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자이너 모놀로그 - 개정판
이브 엔슬러 지음, 류숙렬 옮김 / 북하우스 / 2009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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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호 가는 밤기차 안에서 보지의 독백을 읽는다. 보지의 털을 미는 것에 대한 화자의 느낌이 나와 같다. 성인 여자에게 보지의 털은 지나치게 자연스러운 것인데 그걸 왜 밀라고 하지? 왜 보지에 털이 나기 전으로 돌아가길 원하는거지? 왜죠?

거기에 털 있는 거 싫으면 니꺼나 밀어, 새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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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잠 2017-03-25 0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제목의 연극을 본 기억이 있어요

묵호라는 지명도 오랜만이네요
정동진도 아니고 묵호가 목적지라는게 이색적이네요 :)

다락방 2017-03-25 00:35   좋아요 1 | URL
저도 오래전에 연극으로 먼저 봤었어요. 이제는 기억이 희미한데, 책으로 읽으니 참 좋으네요.
사실 묵호는 저의 경우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어요. 친구가 가보자고 하지 않았으면 저는 여태 모르고 살았을 거예요.
그나저나, 밤이 늦었는데 안주무십니까!!

단잠 2017-03-25 0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말 저녁이라 늑장부리고 있어요

묵호역 근처에 어판장이 있는데 가보심이 어떨지. . 등대에도 올라가 보시구요



묵호까지는 아직 한참이고 차창 밖도 고요할텐데요
밤기차 부럽네요 😊

다락방 2017-03-25 02:20   좋아요 1 | URL
네 가능하면 그렇게 할게요. 저는 아직도 도착 전이에요. 한 숨 자고 일어났네요. 하핫

기억의집 2017-03-25 1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미치겠다~ 다락방님!!!

다락방 2017-03-25 13:03   좋아요 1 | URL
^_____________^

자작나무 2017-03-25 2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좋네요

다락방 2017-03-26 08:49   좋아요 1 | URL
하하 오랜만입니다!

[그장소] 2017-03-26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김영하의 소설 비상구 ㅡ였나 그걸 처음 읽었을 때 충격 ㅡ ㅋㅎ 다시 느끼는 중 !
영화 러브픽션 ㅡ인가요? 공효진 , 하정우 나온 영화 ..거기선 겨드랑이 털이 나오는데 음 , 그 때 그 장면은 기묘하면서 시원한(?) ㅡ 그런 감정였어요 . ^^ 한마디로 정의되진 않는 기분요.

다락방 2017-03-27 08:30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 러브 픽션 그 영화는 저도 봤어요! 거기에서 공효진이 겨드랑이 털이 아주 무성한 여자로 나왔지요. 영화 색,계 에서도 탕웨이의 겨드랑이 털이 나왔고요. 사실 성장하면서 털이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그걸 미는게 미덕처럼 되어버린 게 영 못마땅해요. 겨드랑이 털 면도하는 거, 정말 귀찮잖아요. 그런데 성기의 털을 미는 것은 겨드랑이 털을 미는 것과는 또다른 의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래저래 복잡한 기분이었고, 나빴고, 책 속 등장인물처럼 화가 났어요.

이 책 좋았어요, 그장소님! 버자이너 모놀로그 말입니다. 후훗

[그장소] 2017-03-27 12:27   좋아요 0 | URL
시대를 따른 미의식이 겨드랑이 털마저 밀어버려야 할 것으로 되버리긴 했는데 , 극속에서 공효진의 겨드랑이 털은 남친에 의해 은밀성을 강요받잖아요 . 사랑이란 이유로 ...거기서 더 번져서는 나중에 몇명이랑 잤냐가 결과값처럼 나오고요 . 공효진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녀는 그게 자연스러운 것으로 밖에 드러내도 이상할 게 없는 신체 일부 예를들면 손 ㅡ같이 그러거였지만 남자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요 . 말하려니 복잡해지네요 . ㅎㅎㅎ
분명 신체에 있는 필요에의해 자라는 털인데 음모의 면도와 겨드랑이의 면도 는 상당한 차이가 느껴지니 ㅡ 뭐랄까 ㅡ 로리즘? 미성숙한 신체를 원하는 듯 여겨지네요.

버자이너 모놀로그 ㅡ이.책 메모해 놓을게요!^^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고 버스앱을 켜니 내가 타야할 버스가 6분 후에 온다고 한다. 6분... 기다렸다 버스탈까, 택시탈까. 택시 타면 6분 되기도 전에 이미 지하철역에 도착해있을텐데...라고 고민하는 사이 내 앞에 택시가 오길래 그냥 타버렸다. 기사님은 라디오를 틀어두셨는데 세월호 인양에 대해 나오고 있었다. 어제 내가 뉴스로 볼 때는 8.3미터인가 수면 위로 나왔다고 했는데, 오늘 출근길 라디오에서는 12미터가 나왔다고 하더라. 아, 이렇게 되고 있구나. 어제 뉴스는 여동생과 함께 봤다. 나는 나의 집에서 여동생은 자신의 집에서. 서로 함께 뉴스를 보며 메세지를 주고 받았다. 우리는 안도하고, 분노하고, 슬퍼하였다. 



지난밤 꿈에 나는 결혼을 했다.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했는데, 꿈 속에서 그 남자는 나와도 결혼하고 다른 여자와도 결혼했다. 남편은 한 명, 아내는 두 명인거였다. 하루는 나랑 자고 하루는 그 여자랑 자는 거였는데, 그 여자와 나는 꿈속에서 친구였다. 남편과 그녀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었고 친했다. 그러나 나와 남편은 사랑하지 않았다. 나는 왜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했을까? 아침에 잠을 깨서 나는 너무나 편안하게 하루를 시작하는데 남편은 긴장한 것 같았다. 가까이서 보니 남편은 화장도 했더라. 당신 왜 화장했냐 물으니, 나에게는 맨얼굴을 보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남자, 남편에게 나는, 긴장할 대상이었고 편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편안했고 그냥 삶속의 일부였다. 꿈 속에서 나는 '그래, 나는 이걸 원했어, 편한 삶, 편안한 삶' 이라고 몇 번이나 생각했지만, 동시에 이렇게도 생각했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다'. 그러나 그 생각을 애써 편안함으로 누르려고 했다. 이건 내 선택이었어, 내가 이러고 싶어했잖아.



이런 꿈을 꾼 건 내가 읽고 잔 책 때문이었다. 이래서 자기 전에 어떤 책을 읽는지가 중요한 거다. 내가 읽은 책은, 이탈리아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라고 불리는 책이었다.


















여자 '엘레나'는 술을 마시지 않고 채식주의자이며, 미술 복원가이다. 미술을 복원하는 일을 정말 너무 좋아해서 그 일에 집중하지만, 술 없이, 파티 없이, 방탕함 없이, 화려함 없이, 고기 없이 삶을 산다. 그런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 '필리포'는 엘레나에게 편안한 남자다. 함께 지루한 영화를 볼 수 있고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남자. 너무너무 편안한 남자. 필리포가 로마로 긴 출장을 가기 전에 엘레나와 친구 이상의 관계가 되기를 원하고 엘레나 역시 그래, 우리가 사귀는 건 아니지만 서로 생각해보자, 하고는 다정하게 그를 보냈는데, 그렇게 다정하게 그랑 연락하고 지내고 있었는데, 그런 그녀 앞에 일류 쉐프, 소문난 쉐프, '레오나르도'가 나타난다. 



