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서는 지역과 시대를 막론하고 늘 존재해왔다. 서양 중세에서는 주로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내용들과 기성 질서에 이의를 제기하는 책들이 교황청으로부터 금서 처분을 받았다. 시민혁명의 열풍에 휩싸인 18세기 이후에는 근대적 시민사상을 담은 책들이, 계몽주의 시대에는 과학 · 학술 · 기술 등 관련 지식을 집대성한 《백과전서》조차 금서 목록에 들어갔다.

 

보들러리즘(bowdlerism)책의 외설적인 문장을 무단으로 삭제하는 것을 뜻하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18세기 영국의 출판편집자 토머스 보들러(Thomas Bowdler)에서 유래됐다. 1818년에 보들러는 셰익스피어(Shakspeare)의 작품들에서 외설적이라고 판단한 부분을 삭제하여 편집한 『The Family Shakspeare』을 펴냈다.

 

 

 

 

 

 

 

 

 

 

 

 

 

 

 

 

 

* 베르너 풀트 《금서의 역사》 (시공사, 2013)

 

 

 

금서와 검열의 역사는 길고 길다. 금서와 검열의 역사는 도덕과 금지의 규범에 대한 저항의 역사를 만들었다. 많은 책들이 검열되고 불태워졌지만 그 책들은 질기게 살아남았다. 금서들 중 상당수는 살아남아서 이젠 불멸의 고전으로 추앙받는다.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채털리 부인의 연인》도 금서였고,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율리시스》도 금서였다. 두 작품 모두 외설 시비에 휘말렸다. 권력자들은 종교, 국가, 미풍양속을 거스른다고 ‘위험한’ 책들을 금서로 만들었다. 금서는 기성 체제를 뒤흔들고 권력의 기반을 무너뜨린다. 중상비방과 추문이라는 오물을 뒤집어 쓴 채 금지된 책들이 결국은 낡은 사회를 뒤엎고, 새로운 사회를 향해 나아가게 한다. 권력자들이 그런 책에 진저리를 치고 광분하는 것도 그들의 처지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금서와 검열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재진행형이다. 국가 차원에서 검열을 가하지 않더라도 사람들 스스로 알아서 책을 검열하고, 미워하기 때문이다. 주관적인 검열의 기준은 검열하려는 자의 취향에 따라 달라진다. 당연히 검열 기준이 애매모호하고, 일관성이 없다. 무슨 이유에서 문제가 되는지 선뜻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창작자들은 자기 검열의 늪에 빠지게 된다. 다양한 문화 담론 형성과 역동적인 예술적 창조가 불가능해진다.

 

 

 

 

 

 

 

 

 

 

 

 

 

 

 

 

 

* 린 헌트 엮음 《포르노그래피의 발명》 (알마, 2016)

* 로버트 단턴 《책과 혁명》 (알마, 2014)

 

 

 

인간의 편견과 두려움은 책을 몰살시킬 뿐만 아니라 타자의 취향마저 억압하려고 애를 써왔다. 하지만 인간의 불온한 생각과 취향은 사라지지 않는다. 금서와 검열의 역사는 불온한 일탈과 이를 검열하려는 힘 사이의 끊임없는 줄다리기였다.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금서목록에 포함된 책은 포르노그래피(pornography)일 것이다. 프랑스 혁명 이전의 금서목록에는 포르노그래피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금서로 지정된 포르노그래피는 대중이 즐겨 보는 베스트셀러였으며 봉건적 구체제(ancien regime)를 뒤흔들만한 선동적인 내용이 수록되었다. 프랑스 혁명 이전까지 포르노그래피는 성적 표현을 동원해 종교적 · 정치적 권위를 비판하는 ‘언어적 무기’였다. 이러한 정치적 포르노그래피의 기원은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6세기 이탈리아의 작가 피에트로 아레티노(Pietro Aretino)는 대화 형식의 포르노그래피를 썼는데, 이러한 형식은 17세기 포르노 작가들이 즐겨 쓰는 클리셰가 된다. 《포르노그래피의 발명》(알마, 2016) 《책과 혁명》(알마, 2014) 프랑스 혁명과 민주주의를 촉발한 포르노그래피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책이다.

