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사랑은 지금 행복한가요? - 기시미 이치로의 사랑과 망설임의 철학
기시미 이치로 지음, 오근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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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책이  기다려지는 작가가 있다기시미 이치로도   하나다.

 그의 '미움받을 용기'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에 소심하고 서투른 나를 더이상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게 했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는 가운데 보다 용기를 갖고 타인 앞으로 나아가도록 해 주었다. 그런 그 내게 무엇보다 시선을 바꾸는 사람으로 각인되었다. 살면서 내가 느낀 피로와 가지게 된 염려와 공포가 사실은 내가 엉뚱한 곳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라는 걸 깨닫게 하여 정말로 바라보아야 할 곳을 주시하도록 해주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의 신작을 늘 기대하게 된다. 이번엔 또 어떤 것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줄까 하고.


  그러던 차에이번에 나온 그의 책인, ‘당신의 사랑은 지금 행복한가요?’ 만났다.

 이번엔 내가 가장 많이 고민하기도 했던 사랑에 대한 것이라 더욱 반가웠는데 책에서 보여준 그의 모습 또한 한결 같아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많이 해서 이젠 너무나  안다고 여기고만 있었던 사랑에 대해 내가 사실은 많은 것을 오해하고 있었으며 잘못된 안경을 쓰고 바라보고 있었다는  정말 깊이 느끼도록 했던 것이다.

 사랑이란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내게 사랑은 정말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 적지 않은  사랑의 역사에서 사랑이 쉬웠던 적은   번도 없었다때로는 내가 준만큼 주지 않는 상대를 보며 그걸 느꼈고 때로는 도저히 이해할  없는 이유로 결별을 선언하는 상대를 보면서도 그걸 느꼈아무리 많은 노력을 하고 세심하게 살펴도 싸움은 있었고 불안이 사라지지 않았다행복하기 위해서 사랑했는데 정작 가장 커다란 불행을 사랑이 가져다  적도 있었다


 그러므로 사랑은  질문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사랑 자체에 대해 생각해  적은 없었다. 사랑이라는 개념은 내게 당연한 것이었고 오직 사랑이 가져다주지 못하는 행복에 대해서만 의혹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솔직히 말해  책의 제목인 ‘당신의 사랑은 지금 행복한가요?’ 질문은  또한 뇌리에 자주 떠올린 것이었다그러나 무수한 질문만 쌓일 뇌리를 눈부신 빛으로 채우고 마음을 시원하게 만드는 대답은 찾지 못했다더러 사랑에 관한 책도 찾아봤지만 어떤   문제와 전혀 무관한 뜬구름만 잡고 있는  같았고  어떤 건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을  있는 잔재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시미 이치로의 책은 과연 달랐다.

  어떤 것이 진정한 사랑인지 가늠하게 했고 어떤 사랑을 해야 내가 그토록 바랐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지도 깨닫게 했다. 다 읽고 난 뒤의 내 마음은 그야말로 오랜 가뭄 끝에 쏟아지는 장대비를 만난 기분이었다. 


 그것은 어떻게 이뤄졌는가? 현학적이거나 복잡한 설명 덕분이 아니다. 나는 그리 많이 아는 것도 아니고 현명하지도 않으므로 만일 그랬다면 내 마음은 더 복잡하기만 했을 것이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쉬운 문장과 차분한 어조로 나 또한 사랑을 하면서 많이 했던 친숙한 질문들을 통해 그리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저 손만 잡아 끄는 인도는 아니었다. 그건 주로 사랑의 풍경에서 어디를 봐야할지 가리키고 짚어주는 식으로 진행되었는데 그 대부분은 사랑을 하면서도, 잃어버린 사랑의 아픔과 미련을 곱씹으면서도 미처 응시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그는 먼저 사랑이 힘들었던 내게 힘든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나는 사랑이 쉽지 않은 것이 내가 너무 부족한데다 사랑에 서툴러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는 내가 특별히 못나서도 아니고 한 개인의 문제도 아니라고 말한다. 연애든, 결혼이든, 쉽지 않은 것은 모두 마찬가지인데 그건 우리가 거기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걸 아들러의 말을 빌려 이렇게 전한다.


 우리는 혼자서 달성할 수 있는 과제와 여럿이 함께 달성해야 하는 과제에 대해서는 교육을 받아왔지만, 둘이서 수행하는 과제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배워오지 않았습니다.(p. 26)


 여기서 '둘이서 수행한다는 말'과 '배운다'는 말이 중요하다. 이 책이 사랑에 대해 보여줄 가장 중요한 것들이 이 두 가지에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사랑할 때 저지르기 쉬운 잘못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랑할 때, 남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은 자신만 생각할 때가 많다. 


 이 말을 시작으로 저자는 그간 우리가 사랑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많은 고정관념들을 바꾸도록 한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이 넌지시 암시하듯이, 사랑은 어디까지나 내가 잘하고 못하고에 달린 지극히 혼자만의 문제라 흔히 생각하지만 실은 둘이 대등하게 참여하여 함께 만들어 가는 작업이며 많은 이들이 결혼을 연애의 골인 지점이라 여기듯이 사랑을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행위이며 어떤 지점에 이르면 완결되는 존재라 치부하고 있지만 그와 다르게 진실로 사랑엔 종착지 같은 것은 없으며 과정 속에서 늘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비로소 사랑이라 말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사랑은 어디까지나 자연스러운 감정의 영역으로 특별히 배울 필요도 없고 의지를 들여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웬걸, 사랑 역시도 그것을 안정적으로 지속시키기 위해선 늘 의지를 들여야 하며 보다 나은 사랑을 원한다면 계속해서 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미처 보지 못하고 헤아리지 못했던 사랑의 의미와 면모들을 바로 내가 했었던 고민과 주위에서 쉽게 보게 되는 일들을 경유해 친절하게 짚어주니 사랑에 대해 그동안 내가 참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면에서 1부의 연애와 2부의 결혼에 뒤이어 본격적으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는 3부가 참 많이 와닿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부분 역시 그간 사랑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오해와 착각을 많이 불식시켰는데, 무엇보다 사랑을 생각할 때 '사랑받는다'는 수동적인 측면말고 '사랑한다'는 능동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게 그랬다. 우리는 워낙에 자기 중심적이라 타인을 위한다는 사랑을 하면서도 내가 사랑하는 것보다는 내가 사랑받는 것에 더 많이 천착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사랑함의 모자람보다 내 사랑받음의 모자람에 서운함이 들 때가 많은 것이다. 기시미 이치로는 무엇보다 이러한 자기 중심적인 사랑에서 이탈할 것을 권한다.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직시하고 이런저런 핑계나 구실을 대지말며 사랑이 가진 이상(理想)적인 정의대로 행하라고. 


 중요한 것은 사랑받는 것이 아니고 사랑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대해서는 앞으로 차분히 고찰해가겠습니다.(...) 또한 설사 이상적인 사랑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사랑은 이래야 한다는 그 이상을 알고 품고 있으면, 현실의 사랑에 대한 태도 역시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도저히 그런 식으로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이상이야말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기준입니다.(p. 125)


 그리하여 그는 세 가지를 강조한다. 하나는 정신과 의사인 가미야 미에코의 말을 빌려와 사랑의 대상을 한정하지 않는 '비인칭적인 사랑'이고, 


 비인칭적인 사랑이 개인적인 사랑의 기초가 되어야만 합니다. 개인적인 사랑이란 비인칭적인 사랑을 알고난 뒤에 비로소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내가 유일무이한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싫지만 당신은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당신은 유일무이한 당신은 아닙니다. 만약 마음이 바뀌면 금세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사람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p. 128)


 다른 하나는 마르틴 부버의 개념을 빌려와 사랑하는 상대를 소유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바라볼 것을 말하는 '해후(邂逅)'이며, 마지막으로 그 관계 속에서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나온, 아리스토텔레스의 '에네르게이아(energeia)' 개념을 빌려서 말하는 '지금-여기'에 대한 중시이다.


