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인문학 - 하루를 가장 풍요롭게 시작하는 방법
다이앤 애커먼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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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은

새벽을 예감하는 눈에게만

빛이 된다

(정한모, ‘새벽 1’ 중에서)

 

 

 

 

자연 현상으로 볼 때, 새벽은 아직 사물들이 잠에서 깨기 이전의 시간이다. 태양 빛이 지구 위로 쏟아지는 순간, 침묵을 지키려는 어둠의 장막이 이를 온몸으로 막아내면서 장렬히 산화한다. 밝고 환한 세상을 열어주는 아름다운 한 줄기 빛이 대기를 감싼다. 광명한 세계로 나가는 과도기적인 시간으로 전이된다. 새벽을 거쳐야 밝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또한, 밤의 침묵을 깨달을 때 비로소 새벽의 고마움을 알게 된다. 새벽을 예감하는 눈만이 스스로 빛을 내뿜어 어둠을 몰아내는 광원이 될 수 있다.

 

어둠의 장막에 제대로 걷히지 않은 새벽길은 꽤 어둡다. 새벽에 일어난 어둑한 길을 걷노라면 아직 동터오기 직전, 바짓가랑이를 적시는 이슬방울의 차가움이 발끝에서부터 온몸으로 밀려온다. 새벽의 기운은 마음속에 들어 있던 나쁜 찌꺼기들을 씻겨나가게 한다. 드디어 뜨고도 보이지 않던 새벽을 예감하는 눈이 열리고 마음도 환하게 밝아진다. 빛이 나타나면 꽃과 나무, 흙과 돌멩이, 바위, 풀숲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보고 또 보아 눈에 익숙한 것들이지만 이슬을 머금고 막 어둠에서 벗어난 그것들은 말할 수 없이 신기하고 새롭다. 그래서 오늘 맞이하는 아침은 어제 맞은 아침이 아니라 전혀 다른 새 아침이다. 숲 속에서 새 아침을 맞는 기분 역시 어제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날아갈 듯한 새 경험의 새 기분이다. 하지만 새벽의 여정은 너무나도 짧다. 풀잎마다 무성하게 맺혀있던 이슬도 아침 햇살이 비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취를 감춰 버리듯이 새벽은 온 자연을 싱그럽게 하고, 조용히 햇살의 커튼 속으로 숨어버린다.

 

새벽은 순수하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다. 모나지 않으니 온 세상을 담을 수 있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무한이다. 그 시간 속엔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늘 반복된다. 어두운 자궁 밖으로 나오는 아기가 삶을 시작하면, 잠드는 동안 삶이 멈추어져 육신만 남은 껍데기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흙이 된다. 꼭두새벽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때는 가장 이른 새벽이면서 밤과 낮의 경계이자 도취와 현혹, 고통과 환희가 공존하는 전이의 시간이다. 또한, 새로운 기운을 머금은 어둠의 시간이다.

 

그런데 우린 새벽의 기적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다. 그저 성공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실용적인 시간으로만 썼을 뿐이다. 몇 년 전에는 ‘아침형 인간’으로 생활습관을 바꾸는 사람들이 많아졌던 적이 있었다.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끌었던 《아침형 인간》의 저자 사이쇼 히로시는 “아침을 지배하는 사람이 인생을 지배한다”고 역설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인생을 두 배로 사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반면 야행성 생활에 길들면 매사가 수동적이 되고 무기력해진다고 경고한다. 새벽 기상을 곧 성공과 관련지어 얘기하기도 한다. 성공한 기업인이나 법조인, 정치인 등의 공통점은 대부분 ‘새벽형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새벽은 자기계발을 하는 데 집중도가 높은 시간으로 변질하였다. 아침형, 새벽형 인간 열풍은 곧 시들해졌고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불을 댕기면 확 끓다가 쉽게 식어버리는 냄비 현상 탓이다. 그저 남들이 그런다니까 유행 따라 한번 해보는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식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다이앤 애커먼의 《새벽의 인문학》은 독자들에게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새벽의 세계로 초대한다. 그녀의 글은 저마다의 개성 강한 방식으로 지순한 자연 사랑을 담아내기에 더욱 진솔하고, 느낌 또한 강하다. 숲 속에 노래하는 새들, 아침 이슬이 맺힌 거미줄, 일벌의 하루, 정원 그리고 새벽을 밝게 비춰주는 금성까지 자연의 오브제들을 펜 끝에 남아 책 속에 옮겨 놓았다. 새벽을 예감하는 눈을 가진 저자는 전이의 시간을 마음껏 횡단한다. 애커먼은 우월한 인간의 입장으로 새벽의 세상을 바라보거나 단지 잘 먹고 잘살기 위해 찰나의 새벽을 지배하지 않는다. 새벽은 성공을 위해 지배해야 할 시간이 아니며 우리가 견고하게 믿고 있던 삶을 어느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지게 하는 상실의 시간도 아니다. 비록 짧지만, 다시 한 번 삶에 얽혀들 수 있는 자유의 시간이다.