 

 

 

 

 

 

 

 

 

 

 

 

 

 

 

 

 

 

* 게일 루빈 《일탈 : 게일 루빈 선집》 (현실문화, 2015)

* [절판] 캐서린 매키넌 《포르노에 도전한다》 (개마고원, 1997)

* [절판] 안드레아 드워킨 《포르노그래피 : 여자를 소유하는 남자들》 (동문선, 1996)

 

 

 

그러나 정치적 포르노그래피는 세상을 급진적으로 바꾸려는 세력의 전유물이 되지 못한다. 보수적인 왕당파들은 혁명파를 공격하는 선동적인 포르노 팸플릿을 만든다. 위기감을 느낀 그들이 ‘반격(backlash)에 나선 것이다. 보수 세력의 반격이 거세질수록 포르노그래피에 ‘음란물’ 이미지를 덧씌우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검열과 규제는 더욱 강화되었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법학자 캐서린 매키넌(Catharine Mackinnon)은 1980~90년대 반포르노 운동을 주도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안드레아 드워킨(Andrea Dworkin)과 함께 ‘반포르노법’ 제정을 추진했다. 매키넌과 드워킨이 제안한 반포르노 법은 포르노를 ‘영상 또는 언어를 통해 여성을 복종시키는 성적 묘사물’로 규정한다. 매키넌과 드워킨은 여성이 결박당하거나, 고문당하는 장면이 나오는 포르노도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만드는 묘사라고 비판한다. 이렇듯 반포르노 세력은 사도마조히즘(Sadomasochism)을 포르노의 정의와 특징에 포함하는 반포르노 운동을 펼친다. 이로 인해 사도마조히즘, 즉 SM 문화는 성적 학대의 대명사로 알려진다.

 

게일 루빈(Gayle Lubin)은 반포르노 운동을 비판한 SM 레즈비어니즘 페미니스트다. 그녀는 최초의 레즈비언 SM 단체 ‘사모아(Samois)의 공동 창립자 중 한 사람이다. 루빈에게 SM은 개인의 ‘성적 기호’이자 ‘실천’이다. 그녀는 SM을 포르노와 동일한 해로운 현상으로 취급하는 반포르노 이데올로기를 비판한다. 이로써 SM과 포르노를 반대하는 페미니즘 세력과 SM을 옹호하는 페미니즘 세력 간의 대립이 지속되었고, 이 과정에서 루빈은 반포르노 페미니스트들로부터 중상모략과 인신공격을 받기도 했다.

 

검열의 본질은 두려움이다. 반포르노 세력은 포르노가 위험한 성적 행동에 일조하는 해로운 매체라고 주장한다. 도덕 유지를 강조하는 보수주의자들은 포르노, 심지어 성적 욕망마저 사회의 끔찍한 문제의 희생양으로 만든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왔던, 국민 통제를 쉽게 하기 위한 프로파간다이다. 권력은 포르노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권력은 포르노의 악영향을 강조하여 음란물뿐만 아니라 사회 통념에 어긋나는 섹슈얼리티까지도 단속한다. 소수의 성적 취향은 ‘음란한 일탈’로 낙인찍히고, 다수의 대중은 일탈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분노와 적개심을 드러낸다. 과거보다 더 지능적이고 교묘한 검열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국가에 의한 무자비한 검열은 차별과 혐오를 재생산하는 일상화된 검열로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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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4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8-14 11:01   좋아요 1 | URL
네. 오늘 연차 내서 쉬는 중입니다. ^^

2018-08-14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8-14 11:05   좋아요 1 | URL
성서도서관이에요 ㅎㅎㅎㅎ 어디에 계신가요?

2018-08-14 1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8-14 11:18   좋아요 0 | URL
점심 먹고 다시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ㅎㅎㅎ

stella.K 2018-08-14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syo님과 교신 중인가 보닷!ㅎㅎ

syo 2018-08-14 11:19   좋아요 0 | URL
귀신이시다....

cyrus 2018-08-14 11:19   좋아요 0 | URL
역시 세상은 좁아요 ㅎㅎㅎ

stella.K 2018-08-14 11:25   좋아요 0 | URL
ㅋㅋㅋ 귀신은...
좋아요 명단 보면 딱 감이 오는데...
두 분이 만나기로 했나?
그냥 그런 생각해 봤슴다.

