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씩 책이 잘 안읽히는 때가 온다. 책이 잘 안읽히고 그래서 별로 읽고 싶지도 않은 그런 때. 내게는 요즘이 그런 때인지라 책을 못읽고 있는데, 그럴 때 만난 책은 당연히 진도가 안나가고, 그렇다면 이 책과 내가 만날 운명이 아닌건가.... 싶어지면서, 책이 먼저 안좋아서 나에게 책 안읽히는 때가 온것인지, 하필이면 책 안읽히는 때에 이 책이 내게로 온것인지...뭐가 먼저인지를 모르겠는 뭐 그런 상태이다. 게다가 어제 퇴근길에는 심지어 책을 회사에 두고 갔어. 음... 지하철 안에서야 비로소 가방 안에 책이 없다는 걸 알고는 음... 이것은 읽기 싫은 나의 무의식의 반영.. 같은 것인가..... 라고 생각했다. 읽기 싫다는 나의 저 깊은 안 쪽의 생각이 책을 안챙기는 행동으로 나타났다. 음....


아무튼,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 그러나 포기하는 책은 바로 이것이다. 그래, 나는 포기를 택했다. 이 책을 읽기를 중단하자. 다른 재미있는 책을 읽자. 그래야 책 읽기를 지속할 수 있다...


















2018년만해도 내가 베트남에 몇 번을 갔지? 세 번 갔나, 네 번 갔나?

아무튼 내가 베트남을 여러차례 다녀오고 베트남 또 가고 싶어하는 사람으로서 베트남의 문학을 읽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딱 골라잡았는데, 이 책이 진도가 안나가는 거다. 아아, 진도가 안나가는 거 붙잡고 있지 말고 과감히 내치자. 지금은 때가 아닌 것이야... 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것은 단순히 운의 문제가 아니라 이 책의 잘못일런지도 모르겠다.




장군은 부인의 말을 못들은 척했습니다. 그녀는 아이 다섯을 낳은 후에도 주판을 튕기는 듯한 사고방식, 훈련교관의 척추, 처녀의 몸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1권, p.12)



처녀의 몸..

처녀의 몸..

아이 다섯을 낳았지만 처녀의 몸.....



언어에는 힘이 있다. 그 단어가 가진 고유한 힘. 이 책에서 '아이 다섯을 낳았지만', '처녀의 몸' 이라고 하는 순간, '처녀의 몸'이라는 워딩을 내뱉어 버리는 순간, 그 반대의 언어를 떠올리게 한다. 뭐야, 칭찬의 의미로 처녀의 몸을 썼으면, 반대되는 건 아줌마의 몸이라는 거야? 처녀의 몸이란 워딩을 내뱉는 순간 처녀를 올려침과 동시에 처녀가 아닌 사람을 내동댕이 치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처녀와 아줌마, 여성 모두에 대한 혐오가 저 안에 들어있는 거다. 그렇다면 올려침이 칭찬이라 볼 수 있을까? 처녀의 몸이라고 내뱉어 버리는 순간 그것은 혐오가 된다. 여자의 몸을 처녀의 몸이라고 칭하는, 묘사하는 순간 그렇지 않은 몸도 생겨버리기 때문에. 하아. 처녀의 몸이라니.. 화자는 만약 그런 몸이 아닌 여자를 본다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또 어떻게 내뱉을까?


처녀의 몸이라니... 맙소사..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냥 읽으려고 했다. 그렇게까지 의욕이 없진 않았어. 아아, 이런 거 일일이 걸고 넘어지면 나는 정말 세상에 읽을 책이 없을거야... 그렇게 읽어나가다가, 아니, 씨부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나 이 욕 안하기로 했는데 ㅠㅠ) 이런 문장을 만나고야 만것이다.




우리가 떠날 때쯤 마침내 비가 그쳤습니다. 뇌수종 환자 같은 해병대원 3인조가 여자의 질처럼 어두컴컴한 곳에서 비틀비틀 걸어 나왔을 때, 우리는 습지의 어귀에서, 그러니까 노천 맥줏집의 출구인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뒷골목에서 마지막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1권,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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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문체가 조용하고 차분해서 내가 좋아라 하는 타입이다. 나는 방방 뜨는 가벼운 문체를 싫어하기에 이런 문체는 내가 좋아라 하는 성질의 것이야. 그런데, 처녀의 몸은 넘어가려고 했는데, 여자의 질처럼, 이라니. 하아-

나는 책날개의 작가 소개를 봤다. 작가는 2016년에 이 책으로 퓰리처상을 비롯해서 이것저것 상도 많이 받았더라. 어둠에 대한 묘사를 고작 여자의 질처럼이라고 하는 작가... 어둠을 묘사할  때 생각나는 게 여자의 질밖에 없었나. 도대체 나는 이런 묘사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 왜 이런 식의 묘사를 할까? 그 머릿속엔 뭐가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걸까? 어둡구나, 여자의 질같다...이런 생각하나? 어떻게 어둠에서 여자의 질이 연관될까? 어느날 섹스중에 상대의 여자의 질을 들여다 보았더니 어두웠나? 아, 이곳은 어둡구나, 좋은 비유를 할 수 있겠어. 뭐 이런 생각한건가? 세상에 내놓는 글에 여자의 질처럼.. 하아- 나는 이 문체가 좋고 소설이 우아할 것 같아서 계속 읽고 싶었는데, 뭐랄까, 그냥 맥이 툭, 끊겨버린 것 같다. 소설의 흐름에 이 부분은 지극히 사소하고 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러니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무시하고 넘어갈만한 걸 도대체 왜 써놨는가.


