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내민 손 문학과지성 시인선 293
이기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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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먼지로 만들어진 육체를 가진 인간은 오래 전에 죽은 별들의 유물이다. 인간은 고귀한 존재들인 것이다. 나 역시 인간을 고귀하면서도 허무한 존재라 말하곤 했다. 그런데 인간은 별을 빛나게 하고 소멸하는 원소의 잔해 즉 핵폐기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낭만과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마틴 리스는 낭만적인 사람은 인간은 별의 먼지이고 덜 낭만적인 사람은 인간은 핵폐기물이라 말할 것이라 말한다.



이기성 시인의 첫 시집인 ‘불쑥 내민 손’을 보며 인간의 구성(構成) 성분을 둘러싼 엇갈린 견해를 말하는 것은 그런 시각의 차이가 그의 시집에서 감지되기 때문이다. 우선 그의 시집에는 구두라는 말이 많이 등장한다는 특징이 있다. 시인이 말하는 구두는 대개 낡고 닳아빠지고 오래된 것들이다. 닳아빠진 구두, 헌 구두, 낡은 구두, 누군가 마지막 한숨인 듯 떨구고 간 구두, 씹다 버린 세월이 꺼멓게 들러붙어 있는 구두, 낡아버린 구두, 낡은 구두짝, 뒤축 떨어진 구두, 피로하고 헐렁한 구두...



시인은 “상점의 유리 케이스 안에는 아직 새것인 가죽구두가 반짝이는데..”란 말을 하기도 한다. 시인은 ‘지하도 입구에서’란 시에서 “...세상은 작고 빛나는 구두에서 시작되어/ 굽이 닳아가는 너덜한 밑창에서 끝난다...”는 말을 한다. 이로써 우리는 시인이 인생을 구두에 견주어 이해하고 바라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인은 ‘모독’이란 시에서 이런 말을 한다. “누군가 두꺼운 벽돌로 허공의 길을 차곡차곡 막고 있다. 쿵쿵 이마를 때리는 둔탁한 소리. 나는 얼어붙은 문/ 장 속에서 빌어먹던 자이고, 차가운 달의 정원을 함부로 돌아다니던 건달. 네온이 명멸하는 천공을 이고 지/ 하도에 쭈그리고 앉아 초록의 별들 녹아내리는 밤을 보았다./ 한때 나는 견고한 것, 천 근의 슬픔을 깨물고 있는 독한 이빨. 뜨겁게 달군 무쇠구두를 신고 웅얼거리는 도시/



의 골목 휘저으며 달려갈 때, 공회전하는 테이프처럼 지루한 문장 끝도 없이 늘어지고 게걸스러운 손가락은/ 천공에 매달린 별을 뜯어낸다. 부욱 찢겨진 몸 밖으로 넘쳐나오는 악취 부글거리는 시간들./ 차가운 시멘트 반죽은 부글부글 검은 문장 흘러나오는 입을 틀어막고 군청색 벽돌은 뜨거운 이마를 덮는다./ 이렇게 딱딱한 벽돌 속에 나를 가둔 건 어느 솜씨 없는 벽돌공이었을 거다.



이 시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구두라는 말들은 그 중 하나이다. 시인은 “한때 나는 견고한 것, 천 근의 슬픔을 깨물고 있는 독한 이빨. 뜨겁게 달군 무쇠구두를 신고 웅얼거리는 도시/ 의 골목 휘저으며 달려”갔음을 말한다. 견고한 것, 천 근의 슬픔을 깨물고 있는 독한 이빨, 낡은 구두가 아닌 뜨겁게 달군 무쇠구두를 신고 웅얼거리는 도시의 골목을 휘저었던 시인.



이 시에 나오는 별이란 말을 주목하자. 이 시에서 별은 그리 낭만적으로 묘사되지 않았다. 시인은 “...차가운 시멘트 반죽은 부글부글 검은 문장 흘러나오는 입을 틀어막고 군청색 벽돌은 뜨거운 이마를 덮는다. 이렇게 딱딱한 벽돌 속에 나를 가둔 건 어느 솜씨 없는 벽돌공이었을 거”라고 말한다. 눈먼 시계공을 연상하게 하는 아니 그보다는 다소 나은 비유이다. 이 시에서 별은 손가락에 의해 뜯어내지는 대상이다. 낭만과 거리가 먼 것이다.



