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모두다 칭찬을 해서, 오 진정 레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려나 싶어 세 시간이나 되는 영화를 예매했다. 터키 영화라는 것도 내게는 신선했고. 그렇지만 사람들이 칭송하던 그 우아함이 내겐 좀 지루하게 느껴졌다. 반팔을 입었고 극장안은 추웠다. 세시간 십오분을 고스란히 떨고 있자니 영화가 빨리 끝나기만 바라게 되더라.


영화속에서는 이렇다할 어떤 커다란 사건이 발생하진 않는다. 그러나 저마다의 입장에서 자신이 가진 평소의 생각과 신념을 아주 장황하게 풀어놓는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너의 행동은 옳지 못해.'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그게 누가됐든, 상대의 말을 들으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 말만 블라블라블라블라~

그 말들에는 어김없이 상대로부터 반박당할 논리들이 숨어있지만,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들질 않는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받아들이며 인정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말(혹은 글)이 '부드럽고 자상하게 말한다고' 해서 용서된다고 혹은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거칠게 말하는 태도의 폭력이 있다면 부드럽고 아름다운 단어들을 나열해가면서 폭력적인 말들도 분명 존재하니까. 내용의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은 자신의 태도가 부드러웠다는 것만을 자랑삼지, 자신의 내용을 고칠 생각은 하질 않는다. 윈터슬립 에서도 겸손한 태도를 유지한채 상대의 기분을 건드리는 장면들이 종종 나온다. 말을 하는 사람이 됐든 듣는 사람이 됐든, 그들중 누구도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을 바꿀 생각은 없다. 그러면서 계속 '내가 옳다'고 생각한다.


'지옥으로 가는 문은 선의로 덮여있다'는 말이 영화속에서 인용되는데, 크, 나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좋은 뜻으로' 했다는 건 얼마나 좋은 핑계가 되는가. 그러나 그 좋은 뜻은, 대체 누구에게 선의로 작용하는가. 사람들이 '선의'를 베풀었다고 했을 때, 그 선의는 대부분 상대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선의일 때가 많다. '선의를 베푸는 나'를 보여주고 싶은 경우일 때가 많다. 영화속 '니할'의 경우도 그런 경우였는데, 그녀는 '자선을 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찾게 됐다'고 했지만, '안락한 생활'을 유지하는 그녀에게 가난한 사람들의 자존심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너 돈 없지? 내가 돈이 많으니까 너 이 돈 써, 라고 하는 순간, 그녀의 자선은 구역질 나는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녀가 품고 있는 선의는, 그녀 자신에게 향한 것이다. 



영화속 호텔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무슨 절벽 같은데 한참 올라가야 나오는 호텔이며 동굴처럼 되어 있는데, 아니 저기까지 가려면 차가 있어야 하겠다 싶더라. 버스가 다닐 것 같지 않은 곳이랄까. 버스가 다녀도 하루에 한 두대쯤 다닐 것 같은 외진 곳. 풍경은 멋지겠지만, 뭔가 마트나 편의점이 보이지도 않는 곳이라, 아, 저런 데서 한 번 묵어보고 싶지만 길게는 묵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서울여자..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도 생각나고.. 세상으로부터 꼭꼭 숨어 밀월여행을 즐기고 싶다면 바로 여기여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커다란, 객실이 있는 동굴 같은 데서 나와 좀 걸어가면 작은 동굴이 나오는데, 거기는 남자 주인공의 서재이다. 오.. 되게 근사하더라. 저런 서재 하나 있으면 정말 딱 좋겠다는. 영화와는 별개로, 서재에서 남자가 작업하는데 남자의 여동생이 간혹 들어와서 뒤쪽 소파에 앉아 잡지를 읽거나 하는데, 내가 만약 저런 서재를 갖게 된다면, 저 소파에 앉는 것이 허락되는 사람이 누구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막 다 들어와 저기 앉는건 좀 싫을 것 같다...




아, 나도 이런 서재 갖고 싶다. 어쩐지 글도 막 잘 써질 것 같고 책도 막 잘 읽힐 것 같아... 그리고 정말 좋은 사람이 찾아온다면, 함께 앉아 술을 마셔도 좋겠다. 기승전술...


이 영화를 함께 본 친구와 나는, 다 보고나서 '우리에겐 이 영화보다 [위아영]이 더 나을 것 같다' 고 얘기했다.






크- 그리고 이거슨, 크- 어마어마하게 근사한 영화다. 엄청 멋지다!!! 대박이다!!!! 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액션의 초절정 재미를 가지고 있으며 스토리와 캐릭터까지 완벽하다! 남자주인공은 그저 거들 뿐, 이 영화속에서 짱멋진건 샤를리즈 테론이 다했다. 아, 이 언니는 진짜 캡멋져! 원래도 참 멋지다고 생각했지만, 그녀가 매드맥스에서 멋진 전사의 역할을 한 것은 정말이지, 그녀의 이력에 대단한 한 줄을 추가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샤를리즈 테론 뿐만이 아니다. 이 영화는 영화 자체로 정말 좋은데, 스쿠터를 타는 아주머니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감동해서 목이 메이더라. 몇 번이나 영화를 보다가 눈물을 글썽였는데, 주연부터 조연들까지, 자신의 커리어에 이 영화가 있다면, 그것만으로 빛나는 업적을 쌓은 것 같단 생각이 들더라. 나도 나의 커리어에 이 영화를 넣고 싶은데, 정말이지, 스쿠터 타고 헬맷을 벗는, 씨앗을 가지고 다니는 나이 든 여자사람 2 의 역할을 하고 싶었다. 씨앗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 넘겨진다. 희망은, 그렇게 전해지고 또 전해지는 것. 


그리고 조연이지만, 크- 로지 헌팅턴 휘틀리도 멋졌다. 예...예......예뻐...멋져!!!!!!!!




맨 오른쪽의 여자가 '로지'인데, 나는 최근에 로지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잉해서 종종 그녀가 올리는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제일 처음, [트랜스포머3] 으로 그녀를 알게 됐을때만 해도 '예쁘고 몸매도 멋진 여자' 가 그녀를 향한 나의 생각의 전부였는데, 요즘의 그녀는 '완전 멋진 여자' 라는 생각을 주더라. 


오래전에 트레이너였나, 몸이 엄청 근육으로 다져져서 우락부락한 남자가, 역시 몸짱인 여자와 데이트 하는 장면, 일상을 같이 보내는 장면이 텔레비젼에 나온 적이 있었다. 설정이 섞여있었겠지만, 크림소스스파게티를 먹고 싶어하는 여자에게 남자가, 그거 먹고 운동 얼마나 해야 하는지 아냐, 칼로리 신경 안쓰이면 먹어라, 하면서 구박을 하고, 각자 운동화를 챙겨와서는 데이트랍시고 남산의 계단을 올라가는데..그들은 그게 서로에게 맞고 좋아하니까 연인이 된 것이지, 나는 저렇게 하자는 남자와는 이별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시당초 그런 남자가 나를 좋아할 리도 없겠지만. 여튼, 몸몸몸몸 근육근육근육근육 다이어트다이어트다이어트다이어트 라는 생각을 하는 남자와는 사귀고 싶지도 않고 딱히 막 알고 지내면서 까르르 웃고 싶지도 않은데, 며칠전 인스타에서 로지가 운동하는 짧은 동영상을 봤다. 하아-


그걸 동료 직원과 들여다보며, 이렇게 아름다운 몸매를 가진 여자가 이렇게 운동을 열심히 한다, 라는 얘기를 했다. 로지도 운동을 하는데 우리가 뭐라고 운동을 안하고 쳐묵쳐묵하기만 하는가...하는 반성의 시간을 누룽지통닭을 시켜 앞에 두고 했다. 