프레스코 벽화를 복원하던 그녀는 석류를 놓고 며칠을 고민한다. 석류의 색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 이렇게도 물감을 섞어보고 저렇게도 섞어봐도 흡족한 색이 나오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레오나르도가 그녀에게 잠깐 사다리에서 내려오라 말하더니 눈을 감으라 말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들고 있는 물건을 만져보게 하고 냄새 맡게 한다. 그러다 결국은 입에 넣고 맛보게까지 하는데, 그래서 그녀는 '눈으로 보지 않고' 다른 감각들로 석류를 알게 된다. 이 장면이 에로틱해서, 아, 쉐프란 직업이 딱히 멋지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는데 이렇게 음식 가지고 에로틱한 장면을 연출하는구나, 하고 감탄했더랬다. 엘레나는 그 일이 있은 후에, 너무나 당연하게도, 석류를 완벽하게 복원해낸다. 브라보!



레오나르도는 사람들 앞에서 생선을 가지고 요리를 하는데도 섹시하다. 관능이 넘친다. 엘레나랑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그녀에게 금기시 되어 있던 걸 다 깨주는 게 그의 목표인데, 그래서 그녀는 그의 리드에 따라서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행위(들은 19금이니 다 쓰진 않겠다)도 해보게 되고 점점 달라지게 된다. 레오나르도는 그녀에게 술과 고기도 맛보게 한다. 술은 어찌어찌 마셨지만 살아있는 건 도무지 먹을 수 없었던 엘레나라 생굴과 생고기를 먹을 때는 너무 힘들어했다. 그래도 먹고, 먹었더니 맛있었다고....


나는 금기를 깨고자 했던 레오나르도를 글쎄 좀 알듯도 하지만,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아니 굳이 채식주의자한테 꼭 그렇게 고기를 먹여야겠냐? 흐음... 그것도 생고기를? 물론 그걸 자기가 겁나 맛있게 요리 버무리고 죠리 버무린 건 알지만, 아니, 나는 이건 좀...... 어쨌든.



엘레나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금기들을 깨면서 그에게 진짜 홀딱 빠지게 된다. 로마에 필리포가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은 채로 레오나르도의 연락만 '기다린다'. 왜 기다리기만 하냐면, 레오나르도는 자신에게 연락하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자신에게는 다른 여자도 있고, 자신은 사랑을 하고 싶지 않고, 그래서 연락은 어울리지 않고, 내가 만나자고 연락하면 그때 만나면 되고,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을 거니까 너도 나를 사랑하지 말고, 만약 네가 나를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그때 그만둬야 해.... 라고 하는 것이다. 엘레나는 이 모든 일들이 너무 가슴 아프고 분하고 속상하지만, 그의 방에 다른 여자가 왔다갔다 하는 것도 목격하게 되지만, 그래서 너무나 화가 나지만, 그렇게 씩씩대다가 그가 문자를 보내서 다섯시까지 와라, 이러면 응, 하고 튀어간다... 하아-




"날 그만 만나려는 줄 알았어." 내가 불안한 목소리로 덧붙인다.

"무슨 말이야, 엘레나. 흥분하지 마……. 시칠리아에 갔었어."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한다. "급한 일이 생겨서 연락도 못 하고 떠났어. 이게 다야."

"그래도 전화 한 통 정도는 할 수 있었잖아." 나는 화가 난 말투로 다시 말한다.

그가 한숨을 쉰다.

"나한테 전화 같은 거 기대하지 마, 엘레나. 연인들 사이에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기대하면 안 돼. 난 자유롭게 움직여야 해. 어떤 관계 같은 건 원치 않아." (p.225)




엘레나와 레오나르도는 같이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섹스를 한다. 엘레나는 늘상 조마조마하다. 자신이 원하는 걸 말했다가 혹여라도 그가 싸늘하게 변할까봐 쫄아있다. 그래도 만나면 또 어찌나 다정하고 살갑게 대해주는지. 어찌나 자기를 원하는지, 자꾸만 바람이 커져간다. 욕심이 커져간다. 그가 연휴동안 시칠리아에 또 간다고 해서 그동안 집에서 혼자 '연락할까 말까 하면 안되겠지' 이러면서 괴로워한다. 그러다가 그가 그녀의 집으로 왔을 때 오늘 자고 갈래요? 물어보니 그가 흔쾌히 그러겠다고 해서 또 해피해피해진다. 함께 끌어안고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내 침대에 누워있는 그를 보는 게 너무 행복해 미치겠는데, 그런데 자신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한다. 자신도 사랑하지 않을거라며. 이 남자. 내 모든 금기를 깨부수기 위해 노력하고, 나한테 이렇게나 다정하고, 나를 그동안과는 다른 사람으로 만들고, 서로에게 쾌락을 있는 힘껏 주고받을 수 있는 이 남자를, 그러나 엘레나는 '내 남자다', '내 애인이다', '나랑 사귀는 사람이다' 라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조차도. 왜냐하면 사귀는 사이는 아니니까.




변한 사람은 나다. 그녀에게 그동안 시시콜콜 다 털어놓곤 했는데 레오나르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할 수 없다. 우리가 진짜 연인 관계가 아니라고, 우리는 일종의 계약을 맺었다고, 그는 모든 것을 얻고 나는 단 하나, 나 자신을 잃는 사악한 게임을 하고 있다고 설명해야만 할 테니까. 아니, 가이아는 동의하지 않을 거다. 나를 걱정하며 그만두라고 조언하겠지. (p.233)



읽는 내내 엘레나에게 감정 이입해서 힘들었지만, 사실 엘레나가 레오나르도로부터 들어온 말들은 내가 나의 남자친구들에게 했던 말들이기도 하다. 나는 다른 남자도 만나면서 살거야, 누구나 다른 관계를 가질 수 있어, 귀찮게 전화하지마, 거리감 유지해 등등.... 나를 바꾸려고 시도하거나 나를 구속한다 치면 나는 그냥 너 안만나.... 이런 얘기를 내가 일삼었던 사람이다. 그러다가 어떤 남자한테 홀랑 빠지면서 입장이 바뀌게 되었지...그래서 나는 엘레나가 얼마나 힘들지 너무 눈에 보이는 거다. 다 알겠어... 그런데 자기는 이 남자 너무 사랑해. 너무 사랑하는데, 좋아 죽겠는데, 그런데 이 남자랑 내가 사귀는 사이라고 말할 수가 없어. 왜냐하면 상대가 그렇지 않다고 하니까.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 관계를, 이 존재를 부정해야 해. 아...쓰벌.......너무 괴롭지 않겠는가! 같이 있으면 이렇게나 다정하고 이렇게나 쾌락을 주고 이렇게나 스윗한데....... 그런데 자기는 나를 안사랑하니 나도 자기를 사랑하지 말래........... 멀리 떠나있어 며칠 연락 안되도 연락하지 말래...............내가 다른 여자 만나는 것도 내버려두래...................



야 이 씨벌놈아...



엘레나, 집어쳐라. 이 관계, 집어쳐라. 나는 수없이 엘레나에게 말했다. 그렇지만 엘레나가 집어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내가 더 잘안다. 나 역시 지나친 사랑에 힘겨워 '이거 그만하자'고 얼마나 많이, 수없이 되뇌었던가. 그러나 그게 마음 먹는다고 되는 일이던가.. 아, 신이시여, 엘레나를 도와주소서!

물론 레오나르도에게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어떤 상처, 아픔이 있어서 그렇다. 그래서 그가 저렇게 된 것 같은데, 아마도 앞으로 펼쳐질 2,3권에서 그것이 밝혀지겠지. 그렇다한들 엘레나가 아픈 건 아픈 거다. 나는 엘레나가 되어서 너무너무 슬프고 힘들었다. 그리고 레오나르도는 채식한다는 사람에게 고기를 먹이더니 나중엔 쓰리썸까지 시도한다......... 엘레나는 또 레오나르도를 너무 사랑해서 이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새롭게 태어난 자기 자신을 좋아해...사랑은..뭐지? 역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정해놓은 한계를 다 깨부수게 되는것인가...