잘가요, 동조자, 나는 당신을 포기합니다. 베트남 소설 어떤건지 읽어보고 싶은데 지금은 이걸 읽을 기운이가 없다. 세상에 많고 많은 게 소설이고 책인데 이렇게 턱 걸리는 걸 읽어낼 자신이 없어. 모르겠다. 내가 지금 책을 잘 못읽겠는게 이 책의 영향인지, 이 책이 하필이면 이럴 때 내게 걸려든건지.


굿바이-







그래서!


영화를 봤다. 하하하하하. 이거 개봉했을 때 되게 보고 싶었는데 놓쳤다가, 어제 옥수수에 무료로 떴길래 오오? 하면서 보았는데, 와, 오늘 아침 출근길에 보면서 너무 무서워서 ㅠㅠㅠㅠㅠㅠㅠㅠㅠ



adrift


'표류하는' 이라는 뜻의 단어. 그러니까 이 영화속에서 여자 주인공 '태미'는 표류한다. 아.. 그 외로움과 허기, 육체적 고통 앞에 내 신경줄이 진짜 타다닥 끊어져버리는 줄 알았어.


'태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와 여행하며 다닌다. 여행 하는 틈틈이 일을 하고, 그 돈으로 세계를 돌고 있는 중. 그렇게 다시 너무 좋았던 타히티 에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마찬가지로 여행이 삶이고 삶이 여행인 남자 '리차드'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리차드는 자신이 직접 요트를 만들어 그 요트를 타고 항해를 하며 살고 있다. 하아- 나는 예고편으로 그냥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같이 여행하고..뭐 그런건줄 알았는데 여자가 바다 위에서 표류하며 버텨내는 걸줄은 몰랐어. 너무 힘들었네 진짜 ㅠㅠ


아무튼 리차드와 태미는 사랑에 빠지고, 둘다 여행을 좋아하는만큼 함께 항해하기로 한다. 아니, 왜 하필 항해인가. 진짜 이것도 맞아야 하는거지, 나는 내가 아무리 사랑하는 남자가 우리 항해하며 살자 라고 하면, 그것이 설사 프로포즈라 한들 '아니'를 말하겠다. 바다 위에서 얼마가 될지 모르는 시간을 지내는 것도 싫고 항해하는 내내 나와 그와 둘이서만 있는 것도 싫다. 나는 사랑도 연애도 좋고 즐겁고 행복하지만, 세상이 필요해. 내 집안에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면, 그와 웃고 이야기하는 시간도 너무 소중하지만, 집 밖으로 나가 친구를 만나고 마트에 가고 커피를 마시고 도서관에 가고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내게는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이야. 그런데 항해를 하면 그 사람하고 나랑 둘이서만 계속 붙어 있어야 되는건데... 아니, 난 못해. 내가 아무리 당신을 사랑한다해도 그렇겐 못해. 자신의 요트로 홀로 항해하던 남자라면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 게다가 남은 삶도 그렇게 살아갈 사람이라면 진짜 노땡큐..사랑하는 사람과 단둘이 사는 삶과, 사랑하는 사람 없이 세상과 사는 사람 둘 중에 택하라면 나는 고민없이 후자인 것을...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디에서 살아도 누군가를 만들 것이다. 좋은 이웃을 만들고 좋은 지인을 만들것이야. 왜냐하면, 그걸 내가 원하니까. 



리차드와 태미는 항해하며 보내기로 하면서 우리 어디갈까, 여기 가볼까 저기 가볼까 그러던 와중에, 한 미국인 노부부로부터, '우리 요트를 미국까지 갖다 줘, 돈 주고 돌아오는 항공권 1등석으로 끊어줄게' 라는 요구를 받게 된다. 노부부는 갑자기 영국에 가야하는 상황이고, 자신들의 호화요트를 미국까지 가져다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리차드는 태미에게 말했다.



"지구를 반바퀴 돌아 당신을 만났는데, 놓치고 싶지 않아."


지구를 반바퀴 돌아 당신을 만났으면 놓치면 안되는거야, 밥통아. 보고있냐?



아무튼 그렇게 리차드와 함께 이 호화요트를 타고 미국으로 가기 위한 항해를 시작한다. 그러다 허리케인을 만나게 되고...



사라진 줄 알았던 리처드가 저기에 있는 걸 발견하고 열심히 헤엄쳐서 그를 망가진 요트 위로 끌어 올린 뒤, 태미는 살기 위해 노력한다. 리처드는 이미 갈비뼈가 부러지고 다리도 부러져서 움직일 수 없는 상황. 그 넓은 바다 위에서 태미 혼자 좌표를 계산하고, 배를 몬다. 남은 식량을 찾고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애를 쓰는등 살아남기 위한 모든 행동을 태미 혼자서 해야 한다. 리차드는 꼼짝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에. 음식도 다 떨어지고, 태미는 살기 위해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물고기를 잡는다. 그렇게 홀로 바다 위에서 41일간 표류하다 그녀는 커다란 배를 만나 구조된다.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으며, 태미는 지금도 여전히 항해중이라고 한다.



홀로 바다 위에서 식량을 마련하고 좌표를 계산하며 내가 지금 어디쯤 있나 생각해보고(방향키가 고장난것 같아!) 또다시 닥쳐올 폭풍에 대비하는 태미는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하루를 또 하루를 버텨가는 것이 얼마나 힘겨웠을까. 오늘 아침 출근길에 태미와 리차드가 폭풍우를 만나는 장면에서 너무 무서운거다. 춥고 외롭고 무섭고.. 그보다 더 무서운 건 바다 위에 홀로 남게된 태미였다.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해야하는 태미. 그렇게 혼자 살아남는 태미. 포스터 보면 무슨 세기의 로맨스..같은 걸로 얘기해놓은 것 같은데, 뭐, 사랑이 살아남는데 도움이 되긴 했지만, 이것은 여자 혼자 살아남는 이야기이다. 그 넓은 바다 위에서. 아, 진짜 .. 너무 무서웠다. 그 고독이. 



