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시인동네 시인선 18
박미란 지음 / 시인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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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란 시인. 1995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한 지 20년 만에 첫 시집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다를 상재(上梓)한 시인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쓰인 시들이 지닌 일관된 흐름을 찾아내기보다 예리한 시각과 서정시 특유의 단아함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책을 펼친다. 우선 시집의 제목인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다와 제목이 같은 시가 없다는 점이 눈에 띈다. 다만 조각전이란 시의 두 번째 연에 그 말이 있다. 조각전(彫刻展)은 조각품들을 벌여 놓은 전시회를 의미한다.

 

 

그렇기에 물고기 눈은/ 저녁이 되려 하거나/ 전생을 떠올리지 않았고// 새의 날개는/ 우레를 그리워하거나/ 지하세계로 날아가는 법을 잊어버렸다는 구절이 이해된다. 시인이 새와 물고기를 보며 의도한 것은 무엇일까? 일상에 묻혀 무감하게 지내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 아닐지? 그것은 새롭게 마음을 다잡고 날아가는 법을 익히고 중요한 무언가를 떠올림으로써 즉 방법을 찾음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지? 그래서 그때는 알 수 있겠지”(‘눈보라’), “무엇 때문에‘(’비단길‘), ”저 하늘에 물어보아요“(’저 하늘에 물어보아요‘), ”빛의 껍질이 어둠이라는 걸 감자 깎다가 알았어“(새벽’),

 

 

허전해서 허물어지는 몸을 달래는 동안/ 잃어버린 것들은 균형을 찾아 또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균형’), ”당신이 내게 온 이유를 알겠어요/ 알아도 아직은 어렴풋이 알겠어요“(’꽃이 오는 이유‘), ”아프지 않는 것도 언젠가 아플 때가 있다“(’손톱‘), ”우리가 매만진 꽃의 무늬와 그늘을 알았더라면“(’검은 돌‘), ”왼쪽 다리를 무릎까지 잘린 노인은/ 없는 종아리가, 없는 발가락들이,// 아직도 제 몸인 것처럼 시리고 아프다“(’허공‘). ”아비 것이어도 아비를 모르는“(’오래된 슬픔‘), ”아득하고 두렵고/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알 수 없는“(’아래‘), ”죽은 천천히 식어가고 당신은 내 마음을 아는 듯 숟가락조차/ 대지 않고 있다“(’죽 한 그릇‘),

 

 

죄송하다는 느낌마저도 노래였다는 걸 알지 못한 채“(’노래‘), ”유효기간을 안다는 건/ 앞날에 꼭 필요한 일이겠지요“(’요구르트 아줌마‘), ”어디서 잃었는지 모르는 눈동자“(’ 카프카‘),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어/....도달할 수 없는 거리를 손사래 치며“(’‘),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잠시 부딪치는 소리// 저 소리들은 어째서 젖은 손을 바닥에 닿게 하는가/..서둘러 오는 아침은 어째서 한걸음 비켜나도 아프기만 한가“(’스며들다‘), ”오늘은 가지 마라/ 제발 가지 마라/ 첫닭이 세 번 울고 베드로처럼/ 너를 모른다 말하지는 않으리“(’밤아, 이 밤아‘),”아닌 줄 알았는데/ 아무 일 아닌 줄 알았는데“(’붉은 꽃‘)처럼 아는 것에 대한 시어들, 이유를 묻는 시어들, 모색에 대한 시어들, 환각지(幻覺肢)라는 앎, 모름을 말하는 시어들이 눈에 띈다.

 

 

이렇게 말하면 한 구절, 한 단어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 말하기도 하겠지만 한마디 말이나 시어 하나에서 작가의 무의식을 들여다보았다는 한 평론가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물론 무의식이란 말에 대해 해명해야한다. 무의식이란 말로부터 정신분석을 떠올리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적 읽기(를 할 능력이 있지 않지만)는 작가가 보인 무의식의 상처를 이해하고 그로부터 자신의 심리적 증상을 읽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작가가 의도했는지 모르지만 그렇든 아니든 앎, 모색(摸索), 체험 등의 시어가 내게 두드러져 보였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사물의 둘레‘, ’봄날의 입속‘, ’카프카‘, ’흰 강물 흰 그림자처럼 어려운 시들이 있지만 그것이 감상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이 외에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영원(’영원에 대하여‘, ’흰 강물 흰 그림자‘), 환생(’이사‘), 영영(’아래‘) 등의 시어들이다. 긴 시간의 격절(隔絶)을 의미하는 이 단어들은 그 시간 이후에도 우리의 앎이 지속될 수 있을까, 란 물음을 갖게 한다. ’이사의 환생은 還生일 것이다. ”사람의 일 속에 꽃의 일생 막걸리 한 잔보다 쉽게 지워져도,/ 다시는 꽃으로 환생하지 못한다 해도란 구절이 그 사실을 말해준다.