 

애커먼이 바라보는 새벽의 세계는 자연이 공존하는 조화로운 세상이다. 새벽을 예감하는 눈에 각인된 새벽의 다양한 장면에서 삶의 방식을 배우고, 교훈을 얻기도 한다. 새벽의 등장을 알리는 새들의 지저귐이 무슨 의미를 주고받는 저들끼리의 대화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저자의 귀에는 언제나 한량없이 즐겁고 밝고 명랑하게 들린다. 새벽의 세계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에게는 그저 시끄러운 소음으로 들릴 뿐이다. 그러나 자기 기분을 가지고 새벽의 세계에 아무렇게나 간섭할 일은 아니다. 그 속에 사는 생명 고유의 영역이며 그들의 특권적인 삶의 방식이다.

 

하나가 되는 것도 아름답지만 때로는 각자의 모습을 아름답게 피워내며 서로를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일도 아름답다. 본래의 아름다움에 영롱한 보석을 달아주는 듯하여 본래의 아름다움을 더 아름답게 해주는 것이 새벽의 역할이다. 새벽이 없었더라면 새 아침의 감동은 없었을 것이다. 사람은 어둠 속에서 빛을 갈망한다. 사람만이 느끼는 감정이지만 어둠은 무섭다. 어둠이 있고 그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 있기에 새벽을 예감하는 사람은 새 아침의 감동을 새롭게 또 새롭게 되풀이해 만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중에 사람들한테 그게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설명했다. 실로 놀랍게도 사람들은 전혀 감탄하지 않았다.” (세이 쇼나곤의 《마쿠라노소시》 중에서, 《새벽의 인문학》 187쪽)

 

 

새벽을 예감하는 눈이 열리지 않은 사람은 《새벽의 인문학》 속에 담은 새벽의 풍경에 별다른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새벽에 일찍 눈 뜨는 일은 버겁고,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저자처럼 소박한 사치의 경험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과연 저자처럼 새벽형 인간이 된다고 하더라도 새벽의 감동은 온전하게 느낀다는 보장은 없다. 글에 나오는 동물들은 자연의 세계에서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사는데 익숙한 도시인에게는 낯설고 생소하다. 게다가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종도 있다. 국내 독자에게 낯선 동물을 소개하는 글은 책의 재미를 떨어뜨린다.

 

무한속도 경쟁 사회가 될수록 ‘느림’의 주문은 순식간에 효력을 잃어버렸다. 사람의 몸에 ‘시간’이 얹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띠 위를 사람이 허겁지겁 달려간다. 발전과 계몽을 강조하는 근대주의와 경쟁을 통한 적자생존 논리가 더욱 강조되면서부터 새벽형, 아침형 인간은 매력적인 인간형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새벽형, 아침형 인간이 강조하는 근면의 미덕 속에 남보다 우수한 능력을 갖춰, 더 많은 ‘자본’을 가져 경쟁사회에서 승리한다는 공식이 숨겨져 있다. 엄청난 성공의 열매를 먹기 위해 새벽에 일찍 일어나 노동하는 새가 된다면 과연 우리 삶이 행복할까.

 

진짜 새벽형 인간은 오늘 하루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까 생각해본다. 새벽을 바라보면서 감동을 만끽하는 것은 마음의 공부이다. 왁자지껄한 공간에서 들리는 큰소리보다 조용한 공간에서 삶과 우주, 죽음 등 조용한 서정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삶의 교훈을 얻기도 한다. 《새벽의 인문학》은 아름다운 새벽 자연 이야기만 늘어놓은 것이 아니다. 새벽 기운이 선사하는 밝음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다. 아침 햇살이 비치면 이내 사라질 것에도 항상 그렇게 새벽은 찾아온다. 자신의 삶이 짧은 것을 한탄하지 않는다. 자신이 머물렀던 그 순간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은 새벽의 세계가 멋져 보인다.

 

 

 

 

 

 

 

 

 

 

 



 
 
[그장소] 2015-03-04 23:17   댓글달기 | URL
불면이 친구가 되서 새벽은 익숙한 광경인데..미안하게도 이웃에겐..괴로울지도 모릅니다.
저놈의 집구석은 밤낮이 없다고...
낮도..밤도..눈 뜨고 있는 시간이 길다보니
가장 에너지가 풍부한 시간이 새벽인지라.. 움직임이 다소 활발합니다.
밀린 청소라든가..산책을 나가는 것도..
보통 새벽이기 일쑤니..말이죠.
새벽 4시부터 6시가 되기전..
가장 좋아하는 시간입니다.