아, 그런데 진짜 만나기로 했군요.
둘이 오붓한 시간되길...^^

syo 2018-08-14 11:39   좋아요 0 | URL
애초 만나기로 한 것은 아니었고, 도서관에 왔더니 사이러스님의 흔적이 남아있어서 확인해본 거예요 ㅎㅎㅎ

이럴 줄 알았으면 이쁘게 하고 올 것을?? ㅋㅋㅋㅋㅋㅋ

stella.K 2018-08-14 11:59   좋아요 0 | URL
ㅎㅎㅎ 둘이 사귑니까?
cyrus도 오늘 스요님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텐데...ㅋ

암튼 둘이 예쁜 시간 가져요.
저도 사는 곳에 대구였으면 나갔을지도...ㅋ
그나저나 유레카님은 합류 안 하시려나?
요즘 안 보이시는 것 같던데
휴가 가신 모양인듯.
아깝네. 대구 막강 삼총사로 등극하셨는데 말이죠.ㅋㅋ

아, 근데 사이러스의 흔적.
나 보다 더 귀신인데요?ㅋㅋㅋ

cyrus 2018-08-14 15:48   좋아요 0 | URL
밖에서 가족이랑 점심 먹으면서 시간 보내느라 도서관에 못 갔어요.. ^^;;

왠지 주말에 도서관에 가면 또 syo님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ㅎㅎㅎ

syo 2018-08-14 15:56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저는 주말에는 도서관에 가지 않습니다. 주중에는 도서관에서 더위를 피하고 주말에는 다른 곳으로 더위를 피하러 가지요 ㅎ

카알벨루치 2018-08-14 16:29   좋아요 1 | URL
사이러스, syo님 웃겨 정말ㅋㅋㅋㅋㅋ

stella.K 2018-08-14 18:25   좋아요 1 | URL
엇, 그럼 오늘 못 만난 거야?
둘이 만나나 기대했는데...ㅠ

그런데 왜 내가 기대를 하는 거지...?ㅋㅋㅋ

레삭매냐 2018-08-14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턴의 <책과 혁명>은 구간을 사려고 그렇게
노력했으나 구하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 개정
판으로 사긴 했는데 여적 못 읽고 있네요...

단턴의 다른 책들에만 눈길이 가네요 읽지도
않을 거면서 말이죠 ㅋㅋ

cyrus 2018-08-14 15:54   좋아요 0 | URL
단턴의 《시인을 체포하라》는 책도 흥미진진해요. 분량은 적당하고, 민중이 여론을 형성하는 과정을 알 수 있는 책이에요. 아마도 그 책에도 포르노 팸플릿에 대한 언급이 나온 걸로 기억해요.

카알벨루치 2018-08-14 18:28   좋아요 0 | URL
두 분 외계에서 오셨나봐 한국인인데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는...오, 나의 무지여!

북프리쿠키 2018-08-14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 두분 ~ 저도 오늘 연차냈어요ㅎ
대구라서 언젠가는(?) 만나게 될 듯합니다ㅎㅎㅎ

cyrus 2018-08-14 20:09   좋아요 1 | URL
오늘은 저와 공통점이 있는 분들이 많네요. 저와 syo님은 같은 장소에 있었고, 저와 북프리쿠키님은 쉬고 있었네요. 그리고 셋 다 모두 대구 사람!! ㅎㅎㅎ

stella.K 2018-08-14 20:15   좋아요 1 | URL
앗, 쿠키님도 대구에 사시죠?
유레카님까지 사인방이어요.
 
에도의 몸을 열다 - 난학과 해부학을 통해 본 18세기 일본
타이먼 스크리치 지음, 박경희 옮김 / 그린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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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대국굴기의 꿈을 무척이나 효율적으로 달성한 국가이다. 일본과 서양의 만남은 이보다 훨씬 이전인 18세기 에도(江戶)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그랬듯이 서양은 총과 대포 등 새로운 무기와 과학기술, 그리고 기독교를 가지고 일본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동북아시아의 여타 정권들과 마찬가지로 일본 바쿠후(幕府) 역시 쇄국정책을 펼쳤다.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야 했던 바쿠후는 기독교의 포교를 묵인했지만, 가치관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일본 학자들은 서양문화를 이해하며 자기 사상을 깊이 되돌아 볼 기회를 가졌다. 일본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친 난학(蘭學)이 이들을 통해 형성된다. 네덜란드는 16세기부터 일본과 가장 친한 서방국가였다. 일본인들은 네덜란드의 다른 이름인 홀랜드(Holland)를 한자어로 바꿔 ‘화란(和蘭)’이라고 불렀다. 난학은 네덜란드인들이 전파한 지식을 연구한 학문으로, 일본의 근대화에 대한 각성은 지식인들에 의해 싹트기 시작했다.