 살아있다는 것을 에네르게이아로 파악하면 인생의 어디쯤에 있는지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인생은 항상 완성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경험도 에네르게이아입니다. 다시 말해 처음과 끝이라는 식의 뭔가가 있는 게 아니고 사랑의 어떤 단계나 완전한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무시간성 안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경험에 있어서는 그것이 언제까지 계속되느냐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p. 147)


 관계가 오래 지속되는 것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입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여러 가지 일이나 앞으로 생길 일을 생각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지금 여기'를 둘이서 열심히 살 수 있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어져 갈 것입니다.(p. 229)


 이러한 사랑의 보편성과 과정의 중시는 지금까지 내가 사랑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불안의 진실된 모습을 보게 하였다. 생각해 보니 내가 사랑을 하면서 그토록 불안하고 근심했던 것은 대부분 지금 내가 사랑하고 있는 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과 사랑의 완성된 형태를 가정하고 어서 빨리 거기에 이르고자 하는 조급함에서 기인하고 있었다. 그만큼 난 상대를 '가지냐 못 가지냐?'라는 식의 소유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었고 함께 한 대부분의 순간들을 도구적인 의미로만 간주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사랑하는 나 자신보다 사랑받는 나 자신을 더 중히 여긴 결과였으며 사랑이 실패로 끝났을 때 나는 언제나 날 버린 상대를 탓했지만 정작 책임을 묻고 제대로 따져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라는 것 또한 절실히 깨달았다. 불안과 근심이 상대에게서 온다고 생각했지만 진실은 모두 나 스스로 일으킨 먼지구름이었던 것이다.


 알고보니 난 용기가 없었다.

 기시미 이치로의 '용기'란 다름아닌 관계 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용기(p. 33)다. 나만 바라보고 나만 위하는, 자기 중심적인 관계가 아니라 나와 남을 모두 대등한 인격으로 존중하며 함께 만들어 나가는 매 순간의 경험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그런 관계 속으로 뛰어드는 용기다. 이건 다시 말해 타인을 위해 나를 내려놓는 용기이며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용기이다. 저자에 따르면 아들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랑을 확고한 것으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파트너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안락하게 만드는 것임을 배워야 한다.( p. 173)


 맞다. 나는 사랑을 할 때 파트너보다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안락하게 만드는 것을 더 많이 생각했다. 상대가 그렇게 되어야 사랑이 안정되는 것인데 내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더 많이 생각했으니 사랑이 늘 불안과 근심의 존재가 된 것도 당연했다. 이런 식으로 기시미 이치로는 여러 번 사랑을 하면서도 한 번도 보지 않았고 묻지 않았던 사랑의 의미와 진정한 사랑의 태도를 응시하게 하면서 내 모습 또한 직시하게 했다.


 이 책 초반에서 그가 말했던 그대로 내 '라이프스타일'을 말이다.


 저자에 따르면 아들러는 사랑을 '라이프스타일'의 관점에서 파악해야 한다(p. 49)고 말했단다. 상대가 바뀌어도 똑같은 실패를 거듭하는 것은 연애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이제 이 말은 내게 코페르니쿠스적 전회(轉回)가 되었다. 사랑의 실패에 대한 내 반응은 언제나 분노와 원망일 뿐, 나를 법정에 새워놓고 찬찬히 살피는 자성(自省)의 단계로는 단 한 번도 나아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그 지축(地軸)을 옮겨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자기 중심에서 타자 중심으로. 기시미 이치로의 말마따나 나를 온전히 내던지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이렇게 하다 실패하면 나만 진짜 바보되는 것 아냐?' 하면서 계산하지도 말고


 라이프스타일은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니고 '바꾸고 싶지 않다'는 것이 본심입니다.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으로 대처하면 다음 한 발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물론 그건 미지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일입니다. 이를 두려워하여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고 싶지 않다, 바꾸고 싶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라이프스타일이 당신의 연애를 불행하게 한다면 라이프스타일을 바꿀 용기를 내야만 합니다. 라이프스타일을 바꾸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p. 52)


 사랑과 관련하여 내 라이프스타일을 돌이켜보건대, 난 저자의 표현 그대로 '응석받이'였다. 아마도 첫째로 태어나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면서 원하는 걸 쉽게 얻었던 내 '최초의 기억(p. 53)'이 날 그렇게 형성했을 것이다. 


 사랑엔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사랑엔 이해타산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될지 여부로 사랑을 선택하는 일은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 사람은 내게 있어서 유용한 사람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응석받이로 자란 사람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p.117)


 이런 '응석받이'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기시미 이치로는 거기에 대한 설명 역시 빠뜨리지 않는다. 3부까지가 사랑과 그 방법에 관한 총론적인 부분이라면 4부인 '행복해지기 위해 알아야 할 사랑의 기술'은 각론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불행한 러브스토리를 피할 수 있는, 그런 것을 초래하는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이 여기에 나와 있는 것이다. 먼저 이 부분을 보고 제목만 읽는다면 사랑에 대해 말하는 책에서 흔히 들었던 말로 여기기 싶겠지만 나처럼 3부까지 전개된 기시미 이치로의 인도로 사랑에 대해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된 이라면 여기에 있는 그 어느 말도 쉽사리 흘려 듣지 못할 것이라 믿는다. 예를 들어 상대에 대한 관심만 봐도 그렇다. 자주 우리는 내가 관심 받는 것만큼 상대에게 관심을 주면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기시미 이치로는 사랑은 절대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라고 말한다. 내가 설령 원하는만큼 관심 받지 못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상대방에게 온전히 관심을 기울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아들러가 말하는 '공동체 감각(p. 186)'이며 무엇보다 바로 그런 관심이 응석받이의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킬 것이라면서 말이다.


 이해 역시 그러하다. 사랑을 할 때 우리는 이해하기 보다는 더 많이 이해받길 원한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구구절절 변명부터 나오며 남탓부터 먼저 하게 되는 건 그 때문이다. 모두 나는 상대를 잘 이해하고 있는데 정작 상대는 나만큼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고 여기는 까닭이다. 하지만 저자는 상대를 이해한다는 생각 자체가 착각이라고 말한다. 상대를 제대로 알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일단 잘 알 수 없다는 걸 전제하고 더 잘 알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라는 의미로 말이다. 이처럼 지속적으로 타자를 내 쪽으로 끌어들이지 말고 먼저 타자 곁으로 가서 있어주기를 권한다. 힘겨루기를 멈추고 이해보다는 찬성부터 해주라는 등, 그 방법을 세세하게 알려주면서...


 물론 앞서도 언급했듯, 이 말들은 그리 새롭지 않다. 하지만 같은 말이라 하더라도 의미를 제대로 새기고 나면 전혀 다르게 들린다. 말이 마음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할 정도로 깃털처럼 가벼워진 것은 그 의미를 헤아리지 않고 상투어처럼 남발한 탓이기도 하다. 그동안 우리가 허다하게 듣고 보았던 사랑의 조언 또한 그렇지 않을까?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제대로 된 가르침 없이 암기하듯 무작정 들었고 또한 그 중심이 상대가 아니라 오롯이 내게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말, 나아가 방법이 지니는 의미의 비중을 소홀이 했던 것이다. 달리 보면 같은 말도 얼마든지 다르게 보인다. 4부에 나와 있는 말들이 정녕 그러하다. 제대로 되새기고 조금씩이나마 항상 실천하다보면 그 모든 것이 진정한 사랑에 걸맞는 라이프스타일로 변화시키는 초석이 되어 줄 것이다.


 이만하면 왜 내가 이 책에서 진정 해갈되는 기분을 느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까?

 여하튼, 오랜 시간에 걸쳐 이 책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사랑에 대해 참 많이 생각해 본 것 같다. 영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의 주인공 존 쿠삭처럼 과거의 사랑을 계속 떠올리면서 가장 근원적인 차원에서 그 사랑이 어쩌다 실패에 이르게 되었는지 돌이켜보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 가장 근원적인 차원이라 말하는 것은,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바라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고 그 시야 속에서 단 한 번도 소환하지 않았던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심판대에 올려 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내가 표현한만큼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음을. 내 사랑은 그저 나만 위하고 더 많이 가지려 애쓰는 제국에 지나지 않았음을. 그러므로 내 사랑 역시 타자를 식민지로 삼은 제국이 예외없이 멸망의 길을 걸었던 것처럼 실패할 수밖에 없었음을.


 그러나 이런 진실을 확인했지만 예전처럼 앞으로의 사랑이 더이상 두렵지는 않다. 오히려 더 기대되고 가급적 얼른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당연히 제대로 된 사랑의 의미와 방식을 소상하게 알려준 기시미 이치로 덕분이다. 얻은 게 많아서 아무래도 단 한 번의 독서로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줄기차게 이 책을 벗하게 될 듯하다. '당신의 사랑은 지금 행복한가요?'란 질문에 대해 당당하게 '행복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내 사랑을 위한 든든한 지원군 삼아서. 