Agalma 2015-03-05 00:23   댓글달기 | URL
실제 현실은...새벽 첫차, 특히 버스 타는 분들은 용역일, 청소 등 허드렛일 하시는 분들로 만원이죠. 아침형보다 더 이른 새벽형 인간/대중들인데, 그들이 세상을 지배하느냐 하면.....
인문학적 자기계발서들의 반듯한 글들과 (심신수양, 조화...)를 꿈꾸기엔 곤궁한 일상을 비교할 때 ...다들 그들만의 리그 같아서...번번히 쓸쓸해집니다.
좋은 글에 딴지 걸려는 건 아니고요, 그냥 제가 새벽 거리를 볼 때마다 느낀 단상과 괴리가 많이 느껴져서 몇 자 적었습니다...

[그장소] 2015-03-05 00:43   URL
아하핫...그들이 다 잘되었으면 재벌이 되었어야 하는데..말이죠.
병든 자(저처럼..신경계가 망가지거나)아니면 먹고사니즘 때문에..노동으로 새벽빛을봐야하는..것이 현실이란..
지극한 현실.앞에 아침형 인간은 무슨...아침동생이나 잘...챙기면 다행...뭐~ 이러는^^;

야나 2015-03-05 02:33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_ 내 말이_ 모두 다 성공하기만을 바라는 건 물론 모두가 행복하기를 원하는 것과 같겠지만 이 사회에서 성공이라는 말은 어쩐지 일그러져 보여. 이건 내 마음이 일그러졌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산 속에서 한 1년 푹 썩다 오고 싶어지네_ 이 글 읽으니까_ 물론 순천에서도 썩고 있지만 후후후

[그장소] 2015-03-05 05:09   댓글달기 | URL
드라마의 영향탓도 없진 않지만..그렇다고 그것이 전부 진실일 것이라 믿진 않아요.일각이겠죠...
그러나 분명 성공하기위해 더많이 냉정과 열정이란 이름으로 거침없이 상처를 준 사람들이 많기도 했었을 테고..시간이 가면서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을거라 여겨요.불편한 진실이 아닌...당연한 진실요.
그게..뭐?...하는 식이...되는 ~
 

 

 

 

 

 

 

 

 

 

 

 

 

 

 

 

 

 

제사(題詞)는 책의 첫 머리에 그 책에 관계되는 내용을 시문으로 적은 글이다. 외국 소설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시뿐만 아니라 속담, 격언, 노랫말, 소설 속 문장 등을 인용한다. 그런데 간혹 번역자는 외국 소설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제사를 누락할 때가 있다.

 

러브크래프트의 단편 「아웃사이더」러브크래프트 전집 4권(황금가지, 2012),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현대문학, 2014) 그리고 《세계 호러 단편 100선》(책세상, 2005)에 수록되어 있다. 러브크래프트 전집 4권을 통해서 「아웃사이더」를 처음 읽었기 때문에 《세계 호러 단편 100선》에 있는 「아웃사이더」를 읽지 않고 넘어가려고 했지만, 러브크래프트 전집 4권과 《세계 호러 단편 100선》의 번역자가 정진영 씨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아웃사이더」 번역이 같은지 확인했다. 《세계 호러 단편 100선》은 러브크래프트 전집보다 먼저 출간되었다. 나는 정진영 씨가《세계 호러 단편 100선》에 있는 「아웃사이더」 문장을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러브크래프트 전집 4권에 그대로 옮겼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확인해 본 결과, 번역된 문장에 차이가 있었다. 정진영 씨가 「아웃사이더」을 다시 번역했거나 러브크래프트 전집 4권의 공동 번역자로 참여한 류지선 씨가 「아웃사이더」을 번역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러브크래프트 전집 4권의 「아웃사이더」에 제사가 누락된 사실을 확인했다. 《세계 호러 단편 100선》 을 읽지 않았더라면, 「아웃사이더」의 제사를 몰랐을 것이다. 러브크래프트는 영국의 시인 존 키츠의 ‘성 아그네스의 전야’ 구절 일부를 「아웃사이더」의 제사로 삼았다.

 

 

그날 밤, 남작은 숱한 고뇌를 꿈꾸었다.
손님으로 온 용사들,
마녀와 악마와 커다란 송장벌레의 모습과 그림자를 띤 그들은
기나긴 악몽이 되었다.

