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는 거 아니야.
















일전에 유연석 주연의 영화 《그날의 분위기》를 보고 내가 어처구니 없다는 페이퍼를 쓴 적이 있다. 그 영화에서 유연석은, 기차의 옆자리에 앉은 처음 보는 여자에게 '나는 오늘 그쪽이랑 잘겁니다'라고 말한다. 미친 개소리를 씨부린건데, 이 장면에서 어떤 남자들이 '야, 유연석 정도면 여자들도 자겠지'라고 생각한다는 걸 보고는 기가 찼다. 잘생겼기 때문에 저런 발언이 허용될 것이고 여자들도 섹스를 허락할 것이라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걸까? 그리고 저 자리에서 '미친놈아 웃기지마' 라고 내가 대답한다면, 나는 '처음 만난 남자와 자지 않는 조신한 여자'같은 게 되는걸까?



당연히 성인 남자와 성인 여자가 만나, 그 만난 첫 날 섹스를 할 수 있다. 나 역시 만난 첫날 섹스를 한 적도 있다. 그 날 그 남자랑 하고 싶어서 그랬다. 처음 만난 날 섹스를 하자는 상대의 말에 나도 너무 하고 싶어서 갈등을 한 적도 있다. 할까, 말까? 오늘 내가 이 남자랑 섹스를 하면 나는 이 남자랑 어떤 관계가 될까? 망설이다 고개를 저은 적도 있다. 나를 포함한 여자들도 처음본 사람과 당연히 섹스할 수 있고, 섹스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내가 상대의 제안에 응하거나 혹은 내가 제안했을 때는, 상대를 그 날 처음 본거라 하더라도 얼마만큼은 '괜찮은'사람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상대가 나에게 그런 느낌을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영화에서 유연석이 그랬던것처럼,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갑자기 '나는 오늘 너랑 잘겁니다' 하면, 내가 걔를 뭘 믿고 '오케바리, 나도 오늘 섹스 땡겨, 고고씽!!' 하겠는가? 어디서 저런 생각을 하지? 미쳤나? 상식 같은 거 1도 없나?



그리고 마리 루티의 책에서, '여자들은 하룻밤 섹스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근거로 멍청한 연구를 했다는 걸 알게 됐다.





이 연구자는 여자들의 '삶'을 1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갑자기 모르는 남자가 다가와서 '너 몇 번 눈에 띄더라, 오늘 나랑 잘래?' 이러면, '오 네 눈에 띄었다니 기뻐. 그래 자자' 하는 여자가 어딨냐. 그 남자가 강간범일지 살인범일지 어떻게 알고. 내가 마실 물에 약을 타서 납치를 할지 불법촬영을 할지 어떻게 알고... 어떻게 저런 실험을 해서 여자들이 '아니'를 말했다고, '여자들은 첫만남 섹스를 안좋아해' 라고 결론을 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너무 멍청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무슨 데이트앱에서 설문조사 하니, 여자들은 자신이 만나게 될 상대가 강간살인범일까봐 가장 무섭다고 했고 남자들은 상대가 뚱뚱한 여자일까봐 가장 무섭다고 했다. 와...진짜 남자들 인생 편하게 사는구나..뚱뚱한 여자 만나는 게 가장 무섭다니... 아무튼,


나와는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고, 스토리도 없고, 대화로 알아가는 과정도 없이, 심지어 나는 본 적도 없는데 나를 여러번 봤다는 스토커 같은 새끼랑 내가 어떻게 자냐...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그런데 여기에 안잤더니 여자는 갑자기 남자보다 성욕 없는 사람 되어버리고.......



여자가 처음 본 남자와 섹스하지 않는 건, 섹스를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에 따른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에휴.....



엊그제부터 매일, '오늘 책을 사자', '오늘 사자' 이러면서 지금까지 미뤄왔다. 미루다보니, 장바구니 목록이 자꾸 달라진다. 도대체 나는 어떤 것들을 정해야 하는가. 북마크도 살거라서 오만원이상 구입하면 잉천점 마일리지가 생겨... 어떤 책을 선택해야 할까...























《성폭력을 다시 쓴다》는 이미 읽었고 가지고 있고 밑줄도 박박 그어져 있다. 그런데 내가 가진 책이 구판으로 너무 오래된거라... 2018년 개정판이라는 책으로 새로 꽂아 놔야 하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이 들어서 사야하지 않는가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순결한 피해자'라는 것에 나 역시 갇혀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분, 이 책 읽으세요.


《비바, 제인》은, '개브리얼 제빈'의 책이다. 《섬에 있는 서점》과《마가렛 타운》을 읽어본 나로서는, 비바 제인 역시 읽어볼만하지 않을까 싶다.


《불온한 검은 피》는 내가 '허연' 시인의 <오십 미터>라는 시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의 다른 시들을 읽고 싶어졌다.


오십 미터를 옮겨 놓으면서 이 페이퍼를 마치기로 하겠다. (어쩐지 숭고한 마지막...)




오십 미터



마음이 가난한 자는 소년으로 살고, 늘 그리워하는 병에 걸린다


오십 미터도 못 가서 네 생각이 났다. 오십 미터도 못 참고 내 후회는 너를 복원해낸다. 소문에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축복이 있다고 들었지만, 내게 그런 축복은 없었다. 불행하게도 오십 미터도 못 가서 죄책감으로 남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무슨 수로 그리움을 털겠는가. 엎어지면 코 닿는 오십 미터가 중독자에겐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지 화면처럼 서서 그대를 그리워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오십 미터를 너머서기가 수행보다 버거운 그런 날이 계속된다. 밀랍 인형처럼 과장된 포즈로 길 위에서 굳어 버리기를 몇 번. 괄호 몇 개를 없애기 위해 인수분해를 하듯, 한없이 미간에 힘을 주고 머리를 쥐어박았다. 잊고 싶었지만 그립지 않은 날은 없었다. 어떤 불운 속에서도 너는 미치도록 환했고, 고통스러웠다.