‘소행성 에로스’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너는 에로스에서 태어났다 아기야, 너는 물과 불과 네 어미의 빚이 낳은 자식. 반지하의 셋방에서 어미의 몸/ 이 썩는 더러운 공기를 마시며 걸음마를 배운다. 더듬더듬 옹알이를 뱉으며 창 틈으로 들어온 햇빛을 따라/ 휘청휘청 걷는다. 나비처럼 한줌에 잡힐 듯한 햇빛 자꾸 달아나고 속주머니에 꽁꽁 숨겼던 네 어미의 빚이/ 썩는 냄새. 지울 수 없는 그 냄새가 너의 양수다, 그리운 탯줄이다, 아기야. 악취는 천천히 문틈으로 새어나



/ 가 이웃을 부르고 낯설고 무뚝뚝한 이웃들 도끼로 문 때려부술 때, 한줌 쇠냄새 나는 퍼런 공기 두 눈을 찌르/ 고 두 살배기 아기는, 욕지기를 하며 울음을 터뜨린다. 얼굴 없는 어미의 빚 받으러 달려온 허공의 검은 별자/ 리, 컴컴한 방에서 울퉁불퉁한 얼굴처럼 껴입고 늙어갈 때 아기야, 먼지뿐인 너의 별 에로스는 천공에서 너/ 를 기다린다.”..



이 시에서도 별들은 무미하게 그려진다. ‘소행성 에로스’란 제목이 낭만과 멋진 사랑을 짐작케 하지만 그 에로스는 먼지뿐인 별일 뿐이다. 쌩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에 어린 왕자가 소행성 B 612라는 곳에서 사는 것으로 나오지만 작은 바위 덩어리인 소행성은 행성을 이루지 못한 찌꺼기로 이들 중 일부는 운석처럼 지표면에 충돌한다.



낡고 닳고 오래된 구두라는 정서에 걸맞게 시인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 불쑥이란 말이다. ‘手’란 시에서 시인은 “지하철 안에서 졸다 눈뜨면 불쑥, 어떤 손이 다가온다. 무거운 고개를 처박고 침 흘리며 졸고 있던 나를 뚫어/ 지게 보며 움푹한 손 내밀고 있는 노파, 창 밖에는 가물가물 빈 등燈이 흐르고 헛되이 씹고 또 씹던 질긴 시/ 간을 열차가 거슬러 갈 때, 내가 마신 수천 드럼의 물과 불, 수만 톤의 공기와 밥알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혓/ 바닥으로 무수히 핥아댄 더러운 손.



환멸의 등은 꽃처럼 발등에 떨어지고 움켜쥔 손바닥에서 타오르던 길은/ 뜨거운 머리카락처럼 헤쳐진다.... 그러니 이 지리멸렬의 세계여, 내민 손을 거두어라. 찌그러진 심장을 움켜쥔 누추한 손을 이제 그만 접어라./ 젖은 이마에 등을 켜고 열차가 터널을 빠져나갈 때 천장에 매달린 가죽 손잡이 한꺼번에 흔들리고 세계의 지/ 루한 목구멍이 찬란하게 드러난다...‘고 말한다.



가물가물, 헛되이 씹고 또 씹던 질긴 시간, 환멸의 등, 지리멸렬의 세계, 세계의 지루한 목구멍 등 이 시가 드러내는 분위기는 환멸, 지루, 지리멸렬, 당혹감, 황량함 등이다. 이 낡고 지루하고 황량한 감정은 ’12월의 書架‘에서도 확인된다. 이 시의 화자인 늙은 사서는 천장 근처나 구석진 서가의 귀퉁이 먼지 켜켜로 덮인 책들 돋보기를 쓰고 흐린 눈 찡그리며 한때 그 낡고 볼품없는 책들이 막 태어나 금박을 입힌 표지 속 젖은 잉크 냄새와 갈피마다 두근거리며 숨겨 가지고 있던 푸릇한 냄새를 추억한다.



문득 등 뒤에서 책장이 기우뚱거려 돌아보는 그가 확인하는 것은 베어진 나무 둥치 사이로 어두운 길이 잠기고 그의 귀밑머리에서 서슬 푸르게 빛나던 시간은 천천히 기울어지는 것이다. 시인은 ”...움푹한 그릇에 묵묵히 쌓인 어둠 목 언저리 검은 주름으로 깊게 패이고, 유원/ 지에 벗어둔 신발 두 손에 쥐로 하루는 눈 퉁퉁 붓게 울고 하루는 굶어죽는 것에 대해서 열심히 생각하는 동/ 안, 해는 지고 생은 거듭 누추해지고 血稅의 계절은 닥쳐온다.“고 말한다.



”..끈적한 손가락으로 눈가의 졸음 떼어내며 나의 이웃들 돌아온다. 그새 더 무거워진 모래정원을 머리에 이고,/ 바람 불 때마다 조금씩 희미해지는 얼굴 게으른 하품 벌어진 나의 입으로 보랏빛 모래알들 마구 날려온다./ 아, 나는 일요일의 무거운 모래를 씹어본다.“고 말한다. ’불쑥 내민 손‘에는 별, 달, 해 등 천체들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낭만은 물론 의미와도 거리가 멀다.



