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브 - 영국식 잉여 유발사건
오언 존스 지음, 이세영 외 옮김 / 북인더갭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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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야생의 하층 계급

 

“나는 저 기계를 타고...” 시간 여행자는 램프를 높이 들어 올리며 말했다. “시간을 탐험할 작정입니다.” 시간 여행자는 타임머신을 개발하고 인류의 미래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자 길을 떠난다. 그는 이미 802701년의 세계를 간 적이 있었다. 낙원과도 같은 원시적인 자연 속에서 사는 인류의 후손을 조우한다. 하지만 80만 년 뒤의 미래는 시간 여행자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암울했다. 알고 보니 인류의 후손은 두 개의 종으로 따로 진화했다. 인류는 퇴화한 두 종족 엘로이와 몰록으로 나누어져 있다. 엘로이는 지상에 사는 아름다운 종족이지만, 몰록은 어두컴컴한 지하에서 사는 잔인한 종족이다. 그들은 엘로이를 잡아먹을 정도로 공격적이다. 몰록의 습격에 가까스로 살아남아 원래 세계로 돌아온 시간 여행자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생각을 포기하지 않았다. 시간 여행자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인류에게서 희망을 찾기 위해 시간 여행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번에 그가 간 곳은 201X년의 영국. 시간 여행자는 상당히 문명화된 영국의 모습에 깜짝 놀란다. 하늘 위에 솟은 건물들과 도로 위를 지나가는 자동차 행렬 그리고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다니면서 걷는 사람들. 지적인 능력이 상실된 802701년의 세계와 전혀 다른 풍경이다. 이곳이 바로 시간 여행자가 찾고 싶었던 안락한 진보 문명의 모습이다.

 

그러나 시간 여행자의 기대는 오래가지 못한다. 201X의 세상을 좀 더 알아보고 싶어서 신문을 읽게 되었는데 충격적인 기사 내용을 발견한다. “이 나라의 가장 깜깜하고 어둑한 구석에 존재하는 인간 이하의 계층”, “야생의 하층 계급” 기자들이 비난하는 하층 계급은 누구일까. 이런 화려한 세상에 어둑한 지하 세계에서만 사는 야생의 몰록이 여전히 존재한단 말인가.

 

시간 여행자는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물어본다. “이보시오, 여기 이 신문에서 말하는 하층 계급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오?” 그러자 행인은 벌레 씹은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한다. “음. 하층 계급 말이오? 그들은 사회를 좀먹는 가난한 사람들이오. 그런 놈들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구제불능의 쓰레기들이오.”  자신의 답변을 이해하지 못한 시간 여행자의 표정에 행인은 말을 계속한다. “당신 혹시 웰스의 『타임머신』이라는 소설을 읽어봤소? 그 내용에 지하 세계에 살면서 엘로이를 잡아먹는 몰록이라는 흉측한 종족이 나오잖소. 지금 영국에 있는 하층계급을 몰록이라고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오.”

 

 

 

 Scene #2  “차브를 그냥 걷어차버리세요.”

 

2011년, 영국의 정치 평론가 오언 존스는 웰스의 소설에 나오는 몰록을 조명한다. 21세기의 몰록은 엘로이의 살을 뜯어 먹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이 자신들을 위협하는 악마 혹은 괴물로 취급한다. 21세기의 몰록은 바로 하층 노동계급을 가리키는 ‘차브(Chavs)’이다. 그러나 차브는 소설 속 몰록처럼 공격적인 존재가 아닌데도 영국 사회는 차브를 혐오한다.

 

차브를 싫어하는 이들은 넉넉한 재산을 모을 수 있는 직업과 집을 가진 중간계급이다. “우리는 이제 모두 중간계급”(We're all middle class now)라는 정부의 주문을 믿는다. 정부의 복지예산을 축내는 차브들을 미워한다. 그들의 손에 들어가는 복지예산에 자신들이 낸 세금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피땀 같은 재산이 야금야금 그들에게 뺏기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가끔 차브들은 금전을 노리는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마치 오랫동안 굶주린 몰록이 엘로이를 습격하는 것처럼. 차브를 싫어하는 중간계급은 21세기의 엘로이다. 엘로이의 우두머리가 속한 보수당과 우익 언론들은 중간계급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계급전사’를 자저한다. 몰록과 향해 언제든지 공격할 자세를 갖추었다. “차브들을 그냥 걷아차버리세요.”