때가 오면 바위채송화 가득 피어 있는 길에서 너를 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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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 진화심리학이 퍼뜨리는 젠더 불평등
마리 루티 지음, 김명주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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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을 써도 나는 마리 루티가 하는 말을 반복할 뿐일 것 같다. 이 책 읽으면서 앞으로 마리 루티의 책은 다 읽을거라고, 리베카 솔닛과 정희진 책처럼 다 내 책장에 꽂아둘거라고 결심에 또 결심을 했다. 진화심리학의 모순과 견고한 성차별 앞에 완전 성난 어조가 이 책 내내 유지되는데, 나는 그런 감정이 이 똑똑한 책을 통해 전해지는 것도 좋았다.


화성남자 금성여자라면, 그냥 남자들은 화성가서 살고 여자들은 금성가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킁킁.








남성 학자들은 자신들끼리 논쟁은 안하는지 주로 대중을 상대로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를 망라한 ‘성과학 이론‘을 주장하는데 이런 표현은 사용하고 싶지 않지만 황당하고, 어처구니없고, 기가 막혀서 ˝머리에서 불나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솔직히 저들이 ‘지식인‘인가 싶을 정도다. (추천사, 정희진, p.9-10)

나는 진화심리학자들이 학계에서 서로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가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이 비전문가인 일반 독자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에 관심이 있었다. 이 분야를 알면 알수록 놀라움도 커졌다. 우리 문화에 존재하는 가장 나쁜 성 고정관념들의 과학적 타당성을 대중들에게 납득시키는 것이 이 학문의 주된 목적처럼 보였다. 이 학문은 전반적으로 뻔한 성 고정관념들에 기대고 있는 분야였다. 남성은 공격적이고 여성은 보살핀다. 남성은 독립적이고 여성은 관계중심적이다. 남성은 공간을 갈구하고 여성은 친밀함을 갈구한다. 남성은 생산하고 여성은 생식한다. 남성은 재미를 보려 하고 여성은 애정 표현을 좋아한다. 남성은 전봇대와도 섹스하려는 반면 여성은 조신하고 성욕이 별로 없다. 남성은 여성의 젊음, 아름다움, 연약함에 끌리지만, 여성은 남성의 권력, 지위, 돈에 끌린다. 남성은 유전자에 바람기가 새겨져 있고, 여성은 정절이 새겨져 있다. 남성은 포르노에 흥분하지만 여성은 미세한 설렘에 흥분하기 때문이 긴 구애-꽃, 대화, 비싼 저녁, 멋진 이벤트-가 필요하다.(밑에 계속)

높은 자리에 있는 남자 사장님이 어린 여비서와 자는 동안, 속이 문드러진 그의 아내는 현명하게도 그것을 모른 척 하는 세계. 문제는, 이것이 덜 계몽한 시대의 남녀 관계를 비판하기 위해 설정된 상상의 세계가 아니라 객관적인 과학임을 자처하고 있다는 것이다. (p.16-17)

여성에 대해 다윈이 했던 말 가운데 압권은, 여성은 성욕이 거의 없는 천사 같은 창조물이라는 것이다. 현대 진화심리학은 이것을 여성들이 타고나기를 성적으로 소극적인 존재라는 개념으로 해석했다. 여성의 성에 대한 다윈의 평가에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이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진화심리학자들이 시인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그들은 대개 그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논리의 왜곡을 통해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른다. 즉, 다윈의 당대의 남녀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해도, 여성에 대한 그의 평결은 여전히 옳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 가운데 일부는 지금까지도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 싶을 정도로 이러한 평결에 비판적 거리를 두지 않는다. (p.18-19)

‘과학‘이라는 꼬리표를 붙일 때 편리한 점은 자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비과학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진짜 과학과 조금도 닮은 점이 없을 때조차 그렇게 할 수 있다. (p.26)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불쾌한 생각조차 박해받지 않고 말할 자유가 있다. 그러니 남성의 공격성과 여성의 조신함을 기본 축으로 하는 성 문화를 예찬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 단 이러한 예찬이 과학적으로 정당하다는 말만은 제발 하지 말아 달라. (p.35)

한 과학 이론이 ˝수많은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 아마 문제가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이론일 것˝이라고 러프가든은 지적한다. (p.58)

진화심리학자들이 한목소리로 여성은 조신하게 타고난다고 되풀이 하는 것은 여성이 조신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님을 우리더러 믿으라는 것이다. 나는 속지 않는다. 나를 냉소주의자라고 부른다 해도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여성들이 ‘타고나기를‘ 조신하다는 증거가 거의 없고, 따라서 이 주장은 처음부터 이념적 조작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한, 그 주장을 입증하는 데 쓰인 과학적 ‘방법‘은 반복해서 말함으로써 사실처럼 들리게 하는 것이다. 이념을 세뇌하는 방식이 정확히 이것이다. 우리가 어떤 말을 자주 들을수록 그 말이 타당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처음에는 세계를 바라보는 특정한 방식처럼 보이던 것이 이론의 여지가 없는 믿음으로 굳어지는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이 믿음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잊고, 당연히 ‘그런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나는 여성의 조신함이라는 수사가 바로 그런 경우라고 생각한다. (p.83)

˝많은 남성 과학자들이 여성들은 삶의 어떤 영역에서도 인지와 선택이 불가능한 존재인 것처럼 썼다˝ (밀러의 말 재인용, p.87)

과학자의 성별에 많은 것이 달려 있는 과학 이론은 절대 객관적일 수 없다. 물론 남성 과학자와 여성 과학자는 초점이 약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연구자 개인이 어떤 사람인지가 이런저런 방식으로 과학 지식의 생산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남성 과학자와 여성 과학자가 상호 배타적인 가설에 이른다면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성 과학자들은 여성들이 성적으로 소극적이라고 말하는 반면 여성 과학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실은 여성 과학자들이 ˝내부자의 시선으로 본 여성의 심리˝를 남성 과학자들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 자체가 위험 신호다. 이러한 생각은, 모든 여성이 똑같은 심리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이 분야가 ‘내부자‘의 시선에 의존하는 과학이라는 가정에서 나온다. (p.89)

