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타이밍인가봐요.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에서 여자는 잠시 여행차 들렀던 이탈리아에 집을 구입하게 되고 그곳으로 옮겨와 살게 된다. 다 망가진 오래된 집을 수리하고 고쳐 자기가 살만한 자기만의 집으로 만들면서, 그녀에게는 소망이 생긴다. 자신의 집에서 근사한 결혼식이 열리는 것, 새 생명의 탄생을 지켜보는 것. 그녀는 남편과 이혼했고 또 친구들과도 떨어져 이곳으로 혼자 온 터라 그녀가 바라는 바가 당장은 현실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탈리아에서 잠깐 끌리는 남자를 만났지만 그와 어긋나 헤어졌으므로. 


그러나 그녀가 이탈리아에 적응해 살면서 이웃들과 교류하게 되고, 어찌하다 보니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집 수리 일을 도와줬던 청년의 결혼식이 열리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친구였던 레즈비언 커플이 헤어져 그 중에 임신한 여자쪽이 그녀가 있는 곳으로 오게 되고, 그곳에서 아이를 낳는다. 결혼식이 열리는 것, 새 생명을 보는 것. 이 두 가지 소원의 당사자가 그녀 자신이 되지는 못했지만, 결국 그녀는 원했던 바를 다 이루게 되는 것이다. 정확히는 아니지만 그러나 근접하게. 


결국 사람은 자신이 뜻하는 바대로 살게 되는 것 같다. 간절히 원한다면 그쪽 방향을 보고 걷게 되어 있으므로, 그 목적지에 도착하지는 못한다 해도 근처까지는 갈 수 있는 거다. 아예 엉뚱한 데로 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갑자기, 뜬금없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면,



나는 늘 내 알라딘 장바구니 비워주는 사람을 원해왔다. 갖고 싶은 책을 말해봐, 라고 해서 내가 말하면 다다다닥 사주는 사람을. 이건, 뭔가 멋지잖아? 그런데 오늘,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난 것!!

새벽에 친구로부터 받은 쪽지에는 갖고 싶은 책 몇 권 골라봐라, 라고 적혀있었고, 나는 겸손을 모르는 채로 내 보관함에 있던 책 여러권을 건네며 '이중에서 알아서 선택해줘'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란 녀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친구는 나를 너무나 잘아는 나머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단 토스트 책은 꼭 줄게' 라고 했고, 그렇게 슝- 내게 선물이 도착했다.




아 졸많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토스트 책도 있고!! 꺅 >.<

















아니 나는 무슨 생일도 아닌데 이렇게 책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나 신나는 것!! 진짜 좋아 죽겠다. 이 친구는 가끔 내게 간식박스도 커다랗게 보내주고, 그 안에 내가 먹어보지 못했던 초콜렛들도 넣어준다. 히죽히죽. 그리고 이렇게 가끔 내 장바구니를 털어줘.... 책 뭐 갖고 싶어? 묻고는 막 보내준다. 멋져! 나는 늘 바라왔던 사람을 이미 친구로 가지고 있는 거였어. 행복해. 멋져. 짜릿해!! 아 졸 행복해서 미칠것 같다. 히죽히죽. 


이만큼만해도 나는 오늘 충분히 많이 웃었는데(지금도 웃고있다), 이 친구가 선물을 보내며 준 메세지를 보고 완전 핵빵터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마우면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눈물이 난다 너무 웃겨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여태 받은 선물메세지들 중에서 최고로 강력한 메세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내가 여태 살면서 오빠 라는 호칭을 써본적이 별로 없어서 ㅋㅋㅋ 이 호칭을 보는 순간 그냥 현웃터짐 ㅋㅋㅋㅋㅋ 육성터짐 ㅋㅋㅋㅋ 이걸 막 사람들한테 말하고 같이 웃고 싶어서 미치겠다. 그래서 나를 알고 이 친구를 아는 다른 친구에게 이 얘기를 해줬더니 이친구도 푸하하하 터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러니까 내가 오빠란 호칭은 사촌 오빠들한테나 써왔지 잘 안써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색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뭐 꼭 진짜 부르겠다는 게 아니라 ㅋㅋㅋㅋㅋㅋㅋㅋ부르는 상상하니까 너무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일전에도 내가 페이퍼에 언급한 적이 있지만, 대학교1학년때 편의점 알바할 때, 같이 근무하던 남자알바가 군대를 가게 됐는데, 우리가 잘가라 이러면서 같이 술도 마셨는데, 어쨌든 군대에 가서는 울집에 전화를 해가지고는 '락방이 좀 바꿔주세요' 한 거다. 이 전화를 울아빠가 받아서 '자네는 누군가' 라고 했고, '락방이랑 같이 일한 오빤데요'라고 남자알바가 말했더니 울 아빠가 '나는 자네를 낳은적이 없는데 자네가 왜 우리 락방이 오빤가' 해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오빠가 나중에 편의점에 전화해서 '니네 아빠 장난아니시더라' 이러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이 생각나는구먼. 어쨌든 나는 '오빠' 대신 '형'을 쓰거나 '~씨'를 쓰거나 '~님'을 쓰거나 했는데, 나보다 나이 많은 남자사람이라고 '오빠'라고 할 생각은 안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쨌든 선물메세지에 대한 답장으로 



오빠!




라고 보내놓고 계속 웃고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오늘이 너무 좋아 너무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이 오빠(!!)한테 이런 페이퍼 써도 되냐고 물었더니 이 오빠(!!)가 된다고 하면서 '충격이 컸나보네' 라고 한다. 아 너무 웃겨서 눈물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좋은 하루다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 오빠 덕이에요 ♡

오빠 짱짱맨 ♡





(아..너무나 어색한 것.....)


(아..이런 사소한 페이퍼에도 언급할 책이 있고 연결시켜 얘기할 수 있다니, 나는 진짜 대단한 것 같다. 졸멋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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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ri 2016-05-04 11:42   댓글달기 | URL
아 진 짜ㅡ 락방이님은 넘 멋찌고 웃기심 ㅎㅎㅎ

다락방 2016-05-04 11:44   URL
그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생각해도 저는 멋지고 웃긴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이소오 2016-05-04 11:43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 오빠!하시길래 `어머, 저요?`하고 들어왔더니 다른 좋은 오빠가 계셨군요
ㅋㅋ 웃다 가요 ~~
오빠덕에 기분좋은 하루되시길 ^^

다락방 2016-05-04 11:45   URL
ㅎㅎㅎ 시이소오님 근데 저보다 오빠 맞긴 하십니까? 제가 누나일 것 같지 않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더 나이 많을 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네, 좋은 하루 보내고 있습니다. 시이소오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우히힛

시이소오 2016-05-04 11:55   URL
다락방님이 간혹 올리신 사진에서 피부의 결을 보아 제가 `오빠`라고 확신합니다...... 설마 보톡스 아니죠? 덕분에 낄낄거리다 가요^^

다락방 2016-05-04 11:57   URL
아....................그거슨...뽀샵 어플입니다 ㅠㅠ 제 피부가 아닙니다 ㅠㅠ 뽀샵이 저지른 짓의 결과입니다 ㅠㅠㅠ

blanca 2016-05-04 12:32   URL
어머, 전 시이소오님이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ㅋㅋ 남자였어요?

다락방 2016-05-04 13:57   URL
저도 여자분인줄로만 알고 있었다가 얼마전에 글에서 `누나`라는 호칭을 봤던가, 그래서, 아, 남자분이셨구나, 했습니다. ㅎㅎㅎㅎㅎ

가넷 2016-05-04 11:47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그런데 전 오빠라는 말이 왜 이렇게 어색한지 들을 일도 잘 없기는 하지만 가끔 들을때면 소오름이...^^;;

다락방 2016-05-04 11:49   URL
저도 겁나 어색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차마 육성으로 `오빠` 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막 몸이 베베 꼬여요. ㅋㅋㅋㅋㅋ

건조기후 2016-05-04 11:47   댓글달기 | URL
겸손을 모르는 채로 ㅋㅋㅋㅋㅋ 그런 상황에 왜 겸손을 알아야 합니까 ㅎㅎㅎㅎㅎ
책 장바구니 털어주는 남자라니! 지금까지 들어본 온갖 멋진 남자 중에 진짜 최고로 짱이네요!

