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 춤추는 별을 그린 화가 내 손안의 미술관 5
토마스 다비트 지음, 노성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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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붕대를 감은 모습의 자화상」 (1889년)

 

 

미술에 관심 없는 사람 누구나 자신의 귀를 면도칼로 자른 화가가 반 고흐라는 사실을 안다. 그렇지만, 그들 중에 반 고흐가 자른 귀가 어느 쪽인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해 소동 이후에 그린 반 고흐의 자화상을 보자. 그림 속 반 고흐는 붕대를 머리에 두른 상태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반 고흐의 오른쪽 귀가 잘려나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잘려나간 귀는 왼쪽이다. 자화상은 거울에 비친 화가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거울상은 좌우가 반대로 되어 있다. 이 사실을 깜빡 잊은 채 붕대를 감은 모습의 자화상을 보면, 미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종종 잘린 귀의 위치를 착각한다.

 

이제 반 고흐의 잘린 귀가 어느 쪽인지 제대로 알았다면, 반 고흐를 소개한 책을 읽을 때 저자와 역자가 이 기본적인 사실을 제대로 아는지 꼼꼼히 확인해보자. 의외로 몇몇 책들이 반 고흐의 귀를 잘못 알려주고 있다. 내 손안의 미술관 시리즈 5권인 빈센트 반 고흐 : 춤추는 별을 그린 화가는 서양미술 사학자 노성두 씨가 옮겼다. 역자는 이주헌 씨와 더불어 대중적으로 미술을 알리는 데 노력하는 서양미술 사학자이며 이 책을 만든 출판사는 ‘RHK(랜덤하우스코리아)’. 독자는 역자와 출판사 이름만 믿고, ‘내 손안의 미술관시리즈를 신뢰한다. 한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판형에, 200쪽 넘지 않는 분량은 청소년 독자도 무난하게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반 고흐라는 사람이 누군지 제대로 알고 싶거나 그림을 공부하려는 독자에게 입문용으로 이 책을 권하고 싶지 않다.고흐의 연보(188)에 반 고흐가 오른쪽 귀를 잘랐다고 적혀 있다. 잘린 귀를 잘못 소개한 점은 독자에게 틀린 내용을 알리는 것과 같다.

 

이 책의 저자 토마스 다비트는 미술사를 전공한 방송작가이다. 그래서 반 고흐의 생애를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내용으로 풀어썼다. 첫 장부터 반 고흐가 보리밭에서 자살하는 장면을 먼저 보여주고, 그다음에 유년시절부터 시작해서 자살하기 직전의 삶을 소개했다. 반 고흐에 관한 책이 다 그렇듯이 다비트의 책도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토대로 화가의 삶을 추적하고, 복원한다. 반 고흐라는 한 사람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반 고흐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거주했던 지역의 배경까지 생생하게 묘사했다. 고흐의 그림들은 시대별로 크게 네덜란드 시절파리 시절아를 시절로 구분한다. 고흐는 한 지역에서 정착하기보다는 자신이 그리고 싶은 대상이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지 찾아다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그는 시대에 유행하는 미술사조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받으면서도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했다. 반 고흐가 여러 지역을 이동하면서 어떤 대상을 선호했는지, 또 그 대상을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했는지 그 변화를 확인하는 것도 반 고흐를 알기 위한 좋은 공부 방법이다.

 

차례

 

1. 권총으로 자신의 가슴을 쏜 화가

2. 아를의 다리
3. 아를과 프로방스
4. 고흐의 어린 시절
5. 아를에 도착한 고흐
6. 다리 위에서 단숨에 그림을 다섯 점이나 그린 고흐
7. 화랑 점원이 된 고흐
8. 기독교에 귀의한 고흐
9. 고흐의 노란 집
10. 농부 화가가 된 고흐
11. 파리에서 밝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고흐
12. 정신병자가 된 고흐

 