 나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서 부디 세상에 행복한 사랑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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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의심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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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사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도진기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 '합리적 의심'이 바로 그것이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고진 변호사와 진구 시리즈는 아니다. 스탠드 얼론으로 이번엔 형사 사건 1심을 주관하는 부장판사가 주인공이다. 이름은 현민우. 별로 행복하지 못했던 결혼 생활을 선사했던 아내는 몇 년전 병사하고 지금은 아들 하나와 외로이 살고 있다. 이야기는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직장에서의 아침을 보내던 현민우가 책상 위 신문에서 한 뺑소니 사건을 읽으면서 시작된다. 그는 그 뺑소니 사건에서 희생된 여자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얼마 전 맡은 형사 재판에서 열 살 어린 남자 친구를 죽였다는 죄목으로 법정에 섰던 피고인이었으니까. '젤리 살인사건'이란 이름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 사건은 판결이 쉽지 않았다. 피해자는 먹은 젤리로 목이 막혀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숨졌는데, 시신이 이미 화장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처음엔 단순 사고였던 이 사건은 나중에 살인으로 의심 받게 되었는데, 그건 그와 단 둘이 모텔에 들어갔고 그 모텔에서 남자 친구가 젤리에 목이 막혀 의식을 잃었을 때 현장에 있던 유일한 사람이었던 그녀가 남자 친구 앞으로 거액의 생명 보험을 이미 들여놓았고 보험료도 그녀가 납부했으며 생명 보험금 수익자 또한 가족이 아니라 그녀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남자 친구가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른 남자들을 사귀고 그들과 함께 보험금을 흥청망청 써버렸던 것이다. 정황상, 보험금을 노린 살인 사건이란 심증을 굳힌 검찰은 그녀를 살인죄로 법정에 세웠던 것이다. '젤리가 목에 걸려 죽은 게 아니라 그녀가 남자 친구의 숨을 틀어막아 죽였다(p.22~ 23)'고.



 재판은 쉽지 않았다. 확실한 물리학적 증거인 시신이 이미 화장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대부분 목격자들의 기억과 정황으로 사건을 판단해야 했다. 현민우는 재판을 하는 동안 피고인 김유선이 살해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판결을 선고하려면 좌우에 있는 배석판사도 여기에 동의해야 한다. 적어도 둘이 합의해야 판결을 선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젊을 때의 자신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하는 민지욱 판사가 무죄 의견을 내놓는다. 이제 막 판사가 되었으면서도 모두가 다 어려워하는 법원장이 자기가 주관하는 법정에 들어왔을 때, 재판에 방해된다고 바로 내쫓아 버린 패기까지 있어서 내심 뿌듯하게 여기던 그였는데 자신과 완전히 상반되는 판결을 내놓은 것이다. 나머지 한 사람, 정남희 판사는 심증으로는 살인자라고 생각하지만 뚜렷한 물증이 없어놔서 합리적 의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니 이럴 땐 피고인에게 이익이 되도록 무죄를 선고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믿었던 정남희 판사마저 그런 의견을 내놓자 김유선을 살인자라고 확신하고 있는 현민우는 커다란 갈등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절차대로 따라 김유선을 무죄로 풀어 줄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판단을 밀고 갈 것인가?


 목이 꽉 막혔다. 판사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이다. 사람들이 합리로만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특정 상황에서 판사가 기대한 대로 행동하지 않았으면 진실이 아니라고 단정한다. 세상 일이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만 착착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판사들은 종종 잊는다. 실수를 하고 바보짓도 하는 게 인간이다. 모두가 기계처럼 움직이고 계산한다면 애당초 이 사건이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p. 125)


 아마도 소설 속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시감이 들었을 것이다. 유명했던 어떤 사건과 많이 닮았는데 하며...

 맞다. 이 사건이 실제 있었던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바로 2010년에 일어났던, 일명 '산낙지 사망 사건'이다. 피해자와 범인의 성별이 바뀌고 산낙지가 젤리로 바뀌었을 뿐, 소설 속 사건은 실제 사건과 상당히 유사하다. 1심과 2심의 판결 역시 다르지 않는데, 이건 스포일러가 되기에 밝히지 않겠다. 대법원에서도 판결이 내려졌다. 바로 여기, 2심과 3심의 결론을 가져온 것이 '합리적 의심'이었다. 여기에도 뭔가 덧붙이고 싶지만 역시 스포일러가 될까 봐 그만둔다. 보다 자세한 것은 책에서 직접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합리적 의심'은 모두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합리', 2부는 '의심'이란 제목을 가지고 있다. 1부의 이야기는 주인공 현민우가 1심 판결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고 2부의 이야기는 2심의 결과와 제도로써는 세우지 못했던 정의를 현민우 스스로 바로 잡기 위해 개인적으로 노력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여기서 도진기 작가가 미스터리 소설을 주로 쓴다는 점을 감안하여 일단 밝혀야 할 게 있다. 이 소설이 진실이 모호한 살인 사건을 전면적으로 다루긴 하지만 온전히 미스터리 소설은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이 소설에 두 발이 있다면 서로 다른 쪽에 걸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하나는 살인 사건이 주가 되는 미스터리요 다른 하나는 주로 현민우의 고백으로 채워지는 현재 사법부란 존재의 실상이다. 특히 후자에 관해선 판사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바라는 것만큼 따라주지 못하는 사법 현실에 대한 솔직한 고백과 그 간극을 보다 메울 수 있는 길에 대한 모색이 담겨 있는 것이다.


 1부와 2부의 제목은 아무래도 그 간극을 염두에 둬야 왜 하필 '합리'와 '의심'이라고 붙였는지 알 수 있을 듯하다. 소설 속 민지욱 판사가 오로지 합리를 기준으로 사건을 판단했다가 인간이 가진 이면을 전혀 보지 못한 것에서 잘 드러나듯이, 여기서 '합리'란 세상과 무관하게 흘러가는 사법부의 현실을 가리키고 있다. 법리를 논리적으로 연결하는 것에만 매몰되어 거기까지 이르게 된 사람들의 사정이라든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라든지, 그런 것을 전혀 헤아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때로 국민 감정과 완전히 반대되는 판결이 내려질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런 판결을 이 소설의 '합리' 범주에 넣어도 좋을 듯하다. 그럴 때 우리는 뭐라고 판결을 비판하는가? 민심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판결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 반대에 '의심'이 있다. 의심은 보이는 법리나 사건에만 머물지 않고 거기 깃든 깊은 내막이나 마음 혹은 현실적 상황 같은 것을 더 들여다 보는 태도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세상 사람들이 사법부를 바라볼 때 느끼는 간극을 좀 더 줄이고자 하는 몸짓인 것이다. 작가는 그런 마음을 담아 '합리'와 '의심'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사법부의 현실과 한계를 솔직히 드러내며 보다 바람직한 길은 어느 것인지 은연 중에 나타내려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작금에 많은 국민들이 쏟아내는 사법부에 대한 비판에 성실히 답하려는 태도이기도 하다. 다음과 같은 소설의 말을 증거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법원도 나름의 노력은 합니다. 근데 그게 갇힌 방 안에서 거울 보는 식이라 한계가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선뜻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판사들이 세상과 섞여서 인생 경험도 많이 하고 어떨 땐 피해도 당해보고, 뭐 그런 것들이 필요하죠. 근데, 또 판사가 너무 사람과 섞이면 불필요한 오해를 낳고 그 이유만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물의를 일으킨 사람과 점심식사 한 번 했다는 이유로 법복을 벗기도 해요. 그래서 더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급니다.(...) 법원이란 곳은 변화를 주도하는 기관이 아니에요. 모든 것이 변할 때 가장 나중까지 남아 있다가 뒤처리를 하고서야 자신도 모습을 바꾸죠. 당시만 해도 남성 중심, 가부장적인 의식이 강했으니까... 요즘에는 시대의 흐름이 바뀌었죠. 성범죄 양형이 대폭 올라간 건 결국 시대가 변했기 때문입니다. 판사는 그걸 따라가는 존재에 불과해요.(p. 217 ~ 219)


 작가는 후기에서 법률가로서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꼭 쓰고 싶었다고 한다. 법학전서에 나오는 착한 말씀들 말고 이십 년을 법정에서 구르면서 흘러나온 육성을 들려드리기(p. 305) 위해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 마음은 소설에 충실히 반영되어 있다. 그러니 오늘의 사법부가 왜 이 모양인지 너무나 궁금하여 그 내부를 꼭 한 번 들여다보고 싶었다면 '합리적 의심'은 그 목적에 충분히 부합해 줄 것이라 본다. 뭐, 그런 거 따지지 않고 이야기 자체로만 읽어도 괜찮다. 결말에 다소 호불호가 있을 수 있겠지만, 역시 판사 출신 작가라 그런지 법정 드라마가 아주 현실감 넘치는 데다 재미까지 주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영화 '증인'을 비롯하여 이제 우리나라에도 법정물이 제법 자리를 잡은 것 같은데, 만일 거기에 취향이 있으시다면 '합리적 의심'은 단연 좋은 선택이라는 걸 아울러 말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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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혹된 사상들 - 인류를 사로잡은 32가지 이즘, 개정증보판
안광복 지음 / 사계절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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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컵 같은 국제 경기에서 한국 팀이 일본 팀에게 지면 괜히 열이 받는다.

