친다. 소리가 귀로도 들리는 듯 하여 책을 읽던 내내 눈을 들어 가끔 허공을 바라보곤 했다. 내 귀에 그네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도도도도(圖到道導).

종종걸음 치며 밀려온다. 점점 거세진다. 파도가 된다. 나는 거기에 휩쓸려 내 몸을 잊었다.

 

실현과 미실현.

 

이 책을 읽기 전의 나는 노름마치의 세계, 우리 전통문화의 세계에 대해 아직 잘 모르고 있었다. 뭐랄까, 실현된 것과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것이 극명하게 대립되는 상태랄까.

卽과 旣라는 한자의 모양을 보라.

두 글자 모두 앞부분은 식기(食)를 나타내고 뒷부분은 사람을 형상화한 것이다.卽 은 밥상 앞에 사람이 앉아서 식사를 “막”하려고 하는 모습이다.

나는 <노름마치>를 앞에 두고서 이제 막 먹으려고 하는 참이다.

旣자는 머리를 뒤로 홱 돌리고 있는 모습을 강조하여 그려 놓고서는 식사가 이미 다 끝났다는 의미를 표현한 것이다.

<노름마치>를 다 읽고 나면 배부르다는 표시로 이 책을 밀어놓고 머리를 뒤로 홱 돌리고 말 것인가.

아니면 시시때때로 꺼내어 다시 손에 꺼내들고 卽의 자세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들여다 볼 것인가.

그것은 읽어봐야지 안다. 도도도도(圖到道導)의 흐름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따라가세~ 따라가세~ 흥이 절로 나는구나. 이래서 허튼 춤이 절로 나오겠구나. 그의 글에는 여름 더위에 주저앉은 나를 벌떡 일으켜 세우는 흥이 있었다. 맑은 날 아침 산 위에 걸린 하얀 구름을 보고, 김창완이 “산 할아버지 구름모자 썼네, 나비같이 훨훨 날아서, 살금살금 다가가서 구름모자 벗겨오지~”했던 노래가 절로 떠오르듯이 슬금슬금 새어나오는 흥이다.

노름마치. 소리꾼으로 이미 유명해진 장사익이 직접 쓴 <노름마치>라는 표지 글씨조차도 고운 손을 들어 흥을 돋우는 듯, 우쭐 우쭐 춤을 추고 있다.

 

 

그래, 제목에 이끌리어 이 두툼한 책을 슬쩍 넘겨보았다.

거기, 살아 숨 쉬는 듯 생동감이 넘쳐나는 “노름마치”들의 사진이 있었다.

무엇을 봤기에 진옥섭은 그 수선을 떨었나? 그에 답하는 듯이 사진들은 예인 열여덟 명의 삶의 질곡을 가감 없이 그려내고 있었다.

 

안채봉의 소고춤-다급한 휘모리장단이 들리는 모양이다. 수건을 가슴 위로 올려 <병신춤>을 추려 한다. 저러다 털썩 주저앉으면 억!하고 놀랐으니, 춤으로 폭소를 만들던 유일한 꾼이었다. -48

 

김운태의 자반뒤집기-돌고 도는 순회 속에서 돌고 도는 회전이 생활이었다. 하루 세 끼를 위해 하루 천 바퀴를 돌았다 착지보다 체공이 더 안전한 순간이 될 때, 진정한 춤이 이뤄졌다. 보라 저 허공중천! 그만이 운행하는 항로다.-242

 

명무 김금화-싸늘한 철길, 위태로운 너비 위에서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의 노래를 부르며 살았다. 세상 사람을 위해서 작두 위에 서야 하는 만신이, 신과 인간을 잇는 예리한 길도 예술의 길임을 인지시켰다. -328

 

 

사진을 보지 않아도 그림이 절로 떠오르지 않는가?

 

 

 

 

 

진작 좀 오지-다 늦은 이제 와서 소리하고 춤추라 한다. 머리 손질하는 것도 버겁다. 비녀를 찔러 주는 외손녀 뒤에서 젊은 그가 묻는다. 여태 무얼 하고 이제야 찾느냐고.-86

 

 

일제 강점기부터 6·25동란이며, 우리 현대사의 갖은 고락을 겪으며 곱고 힘차던 시절 보낸 뒤 다 늙어 꼬부라진 이제야 찾아온다고 나무라는 말이다.