 

난학의 형성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스기타 겐파쿠(杉田玄白). 1774년에 겐파쿠와 그의 동료 학자들은 《해체신서(解體新書)라는 의학 서적을 편찬했다. 《해체신서》는 일본에 번역된 최초의 서양 해부학 전문서적이다. 《해체신서》가 알려지면서 일본의 의학기술은 급속하게 발전했으며, 일본에서도 인간의 몸을 ‘열어 본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타이먼 스크리치(Timon Screech)《에도의 몸을 열다》(그린비, 2008)는 ‘인간의 몸을 여는’ 해부학 열풍이 에도 시대의 문화 변동에 끼친 영향력을 추적한 책이다.

 

사무라이의 검이 힘을 잃은 시대에 외부에서 들어온 서양식 날붙이에 일본인들은 열광한다. 그리하여 그림들에 거의 예외 없이 가위와 나이프가 등장한다. 일본인들은 서양식 날붙이를 의학 도구라고 상상했다. 인간의 몸을 절개하는 메스에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일본인은 몸에 칼을 대는 것 자체에 공포를 느꼈고, 전통의학을 고수한 의사들은 서양 외과를 불신했다. 해부학이 본격 도입되기 전까지 일본 전통의학의 본류는 한방의학이었다. 일본의 한방의학자들은 약을 짓는 일에 관심을 가졌을 뿐 몸을 절개(해체)해서 들여다보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서양 외과술을 접한 일본 의사들도 서서히 서구의 영향 아래 몸에 대한 인식에 변화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해부학은 신체를 하나의 소우주로 본다. 인간의 몸은 우주 질서의 상징이고, 해부는 그것을 하나하나씩 해체하여 이해하는 일이다. 몸 위에서 펼쳐지는 해부 기술은 결국 세상 그 자체에 대한 해부였다. 메스로 몸을 여는 행위는 책 제목처럼 ‘에도’라는 몸이자 소우주를 여는 행위였다. 일본 지식인들에게 해부는 몸과 세계에 대한 앎의 욕구였다.

 

해부도를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시선에는 몸의 내부를 보고 싶은(알고 싶은) 욕망과 절개에 대한 공포 사이의 긴장감이 서려 있다. 해부도는 몸에 관한 지식을 알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매혹하기 위한 것이다. 일본인이 해부도를 보면서 느꼈을 ‘매혹적인 당혹스러움’은 해부도가 지닌 그로테스크한 매력이다. 시각적인 것은 대부분 이미지로 소비되는 속성을 지닌다. 이미지의 소비는 달리 말하면 ‘정신적 사유의 회피’라고 할 수 있다. 시각적인 것은 본질적으로 포르노그래피의 성질을 지닌다. 타이먼 스크리치는 《해체신서》를 모방한 춘화 세 점‘색다른 재미’가 느껴진다고 했다. 시각적 매체가 수용자를 매혹하고 붙들어 가는 방법의 하나가 성(性)이다. 섹슈얼리티(구체적으로 말하면 성욕 또는 성적 호기심)는 시각적인 매체 내용에서 중요한 요소이며, 해체된 육체에 성적 자극을 느끼는 기이한 섹슈얼리티는 해부도에 의해 계발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이렇듯 해부도는 에로틱한 매력과 그로테스크한 매력을 동시에 가진 시각적 매체였다. 에도 시대의 해부도 열풍은 서구가 찍어 놓은 근대의 발자국을 좇는 단순 유행이 아니었다. 해부도 열풍의 근저에는 이미 근대적 자극, 즉 ‘에로 그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에로 그로’는 1930년대로 접어들어서야 현실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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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8-13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대 과학을 대하는 태도에서부터 우리와
일본은 달랐던 모양입니다.

유가 정신을 내세우며 신체발부 수지부모
라 하여 시신에 칼을 대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 같은데, 일본에서는 상대적
으로 자유로웠던 것 같네요.

에로 그로라... 아니메와 연관되어 생각해
보면 아주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닌
듯 합니다.

cyrus 2018-08-13 21:37   좋아요 0 | URL
요즘 ‘에로 그로‘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그 문화의 기원이 궁금했어요. 그래서 에도 시대 역사서까지 찾아 보게 됐어요.