 

 

환생(還生)은 다시 살아남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환생(幻生)은 어떤가. 이는 실제는 없으나 환상처럼 나타남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차이를 어떻게 아는가. 무엇이 이고 무엇이 인지, 무엇이 이고 무엇이 인지, 무엇이 인지. ’이사저 꽃송이들 데려갈 수 없다// 옷 보따리 꾸렸다 풀었다 하는 동안/ 목련이,/ 맨 먼저 다니러 왔다는 듯/ 사나흘 피고 잊히는 일이 가장 큰 이사라는 듯// 잠깐 피었다가 훌쩍 떠나가고// 짐승의 내장같이 어둡고 쓸쓸한 그림자만 밤새 너울거렸다는 구절이 말해주듯 꽃을 놓아두고 해야 하는 이사를 그린 시이다.

 

 

우리는 결국 이사를 간다. 삶에서 죽음으로. ”막 꽃피우려는 노란 민들레에게/ 내년 꽃을 기억하라고, 기억해보라고/ 억지 쓰지 못하고 즉 사무친다는 말“(’온기‘)을 하지 못하고. ’그곳에 누군가 살았다란 시를 보자. ”한참 살다 가는 인연도/ 아무렇지 않은 척/ 슬쩍 놓아버렸지만// 그곳에 누군가가 살았다는 흔적은/ 붉은 벽돌집 담벼락에 내걸린/ 빨래 몇 벌이다// 나뭇잎이 구름을 스치고/ 물방울이 태양을 끌어안는 동안// 바람은 또 어디로 갔느냐/ 한숨이 오고/ 한숨이 질 때까지// 무심한 바람 물기 없는 설움/ 숨죽이며,/ 다시 숨죽이며,// 흐느끼던 날들이 지나갔다/ 한번 흔들린 자리는 예전의 자리가 아니다“(’그곳에 누군가 살았다전문)

 

 

이 시는 누군가의 일생을 정리하는 듯 보이는 시이다. 삶을 회고하며 우리는 이런 시상을 가다듬게 된다.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다에서 눈에 들어오는 말은 그때는이란 시어이다. 과거의 어느 한 때를 의미하는 이 시어는 그곳에 누군가 살았다에 나오는 살았다’, ‘지나갔다등의 시어들과 어울린다. 무심히 흘릴 수 없는 시이지만 전체적으로 박미란 시인의 시들은 아름답다. 특히 우물이 그렇다. ”손이 닿을 수 있어도 닿을 수 없는 거리,// 눈동자 속에 속눈썹 하나 떠 있다// 그러나/ 떠 있다고 생각한 저것은// 저편 우물 속 깊은 곳에 한없이 가라앉아 있는 것이다“(‘우물전문)란 구절을 통해 알 수 있듯.

 

 

이 시는 눈동자에 비친 초승달을 이야기하는 시이다. 그러나 이 시는 하늘의 달이 아닌 우물 속에 비친 달을 담은 눈을 이야기한 시이다. 참신한 시이고 가스통 바슐라르가 말한 하늘의 구멍인 낮달을 이야기한 시이다. 그렇다면 하늘의 달은 이고 우물의 달은 인가. 그렇다. 하지만 은 꼭 실재이고 의미 있고 은 비실재이고 그림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삶이고 서정시가 보여주는 진가(眞價) 또는 진가(眞假)이다.(아름다운 시집을 선물해주신 시인께 감사드립니다...)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한 초콜렛 가격 상승이 이슈를 선점하고 있다. 콩고 민주공화국의 에볼라 강에서 60 마일 떨어진 곳에서 처음(1976년) 발견된 에볼라 바이러스는 연천의 한탄강과 그 인근에서 비롯된 한타 바이러스(hantavirus)와 명명(命名) 방식이 같다. 전 세계 카카오의 60%를 생산하는 코트디부아르, 가나 등이 집단 에볼라 발병지인 시에라리온과 기니, 라이베리아 등의 국경을 봉쇄함에 따라 카카오 생산이 급감, 초콜릿 원료 가격이 치솟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가격을 올리려는 제조업체의 꼼수에 따른 결과라는 보도도 있다.



