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레시아(rafflesia)는 세계에서 가장 큰 꽃이다. 이 식물은 독특한 외양을 자랑한다. 줄기도, 잎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뿌리도 없다. 우리 눈에 보이는 건 5개의 잎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적갈색의 꽃뿐이다. 이 거대한 꽃을 피우기 위해 다른 식물의 줄기나 뿌리에 기생하면서 자란다. 꽃에서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난다. 이 꽃이 내뿜는 고약한 냄새는 파리를 불러들인다. 파리가 수컷의 꽃가루를 암컷에게로 옮겨 수분이 이뤄진다.

 

 

 

 

 

 

그러나 개화 기간이 많아야 한 달 정도 걸리며 완전히 피어나도 일주일도 못 버티고 진다. 꽃이 지면 불에 타버린 것처럼 시커멓게 변한다.

    

 

 

 

 

 

 

 

 

 

 

 

 

 

 

 

 

 

 

 

 

 

 

 

 

 

 

 

  

* 샤를 보들레르, 김인환 옮김 악의 꽃: 앙리 마티스 에디션(문예출판사, 2018)

* 샤를 보들레르, 황현산 옮김 악의 꽃(민음사, 2016)

* 샤를 보들레르, 공진호 옮김 악의 꽃(아티초크, 2015)

* 샤를 보들레르, 윤영애 옮김 악의 꽃(문학과지성사, 2003)

    

 

 

보들레르(Baudelaire)의 시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라플레시아다. 보들레르는 1857년 시집 악의 꽃을 발표한다. 그러나 이 시집은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된다. 결국 여섯 편의 시를 삭제한 채 시집을 출판하라는 명령과 함께 보들레르는 벌금형을 선고받는다. 자연이나 사랑, 예술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에서 시상을 찾던 당대 시인들과 달리 보들레르는 사람들이 기피하는 추악한 현실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했다. 보들레르는 작가 겸 비평가인 테오필 고티에(Theophile Gautier)에게 보내는 악의 꽃헌사에서 지극히 겸허한 마음으로 이 병든 꽃을 바친다라고 쓴다. 그는 자본의 시궁창인 파리 한복판에 병든 꽃을 키우는 데 성공한다.

    

 

 

 

 

 

 

 

 

 

 

 

 

 

 

 

*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열린책들, 2009)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uskind)의 소설 향수(열린책들, 2009)의 주인공 그르누이(Grenouille)는 최고의 향수를 만들고픈 욕망에 사람들에게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향기를 탐한다. 보들레르는 ‘악의 꽃’을 위한 양분을 얻기 위해 파리 구석구석을 산책하면서 음산하고 퀴퀴한 냄새들을 모은다. 도시인들의 물질적 욕망에서 뿜어 나오는 꺼림칙하고 불쾌한 냄새. 보들레르가 형제라고 말한 도시인들, 즉 위선적인 독자[1]들은 문제작이 된 악의 꽃에 흥미를 느낀다. 독자들은 도덕적으로 해로운 냄새가 나는 줄 알면서도 그의 시에 호기심을 느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시집을 통해서 그동안 살면서 느끼지 못했던 자신의 마음에서 피어나는 추악한 욕망의 냄새를 맡는다. 악의 꽃을 대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라플레시아의 악취에 홀린 파리와 같다. 오늘도 물질적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도시에서 붕붕 날아다니는 파리들은 18세기 중반 파리의 악취를 간직한 보들레르의 시를 읽는다.

 

   

 

 

[1]

 

제일 흉하고 악랄하고 추잡한 놈 있으니!

놈은 야단스런 몸짓도 큰 소리도 없지만

지구를 거뜬히 박살내고

하품 한 번으로 온 세계인들 집어삼키리.

 

그놈은 바로 권태! 눈에는 무심코 흘린 눈물 고인 채

담뱃대 빨아대며 단두대를 꿈꾼다.

그대는 안다, 독자여, 이 까다로운 괴물을,

위선자 독자여, 내 동류, 내 형제여!

 

(독자에게중에서, 윤영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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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0-01-09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서재의 달인 등극 축하드리며 새해복많이 받으셔요^^

페크(pek0501) 2020-01-12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악의 꽃, 시집에 반했었죠. ㅋ