그녀는, 알다시피 내가 좋아하는 1순위 남자배우 '제이슨 스타뎀'의 연인이다. 이 연인은 현재 5년 이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연인들의 관계는 그들만의 내밀한 것이니, 그들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갈지 또 어떤 것들로 인해 서로에게 강하게 끌림을 느끼고 싫증을 느끼기도 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이토록 잘나가는, 스스로 잘나있는 남자와 여자가 오랜 시간 연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게 내게는 경이롭게 느껴진다.



자막 때문에 시끄러워졌지만 어쨌든 제이슨 스타뎀은 최근에 [스파이]라는 재미있(다)는 영화에 출연했고 뭔가 점점 더 나은 필모그라피를 만들고 있는 것 같으며 로지 역시 [매드 맥스]에서 가장 아름답고 현명한 여자를 연기해 그녀의 이력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들은 계속해서 운동하고 자기들을 가꾼다. 사실 나는 '자기 관리' 이런말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싫어.....), 이들이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또 단단한 이력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걸 보면서, 아, 이들은 자기들이 건강하기 때문에 관계 역시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거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일전에 [마녀사냥] 에 '한고은'이 게스트로 나왔을 때, '남자친구가 취직만 하면 자꾸 때려친다, 집에 있는 돈만 믿는 것 같다'는 사연을 읽어준 적이 있다. 그런 남자는 나도 싫다, 고 나 역시 생각했고 패널들도 역시 그런 식으로 말하거나 했는데, 한고은은 그때 '한 사람과 오랫동안 연인관계를 유지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신뢰가 있는 것 아닌가요?' 라는 말을 하더라. 그때 아! 했다. 제이슨 스타뎀(이라고 인터넷에 나오던데 나는 아직도 '재이슨 스태덤'이 더 편하다)과 로지는, 현재의 내가 보기에 가장 이상적인 연인의 형태를 띠고 있다. 원래 좋아했던 배우였는데 크, 역시 내 눈은 틀림이 없어. 멋져! ♡



나보다 이 영화를 먼저 본 친구와 이 영화에 대한 극찬을 나누었다. 뭐하나 버릴 장면이 없다, 진짜 최고였다, 하면서. 





덕분에 '이브 엔슬러'의 책들을 보관함에 넣었다. 오늘 아침에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든다]에 대한 정성스런 리뷰로부터 알게된 '레베카 솔닛'의 다른 책도 함께 보관함에 넣었다.

















영화를 보면서도 나는 어쨌든 단 한명이라도 희망을 품고 있다면 세상이 쉽게 멸종하진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고, 또한 이렇게 영화로 또 책으로 누군가 어딘가에서 자꾸 말을 해준다면, 그 말이 자꾸자꾸 퍼지게 될테니 역시 희망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제는 트윗에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든다]의 아주 괜찮은 감상을 읽었는데, 오늘은 알라딘에서 정성스런 리뷰를 읽었다. 매드 맥스의 각본가들은 이브 엔슬러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하고, 그 점에 대해 로지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점점 더 나아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나는 들었다.




토요일에는 친구들과 '수리산'에 갔다. '축령산'을 예정해두고 갔었는데, 축령산은 경사가 가파르고 험하다고 해서 그보다 완만하다는 수리산으로 급변경. 어차피 입구는 같고 갈림길에서 오른쪽이냐 왼쪽이냐만 선택하면 된다. 걸으면서 계속계속 언덕이 나와 당황했다. 둘레길 혹은 산책코스를 기대하고 간 터라, 우리 일행은 모두 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이렇게 빡센 시작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해서. 우리 옆을 지나가던 무리들중 1인은 '길이 서있어' 라고 말하더라. 말그대로 서있었다 진짜. ㅠㅠ 어쨌든 다른 산에 비하면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아 조용한 길을, 우리는 계속 걸었다. 열심히 걸었다.




한시간 여를 걸어서 울창한 숲이 나오고, 산림욕이 가능하다는 그곳에 들어가 우리는 준비해온 김밥과 빈대떡을 풀었다. 원래 김밥 한줄씩만 먹으려고 했는데, 입구에서 빈대떡을 팔고 있더라. 아- 막 부쳐내는 그 냄새가, 도저히 그냥 가지 못하게 해. 게다가 옆에 있던 아저씨가 '이걸 산에 가서 먹으면 더 맛있지' 하는 바람에, 아아, 몰라몰라, 사, 사, 해서 사가지고 간 것.




아아, 맛있게 먹었고, 정말 이때만 해도 좋았다. 일단 먹고나서는 전망대에 올라 바라보니, 전망이 진짜 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철쭉동산을 지나치며 밑으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리산 정상을 거쳐야했고, 아아, 산은 산이었다, 남아있는 코스들이 완전 험난한 코스. 밧줄을 잡고 바위위를 걸어 올라가야 했는데, 중간에 멈춰서서 나는 밧줄 없는 저 언덕을 어떻게 올라야할지 도무지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 거다. 친구 둘은 나보다 약간 밑에 자리한 상황, 나는 그들보다 약간 앞서서 저 길을 어떻게 올라가나, 한 걸음만 더 디디면 미끄러져 구를 것 같은데, 하고 벌벌 떨고 다리 후달려가며 납작 엎드려있는데, 위에서 내려오시던 아저씨가 '일어나요 일어나, 일어나야 돼요' 하는 게 아닌가. 일어나야 넘어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억지로 다리를 폈는데 도무지 발이 움직이질 않는 터, 그 아저씨는 자리에서 멈추더니 본인의 등산지팡이를 내게 내밀었고, 나는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며 그 지팡이를 잡고서는 걸음을 뗄 수 있었다. 아저씨가 지팡이로 나를 끌어주셨어.. ㅠㅠ


그 순간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하고자 한다면, 그래서 내가 최대한 노력을 하면, 누군가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이렇게 도와주는구나! 아아, 이런거였어. 

막 이렇게 감동하고 있는데, 그 다음엔 밧줄도 없는 서있는 흙길이 나와...하아- 우리 셋은 진짜 벌벌 떨고 소리를 지르며 서로서로 손을 잡고 막 그러면서 그런 코스들을 이동해 간신히 정상을 찍었다. 하아- 잘했어, 수고했어, 하면서, 그치만 만약 내려가는 길이 이 길이라면 못내려갈 것 같아, 경사가 너무 심해, 운동화라 미끄러워, 이런 대화를 하면서 잠시 쉬다가 반대쪽에서 올라온 사람들을 마주쳤다. 나는 그쪽길도 경사가 가파르냐 물었고, 그분은 '아니'라고 대답하셨다. 그래, 다행이야, 우리는 역경을 이겨냈어! 하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철쭉동산은 산그늘이 좋았고 아아, 잘왔어 잘왔어, 하고 좋다좋다 감탄하며 내려갔다. 그러나 철쭉동산을 지나고나니 내리막길이 나오고, 경사가 심했다. 아 씨발. 우린 이제 어쩌지...


하아...