진실이 어디에 있든 이는 모든 것이 연관되었음을 말하는 불교의 가르침을 떠올리게 한다. 중요한 것은 전자(환경적 요인)는 자연적 요인인 반면 후자(인간의 의도적 개입)는 작위적이라는 점이다.(꼼수가 사실이라면) 몇 년 전 핸드폰이 고릴라 멸종과 연관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핸드폰 제조를 위해서는 콜탄에서 추출되는 탄탈륨이라는 자원이 필요한데 콜탄, 금, 아연 등의 희귀 금속 자원들은 생산량이 아주 적은 데다가 고릴라 서식지가 있는 아프리카 일부지역에 매장돼 있는 형편으로 결국 인간들에 의해 고릴라 서식지가 불태워지고 땅이 파헤쳐지면서 고릴라들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는 보도였다. 이런 예는 변증법 해설서에서 본 내용을 생각하게 한다. 성(城) 주위의 연못에 사는 물고기들이 성에 난 불을 끄기 위해 사람들이 물을 길어가는 바람에 말라죽었다는 사례이다.



이런 예는 무수히 많다. 새로운 사실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사회현상 가운데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 많다. 우석훈 교수가 쓴 ‘빚 권하는 사회, 2014’(2014년 11월 27일 경향신문)에 의하면 기본적으로 집의 가치에 비례하는 전세와 월세는 같은 뿌리에서 생겨나는 열매 같은 사이이다. 빚을 내서 집을 사면 전세 사는 사람들의 빚도 같이 올라가는 것이다. 필자는 이를 기막힌 구조라 설명하며 세상(국가, 사회)은 다시 월세 내기 힘들면 또 빚 내라고 한다고 말한다. 악순환인 것이다.

 

 

선대인 박사는 자신의 홈페이지(http://unsoundsociety.tistory.com)에 올린 ‘어느 망해가는 나라의 나랏돈 쓰는 법’(2014년 11월 21일)이란 글에서 부동산 살리기라는 미명 아래 일시적 효과밖에 없는 취득세 영구 인하를 단행, 매년 2조 4천억의 지방세수를 날리고 재정난에 시달리는 지자체들에게는 줄줄이 복지 예산을 줄이게 만든 현실을 고발했다. 선 박사가 고발한 사례 역시 상호 연관의 현실을 잘 말해준다. 순환이라는 말을 했지만 선순환보다 악순환이 더욱 많고 압도적이기까지 하다는 사실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안정적 평화보다 거품과, 위태로울망정 어떤 형태로든 움직이는 것을 선호하는 세상을 사는 우리는 그래서 슬프고 불행하다.



 
 
 

 

눈이 침침해 한 한의원에 문의했다. 그 한의원에서 특별 조제한 눈 피로 치료 특효약 가격이 열흘치에 삼십만원이라고 한다. 몇 달을 먹어야 하는지는 진단을 거쳐야 알 수 있다. 눈 때문에 책을 잘 읽지 못하니 불편하다. 생각이 정체(停滯)되는 것 같다. 생각을 눈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다른 곳이 아픈 것은 글쓰기의 소재로 활용할 수 있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 싶었는데 눈은 안 될 것 같다.



2012, 2013년에 비해 올 독서량이 줄어든 것은 피로 때문이었는데 이제 눈까지 피로해 더한 시련을 주는 것 같다.(2014년 11월 27일 현재 리뷰 작성한 책 175권) 그간 쉬지 않고 눈을 혹사했으니 눈 입장에서 피로를 호소하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올해 말까지 리뷰 총수를 1,000권에 맞추려 했는데 현재 947권이니 달성은 어려워진 셈이다.