그러나 낯선 이의 눈에 이들이 사랑하는 걸로 보인다는 걸 알게 된 레오나르도는 급격히 표정이 어두워지며, 자신이 처음에 말했던 대로 그녀에게 이별을 고한다. 아니, 여자는 아직 사랑해서 미쳐버릴 지경인데 그만 두자고 하다니...대체 어떻게 살라고.....엘레나는 계속 운다. 잡아봤자 안된다는 걸 알고 계속 운다. 원망하고 인정하고 이런 것들을 반복하다가 운다. 아, 이때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는 사랑이 안끝났는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만두자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왜 사랑은 어긋나는가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리고 엘레나가 이별을 받아들이고자 애쓰는 그 마음가짐이, 작년의 나와 꼭같다.



나는 행복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 내 고통을 객관화해야 하고 레오나르도와의 일을 내 인생에서 겪은, 너무나 아름다웠으나 되풀이할 수 없는 사건으로 생각해야 한다.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알기만 하면 된다. 일에 정신없이 뛰어들어도 된다. 가령 아직 너무 늦은 게 아니라면 파도바에서의 일을 수락할 수 있다. 강해지고 이성적이 되고 싶다. 이제 서른 살이 가까웠으니 내 삶은 내가 알아서 중요한 일에 집중하며 이 세상에서 내 자리를 찾고 싶다. 레오나르도의 품에서 행복하고 즐거웠던 엘레나, 그의 모든 몸짓과 말을 신뢰하며 기다렸던 엘레나, 그가 원하기만 하면 무슨 일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던 엘레나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그 여자는 내가 아니다. 나는 그가 원했던 여자였다. 이제 레오나르도 없이, 나 자신으로, 엘레나에게만 속한 엘레나로 돌아와야만 한다. (p.391-392)




그녀가 겪을 감정 소모가 너무 큰 것 같아서, 내가 다 힘들어져서, 계속 그녀에게 '편하게 가자, 편하게' 라고 말했다. 이렇게 진짜 가슴 찢어지게 좋아하는 남자 만나지말고, 편안한 남자 만나자. 그러면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이지 않은 채로 고요히 지낼 수 있을거야. 필리포를 선택하자, 라고 생각했다. 1권의 끝에 엘레나가 내린 결론도 이와 같다. 대체 내가 왜 필리포 대신 레오나르도를 선택했던가! 내가 늙은 걸까, 나는 이렇게 격한 감정으로 나를 몰아세우는 남자를 이제 만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제 이런 건 그만... 이거 힘들어서 더이상 못해. 물론 내 감정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남자를 만나 있는 힘껏 사랑하는 건 행복해. 그렇지만, 그 행복을 갖기 위해 내가 너무 감정적으로 너덜너덜해져. 편하게 가는 게 최고야. 그냥 나는 별로 안사랑하더라도 나를 사랑하는 착하고 다정한 남자 만나서 그냥 고요하게 물 흐르듯이 살면 돼. 거기에서도 행복은 충분히 찾을 수 있어. 나는 그냥, 초콜렛 잘 사주는 착한 남자 만나서, 그냥 매일 고기랑 술 쳐묵쳐묵 하면서, 그렇게 살고 싶어. 그렇게 편하게...긴장감 없이, 흥분 없이. 그러면 힘들 일도 없을거야.


이런 생각 오천번 하다가 잠들었더니 꿈에서 안사랑하는 남자랑 결혼을 했고, 꿈에서 계속 생각한거다. 



안행복해....





나란 인간..

사람은 안바뀌는 거야..

사람이 어떻게 변하니?





작년에 연인과 헤어진 후에, 멀리 있는 J 에게 편지를 보냈었다. 일상 속에서 행복들을 찾고 있다고. 그리고 이정도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그런데, 나는 더 행복하고 싶다고.

아아, 엘레나.

당신은 결국 필리포를 선택했죠. 충분히 안정된 관계일 것이고 그 나름대로 만족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더 큰 행복을 알았던 당신으로서는 거기에 만족할 수 없을 거예요.

그렇다.

쾌락을 알고 나서는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고기 맛을 알고 나서는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페미니즘을 알고 나서는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뭐든 알고 나면 알기 전으로 돌아가기는 힘든 법이다.




이 책, 《에로티카》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와 비교되곤 하는 모양인데, 그 책보다 훨씬 세련됐다. 일단 미술복원가가 하는 일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일을 설명할 때도 구체적이다. 게다가 베네치아에 대한 묘사도 종종 등장하고 독자로 하여금 이탈리아 너무 아름답겠다고 절로 상상하게 만든다. 레오나르도가 계속 비싼 선물만 사는 건.... 글쎄, 왜 상처입고 잘생기고 섹스기술이 어마어마한 남자주인공들은 늘 부자이기도 한건지 모르겠지만, 뭐, 싼 거 주는 것보다 낫겠지. 에로틱한 소설 속에서 왜 늘 여자는 서투르고, 금기시 되어 있고, 남자는 섹스 마스터인지... 무슨 섹스 머신이야...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소설은 그레이의 오십가지 그림자보다 세련된 게 사실이다. 영화로 나온다면 《나인 하프 위크》의 영(young)버젼쯤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온갖 음식이 섹스의 매개가 되는데, 나인 하프 위크의 얼음정사씬이 떠올랐다), 이쪽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보다 더한 에로틱함을 줄 것 같다. 




아아..미치도록 사랑하는 남자가 '날 사랑하지마, 나도 널 사랑안해' 라고 하는 말을 듣고 너무나 절망하는 여자주인공 엘레나에게 너무 이입되어가지고 글이 넘나 길어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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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7-03-24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 섹스마스타가 나오는 이야기 다락방이 써주시오!
작가 이름은 가명으로 냅시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7-03-24 11:28   좋아요 0 | URL
제가 너무나 쓰고 싶지만 경험이 미천하여.....Orz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저좋은모리군 2017-03-24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너무.... 책커버는 이래서 필요한 것이군요 오

다락방 2017-03-24 14:20   좋아요 0 | URL
저는 잘만 들고 지하철 타고 다녔어요. 걸으면서도 읽었고요. 그런데 아주 야한 장면이 나올 때는 살짝 주변을 둘러봐야 했어요. 누가 내 책 같이 읽고있나... 하면서 두리번두리번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7-03-24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쾌락을 알고 나서는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고기 맛을 알고 나서는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페미니즘을 알고 나서는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뭐든 알고 나면 알기 전으로 돌아가기는 힘든 법이다.