여성의 욕구에 대한 장에서 버스(욕망의 진화)는 자신의 연구에서 ˝상호 끌림 또는 사랑˝은 여성에게 2.87점, 남성에서 2.81점을 받아 남녀 모두가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자질로 밝혀졌음을 시인한다(이 연구에서 3.0은 ‘없어서는 안 되는 자질‘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남녀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 또한 버스는 조사 대상에 포함된 37개국 가운데 32개국에서 ˝배우자감의 열세 가지 자질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중 하나로 남성과 여성 모두 친절함을 꼽았다˝고 시인한다. 하지만 버스는 같은 장의 관련 절을 마무리하면서 ˝여성이 남성에게 사랑과 친절을 요구하는 것은, 자식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 자원을 확보하는 중요한 적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단정 짓는다.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남성과 여성이 사랑과 친절을 똑같이 가치 있게 여긴다는 사실을 밝혀낸 연구들에서 어떻게 이러한 자질들이 여성에게 특히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을까? (p.102)

신뢰성이라는 자질에서도, 버스는 37개의 문화 가운데 21개 문화에서 남서오가 여성이 똑같은 선호를 보이고, 그리고 37개국 평균을 보면 여성들이 2.69, 남성들이 2.50점으로 이 자질을 남녀가 비슷하게 중요하게 꼽는다고 밝힌다. ‘정서적 안정 또는 성숙함‘의 경우, (모든 문화의 평균을 냈을 때) 여성들은 2.68점을 주고 남성들은 2.47점을 준다. 하지만 그 단락을 결론짓는 문장은 이렇다. ˝사실상 모든 문화에서 여성은 이 자질에 대단히 높은 가치를 둔다.˝ 많은 문화에서 남성과 여성이 그 자질을 거의 똑같이 평가한다고 인정해놓고, 동시에 그 자질을 가치 있게 여기는 쪽은 (˝모든 문화에서˝) 여성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뻔뻔하기 짝이 없는 모순이다. 버스는 자신의 책을 읽는 비전문가 독자들에게 이런 식의 왜곡된 논리를 주입하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내가 제시한 모든 사례에서 그는 남성과 여성이 배우자에게 선호하는 자질에 있어서 큰 차이가 없음을 시인해놓고 갑자기 말을 바꾸어 특히 여성이 그 자질을 가치 있게 여기며 그들은 진화적 이유로 그렇게 한다고 강조하기 때문이다. (p.102-103)

나는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여성으로, 이런 종류의 성급하고 부주의한 추론에 화가 난다. 버스는 열여덟 가지 변인을 조사한 연구에서 여성들이 배우자에게 바라는 자질들 가운데 교육정도와 지적 능력을 5위로 꼽았음을 강조한다. 그는 남성이 그 자질을 6위로 꼽았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37개 문화 가운데 27개 문화에서 남성과 여성이 지적 능력을 똑같이 높게 평가했음을 시인해놓고, 결론에서는 ˝우리 조상들의 사회에서 지적 능력이 높은 배우자를 선호한 여성들은 자기 자신과 자식들을 위한 사회적, 물질적, 경제적 자원을 홥고하는 데 훨씬 유리했을 것이다…. 현대 여성들은 모든 문화에 걸쳐 이러한 선호를 보인다˝고 말한다. 표본의 거의 4분의 3에서 남성과 여성이 이 자질을 똑같이 평가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런 식의 특정한 성에 초점을 맞추는 논증(˝모든 문화에 걸친˝‘ 여성에 대한 논증)은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여성이 지적 능력이 높은 배우자를 원치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버스 본인의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 많은 곳에서 남성 역시 그러한 배우자를 원한다. (p.103)

전반적으로 버스가 데이터를 해석하는 방식에서, 성차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분명할 때조차 필사적으로 성차별화된 결과를 생산하려는 망상이 엿보인다. (p.103)

어떤 행동이 여러 문화에서 발견된다고 해서 그것이 생물학적 본성임이 자동으로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버스의 저격수 중 한 명인 행동심리학자 린다 캐포라엘Linda Caporael의 명쾌한 지적에 따르면, ˝진화한 성차이를 생물학적 진화 과정에 기반하지 않는 무수히 많은 성차이들과 구분할 방법은 없다.˝ 남성과 여성은 ˝똑같은 선호를˝가지고 있을 지도 모르는데 ˝사회 구조가 성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라고 동감한다. 그리고 나는 생물학적 힘을 문화적, 사회 역사적 힘과 분리할 수 없을 때 생물학적 본성을 내세우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문화적, 사회역사적 조건화의 경우와 달리 불변성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본성도 진화하지만, 진화는 한 세대 내에 뭔가를 바꿀 만큼 빠르게 일어나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에,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유전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 차이가 사람의 한평생 동안에는 변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p.114)

버스는 마치 순결과 정절이 동일한 개념이라도 되는 듯 두 가지 문제를 융합한다. 사실 그는 순결-사전 성경험이 없는 것-이 결혼 이후의 정절을 예측하는 변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 논리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신앙심이 특별한 사람이라면 모를까)아무도 결혼할 때까지 성생활을 미루지 않는 현대 서구 사회의 성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다. 어떤 남성은 특정한 여성과 결혼하기 전에는 상당히 자유로운 성생활을 했어도, 결혼하고 나면 절대 바람을 피우지 않는다(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마찬가지로 어떤 여성은 한 남자와 처음 만난 날 동침하기도 하는데, 이는 그녀가 문란해서가 아니라-그 여성은 이날까지 수년 동안 한 트럭분의 남성들을 거절했을지도 모른다-그녀를 진정으로 흥분시키는 남성이 마침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사례에서 그녀가 ‘순결‘하지 않은 것은 앞으로의 부정을 미리 귀띔하는 징후라고 생각한다면 상황을 완전히 오판하는 것이다. (p.120-121)

