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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게더 -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리차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 현암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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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와 지휘로 음악가의 길을 걸었던 리처드 세넷은 심각한 손 부상으로 아카데믹의 세계로 들어선 사회학자이다. 그런 그에게 연주 할 때 몸에 전달되는 진동(振動), (현악 4중주) 협연, 지휘 경험 등이 준 영감(靈感)은 각별하다. 그 남다른 경험으로부터 세넷이 건져 올린 것은 장인적(匠人的) 협력과 소통에 대한 통찰이다. 세넷은 대화적 대화와 감정이입에 큰 무게 중심을 둔다. 세넷에게 감정이입은 즉각적인 만남이고, 자신의 기준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다. 세넷의 논의는 비인간적인 신자유주의 시대 상황 극복이라는 화두(話頭)로 다가온다. 세넷은 연대(連帶)를 일상의 사회적 유대와 정치 조직 간의 연결을 가리키는 것으로 정의하며 협력이 연결을 의미 있게 한다고 덧붙인다. 세넷에 의하면 협력과 경쟁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협력은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지만 그 위상이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 환경이라는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관건은 협력과 경쟁 사이에 균형을 갖추는 것이다. 정치 영역에서 협력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초점을 맞춘 1부에서 세넷은 다섯 가지의 교환에 대해 논한다. 1) 자기 희생을 수반하는 이타적 교환, 2) 양쪽 모두 이익을 얻는 윈 - 윈 교환, 3) 파트너들이 각자의 차이나 차별점을 인정하는 차별화 교환, 4) 한 편은 손해를 보고 다른 편은 그만큼 이익을 얻는 제로 섬 교환, 5) 한쪽 편이 다른 쪽을 일소(一掃)해 버리는 승자독식 교환 등등... 당연히 세넷은 윈 - 윈 교환을 따라야 할 가치로 제시한다. 협력을 위해 필요한 것은 실기craft이다. 그것은 협력과 경쟁 사이의 균형을 조율하는 나름의 기술이다.



세넷은 의례(儀禮: ritual)를 대안(代案)으로 제시한다. 세넷의 맥락에서 의례란 유전적으로 각인된 소통 형식이다. 의례는 세 가지 구성 요소를 갖는다. 그것은 1) 반복성 즉 반복을 통한 각인, 2) 일상적인 것을 상징으로 변형시키는 능력, 3) 표현 특히 연극적인 표현이다. 노동은 세넷이 제시하는 대표적 의례이다. 장인적 기술(技術)과도 연관이 있는 노동은 맑스적 의미에서 생산력이 생산 관계를 규정하듯 기술적 혁신이 사회관계를 바꿔놓는다는 세넷의 맥락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초기 인류학은 의례를 신화의 실행으로 간주했지만 이제 신화와 의례는 분리되었다. 승자 독식의 세계 즉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세계에 의례는 없다. 의례는 비공식적인 윈 - 윈 교환에 형태를 부여하고 경쟁과 협력 사이의 균형을 맞춘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세넷의 의도는 어디에 있을까? 세넷은 몇 차례에 걸쳐 윈 - 윈 교환을 언급한다. 직조공과 염색공이 각기 다른 작업장과 길드에 소속되어 있었던 중세에 그 전통을 깨고 융합됨으로써 분과학문을 넘나드는 통합적인 사유라 부를 만한 것이 강조된 과정은 의미가 크다. 작업장 자체를 그렇듯 대화적 소통과 비공식적 연합의 장소로 만든 것이 윈 - 윈 교환의 한 예이다. 또 하나는 예절의 중요성이 대두됨으로써 사교적이고 바람직한 거리와 배려가 제시된 중세의 사례이다. 세넷은 독일 출신의 르네상스 화가인 한스 홀바인이 1533년에 완성한‘대사(大使)들’이란 그림을 논의에 끌어들인다. 과학 도구들, 류트, 플롯 케이스, 성가집, 수학책, 휴대용 지구의, 그리고 뜻 밖에 인체의 유골(遺骨)이 등장하는 이 그림은“생산적 삶에서 일어난 거대한 변화”를 반영한다.(183 페이지)