이 문단 참 좋아요. 쾌락도, 고기도, 페미니즘도 알고 난 다음에는 포기할 수 없죠. ㅠㅠ
다락방님 글 읽다가 나도 모르게 엘레나가 되어버려서 레오나르도에게 욕 많이 했네요.
야 이 ㅅㅂ놈아...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7-03-24 15:5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오나르도에게 어떤 상처가 있는건지 사랑하고 사랑받는 걸 피하려고 해요. 우리 모두에겐 각자의 사정과 각자의 상처가 있지만, 나는 그를 사랑하는데, 사랑이 폭발해 미칠 지경인데, ‘날 사랑하지마‘라는 말을 들으니 너무나 슬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슬픔 대폭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보면 그레이가 아나스타샤한테 구슬을 주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걸..어..넣는 건데.. 그 장면에서 제가 너무 충격을 받았었어요. 나중에 안빠지면 어떡하지??????????? 하고 완전 쫄았는데, 이 책에서는 쓰리섬 장면에서 제가 또 엄청 충격 받았네요. 아, 저는 정말이지 ... 쾌락의 ㅋ 도 모르는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쾌락도 쾌락이지만, 내가 사랑하는 남자를 다른 여자랑 같이 막 그러고 싶지가 않아....전 얌전한 남자랑 연애할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쓰리섬 안하는 남자로다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댓글이 바보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7-03-25 04:38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27 08:31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받는다. '로건'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로라'를 지키는 데 온 힘과 에너지를 쏟게 된다. 물론, 이미 탁월한 능력이 있었던 로라 역시 로건을 지키고자 한다. 게다가 로건은 로라가 '대디' 라고 부르는 순간에, '아, 이런 것이구나' 하고 그간 존재하는지 조차 알지 못했던 감정에 대해 느끼게 되기도 한다. '찰스'가 잠깐 단란한 가족들 사이에서 '여기서 하룻밤 쉬어가자' 라고 말하는 것은, 본인이 그 평범함과 안락함을 즐기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울버린에게 보여주려는 의도이기도 했다. 그건 내게도 통해서, 그 장면에서 나는 평범하고 단란한 가정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저게 사실은 가장 행복한 게 아닐까. 특별하지 않은 사람과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만나서 함께 사는 일. 한 공간에서 함께 밥을 먹고 별 거 아닌 이야기를 나누는 일 같은 것들. 이거 말고 인생에 굳이 뭐가 필요할까? 




조카1은 이제 여덟살이고 이번 해에 학교에 입학했다. 이 아이는 뭘 만들고 조립하는 걸 너무 좋아해서, 아주 어릴 때부터 볼펜을 분해하기도 했고 몰펀을 아주 잘 다뤘다. 그러나 이 아이는 내 기대와는 달리 책 읽는 것에는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았고 글자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조카의 엄마와 아빠는 아이가 또래 아이들에 비해 독해 능력이 좀 떨어지는 게 아닐까 걱정을 해서 논술 선생님과 책읽기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내게 알렸다. 나는 여동생에게 그랬다. '아니야, 내 조카는 절대, 절대로 독해 능력이 떨어지지 않아. 지금은 글자를 잘 모르니까 읽는데 시간이 걸려서 그 글자를 읽어나가는 데 에너지를 쏟아서 그렇지, 일단 걔는 내용을 알기만 하면 누구보다 그걸 잘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아이야. 걘 진짜로, 파악하거나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니까?' 라고. 나름 열변을 토했는데, 조카의 논술 선생님이 조카랑 수업을 해본 뒤에 여동생에게 나랑 똑같이 말했다고 했다. 글자 읽고서 내용 파악은 힘들어하는데 그건 글자 읽느라 그런거지 다른 사람이 읽어주면 누구보다 해석을 잘하고 자기 의견 표현도 잘한다고. 아니, 내가 내 조카를 아는데 진짜 그렇다니까? 글자는 다른 아이보다 좀 늦게 알 수도 있는데, 얘가 상황 파악이나 감정 표현 능력이 진짜 탁월하다니까? 이런 조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시쓰기 시간이라고 한다. 선생님이 말하기를, 시 쓸 때 이 아이는 너무 신난다면서 알고 있는 표현을 죄다 끌어오면서 시쓰는 걸 즐겨한다고 한다. 그래서 여동생은 시쓰기 노트를 따로 한 권 사줬다는데 거기다 신나서 시를 쓰고 있단다. 아아, 조카야, 이모는 책은 즐겨 읽지만 시를 잘 몰라... 역시 너는 나랑 너무나 다르구나... 나는 일전에 조카랑 놀면서 몰펀이나 레고 맞출 때 완전 멘붕오고 스트레스 받아서 손이 꼼짝도 안하는데, 조카가 깔깔 웃더니 머릿속에 생각하는 걸 그냥 다 만드는 게 아닌가! 아아, 아이야, 너는 나랑 다르구나! 어쨌든.


이 논술 시간에 주제가 '여행'이어서 어디에 다녀와봤냐, 라는 식의 문답이 있었는가 보다. 나의 조카1은 '저는 제주도밖에 안가봤어요' 라고 했다는데,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단다.


그런데 우리 이모는 많이 가봤어요. 미국도 가고 프랑스도 가고(포르투갈과 헷갈린 것 같다) 홍콩도 가고 남자친구도 호주에 있어요(이것은 반만 사실이다).



그래서 여동생이 아, 이모의 삶이 이렇게 조카에게 영향을 주는구나 생각했다는 거다. 지난 주말에  우리집에 왔던 조카는 자고 일어나서는 내 방으로 들어와 나를 깨웠다. 내가 팔을 벌리자 내 품에 쏙 안겨서 내 옆에 누웠는데, 그러면서 내게 이모는 어디어디 여행가봤어? 하고 묻더라. 


응. 이모는, 미국, 포르투갈, 괌, 홍콩, 마카오, 싱가폴, 베트남, 러시아 가봤어. 

이모 프랑스는 안가봤어?

응 이모 프랑스는 안가봤어.

이모 타미는 홍콩 가보고 싶어.

아 그래? 그러면 이모랑 같이 홍콩 갈까?

응 이모랑 같이 홍콩 가고 싶어.

응 그러면 타미 지금보다 더 크면 이모랑 둘이 홍콩가자.



이모. 우리 태권도 선생님은 어릴 때부터 태권도 선생님이 되고 싶었대. 근데 자꾸자꾸 생각하니까 정말 태권도 선생님이 됐대.

응 맞아, 타미야. 이모도 열다섯살 때부터 미국 가고 싶었거든. 그래서 자꾸자꾸 생각하니까 나중에 진짜 미국에 가게 됐어. 타미도 하고 싶은 거 자꾸자꾸 생각하면 하게 될거야.

진짜?

응. 사람은 하고 싶은 거 자꾸자꾸 생각하다보면 매순간 거기에 가까운 선택을 하게 되거든. 그 선택이 결국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줘.



이런 대화를 내 침대 위에서 둘이 알콩달콩 나누었는데, 내 조카가 얼마만큼을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어제는 조카랑 영상통화를 하는데 이모 어디냐 물어서 '이모방이야' 했더니 진짜인지 보여줘봐! 하는 거다. 그래서 웃으면서 책장 앞에 가 섰다. 그리고 책들을 좌악- 보여주니, '이모방 맞네' 하더라. 아하하하하. 나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다니는데, 내 조카에게는 이런 나의 모습이 계속 차곡차곡 쌓이는 것 같다. 알게 모르게 나는 조카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최소한 '다른 어른의 모습' 같은 거라도 주게 되는 것 같다. 아빠 어른, 엄마 어른, 할머니 어른, 선생님 어른을 주변에서 아주 자주 보겠지만, 그들과는 또 다른 '이모 어른'을 보게 되는 거다. 학교에서 애들을 가르치는 걸 직업으로 삼는 어른을 보게 되는것처럼, 자주 여행을 가는 이모를 또 보게 되는 거다. 다양한 어른을 알게 된다는 건 좋은 거 아닐까? 알게 모르게 나는 조카에게 다른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아, 그리고 연대! 하하하하하.

지난 번에 조카네 집에 갔다가 술을 마셨는데, 조카2가 공룡 인형을 가지고 놀자고 하는 거다. 그래서 함께 노는데, 가장 무서운 공룡이 작은 공룡을 잡아먹는 놀이를 하더라. 그래서 내가 작은 공룡을 죄다 세워놓고 그랬다.