cyrus 님, 새해에 좋은 일이 가득하시길...
건필을 기원합니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 김영민 논어 에세이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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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중국 선불교의 큰 스승인 임제(臨濟) 선사의 말이다. 듣기에 따라 살벌하게 느껴지는 말이지만, 해탈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이라도 말이다. 불교는 해탈을 목표로 한다. 해탈이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속박이나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고통이 집착에서 생긴다고 한다. 욕망에 대한 집착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집착을 벗어버리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곧 극락이다. 해탈에 벗어나서 깨달은 사람은 자유를 얻은 자인 것이다. 깨달음과 자유를 위한 살생은 말 그대로 죽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극복하라는 뜻이다. 경전에 있는 기존의 지식의 틀에 의존하게 되면 새로운 생각을 하는 데 방해를 받는다. 그래서 임제는 부처, 스승, 경전을 최고의 가치로 삼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다. 임제가 보기에 공경의 대상이 되는 부처, 스승, 경전은 모두 사람을 결박하는 것이다.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수행과 고전 공부가 비슷한 과정일 리는 없다. 그러나 기존의 지식에 벗어나 새로움을 얻으라는 건 오늘날 고전에 접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도 유효한 얘기일 것이다. 진정한 깨달음과 자유의 경지인 해탈을 추구하는 수행자가 경전을 공부하면서 경전에 있는 지식은 옳다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것을 진정한 자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없다. 수행자가 제일 경계해야 할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일이고, 고정된 지식의 틀에서 갇혀 있을 때이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고전의 가치에 매료되어 그것을 읽고 공부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독서 모임에 참석하면 고전을 많이 읽었을 정도로 똑똑하나 고전의 틀에 갇힌 사람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이미 알려진 고전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을 미리 공부해오거나 그 내용을 A4 용지에 가득 채워서 정리해온다. 분명 부탁한 적이 없는데도 고전을 해설한 내용(일반인이 읽기 힘든 학술논문의 내용을 인용한 경우도 있다)으로 채워진 인쇄물을 나눠주기도 한다. 독서 토론을 하다가 인쇄물에 없는 고전에 대한 독창적 해석이라든가 고전을 비판하는 입장이 나오면 고전을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이 태클을 건다. “당신의 주장은 금시초문인데요.” “제가 아는 내용과는 완전 다르군요.” 그 사람은 에둘러서 다르다고 말하지만, 고전에 대한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해석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그것을 ‘틀렸’라고 생각한다. 또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고전을 읽고 해석한 사람들의 생각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아서 나오는 아마추어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속으로 상대방을 깔보는 사람은 양반이다. 고전을 너무 많이 공부해서 고전과 한 몸이 되어버린 사람은 독창적인 해석을 받아들이지 못해 그걸 가루가 될 때까지 지적하고 비난한다. 대놓고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고 면박을 준다. 저기요, 당신이 고전을 직접 쓴 작가예요? 흥분한 당신의 모습을 보면 작가에 빙의한 줄 알겠어요.

 

 

 

    

 

 

 

그 사람은 독서 모임이 자신이 생각한 것과 아주 다르다면서 다음 모임에 불참할 거라고 선언한다. 그래, 잘 가라. 멀리 안 나간다. 고전을 읽는 데 걸림돌이 되는 사람이 다시는 모임에 나온다고 하지 않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서론이 너무 길어졌다. 아무튼 딱딱하게 굳은 머리를 내리치는 죽비와 같은 임제의 말은 고전에 대한 과거의 해석이 아닌 현재의 해석을 강조하는 말로 이해해도 어색하지 않다. 어제 누군가가 고전을 읽으면서 했던 생각을 모방하거나 흉내 내지 말고, ‘지금우리가 고전을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을 중요하게 여기라는 뜻이다. 논어 에세이라는 부제가 달린 김영민 교수의 신작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생각의 시체에 불과한 고전에 너무 사랑에 빠지면 지적 네크로필리아(necrophilia)가 될 수밖에 없음을 일깨워준다. 이 책에서 김 교수는 텍스트(text)생각의 무덤이라고 비유한다. 논어는 죽어서 글이 된 공자(孔子)의 생각들이 안치된 무덤이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은 죽은 공자를 기리는 공자의 제자들이 아닌데도 논어텍스트를 곧이곧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실생활에 적용하려고 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중국 명대의 학자 왕양명(王陽明)이 말한 지행합일(知行合一)을 따르는 건 아니다. 그들이 논어를 읽으면서 주로 하는 일은 제자 앞에서 가르치려는 공자처럼 행세하는 것이다. 그들은 논어에 있는 구절 몇 개를 인용하면서 그 구절을 약처럼 곱씹으면 사회의 모든 병폐를 치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고전을 읽으면 모든 사회 문제(특히, 민주주의의 병폐)가 해결될 것이며 고전이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길을 터줄 것이라고. 김 교수는 논어를 포함한 고전을 만병통치약처럼 여기는 세태를 경계한다. 고전을 만병통치약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독자는 고전에 갇혀버려 옴짝달싹도 못 하는 상황에 이른다. 이런 독자는 고전의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해석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하게 된다.

