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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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일이야말로 가장 즐거운 일이다. 역사책을 읽을 것 같으면 기쁨보다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곳이 또한 즐거운 곳이다. (장조 『유몽영』중에서, 정민 『마음을 비우는 지혜』에서 인용, 181쪽)

 

 

오늘의 정치는 내일의 역사가 되고, 어제의 역사는 오늘의 정치를 지배한다. 요즘에는 이 말을 특히 실감한다. 내일의 역사를 자기편으로 서술하기 위한 정치싸움은 진행 중이다. 한쪽에선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에서 60년 만에 세계 11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오늘의 대한민국을 보라고 외친다. 나아가 이런 대한민국이 어찌 반쪽인가라고 반문하면서 대한민국 그 자체를 무(無)에서 창조한 기적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또 다른 한쪽에서는 단독정부 수립으로 분단을 고착화하며 태어난 대한민국이 태생적으로 정통성을 갖추지 못한 국가이며, 38선 혹은 휴전선으로 갈라진 그 나머지 반쪽인 북한과 '민족통일'을 이루기 전에는 어떠한 경제적 성공도 완전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두고 두 개의 마주할 수 없는 극단적 시각이 엄존하는 셈이다. 물론 이런 양극단 사이에는 회색지대와도 같은 무수한 시각이 존재한다.

 

크게 두 가지로 대별한 이런 시각은 비단 건국뿐만 아니라 한국근현대사 곳곳에서 충돌한다. ‘분단’의 시각에 선 쪽에서는 김구를 추앙하는 데 비해, ‘건국’을 중시하는 쪽에서는 이승만을 ‘국부’로 간주한다. 전자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은 태어나서는 안 될 ‘절대악의 축’이지만, 후자에겐 ‘허리띠를 졸라매며 세계 역사상 가장 빠른 시간에 산업화를 이룬 위대한 지도자’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대한 이런 극단적인 대립은 급기야 대한민국 그 자체의 정통성 시비를 불러 일으켜, 그것을 부정하는 쪽에서는 대한민국사를 ‘뒤틀린 역사’로 간주하면서,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은 이승만 정부가 친일인사를 청산하지 못하고 그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친일파 청산으로 대표되는 과거사 청산 운동이 거세게 분 것도 이런 대한민국 건국관이 작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독사신론』에서 “정신이 없는 역사는 정신없는 민족을 낳으며, 정신없는 국가를 만들 것이니 어찌 두렵지 아니하리오,”라고 하여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고교 역사교과서 파동은 다수의 국민에게 심각한 우려의 눈길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문제의 본질은 현재 역사학계의 편향적이고, 왜곡적인 역사시각을 감히 나서서 자정할 능력이 없다는 점에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유관순 열사에 대한 역사기술을 통해 왜곡집필의 심각성이 드러났다고 할 것이다. 유관순 열사는 우리 민족에게 소중한 정신적 자산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고 본다. 이런 유관순을 고교역사교과서에서 의도적으로 ‘실종’된 사실이 밝혀졌다는 것은 기가 막힌 역사학계의 수치다.

 

더욱이 문제투성이 역사교과서를 고등학생들이 읽고,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가 안 생길 수가 없다. 청소년 역사의식을 혼돈에 빠뜨릴 우려가 있다. 역사 교육은 미래를 이끌어 나갈 학생들에게 영향이 매우 크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청소년들이 배우는 교과서 내용에서 단어나 문구를 가지고 역사학계에서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다투는 일이 벌어졌는지 안타까운 현실이다.

 

역사 가운데서도 현대사는 가장 격렬한 논쟁을 촉발시킨다. 고대사, 중세사, 근대사와 달리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피해자 또는 수혜자 등이 생존해 있기 때문이다. 한때 정치에 참여했던 이가 펴낸 현대사라면 논쟁은 더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

 

유시민은 『나의 한국현대사』 프롤로그에서 역사는 본질적으로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역사 서술에서 핵심인 사실의 선택과 선택한 사실의 해석은 주관적 기록이 된다. 한마디로 책은 굵직한 현대사의 역사적 사건을 나열했다기보다 그 속에 이와 관련된 저자의 일상 체험이 곳곳에 녹아 있다.

