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포르투갈에 대한 찬양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특별할 것도 없었던 나의 포르투갈 여행을 떠올리게 하며 하염없이 포르투갈 앓이를 하게 만든다. 이 책을 읽고부터 포르투갈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이번에 간다면 지난번처럼 짧은 일정으로 가는 게 아니라,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육개월쯤 장기체류를 해보고 싶어진다. 오 년이어도 좋고. 그러려면 언어를 배워야 할텐데, 그러면 배우면 되지, 그렇지만 공부... 힘들잖아, 하고 혼자 아무도 시키지도 않았는데 고민을 하면서, 가자, 포르투갈로 가자, 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 최윤필의 《가만한 당신》 읽고 있는데, 이 책처럼 가만한 책들을 여러권 싸들고서는 슝- 포르투갈로 날아가고 싶다. 그 누구도 함께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낯선 곳 그 어디에 가서도 누구든 사귈 수 있으니, 혼자서 슝- 날아가서 느지막히 눈을 떠 책을 읽다가 배가 고프면 어슬렁어슬렁 나가서, 아침 점심 저녁, 매 끼니마다 와인을 옆에 두고 식사를 하고 싶다. 골목골목을 산책하고, 어제보다 조금 늘은 포르투갈어로 낯익어진 이들에게 인사하면서, 그렇게 머물고 싶다. 그러면서 친구에게 엽서를 띄우고 싶다.



"나 여기에 좀 더 머무르려 해."




기초를 다지는 일은 중요하다. 이미 여러권의 페미니즘 관련 서적을 읽어온 사람으로서 이 책을 건너 뛰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긴 하지만, 기초가 튼튼해야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오늘, 이 책을 주문했다. 새해 첫 주문이다. 


요즘 페미니즘 도서를 살 때는 나의 일곱살 조카를 생각하게 된다. 이미 페미니즘이 장착되어 있는 이 아이가 언젠가 본격적으로 공부할 날을 위해서, 아니면 일상속에서 느끼거나 의문을 가졌을 때 언제나 딱- 들이밀기 위해서, 쉬운 페미니즘 도서를 책장에 꽂아두고 싶어진다. 칠 살 조카는 책 읽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지난 주말에는 '난 책 싫어'라고 얘기하더라. 난 좀 슬펐어... ㅠㅠ


그렇지만 이번에도 내 책장에서 아무 책이나 뽑아들고는, 이모 이건 무슨 책이야? 심드렁하게 묻는다. 읽어달라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물으면 간단하게라도 답해줘야 하는데, 이번에 우연히 뽑아들은 책은 《양성 평등 이야기》였고, 나는 아직 사두고 읽지 않긴 했지만, 조카에게 '남자와 여자 모두 평등하다는 이야기야' 라고 말하면서, 아아, 읽지 않아도 이렇게 꼽아두자, 이것만으로 충분히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라고 생각했다.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는 나의 기초를 튼튼히 하기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 이 책이 필요할지도 모를 칠 살 조카를 위해서 구매했다.




내가 살면서 억만장자랑 이야기할 기회도 없었고 알고 지낼 기회도 없었다. 가까운 사람의 아는 사람으로라도 억만장자가 없다. 억만장자가 노는 세계는 아마도 내가 노는 세계와 달라서일 것이다. 사람은 끼리끼리 어울린다는데, 그래서 내게는 억만장자 친구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억만장자랑 결혼이라고? 어림도 없다. 나는 여태 늘 가난한 남자만 만나왔다. 내가 앞으로 다른 연애를 한다고 해도 나보다 월등하게 돈을 많이 벌 남자를 만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남자가 와도 이제는 싫다. 나는,


연애를 끊었다. 


굿바이, 연애...


랑은 아무 상관없는 책이고, 일전에 페이퍼 한 번 쓴 적 있지만, 이 책 너무 읽고 싶어서, 내가 오늘 새해 첫 주문한 책들 중에, 배송되어 오면 가장 먼저 읽을 책이다,


라고는 하지만 지금 읽고 있는 책을 언제 끝낼지 모르겠다. -0-

그리고 사실 나는 책 주문할 때마다 '오기만 해봐라 바로 읽어주겠다!'의 마음이긴 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읽지 않은 채 쌓이고 있지..... =3=3=3=3







나 이거 내용 진짜 1도 모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읽어야 재미있는 것 같아. 그래서 이번에 영화로도 나왔다길래, 영화보기 전에 읽어보자라고 생각해서 주문했다. 영화는 볼지 안볼지 모르지만, 어쨌든 읽어주겠어! 어떤 내용일지 기대기대. 새해 첫 주문에 들어간 소설 되시겠다.









위에 언급한 책들 말고도 두 권 더 샀는데, 5만원이상 구매해서 2천점 마일리지는 받았지만, 굿즈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아, 페미니스트 다이어리 선택가능하던데, 나 다이어리 돈 주고 산 걸 쓰고 있고, 또 있어봤자 쓸 일도 없을 것 같아 선택 안했다........선택할 걸 그랬나? 흐음... 



오늘 산 책들 가지고, 그리고 내 방 책장 앞에 서서 몇 권을 꺼내들고 캐리어에 넣어서는 슝- 포르투갈로 날아가고 싶다. 나는 자연인이다를 찍을 수 없다면, 나는 포르투갈에 머물기로 했다, 같은 걸 쓸 순 있지 않을까.

나는 언젠가 외국에서 살아보겠다는 꿈을 열다섯살 때부터 갖고 있었고, 사주 봤을 때도 내가 그리 될거라 말했지만, 막연히 그게 미국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미국에서 살고 싶었고. 그런데 요 며칠간 미국에 딱 박아 두었던 축이 포르투갈로 바뀔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 아침에는 포르투갈에 장기간 체류한다면, 영주권까지 얻게 된다면... 그렇다면 그 후엔 어떤 삶이 펼쳐질까...를 잠깐 생각해봤다.