봐 조카야. 이렇게 큰 게 작은 거 공격하면 작은 건 이길 수가 없지만, 이렇게 작은 공룡 여러마리가 함께 힘을 합쳐서 큰 공룡한테 덤비면 큰 공룡이 져. 하면서 작은 공룡 여러명이 큰 공룡에게 덤비는 장면을 연출했다. 결국 자기 혼자 서있던 큰 공룡은 쓰러졌는데, 


조카야 봤지?

하니까, 조카2가 응. 같이 공격하면 큰 공룡이 져. 이러더라. 그래서 내가 말했다.



이게 연대야. 우리는 연대해야 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제기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섯살 짜리한테 내가 지금 술취해서 뭐하는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말하고 내가 빵터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즘 친하게 지내는 망고남은 지난 주말 대화에서 '나는 페미니스트' 라고 자기를 정의했다. 이 친구에게 페미니즘이 장착되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페미니즘 감수성도 높다는 걸 알고 있었다. 또한 페미니스트로 살고자 하는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주기도 해서, 이 친구가 지향하는 것이 페미니스트라고 내가 생각해오긴 했지만, 이렇게 본인 입으로 직접 '나는 페미니스트다' 라고 발화한 적은 처음이라, 막 너무 좋았다. 이 친구가 애초에 성차별주의자가 아니었다는 걸 내가 알지만, 나를 알고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또 나의 글을 읽고 나와 대화를 많이 많이 하면서, 나로부터 계속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이 장착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만약 지금 열심히 페미니즘 공부하는 나를 만난 게 아니었다면, 이런 나랑 대화하는 시간이 길었던 게 아니라면, 스스로 '나는 페미니스트다' 라고 말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본인이 어쩌면 인지하지도 못하는 순간에 이런 나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하니 감개무량 ㅠㅠ 


이로써 내가 세상에서 사랑하는 남자사람 둘 모두가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자신을 정의했다.  내 남동생쪽은 사실 갈 길이 아주 멀지만... 얘는 페미니즘 감수성이 썩 높질 않아...  -_-





어제는 매일 걷는 퇴근길이었는데, 이십년 가까이 해오는 퇴근길이었는데, 다른 날보다 유독 지쳤다. 지겨웠고 지긋지긋했다. 가도가도 지하철 역이 나오질 않는 것 같았다. 가까스로 지하철 역에 도착했는데, 사무실에서 나온 시간으로부터 20분이 지나 있었다. 아, 싫다 진짜. 그리고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오는 게 또 수서행이야...나는 오금행을 타야 하는데... 짜증이 폭발할 것 같았다. 지하철로도 한참을 가고나서 내려 집까지 걷는데도 또 오만년 걸리는 느낌... 너무 지겨워서 주저앉고 싶은 거다. 아 진짜 미치겠네, 너무 힘들고 짜증나네 ㅜㅜㅜㅜㅜㅜㅜㅜ 이러다가 퍼뜩 아?? 하고 생리앱을 켜봤고 그리고서 아..... 했다. 


너무 지쳐서 엄마한테 김치전을 부쳐달라고 했다. 편의점에서 소주를 사가서는, 엄마와 남동생과 내가 셋이 식탁에 앉아 김치전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셨다. 진짜 맛있었다. 엄마, 김치전 해줘서 너무 고마워, 너무 맛있어, 먹고 싶었는데 엄마 없었으면 나는 귀찮아서 안해먹었을거야, 이러면서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는 퇴근길이 너무 지치고 짜증났다고 했는데, 엄마가 그랬다. 


야, 그럴 때는 집에 오지말고 근처 모텔 잡아서 자.



아???????????????? 내가 왜 이생각을 못했지?????????????????????? 그러면 되겠네????????????



뭐하러 힘든데 집에 와서 자냐, 그냥 회사 근처에 가서 자고 다음날 출근해. 



이러시는 거다.



우왓. 좋은 방법인데? 마침 회사 근처에 내가 아는 호텔도 있겠다, 다음에 지치고 지겨우면 그냥 호텔 가서 널브러져야겠다, 라고 생각하다가,



그런데 엄마 돈은???



하고 물으니 엄마는 '그게 문제지, 그러다 빚생기지' 이러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참나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는 이내, 야 근데 회사 근처에 호텔 잡으면 엄마한테 전화해, 하셨다. 너 혼자 자기 무서우니까 엄마가 가서 같이 자줄게, 라고. 아니 엄마...그러면 엄마가 오며가며 힘든데 뭘 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돈이 많다면 회사 근처에 방 하나 얻어두고 싶다 진짜.



아 그러니까 생각나는 한 십오년 전쯤의 기억... 그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매일 회사 출근하는 길이 멀고 지쳐. 회사 근처에 방얻어줘' 라고 했더니, 반나절 후쯤에 '그 근처 사는 친구한테 방 하나 알아보라고 했어' 라고 답이 오더라. 내가 진짜냐고 물으니, '응 좋은 생각 같아, 나도 가끔 들를 수 있고' 이러는 거다. 그래서 내가 '안돼 알아보지마, 그러다 애생겨' 라고 했더랬지............... 




아, 돈 벌어서 강남에 빨리 집사가지고 망고남한테 청혼해야겠다. 강남에 집 없으면 청혼할 생각도 하지 말라 그랬는데.....힝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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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3-21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건 감상평을 기대하고 들어왔는데
조카와의 일상의 저격이라니...

그래도 연대에서 빵 터졌습니다.

역시 사람은 강남에서 살아야 봅니다.

다락방 2017-03-21 14:16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 로건 보면서 펑펑 울었는데 막상 페이퍼로 쓰려니 쓰고 싶은 말이 생각나지는 않더라고요. 보는 동안 내내 막 감정이 최고치로 끌어올려졌었어요. 하핫.

다섯살 아이에게 연대를 가르치고 있었어요, 제가....아하하하하

블랙겟타 2017-03-22 1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하 다락방님 조카분에게 연대의 개념을 신선하게(?) 가르치셨네요 ㅎㅎ저도 ‘로건‘봤었어요. 예전엔 눈물을 쥐어짜낼려고 해도 안나오던게 요즘은 알게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구요.. ㅜㅜ 히어로 무비를 좋아라 하는데 서부극 느낌이 었던 이런 히어로 무비도 신선하더라구요. 그리고 로건이랑 또 봤던 영화가 일본영화 ‘아주 긴 변명‘이었는데요 혹시 기회가 되시면 추천드릴께요 ^^

다락방 2017-03-22 12:05   좋아요 2 | URL
저도 나이들면서 눈물이 많아진 것 같아요. 로건 보면서는 그냥 흐느꼈네요 아주 ㅋㅋㅋㅋㅋ [아주 긴 변명]이 블랙겟타님의 추천이란 말이죠? 오케이, 알겠어요. 기억해뒀다가 기회되면 꼭 보도록 할게요.

오늘이 수요일입니다, 블랙겟타님. 저는 금요일에 여행갈거기 때문에 하루하루 시간이 갈수록 들뜨고 있어요. 아하하하하. 어서 수요일도 가고 목요일도 가라, 그러면 금요일, 나는 바다로 간다!! ㅎㅎㅎㅎㅎ 이런 상태로 근무중입니다. 힛.