 

차브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그들도 한때 평범한 직업을 가진 인간이었다. 2005년에 ‘차브’가 처음으로 콜린스 영어사전에 등재했을 때만 해도, 그들은 ‘캐주얼 스포츠 복장을 한 젊은 노동계급’이었다. 그러나 그 평범한 의미 속에는 차브를 비하하는 중간계급의 시선이 숨어 있다. 캐추얼 스포츠 옷을 직접 사 입을 수 없는 가난한 노동계급의 무능함을 조롱하는 것이다.

 

차브가 비천한 하층 계급으로 전락하기 시작한 시기는 1979년. 이때 집권한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는 과도한 복지예산 문제로 병든 영국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시장경제라는 처방 약을 내밀었다. 대처는 시장경제 중심의 경제개혁을 단행하기 위해서 영국을 병들게 한 세균으로 노동계급을 지목했다. 본격적으로 노동계급을 향한 대처의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사회악이 되어버린 노동계급은 노동을 회피하면서 과도한 임금과 복지예산에 집착하는 집단으로 인식되었다. 대처리즘은 성공적이었다. 정부의 임금 삭감에 맞서서 파업을 일으킬 수 있는 막강한 위력을 가진 노조 세력은 와해하였다. 광산업과 제조업이 붕괴하여 그들의 일자리마저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 급작스런 시장경제 체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노동계급은 빈곤한 하층계급에 머무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노동계급을 대변하는 노동당의 입지를 줄이는 데 성공한 보수당은 더욱 기세가 등등했다. 노동계급이 더 이상 중간계급으로 오를 수 없도록 계급상승의 사다리마저 부수었다. 노동계급은 낙후된 슬럼을 벗어나지 못한 채 사회의 골칫덩어리로 멸시받았다.

 

 


 Scene #3  누가 진짜 괴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시간 여행자 아니 웰스는 계층 갈등이 심화한 암울한 미래상을 가장 먼저 목격했다. 엘로이와 몰록. 그들은 극심한 빈부격차로 인해 갈려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였다. 80만 년 뒤에 등장하게 될 엘로이와 몰록의 직계 조상은 오늘날 영국의 중간계급과 노동계급이다. 노동계급은 중간계급의 세상에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 “우리는 모두 중간계급”이라는 사회적 결계는 반사회적 악마가 되어버린 노동계급의 접근을 차단한다. ‘중간계급 대 차브’라는 양극 구도의 전쟁은 좀처럼 종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 번 차브로 낙인찍힌 노동계급은 영원한 차브로 살아야 한다. 차브는 곧 ‘인생 실패자’라는 의미로 귀결된다. 이것은 시장경제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한 ‘미생’을 향한 ‘완생’의 조롱이다.

 