그런데 다비트는 무슨 의도에서인지 연대기 방식으로 글을 쓰지 않았다.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1장이 반 고흐가 자살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그런데 2장과 3장은 갑자기 반 고흐가 아를에서 머물었던 시절을 소개한다. 4장에 어린 고흐가 등장한다. 아를 시절은 반 고흐가 프랑스 남부 지방인 아를에 지내면서 자신만의 독창적 화풍으로 그림들을 제작했던 최고의 시기. 원숙기에 해당하는 시절을 앞부분에 배치한 저자의 서술이 다소 이른 감이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저자는 미술사 전공자답지 않게 고흐의 창작 시기를 무시하면서 뒤죽박죽 소개했다. 9장은 1888년 반 고흐가 폴 고갱노란 집에서 함께 살았던 시절에 관한 내용이다. 그러다가 10장에서는 1883년 네덜란드에서 지낸 시절로 이야기가 엉뚱하게 과거로 이어진다. 이 시기에 젊은 반 고흐는 농촌화가의 꿈을 키우면서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 반 고흐의 청년 시절을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소개한 저자의 서술이 만족스럽지 않다. 이 정도면 고흐 입문서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자격 미달이다.

 

저자가 과연 반 고흐를 제대로 공부했는지 의문이다. 고흐의 편지를 인용해서 이를 근거로 화가의 미술 세계를 조명하는 방식은 좋지만, 일부 문장만 가지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피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반 고흐를 공부하는 독자들도 경계해야 할 점이다. 일반적으로 책과 미디어에서는 반 고흐를 영혼의 내면까지 그려낸 화가라고 소개한다. 이 손발이 오글거리는 문구가 화가가 죽은 뒤 수십 년 뒤에 나왔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반 고흐는 죽고 나서야 미술평론가와 미디어의 후광에 힘입어 미치광이 화가에서 천재 화가’로 급부상했. 반 고흐가 특정 대상에 관한 느낌마저 화폭에 담으려고 했던 것은 맞다. 그렇다고해서 그가 눈앞에 보이는 대상의 실체를 무시했던 것은 아니다. 즉 대상을 직접 눈으로 바라보고 난 뒤에 그것에 대한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대상의 실체를 무시한 채 온전히 화가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방식은 추상화에 가깝다. 고흐는 추상화가로 볼 수 없다. 사실 반 고흐는 인간의 눈보다 감정을 더 중시하는 상징주의를 눈 여겨 봤을 뿐, 호의적으로 보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려면 반드시 자신의 눈앞에 모델이 있어야 했다. 이러한 반 고흐의 생각을 고갱은 부정적으로 봤다. 고갱은 반 고흐와는 반대로 모델을 앞에 두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다. 결국, 이러한 상반된 인식 때문에 두 사람 간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고흐는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감정을 감추거나 속이지 않았다. 눈과 머리와 몸이 느끼면 느끼는 대로 솔직한 감정을 거스르지 않고 붓을 움직였다. 고흐는 호흡을 가다듬고 자신의 영혼이 붓에게 일러주는 목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였다. 다른 화가 같으면 눈앞에 보이는 것을 성실하게 그리는 것으로 만족했겠지만, 고흐는 마음으로 느낀 것을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중략) 눈에 보이는 것은 가식과 허상에 불과하고, 보이지 않는 진실이야말로 화가가 참으로 그려야 할 대상이라고 굳게 믿었다. (107)

 

 

그런데 저자는 반 고흐를 눈에 보이는 것을 가식과 허상으로 여기는 화가로 묘사했다. 반 고흐의 영혼이 붓에게 일러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문장이 멋있다기보다는 그저 우습기만 하다. 저자가 이렇게 표현한 건지 아니면 역자 노성두 씨가 나름대로 멋스럽게 꾸며서 우리말로 옮긴 건지 번역본을 원서와 같이 대조해보지는 않았으나 고흐를 이렇게 과대 포장하는 것은 곤란하다. 107쪽에 소개된 반 고흐의 모습은 분명 내가 아는 반 고흐가 아니다. 엉뚱하게도 저자는 눈에 보이는 것을 무시한 '고갱'을 소개했다.