살아남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끝까지 버티고 살아줘서 고마워요.



동조자는 1권의 33쪽 까지 읽고 그만 읽기로 결정하고 다른 책을 오늘 들고왔다.

사무실 책상 위에는 어제 사온 앙버터가 남아 있다. 앙버터 먹어야지. 사실은 이미 먹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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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겟타 2019-01-18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따금씩 그런 고민을 할때가 있어요.
평소에 참 좋아하던 방송인, 정치인.. 혹은 지인인데 젠더의식이 결여된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보고 있자니
와~ 이 사람은 좀 아닌데? 이 사람의 이런 생각까지도 품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었어요.
그 사람의 어떤 면(탁월한 감각, 언변, 지적능력)을 보고 좋아했지만 어떤 면(결여된 젠더의식)에서는 도저히 동의를 못한 경우에 과감히 떨쳐낼 수 있을까? 그런거를 일일히 다 하다보면 진짜 좋아할 사람은 적어지고 방송도 들을 것이 없게되는 것은 아닐까?
고민 끝에 그사람에게 품었던 애정을 단칼에 떨쳐버릴 수는 없겠지만 서서히 멀어지는 훈련(?)을 통해 결국은 포기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일상에서 누구에게 아픔을 주는 말을 하지는 않았는지도 생각하게 만드네요.

다락방 2019-01-18 12:17   좋아요 1 | URL
평소에 좋아하던 사람으로부터 어떤 실망스런 언행을 목격하게 됐을 경우, 저 역시도 고민을 합니다. 지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그런데 뭔가 어떤 넘지말아야할 선 혹은 자신만의 기준 같은게 있잖아요. 저와 다른 생각을 하거나 다른 걸 좋아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살아온 환경이 다를 수 있다고 받아들이는 편이지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건 얘기가 다르죠. 뭐랄까, 이건 안된다, 가 확 찾아오는 것 같아요. 그런 경우에 저는 서서히 멀어지기 보다는 확- 정나미가 떨어지더라고요. 결여된 젠더의식은 제게 넘지 말아야할 선이에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놓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곁에 있습니다. 너무 좋아요!

그나저나,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는 열심히 읽고 계십니까? 네?

블랙겟타 2019-01-18 14:30   좋아요 0 | URL
어쩌면.. 제가 아직도 나이브한 생각을 가진 걸 수도 있겠네요..

아.. 네!. 감기때문에 이번주는 조금 늦게 읽어서 이제야 막 올리게 되었네요.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일 퇴근 후에 뮤지컬은 괜히 예매해놔 가지고 어제 가는 길부터 너무 피곤하고 짜증이났다. 게다가 파운드케익이 너무 먹고 싶어지는 바람에 가는 길에 제과점에 들러 파운드케익도 샀어. 공연 끝나고 사면 가벼운 발걸음이었겠지만, 공연 끝나면 거의 열한시가 될텐데 문 여는 제과점은 어디에 있을 것이며, 있다한들 빵이 남아 있을 것인가... 생각하니, 퇴근 하면서 사는 게 정답이다. 제가 이렇게 계획적인 사람입니다, 여러분.


아무튼 파운드 케익과 맥주 오백미리 두 캔이 든 쇼핑백까지 들고나니(맥주는 사정이 있어서 들고갈 수 밖에 없었는데, 이것까지 쓰면 너무 길어지니까 패쓰), 한 손엔 책이 들어있는 가방과 한 손엔 파운드케익, 맥주 들어있는 쇼핑백... 아오... 개힘들어 ㅠㅠ 그렇게 나는 공연을 보러 간 것이다.


글을 쓰기에 앞서,

가기 싫다고 징징대는 제게 가라고, 가면 좋을 거라고 얘기해주셨던 트위터와 알라딘의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복받으실 거예요. 가길 정말 잘했거든요. 아이쿠야 좋구먼... 인터미션에 언제껄로 '또' 예매할까, 들여다볼 지경이었어요. 그간 제가 봤던 뮤지컬들중 최고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가라고 해주셨던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일단 원작을 진작에 읽어두고 가길 잘했다. 만약 원작을 읽지 않고 뮤지컬을 보았다면, 책의 내용도 그런 줄 알고 몹시 실망할 뻔 했어.

그렇다. 내용적으로는 별로였다.

왜 굳이 원작에 없던 로맨스를 끼워넣었을까, 왜 선과 악의 대비를 여자 캐릭터를 통하여 표현하고자 했을까.

선한 지킬 박사가 사랑하는 귀족 '엠마'가 있고 악한 하이드가 선택하는 거리의 여자 '루시'가 있다. 너무나 전형적인 캐릭터이며 심지어 굉장히 납작한데, 엠마는 지고지순하며 언제나 지킬을 사랑하고 기다리고 ... 루시는 거리의 여자로 살다가 지킬이 자신을 구원해준다고 생각하는 사람. 하아- 왜, 지킬로부터 구원받는가, 구원받길 원하는가. 나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구원해주는 서사가 진짜 너무 싫다. 연인으로부터 구원받는 것도 너무 싫고 상대가 누가 됐든 구원받는 서사 너무 싫어. 특히 구원을 바라는 건 더 싫어. 루시는 선한 지킬을 만나고 나서는 '내가 진작에 저 사람을 만났더라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텐데' 부터 시작해서 '지킬박사가 나에게 새 삶을 가능하게 해줬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일은 가능하다.

한 사람이 다수를 구원하는 일도 가능하고. 그런 일은 없는 게 아니다.