 

이 책을 읽으면 문제투성이 역사교과서처럼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 않는다. 비록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과 아울러 삶의 기본적 욕구조차 해결할 수 없게 만든 정부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실려 있지만, 그 속에 오랜 폭압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쟁취해낸 국민들의 뜨거운 열정과 기쁨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저자는 심리학자인 매슬로우의 욕구단계 이론을 통해 한국현대사 55년을 분석한다. 욕구단계 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본질적 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욕망이다. 인간은 욕망이 존재하기 때문에 행동하며,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한다는 것이다. 생리적인 욕구 단계부터 출발하여 존경에 대한 욕구를 거쳐 최종적으로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에까지 갈망하게 된다. 인간이 의식주를 먼저 생각하게 되고 이 욕구가 충족되면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게 되며 내적인 성장을 실현하려고 한다.

 

하지만 욕망은 너무 오랫동안 우리를 지배해 왔다. 단군 이래 이렇게 잘 산 적이 없는데, 사람들은 더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부정적인 폐해도 적지 않았다.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사건, 1971년 대연각호텔 화재사건,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사건,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1999년 씨랜드 화재사고,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2010년 천안함 사건, 그리고 최근의 세월호 참사까지. 물질적 욕망의 질주가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될 최악의 역사를 만들어 낸다. 여전히 많은 시민들은 물질에 대한 욕망에 너무 강하게 사로잡혀 있다. 정의를 외면하면서 생기는 불편함을 외면하고 털어내려고 한다.

 

자랑스러운 것만을 드러내려는 쪽, 부끄러운 것을 기억하려는 쪽, 어느 쪽이든 대한민국을 역사라는 ‘집단기억’에 기초한 공동체로 만들고자 하는 역사관에는 차이가 없다. 현대의 역사 이론들이 합창하는 것처럼, 역사서술은 근본적으로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적 행위이다. 이는 동일한 사료를 근거로 하더라도, 그것을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고 취합하여 서술하느냐에 따라 해석과 평가가 극명할 수 있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나의 해석이든 너의 해석이든 어느 것도 ‘객관적 진실’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성찰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유시민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 간의 분투와 경쟁의 기록으로 읽는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두 세력을 거의 50대 50으로 인정해왔고 산업화시대와 민주화시대 모두 우리의 과거이며 따라서 둘 중 하나만을 인정하는 자세는 온전한 역사인식·현실인식일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 어느 때보다 역사논쟁이 뜨거운 지금, 서로 다른 경험과 이해관계, 인생관을 가졌다 해도 충분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그 간극을 줄여나가려는 노력이 절실한 이유다.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할 것인가는 언제나 이데올로기와 정치의 문제였다. 서로 다른 시각과 세계관이 충돌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사실관계에 대한 집착보다는 조정과 타협을 통해 합의에 도달해야만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가 서로 상반된 역사관에 비방만 할 것이 아니라 상대를 끌어들일 수 있는 대화와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역사교과서는 이런 차이와 다양성을 하나의 그릇에 담아내는 지혜로운 정치의 산물이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덕목으로 꼽히는 ‘공감’, 정치적으로는 세대별 전쟁 수준까지 갈라진 상황에 대해 싸우지 말고 현실 직시부터 해야 한다. 모든 역사엔 빛과 어둠이 있다. 역사 교과서에는 우리를 기쁘게 하는 최고의 역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우리를 분노케하는 가슴 아픈 비극의 역사도 공존한다. 연구자와 학습자는 모두 역사 해석의 독단을 경계하고 끊임없는 소통과 교류를 역사 이해의 근간으로 삼아야 한다.

 

 



 
 
 

 

 

안녕하세요. 인문/교양 출판그룹 반비입니다. ^^


이번에 반비에서 책을 사랑하는 분이라면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이안 샌섬의 신간, 『페이퍼 엘레지』가 출간되었습니다.

