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 ‘Chagrin’은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슬픔’, 또 다른 하나가 ‘표면이 오돌토돌한 가죽’이다. 발자크의 소설 『Le Peau de Chagrin』를 처음으로 번역한 역자는 제목을 ‘나귀 가죽’으로 정했다. 라루스 대백과사전에는 ‘Chagrin’를 ‘양, 염소, 나귀 등에서 얻어지는 표면이 오돌토돌한 가죽’이라고 정의한다. 작품에는 정체불명의 가죽을 나귀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언급되고 있다. 가죽이 점점 줄어들수록 주인공의 목숨도 줄어든다. 주인공은 죽음을 앞두는 자신의 상황에 절망을 느끼는데, 작품 제목의 ‘Chagrin’은 '가죽'과 '슬픔', 복수의 의미를 담고 있다. 사실 『Le Peau de Chagrin』은 우리말로 번역하기 힘든 제목이다. 『Le Peau de Chagrin』이 번역되지 않았을 때, 이 소설 제목을 제각각 다르게 불렀다. 다음에 나오는 두 개의 인용 문장은 알라디너 하이드님의 글에서 참고했다.

 

 

프로이트는 죽을 때까지 평생 하던 일을 계속했다. 즉 언제나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읽은 책은 발자크의 『들나귀 가죽』이었다. 그는 “이 책이야말로 내게 정말 필요한 책이야”라고 말했다. (미셸 슈나이더, 《죽음을 그리다》 중에서)

 

해즐릿은 자신이 “클랜골른의 여관에서 셰리주 한 병과 식은 닭 요리를 앞에 두고 『신 엘로이즈』를 들고 앉아 있던” 날이 1798년 4월 10일이었다는 사실을 줄곧 기억했다. 롱펠로 교수가 대학에서 훌륭한 프랑스어 문체를 훈련하는 방법으로 발자크의 『상어 가죽』을 읽으라고 조언했던 것을 내가 기억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수잔 와이즈 바우어, 《독서의 즐거움》 중에서)

 

 

《나귀 가죽》을 읽은 독자라면 ‘상어 가죽’, ‘들나귀 가죽’이라는 표현이 무척 생소하게 여길 것이다. 그렇지만 두 가지 명칭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니다. ‘Chagrin’은  ‘상어 가죽’ 을 의미하는 영단어 'Shagreen'의 의미와 같다. 학술 논문 전문 웹사이트에 ‘상어 가죽’, ‘들나귀 가죽’을 검색하면 불문학 전공자들이 쓴 『Le Peau de Chagrin』에 관한 논문들을 확인할 수 있다.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1969년에 쓴 논문에 『Le Peau de Chagrin』을 ‘상어 가죽’ 으로 썼다. 『Le Peau de Chagrin』의 제목을 ‘마법 가죽’으로 쓰기도 하는데 제목만 언급되는 책 속에서 이 말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최초의 진정한 소설인 〈마법 가죽〉에서 발자크는 자신의 형식을 짐작하게 해주고 있다. 여기서 그는 장래의 목적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슈테판 츠바이크,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중에서, 178쪽)

 

발자크는 《마법 가죽》 초판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장파,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 중에서, 438쪽)

 

철학적 연구에 속하는 『마법 가죽』 (1831) 에서는 발자크의 신비주의를 엿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구체성을 성취하고자 하는 발자크의 열정이 비현실적으로 구현된다. (대니얼 J. 부어스틴, 《창조자들》 중에서, 226쪽)

 

 

그밖에도 ‘도톨 가죽’, ‘야생 당나귀 가죽’으로 표현한 책도 있다.

 

 

거기에서 (< 도톨가죽>에서 발자크의 표현으로) 고객들은 몇 시간 만에 파산하고 ( 인근 총 제조업자의 도움으로) 자살하고, 쉬지 않고 이어지는 파티에 출석한 평복사제의 도움으로 더 좋은 세계로 갔다. (앨리스테어 혼, 《나폴레옹의 시대》 중에서, 113쪽)

 

같은 맥락에서 발자크의 소설 《야생 당나귀 가죽 Wild Ass’ Skin》 도 이상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A.J. 제이콥스, 《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 중에서, 198쪽)

 

 


《시간 추적자들》(하랄트 바인리히, 황소자리, 2008)는 『Le Peau de Chagrin』의 명칭이 통일되지 않은 채 언급된다. 처음에는 ‘샤그랭 가죽’이라고 했다가, 그다음 쪽에서는 ‘야생 나귀 가죽’으로 나온다. 그런데 이 책의 주석에는 소설 제목을 ‘우툴두툴한 가죽’이라고 썼다.