그러나 모든 노동계급이 게으르고, 폭력적이고, 무능한 것은 아니다. 빈부 격차가 갈수록 심해지고, 사회적 약자를 의도적으로 왜곡해서 비난하는 사회적 인식이 더해지면 21세기의 몰록은 점점 많아질 것이다. 계층 간 이동이 희박해지고, 계층 갈등이 커질수록 사회적 연대감은 줄어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계층 전쟁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대처의 등장으로 부활한 보수당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의 불만을 억누를 수 있는 차브라는 이름의 희생양을 만들었다. 동시에 희생양을 노리는 국민은 자신들이 “우리는 모두 중간계급”이라는 부르주아의 울타리 속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웰스의 소설에서 묘사된 80만 년의 세계에서 엘로이는 몰록에게 공격을 당하지만, 2014년 지금의 엘로이는 몰록을 공격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동계급을 인간 이하의 괴물로 몰아붙이는 엘로이야말로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괴물이다. 과연 누가 진짜 괴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도 영국의 현실처럼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절대로 장담할 수 없다. 복지 문제를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 이념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상은 심화하고, 사회복지망에서 벗어난 사회적 약자들의 가난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우익의 왜곡된 시선이 점점 많아진다. 이런 심각한 상황 속에 영화 ‘생활의 발견’에서 나온, 이제는 진부한 명대사를 곱씹어 본다. 사람 되는 것은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 부르주아의 괴물이 선량한 타인마저 괴물로 둔갑시키는 세상. 정부의 허황한 주문에 세뇌당한 중간계급의 눈에는 힘없는 노동계급이 ‘차브’라는 괴물로 보일 뿐이다.  

 

 

 

※ 글이 시작되는 첫 문장은 허버트 조지 웰스의 『타임머신』(열린책들)에서 인용, 28쪽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18 22:52   댓글달기 | URL
<타임머신>을 상당히 흥미롭게 봤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게 더 잘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왜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는 점점 더 많아지는걸까요. 말씀대로 괴물은 되지 말아야지 싶습니다. 사실은 정말 `사람`이 되어야죠. 그래야 그나마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곳도 좀 살만한 곳이 되겠지요?^^

qualia 2014-12-19 01:11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도 영국의 현실처럼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절대로 장담할 수 없다.”

→ 제 생각엔 영국보다 한국이 더 비관적인 상황에 이미 빠져 있다고 봅니다. 다만, 한국은 영국과는 달리 계층/계급간 대립의 형태보다는 지역/부족간 대립의 형태로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죠.

제 판단엔 경상부족과 전라부족의 반목/대립/대결은 점점 회복불능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고 봅니다. 여기에는 근본적으로 남한국과 북한국이라는 더 큰 단위의 부족 대결이 덧씌워져 있죠. 이 비굴하고 무능한 민족/부족들은 결코 통합/통일을 이룰 수 없으리라는 게 제 판단입니다. 결국 자의든 타의든 멸망의 길을 갈 것입니다.

원인이 무엇일까요? 제 판단엔 1차적으로 신라가 3국(3부족)을 통일하면서 한민족의 역사는 꼬이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그때부터 에미와 아비를 죽인 반역자를 친아버지로 섬기는 기구한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 기구한 역사가 2014년 박근혜 정권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죠.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 동족을 잡아먹을 수밖에 없는 동족포식종족은 동족살육의 기구한 역사를 쓰며 계속 연명해나가거나 멸종의 길로 가거나 두 가지 생존법밖에 없습니다. 바로 한민족이라는 종족의 길이죠.

경상부족과 전라부족을 모두 멸족시키고 남한국과 북한국을 멸망시키는 길밖에 없다고 봅니다. 한민족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살바도르 달리와 앤디 워홀.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바로 살아있는 동안 돈과 명성 모두를 움켜쥔 예술가다. 예술 활동과 상업 활동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작품을 여럿 남겼다. 이들은 예술계의 셀리브리티(celebrity, 유명인사)였다. 대니얼 부어스틴의 표현처럼 셀리브리티는 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진 ‘큰 이름’(big name)이다. (『The Image』, 1961년) 달리와 워홀은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셀리브리티들과 교류하고 대중문화를 화폭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지금도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큰 이름’으로 거론되고 있다.

 

달리는 셀리브리티나 스타와의 만남을 집착할 정도로 좋아했다. 그는 자신이 천재이자 위대한 왕이라고 생각했다. 허세 가득했던 화가는 자신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요구했다. 이런 달리의 태도에 그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달리의 초현실주의 회화에 큰 영감을 준 프로이트는 달리를 ‘미치광이’라고 생각했다. 냉담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달리의 ‘연예인병’은 죽을 때까지 버리지 않았다. 스페인의 포르트 리가트에 위치한 달리의 자택에 그를 흠모하거나 추종하는 유명 인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얼마나 그를 만나보고 싶었으면 비틀즈의 멤버 조지 해리슨은 달리가 자주 드나들던 식당까지 찾아갔을 정도였다. 아마도 달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자신을 보러 오는 순례객들을 만나는 시간에 희열을 느꼈을 것이다.