 

 

제사를 누락한 번역은 완역이라고 말할 수 없다. 공교롭게도 제사가 없는 「아웃사이더」는 러브크래프트 전집 4권이 유일하다. 단편선집인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의 「아웃사이더」에도 존 키츠의 시구를 삼은 제사가 있다. 최근에 나온 외전까지 포함해서 러브크래트프 전집은 총 7권이 되었다. 그런데 기존에 나온 전집세트(1~4권) 중 1권에 있는 번역의 문제점을 바로 잡았는지 궁금하다. 1권의 「에리히 잔의 선율」에서 주인공 에리히 잔을 비올(Viol) 연주자가 아니라 바이올린 연주자로 잘못 번역했다. 황금가지의 러브크래프트 전집은《러브크래프트 코드》(동서문화사, 2005년)의 최악의 번역에 크게 실망한 독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원문을 무시한 사소한 번역의 오류는 옥에 티다.

 



 
 
 
정상과 비정상의 과학 - 비정상의 시각으로 본 정상의 다른 얼굴
조던 스몰러 지음, 오공훈 옮김 / 시공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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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에 미국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로젠한은  정신과 의사들이 정상인과 정신병 환자를 제대로 구별할 줄 아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신을 포함한 정상인 여덟 명을 정신병자로 위장시켰다. 그들은 정신병원에 들어가서 환청이 들린다고 거짓 증상을 말했다. 놀랍게도 한 명은 조울증, 나머지 일곱 명은 조현증 진단을 받았다. 완벽한 연기로 정신병자로 인정(?)받았다. 충격적인 실험 결과는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내기」라는 논문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진을 받고, 약물을 투여받으며,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정신병원에 수용되고 있는가. 로젠한의 논문으로 인해 정신의학은 미국인의 절반을 ‘잠재적 정신병자’로 모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멀쩡한 자신을 향해 “정상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당연히 불쾌하다. 그런데 주위에 있던 사람들조차 이에 동조한다면? 그때는 ‘내가 정말 정상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할까?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그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서 창조적인 사람이 될 수 있고 병적인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 누구라도 그 기준을 명백히 말할 수 없다.

 

요즘 부모들은 과거와 달리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발달이 빠른지 비정상인지에 대해 관심이 높다. 그래서인지 아이가 말을 늦게 하기 시작하면 발달이 느리다고 걱정한다. 사실 아무리 아동의 발달에 대한 지식이 있는 전문가라 할지라도 빠른 성장 중인 아동이 앞으로 어떻게 발달할 것인지 확실히 장담할 수는 없다. 단지 아동이 발달상의 장애가 있는지, 특별한 도움 없이는 정상 발달을 하기 어려운지 진단하고 평가한 뒤 전문적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다. 정상적인 아동의 경우도 개인에 따라 발달 속도가 판이하고 개성도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특정 발달검사의 수치만으로 아이의 발달 정도를 단언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자폐 장애는 사회적 상호교류가 떨어지는 것이 주된 특징으로 언어적 또는 비언어적인 의사소통 기술이 부족하며,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특징을 보인다. 뇌 발달이 느릴 뿐만 아니라 불규칙하고 비정상적인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자폐증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일치하고 있지는 않다. 출생 전이나 출생 중, 그리고 출생 후에 일어나는 뇌 손상이나 정상적인 뇌 손상에 영향을 주는 유전적 요인이 원인이라는 것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이전에는 많은 학자가 정서상의 문제를 자폐증의 원인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 주장에는 많은 허점이 있어 부정되고 있다.

 

문제는 정서상의 문제를 원인으로 한 주장이 사실인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 분위기이다. ‘비정상’으로 보려는 편견을 기준 삼아 자폐증 환자들 바라본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를 키우는 것만 해도 그 어머니에게는 큰 아픔인데 부모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의 차가운 시선은 견디기 힘든 시련일 것이다. 부모의 방치나 학대가 아이의 행동이나 언어발달, 사회성 발달에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애정결핍이 생기기 쉬운 보육원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서 자폐증이 더 많다는 실증이 없어서 단순한 양육환경의 문제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현실적으로도 자폐아를 가진 어머니들이 다른 어머니들에 비해 훨씬 아이들에게 정성을 쏟는 점을 볼 때도 이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자폐증은 선천적 장애다.

 

정상은 사전적 의미로 ‘제대로인 상태’ 혹은 ‘지극히 평범한 상태’를 이른다. 의학에서는 질병의 유무나 검사결과의 수치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이를 벗어나는 경우는 비정상이 된다. 대한정신의학회에서 말하는 비정상은 사람의 사고기반이나 체계가 일반적인 사회의 통념에서 많이 벗어나는 경우라고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비정상적인 사람이 주장하는 것은 타인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것이 반복된다면 그 사람은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 정신의학이 규정한 ‘비정상’의 정의는 삶의 모든 영역에 개입하면서, 비정상적으로 질병으로 보는 문화가 확립된다.