 

 

이 최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샤그랭가죽이 모두 소진되고 이와 함께 그의 인생 시간도 남김없이 소진돼버렸다. 괴테의 극작품과 유사하게 발자크의 소설도 주인공의 죽음과 함께 최고의 순간에 대한 의식(혹은 환상) 이 이루어지면서 끝을 맺는다. (하랄트 바인리히, 《시간 추적자들》 중에서, 88쪽)

 

이 주제를 마무리하면서 주인공이 야생 나귀 가죽을 샀던 골동품상으로 다시 한 번 돌아가보자. (하랄트 바인리히, 《시간 추적자들》 중에서, 89쪽)

 

 

조금 특이한 사례이지만, 《공포문학의 매혹》 (H.P. 러브크래프트, 북스피어, 2012)의 역자는 '거친 엉덩이 피부'라고 썼다. 처음에는 역자의 단어 선택에 의아했는데, 하이드님의  댓글 답변 덕분에 궁금중이 해소되었다. 상어, 나귀의 엉덩이 부위에 있는 가죽으로 해석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도 기괴한 작품들을 독일 못지않게 활발히 배출했다. 『아이슬란드의 한스』를 쓴 빅토르 위고와 『거친 엉덩이 피부 Le Peau de Chagrin』, 『세라피타』, 『루이 랑베르』를 쓴 발자크는 자연적 요소를 다소간 활용했다. (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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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5-09-01 21:36   댓글달기 | URL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번역이란게 정말 어렵(?)군요...^^

cyrus 2015-09-02 17:59   URL
외국 서적을 만들 때 편집자들의 노고도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제일 고생하는 사람은 바로 번역자일 겁니다. 독자가 번역에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번역자는 그에 대한 비난을 감수 받아야 하니까요. ^^

yamoo 2015-09-01 22:24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이 써주신 발자크 페이퍼 보고 <나귀가죽> 샀어요!
정말 재밌을 것만 같은 기대감 만빵입니다~ 줄거리만 살짝 봤는데도 기대감이 업~ㅎㅎ
발자크가 문장을 지루하게 쓴다는 소리가 진짜인지 좀 확인도 해 볼겸...겸사겸사^^

재밌고 인상적이라면 사이러스님께 추천 10개를 날려 드릴게욤^^

cyrus 2015-09-02 18:02   URL
<나귀 가죽>이 괴테의 <파우스트>와 같이 읽어봐도 좋은 발자크의 작품입니다. 소설에 대한 야무님의 감상이 기대됩니다. ^^

재스민 2015-09-02 08:30   댓글달기 | URL
담엔 스탕달 시리즈로 올려주실거죠?ㅎ

cyrus 2015-09-02 18:03   URL
발자크의 소설을 다 읽으면 ‘스탕달-빅토르 위고-플로베르-모파상-에밀 졸라’ 순으로 읽어보려고 합니다. ^^
 

 

 

 

 

 

 

 

 

 

 

 

 

 

 

 

 

 

 

 

 

 

* 《랑제 공작부인》 (La Duchesse de Langeais, 1834년, <인간 희극> 제1부 풍속 연구 ‘파리 생활 풍경’)

 

 

 

발자크의 소설 《랑제 공작부인》(La Duchesse de Langeais)이 처음에 발표되었을 때 불렀던 제목은 ‘도끼에 손대지 마(Ne touchez pas lahache)’이다. 이 작품은 금성세계문학전집 20번에 《골짜기의 백합》과 함께 수록되었다. 금성세계문학전집은 오래전에 판이 끊긴 터라 헌책방에서만 만날 수 있다. 공공도서관에서 이 전집을 만나려면 오래된 책들을 따로 보관하는 보존서고에 찾아봐야 한다. 대구에 있는 모 도서관이 유일하게 금성세계문학전집 전 120권을 보존서고가 아닌 일반 자료실에 보관하고 있다. 놀랍게도 보존 상태는 좋은 편이다. 몇 권은 낙장이 있지만, 읽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금성세계문학전집 20번 덕분에 발자크의 <인간 희극> 작품 목록에 관한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2015년 8월 6일에 발자크의 <인간 희극>을 소개한 글(‘펜 하나로 세상을 정복하다’)을 쓰면서 나는 제1부 풍속 연구 『파리 생활 풍경』의 작품 목록에 의문을 느낀 적이 있다. 한 달 전에 표로 정리한 『파리 생활 풍경』의 작품 목록이다.