다락방 2016-05-04 11:49   URL
진짜 장난 아니죠! 최고 멋진 남자 맞아요. 세상에서 제일 멋진 남자사람임. 이런 남자사람이 내 친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다 제가 멋져서 가능한 거 아니겠습니까.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난척이 안멈춰져요 ㅠㅠ

heima 2016-05-04 11:48   댓글달기 | URL
아 덕분에 유쾌한 점심시간이에요! 락방님 최고 ㅋㅋ

다락방 2016-05-04 11:50   URL
헤이마님도 유쾌하셨다니 좋구먼요! 우히히히히. 저는 쫌 최고이긴 한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blanca 2016-05-04 12:33   댓글달기 | URL
아, 좋겠다, 다락방은, 오빠 있어서 ㅋㅋ 무엇보다 장바구니를 비워주는 오빠라니 이건 완전 센스만점이네요. 나는 책 좀 그만 사라는 오빠 있어요.--;;

다락방 2016-05-04 13:58   URL
진짜 짱이죠! 장바구니 비워주는 오빠가 진짜 멋진 오빠 ㅋㅋㅋㅋㅋㅋㅋㅋ 세상에서 최고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한 두 권도 아니고. 이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갑자기 그 노래 생각나요. 가수 이름은 모르겠지만, 이런 가사가 나오는 노래에요.

넌 내꺼중에 최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6-05-04 12:35   댓글달기 | URL
상품 내역만 보고도 두근거리네요. 리얼로 받은 다락방님 심정이 이해가 되어요. 더 웃으셔도 되겠어요(^o^)/

다락방 2016-05-04 13:58   URL
그치요? 정말 신나는 하루입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제가 날아갈 것 같긴 하지만(응??) 너무나 신나고 아름다운 하루인 것입니다. 이런 오빠라면 오빠라고 충분히 불러줄 수 있어요!! >.<

건조기후 2016-05-04 12:55   댓글달기 | URL
알라디너의 선택에 토스트 책이랑 오빠! 올라와있는 거 너무 웃겨요 다락방님 ㅎㅎㅎㅎㅎ 아 웃겨. 웃겨. ㅋㅋㅋ

다락방 2016-05-04 13:59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토스트 책이랑 오빠를 알라디너의 선택에 올릴 수 있는 건 저 밖에 없을 겁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만세!!!!!!!!!!!!!!!

세실 2016-05-04 15:45   댓글달기 | URL
졸 멋지다!!!!!! 나두 그런 오빠 있었음 좋겠어요. 울 신랑? 음.......없었던 일로^^

다락방 2016-05-04 15:58   URL
짱이죠!!!!!!!!!!!!!!!!!! ㅋㅋㅋ 이게 다 제가 가진 복입니다. 으하하하핫
덕분에 신나는 하루가 되었어요. 히힛.

앤의다락방 2016-05-04 23:39   댓글달기 | URL
부러워요! 으앙~~~!!!!전 어제 제 손으로 장바구니를 비웠지요! 하하핫!

알케 2016-05-05 21:44   댓글달기 | URL
부르시길래 왔는데 ..ㅋ
 

어제 드라마 『아이가 다섯』에서는 남주인 '안재욱'이 여주인 '소유진'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이 나왔다. 안재욱은 집 마당으로 나와 소유진에게 전화를 걸었고 소유진은 자신의 방에서 전화를 받다가 '당신 노래 잘한다던데 지금 좀 불러달라'고 말했다. 안재욱은 그래서 수화기 너머로 '젝스키스'의 <커플>을 나름의 발라드 버전으로 불러주었다. 소유진은 수화기 너머에서 연인의 노래를 들으며 행복해했다. 안재욱이 노래를 불러주던 장면을 그의 장모가 우연히 보게된다. 이 지극히 사적인 장면을.



그러자 이십대 중반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간혹 회사의 비상구 계단을 찾는데, 그때도 회사의 비상구 계단에 가고 싶어 빼꼼 문을 열었던 거다. 그런데 거기엔 이미 나보다 먼저 울 회사 남자동료인 L 이 와있었다. 내게서 등돌리고 있었으므로 그는 나를 보지 못했는데, 그는 수화기 상으로 상대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다. '신해철'의 <일상으로의 초대>였다. 


나는 너무 놀라서 아무말도 못하고 그냥 문을 살짝 닫고 나왔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당사자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너무나 사적인 장면이기도 했지만, 회사에서 내가 아는 동료 L 은 누군가에게 노래를 불러줄만한 사람으로 상상되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러나 사실 동료로 만나거나 친구로 만난 사람이 연인으로서는 어떤 모습일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는 내게 그저 느리고 답답한 동료였는데 연인에게는 노래를 불러주는 사람이었던 거다. 우리는 그 사람과 사귀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이 어떤 모습의 연인일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십대 중반에 내가 사귀었던 남자는 주변인들로부터 싸가지 없다는 평을 듣는 사람이었다. 말투가 틱틱거리기 때문이고 도무지 다정한 말투를 쓰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조차도 처음 그에 대한 인상은 재수없다는 게 먼저였다. 말을 왜 저따위로 한담, 하면서. 말투 기분나쁘다고 말해야겠어, 라고 벼르던 참에 어쩐지 나도 모르게 그와 연인이 되어있었고, 연인인 그는 틱틱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말을 어찌나 잘듣는지, 나는 뿌듯하기까지 했더랬다. 나보다 나이도 훌쩍 많은 남자가, 성격도 나쁜 남자가, 내가 하라는대로 다 한다는 뿌듯함. 나한테 어쩌다 쌀쌀맞은 말투로 말할라치면 그저 나는 '너 지금 나한테 쌀쌀맞게 말하는거냐'는 표정으로 놀라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그는 이내 다정해졌다. 그의 이런 모습을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다는 게 너무 짜릿했다. 


시간이 지나 나는 그 직장을 관뒀고, 그때 상대에게 노래를 불러주던 L 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노래를 불러주던 그 상대와 결혼할걸까, 라고 혼자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극중에서 소유진은 아이가 셋이고 안재욱은 아이가 둘이다. 한쪽은 이혼으로 그리고 한쪽은 사별로 각자의 배우자를 잃어 둘다 싱글인 상태인데, 아마도 이 둘이 나중엔 함께 살기 때문에 제목이 '아이가 다섯'이 된 게 아닐까 싶다. 뭐,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추측이다. 그런데 어제 내가 본 마지막 장면에서는 안재욱이 소유진에게 '나는 재혼생각이 없는데, 그렇다면 당신에게 나쁜 놈입니까' 라고 묻는다. 소유진은 자신이 다시 연애를 한다면 하고 싶다고 생각한 위시리스트를 만들어두었었는데, 그걸 연인이 된 안재욱에게 건네면서 맨 마지막 한줄을 찢는다. 그때 그 한줄에는 '함께 행복하게 살기'라고 적혀있었다. 자신의 처지와 또 안재욱의 처지를 아는 이상 결혼을, 그러니까 재혼을 바라는 게 어렵다는 걸 알고 있고, 그래서 혹여라도 그게 부담이 될까, 안재욱에게 건네기 전에 찢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소유진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라는 소원을 갖고 있었다. 안재욱은 현재 처갓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고, 그런 상황이니만큼 자신이 재혼을 말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신의 마음이 더 커지기 전에, 관계가 더 깊어지기 전에 '나는 재혼생각이 없다'는 것을 상대에게 알리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해, 자신의 연인에게 그 생각을 알린다. 


내가 1인1피자에다 내가 만든 알리오올리오 스파게티, 거기에 와인을 곁들여 보다말다 보다말다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유진도 그 상황을 '알고는' 있었다. 그렇기에 마지막 한 줄을 건네지 못한 것이었고. 그러나 '알고있다'고 해도 정작 그 말을 들었을 때에는 서운했을 거다. 안다고 해서 다 받아들여지는 게 아니니까. 본인이 재혼 생각이 없었다 해도 상대로부터 그 말을 듣는 건 또 다른 거니까. 서운하지만 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래 그렇지, 하면서.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서 관계가 더 깊어지고 마음도 더 깊어지면, 결국 안재욱의 마음도 바뀌지 않을까? 함께 살고 싶은 걸로? 








어제는 일어나서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보게 됐다. 이게 뭔 특집인지 몰라도 연속방송을 해주길래, 연속해서 세 편을 내리보았다. 교회를 갔다가 집에 돌아온 엄마는 소파에 앉아있는 나를 보시고는 '너 내가 나갈때부터 이거 계속 보고있는 거냐' 하셨고, 나는 '응' 했다. '야, 너 밥은 안먹고 이거 보고 있는거냐?' 하셨고 나는 '밥은 먹었어' 라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단 뭘하든 밥은 먹는 거니깐요. 어쨌든,


당시에 꼬박 챙겨보진 않았어도 재미있게 보던 드라마였는데, 지금와 다시 보니 허술한 부분이 많다. 대사도 그렇고. 게다가 그 때는 완벽해보였던 삼식이가, 다시 보니 그냥 .... 한국남자더라. 삼순이 데꾸 무작정 화장실 들어가서 기습키스를 하는 것도, 어릴 때라면 두근거리며 봤을 것 같은데 하나도 안멋졌다. 게다가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보여주겠다'며 오천만원짜리 수표를 찢을때는, 그 허세와 유치함, 멍청함에 뒤통수를 세게 갈겨주고 싶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라, 라고. 내가 그를 사랑했다면 그 순간 정나미가 떨어졌을 듯. 그래서 삼순이도 그를 포기했지만..... 음... 그런데, 삼식이가 삼순이를 안아주는 장면이 너무 좋았다. 계속계속 생각났다. 역시 사랑하는 사람의 포옹은 힘이 세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삼순이는 삼식이를 잊겠다며 한라산 등반을 한다. 비가 세차게 오는데도 굳이 한라산에 오른다. 자기만의 의식이다. 나라면 비 오는 한라산에 오르지 않겠지만, 어쨌든 삼순이는 그렇게 삼식이를 잊고 싶었다. 그래서 정상에 올라 그 비가 오는데 세차게 부르짖는다.