 

프랑스인들은 하루 중에 “개와 늑대의 시간(heure entre chien et loup)”이라고 부르는 표현을 사용한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고 땅거미가 내리면서 저만큼 다가오는 짐승이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시간이다.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의 정신의학과 교수 조던 스몰러는 정상과 비정상을 낮과 밤의 경계처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다고 말한다. 경계가 모호한 상태일수록 인간의 판단력은 떨어진다. 비정상으로 분류된 정신 질병은 불시에 우리 마음을 공격하는 늑대로 판단하기 쉽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상의 생물학’이라는 기준을 내세운다. ‘정상의 생물학’은 뇌와 마음의 관련성을 파악하는 학문적 관점이다. 여기에 진화생물학, 유전학, 심리학 등 다 학문적 접근으로 뇌와 마음의 정상적인 작동 과정을 이해한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유전자로 결정된 자기 나름의 기질이 있다. 어떤 아이는 수줍음이 많고, 어떤 아이는 사람에게 잘 다가온다. 먹고 자는 것이 규칙적인 아이가 있는 반면 매우 불규칙한 아이도 있다. 이처럼 아이가 가지고 태어나는 기질은 뇌의 원시적인 구조가 갖는 정보처리 양식이다. 뇌의 깊은 곳에 있는 편도체는 그 구조의 하나로 위험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생리적 반응을 일으키는 기관이다. 하지만 아이의 기질이 곧 성격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경험이 뇌에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환경의 영향은 아예 뇌의 한 조직인 변연계를 뒤흔들어 기질 자체를 변화시킬 수도 있으며, 같은 기질이라도 전혀 다른 적응 방식이나 성격을 나타내게 한다. 결국 기질이나 유전자는 그 자체로 운명을 결정하지 못한다. 기껏해야 특정한 성격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높여 줄 뿐이다. 그러므로 남들과 다른 기질이라는 이유로 비정상으로 단정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은 네 살이 되도록 말도 제대로 못 해 저능아라는 소리를 들었다. 학교에 가서도 제대로 적응을 못 하자 선생님은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어머니는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아인슈타인이 말을 늦게 하기 시작한 것은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민감기가 또래 아이들보다 조금 늦게 온 것뿐이다. 성장하는 아이들의 뇌는 민감기가 다 있다. 쓰기, 읽기가 분리되어 있으며 순서가 있다. 민감기에 배운 내용은 뇌가 똑똑히 기억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그 기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필요한 때가 되면 곧바로 사용할 수 있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한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멀쩡한 얼굴로 내려왔다. 누가 얼굴을 씻을 것인가. 학생들은 더러운 아이라고 답한다. 누가 얼굴을 씻을 것인가. 학생들은 더러운 아이라고 답한다. 선생은 아니라고 말한다. 얼굴이 멀쩡한 아이는 더러운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자기 얼굴을 보고 자기 얼굴에도 그을음이 묻었을 것으로 생각했을 노릇 아닌가. 선생은 다시 묻는다. 누가 얼굴을 닦았을까. 그러나 학생들은 이번에도 정답을 맞히지 못했다. 선생은 말한다. 두 아이가 똑같이 굴뚝을 청소하고서 한 아이만 얼굴이 깨끗하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교사는 분필을 들고 돌아섰다. 그는 칠판 위에서 ‘뫼비우스의 띠’라고 썼다.”

 

정상과 비정상의 모호한 경계는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안과 겉의 구별을 할 수 없는 한쪽 면만을 가진 곡면이다. 안이 겉이고 겉이 안이 되는 구조. 우리 사회가 여전히 매달리고 있는 생각 중의 하나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다. 우리는 정상이 비정상화되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모든 정신 활동들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 시대의 상황을 알아야 하며, 그 문화의 차이를 판단해야 하고 사회적인 기준을 잘 파악해야 하며 더더욱 필요한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해야 할 정도의 능력을 갖춰야 가능할 일이다.

 

 

 

 

 

 

 


 



 
 
돌궐 2015-03-03 23:08   댓글달기 | URL
제가 이쪽은 잘 모르지만 근현대 예술론에서도 정신분석학 쪽에서 몇몇 중요한 이론이 나왔던 걸로 기억해요.
요 몇 년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을 보면서 저는 정상적인 판단과 행동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가 않다는 걸 알게되었습니다.

cyrus 2015-03-04 17:07   URL
맞습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일인데 개인 혹은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서 정상을 비정상으로 몰아가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니까요.

오쌩 2015-03-04 02:09   댓글달기 | URL
어렵네요,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와 기준이 무엇인지...