미끄러지고 소리지르면서, 어떤 길은 밧줄을 잡고 어떤 길은 나무를 잡고 어떤 길은 커다란 바위를 잡으면서 내려오는데, 와, 너무 무서워서 신경이 뽝- 집중됐다. 어느 순간 갑자기 어깨가 확 뭉치더라. 어쨌든 우리는 오랜 시간이 걸려 산길을 내려왔고, 내려오고 나서는 서로를 부둥켜 안았으며 ㅠㅠ 고생했다고 서로가 서로에게 말해줬다. 그리고는 휘청이는 다리로 걸어내려가 가장 먼저 만난(그러나 산입구의 유일한) 구멍가게에 들러 맥주를 한캔씩 사들고 나왔다. 버스가 도착하기 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흑흑 ㅠㅠ 우리 몸살나겠다 ㅠㅠ 이런 말들을 주고 받으며 도착한 버스를 타고 마석역에 내려 후다다닥 서둘러 경춘선 지하철을 타고 상봉역에 내렸다. 우리는 고기고기한 식사를 하자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고깃집에선, 레어템이라는 순하리를 만났다.



고기와 순하리의 아름다운 하모니-



그러나 순하리는 내 입엔 별로여서 한 잔을 마신 후로는 그냥 처음처럼 달라고 해서 그냥 소주를 마셨다. 나한테는 역시 쓴 술이 최고인것 같다. 달짝지근 맛있는 술은 역시 나는..아닌 것 같아..... 뭐랄까, 단 술, 맛있는 술을 마실거면 술을 왜마시지? 하는 느낌이 내게는 좀 있달까. 술은 써야 돼!! 그래서 마시고나서는 크- 해야한단 말이야!!!!!!!!!!!!!!!!!!!




어제는 저녁에 남동생과 오리고기에 맥주(호가든호가든!!!!!!!!!)를 마시면서 우리가 술을 얼마나 좋아하는가에 대해 말했다. 남동생은, '나 알콜의존증인가봐 술이 너무 좋아' 했고, 나는 '야 장난 아냐, 나는 진짜 술 너무 좋아. 고기도 좋고. 나는 앞으로도 고기랑 술 나처럼 좋아하는 남자 만나서 같이 고기랑 술 즐기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 라고 하자 남동생이 말했다. '고기랑 술, 누나는 지금도 충분히 먹고 있잖아..'


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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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5-05-26 12:09   댓글달기 | URL
빈대떡, 사, 사, 사에서 막 웃다가, 등산지팡이에서 어머! 하다가, 남동생분 이야기로 마무리했어요.
다락방님의 이런 재미있는 페이퍼를 읽어야 월요일이예요. 아니다, 오늘은 화요일이죠.
네, 즐거운 화요일이에요^^

제이슨 스타뎀 여자친구, 완전 이쁘네요. 운동도 열심이라니. 참... 세상은 불공평해요.
운동 동영상 좀 찾아봐야겠어요. 나도 운동..

다락방 2015-05-26 15:25   URL
예쁜 여자들은 운동하는 모습도 예쁜것 같아요. 제가 운동하는 거 거울 보면..참...하아- 뭐라 더 할말이 없는..orz
암튼 본격 다이어트를 해야할텐데,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다이어트가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나 저처럼 먹는 거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더더욱요. ㅠㅠㅠ

밥 너무 좋고
고기 너무 좋고
술 너무 좋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출근길에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위하여
정혜신.진은영 지음 / 창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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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아빠 미안

2킬로그램 조금 넘게, 너무 조그맣게 태어나서 미안

스무살도 못 되게, 너무 조금 곁에 머물러서 미안



엄마 미안

밤에 학원 갈 때 행드폰 충전 안해놓고 걱정시켜 미안

이번에 배에서 돌아올 때도 일주일이나 연락 못해서 미안



할머니, 지나간 세월의 눈물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해서 미안

할머니랑 함께 부침개를 부치며

나의 삶이 노릇노릇 따듯하고 부드럽게 익어가는 걸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



아빠 엄마 미안

아빠의 지친 머리 위로 비가 눈물처럼 내리게 해서 미안

아빠, 자꾸만 바람이 서글픈 속삭임으로 불게 해서 미안

엄마, 가을의 모든 빛깔이 다 어울리는 엄마에게 검은 셔츠를 계속 입게 해서 미안



엄마, 여기에도 아빠의 넓은 등처럼 나를 업어주는 포근한 구름이 있어

여기에도 친구들이 달아준 리본처럼 구름 사이에서 햇빛이 따듯하게 펄럭이고

여기에도 똑같이 주홍 해가 저물어

엄마 아빠가 기억의 두 기둥 사이에 매달아놓은 해먹이 있어

그 해먹에 누워 또 한숨을 자고 나면

여전히 나는 볼이 통통하고 얌전한 귀 뒤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아이

제일 큰 슬픔의 대가족들 사이에서도 힘을 내는 씩씩한 엄마 아빠의 아이



아빠, 여기에는 친구들도 있어

이렇게 말해주는 친구들도 있어

"쌍커풀 없이 고요하게 둥그레지는 눈매가 넌 참 예뻐"

"너는 어쩌면 그리 목소리가 곱니,

어쩌면 생머리가 물 위의 별빛처럼 그리 빛나니"



아빠! 엄마! 벚꽃 지는 벤치에 앉아 내가 친구들과 부르던 노래 기억나?

나는 기타를 잘 치는 소년과 노래를 잘 부르는 소녀들과 있어

음악을 만지는 것처럼 부드러운 털을 가진 고양이들과 있어

내가 좋아하는 엄마의 밤길 마중과 내 분홍색 손거울과 함께 있어

거울에 담긴 열일곱살, 맑은 내 얼굴과 함께, 여기 사이좋게 있어



아빠, 내가 애들과 노느라 꿈속에 자주 못 가도 슬퍼하지 마

아빠, 새벽 세시에 안 자고 일어나 내 사진 자꾸 보지 마

아빠, 내가 여기 친구들이 더 좋아져도 삐치지 마

엄마, 아빠 삐치면 나 대신 꼭 안아 줘

하은언니, 엄마 슬퍼하면 나 대신 꼭 안아 줘

성은아, 언니 슬퍼하면 네가 좋아하는 레모네이드를 타 줘

지은아, 성은이가 슬퍼하면 나 대신 노래 불러 줘

아빠, 지은이가 슬퍼하면 나 대신 두둥실 업어 줘

이모, 엄마 아빠의 지친 어깨를 꼭 감싸주

친구들아, 우리 가족의 눈물을 닦아줘



나의 쌍둥이 하은언니 고마워

나와 함께 손잡고 세상에 와줘서 정말 고마워

나는 여기서, 언니는 거기서 엄마 아빠 동생들을 지키자

나는 언니가 행복한 시간만큼 똑같이 행복하고

나는 언니가 사랑받는 시간만큼 똑같이 사랑받게 될 거야,

그니까 언니 알지?