앞서 말한 한의원의 원장이 쓴 책에는 그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피로에 효과 있는 식품으로 제시한 것들 이상의 비법들이 담겨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약을 직접 짓는 경우에는 미치지 못할 것은 물론이다. 세상은 그렇게 적당히 공개하고 적당히 감추는 메커니즘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올해는 한 법무법인이 운영하는 칼럼 사이트에 과학 관련 글이 통과(10월 말)되어 현금 478,000원(세금 공제 후)을 받은 것을 필두로 한 지방 신문이 주최하는 1등 1,000만원의 스토리텔링 대회에 응모했고 한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서 진행한 시집 리뷰대회에서 나희덕 시인의 ‘어두워진다는 것’으로 어제 3위 입상 소식을 들었다. 페이스북 친구이기도 한 나희덕 시인에게 이 사실을 알렸더니 “평소에 공부가 넓고 깊으시다고 느꼈는데, 제 시집도 예민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읽어주셨군요. 감사의 마음을 담아 축하드립니다.”란 답글을 달아주셨다.



이 법무 법인이 주관하는 글쓰기는 과학, 철학 등의 분야에서 청소년에 도움이 되는 글을 선택하는 취지에 부합하면 게시되어 돈을 받는 시스템이다. 그간 몇몇 블로그 친구들에게만이 칼럼 게재 방법에 대해 알렸다.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 그 사이트에 내 글 이후로 다른 글이 게시되지 않았다. 시도조차 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통과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다. 내 글인 ‘인도의 화성 궤도 진입을 보며’란 글은 포탈에서 검색되지 않는다. 나는 자유기고가란 직함으로 소개되었다.



앞으로도 조금씩 지인들에게 시도를 권유할 생각이다. 지금 이론(理論)과 인문학 등을 주제로 한 글을 다 써 놓았는데 한 번만 기회가 주어지는지 아니면 두 번 이상도 가능한지 알지 못해 기다라고 있다. 이제 12월 5일 마감하는 경기도시공사 수필 공모전에 제출할 글을 쓰려 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도시 이야기, 이웃이 있어 더 행복한 도시 이야기, 경기도에서 살아가는 행복한 삶의 이야기 등을 주제로 쓰는 대회인데 아직 구체적인 생각이 잡히지는 않았다.



전년도 수상작들을 보니 대체로 예쁘고 단아한 글들이다. 나는 메리트가 없는 내가 사는 경기도 최북단인 연천의 사정을 감안해 접경(接境) 지역에서 함께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들의 삶에 주안점을 두되 건축과 도시, 공동체 등에 초점을 두어 rigorous한 글을 쓸 생각이다. 이 대회가 1등 300만원이고, 12월 15일 마감하는 문학동네 출판 그룹 리뷰대회도 1등 상금이 100만원이다. 돈에 모든 관심을 쏟고 있는 듯 보일 수도 있겠지만 공부하는 기회로 삼는다는 생각이다.



그간 인문, 과학, 불교, 문학평론, 정신분석 등에 초점을 두었지만 대체로 닥치지 않고 리뷰를 써왔다. 리뷰 수가 1,000권에 이르면 내 본원적 관심사인 철학, 과학, 문학평론, 정신분석, 불교 등에만 전력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내년 1월 이후 리뷰수 1,000권에 도달할 것이다. 그 이후 변화는 예상 가능하지만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나도 모른다. 열심히 하되 효율적이어야 할 것이다.



 
 
서흔(書痕) 2014-11-27 18:58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시네요 ㅎㅎ

흔적 2014-11-27 19:01   URL
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달걀부인 2014-11-27 19:35   댓글달기 | URL
힘내요,라는 버튼이 있었으면 눌렀을텐데요..아쉽네요.

흔적 2014-11-27 19:39   URL
감사합니다....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마을의 귀환 - 대안적 삶을 꿈꾸는 도시공동체 현장에 가다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 지음 / 오마이북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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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이웃에 놀러 다니는 일이란 의미를 지녔다. 마을의 첫 번째 뜻은 물론 시골에서 여러 집이 모여 사는 곳이란 뜻이다. ‘마을의 귀환’이란 책은 마을 공동체 만들기 프로젝트의 성과가 반영된 책이다. 귀환이란 단어를 처음 접하며 나는 그것이 마을이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존재로 다가왔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마을의 귀환은 이웃과의 단절, 무관심, 때로는 갈등 관계를 형성하는 우리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에 과제를 일깨우는 제목이기도 하다.



