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세속’)는 독자들이 만든 독서 모임이다. <세속>의 현재 나이는 1살이다. 나보다 더 꾸준하게 읽는 독자들을 만난 덕분에 지금도 <세속>은 살아 있다. <세속>은 여전히 자라는 중이다.
독서 모임 후기는 독자들의 말을 그러모아서 가지런히 정리한 글이다. 독자들의 생각 흔적을 알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이다. 하지만 독자들의 말과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 휘리릭 사라진다. 독자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면서 동시에 쓸만한 내용을 머릿속에 허겁지겁 담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써야 한다. 얼른 쓰지 않으면 조각난 대화가 흐릿해진다. 나는 작년 연말 모임 때 올해 <세속> 후기 쓰기를 미루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못했다.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3월의 세계 문학, 조약돌 님의 추천 도서]
* 페터 빅셀, 이용숙 옮김, 《책상은 책상이다》 (위즈덤하우스, 2018년)
<세속> 3월의 세계 문학 도서는 스위스의 소설가 페터 빅셀(Peter Bichsel)의 단편 소설집 《책상은 책상이다》이었다. 조약돌 님이 추천한 책이다.
약돌 님이 직접 발제를 만들었고, 모임 진행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모임이 있는 그날,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일어났다. 내가 9시 30분까지 야근하게 된 것이다. 모임이 시작되는 시간은 8시다. 모임이 마무리되는 시간은 10시부터 10시 30분 사이다. 대화가 길어지면 11시에 마치기도 한다. 일 끝나자마자 바로 모임 장소에 갔지만, 내가 도착할 때 10시 조금 넘었고, 모임은 이미 끝난 상태였다. 집에 가려고 이제 막 자리를 뜨려는 참석자들과 잠깐 인사하고 헤어졌다. 이날은 모임 참석자가 많았다. 새로 온 참석자들도 있었다. 약돌 님의 모임 진행을 엄청나게 기대했는데, 끝내 보지 못했다. 나는 지각과 불참을 동시에 달성한 모임장이 되었다.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4월의 세계문학, 정유정 님의 추천 도서]
* 오에 겐자부로, 서은혜 옮김 《개인적인 체험》 (을유문화사, 2009년)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5월의 세계문학, 향기 님의 추천 도서]
* 아사이 료, 민경욱 옮김 《정욕(正欲): 바른 욕망》 (리드비, 2024년)
4월과 5월 모임은 나뿐만 아니라 <세속> 독자들 모두가 만족한 모임이었다. 독서 모임 지정 도서가 된 일본 문학 작품을 두 달 연속으로 읽는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6월의 세계 문학, 조약돌 님의 추천 도서]
* 토머스 드 퀸시, 김석희 옮김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시공사, 2010년)
* [품절] 토머스 드 퀸시, 김명복 옮김 《어느 영국인 아편 중독자의 고백》(펭귄클래식코리아, 2011년)
* 토머스 드 퀸시, 유나영 옮김 《심연에서의 탄식 / 영국의 우편 마차》(워크룸프레스, 2019년)
* 토머스 드 퀸시, 유나영 옮김 《예술 분과로서의 살인》(워크룸프레스, 2014년)
6월의 세계 문학 도서는 토머스 드 퀸시(Thomas De Quincey)의 에세이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이었다. 이 책도 약돌 님이 추천했다. 약돌 님이 추천한 번역본은 지금은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펭귄클래식코리아’ 판본이었다.



서평을 썼을 정도로 책을 여러 번 재독했다. 드 퀸시가 쓴 다른 글도 읽었다.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의 후속작이 《심연에서의 탄식》이다. 드 퀸시의 글이 세계 문학 고전 작품으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논증하는 글을 쓰려고 준비했으나, 시작도 하지 못했다.