그러나 '저 사람이 나를 구원해줬다'라고 생각을 하는 순간, 혹은 '저 사람은 나를 구원해줄거야' 하는 순간, 우리는 상대에게 짐을 지움과 동시에 상대에게 얽매이게 된다. 평등한 일대일의 관계가 되기 어려운 것. 구원을 바라고 구원이라 생각한 순간 우리는 상대에게 사랑이 아닐지도 모르는 사랑까지 품게 되고, 상대의 힘이 절대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가장 절대적인 힘을 가진 자는 구원의 탈을 쓰고 오는 법. 가스라이팅과 구원 역시 가깝게 붙어다닌다. 나는 특히나 남녀 사이에서 구원 운운하는 걸 진짜 싫어한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서도 루시는 다른 남자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지킬로부터 치유하게 되는건데, 하아- 그만하자.


아마도 원작에 없는 로맨스 얘기를 굳이 껴넣은 건 뮤지컬이라는 극의 특성상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따로 부르는 노래에서도 같이 부르는 노래에서도 여성들의 목소리가 합쳐져야 했던 게 아닐까. 특히나 결말의 결혼식 부분은 뭐랄까, 가도 너무 갔다 싶고 ㅋㅋㅋㅋ 아무튼.



그러나 뮤지컬은 정말 좋았다. 지킬이 하이드로 변할 때 와- 진짜 너무 좋았어서, 보러 오길 잘했다고 계속 생각했다. 무대도 좋았고 배우의 연기도 좋았다. 마지막에 홀로 무대에서 지킬과 하이드의 싸움을 연기하는 건 압권이었어. 뮤지컬 배우라면 누구나 이 배역을 탐내겠구나 싶은 거다. 뮤지컬 배우로 태어났으면 지킬 과 하이드 연기 한 번쯤은 해봐야지! 뭐 이런 기분? 그 에너지가 활활 타오르는 게 전해져서, 저 배우는 오늘 집에 가서 뻗겠구나... 싶었다. 기절하겠어...


나는 힘을 느끼는 게 좋다. 고대하던 <지금 이 순간>을 들을 때, 역시나 나는 ㅋㅋㅋㅋㅋㅋㅋㅋ제일 처음 들은게 콘서트에서 임태경이 부른 걸 들어서인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임태경이 제일 좋다고 여전히 생각하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어제 배우가 지금 이순간 부르면서 팔에 힘을 똭 주고 휘두를 때, 그 힘이 느껴지면서 엄청 매력적인 거다. 힘.. 힘 너무 좋아. 내가 힘을 좋아해서 근육을 좋아하는 것인가보다... 힘이여, 근육이여...... 난 뭔가 그런 약간 짐승 같은 느낌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일전에 영화 《트와일라잇》에서도 뱀파이어 가족이 다같이 으르렁- 할 때 자지러지게 좋아했더랬다. 으르렁은 너무 좋아. (아, 아이돌의 으르렁은 안좋아합니다) 뭔가 스읍- 으르렁- 크릉- 하는 거 너무 좋아. 나는 부끄럽지만, 솔직히, 으르렁 로망도 있다. 더 쓰면 19금 이므로 여기까지만..



악으로만 이루어진 '하이드'는 살인을 저지르고 다닌다. 아니, 근데.. 왜죠... 왜 통쾌한 살인을 넣죠. 나는 살인을 저지르는 악인 하이드를 보아야 하는데, 악을 처단하는 하이드를 본다. 명색이 '주교'이지만 '미성년자 성매매'를 하는, 미성년자에게 변태행위를 하는 지저분한 놈을 하이드가 처단하는 거다. '화요일에 저 아이의 첫남자가 되겠다'는 욕망에 눈이 먼 주교를 하이드가 죽여버리는데, 와, 나는 너무 좋았어? 그래, 죽여라, 죽여버려!! 이 세상에 수많은 성범죄자들중에 한 명 죽은 거라면 너무 적다. 나는 성범죄자만 찾아가서 엄벌을 내리는 여성영웅이 나오는 영화를 원한다. 그 영화가 흥행하고 시리즈로 만들어지고 비슷한 작품이 계속 나와서, 저절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성범죄 저질렀다가 죽을 수도 있지' 같은 거 좀 알게 됐으면 좋겠어. 자, 다시 지킬 앤 하이드로 넘어가서.



지킬은 점점 통제할 수 없게 되는 악의 힘에 고통스러워한다. 결국 그 악을 없애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도 없어져야 한다는 걸 알고 죽음을 택하는데, 죽어가는 지킬을 품에 안고 그의 약혼녀 엠마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편히 쉬세요."



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는데 편히 쉬세요, 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뭘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대입해 봤다. 나는 그가 죽어가는 와중에 편히 쉬세요 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뮤지컬에서 그러한 것처럼,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스스로의 문제로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어했다면, 살아있는 것이 괴로웠다면, 내내 스스로와의 싸움으로 지쳐있었다면.... 그렇다면 그가 죽음을 택했다고 해서 내가 원망할 순 없는게 아닌가 싶어지는 거다. 어쩌면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말도 '편히 쉬세요'가 아닐까. 당신 여기에서 너무 괴롭고 힘들었지, 고통스러웠지. 이제 그 곳에서 편히 쉬어요.



그러나, 그 다음은? 그 후의 엠마는?