 작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선 우리나라에 귀화한 외국인 선수가 메달을 따서 화제가 되었는데 그걸 보면서 한국인이 메달 땄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머리와 가슴에 분명 태극 마크가 있었지만 그냥 외국인이 딴 것만 같았다. 이러는 내가 잘못인 걸 안다. 경기의 승패나 메달을 따고 안 따고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그런 감정이 드는 걸 어쩔 수 없다. 그럴 때마다 새삼 놀라게 된다. 민족주의가 이토록 내게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구나 하고.


 사람의 의식은 절로 형성되지 않는다.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는 사회화를 거친다. 가정에서 또 학교에서 나를 둘러싼 세계와 그 세계 속의 나의 위치와 처신을 어떻게 헤아리고 실천해야 하는지 교육이란 이름으로 주입받는 것이다. 그 대부분을 이루는 것이 바로 사상이다. 사상은 단순한 말의 집합체나 관념의 더미가 아니다. 우리 현실의 대부분을 구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 또한 형성하고 있다. 그건 내가 자본주의나 민주주의가 아닌 세상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처럼 사상은 내 생각과 판단 그리고 행동 모두에게 암묵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상을 안다는 건, 나아가 그 궤적을 살펴본다는 건, 그저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다. 그건 곧 나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 의식이 그런 사상들의 영토이니까 말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자주 잊고 살아간다.


 너무 익숙하면 그렇게 된다.

 공기나 물이 왜 존재하고 있는지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되는 걸 피에르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라고 불렀다. 우리의 무의식 깊은 곳까지 자리 잡아 마치 내 신체처럼 뗄레야 뗄 수 없게 되었다고 말이다. 나의 몸이란 곧 그런 사상들의 아비투스다. 그래서 일본 팀에게 한국 팀이 졌을 때처럼 거의 반사신경처럼 감정적 반응이 자동으로 나오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마주하면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나를 이루고 있는 사상들이 다 바람직한 것일까?'


 미국의 SF 작가 시어도어 스터전은 '과학 소설의 90% 쓰레기다. 그러나 모든 것의 90%도 쓰레기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모든 사상이 다 좋을 수 없다는 것 정도는 받아들여도 좋을 것 같다. 그러니 우리 몸에 아비투스로 자리잡은 사상들 또한 분명 알곡과 쭉정이가 있을 것이다. 사상들을 훑어 본다는 건, 단순히 나를 둘러싼 세계의 기축을 잘 헤아리는 일로 그치지 않는다. 그건 동시에 내 내면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들을 살펴보는 일이자 어느 것이 좋고 안 좋은지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감별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처럼 사상을 살펴보는 일은 결코 나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그동안 잘 몰랐던 그러나 확실히 내 생각과 판단, 행동 모두를 어느 정도 제약하면서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내 진짜 초상에 확대경을 바짝 들이미는 일이니까 말이다.


 '대한민국 1세대 철학 교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안광복의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은 그러한 좋은 확대경이 되어주는 책이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은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 깊은 영향을 미쳤던 사상을 모두 32가지로 정리해 담고 있다.

 '32가지'라는 말에 나도 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읽기 전에 머리로 내가 아는 사상들을 이리 저리 떠올려 보았는데 맴도는 게 몇 안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처음을 여는 '공화주의'부터 마지막 '관료주의'까지, 당신이 한 번이라도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는 '주의'는 거의 다 나온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어떤 사상이 궁금하든, 여기서 해소할 수 있을 거라는 얘기다. 책의 형식에 대해서도 말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은 사전처럼 죽 나열하지 않고 모두 다섯 개의 범주( '정치', '철학과 예술', '국가',' 경제' 그리고 '사회')로 구분해 그 범주 별로 사상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래서 보다 체계적으로 사상들을 헤아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사상은 아무래도 작가의 말마따나 속도보다 방향을 중시하는데, 대부분 무언가에 주안점을 두고 그 방향을 설정하기 마련이다. 책에서 구분한 범주는 바로 그런 주안점이 어디있는지 알게 한다. 거기에 맞춰 사상을 헤아리면 그 전모가 좀 더 쉽게 습득될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사상은 기존 사상에 대한 반발이나 저항에서 태어난 경우가 많다. 제국주의와 민족주의가 그러하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그러하듯 말이다. 범주 별로 헤아리면 사상들의 이러한 관계가 드러나 좀 더 유기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도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분명 제대로 음미해 볼 기회가 없었기에 막연한 가운데 서로 따로 놀기만 했던 사상들이 이 책으로 이리저리 제 짝과 친구들을 찾아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이렇게 말해도 선뜻 이 책을 들추지 못하게 만드는 염려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무래도 사상을 다루는 책이니까 어려우면 어쩌지 하는 것 말이다. 그렇다면 너무 괘념치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일단 설명이 정말 쉽고 다양한 인용과 현실 사례들을 들어 이런 책을 처음 접하는 이라 할지라도 부담없이 소화하도록 만드니까 말이다. 쉽다고 해서 설렁설렁 말하는구나 하고 넘겨짚으면 안된다. 이 책의 가장 커다란 미덕은 평이하게 한 사상에 대해 숙지해야 할 것을 정확하게 짚어준다는 것이다. 그 명암까지 말이다. 어떤 사상이든 완벽하지 않다. 영화 '1987'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자유민주주의는 반공주의로 변질되어 독재의 기초를 놓았고 죄 없는 이들을 함부로 잡아다 고문까지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자유를 빼앗고 커다란 고통에 빠뜨렸다. 자본주의는 또 어떤가? 모든 관계를 상품으로 만들고 오로지 자본만 중시하는 바람에 배금주의를 낳았고 아동을 중노동으로 혹사시키는 비윤리적인 처사 또한 비일비재하게 만들었다.


 사상은 비유하자면, '마징가 Z'와 다를 바 없다.

 나가이 고가 그린 원작만화에서 주인공은 자기 할아버지에게 마징가 Z를 물려받는데 할아버지가 이런 말을 하면서 넘겨준다.


 "신이 되어 인류를 구원할 수도, 악마가 돼서 세계를 멸망시킬 수도 있다!"



  사상도 다르지 않다. 잘 쓰면 사람을 지키지만 못되게 쓰면 남을 해치는 칼인 것이다. 사상이 가지고 있는 그런 어둠을 잘 인지해야만 사람을 이롭게 하는 진정한 사상이 될 수 있다. 덧붙여 그것이 바탕을 이루고 있는 나 역시 보다 더 제대로 된 삶을 살 것이다. 이는 자유민주주의가 가진 어둠을 헤아리지 못하여 지금도 맹목적인 신념에 차서 국정농단으로 국민에 의해 쫓겨난 이를 위하여 태극기를 열심히 휘두르고 있는 노인분들만 봐도 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이면을 짚어줄 뿐만 아니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의문과 거기와 연관지어 살펴볼만한 책까지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사상을 안다는 게 사유의 종착지가 아니라 사유의 출발이라는 것을 잘 알려준다고 하겠다. 작가의 다음과 같은 말 그대로다.


 책에 소개된 32가지 사상을 하나하나 짚어 나가며 독자들이 매의 눈으로 우리 시대를 진단하고 미래의 지도를 스스로 그려 나가시길, 나아가 자신만의 '사상'을 만들어 나가시길 간절히 바라 본다.(p. 8)


 이는 곧 더 나은 사회에 대한 모색이자 더 새롭고 나은 나의 모색이기도 하다. 결국 이 책을 읽는 일은 나무를 심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나무를 아무 땅에나 그냥 심지 않는다. 지금 심고자 하는 땅의 토질이 어떤지 구석구석, 면밀하게 살핀다. 나무를 울창한 숲이 되도록 자라나게 하려면 부지런히 더 좋은 토질을 가진 땅을 찾아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나무란 바로 '더 나은 미래'다. 토질을 살피는 건, 나라는 지층을 이루고 있는 게 뭔지 아는 일이다. 그 앎을 바탕으로 더 좋은 미래가 자랄 수 있는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그것도 어느 한 사상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더 많은 사상을 접하고 능동적인 사유를 통해 거기서 찾아낸 좋은 것을 포용해 나가면서.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은 바로 그런 일을 도와줄 것이다.


 안주라는 말을 했고, 제목에 '매혹'이란 말이 나와서 그런지 문득 세이렌의 유혹을 받는 오디세우스가 떠오른다.