누구보다 종이와 책에 애정이 있다고 자부하시는 분이라면

이번 서평단 활동으로 종이사의 한 획을 그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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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 엘레지』

감탄과 애도로 쓴 종이의 문화사

책이 사라지는 시대, 

연약한 종이의 질긴 내구성을 탐구하다!  


 

이 책에서는 아주 장황한 방식으로 종이의 죽음이라는 말이 과장되었음을 보일 참이다. 종이를 잔뜩 머금은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종이에 작별을 고한다고 함은 어느 날 글쓰기를 익혔다는 이유로 말하기를 멈춘다는 말과 비슷하다.” 

 

이 책에서 나는 종이가 불러일으키는 거대한 비애감과 옛날 종이를 그리워하는 향수의 존재를 인지한다. 예전 종이의 두께감과 묵직함, 젊음의 이상이 담긴 너덜너덜해진 포스터들. 우리의 역사를 대변하는 이런 종잇조각이 점점 낡고 희귀해진다는 것. 한편 무엇보다도 종이의 역설, 종이의 쓰임에 내포된 아이러니, 이중적 의미, 가치, 광활한 범위와 규모를 다룰 참이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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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퍼 엘레지』 서평단 모집 상세 내용


 

하나, 『페이퍼 엘레지』 서평단 모집 포스팅을 개인 블로그에 스크랩 한 뒤, 읽고 싶은 이유 간단하고 성실하게 적어서 스크랩 링크와 함께 댓글로 올려주시면 응모가 완료됩니다.


둘, 응모 기간 2014년 9월 22일(월)부터 9월 28일(일)까지 입니다.


셋, 총 추첨인원 10명입니다. (최종 응모자 수에 따라 추첨인원이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넷, 서평단 발표일 2014년 9월 29일 월요일입니다.


다섯, 서평기간은 10월 6일(월)부터 10월15일(수)까지 10일간입니다.


마지막, 첨된 서평단 분들은 서평기간인 10일간 예스24 개인 계정으로 서평을 작성한 후, 『페이퍼 엘레지』 서평단 발표 포스팅에 예스24 개인 블로그 및 그 외 블로그나 외부 채널 등에 남기신 서평 링크를 댓글로 달아주셔야 최종 서평이 완료됩니다.


 

※ 해당 기간 안에 서평을 작성하지 않을 시,

다음 서평단 모집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



 
 
 

 

 

미국에서 25년 간 『사이언틱 아메리칸』지의 수학 칼럼 편집 및 퍼즐 제작자로 활동하고, 루이스 캐럴 연구가로 유명한 마틴 가드너는 앨리스 2부작(『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은 어린이들이 읽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책이라고 말했다. 일관성 없는 줄거리와 갑작스런 전환 때문에 독서 의욕을 잃게까지 할 수 있다. 더구나 작가의 해학과 역설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지식 또한 필요하다.

 

 

 

 

 

 

 

 

 

 

 

 

 

 

그래서 마틴 가드너는 1960년 ‘주석 달린 앨리스’를 처음 냈고, 1990년 ‘좀 더 주석 달린 앨리스’를 냈다가 2000년 결정판 ‘앨리스’를 출간했다. 이 결정판은 북폴리오에서 번역돼 나왔다. 꼼꼼한 주석뿐만 아니라 존 테니얼의 원본 삽화와 근래에 발견된 그의 연필 스케치 그리고 존 테니얼의 반대로 『거울 나라의 앨리스』 첫 번째 판본에 실렸다가 삭제된 ‘가발을 쓴 말벌’이 수록되어 있다. 마틴 가드너의 『앨리스』 결정판은 앨리스 마니아가 꼭 읽어야 하는 책이었으나 현재 절판되었다.