 

빈센트 반 고흐 : 춤추는 별을 그린 화가는 다행히 품절이다. 분량이 얇다고 이 책을 고르지 마시길. 딱히 영양가 있는 책은 아니다. 알라딘 중고샵에서 이 책은 정가보다 비싼 가격으로 책정되었다. 반 고흐에 관한 책을 모으고 싶어도 이 책만큼은 돈 주면서 사고 싶지 않다. 그냥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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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7-03 20:52   댓글달기 | URL
밀레를 흠모해 <씨뿌리는 사람> 등 여러 농촌 풍경을 뎃생하여 그린 것이나, 그의 유명한 모든 그림들(자화상, 정물, 풍경)은 다 뎃생에 기반한 그림들이죠. `영혼의 내면`, `상징주의` 당치 않습니다. 문학 평론 만큼이나 회화 평론도 너무 주관적/지위적 포장의 극대화로 느껴질 때가 많아요.

cyrus 2015-07-04 21:13   URL
고흐를 잘 아시네요. 고흐가 한때 밀레를 흠모했고, 농부들의 모습을 그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

2015-07-04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5-07-04 21:16   URL
오자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다음부턴 ‘고흐’라고 써야겠어요. 저도 원래 안 좋은 책은 안 쓰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며칠 전에 곰발님의 ‘주례사 서평’에 관한 글을 읽고 나서 악평을 써보고 싶었어요. 책의 단점을 독자에게 타당성 있게 설명해주는 서평이 많이 있어야 해요. ^^

pek0501 2015-07-04 16:38   댓글달기 | URL
유익한 정보를 알려 주는 글입니다. 저는 시공사에서 나온 디스커버리 총서로 고흐의 책을 읽었는데 지금 책장을 찾아보니 눈에 띄지 않네요. 붕대를 감은 모습을 제대로 썼는지 찾아보려고 했는데... (문고판 형의 작은 책인데, 책 찾기도 쉽지 않네요.)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의 글을 인상적으로 읽었어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글도 잘 쓰는구나 했어요. 어떤 문장이 아주 좋았거든요.

cyrus 2015-07-04 21:22   URL
저도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에 나온 고흐 책을 읽어볼 생각입니다. 고흐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화가라서 그런지 알라딘에 검색하면 나오는 고흐 책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 중에 좋은 책과 나쁜 책을 구분해보려고 합니다.

예전에 고흐의 편지를 읽다가 좋은 문장이 있으면 메모를 했어요. 사실 고흐는 편지를 쓸 때 자신이 읽은 책이나 성경의 문장을 인용을 많이 했어요.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5-07-04 19:13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대한 비평이 마음에 드네요~ㅎㅎ
전 우연찮게 방금 고갱을 소재로 한 - 하지만 실제적인 차이는 꽤 있는- <달과 6펜스>를 읽었는데요, 읽으면서 고흐와 고갱을 잠깐 생각했었죠.
예술가들의 삶이란...항상 생각해 보아도 경이로워요.

cyrus 2015-07-04 21:28   URL
예술가들의 삶을 소개한 책도 의외로 재미있어요. 그림에 관한 일화를 보는 것도 흥미롭고, 특히 예술가들의 연애 이야기는 위인전에서 볼 수 없는 내용이에요. 고갱도 알고 보면 고흐만큼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었죠.

보슬비 2015-07-05 13:53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안 읽고 싶지만, cyrus님의 글은 읽고 싶어요.^^
최근에 미메시스에서 나온 `고흐` 만화를 봐서인지 요즘 고흐에 관한 글들이 반가워요. ^^
 
반 고흐 : 빛을 담은 영혼의 화가 마로니에북스 Art Book 2
안나 토르테롤로 지음, 하지은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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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북스 출판사에서 기획한 화가 시리즈는 총 세 개나 있다. <Taschen 베이직 아트>,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 그리고 <마로니에북스 Art Book> 시리즈. Art Book 시리즈는 문고본보다 조금 더 큰 아담한 크기의 판형으로 되어 있다. 분량은 얇아도 내용은 제법 충실하게 구성되어 있다.

 

덜 알려진 화가의 그림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방식은 대표작 소개에만 치중하는 미술책과 차별화를 두고 있다. 마치 도슨트가 직접 설명하듯이 그림에 있는 표현 기법을 상세하게 알려준다. 또 화가가 활동했던 당시 시대적 상황까지 설명하고 있어서 세계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책의 종반부에 이르면 화가가 후대에 끼친 미술사적 영향을 설명한다.