별들은 뒤늦게 떨어져 빈 밥그릇에 쩔렁쩔렁 부딪치고, 휙휙 바람소리를 내며 찢어진 꽃잎 속으로 들어간다. 기름덩이에 엉겨붙는다. 한 입 뜨겁게 물어뜯었던 계단 빙그르르 엘리베이터처럼 광속으로 추락하고 찢어진 하늘에서 후드득 떨어진다. 달은 찌그러져 있고 굵은 나무들이 질긴 뿌리로 들어가는 차가운 존재이다. 해는 지평선에 누렇게 매달려 있고 검은 스커트처럼 펼쳐진 허공에서 달과 함께 쏟아질 듯 푸르스름하다.



구름 역시 그렇다. 비린 구름, 검은 구름, 늙은 구름, 잿빛 구름, 무거운 구름, 젖은 구름, 가라앉은 구름, 어두운 구름, 고여 있는 구름, 재(灰)의 구름, 낡은 구름, 어두운 서랍이 토해놓은 구름, 만장처럼 쏟아지는 지옥의 연꽃구름, 불쑥 튀어나온 차가운 손가락처럼 허공에서 닥쳐온 구름, 검은 비닐 구름, 먹구름...



안개도 예외가 아니다. 끈끈하게 흘러내리는 안개, 잿빛 안개, 뻣뻣한 안개... 시인은 어둠도 그만의 어법으로 다룬다. 움푹한 그릇에 묵묵히 쌓인 어둠, 딱딱한 어둠, 미끈거리는 어둠, 진득한 어둠, 일그러진 어둠 등. 이 다양하고 다채로운 수식은 시인이 언어의 차이에 능하다기보다 그 만큼 여러 방면에서 어둠과 무거움과 무미를 본다는 의미이다. ’밥‘이란 시를 보자.



늙은 여자가 밥상 앞에서 징징 울고 있다. 누대累代의 찌그러진 밥상 앞에 나를 내려놓고. 검은 무쇠솥 안에/ 선 오래 씹어도 삼켜지지 않는 흰밥이 익어간다. 밥상 위에 혓바닥처럼 길게 늘어진 노을,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던 아이들은 온몸에 검은 폭탄을 칭칭 감고 저녁의 밥상 위로 몸을 던진다. 덜 익은 별들이 폭죽처럼/ 터져 발등으로 떨어지고 나는 살아서 오늘도 한 술의 딱딱한 밥을 씹는다. 뒤늦게 떨어진 별이 빈 밥그릇에/ 쩔렁쩔렁 부딪칠 때 완강한 기둥만 남은 밥상은 허공으로 떠오르고 저 거대한 기둥에 나를 단단히 용접한 늙/ 은 여자여, 오늘도 나는 불멸의 밥을 씹고 또 씹어 늙은 여자의 입속에 넣어준다.“..



흰 밥은 오래 씹어도 삼켜지지 않고 노을은 밥상 위에 혓바닥 위에 길에 늘어져 있고 시인은 살아서 한 술의 딱딱한 밥을 씹는다. 시인은 완강한 기둥만 남은 밥상에 자신을 단단히 용접한 늙은 여자의 입 속에 불멸의 밥을 씹고 씹어 넣어준다.



시인은 솜씨 없는 벽돌공에 의해 딱딱한 벽돌 속에 갇혔듯 늙은 여자에 의해서는 거대한 기둥에 단단히 용접된다. 시의 정서는 어둡고 무겁고 그로테스크하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보는 듯 하다. 폭력적인 장면이 등장하는 가운데 가장 마지막 시인 ‘이무도 보지 못한 풍경’에서 시인은 이런 시를 선보인다.



가등의 그림자 어두운 길 한쪽 무심히 비추고 있다.

조금 전 사내의 차가 쿵 하며 벽돌담을 들이박았고

아직 말끔히 닦여지지 않은 끈적한 흔적은

사내의 머릿속을 채운 채 응고되었던

권태가 허공으로 흘러나온 것에 불과하다.

담배연기가 산발하며 흩어지듯

그도 길의 끝까지

달려가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스펀지를 두드리듯 둔탁한 소리를 내며

그의 머리가 박살났을 때

누구도 들여다볼 수 없었던

무성한 숲처럼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

헤치고 검은 살쾡이 한 마리

번개처럼 튀어나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걸, 아무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견인차가 끌고 가는 차의 번호판을

무심히 읽으며 길가의 은행나무는

그가 마지막 부른 이름을

무성한 노란 잎으로 바꾸어 달고 있다.“



절망을 닮은 무거운 허무와 우수, 환멸이 지배하는 세계에 남자가 교통사고를 당해 흘린 피는 그의 머릿 속을 채운 채 응고되었던 권태가 허공으로 흘러나온 것으로 처리된다.