생산적 삶이란 노동의례, 기술 등의 용어들과 관계가 있다. 물론 협력은 본래 온화한 것도 아니고 사람들을 한데 묶어주는 한편 서로에게 해를 입히기도 한다. 이런 까닭에 필요한 것은 장인적 기술과 소통 능력을 익히는 것이다. 2부에서 세넷은 협력의 약화가 유년 시절의 불평등성,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 새로운 노동 형태, 자아 정체성 이상(異常) 등에 의해 초래된다고 주장한다. 세넷은 협력 강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세넷이 전작인‘불평등 사회의 인간 존중’에서 들려준 첼로 연주 경험은 중요하게 읽힌다.“팔꿈치를 일종의 닻으로 삼아 시작된 진동의 자극 즉 비브라토는 팔뚝을 지나 손바닥으로 전해지고 뒤이어 손가락에까지 이른다... 이는 손과 가슴 모두에 적용되는 집단적인 지혜의 단편이다.“



세넷은 1) 신체적 노동의 리듬이 의례에 체화되는 방식에 대해, 2) 신체적 동작이 비공식적 사회관계에 생명을 불어넣는 방식에 대해, 3) 물리적 저항을 뚫는 기능공의 작업이 사회적 저항과 차별성을 상대하는 과제에 빛을 던져주는 방식에 대해 논한다.(319 페이지) 이 논의는 격식이 없는 사회적 삼각구도를 우리가 만드는 사회적 관계로 규정하며 동작은 관계를 활성화시키는 한 방식이며 연대(連帶)하는 동작은 학습된 행동이며 동작을 더 잘할수록 격식 없음은 더 본능적이 되고 표현력을 풍부하게 한다고 규정한 부분에서 더 구체화한다.(332 페이지) 첼로 연주자로서 비브라토와 리듬을 이야기한 세넷의 문제의식은 ”(직립 보행으로 인해) 이동에서 해방된 손은 생명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조작 전문형 손을 완성시켜 갔고, 이것은 동시에 정신이 출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조용현 지음 ’정신은 어떻게 출현하는가? - 도구, 의식, 그리고 언어의 진화’116 페이지)는 논의를 연상하게 한다.



조용현 교수가 이 책의 다른 곳에서 라디오 스피커의 박막(薄膜)에 손가락을 댄 헬렌 켈러가 ”첼로의 깊은 소리와 바이올린의 높은 소리를 가려낼 수 있어요.“라고 말한 것을 거론하며 손을 ”눈에 보이는 뇌의 일부“로 정의한 칸트와 ”정신의 칼날”로 정의한 야콥 브로노프스키를 예시한 것은 흥미롭다. 세넷이 말했듯 장인(匠人)은 도구를 워낙 철저하게 이해하고 있어서 어떻게 하면 가장 힘이 덜 들도록 쥘 수 있는지 잘 안다.(335 페이지) 그 장인적 기술이 사회적 차원의 의미를 획득하는 대목은“신체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힘을 최소한으로 쓴다면 우리는 더 감각적이 되고 주위 환경에 더 많이 연결되고 그것에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다.”(338 페이지)고 한 부분이다.“작업장에서의 제작과 수리(修理) 과정은 그 바깥의 사회적 생활에 연결된다.”(349 페이지)는 부분 역시 그렇다.