나는 알고 있다. 그가 고통스러웠음을. 그에게 죽음이 오히려 더 편할 수 있음을. 그래서 그에게 편히 쉬라고 작별인사 까지 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고통의 순간들이 끝나고 나에게 다시 오기를 기다려왔는데, 그런 그를 믿고 여전히 그의 옆에 있기를 선택했는데, 그렇게나 사랑했는데, 그런데 그가 이제 이 세상에 없다면.... 그가 다른 세상에서 편히 쉴 거라는 생각에 안도할 수 있지만, 그러나 내 마음은? 그가 없는 나는? 나는 어떻게 될것인가... 나의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될것인가. 불쑥불쑥 외로움과 그리움이 치밀 때마다, '괜찮아, 그는 저 세상에서 편안할 테니까' 하며 나를 다독이는 게 가능할까? 그게 될까? 엉엉 울다가 눈물이 마를 때쯤 그리움과 외로움도 옅어지게 될까? 그 후의 엠마는, 그 후의 나는... 어떡하지?




뮤지컬이 끝나고 극장 밖으로 나오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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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01-17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밤 8시부터 우리집은 <지킬앤하이드> 무대가 된듯 ..... 박은태, 홍광호, 조승우, 임태경, 카이의 <지금이순간>을 감상하고, 달뜬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당신이 나를 버리고 저주하여도!!!를 열창하고 말았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스토리보다 노래에만 집중해서 그랬는지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지킬과 하이드가 오가며 노래하는 그 장면만 또렷합니다.
저도 어제 인터파크 들어가서 전수 조사해보았으나 홍광호 표를 구할수 없어 마구 실망했다고 합니다.

다락방 2019-01-17 11:48   좋아요 0 | URL
아이참 단발머리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그 부분 좋아해요. 당신이 나를 버리고 저주하여도!! 물론 제일 좋은 부분은 ‘신이여, 허락하소서!‘ 입니다. 그 부분에서는 저도 모르게 간절한 마음이 되어 항상 허락해달라고 같이 외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원작을 읽고갔던 게 너무 좋았어요. 뮤지컬을 먼저 봤어도 원작을 읽었겠지만 말예요.

저 어제 박은태로 처음 지킬앤하이드 를 만났는데, 이 사람 너무 잘하는 거예요!! 너무 멋있어요. 선과 악을 오가면서 노래하는 클라이막스에서 진짜 너무 멋있어서. 에너지 완전 파워뿜뿜. 그래서 다른 사람은 어떻게 표현할까 싶어 보고싶기도 하지만, 처음본 박은태만 할까 싶어서 다시 박은태로 보고 싶기도 하고... 엄마랑 같이 보고 싶은데 엄마는 박은태 보여드리려고요. 같이 가서 봐야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19-01-17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쓰면 19금 이라는 부분에서 눈을 번쩍 뜬 저는.. ㅋㅋ
박은태 좋죠 그쵸~~
이야기와 노래와 춤과 볼거리들을 다 담아야 하는 뮤지컬의 특성상 남주인공 서사에서는 여성캐릭터가 납작해지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레베카>와 <엘리자벳> 강추합니다~ 옥주현으로 보세요 옥주현 짱짱

다락방 2019-01-17 13:32   좋아요 0 | URL
박은태 좋더라고요! 저 오전에 또 예매했어요. 엄마랑 둘이 보러 가려고요. 박은태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본 걸 그대로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후훗. 엄마는 그전에 뮤지컬 보신 적이 없어서 엄청 신기해하실 것 같아요. 같이 볼 생각에 설레이네요!

저도 지킬앤하이드 의 여주들이 남주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역할이라 생각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뭐랄까, 너무나 전형적인 여자들이 되어버렸다고 할까요. 극의 재미를 위해 여주를 그렇게 납작하게 만드는 게 한계라면, 그걸 좀 바꿔나갈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지킬은 너무 멋진 캐릭터지만 상대적으로 여자들은... 그 점이 너무 아쉽더라고요.

<레베카>는 책으로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뮤지컬도 기대되기는 해요. 레베카도 꼭 보러가야겠어요. 저는 <파리의 노트르담>도 보고 싶더라고요! 아아, 보고싶은 건 왜이렇게 많은지요?!

독서괭 2019-01-17 13:42   좋아요 0 | URL
전 레베카는 책보다 뮤지컬이 더 재밌고 좋았어요~^^
 

ㅎㅎㅎㅎ

어제 알라딘에 밥통 준다는 페이퍼 쓰고 오늘 알라딘에 향수 준다는 페이퍼 썼는데, 10년전의 나는 CD 준다는 페이퍼를 썼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알라딘이 알려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란 사람, 참 한결같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런 글 썼다는 거 기억 1도 안나고 알라딘이 알려줘서 알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크. 십년 전의 나 맞춤법 틀렸네. ㅋㅋㅋㅋㅋㅋㅋㅋ 되서 가 아니라 돼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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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1-16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눔여왕? 나눔여신? 하십시오 정말 복받으실 겁니다 ^^

다락방 2019-01-16 12:10   좋아요 1 | URL
복받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복 받았으면 좋겠네요. ㅎㅎ

syo 2019-01-16 1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눔꾼 -> 연쇄나눔마 -> 장기미제연쇄나눔마

다락방 2019-01-16 12:10   좋아요 1 | URL
이게 바로 접니다. 으하하핫

서니데이 2019-01-16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년전부터 꾸준히 나눔을 실천하시는 좋은분이시군요.
스테디나눔러이십니다.
다락방님, 따뜻한 하루 되세요.^^

다락방 2019-01-16 12:10   좋아요 1 | URL
저도 제가 저 때 저랬는지는 오늘 알았어요. 알라딘이 알려줘서 알았어요. 후훗.
서니데이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단발머리 2019-01-16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진짜 멋져요!
장기미제연쇄나눔여신^^

다락방 2019-01-16 12:11   좋아요 0 | URL
진자 진짜 멋질것 까진 없지만, 네, 뭐 그렇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boooo 2019-01-16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한결 같은 분이시군요.