 

활자와 그림 크기가 작아서 큰 그림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마로니에북스 Art Book> 시리즈에 불만이 있겠지만, 고흐를 공부하는 독자라면 <마로니에북스 Art Book> 시리즈를 그냥 건너뛰면 안 된다. 미술책이 화가를 독자에게 올바르게 설명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한 독서도 나름대로 공부의 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화가 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 두 권의 책만으로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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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7-04 07:48   댓글달기 | URL
앞에 리뷰로는 반고흐를 공부하기 부족한 책에 대해 바로 다음 리뷰로는 좋은 책을 소개해주시니 정말 좋아요 ㅎㅎ

cyrus 2015-07-04 21:30   URL
당분간은 고흐에 관한 책을 읽어보고, 좋은 책과 나쁜 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
 

 

 

 

 

 

 

 

 

 

 

 

 

 

 

 

 

 

 

 

몇 년 전에 놀기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노래방을 많이 갔다. 말 그대로 노래방 정모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이 노래를 부르곤 했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다. 그땐 아이돌에 열광하는 젊은 친구들도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는 조용필의 ‘Bounce’가 나오지 않았다. 20대에게 조용필은 왕년에 잘 나갔던 가수였고, 그의 노래를 즐겨 듣는 20대를 찾아볼 수 없었다. 부모님은 조용필 노래를 워낙 좋아해서 조용필의 인기곡을 모은 카세트테이프를 자주 들었다. 거의 수백 번 정도 지겹도록 조용필의 노래를 듣다 보니 조용필 음악의 진가를 벌써 알게 되었다. 노래방에서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부르면 친구 녀석들은 키득키득하면서 웃었다. 그들은 독백이 절반을 차지하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우스운 노래로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독백이 마음에 들어서 노랫말이 많아도 이 노래를 꼭 노래방에서 불러본다. 실제로 꼭대기에 만년설이 덮인 킬리만자로 산에 표범은커녕 원숭이조차 올라갈 수 없지만,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의 방황과 고독, 꿈과 희망, 존재의 의미를 대변하는 듯한 긴 독백은 언제나 들어도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가사 중에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흐란 사나이도 있었는데란 대목이 특히 끌린다. 산정 높이 홀로 올라가는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고흐는 통하는 점이 있다.

 

고흐는 짧은 생애 동안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한 고독한 이방인이었다. 그의 주위는 항상 쓸쓸했으며 고독한 환경 속에서 생활했다. 물론 괴팍한 고흐를 따뜻하게 대해준 사람들이 있었다. 꽤 많은 양의 편지를 주고받은 동생 테오는 고흐의 삶을 논할 때 고갱과 함께 언급된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편배달부 조세프 룰랭, 화가 카미유 피사로, 그리고 병든 고흐를 진찰해준 폴 가셰 박사도 빠질 수 없다. 고흐는 자신에게 호감을 느낀 사람을 만나 교제를 맺으면 그림을 통해 기쁨의 답례를 해주었다. 고흐는 가난한 자신에게 무료로 그림 도구를 빌려준 탕기 영감과 저녁 식사에 자신을 초대해준 룰랭 가족을 위해 초상화를 그려줬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은 고흐의 성격상 고마운 사람들에게 보답해줄 수 있는 것이 그림뿐이었다.

 

 

 

 

 

 

반 고흐 「슬픔」 (1882년) 

 

 

고흐가 동생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외부 사람과의 관계가 서툰 이유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가장 설득력 있게 보는 원인이 어머니와의 관계다. 고흐는 1853년에 목사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런데 실제로 고흐는 맏아들이 아니었다. 그가 태어나기 일 년 전에 고흐의 형이 태어나자마자 죽었다. 죽은 고흐의 형 이름은 빈센트였고, 세상에 사라질뻔한 이름은 1853년에 태어난 아이가 가지게 되었다. 고흐의 삶을 소개하는 책에서는 죽은 형과 화가 고흐가 태어난 날, 장소 모두 일치한다고 설명한다. 불행의 씨앗을 예고하는 것 같은 비극적인 우연한 일치는 고흐를 세상에서 불행한 화가로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과연 이 기록이 정말 사실인지 미심쩍지만, 실제로 어린 고흐는 죽은 형의 무덤 근처에 있는 아버지의 목사관에서 자랐다. 고흐는 죽은 형이 있다는 사실에 커다란 죄책감을 느꼈다. 아들의 마음을 몰랐던 고흐의 어머니는 죽은 형의 무덤에 고흐를 대동했다. 고흐는 일기에서 자신은 어린 시절에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지 못했다고 적었다. 어머니는 죽은 형을 그리워했고, 형의 이름만 물려받은 자신을 사랑하는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비관적인 생각은 고흐를 평생 괴롭게 하는 트라우마가 되었다. 고흐는 어머니와 같은 여자를 만나고 싶었고, 자신이 원하는 이상형을 만나 용기 있게 청혼을 하면 연거푸 싸늘한 거절만 당했다. 고흐는 좋은 반려자를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평범한 가장이 되고 싶었지만, 불행하게도 고흐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나마 고흐가 가장 역할을 했던 시기가 창녀 시엔 호르닉과의 동거였다. 그는 시엔이 낳은 아기를 자기 아들로 받아들여서 시엔과 함께 살려고 했으나 고흐 집안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이 사건 또한 고흐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가슴 아픈 일이었으리라.