아빠아빠

나는 슬픔의 큰 홍수 뒤에 뜨는 무지개 같은 아이

하늘에서 제일 멋진 이름을 가진 아이로 만들어줘 고마워

엄아 엄마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들 중 가장 맑은 노래

진실을 밝히는 노래를 함께 불러줘 고마워



엄마 아빠, 그날 이후에도 더 많이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아프게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나를 위해 걷고, 나를 위해 굶고,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설실하고 정직한 엄마 아빠로 살려는 두사람의 아이 예은이야

나는 그날 이후에도 영원히 사랑받는 아이, 우리 모두의 예은이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



(예은이가 불러주고 진은영 시인이 받아적다)





애초에 출퇴근길의 지하철 안에서 읽어야 할 책이 아닌데, 처음부터 잘못 선택했다 싶었다. 자꾸 눈물이 핑- 거려서. 그런데 이 시를 읽을 때는 참을 수가 없더라. 결국 지하철 안에서 콧물까지 흘렸다. 상실로 인한 고통에 허우적대는 사람들의 곁으로 달려가준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 사람과 함께 얘기하고자 하는 시인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려다가, 숱하게 생겨나는 그 많은 감정들을 눌러 버리고, 결국 눈물이 흘렀다. 각오했던 일이었지만, 이렇게 될 줄 알았지만, 정말 그랬다. 읽을 때도 눈물이 나더니, 결국 여기 옮겨 적으면서도 코를 훌쩍였다.


이 시의 주인공 유예은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3반 학생이란다. 그런데 어쩜 이렇게 목소리가 생생한 시가, 여기 이렇게 있을까. 예은이의 목소리를 진은영 시인은 어떻게 들었다는 걸까, 했더니 이런 설명이 나온다.




단원고 희생자 유예은 학생의 열일곱살 생일이 지난 10월 15일이었죠. 선생님께서 제게 '이웃'에서 열리는 예은이 생일 치유모임에서 예은이가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하는 말을 시로 써달라고 요청하셨어요. 세상 떠난 아이의 마음에 내가 과연 다가갈 수 있을까, 자신의 삶보다 더 소중했던 아이를 잃은 부모 마음을 어떤 언어의 결로 어루만질 수 있을까 도무지 자신이 없어 몇시간을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예은이의 마음과 목소리를 담기 위해서 예은이 아빠 유경근씨의 페이스북도 열심히 기웃거리고 예은인가 친구들과 봄날 벚꽃 아래서 노래 부르던 동영상이나 해질녘 해먹에 누워 있는 사진을 오랜 시간 물끄러미 바라보며 지낸 일주일이 저에게는 참 특별하고 치유적이었어요. 그렇게 시를 쓰고 난 뒤에는 그 아이의 도움과 지원을 받아 넝마처럼 너덜거리는 세상을 조금씩 매만지고 고쳐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어요. (p.210, 진은영)




진은영 시인은 정헤신 박사의 말을 잘 듣고, 이해하고, 적절한 질문을 던지지만, 그 질문들의 문장이 시적인 것 같아 내게는  한 번에 쉬이 명료하게 읽히지 않았다. 정혜신 박사의 말이 오히려 명징하게 와서 닿았다. 질문의 문장들이 좀 시적이지 않나, 우리 엄마가 읽을 수 있을까, 하고 갸웃 하다가 진은영이 썼다는 저 시를 만나자 그냥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 책에 대해 무슨 말이 더 필요하고 또 무슨 말을 더 할수 있을까. 



인용문만 옮겨적겠다. 






모든 고통은 개별적이고 주관적인 것이고, 내 손톱 밑에 가시 박힌 것과 옆 사람 살이 타들어가는 것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게 사람이에요. 각자가 자신에게 너무나 무거운 고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쉽지 않지만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해요. (p.54, 정혜신)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은 그 상황에서 시간이 멈춥니다. 치유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삶의 진도를 나갈 수 없고 다음 과업으로 넘어갈 수 없어요. 그렇다면 어떤 것이 트라우마의 치유이고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의 삶이 멈추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을까요? 가장 핵심적인 것이 진상규명입니다. 이건 저의 정치적 입장을 피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정신과의사로서, 트라우마 치유의 메커니즘을 작동시키기 위해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p.95, 정혜신)

심리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필수적이고 기초적인 요소가 바로 일상이죠. 다른 것이 아무리 많아도 이것이 결여되면 망가지고 비뚤어지는 거예요. 반대로 다른 것이 없어도 이것만 있으면 얼마든지 안정적이고 빛날 수 있고요. (p.180, 정혜신)

저는 모든 인간은 치유적 존재이고, 그것이 치유의 핵심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치유작업을 하는 동안 제가 하는 일이란 건 결국 그 사람 안에 있는 치유적 요소들, 그 사람이 지닌 온전성, 건강성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스스로 느끼게 해주는 것일뿐이에요. 그래서 그 과정이 끝나면 `선생님, 너무 고맙습니다` 가 아니라 `내가 참 괜찮은 데가 있나봐`라고 할 수 있어야 온전한 치유인 거예요. 거기까지 나아가면 그 사람은 제가 없어도 아무런 지장이 없어요. 자기 안에 있는 힘을 확인하고 그 힘으로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는 거죠. 그러지 못하면 의존적인 관계가 됩니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서 점을 봤는데 점쟁이가 동쪽으로 가라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일이 너무 잘 풀렸어요. 그러다 살다보면 또 안 좋은 일이 생기니까, 그럴 때 마다 또 점집에 가서 이번엔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물어봐야 하는 거예요. 그건 아주 병리적인 의존관계입니다. 치유에서도 조언을 하거나 훈계를 하거나 해석을 하는 기능적인 수준에 머무르면 반드시 그런 관계로 끝나게 되어 있어요. (p.184, 정혜신)

유가족들은 지금 자기가 살던 세상이 모두 깨어진 거잖아요. 자식들 기르면서 가족끼리 편안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전부인 사람들이었는데, 이게 모조리 무너졌어요. 그러니까 이 세계에서는 이제 살 수가 없는 거죠. 그런데 이 사람들이 이웃치유자들을 접하고 그들의 마음을 느끼면서 다른 세상으로 진입하는 거예요. 다른 가치와 관계가 만들어지는 거죠. 이 세계는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고 그건 어떻게 해도 사라지지 않지만, 이 세계를 지탱할 수 있는 또다른 세계가 생기기 때문에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거죠. 그게 치유입니다. 그러려면 이런 재난을, 트라우마를 입었을 때 주변에 누가 있느냐가 무척 중요해요. 건강한 이웃 치유자들이 많이 있을수록 다른 세계로 더 수월하게 진입할 수가 있어요. (p.191-192, 정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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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5-05-21 21:27   댓글달기 | URL
못읽겠어요 못읽겠어
세월호 관련 서적은.... ㅠㅠ

다락방 2015-05-21 21:33   URL
이건 그나마 가장 약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래도 ㅜㅜ 세월호 관련책 저 더 있는데 어쩌죠 ㅜㅜ
 

핑-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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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날 이후에도 너는 사랑받는 아이야.
    from 마지막 키스 2015-05-21 17:56 
    그날 이후아빠 미안2킬로그램 조금 넘게, 너무 조그맣게 태어나서 미안스무살도 못 되게, 너무 조금 곁에 머물러서 미안엄마 미안밤에 학원 갈 때 행드폰 충전 안해놓고 걱정시켜 미안이번에 배에서 돌아올 때도 일주일이나 연락 못해서 미안할머니, 지나간 세월의 눈물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해서 미안할머니랑 함께 부침개를 부치며나의 삶이 노릇노릇 따듯하고 부드럽게 익어가는 걸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아빠 엄마 미안아빠의 지친 머리 위로 비가 눈물처럼
 
 
 

사람에게는 이후의 삶이 있는데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 괴물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 같다, 는 식의 얘기를 친구와 하던 어제. 우연히도 나는 같은 뉘앙스로 말을 하는 황정은의 소설을 읽었다.
















금붕어를 괴롭히던 '나나'를 '나기'가 때리는 장면이었다.