 

 

 

 

 

 

피에르 바르베리스의 《발자크》(화다, 1989) 속에 있는 <인간 희극> 작품 목록을 살펴 보다가 ‘13인의 비밀 결사’ 라는 제목에만 번호가 없다. 나는 처음에 ‘13인의 비밀 결사’가 하나의 독립된 작품인데, 출판사의 실수로 번호를 넣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런데 이 추측은 완전히 잘못되었다. 《페라귀스》, 《랑제 공작부인》, 《황금빛 눈을 가진 여자》 옆에 ‘첫 번째 에피소드’, ‘두 번째 에피소드’, ‘세 번째 에피소드’라는 글자가 있다. 이 세 작품이 ‘13인의 비밀 결사’ 3부작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13인의 비밀 결사’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생각보다 관련 정보가 많지 않다. 《랑제 공작부인》의 역자 해설이 그나마 13인 비밀 결사의 정체를 알 수 있는 아주 귀중한 자료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제정 시대에 활동했던 비밀 결사라는 사실만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나폴레옹 왕정 전복을 기도하기 위해서 비밀리에 모였을 것이다. 《페라귀스》, 《랑제 공작부인》, 《황금빛 눈을 가진 여자》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모두 13인 비밀 결사에 가담한 실존 인물이다. 재미있게도 발자크는 ‘13인의 비밀 결사’ 작품 서문에서 13명의 조직원이 보여준 대담성과 강인한 마음을 칭찬하고 있다. 발자크는 왕정을 지지한 보수주의자다. 그가 보수주의자라는 이유로 작품 전체를 정치적 견해와 연관을 지어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방식이다.

 

 

사실 《랑제 공작부인》의 줄거리보다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따로 있다.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을 탄생하게 한 작가의 연애 경험담이다. 《랑제 공작부인》을 본격적으로 집필하기 전인 1831년에 발자크는 영국 부인의 이름으로 서명된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된다. 독자, 특히 귀부인들이 보낸 팬레터를 소중히 여겼던 발자크는 부인에게 답장을 보낸다. 몇 달 동안 편지로 교류하면서 영국 부인은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그녀는 명망 있는 귀족 집안 출신인 카스트리 후작부인이었다. 발자크보다 세 살 연상인 후작부인은 전 남편 카스트리 후작과 헤어지고,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의 장남과 사귄 적도 있다. 카스트리 부인은 발자크의 이상형에 딱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발자크는 자신의 속물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재산 많은 여자를 만나고 싶었다. 발자크에게 이런 만남은 단순히 작가와 독자 간의 돈독한 우정 그 이상이다. 《발자크 평전》(푸른숲, 1998)을 쓴 슈테판 츠바이크는 발자크를 귀족 사회로 편입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교만한 속물 덩어리로 보았다. 발자크는 부인의 저택에 드나들면서 부인과의 관계를 더욱 더 가까워지려고 노력한다. 단둘이서 알프스를 여행할 정도로, 두 사람은 거의 애인처럼 지낸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히 식어버린다. 1832년 10월에 부인과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했던 발자크만 혼자 프랑스로 돌아온다. 부인은 자신을 ‘돈’, ‘명성’ 그 자체로만 보는 발자크의 속물근성에 실망했거나 아니면 육체적 관계를 강요하는 발자크를 매몰차게 거절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사실 카스트리 부인은 발자크가 편지 덕분에 직접 만난 여성 중 한 사람에 불과했다. 발자크는 독자로서 자신에게 접근하는 수많은 여성과 염문을 뿌렸다. 여성 독자들의 팬레터는 못생긴 숙맥이었던 발자크의 남성성을 확 살려주었다. 발자크는 펜 하나만으로 모든 여성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만만했다. 이 사건 이후로 발자크는 카스트리 부인과의 교제를 이어가지만, 예전의 친밀한 상태로 되돌아가지 못한다. 카스트리 부인과의 연애는 발자크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로 남는다. 발자크는 부인을 증오하면서 그녀와의 관계를 ‘삶에서 겪은 가장 힘든 패배’라고 말했다. 이러한 가슴 아픈 작가의 연애사가 반영된 작품이 바로 《랑제 공작부인》이다.