 

 

 

 

 

 

놀랍게도 달리와 워홀도 ‘스타 대 스타’로서 만난 적이 있었다. 말년의 달리는 겨울을 뉴욕에서 보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워홀의 명성을 모를 리가 없었다. 달리가 워홀에게도선물을 달라고 요구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워홀은 달리와의 만남을 싫어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달리 덕분에 다신 한번 자신이 대중에게 주목받을 수 있는 해줄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

 

 

 

 

 

 

 

1966년에 워홀은 뉴욕의 유명한 미술상 레오 카스텔리의 갤러리에서 개인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 여기서 전시됐던 설치물은 워홀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갤러리 안에 있는 것은 바로 헬륨 가스를 빵빵하게 채운 여러 개의 은빛 풍선들. 거대한 베개가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듯한 은빛 풍선들은 ‘은빛 구름’(Sliver Clouds)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갤러리에 떠다니는 은빛 풍선, 아니 은빛 구름들은 관람객들도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된 설치작품이었다. 관람객들은 은빛 구름을 마음껏 던지고, 공중에 띄울 수 있다. 자연스럽게 놀이공원에서 보던 헬륨 풍선이 떠올린다. 관람객들의 동심을 자극한다. 그렇지만 풍선은 언젠가 터지게 되어 있다. 공기가 빠지거나 터진 풍선은 덧없는 인생을 의미한다. 워홀은 현대적인 감각으로 색다른 ‘바니타스’(Vanitas)를 선보였다. 이 재미있는 설치작품 덕분에 워홀은 다시 한 번 모든 사람에게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워홀은 달리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카스텔리 전시회가 있기 1년 전에 워홀은 달리가 머문 호텔 방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 방 안을 떠다니는 은색 풍선들을 보게 되었다. 놀이공원에서 볼 수 있을법한 헬륨 풍선을 방 안에 놔두는 생각은 달리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다. 워홀의 헬륨 풍선 아이디어는 달리의 호텔 방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사고,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은 독특한 패션과 돌발 행동. 두 사람은 서로 자신들의 천재성을 알아봤을 것이다. 달리의 인기가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것처럼 그의 콧수염도 동반 상승했다. 양 끝이 위로 올라간 특이한 콧수염은 달리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지만, 원조는 독일의 황제 빌헬름 2세다. ‘카이저(Kaiser)수염’이라는 콧수염 스타일까지 유행했을 정도였는데, 독일의 남자들은 황제의 콧수염에서 위풍당당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황제의 콧수염은 권위적인 남성미를 부각시킬 수 있었다. 세상의 왕이 되고 싶었던 달리가 카이저수염을 길렀던 것도 이유가 있었다. 역시 달리는 자신을 유명하게 돋보이게 만들 줄 아는 뛰어난 전략가다.

 