책은 1, 2부로 구성되었다. 1부 마을, 콘크리트 도시에서 숨을 쉬다, 2부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찾아서... 한 사연자는 “자본주의는 집단을 싫어하”지만 ‘마을은 뭉쳐야 살 수 있다.“는 말을 한다. ”마을의 지속가능성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말 역시 중요하게 전해졌다. 12년제 대안학교인 마포구의 성미산 마을이 내 관심을 특별히 끈다. 처음 나는 국가가 하지 못하는 또는 하지 않는 안전 보장, 재난 예방, 상생의 모색 등을 하는 것에서 마을의 정체성을 찾았다. 물론 맞지만 공동체와 대안 학교라는 말을 들으니 내가 구체적이지 못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완화된 협동조합 창립 여건에 따라 여러 협동조합이 출범하는 가운데 내게는 특별히 번역 협동조합이 관심 있게 다가온다. 나는 대안 공동체, 협동조합, 기대와 과제를 함께 부여하는 마을이란 단어들을 보며 변화하는 우리의 시대상을 본다. 지금 우리의 세기(世紀)는 어느 시기보다 특별하게 변동성과 유동성이 두드러지는 시기이다. 공동체 마을 가운데는 에너지 공동체(에너지 자립 공동체)도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원전(原電) 줄이기 캠페인과 연결된다. 가정에서 매달 에너지를 10 ~ 12 퍼센트 아끼면 원전 하나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본문에는 에너지 절약의 여러 사례가 생생하게 나온다. 자전거를 돌려 전기를 만들고 태양광 집열판을 설치하고 내복을 입고... 본문에도 나오지만 ”한 명의 아이를 온전히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외국 속담이야말로 마을 공동체의 이상과 목표, 지향점 등을 웅변하는 전형적인 슬로건이다. 은평구 산새 마을은 주민들이 함께 범죄 예방을 하는 것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느슨한 공동체를 넘어 협동조합을 꿈꾼다는 산새마을의 성취를 기원한다.



EM 발효액 자체 개발로 음식물 쓰레기 처리하기, 입주민 독서실 운영, 아파트 난간에 고추 텃밭 만들기, 방과 후 공부방 운영, 시장 공동체 건설, 여성친화 마을 기업을 만들어 면 생리대 만들기, 외국어 재능 기부 등 마을이 하는 일은 모범적이고 틈새적이다. 특별히 생협(생활협동조합)이 주목된다. 생협은 상품이란 말 대신 생활재, 소비라는 말 대신 이용 등의 단어를 사용한다. 생협은 대형마트보다 조금 비싸더라도 착한 소비를 지향한다. 한 생협은 농산물은 여성민우회 생협 유통망을 통해 공급받고 강원도 횡성군의 언니네 텃밭과 직거래 계약을 맺어 꾸러미 사업 등을 한다.



”조합원들 사이의 관계가 깊어질 때“ 확장되는 생협은 마을공동체를 샘솟게 하는 마중물 같은 역할을 한다.(140 페이지) 저자들(오마이뉴스 특별 취재팀)은 마을기업도 기업이기에 지속가능성을 위한 수익원 확보가 필수라 전제한다. 문화 예술 공동체에서 눈을 끄는 부분은 아이들을 학업 성적으로 평가하지 않으며 춤, 연극, 악기 연주, 탁구, 독서 등 취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본문에 인용된 말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정착해서 살아가는 마을공동체보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관계를 맺는 유목적 공동되기“를 지향한다는 한 젊은 공동체 구성원의 말이다. 어떤 예술 공동체는 페이스북을 운영하기도 해 부러움을 산다. 궁금한 것은 유목적 공동되기가 ”사적인 부분을 지키면서 공동체적인 요소가 있는 삶, 도시와 시골의 장점이 결합된 형태“(213 페이지)와 같은 것인지, 이다.



전국 최초로 마을 만들기 지원조례가 제정된 곳은 광주라고 한다. 대표적 토건도시인 서울의 경우 2012년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마을공동체 만들기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박원순 시장은 늘어나는 아동 상대 성범죄, 자살, 빈곤, 청소년 문제 등에 마을이 묘약이라는 말을 한다.(218 페이지) 마을이 묘약이라는 말은 결국 공동체 정신이 관건이라는 말이다.