 

 

 

 

 

살바도르 달리 「욕망의 수수께끼 - 나의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1929년)

 

 

 

 

 

살바도르 달리 「죽은 형의 초상」 (1963년)

 

 

 

고흐처럼 늘 광기라는 단어가 항상 따라오는 스페인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도 어린 시절 고흐와 같은 경험을 했다. 살바도르라는 이름이 원래는 죽은 형의 이름이었다. 달리의 부모는 어린 달리를 형의 묘지에 데려갔다. 달리는 형의 그늘 속에서 성장했고, 보이지 않는 형의 영혼이 그를 괴롭혔다. 달리의 부모는 어린 달리를 귀하게 보살폈다. 생후 2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달리의 형 살바도르에게 해주지 못한 부모의 애정은 어린 달리에게로 향했고, 이로 인해 달리는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화가로 성공한 달리는 유명 인사들과 만나기를 좋아했고, 범상치 않은 언사로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달리의 그림 욕망의 수수께끼 나의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죽은 형의 초상은 달리의 무의식 속에 남아있는 어머니와 죽은 형의 기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특히 욕망의 수수께끼 나의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에서 치즈처럼 생긴 형체의 구멍 안에 나의 어머니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 그 단어는 모성애를 애타게 갈망하는 달리의 욕망, 마음 속으로만 외쳐야해던 달리의 구슬픈 목소리였다.

 

고흐와 달리, 이 두 사람은 생전에 미치광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누구는 광기의 본질을 정서불안이라고 말하며, 또 누구는 정신병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정서불안에 시달리고, 특이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어떤 요인이나 고흐와 달리를 극도로 불안정한 정신 상태로 몰아갔을 것이 분명하다. 고흐와 달리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대체물이라는 박탈감에 사로잡히는 바람에 사랑의 대상이 생기면 지나치게 집착하는 성격이 되었다.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한 두 사람에게는 그림만이 구원이었고 그림만이 사랑이었다. 그들이 남긴 그림은 대중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아이러니다.

 

 

 

 

P.s 테오는 자신의 아들에게 형의 이름과 같은 ‘빈센트’라고 지어줬다. 테오의 아들은 고흐와 그의 아버지보다 오래 살았고 88세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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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7-03 06:05   댓글달기 | URL
모니뫼니 해도 탕기 할아버지가 최고죠....
갈 때 자주 먹을 것을 싸가지고 갔다고 하더군요. 고흐 주려고 말입니다.
탕기네 가족 그림도 많이 그린 것으로 압니다.

cyrus 2015-07-03 18:56   URL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고흐 전에서 탕기 영감의 초상화를 실제로 봤습니다. 생각보다 그림이 컸습니다. 탕기 영감에 대한 고흐의 존경심이 묻어난 그림이었습니다.

푸르미원주 2015-07-03 08:35   댓글달기 | URL
고흐와 달리의 비슷한 출생, 성장과정과 그림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네요. 고흐 그림 저도 좋아해요. ^ ^
글 서두에 조용필 노래를 끄집어내신 이유를 주욱 읽으니 공감가요.

cyrus 2015-07-03 18:56   URL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단발머리 2015-07-04 01:12   댓글달기 | URL
전, 고흐의 형에 대한 이야기를 님의 페이퍼를 읽고 처음 알았네요.
역시 정보와 재미를 듬뿍 얻고 갑니다.
제 친구 중에도 ˝킬리만자로의 표범˝ 즐겨 부르던 친구가 있었는데, 친구 이름이 가물가물하네요.

오쌩 2015-07-04 23:42   댓글달기 | URL
관계로 부터의 소외가 오히려 그림에 몰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겠네요.사랑을 갈망하고 불일치에 고통받고,사후에 이르러 인정받고 사랑받으니.님말대로 아이러니네요.