나는 혼자서 동네 사람들과 안면을 틀 것이고, 나름의 패턴을 만들어 갈 것이다. 아주 자주 와인을 마실 것이고, 조용히 책을 읽는 시간도 많아질 것이다. 텃밭..은 잘 모르겠다. 내가 가꿀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반려견이나 반려묘는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친구를 사귀는 것쯤은 자신있다! 어쩌면 모임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리스본에서 한국어로 페미니즘 도서 읽는 모임 같은 거 하면, 어쩌면 세명에서 네명쯤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든 모임이나 친근한 사람들의 집단을 만들어서 크리스마스 같은 때에는 소중한 이들 불러서 파티를 하고 싶다. 좋아하는 조용한 음악을 틀어두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나누는 그런 파티. 와인이 모자라는 일은 없게 하겠다. 고기가 모자라는 일도 없게 하겠다.


가끔은 고국의 친구들을 내가 있는 곳으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이유로 여기로 여행올 때 나를 떠올리며 만나자고 하는 이들이 더러 있겠지만,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근한 이들이 아니라면, 나는 '니가 알아서 여행하라'고 단호하게 거절할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만나야지, 만나서 그들 여행의 하루 이틀쯤은 내 집에서 머물다 가라고 해야지. 와인을 대접해야지. 그들중에 더, 더, 더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호텔을 잡지 말고 나랑 같이 있다 가라고 해야지. 여기가 화장실이고 여기가 부엌에야, 여긴 네가 잘 곳이지. 와인은 항상 여기에 준비되어 있고, 너를 위해서 맥주도 한가득 쌓아뒀어, 언제든지 먹어, 라고 말해줘야지. 



그렇지만 2017년 1월 18일 현재의 나는...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페이퍼 쓰고 있다.......................Orz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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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7-01-18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오늘 일빠요. 저는 리스본행 야간열차 읽고 포루투칼 넘 가고 싶어졌는데 일단은 처자식 먹여살린 다음 생각해봐야 겠어요. ^^

인생 참.....

다락방 2017-01-18 15:39   좋아요 0 | URL
오늘 일빠 감사요! ㅎㅎㅎㅎㅎㅎㅎㅎ

저는 리스본행 야간열차 읽을 때는 이렇게까지 막 가고 싶지 않았더랬는데, 어휴, 지금은 그냥 아주 당장 날아가고 싶어 미치겠네요. 오래 머무르거나 정착하고 싶어요. 제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요?

인생 참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지만, 시이소이님, 아주 오랜 후에는 우리가 포르투갈에서 커피 한 잔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달걀부인 2017-01-18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에..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알라디너 모임 할까요? ^^

다락방 2017-01-18 15:39   좋아요 0 | URL
어머! 너무 근사합니다! 달걀부인님, 이번 여름(엔 계획이 있어서) 말고 내년 여름 어때요? ㅎㅎㅎㅎㅎ 아 뭔가 좋으네요 ♡

달걀부인 2017-01-18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시군요!! 내년 여름엔 또 어떤 다른 책에 꽂힐지 모르니.. 그 때...가고싶은...슝~ 나라로 정하심이... ^^ 전 내년 여름에 중국에 있어요.... 중국 어디로 오시다면, 제가 게스트가 될 용의가 ..있습니당..ㅋㅋ 시이소오님도요. ㅎㅎ

다락방 2017-01-18 15:51   좋아요 0 | URL
크- 네. 내년에 어디를 가고싶어질지, 결국 어디로 갈지 아직은 모르지만, 혹여 중국에 가게 된다면 뵙고 싶습니다!! >.<

시이소오 2017-01-18 15:58   좋아요 0 | URL
달걀부인님, 일부러라도 가고 싶어요 ㅋ

락방님, 꼭 오랜시간이 지나야 가능한건가요?
커피 ㅋ

다락방 2017-01-18 16:03   좋아요 0 | URL
가능하면 앞당겨 봅시다 ㅋㅋㅋㅋㅋ

달걀부인 2017-01-18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디너 해외 벙개라니!!! ㅋㅋㅋ

다락방 2017-01-18 16:17   좋아요 0 | URL
두근두근합니다! >.<

비연 2017-01-18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 사무실에서...사무실에서...ㅜㅜㅜㅜㅜㅜ

다락방 2017-01-18 19:05   좋아요 0 | URL
인생이란 게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흙 ㅜㅜ
 

아침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사무실 창문들을 활짝 연다. 환기를 시키고 시작하려는 것인데, 요즘엔 밤이 길어 퇴근 시간만 되도 어두워지는 것처럼 출근을 하고 나서도 좀처럼 환해지질 않는다.


밤이,


길다.



그래서 나는 여름을 좋아한다. 좀 늦게 들어가도 아직 환한 여름이 좋고, 출근할 때도 환한 아침이 있어서 여름이 좋다. 여름이 좋은 이유는 무지무지하게 많지만, 그렇게 낮이 긴 것도 이유이다. 그렇다고해서 밤이 긴 게 싫은 것만도 아니다. 오늘 아침 창문을 열었을 때, 문득 이런 빛깔이 눈에 들어왔거든.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어둠과 빛의 저 경계가 사라지면 출근을 하겠지만 나는 저 경계를 보는 시간에 출근한다. 사무실에 출근해서 창문을 열려고 밖을 내다보면, 저렇듯 붉은 빛을 보게 된다. 오늘은 새삼 너무 풍경이 예뻐서 아, 좋아.. 했다. 어느쪽의 창문을 열어도 저 아름다운 빛깔이 보인다. 아이폰의 카메라로 다 담아낼 수 없는 붉은, 아름다운 빛. 


아,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

한 이주간 스트레스가 심했고 기분이 매일 나빴는데, 정말 별 거 아닌, 내 노력으로 된 것도 아닌, 저 자연스런 붉은 빛이 기분을 좋게 한다. 히죽히죽 웃으면서, 나는 이런 걸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야, 스스로에게 만족하면서, 잠깐,


혹시 아침에 나눈 19금 대화때문에 기분이 좋은건가.....