  세이렌의 노랫소리는 너무나 매혹적이다. 누구든 듣기만 하면 그 노래에 취해 제정신을 놓아버린다. 그리고 그 노래에 이끌려 자기가 죽는 줄도 모르고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오디세우스가 돛대에 자기 몸을 묶고 있는 건 그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매혹과 관련지어 말한다면, 매혹에 안주한다는 건 곧 죽음이란 걸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사상 또한 그렇다. 어떤 사상이든 매혹 속에 안주하면 독선과 독재가 되었고 끝내 자신과 다른 많은 이들에게 엄청난 고통과 불행을 안겼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파시즘이 되어버린 독일의 나치와 소련의 스탈린 체제만 봐도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안주해선 안된다. 매혹이 멸망으로 이끄는 현혹이 아니라 보다 더 풍성한 삶으로 인도하는 문이 되기 위해선 나를 매혹시킨 것이 무엇인지 늘 살피고 거기서 어떻게 하면 나쁜 것을 피하고 좋은 것을 살려낼 것인지 항상 생각해야 한다. 사상이 진정한 자양이 되는 것은 언제나 부단한 성찰에 있는 것이다. 중세의 어둠을 계몽주의가, 또 그 계몽주의의 어둠을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찾아낸 것처럼.


 그러므로 우리 역시 안주하길 거부하여 키르케의 돼지가 되는 운명을 피할 수 있었던 오디세우스처럼 길을 떠나야 한다. 과거의 나라는 울타리 밖으로 박차고 나와 보다 더 새로운 나라는 '이타카'를 향하여 자신만의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어디서 어떻게 출발해야 할 것인지 알려주는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은 그 쉼 없는 걸음 속에서도 좋은 동반자가 되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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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계절 부서진 대지 3부작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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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부터 꽤 좋다는 입소문을 많이 들었던 N.K. 제미신의 '부서진 대지' 시리즈를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그 첫 권인 '다섯 번째 계절'이 마침내 우리나라에도 출간된 것이다. 



 SF 판타지에 속한다고 봐야 할 이 소설은 아마도 지구의 아주 먼 미래가 아닐까 생각되는 '고요' 대지를 배경으로 세 여성의 삶을 담는다. 이 '고요' 대지는 원래는 여러 개로 나뉘어져 있었던 대륙들이 지각 변동 때문에 어느덧 하나로 합쳐진 것으로 변동의 여파는 아직도 남아 현재 고요 대지는 늘 불안정한 지각 상태로 거주민들에게 불안을 계속 안겨주고 있는 참이다. 그래서 이들은 무엇보다 땅을 중심에 놓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그로 인해 그들이 쓰는 많은 언어들이 땅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땅의 움직임을 의지로 제어할 수 있는 '조산술'이라는 아주 특별한 기술이 존재한다. 물론 이 기술은 누구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로진'이라는 불리는, 그런 능력을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이들만 '조산술'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이 조산술을 이롭게 다루려면 높은 수준의 정신 통제력을 필요로 하기에 그런 자제력이 많이 없다고 생각되는 어린 오로진들은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시한폭탄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고요' 대지의 각 마을(소설에선 '향'이라 불린다.)에선 오로진 아이가 발견되면 중세의 마녀사냥처럼 없애거나 추방한다. 부모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아서 자신의 자식이 오로진인 걸 알게 되면 아이를 매매하는 자에게 넘기기 일쑤다. '고요'대지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제국의 수도 '유메네스'엔 이런 아이들을 모아 조산술을 제대로 쓸 수 있는 '펄크럼 오로진'으로 양성하는 교육 기관이 존재한다. 그런 일(어린 오르진들을 유메네스로 데려가는 일)을 도맡아 하는 자들은 '수호자'로 불린다.



 이러한 설정을 깔고 있는 '다섯 번째 계절'은 종말의 태동으로 시작한다.

 한 남자와 스톤 이터('천사' 같은 존재로 생각하면 쉬울 듯하다. 수호 천사 같은 이미지니까. 이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땅 밑에서 솟아나는데, 역시 모든 게 대지가 중심인 '고요' 대지에 어울리는 설정이다. 이들은 이름 그대로 돌을 먹으며 땅속을 공기 속처럼 마음대로 활보한다. 그리고 소설 처음에 등장한 스톤 이터가 그러하듯이 대지를 커다랗게 요동치게 만들 수 있다. 소설 처음에 등장하는 남자의 정체는 마지막에 가서 밝혀진다.)가 유메네스를 붕괴시킨 것이다. 그 뒤, 우리는 에쑨, 다마야, 시엔이란 이름의 세 여성의 삶을 번갈아 보게 된다. 에쑨은 어머니로 최근 자기 아들이 오로진이라는 게 밝혀져 그 사실을 안 그녀의 남편 지자가 아이를 죽인 비극을 겪었다. '오로진'이라면 무조건 적대와 배척만 일삼는 마을 사람들에게 거센 증오를 느끼지만 사실은 자신이 그 죽음에 더 많은 책임이 있다고 여기는데 그건 바로 자신이 오로진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사실을 숨기고 평범한 사람인 것처럼 살아온 것이다. 그러나 자책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남편 지자가 이번엔 자신의 딸 나쑨을 데리고 어디론가 멀리 달아나버린 것이다. 에쑨은 딸을 구하기 위해 지자를 찾아 나서기로 한다. 그러다 또 하나의 스톤 이터인,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호야'를 만난다. 뒤이어 등장하는 다마야 또한 집을 떠나게 된다. 오로진이라는 게 밝혀져 마을에 더이상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녀는 아동매매자가 자기를 데려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자신을 찾아온 것은 유메네스로 데려가려는 '수호자', 샤파였다. 다마야는 유메네스로 가서 펄크럼 오로진이 되는 교육을 받는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건 시엔이다. 그녀는 펄크럼 오로지이지만 아직 반지가 없는 하급자다.(펄크럼 오로진은 반지의 개수로 상급자와 하급자로 나뉜다.) 그녀는 열 개의 반지를 지닌 상급자 오로진 남자를 찾아간다. 최근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았는데 아직 능숙하게 조산술을 쓸 수 없는 그녀에게 한 남자 감독관을 붙여준 탓이다. 그녀는 그 남자 오리진, '알라베스터와 함께 유메네스를 떠난다.




 이것으로 이제 이 세 여성의 공통점이 드러난 것 같다. 

 모두가 오로진이라는 것 그리고 다들 길을 떠난다는 것. 두 말할 것도 없이 오로진은 이종적 존재다. 작가 제미신이 아프리카계 흑인이라는 걸 염두에 둔다면 이러한 이종성은 그대로 그녀가 가진 흑인의 인종적 정체성이 강하게 투영된 것이라 하겠다. 오로진이 평생 겪는 배척과 적대는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이 어느 정도 존중을 받으려면 그들이 부여한 교육을 거쳐야만 하는 것도 그대로 백인 중심 사회인 미국에서 흑인이 겪는 경로와 일치한다. 더구나 이들은 모두 여성으로 우리 사회의 흑인 여성이 그러하듯이 인종과 성별에 따른 이중 차별을 받고 있다. 이러한 여성이 가지는 열악한 상황은 에쑨이 남편이 아들을 무참히 죽여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이나 펄크럼 오로진인 시엔이 오로지 번식을 위해 사랑도 없는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되는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고요의 대지는 그 이름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차별과 억압이 들끓는 곳이었던 거다. 그 고요 대지에 군림하는 자들이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 어떻게 하면 고요의 대지를 이름대로 고요하게 만드는가다. 땅 아래에 존재하는 저항과 변화의 움직임을 억누르는 것. 이건 그대로 그들이 차별하는 이들에게 그들이 받는 차별에 순종하도록 그들의 입을 막고 자유를 위한 몸짓을 결박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달리 말하면 그들이 정한 자리에 모두가 가만히 앉아 자신들이 정한 운명을 오롯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설정들이 '다섯 번째 계절'을 그저 흔한 SF 판타지로 보지 않게 한다. 여기엔 인종과 성별에 대한 이중 차별이 횡행하는 지금 사회에 대한 뭉근한 비판이 서려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이 가진 또 하나의 공통점인, '길 위에 존재'라는 것이 의미심장하게 눈에 들어온다.