오쌩 2015-03-04 02:28   댓글달기 | URL
정신분석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신경정신과 의사들이 제대로 진단을 하는지 저또한 의문입니다
오래전에 우울증을 경험해서 실제로 멏차례 가본적이 있는데...
기억나는 의사분진단이 교감신경인가 부교감신경에 이상이 생겨서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오쌩 2015-03-04 02:26   댓글달기 | URL
신기한게 우울증을 경험했을때,
감각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더군요.
일시적으로 맛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때 운동을 엄청 많이하고 일에 몰입했더니,감각이 돌아오고,삶의 태도도 바뀌고 하더라구요.
신기하고 귀한 경험이었고,인간의 감정과 태도가 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것을 알게되었습니다

2015-03-04 0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04 1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5-03-04 18:29   댓글달기 | URL
이책 흥미로울 것 같다.
나도 젊었을 때 한때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에 관심이 많아
제법 많이 읽었는데 지금은 영 시큰하다.

그런데 병원 오진은 확실히 많은 것 같애.
오래 전 잠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다량의 신경안정제를 맞은 적이 있어.
그게 수면제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하는데
어떻게나 잠을 재우던지 그 치료 방법이 좀 의심스럽더라.
다행히도 그때 병원에서 잘 살아남아서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는데
건강 잃으면 손해야. 아파서도 손해고 병원에서 어떻게 할지 몰라 불안하고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만큼만 건강하게 버티는 거. 이게 장땡이더라구.ㅋ

cyrus 2015-03-04 21:02   URL
이 책이 뇌 과학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어요, 약간 후성유전학 느낌도 나고요. 몸 건강도 좋지만 요즘처럼 이상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마음도 건강해야 될 것 같아요. 몇 년 후에 안부 인사로 ‘몸 건강하세요’가 아니라 ‘마음 건강하세요’라고 해야 될지 몰라요.. ㅎㅎㅎ
 
기구를 타고 5주간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12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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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먼족 마을 상공을 날던 비행기 조종사가 빈 콜라병을 던진다. 난생처음 보는 병을 보고 부시먼들은 고민한다. 신의 물건이라고 생각하는 추장은 땅 끝에 가서 신에게 돌려줘야 한다며 길을 떠난다. 부시먼은 영화(1980년에 개봉된 영화의 원제는 ‘The Gods Must Be Crazy’, 국내에 처음 개봉되었을 당시 제목은 ‘부시맨’이었다. 외래어표기법에 따르면 ‘부기먼’이라 써야 한다) 속에서 콜라병을 들고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하는 미개인으로 묘사됐다. 하지만 콜라병을 든 부시먼은 추억의 영화에 나오는 장면일 뿐이다. 하늘에 떨어진 콜라병에 놀라는 부시먼은 없으니까. 무분별한 자연 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에 쫓겨나다시피 사는 부시먼들은 칼라하리 사막에 찾아오는 전 세계의 관광객들을 맞아 전통춤을 추고, 사냥하는 장면을 재현하면서 살아간다.

 

고결한 야만인(Noble savage). 이 말은 문명을 인간의 오염원으로 간주하면서 그에 물들지 않은 순수 자연의 인간을 찬탄하는 문구 정도로 이해된다. 그렇지만, 이 말 속엔 이웃 부족을 약탈하고 파괴하는 폭력적인 이미지가 공존하고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원시사회는 평화롭지 않다. 미국의 인류학자 니콜리언 섀그넌은 순수하고 서정적인 ‘고결한 야만인’ 통설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섀그넌은 최후의 원시 부족으로 알려진 아마존에 사는 야노마뫼족을 35년간 현지 조사를 했는데, 그가 목격한 야노마뫼 족은 이웃 부족과의 전쟁과 약탈이 만연한 삶을 살고 있었다. 원시사회의 생생한 기록을 담은 섀그넌의 책(《고결한 야만인》, 생각의힘, 2014)은 출간 당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문명의 얼룩에 찌들지 않은 순수한 원시 부족을 공개한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을 인상 깊게 본 사람이라면 섀그넌의 책에 반감을 보일 것이다.

 

지역적 환경에 따라 평화롭게 사는 부족이 있을 것이며 반대로 척박한 환경 속에 생존하기 위해서 폭력과 약탈이 불가피한 부족도 있을 것이다. 다만, ‘야만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점이 불편하다. 이 세 글자 속엔 세계를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구도로 파악한 제국주의적 시선이 남아 있다. 고귀하고 야만적이라는 기준은 지극히 서구적인 개념이다. 쥘 베른의 처녀작이자 ‘경이의 여행’ 시리즈의 첫 작품인 《기구를 타고 5주간》은 19세기 문명인의 눈으로 바라본 아프리카가 펼쳐진다. 베른은 아프리카 원시사회의 양면적 세계를 실감 나게 묘사하고 있다.