워홀은 수염을 기르는 대신에 자신만의 패션 스타일을 시도했다. 검은색 선글라스에 가죽 재킷, 부츠를 선호했다. 그리고 파티에 참석할 때 가발을 착용했다. 달리처럼 워홀도 자신을 따르는 그루피(groupie, 열광적인 팬)들을 만나고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자신감이 카이저수염만큼 하늘 높이 솟아올랐던 달리와 정반대로 워홀은 은근히 소심한 성격이다. 자신과 관련된 과거를 밝히는 것을 거부했고, 심지어 성장 과정을 일부러 왜곡할 정도로 자신의 존재감을 완전히 드러나는 것을 싫어했다. 워홀의 스튜디오인 실버 팩토리(silver factory)에 그를 만나고 싶은 그루피와 셀리브리티들이 매일 드나들 정도로 워홀의 인지도는 거의 유명 연예인급이었다. 그가 늘 착용하는 선글라스는 단순히 연예인처럼 보이기 위한 필수 아이템이면서도 자신을 알고 싶은 대중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한 방어 수단이었다. 워홀은 늘 카메라를 항상 들고 다니면서 화려한 뉴욕과 셀리브리티들을 사진으로 찍어댔지만, 정작 자신은 카메라에 노출되는 것을 꺼렸다. 사진이 자신을 향해 있으면 손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달리와 워홀은 한 발 먼저 세상을 앞서갔고, 세상이 원하는 아이콘이 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도 그들의 명성은 회자되고 있다. 죽어서도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큰 이름'으로 남기는 데 성공했다.  몇몇 사람들은 그들을 돈을 밝히는 속물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특히 달리는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감당하기 힘든 문제의 인물이다. 그들이 그린 그림만큼이나 이 두 사람의 성격도 무척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 프리랜서 미술사가 캐서린 잉그램이 썼고, 앤드류 레이가 그린 달리와 워홀의 그래픽 평전은 분량은 가벼워 보여도 난해한 현대미술가 두 사람의 작품세계를 재미있고 쉽게 소개하고 있다. 영국 Laurence King 출판사의 'This is' 시리즈는 현재까지 달리, 워홀, 잭슨 폴록, 반 고흐, 폴 고갱, 프랜시스 베이컨, 앙리 마티스 편이 나왔다. 어젠다 출판사에서 고갱 편이 나올 예정이다. 현대미술 입문자라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지만, 아티스트의 개인적 삶보다는 작품 세계에 심도 있게 파고들고 싶은 독자에게는 썩 만족스럽지 않은 책이 될 수도 있겠다.

 

 

 

 

 

 

특히 『디스 이즈 워홀』에 바스키아에 관한 언급이 단 한 줄도 없다는 사실이 의아하다. '21세기의 검은 피카소'라고 불릴 정도로 낙서화를 현대미술의 한 주류로 끌어올린 바스키아는 워홀과 친분을 맺고 같이 작업을 했다. 워홀의 일기에 바스키아가 언급될 정도로 워홀을 언급할 때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될 인물이다. 워홀과 바스키아와의 관계를 좀 더 자세히 알려면 『바스키아의 미망인』(제니퍼 클레멘트, 자음과모음, 2003년-품절)과 Taschen 베이직 아트 시리즈에서 나온 『장 미셸 바스키아』(레온하르트 에머를링, 2008년, 마로니에북스)를 참고하면 좋다.

 

 

 

 



 
 
dolbit27 2014-12-16 11:34   댓글달기 | URL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책들을 많이 읽으시는군요 그 열정부럽습니다.

cyrus 2014-12-16 23:13   URL
반갑습니다.북플에 저보다 책 좋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
 

 

 

문예출판사 블로그 (알라딘 서재) 

http://blog.aladin.co.kr/703833143/728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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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문예출판사 페북지기 문예남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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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된 평화> 도서 요약 소개
: 자세히 보기 : http://blog.naver.com/imoonye/220176992434

전쟁은 총성이 없는 학교를 어떻게 병들게 하는가? 
마음이 병든 청소년은 무엇으로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가?


빌 게이츠가 추천하는 성장 소설 《분리된 평화》가 중요한 이유는 시대가 삶을 압도하는 공포와 압력으로 사람의 미래를 앗아갔을 때, 청소년들이 그들만의 닫힌 세계에서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으로부터 치유 받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는 총성이 울리는 전장은 없었지만 소년들은 언제든 ‘징집’될 수 있다는 이유로 미래를 꿈꾸지 못했고, 언제든 징집되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군대에 가지 못한다면 '군대에도 못가는'이란 낙인 때문에 일자리 조차 구할 수 없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 진 프릭스는 미래가 없는 소년들의 세계에서 결코 적이 아닌 친구들과 경쟁하고 질투하며 삶의 의미를 찾다 결국 가장 친한 친구 피니어스를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평생 후회와 분노에 갇혀 살 수 있었던 진 프릭스. 그러나 그는 죽음을 앞둔 피니어스가 자신을 이해하고 믿는다는 말에 힘입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 합니다. 