했지만, '꼭 그래서만은 아니다'. 



시간이 가는 것은 아쉽지만 시간이 가는 것은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서, 어둠과 빛의 경계를 보면서 감탄하는 그런 사람이라서, 정말 좋다.





엘레나는 흠 잡을 곳이 없는 미인이었지만 마이클이 그녀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모 때문이 아니었다. 엘레나는 작은 것들, 뽀송뽀송하고 서늘한 시트 사이로 들어가 눕거나, 새로운 음식을 맛보거나, 매번 기대에 찬 마음으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것 같은 일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선하다고 믿으며, 그래서 색깔을 잃어버린 우중충한 무색의 세상에서 화려한 색깔로 빛나는 사람이었다.(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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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7-01-17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여름아침이 좋긴한데 겨울아침은 내가 엄청 일찍 일어난 듯한 느낌이 또 그런대로 좋더라구요!
창문을 열었는데 저런 아침풍경이라면 너무 황홀하겠는데요?아메리카노까지 곁들이고 있다면???
풍경이 곧 cf의 한 장면이겠다고 생각되는 아침입니다^^
굿모닝이어요ㅋㅋ

다락방 2017-01-17 12:25   좋아요 1 | URL
이제 굿점심이네요. 저는 곧 점심 먹으러 갈 예정입니다. 그런데 친구가 보내준 튀김호두과자 먹고 지금 사실 배가 고프진 않아요 ㅋㅋ 어쩜 좋지 ㅋㅋㅋㅋㅋ 그래도 맛있게 먹으려고요. 아하하하하.
아메리카노는 진즉에 다 마셨고요 ㅋㅋ 내일 또 아메리카노 마셔야죠. 힛.

아침에 저런 풍경을 보니 좋더라고요. 사실 진짜 사소한 거잖아요. 늘 볼 수 있는 풍경이기도 하고요. 물론 계절 한정이지만. 그런데 보니까 참 좋았어요. 이렇게 일상속에서 좋은 거 보고 찾으면서 지내야 삶을 하루하루 버텨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오후도 잘 보내세요, 책나무님!!

그저좋은모리군 2017-01-17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새벽형 인간이라 어두울때 출근을 하는데 그 시간을 가장 좋아합니다. 나라는 사람에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서요. 여름도 좋아하지만 여름은 저녁이 좋아요. 여름저녁에 풀냄새 맡으면서 어슬렁 거리며 다니는게 좋아요.

다락방 2017-01-17 12:26   좋아요 0 | URL
저는 집에서 나오면 시꺼먼데, 그건 싫더라고요. 이렇게 까말때 나가고 싶지 않다..고 늘 생각해요. 그렇지만 회사에 도착하면 저렇게 붉은빛으로 변하는데, 그걸 보는 건 참 좋아요.
여름 저녁 풀냄새, 정말 좋죠!
올림픽공원을 좋아하는 남자랑 밤에 걸은 적이 있는데, 비가 내리고난 후여서, 풀냄새가 아주 강하게 났어요. 그 밤이, 진짜 좋았어요. 그 밤은 잊지 못하겠더라고요. 그 남자는 잊어도요.

transient-guest 2017-01-17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야말로 소소한 이런 아침의 행복 때문에 저도 새벽운동을 좋아합니다 오전 7시 정도에 운동을 마치고 나오든 아침의 쌉쌀한 공기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어요 ㅎ

다락방 2017-01-17 15:33   좋아요 0 | URL
제가 오늘 저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행복해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건 너무 싫어요 ㅠㅠ 자고 싶어요 ㅠㅠㅠㅠㅠㅠㅠ 그러나 비루한 밥벌이 때문에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출근해야 하지요. 하아-
그래도 죄다 나쁜 것만 있으면 사는 게 재미 없을텐데, 이렇게 사소한 거에 기뻐하기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우리 앞으로도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으면서 삽시다!

푸른희망 2017-01-17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철 이불밖은 너무너무 위험하지만 가끔 저런 풍경을보머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위험을 감 수할 만하군요 ~~^^ 사진이 좋아요

다락방 2017-01-18 08:14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어제 저 풍경을 보고난 후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오늘은 어쩐지 기운이 빠져서, 아, 회사생활이란 무엇인가, 직딩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변함없이 아메리카노는 제 앞에 놓여있고요. 오늘 하루도 잘 보냅시다, 푸른희망님!
 
포르투갈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시릴 페드로사 지음, 배영란 옮김 / 미메시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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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니다보면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생기곤 하지만, 포르투갈에 대해선 딱히 그런 게 없다. 어떤 일이 그곳에서 일어났다거나, 특별한 누군가를 만난 기억도 없다. 내가 포르투갈 리스본에 머무른 시간은 아주 짧았고, 머무른 그만큼의 시간만큼을 비행기 안에서 보냈으니까. 어떤 특별한 일은 전혀 없었고, 그저 아침에 밥 먹으러 식당에 가서 와인을 마셨고, 점심을 먹다가 와인을 마셨고 저녁을 먹다가 또 와인을 마셨다. 어딜 가든 와인을 자유롭고 저렴하게 마실 수 있어서 무척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연신 하늘을 보며 좋다고 감탄했던 기억과, 골목들을 걸으며 멈춰서 아름답다고 했던 기억. 나는 포르투갈어를 몰라서 굳이 길을 물을 때는 영어로 물었는데, 그렇게 그곳의 언어를 전혀 모르는채로 짧은 시간 있으면서도, 와 여기 왜이렇게 좋지 너무 좋다, 자꾸 말했다. 함께한 친구들에게 '나 포르투갈에서 살고 싶어' 라고 말했더니, 친구들은 '너무 멀어서 놀러오기 힘들어 다른 데로 가' 라고 했더랬다. 직항도 없어서 어딘가를 경유해서 아주 오랜 시간을 날아야 포르투갈에 닿을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비행기 안에서 아주 오랜 시간을 머물러야 한다. 비행기 안에 오래 있는 것은 무척 힘든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포르투갈에 좀 더 오래 머무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어딘가에 갈 수 있는 기회가 되면, 나는 지금은 아주 많은 다른 곳들을 가보고 싶어서 여기 저기 기웃거리고 티켓을 예매하지만, 언젠가 한 번은 또다시 포르투갈을 찾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거기에서 내가 어떤 특별한 일을 하거나 특별한 누군가를 만난 게 아닌데도. 자꾸자꾸 그곳에 가고 싶다. 그런데,