시인은 자서(自序)를 통해 “염천(炎天)을 이고 걷는다. 추억할 만한 슬픔도 없는데 몸의 구멍마다 이상한 울음이 자꾸 쏟아진다. 벗이여, 나는 봉인되고 싶다.”는 말을 한다. 이기성 시인의 시를 그의 평론집인 ‘우리, 유쾌한 사전꾼들’의 따뜻한 공감의 시선과 비교할 필요가 있고 이 시집에 이어 6년만에 나온 두 번째 시집인 ‘타일의 모든 것’과 비교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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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2015-05-22 22:17   댓글달기 | URL
˝All the atoms we are made of are forged from hydrogen in stars that died and exploded before our solar system formed. So if you are romantic, you can say we are literally stardust. If you`re less romantic, you can say we`re the nuclear waste from the fuel that makes stars shine.˝

-- Sir Martin Rees, Britain`s astronomer royal.
 

 

 

독일의 정신과 의사/ 정신분석가인 카렌 호나이가 말한 자기 분석(‘나는 내가 분석한다’)의 주 목표는 신경증이라 들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신경증이란 말은 롤랑 바르트의 글을 통해 알 수 있지만 에리히 프롬에 기대어 우리는 죽음 애호적이고 근친상간적인 악성 신경증과, 강박증 차원의 양성 신경증을 다르게 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런 예는 칼 융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융은 비전문가가 정신치료를 배워 정신분석을 시행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았지만 잠재적 정신병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보았습니다.



바르트에 의거해, 그리고 분석을 넘어(사실 분석에 그치는 것은 무의미하기에 치료까지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여하히 하느냐일 것입니다.) 치료방법을 제시(‘내가 나를 치유한다’)한 호나이에 의거해 말하자면 지난 몇 달 사이 몇 권의 책을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읽으며 공감하며 내면 밖의 대상들의 면모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자기 심리학과 나르시시즘의 치료’, ‘상처 입은 영혼들의 춤’, ‘불안 치료’, ‘경계선 장애와 병리적 나르시시즘’ 등이 그 책들입니다.



정신분석과 부드럽게 이별하기 위해 아직도 정신분석을 읽는 제게 한 정신분석 문학평론가가 한 말이 화두처럼 다가옵니다. “모든 시는 상처다.”...(‘욕망의 꼬리는 길다’) 그런데 “책읽기와 글쓰기로 생활비를 벌지만 명함이 없고, 시를 늘 곁에 두지만 등단이나 전공을 목표로 하”지 않는 자신의 삶의 이력이 “부끄럽지는 않지만 살면서 민망”했다는 한 글쓰기 강사는 “오직 노릇과 역할로 한 사람을 정의하고 성과와 목표로 한 생애를 평가하는 가부장제 언어”로 자신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으며 “말이 바닥났을 때” 시가 자신에게로 왔다는 말을 합니다.



이 경우 시는 상처가 아니고 언어이고 호흡일 것입니다. 아니 시가 상처일 수 있음을 긍정하는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시는 상처이자 언어, 상처이자 호흡이라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시를 상처로 정의한 그 문학평론가는 책의 원고를 쓰는 동안 향락(jouissance)이 언어를 따라와 자신이 언어의 주인이 아니라 언어에 의해 표현됨으로써 발생하는 효과를 누리며 즐겼다고 말합니다. 처음부터 건강한 자아는 없다고 본 자크 라캉의 입장을 좋아한다는 한 시인/ 문학평론가는 주이상스를 이야기하며 고통과 쾌락이 같이 있기 때문에 시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냐 말합니다.(‘라캉으로 시 읽기’)



이렇게 주이상스가 성적인 의미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접하고 제가 한 생각은 그렇게 환원되지 않는 만큼 징후는 일반적이라는 것입니다. ‘내 속에는 내가 너무 많다’는 경계성 성격장애를 다룬 책이어서 주목됩니다. 이런 책을 읽는 것은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이성복 시인의 시 ‘그날’ 중에서)은 세상을 그나마 깨어 보려는 시도라 생각합니다. 특히 “남보다 내가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한 치유의 심리학”이란 구절이 눈에 띕니다. 현대사회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가장 흔하지만 치료사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심리적 문제라는 경계성 성격장애를 다룬 ‘내 속에는 내가 너무 많다’로부터 배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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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O(Ponto-geniculo-occipital)波란 것이 있다. 뇌간(腦幹)에서 발생해 시상(視床)의 중계소를 거쳐 후두엽(occipital lobe)으로 흘러가는 파이다. 이 파 때문에 REM(rapid eyeball movement)이 생긴다. 이 파는 후두엽에 도달하는 동안 주위의 뇌에도 파급되어 영향을 미친다. 여러 기억이 축적되어 있는 곳이 이 파의 자극을 받으면 꿈으로 나타난다. 기억이 축적되어 있는 곳이 순차적으로 자극을 받는 것이 아니기에 꿈은 시간적으로 일관성이 없고 연속성이 없는 형태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이 파에 대한 간략한 내용이 아리타 히데호, 겐유 소큐의 ‘선과 뇌’란 책에 나와 있다. 이 책은 꿈은 프로이트가 말한 것 같은 과거의 여러 사건과 연관을 맺지 않는 뇌 기능의 특수한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박문호 박사는 ‘뇌 생각의 출현’에서 이 파를 논하며 꿈 내용의 많은 부분은 공간상에서 일어나는 맥락 없는 기묘한 과잉 운동의 연속이라 정의한다. 섀넌 모페트는 ‘1.4kg의 수수께끼’에서 수면(睡眠)은 의식 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 말한다. 수면, 의식, 꿈 등 모두 미스테리한 것들이다.