 

 

 

 

 

 

 

 

이미 알려진 논어독법과의 결별을 선언하는 김 교수의 매니페스토(manifesto)는 앞서 언급한 임제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공자를 만나면 공자를 죽여라. 공자의 제자들을 만나면 그들도 죽여라.” 여기서 말하는 공자논어를, 공자의 제자들논어를 신줏단지 모시듯이 읽는 독자들을 뜻한다. 공자와 논어는 복잡다단한 문제에 마주친 우리에게 희망적인 해법을 명확하게 제시해주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다. 그렇다면 고전에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독자들이 공자를 죽일 방법은 있을까. 걱정하시 마시라. 방법이 있다. 김 교수는 논어에 드러나지 않는 공자의 속 깊은 생각들과 공자의 사상에 영향을 준 역사적 조건과 각종 담론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우리가 고전을 제대로 읽으려면 텍스트가 아닌 콘텍스트(context)를 잘 봐야 한다. 콘텍스트의 의미는 무척 다양한데, 나는 콘텍스트를 텍스트 뒤에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김 교수는 콘텍스트를 텍스트의 무덤이라고 말한다). 즉 고전을 읽을 때 우리 눈에 보이는 문자 그대로 따라 읽지 말고, 문자 속에 숨어 있는 맥락을 봐야 한다. 텍스트를 꼼꼼하게 읽되, 콘텍스트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읽어야 한다.

 

공자를 죽여야 한다고 해서 공자와 논어고리타분한 사상으로 알려진 유교와 연결 지어 비판하자는 게 아니다. 김 교수는 유교가 폐쇄적인 학문’, ‘전통을 답습하는 공자의 사상’, ‘동아시아 특유의 보수적인 종교로 너무 쉽게 오해받는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논어가 우리나라의 발전을 막은 폐단의 근원으로 간주하면서 읽는 것도 경계한다. 논어를 지나치게 숭배하는 것도 문제고, 너무 기피하는 것도 문제다. 논어를 대하는 두 가지 태도가 달라도 너무 다르지만, 이러한 태도를 낳게 한 원인은 피차일반이다. 둘 다 논어를 제대로 읽지 않았거나 잘못 이해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 교수는 공자가 정확하게 미워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미워하는 일이란 말 그대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비판하는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정확하게 미워하고 비판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고전을 정확하게 비판하면서 읽는 일 또한 쉽지 않다. 따라서 고전을 제대로 좋아하고, 정확하게 비판하려면 고전 텍스트를 공들여 읽고 스스로 생각하는 독자가 되어야 한다.

 

이 논어 에세이는 김 교수가 구상하고 있는 논어 프로젝트의 시작을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초대장이다. 그의 프로젝트에 흥미 있는 독자라면 이 초대장을 잊지 말고 잘 간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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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6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1-07 19:31   좋아요 0 | URL
나쁜 의도로 책의 지식이나 문학 작품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텍스트를 자유롭게 해석할 자유가 있어요. 기존에 알려진 텍스트 해석을 따르기만 하면 텍스트 읽는 재미가 반감돼요.

Comandante 2020-01-06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모임에 그런 사람들이 출몰하는군요. 전 독서모임엔 참여해본적이 없어서 그런 사람이 있을줄 상상도 못했는데... 그런식의 읽기가 제일 게으르고 불성실한 읽기라고 생각합니다.

cyrus 2020-01-07 19:35   좋아요 0 | URL
여러 독서 모임을 참석하면서 별 희한한 사람들을 만나봤어요. 독서 모임을 스터디 모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요. 물론 독서 모임도 약간의 공부도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일반인들의 독서 모임은 스터디보다는 책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말하는 분위기로 진행해요. 그래서 텍스트의 해설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독서 모임에 참석하면 해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분들이 종종 있어요.

서니데이 2020-01-06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모임에서는 서로 다양한 견해가 나올 수 있다는 건 좋아보이는데, 그러려면 미리 준비를 많이 해야겠네요. 저도 독서모임에 참여해본 적이 없어서 궁금했는데, 잘 읽었습니다.
cyrus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cyrus 2020-01-07 19:37   좋아요 1 | URL
독서 모임에 참석하기 전에 많이 준비할 필요는 없어요. 책 다 못 읽어도 뭐라고 잔소리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리고 독서 모임 때 말하고 싶은 내용을 열심히 준비해도 그거 다 얘기 못해요.. ㅎㅎㅎㅎ 그냥 마음 편하게 책에 대한 느낌이라든가 인상 깊은 책의 구절 등을 말하면 돼요. ^^

페넬로페 2020-01-06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을 읽으며 그것이 고전이니까 저도 미리 존경과 무비판의 태도로 접할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도 고전이니깐
여지껏 살아남았잖아^^
이런 생각과 더불어 뭘 비판해야 할지 모르는 저의 식견도 아쉽구요~~
그래도 고전이 나쁘지는 않더라구요^^

cyrus 2020-01-07 19:40   좋아요 1 | URL
고전을 쓴 사람들은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니까 우리가 자유롭게 해석하는 것에 태클 걸지 못해요.. ㅎㅎㅎㅎ 그래서 고전을 비판적으로 읽기에 딱 좋은 텍스트에요. 읽기 어려워서 그렇지 한 번 읽고 나면 자유롭게 해석하고 비판할 수 있는 만만한 텍스트가 고전이에요. ^^

페크(pek0501) 2020-01-12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제가 ‘확신을 경계하라‘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어요. 확신의 위험성에 대해 쓴 글이에요. 버트런드 러셀에 따르면 지식인이란 자신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한 타당한 논거를 갖고 있더라도 그것을 교조적으로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독서 모임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어떤 틀에 갇히지 말고 (남의 생각을 들어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시간을 갖자, 인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군요. 고전이란 시대에 따라 또 독자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음을 간과한 분인 것 같아요. 안타깝군요.