삼식아 이제 너랑은 진짜 쫑이다!!



뭐, 그렇게 말한다고 정말 마음이 깨끗하게 쫑으로 가겠느냐마는, 어쨌든 그녀는 그녀만의 의식을 치른다. 그런데 그 곳에, 삼식이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비가 오는데, 삼식이가, 한라산 정상에서 삼순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삼식이가 삼순이를 찾아 한라산에 왔다. 삼순이는 한라산에서 삼식이를 볼 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를 잊으려고 갔지만, 그 곳에서 삼식이를 본다. 여기까지만 보고 내가 일자산을 가는 바람에 그 뒷편들을 보지 못했는데, 그 뒤가 어떻게 되더라... 어쨌든, 한라산에서 만나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니. 삼식아, 내가 나의 일정을 알려줄테니 베트남에, 뉴욕에, 마이애미에, 벨기에에 먼저 가서 나를 기다려주지 않겠니?







아, 다른 얘긴데, 『아이가 다섯』에서 남자와 여자는 서로 존대를 한다. 직장에서는 남자가 팀장이고 여자가 대리인데도 하대하지 않는다. 사적으로는 연인관계인데도 서로 존대한다. 이거 너무나 좋다.


그러니까 이 페이퍼의 결론은, 

내가 주말 내내 텔레비전 앞에서 살았다는 거다. 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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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2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03 0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6-05-02 10:42   댓글달기 | URL
안재욱, 소유진 드라마 이야기 읽다가 생각났어요.
프렌즈의 에피소드, 기억이 당연히 안 나죠~~ 거기에 이런게 나오더라구요.

피비가 마이크와 동거를 하기로 합니다.
같이 있다가 마이크가 나 빨래하러 집에 가야돼~ 하면서 텔레비전 보다 일어서니까 피비가 아... 네가 간다니 싫다. 마이크가 나도 싫어. 그래도 가야 돼. 그럼, 가지마. 엉? 가지 마? 그래, 가지 마. 그래, 우리 같이 살면 안 가도 되겠네. (정확한 건 아니구요, 대충 이런 뜻) 그래서 동거를 하기로 합니다.

친구들은 결혼은 언제할 거냐며 피비에게 바람을 넣고, 피비는 결혼은 무슨.... 아니야~~ 하면서도 은근 기대를 갖게 되죠.
친구들이랑 짐 옮기면서 말이죠. 자연스럽게, 그냥 자연스럽게 나중에 결혼할 수도 있고~~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데, 마이크가 정색을 하며 말합니다.
혹시, 네가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말하는데, 나는 결혼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이 있어.
난 앞으로 결혼은 안 할 거야, 절대로.
그러니까 피비가 그래 알았어. 나도 그래. 결혼하겠다, 뭐 그런 생각은 없어.
그래도 앞일은 모르는 거니까, 또 혹시...
그러니까 마이크가, 아니... 내 생각은 절대 변하지 않아. 절대.

친구들은 짐을 다 옮겼는데, 낑끼대며 무거운 소파를 옮겼는데, 피비는 마이크와 살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같이 살면 결혼할수도, 싫어지면 헤어질 수도 있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는 같이 살고 싶지 않아.
마이크가 말합니다. 네 생각이 변할 수도 있잖아.
피비가 말합니다. 네 생각은 변할 것 같니?
마이크가 말합니다. 아니.
피비가 말합니다. 그럼 나도 아니야.

소유진은 서운하지만 안재욱을 배려해 맨 마지막 줄을 잘라냈고
피비는 그래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마이크와 헤어지더라구요.
피비가 참.... 대단하다... 대본이 참 좋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나, 이 댓글도 참 기네요. 이걸 오늘 내 페이퍼로 해줘요~~ ㅎㅎ


다락방 2016-05-03 09:49   URL
이것이 댓글이든 페이퍼이든 참 좋네요. 사람일은 모르는건데 `내 생각은 절대 변하지 않아`는 말이 안되는 것 같아요. 어쨌든 현재는 고집인거죠. 피비가 말한것처럼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 같이 사는 건 되게 부질없고 무의미한 것 같아요. 뭐가 됐든 한 번 해보가, 가는데까지 가보자, 했어야 그들 사이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건데 말이지요.

피비가 정말 대단하네요. 거기에서 같이 살지 않겠다, 선언하는 게 참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은데요. 같이 살기로 결심했었다면 일단 엄청 좋아한거잖아요. 그런데 `이 놈하고 더는 안되겠구나` 하고 좋았을 때 잘라낸거잖아요. 어휴... 대단하다 ㅠㅠ


마지막 줄을 잘라낸 소유진의 마음도 알겠고, 더 마음이 깊어지기 전에 `재혼 생각 없다`고 말한 안재욱의 마음도 알겠어요. 다 알겠는데, 저는 최근에 그런 생각을 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너무` 배려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제대로` 배려하는 게 아니라고요. 배려만 하다가 돌아서게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사랑한다면 배려도 중요하지만 내 욕심을 말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배려만 하다가 남남되기가 더 쉬운 것 같아요...

네꼬 2016-05-02 11:35   댓글달기 | URL
저의 주말 = 엘리멘트리 (<-넷플릭스여서 광고가 없다는 게 함정....)

다락방 2016-05-03 09:50   URL
엘리멘트리는 무엇인가, 검색해보았더니 미드로군요. 저는 현빈과 안재욱의 시간들... ㅎㅎ

꿈꾸는섬 2016-05-02 13:16   댓글달기 | URL
주말 TV앞에서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도 어제 안재욱이 소유진에게 노래불러주는 거 봤어요.
연애할때는 그런 게 좋은건가봐요. 저도 연애할때 수화기너머 불러주던 노래소리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함께 살면서 그런 낭만은 이제 없어졌어요.ㅜㅜ

다락방 2016-05-03 09:52   URL
티비 앞에 앉으면 안되는 게, 한 번 앉으면 계속 앉아있게 돼요. 저는 제가 삼순이 세 편을 볼 줄은 정말 몰랐네요. 일자산 갈 거 아니었으면 끝까지 다 봤을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어휴 사람을 그냥 바보로 만들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계속 앉아 있어요, 하염없이.... 하하하하하

연애할 때는 다 좋죠. 노래 불러주는 것도 좋고, 밥 먹는 것도 좋고, 웃는 것도 좋고... 연애니까 그런가봐요.

雪瑩 2016-05-02 22:22   댓글달기 | URL
뒤통수을 갈겨주고 싶을때쯤 삼순이가 쌍욕을 날려주는게 그 드리마의 매력이었죠 :)

다락방 2016-05-03 09:53   URL
확실히 삼순이는 삼식이에 비해서 나았어요. 삼식이는 과거의 연인을 제대로 정리도 못한채로 갈팡질팡하면서 새로운 사람에게 하염없이 흔들렸죠. 그건 둘 다에게 못할 짓인데 말예요. ㅜㅜ

건조기후 2016-05-03 12:06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브로큰 잉글리쉬의 그 줄리앙이 [연인]에 나오는 거 알았어요? ㅎㅎㅎ 필모그래피 보니까 연인 각본에도 참여하고 동생역으로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동생은 무슨 동생 제인 마치한테 동생이 있었나 하고 연인 다시 봤어요 ㅋ 처음엔 우는 얼굴이라 몰라봤는데 나중에 보니 그대로더라고요. ㅎㅎㅎㅎㅎ

다락방 2016-05-04 08:32   URL
아니 건조기후님도 이 영화를 보신겁니까! ㅎㅎㅎㅎ
멜빌 푸포가 연인에 나왔었다니, 건조기후님 얘기 듣고 검색해보니 오, 그렇군요! 연인은 하도 오래전에 봐서 진짜 기억도 안나요. 거기서 동생이라니...
저 지금 멜빌 푸포 필모그래피 검색하고 [로렌스 애니웨이]에 주연으로 나왔다는 거 보고서는 이거 다운 받으려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 남자 너무 좋아요. 줄리앙 좋음 ㅠㅠ 목욕탕 씬 기억나요, 건조기후님? 안고서 계속 뽀뽀해주잖아요. 애정표현을 안하고는 못견디는 남자 같아요. 좋음 ㅠㅠ