 

 

 

 

 

 

 

 

 

 

 

 

 

 

 

마틴 가드너는 20대가 돼서야 앨리스 2부작의 매력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그 후, 『사이언틱 아메리칸』에 수학 퍼즐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역시 수학 퍼즐이나 마술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루이스 캐럴에게 정신적인 친밀감을 느꼈다. ‘좀 더 주석 달린 앨리스’를 발간한 지 6년 뒤에 가드너는 ‘앨리스’의 작가 루이스 캐럴이 아닌 ‘수학 레크레이션 전문가’ 루이스 캐럴를 소개하는 책을 쓰게 된다. 책 제목은 『The Universe in a Handkerchief

: Lewis Carroll’s Mathematical Recreations, Games, Puzzles, and Word Plays 』. 우리말로 직역하면 ‘손수건 속의 우주’이다.

 

 

 

 

『실비와 브루노, 결말 짓다』에 실린 삽화, 마인 헤어가 뮤리엘 양에게 안과 밖이 없는 손수건을 만드는 방법을 보이고 있다. 어린이들에게 특이하고 재미난 놀이나 게임을 알려주는 캐럴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삽화는 마틴 가드너의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27쪽에 인용함) 

 

 

‘손수건 속의 우주’는 루이스 캐럴의 또 다른 작품 『실비와 브루노』의 속편 『실비와 브루노, 결말 짓다』에서 나오는 안과 밖을 구별할 수 없는 손수건을 의미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마인 헤어라는 교수가 뫼비우스의 띠를 설명하면서 이와 유사한 3차원 단면을 만들었는데 ‘포추나터스의 지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것으로 전 우주를 담을 수 있다고 한다.

 

 

 

 

 

루이스 캐럴은 앨리스 2부작뿐만 아니라 『실비와 브루노』『실비와 브루노, 결말 짓다』『스나크 사냥』 같은 소설을 남겼다. 이 세 작품은 앨리스 2부작의 명성에 비해 국내에 덜 알려져 있지만, 수수께끼 시, 언어유희, 수학 퍼즐 등을 풍부하게 담고 있는 걸작이다. 생전 캐럴은 『실비와 브루노』가 자신의 역작이라고 생각했으며 지금도 앨리스 2부작과 마찬가지로 캐럴 연구가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는 텍스트이다.

 

 

 

 

 

 

 

 

 

 

 

 

 

 

 

 

마틴 가드너의 『The Universe in a Handkerchief』는 캐럴이 쓴 소설, 편지, 각종 팸플릿에 찾아낸 각종 수학 퍼즐, 수수께끼, 마술 등 흥미로운 내용을 소개한다. 단순히 캐럴의 삶을 조명했다기보다는 그동안 앨리스에 가려진 캐럴의 수학적 재능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국내에 번역된 책의 제목이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푸른미디어, 2000년, 절판)이다. 국내에 출간 당시, 책 제목을 원제 그대로 옮겨 썼다면, 이 책이 루이스 캐럴에 관한 내용을 다룬 건지 독자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 때 『실비와 브루노』가 아직 번역되지 않았으니까. 『실비와 브루노』는 속편과 함께 2011년에 페이퍼하우스에서 최초로 출간되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캐럴의 소설이기에 출간 소수의 캐럴 마니아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으나 어느새 이 책도 품절되었다.

 

 

 

 

 

 

마틴 가드너의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그동안 캐럴의 전기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흥미롭운 내용이 가득하다. 수학 퍼즐뿐만 아니라 그가 어린이들을 위해 만든 단순한 오락에서 암호와 농담이 들어 있는 수수께끼 시와 편지 내용을 소개한다. 앨리스를 즐겨 읽은 독자라면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에필로그에 나오는 시에 캐럴이 암호를 숨겨 놓은 사실을 알 것이다. 각 행의 첫 번째 글자들을 모으면 캐럴이 좋아했고, 앨리스의 실제 모델인 소녀의 이름이 된다. 캐럴은 이와 유사한 형태의 시를 자주 쓰곤 했다. 그리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미친 모자쟁이가 내는 수수께끼는 답이 없는 걸로 유명하다. “까마귀와 책상이 같은 점이 무엇일까?”