2부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찾아서’는 외국의 모범적 사례를 집대성한 챕터이다. 도시(city)와 시골(country)의 중간쯤 되는 타운(town)인 한 마을 공동체의 경우 코하우징(cohousing) 사업으로 히피, 녹색 정당, 사회주의자 등의 이름을 얻기도 했다. 코하우징(cohousing)은 함께 살면서 책무, 재산 등을 공유하며 공동공간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코뮌(commune)과 달리 개인공간을 따로 가지면서 공동공간도 갖는다.



층간 소음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우리와 달리 스스로 갈등을 조절하는 비폭력 대화에 능한 모습을 보이는 그들은 더할 나위 없이 부러운 대상이다. 물론 외국의 경우도 한국의 홍대 주변이나 이태원이 그렇듯 빈곤층 지역에 부유한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빈곤 지역의 임대료 시세가 오르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우리의 사례와 함께 외국의 사례를 함께 모아놓은 책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은 우리나 그들이나 그들이나 마을 만들기란 각기 다양하고 특수한 환경과 여건에 적응하고 대화화고 모색하는 점이란 사실이다., 그것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난을 극복하는 과정과 맞물린다. 쇠고기 가공 식품에 말고기를 섞어 제조한 말고기 파동이 일어난 영국의 경우 주주의 이익에만 봉사하는 기업이 만들어낸 현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322 페이지)



이는 ”지역경제와 소비자가 가까운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최근 안셀름 그륀 신부의 ‘베네딕도 이야기’(2007년 출간)를 읽은 이야기를 해야겠다. 저자는 다임러 벤츠의 한 경영자가 한 “과거에는 사원들에게 좋은 자동차를 만들자고 하면 동기가 부여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다들 주가(株價)에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일을 해야 주주들도 더 많이 번다는 말만으로는 도저히 동기부여가 안 됩니다.”란 말을 소개한다.



저자는 베네딕도를 우리가 공동체 생활을 신앙 안에서 할 수 있도록 본질적인 도움을 준 존재로 소개한다.(5세기 경의 聖人인 베네딕도는 베네딕도 수도원들의 시발점 역할을 한 성직자이다.) 그륀은 공동체의 첫째 가는 성공 요건으로 타인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을 꼽았다. 공동체의 필요성을 심각하게 고려하지만 개인의 필요성도 외면하지 않은 베네딕도의 주의(主義)는 마을의 이상과도 부합한다.



그륀은 공동체는 정서적 친근감만으로는 부족하며 명확해야 하고 권력 관계가 규정되어야 하며 의사 소통이 원활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베네딕도의 理想이 서구의 건강한 노동 가치관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본문에 소개된 로컬리티의 스티브 클레어는 사람이 가장 큰 자원이라는 말을 한다.



사람이 가장 큰 자원이라는 말은 내게 인문 정신의 회복을 일깨우는 말로 다가온다. 베네딕도가 (수도원) 공동체 정신만으로는 안 되고 하느님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고 한 것처럼 우리에게는 인간, 그리고 인문 정신에 대한 신뢰와 구비(具備)가 필요하다. 마을은 이미 우리 곁에 있다는 말을 기억할 말로 정리하며 나는 마을과 공동체에 지지를 보낸다. 마을 공동체가 선순환(善循環)의 점증하는 사례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2014-11-27 0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흔적 2014-11-27 06:29   댓글달기 | URL
아, 그러시군요. 같은 고민을 가진 것이 반갑게 느껴집니다....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문학과지성 시인선 283
조용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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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미 시인이 보내온 최근 시는 문학사상 9월호에 발표된 가수면(假睡眠)의 여름이다. 이 시는 유월이 되니 구름이 많아지고 바람의 방향이 달라진다/ 음혈 부족으로 인한 허열로 수면부족에 시달린다...”란 구절로 시작한다. 이 시에도 다른 시들에서처럼 시인의 증상이 표현되었다. 허열(虛熱)이란 말은 내가 최근 한 한의사의 강의에서 들은 말이다. 당시 나는 허열이 있으면 실열이 있으리라는 상식적인 생각을 했다. 사전은 조용미 시인의 시처럼 허열을 음양과 기혈이 부족하여 생기는 열로 풀이했고 실열(實熱)은 사기(邪氣)와 정기(精氣)가 서로 경쟁하여 발생하는 열로 풀이하고 있다.