 

《랑제 공작부인》의 남녀 주인공 아르망 드 몽트리보 장군과 랑제 공작부인은 발자크와 카스트리 부인을 상징한다. 랑제 공작부인은 사랑의 감정 때문에 뜨거워서 미칠 지경인 몽트리보의 심장을 더 애태우게 한다. 부인의 ‘밀당’에 약이 오른 몽트리보는 그녀를 증오하게 되고, 복수하려고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카스트리 부인을 향한 발자크의 진심 어린 분노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야기는 의외의 상황으로 전개된다. 랑제 공작부인은 뒤늦게야 몽트리보의 구애가 진실이었다는 점을 깨닫고, 복수심에 불타오른 몽트리보 또한 분노를 누그러뜨려 그녀를 다시 만나려고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다. 발자크는 몽트리보와 부인과의 비극적 사랑을 통해서 사교계라는 사회 구조에 조종당하고 희생된 개인의 감정을 보여준다. 랑제 공작부인은 상류 생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몽트리보 장군을 향한 애정을 숨기지만, 결국에는 진실한 사랑을 선택한다.

 

《랑제 공작부인》을 번역한 역자는 이 작품을 ‘진실한 여성에 대한 찬가’라고 해석한다. 그러면서 카스트리 부인에 대한 발자크의 복수가 투영된 작품으로 보는 해석을 반대한다. 그러나 나는 역자의 해설에 동의할 수 없다. 전자의 해석으로 작품을 본다면, 카스트리 부인을 향한 발자크의 분노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과연 카스트리 부인은 소설 속 랑제 공작부인처럼 단지 자신의 상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발자크의 구애를 거절했을까? 발자크가 자신의 연애사를 미화하면서까지 《랑제 공작부인》을 쓰는 모습이 석연치 않다. 분명 발자크의 마음속에는 부인에 대한 미움의 앙금이 남아있을 것이다. 발자크가 카스트리 부인을 복수하기 위해서 《랑제 공작부인》을 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발자크는 랑제 공작부인을 진실한 사랑 앞에 참회하는 인물로 설정했을까. 자신의 소설을 애독하는 여성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서다. 발자크의 실질적인 데뷔작인 《결혼 생리학》은 경제적으로 성공을 크게 거두지 못했지만, 여성 독자들의 관심을 얻는 데 성공했다. 발자크는 여성의 생각을 정확하게 관찰했고, 그걸 글로 대신 표현했다. 그 당시 여성은 남성처럼 본명으로 글을 쓰지 못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여성들은 발자크의 소설을 읽으면서 대리만족을 느꼈다. 그래서 수많은 여성 독자들은 발자크에게 팬레터를 보냈고, 그를 직접 만나고 싶어 했다. 《랑제 공작부인》처럼 서로 간의 오해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한 연인의 사랑 이야기는 여성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통속적인 전개 방식이다. 

 

발자크는 자신을 장난감처럼 취급한 카스트리 부인과의 만남을 후회했을 것이다. 하지만 연애사를 소재로 소설을 쓰는 그의 행동이 잘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는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서 여성 독자에게 가까이 접근했고, 이런 만남을 지속해서 유지하여 귀족이 되고 싶어 했다. 발자크의 여성 편력은 언론으로부터 심한 조롱을 받았으며 인기 작가임에도 권위 있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되지 못했다. 발자크는 펜 하나로 세상을 정복하는 문학의 나폴레옹이 아니라 여자들을 정복하고 싶은 프랑스판 카사노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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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9-01 01:32   댓글달기 | URL
저는 발자크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글을 읽으며 헤르만 헤세가 자꾸 생각이 났어요 ㅎ 이 당시 문인들은 카사노바 같은 성향이 있는것 같다는 ㅎ

근대 참 대단해요 도서관 서고까지 파악하며 책을 찾기도하고 때론 헌책방에서 보물같은 책을 찾는모습 부럽습니다 ^~^

cyrus 2015-09-01 20:15   URL
재 생각이지만, 외국 문학가 중에서 평생 반려자와 함께 살았던 로맨티스트를 꼽으라면 많이 없을 것 같아요. 기억도 안 나요. ^^;;
 

 

 

 

 

 

 

 

 