건조기후 2016-05-04 11:39   URL
다락방님이 예전에 이 영화 얘기하셨을 때 봤는 줄 알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안 본 거 같아서 주말에 다운받아 봤어요. 안 본 게 맞더라고요 ㅎㅎㅎ 줄리앙 멋있어요 ㅜㅜㅜㅜ 처음에 작업걸 때는 느끼하고 유치했는데 연애하는 모습은 참 따뜻하고 포근하고.. 어휴. 좋더라고요. 저도 보고 너무 좋아서 다른 영화도 보려고 하는데 보고 싶은 게 다운 안 되는 게 많네요 이런 ㅜ

다락방 2016-05-04 11:42   URL
네. 저도 로맨스 영화 보고 싶었는데 다운 안되는 게 너무 많아요. 그래서 로렌스 애니웨이 보려고요. 이건 다운 되더라고요. 처음에 작업걸 때는 저는 훅 가겠더라고요. 되게 뭐라그래야하지, 세잖아요, 강하게 훅- 들어온달까. 그래서 꼼짝없이 끌려가게 만드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강한 남성 이미지. 제가 강한 남성을 또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또 막 알고보면 다정하고 ㅋㅋㅋㅋㅋ 그렇게 강하게 매혹적으로 훅 들어와서는 욕실에서 계속 뽀뽀해주는데 진짜 짱멋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연애랑 섹스 끊었는데(응?) 그 장면 보니까 끊지 말아야겠다고..의지가 흐물흐물 약해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조기후 2016-05-04 12:04   URL
ㅎㅎㅎ 저는 당신이 이상형이라면서 꼬실 때 아우 제발 그런 말 좀 하지마 라고 소리지를 뻔했어요 ㅎㅎㅎㅎㅎ 근데 그 때 진짜 멋있긴 했어요 목이 훅 파인 티셔츠에 모자 ㅜㅜㅜㅜㅜ

다락방 2016-05-04 12:10   URL
아 이렇게 얘기하다보니까 또 보고싶네요. 그리고 이 남자 나오는 로맨스 영화 또 보고 싶어요. 이 남자가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또 다정한 모습을 잔뜩 보여주는 그런 영화요.

그런데 마지막에 약간 불안하기도 했어요. `나랑 한잔 더할래요?` 라고 묻잖아요. `당신은 비행기를 놓치겠지만` 이라고 말하면서요. 이 남자는 이 여자를 정말 좋아하는데, 좋아하긴 하는데, `지금 이 순간` 이라는 게 너무 강하게 느껴지는 거에요. 좀 더 미래를 얘기해줘도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욕실에서도 폭풍뽀뽀해주면서 `다른 여자가 좋아지면 헤어질 수도 있지` 라고 말하는 게 서운하더라고요. 맞는 말인데, 그래도, 뭐랄까 좀... ㅠㅠ 그렇게 다정하게 애정표현을 쉬지 못하면서 너무 현실적인 말을 했달까요. 그래서 이 남자 너무 좋긴한데 여자랑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의 이미지 보다는 `순간적이고 강렬한 사랑`을 할 것 같은 이미지에요. 그건 그대로 좋지만, 그래도 ㅠㅠ

건조기후 2016-05-04 12:47   URL
음 근데 저는 조금 다르게 보였어요. 지하철에서 여자를 보고 몇 마디 나누는 동안 표정이 약간 굳어 있잖아요. 그리고 막 초조하게 다리를 떨고 있는 모습이 잡혀요. 저는 그 다리 떠는 장면이 되게 좋더라고요. 처음부터 순간적인 낭만으로만 생각했다면 감정에만 충실하면 되는 거고 고민같은 것도 하지 않았을텐데, 남자는 그렇게 다리를 떨면서 앞으로 이 여자와 함께 어떻게 살아갈지 현실적으로 고민하고 있었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마도 결과적으로는 순간적인 사랑이 될 수도 있고 오래도록 운명같은 연인으로 살 수도 있겠지만 처음부터 순간을 즐기자는 마인드는 아닌 것 같았어요..

다락방님이랑 나는 왜 다 반대죠? ㅎㅎㅎ 다른 여자가 좋아지면 헤어질 수도 있다는 말도 저는 그래서 더 좋더라고요. 오히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당신밖에 없어 영원히 당신뿐이야 그랬으면 제발 그런 말 하지말라고 진짜 소리쳤을지도 몰라요 ㅎㅎ 그렇게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을 하면서도 남자는 파리에서 여자의 전화를 기다렸어요. 그런 말을 들었으면서도 여자는 남자를 찾기 위해 파리로 떠났고요. 그렇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잊지 못 하고 결국 이어지는 게 진짜잖아요.. ^^

다락방 2016-05-04 13:55   URL
크- 저 그 다리 떠는 장면 진짜 좋아해요. 남자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여자를 딱 만나고 긴장하고 초조해하는 게 다 드러나는 장면이잖아요. 저는 그 마지막장면을 전체적으로 너무나 좋아해요. 그리고 건조기후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처음부터 `너만 영원히 사랑해` 같은 건 사실 너무 상투적이고 말도 안되는 소리고요. 저였어도 만약 `너만 영원히 사랑해`라고 한다면 `니가 지금이나 그렇지 사람 일 모르는거다` 라고 반응했을 거에요. 근데 이게 또 막상 직접적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를 들으면 되게 서운하더라고요. 다 알고 맞는 말임에도 말이에요. 그래서 참 제 마음을 저도 잘 모르겠는거죠. 왜 며칠전에 제가 [아이가 다섯] 페이퍼 썼잖아요. 거기에서 소유진도 알고 있거든요. 우리에게 재혼이 힘들거다, 이 부분은 조심해야 한다, 이거 다 알고 있었지만 막상 안재욱으로부터 `나는 재혼생각 없어요` 라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너무 아픈 거죠. 그런 거에요. 알고, 맞는데, 그렇다고 내 기분까지 `응 그 말이 맞지!`이러면서 좋아지는 건 아니라는 거죠.

지하철에서의 줄리앙의 모습은 저는 정말 솔직해서 좋았어요. 우연히 만나게 된거잖아요. 예기치 못한 곳에서요.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당황한 걸로 보였거든요. 물론 좋아했던 사람이고 연락을 기다렸던 사람이니 만나서 좋은 것도 있고 떨리는 것 초조한 것도 있었겠지만, 그것 말고도 약간 신경질적인 당황스러움도 좀 있었던 걸로 보였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초조하게 막 고민하다가, 머릿속이 막 돌아가다가 가방가지고 여자 손 잡고 내릴 때는 이미 `어떻게 해야할까`에서의 답이 내려진거겠죠. 그 순간 제가 노라였다면 저 역시 기꺼이 비행기를 놓치는 쪽을 택했을 거에요. 이렇게 좋은 남자 다시 만나기 힘들테니까요. 그깟 비행기가 대숩니까...

흑흑 너무 좋아요 ㅠㅠ

건조기후 2016-05-04 15:35   URL
며칠 전에 쓰신 아이가 다섯 페이퍼가 지금 열심히 댓글 달고 있는 이 페이퍼네요 ㅎㅎㅎ
네 다락방님 말씀처럼 그런 마음도 알겠는데 제가 취향이 약간 달라서 그런가봐요. 저는 그렇게 다 아는 이야기 굳이 말로 하는 게 때로는 더 애틋해서 좋을 때가 있더라고요.
저도 마지막이 정말 좋았어요. 앞으로 어떤 관계가 될 지 알 수도 없는 남자를 보기 위해 미국에서 프랑스까지 가는 건, 그럴 수는 있지만 쉬운 일도 아니고 좀 비현실적인 일인데, 남자의 반응이 표정이 몸짓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그런 비현실적인 상황이 확 와닿더라고요..
좋네요. 영화가 좀 밍밍한 것 같으면서도 잔잔하니 좋아요.

다락방 2016-05-04 15:40   URL
이 페이퍼가 그 페이퍼였습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맞아요. 미국에서 프랑스까지 좋아하는 남자를 찾아 간다는 게 일단 흔하지 않은데, 그것도 `서로 좋아하고 사귀는 연인사이다`라는 확신도 없이 무작정 가는 거잖아요. 그러니 가서는 그 사이에 남자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거나 상황이 다른 식으로 흘러갈 수도 있는데 그렇게 훌쩍 떠나는 게 비현실적인듯 하면서도 또 없을 것 같진 않은 일이에요. 저도 언젠가는 그래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분명히 있었거든요. 음..

그런데 가서 전화번호를 잃어버리다니, 아아, 얼마나 날벼락같은 일입니까. 내가 여기까지 왜 왔는데...그래서 전화번호 잃어버리고 호텔 냉장고에 있던 술 꺼내서 마시고 멘붕에 빠져 퍼져있던 노라가 완전 절절하게 이해돼요.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전화번호가 없어, 나는, 이제, 어쩌지, 나는, 어째야하지.. 라는 기분이랄까.