다락방 2019-01-16 12:11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몰랐는데 제가 한결같더라고요? 하핫

붕붕툐툐 2019-01-16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로나눔러시네용~ 한결같은 락방님^^ 저도 한 번은 꼭 받고 말겠다는 오기가 생기는 건 왜일까요?ㅎㅎ

다락방 2019-01-16 13:14   좋아요 0 | URL
부디 그런 기회가 꼭 오기를 바랍니다!! ㅎㅎ

건조기후 2019-01-16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쇄나눔마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9-01-16 15:28   좋아요 0 | URL
제가 그런 사람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꼬마 너구리 요요 첫 읽기책 13
이반디 지음, 홍그림 그림 / 창비 / 2018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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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상대를 좋아한다고 해서 상대 역시 반드시 나를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요요는 아프게 깨닫는다. 그리고 그것은 ‘상대의 마음‘이라고 결국은 받아들인다. 아주 펑펑 울면서. 어른들도 잘해내지 못하는 걸 꼬마 너구리가 해내고 있어. 아주 잘 성장하고 있다. 코끝이 찡해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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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9-01-16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동화가 이리 슬퍼요..?
아이들은 내가 생각한것 보다 훨씬 더 큰 존재이군요

다락방 2019-01-16 15:29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그래요.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존재입니다.
좋은 동화에요. 많이들 읽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다. 한 명이 감기에 걸려 사무실 직원 전체에게 옮겨갈 때도, 이상하게 나는 쏙 빼고 옮기곤 했다. 나와 같이 오래 직장에 다닌 동료들은 도대체 감기게 안걸리는 비결이 뭐냐 내게 간혹 묻기도 했다. 나는 잘 모르겠다고 그때마다 답한다. 정말 모르겠다. 잘 먹고 잘 자서 그런가? 글쎄?


나는 비염과 생리전증후군을 고질적으로 앓고있긴 하지만, 감기엔 잘 걸리지 않는다. 얼마전에 친구는 너처럼 간이 튼튼한 친구는 처음 봤다며, 숙취에 시달리지 않는 나를 신기해했다. 친구들과 나는 내가 왜 특별히 더 건강한것처럼 느껴지는가에 대해 원인을 분석하고자 했는데, 그 중에는 힘겨운 출근길도 있었다. 매일 시달리는 출퇴근 길을 겪었는데 단단해질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는 것. 또한 먹고 마시는 일을 즐거이 하는 것도 그 이유가 될 수 있겠다고 모두들 입을 모았다. 좋아서 먹고 좋아서 마신다... 먹고 마시면서 좋아한다, 하는 것.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 이유가 이제야 명확히 잡히는 것 같았다. 내가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 이유는 내가 나의 가족, 나의 친구들, 그러니까 내가 애정하는 주변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연구 결과는 1997년, 《미국의사협회지》에 「사회적 관계와 감기 취약성 Social Ties and Susceptibility to the Common Cold」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출판됩니다. 같은 조건에서 바이러스에 노출되었을 때,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점액이 덜 만들어지고 코에 있는 섬모가 더 활발히 활동하고 바이러스를 외부에 덜 유포시킨다는 결과를, 즉 감기에 덜 걸린다는 실험 연구가 출판된 것입니다. (p.261)



오!! 오!! 오!!!!!!!!!!!!!!!!


물론, 감기에 잘 걸리는 이유는 사회적 관계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라고 툭, 던지는 것은 안될 말일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나의 사회적 관계가 나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임에는 틀림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엇보다 가족과의 유대관계가 강하고, 친구들과의 유대관계도 강하다. 내 친구들은 그야말로 '너를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어'의 모드로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고자 하는 사람들이며, 그러면서 스스로도 건강을 유지하고자 하는 친구들이다. 직장에서도 나의 입지는 꽤 단단하다. 어느 한 곳에서도 나는 '이곳에서의 나는 보이지 않는 존재다' 라든가 외로움을 느끼지를 않아. 게다가 알라딘이여.. 오, 나의 알라딘. 이 안에서도 나는 아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크게 보면 모두가 알라디너이지만, 그 안을 세부적으로 보면 정답게 댓글을 나누는 사람들도 있고, 지적으로 꽉꽉 채워주는 글을 써주는 사람들이 있고, 페미니즘 책을 같이 읽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요가를 하러 가면 그 안에서 내 자신에 집중(한다기 보다는 사실 늘 딴생각을 하지만...)하도록 노력하면서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도 참 즐겁다. 내가 못하는 자세를 옆에 와서 가만 잡아주는 게 느껴질 때면 끝도 없는 고마움이 하늘을 찔러... 아아...나의 사회적 관계는 나를 건강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연결됨이 무엇보다 내게는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어제 안그래도 한 알라디너 분이 비밀댓글로 '연결'이란 단어를 언급하셨는데, 이 연결이 내게는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나의 연결됨은 내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구나, 새삼 생각했다. 내가 기쁜 일이 있을 때도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감사했고 언제나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아 감사하다는 생각을 해왔다. 내가 슬픈 일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 때로는 같이 울어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내가 이렇게 건강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나의 사회적 관계, 나를 믿고 신뢰하고 애정하는 모든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고 나랑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내 몸에는 바이러스가 침투해도 내가 물리쳐낼 수 있는 것 같다.


어딜 덤벼, 가, 저리 꺼져! 나를 건드릴 순 없어!!



나의 사회적 관계들에게 감사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리사 버크먼은 사회적 관계망을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합니다. '버크먼-사임 사회적 관계망 지표The Berkman-Syme Network Index'라고 이름 붙은 이 측정도구는 결혼 상태, 친구나 친척 관계를 나타내는 사회성, 교회에 다니는지, 지역사회에서 다른 조직 활동을 하는지 등을 측정해 '사회적 연결Social Connection'의 정도를 등급화하고 그에 따라 사망률의 차이를 비교합니다. 그 결과 나이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사회적 관계망에 따라 1.8배에서 2.7배가량 사망률에서 차이가 있다는 게 밝혀집니다. 더 많이 연결되어 있을수록, 더 오래 산다는 결과입니다. (p.257-258)




나의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나의 사회적 관계들에 감사합니다.