 

 

 

 

 

캐럴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는데 내성적인 성격에다가 말더듬이였다. 그러나 그는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능력은 있었다. 손수건과 냅킨으로 다양한 물체를 접을 수 있는 방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그가 만든 종이 딱총 접는 법은 종이접기를 꽤 해본 사람들이라면 알만한 단순한 접기 방식이다. 나는 초등학생 때 캐럴이 만든 방법처럼 종이 딱총을 접어본 적이 있었다. 오래 전부터 이런 단순한 종이 접는 법을 캐럴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랍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수학 퍼즐리스트의 양대 산맥인 샘 로이드(1841~1911)와 헨리 듀드니(1857~1930)를 꼽으며 그들의 계보를 이은 사람이 마틴 가드너이다. 그러나 세 사람 이전에 캐럴은 이미 자신만의 수학 퍼즐을 만들고 있었다. 퍼즐리스트로서의 업적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

 

 

 

 

 

 

 

 

 

 

 

 

 

 

 

 

그가 만든(혹은 오래전에 알려진 문제를 그가 문서로 언급한) 문제들 중에 최근에 TV나 영화를 통해 알려져서 유명해진 것이 있다. 정답은 글 제일 밑에 있다.

 

양치기가 양, 늑대, 양배추와 함께 강을 건너야 한다. 양과 늑대를 남겨두면 늑대가 양을 잡아먹고, 양과 양배추를 남겨두면 양이 양배추를 먹는다. 전부 다 무사히 가지고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캐럴의 문제는 양치기, 여우, 거위, 옥수수 자루가 등장한다. 무한도전 스피드 특집에서 엘리베이터 문제로 나왔으며 그 이전인 2007년에 개봉한 스페인 영화 ‘페르마의 밀실’에 먼저 나왔다.

 

 

 

 

 

캐럴은 20대 초반에 미로도 만들었다. 도대체 캐럴의 재능은 어디까지인가? 이 책에 수록된 캐럴의 미로는 상당히 복잡하다. 단 한 사람의 머리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결정판 『앨리스』에 비해 분량은 얇지만, 난이도 높은 캐럴의 수학 퍼즐과 문제들을 수학을 어려워하는 독자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역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캐럴에 대한 관심과 전문 연구가 부족한 시기에, 그것도 마틴 가드너의 결정판 『앨리스』보다 먼저 소개되었다는 점에서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국내 캐럴 마니아라면 읽을 가치가 높은 책이다. 만화, 영화, 축약본 등 숱한 앨리스 텍스트 때문에 제대로 읽지 않고도 다 안다고 착각하는 독자들에게 진짜 앨리스, 아니 앨리스의 작가 루이스 캐럴을 즐겁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앨리스와 캐럴을 다시 만나는 길을 이제 찾기 힘들어졌다. 마틴 가드너의 결정판 『앨리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그리고 『실비와 브루노』까지 서점에 구하기 힘든 책이 되었다.

 

 

 

 

 

 

 

 

 

 

 

 

 

 

 

 

 

그나마 캐럴 마니아에게 유일한 위안이 된다면 캐럴의 『스나크 사냥』(이북코리아, 2013년)은 전자북으로 읽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참에『스나크 사냥』도 단행본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  양치기, 양, 늑대, 양배추 문제 정답

 

 

 

 


 



 
 
 

 

 

 

 

 

 

 

 

 

 

 

 

 

 

 

 

 

“요즈음은 턱없이 분주한 세상이올시다. 기실 나 남 할 것 없이 몸보다는 마음이 더 분주한 세상이올시다.”  (김용준, 「매화」 중에서, 『마음을 비우는 지혜』 303쪽)

 

 

『근원 수필』를 쓴 김용준 선생은 황폐한 일제 강점기에 이렇게 매화에 대해서 이토록 발랄하고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여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매화의 적막한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면 가난한 살림도 운치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생의 친구는 한가롭게 매화 구경을 하는 선생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바쁜 세상에 꽃구경을 하는 선생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선생은 매화를 바라보는 여유가 없는, ‘냉회(冷灰) 같이 식어버린 우리네 마음’을 무척 안타까워했다. 선생이 살았던 조선이나 지금이나 세상은 여전히 분주하기만 하다. 선생의 글을 읽으면 ‘우리들은 무엇을 위해 이다지도 바빠졌는가’를 조소하게 된다.