이미 저승길로 들어선 이들이 수두룩하고 마지막 힘을 내어서야 재주를 선보일 수 있는 그네들에게는 하루하루가 그렇게도 소중한 날들이리라. 그러나 이제 여생을 얼마 남기지 않은 혹은 이미 유명을 달리한 그분들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모두 다다른 분들이 아닌가. 비록 세상의 눈을 피해 필부필부로 살아갔던 세월이 가로막혀 있었어도 그들이 토해내는 예기로서, 남무로서, 소리꾼으로서, 유랑광대로서, 만신으로서, 풍류꾼으로서의 삶은 지워지지 않았고 지울 수도 없었다. 그들의 육성은 더 이상 디딜 곳 없는 생의 끄트머리에서 마지막을 고하며 짚어내는 길고 긴 울음일 것이다. 각기 다른 개성의 18 예인이 이른 도는 어떠한 경지인가.

 

 

 

평생을 닦아 반들반들 윤을 내어 가며 걸어온 길이 그대로 道가 되었다.

앞선 이들의 뒤를 좇아 기초부터 배우고 익히든, 혹은 ‘개비’라는 말의 뜻처럼 집안에서 대대로 이어져온 것을 핏줄로 물려받았든, 자기 한 몸에 그것을 축적하여 제대로의 흥을 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각고의 노력이 있었을까.

삼십대도, 사십대도 아닌, 팔십, 구십 줄의 어르신이 되어 힘은 모자랄지언정, 그 몸속에 새겨진 道는 꼬장꼬장하게 살아 있었다.

진옥섭이 힘겹게 무대를 마련하여 모신 예인들은 버선 끝 하나도 벼리고 벼려서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그 무대 위에서 혼을 불살랐다.

그리하여 무대에서는 쏟아져 내리는 것 같은 박수가 일었을 터.

각각의 명인들이 남긴 짤막한 말들은 모여 이내 곧 法이 되었다.

투박하면서도 까칠하기까지 한 그 말들에는 명인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루어진 道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장단이 몰리고 관객이 고조되자 여든 일곱 노구로 펄쩍펄쩍 뛰었다. “늙은 나이에 미안합니다. 그러나 정광수가 임의로 꾸민 게 아니라, 예부터 있어왔던 법도에 따라 소리한 것입니다. 에, 더불어, 저 또한 멋이 있는지라, 좀 보탬을 넣었기에 좌중의 신사숙녀 여러분 널리 양지 있으시길 바라마지 않습니다.”-190

 

 

 

 

송두리째 넋을 싣고 제대로 된 ‘한 판’을 위해 전통예술에 온 생애를 다 바쳐 실현해 온 명인들.

진옥섭이 그분들의 삶을 찾고 찾다 먼길 끝의 노인정과 다방, 시장의 국밥집에서 마주앉아 물은 이력서(-27)는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가.

 아직도 건재한 판의 사람들에 대하여 ‘초야에 묻힌’이란 수사로 묻어두고 있는 세태를 어디로 이끌어야 할 것이냐? <노름마치>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글이다.

전통이란, 과거에서 이어온 것 중에서 현재에 되살리고 본받아야 할 것들을 이르는 말이다.현재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우리나라 무형유산에 판소리, 강릉단오제, 남사당놀이, 제주칠머리당영등굿 등이 있다.

이제 우리는 이들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보존해나가야 할 의무가 생긴 셈이며, 빙산의 일각이나마 우리의 소중한 것을 지켜나가는 데 명분이 생긴 셈이 될 것이다.

우리가 <노름마치>에서 만나 본 예인들은 무형문화재의 이름이 아니어도 아무런 대가 없이 전통을 지키기 위해 일생을 바쳐 온 분들이다. 어떤 이는 유명인으로 어떤 이는 무림 고수처럼 숨어서 이름을 떨치기도 했지만 이런 저런 구분을 할 필요는 없다. 이 책에서 만나본 이들의 숨결을 느껴 본 이라면 오랫동안 묵혀둔 묵은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곰삭은 맛, 자꾸 입맛 다시며 찾게 되는 맛이 대대로 이어지기를 바랄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이니 무형문화재니 하는 타이틀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세인들의 관심이 일단 있어야 숨어 있는 명인들도 자존심을 되찾게 되지 않을까.

전통예술을 기획, 연출하는 진옥섭 같은 이가 사무치게 온 국토를 찾아 헤매며 차려놓은 맛있는 밥상에 숟가락이라도 올려 놓는 성의를 보여보자.

도도도도.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진동하는 뜨거운 열기의 세찬 파도를 온몸으로 느껴보자.

노니소, 노닐어요, 놀아유가 전하는 소요유逍遙遊의 경지를 눈앞에서 체험하고서

玉堂이로구나! 소리 절로 내지르고,

“앵두를 똑똑 따는구나!” 같은 구음을 툭툭 내던지는 수준 높은 관객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몸서리 쳐지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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