오라버니는 그것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다가 등을 펴고 나나와 마주 선 뒤, 손바닥을 활짝 펴서 나나의 뺨을 때렸습니다. 한대만으로 그치지 않고 몇번이나 힘껏, 힘껏.

아파?

오라버니는 물었습니다.

나나는 얼떨떨하게 정신이 나간 채로 오라버니를 바라보았습니다.

아프냐고 재차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나는 아프지 않아, 오라버니는 팔을 늘어뜨리고 서서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를 때렸으니까 너는 아파. 그런데 나는 조금도 아프지 않아.

전혀 아프지 않은 채로 너를 보고 잇어. 그럼 이렇게 되는 건가? 내가 아프지 않으니까 너도 아프지 않은 건가?

대답을 기다리는 듯 바라보는데도 대꾸하지 못하고 얼얼한 뺨에 손을 대고 눈을 깜빡이며 마주 보았습니다. 오라버니는 새까만 눈으로 나나를 보며 물었습니다.

하지만 너는 아프지, 그렇지?

압도된 채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금붕어를 건드릴 때, 너는 아팠어?

고개를 저었습니다.

같은 거야, 라고 오라버니는 말했습니다.

너하고 저것하고, 같은 거야.


아파?

오라버니는 물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자 기억해둬, 라고 오라버니는 말했습니다.

이걸 잊어버리면 남의 고통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 괴물이 되는 거야. (p.129-131)



가난하고, 힘이 없고, 빽도 없는 등장인물들이 황정은의 소설 속에서는 자기자리에서 희망을 찾는다. 누가봐도 약자인 그들이, 삶을 고민하고 진지하게 바라보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다. 어쩌면 욕과 폭력과 고통과 괴로움이 나오는 중에도 황정은이 옆에 있는 사람을 잊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황정은을 계속해서 보게 되는게 아닌가 싶다. 나는 인간에게 인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 이라는 말은, 전체를 놓고봐서도 참일거라고 짐작하지만, 글쎄 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사회적 동물이다. 나에 대해서라면 그 말은 참이다.


엊그제는 남자사람1과 여자사람1, 나 이렇게 셋이 을지로에서 술을 마셨다. 골뱅이와 계란말이, 노가리와 쥐포등을 시켜놓고 우리는 자꾸만 맥주를 더 시켰다. 여자사람1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는데, 그날 감성열매를 주렁주렁 달고와서는, 나를 폭풍칭찬 해주었다. 계속되는 칭찬의 말에 엄청나게 기분이 좋아진 나는, 아, 나는 이런게 필요해,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의 칭찬을 해줄 수도 없고 나를 좋아할 수도 없다. 어딘가의 누군가는 특별히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고 눈엣 가시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을 것이고. 그렇지만 아주 적은 소수가, 이렇게 만나서 '너를 알게 되어 정말 너무 좋다', 라는 걸 말해주면, 아, 이런 걸 먹고 사람은 자랄 수 있는 거야, 싶어지는 거다. 

나는 사회적 동물이다!!



나기는 나나를 사랑한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그런 사랑, 이 아니라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람으로서 사랑하는 그런 사랑. 그런데 나나의 뺨을 때리고는 남의 고통을 생각하지 않는 괴물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뺨을 때리는 건, 훅- 하고 내게 좀 거부감이 들긴 했지만, 흠씬 바깥에서 두들겨맞은 나기가 '맞는 데서 오는 고통', '괴롭힘을 당하는 데서 오는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터, 나나에게 확실히 인식시키는 방법은 그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도 뭔가 좀...어..좀...다른 식으로 알려줄 순 없었나? 라고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게되지만. (잘 생각나지 않는다.)




나도 한입 먹자, 하며 그녀는 뜨거운 떡을 아무렇지도 않게 손으로 덥석 떼어 입에 넣었다. 나는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쉰 것을 먹고 있었다는 것을 들켰다는 게 부끄러웠고, 괜찮지? 하고 물어가며 동생에게 그걸 먹이고 있었다는 게 부끄러웠고, 지금 이 집에 어른이 없다는 게 이상하게 부끄러웠다. 실은 어느 것을 가장 부끄럽게 여겼는지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꼭 다문 입속에 떡이 뜨겁게 엉겨 있었는데 삼킬 생각도 하지 못하고 다만 주눅이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쉰 떡을 입에 넣었으니 곧 뱉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나기네 어머니는 떡을 우물우물 먹으며 살풍경한 부엌을 둘러보고, 설탕을 입에 묻히고 있는 나나와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끝까지 떡을 뱉지 않고 삼킨 뒤, 이 떡의 맛이 좋으니 자기네 밥이랑 바꿔 먹자며 나나와 나를 벽 건너편으로 데려갔다. (p.40)



인간은 사회적 동물, 이라고 이 부분을 읽다가 또 생각했다. 쉰 떡 대신 자기네 밥을 덜어줄 수 있는 나기 엄마 때문에. 나기 엄마도 가진 게 별로 없는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쉰 떡을 먹는 어린 아이들에게 밥을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이 사람 때문에, 나나와 소라는 하루 더, 한달 더, 그리고 어른이 될 때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거다. 바깥으로 나가서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추종하는 게 아니어도, 내 옆에 네가, 네 옆에 내가, 우리에게 서로가 있어서 우리는 인류의 멸종을 조금 더 늦출 수 있는 게 아닌가.


'존 카첸바크' 작가의 [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도 떠올랐다. 음식에도 치유의 힘이 있으니, 너의 괴로움에 우리의 음식을 나누어주겠다고 하는 옆집 남자가 나오는 소설. 예전에 썼던 페이퍼에서 그 부분을 가져오겠다.



이 책의 주인공은 수없이 많은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이야기는 정신병원에 머무를 당시와 현재, 그 20년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데, 현재의 그에게 다시 목소리가 들리고 그래서 괴로워하는 순간, 그의 앞집에 사는 남자가 그의 집 문을 두드린다. 당신 괜찮냐고 물으면서. 그리고 그에게 자신의 아내가 만든 음식을 나누어준다. 

"로지." 재촉하듯 말했지만 화난 목소리는 아니었다. "우리 저녁거리인 쌀과 닭고기 요리를 종이 접시에 담아 페트럴 씨한테 드려. 제대로 된 식사를 하셔야 할 것 같아."
나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게 수줍은 미소를 살짝 건네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산티아고 씨, 정말 친절한 말씀이지만 그럴 필요는...."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페트럴 씨. '아로스 콘 폴로'라고 하죠. 제 고향에서는 그게 모든 문제를 고쳐준답니다. 아플 때는 쌀과 닭을 먹죠. 직장에서 해고됐습니까? 쌀과 닭을 드세요. 마음에 상처를 입었습니까?"
"......쌀과 닭을 먹어야겠죠." 내가 그의 말을 대신 끝맺어주었다.
"백 퍼센트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함께 빙그레 웃었다.
 (pp.201-202) 



그리고 사랑.

나 역시 '너무 깊이' 사랑하는 걸 경계하는 사람이고, 상대에게 얽매이는 기분을 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너무 깊이 사랑하는 건, 상대를  또 나를 수렁에 빠뜨릴 수가 있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전심전력'이 나로서도 경계되는 까닭이다. 



사랑에 관해서라면 그 정도의 감정이 적당하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윽고 괜찮아지는 정도. 헤어지도라도 배신을 당하더라도 어느 한쪽이 불시에 사라지더라도 이윽고 괜찮아, 라고 할 수 있는 정도. 그 정도가 좋습니다. 아기가 생기더라도 아기에게든 모세씨에게든 사랑의 정도는 그 정도, 라고 결심해두었습니다.