 

옛날 선비들은 자연을 벗 삼아 욕심을 버리고 더 나은 삶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 여유로운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풍족한 속세의 기억을 잊지 못해 시골로 낙향하고 싶은 마음을 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도시에서 점점 꽃과 나무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워진다. 꽃과 나무가 있었던 자리에는 어느새 콘크리트로 된 길바닥 위에 회색빛 건물들이 우뚝 서 있다. 이런 곳에서 살수록 우리는 자신만의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방법을 잊고 만다. 나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하루만 스마트폰 전원을 끄고 것도 어려워졌다. 왠지 자기 혼자 세상에서 뒤처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제는 독서마저도 하기 힘든 분주한 세상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책 읽을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책 읽을 수 있는 자신만의 시간이 없을 뿐이다. 24시간 중에 나 혼자 여유로운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 빠른 삶의 속도에 이끌리지 않고, 잠시 혼잡한 일상을 제쳐둘 수 있는 지혜를 잊어버린 채 사는 건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

 

 

 

 

 

 

 

 

 

 

 

 

 

 

 

 

 

정민 교수의 『마음을 비우는 지혜』(솔출판사, 1997년, 절판)는 삶의 근심을 잊고, 생활 속에서 소박한 기쁨과 만족을 누리고 싶은 독자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우리 식의 짧은 격언에 해당되는 ‘청언(淸言)을 한문 원문과 함께 우리말로 옮겼다. 이 책은 정민 교수가 최초로 펴낸 문장 모음집이다. 이 책을 펴내기 전에 정민 교수는 『한시 미학 산책』(초판: 솔출판사, 1996년/개정판: 휴머니스트, 2010년)으로 대중들에게 한시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시작했을 무렵이다. 이미 1993년에 정민 교수는 한시와 평설을 함께 엮은 『꽃 피자 어데선가 바람이 불어와』(교학사, 1993년, 절판)의 공동저자로 참여했지만 정민 교수 개인의 평설을 곁들인 형식으로 쓴 첫 번째 문장 모음집은 『마음을 비우는 지혜』이다.

 

 

 

 

 

 

책에 수록된 청언소품들은 중국의 명말청조 시기 때 나온 홍자성의 『채근담』, 여곤의 『신음어』, 장조의 『유몽영』 등에서 가려 뽑은 것이다. 특히 『유몽영』은 『생활의 발견』을 쓴 중국의 수필가 린위탕이 최고의 찬사를 보낸 책이다. 

 

정제되고 간결한 글이지만 격조 있고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어 옷깃을 여미고 곱씹게 만든다. 때론 그윽한 수묵담채화를 떠올리는 영상이 문장 속에 농축돼 있다.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삶의 정취, 세심한 관찰력에서 현현하는 인생의 참 뜻,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 독서 취미에 이르기까지 주제와 소재의 폭은 실로 다양하다.

 

바쁘게 사는 우리들을 부럽게 만드는 몇 대목만 읽어보자. 자연이 준 최고의 선물을 그냥 눈으로 바라보기가 아깝다. 흥취를 돋우는 맛 좋은 술이 있어야 한다.

 

누각 위에서 산 구경하기, 성 머리에서 눈 구경하기, 등불 앞에서 달 구경하기, 배 위에서 노을 구경하기, 달빛 아래 미인 바라보기, 이 모두 특별한 운치가 있는 정경들이다. (『유몽영』에서 인용, 54쪽)

 

옛 선비들이 할 일이 없어서 한가한 것이 아니다. 김용준 선생이 할 일이 없어서 매화 구경을 하는 것이라고 선생의 친구들은 비웃었다. 하지만 한가로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속세로 인해 피폐해진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 단지 놀기 위해서 한가한 생활을 원한다면 그건 소인의 한가로움이다. 