모페트는 흥미로운 말을 한다. 꿈의 지속 시간이 실시간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통념과 달리 우리는 거의 실시간으로 꿈을 꾼다는 것이다. 꿈에서 고교 시절로 돌아가 기말고사가 치러질 교실을 찾아 이 복도 저 복도를 끝없이 걸었다면 아마도 그 꿈은 실제로 최소한 45분 가량 소요된 긴 꿈일 것이고 그렇다면 잠에서 깰 때까지 이어이진 렘수면기들의 길이도 대략 45분이라는 것이다. 오늘 신용목 시인이 꿈을 주제로 한 교육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꿈과 관련한 시를 소개하고 팬들의 관련 사연을 받았다. 나는 신용목 시인의 ‘목련꽃 지는 자리’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그것이 꿈을 묘사한 시 같다는 말을 했다. “..제 그늘/ 스스로 낮추며 지는 꽃잎/ 표백되어 내리는 허공마다/ 구멍이 나고// 숱한 어둠의 구멍/ 속으로 실족/ 하는 달...”이란 부분이다. 내가 이 시를 꿈을 묘사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실족이란 단어 때문일 것이다. 기이한 과잉 행동의 끝은 실족이 아닐지? 바슐라르가 낮달을 하늘에 뚫린 구멍이라 표현했지만 신용목 시인은 달이 어둠이라는 구멍 속으로 실족한다고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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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290
신용목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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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물지만 수록 시들의 제목으로부터 제목을 따오지 않은 시집들이 있다. 신용목 시인의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가 그런 경우이다. 차례 가운데 시집 제목과 같은 시 제목이 눈에 띄지 않아 시들을 모두 찾아 나서기로 한다. 숨바꼭질이 될 것이란 생각은 그러나 이내 풀린다. 첫 시인 ‘갈대 등본’의 마지막 연에서 그 구절이 확인된 연유에서이다. 지난 해 신용목 시인이 패널로 나와 여행지 이야기와 관련 시를 소개, 낭독하는 코너를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맑고 수수한 서정을 드러내 보인 시인의 음성이 아직도 여운처럼 떠돈다.



수수함은 차분함의 다른 이름일 것이고 그렇기에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에 수록된 시들이 전복적 상상력의 시도, 욕망을 드러내 보이는 시도 아님은 예상된 바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시들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바람을 걷는다는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부터 그렇다. 우선 이 걸어야란 말의 기본형이 걷는다는 말인지 걸다란 말인지 불분명하다. 걷는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지만 “휘어진 몸에다 화살을 걸고 싶은 날은 갔다...”란 구절처럼 바람을 걸려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시 숨바꼭질처럼 시집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시어가 무엇인지 찾아나선다. 우선 시집 제목에 들어 있는 바람을 찾는다. 전체 63편의 시들 가운데 바람이란 시어가 들어 있는 시가 36편이다. 뼈의 경우는 8편이다. 뼈란 단어와 바람이란 단어가 함께 들어 있는 시도 5편이나 된다. 바람은 무엇이고 뼈는 무엇인가. 시인은 "문명이라고 세워진 것들이 천년 세월이 흐르고 나면 바람의 흔적인 이빨자국만 남은 채 사라지고 말지 않느냐.“는 말을 했다.



그럼 뼈는 어떤가? 시인은 ”아버지의 뼈 속에는 바람이 있다“(‘갈대 등본’)고 말하고 ”석양볕에 늙은 뼈를 태우는 해송을 본다“(‘다비식’)고 말한다. ”허술한 세월이 삿된 뼈를 씻는 우물“(‘우물‘)이란 말을 하고 ”저 울음의 뼈에는 까마귀의 발톱이 찍혀 있“으며 ”비는 창살이 되어 제 뼈를 내건다 저 어둠 까마귀“(’투명한 뼈‘)라고 말한다. ”잉어의 등뼈“(‘성내동 옷수선집 유리문 안쪽’)를 말하고 “사막을 건너려던 사람들의 뼈모래 능선처럼 높“(‘사하라 어딘가에’)다고 말한다. ”검버섯 목을 긋는 주름에 파도가 살아 뼈마디 암초처럼 만져졌다“(‘바닷가 노인’)고 말하고 “쓸쓸한 등허리 지나간 날들의/ 마른 등뼈를 보았다”(‘범람’)고 말한다.