이처럼 소설은 우리가 시대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실수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지 않게 해주는 것이 우정과 같은 타인의 진심어린 배려임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2013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청소년 사망원인 중 자살이 가장 높습니다. 20, 30대의 사망원인 중에서도 가장 높은 것이 자살입니다. 《분리된 평화》의 '군대'가 지금 한국의 '입시'와 '취업'에 비교되는 것은 아닐까요? 이 책이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미래를 주고 그들을 다독여줄 필요가 있음을 알려주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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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는 문예출판사 페이스북 이벤트 페이지(http://goo.gl/gnWxhx)에서 하셔야 합니다.^^

 

 

 

 


 



 
 
 

 

 

안녕하세요. 과학도서 출판그룹 사이언스북스입니다. ^^


사이언스북스에서 제인 구달 신간, 희망의 씨앗』이 출간되었습니다.

얼마 전 방한으로 한국을 뜨겁게 한, '침팬치의 대모' 제인 구달의 신간으로

평소 제인 구달의 환경운동과 전작들을 읽어오신 분이나

자연과 생태계에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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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씨앗』


우리는 꽃과 나무와 함께 희망을 심는다!

침팬지의 대모, 세계적인 환경 운동가 제인 구달이 만난 

지구 식물들의 꿈과 희망, 그리고 지혜의 메시지

 

 

‘침팬지들의 대모’로 널리 알려진 제인 구달(Jane Goodall)은 80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쉬지 않고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 그리고 지구의 미래를 위해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 57년 전 아프리카에 찾아가 침팬지 연구를 시작했던 그녀는, 이제 전 세계의 동식물은 물론이고 그들과 공존하는 사회를 위해 행동하는 모든 사람들과 교감하는 환경 운동의 전도사가 되었다. 그녀는 그러한 경험들을 모아 인간과 자연이 함께 미래를 위해 나아가는 식생활을 제시했던 『희망의 밥상(Harvest for Hope)』, 여러 이유로 멸종 위기에 놓인 전 세계의 다양한 동물들과 그들을 보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데 모은 『희망의 자연(Hope for Animals and Their World)』을 저술해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번에 (주)사이언스북스가 출간한 『희망의 씨앗(Seeds of Hope)』은 제인 구달이 어린 시절에 성장했던 영국 본머스의 외할머니 댁 정원에서 시작해 9.11 테러의 현장이었던 세계 무역 센터까지 지구 곳곳에서 보고 들은 다양한 식물들의 경이로운 세계를 담았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지구의 여러 식물들이 우리 인간의 삶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렸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 책 속의 식물들은 아마존의 열대 우림들처럼 다양한 개발 사업이나, 세계 곳곳의 희귀종 난초들처럼 인간들의 욕심 때문에 멸종 위기에 처하기도 하지만, 영국의 큐 왕립 식물원이나 제인 구달이 설립한 환경 보호 단체인 ‘뿌리와 새싹’이 보여 주듯이 인간과 지구가 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주역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이 책에서 단순한 보호와 애호의 대상으로서의 식물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사회 속에서 언제나 함께 살아 숨 쉬는 식물들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서문을 쓴 세계적인 식물 연구가 마이클 폴란은 제인 구달이 동물들에게서 잠시 눈을 돌려 식물에 대한 책을 쓴 것은 “식물들에게 정말 좋은 소식”이라면서 그동안 동물에 비해 인간이 공감하기 어려웠던 식물의 세계를 소개할 제인 구달에 대한 큰 기대를 표하기도 했다.