애자와 같은 형태의 전심전력, 그것을 나나는 경계하고 있습니다. (p.104)



그러나 전심전력, 이것이 경계한다고 해서 언제나 잘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랑 앞에서는 '헤어지더라도, 배신을 당하더라도, 어느 한쪽이 불시에 사라지더라도' 이윽고 괜찮아, 할 수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려고 했지만, 무릎이 꺾이고 곧 땅바닥에 쿵-찧게 되는 상태가 될 수도 있다. 무너질 수도 있다. 휘청일 수도 있다. '이윽고' 괜찮아지기 몹시 힘들 수 있다. 전심전력, 그것을 경계하지만 그 경계선은 어느 한순간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고, 조금씩 천천히 허물어질 수도 있다. 




나나는 모세씨와 결혼하기로 한다. 그리고 모세씨의 집에 찾아간다. 모세씨의 집엔 화장실이 두 칸이나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실에 빈 요강이 있었다. 그 요강의 쓰임새가 무엇이냐 모세씨에게 물으니 아버지가 밤에 쓰시는 거란다. 화장실에 갈 수 없는 몸 상태인 것도 아니고, 심지어 지척에 화장실이 두 칸이나 되는데 그 요강을 쓰다니. 그렇다면 그 요강을 누가 비우냐 물어보니 그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엄마' 라고 하는 것이다. 



요강요. 모세씨의 어머니가 그것에 관해 좋다거나 싫다거나 말한 적은 없었나요, 라고 묻자 모세씨는 달걀노른자 부스러기가 달라붙은 입을 우물거리며 한동안 나나를 바라보았습니다.

없어요.

없어요?

네.

없어요, 라고 말하는 모세씨에게 모세씨는 궁금한 적 없었나요, 라고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왜 요강을 남의 손으로 비울까, 어머니는 왜 남의 요강을 비울까, 그런 걸 묻고 대답을 듣고 싶었던 적이‥‥‥거기까지 말했을 때, 남이라뇨, 하고 모세씨가 말했습니다. 

남이라고 할 수 있나.

남이 아니에요?

어떻게 남이죠?

남인데.

가족인데.

가족은 남이 아닌가요?

남이 아니죠. 

.

.

.

.

그러면 모세씨는요? 모세씨도 가족인데, 모세씨도 요강을 비워본 적 있나요.

‥‥‥왜 그런 걸 자꾸 물어요?

궁금해서요.

모세씨는 한숨을 쉬면서, 등받이 쪽으로 푹 꺼지듯 기대앉더니 부부잖아요, 라고 말했습니다. 두사람은 부부잖아요, 부부 사이에 그 정도는 있을 수 있는 일 아닌가? 그런 말을 끝으로 이제 이 이야기는 끝, 이라는 듯 탁자 쪽으로 몸을 당기고 왕성하고도 완강하게, 샐러드를 먹었습니다. (p.147-148)



가족이라서 멀쩡한 아버지의 요강을 어머니가 비운다는 말, 그러나 가족인데도 요강을 비우지 않는 아들. 이 집은 대체 어떤 집인가. 나는 다른 사람들의 사랑에 혹은 연애에 혹은 결혼에 '난 반댈세'를 외치고 싶지는 않다. 다 저마다의 사연과 사정이, 외부에서 보았을 때는 절대 알 수 없는 아주 많은 것들이 거기 숨어있다고 생각하므로. 그렇지만 평생 아버지의 요강을 비워온 어머니와, 그 상황에 대해 한 점의 의심이나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 이 가족 구성원들을 보노라니, 나나에게 '이 결혼 반댈세'를 외치고 싶어졌다. '부부'여서 왜 아내가 남편의 요강을 비워야하는가. 왜 남편은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지 않는가. 뭐 이런 개같은 경우가 다있는가. 지랄맞은 경우가 아닌가.


사람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는 건, 사소하지만 어떤 한 가지 때문일 것이다. 당신을 내 옆에 두고 혹은 당신을 내 옆에서 밀어내게 하는 사소한 한가지. 마스다 미리는 자신의 만화에서 '음식점에서 무조건 종업원에게 반말하는'애인을 보며 이 남자랑 계속하는 게 옳은가를 고민하는 여자를 보여주는데, 황정은은 멀쩡한 남자가 쓴 요강을 아내가 비워주는 데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지 않은 이 남자, 에 대해 고민하는 나나를 보여준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한가지가 있다면, 아무리 '그럼에도불구하고' 계속가려고 해도 자꾸 그게 눈에 걸린다면, 돌아서야 하지 않을까. 내가 눈 딱 감고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나나는, 요강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모세를 받아들일 수 없다. 나도 그런 모세를 받아들일 수 없다. 나는, '그런' 모세를 결국은 받아들이지 않는 나나를 응원한다. 



아기는 괜찮아. 이모가 있으니까, 괜찮아. (p.152)



아기는 괜찮다. 이모가 있으니까. 이모가 있다. 괜찮다. 내가 이모여서 잘 안다. 괜찮다. 





도무지 좁혀지지 않는 의견차이-한쪽은 문제가 존재한다고 말하고 다른 한쪽은 니가 문제를 일으키는 거라고 말한다- 때문에, '케스린 스토킷'의 [헬프]에서, 여자는 청혼하는 남자에게 이렇게 말하며 결혼하지 않기로 한다.



"내 생각에 우리는 그 문제를 바로잡으면서 남은 나날을 보내게 될 거야." (2권, p.241) 





아기는 괜찮다. 이모가 있으니까. 그리고 나기 삼촌도 있고. 





어제는 집에 돌아가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삼겹살이나 갈비를 먹고 싶었지만, 상추를 사서 씻고 마늘을 까서 썰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지나치게 번거로워 포기했다. 누군가 한 명만 내 옆에 있었어도 삼겹살집이나 갈빗집으로 들어가 맛있게 고기를 먹을 수 있었을텐데.

그렇다면 배달해서 치킨을 먹을까, 도 생각했지만 혼자서 도무지 한 마리를 다 먹을 수가 없을텐데. 시켜서 남길까, 그냥? 생각하다 이내 관뒀다. 결국 집에 돌아가 냉장고를 열고 이것저것 꺼내 이렇게 저렇게 밥을 먹었는데, 

아, 이래서 사람이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사는구나 싶었다.


치킨 한 마리 시켜 남기지 않고 먹기 위해,

피자 한 판 시켜 남기지 않고 먹기 위해,

삼겹살집에 거침없이 들어가기 위해.


이래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네가 필요해, 치킨 한마리 먹자. 당신도 내가 필요하지? 피자 한 판 주문하자.



내 옆에 당신이 있으니 괜찮고, 

당신 옆에 내가 있어서 다행인 날들을 우리가 보냈으면 좋겠다.

서로가 서로에게 있어서 충분한 날들.

그렇다면 우리는 인간의 멸종을 최대한 뒤로 미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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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5-05-20 12:42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굿애프터눈입니다. `요강`으로 상징되는 미래의 골칫거리들, 나나가 무사히 피했길 바랍니다. 그건 그렇고 말이에요. 다락방님 1인 1닭이 불가하신가요?! ㅠㅠ 먹는 걸 나누는 건요, 단순한 행위가 아니에요. 맞아요. 내 피와 살이 될 것을 나눈다는 건 그 이상의 것이에요. 관심과 사랑, 이렇다 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지만- 나기네 어머니와 카첸바크의 글에 나오는 이웃집 사내는 그 순간 외로움을 나누고, 인간에게 기대해도 좋을 가장 좋은 것을 나눈게 아닐까요. 영혼의 음식을 나누는 이 페이퍼 참 좋아요.