태우고 씻고 내걸고 하는 것을 보아서는 뼈 역시 견고하지만 바람의 흔적처럼 풍화하고 흙처럼 부서질 것이 아닌지. 첫 번째 시인 ‘갈대 등본’을 보자. 시인은 염전을 바라본다. 소금이 설산(雪山)처럼 일어서던 곳이다. 누추를 입고 저무는 갈대가 있는 곳이다. 이 갈대를 흔드는 존재가 바람이다. 갈대를 거느린 가을은 새떼를 통증처럼 내뱉는다. 시인은 “바람에도 지층이 있다면 그들의 화석에는 저녁만이 남을 것”이라 말한다. “아직 아침은 멀고 대낮과 저녁은 더욱 더 먼데”란 구절이 있는 박정대 시인의 ‘음악들’이란 시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저녁이란 아침과 낮 등이 모두 지나간 시간 즉 황혼을 말하고 인생의 저물녘을 지시한다. 누구의 저물녘인가. 뼈 속에 바람이 있다고 표현된 아버지일 것이다. “초승의 낮달이 그리는 흉터처럼/ 바람의 목청으로 울다 허리 꺾인 家長”이란 말이 지시하듯 아버지는 남루의 시간을 보내는 나이든 아버지이다. 등본(藤本)이란 말이 환기시키는 것이 있다. 가족 그 중에서도 아버지와의 관계이다. 혈연이란 이유만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뼈 속에는 바람이 있다 나는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는 말이 알게 하듯 시인은 아버지와 화해를 계획하는 듯 하다.



어떤 형태이고 왜 그런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단호한 의지를 알게 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러니 앞서 말한 걷다인지 걸다인지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겠다. 당연히 걷는 것이다. 이 아버지와의 관계를 그린 시가 ‘겨울 산사’이다. “갈잎 같은 흔적이 눈 위에 찍히는 동안 명의 무게를/ 다는 길 뒤에서 나는 아버지의 얕은 발자국을 다시 딛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지상의 무게가 얼마 남지 않으셨군요 머잖아 날아오/ 를 만큼 가벼워졌음을 이르시려고 묵묵한 겨울 적막도/ 저무는 산길 앞서며 숨차시고 그런 누안의 걸음을 산사/ 는 산의 눈망울이 되어 오래도록 내려다보았는지도/ 모르는 채 향내에 섞이는 어둠으로 산사에 들었습니다...



아버지 한마디 말도 없이 끄더끄덕 처마 밑으로 들어/ 가 한 줌 그림자가 되었습니다 염 없이 서성이던 나는 씨/ 로 담겨 따로 놓인 나락 같았지만 이승의 끝인 듯 풍경/ 소리가 그 몸 다 퍼내도록 아버지는 나오질 않았습니다”... 제목이 바람을 말하지만 시집의 전체적 정서는 저물녘의 정서이다. “...그 펄럭임의 대궁 속, 대처를 돌아온 자식이 세월/ 도 바람도 아닌 그 깊은 속을 보고 싶어 까칠한 마디 슬/ 며시 쥐었을 때, 나는 그만 대궁마다 가득한 어둠에 빠/ 져들고 말았습니다....”(‘옥수수 대궁 속으로’), “바위 위에 바위보다 한 발은 더 바다로 나가 석양볕에 늙은 뼈를 태우는 해송”(‘다비식’),



“...갈잎 같은 흔적이 눈 위에 찍히는 동안 명의 무게를/ 다는 길 뒤에서 나는 아버지의 얕은 발자국을 다시 딛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지상의 무게가 얼마 남지 않으셨군요 머잖아 날아오/ 를 만큼 가벼워졌음을 이르시려고 묵묵한 겨울 적막도/ 저무는 산길 앞서며 숨차시고 그런 누안의 걸음을 산사/ 는 산의 눈망울이 되어 오래도록 내려다보았는지도/ 모르는 채 향내에 섞이는 어둠으로 산사에 들었습니다..”(’겨울 산사‘),



“...나무 그늘을 포갠 산그늘 짙어지고/ 땅 위 모든 그늘을 포개어오는 어둠,/ 모두들 뒷모습을 적시며 떠나고/ 바람만이 색 잃은 물 위에/ 지네의 발자국을 남겼다./ 그렇게 부질없이 안아온 많은 계절을/ 단 한 번 제 몸에 가두지 못하고/ 겨울이면 얼어붙고 말,/ 강물엔/ 저녁내 노을이 발을 담갔고/ 한밤내 별들이 막대처럼 꽂힐 것이다”(’강물의 몸을 만지며‘)... 가장 회고적인 어조로 아쉬움과 아득한 정서를 보이는 시가 ’봄꿈 봄 꿈처럼‘이다.