세넷은 몇 가지 형태의 협력을 예시한다. 카운슬링, 중재(仲裁), 우회적 화법,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기, 가정법(假定法)에 근거한 화법, 공격성과 부정적 요소들을 가리는 가면(假面), 수리 작업의 하나일 수 있는 애도(哀悼), 헌신(獻身), 적절한 거리 두기 등이다. 세넷은 공동체(共同體) 자체가 소명(召命)이 될 수 있을까, 물으며“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공동체, 사람들이 일대일 관계의 가치와 그런 관계의 한계를 모두 실현해내는 과정으로서의 공동체를 생각하고 싶다.“고 결론짓는다.(432 페이지) 그리고 코다(coda)를 통해 ”대화 기술이 비길 데 없이 뛰어난 저자“인 몽테뉴에 대해 알 수 있는 이 대목에서 세넷은 ”사회적 동물로서 우리는 기존의 사회적 질서가 보여주는 것보다 더 깊이 협력할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투게더’는 사회학적 문제의식 이상(以上/ 理想)을 제시한, 인류학과 예술의 범주에 어울리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대미를 장식할 3부작 호모 파베르(homo faber) 시리즈의 마지막 책이 기대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유리를 닦는다/ 뚤루즈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다는/ 프라데뜨, 내 방 유리창을 ...햇살 맑은 오후에 가만가만/ 유리를 닦는다/ 멀리 중세풍의 고딕 양식 성당 너머/ 나지막한 구릉을 지나 이제 곧/ 하늘은 붉어지리니...”‘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의 분위기를 간접 경험하기 위해 피레네 산맥에서 가까운 뚤루즈 2대학에서 유학했던 염명순 시인의‘유리 닦기’라는 시를 찾아보았습니다. 최고의 명상 코스인 산티아고 가는 길의 출발점인 피레네 산맥은, 서영은 작가 같은 내면적이고 성찰적인 분에게는 초월적 존재를 만날 수 있는 필요충분 조건을 갖춘 곳이 아닐까, 란 생각을 해봅니다. 순례가 주는 어감이 수도원과 옛 교부들이 살았던 사막 같은 곳을 생각하게 합니다. 순례, 하면 티베트 불교 聖地를 향한 오체투지의 순례를 생각하게 되는데 신심, 경건, 절실 등의 단어로 수식할 수 있는 그들의 모습이 제게는 꿈이듯 산티아고 순례 역시 아직은 멀게만 느껴집니다. 다만 작가 분이 어떤 생각을 하며 그 순례 길을 걸었을지 궁금합니다. 크리스토프 라무르가‘걷기의 철학’에서 말한 걷기와 사유의 밀접한 연관성을 움직임이 다르면 시간이 달라지고 생각의 속도도 달라진다는 말로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걷기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다는 레베카 솔닛의  말로... 장 자크 루소, 헨리 데이비드 소로, 니체 등 걷기를 예찬한 사람들의 목록에 서영은 작가님의 이름을 함께 올리고 싶어집니다.



 
 
 
같은 하루 다른 행복 - 부처 핸섬, 원빈 스님과 함께 가는 행복의 길
원빈 지음 / 이지북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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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빈(圓彬) 스님은 고등학교 2학년 때 고시생처럼 공부하는 흉내를 내고 싶어 찾아간 천안의 한 절에서“법우님, 우리가 왜 이 자리에서 이 순간에 만났을까요?”란 화두 같은 물음을 들었다. 할 말을 수습하지 못하고 침묵하고 있을 때“실은 우리가 전생에 이 자리에서 이 순간에 다시 만나기로 한 도반이었어요, 기억나요?”란 답을 들었고“법우님, 출가를 하려면 지금쯤 하는 게 어떨까요?”란 제의를 받고 아무 말 못하고“네!”라고 답했다. 스님의 출가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법당에 들어가자고 하면 어릴 적에는 울었고, 커서는 화를 내던 스님은“참 이상“하게도 그렇게 출가를 했다. ”조울증과도 같은 다중인격을 스스로의 내면에서 발견하고는“ 스스로 정신병원을 찾아가고 싶었던 적도 있다는 스님은 그래서인지 우울과 불안, 격정에 휩싸인 세상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같은 하루, 다른 행복’은 스님이 지인들에게 쓴 글과 페이스북에 게시한 글들을 편집한 책이다. 일본에서도 한 젊은 스님이 인터넷을 통해 대중과 맞춤 소통을 하는 사례가 보고된 기억이 난다. 그런데 페이스북이나 트윗 등을 통해 소통하는 스님 분들과 카페 등을 통해 소통하는 스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짧은 글과 긴 글의 차이가 우선 떠오르는데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글의 길이는 세계관과 깊이의 차이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짧은 글로 소통하는 스님들에게 기대되는 바와 우려스러운 바가 함께 나타난다. 원빈 스님의 책에는‘Are you ready?’나‘오늘 108배 어때요? 콜?’.‘아자아자! 파이팅’처럼 젊은이들의 가벼운 유희적인 말씀이 눈에 띈다. 그러나 그렇다고 메시지에는 깊이 있는 메시지가 살아 있다.