Angela 2020-01-17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합니다. text 보다는 context 입니다.
 

 

 

 

 

 

 

 

 

레드스타킹은 2019년 1122일에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빌러비드(Beloved)(문학동네)를 읽기 시작했어요. 그날부터 시범적으로 매월 둘째, 넷째 주 금요일에 모임이 이루어졌는데요, 2019년 1227일을 마지막으로 총 3회에 걸친 빌러비드읽기 모임이 완료되었습니다.

 

 

 

 

 

 

 

 

 

 

 

 

 

 

 

 

 

 

* 토니 모리슨 빌러비드: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문학동네, 2019)

* 토니 모리슨 빌러비드(문학동네, 2014)

* [레드스타킹 일곱 번째 책] 패트리샤 힐 콜린스 흑인 페미니즘 사상(여이연, 2009)

 

    

 

마고 님이 빌러비드를 추천했습니다. 마고 님은 2018년 레드스타킹 모임 필독 도서인 흑인 페미니즘 사상(여이연, 2009)을 읽었을 때부터 빌러비드가 좋은 책이라면서 몇 차례 강조했어요. 흑인 페미니즘 사상빌러비드를 언급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저는 마고 님의 말씀을 듣고 빌러비드를 꼭 읽어봐야지하고 생각했었는데 올해 연말에 드디어 책을 읽게 되었어요.

 

빌러비드1987년에 발표된 토니 모리슨의 대표작입니다. 모리슨은 흑인 노예라는 아주 긴 운명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 딸을 죽인 흑인 여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흑인들의 아픈 역사를 보여줍니다. 세서(Sethe)는 노예 생활을 청산하기 위해 임신한 몸으로 네 명의 자식을 데리고 탈출을 감행합니다. 그러나 뒤따라온 노예 사냥꾼들의 추격에 체포될 위기에 처합니다. 세서는 자식을 노예로 살게 하느니 차라리 자기 손으로 죽이겠다고 결심합니다. 당시 두 살이었던 딸을 죽인 살인범이 된 세서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덮어둔 채 자신의 유일한 핏줄인 덴버(Denver)와 함께 124번지의 집에 살아갑니다. 그 집에 살고 있는 죽은 아기의 유령은 모녀를 괴롭힙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은 아기 빌러비드가 어른의 모습을 한 채 세서 앞에 나타납니다. 세서는 끔찍한 과거를 떠올리는 일에 고통스러워합니다. 하지만 세서는 빌러비드에게 왜 자신이 그녀를 죽여야 했는지 설명하고, 마침내 자신을 괴롭히던 과거와 결별하는 데 성공합니다.

 

사실 빌러비드는 쉽게 읽히는 편안한 책은 아니에요. 소설이 노예제도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인 데다가 난해한 기법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 흥미로운 장면들이 많았어요. 집에 아기 유령이 등장하는 소설의 초반부를 보면서 초현실적인 느낌을 받았다고 하신 분이 있었어요. 소설 중반부에 빌러비드, 세스, 덴버의 목소리가 뒤섞이면서 진행되는 장()이 나옵니다. 이 장을 인상 깊게 봤던 분들이 많았습니다. 마고 님은 토니 모리슨의 문학을 흑인의 오랜 아픔을 치유해주는 위령제라고 평가했습니다. 토니 모리슨은 빌러비드를 통해 노예제도의 고통 속에 살다간 모든 흑인들의 아픔을 치유하려는 작업을 시도하고, 과거를 극복하면서 미래를 향해 나가도록 해주는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 박민정 아내들의 학교(문학동네, 2017)

 

    

 

올해도 레드스타킹은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멤버들 덕분에 즐겁고 잊지 못할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2020110일 금요일부터 박민정 작가의 아내들의 학교(문학동네, 2017)를 읽습니다. 내년에 어떤 책들을 만나게 되고, 재미난 일들을 하게 될지 벌써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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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3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1-06 18:27   좋아요 0 | URL
그럼요. 절필하는 건 아니니 크게 걱정하시 않으셔도 됩니다. ^^

Angela 2020-01-17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죽은 아기유령이 세서 어린시절 모습, 즉 자신의 모습으로 투영되는 것으로 읽었어요.
 