<감각의 제국>과 <기니어피그>, 두 영화는 공통으로 신체 부위가 절단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절단된 신체를 보면서 쾌감을 느끼는 영화 속 인물의 심리상태는 병리적이라기 보다는 에도 시대 해부도 유행이 만든 ‘에로 그로‘ 문화의 일종이라 생각이 듭니다.
 
열두 발자국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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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끊임없는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아침에 출근할 때 지하철을 이용할 것인가, 자가운전을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고, 점심을 한식으로 할 것인지 중식이나 양식으로 할 것인지도 선택해야 한다. 사람을 만나 일을 처리하는 것도 선택이고, 언제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진행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도 선택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고를 때 합당한 이유를 갖지 않고 선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선택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인생은 모두 뇌의 기능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인간의 행복도 뇌의 기능에 달려있다. 결국 인생이란 뇌가 만들어낸 흔적들이다.

 

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 정재승 교수는 17년 만에 단독으로 펴낸 《열두 발자국》(어크로스, 2018)을 통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뇌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이 책은 정 교수의 대표 강연을 엮은 것이다. 정 교수 특유의 유머까지 글로 옮겨놔서 그의 강연장에 와 있는 기분이 든다. 최근 인간의 심리와 감정은 모두 뇌의 작용에서 비롯됐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뇌과학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이 책에는 누구나 궁금해하는 인간의 행동과 심리에 대한 12가지 질문이 다뤄진다. ‘선택하는 동안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결정장애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창의적인 사람들의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세상에 도전하는가?’. 이 책을 통해 우리 일상생활에서 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뇌의 실체를 하나씩 파헤치다 보면 복잡하고 어려운 것으로만 인식했던 뇌가 친근하게 느껴지게 된다.

 

흔히들 뇌는 이성적이고 기계적이며 근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뇌는 컴퓨터처럼 정확하게 움직이지는 않는다.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기 위해 변명하고, 자신이 내린 결정에 후회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속이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인간이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는 것도 ‘뇌의 착각’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무수한 정보의 범람 속에서, 정보를 생산하고 받아들이는 주체는 뇌다. 우리는 그간 지식이나 정보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에 비해, 그러한 지식과 정보를 생산하고 사용하는 주체인 뇌의 존재에 대해서는 등한시해왔다. 모든 사람은 뇌를 가지고 있지만 정작 착각하는 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한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시피 뇌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두뇌 속에 없었던 길을 만들고, 그 길들은 더욱 빠른 지름길들을 만들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다. 그러나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거기에 너무 많이 집중하면 다른 일들에 대한 관심에 둔해지기 쉽다. 따라서 정 교수는 일에 몰입하여 실행하되 낯선 정보, 낯선 경험들로 뇌를 지루함에서 탈피시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끊임없이 세상으로부터 자극을 받는 창의적인 사람들의 뇌는 싱싱하다. 그 자극은 자신 안에 웅크리고 있을 때 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활발히 교류하면서 얻어진다.

 

정 교수는 우리가 여태 알지 못했던 인간이라는 복잡한 숲과 그 숲이 자라는 '회색빛 땅' 뇌를 과학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해준다. 결정장애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매번 계획을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복잡한 뇌 속을 들여다보며 독자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은 1.4킬로그램의 작은 우주인 ‘뇌’라는 관점에서 보편적인 인간을 다루고 있지만, 그 이야기는 여러분의 내밀한 삶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우리를 발견하는 경험을 공유하길 바랍니다. (프롤로그, 12쪽)

 

 

뇌를 이해하는 일은 인간의 자아 탐구라는, 어렵지만 손을 놓을 수도 없는 숙명의 과제이다. 뇌를 알아가는 것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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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8-11 1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스타그램에 정재승 박사 책 리뷰 쓰면 어김없이 나타나신다는데 이 리뷰 올리시면 cyrus님도ㅎㅎ! 알쓸신잡 땜에 정재승 박사 목소리랑 시츄에이션이 잘 떠올라서 책 읽기가 더 유쾌할 듯요^^ 저도 조만간 읽을 예정요~헤헤

cyrus 2018-08-11 16:23   좋아요 0 | URL
인스타 계정은 없어요. 이런 졸문을 정 교수님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ㅎㅎㅎ
 

 

 

 

에도가와 란포(江戸川乱歩)의 단편소설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를 읽다가 익숙한 지명을 발견했다.