스님의 메시지는 쉽고 친근하다. 그 외형에 정제(精製)된 불교의 진수(眞髓)라는 내용이 오롯하다.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이 그저 정해놓은 것이며 사회의 약속이라는 가르침, 현재 위에 덧씌워진 과거를 바라보며 그것을 진실로 증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가르침,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이유가 선택권에 있다며 그것을 이웃 종교의 자유 의지에 비유하는 것, 외로움과 두려움과 분노나 슬픔 등은 누가 던져놓은 덫이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들어가는 감옥이니 용기를 내서 나오라는 가르침,”껍데기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다면 소통은 좀더 쉬워지겠죠? 그를 이해하게 되니까요?“란 가르침, 결국은 마음을 턱 놔야 편해진다는 가르침, 더 이상 속력을 더하지 않도록(나쁜 습관에 가속력이 붙지 않도록) 마음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며 마음에도 근육이 있는데 몸짱 될 생각은 누구나 하면서 마음짱 될 생각은 누구나 하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



좋아하는 것을 가지려는 것만이 아니라 싫어하는 것을 가지려는 것도 집착이니 관조하는 마음으로 세상과 자신의 마음을 바라볼 수 있을 때 불성(佛性)으로 향하는 길이 열릴 것이라 말씀하시는 것, 집착은 사랑의 이미테이션이니 마음을 아프게 하는 집착을 하지 말고 사랑으로 안아주는 연습을 하라는 가르침, 욕망을 적극적으로 추구해서 행복한 것처럼 보일 것인지 욕망을 다스려서 진짜 행복해질 것인지 선택하라는 가르침, 자신이 아픈지조차 모른다면 무지한 것이고 아픈 것은 알지만 남 탓만 하는 것은 유아적인 발상이라는 가르침,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도 인정하지(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가르침, 세상은 바꿀 수 없지만 세상에 대한 자신의 반응은 바꿀 수 있다는 가르침, 마음 운동에는 명상이 필수라는 가르침...



스님의 말씀 중 1만 시간의 법칙에 대한 설명은 나에게 특별히 의미 있게 다가온 것이다. 스님은 1만 시간이 의미 있으려면 그냥 보내서는 안 되고 투자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스님이 든 예 가운데 밥먹기가 있다. 우리는 모두 밥먹기에 관한 한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데 사실 꼭꼭 씹어 먹지도 못하고 맛을 음미하는데도 서툴다. 위장이 좋지 않아 고생해온 나는 요즘에서야 그 방법을 실천하고 있다. 연습이 필요하고, 배워야 한다는 스님의 지론이 생각난다. 스님의 가르침은 공감 100%의 순도를 자랑한다. 똑똑해진다는 것은 자신의 기준이 많아진다는 것이라는 가르침(57 페이지), 잘난 내 의견, 내 이미지를 포기할 때 유머가 가능해진다는 가르침(197 페이지) 등이 그것들이다. 마음을 강조하고 현재의 중요성을 알리시는 스님은 수행자이시다. 모든 경험은 마음을 거쳐서 출력되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아니라는 가르침(208 페이지)과 현재를 잡으라는 가르침(224 페이지)은 내가 두고 두고 새겨야 할 것들이다.

 



 
 
 
조용한 걸음으로
김병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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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책 가운데 현대 사상사를 전공한 유진 런의 ’마르크시즘과 모더니즘‘이 있다. 이 책은 번역자 이름이 한문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 뿐 아니라 글자 크기도 상당히 작아 격세지감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나온 지 17년이 지난 책이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지만 무엇보다 金炳翼이란 번역자와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책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얻은 내 지난 역사도 돌아보게 한다. 그 책의 번역자인 문학평론가 김병익 선생의 최신작‘조용한 걸음으로‘를 보며 오랜만에 ’마르크시즘과 모더니즘‘을 다시 펼쳐 보았다. 아울러 최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김천혜의 ’소설 구조의 이론‘, 피에르 앙사르의 ’현대 프랑스 사회학‘, 정찬의 ’아늑한 길', 김성기의‘포스트모더니즘과 비판사회과학’, 박상륭의‘죽음의 한 연구’, 한강의‘여수의 사랑’, 김현의‘말들의 풍경’, 김현문학 전집 9, 12, 14번, 몇 권의 문지 시선 등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다른 책들도...