인간의 성적 표현이 변화무쌍한 것이 이토록 명백한데도 진화심리학이 그 모범 답안을 여태 개진할 수 있었다는 것이 자못 놀랍다. 사실 모범 답안과 인간의 성 현실 사이의 괴리를 해결할 방법은 경험적 증거를 고의적으로 무시하는 것밖에는 없다. 피임이 보편화되면서, 많은 사람이 아이가 생길 수 있다는 두려움 없이 섹스를 즐기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무시해야 한다. 물론, 생식이 목적이 아닌 섹스에 눈을 흘기는 사회들이 여전히 있지만, 이유는 늘 종교적 또는 문화적인 것이다. 생식이 목적이 아닌 섹스를 ‘자연적‘ 이유로, 즉 사회역사적 문제와 무관한 이유로 꺼리는 사회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많은 사회가 성-특히 여성의 성-에 제약을 가하는 데 그토록 열을 올리는 것은 인간의 성욕이 생식의 요구를 능가한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p.145)

미첼은 두 개의 시내가 소용돌이로 만나는 장면을 상상해보라고 주문한다. ˝그 물줄기들이 만나기 전에는 각각을 분리해서 묘사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두 물줄기가 만난 뒤에는 그 안의 물방울들이 서로 섞인다. 이때부터는 소용돌이에서 물 한 컵을 떠서 각각의 물줄기에서 온 물방울들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본성과 양육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p.149)

문화는 생물학적 기원을 갖지만, 일단 생기고 나면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을 생물학에서 분리하기는 불가능하다. 문화는 진화의 경로를 결정하는 환경의 일부가 되었다. (p.150)

밀러가 인간의 성행동을 로맨틱 코미디로 보자고 제안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발명하기 위한 ㅏㅇ의성뿐 아니라, 새로운 성적 관계를 맺을 때마다 자신을 재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때 각기 다르게 행동한다 …. 구애할 때 우리는 자기 생가겡 매력적일 것으로 여겨지는 배역 속으로 들어간다.˝ (p.154)

밀러의 주장처럼, 어느 시점에 약간의 이타심이 배우자로서 매력적인 형질이 되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면, 요즘 사회의 평등주의적 사고방식이 번식 적응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밀러는 이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 같다. 그는 ˝여성들이 가부장제의 악몽에서 벗어난 것은 유전적 진화 때문이 아니라 문화적 변화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나 역시 동의한다. 하지만 내가 잠시 진화론의 사고방식을 채택한다면, 나는 오늘날 평등주의 태도를 갖추는 것이 남자가 정기적으로 섹스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라고 주장할 것이다. (p.159)

현대의 남성과 여성들이 평등주의적 역할 모델과 자기를 동일시하는 것은 이것이 그들이 현실에서 남녀관계를 경험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것이 그들이 경험하고 싶은 방식이기 때문이다. 즉, 영화와 텔레비전의 판타지 요소는 현대 관객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보여준다. 관객들은 공정하고, 품위 있고, 정서적으로 열린 관계를 원한다. (p.160)

나는 대부분의 독자보다 바람피우는 남자들-그리고 바람피우는 여성들-의 심정을 잘 이해한다고 자부하지만, 그렇다고 용서 운운하며 오버하지는 말자. 한 남자가 아내를 두고 바람피우면 그것은 그 남자 잘못이다. (p.218)

라이언과 제타는 이와 관련한 맥락에서, 1960년대에 멜라네시아의 한 섬사람들과 함께 생활했던 인류학자 윌리엄 데이븐포트William Davenport의 연구 결과를 만족스러운 어조로 보고한다. 이 섬사람들은 성적 고민이 별로 없었고, 모든 여성이 오르가슴을 충분히 느낀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파트너가 오르가슴을 한 번 느낄 때마다 여러 번의 오르가슴을 느낀다˝고 보고했다. 데이븐포트의 설명에 따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나면 남편들이 아내에게 흥미를 잃고 더 젊은 여자를 취하는데, 그 섬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 섬의 아내들은 남편의 정부들을 지위 상징물로 간주했고, 남편의 혼외 섹스에 전혀 질투심을 보이지 않았다. 뭐 그럴 수 있다 치자. 하지만 남편이 다른 여자들과 섹스 하기 시작할 때 그 아내들의 오르가슴을 잘 느끼는 몸은 어떻게 되는 건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p.219)

나는 10년 동안 한 여성과 결혼 생활을 한 남성이 다양한 성경험을 찾아 다른 데로 눈을 돌릴 수 있다는 생각에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 단, 이 남성과 10년 동안 결혼생활을 한 여성에게도 같은 논리를 적용하자. 여성이 남성보다 욕구를 행동에 덜 옮긴다고 해서 욕구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그러한 욕구에 대한 사회적 금지가 여성에게 더 강력하다는 뜻일 뿐이다. (p.220)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실제로는 당신의 성장에 장애가 될 때, 그것은 잔혹한 낙관주의와 관계가 있다. -로랜 벌랜트 Lauren Berlant 재인용 p.231

우리 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 결정이 ‘선택‘인 줄 안다. 하지만 생물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인생을 꾸려가는 가장 합당하고 가치 있는 방식이 결혼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복잡한 문화적 조건화 기제의 결과다. 그리고 내가 이미 강조했듯이 결혼하라는 설득은, 비교적 예측 가능하고 비교적 책임감 있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인구 집단을 생산하는 엄청나게 효과적인 수단이다. 간단히 말해, 결혼한 사람들은 자신의 성생활을 덜 관습적인 방식으로 운영하는 사람들보다 매일 아침(결근하거나 지각하지 않고)출근할 가능성이 높다. (p.242)