 

지리학자 새뮤얼 퍼거슨 박사와 그의 친구 딕 케네디 그리고 하인인 조 윌슨은 미지의 땅이나 다름없는 아프리카 중앙부를 기구로 횡단하는 무모한 탐험에 나선다. 수많은 유럽 탐험가들이 아프리카 대륙에 발을 디뎠지만, 아프리카의 심장부에 가까이 가보지 못했다. 야생에 더 깊숙이 들어갈수록 부족들의 공격이나 풍토병에 의해 불귀의 객이 될 수 있었다. 세 사람은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긴다. 기구를 처음 보는 부족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아프리카 특유의 변덕스러운 날씨는 기구의 움직임을 방해한다. 아프리카 탐험 중에서 가장 큰 위기는 식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사막을 횡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베른의 소설이 늘 그랬듯이, 과학의 혜택(기구, 총)으로 무장한 인간은 자연(아프리카)의 무시무시한 위력 앞에 굴하지 않는다.

 

‘고결한 야만인’은 원시사회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면서도, 그들을 야만인으로 규정하여 문명인으로 교화시키려는 서양식 진보를 그럴싸하게 미화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조는 진보의 무한한 발전을 믿고, 문명과 야만을 구분한다. 아름다운 자연이 야만적인 아프리카에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또 부족들의 미개함을 무시하기도 한다. 조는 빈 병을 땅으로 던지면 부족들이 깜짝 놀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하늘에서 떨어진 콜라병에 놀라는 영화 속 부시먼의 모습이 연상된다.

 

어떤 마을을 120미터 높이에서 지나가고 있을 때 조가 말했다. “이 빈 병을 놈들에게 던져도 될까요? 병이 깨지지 않으면 놈들은 이 병을 숭배할 겁니다. 깨져도 이 유리조각을 부적으로 삼겠지요.” 이렇게 말하고는 그는 병을 던졌다. 병은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졌다. 주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오두막으로 달아났다. (198쪽)

 

퍼거슨 박사 일은 기구를 타면서 아프리카 대륙을 내려다본다. 세계를 내려다보는 신의 시선은 원시 부족을 제압한다. 하늘 위에 둥둥 떠 있는 기구를 처음 본 원주민들은 도망가기에 바쁘다. 아프리카 원주민의 주술사가 기구의 닻에 걸려 공중에 매달리는 장면은 문명의 과학 앞에서 힘 한 번 제대로 못 쓰는 ‘고결한 야만인’을 보여준다. 그들의 순수함은 고결하거나 아름답지 않다. 문명의 혜택이 필요한 어수룩한 존재로 전락한다. 하지만 베른은 조처럼 진보의 힘을 맹목적으로 믿지 않는다. 퍼거슨 박사만이 ‘고결한 야만인’을 ‘고결한 문명인’로 만들려는 진보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원시사회 그 자체를 보려고 한다. 퍼거슨 박사 일행은 식인 풍습이 있는 부족들의 학살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데 케네디와 조는 역겹다고 말한다. 이들은 잔인한 파괴를 일삼는 부족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불쾌하고 야만스럽게 느낀 것이다. 반면 퍼거슨은 잔인하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야만적인 문화로 규정하는 인식을 지적한다. 케네디가 부족들의 싸움을 멈추기 위해 총을 꺼내들자 이를 퍼거슨이 막는다. 아무리 잔인한 풍습이라도 문명인이 개입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기구를 타고 5주간》은 선천적으로 착한 본성을 의미하는 ‘고결한 야만인’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련된 수사가 만들어 낸 문화적 환상에 도취한 제국주의는 ‘유럽의 의무’라는 자신들만의 사명감을 내걸고 식민지 정복을 원한다. 베른이 묘사한 아프리카 탐험은 낭만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담보로 내건 탐험가들의 ‘아프리카 러쉬’는 멈추지 않았다. 아프리카 탐험을 꿈꾸던 독자들은 아프리카로 떠나는 ‘경이의 여행’에 열광했다. 제국주의의 야욕을 경계하는 퍼거슨 박사의 걱정은 단순한 기우가 아니었다. 《기구를 타고 5주간》이 발표된 지 20여 년 후에 금광과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로 아프리카 종단 철도를 구상한 영국인 광산업자 세실 로즈는 케이프주 식민지 총독이 되어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을 착취했다.

 

 

 

※ 퍼거슨 박사의 모험 과제는 버턴과 스피크가 탐험한 아프리카 지역을 조사하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버턴을 빅토리아 호를 발견한 탐험가로 소개하고 있지만, 그는 번역가로서의 명성이 더 알려져 있다. 1885년에《아바리안나이트》를 번역했다.