모임 다음 날인 토요일에 <세속> 1주년 모임이 있었다. 1주년 모임 장소는 ‘카페 스톨토크’로 정했다. 이번 달에 시작한 철학 공부 모임을 만든 김 사장님께서 그날 하루 전체 대관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다. <세속> 1주년 기념 케이크는 <세속> 모임 장소인 카페 ‘인더가든’ 사장님이 직접 만들었다.
오랜만에 여러 사람과 함께 식사하고 대화했다. 이날 스몰토크 김 사장님도 함께했다. 약돌 님의 취미는 바이올린 연주다. 약돌 님은 자신의 바이올린을 가져와서 연주했다. 김성현 님은 보드게임을 즐긴다. 그분의 가방 안에 책과 보드게임이 든 상자 여러 개가 들어 있다. 그날 늦게 남은 사람은 나를 포함한 네 명이었다. 네 명은 보드게임 몇 판 하고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이날 먹고 노느라 모임 후기 쓰는 것을 미루었다.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2025년 7월 도서, 김성현 님의 추천 도서]
* 스티븐 레비츠키 · 대니얼 지블랫 함께 씀, 박세연 옮김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어크로스, 2018년)
[<읽어서 세계 문학 + 향기의 미스터리 속으로> 2025년 8월 도서, 향기 님의 추천 도서]
* 정해연 《홍학의 자리》 (엘릭시르, 2021년)
7월과 8월 모임 지정 도서는 세계 문학과 살짝 거리가 먼 책들이었다. 7월 도서는 성현 님이 추천했다. 책 이야기보다는 국내의 굵직굵직한 정치적 이슈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정치에 관한 대화를 깔끔하게, 균형 잡히게 쓰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그래서 7월 모임 후기를 과감히 포기했다.


8월 모임의 콘셉트는 <향기의 미스터리 극장>이다. 작년에 서점 ‘일글책’에서 시작된 추리 문학 전문 모임이다. 향기 님은 일 년 만에 두 번째 모임을 진행했다.
* 정해연 《드라이브》 (앤드, 2025년)
모임장 향기 님은 정해연 작가의 작품 세계를 정리한 팸플릿을 직접 만들었다. 그리고 향기 님은 정현정 님에게 정해연 작가의 다른 소설 《드라이브》를 추천했다.
독서 모임 후기는 서평보다 쓰기 어렵다. 서평의 주인공은 책이다. 독서 모임 후기의 주인공은 모임에 참석한 독자들이다. 독서 모임에 참석한 독자들의 다양한 생각을 제대로 정리해서 독서 모임에 참석하지 않은 다른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하지만 어렵게 시간 내서 독서 모임에 참석한 주인공들의 생각을 빛나게 해주고 싶은데, 막상 쓰려고 하면 자꾸만 내 생각이 주인공들의 생각을 침범해서 가린다. 그래서 독서 모임 후기를 다 쓰고 나서도 마음이 뿌듯하기보다는 개운치 않다. 완성된 독서 모임 후기를 공개하면 모임에 참석한 분들에게 마음에 안 드는 내용이 있으면 꼭 알려 달라고 부탁한다.
* 버지니아 울프, 최애리 옮김,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열린책들, 2022년)
* 버지니아 울프, 박인용 옮김, 《보통의 독자》 (함께읽는책, 2011년)
독서 모임 후기는 모임의 성격과 참석자들의 취향을 대강 파악할 수 있게끔 해주는 글이다. 그리고 도서 큐레이션 역할도 할 수 있다. 도서 큐레이션은 책방을 꾸리는 책방지기, 북 인플루언서, 북튜버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책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지 않아도, 전문가가 아니어도, 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도서 큐레이션을 할 수 있다.
내가 여태까지 여러 번 강조한 ‘독자’는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가 선호한 ‘보통의 독자’를 뜻한다. ‘보통의 독자’는 특별한 문학 훈련을 받지 않은 독자다. 울프는 「서재에서 보낸 시간」이라는 에세이에서 ‘보통의 독자’ 유형과 비슷한 ‘독서가’의 모습을 제시한다.
진짜 독서가는 본질상 젊다. 그는 호기심이 강하고 아이디어가 풍부하며 사람들과 잘 소통하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이다.
어떤 작품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자기 나름의 이유를 찾아내야만 하며, 이것이 우리를 한층 더 주의 깊게 만드는 동시에 우리가 정말로 고전 작품들을 읽고 이해했다는 최상의 증거가 된다.
(버지니아 울프, 「서재에서 보낸 시간」 중에서,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수록, 12쪽과 17쪽에 있는 문장을 발췌했음)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을 만든 독자들은 정신적으로 젊은 독서가들이다. 이분들은 내가 눈여겨보지 못한 책들이 왜 좋은지, 왜 읽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말할 줄 안다. 젊은 독서가들이 추천한 책들이 없었으면 독서 모임은 유지되지 못했을 것이다. 독서 모임이 사라지면, 나는 (울프가 말한) ‘박식하고, 책에 몰두해 있는 외로운 열정가’로 살아가고 있지 싶다. 책을 더 많이 사는 대신에 젊은 독서가들을 많이 만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