 

 

 

 

 

 

 

 

 

 

 

 

 

 

 

 

 

* 에도가와 란포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 (도서출판 두드림, 2008)

 

 

 **관음은 도쿄로 치면 아사쿠사쯤 되는 곳인데, 경내에는 여러 가지 구경할 만한 작은 전시실도 있고 극장도 있었다. 시골인 만큼 그런 것들이 한층 더 황량하고 그로테스크해 보이지만, 요즘에야 말도 안 되지만 그때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교사가 연극을 보러가는 것조차도 금지했다. [주1]

 

 

 

 

 

 

 

 

 

 

 

 

 

 

 

 

* 미리엄 실버버그 《에로틱 그로테스크 넌센스》 (현실문화, 2014)

 

 

 

아사쿠사(浅草)는 일본 도쿄에 있는 구역이다. 이 구역에 도쿄에서 가장 큰 절인 센소지(浅草寺)가 있다. 센소지 주변에는 에도 시대부터 형성된 번화가가 있다. 절과 신사를 찾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상인들이 모이면서 만들어졌다. 근대 일본 사상과 문화를 연구한 미리엄 실버버그(Miriam Silverberg)는 센소지의 거리 문화를 ‘참배와 놀이의 문화’[주2]라고 했다. 메이지 정부 시절에 아사쿠사는 대대적인 정비가 이루어졌고, 센소지 일대는 일곱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졌다. 아사쿠사 제4구와 제6구는 도쿄를 대표하는 향락지가 되었다. 이곳에 기형적인 외모를 가진 사람들만 모아 구경거리로 세우고 묘기를 시키는 프릭 쇼(freak show)나 기이한 것들의 모습을 담은 활동사진을 전시하는 쇼가 유행했다. 일본인들은 기이한 것들을 구경하는 문화를 즐겼고, 이를 ‘미세모노(見世物, 구경거리, 웃음거리)라 불렸다.

 

아사쿠사는 서양 문화에 익숙한 중 · 상류층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모던한 유흥 장소’였지만, 그곳에 거지, 넝마주이, 불량아 등 도쿄의 밑바닥에 있는 하층민들이 모여 살아가기도 했다. 아사쿠사는 계층에 구애받지 않고 ‘에로 그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의 안식처였다. 그래서 실버버그는 아사쿠사에서 볼 수 있는 그로테스크, 즉 자본주의가 만든 계층 피라미드 ‘밑바닥’에 속한 하층민의 그로테스크를 주목한다.

 

 

 

 

 

 

 

 

 

 

 

 

 

 

 

 

 

* [절판 / 안 읽었어요!] 가와바타 야스나리 《어둠의 거리》 (혜림사, 1999)

 

 

 

실버버그가 아사쿠사의 그로테스크한 풍경을 살펴보기 위해 참고한 문헌 중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소설아사쿠사 구레나이단(淺草紅團)이 포함되어 있다. 이 소설은 상인에서부터 밑바닥 사람들까지 아사쿠사에 살아가던 인간 군상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이 작품은 《어둠의 거리》  (혜림사, 1999)라는 제목이 붙여진 번역본이 나왔는데 절판되었고, 우리나라에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2년 전인가? 헌책방에서 이 책을 본 적이 있다. 그때는 이 책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다. 지금 그곳에 가면 책이 있으려나.

 

 

 

 

[주1]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은희 옮김,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 도서출판 두드림, 2008, pp. 86.

 

[주2] 미리엄 실버버그 지음, 서미석, 강진석, 강현정 옮김, 《에로틱 그로테스크 넌센스》, 현실문화, 2014, pp. 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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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8-10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중앙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맞은 편에 앉은 청년이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을 읽고 있었습니다.

아니 뭐, 갑자기 생각나서요.ㅎㅎㅎㅎ

cyrus 2018-08-10 17:30   좋아요 1 | URL
사실 그 청년은 저의 분신입니다. 저는 분신술을 씁니다. 어제 syo님이 보신 건 제2의 사이러스예요. 제3의 사이러스는 범어도서관에, 제4의 사이러스는 용학도서관, 제5의 사이러스는 고산도서관에 있어요. ^^

syo 2018-08-10 17:43   좋아요 1 | URL
아니 사이러스님..... 그게 가능하면 그건 이미 사이러스님이 아니라 바이러스님이잖아요....

사람을 뭘로 보고 그런 말씀을, 싶다가도 사이러스님이 5명이라고 가정하니 확실히 그 무지막지한 독서량이 이해가 되기도 하고...