우리의 욕망은 사회적 조건화에 처할 수는 있어도, 완전히 식민화될 수는 없다. 실제로 예로부터 욕망에 가해졌던 수많은 사회적 제약들-특히 여성의 욕망에 대한 제약드-은 그러한 욕망을 원천 봉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증명할 뿐이다. 욕망을 포기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참는 만큼 불만이 생긴다. 그리고 키프니스의 날카로운 지적처럼, 불만족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대로는 비판적인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희미하게 떠오르는 생각이 강한 충동, 일시적 욕망, 새로운 생각으로 발전한다. ‘다른 뭔가가 있을지도 몰라‘˝ 이런 견지에서 욕망의 불만족은, 인생에는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 말고 ˝다른 것˝이 있다는 자각으로 직행한다. 그리고 그러한 ˝다른 것˝을 떠올리면, 습관적인 삶의 기준에 반발하기 시작한다. (p.269)

젠더 프로파일링은 단지 생기를 앗아가는 것만이 아니라 비윤리적이다. 독자들이 이 책에서 얻어 가기를 바라는 것을 딱 하나만 고른다면, 그것은 젠더 프로파일링이 관계를 다루는 폭력적인 방식임을 아는 것이다. 우선 무엇이 남성과 여성을 다르게 만드는가에 시선을 고정할수록, 우리는 사랑한다고 고백한 상대방을 포함한 타인들의 특이성을 볼 수 없게 된다. 젠더 프로파일링은 타인들이 품고 있는 특이한 의심, 욕망, 고난, 불안, 불안정, 혼란, 갈망을 덮어버리고, 그럼으로써 그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기 어렵게 만든다. 젠더 프로파일링은 남성과 여성을 파넹 박힌 틀에 끼워 맞추기 때문에, 우리는 좁은 시야를 통해 사람들을 판단하려는 유혹에 빠지고, 그 결과 어떤 한 사람이 남성 또는 여성 외의 다른 무엇이 될 수 있는 천 가지 이상의 방식을 놓치게 된다. (p.283-284)

물론 집단적인 성 고정관념들을 빈틈없이 내재화함으로써 이러한 고정관념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을 만날 때조차 우리가 고정관념에 머문다면, 그리고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서 그러한 고정관념을 포착한다면, 관계는 얼마 가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작은 통찰을 한 가지 제공할 때마다 무수히 많은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고정관념이다. 그것은 고정관념이 조건에 들어맞지 않는 모든 것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정관념에 의존하면 할수록, 우리의 관계는 얄팍한 수준에 머물게 된다.
나는 서로 존중하는 만족스러운 관계를 맺으며 값진 인생을 영위하려는 복잡한 일에, 판에 박힌 성 고정관념이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p.284)

이분법적 사고가 폭력저깅 ㄴ것은 그것이 세계를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기 위해 중간 지대를 모두 배제하기 때문이다. 이분법적 사고는 특이하ㅗㄱ 비교가 불가능한 존재를 짓밟기 위해, 사람들을 두 개의 작은 상자에 깔끔하게 분리해 넣으려고 한다. 그리고 잘 맞지 않거나 맞출 수 없는 사람들을 무정하게 배제해, 부적절한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이런 식의 사고가 어떻게 우리를 도울 수 있을까? 이분법이 인생의 복잡한 문제들에 명료한 해답을 제공한다는 생각이 아무리 매력적이라 해도, 이러한 사고의 억압적인 잠류를 피하기란 불가능하다. 특히 젠더 이분법의 경우, 남성과 여성을 ‘다르게‘ 여길수록, 그들은 더 불평등해진다. (p.286)

관계의 윤리학이란 어떤 부분은 영원히 얽힌 채로, 질퍽한 채로, 해결되지 못한 채로 남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p.289)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결코 완전히 알 수 없기 때문에, 고통의 가능성을 배제한 채 사랑하는 것은 결국 불가능하다. 상대방이 어느 정도는 항상 내 이해 능력 밖에 있기 때문에-그리고 확실히 내 통제 밖에 있기 때문에- 정서적 투자의 안전을 보증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이것은 재앙이 아니다. 이것은 사랑이라는 위대한 설계의 비극적인 흠이 아니다. 이것은 사랑을 진정한 탐험으로, 진정한 발견의 장소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성숙한‘ 사랑은 연애에서 환상을 제거하려고 노력하는 냉철한 사랑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타인의 현실을 겨코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감당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그것은 관계 맺기라는 양가성의 땅으로 용기 있게 들어가는 문제다.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가 상대방을 다 알지 못하고 다 알 수 없음을 인정할 때, 변화의 여지가 생긴다.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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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9-20 1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면서 아주 후련했던 기억들이, 다락방님 페이퍼 읽으니 솔솔 돌아오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특히 이 문단....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불쾌한 생각조차 박해받지 않고 말할 자유가 있다. 그러니 남성의 공격성과 여성의 조신함을 기본 축으로 하는 성 문화를 예찬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 단 이러한 예찬이 과학적으로 정당하다는 말만은 제발 하지 말아 달라. (p.35)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해라. 다만 그게 과학적이라는 말만은 하지 말아 달라.
나도 일정 정도 내 ‘주관‘에 휘둘린다는 점을 인정한다.
너도 그렇다는 걸 인정해라.
여자인 너의 의견 말고, 남자인 내 의견은 ‘객관적‘이라고 ‘과학적‘이라고 말하지 말아 달라.

다락방 2018-09-20 14:04   좋아요 0 | URL
저도 아주 재미있고 유익하게 그리고 속시원하게 잘 읽었어요. 나중에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포스트잇은 또 얼마나 많이 붙였다고요!!

마리 루티의 이 책을 읽는데 다른 책 [하버드 사랑학 수업]도 떠오르더라고요. 문화, 사랑, 젠더 등에 관해서 정말 많이 공부하고 연구하고 이해하는 학자구나 싶었어요. 이 책 에서는 진화심리학 때문에 빡쳐한 게 막 너무 느껴져서 너무 좋았어요! 빡쳐서 내가 다 반박해주마!! 하고 화르르 불타오른 느낌이에요. ㅎㅎ

여기 말고 또 밑줄 그은 부분 있는데, 그건 잠시 후에 페이퍼로 쓸 예정이에요. 근데 너무 졸려서 페이퍼를 쓸 수 있을지..