어쩌면 고흐같은 방황과 고독이 필요조건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결핍은 어쩔수없는 천형인지도 모르겠네요.
고흐가 테오에게 쓴편지를 보면서 감동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잘보고갑니다.
 

 

 

 

※ 사진 이미지는 달 출판사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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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열린책들 세계문학 82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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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는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오래 머물지 않는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고 손에 잡히지 않는다. 코끝을 스쳐 지나갈 뿐, 콧속에 가둬둘 수가 없다. 기억 저편에 살짝 묻어뒀다가, 어느 순간 다시 불러내는 게 고작이다. 그런데 만약 인간이 천부적인 후각을 가졌더라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황홀한 향기들 전부 맡아볼 수 있을까. 후각을 새롭게 일깨워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는 그동안 살면서 잊고 있었던 우리의 코를 확 뚫어준다. 주인공 그르누이는 사랑을 이끌어내는 힘을 가진 지상 최고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 소녀들을 스물다섯 명이나 죽인다. 바람에 실려 온 소녀들의 향기에 취한 그르누이가 망설임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이야기는 광기로 치닫는 인간의 섬뜩한 탐미 본능을 보여준다.

 

그르누이는 사랑이란 무엇인지 그 냄새조차 맡아본 적 없는 고독한 존재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서식하는,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을 향기로 만들어내는 일로 대신한다. 사랑을 받아본 적도 없는 고독한 주인공은 말한다. 존재의 영혼은 향기라고. 《향수》가 독자에게 호기심과 매력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잃어버린 감각을 되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냄새를 표현한 활자 이미지를 실제의 영상 이미지로 바꾼 톰 튀크베어 감독의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소설을 꼭 먼저 읽어보기를 권한다. 소설은 수억 개의 후각세포가 엉켜 있는 듯한 생생한 후각적 묘사로 뒤덮여 있다. 그것은 후각의 제국으로 가는 초대장이며, 어두컴컴한 18세기 파리의 뒷골목으로 스며들어 가는 입구이다.

 

인간은 오늘날 시각에 의존하고 있다. ‘보는 것’은 곧 안다는 것, 증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오페라 공연은 대사로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지만, 오늘날 연극 공연은 화려한 무대 위에 연기하는 배우의 몸짓을 본다. 물론 음악을 듣고, 대사를 듣지만, 그것은 시각의 보충 감각에 불과하다. 일상생활에서도 시각 위주의 감각 체계는 강력하게 통용되고 있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시각적 조화와 균형에 따라 결정된다. 뛰어난 후각을 가진 그르누이는 시각 위주의 문명을 거스르는 안티 히어로다. 세상과 인간을 이해하고 판단하고 소통하고 역시 창조하는 중요한 감각 중 하나가 후각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영화는 원작에서 냄새나는 문장을 따라가지 못했고, 관객들은 그르누이의 살인 행위와 향수 한 방울로 750명의 군중을 조종하는 마지막 장면만 기억할 뿐이다. 영화의 충격적인 영상미가 시각 문명을 거스르는 후각 천재 그르누이를 엽기적인 살인마로 만들어버렸다. 원작을 먼저 읽고 난 뒤에 영화를 본다면 당신은 쥐스킨트가 《향수》의 영화화에 무려 15년 동안 반대한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후각은 오감 중에서도 가장 평가절하 받는 감각이다. 우리는 냄새 맡는 것을 하찮게 여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진화의 역사에서 냄새야말로 생존과 생식에 가장 중요한 감각이다. 우리가 동물의 배설물과 부패한 음식물에서 나는 역겨운 냄새를 피하고 잘 요리된 음식과 매력적인 이성에게서 나는 냄새에 끌리는 것은 축적된 경험적 지식에 의한 것이기보다는 진화된 본능에 가깝다. 악취를 제거하기 위해서 인류는 향수를 만들었다. 오늘날 초호화 건물로 알려진 베르사유 궁전에 왕족과 귀족 들이 살았을 때 불결한 악취가 심했다고 한다. 궁전에 화장실이 없어서 귀족들이 궁전의 넓은 정원이나 실내 커튼 뒤에서 볼일을 봤다. 그래서 악취를 제거하기 위해서 다양한 향수를 뿌리기 시작했다. 결국, 향수는 인류의 마음을 정화해주는 귀중품이 아니라 악취 나는 인류의 본성을 가리려고 몸에 입는 얄팍한 가면이다. 향수의 역사 속에 고귀한 냄새만 쫓아 청결한 척하는 추악한 인간의 이중성이 포함되어 있으며 《향수》는 아름다움 속에 가려진 추악한 세상의 이면을 보여주는 역설이 들어 있다. 살인으로 빚어낸 향수는 귀족, 성직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매료시켜 그르누이의 죄를 잊어버리게 한다.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 고약한 치부를 망각하는 인간의 모순을 의미한다. 마치 겉은 화려하나 건물 내부에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던 베르사유 궁전처럼 말이다.