 

 

2005년에 미국의 출판사 알프레드 노스(Alfred North)는 고양이를 주제로 한 세계의 시를 모은 <The Great Cat>를 출간했다.

 

 

 

 

 

 

 

 

 

 

 

 

 

 

 

 

 

 

* 이장희 봄은 고양이로다(아인북스, 2017)

* 이상화, 이장희 이상화. 이장희 시선(지만지, 2014)

    

 

 

 

 

 

 

 

 

 

 

 

 

 

 

 

 

* 보들레르 악의 꽃: 앙리 마티스 에디션(문예출판사, 2018)

* 보들레르 악의 꽃(아티초크, 2015)

* 보들레르 악의 꽃(문학과지성사, 2003)

    

 

 

 

 

 

 

 

 

 

 

 

 

 

 

 

 

 

* 릴케 검은 고양이(민음사, 1974)

 

    

 

 

 

 

 

 

 

 

 

 

 

 

 

 

 

 

 

* 박성민, 송승현 옮김 고양이를 쓰다: 작가들의 고양이를 문학에서 만나다(시와서, 2018)

    

 

 

이 시 선집에는 악의 꽃에 실린 보들레르(Baudelaire)고양이, 릴케(Rilke)검은 고양이등이 수록되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인들의 시를 한자리에 모은 이 책에 우리나라 시인이 쓴 시도 있다. 그 시는 바로 고월(古月) 이장희봄은 고양이로다. 영문 제목은 ‘The Spring is a cat’이다.

 

세계의 명시들을 모은 책에 한국의 시인으로 유일하게 소환된 이장희는 누구인가. 그건 너’, ‘한 잔의 추억등의 히트곡을 부른 가수 이장희의 동명이인이다. 시인 이장희의 본명은 이양희다. 1920년에 장희(樟熙)로 개명했고, 필명으로 장희(章熙)를 썼다. 그는 1900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이병학이다. 이장희는 이병학과 첫 번째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는데, 이장희가 다섯 살 때 친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이병학은 두 번째 부인과 결혼하여 56녀를 두었으며 이장희가 죽기 5년 전에 세 번째 아내를 맞아들였다. 당연히 이장희의 이복 형제와 자매가 더 늘어났다. 이병학은 두 명의 아내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첩 1명을 두었다.

 

고월은 생전에 많은 시를 쓰지 않았다. 1924년에 문단에 등단했고 1929년에 음독자살하였다. 고월의 몇 안 되는 친한 문인 중 한 사람이었던 동향 출신의 시인 목우(牧牛) 백기만1951년에 <상화와 고월>이라는 시 선집을 편찬했고, 한동안 잊힌 이장희의 시 열한 편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상화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쓴 시인 이상화를 가리킨다. 지금은 대구를 낳은 유명한 문인이라면 가장 먼저 이상화와 운수 좋은 날의 작가 빙허(憑虛) 현진건을 떠오르지만, 백기만과 이장희도 대구 시민이라면 반드시 기억해두어야 할 대구 출신의 문인이다. 이장희, 이상화, 현진건 이 세 사람 모두 광복을 보지도 못하고 삶을 마감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고월은 1929년에 자살했고, 이상화와 현진건은 1943425일 같은 날에 숨을 거두었다. 이들과 친하게 지낸 목우만이 조국의 광복을 지켜봤다.

 

고월은 대구의 부호 집안에서 태어났으면서도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친어머니의 이른 죽음, 그리고 이복 형제와 자매가 많은 복잡한 가정환경은 시인의 폐쇄적인 성격을 형성하는 원인이 되었다. 우울하고 조용한 성격 탓에 친하게 지낸 지인과 동료 문인이 많지 않았다. 시인 겸 국문학자 양주동은 고월을 술 마실 줄 모르는 말수가 적은 문인으로 기억했다. 문인들 사이에서 주당으로 유명한 양주동과 목우가 있는 술자리에 고월이 합류했는데, 목우는 술을 입에 대지 않고 안주만 먹는 고월에게 핀잔을 주기도 했다.

 

이상화가 나라 잃은 시대에 대한 고뇌를 안으면서 시로 쓰고 있을 때, 고월은 친일파 아들이라는 죄의식에 갇혀 살았다. 어쩌면 친일파의 아들이라는 낙인은 너무나도 소심한 시인을 더욱 고립하게 만든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고월은 상화와 목우처럼 항일 운동을 하면서 시를 쓰진 않았지만, 고월이 생각하기에 식민지 시대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버지와의 불화를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이병학은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했으며 일본어에 능숙한 고월이 자신의 가업을 이어받기를 원했다. 이병학은 고월에게 중추원의 어떤 직무를 맡아달라고 제안했으나 고월은 거부했다. 시인은 일본인과 관련된 아버지의 명령을 모조리 거부했고, 아버지와의 갈등은 더욱더 깊어졌다. 다만 고월이 친일파 아버지의 명을 거부했다고 해서 그를 ‘저항 시인으로 단정할 수 없다. 고월은 사교성이 부족했던 사람이다. 그는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아버지의 일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고월은 절제된 언어로 이미지를 묘사하는 시를 주로 썼는데, 그의 섬세한 감각을 유감없이 보여준 시가 바로 봄은 고양이로다. 고월은 이 시에서 생동감 넘치는 봄의 기운을 고양이의 신체 부위로 비유했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문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봄은 고양이로다20)