 

제인 구달 박사는 이 책에서 우리와 뗄 수 없는 주식인 쌀과 간식인 초콜릿부터 특별한 선물로 전하는 난초들까지 다양한 식물들에 담긴 여러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소개하면서, 우리들 역시 그녀가 오래 전부터 몰입했던 식물의 흥미로운 세계에 빠져들도록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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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의 씨앗』 서평단 모집 상세 내용

 

하나, 『희망의 씨앗』 서평단 모집 포스팅을 개인 블로그에 스크랩 한 뒤, 읽고 싶은 이유 간단하고 성실하게 적어서 스크랩 링크와 함께 댓글로 올려주시면 응모가 완료됩니다.

 

둘, 응모 기간 2014년 12월 15일(월)부터 12월 21일(일)까지 입니다.

 

셋, 총 추첨인원 10명입니다. (최종 응모자 수에 따라 추첨인원이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넷, 서평단 발표일 2014년 12월 22일 월요일입니다.

서평단에 선정되신 분은 12월 25일까지 개인정보를 비밀댓글로 적어야합니다.

12월 25일 이후까지 확인이 안되면 선정이 자동취소됩니다.

 

다섯, 서평기간은 12월 26일(금)부터 1월 9일(금)까지 15일간입니다.

 

마지막, 첨된 서평단 분들은 서평기간인 15일간 알라딘 개인 계정으로 서평을 작성한 후, 『희망의 씨앗』 서평단 발표 포스팅 알라딘 개인 블로그 및 그 외 블로그나 외부 채널 등에 남기신 서평 링크를 댓글로 달아주셔야 최종 서평이 완료됩니다.


 

※ 해당 기간 안에 서평 및 서평완료 댓글을 작성하지 않을 시,

다음 서평단 모집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

 

 

 



 
 
 
땅을 여는 꽃들 문학과지성 시인선 459
김형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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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이 지났다. 동장군은 벌써 무섭게 우리를 밀어붙인다. 겨울에 돌아다니지 말고 겨울잠이나 자는 게 최상책이라는 걸 실감하고 있다. 올해의 마지막 달도 넘어가지 않았는데도 생명 움트는 소리를 엮어서 뿜어내는 봄기운이 그리워진다. 올해 겨울은 짧다던데 멀리서 느리게 오는 만큼 봄의 발걸음은 느릴 것이다. 누군가 걸어오는 발소리 같기도 한 봄비는 생명의 고동을 울리는 신호이다. 봄비 오는 소리라는 어감은 이래서 한결 다정하고 푸근하고 여유가 있다.

 

 


봄비 오시자
땅을 여는
저 꽃들 좀 봐요.

 

노란 꽃
붉은 꽃
희고 파란 꽃,
향기 머금은 작은 입들
옹알거리는 소리,
하늘과
바람과
햇볕의 숨소리를
들려주시네.

 

눈도 귀도 입도 닫고
온전히
그 꽃들 보려면
마음도 닫아걸어야겠지.

 

봄비 오시자
봄비 오시자
땅을 여는 꽃들아
어디 너 한번 품어보자.

 

 

(「땅을 여는 꽃들」 전문, 10쪽)

 


김형영 시인의 「땅을 여는 꽃들」은 우리가 평소에 보지 못했거나 무관심했던 부산한 봄의 태동을 묘사한다. 봄비는 땅에 가서는 “일어나!”라면서 주룩주룩 봄비는 땅을 간질인다. 겨우내 얼어있던 땅이 열리는 순간, 잠자던 어린 꽃들이 기지개를 켜면서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꽃들은 매서운 겨울을 이겨 낸 후 꽃망울을 터뜨리고,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새로운 꽃을 피우려고 낯설게 느껴질 법한 하늘과 바람과 햇볕의 숨소리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봄은 우리를 많이 기다리게 했지만 단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 요즘 세상에 우리는 느림의 미학이나 미덕에 익숙지 못하다. 한때는 봄비 맞으며 걷던 낭만도 있었다. 옛날 선비들은 다정한 벗이라도 불러 한 잔 술을 나누며 정담에 젖는 운치를 즐겼다. 우리는 봄이 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신비스러운 자연의 몸단장 채비를 눈으로 확인하는 여유를 잃어버렸다. 시인은 자신을 기다리는 우리를 위해 약속을 지킨 봄에게 화답하기 위해 봄비 오는 날에 맞춰 땅에서 솟아나는 꽃들을 품어본다.