이 책을 넘기다보면, 아아, 포르투갈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해진다. 이 책 속의 남자는 포르투갈에 있는 친척으로부터 그림을 그릴 집을 빌리게 되는데, 아아, 너무 이상적인 삶이란 생각이 드는 거다. 포르투갈에 좀 장시간 머무르면서, 누군가의 집을 빌려 살게 된다면,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집 앞 골목골목을 산책하고 사람들과 눈인사를 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삶은 아름답지 않을까.





주인공은 아버지에게 편지를 쓴다.


<생각보다 더 오래 포르투갈에 머무를 것 같아요. 이 나라를 그리고 싶어졌거든요. 이걸로 어떻게 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라고 시작하는 편지. 


생각보다 더 오래 포르투갈에 머무를 것 같아요.

이 나라를 그리고 싶어졌거든요.

이걸로 어떻게 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 이 부분을 읽는데, 당장이라도 포르투갈로 날아가고 싶어졌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건 두렵고 낯설고 힘들겠지만, 포르투갈어를 배우는 건 어떨까, 또 잠깐 생각해봤다.

배우고 포르투갈에 가는 것보다는, 포르투갈에 가서 배우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결국은 외국에서 영주권까지 받으며 장기체류하게 될 나라가, 어쩌면 포르투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두근두근했다.



이 책 역시 나의 여행이 그러했던 것처럼 어떤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다. 주인공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는데, 그들 형제 이야기까지 나와서 그 구성원들에 대한 가족사가 딱히 내 흥미를 끌지도 않더라. 그런데 매사 의욕 없던 주인공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원하는 게 뭔지조차 모르는 주인공이, 포르투갈에 머무르면서 '여기 더 머무르기로 했다'고 하는 게, 왜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두근두근.. 정말 두근두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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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양배추 2017-01-16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달에 한 도시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제일 길게 갔었던 여행이 혼자 이탈리아로 11일이었어요. 그 11일도 쪼개서 세 도시를 돌아다녔는데...피렌체가 참 좋았거든요,저는. 그래서 아 여기서 한 달만이라도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어요. 다른 곳은 몰라도 피렌체만큼은 살면서 한번 더 가보고 싶은 곳이예요. 다락방 님처럼 피렌체에서 저에게 특별한 일이 일어나진 않았어요. 그래도 오롯이 혼자 그 곳의 골목길들을 걸어 다니고, 길가 벤치에 앉아 쉬기도 했던 그 기억들이 저에겐 특별하게 남아있습니다. 다음엔 가능하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그 길들을 다시 걷고 싶네요^^
항상 아침에만 글 올려주셔서 저녁엔 안 들렸었는데, 반갑게 글 발견해서 너무 좋았어요. 좋은 저녁 되시길!

다락방 2017-01-17 08:23   좋아요 0 | URL
히힛. 사각양배추님, 안녕?
이탈리아 11일이라니, 길게 다녀오셨네요. 저는 11일간 나가본 적도 없어요. 기껏해야 9일을 가지고 그 안에서 비행기 타고 왔다갔다하는 시간까지 다 써야 하기 때문에 짧게 다녀오곤 하는데, 직장에 다니고 있는 저에게는 이게 최선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길게 갈 수 있을 때 가야지, 하고 기다렸다가는 그 때가 오지 않을지도 몰라요. 이 직장을 관둬야 가능한데, 그때는 제 체력이 바닥일지도 모르고요. 그래서 저는 짧게 다녀오더라도,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가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먹자!! 고 힘차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포르투갈에 다시 가보고 싶어요. 말도 안통했으면서 뭐가 좋다고 거길 그렇게 또 가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히힛. 그렇지만 이렇게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살아가는 작은 기쁨인 것 같아요. 나중에 사각양배추님도 피렌체에 가시고 저도 리스본에 가서 장기간 머무르다가, 그 시간들속에 언제쯤은 중간지점에서 만나요! 같이 와인 한 잔 하십시다! ㅎㅎ


아, 제가 가끔 기분이 동하면 저녁에도 글을 쓰곤 하는데, 대체적으로 아침에 다다다닥 쓰는 편이기는 해요. 어제 아침에 쓴 길고도 긴 페이퍼는 읽으셨습니까? 애쉬톤 커쳐와 데미 무어가 등장합니다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라면서 내 친구처럼 말하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각양배추님!