그런데 이 영화의 가장 큰 비현실성은 남자주인공의 외모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무슨 우연히 만나서 사랑에 빠졌는데 그 남자가 키도 크고 잘생기고 연하이고 나를 좋아해!!!!!!!!!!!!!!!!!!!!!!!!!!!!!!!
 












오늘 출근길 지하철안에서는 이번주 시사인을 읽었는데, 아아, 시사인이여, 이번엔 나에게 노래를 찾아듣게 하는구나. <배순탁의 音란서생>꼭지를 읽다가 전효성의 새노래가 좋다는 걸 읽으면서 무심히 다음줄을 읽는데, 아아, 단편선과 선원들??? 이게 가수 이름이야??? 게다가 제목이 연애라고????



연애의 설렘과 허무, 그 간극을 통과하는 피할 수 없는 불안에 대해 노래하는 이 곡이야말로 '압도적'이라는 찬사가 정확하게 들어맞는 경우라고 장담할 수 있다. 정말이지, 불안하고 복잡하고 때로는 사람을 좌절케 하다가도 환희에 차게 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거듭 되풀이해 감상해도 물개박수가 절로 나온다. 이 압도적인 곡의 압권은 2분40초에 위치한다. 김사월의 보컬이 나오는 바로 그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신경증을 앓고 있는 듯한 바이올린 연주가 끝난 뒤, 모든 악기가 리듬 다이를 바탕으로 3분30초부터 몰아치는 파트도 굉장하다. 이 곡, 오랫동안 아껴 들을 생각이다. 함께 수록된 리믹스 버전도 원곡 못지않게 훌륭하다. -배순탁의 音란서생, p.71 中




그래서 이 부분을 읽자마자 이 음악을 찾아 들었다. 와, 시작부터 너무나 좋은 거다. 얼라리여? 나는 가사를 찾아 보기전에 일단 들어보는데, 가사가 드문드문 들려서, 오, 뭘까, 하고 찾아보았다. 이 노래, <연애>의 가사는 이렇다.



밀린 세금을 내고 오는 길에도
병원에 들려 기침약을 지을 때도
차가운 물에 쌀을 씻어낼 때도
창 밖으로 날아가는 
새들의 무리를 바라보아도

네가 생각나
네가 보고 싶어
매일매일 그런 기분이야

즐거울 것만 같아
우리는 어느새 빠져들어
무료하게 흘러가는 사회
무료하게 흘러가는 일상도
버틸 수 없잖아

허공으로 몸을 던져
멈출 수 없잖아
우리는 그렇게
세상에서 제일 안전해



아, 예쁜 가사로구나. 네가 생각나 네가 보고 싶어 매일매일 그런 기분이야, 우리는 그렇게 세상에서 제일 안전해~ 아아, 너무나 좋은 것이로구나. 나는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이 앨범의 음원을 죄다 사버렸다. 아하하하하. 


링크를 두 개 걸어놓을텐데 하나는 원곡 하나는 라이브이다. 원곡을 들어본 후에 라이브 들어볼 것을 권한다. 라이브도 막 뭔가 신나!!! 



이것은 원곡입니다


이것은 라이브입니다



아아, 여러분 세상에서 제일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연애를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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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04-29 10:28   댓글달기 | URL
키햐~~~~~~~~~~~~~~

네가 생각나
네가 보고 싶어

오늘의 선곡, 짱입니다요 : )

다락방 2016-04-29 11:08   URL
너무 좋죠, 단발머리님! 아침에 출근하면서 계속 들었어요. 헤헷 :)

건조기후 2016-04-29 10:58   댓글달기 | URL
전효성이면 방송에서 ˝우리는 멤버를 민주화하지 않아요˝ 라고 했다던 그 아이돌인가요?

노래 좋네요! 신경증을 앓고 있는 듯한 바이올린 연주라니 정말 그래요. 웃기다 ㅎ

다락방 2016-04-29 11:09   URL
네, 바로 그 아이돌입니다! 그 기사 처음 읽었을 때 `응? 왜 민주화를 부정적으로 쓰지?` 라고 갸웃했던 게 생각나네요. ㅎㅎㅎㅎㅎ 그때 일베 처음 알았던 것 같아요.

라이브로 보면 멤버들이 다같이 연주할 때 신난것 같아서 참 좋더라고요. 덩달아 신난다능. ㅎㅎ
아아, 날은 좋고 저는...저는... ㅠㅠ

건조기후 2016-04-29 11:33   URL
왜요. 다락방님도 무지 좋아요! ㅎㅎㅎㅎㅎ
라고 해놓고 이게 뭔소리여 싶네요 ㅎ

yureka01 2016-04-29 11:59   댓글달기 | URL
연애!~ 인생 최고의 황홀한 시간 ^^!~

다락방 2016-04-29 16:30   URL
좋죠, 연애!!

몬스터 2016-05-01 04:23   댓글달기 | URL
(세상에서 제일 인지는 모르겠지만 ) 암튼 안전하다고는 생각되는 연애인데 , 요즘 마음이 좀 시큰둥하고 자꾸 무뎌지네요 ㅎㅎ 계속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해야는데 ... 게을러지네요 ㅎㅎㅎ

노래 좋네요

2016-05-02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블랙겟타 2016-05-01 11:18   댓글달기 | URL
어..? 다락방님 글 읽고. 단편선과 선원들?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했었는데..저 최근에 들었던 팟캐스트에서 소개해주었던 곡이 단편선과 선원들의 연애 였었어요. 저는 그때 처음 들어봤었네요ㅎㅎㅎㅎ 시사인에도 이 노래가 소개되었었군요 ㅎㅎ여기서 다시 들으니 반갑네욧 ㅎㅎ. 아 참. 이 곡에 퓨처링해주신 김사월님의 `수잔`. 이 노래도 좋아요. 물론 김사월 1집 전부 좋답니다 ^^

다락방 2016-05-02 09:25   URL
지난번에도 그랬는데, 블랙겟타님은 제가 뭔가를 말하면 이미 알고 계시더라고요. ㅎㅎ 저보다 언제나 한 발 앞서가 계신 느낌적 느낌? ㅎㅎ
김사월이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유명한 거 이미 알고 있었는데, 그렇군요, 김사월1집이 전부 좋군요! 저도 시간 되면 꼭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으흐흐흐
 

오늘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면서 틀어둔 라디오에서는 '똑똑한 사람은 사랑에 잘 빠지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이유인즉슨, 똑똑한 사람들은 자신의 성취감에 도취 돼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음..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오래 전에 읽었던 '산드라 브라운'의 책, 『당신과 눈뜨는 아침』이 생각났다. 


책속에서 여자 '브린'은  피디이고 남자 '라일리'는 유명한 토크쇼의 사회자이다. 이 둘은 같은 프로그램에서 만나 사랑하게 되고 결혼하게 되는데, 부부로 사는동안 라일리가 진행하는 토크쇼가 큰 상을 받게 된다. 라일리는 상을 받고 수상소감을 말하고 굉장한 성취감을 느끼며 들떠있다. 그때, 여자는 우울해한다. 자신이 피디로서 같이 만들어간 프로그램인데, 어느순간부터 자신은 라일리의 부인으로만 생각되어지고 있어서. 게다가 그의 성취감은 대단한 것이어서, 그 성취감보다 더한 어떤 것을 자신이 그에게 줄 수 없을거란 사실 때문에도 기가 죽는다.



"그게 당신이 침대에서 얼어붙기 시작한 이유야? 내 생각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때문에?"

"내가 어떻게 경쟁할 수 있었겠어요?"

그녀는 자기 말뜻을 몰라주는 그의 답답함에 화가 치밀었다.

"경쟁이라니?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사람들과 있을 때의 자신을 한 번 떠올려 봐요, 라일리. 당신은 유명세에 푹 빠져 있어요. 사람들의 관심과 환호를 사랑해요. 그리고 박수가 클수록 더 좋아하죠."

"나와 결혼하기 전에도 그런 점에 대해 알고 있었잖아. 이렇게 뒤늦게 내 성격의 그런 면에 대해 사과를 하라는 거야?"

"아뇨, 난 당신의 그런 일면도 사랑해요."

"그럼 우리가 도대체 말다툼을 하고 있는 이유가 뭐야? 하나님 맙소사, 난 딤 휘트처럼 멍청해지고 있나 봐!"

브린은 깊이 숨을 들이쉬며 자신의 감정을 그에게 분명히 이해시킬 수 있기를 빌었다.

"그날 밤 우리가 집에 도착했을 때, 당신은 정말 한껏 들뜬 기분이었어요. 그 모든 찬사와 인기에 취해 있었죠. 거의 절정에 가까울 듯한 기쁨을 느끼는 와중이었어요."

"그래, 난 기뻤어. 당연하지 않아?"

조바심에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네, 물론 그래요."

"그럼 왜 당신이 위기감을 느껴야 했는데?"

그는 이제 거의 소리치다시피 했다.

"내가 어떻게 침대에서 당신을 그 이상 기분 좋게 할 수 있겠어요?"