 

 

 

 

 

 

 

 

 

 

 

 

조금은 지저분한 내용이 있는 글이다. 아니, 애초에 이 글을 안 보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소개될 내용을 미리 알리겠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독자의 비위를 불편하게 만드는 지저분한 장면이 몇 개 나온다. 다음에 소개될 두 개의 장면은 비평가들을 당혹감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율리시스》를 최악의 작품이라고 평가했던 비평가들의 눈에는 우스꽝스럽고도 엉뚱한 소설 속 장면이 이야기 전개와 전혀 상관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의식의 흐름 기법을 따르는 소설의 구조를 생각한다면 조이스가 단순히 독자에게 웃음을 유발하려고 이런 장면을 삽입하지 않았으리라.

 

《율리시스》 4장 ‘칼립소’는 레오폴드 블룸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다. 오전 11시에 친구 디그넘의 장례식을 참석하기 전까지 레오폴드가 겪게 되는 일상적인 상황과 내면 의식을 보여준다. 레오폴드는 외로움 타는 중년 남성이다. 가수인 아내 몰리 블룸과 같이 살고 있지만, 아내는 동료 가수인 블레이제스 보일런을 좋아한다. 레오폴드는 시장에 아침밥을 준비하기 위한 재료를 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편지 두 통과 엽서 한 통을 발견한다. 편지 한 통과 엽서는 아내에게서 온 것인데 발신인이 보일런이다. 나머지 편지 한 통은 블룸의 딸이 보낸 것이다. 레오폴드는 편지를 읽다가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하필이면 그 날 오후에 보일런이 몰리를 만나려고 집으로 찾아올 예정이다. 레오폴드는 아내와 보일런이 밀회하는 상상을 한다. 아내와 보일런의 관계는 레오폴드의 내면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레오폴드가 어디를 가든, 무슨 어떤 일을 하던 아내와 보일런에 대한 고민을 지우지 못한다. 레오폴드는 아내의 불륜을 알고 있어도 괜히 그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 ‘칼립소’는 레오폴드의 외로운 상황을 보여주는 심각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우스꽝스럽게 끝이 난다. 레오폴드는 식사를 마친 뒤에 화장실에 들어가서 날짜가 지난 잡지를 읽으면서 볼일을 본다. 그러는 와중에 그의 머릿속은 아내 걱정이 아닌 엉뚱하게도 단편소설을 쓰는 모습을 상상한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다 보고 난 후에 목욕탕으로 향한다.

 

 

그는 화장실의 흠 있는 문을 발로 차서 열었다. 장례식을 위해 바지를 더럽히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좋아. 그는 낮은 이마 서까래 아래로 머리를 숙이면서,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조금 열어둔 채, 썩은 석회며 묵은 거미줄 냄새 속에서, 그는 허리띠를 풀었다. 앉기 전에 그는 벽의 빈틈을 통하여 이웃 창문을 엿보았다. 임금님은 그의 회계실(會計室)에 있었다. 아무도 없군.
변기에 웅크리고 앉아 그는 주간지를 펴서, 맨 무릎 위에 그의 페이지를 펼쳐 놓았다. (중략) 조용히 그는 읽어 나갔다. 스스로를 힘을 주면서, 첫째 단을, 그리고 굴복하면서 그러나 티면서, 둘째 단을 읽기 시작했다. 반쯤 와서, 그의 최후의 저항에 버티며, 어제 있었던 약간의 변비증이 완전히 가시도록 계속 끈기 있게 읽으면서, 그가 읽자, 그의 창자가 조용히 후련하게 되었다. 지나치게 커서 치질이 재발하지 않아야 할 텐데. 아니야, 됐어. 그래. 아하! 변비증. 카스카라 사그라다 한 알을. 인생도 이랬으면. 단편소설은 그를 감동하거나 자극하지는 않았으나 뭔가 민감하고 청초한 것이었다. 지금은 무엇이든지 인쇄를 하지. 별반 기사거리가 없는 계절. 그는 계속 읽었다. 자신이 풍겨 오르는 냄새 위에 조용히 앉은 채.