그저좋은모리군 2017-01-17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르투갈에 가보지 못했네요. 계획을 짜봐야겠어요. 가본곳중에 저는 바르셀로나에 살고 싶어요. 음식도 딱 입에 맞고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7-01-17 17:49   좋아요 0 | URL
저는 장기적으로는 미국에 살고 싶어요. 사는 건 미국에서 살고 싶은데, 포르투갈에서도 장기 체류 해보고 싶어요. 길면 육개월 쯤이요. 짧으면 한달에서.
아.. 떠나고 싶네요. 회사가 사람을 갉아먹는데... ㅠㅠ

보슬비 2017-01-17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좋았어요. 뭔가 따뜻한 느낌도 좋았고, 와인 마구 마실때도 좋았어요.^^

다락방 2017-01-18 08:13   좋아요 0 | URL
이 책 신기하게 좋더라고요, 보슬비님. 뭔가 이렇다할 에피소드라든가 흥미로운 줄거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묘하게도 포르투갈에 가고 싶은거예요. 주인공이 포르투갈 좋다고 막 찬양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포르투갈에 가서 장기체류하고 싶어졌어요. 포르투갈 가서 아침 점심 저녁 와인 마시면서 여유롭게 지내다 오고 싶네요. 하아-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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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려있는 단편들을 읽노라면, ‘이 작가, 술 마시는 내공이 보통이 아니구나‘ 싶다. 소설도 좋았지만 맨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말>이 특히 좋았다. ‘이 판에서 먼저 일어나자는 말을 할 수 가 없다‘고 말하는 작가라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어휴, 나는 이제 술 좀 그만 마셔야겠다. 줄여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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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7-01-16 1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나왔을 때 각 신문사 문학 담당 기자들이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라고 그랬던가 하는 신간서평 읽었어요. 술을 사랑하시는 분으로 유명한가봐요. 저도, 술을 끊을 생각은 없지만 줄이긴 해야할텐데 말이죠ㅠㅠ

다락방 2017-01-17 08:25   좋아요 0 | URL
와 진짜 술 마시는 장면 읽을 때마다, 와 이 분 술 마시는 내공이 보통이 아니시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나도 마시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아직 숙취에 헤매이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어휴 그만 마셔야지, 라는 생각이 저는 들더라고요. ㅎㅎ

저도 이제는 술 좀 줄이려고요. 한 번에 마시는 양을 줄이지는 못할 것 같고, 일주일에 마시는 횟수를 줄여볼 참입니다. 일단 이번주에는 월~수 는 마시지 않고 연 사흘을 보내기로 했는데, 될지 모르겠어요. 어제는 안마셨어요. 화이팅!!
 

그날 그는 헬스클럽 맞은편 복도 유리 앞에 뒷모습을 보인 채 서 있었다. 그녀는 따뜻한 녹차 캔을 두 손으로 감싸고 그를 향해 사뿐사뿐 걸어갔다.

뭘 어째?

갑자기 그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그녀는 걸음을 멈췄다. 두꺼운 팔 근육에 가려 몰랐는데 그는 고개를 조금 튼 자세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그녀가 조용히 돌아서려는데 그가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년 그거, 미친년 아냐?

그녀는 그가 그런 투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아니,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개뿔!

그의 목소리가 끈끈이처럼 그녀를 끌어당겼다.

그년은 미친년이고 그년한텐 그래도 된다고.

그녀는 발을 끌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뭐냐, 이게? 뭐냐고, 씨발!

그녀는 헬스클럽에 들어와 사각의 기둥 뒤에 숨었다. 손에 쥐고 있던 녹차 캔이 땀 때문에 미끄러져 떨어졌지만 줍지 않았다. 잠시 뒤에 그가 굳은 얼굴로 지나가는 옆모습이 보였다. 잘생긴 얼굴과 늘씬한 키와 자갈주머니처럼 울퉁불퉁한 근육질 몸이 징그럽고 파렴치하게 생각되었다. (<층>, p.235-236)

















남자는 헬스 트레이너다. 이 남자가 일하는 헬스장에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여자가 친구와 함께 운동을 하기 위해 찾아든다. 헬스장에서 만난 둘은 전혀 다른 서로의 모습에 조금씩 호감이 간다. 여자는 남자가 반듯한 청년이라 생각해고 남자는 여자가 우리 누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마음에 든다. 여자가 연상이었다.


남자에게는 정신지체를 가진 누나가 있다. 남자는 누나가 너무 챙피하고 그 누나의 존재를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다. 어느 날 여자와 함께 술자리를 갖는데 우연히 남자의 사촌이 합석하게 되면서, 남자는, 자신의 누나에 대한 이야기가 혹시 입밖에 날까봐 조마조마해한다. 감추고 싶은 게 있다면, 그것이 드러날까봐 초조해하는 게 모든 사람의 심리가 아닌가. 혹여라도 누나 얘기가 나올라치면, 그는 얼른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돌린다. 그 날 그 자리에서 누나의 존재를 여자에게 드러내지 않았을 거라고, 무사히 넘어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날 이후로 여자가 헬스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몇 번이나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집 앞에 찾아가 먼발치에서 그녀의 모습을 보기는 했지만, 자신이 전화를 걸자 받지 않는 여자를 보고 남자는 절망한다. 아, 누나의 존재를 알게됐구나, 나에게 있는 미친 누나의 존재를 알게 됐구나. 그래서 나를 멀리하는구나.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고 여자를 미워하고 화를 낸다. 그렇지만, 여자는 그의 누나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그의 누나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로, 우연히 그가 자신의 어머니와 통화하는 걸 듣게 된거다. 그는 통화중에, 그녀가 듣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한 채로, 거칠게 말하고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른다. 여자가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던 모습이다. 나한테는 저렇게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여자는, 남자가 누구와 통화하는지는 알지 못하고 통화중에 욕을 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그렇지만 저런 거친 통화를 듣고 그를 멀리하게 된다. 그간 반듯한 청년이라고 생각한 그는 어디에 있는걸까? 그는 누구였던걸까?