아무튼 마리 루티 만세에요! 저 하버드 사랑학 수업 중고로 팔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다시 사야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책장에 마리 루티, 리베카 솔닛, 정희진은 반드시 꽂아두는 걸로!!

카알벨루치 2018-09-20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마리 루티가 마틴 루터로 첨에 보였다는 ㅋㅋㅋ

다락방 2018-09-20 16:4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장쟝 2018-09-20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고 이 책을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다락방 2018-09-20 18:38   좋아요 1 | URL
인용문만 잔뜩인 이 글 말씀이십니까!! ㅎㅎ 좋은 책입니다, 공장쟝님. 읽어보세요! :)
 
친환경 애견 배변봉투 개똥이


지난 주에 만난 친구1, 친구2는 모두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었다. 남동생네 회사에서 만든 <친환경 생분해 다용도 비닐봉투>에 대해 얘기하니, 고양이 변처리에 비닐이 꼭 필요하므로 요긴하게 쓰일 수 있겠다는 말을 그 친구들로부터 들었다. 어? 고양이는 모래위에 응아 하고... 그거 변기에 버리는 거 아니었어? 고양이랑 살지 않는 나는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이게 모래를 어떤 모래를 쓰느냐에 따라서 변기에 버리지 못하고 반드시 비닐에 버려야 되는 상황이 있는가 보았다. 오, 그렇다면 생분해 비닐봉투가 정말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이벤트 합니다.



조건 없고요, 반드시 냥이들과 같이 살지 않아도, 봉투 자체가 다용도로 쓰일 수 있으니, 필요하다 써보고 싶다 하시는 분은 댓글 주세요. 선착순 12분께 30매씩 보내드리겠습니다. (등기발송 안하고 우편발송 하겠습니다~)


봉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링크를 참고하세요. ☞ 친환경 생분해 다용도 비닐봉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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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8-09-18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요!

다락방 2018-09-18 15:16   좋아요 1 | URL
오, 굿굿. 주소삼종셋트 비밀댓글로 적어주시면 보내드릴게요~ 후훗.

2018-09-18 15: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8 15: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8 1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8 15: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09-18 15:27   좋아요 0 | URL
네 주소 삼종셋트 비밀댓글로 달아주세요~

2018-09-18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각양배추 2018-09-18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저도요! 친구네 집 강아지 생각나서 주고싶어요!

다락방 2018-09-18 15:37   좋아요 0 | URL
네네. 생각해보니 제가 등기발송할 게 아니라서 핸드폰 번호는 안적어주셔도 될 것 같아요. 이름과 주소만 비밀댓글로 적어주세요~

2018-09-18 15: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꼬마요정 2018-09-18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요!!!! 요렇게 이벤트를 하시는 거였어요오!!!

다락방 2018-09-18 16:44   좋아요 0 | URL
ㅎㅎ 댓글로 주소랑 이름 남겨주세요.

2018-09-18 16: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8 1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09-18 17:27   좋아요 0 | URL
일반우편으로 발송할 거예요. 우편함 확인해보시면 됩니다~

꼬마요정 2018-09-18 18:39   좋아요 0 | URL
넵 고맙습니다^^

Forgettable. 2018-09-18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니깐.. 제가 고양이도 필요하다고 했자나여 ㅠㅠㅠ 헤헤 암튼 마케팅 타겟이 두배가 되니 좋네요. 번창하시길!!!

다락방 2018-09-18 17:12   좋아요 0 | URL
개똥이는... 개똥이가 잘팔려야 되는데, 개똥이 에코(페이퍼에 올린 생분해 비닐봉투)가 더 잘나갈 것 같아요. 우리는 개똥이가 메인인데...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뭐든 잘만 팔려라, 잘만!! >.<

2018-09-18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09-18 20:06   좋아요 0 | URL
물론이죠! 주소랑 이름 남겨주세요~~

2018-09-18 2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8 2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09-18 21:03   좋아요 0 | URL
네네네네 기꺼이 보내드릴게요!!!!!

다락방 2018-09-19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섯분 남았습니다~

코코몽 2018-09-19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내주실 수 있나요???:)

다락방 2018-09-19 19:01   좋아요 0 | URL
네 주소랑 이름 알려주세요~

2018-09-19 1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09-19 19:04   좋아요 0 | URL
네 보내드리겠습니다~

2018-09-19 1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09-20 0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분 남았습니다~

2018-09-20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09-20 14:31   좋아요 0 | URL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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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사용해보니 포스트잇 플래그보다 좀 더 단단해 나은 것 같다. 재구매 하는걸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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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as 2018-09-17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사용전이에요 쓰던거 마저 써야 하는 병에 걸려있어서 ;ㅂ;

다락방 2018-09-17 15:12   좋아요 1 | URL
저는 한 번 더 써볼까 해요. 물론 아직 하나 다 쓴 것도 아니지만요. 그렇지만 마리 루티 책 읽고 있으니 아마 금세 하나 다 쓰지 않을까 싶습니다. 훗
 

-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또 누군가에게 그 감상을 말한다면, 의도하든 그렇지 않았든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의 감상을 듣거나 읽고 다음 읽을 책을 결정하기도 하지만, 나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어제 북플을 살펴보다가 북플 친구가 책 두 권을 함께 링크해 감상을 써둔 것을 보았다. 그 책 두 권은 내가 영화 《서치》얘기를 하면서 나란히 링크해두었던 책들이었다. 나의 한 페이퍼에 있던 그 두 책을 나란히 읽고 그 감상을 적어둔 북플 친구를 보니, 아 우리는 서로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란히 링크해둔 그 책을 그대로 읽은 북플 친구라니. 그간 그 분과 나는 이 공간에서 따로 어떠한 대화를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말을 건네는 사이가 아니어도 이렇게 북플이란 앱에서 알게 되어 책 읽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정말이지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나를 즐찾한 이천명이 넘는 사람들 중의 거의 대부분은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내 글을 읽으러 들르긴 하지만 조용히 글을 읽고 조용히 본인이 읽고 싶은 책을 찜해두고는 읽거나 또 글을 쓴다. 나 역시 마찬가지. 내가 즐찾한 많은 분들의 글을 읽고 부러 말을 걸 때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아, 이런 책을 읽고 이런걸 느꼈구나' 하고는 돌아와 그것들이 쌓여 내 독서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는 아주 작게, 정말 작게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더러는 아주 크게.