 

(김종건 역, 169~170쪽)

 

 

서양 문화에서 화장실은 뭔가 음침하고 불결한 장소이다. 이렇다 보니 비평가들은 주인공이 볼일을 보는 장면이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지어 그를 후원해준 에즈라 파운드도 이 장면에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소설 속 화장실은 아주 특별한 장소다. 아내에 대한 레오폴드의 상념이 일시적으로 해소된다. 레오폴드는 소설을 집필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아내에 대한 걱정을 잊는다. 우리나라 절에서는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라고 한다.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이다. 화장실의 의미를 이처럼 적절하게 표현한 말도 없다. 레오폴드의 입장에서는 화장실이 잠시나마 근심을 잊을 수 있는 안락한 장소다. 조이스는 화장실을 불결하고 폐쇄된 장소가 아닌 안락한 장소로 변환하면서 기존의 인식을 뒤엎는 발상을 선보였다.

 

11장 ‘세이렌’에서도 레오폴드는 아내 걱정에 불안감을 느낀다. 이 장은 특이하게도 노랫말이 많이 등장한다. 레오폴드가 만나는 인물들은 노래를 부르는데 음악이 레오폴드의 정서에 영향을 준다. 레오폴드는 세이렌의 노래를 들으면서 위험한 유혹을 이겨내는 오디세우스와 동일하다. 어수선한 의식 상태인 와중에서도 조이스는 이야기 후반부에 재미있는 장면을 또 한 번 연출한다. 레오폴드는 뱃속에 가스가 차오르고 있음을 느낀다. 조금 있으면 방귀가 나오려고 한다. 거리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 때문에 방귀를 시원하게 뀌지 못한다. 안 그래도 주변에 흐르는 노랫소리에 거슬리는데 이제는 뱃속의 장이 레오폴드를 예민하게 만든다.

 

 

블룸(꽃)은 가스가 뱃속에서 빙글 뱅글 도는 것을 느꼈다.
그놈의 사이다가 가스성(性)이었던 모양: 역시 변비를. 가만있자. 루벤 J가(家) 근처 우체국 1실링 8페니 너무. 배의 가스를 제거하자. 그리크가(家)로 몸을 살짝 피하자. 만날 약속을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걸. 대기 속에 한층 자유롭게. 음악.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거다.

 

(김종건 역, 536쪽)

 

 

결국, 레오폴드는 사람들이 지나가지 않는 틈을 타 시원하게 가스를 배출한다. 하나의 광대한 음악처럼 진행된 11장의 이야기는 레오폴드의 방귀 소리와 함께 장엄하게 끝이 난다.

 

 

프흐, 오오, 프르프르.
“지상(地上)의 만족들.” 뒤에는 아무도 없군. 그녀는 지나갔다. “그때에 그런데 그때 가서야.” 전차 크란 크란 크란. 좋은 기회. 들어오고 있다. 크란들크란크란. 확실히 버건디 때문이야. 그래. 하나, 둘. “나의 비명(碑名)을.” 카라아아아아아. “쓰여지게 하라. 나는”
프르프흐르프흐흐.
“끝났도다.”

 

(김종건 역, 541쪽, * 버건디 : 프랑스 브르고뉴 지방에서 생산되는 적포도주)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지독하게 어려우면서도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소설이다. 여기에 소개된 장면들은 단순한 해프닝 이상의 의미를 지닌 조이스 자신의 문학관을 반영한다. 그는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서사 형식이 더 이상 새롭지 않다고 보았다. 그는 레오폴드 블룸 또는 스티븐 디덜러스  내세워서 ‘자아’가 지각할 수 있는 것을 자유롭게 말하려고 했다. 그 과정에 주인공의 심리 상태에 개입하는 갖가지 외부 자극을 어떻게 수용하고 저항하며 또는 소화해 내는지가 리드미컬하게 이어진다. 심리적 불안은 신체적 긴장을 동반한다. 신체적 긴장을 이완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원초적인 것은 ‘배설’이다. 대소변을 배설한 직후 편안한 기분이 드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 감정 패턴이다. 레오폴드에게 ‘배설’은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억눌렸던 상처나 감정을 분출하는 카타르시스 작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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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8-29 15:28   댓글달기 | URL
와, 제임스 조이스 할배는 생리학에도 도통했나 보다.
율리시즈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니...!
네 말마따나 지독히 어려우면서도 우스꽝스러운가 보다.ㅋ

cyrus 2015-08-29 20:50   URL
<율리시스>가 정말 재미없는 소설인데도 끝까지 참고 읽으면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씩 나와요. 그 장면을 해석하는 것도 재미있고요. 소설이 양파 같아요. ^^
 