 

 

한국 모더니즘 시의 지평을 연 수작으로 평가받는『봄은 고양이로다는 19세기 프랑스 모더니즘의 선구자 보들레르의 고양이와 함께 언급되곤 한다. 그러나 보들레르의 시에 나타난 고양이는 퇴폐미와 생명력을 동시에 가진 팜 파탈(femme fatale)의 이중적인 매력을 의미한다.

 

고월은 총 서른여섯 편의 시를 남겼는데, 봄은 고양이로다』가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 고월의 시는 숨어 있는 보석’과 같다고 할 수 있는, 내가 개인적으로 높이 평가하고 싶은 고월의 시는 겨울의 모경(暮景)이다.

 

 

큰 거리는 저문 연기에 젖어

동정이 몽롱하고

녹슨 무쇠 같은

둔중한 냄새가 잠겨 흐른다.

그러나 가다가는

앓는 소리 은은한 전차가

물오른 풀잎 같은

뾰족한 신경을 드러내고

때 아닌 푸른 꽃을

허공에 날리기도 한다.

길바닥은

얼어서 죽은 구렁이 같이 뻗으러졌고

그 위를

세찬 바람이 돛을 달고 달아나면

야릇한 군소리가

눈물에 떨어 그윽이 들린다.

잘 주절대고 하이칼라인

제비의 유령이

불룩한 검정 외투를 휘감고 비틀거리는

사이에 있어서

흐른 은결같이 허여스름한 옷 그림자가

고요히 움직인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너머로

핏줄 선 눈알같이 불그레함은

마지막으로 넘어가는

날 볕의 얼굴이 숨어있음이라

이들 눈에 드는 모든 것이

저마다 김을 뿜어서

그는 환등의 영사막이며

침울한 데생을 보는 듯하다

  

  

(봄은 고양이로다36, 38)

 

 

 

이 시에서 고월은 근대적 시공간으로 변모하는 조선의 어느 도시(경성 혹은 대구?)를 관찰하는 산책자(flaneur: 플라뇌르). 모든 것이 서양식으로 대체되고, 인간이 소외되기 시작했던 조선의 도시. 시인은 군중 속에 쓸쓸히 걸어가면서 도시의 우울을 데생처럼 묘사한다. 도시의 모경은 도시인의 고독을 관찰하면서 도시의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시적으로 형상화한 보들레르의 작업을 떠오르게 한다.

 

1980년대 초반에 이장희 시 전집이 두 권이나 출간되었지만, 현재는 절판되었다(두 권 모두 알라딘에 등록되지 않은 책이라서 정확한 제목을 입력해도 찾을 수 없다. 헌책을 판매하는 웹사이트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이상화. 이장희 시선(지만지, 2014)은 이장희의 시 34편 원문을 실었다. 고월이 쓴 시가 많지 않아서 36편을 전부 실어도 좋을 텐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 두 편이 제외되었다. 2017년에 출간된 봄은 고양이로다 (아인북스)가 현재로선 유일하게 남아있는 이장희 시 전집이다. 이 책은 시의 원문만 실은 게 아니라 한문과 고어를 쉬운 말로 풀이한 현대문도 함께 실었다.

 

그런데 이 책에 시인의 생애를 설명한 내용이 중복되어 나온다. 그렇다 보니 독자에게 혼란을 주는 내용이 보인다. 봄은 고양이로다230이장희 프로필에는 출생 월일이 ‘190011로 적혀 있고, 231이장희 연보에는 ‘1900119로 되어 있다. ‘이장희 프로필이장희 연보는 제목만 다를 뿐 거의 비슷한 내용이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있는 이장희항목에 보면 그가 태어난 날이 ‘11로 되어 있다. 고월은 ‘1900119에 태어난 것이 맞다. 그리고 책에 고월이 이병학의 129녀 중 삼남으로 태어났다고 되어 있는데도 다음 장에는 시인이 맏아들로 태어났다고 잘못 적혀 있다. , 책 앞날개에 이장희 전짐이라는 오자가 있다. ‘전집으로 고쳐야 한다. 봄은 고양이로다는 시 전집에 걸맞지 않게 편집이 엉성하다.