언젠가 그가 조금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저 의외로 저금 많이 해요. 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헬스클럽에서 일하고 밤이면 일식집에서 일해 번 돈의 일부를 부모님께 보내드리고 일부는 월세를 내고 남은 건 모두 저축한다고 했다. 먹는 데 돈이 안 드니까요. 그는 아침엔 단백질 파우더를 먹고 점심엔 닭가슴살 캔 하나에 밥 한공기를 먹고 저녁은 일식집에서 회나 생선으로 때운다고 했다. 탄수화물은 점심에 먹는 밥 한공기가 전부라고 했다. 그녀가 그렇게 먹고 어떻게 사냐, 했더니, 확실히 근육이 좋아지니까요, 했다. 그녀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인태씨는 참 반듯한 청년이네요! (<층>, p.236-237)



차곡차곡 돈을 모으고, 근육이 좋아져야 한다면서 식단을 조절하는 이 남자를, 그녀는 반듯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헬스장에서 그에게 주기 위해 조심스레 녹차 캔을 들고 접근했던 거다. 그러다 그 무지막지한 통화를 듣게 되고, 이제 그녀는 그가 과거에 했던 말들을 떠올리며 아,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나쁜 짓을 저질를 수도 있었을 사람이구나! 생각한다.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도 젊었을 때 나쁜 짓도 좀 했어요. 그때 그녀는 지금도 젊은데, 하고 웃었다. 그런데……나쁜 짓이라면 어떤 나쁜 짓이었을까. 얼마나 나쁜 짓이었을까. 어깨에 있는 장미 모양의 작은 문신 같은 것, 술 먹고 몇번 싸운 일이 있다든가 클럽에서 여러 여자들을 만났다든가 하는 그런, 누구나 하는 작은 나쁜 짓이었을까. 아닐 것이다. 그녀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는 나쁜 짓, 나쁜 관계가 있을 것이다. 한때 그녀는 그가 발라준 남미 대륙 모양의 굴비를 먹으며 그와 함께 남미를 여행하면 어떨까 상상한 적이 있었다. 어리석고 어리석었다. 아무려나, 그녀는 더이상 그의 삶이 궁금하지 않았다. 거칠고 팍팍했을 것이 분명한 그의 삶이 무섭게 느껴졌다. (<층>, p.237)




나는 물론 나한테 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 누구보다도 나를 소중하게 대해주고 특별하게 대해준다면 참 좋구나, 생각할 것이다. 나 역시 그사람을 마찬가지로 소중하게 대할테고. 그러나 나를 그렇게 소중하게 대하면서, 나로 하여금 '반듯하게 잘 자랐구나, 생각하게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고 욕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때도 내가 그 사람을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위의 단편 <층>에서처럼, 호감을 가지고 다가서려는 단계에서 나 역시 저런 모습을 목격했다면, 어휴, 이런 사람하고는 시작하지 말아야겠다, 라고 생각할 것 같다. 나는, 나한테 잘하는 사람을 물론 좋아하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면서 나한테만 잘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대하느냐도 중요하다. 세상 모두를 하찮게 보지만 너는 특별하게 보고 있어, 라는 말에 내가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건 전혀 아니다. 나는 그런 특별함, 필요없다.



예전에, 지금은 아주 오랜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는데, 애쉬톤 커쳐와 데미 무어가 연애하게 된 그 시작에 대해 연예프로그램에서 다룬 적이 있었다. 애쉬톤 커쳐와 데미 무어와 데미 무어의 친구, 이렇게 세 명이서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데미 무어가 자신의 아이들로부터 온 전화를 받게 된거다. 애쉬톤 커쳐는 데미 무어가 아이들과 통화하는 걸 듣고는 그녀에게 반했다고 한다. 너무 다정해서. 그러니까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주는 계기는 아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대하는 태도도 거기에 한몫을 한다는 거다. 나한테 잘하는 걸 보면 다른 사람한테 잘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은데, 이렇게 우연히 누군가를 막대하는 모습을 맞닥뜨리고 나면, 와, 이 사람 뭐지?? 하며 뒷걸음질 치게 되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마찬가지로 일상 속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잘하는 모습을 본다면 호감도가 상승하는 것도 분명할 것이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나한테'만' 잘하는 사람 보다는 누구를 대하든 똑같이 잘하는 사람들이 좋다. <층>속 여자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내가 호감을 가진 남자가 누군가와 저렇게 전화통화 하는 걸 듣게 됐다면, 그 길로 연락처에서 그 사람을 삭제했을 것 같다.



자신이 호감 가는 상황에서는 친절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 막말하고 욕을하고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는 것은, 사실 저 남자만의 모습은 아니다. 여자가 교수로 있는 곳에서 다른 남자 교수 역시 마찬가지인데, 술을 더 마시자고 했는데 그걸 거절하고 일어나려는 여자교수들한테 갑자기 성질을 내는 거다. 그 전까지 친하지도 않았고 별로 관계도 없었던 사람들이었는데...




"아 젠장, 꼭 이렇게 판을 깨셔야겠나?"

김의 말에 그녀는 갑자기 견딜 수 없는 짜증을 느꼈다.

"강쌤 가시면 나도 갈래요."

윤이 말했다.

"내가 아주 어이가 없어가지고," 김이 맥주잔에 소주를 따르며 소리쳤다. "진짜 당신들 왜 이래? 왜 맨날 이랬다저랬다 해?"

"누가 이랬다저랬다 해요? 아까부터 먼저 가겠다고 했잖아요?"

그녀는 존댓말을 한 자신에 대해 염증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번을 말해, 김선생? 내가 지금 상태가 심히 안 좋다고."

김이 그녀를 외면하고 윤을 보았다. 윤이 미안한 웃음을 지으며 가방 쪽으로 손을 뻗자 김이 손을 툭툭 털었다.

"네, 네, 가세요들. 가라고, 씨발. 아, 기분 개 같네!" 

그녀가 걸어나올 때 뒤에서 돈 가져가! 하는 김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녀는 돌아보지 않았다. (<층>, p.235)



아, 진짜 너무 싫다. 세상에는 술을 마시고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다른 모습이라기 보다는 아마도 이성이 있을 때는 숨겨왔던 자신의 진짜 모습일 것이다. 김은, 자신과 함께 술 마셔줄 때의 윤과 강을 좋아했지만, 먼저 가겠다고 하자 존대하는 사이에서 갑자기 씨발 이라는 욕을 해버리는 것이다. 와.. 진상진상.. 진짜 지긋지긋하다. 술을 마시는 건 나도 몹시 좋아한다. 그리고 즐겁기 위해서 술을 마신다. 만약 술을 마시다가 내가 이제 집에 가고 싶어졌다고 했을 때, 즐거운 시간이 이제 끝나는 것에 대해 아쉬워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씨발 이라고 하면서 화를 내야할까. 저런 사람이라면 내가 다음에 저 사람과 또 술을 마실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내가 왜? 