 

 

한의학에서는 허()는 정기(精氣) 부족 상태, ()은 사기(邪氣) 왕성 상태로 정의한다. 허도 문제이고 실도 문제이다. 관건은 중도(中道)와 중용(中庸)이다. 이런 차원에서 시인의 송과선, ’(‘기억의 행성에 수록)을 읽으면 시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건기와 우기가 되풀이되는 생,/ 환절기를 무사히 넘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잠을/ 충분히 자두어야 합니다/ 우주적 도덕력은 바로 잠에서 생겨난다고 믿는 사/ 람도 있으니까요...건기와 우기가 되풀이된다는 말은 허열과 실열이 되풀이되는 것 또는 정기도 아니고 사기도 아닌 불완전함 또는 애매함을 연상하게 한다.

 

 

악기들’(‘기억의 행성에 수록)에서 시인은 생황, 배소, , 필률, 비파, 요고, , 공후, 방향 등의 악기가 내는 화음(和音)은 그만 화음(花陰)이 되어 나는 꽃그늘 아래/ 로 너울거리며 내려오는 모든 알 수 없는 음계를 다/ 들이마시며 어느새 누워 있다는 말을 한다.(花陰은 시인이 만들어낸 말이 아니라 꽃핀 나무 그늘을 의미하는, 사전에 있는 단어이다.) 조용미 시인의 시 가운데 누워 있음을 이야기한 시가 여럿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대표적 시가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의 어두운 시편들 사이에서 단아하고 예쁜 시인 국화잎 베개이다.

 

 

국화잎 베개를 베고 누웠더니/ 몸에서 산국 향내가 난다.../ 하얀 속을 싸서 만든 베개에/ 한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아픈 머릴 누이고 국화잎 잠을 잔다...” ‘물가에서 단잠을 잤다역시 잠에 대한 시이다. “물가에서 단잠을 잤다/ 수로를 따라 버드나무 가지들 길게 흐느적거리고/...당집 앞의 죽은 나무 아래까지 비릿한 물내음이 났다/ 그날 물가에서 단잠을 잤다...“ 그런가 하면 꽃들은 소리 없이에는 어지러운 잠 이야기가 나온다. ”...바람이 지나는 길을 따라갔다 돌아오면/ 어둠이 지친 몸을 오래도록 쓰다듬어주었다/ 어둠에 기대어 죽은 듯 쓰러졌다/ 오래 어지러운 잠을 잤다...“

 

 

원행(遠行)’에도 잠에 관한 시어가 있다. ”...몸을 눕혀본다/ 나바라가 들려주는 첼로로 몸을 덮으면/ 내가 덮는 이불은 침묵이 된다/ 그는 침묵을 연주한다..“(나바라는 첼리스트 앙드레 나바라이다.) 황병기 가야금이라는 부제를 가진 침향무에는 누워 있음에 관한 시어가 등장한다. ”침향이 흐르는 걸 보며, 물 속에 누워/ 향이 내 위를 천천히 흘러/ 밖으로 나가는 걸 보며...“ ‘꽃 핀 오동나무 아래는 누워있음이나 잠에 대한 직접 이야기가 아닌 꽃핀 오동나무를 바라보면“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하기에 자신의 몸이 가얏고로 누운 적이 있었던 걸까/ 등에 안족(雁足)을 받치고 열두 줄 현()을 홑이불 삼아 덮고/ 풍류방 어느 선비의 무릎 위에 놓여/ 자주 진양조로 흐느꼈던 것일까란 간접적인 말이 나온다.

 

 

탐매행(探梅行)’에 나오는 ”... 매화 한 잎 띄워놓고/ 물고기 바라보며 혼자 암자를 지키는 한나절/ 초당 방문 앞을 어른거리는 매화향에/ 겨우 몸을 일으킨다...“는 구절도 시인이 누워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시이다. ‘마량 간다에서 시인은 마음에 담아두고 펼치지 못하는 것은 병든 몸과 같다/ 고 중얼거려보는 구불구불 좁은 바닷마을 길이란 말을 한다. 펼친다는 말이 이 시가 이부자리 위에 몸을 눕혀 마음을 쉬게 하는 시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송과선, 에서 잠을 푹 자고 나면 모든 것이 조금은 선명/ 해지지 않나요/...오늘도 포근하고 단정한 잠자리와 슬픔이 소량 필/ 요합니다라고 한 시인의 사정을 알 수 있는 시들이다. 다시 기억들로 돌아가 말하자면 중용은 달리 화음(和音)이거나 화()라 할 수 있는데 시인은 그것에서 화음(花陰)을 느끼며 꽃그늘 아래 누워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은 미혹이 아니라 완성이라 말한다. 이 조화로운 세계에 대한 염원을 담은 시가 두웅 습지이다.