다락방 2015-05-21 12:39   URL
굿애프터눈, 에이바님. 히히.
작은 닭이라면 1인1닭 가능하겠지만 작은닭은 배달을 안해주고 사러 나가야 해서요..배달해주는 닭들은 대체적으로 큰 닭들..1마리에 15,000원 이상..그러면 1인1닭이 불가할것 같다고, 시도해보지 않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도해보면..성공할 수도 있다는...생각도 드네요. 엣헴.

저렇게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당연히 엄마가 아빠의 요강을 비워야한다고 생각하는 모세씨라면, 나중에 결혼해서 나나에게도 야, 울엄마는 별말없이 했는데? 하며 자연스레 시킬 수도 있겠죠. 너무 끔찍해요. 그리고 가족이라면서 왜 자기는 안하는지..어제도 이 요강 얘기 하면서 친구랑 족발 먹으며 엄청 씹었어요. ㅎㅎ

네, 먹을 것을 나누는 것, 좋죠. 카첸바크의 글 저부분, 읽으면서 뭉클 했었어요. 아 좋아, 했답니다.
저야 늘 에이바님의 명품 페이퍼 보는 재미로 요즘 지내고 있으니, 이정도 페이퍼는 에이바님 페이퍼에 비하면 닭 반마리 쯤인거죠. 으흐흐.

moonnight 2015-05-20 18:29   댓글달기 | URL
(작은 목소리로) 고모가 있어도 (나름) 괜찮아요..

저도 카첸바크의 책에서 저 대목 참 뭉클했어요. 쌀과 닭을 먹고 싶은 저녁이네요. ^^

다락방 2015-05-21 12:40   URL
문나잇님! 고모가 있어도 당연히 괜찮죠! 게다가 문나잇님 같은 고모라뇨! 행운이죠! >.<

쌀과 닭, 듣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져오죠? 카첸바크 저 소설, 좋았어요. 그냥 카첸바크가 세상을 보는 시선이 저는 좋은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15-05-20 22:11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에서 뭉클하네요.
다락방님 바로 옆은 아니지만, 다락방님이 거기 있어서, 좋은 이모고, 좋은 상사고, 좋은 누나고, 좋은 사람이라서... 나도 좋아요. 다락방님이 행복해서 나도 좋아요.
인간 멸종 전까지 행복하게 살아요, 우리~~~*^^*

다락방 2015-05-21 12:40   URL
제가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은 아니겠지만, 단발머리님께 좋은 사람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참 잘 사는 삶일 것 같아요. 히히. 우리 즐겁게 잘 지내요, 단발머리님. 맛있는 것 먹고 건강을 유지하면서, 그리고 좋은 책 많이많이 읽으면서 말예요!
 
나는 너에게 배운다















이 책을 사서 읽을거란 말에 회사동료 e 양이 다 읽고 얘기해달라 했었다. 어제 점심시간, 나는 이 책을 다 읽었다며 이 책에 대한 이야길 해주었다. 애초에 이 책을 왜 쓰게 되었는지, 남자들이 여자들의 말을 귀기울여듣지 않는 사례들을 열거하며. 그러다 결국 중동에선 그게 더 심하게 나타나고, 그것이 강간으로 글을 맺게 했다며 이야기해 주었다. 결국 일상적인 유치한 일 하나가 글을 맺을 때는 강간을 언급하게 돼. 


여성의 이런 상황이 좀더 극단적으로 드러난 현상은 가령 중동 국가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곳에서 여성의 증언은 법적 효력이 없다. 따라서 여성은 남성 강간자의 주장을 반박할 다른 남성 증인을 확보하지 못하는 한 자신이 당한 강간을 스스로 증언할 수 없다. (p.17)


정말 엿같은 경우지, 하면서 나는 계속 말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평등결혼 이라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에 대해 생각했어. 동성간의 결혼이 그것인데 말야, 라며 나는 엊그제 페이퍼에 썼던 내용을 언급했다. 그리고는 결국 이런 말로 끝맺게 됐다. '거기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이 책 덕분에 알게 된거야. 책 읽는 거, 진짜 좋지 않아?'



정말 그랬다. 이 책을 읽고나서 평등결혼 이란 것에 대해 뭔가 새로이 눈이 뜨이게 되면서, 아 내가 이걸 읽지 않았다면 전혀 알지 못하고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을 알게됐다, 라는 생각에 무척이나 흥분한거다. 책 읽는 거, 이건 이래서 좋구나. 누군가 어딘가에서 다른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고, 그걸 이 먼 곳에 있는 내가 읽을 수 있다니, 그리하여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해 새로이 알게 되다니. 아, 책이란 것은 정말이지 얼마나 좋은가! 대체 이런 책을 어떻게 읽지 않고 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원래 책을 좋아했지만 새로이 더 책이 좋아졌다. 마치 좋은 사람이 하루 지나고 나면 더 좋아지는 것처럼. 왜 그럴 때가 있잖은가, 어제보다 더 좋아질 수 있다는 게 신기해, 어제가 최상인 줄 알았는데!!!!!!!!!!!!!!


뭐, 그런 기분을 느끼면서 어제 퇴근길, 사무실 저어어기쯤에 처박힌 책들이 뭐뭐 있었지, 집에 좀 가져가얄텐데, 하고 꺼내보다가 어머, 파스칼 키냐르의 책이 나와서 헐, 했고 성석제의 투명인간이 나와서 또 헐했다. 이것들..내가 언제 산거냐.. 다른 알라디너의 글을 읽고 투명인간 사봐야지, 사볼게요 라고 댓글 달았던 건 기억하는데, 그 뒤의 주문은...내게 기억나지 않건만. 나...왜이렇게 행동이 재빠른거지... 하아- 뭘 그리 생각하면 바로 실행이냐 ㅠㅠ 왜이렇게 사무실에도 책이 많아 ㅠㅠ 눈물나. ㅠㅠ 그치만 즐거운 마음으로 책읽기를 계속할것이니, 언제 산 지도 모르겠다는 것에서 오는 좌절감은 툴툴, 털어버리자. 하아-





매주 꼬박꼬박 내게로 도착하는 시사인의 문화면을 좋아한다. 좋아한다고 해서 문화면을 꼼꼼하게 다 들여다보는 건 아니고, 영화와 책에 관한 것만 들여다보는 편이다. 어제도 읽다가 막 세상에 이런 책이 있다니, 하면서 몇 권 또 관심 도서로 찜해두었다. 이 중에 어떤 책들은 구매와 읽기로 이어지겠지만 아마도 어떤 책들은 그저 호기심만 가진 채로 멈추지 않을까 싶다.










먼저 이 책. '자바긴팔원숭이 연구자'의 책이란다. 와- 이건 뭐여??