 

사람이 한가함보다 즐거운 일은 없다는 말은 아예 할 일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가하면 책을 읽을 수가 있고, 명승을 찾아 노닐 수도 있으며, 유익한 벗과 사귀기도 하고, 술을 마실 수도 있고, 책을 저술할 수도 있다. 천하의 즐거움 가운데 이보다 큰 것이 있으랴. (『유몽영』에서 인용, 98쪽)

 

일본의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는 스무 살 전후는 시간을 아껴 공부해야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서 1년 유급을 해서 책을 읽었다고 한다. 옛날 어르신들도 젊은 시절에 학문 연마하기 위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젊은이는 세상일 때문에 책 읽기를 흐트러뜨려서는 안 된다. 마땅히 책을 읽어 세상일에 통달해야 한다. (『암서유사』에서 인용, 182쪽)

 

그러나 독서만이 삶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세상 견문을 넓히지 않고 책으로 배우기만 해서는 글을 쓸 수 없고, 좁은 식견을 가진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고 만다. 한창 많이 배울 수 있는 시기에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한 독서에 의존하면 정작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

 

한가로운 대화를 나누면 구설을 멀리할 수가 있다. 한가로이 독서하면서 적막함을 달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늙어 할 일 없는 사람에겐 으뜸가는 보약이지만 젊은이가 이를 배우려 하면 잘못이다. (『자술』에서 인용, 182쪽)

 

정민 교수의 『마음을 비우는 지혜』는 내면의 삶은 더 황폐해진 시대에 등불이 되는 문장들로 가득하다. 비록 그 등불은 켜지지 않은 상태이지만(현재 책은 절판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어두운 삶의 근심을 밝게 해주는 생명력이 문장 속에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가 선인의 지혜를 찾는다면 이 등불은 언제든지 켜지게 될 것이다. 선인들의 관심사가 지금 우리 고민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잘 들여다보면 현실의 이야기가 옛 사람들 이야기와 포개지는 지점이 있다. 『마음을 비우는 지혜』라는 등불을 켠다면 시대를 초월하는 사람들 내면 풍경의 보편성, 그리고 지금 사람들에게도 와 닿는 옛사람들의 생각을 훤히 볼 수 있다.


 



 
 
 

 

 

 

 

 

 

 

성(性)에는 항상 권력관계가 존재해 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더 힘없고 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피해자라는 것이다. 특히 경제적 권력관계에서 성적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피해자는 법적 권리를 보장받으며 가해자는 처벌된다’는 평범한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등 유명 자기계발서를 낸 ‘샘앤파커스’가 수습사원을 성추행한 일로 시작한 상무를 복직시킨 결정은 여전히 직장 내 여성노동자들이 성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문제의 상무는 업무력 테스트를 빙자해 정규직 전환을 앞둔 수습사원들에게 술자리를 요구했고, 심지어 자신의 오피스텔로 데려가 옷 벗을 것을 요구하면서 성추행을 저질렀다.

 

갑을관계의 부당성이 성범죄 영역에서 드러나는 것이 직장 내 성추행, 성폭행이다. 비정규직 여성이 보호받지 못하는 이유는 지위 관계가 전제되는 직장의 특성상 갑과 을이 존재하고, 이들이 ‘을’이기 때문이다. 작년 온 나라를 들끓게 하였던 ‘윤창중 사태’를 보도한 뉴욕타임스는 “직장에서 남성 상사들이 여성인 부하 직원들을 술을 핑계로 괴롭히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한국의 풍토에도 부분적인 이유가 있다”라고 지적한 적이 있었다.

 

‘비정규직’과 ‘성범죄’는 어떠한 고용 구조와 환경에서 발생하느냐에 따라 해당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큰 차이가 있다. 비정규직은 항상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차별적 조건에서 일해야 한다. 대개 이들에겐 노조라는 울타리가 없어서 부당한 일이 생겨도 호소할 곳이 없다.