이 책들은 모두 2000년 이전 책들이다. 2000년이란 연도를 굳이 말하는 것은 김병익 선생이 출판사 대표직에서 물러난 해이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인 선생은 김현, 김치수, 김주연 등과 함께 1980년대 문지(문학과 지성사) 문학평론가 4K의 한 사람이었다. 그 분이 어느덧 팔십을 바라보는 연세가 되었다.‘조용한 걸음으로‘는 다소 독특한 책이다. 평론가의 예리한 감식안과 개인적 감회(感懷)가 독특하게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선생은 당신의 글을 잡문이며 잡탕이라 규정하신다. 그리고 혹 당신의 책을 보실지도 모를 운 없는 독자가 있다면 당신의 소홀한 마음가짐을 사과해야 할 일이라 말씀하신다. 그리고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그 두려움을 벗어나고 싶은 소망도 내보이신다. 물론 사과(赦過) 언급은 지나친 조심스러움으로 보이고 두려움을 벗어나고 싶다는 소망은 둘레 안도 아니고 금 밖도 아닌 가장자리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욕망과 체념 사이를 두리번거리는 선생의 위상(205 페이지)과 관련이 있는 듯 하다.



마지널리안이라는 다소 생소한 외국어를 제목으로 쓰기가 망설여져 가장자리에서 서성이다란 우리 말 소제목을 3부에 붙였지만 선생은 자칭 마지널리안이다. 마지널리안은 독서 중 느끼고 배운 내용들을 책 가장자리에 메모해 넣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 마지널리안의 정체성과 가장자리에서 서성이는 것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개념은 로버트 단턴의‘책의 미래’를 통해 알려진 것이다. 단턴에 의하면 프랜시스 베이컨, 존 밀턴, 존 로크, 바루흐 스피노자 등이 그런 류의 독자였다. 선생이 마지널리아적 독서 습관을 갖게 된 것은 읽은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 것에 대처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하지만 가장자리라는 공통점은 심상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조용한 걸음으로‘는 제목 자체가 인상적이다. 이 제목은“아직 하늘에서 막내의 여전한 섣부름을 안쓰러워하실 아버님 어머님이 새삼 그리워지는 것은 그분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서일까. 조용한 걸음으로나마 내가 그 거리를 줄여가고 있는 중임은 분명하다.”(325 페이지)는 글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



성전 스님은 ’삼천 년의 생을 지나 당신과 내가 만났습니다‘란 책에서“세상에 와서 내가 가장 귀하게 만난 사람들은 바로 나의 부모님”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조용한 걸음으로란 선생의 말은 그 스님의 말을 생각하게 한다. 그래도 ’조용한 걸음으로‘는 부모와의 인연을 다룬 책은 아니다. 다만 황동규, 오정희, 황석영, 박이도 등 생존 문인들은 물론 김수영, 김규동, 김영태, 오규원, 김현, 황순원, 이청준, 안우식, 박경리, 박완서, 전숙희, 천관우 등 작고 문인들에 대한 기억과 호명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 분들을 호명하며 선생이 덧붙인 글들은 에피소드 이상이다. 선생은 마르크스와 톨스토이 등의 위선과 이중성을 폭로한 폴 존슨의 ’두 얼굴의 지식인‘에 대해 사상과 작품을 인품 및 인격과 나누어 보라는 말씀을 하신다.“그들의 창조적 정신은 인품과 인격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기성의 세계와 그 윤리와의 갈등과 싸움에서 빚어지는 것”이라는 것이다.