“보도블록 밟으며 간다 또각또각 마른 소리 이대도록/ 적요로운 날을 저리도 한 무늬로 먼 길 갈 수 있는가 하고/ 이 무늬 끝나는 곳 벼랑도 좋을 곳에 이르러 어느새/ 백발 성성히 바람 곁 두고 늙음을 끄덕일 수도 있는가/ 하고// 春夢처럼 가는 길도 햇살을 발라내는 나뭇잎은 있는/ 것이어서 바람 앉은 가지를 보는 순한 마음도 있는 것이/ 어서/ 망연히 어디랄 것도 없이 약골의 시력을 던져보는데// 나 한때는/ 저 산을 다 안아보고 싶었네 저 능선에 소나무야 못/ 오른 하늘에 멍든 슬픔인 셈 치더라도/



저 산을 다 안아 저 산으로 바라보면/ 연기 오르는 마을에 저녁도 깊고/ 저녁보다 깊어버린 이들에겐 고운 흙도 내어주며/ 살아서도 가면서도 묵묵하고 싶었네 저 골에 물줄기/ 야 두고 온 마을에 닿는 아픔인 셈 치더라도/ 언제랄 것도 없는 强骨의 한때가 망연한데/ 하루하루 거푸집을 한 방울도 벗어나지 못한 주물로/ 흘러온 걸음 또각또각 보도블록 무늬 위에 소금으로 뿌/ 리며 간다/ 이 길 마저 가 편한 잠도 있는가 하고// 春夢처럼 봄 꿈처럼”...



아비를 포함해 아버지란 시어가 있는 시와 어머니란 시어가 있는 시가 각각 5편, 4편으로 기족 이야기가 주조를 형성하는 이 시들은 전체 맥락에 부합하게 무거움과 어둠 등이 묻어나는 시들이다. 신용목 시인의 돋보이는 미덕은 뛰어난 언어 감각이다.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에 실린 ’별‘이란 시에서 시인은 “밤의 입천장에 박힌 잔 이빨들, 뾰족하다/ 저 아귀에 물리면 모든 罪가 아름답겠다/ 독사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는, 별의 갈퀴/ 하얀 독으로 스미는 罪가 나를 씻어주겠다”고 말한다. 짧고 현란한 수사(修辭)와 언어를 다룰 줄 아는 능수능란함이 보이는 시이다.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에 실린 시들 중 이 시와 비슷한 정서와 수사를 보이는 시가 ’祭日‘이다.



세월을 묶어놓은 달력의 동그라미, 이날을 지나가다

달빛도 상하리라 모든 자식의 죄는 아비를 배신하지 못

했다는 것 살아 많은 날들이 죽어 하루도 남듯 祭主는

이제 늙고 진설은 눈부시다 한 생애 내리고 쏟던 물길이

상 위에 묽은 술로 앉았으니, 아이가 자라 절을 배우는

것처럼 엎드린 머리 위로 향내가 스러지는 것처럼 모든

儀式이 시절을 용서했을 때 조상을 모셔 나는 삽작 밖에

나가 紙榜을 불살랐다 故人의 뒷길이 바람종이 숯으로

타오르는 높이에서 새들은 둥지를 가볍게 하지만, 검은

나무 위 까치집으로나 남을 이승의 일들이 몸의 비탈로

미끄러져, 마음을 문틈처럼 비껴두었다 배부른 짐승처

럼 붉은 갈이 간다 음복에 취함은 구름 낀 저녁에나 풀

어놓을 일, 남쪽을 베고 가거라, 그래서 나에게 북쪽은

멀고 가난하게 죽은 조상의 믿음은 밥숟갈처럼 가까웠다



아비라는 시어와 강렬하고 현란한 언어 구사로 인해 이 시로부터 몇몇 시인들의 작품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신용목만의 시로 완성된 것이기에 비교하고 싶지 않다. 신용목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자연들은 친근한 것도 자연스러운 것도 아니다. “바람의 목청으로 울다 허리 꺾인 家長”, “낮에 뜨는 흰 달이 모든 무덤을 지고 망각을 향해 건너가는 캄캄한 세상의 내부에서”, “그렇게 부질없이 안아온 많은 계절을/ 단 한 번 제 몸에 가두지 못하고/ 겨울이면 얼어붙고 말,/ 강물엔/ 저녁내 노을이 발을 담갔고/ 한밤내 별들이 막대처럼 꽂힐 것이다”, “새로 그은 해안선 무릎을 따라가며/ 절룩이는 바다가/ 유언처럼 갈겨써놓은/ 대낮”,



“바람도 여기에선 소금기를 버린다 잊을 수 없을 만큼/ 의 염분이 밴 실패한 사랑의 증거들이 운해로 피어나는/ 서쪽 하늘 그칠 줄 모르는 이 오랜 정박의 짠 거품을 씻/ 어내려고 하루보다 먼저 검어지는 갯벌 낮게 찍으려 애/ 쓰는 발자국 이리저리 옮겨보지만 붉은 눈자위가 내내/ 바람처럼 따라다녔다 떠나야 할 것들도 저기를 넘지 못/ 했다”, “바람이 피 흘리고 간 자리마다 낙엽/ 떨어져 있다 그 살점들 바라보는 것만으로/ 상처가 덧나는 곳에 노인이 앉아 있다”, “제 그늘/ 스스로 낮추며 지는 꽃잎/ 표백되어 내리는 허공마다/ 구멍이 나고// 숱한 어둠의 구멍/ 속으로 실족/ 하는/ 달”, “이 가을 노을이 싸움처럼 번지는”...