 

직장 내의 갑은 비정규직의 ‘불안’을 볼모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그들은 승진 혹은 정규적 전환 조건이라는 미끼를 내세워 부하 여직원들의 옷을 벗게 만든다. 그런데도 기업은 그들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폭력을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눈 감아버린다. 정규직은 법에 호소할 안전장치라도 있지만 비정규직은 무방비 상태이다. 그들에겐 더 가혹하고 비열한 권력의 종속관계가 존재한다. ‘을’의 입장에 있는 피해자들은 문제 제기를 할 경우 바로 해고되거나 직장 내 진급이 어려워지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반면, 권력형 성폭력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이 사실을 알리겠다”라고 협박한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협박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부조리극을 가능케 하는 것은 성폭력 피해자를 비난하는 왜곡된 성의식 때문이다. 피해자를 비난하는 비상식적인 인식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아주 기초적인 상식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재판부의 ‘성편향적인 객관성’에 근거한 판결은 용기 내어 고소하고, 고통스러운 수사와 재판 과정을 겪어낸 피해자들을 절망케 한다. 최근에 성폭력을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로 보는 판결들이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폭행과 협박에 얼마나 저항했는지를 피해자가 증명해내야 하는 ‘최협의설’이 적용된다. 서울서부지검은 문제의 상무가 옷을 벗으라는 요구를 하고 키스를 한 점 등은 인정하지만, 피해자의 저항이 없어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이런 판결은 반(反)성폭력 운동의 흐름에 역행하는 결과이다.

 

우리나라 법은 성폭력이라는 끔찍한 범죄 상황에서 피해자에게 ‘필사의 저항’을 요구한다. 저항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지 그렇지 않은지의 여부는 피해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름에 불구하고, 법은 ‘목숨을 건 사투’ 아니면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는 이분법으로 성범죄 여부를 판단한다.

 

어느 경우든 갑의 부당한 횡포와 우월적 지위의 남용에 의한 권력형 성범죄는 근절되어야 한다. 이 비인도적인 범죄를 침묵하는 출판사는 끔찍한 범죄를 묵인하고 있는 공범일 수밖에 없다. 사내 성폭력을 눈 감는 출판사에 나온 책을 불매 운동을 한다고 해서 끝날 일은 아니다. 언론에 노출되는 성범죄를 보면서 ‘나와는 상관없다’고 거리두기를 하는 우리의 인식이 바꿔야 한다. 성범죄는 상대적으로 권력 있는 사람이 약자에게 행사하는 성적 폭력이다. 우리가 성범죄에 둔감할수록 정당한 문제 제기도 어려운 비상식적인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맥거핀 2014-09-18 12:21   댓글달기 | URL
책 만드는 사람들이 어찌 이런 짓들인지...(책 만든다고 그렇게 크게 다를 바는 없겠습니다만 그래도요.)

올려주신 성명문을 읽어보니 가해자 당사자도 그렇고, 회사 전체적으로도 문제가 많군요. 어떤 책을 냈나 살펴보니 그렇게 제가 좋아하는 류의 책은 없지만 불매운동이라도 해야하는 거 아닌지..

cyrus 2014-09-18 22:21   URL
오늘 해당출판사가 자사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어요. 그런데 출판사 공식 홈페이지에 사과문은 올리지 않았어요. 어쨌든 출판사측은 이번 사건에 대해 해명하고 있는데 여전히 반응은 썩 좋지 않더라고요. 동종업계 출판업자들도 실망스럽게 생각하고요.

올해 출판업계에 연이어 좋지 않은 소식이 터지네요. 사재기 의혹이 있는 출판사 몇 군데 나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이런 불미스러운 일까지 터졌으니 말이죠... 하필이면 문제의 출판사들이 자기계발서를 펴내는 곳입니다.

마태우스 2014-09-18 23:46   댓글달기 | URL
글도좋지만 무엇보다 제목이 멋지네요 자사 베스트셀러로 샘앤파커스의부도덕을 비판하는제목이라니요 마니배우고가요

cyrus 2014-09-20 23:38   URL
안녕하세요. 마태우스님. 부족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