블랙겟타 2017-03-22 13:34   좋아요 1 | URL
우와~ 여행!이라니요 바다!라니요 ㅎㅎ 부럽네요. 다락방님, 이틀만 버티면 되네요 ^^

다락방 2017-03-22 14:24   좋아요 1 | URL
네네!! ^___________________^

[그장소] 2017-03-26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카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난 건데 한 친목카페의 아이 엄마가 제목을 라이벌로 해서 글을 올렸어요 . 아이가 새엄마 ㅡ라는 단어를 썼다잖아요 . 아 , 이 엄마는 이 단어가 대체 어디서 온건 줄 몰라 당황하다가 아이가 먼저 쓴 글의 내용을 보고 빵 터졌데요 . 저도 기발해서 웃었는데 ..우린 새엄마하면 계모로 생각하는데 아인 동물 가족 만들어주기 놀이를 하면서 돼지엄마 , 소엄마 따윌 쓰고 그날은 새 차례가 되선 새엄마라고쓴 거였데요 . 단어를 이해하는지 못하는지 아이뿐 아니라 우리도 모르고쓰면 그와같은 인식의 영역이 되겠구나 했었네요 .

다락방 2017-03-27 08:32   좋아요 1 | URL
아, 새엄마... 저도 당연히 계모 생각했어요. 그런데 bird 의 엄마였군요. 아아. 자라면서 형성되는 편견과 고정관념이 오히려 사고를 제한하는 것 같아요. 새엄마를 다양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알고 있는 바로 그걸로만 인식하려고 하니 말입니다.

[그장소] 2017-03-27 12:29   좋아요 0 | URL
맞아요 . 바로 그래요 . 아이들의 순수성도 어른의 고정관념으로 이렇듯 변하는 걸 보면요 .
 
나는 당당한 페미니스트로 살기로 했다 - 웃음을 잃지 않고 세상과 싸우는 법
린디 웨스트 지음, 정혜윤 옮김 / 세종서적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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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한 개그프로에서 아동성추행에 대해 다룬 걸 보았다. 장동민이 어린 아이로 분한 코너였는데 할머니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서 자신의 성기를 만지는 걸 허락하는 내용이었다. 그 영상을 본 나는 정말 놀라고 끔찍했다. 대체 저게 어떻게 코미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걸까? 웃기 위해 그 자리의 방청석에 와있는 많은 사람들 속에, 그리고 웃기 위해 그 프로를 보겠다고 앉아있는 많은 시청자들 중에 아동 성추행 피해자가 무수히 많을텐데, 저걸 어떻게 코미디라고 할 수 있을까? 아동 성추행의 피해자인 나는 그 프로를 보면서 정말로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두려움이 찾아왔다. 어떻게 저게 웃기지? 저게 웃겨? 저게...웃겨? 난 아픈데? 무서운데? 미쳐버릴 것만 같은데?


개그 프로는 어른들도 보지만 아이들도 본다. 그 아이들 중에도 그 경험을 실제 '당하고'있는 아이들이 있었을 수도 있다. 매체에서 '어쩔 수 없다'고 그걸 허락하는 장면을 내보내는 동안,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할머니(할아버지)의 기분을 좋게 할 수 있다면 이렇게 해도 되는거야' 를 조장하는 거 아닌가. 진짜 숨막히게 위험한 프로가 아닌가. 어떻게 저걸 개그라고 할 수가 있지? 어떻게 누군가의 아픔과 두려움을 개그 소재로 쓸 수가 있지?



이 책의 저자 '린디 웨스트'는 코미디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코미디의 한 복판에 뛰어들어 사람들을 웃기고 싶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재미있는 걸 좋아했고, 그 재미있는 것들을 해내는 사람들의 일원이 되고 싶었다. 그 길로 근접하게 갔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그녀는 거기에서 튕겨져 나온다. 너무나 많은 남성 코미디언들이 너무나 당당하게 '강간'을 코미디의 소재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토론하는 티비 프로그램에 나가서 코미디의 소재로 강간이 쓰여서는 안된다, 너네가 그렇게 강간으로 코미디를 하는 동안 그 안에 누군가는 강간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강간 코미디를 옹호하는 그 남자 코미디언은 사람들은 농담과 진담을 구분할 줄 안다고 말한다. 야, 강간 장면 나오는 영화도 있잖아, 그런데 코미디는 왜 안돼? 라면서. 어떻게 이 남자는 이런 걸 비교대상으로 갖다 놓은걸까?



남자 코미디언은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잘못인 줄을 모른다- 그 프로그램이 끝나는데, 그 강간문화(코미디)가 얼마나 잘못됐는지는 그 후에 여실히 드러난다. 저자 린디 웨스트에게 매일매일 끊임없이 아주 여러 개의 트윗 멘션과 이메일이 날아오는 거다. 그것들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거였다.



강간도 당하지 못할 뚱뚱한 여자 주제에. 너도 강간 당하고 싶지?




린디 웨스트가 받는 그 수백개의 멘션은 그대로 강간 문화의 여실한 증명이 된다. '사람들은 그게 농담인 줄 알고 있으므로 코미디의 소재가 되어도 된다'는 남자 코미디언의 말이 왜 틀렸는지를 보여주는 바로 그 증거가 된다. 린디 웨스트는 그 멘션들을 죄다 묶어서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이에 린디 웨스트를 지지하며 강간 코미디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속속 드러난다. 이 생생한 증거 앞에 남자 코미디언은 한 방송에 나가서 '강간문화가 존재하긴 한다(자신들이 그러고 있다)'고 인정하기는 한다. 그 후에 코미디에서 강간을 다루는 것은 좀 더 조심스러워지긴 했지만, 그러나 말끔하게 없어지진 않았다.



나는 성추행과 성폭행이, 강간이 왜 코미디의 소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그걸 소재로 삼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된다. 왜 웃기기 위해서 그래야할까? 왜 웃기기 위해서 강간을 소재로 삼아야 할까? 왜 웃기기 위해서 약자를 소재로 삼을까? 그 웃음엔 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코미디에서 강간을 소재로 사람들을 웃기려고 시도하는 것, 그리고 그 개그에 따라 웃는 것은 암묵적으로 강간 농담을 허용한다. 강간 농담을 허용한다는 것은, 실제 강간을 당한 피해자를 더 숨게 만든다. 더 숨게 만들어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 강간이 없던 일이 되는 게 아니다. 범죄는 더욱 강해지고 피해자는 더욱 약해진다. 이런 시스템을 아주 충실히 만들어가면서 '야, 웃자고 한건데 왜그래?' 라니, 인간이 할 짓인가.




린디 웨스트는 자기가 뚱뚱하다고 말한다. 정말 그녀는 뚱뚱하다. 키가 175센치였나, 몸무게는 120킬로그램이라고 책에 밝히고 있다. 그녀는 세상이 자신을 혐오스런 눈으로 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어릴 적부터 눈에 띄는 존재가 되고 싶어하지 않았던 기억을 갖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날씬하게 보이고 싶어 애를 썼던 과거도 물론 갖고 있다. 그러나 날씬해 보이기 위한 옷을 입는다고 해서 정말 날씬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 깨닫게 되고 또한 뚱뚱한 것이 잘못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된다. 잘못된 건, 뚱뚱한 사람들을 향한 세상 사람들의 잘못된 시선과 편견과 혐오였다. '너의 건강을 염려해서 그래' 라고 하지만, 린디 웨스트는, 정말 그들이 자신의 건강을 염려한다면 그렇게 자신의 정신에 스트레스를 주는 몸에 대한 참견을 멈춰야 하는 거라고 말한다. '뚱뚱한' '여자'로 살아오면서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싸우기 시작한다. 뚱뚱한 그녀가 어릴 적부터 '저렇게 되고 싶다'고 했던 마땅한 롤모델을 찾을 수 없었으므로, 그녀는 자신이 다음 세대의 롤모델이 되기로 한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과 몸을 당당하게 공개하고, 결혼식을 앞두고도 '그래도 결혼식이니까 막강 다이어트 해야지'라는 생각에서 벗어난다. 그녀는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그 사진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봐, 나는 내 모습 그대로 아름다워!