 

 


내가 날마다 오르는 관악산 중턱에는
백 년 된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요
팔을 다 벌려도 안을 수가 없어서
못 이긴 척 가만히 안기지요.
껍질은 두껍고 거칠지만
할머니 마음같이 포근하지요.

 

소나무 곁에는 벚나무도 자라고 있는데요
아직은 젊고 허리가 가늘어서
내가 꼭 감싸주지요.
손주를 안아주듯 그렇게요.

 

안기고 안아주다 보면
어느새 계절이 바뀌고
십 년도 한나절같이 훌쩍 지났어요.
이제 그만 바위 곁에 앉아
쉬었다 가는 게 좋겠지요.

 

 

(「쉬었다 가자」 전문, 18쪽)

 


시인은 모든 자연을 안아준다. 차별하지 않고, 더불어 껴안는다. 자연을 볼 수 있을 만큼 맘껏 보고, 자연을 들을 수 있을 만큼 맘껏 듣고, 자연을 말할 수 있을 만큼 맘껏 말하는 시인의 태도는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다. 시인은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만물의 변화 속에 아름다운 공평함을 발견한다. 관악산의 터줏대감이라 할 수 있는 소나무는 벚나무를 위해 자리를 내어준다. 벚나무의 향긋한 봄 내음은 사시사철 녹음을 유지하는 소나무에 비하면 이 세상에 잠깐 머물다가 지나가는 존재뿐인데도 말이다. 관악산을 지나가는 시인은 소나무와 벚나무가 너무나 기특해서 사랑스럽게 안아본다. 함께 사는 세상이다. 공생하는 관계일 뿐이다. 자연의 영성은 누구에게나 살 수 있도록 포근하고 너그럽게 해준다. 시인도 자연의 영성을 온몸으로 느껴본다.

 

 


운명을 견뎌내느라
꿋꿋이 서 있는 너를 볼 때마다
내 팔다리는 가늘어지고
내 생각은 너무 가벼워
몸 둘 바를 모르겠기에
나는 때때로 네 앞에서 서성거린다.
너를 끌어안고서
네 안으로 들어가려고,
너를 통해서
온전히 네가 되어보려고.

 

 

(「나무를 위한 송가」 전문, 76쪽)

 


다른 삶으로, 바깥으로 이행하는 것을 두고 들뢰즈 ‘되기’(devenir)라고 부른다. ‘되기’는 차이를 가로지르는 실천적 활동이다. 자연의 영성을 감지한 시인은 ‘사람-이기’를 넘어 ‘나무-되기’(자연-되기)를 향해 시도한다. ‘사람-이기’였다면, 오랜 세월을 견디면서 자란 나무의 처지를 영원히 모른 채 살아갈 것이다. 내가 나무이고, 꽃이고, 향기가 될 수 있는데도 내가 누군지 모르는 헛것이 된다.

 

 


내가 나무이고
내가 꽃이고
내가 향기인데
끝내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고
헛것을 따라다니다
그만 헛것이 되어 떠돌아다닌다.

 

나 없는 내가 되어 떠돌아다닌다.

 

 

(「헛것을 따라다니다」에서, 90~91쪽)

 


‘나무-되기’는 서로 다른 두 대상(사람, 나무)의 차이를 뚫는 창조적 소통의 행위가 된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기’로만 남은 헛것은 세상이라는 자신의 영토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자이다. 자연을 거리낌 없이 안을 줄 아는 시인의 자세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자연의 영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합일하는 접점을 만든다. 자연과 인간, 그 두 주체가 하나로 엉키고 포옹하는 것. 그 과정에서 생의 본질을 찾을 수 있다. 모든 사물 속에 ‘어떤 최고의 생’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벤야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