맥줏집을 나와 전철역을 향해 가면서 그녀는 살짝 진저리를 쳤다. 꼼장어 토막에서 밀려나오는 투명하고 길쭉한 내장들처럼, 남자들 속에 숨어 있다 슬금슬금 비어져나오는 왜소하고 더러운 내면의 고추들을,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보아왔고 아마 오래도록 보게 될 것이었다. 견딜 수 없이 지긋지긋했다. (<층>, p.237-238)




아 정말 너무 싫다. 왜소하고 더러운 내면의 고추들....나 역시 함께 술을 마셔본 뒤의 태도로 연락을 싹 끊어버리게 된 남자들이 더러 있다. 말을 놓고 싶다고 해서 놓아라, 했더니, 놓은지 이틀 째에 갑자기 '지랄한다' 라고 내게 말을 한 남자가 있어서, 와- 이 남자 뭐지, 하고 당황했더랬다. 그 남자와도 역시 연을 끊었다. 말을 놓는다는 게 그렇게 함부로 한다는 걸 의미하는 줄은, 그 남자 때문에 알았다. 엊그제만 해도 나랑 이랬어요 저랬어요 하던 남자가 갑자기 '지랄한다' 라고 말하다니... 그는 그 상황에서 내가 웃기다고, 같이 웃자고 한 소리였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나한테 '지랄한다'고 말하는 남자랑 같이 웃을 수 없다. 내가 왜 지랄한다고 말하는 남자랑 함께 웃어야 하지?




책의 뒷편에 신형철이 쓴 작품 해설이 들어있다. 읽다가 말았는데, 신형철은 <층>에 대한 얘길 하면서 정신지체 누나를 둔 것에 대해 여동생이라고 써놨더라. 거기까지 읽고 그냥 해설 건너뛰기로 했다. 착각할 수 있고 아주 별 거 아닌 사소한 틀림이긴 하지만, 그리고 해설의 내용에 누나이냐 여동생이냐가 크게 중요한 것도 아니지만, 읽기 싫어졌다. 몇 해전인가, 신형철을 아주 좋아하던 시간들이 있었는데... 후훗... 이젠 그저 과거일 뿐이야........








주말에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고 싶어서 상영관과 시간을 검색하다 마땅한 걸 찾지 못하던 중에, 브래드 피트와 마리옹 꼬띠아르가 주연한다는 이 영화 《얼라이드》를 알게 됐고, 그래서 충동적으로 이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아니, 둘 다 너무 멋진 사람들이잖아?


영화를 보는데, 와, 알고 있었지만 마리옹 꼬띠아르가 너무 예쁜 거다.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나온 장면에서는, '와 빨간 립스틱 겁나 잘 어울리는 여자구나!' 했는데, 이어서 나오는 연한 핑크빛의 립스틱을 바른 모습도 또 너무 예쁜 걸 보고는, '아, 그냥 예뻐서 다 잘어울리는 거구나' 했다. 영화 보면서 '영화 다 보고 빨간 립스틱 사러 가야지' 했다가 정신을 차렸달까.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영화가 막 재미있고 그런건 아닌데, 마지막에 줄줄 눈물을 흘렸다 ㅠㅠ 그러면서 막 감정이 폭발해가지고 ㅠㅠ 아, 매 순간순간이 정말 얼마나 소중한지, 이 순간순간에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껏 사랑하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껏 사랑하면서 마음껏 즐겁게 지내야지. 사랑한다면 사랑한다고 자꾸 말하고 표현해서 상대에게 알게 해야지. 영화를 다 보고 극장을 나서면서 '아, 전화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너무 간절해졌다. 목소리 듣고 또 들려주고, 그리고 그렇게 좋아한다는 감정을 지금 당장 말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전화를 했는데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았고, 아아, 지금, 지금 말해야 하는데, 하면서 초조해져서는 전화기를 들고 왔다갔다 서성였다. 잠시 후에 전화가 왔고, 나는 상대에게 좋아한다고 말했다. 영화를 보고나니 감정이 폭발했어, 좋아한다는 말을 해야 했어!




어제는 쉬었다. 일요일이니만큼 푹 늦잠을 잤고, 한껏 게을렀다. 세수도 안한 채로 있다가 동생네 식구들을 맞았고, 아이들과 놀다 보내고 나서는 청소를 했고 책정리도 했다. 그러다 침대에 누워서는 친구랑 통화도 했는데, 아, 정말 좋았다. 그러니까 이렇게 내 방 침대에 누워서 좋아하는 사람과 조잘조잘 수다를 떨 수 있는 시간이라니, 이것은 얼마나 소중한가! 일요일은 이렇게 보내라고 있는 것이구나, 새삼 깨달았다. 쉬어야 해.






오늘 아침엔 출근준비를 하며 옷을 입으면서 '아, 빨리 퇴근하고 싶어!' 라고 말했다. 옆에 계시던 엄마는 내게 '야, 너 아직 출근도 안했어..'라고 하셨지.... 인생.............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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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미 2017-01-16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긋~

다락방 2017-01-16 11:08   좋아요 0 | URL
어느 부분에서 긋~ 이 나오는 건지 모르겠지만 여튼 긋이라니 다행이네요 ㅎㅎ

비연 2017-01-16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락방님. 이 영화 추천이신가요? 막 망설이고 있는데...
일요일은 그저 뒹구르르르르르 이게 필요해요. 그래도 월요일 아침이면.... 퇴근이 생각나곤 하지만요..ㅜ

다락방 2017-01-16 11:09   좋아요 0 | URL
음.. 굳이 뭐 추천까지 가진 않아도 될 것 같고요, 최고의 배우들이 나오니만큼 호기심에 봤어요. 막판에 제 감정을 엄청 건드려놓긴 했지만, 그게 그렇게 길게 가진 않는 것 같아요. 그래도 두 배우 참 멋졌어요...