그녀가 당당한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처음부터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사랑에 있어서 그녀도 실패를 했었다. 너무 사랑해서 그의 옆에 껌처럼 달라 붙고 싶어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성장한다. 조금 거리를 두는 것이 이 사랑을 더 견고히 만든다는 사실에 대해 깨닫게 되는 것이다. 페미니스트가 완벽한 인간이 아니고, 페미니스트가 결점이 없는 인간인 것은 아니다. 페미니스트는 이렇게 자신이 어딘가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이다. 잘못된 말과 행동을 일삼는 사람에게 그것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 그것이 린디 웨스트가 선택한 페미니스트로 사는 방법이고, 그리고 자신의 그런 말과 행동이 세상을 바꾸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그녀가 뒤에 숨거나 하는 대신에 당당하게 앞에 나서서 '너 틀렸어', '그거 잘못됐어' 라고 말하는 사람이라서 고맙다. 그녀는 그녀의 바람대로 많은 여성들의 롤모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문체가 너무 산만해서 초반에 읽기에 집중이 되질 않았다. 자꾸 웃기려고 하기 때문에 산만해진 것 같은데, 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별 하나를 뺀다. 본문에만 집중하고 싶은데 자꾸 괄호를 열고 닫으며 설명하는 게 많아서(물론 옮긴이의 주석도 있다) 그 점이 나의 취향에서 약간 벗어났다.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은 뒤에 그녀가 공개한 결혼식 사이트에 들어가봤다. 그리고 그녀가 바라던대로, 그녀의 결혼식 사진을 한참 들여다봤다. 



<실용적인 결혼 A Practical Wedding>














부디 잊지 말기 바란다. 나는 내 몸이라는 사실을. 내 몸이 작아진다 해도 그것은 나고, 커진다 해도 그것 역시 나다. 내 안에서 날씬한 여자가 발굴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나는 한 덩어리다. 마찬가지로, 나는 살덩어리로 된 인큐베이터 안을 돌아다니는 자궁도 아니다. 여성의 몸을 여성의 생식기관과 분리하려는 역겨운 선전-임신중절과 피임은 보건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고 끊임없이 거짓말하는 것을 포함해서-과, 여자들에게 여성 자신과 몸의 크기는 서로 분리되어 있고 동시에 서로 적대적이기까지 한 제각각의 독립체라고 설득하려는 역겨운 선전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두 가지 모두 ˝너의 몸은 네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 모두 ˝너의 자율권은 조건부일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바로 이것이 비만이 페미니즘의 의제인 이유다. (p.35-36)

대학 시절, 나는 아침마다 하워드 스턴Howard Stern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청취했다. 나는 하워드 스턴을 정말 좋아했었고 아직까지도 그렇다. 페미니즘에 대한 내 확신이 공고해짐과 동시에 그에 대한 지지를 쓰라린 마음으로 어느 정도 철회해야 했지만 말이다(어떤 면에서 보면 페미니즘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우리를 미워한다는 사실을 천천히 개달아가는 기나긴 과정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p.42)

사실 나는 누군가가 인공임신중절을 결정하는 이유 따위에는 하나도 관심이 없다. 자기의 몸 안에서 자라고 자기의 피를 공급받으며 자기의 생명을 위협하고 자기의 미래를 재설정하는 무언가의 향방에 대한 결정권은 어떤 경우에도 자궁의 주인에게 있다고 나는 믿는다. ‘타당한‘ 낙태나 ‘타당하지 않는‘ 낙태 따윈 없다. 임신한 사람 가운데 출산을 원하는 사람과 원치 않는 사람, 그리고 선택에 접근할 기회 및 지지를 얻는 사람과 장애물에 부딪히고 거짓을 주입받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p.101)

여자인 나의 몸은 끝도 없이 검열과 통제의 대상이 되며, 시도 때도 없이 마치 진열대에 놓인 물건처럼 취급받는다. 뚱뚱한 내 몸은 풍자당하고 공공연하게 매도당하며 도덕적, 지적 실패로까지 여겨진다. 내 몸은 내 직업적 가능성과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제약하고, 공정한 시험을 받을 기회는 물론 할리우드 영화와 인터넷 악성댓글이 하나같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한 가지 조처, 즉 나의 사랑받을 능력을 축소시킨다. (p.106)

나는 세상의 이런 시각을 ‘전도된 신체 이형증‘이라고 명명했다. 거울을 들여다볼 때마다 뭐가 그리 역겨운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이 똑똑하고 재미있고 타고난 재능이 많으며 사교적이고 친절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째서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다는 걸까?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점들을 기준으로 봤을 때 나는 홈런이었다. (p.106-107)

끝내 체중은 줄어들지 않았고-상당한 정도로는 말이다- 간간히 일궈낸 작은 ‘성공들‘은 ‘일반적‘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식생활 습관 덕분이 아니었다. 내 몸을 ‘고치는‘데 필수적인 제한 수준이라며 전문가들이 말해주는 방법들은 사실상 인간의 즐겁고 충만한 삶과 관련된 거라면 몽땅 제거해버리는 것들이었다. (p.115)

그들은 뚱뚱한 사람들을 미워하는 게 어째서 올바르고 좋은 일인지에 대해 수많은 자극적 이유들을 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예컨대 우리가 혐오스럽고 성적 매력이라고는 없는 몸의 소유자임은 물론(고전적인 이유다!) 의료보험료가 줄줄 새나가는 구멍이라고, 비행기 팔걸이를 독차지한다고, ‘아이들‘한테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절제하는 삶을 식탐과 맞바꾸는(모두가 잘 알고 있다시피, 마른 사람들은 모든 측면에서 절제하는 단정한 삶을 사는 데 반해서) 어쩔 수 없는 무능력자이자 괴물같은 고집쟁이라고 몰아붙이는 거다. 아, 우리의 ‘건강‘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걱정이 되기 때문이란다. 그들이 우리를 막 대하는 건 우리를 위해서라는 거다(어떤 집단을 도울 때 실제로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닌 게 뭔지 아는가? 바로 그들을 척결하자는 주장을 펴는 쪽과 같은 말을 하는 거다). (p.134-135)

새로운 연구결과에 따르면, 건강을 위협하는 것은 몸 크기가 아니라 활동량이 적은 생활습관이라고 한다. 그리고 뚱뚱한 사람들은 다양한 외적, 내적 힘들이 복잡하기 이를 데 없이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삶을 살고 있고, 그들이 뚱뚱하지 않은 사람들한테 빚진 거라곤 병아리 눈물만큼도 없다. 케이트 하딩Kate Harding과 매리언 커비Marianne Kirby가 『비만인 사람들에게서 얻는 교훈Lessons from the Fat-O-Sphere』이라는 책에서 쓴 것처럼, 건강은 무슨 도덕적 의무에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p.136)

당신은 제 건강을 염려하는 게 아닙니다. 만약 당신이 제 건강을 걱정한다면 거기엔 제 정신건강도 포함되어 있을 텐데, 앞서 언급한 말들 때문에 제 정신은 지난 28년간 천천히 손상돼왔으니까요. 또한 당신은 제 건강에 대해 아는 바도 전혀 없습니다. 어쩌다 제 상사가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제 의사는 아니니까요. 당신은 제가 뭘 먹고 운동은 얼마나 하는지, 혈압은 어느 정도며 당뇨병에 걸릴지 아닐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것들 가운데 어떤 것에도 신경 쓸 필요 없어요. 그건 전혀 당신이 상관할 문제가 아니니까요. (p.152-153)