아 혼란스럽다....

stella.K 2018-08-10 20:08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두 사람 대화가 웃겨욧!

<멀티플리시티>란 영화가 있는데
주인공이 일하는 게 힘들어서
어떤 박사한테 자기를 넷인가, 다섯쯤 복제해 달라고 하죠.
그런데 이 복제인간이 가면 갈수록 지능도 떨어지고
하는 게 영 시원치가 않아요.
뭐 그 복제인간들이 벌이는 소동극인데 나름 재밌게 봤던 것 같아요.
어제 스요님이 봤다는 사이러스는 두 번째라면 뭐 아직 쓸만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범어와 용학 도서관의 사이러스는 독서력이 조금 떨어지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나중에 제 2와 제 3의 사이러스를 처치하시면
두 사람이 얼추 독서력이 맞을 거라고 생각합니다.ㅋㅋㅋ

cyrus 2018-08-11 07:17   좋아요 0 | URL
범어와 용학은 건물이 넓고 좋은데, 단점은 둘 다 멀어요. 그래서 한 번 갔다오면 피로도가 높아져요.. ㅎㅎㅎ

레삭매냐 2018-08-10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랑은 상관 없는 이야기지만
처음으로 도쿄에 갔을 적에
아사쿠사 근처에서 묵었던 기억이 납니다...

센소지 상가에서 산 고양이 손수건은 지금
도 애정한답니다 :>

그 때 가을이라 국화 전시회가 열렸었는데
지금도 저에게 아사쿠사는 만발한 국화꽃
으로 기억되네요.

cyrus 2018-08-10 17:33   좋아요 0 | URL
작년에 일본 오사카에 갔어요. 4박 5일이 짧게 느껴졌어요. 다음에 또 일본에 가게 되면 도쿄에 가고 싶어요. ^^
 

 

 

8월 14일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입니다. 세계 각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국가기념일입니다.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故 김학순 님을 기억하고, 피해자와 생존자들의 명예회복과 인권을 위해 지정됐습니다. 이 기념일을 맞아 전국에 일본군 ‘위안부’ 여성의 삶과 운동의 역사를 알리는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는 8월 14일 제6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을 맞아 대구에서도 행사가 열립니다. 세계일본군‘위안부’기림일공동행동대구·경북조직위원회“그녀들의 용기, 우리들의 위드 유”라는 슬로건으로 강연, 전시회, 문화제 등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8월 3일 오후 7시 국가인권위대구사무소 대구인권교육센터에서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 첫 번째 기획 강연이 열렸습니다. 이날 강연은 이인순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장님이 맡았습니다. 내일이죠. 10일 두 번째 강연은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님의 「페미니즘 관점으로 본 일본군 ‘위안부’ 운동」입니다.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저는 ‘위안부’에 왜 작은따옴표가 붙여져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이 궁금증은 강연이 시작된 지 20분 만에 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사실도 새로 알게 됐습니다. ‘위안부(Comfort Women)’는 ‘자발적으로 한 성매매’ 행위를 반영하는 용어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일본 극우는 지금도 ‘위안부’ 피해 여성을 자발적인 매춘부였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위안부’ 명칭의 문제점을 부각하고, ‘위안부’ 피해 여성을 정의하는 명칭이 대체할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작은따옴표를 써야 합니다. 저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어요. 막연히 ‘위안부’를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용어로만 알고 있었어요.

 

 

 

 

 

 

 

 

 

 

 

 

 

 

 

 

 

* 이토 다카시 《기억하겠습니다》 (알마, 2017)

* 안세홍 《겹겹》 (서해문집, 2013)

 

 

 