 하나같이 다들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말이다. 물론 판타지라는 장르에서 길을 떠난다는 건 거의 보편적 설정이긴 하다. 하지만 그 여정의 의미가 '다섯 번째 계절'에서 더욱 두드려져 보이는 건, 설정 자체가 근본적으로 땅, 대지라는 것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땅하면 얼른 떠오르는 건,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게 고정적인 이미지다. 이렇게 모든 게 제자리에 들러붙은 그 곳에서 세 여성들은 움직이고 있다. 그들의 떠남이 더욱 대비되어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대지란 또 어떤 곳인가? 바로 가이아 여신을 뜻하는 곳으로 여성의 영역이자 여성의 상징이었다. 스톤이터란 천사와 비슷한 존재조차 하늘이 아니라 땅에서 오듯, 하늘이 아니라 땅을 중심으로 했다는 것에서 이 소설이 흔히 말하는 여성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는 게 드러난다. 하지만 굳이 여성주의에 국한해 이 소설을 볼 필요는 없다. 사실 그것을 넘어 차별을 받는, 모든 존재들에게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이야기이니까 말이다. 어쨌든 원래 그런 여성의 영토였던 것이 지금은 남성들에게 지배되어 전혀 다른 것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고요의 대지를 그리 불안에 떨게 만드는 '흔들'(소설에서 지진을 가리키는 말이다.)은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의지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사실 세 여성의 여정 또한 이런 '흔들'을 너무 닮았다. 그 떠남으로 인해 그녀들 모두 새로운 사람과 경험으로써 유메네스가 부여한 정체성이 아니라 자신만의 독자적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소설은 이렇게 확고한 주제 의식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작가가 이야기를 완전히 장악하고 끌어나간다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 온다. 그런만큼 설정이나 구성 상의 빈틈은 없으며 모든 게 유기적으로 잘 짜여져 있다. 그래서 나중에 만나는 반전 또한 놀라운 것이다.(사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그 전에 먼저 알아차렸겠지만.) 그런 면에서 나는 주로 이 작품이 가진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 말했지만 그걸 제쳐두고서라도 이야기가 여간 흥미롭지 않기 때문에 무척 재밌는 작품이다. 역시 입소문 대로 오랜만에 아주 기대가 되는 작품을 만난 것 같다. 반전과 함께 또 다른 떡밥 하나가 던져졌는데, 그것 역시 오랫동안 여성의 상징인 존재라 그것과 관련된 뒷 얘기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에 이어 다시 한 번 휴고상을 수상한, 시리즈 두 번째 작품 '오벨리스크 관문'이 어서 나와주었으면 좋겠다. 벌써부터 현기증이 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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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 - 칸트 3대 비판서 특강
백종현 지음 / 아카넷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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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트는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아주 낯익은 이름일 수밖에 없다.

  어떤 철학책이든  번은  언급되기 마련이니까마치 밥상에  올라오는 김치와 같다고나 할까 접하다 보니 자연스레 궁금하게 되었다도대체 어떤 철학을 펼쳤기에 이토록 빠짐없이 인용이 되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그러나 그런 의문을 속시원하게 해결하긴 어려웠다칸트의 사상은 너무나 방대했고 그걸 체계적으로 쉽게 헤아리게 도와주는 길잡이를 만나는 일은 너무나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안내자의 도움따위 필요 없이  몸소 알아보리라!’ 하며 직접 칸트의 책을 읽는 호기도 부려보았지만 낯선 단어들의 난무와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 개념들의 연속 공격 속에서 패배를 시인하고 서둘러 퇴각해야 했다그러나 칸트는   번의 싸움으로 쉬이 접어버릴  있는 이름이 아니었다아니 보고 아니 듣는다면 그럴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칸트란 정녕 라면의 스프와 같은 존재철학의 맛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관통해야만 했기에 나는 반복해서 칸트의 철학과 난전(亂戰) 벌이지 않을  없었다물론  때마다 나는 번번이 자신의 무력함을 씁쓸하게 곱씹는 패장(敗將) 기분을 느껴야 했다그러다 깨달았다유비가 삼고초려까지  가면서 제갈공명을 자신의 사람으로 삼으려했던  바로 이래서였구나 하고그러나 더이상 유비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어졌다 또한 제갈공명 같은 책을 드디어 만나게  것이다그것이 바로 백종현 교수의 ‘인간이란 무엇인가 책이다부제는 칸트 3 비판서 특강.

 

 하지만 처음  책을 보았을 조금 걱정이  것도 사실이었다책의 분량이 작았던 것이다모두 267페이지 정도론 3 비판서는 커녕 과연 ‘순수이성비판조차 제대로 설명할  있을까 염려스러웠던 것이다하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칸트 전문가이자 칸트 공부만 50년을 했는는 학자의 책이니만큼 속는 셈치고 일단 읽었다이런! 부제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그야말로 3 비판서의 핵심이 고루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마치 필요 없는  모조리  가지치고  정수만 모아놓은 느낌이었다. 3 비판서를 쉽고 체계적으로 헤아리게 돕는 길잡이 역할부터 그가 당대의 사람들에게  중점적으로 들려주려 했고 그것을 통해 어떤 소망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칸트의 인간적인 면모까지  짚어주고 있었으니까 말이다이보다 훨씬  두터운 책으로도 가늠할  없었던 칸트와 그의 철학을  얇은 책으로 이토록 선명하게 응시하게 되다니! 가히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고 내공 깊은 고수는 분량에 좌우되지 않는가 보다.



 

  책은 크게 서론 격이 되는칸트 철학으로 들어가기 3 비판서인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그리고 ‘판단력 비판  강씩 할애하여 설명한 3강으로 이뤄져 있다서론에선 연암 박지원과 같은 시대 사람이었던 칸트가 과연 어떤 사람이었으며 그가 활동한 시대는  어땠는지와 함께 오랫동안 칸트 철학을 연구하고 번역해왔던 그의 술회가 짙게 투영된 한국어로 칸트를 읽고 공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밝히고 있다그렇게 하여 칸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힘을 기울여 풀어가야  철학의 화두로 삼았으며그런 그의 작업이 비록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고  타국에 살고 있지만 지금의 우리와 결코 별개의 것이   없음을 헤아릴  있도록 말이다.

 

 칸트가 인간을 화두로 삼은 것은 그의 시대를 거센 물줄기로 휩쓸었던 계몽주의 그에겐 다름아닌 ‘사람이 자기 탓인 미성숙으로부터 벗어남(p. 73)’이었기 때문이다여기서 미성숙이란 타자의 지도 없이는 자신의 지성을 사용하지 못하는 무능력함을 이르는 말로 칸트는 사람들이 그렇게 미성숙하게 되는 것이 무엇보다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의 지성을 스스로 사용하려는 결단과 용기의 부족으로 보았다사실 그럴만 했다르네상스를 시작으로 종교혁명을 통해 계몽의 여명이 차츰 시대를 밝히고 있었지만   동안 지배했던 기독교 때문에 당대 사람들은 신의 권위에 짓눌려 자신의 이성을 자발적으로 사용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으니까 말이다그들에겐 자신의 이성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당당히 드러내 사용할  있는 자유가 필요했고 칸트는 성숙을 향한 그들의 결단과 용기를 위해 그런 자유를 주려했다그러기 위해 그는 인간을 다시금 정의할 필요가 있었다왜냐하면   때까지 사람들은 자신을 오직 신의 눈을 통해서만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행동할  있으며 어디에서 흡족함을 느끼는지를 하나같이 신에 맞추어 생각했다칸트는 그런 사슬을 끊고자 했다인간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신이 세워놓았던 가림막을 치워 인간의 온전한 초상을 보도록 말이다그래서 그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 질문으로 돌아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었을그래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다시금 제기한 것이다이제는 신이란 타자의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이성으로 그것을 음미하도록.

 

 1) 나는 무엇을   있는가?

 2) 나는 무엇을 행해도 좋은가?

 3) 나는 무엇에서 흡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가?

 

   개의 질문은 그대로 3 비판서와 대응한다. ‘나는 무엇을   있는가?’ 대답이 ‘순수이성비판이며 ‘나는 무엇을 행해도 좋은가?’ 대답은 ‘실천이성비판이고 마지막으로  ‘나는 무엇에서 흡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가?’ 대답이 판단력비판 것이다여기서 비판이란 다름아닌 ‘무엇을   있고     없는지 분간함(p.83)’ 의미한다   없는 한계 범위를 밝히는 것이 ‘비판 것이다그러므로 ‘나는 무엇을   있는가?’ 대한 비판은  ‘나는 어디까지   있는가?’이기도 하다그런 인간의 이성이   있는 범위바로 그것을 밝히는 것이 ‘순수이성비판 하고자 하는 바다거기서 칸트는 인간의 지식이 무엇보다 감성 세계의 대상에 관해서만 가능하다(p.85) 여긴다오직 우리가 감각으로 확인할  있는 것만이 지식의 대상이라는 것이다그러므로 칸트에겐 자연과학적 지식만이 지식이다실제 감각으로 확인할  없는 철학적 사변이나 종교적 담론 같은 것은 지식이 아닌 것이다그런 지식에 대해 칸트는 지식인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지식이 아닌 것이 지식이라고 주장하며 권위를 내세워 사람들의 이성을 호도하면 안된다고 말이.