 

최상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서 살인을 저지르는 그르누이는 냄새나고 더러운 것을 비도덕적인 것으로 치부해 버린 사회가 만들어 낸 불행한 사생아다. 냄새가 없다는 이유로 더러운 냄새가 나는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았다. 그르누이를 인간 대접하지 않은 그들도 선하다고 볼 수 없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꾸짖는 격이다. 결국, 《향수》에서 주인공의 삶을 판단하는 독자의 감상적 역할은 무의미해진다. 부처는 향을 가까이하면 성품이 향기로워지고 악을 가까이하면 악취를 풍기게 된다고 가르쳤다. 독자들 가운데 마음속에 품고 있는 향기가 아름다운 자는 그르누이에게 돌을 던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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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5-06-30 22:34   댓글달기 | URL
<향수>를 읽고 신선한 충격이란 이런 거구나 싶었죠. 튀크베어의 영화도 아름답지만 cyrus님 말씀대로 원작을 못 따라와요. 연기 천재 벤 위쇼가 엄청난 연기를 보여줬음에도 그루누이의 존재감이 상당하다고 생각했어요. 소설에선 전혀 그렇지 않잖아요. 사랑받고싶은 욕망과 존재 이유를 찾는 그루누이...

cyrus 2015-07-01 18:07   URL
원작을 읽을 때 그르누이의 향수에 취한 사람들이 집단 섹스를 하는 장면이 퍽 인상적이지 않았는데, 영화에서 그 장면을 봤을 땐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이 충격적인 장면 하나 때문에 원작을 보지 않고 영화를 본 사람들 중에 원작이 야하다는 생각했을 겁니다. ^^;;

아로 2015-07-01 00:46   댓글달기 | URL
서두를 읽다가 어느 영화가 생각났는데, 15년을 반대했던 그 영화가 맞는 모양이네요 :)
크게 잊고 있었던 것인만큼 더 신선항 충격일 것 같아 바로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

cyrus 2015-07-01 18:11   URL
초반에 그르누이가 살인을 저지르기 전까지 이야기가 지루할 겁니다. 이 부분만 지나면 흥미진진할 겁니다. ^^

해피북 2015-07-01 01:31   댓글달기 | URL
어쩜 같은 책을 읽고 생각의 뿌리가 다른지 많이 배우고 생각하게 되네요 ㅋ 처음 이 소설을 읽고 단순히 살인과 냄새에만 초점을 맞춰 좀 짜증냈던 기억이 납니다(원체 이런 소설을 읽지 않아서요ㅋ) 이 글을 읽으니 오래된 기억 속의 향수를 다시 꺼내보고 싶어지네요 ㅎ

cyrus 2015-07-01 18:16   URL
제가 <향수>를 처음 읽었던 때가 10년 전이었어요. 그 때 고등학생이었는데, 친구들이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부제만 보고 이상한 책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향수>를 읽는 10, 20대 독자들이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

서니데이 2015-07-02 18:34   댓글달기 | URL
<향수>가 처음 우리나라에 출간 되었을 시기에 이 책에 대해서 소개를 읽고는 그후로 제대로는 읽진 않았네요. 향수와 향기라는 것이 그 때는 조금 독특하다 느껴졌던 것 같긴 해요. 그 사이 영화로도 나왔고, 많이 알려져서 아는 책처럼 느껴지지만, 나중에 기회되면 읽어봐야겠어요.
cyrus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cyrus 2015-07-02 21:33   URL
영화도 나와서 이 책을 안 읽어도 대략 줄거리를 알 수 있게 되었죠. 그래도 읽어보는 것을 권합니다. 원작의 묘사가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