 

 

 

 

 

 

 

 

 

 

 

 

 

 

 

 

 

* 『헨트에서 생긴 일』 (The Thing at Ghent, 발표 연도 미상)

 

 

 

발자크의 단편 『헨트에서 생긴 일』은 발자크가 쓴 글 중 가장 짧다. 이 글이 공포 단편 선집에 포함된 것이 의아하다. 글의 출처가 불분명하다. 작품 원제는 ‘The Thing at Ghent’, 역자는 원제를 프랑스어가 아닌 영어로 소개했다. 헨트는 벨기에에 있는 공업 도시이며 ‘Ghent’는 영국명이다. 프랑스명은 ‘Gend’다. 그런데 발표연도를 ‘1900년’으로 표기했다. 발자크가 살아있었을 때 발표되지 못한 글이 작가 사후에 발견되어서 1900년에 발표되었던 것일까. 이 작품의 정체가 궁금해서 ‘The Thing at Ghent’로 구글을 검색해봤다. 위키피디아에 ‘The Thing at Ghent’ 관련 정보를 발견했다. 발표 연도는 없고, 그냥 ‘발자크가 쓴 공포소설’이라고만 짧게 소개했다. 책에 나오는 발표 연도는 숫자가 잘못 표기된 것으로 생각하고, 잠정 결론으로 발표 연도를 ‘미상’으로 썼다. 그럴 일은 100% 없겠지만, 공포소설이라고 해서 이 작품을 찾아 읽지 않았으면 한다. 나 같으면 지루하더라도 발자크가 쓴 장편소설을 읽겠다. 내가 요약한 줄거리만 보면 짧은 소설을 다 읽은 셈이다.

 

헨트에 십 년간 미망인으로 지낸 노부인이 산다. 그녀는 불치병으로 거의 빈사 상태에 이른다. 노부인의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세 명의 친척이 임종을 기다리는 그녀 곁을 지킨다. 그런데 세 명의 친척은 외롭게 사경을 헤매는 노부인이 가여워서 보살피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재산을 물려받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노부인을 찾아온 것이다. 의사는 노부인이 더 이상 살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다. 친척들은 노부인의 임종 순간을 기다린다. 그런데 놀라운 장면을 목격한다. 숯덩이가 된 장작 하나가 갑자기 난로 밖으로 나와 마룻바닥에 떨어진다. 다 죽어가던 노부인은 마룻바닥에 떨어진 숯덩이를 보는 순간, 두 눈을 부릅뜨면서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침대에 내려와 마룻바닥에 있는 숯덩이를 집게로 집어 들어 다시 난로 안에 던진다. 친척들과 의사는 노부인을 부축하여 다시 침대로 눕힌다. 노부인은 숯덩이가 떨어진 마룻바닥을 주시한 채 숨을 거둔다. 친척들은 노부인의 기이한 행동이 마룻바닥 밑에 숨긴 무언가를 가리키기 위한 암시라고 생각한다. 숯덩이가 떨어져서 그을린 흔적이 남은 마룻바닥을 파보게 되자, 거기에 여러 구의 사람 유골이 있었다. 유골 무더기 중 하나는 타지에서 죽은 줄만 알았던 백작의 남편이었다.

 

냉정하게 평가를 하자면, 『헨트에서 생긴 일』이 공포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 이야기 구성이 다소 어설프다. 결말에서 독자는 이야기에 드러나지 못하는 상황을 추측할 수 있다. 하나는 유산이 탐난 부인이 남편을 죽인 후, 그가 타지에서 죽었다고 거짓말을 꾸며 자신의 범죄 행각을 숨겼을 수도 있다. 또 하나는 백작의 자연사를 숨기려고 어쩔 수 없이 백작의 시체를 마룻바닥 밑에 보관하는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도 결말에서 이상한 점은 나머지 유골의 정체다. 애매한 결말은 부인과 유골과의 관계를 더 궁금하게 만든다. 진부한 설정이지만, 차라리 죽은 남편의 유골과 몰래 숨겨둔 재산 금고가 발견되는 결말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노부인이 죽기 일보 직전에 보여준 기이한 행동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난로 안에 있던 장작이 마룻바닥에 떨어지는 설정은 생뚱맞지만, 죽은 백작이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기 위한 영적 신호로 해석이 가능하다. 만약에 친척 중 한 사람이 마룻바닥에 떨어진 장작을 집게로 집었다면, 마룻바닥 밑에 있는 남편의 유골이 발각될 수 있었다. 그래서 노부인은 죽은 남편에 대한 비밀을 자신의 무덤 속에 안고 가려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장작을 난로 안에 던진 것이다. 이야기가 너무 짧아서 아쉽다. 괴기스러운 상황이 긴장감 있게 연출되지 못한 채 결말이 바로 이어진다. 이렇다 보니 독자가 예상하지 못한 결말의 반전 효과를 확 살리지 못했다. 이야기의 분량을 좀 더 늘려서 고딕 소설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를 더 조성했더라면 결말이 한층 돋보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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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5-08-28 19:14   댓글달기 | URL
지명을 왜 헨트라고 번역했는지 모르겠네요. 표기상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발음은 겐트로 알고 있습니다. 보통 벨기에 여행시 브뤼셀과 브뤼주를 주로 가는데 겐트도 좋답니다. 이 작품은 어설프다는 말이 딱 맞네요. cyrus님의 생각대로 전개하는 편이 나아 보여요.ㅎㅎ