나의 가족, 나의 친구들, 그리고 나의 알라디너들!




책 안에는 의미있는 연구들이 가득하지만, 총기 소지에 대한 것 역시 인상적이었다. 총기 소지가 허락된다면, 나 역시 가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것은 내가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 앞집이 갖고 있고 내 주변이 다 갖고 있을 거란 생각 때문에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에 총이 등장하면 반드시 그것은 발사되기 마련이고,  내 스스로 총을 가지고 있다면 '내게 총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총기 소지를 원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지켜야 한다고 하지만, 그러나 총기를 소지하는 곳에서 오히려 사망률이며 자살률이 더 높게 나타난다.



시카고에서 살인사건으로 사망한 762명의 죽음에서 공동체의 책임은 얼마만큼일까요? 살인사건 하나하나는 개별적인 배경과 상황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시카고는 잉글랜드와 웨일스에 비해 '살인'을 방관 혹은 조장하는 공동체입니다. (p.276)



물론 미국이 오늘날처럼 총기 소유를 허용하게 된 데에는 나름의 역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이나 영국에 비해 시카고에 거주하는 젊은이가 훨씬 높은 확률로 살인자가 되고, 또 그만큼 높은 확률로 누군가는 죽게 된다면, 그 공동체는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미국총기협회가 말하듯 개개인이 무장을 해서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사회적 원인을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해결책이 필요하니까요. (p.276-277)






이렇게 총기소지부터 실업률, 차별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더 건강하지 못하고 아파야하는 원인들이 이 책 안에 있다.


아! 누구나 총기 소유가 가능한 시카고와 그렇지 않은 웨일스를 비교한 이런 그래프가 있어서 가져와봤다.





데이트폭력이며 가정폭력에 대해 얘기할 때, 그러니까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을 막아야 한다'고 말할 때, 어떤 사람들은 '여자도 사람 때려', '여자도 사람 죽여'라고 말한다. 그걸 반박이라고 한다. 그게 정말 반박이 될 수 있다고 믿는걸까? 맞다, 여자도 사람을 때리고 죽이기도 한다. 그래서?


숱한 책에서 남성들은 여성을 여러가지 이유로 죽이지만(왜 나 안만나줘? 왜 다른 남자 만나? 왜 나를 떠나려해?), 여성은 대체적으로 자신이 살기 위해 상대를 죽인다는 얘기들이 다뤄진다. 그리고 이 책에서 보여준 이 그래프를 보면, 여자 살인자가 분명히 '있다'. 없는 게 아니다. 나는 여자가 더 월등하다거나 우월하다는 걸 말하려는 게 아니다. 분명히 폭력과 살인이 어느 한 성별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난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거기다 대고 '여자도 때려~~' 하는 건 아무런 답이 안된다는 거다. 저 그래프 보면서도 '여자도 사람 죽여~'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그건 무슨 의미가 될까?


여성 범죄가 사회적으로 드러났을 때, 세상 죽일 년되고 '여자가 더 무서워'라는 말은, 왜 나오는걸까? 여자가 정말 무서워? 진짜? 많은 남자들이 '요즘 여자들 무서워서 어디 말이나 제대로 하겠냐'고 하는데, 그걸 일단 여자 앞에서 한다는 건 무서워하는 게 아니다. 비꼬는거지. 정말 무서움을 모르니까 할 수 있는 말들.




최근에 나의 친구들이 정말 아주 좋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라고 처음부터 마냥 좋기만 했던 건 아니었겠지만, 시간을 보내면서 지금과 같은 단단한 관계가 된 게 아닐까. 서로의 기쁜 일에 진심으로 축하를 보낼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슬픔에 같이 슬퍼할 순 있지만 기쁨에 진심으로 같이 기뻐하기가 더 어려운데, 나와 내 친구들은 이게 되고 있다. 너에게 좋은 일이 있어서 너무나 기뻐! 축하해, 너 여기까지 잘 왔어!

나는 이런 친구들하고 계속 관계를 유지하는한,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소중한 관계,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관계. 사람이 살아오면서 자신이 맺은 관계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드문 일인가, 그리고 얼마나 감사한가!



그리고 어제 남동생과의 대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가 갈거라고 했더니 잘했다고 하면서 이어진 대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방지게, 어디 누나가 사랑한다고 하는데 그래그래 로 답하고 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아, 오늘 지킬앤 하이드 뮤지컬 예매해놓은 거 보러 가야되는데 세상 가기 싫고 환불 가능 시간도 지나버리고 ㅠㅠ 퇴근하고 뮤지컬 보러 가기 너무 싫다. 그냥 집에 가서 홀짝 홀짝 술마시다가 잠들고 싶엉. 내가 왜 뮤지컬 예매했지 ㅠㅠ 아 가기 싫으다 정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당부할게요. 상처받는 거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여러 활동을 하다 보면, 내가 ‘상대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도 분명히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길 거예요. 그리고 ‘우리 편‘에게서 받는 상처가 훨씬 더 아플 수도 있어요. 많이 힘들겠지만, 그 상처로 인해서 도망가지 말고, 그것에 대해 꼭 주변 사람들과 용기를 내서 함께 터놓고 이야기하고 자신의 경험으로 간직하세요. 상처를 준 사람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성찰하지 않아요. 하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자꾸 되새김질을 하고 자신이 왜 상처받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해야 하잖아요. 아프니까. 그래서 희망은 항상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있어요. 진짜예요. (p.304-305)