나는 ’조용한 걸음으로‘의 핵심을 들라면 제목 짓기의 어려움, 모방 단계를 지나 자기의 문체를 갖는 것, 자료 찾기의 어려움, 편집자로서의 역할과 책임, 지식사회에 대한 성찰적 회고와 전망 등으로 꾸려진 3부를 들 것이다. 이 부분은 무엇보다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도움은 ’소나기‘와 ’독짓는 늙은이‘의 작가인 황순원 선생에 대한 증언을 통해서도 전해진다. 대학 2학년 때 막 사귄 시인 황동규를 따라 그의 집에 갔다가 시인의 부친인 황순원 선생을 처음 뵈었다는 선생은 거실 탁자에서, 끼어 넣고 지우고 화살표로 빈 자리에 보태 쓴, 복잡하게 퇴고(推敲)한 원고지를 보고“그 아름다운 선생님의 문장도 이런 탁마(琢磨)를 통해 만들어지는구나 감탄하며 작가의 내면적인 각고(刻苦)의 증례를”보았다고 한다.



선생은 명에의 허욕을 긍정적으로 보고(82 페이지) 속물근성도 진지하고 긍정적인 것이라면 유용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하신다.(104 페이지) 그리고 과학자와 예술이란 글에서 당신은“현대 과학의 내역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76 페이지)다고 말씀하시지만 고생물학자 故 스티븐 제이 굴드의 ’여덟 마리 새끼 돼지‘나 ’시간의 순환, 시간의 화살‘ 같은 책을 언급하시기도 하고 무엇보다 과학자들의 평전을 많이 읽으신다. 선생에 의하면 굴드는 ”그 자리에 함께 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인간이기를 그만 두고 그 방의 벽에 붙어 있는 파리가 되고자 할 것.“이란 말을 했다고 한다. 누구나 그렇게 파리가 되어서라도 엿듣고 싶은 모임이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굴드의 이야기는 공감이 간다. 선생의 관심은 기술로 이어진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에서 ”기술이란 어느 영웅의 개별적인 행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누적된 행동을 통해 발전된다는 것, 그리고 기술이란 대개 어떤 필요를 미리 내다보고 발명되는 것이 아니라 발명된 이후에 그 용도가 새로 발견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293 페이지)



그런데 이 부분이 생각하게 하는 것은 달리 있다. 1960년 4, 19 오전 시위에 참가하고 돌아오는 몇 명의 고등학생들이 낄낄거리고 떠드는 모습을 보고 못마땅해 하다가 좀더 성숙해진 뒤 당신의 생각이 순진했음을 깨달았다는 선생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무거운 역사적 사건도 처음에는 사소하거나 우발적이었다가 의미와 결과가 창대해지고 우연의 얼굴 속에 필연의 역동성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37 페이지) 이는 시선의 여유로움과 관계 있지만 그 이상으로 나에게는 발명된 이후 사후적으로 용도가 발견되는 기술과, 처음에는 사소하거나 우발적이었다가 의미와 결과가 창대해지는 역사적 사건을 닮은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 선생은 장정(裝幀) 담당자 외의 저자, 역자, 편자, 편집자, 기획자, 교정자, 출판기자, 발행자, 영업자 등 출판과 관련한 모든 일을 역임했다고 한다.(224 페이지) 이런 예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든 저자들 사이에서도 격은 다를 것이다. 선생은 ”작가란 역시 나 같은 범인(凡人)과는 다르“며 ”그들의 작품을 가지고 해설이나 서평을 쓰는 비평가의 한계를 실감하곤“ 한다고 말씀하신다.(244 페이지)