 

 

두웅 습지에서 해는 빠르게 지고 이른 아침 아미타어/ 가 불쓱 얼굴을 내밀지도 모른다/ 청련, 백련, 니발라화, 분다라화... 웅얼거리며 내/ 가 오래 서 있던 그곳, 범패와 범음이 울려퍼진다범패(梵唄)와 범음(梵音) 모두 석가모니의 공덕을 찬양하는 노래이다.(은 불경 범자이다.) 시인은 기억들에서 포근하고 단정한 잠자리와 슬픔이 소량 필/ 하다고 했지만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은 여행과 잠, 음악, 그리고 몸에 대한 시적 보고인 셈이다. 여행과 잠과 음악이 소량 필요한 시인의 몸 이야기가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조용미 시인의 여행은 잘 알려진 것이지만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에서 또 다르게 눈에 띄는 것은 악기들이다. 대금, 신현곡(神弦曲), 범패, 범음, 첼로, 바흐, 가야금, 에릭 사티 등...“..더듬더듬...훼척(毁瘠)의 날들이 이어지고/ 은혈(隱穴)로 바람이 드나들 때마다 몸속에서/ 아픈 대금 소리가 났다...“해월(亥月)‘은 자신의 몸을 악기에 비유한 시이다. 이 시는 위에서 본 가얏고의 상상력을 잇는 시이다. ’두웅 습지에서 시인은 두웅 습지는 화엄(華嚴)세계“,연화장(蓮華藏)세계라는 말을 한다. 화엄은 여러 가지 수행을 하고 만덕(萬德)을 쌓아 덕과(德果)를 장엄하게 하는 일, 대승불교의 경전을 의미한다.

 

 

연화장은 태어나는 모태가 되는 연꽃이나 연꽃 속에 들어 있는 장엄한 세계, 아미타불의 극락 세계의 별칭, 연꽃이 장엄하게 가득 피어 있는 것 등을 뜻한다. 태어나는 모태가 되는 연꽃의 상상력을 보이는 시가 파초등이다. ”...나는 파초의 꽃 안으로/ 별이 되어 숨어본다/ 사람들은 꽃이 핀 줄 모르고/ 아직도 모르고/ 등불을 걸어놓은 게지, 하고/ 그 넓은 잎사귀 아래를 그냥 지나간다“ ‘검은여역시 그런 차원에서 읽힌다.

 

 

섬이 되지 못했다// 은화(隱花)식물처럼 잘 보이지 않는다/ 꽃을 피우지도 못한다// 물속 깊은 곳에서/ 거대한 유적도(遺跡島)를 꿈꾼다// 숭어 떼가 펄쩍펄쩍/ 뛰어오른다// 등녀/ 검은여/ 노른여/ 슬픈여,// 무섭고도 아름다운 초록빛/ 바다“(‘검은여전문) 시인의 에 의하면 검은여는 태안 안흥 앞바다에, 등녀는 소매물도에, 노른여는 추자도에, 슬픈여는 흑산도 앞에 있다. 여는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를 뜻한다.

 

 

기억의 행성에 실린 곡옥이란 시를 보자., ”곡옥은 자궁 속의 태아가 웅크리고 있는 모양이다/ 쉼표가 다 자라 마침표를 능가하는 순간의 모습이/ 기도 하고 사람에게 길들지 않은 동물의 이빨 같기도/ 하다/ 곡옥은 한때 물고기였는지도 모른다 눈과 머리와/ 꼬리를 갖추고 있다....운명이 정한 파멸의 길도 마다 않는 휘어짐이다 손/ 발 다 구부린 굴장(屈葬)이다상처와 병고(病苦)를 통해 몸을 보고, 조화로운 화()를 보며 눕는 화음(花陰)의 세계, 그리고 연화장을 통해 장엄 세계와 자신의 굴신(屈伸)을 보는 시들.. 이것이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이다. 숨음과 현시(顯示)를 오가는 시인의 삶이 이 시집에 드러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