- 주말에 친구에게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고 글 좀 쓰라고 엄청 버럭버럭 댔는데, 그렇게 집에 돌아오니 나 역시 페미니즘 관련 서적을 읽고 싶었다. 페미니즘 책장 한 칸은 따로 마련되어 있는 터라, 그 앞에 가 섰다. 자, 무얼 읽을까? 이 책을 집었다 놓고 저 책을 꺼냈다 놓았다가, 결국 내가 선택해 꺼낸 책은 '마리 루티'의 이 책이었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나는 이미 마리 루티의 책 한 권을 읽었던 사람으로써 기쁘고 반가운 마음이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읽지도 않고 악플을 다는 것을 보았다. 감히 니가 뭔데 전문가인 과학자와 진화심리학자들에 대한 불만을 말하느냐, 는 것이 악플들의 내용이었다.


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한다. 인정하기 싫어한다. 그래서 내가 잘못됐다는 걸 사실 속으론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지 않다고 악을 쓰는 경우가 생긴다. 이 책에 대한 읽지 않고 쓴 평들은 바로 그런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마리 루티는 직접적인 악플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이 책에도 소개되어 있는데, 그 악플은 이곳에 달린 악플과 다르지 않았다. '남자는 이런 종이고 여자는 이런 종인데 그걸 왜 부정하냐!라는 글이었다. 이 글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써놓고는 개인에 대한 모욕적인 글들을 꼭 덧붙인다. 마치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의 기를 죽이겠다는 듯이.


마리 루티에게 달린 악플들은, 어제 읽은 '도리스 레싱'의 단편집들에 등장한 못난이 남자들과 닮았다. 내 유혹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내 뜻이 상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너무 싫고 짜증나서 상대에게 쌍욕을 하는 거. 이건 여우의 신포도보다 더하다. 여우는 자신이 먹지 못할 포도를 분명 '실거야'라고 생각하고 돌아섰지만, 이 악플러들은 굳이 '너는 시어 이 미친 신포도야!!' 라고 하는 꼴이랄까.


나는 내가 왜 그많은 시간동안 남자들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차갑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알고 지낸 삼십 몇 년이 너무 억울해서 미칠 것 같다. 누구보다 흥분을 잘하고 감정적이고 일단 화부터 내고 큰소리치는 존재들인데, 머릿속에 '여자들은 감정적이고 이성적이지 못하다'는 편견을 꽉 틀어박고서는, 여자의 논리적인 반박에도 '너는 감정적이야'라고 대응하는 걸 볼 때마다 "응????????????????????" 이렇게 되는 거다. 아마 논리가 무엇이고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는채로 그냥 세팅되어 있는 것 같다. 남자는 논리적 여자는 감정적. 후훗. 감정적인 게 나쁜 게 아니고 논리적게 더 우월한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그들 머릿속의 셋팅은 저렇게 되어있고, 저것은 자신들이 가졌다고 생각한 것-그러나 실제 갖지 못한것-을 더 우위에 두게 만든다.



출근길에 이 책의 머리말만 읽는데도 온 몸이 근질거린다. 벌써부터 뒤의 이야기들이 궁금해 몸이 들썩인다. 마리 루티, 힘내요!



나는 익명성 뒤에 숨을 수 있는 인터넷 공간에서 일어나는 불쾌한 일쯤으로 여기고 그 일을 털어버리려 했다. 하지만 몇 가지 점이 나를 계속 괴롭혔다. 첫째는 많은 악플러들이 드러낸 우쭐한 여성혐오였다. 그들은 과학 탐구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에 대해 악의적인 말을 하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p.40-41)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불쾌한 생각조차 박해받지 않고 말할 자유가 있다. 그러니 남성의 공격성과 여성의 조신함을 기본축으로 하는 성 문화를 예찬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 단 이러한 예찬이 과학적으로 정당하다는 말만은 제발 하지 말아라. (p.35)




- 《밥블레스유》에 '정해인'이 나왔다. 나는 정해인에 대해서라면 아무 관심이 없는 노관심의 사람이지만, 그 편을 매우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송은이가 정해인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난 후에 정해인이 송은이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내는 거다.


"누나 전화하셨었어요?"


나는 이 순간 정말이지 막 웃음이 났다. 물론 당연히 전화했으니까 부재중전화가 찍혔겠지 이놈아, 그걸 뭐 말이라고 물어봐 ㅋㅋㅋㅋㅋㅋㅋㅋ그런데, 저 말, '누나, 전화하셨었어요?' 이 말이 너무 다정하게 느껴지는 거다. 누나, 누나라니...


누나라는 말을 내가 남동생말고 들어본 적이 있기나 하던가... 내가 연하의 남자들하고 연애하고 돌아다녀도 그들이 내게 누나라고 부르진 않았고, 나 역시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었는데, 아, 누나라니, 너무 다정한데? 갑자기 나 역시 누군가로부터 '누나'라고 불려지고 싶어지는 것이다. 으악, 어떻게 누나라고 불려지지?


이 얘기를 회사 동료에게 하니, '우리 남자직원들한테 누나라고 부르라고 할까요?' 하는데, 상상해보니 아으- 너무 징그러운 거다. 으악- 싫어, 그러지마! 하면서, 내가 그간 연하남과의 연애에서 왜 나를 누나라고 부르도록 하지 않았을까..지난 시간이 후회되는 것이야.


누나.


나 너무 누나 소리를 들어야겠는데. 칠봉이 너, 다시 돌아오기만 해봐라, 이번엔 누나라고 부르라고 할거야. 으르렁-


누나. 너무 누나 되고 싶네. ㅋㅋㅋㅋㅋ


그러고보니 마리 루티의 책에 연하의 남자에 관련된 부분이 있었다. 다시 책 인용 들어가시겠다.