지금과 같이 가장 위험한 작업을 가장 약한 이들에게 넘기는 외주화가 지속되고 확대된다면, 규제의 손길이 닿지 않는 국내 하청기업의 비정규직 노동자나 인도나 중국의 누군가가 제2의 황유미, 제2의 이숙영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린 그들의 상처와 고통을 우리는 인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p.119)

실업률이 증가하면 그 사회의 자살률이 증가한다는 것은 학계에서 널리 인정받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데이비드 스터클러 교수 연구팀은 2009년, 실업률과 자살률의 관계를 검토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의학저널 《랜싯》에 게재합니다. 유럽 26개국에서 실업률의 증가가 어떻게 자살률에 영향을 주는지를 검토한 것입니다. 그중 특히 주목할 점은 스웨덴을 비롯한 몇몇 북유럽 국가에서는 나머지 국가들과 달리 실업률과 자살률이 아무런 관련성이 없었던 점입니다. 예를 들어 1991년 경제위기를 겪으며 노동자의 10퍼센트가 직장을 잃은 상황에서도 스웨덴의 자살률은 오히려 꾸준히 감소했습니다.
연구팀은 그 주된 이유로 ‘적극적 노동시장 프로그램Active Labor Market Program‘에 대한 국가의 투자에 주목했습니다.(p.93)

사체절도범이 해부학자에게 넘긴 시체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모두 가난한 사람들의 시체였다는 점입니다. 당시에는 병원에서 환자가 사망하면 가족이 치료비를 지불해야 시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치료비를 지불하지 못한 경우, 시신은 사체절도범에게 넘어갔지요. 설사 병원비를 어렵사리 지불하고 시신을 받아내도, 가난한 가족들은 허름한 목관을 이용하거나 혹은 그조차 없이 공동묘지에 묻어야 했습니다.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훔치는 사체절도범들에게는 좋은 목표물이 되었지요. (p.51)

여성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차별 경험에)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아팠습니다. 심지어 차별을 경험했다고 말한 사람들보다 건강 상태가 더 나빴습니다. 차별을 경험했지만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변했던, 자신의 차별 경험을 말하지 못하는 이들이 실제로 가장 많이 아팠던 것입니다. (p.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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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1-16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 700쪽되는 책을 들고 다니시는 체력이 있으시니 감기는 썩 물렀거라 되는거죠 ㅎㅎ

다락방 2019-01-16 12:12   좋아요 1 | URL
그러고보니 제가 매일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니긴 하네요. 책이 들어 있어서 무거운 가방... 하아-

쟝쟝 2019-01-16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감기의 비밀~ 이책 빌려놓고 읽다 말았는데 ㅠㅠ ebook이라도 읽어봐야겠어용!!!

다락방 2019-01-16 15:29   좋아요 1 | URL
네네, 천천히 읽어보세요. 그나저나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어디까지 읽었어요?

쟝쟝 2019-01-16 15:43   좋아요 0 | URL
앗 대답하기 무안한 페이지 ㅋㅋㅋ

다락방 2019-01-16 16:55   좋아요 1 | URL
저도 아직 133 (?) 그정도예요. 오늘도 못읽을 것 같고... 주말에 좀 몰아서 읽어볼까합니다. ㅋ

나와같다면 2019-01-16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지킬앤하이드 예매하기가 얼마나 어려웠는데!
조승우 제대하고 첫 공연 지킬앤하이드를 봤어요. 커튼콜때 조승우도 울고, 나도 울고.
그때 분명히 눈 마주쳤는데 ㅋ
분명 좋은 시간일거예요. 잘 다녀오세요. 후기도 부탁드립니다

다락방 2019-01-16 15:30   좋아요 1 | URL
저도 어렵게 예매하긴 했는데 왜 하필 평일 저녁에 한건지 .. 퇴근하고 가기 싫어서 미치겠어요 ㅠㅠ
이미 다녀오신 분들은 저에게 분명 좋은 시간이 될거라고 꼭 다녀오라고들 하시네요.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들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ㅋㅋㅋㅋㅋ 그러니 제가 잘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이젠 뭐 어쩔 수가 없어요. 하하하하.
다녀올게요!

감은빛 2019-01-16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께서 추천해주신 저 책을
지역 녹색당 독서모임에서도 함께 읽을 책으로 추천하네요.
몇 년 전 독서모임을 만들때는 자주 나갔는데,
한창 바빠진 이후엔 거의 참여를 못했어요.
이젠 독서모임이라도 나가야 책을 읽을 것 같아서 종종 가려구요.
저도 곧 읽어볼게요.
추천 고맙습니다!

이 글을 읽고 보니 저도 감기는 자주 걸리지 않는 것 같아요.
비염으로 인해 괴로울 때가 가끔 있고,
육체 노동으로 인한 몸살 기운은 가끔 느끼는데,
딱 감기다 싶은 느낌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다락방 2019-01-17 10:23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이야 말로 정말 많은 분들을 만나고 계시잖아요.
물론 그 중에는 스트레스 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보통 감은빛 님 페이퍼 읽다보면 다들 감은빛 님 능력을 인정하고 좋은 말씀들 많이 해주시잖아요. 그런 것들이 감기로부터 막아주는 게 아닐까요?

음 그렇지만 감은빛 님이 딱히 건강한 느낌은 아니에요. 페이퍼 읽어보면 요즘 운동 하기도 힘겹다 하셨는데. 제가 늘상 말하는 바지만 진짜, 잘 드시고 다니세요. 감은빛 님은 밥보다 술을 더 많이 드시는 것 같은데... 밥을 더 많이 드세요...ㅠㅠ (오지랖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