이 시어들은 현란한 수사와 객관성을 담보하려는 최소의 노력 등으로 지나치지 않게 보이지만 자연에 대한 은근한 불편감과 거리감을 드러내는 언어들이다. 앞서 신용목 시인의 시가 쉽게 읽히지 않는다는 말을 했는데 이는 신용목 시인의 시는 분석과 음미의 작업이 함께 있어야 이해되는 시라는 의미이다. 그 분석과 음미의 대상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 ‘삼진정밀’과 ‘울고 있는 여자’라는 시이다.



“...소문이 폐수처럼 바다를 적셨고/ 거짓말처럼 고래는 눈을 감았다/ 진열대에서 캐러멜은 녹아 내렸고/ 밥집의 연기는 사라졌으며/ 야윈 사람들은 몸집보다 큰 짐을 이고/ 해 지는 마을을 느리게 벗어났다/ 허연 배의 고래만이 무인도처럼 둥둥 떠서/ 수풀 위를 흘러 다녔다 누구도/ 주소를 남기지 않았다 가끔 빚쟁이들이/ 먼지를 탐문했으나/ 헝겊처럼 무너질 줄 아는 먼지는/ 끝내 일을 열지 않았다...”(‘삼진정밀’),



“...간두의 끝을 딛고 선 슬픈 애인이/ 물에 집니다/ 얼굴이 남긴 갈래의 길을 따라 시절의 깊이를 파고 파/ 되 끝내는 닿지 못할 죽음의 등으로 물이 찹니다// 차되 기어이 넘치지도 못할/ 바람도 손 놓은 허랑한 한 날 묘지의 공원에 소풍 온/ 마음/ 주소 없는 걸음 되어// 어디 묵은쌀 눅는 산간에나 들어 잠이나 청하면 연잎/ 처럼 젖은 마음도 탈상의 기억을 돌아 끄덕끄덕 낡은 집/ 사립 안으로 그러나 봄볕에 늙으며// 울고 있는 여자 내 저 여자”(‘울고 있는 여자’)



이 시들은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빛나는 시들이다. 특별히 “울고 있는 여자 내 저 여자”란 표현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시인은 “폐염전을 끼고 오가는 동안” “망한 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버릇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런 사정이 증거하는 것은 “언젠가는 소금이 雪山처럼 일어서던 들”이란 과거형의 문장을 낳았다는 점이고 ‘옛 염전’이란 시에서 “주인은 가고/ 염부만 남았다 염밭에 말라 죽은/ 대낮...새로 그은 해안선 무릎을 따라가며/ 절룩이는 바다가/ 유언처럼 갈겨써놓은/ 대낮”이란 표현을 하게 한 것이다. 웅숭 깊은(생각이나 뜻이 크고 넓다. 사물이 되바라지지 아니하고 깊숙하다) 시선으로 마음을 풀어주는 시인의 역량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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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불필요한 가정을 해서는 안 된다는 오컴의 면도날. 명확하지 않거나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으면 빗자루로 양탄자 밑으로 쓸어버린 뒤 발표도 하고 연구도 해야 한다는 브레너의 빗자루. 에른스트 페터 피셔는 브레너의 빗자루 또는 오컴의 빗자루를 긍정적으로 보았다. 반면 대니얼 데닛은 부정적으로 보았다. 데닛은 브레너의 빗자루를 지적으로 부정적인 사람들이 어떤 이론을 옹호하기 위해 불편한 진실을 양탄자 밑에 쓸어 넣는 짓을 일컫는 용어로 간주한다. 나는 브레너의 빗자루에 한 표! 완벽해진 다음 논문이든 작품이든 무엇이든 발표하려면 평생 성과 하나 없이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데닛의 지적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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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5-21 23:06   댓글달기 | URL
저는 대니얼 데빗에 한표요. 데빗이 브레너의 빗자루에 대해 비판한 것은 실적주의, 숙고하지 못한 채 선점하려는 자세를 읽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보았거든요. <직관펌프> 다 읽고 다시 생각해 볼께요. 제가 너무 이것저것 읽다보니 데빗을 좋게 평가한 것일수도 있을테니까 말이죠.

흔적 2015-05-22 05:51   URL
네. 결과가 같더라도 의도나 과정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에서는 어려운 문제이겠지만 말입니다..대니얼 데닛의 생각도 이해가 됩니다. 항상 전체 맥락을 보아야 하니까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