내가 처음 올린 글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퓨마' 현상에 대한 농담 섞인 짤막한 글이었다. 퓨마 현상이란 연상의 여성이 연하의 남성과 데이트하고 때로는 결혼까지 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그 글에서, 연상의 여성이 연하의 남자와 자는 이유는 생식 가능성이 사라지고 있는 것에 애가 타서 폐경이 닥치기 전에 마지막 시도를 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진화심리학 논증을 조롱했다. 나는 연상의 여자가 연하의 남자와 연애하고 싶은 이유들은 그 밖에도 많다고 지적햇다. 연하의 남성들은 평등주의적인 성 문화에서 사회화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그 결과 그들은 여성성에 대한 구태의연한 이상들을 들먹이며 여성들을 숨 막히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연상의 남자 가운데 이런 사람이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젊은 남성들 -특히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서 찾는 것이 더 쉽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최근들어 남성과 여성이 관계를 맺는 방식이 바르게 변했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나이가 좀 있는 여성들 가운데 일부는 섹스가 좋다는 단순한 이유로 섹스 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아기를 낳는 것이 연상의 여자가 근육질의 젊은 남자와 자는 목적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p.38)



이 나라에서 연하라고 해서 특별히 더 성평등을 장착했다고 보여지진 않지만, 나는 마리 루티의 말에 깊은 공감을 했다. 평등주의적인 성문화에 아무래도 더 사회화 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니까. 다시 말하지만, 그러나 '꼭' 그런건 아니다. 연하라고 해서 성평등한 시선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정말 그렇다. 세상에는 빻은 연하남이 쌔고 쌨으니까.




- 토요일에는 제주에서 있는 강아솔의 콘서트에 다녀왔다. 사실 나는 알지 못하는 가수였는데, '니가 좋아할거야'라는 친구의 말에 무작정 가서 보고 듣게 됐다. 친구의 말대로 콘서트는 좋았다! 강아솔의 목소리며 노래들도 하나같이 너무 좋았는데, 일단 콘서트 시작에 앞서 강아솔이 무대에 자리잡았을 때 콘서트장(까페였다)의 뷰도 어찌나 좋았는지!!



(강아솔 님은 콘서트에 앞서 사진을 찍어도 된다고 허락하여 주었습니다.)


창밖으로 바다와 노을이 지는 것이 그대로 보였습니다. 아아..... 제주의 하늘은 얼마나 낮던지, 아름다운 구름들과 구름들의 색이 바뀌는 것을 나는 계속하여 목격하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다...아, 아름다운 제주여...


여담인데, 같이 제주의 하늘을 보며 감탄하다가 그 친구와 '먹고사는 일이 해결된다면 너는 제주에서 살고 싶냐 하노이에서 살고싶냐' 라고 친구에게 물었다. 친구는 고민할 새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나는 제주지!' 응.. 그렇구나. 나는 하노이... (응?)


아무튼 그렇게 점점 까맣게 달라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좋은 노래들을 가만가만 들었다. 나는 처음 보고 듣는 가수인데 벌써 3집 가수였다.













콘서트장에서 강아솔의 3집 CD 를 팔고 있길래 친구와 하나씩 구매하고 싸인을 받았다. 그리고 노래를 듣던 중에 '온전한 그대를 원해요'라는 가사에 꽂혀서, 얼른 핸드폰을 꺼내 가수가 말하는 노래의 제목을 적어두었다.







-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가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게되는 것들이 있다. 내게는 어제 일요일 오전의 대화가 그랬다. 대화를 하다가 내 진심을 들여다보고 알아챌 수 있었다. 그 진심은 나도 모르는 사이 입밖으로 말이 되어 나왔고, 말해놓고 나자, '아, 이것이 내 진심이구나, 내가 그렇게 행동하고 그렇게 선택한 것은 바로 이 이유였구나' 하는 깨달음이 온것이다. 나 혼자서 늘 고민하고 생각하고 되물어도 분명하고 명징한 이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가, 대화도중에 벼락처럼 찾아온 것이다.


그래, 내가 원하는 건 이것이었어. 이것이었구나. 이것이 나의 깊은 진심이었어.


물론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나는 항상 내가 원하는 바를 알고 있었고, 진심 역시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 대화로 인해 더 분명해졌달까. 분명해진 내 진심을 들여다보는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나조차도 놀라긴 했지만, 당연하구나 생각도 했고. 그러자 더 힘이 났다. 지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에너지를 얻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또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내 경우에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도 분명히 그 한 방법이다. 대화를 함으로써 마음이 좀 후련해지는 것도 있지만,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도 한다. 어제처럼, 분명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도 가능해지고. 내가 잘한 것을 일깨워주는 것도 또 내가 잘못한 것을 지적해주는 것도 모두 나를 만나는 타인으로부터 가능해진다. 로스토프 백작에게 다른 많은 친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객관화가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필요하다. 다른 좋은 사람들.




- 어제 수키 시리즈에 나왔던 문장을 찾고 싶어서, 그런데 그게 어떤 책인지를 몰라서 시리즈에 내가 포스트잇 붙여둔 데마다 읽어보는데, 다 내가 표시해둘 만큼 좋은 문장들이었다. 좋고 당당한 문장들. 아아, 이렇게 붙여놓은 나 칭찬해. 그리고 이런 글귀 나올 때마다 표시해둔 나 잘했다. 역시 책 너무 좋다. 책 너무 좋고 글 쓰는 것도 너무 좋다. 나는 활자중독증 뭐 이런 건 아니지만, 뭐랄까, 끊임없이 무언가를 읽고 보고 듣고 배우고 또 말하고 싶다. 그렇게 하는 게 책이 있어서 가능해진다. 책 너무 좋다. 내가 하고 싶은 말, 그리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까지 다 나와 있는 책은 정말이지 너무 좋은 것이야.


나는 계속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늙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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