 그렇다고 칸트가 철학적 사변이나 종교 담론을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것은 아니다그런  또한 자연과학적 지식 이상으로 우리 삶을 유용하게 만드는  인정한다다만 그것은 지식이 아니라 이념 문제인 것이다신을 예로들어 말하자면 감각할  없는 신을 섣불리 지식의 범위에 넣어 실재라고 주장하기 보다는 다만 우리의 삶을 보다 바람직하게 만들 이념의 하나로  존재를 요청할  있을 뿐인 것이다이렇게 오직 감각할  있는 것만을 실재로 인정하기에 실재라는 개념이   분명해지고 이전까지 전혀 드러나지 않았던 새로운 차원이 열리게 된다.


 왜냐하면 감각할  있으려면 그것이 언제나 특정한 시공간 위에 놓여져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존재하려면 시공간 위에 있어야 한다는 일차적인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그럴  없는 것은 존재하는  아니다신도천사도 마찬가지다이렇게 우리의 존재 인식은 시공간이라는 특정한 형식을 통해 이뤄진다칸트는 이를 두고 ‘초월적 감성 형식이라 부른다칸트에게 ‘초월적이란 말은 백종현 교수에 따르면 모든 경험에 앞서는그러면서 경험 인식을 가능하게(같은 저자의 ‘칸트와 헤겔의 철학’ p.123)하는  뜻한다다시 말해 우리는 아무 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어떤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감성 형식을 통해 보고 있다는 말이다 형식은 우리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이런 면에서 보자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스스로 만든 형식에 따라 규정하는 대로 보고 있다고 말할  있다사실 칸트는 우리가 정말 그러고 있다고 말한다어떤 대상을 지각할  지각  자체만 하는  아니라 지각을 어떤 특정한 것에다 연결 혹은 종합하는 ‘통각 하며  통각은 범주라는 일정한 도식을 매개로 이뤄진다고 말이다그게 바로 관계양태로 대표되는 초월적 지성 형식이다우리는   형식을 사용해 바깥의 실재를 지각하며 오직 그것만이 실재가 된다 형식은 모두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사실은 우리의 주관이 객관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렇게 칸트는 실재의 구성을 우리 주관 영역으로 끌어들였다이것은 보다  알기 위해 오직 바깥 대상에다 우리의 주관을 끼워 맞춰야 했던 당시 사람들에겐 생각도 못한 것이었다칸트에 따르면 자연 세계를 형성한 것은 신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주관이었다그런 식으로 칸트는 신에게 얽매여 있던 사슬을 끊어냈다우리가   있는 것은 지식으로 삼을  있는 것은 오직 자연 과학적 세계밖에 없으며 그것을 근본적으로 형성하는 것도 바로 우리라는 것을 알리면서 말이다.

 

 그럼 이제 다음의 문제, ‘나는 무엇을   있는가 의지의 문제에 답할 차례다.

 칸트에 따르면 의지는 오직 ‘‘선의지밖에 없다(p.155)’ 한다왜냐하면 의지 ‘좋은 것을 하려함으로 나쁘게 되는 것은  의지가 약해진 것이지 나쁜 의지란  있어서 그런  아니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런 의지는 또한 자유의지이기도 하다좋은 것을 구속 받지 않고   있어야 의지가 진정으로 존재한다고 말할  있는 까닭이다그런데 선의지란 단순히 좋은 것을 하려는 의지를 뜻하지 않는다도덕적으로 올바른 의지를 뜻한다

 

 어떤 행위를 ‘옳다라고 하는 오로지  이유 때문에 행하려는 의지가  선의지다.(p. 160)

 

 칸트는 진정한 자유의지는 오직 선의지를 발할 때에만 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여기서 도덕적이란저마다 가진 상호 인격을 존중해주는  뜻한다백종현 교수는 그걸 칸트가 ‘영원한 평화에서 어떤 경우도 섬멸전이나 징벌전은 있을  없다고 말한 것을 가지고 풀어간다그렇게  뜻대로 하지 않고 상대가 가진 고유의 영역을 지켜줄  있을 비로소 도덕적이라   있다그리고 그렇게 하려는 의지가 바로 ‘선의지.


 그런데 이런 선의지는 일상  우리가 그렇듯행하기가  어렵다사람에겐 누구나 자기 본위의 욕구가 있으니까 말이다이런 자신의 경향을 극복하고 선의지를 발휘하기 위해선 아무래도 의무로 강제되지 않으면 안된다하여칸트는 도덕적이 되는 것을 정언명령으로  것이다정언명령그것은 아무런 핑계를   없는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하는 명령이다그리하여 ‘너의 의지와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법칙 수립의 원리로서 타당할  있도록그렇게 행위하라(p. 168)’ 도덕법칙  최상위 법칙인 정언명령이 만들어진다여기서 기존의 상식적인 견지에서 보자면 무척이나 새로운 자유 개념 도래한다당시 사람들에겐 자유란  뜻대로 마음대로   있는  자유인데칸트에겐 거꾸로  뜻이 아니라 의무로 부과되는 당위를 따를 때가 진정한 자유이기 때문이다우리는 일단 동물이다그런 이상 자연스럽게 식욕성욕과 같은 동물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백종현 교수에 따르면 라이프니츠는 ‘단자론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람은 4분의 3 동물적이다.(p. 183)

 

 

 나도  동감한다그런 욕구는 오로지 나만의 충족을 추구하므로 대부분 도덕적 관계를 쉽게 해칠  있는 것들이다그런 욕구를 따른다는 것은  자유를 누림이 아니라 사실 내게 있는 동물적 욕구에 노예처럼 순종하는 것이다그러므로 그것에 저항하여  모든 동물적 욕구에 위배되는 의무로 부과된 정언명령을 따를 때야말로 진짜 자유라는 칸트에 말에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다이는 또한 자신을 그저 욕망 충족의 수단으로 삼는 것을 그치는 것이기도 하니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는 길이다.


 앞서 칸트에게 계몽주의란 자신의 이성을  어떤 것에 주눅들지 않고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이라 말한  있다얼마든지 결단하고 용기를   있는 이러한 자유가 칸트가 원한 것이었다면 ‘실천이성비판 통해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는 더욱 분명해지는  같다그건 바로 서로의 자유하고 대등하게 공존하는 세상말이다아무도 자신의 동물적 자유를 위해 타인을 수단 삼지 않으며 그가 타고난 존엄 그대로를 인격적으로 존중해주는 그곳이 바로 칸트가 꿈꾸는 세상이다그러기 위해서 칸트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눈으로 자유를  것을 주문한다실천 이성은 그런 자유에 헌신할  진정한 빛을 발한다는 것도.

 

 

 

 그러나 우리도 얼른 예감하듯이 이런 의무에 따른 삶이 결코 행복할리 없다.

 칸트는 자연 세게와 도덕 세계를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의 세계로 분리시켰다그러면서 자연 세계 또한 알고보면 우리 인간이 능동적으로 형성하는 것임을 밝혀  지식이 아닌 이념의 도덕 세계 또한 우리가 마음먹고 노력만 한다면 얼마든지 형성 가능하다는  믿게 했다그러나 종교 상의 성인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우리들은 행복을 자연 세계에서 구한다대다수가 생각하는 행복의 형태란 감각적인 것일테니까 말이다영화 ‘매트릭스에서 사이퍼도 가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맛있는 고기를 실컷 뜯어먹기 위하여 기꺼이 인간을 배신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선의지를 발휘해 정언명령을 따르더라도 언제든 사이퍼처럼 유혹에 빠질  있다칸트가 바라는 세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선 이러한 배리(背理)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그저 거의 무한에 가까운 시간이 걸릴 것이라든가그래서 신을 보상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고 대답해선 안되었다성실한 칸트는 거기에 대해 답할 의무가 있었다. 정언명령을 강조했던 그이기에 당연히 따라야  의무였다.


 그리하여 그는 판단력 비판 썼다.