 

 


 



 
 
만병통치약 2015-03-01 19:53   댓글달기 | URL
와 이거 소설 맞나요? 논픽션처럼 보이네요. 고결한 야만인과 함께 꼭 읽겠습니다. ^^

cyrus 2015-03-02 10:52   URL
베른은 평생 영국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었는데 오직 상상력으로만 여행 장소를 묘사했어요. 현실과 공상을 적절하게 조합한 이야기가 베른 소설의 특징이에요. 만병통치약님은 요즘 인류학 분야 책을 읽고 계시니 <고결한 야만인>을 어떻게 보실지 궁금합니다. ^^
 

 

 

안녕하세요. 민음사 출판그룹 논픽션 브랜드 민음인입니다.

세계 주요 언론과 경영 석학이 극찬한 역작! 

우리가 모르는 아웃 라이어 이야기.

 『인비저블』이 민음인에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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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저블?


외부적 찬사나 보상에 별 관심이 없으나 자신의 직업 영역에서

 

고도의 전문성으로 막중한 책임을 지며 일을 통해 깊은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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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저블』

 

자기 홍보의 시대, 과시적 성공 문화를 거스르는 조용한 영웅들


《월스트리트 저널》, 《퍼블리셔스 위클리》, 《커커스 리뷰》, 《북리스트》

 

와튼스쿨 애덤 그랜트 교수 등 세계 주요 언론과 경영 석학이 극찬한 역작!



일과 성공에 대한 새로운 정의

 

‘인비저블’은 누구인가. 그들의 삶은 어떻게 성공적이면서도 행복한가?


모든 산업 분야에는 수백만 명의 인비저블들이 숨어 있다. 다방면에서 슈퍼스타와 천재가 난무하는 자기 과시와 명성의 시대에, 그들은 무명으로 남으면서도 일과 삶을 즐긴다. 언론인이자 작가인 데이비드 즈와이그는 『인비저블』을 통해 현대의 지배적인 풍조를 거스르는 조용한 영웅들을 통해 일과 성공의 참의미를 재고찰한다.



“타인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그 실제 가치보다 훨씬 과장되어 있다.

 

묵묵히 맡은 일에 몰입하는 것이 나를 위대하게 한다.”


사실 검증 전문가(fact checker)와 마취 전문의, UN 동시통역사, 초고층 빌딩의 구조공학자,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들이 실수를 저지를 때, 조직은 대참사를 맞게 된다. 그러나 일을 완벽하게 해낼 때, 그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로 남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을 잘할수록 더 많은 관심을 받지만, 인비저블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오로지 뭔가 잘못되었을 때뿐이다.


사회에 팽배한 과시적 성공 문화에 반기를 들고, 외부적 찬사나 보상에 별 관심이 없으나 자기 영역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며 만족스러운 경제적 보상을 받는 조용한 엘리트들. 저자는 모든 조직에서 없어서는 안될 핵심 인력임에도 익명의 삶을 선택한 인비저블의 특성을 통해 이 시대 성공에 대한 재정의를 내린다.





자기 홍보의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모든 사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래야 할 필요도 없으며, 어떤 이들은 그것을 원치도 않는다. 책 속 인비저블들은 타인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그 실제 가치보다 훨씬 과장되어 있으며, 오히려 자기 일에 집중하고 해야 할 일을 수월하게 해내며 깊은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풍요로운 삶의 근원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 자세한 책소개 보기 :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173827 



▶ 『인비저블』 서평단 모집 상세 내용


하나, 『인비저블』 서평단 모집 포스팅을 개인 블로그에 스크랩 한 뒤, 읽고 싶은 이유를 간단하고 성실하게 적어서 스크랩 링크와 함께 댓글로 올려주시면 응모가 완료됩니다.


둘, 응모 기간은 2015년 2월 27일(금)부터 3월 8일(일)까지 입니다.


셋, 총 추첨인원은 10명입니다. 

(최종 응모자 수에 따라 추첨인원이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넷, 서평단 발표일은 2015년 3월 8일 월요일입니다.

서평단에 선정되신 분은 3월 9일까지 개인정보를 비밀댓글로 적어야합니다.

3월 9일 까지 주소확인이 안되면 당첨이 자동취소됩니다.


다섯, 서평기간은 2015년 3월 10일 부터 3월 19일까지(10일간)입니다.


마지막, 당첨된 서평단 분들은 서평기간인 10일 안에 알라딘 개인 계정으로 서평을 작성한 후, 『인비저블』 서평단 발표 포스팅에 알라딘 개인 블로그 및 그 외 블로그나 외부 채널 등에 남기신 서평 링크를 댓글로 달아주셔야 최종 서평이 완료됩니다.


※ 해당 기간 안에 서평 및 서평완료 댓글을 작성하지 않을 시,

다음 서평단 모집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