 

고월 이장희는 정지용, 김기림과 함께 조선의 이미지스트(Imagist)로 평가받아야 한다. 가수 이장희가 시인 이장희보다 더 유명하다. 고향인 대구에서도 그의 이름과 시들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 안타깝기만 하다. 두류공원에 이장희 시비(詩碑)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대구 시민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잊힌 요절 시인의 봄은 언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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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a 2020-01-01 2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cyrus님 글은 참으로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에도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cyrus 2020-01-01 22:56   좋아요 0 | URL
요즘 제가 알라딘 서재 활동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어서 예전처럼 글을 많이 쓰는 모습을 보기 어려울 거예요. 이제 저는 알라딘 마을에 조용히 살려고 해요. ㅎㅎㅎㅎ

2020-01-03 0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2 1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연 2020-01-01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지마 조용히 살지 마 너 좋아하는 이들을 생각해~~~~

cyrus 2020-01-02 19:10   좋아요 0 | URL
절 좋아하는 분들이 소수라서 이분들하고 잘 지내고 싶어요. 이제는 온라인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에 흥미가 없어요.

syo 2020-01-02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라고요? 조용히 사시겠다고요??? 울까? 나 울까 확?

cyrus 2020-01-02 19:15   좋아요 0 | URL
온라인 은둔 생활을 하려고요.. syo님 댓글 처음 확인했을 때 ‘울까’를 ‘(대구로) 올까’로 봤어요... ㅎㅎㅎㅎ 울지 마요.. ^^;;

2020-01-02 0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1-02 19:17   좋아요 0 | URL
연말에 바빠서 전화로 인사를 못 드렸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세요. ^^

프레이야 2020-01-02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 오랜만의 페이퍼 반가워요.
조용히ㅎㅎ이렇게 페이퍼 올려주시면 조용히 와서 볼게요.
이장희 시인의 ‘봄은 고양이로다‘는 봄이면 꼭 떠올리는 시에요.
시집은 갖고 있지 못했는데 담아갑니다.
이상화고택이 계산성당이랑 멀지 않게 있더군요.
대구에서 일년전 겨울, 맑은 국밥 한 그릇 뜨듯하게 먹었던 기억이 나요.
새해 조용히^^ 복 많이 받으세요.

cyrus 2020-01-02 19:21   좋아요 0 | URL
대구에 관한 아주 뜨끈한 추억이 있으시군요. 방금 저녁을 먹었는데 프레이야님이 국밥을 언급하시니까 국밥이 먹고 싶어지네요. 겨울이라서 그런지 식욕이 늘어났어요.. ㅎㅎㅎ 프레이야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세요. ^^

레삭매냐 2020-01-02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글읽기가 뜬하신지 예전 같이
왕성한 글쓰기를 보기 쉽지 않네요 :>

모쪼록 건강하시고 경자년 새해에는
소망하시는 일들 모두 이루시길 바랍
니다.

해삐 뉴 이얼 ~~~

cyrus 2020-01-02 19:22   좋아요 0 | URL
글 쓰는 몸이 늙었는가 봐요.. ㅎㅎㅎㅎ
레샥매냐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세요. ^^
 
열등한 성 - 과학은 어떻게 성차별의 도구가 되었나?
앤절라 사이니 지음, 김수민 옮김 / 현암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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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람들은 과학만큼은 젠더나 계급과 같은 사회적 문제와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 과학 연구는 천문학적 연구비가 투여되고 많은 수의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사회적 활동이다. 그래서 연구 주제나 방향에 따라 혜택을 입는 사회 집단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집단이 있기 마련이다. 가장 쉽게 예를 들 수 있는 분야가 의학이다. 신약 개발 초기 단계인 동물실험에서 대부분 수컷 동물을 사용하며 임상시험에서 남성 환자가 다수로 참여한다. 이런 연구들에서 얻은 편향적인 결과를 바탕으로 임상시험이 수행되고, 그 결과를 다수의 환자에게 적용하면 여성한테 약물 부작용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 남성과 여성은 평균 키와 몸무게뿐 아니라 호르몬의 분비, 유전적 특징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그래서 질환의 발생, 증상, 약물 반응에서 성별 차이가 나타난다.

 

과거에는 남자답게 키우기 위해 아들은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되고, 여자답게 자라기 위해 딸은 소꿉놀이를 하도록 길렀다. 이러한 가정교육의 내면에는 남녀 간의 생물학적 차이라는 꽤 오래된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생물학적 차이라는 표현이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지겠지만, 대부분 사람은 남성과 여성을 명확하게 구분 짓는 생물학적 차이가 있다고 믿으면서 자라왔다. 지금도 이런 말을 심심찮게 들어볼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은 뇌 구조부터 다르다. 이 차이가 권위적인 남성과 수동적인 여성으로 만들어준다.’ 생물학적 차이에 대한 믿음은 성별 임금 격차와 남성에 뒤처진 여성의 능력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자주 호출된다. 그 믿음이 오류라는 진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지 꽤 오래되었는데도 말이다.