 그에게 이것은 무엇보다 서로 대척하는 것처럼 보였던 이론 이성과 실천 이성을 조화시키는 작업이었다앞서도 말했듯, ‘판단력 비판 감정에 대해 말한다이것을 낳았던 물음인 흡족함이야 말로 감정의 문제다보다 일반화 하면 쾌와 불쾌에 대한 문제라 말할  있다이런 반응 혹은 인식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듯이 오직 하나의 직접적인 반응만이 전부인가거기에 대해 칸트는 비판의 메스를 가한다그리고 흡족함과 아름다움 같은 인식엔  하나의 차원이 있다는  알게 된다바로 합목적성말이다. ‘합목적성이란 목적에 합치한다는 뜻으로 쉽게 표현하자면 ‘~답다  것이다그러므로 ‘아름답다  자체에 이미 합목적성이 내포되어 있다고   있다어떤 것에 대해 쾌나 불쾌를 느낄  우리는 단순히 그것만 보지 않고 마음에 있는 어떤 범주에 맞춰 쾌나 불쾌를 결정한다고 생각하면   같다이런 범주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시공간이란 감성적 형식과 양과 질같은 지성적 형식이 만나 지식을 형성했던 과정과 정확히 일치한다칸트는 미적 쾌감 역시 상상력(인식의 시공간처럼 대상의 미를 특정 순간에 합목적적으로 포착하게 만드는 감성적 형식이라   있다.) 지성의 형식이 합일하는 데서 생긴다(p.225)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이처럼 감정의 영역인 미적 쾌감 역시 지식 영역과 똑같은 과정을 거친다는 점이 칸트에겐 활로가 되었다대치될 것으로 보였던 지성과 감성이 서로 만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그렇게 ‘판단력비판’ 작업을 통해 칸트는 지성이 감성의 영역으로 또한 감성이 지성의 영역으로 나아갈  있다는  밝힌 것이다그렇다면 이론 이성과 실천 이성 또한 못할 것이 없다합치될  있는 것이다다름아닌 판단력을 통해서 말이다백종현 교수는 다음과 같이 ‘판단력 의의를 밝힌다.

 

 판단력에 의해서 지성의 법칙 수립과 이성의 법칙 수립이 연결된다다시 말하면지성에 의해서 자연법칙이 수립되고 이성에 의해서 자유법칙이 수립되는데이렇게 수립된 자연세계에 관한 것과 실천세계에 관한  법칙이 판단력 의해서 통일된다이로써 자연과 자유가 통일이 된다그런데 판단력은 무엇을 가지고   세계를 통일할  있는가그것은 다름 아니라앞에서 말했던  ‘실천이성비판 변증학에서 등장했던 ‘최고선 이념에 의거해서다.(p.234 ~ 235)

 

 그렇다면 어떻게 합치되어야  것인가여기에 의무론적 윤리에 걸었던 칸트의 이상 또한  수명이 결정될 것이다칸트에게 있어 합치란 어디까지나 서로 고유의 영역을 존중한 가운데 이뤄져야 한다그렇다면 자연세계가 실천세계의 법칙을 따를 수밖에 없다반대의 경우엔 실천세계 자체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이로써 의무론적 윤리를 따라야 한다는 칸트의 생각은 구제되었다물론 여전히 현실화가 요원하긴 하지만 어쨌든 그게 옳은 길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칸트의 대답 또한 완성되었다백종현 교수는 그것에 관해 이렇게 쓴다.

 

 이렇게 해서 칸트는 이성 비판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철학적으로 답한다요컨대인간은 세계 인식에서 존재자의 존재를 규정하는 초월적 주관이자행위에서 선의 이념을 현실화해야 하는 도덕적 주체이고세계의 전체적인 합리성과 합목적성을 요청하고 희망하고 믿는 반성적 존재자이다 칸트의 이성 비판은 이로써 우리가 과학적 엄밀성을 가지고 발언할  있는 것은 인식의 세계 진리의 세계에 대해서뿐이지만인간에게 가치 있는 일은 논리적 사고 활동뿐만 아니라 아니 오히려 그보다도 도덕적 완전성그리고 인간의 이상이 마침낸 실현된다는 희망 내지 확신을 가지고 역행(力行)하는 일임을 일깨워준다.(p. 237 ~ 238)


 이 말은 책의 거의 마지막에서 만나게 되는데, 교수의 논지를 죽 따라가다 이 말을 만나고나면 왠지 뭉클해지는 걸 어찌할 수 없다. 한 인간이 평생 걸어서 비로소 도착한 종착지의 모습을 그대로 문자로 형상화해 놓은 것 같아서일까? 여하튼 결코 자신이 사는 쾨니히스베르크를 벗어난 적이 없고(그는 오직 책으로만 여행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알프스 지형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고 한다.) 교우 관계도 그리 넓지 못하여 업무적인 관계를 떠나 만난 유명한 사람이라곤 모제스 멘델스존과 피히테, 헤르더 정도가 전부인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누구보다 깊고도 확장된 안목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상식과 권위에 결코 타협하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신선한 시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끝내 이렇게 찾아내고야 말았으니까 말이다.


 그러고 보면 칸트는 누구보다 자신이 정의한 계몽주의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 어떤 타자에도 기대지 않고, 주눅들지도 않고 결단과 용기로써 이만한 철학 체계를 만들어내었으니까 말이다. 이런 칸트의 태도는 특히나 지금의 우리나라처럼 이념과 성별, 세대 그리고 이주민에 대한 혐오와 적대를 양산하는 가짜 뉴스와 근거 없는 풍문과 선동에 휩쓸리는 사람들이 나날이 많아지는 상황에 더욱 귀감이 될 것 같다. 어느 때인가부터 우리는 어떤 사안과 부딪힐 때마다 자신의 이성을 엄중히 사용하여 사태를 온전히 헤아리기 보다는 점점 더 타인의 말에 기생하여 내 판단과 행동을 결정해버리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먹고 살기 바쁘고 머리 쓰기 귀찮다는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이러한 포퓰리즘 심화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형편이다. 오죽하면 얼마전 작고한 지그문트 바우만이 현재의 시대를 두고 '레트로토피아'라고 불렀을까. 모두들 칸트가 유념하고 직접 실천했던 계몽의 빛을 스스로 꺼버리곤 고유하고 독립적인 인간이 되기 보다는 그저 언제든 대체가능한 무리 속의 하나로 남게 되는 중세의 어둠 속으로 회귀하여 왜 증오하는 지도 모른채, 누군가 달을 가리키면 그 쪽 방향으로 컹컹 짖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므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는 결코 칸트만이 되새겨야 할 질문이 아니며 그걸 중심축으로 하여 전개한 사유의 여정 역시 그저 과거의 유물로 치부할 일은 아니다. 오늘의 우리가 자신의 화두로 삼아 깊이 숙고해야할 의문이며 나만의 사유 여정을 위해 곁에 두고 자주 들춰봐야 하는 길잡이인 것이다. 백종현 교수에 따르면, 칸트는 자기가 하는 철학의 소임을 중세 때 흔히 썼던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라는 말에 빗대어 이렇게 여겼다고 한다.


 시녀에는 두 부류가 있다. 왕비가 치맛단을 길게 늘어뜨려 끌고 갈 때 뒤에서 끌리지 않게 치맛단을 들고 가는 시녀가 있고, 왕비가 발을 헛디디지 않게, 또는 유혹에 빠지지 않게 앞장서서 등불을 들고가는 시녀가 있듯이, 철학은 신학뿐만 아니라 여타의 학문들이 헛길에 들지 않도록 앞장서 등불을 들고 가는 시녀이다.(p. 79)


  그렇다면 칸트의 철학이야말로 지금의 우리들에게 등불을 든 시녀로 보인다.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과 팽배해지는 물질 만능주의 속에서 배려 보단 배척이, 존중 보단 갑질이 횡행하는 가운데 언제 어느 때 한낱 수단으로 전락하거나 나 또한 타인을 수단으로만 여기는 괴물이 될 지 모르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인간다움을 지켜나갈 길로 인도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그리 쉽게 친해질만한 안내자는 아니다. 하지만 전혀 낯선 상대도 고향이나 가족, 하는 일이나 취미를 묻다 보니 차츰 파악이 되어 그걸 발판삼아 수월하게 친해졌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바로 그렇게 사람이 처음 만나 친하게 만드는 일을 이 책, '인간이란 무엇인가'가 하고 있다고 보면 될 듯하다. 분명 읽다보면 나처럼 오리무중이기만 하던 그의 얼굴이 하나하나 그 윤곽을 잡아나가는 걸 경험할 것이다. 이렇게 책의 내용을 나름대로 정리하여 긴 글을 쓴 것처럼 말이다. 그런 길잡이를 만나지 못하여 칸트와 벗하는 일을 미뤄두고 있었다면 얼른 이 책의 초대를 받아들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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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1-31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를 읽었더니 도리어 이 책까지 읽어야 하나 생각하게 되네요..... 대단하세요. 언제나 그러셨듯이요.

헤르메스 2019-01-31 22:48   좋아요 1 | URL
앗! syo님 이렇게나 반갑고도 기쁜 댓글을 남겨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언제 한 번 칸트를 제대로 헤아려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늘 손가락만 빨고 있었는데 이 책을 만나 이제 겨우 그 손가락을 입에서 뺄 수 있게 된 듯 합니다. 혹시 칸트의 3대 비판서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하셨으면 이 책을 먼저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2019-02-02 0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3 1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