선생은 만년(晩年)이다. 그런 선생이 ’만년의 양식에 관하여’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부분에서 나는 묘한 감회를 느꼈다. ’만년의 양식에 관하여’는 오리엔탈리즘으로 유명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 이름이다. 이 책에서 사이드는 만년의 양식을 보여준 예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모차르트(서른 다섯 살에 고인이 된 모차르트에게서 발견하는 만년의 양식!), 토마스 만, 장 주네, 글렌 굴드 등을 들었다. 사이드가 ’만년의 양식에 관하여’를 쓴 것은 노벨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의‘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의 한 구절을 보고 깊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구절은 ”나이를 먹으면서 문득 깨닫고 보니 아주 고요한 비탄이라고나 불러야 할 것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구절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한 작가나 주제에 대해 3년 동안 집중하여 독서하면 대체로 그에 대해 지적 정리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선생으로 하여금 도스토에프스키나 카뮈 등의 문학 전집을 메모해 가며 우직하게 읽게 한 요인이 되었다.(277 페이지) 나는‘조용한 걸음으로‘가 이전 문학평론집과 다음 문학평론집을 이어줄 다리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어제까지의 세계 (양장) - 전통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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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을 두는 모든 분야에서 박식함(polymath)을 드러내는 재레드 다이아몬드(1937 - )는‘제 3의 침팬지’,‘총, 균, 쇠’,‘문명의 붕괴’등으로 유명한 UCLA의 지리학 교수이다. 그의 최근작인‘어제까지의 세계’는 지금껏 그가 연구해온 문명간 차이에 대한 관심이 완결 형태로 제시된 책이다. 이 책은 1964년 오스트레일리아의 통치를 받고 있던 파푸아 뉴기니를 처음 방문했던 다이아몬드가 다시 그곳을 방문해 탐사(探査)로 얻은 결과물들을 담아낸 책이다. 학자로서의 다이아몬드의 관심을 가장 잘 드러내는 키워드는 과거 문명 및 사회에 대한 관심이다. 의미 있는 단서(端緖)를 제공해 주는 여러 사회를 분석하기 위해 다이아몬드가 채택한 것은 사회 진화의 단계를 무리(band), 부족(tribe), 군장사회(chiefdom), 국가(state)로 나눈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엘만 서비스(Elman Service: 1915 - 1996)의 분류법이다.



다이아몬드의 문제의식은 기묘한, 괴상한 등을 뜻하는 weird에 착안해‘인간 심리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WEIRD(western, educated, industrialized, rich, democratic)한 사회에 속한 피험자를 주로 연구한 결과에 불과하다’고 말한 것에서 잘 나타난다. 이는 서양의 교육받고 산업화되고 부유한 민주주의 국가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세계를 보는 편중된 시각을 지양하고 전통 사회로부터 배울 것은 배워야 할 필요가 충분함을 알게 한다. 네 가지 사회 발전 단계에서 중요한 척도는 인구 규모이다. 그 크기에 따라 경제 세분화가 결정되고 공인된 지도자와 재분배 경제, 이데올로기와 종교적 정체성, 불평등 구조 등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과거 사회로부터 교훈을 얻어낼 때 주의해야 할 것도 있다. 현대 사회와 정반대의 극단으로 치달아 과거를 낭만화하고 이상시 해서는 안 된다는 점(21 페이지)이고, 한 사회에 관련된 모든 것이 물질적인 조건으로부터 예측된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는 점(36 페이지)이다.



당연하지만 전통 사회의 가치관과 생활양식은 보완적 의미를 지닌다. 이 점은“소규모 사회가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을 지금보다 폭넓고 깊이 있게 파악한다면 우리 사법체제에 더 효과적으로 접목하는 방법을 고안해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는 저자의 말을 통해서 확인된다. 다이아몬드는 무리 사회와 부족 사회 그 중에서도 뉴기니 지역을 중요하게 다룬다. 다이아몬드는 그 이유를 그 지역이 인간 문화의 다양성을 실질적으로 가장 다채롭게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뉴기니 지역에서 교통사고로 아이가 사망한 것을 계기로 가해자와 피해자 측이 애도 의식을 갖거나 공격자들에게 보상금을 지불하는 등 전통 사회가 살아가는 방식은 현대인들에게는 낯선 면이 다분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것은 관계와 공동체를 중시하는 가치관이라는 생각도 든다. 전통사회 역시 전쟁을 한다는 점에서 현대사회와 다르지 않다. 그들의 전쟁은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 않은 만성적인 전쟁이다.