 

열등한 성은 생물학과 의학이 어떻게 해서 여성을 배제하고 차별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저자는 과학 분야에서 여성 전문가의 수가 적은 이유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이유로 여성을 지적으로 열등하다고 보는 과학의 한계를 지목한다. 저자에 따르면, 중립적인 학문으로 알려진 과학은 수 세기 동안 여성을 괴롭힌 성 고정 관념과 잘못된 믿음을 제거하지 못했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조물주가 생명을 창조했다는 창조론에 반대해 생물이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진화한다는 진화론을 종의 기원을 통해 발표했다. 성경은 여성을 남성의 부속물로 취급하면서 여성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여성 참정권 운동에 뛰어든 여성주의자들은 진화론의 등장에 열광했다. 진화론은 여성의 열등함을 설명할 때 언급되는 하와의 탄생 과정(구약의 창세기에 따르면 하느님은 아담을 먼저 만든 다음 아담의 갈빗대를 하나 뽑아 그것으로 하와를 만들었다)을 반박할 수 있는 과학적인 이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윈은 여성은 남성보다 지적으로 열등하다고 믿었다. 진화론을 옹호한 여성주의자 캐럴라인 케너드(Caroline Kennard)는 다윈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잘못된 믿음을 바로잡아주기를 간청했다. 하지만 다윈은 여성이 지적으로 열등하다는 주장을 번복하지 않을 거라고 답변을 보냈다. 다윈의 후계자들(그 중에는 진화론을 제 입맛대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었다)은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다는 증거를 찾는 일에 몰두했다.

 

열등한 성은 교양과 상식으로 포장한 성차별적인 과학의 사례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이를 입증할 과학적 증거가 전혀 없다는 것을 직접 보여준다. 일례로 성별 차이 또는 두뇌의 크기 차이 때문에 수학과 과학 분야에 진출하는 여성이 적다는 인식은 다양한 과학 연구 결과와 통계 자료들의 반론에 의해 무너진 지 오래되었다. 다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성별에 따른 수학 점수 차이는 크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해당 분야에 여성이 적을까.

 

아주 작은 편견에서 시작되었다. ‘여학생은 남학생보다 수학 성적이 낮다’ ‘여자는 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전문직에 어울리지 않는다여성을 열등하게 만드는 편견들은 낙인이라는 도장이 되어 수많은 사람의 뇌리에 찍힌다. 이 잘못된 도장이 전문가들, 특히 남성 지식인들의 손에 쥐어질수록 사회 이곳저곳에 남은 도장의 흔적들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찍어놓은 도장의 흔적들을 말끔히 제거할 생각이 없다. 오랫동안 여성은 열등한 존재로 인식됐기 때문에 여성 교육은 돈과 시간 낭비라고 여겼다. 심지어 많이 배우는 여성은 진리를 추구하는 남성을 방해하는 존재가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야 여성 과학자들은 과학협회 회원이 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사회에 퍼져 있는 성적 불평등을 설명하고 싶어 하지만, 그 이유를 불공평한 사회 구조보다는 남성과 여성의 타고난 생물학적 차이 탓으로 돌리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한다.

 

지금도 과학의 허점에서 나온 편견이라는 아주 작은 씨앗은 전문가가 쓰는 글 속에서 자라나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권위를 먹고 자란 편견은 대중적으로 퍼져나가 사실또는 상식이 된다. 이와 맞서기 위해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전략으로 대응해야 한다. 과학의 오류와 잘못된 편견을 반박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는 과학이다. 저자는 페미니즘은 과학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앞으로 영리한 여성들이 과학의 한계를 보완해줄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는 여성들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이는 자기 생각을 펼치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독립된 공간과 경제적인 자립이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 말은 작가가 되고 싶은 여성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과학을 좋아하는 여성은 자기만의 연구실과 돈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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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3 2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1-01 22:07   좋아요 0 | URL
자본이 많이 있으면 누구나 강자가 되기 쉬워요. 그런 사회적인 강자는 사회적인 약자를 곤란하게 만들고요.

서니데이 2019-12-24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2019년 서재의 달인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cyrus 2020-01-01 22:09   좋아요 1 | URL
제가 알라딘에 활동하는 분들에게 친절하게 대한 적이 별로 많지 않아서 좋은 이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먼저 새해 인사를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서니데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겨울호랑이 2019-12-28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지난 한 해 페니미즘과 관련한 좋은 자료를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도 잘 부탁 드립니다.^^:)

cyrus 2020-01-01 22:11   좋아요 1 | URL
별말씀을요. 저는 보고 들은 것들을 정리만 했을 뿐인데요. 올해도 꾸준히 공부하겠습니다. 겨울호랑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

서니데이 2019-12-31 2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새해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조금 있으면 2020년 경자년이 됩니다.
새해에도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그리고 소원을 이루는 시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