우리는 ‘위안부’ 또는 ‘종군위안부(Military Comfort Women)라는 용어에 익숙합니다. ‘위안부’가 나오기 전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을 ‘정신대(挺身隊)라고 부른 시절이 있었어요. ‘정신대’와 ‘위안부’, ‘종군위안부’ 명칭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연구가 나오면서 명칭 변경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최근에는 일본군의 반인권적 범죄 행위를 잘 드러나는 용어인 ‘일본군 성노예제(Japanese Army Sex Slaves)[주1], 또는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Japanese Military Sexual Violence Victims)라고 쓰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몇몇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성노예’와 ‘피해자’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공인된 정식 명칭은 아니지만,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라는 용어도 쓸 수 있습니다. 이인순 관장님은 지금 생존한 ‘위안부’ 할머니들 모두 세상을 떠난 뒤에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 시기가 오면 ‘일본군 성노예제’라고 부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라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은 전쟁 중 일본군의 성욕 해결과 성병 예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여성을 강제로 연행(동원)한 ‘국가적 방침’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일본군 ‘위안부’는 국가 권력 및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이며 반인권적 범죄 행위입니다. 강제연행의 유형은 다양합니다. 집에 무단 침입해서 억지로 끌고 간 사례도 있지만, ‘취업 알선’을 미끼로 가난한 여성을 납치하거나 인신매매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일본 극우주의자들은 일본 ‘위안부’의 강제연행마저 부정하고 있습니다. 일본 군부가 국가적 차원으로 강제연행을 기획하고 실행한 증거들이 있는데도 말이죠.

 

 

 

 

 

 

 

 

 

 

 

 

 

 

 

 

* 서울대 인권센터 정진성 연구팀 《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 (푸른역사, 2018)

 

 

 

 

 

 

 

 

 

 

 

 

 

 

 

 

* 윤명숙 《조선인 군위안부와 일본군 위안소 제도》 (이학사, 2017)

* 안병직 옮김 · 해제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 (이숲, 2013)

* [절판] 모리카와 미치코 《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 (아름다운사람들, 2005)

 

 

 

이인순 관장님은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 이숲, 2013) 93, 168쪽과 《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아름다운사람들, 2015) 66, 67쪽의 문장을 인용하면서 비교했습니다. 두 책에 나온 문장을 비교해서 검토하면 버마(지금의 미얀마) 전선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故 문옥주 님의 증언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옥주 님은 1943년 12월과 1944년 7월에 버마로 향하는 위안단이 부산항을 출발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이 쓴 1943년 7월 10일 일기에 보면 1942년 7월에 위안단이 부산항을 출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주2].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는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버마와 싱가포르에 근무한 일본군 위안소 관리자(쵸우바, 帳場)로 일한 조선인이 쓴 일기입니다. 이 기록은 일본 군부가 일본군 ‘위안부’를 계획적으로 동원하고 위안소 운영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일기를 우리말로 옮기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해제를 쓴 안병직 교수는 ‘뉴라이트’ 계열 학자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소극적으로 바라보고, 심지어 이 문제 자체를 부정하는 뉴라이트 역사관의 행보를 생각하면, 일기 번역과 해제를 뉴라이트 진영에서 활동하는 학자에 맡긴 건 분명 ‘옥에 티’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자료의 가치마저 깎아내리면 안 됩니다. 어떤 독자는 “이 책을 통해서 무언가 의미를 도출하기 어렵다”라고 썼던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위안소 관리자의 일기는 일본군 ‘위안부’의 실체를 알릴 수 있는 증거 자료입니다. 이 일기가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일본군 위안소를 운영하거나 관리한 조선인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입니다. 일본 극우주의자들은 이 사실을 근거로 일본의 국가 책임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만 가지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할 수 없습니다. 일본군 위안소 제도를 연구한 윤명숙 교수는 조선인의 일본군 ‘위안부’ 징모(徵募, 국가가 국민을 징집하는 일) 문제는 일제 강점기가 낳은 조선 민족 내부의 모순이며 이 비극의 역사를 우리나라 스스로 청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주3]. 조선인이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관여한 일을 인정하는 것도 일제 잔재 청산의 길입니다.

 

 

 

* Trivia

 

故 문옥주 님은 1936년 16살에 일본 헌병대에 끌려가 만주와 버마 등지에서 고초를 겪었습니다. 故 김학순 님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본인의 피해 사실을 밝혔습니다. 《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는 문옥주 님의 생애를 정리한 책입니다. 지금은 절판되어 구하기 힘든 책이 되었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 · 생존자들의 증언을 모은 《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 1권에 문옥주 님의 증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주1]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채록한 일본의 사진작가 이토 다카시(伊藤孝司)‘일본군 전용 성노예 피해자(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이토 다카시 지음, 안해룡 · 이은 옮김, 《기억하겠습니다》, 알마, 2017)

 

[주2] 안병직 옮김,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 이숲, 2013, pp. 93.

 

[주3] 윤명숙 지음, 최인순 옮김, 《조선인 군위안부와 일본군 위안소제도》, 이학사, 2015, pp. 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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