라일리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천천히 그는 침대에 주저앉았다.

"맙소사."

그의 왼손이 위로 올라가 얼굴을 가리더니 점차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와 턱 끝에서 밑으로 툭 떨어졌다.

다시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는 그의 눈은 흐릿했다.

"당신과의 섹스가 그 빌어먹을 상을 수상하는 것만큼 좋지 못하리라 생각한 거야?"

"내가 어떻게 그보다 나을 수 있겠어요?"

그의 어깨가 지친 듯 앞으로 푹 처졌고, 그는 당혹스러운 듯 고개를 저었다.

"그건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브린."

"당시에는 그렇게 여겨지지가 않았어요. 난 완전히 무능력한 인간이 된 기분이었다구요." (p.212-213)


















자기애가 강한 사람에게 성취감이란 정말 대단한 것이어서, 그보다 더한 어떤 기쁨이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유명세에 취하고 자기 자신에게 만족해하며 뿌듯해하고 있는 사람에게 다른 어떤 게 더한 기쁨을 줄 수 있을까. 브린의 걱정은 브린이 할 수 있는 걱정이긴 하지만, 라일리가 말했던 것처럼, 그것은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하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느낀 성취감, 만족감, 뿌듯함. 나는 그것들을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면 되는거지, 그 위에 있어야 할 필요가 없는 거다. 그보다 더한 기쁨을 주는 것도 내가 할 일이 아니다. 그보다 더한 기쁨을 느끼느냐 하는 것, 나라는 존재로 인해 그가 충족됨을 느끼고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내가 주는 게 아니라 상대가 느끼는 거다. 



위의 라일리 성취감 부분은 몇 해전에 [아이돌 육상대회]인가 하는 프로그램에서 또 생각났었다. 거기서 조권이 달리기 1등을 해서 들어오자마자 흥분해있는데 다른 아이돌들이 축하한다며 조권에게 달려들었고, 조권은 고마워하며 그들을 안아주는데, 그게 되게 뭐랄까, 습관적이라고 해야하나, 그렇게 느껴지는 거다. 그때의 조권에겐 '나를 축하해주는 사람들과 기쁨을 나누기 위해 포옹하자, 그들이 축하해주니 고맙다' 같은 인식같은 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나빴다는 게 아니라, 지금 한창 자신이 1등을 했다는 것에 도취되어 있는듯 보였달까. '스스로 뭔가를 이뤄낸 것'에 대한 만족감은 사실 다른 그 무엇도 대체할 수가 없는 것 같다. 



조권을 예로 들긴했지만, 같은 상황에서 성취감에 도취되어 있는 사람을 보며 '내 존재는 그보다 덜한거야?'라고 서운해하거나 질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것이 아니다. 뭐, 그렇다는 거다.





"당신 탓이 아니에요. 문제가 있었던 쪽은 당신이 아니라 나라구요."

"그건 우리 둘의 문제야, 브린. 왜 진작 나에게 말하지 않았어? 왜 당신 속마음을 내게 말해 주지 않았지?"

"왜냐하면 내가 괜히 부러워서 시샘하는 것으로만 들릴 테니까요. 당신은 내가 당신의 높은 대중적 인기를 질투하는 걸로 생각했을 거예요."

"그럼 그게 아냐?"

그는 놀리듯 물었다. 브린은 부드러운 웃음소리를 냈다.

"당신이 말하는 의미에서는 아니에요. 난 때때로 울분이 치밀곤 했어요."

"어떤 때?"

그는 정말 진지하게 알고 싶어했다.

"시청자들은 당신이 완벽한 모습일 때만 보지요. 완벽하게 차려입고, 완벽하게 행복한, 모든 면에서 완벽할 때요. 하지만 난 당신이 지독히도 엉망일 때도 봐 왔어요. 당신이 일어나서 아침 커피 마시기 전이나 허름한 옷을 입고 단정치 못한 차림새로 집안을 어슬렁거릴 때라든가요. 당신이 복통을 일으켰을 대 대야에 구토를 해대는 당신 머리를 붙잡아 주기도 했어요. 당신의 더러운 양말도 빨고요."

"하지만 개키는 건 내가 하잖아."

그가 검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결코 눈까지 이르지 못했다.

"어쨌든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알겠어. 전에는 결코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인정해."

"난 모든 이들이 나만큼 알지도 못하면서 당신을 완벽하다고 여기는 게 화가 났던 것 같아요. 가끔 정말로 편집증적으로 치달을 때면, 당신이 자신의 완벽한 면은 다른 모든 사람들을 위해 아껴두고 나는 그 외의 남은 것들만 갖게 된다고 생각했어요."

"당신과 함께 있을 때보다 나란 인간이 더 인간적이었던 때는 없었어, 브린." (p.214-215)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속으로는 '네'라고 대답하고 싶지 않지만 억지로 '네'라고 대답해야 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럴때마다 나는 스스로가 미워진다. '네'라고 하지말고 '안해!'하고 뛰쳐나가고 싶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얼마나 원망스러운지. 돈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는건가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열두번씩 든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조금이라도 애를 쓰지 않는다면, 그 모든 관계들은 엉망이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사려깊고 예의있고 다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본연의 내가 아닌 '그렇게 하고자 하는 의지를 발현하는' 내가 나와야 하는 것이다. 만약 이도저도 아무것도 애쓰지 않고 튀어나오는대로 다 말하고 행동할거야, 라고 한다면 나는 친절하지도, 다정하지도, 이해심있는 사람이 되지도 못할 것이다. 그렇게 바깥에서 가면을 쓰고 나를 다스리며 살아가다보면, 가장 친근한 누군가에게 무방비 상태의 나를 드러내게 되는 경우가 있다. 틱틱거린다든가 쌀쌀맞다든가 배려하지 않는 모습을, 가장 친근한 누군가에게 드러내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은, 위 인용문의 브린처럼, '나는 그 외의 남은 것들만 갖게 되는건가' 라는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무방비 상태의 나를 드러내는 것, 애쓰지 않으면 나란 인간이 사실은 이렇게 못났다는 것을 드러내는 걸, 내가 가장 친근하게 여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나의 완벽하지 못한 모습, 못난 모습까지 보일 수 있는 건, 상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상대의 못난 모습까지 볼 수가 있다. 그렇게 가장 솔직한 모습을 상대에게 보일 수 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잘해주고 다정해야 하는 것은 옳다. 마땅하다. 그러나 외부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우리를 그런 사람이 되게 하는데 방해를 한다. 직장에서 늦게까지 야근하거나 상사한테 졸 깨지거나 한 뒤에 집에가서 생글생글 웃는 건 불가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사람이 다른 사람과 사랑하면서, 남은 모습, 찌꺼기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살기 위해서, 우리는 지치지 않아야 하고 여유로워야 한다. 사람들이 결혼을 안하고 아이를 안낳고 혼자 살기를 결정해서 그게 국가적으로 문제가 된다면, 야근을 없애면 된다. 월급을 많이 주면 된다. 러셀님이 말씀하셨듯, 국민 개개인 모두가 네시간 근무를 하면 이 사회는 사랑이 넘치는 사회가 될 수 있다!!!!!!!!!!!!!!!!!!!

사람이 빡치지 않으면 사랑이 넘칠 수 있는데, 사람이 왜 빡치냐면 돈은 쪼금 주면서 일을 많이 시키거나, 아예 일을 못하게 해서 돈도 없게 만들거나, 되도 않는 소리로 억지를 부리기 때문인 것이다!!!!!!!




음...나는 참 이상하네? 똑똑한 사람, 성취감, 사랑...이런 거 쓸라고 로맨스소설 인용했는데....어째서 네시간 근무하자는 글이 써진거지??????????????????????????????????????????????????????????????






아무튼,

뭐 그렇다는 거다.




어제는 단골 호프집 여자사장님께서 중신 서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혹시 남자사장님과 함께 일하고 있는 사장님들의 아들...을 염두에 두신걸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이런 사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술먹으러 자주가서 배터지게 술마셔도 중신 들어오는 사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얼마나 매력 터지는지 이 일화로 다 드러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결혼 안할거니 됐다고 말씀드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은 아침부터 참 좋았는데,

어제의 과음 탓인지 캬라멜마끼아또가 너무 먹고 싶은 거다. 마실까말까 망설이다 사무실에 도착했고, 아 안되겠다 너무나 마시고 싶어, 사러 나가야겠다, 라고 생각하는데, 그때 막 출근하던 동료1이 커피 드시라며 내민다. 어? 했더니, 버스안에서 동료2를 만났는데 커피를 사주겠다며, 이차장님도 한 잔 갖다드려요, 했다는 거다. 그러면서 '메뉴는 제가 그냥 선택했어요' 하길래, 뭔데? 물었더니 


캬라멜마끼아또요.