아이 양육과 노인 대우(待遇) 문제는 다이아몬드가 전통사회로부터 배울 것으로 꼽은 대표적인 것들이다. 다이아몬드에 의하면 전통 사회(수렵채집인들의 사회)는 아이가 울 때 즉시 반응을 보이고, 부모가 식량을 채취할 때 조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체벌을 최소화하고, 자주성과 독립심을 허락하는 방향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여러 나이대의 아이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한다. 이런 파격에도 불구하고 정서적 안정감과 자신감, 호기심과 자주성 측면에서 상당히 바람직스러운 결과를 보이는 것이 전통사회의 양육 방식에 숨은 비밀이다. 다이아몬드는 그런 양육법이 오히려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들의 사회를 만들어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한다, 조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노인 대우에 대한 논의에서도 중요하게 거론된다. 노인 스스로 자신들에게 불리한 환경 속에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를 논해야 하지만 다이아몬드의 지적은 조부모가 아이와의 관계에서 의미 있는 몫을 하는 것처럼 사회 차원에서 노인이 효율적 위치를 점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필요를 생각하게 한다.



다이아몬드가 정교화한 개념들 가운데 건설적인 편집증이란 것이 있다. 전통 사회 부족원들이 위험이나 위협에 편집증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고 다이아몬드가 만들어낸 건설적인 편집증이란 개념을 보며 나는 다이아몬드가 하려는 말이 근본적으로 위험사회인 현대사회에 필요한 것은 원자력의 위험 같은 큰 이슈를 재고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오래 전부터 존재한 것이어서 그런대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상적 위험이나 우리가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위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만연한 위험에 더 주의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뉴기니는 다이아몬드에게 뿐 아니라 언어, 종교, 생태적 다양성, 문화인류학적 가치관 등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상당히 의미 있는 곳이다. 다른 무리에 대한 살해나 그 무리들과의 다툼을 정당화하려고 종교를 들먹이지 않는(530 페이지) 뉴기니인들의 면모는 인상적이다. 종교에 대해 갖는 필요성이나 절실함 면에서 현대인들 이상일 그들이 종교를 자기 합리화의 도구로 이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섯 개 이상의 언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뉴기니는 당연히 세계에서 언어 다양성이 가장 높은 곳이다. 텍사스 주보다 약간 넓은 지역에 약 1,000개의 언어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상당수의 언어, 그것도 어족(語族)마저 다른 언어들의 공존이 낳은 결과이다. 뉴기니가 언어와 어족 수에서 어느 지역보다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는 것은 생태적 다양성과 사회경제적이고 역사적인 요인들이 두루 작용한 결과이다. 소규모 인구 집단에서 다중 언어 사용이 일반적인 것은 이웃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무리들과의 교역 필요성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언어의 다양성은 인구 규모, 이동성, 경제 전략 등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다이아몬드의 논의는 체계적이고 입체적이다. 다중 언어의 사용이 인지 능력을 향상시키고 알츠하이머 같은 질병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과, 세계의 소수 언어들이 사라져 가는 비극을 함께 거론함으로써 개인과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한 것은 그 한 예이다. 종교와 진화의 연관성이나 멸종(滅種)을 대하는 언어학자와 생물학자의 유사한 입장을 언급한 것 역시 그렇다. 다이아몬드는 언어가 세계 각 지역의 분쟁의 주요 요인이 아니라고 강조한다.“스탈린과 폴 포트, 르완다와 옛 유고슬라비아만이 아니라 그 밖에도 많은 역사적 사례가 우리에게 단일 언어가 평화의 파수꾼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592 페이지)



다이아몬드의 박식(polymath)은‘염분과 당분, 비만과 나태’편에서도 잘 드러난다.(다이아몬드는 생리학 박사이고 진화생물학자이다. 독일의 대 작곡가 J. S 바흐의 모습과 증상들을 당뇨병으로 진단받기에 충분한 징후들로 해석하는 그의 분석은 전문가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염분과 당분, 비만과 나태’라는 글은 고혈압을 유발하는 서구식 생활방식에 대해 정밀 분석한 글로 전통 사회의 생활 습관의 장점을 자연스럽게 재확인하게 한다.“어제의 세계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 중에는 현대 사회에 사는 걸 고맙게 생각해야 할 것들이 있다.”는 다이아몬드의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전통 사회에 대한 막연한 동경(憧憬) 못지않게 무조건적 거부 역시 바람직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한계와 성과를 가려내는 것이다. 그 점을 다이아몬드는 자신의 책을 통해 전통 사회로부터 받아들일 수 있는 교훈들을 찾아내기 바란다고 표현했다. 객관적이고 여유가 느껴지는 대단원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