비숲이 뭔가, 싶지만 시사인을 인용하자면,

'비가 탄생하고 비가 몸을 맡기는 숲' 이란다. 저자는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의 수업이 좋다는 말에 듣게 됐고, 재미있어 석사과정을 시작하게 됐단다. 당시에는 까치를 연구했는데 교수로부터 '화려한 종을 연구하면 좋지 않겠느냐'란 말로 영장류 연구를 권했고 이런 과정들이 더 진행되서 결국은 군복무 대체로 간 인도네시아에서 자바긴팔원숭이를 마주치게 된다. 결국,


'2007년 인도네시아 구눙할라문 국립공원에서 자바긴팔원숭이의 먹이 찾기 전략을 연구해 한국 최초의 야생 영장류학자가 되었다' 고 한다. (시사인 제401호 인용)


아니, 이건 나로서는 외계어나 다름없다. 나랑 같은 나라에서 태어난 누군가가 영장류에 관심을 갖고 자바긴팔원숭이에게 매력을 느끼다니, 야생 영장류학자가 되다니, 열대우림을 돌아다니다니!!! 아, 이 세상은 정말 다채롭지 않은가. 만약 이런 책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지구상 어딘가에 영장류학자들이 침팬지를 연구하며 열대우림에 가있을 거란 사실 자체를 아예 인식하지 못하는 채로 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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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구눙할라문 국립 공원에서 ‘자바긴팔원숭이의 먹이 찾기 전략’을 연구하여 대한민국 최초로 야생 영장류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김산하 박사의 밀림 모험기를 담은 책이다. 서울 대학교 동물 자원 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생명 과학부 대학원에서 ‘까치의 서식지 구성’과 관련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몇 년의 준비 기간을 거친 후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인도네시아 열대 우림으로 뛰어들어 긴팔원숭이의 행동 생태를 연구하였다. 

2년 여간의 관찰 기록을 바탕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에는 이화 여자 대학교 에코 과학부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때때로 인도네시아 열대 우림을 방문, 후배 연구자들을 지원하며 긴팔원숭이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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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에 실린 서평을 마저 다 읽지 않아도, 책 속 그림에 나타난 노란 새가 혹시 '여기가 아닌 다른 어느 곳에 가고 싶었던' 아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게다가 서평의 마지막에 


''나'는 그렇게 자라고 자라서 이야기 쓰는 사람, 작가가 된다'


라는 문장마저 읽으니, 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또한 상상력 가득한 그림책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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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생각’이 빛나는 ‘상상력’이며 ‘꿈의 한 조각’임을, 노란 깃털과 노란 새에 비유한 아름다운 그림책이다. ‘딴생각’을 하는 어린이들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책이며, 동시에 ‘딴생각’을 못하게 하는 어른들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이 책을 통해 자신만의 색을 지닌 깃털을 하나씩 품게 되길, 그리고 언제든 그 깃털의 힘으로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를 마음껏 여행하게 되도록 이끌어 준다.

소년이 학교에서 너무너무 벗어나고 싶을 때, 그 일은 처음 일어났다. 상상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말을 따라 달리고, 사슴나무 위에도 앉아보고, 물고기들과 경주를 하면서 바람처럼 떠돌아다닌다. 부모님은 피아노를 선물하여 소년의 마음을 붙잡으려 해보지만, 오히려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 때문에 그의 여행은 계속된다.

성인이 되어서도 변한 것은 없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멀리 떠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이 신비한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원인을 찾아낸다. 바로 노란 깃털이다. 그는 깃털 덕분에 상상의 여행에 대하여 글을 쓰게 된다. 글을 쓰면서 그는, 이곳에 있으면서 저 먼 곳에도 있을 수 있었다. 정말 대단한 능력을 발견한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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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독서공감'은 시사인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코너인데,

이번에 소개한 책 역시 무척이나 흥미롭다. 네 살 먹은 딸 매이와 함께하는 아빠 육아일기 인데, 

정여울이 언급한 '내 아이에게 적대적인 다른 집 아이를 대하는 매이 아빠의 내공' 부분을 꼭 책으로 읽어보고 싶다. 그건 분명 나에게도 또 다른 어른들에게도 유용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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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자 아빠가 자신의 지식과 실제 양육 경험을 접목한 육아일기이자, 어른들이 잃어버린 천진난만함을 간직한 어린아이의 성장기이자, 인간의 근원적인 비밀과 존재 욕망을 탐구한 정신분석학 책이다. 여느 초보 아빠들이 딸을 키우며 한 번쯤 겪었을 일상의 소동을 유쾌하고 밝은 필치로 풀어낸다. 눈앞에서 일어난 듯한 생생한 묘사는 물론, 키득키득 웃게 만드는 유머와 애틋함, 초보 부모가 내 아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정신분석학의 기본 지식을 담았다.

"아빠 미워, 엄마 좋아!" 입에 달고 살기, 엄마 젖꼭지를 향한 음탕한 눈빛과 에두르는 말투, 알몸으로 술래잡기, "치카치카 안 합니다!" 도망 다니기, 코딱지를 파내 먹으라고 내밀질 않나, 빗소리를 들으며 감상에 젖질 않나, TV 채널권을 둘러싼 딸과의 치열한 신경전까지…. 오늘은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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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럴때 기쁘다.

내가 말하지 않았던, 내가 관심두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서 누군가는 관심을 갖고 또 그걸 말하고자 하니까.

이 책은 시사인을 인용하자면,

'만화연구가 김낙호가 권해주는, 일종의 만화 추천 목록' 이라고 하는데,

아, 이 세상에는 '만화연구가' 라는 직업도 있는 것이다.

새삼 나란 사람은 가장 보통의 직업을 가진 가장 보통의 사람이 아닌가 싶다.

만화연구가가, 열대 우림에 가서 자바원숭이를 연구하는 사람이 있어서,

이 보통의 삶을 유지하면서도 다채로운 시선을 갖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다니,

오래전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 의 헌신]이 생각난다. 그 책에 등장한 교수가, 

이 세상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며 톱니바퀴를 구성하고 있다, 뭐 그런 뉘앙스의 말을 했던 거다. 그러므로 '필요없는' 사람은 없다, 각자의 자리에서 맞물리며 돌아가야 한다, 고. 당연히 정확한 문장은 아니다. 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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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연구가 김낙호가 총 276종의 만화를 추천한다. 원하는 주제를 다룬 만화를 골라 읽을 수 있도록 39개의 키워드로 분류했다. 일상, 위로, 사회 등의 큰 분류를 다시 연애, 거짓말, 청춘, 가난 등의 키워드로 나눠 이를 다루는 만화를 각각 5~8종씩 소개한다. 10년 넘게 만화 전문 서평가로 활동해 온 저자가 누구나 공감할 만큼 세상을 훌륭하게 담아낸 만화를 선별하여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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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경험한 사람이 있어야 다른 사람의 간접 경험이 가능하고, 이미 지식을 가진 사람이 있어야 다른 사람이 지식을 얻는 일이 또 가능해진다. 책은 이걸 해주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어제 또 책을 샀다고 해서 뭐, 크게 후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뼈가 되는....게 아니겠는가.



내가 어제 또 책을 샀다는 말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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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5-05-20 12:03   댓글달기 | URL
저도 매일매일 책이 더 좋아져서 행복합니다^^ 그리고 저역시 내가 이 책을 도대체 언제 샀단 말인가 하고 헐 할때가 많아요.ㅠㅠ 앞으로도 안 읽을 것 같은 책들도 많ㅠㅠ;;

다락방 2015-05-21 12:41   URL
제가 책을 좋아하고 책을 즐겨 읽는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문나잇님.
저는 요즘 부지런히, 앞으로도 안읽을 것 같은 책들을 팔고 있답니다.
아니, 이럴 걸 왜 샀을까요...하아.... -0-

2015-05-20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21 1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