하는 게 아닌가!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지는 이런 상황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나의 진심이 우주에 닿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는 친구1이 살짝 고민되는 상황에 대해 언급했고, 거기에 대해서 '~하면 어때?' 라고 내가 대답하자 '현명하다' '똑똑하다' 라는 반응이 막 오는거다. ㅎㅎㅎㅎㅎ 좋았어! 난 2쇄작가 다락방이다!!!

친구2는 나와의 대화중에 '너는 어쩌면 그렇게 어른이냐, 네가 점점 더 성숙해지는 게 팍팍 느껴진다' 라고 하더라. 우와- 오늘은 칭찬이 쏟아지는 날이다. 이런 날은 안먹어도 배부르다,


라고 하고 싶지만 안먹는데 배가 부를 리가 없다. 먹어야 배가 부르지. 




그나저나 라일리와 브린의 대화를 읽다보니 유명한 사람, 인기 있는 사람과 연인이 된다면 감당할 게 많겠구나, 싶다. 음..나는 유명한 사람의 연인이 되기는 싫고 내가 유명해지는 쪽을 선택하겠다. 그래서 내 연인이 나를 감당하는 쪽이 나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유명해져도 다정할 수 있으니까. 다른사람들은 잘 못하겠지만 나는 잘 할 수 있다. 성숙한 인간이므로, 어른이므로. 우하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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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8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29 1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붉은돼지 2016-04-28 13:18   댓글달기 | URL
매력터지는 2쇄작가 다락방님~
먹어야 배가 부른 성숙하신 어른 다락방님 ~
이미 유명하신 것 같아요 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6-04-29 11:11   URL
하아 붉은돼지님.
어제는 치킨에 맥주를 먹는데 아빠가 `너 그렇게 먹으면 살 못빼` 하시길래 `나 그냥 안뺄라고, 먹고 싶은 거 먹으면서 뚱뚱하게 살래` 라고 답했습니다. 아빠는 `그래, 생각 잘했어` 라고 해주셨어요. 아하하하하.

유명해지려면 2000쇄 정도는 찍어야 하지 않을까요? 2쇄 가지고는 아직.. 훌쩍 ㅠㅠ

건조기후 2016-04-29 11:09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나도 유명해져도 다정할 수 있는데 ㅋㅋㅋㅋㅋ
사랑하면 성공도 축하해줘야하지만 저런 심리도 어쩔 수 없는... 한쪽이 성공해서 헤어지는 경우 성공한 쪽이 변심해서 버리기도 하지만 다른 한쪽이 저렇게 자기 자신을 버린 것이 이유가 되기도 하니까요.

다락방 2016-04-29 11:13   URL
네, 건조기후님. 책 속에서 브린은 같이 열심히 일했는데 사람들은 그런 자신을 그저 `라일리의 아내`로만 보는 것 같아 엄청 빡치거든요. 게다가 자기나 너무나 사랑하는 남자는 상받고 도취감에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가있고...

그냥 요즘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나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있는 일들,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을 만들고, 친구들과 술과 책과 함께 오래오래 지내자. 남자 따위, 연애 따위, 섹스 따위, 꺼져버려라... 다 필요없다...... 인생........ -0-

초딩 2016-04-29 13:25   댓글달기 | URL
GMPer 시군요 :-) 다락방임 글 서두 읽고 팟캐스트로 GMP 듣다가 같은 말을 어디서 들었는데 했는데 여기네요 :-)

다락방 2016-04-29 16:03   URL
하하하하. 네, 그럽습니다! 일어나자마자 89.1 틀어두거든요. 사실 잘 듣지는 못해요. 씻고 밥먹고 이러면서 들을 수는 없어서 말이지요. 그냥 틀어두어요. 그러다 좋아하는 노래라도 나오면 앗싸~ 이러면서 좋아하고요. 하핫.
 
















이 책을 몇 장 읽지도 않고 '아 책 읽는 건 정말 얼마나 좋은가!' 생각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많이 공부하려고 하고 행동하려고 하고 생각하려고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게 너무 좋아서. 내가 해보지 못했던 생각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아니까 되게 신나는거다. 내 생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책으로 보게 되니 너무나 좋다! 소설은 소설대로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감정을 생각해보게 돼서 좋은데, 인문학 책들은 또 그 나름대로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을 알게 해준다. 책을 읽는 걸 멈추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목수정은 딱히 내가 좋아하는 저자는 아니지만, 이 책속에 인터뷰에 응한 이들의 생각을 엿보는 건 짜릿하고 흥분됐다. 



어제였나.

과거에 내가 써둔 어떤 글을 읽고 막 갑자기 행복해졌었다.

아, 글쓰기를 잘했구나,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읽고 행복해질 수 있다니. 그래,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고 이렇게 느꼈었지, 하면서 너무나 만족스러운거다. 지금의 내게는 행복한 일이 별로 없는데, 과거의 행복을 보니 그 때의 행복감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던 것. 



글쓰기와 책읽기는 진짜 좋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계속계속 지금처럼 읽고 쓰고 해야겠다.




바바야가의 집은 여자 노인을 위한 새로운 개념의 공동체다. 공간을 대표하는 디렉터나 운영과 행정을 맡아보는 인력이 따로 없고, 공동체를 구축하는 멤버들이 스스로 운영에 참여하는 공간으로 '자치', '생태주의', '시민 참여', '연대'가 이 공간을 받드는 네 개의 정신적 기둥이다. 21명의 여자 노인과 네 명의 젊은이가 한 건물 안에 있는 각자의 공간에서 생활한다. 각자가 차지하는 공간의 규모에 따라 월세 시세의 절반에 해당하는 200~400유로(약24만~48만 원)의 월세를 내며-거의 모든 프랑스 노인은 국민연금을 수혜하므로 이 정도의 집세는 큰 부담이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대부분의 노인 요양원들에 비해서는 월등히 낮은 가격이다:저자 주- 모든 거주자가 일주일에 5~10시간씩 공동체의 운영을 위한 노동시간을 제공한다. 각자의 공간에는 부엌과 화장실, 샤워실이 있고 세탁실만 공동으로 쓴다. 텃밭에서 공동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고, 건물 1층에는 모두가 매일 만나 강연을 듣고 토론을 하며 서로가 살아오면서 축적한 지식과 지혜, 경험들을 나눌 수 있는 민중 대학이 마련되어 있다. 이 민중 대학에는 이 공간의 입주자들뿐만 아니라 원하는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다. (테레즈 클레르, p.17)




와- 이 부분 읽는데 진짜 너무 좋은거다. 한 건물에 여자 노인들만 모여 산다니. 너무나 이상적이잖아! 게다가 이곳을 운영하는 것 역시 그들의 일이다. 조금씩 각자의 시간을 투자해서 이 공동체를 운영하고 그러나 각자의 생활공간은 따로 있다니. 너무 멋진 거다! 아, 나도 이렇게 하고 싶다, 나중에 노인이 되었을 때, 이렇게 다른 여자노인들과 연대해 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멋져... 


테레즈 클레르는 어떻게 이 생각을 하게 됐을까? 어떻게 하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될까? 라고 궁금해했는데, 곧이어 이런 글을 읽게 됐다.



바바야가의 집은 1995년 테레즈 클레르의 머릿속에서 처음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가 85세의 나이로 돌아가시기까지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내지 않고 한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삶의 마지막을 평화롭게 누리게 하기 위해 딸인 그녀는 상당한 희생을 감당해야 했다. 그리고 그 희생은 그토록 사랑했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순간 그녀에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했다. 바로 그때, 결코 내 자식들에게 같은 경험을 물려주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이 자연스럽게 솟구쳤다. 그러나 어떻게! 현존하는 양로원은 아직 살아 있지만 처치 곤란한 노인들을 무덤으로 보내기 전까지 집단 수용하는 공간이다. 거기에 궁색하지 않은 생존이 있을지언정 살아 있는 자의 존엄과 자유가 지켜지거나 죽는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삶을 보장받는 것은 감히 바라기 어렵다. 그곳의 노인들은 잠재적인 환자, 자립성이 없는 불완전한 존재로 취급당한다. 그렇다고 해서 젊은 세대가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고 늙은 부모를 돌보는 데 삶을 바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절실한 필요는 기적적인 상상력을 분출시킨다.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터져 나온 안도의 한숨에 화들짝 놀란 그녀는 어느 날 집에 앉아 흰 종이를 꺼낸 다음 바바야가의 집에 대한 프로젝트를 신들린듯 써나갔다. (테레즈 클레르, p.18)





자신이 좌파라고 대답하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공부하기를 멈추지 않았는데, 그게 너무나 인상깊다. 공부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보다 더 인상깊다고 해야할 좌파들의 특징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 갖기'가 아닌가 싶다. 나 하나 잘 살자고 이들이 시위를 한다거나 집회에 참여하는 게 아니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 부조리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고스란히 짐처럼 싸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은 더 공부하고 더 행동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즐겁지 않을 까닭이 없다. 읽다보니 나도 계속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에 대한 의욕이 막 불타오른달까. 