아아 곧 점심시간입니다. 점심 맛있는 거 드세요, 비연님!

꼬마요정 2017-01-16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제도, 어제도 일했고 ㅠㅠ 오늘도 열심히.. ㅠㅠ 지금 사실 알라딘도 할 시간이 없을만큼 엄청 바쁜데 잠시 이러고 있네요.. 담주면 끝이긴한데.. 기한이 있다는 건 사람을 참 몰아치네요. 진짜 시간이 무슨 화살 말고 빛보다 빨리 가요ㅠㅠ 그래도 감성 충전 좀 하고 다시 일하러 갑니다~^^

다락방 2017-01-16 11:11   좋아요 0 | URL
아아 꼬마요정님... 주말에도 일하셨군요. ㅠㅠㅠ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니, 다 지나갈 것이다...하고 생각하세요 ㅠㅠ 저도 지난주에 회계감사 있어서 대응하느라 스트레스 받았는데, 계속 저한테 스스로 말했어요. 끝날것이다, 끝날 것이다... 하아-

바쁠수록 스트레스 받을 확률이 높을텐데, 스트레스 조절 잘 하세요, 꼬마요정님. 저는 스트레스에 취약해 자꾸 휩쓸려 가려고 해요 ㅠㅠ 잘 버티세요, 꼬마요정님!

mira 2017-01-16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영화를 봤는데 선남선녀라 좋겠다 이랬는데 , 보고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할 상대가 없어서 그런가 ㅎㅎ

다락방 2017-01-16 11:1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둘다 멋지죠. 근데 저는 특히 마리옹 꼬띠아르가 너무 예뻐서 ㅋㅋㅋ 무슨 옷을 입어도 예쁘더라고요. 그냥 다 예쁨. 정말이지 사랑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겠더라고요. ㅠㅠㅠㅠㅠ

mira 2017-01-16 11:15   좋아요 0 | URL
아 사랑에 빠지고 싶은데 이제 나이들어 잘 안되네요. ㅠㅠㅠㅠ

다락방 2017-01-17 08:26   좋아요 0 | URL
굳이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아도 삶을 살아가고 유지하며 또 즐겁게 보내는 것에도 무리는 없는 것 같아요, 미라님. 물론 사랑에 빠진다면 또 그 사랑에 대한 재미도 있지만요.
아직 사랑에 빠지기 전이라면, 빠지지 않은 채로 충분히 재미있게 지내도록 합시다. 재미있는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또 맛있는 것도 먹고 여기저기 낯선 곳을 다니기도 하고 그게 싫으면 침대에 하루종일 드러누워 지내면서, 행복하게 지냅시다!
:)

moonnight 2017-01-16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신형철 평론 읽다가 여동생이라 한 데서 거슬려가지고 계속 찜찜하더라구요. -_-
오전 근무 마치기도 전에 오늘이 금요일 같았어요. 힘든 월욜ㅠㅠ 퇴근하고싶어요ㅠㅠ

다락방 2017-01-17 08:27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사실 별 거 아닌 부분이긴 한데, 갑자기 짜증이 나서... 평을 끝까지 못읽겠더라고요.

월요일이 지났습니다, 문나잇님. 화요일이 시작됐어요. 화요일도 잘 보내고 우리 일주일 또 힘내서 잘 지내봅시다!

2017-01-16 15:20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7 08:28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8 12:19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7-01-16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형철이 그런 실수를!
저도 다소 실망했지만, 아마 신형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렇게 썼다면 뭐, 그럴수도 있겠구나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니, 아예 평론은 읽지 않고 넘어갔을지도 모르고요. 다른 사람이 했으면 관대할수도 있었을 일인데 다락방님처럼 저도 실망을 금치 못하는 것은 다 그 <기대와 관심>때문인가봅니다.

다락방 2017-01-17 08:30   좋아요 0 | URL
사실 저는 신형철에게 실망한지 좀 되었어요. 그렇게나 좋아했었는데, 최근 책 서문을 읽고나서부터 실망이 시작되었죠. 이게 부질없는 게, 그 사람은 그대로인데 제가 환상을 품었다가 사그러들고 그러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기대를 하고 실망을 하는 것들 모두 온전히 제 몫인거죠. 그런 참에 저런 실수를 보니 흐음... 하면서 좀 실망에 쐐기를 박는 기분이었어요. 하핫.

시이소오 2017-01-16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마리옹 꼬띠아르. 그녀가 동시대 사람이란게 믿기지 않아요. 고전 흑백영화에 어울린달까요?

다락방님은 빨간색 정말 좋아하시는듯. 예전엔 스페인 영화였던가요? 그 영화 보고 빨간색 하이힐에 반해 기어코 사시지 않았던가요?

열정적인 다락방님 ^^

다락방 2017-01-17 08:32   좋아요 0 | URL
시이소오님 말씀처럼 고전 흑백영화에도 너무나 잘 어울리는 배우죠. 그냥 저 배우라서 잘 어울리는건데, 저는 별 생각없이 따라하려고 했네요. 아하하하하하하하하.
네, 맞아요, 저는 빨간색 너무 좋아해요. 빨간 립스틱 빨간 하이힐 너무 좋아하고요.
검정색 옷이나 검정색 구두를 별로 안좋아해요.
엄마가 며칠 전에 저 입으라고 검정색 코트 사오셨는데, 저는 안입는다고 계속 그래가지고 반품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마 나 검정색 코트 안입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 주의 시작, 잘 하고 계십니까? 월요일은 이미 지나갔습니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