낙인찍기는 이렇게 작동한다. 코미디언들은 헤르페스가 있는 사람들을 농담의 대상으로 삼는다. 청중들은 웃는다. 헤르페스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상상하던 최악의 공포가 사실임을-자신은 혐오스럽고 망가졌고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확인한다. 헤르페스가 없는 사람들은 자기 안에 있는 가장 나쁜 본능-자신은 깨끗하고 행실이 올바르고 더 나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정당화되는 현장을 목격한다. 헤르페스에 걸린 사람과 자고 싶은 사람은 없다는 사실엔 누구나 동의한다. 만약 헤르페스가 있는 사람이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하려면-자기가 헤르페스에 걸렸다는 사실을 공개해야 함과 동시에-과민반응을 일으켜서 재미를 망쳐버렸다고 비난받아야 한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는 대신 그들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같이 따라 웃는다. 농담은 먹힌다. 너무 잘 먹혀서 아마 그 코미디언은 그런 농담을 하나 더 쓸 거고 말이다. (p.235)

곰곰이 생각해볼수록 나는 점점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왜 우리가 다 같이 이따위 농담에 따라 웃고만 있는 거지?
나는 아함의 귀 가까이로 다가가서,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소리 너머로 말했다. ˝있잖아요, 저도 헤르페스에 걸렸을지 몰라요.˝ (p.236)

˝아마 이 청중들 중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헤르페스에 거려 있을 거예요.˝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하지만 어쨌든 그 사람들은 웃는 척 해야 되죠. 정말 더러운 느낌일 거예요. 그냥 다른 농담을 쓸 수도 있는데 뭣 때문에 사람들한테 이런 짓을 하는 걸까요?˝
˝나도 모르겠어요.˝ 그가 말했다. ˝하지만 당신 말이 맞아요. 나도 걸렸을 수 있죠.˝
아함과 나는 5년 동안이나 자잘한 파티 또는 자원 공연을 다니며 잡담을 주고받았지만, 그동안 서로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몇 년이 지난 뒤 아함이 이런 얘기를 했다. 자기는 쭉 내 글의 애독자였지만 그 순간이 나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영원히 바꿔놓고 말았다고 말이다. ˝한 여자가 그런 말을 하는 걸 듣고는 정신이 멍해졌지.˝ 그가 말했다. ˝당신이 그냥 웃기기만 한 게 아니라-늘 당신이 정말 웃기다고 생각했었지만- 진짜, 진짜, 엄청나게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거야.˝ (p.237)

오랫동안 나는 어떤 코미디 쇼를 보러 가든, 내 젠더를 겨냥한 수많은 야만적인 농담에 별 도리 없이 그냥 히죽 웃고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들은 우리를 때리는 것, 우리를 강간하는 것에 대해서는 물론 우리가 그런 일을 당해도 싼 이유 및 우리를 서열화하는 것, 우리를 성관계의 대상으로 삼는 것과 그렇게 하지 않는 것, 이미 비인간화된 우리 존재를 한 줌의 모욕적인 전형으로 쪼그라뜨리는 것에 대해 떠들어댔다. 이런 농담은 일상적으로 이루어졌다. 소위 진보적인 대안쇼라고 하는 무대나 내 친구들이 예약한 쇼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코미디에서 여성혐오는 평범한 요소였다. 제발 내 아내 좀 데려가줘요. (p.240)

어떤 자원 무대에서는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 ˝간밤에 여자 하나를 집으로 데려왔는데 섹스하는 동안에 얼마나 소리를 크게 내던지.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죠. ‘쉿, 너 이 강간을 살인으로 바꾸고 싶어?˝ (p.241)

내가 사랑하는 코미디언이 나한테 경보를 울리는-뭔가 인종주의적이거나 성차별적이거나 트렌스젠더 혐오주의적인-어떤 말을 했을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괜찮은 걸 거야. 그가 괜찮다고 했고 나는 그를 신뢰하니까. 나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모르는 비밀 계약 같은 게 있는 게 틀림없어. 여자나 게이나 장애인이나 흑인 들이 그게 멋지다고, 농담은 그렇게 하는 거라고 동의하는 계약 말이야.
하지만 브릿지타운에서의 그 순간에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밀어닥쳤다. 그런 규칙은 대체 누가 만든 거야? 그런 계약을 누가 했냐고? 나는 아무 계약서에도 사인한 기억이 없는데. 어쨌든 그건 보편적인 동의라기보다는 힘센 남자들이 자신들은 절대 겪을 일이 없는, 생명을 파괴하는-때로는 말 그대로 진짜 고문을 포함한-공포로 싸구려 웃음을 짜낼 ‘권리‘를 지키기 위해 설치해놓은 위장 폭탄에 더 가까워 보인단 말이지. 도대체 내가 왜 몇 시간 동안 ‘쌈박한‘ 여성혐오, ‘쌈박한‘ 인종주의, ‘쌈박한‘ 강간 농담에 환호하면서 앉아 있어야 하는 거지? 단지 다른 사람들 못지않게 나한테도 중요한 이 산업에 끼고 싶어서? (p.241-242)

아함이라는 존재는 더 이상 내 세계에서 유일한 부분이 아니었다. 고통에 지친 나는 (그리고 나중에는 내 직업 탓에) 약간 그를 옆으로 밀쳐놓게 되었는데, 그 공간이야말로 정확히 그가 필요로 했던 것이었다. (p.332-333)

나를 속이다니! 5년이라고 해놓고. 나는 5년을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2년 만에 프로포즈를 하다니.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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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진 2017-03-25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저도 이 책의 표지에 손가락 하나 보태고 싶어요.
저 역시 그녀의 결혼식 사진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며,

다락방 2017-03-27 08:32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요즘 어떻게 지내요? 열심히 글 쓰면서 지내고 있나요?
 
문학과 사회 116호 - 2016.겨울 (본책 + 하이픈)
문학과지성사 편집부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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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본책은 읽지도 않고 별책인 하이픈 <비평적-페미니즘적>의 일부만 읽었음을 우선 밝힌다. 그런데 이 별책이 참 좋다. 오늘 지하철안에서 읽으면서, 아 페미니스트들은 진짜 똑똑하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나아가야할 방향을 끊임없이 찾으려고하고, 그것이 더 옳은 길임을 바라고 있다. 그러므로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생각하며 또 이건 잘못이 아닌가, 하고 자기 반성도 더불어 한다. 페미니즘에 대해 알면알수록 세상의 어두운 면을 자꾸 보게 되지만, 그 어두운 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내가 더 밝아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테다. 논문이라고 해야할지, 이 별책에서 '김주희'의 <속도의 페미니즘과 관성의 정치>를 읽으면서 또 내가 더 밝아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두운면을 또 보게 됐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천천히 읽고 두고두고 읽어야겠다. 그런데, 실린 글들 중에서 금정연 의 글은 내가 너무 실망했네? 본인의 글이라기 보다는, 자신도 인정하고 있지만,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인용만 했어. 당황스러울 정도로 실망스런 글이다... 어쨌든, 여태 읽은 부분까지는(별책의 34페이지..), 금정연 글 빼고는 다 너무 좋았다. 뒤의 글들을 안읽었고 그래서 어떤 글들이 나올지 모르니까 별 다섯을 주는 건 좀 보류하도록 하겠다. 아직 34페이지밖에 안읽었으니 섣부른 판단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뭔가 앞으로 나아가는 와중에 '어? 이건 뭐지?' 하고 스스로에 대해 확답을 내릴 수 없거나 확신이 없을 때, 이 책을 들춰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르투갈에 장기체류(혹은 이민)하게 될 때 이 책 가져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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