너무나 좋다. 내가 책을 읽다가 자극을 받는 사람이란 사실이. 

책을 읽다가 자극을 받고 그 감정을 고스란히 글로 남기는 사람이란 사실이 진짜 자지러지게 좋다. 

나는 내가 너무나 좋은 것이다!!



다섯 작가를 가리긴 했지만 이것은 내가 탐색해낸 인류의 보석일 뿐이다. 인간의 정신은 이 세계에서 전무후무하게 가장 큰 보석을 파낼 수 있는 광맥이다. 내가 모르는 광맥도 무수히 많을 것이다. 각자 자신의 광맥을 찾아야 한다. 자기만의 책을 찾아서 캐내야 한다.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다. 사기를 치기 위해서였건 음란 소설을 썼건, 생각을 글자로 옮겨 적는다는 것은 굉장히 경건한 일이다. 어떤 글에든 삶의 지혜가 될 문장이 반드시 들어 있게 마련이다. 농사를 짓기 어려운 황무지에서 땅을 잘 골라 농작물을 키워내는 마음으로 관심을 기울일 때 비로소 좋은 글과 만날 수 있다. (심영길, p.278)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든 이에게 건배!







에릭은 그곳에서 발레리를 만났다. 열일곱 살에 만난 두 사람은 지금까지 약 30년간 인생을 함께하고 있다. 에릭고 ㅏ발레리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각자가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하면서 살 수 있도록 서로 지지해주기`로 약속했고 그 약속은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 약 30년 동안 둘을 지탱해주고 있다. (에릭 브로시에, p.34)

일부러 인터넷을 검색해 한국 대통령에 대해 알아봤다. 《르피가로 Le Figaro》지의 인터뷰 기사를 봤는데, 박근혜란 사람의 세계 인시은 냉전시대에 머물러 있다고 느꼈다. 프랑스와 한국 간의 우호관계를 말하면서 60여 년 전 한국전쟁 당시 프랑스의 참전을 언급한다는 것은 프랑스인의 시각으로 볼 때 어이없는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자크 제르베르, p.65-66)

내가 지금 이런 선택을 하게 된 데는 부모님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아버지는 엔지니어로, 어머니는 수학교사로 사셨고 별다른 일탈을 시도하지 않으셨지만 두 분 모두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능하셨고, 그 무엇도 낭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대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대장간을 꾸리고 내 손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며 살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어머니는 `숲에서 사는 법`, `내 집 만들기` 같은 제목의 책들을 건네주셨고 아버지는 온갖 나사와 공구들이 들어 있는 상자를 선물로 주셨다. (카헬 자닉, p.98)

살아야 하니까 인류에 대한 믿음을 택한 것이다. 내가 왜 모르겠는가. 내 부모를 데려가고, 고아에게서 집을 빼앗아간 것은 프랑스 사람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런 날 돌봐주고 다시 파리로 돌아왔을 때 내 후견인이 되어주고, 또 내가 집을 되찾을 수 있게 재판을 함께 준비해준 것도 프랑스 사람들이었다. 우린 계속 배신 당하면서 살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인류에 대한 믿음을 선택한 것이다. 안 그러면 죽는 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사라는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나는 충만한 사랑을 누린 사람이기도 하니까. 그 사랑이 나를 이렇게 살게 해주었지.˝ 그녀가 말하는 그 사랑은 바로 조셉과 나눈 절박하고 열렬한 사랑을 의미한다. 그러나 조셉은 사라가 서른아홉 살이던 해에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쉰넷이었다. 그와 함께한 20여 년의 세월이 그가 떠난 이후에도 오랫동안 그녀로 하여금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해준 것이다. (사라 달루아, p.165-166)

그녀가 현재 가입해 활동하는 유일한 단체는 콜리브리Colibris다. 콜리브리는 우리말로 벌새라는 뜻으로 콜리브리가 등장하는 전설에서 단체의 이름이 유래했다. 옛날 어느 숲에 큰 불이 났다. 동불들이 소스라치게 놀라 허둥지둥 달아나고 멀리서 망연자실하게 불이 숲 전체를 삼키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때 작은 벌새 한 마리가 나뭇잎에 물을 떠다가 숲에 난 불을 끄려 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이걸 보고 있던 신이 작은 새의 수선스러움을 보고 ˝너, 그래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는 거 알아?˝하고 소리쳤다. 벌새는 대답했다. ˝나도 알아.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야.˝
각자 자기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이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이 되면 세상은 비로소 바뀔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콜리브리의 철학이다. (루이즈 포르, p.203)

이렌의 삶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전환한다. 재미없는 파티에 억지로 몸을 들이미는 대신 쥘과 세상에 대해 토론하는 일이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좌우 양극단에서 온 듯한 두 청년은 세상사, 인생사를 두 개의 시선으로 해부하면서 날마다 진검승부를 펼쳤다. 무려 3년 동안. 그리고 마침내 이렌은 완패를 선언했다. 자본주의가 세상에 모순을 축적해왔으며, 자기모순으로 결국 해체되리라는 것, 그러나 더 많은 자본주의의 폐해가 삶을 유린하기 전에, 다시 전쟁이나 인종 학살 같은 참혹한 재해로 인류가 너덜너덜 찢겨나가기 전에 저항하고 저항하여 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쥘의 생각에 동의하게 되었다. 그리고 반자본주의신당의 당원이 되었다. (이렌 장, p.232)

아직 많은 프랑스의 좌파들이 페멘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다. 페멘에 대한 의견을 선뜻 말하기보다는 ˝페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1년 반 전에 답하지 못했던 페멘에 대한 나의 생각을 이젠 말할 수 있다. 우리를 노예로 만들어버리는 시스템에 무력하게 투항하는 대신 사자처럼 당당하게 포효하는 이 여자들은 옳다. 페멘은 여자의 적이 남자가 아니라 가부장제가 남자와 여자 모두의 적이란 사실, 자본주의와 독재와 종교는 바로 그 가부장제가 작동시키고 있는 구체적인 극복의 대상이란 사실을 지목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적할 무기는 폭력 혁명이 아니라 가부장제가 철저히 굴복시킨 세상의 절반, 그 속에 감춰진 여성성이다.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그 파격적 당당함이 우리 속에 숨죽이고 있던 여신을 되살려낸다. 이 아름다운 마녀들을 지지한다. (폴린 일리에,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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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6-04-27 13:28   댓글달기 | URL
˝나는 이런 내가 너무 좋은 것이다!˝라는 이 말이 너무 좋은데요!!!!!

다락방 2016-04-28 08:43   URL
히힛
제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란 사실이 너무나 좋아요.
블랑카님도 책을 읽고 글을 쓰시니 블랑카님 스스로를 충분히 좋아하셔도 돼요.
저도 블랑카님을 좋아합니다!!!

hellas 2016-04-27 19:12   댓글달기 | URL
건배!!:)

다락방 2016-04-28 08:43   URL
건배!

저는 어제 너무 마셔가지고 아직도 머리가 뱅뱅 돌아요. ㅠㅠ

transient-guest 2016-04-28 03:52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분의 글이 그리 잘 와닿지는 않아요. 이 책도 읽고 뭔가 쓴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네요. 대단한 분들이 많다는 생각은 했고, 생활속에서 평생 믿는 바를 실천하는 것도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만..ㅎ

다락방 2016-04-28 08:49   URL
네, 저도 인터뷰에 응해준 분들에 대해서 와 대단하다, 멋지다, 라고 생각했지만 목수정의 글은 저에게 어딘가 껄끄러워요.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이었나? 그거 읽으면서 아, 껄끄럽다.. 했었거든요. 뭔지, 어느 지점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별로라서 책이 나와도 관심을 안가졌는데, 일전에 이 책의 인용문을 다른분의 서재에서 보고 읽어보고 싶어지더라고요.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해요. 멋진 분들이 존재하는 걸 아는 게 너무 좋아요!

건조기후 2016-04-28 10:34   댓글달기 | URL
저는 뭐랄까 이 분의 글이 싫은 건 아닌데 본인이 진보적이고 선도적이라는 데한 우월감같은 게 느껴질 때가 있어서 책은 잘 안 사게 돼요. 저자로 검색해보니 알라딘도 이 분 팬인가 책마다 초이스 마크가 붙어있네요 ㅎ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의 책을 읽고 이토록 멋진 자극을 받는 다락방님은 진짜 멋진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ㅎㅎㅎ

다락방 2016-04-28 14:36   URL
저도 그런 우월감 같은 걸 느껴서 어쩐지 찜찜한걸까요? 뭔가 껄끄러운 게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책을 사서 읽게 되질 않더라고요. 책 나와도 별 관심이 안가고 말이지요. 그렇지만 이 책은 목수정의 책이라기 보다는 파리 좌파들의 책이니까.... 그분들 인터뷰는 정말 흥미로웠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도 저는 좀 멋진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