cyrus 2015-08-28 22:10   URL
역자가 영문학과를 졸업했어요. 아마도 ‘Ghent’의 ‘G’가 묵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건 역자가 착각했군요. 정말 이 발자크의 작품은 허무함 그 자체입니다. ^^
 

 

 

 

 

 

 

 

 

 

 

 

 

 

 

 

 

 

 

 

그는 불결한 생선 비린내가 풍기는 파리의 한 시장에서 태어났다. 그는 천부적인 후각으로 모든 냄새를 소유하려 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자신만의 고유한 체취를 풍기지 못한다. 사람 체취를 향으로 만들기 위해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의 주인공 그루누이 이야기다. 후각에 민감한 주인공은 ‘변태’ 혹은 타락한 하층계급의 후손으로 묘사되어 있다. 특정 사회계층을 차별하면서 사람들은 흔히 악취가 난다는 이유를 들이댔다. 18세기 계몽주의가 판을 치던 시대에 곳곳에 근대적 도시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농촌 사람들이 도시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는 오직 자신의 노동력에 의지해 생계를 유지해야만 했다. 이들은 비위생적인 환경의 좁은 곳에서 집단으로 거주하는 도시빈민층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주거조건은 전염병의 발병과 전파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했다. 상류층 사람들은 냄새나고 더러운 것을 비도덕적인 것으로 간주했고, 향수를 뿌리고 다녔다. 따라서 향수는 생활필수품인 동시에 높은 신분을 상징하기도 했다.

 

그런데 악취를 없애려고 향수를 자꾸 뿌려봤자 소용없었을 것이다. 악취를 맡지 않으려면 그냥 집 안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문필가 루이 세바스티엥 메르시에《파리의 풍경》에 대도시의 역겨운 이면을 적나라하게 소개한다. 이때 당시 파리의 위생상태는 최악이었다. 18세기의 파리는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 무척 더러운 곳이었다. 도시는 나날이 발전하는데도 위생에 대한 관심은 후퇴하고 있었다.

 

 

 

좁고 잘못 난 길들, 너무 높고 공기의 자유로운 순환을 가로막는 집들, 푸줏간과 생선가게, 하수구, 묘지들 때문에 대기가 나빠지고 불순한 입자들로 가득 차게 된다. 그래서 이 폐쇄된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과도하게 높은 집들 때문에 1층과 2층 주민들은 태양이 가장 높이 솟아올랐을 때에도 여전히 어둠 속에 갇혀 있게 된다. 시민이 휴일이나 일요일에 시골의 맑은 공기를 쐬려고 나가면, 성문 밖에 발을 들여놓기 무섭게 똥거름이나 다른 오물에서 나오는 악취를 맡게 된다. (《파리의 풍경》 1권, 92쪽)

 

 

인용한 문장만 딱 놓고 본다면 그루누이가 살던 도시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히고, 속이 울렁거린다. 하지만 놀랍게도 악취 문제는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악취의 원인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분뇨였다. 오늘날 화장실을 의미하는 ‘toilet’은 프랑스어 ‘toile’에서 유래된다. ‘toile’은 망토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거리를 걷다가 뱃속에 신호가 느껴지면, 망토를 들고 다니는 화장실 업자에게 돈을 내고 볼일을 봤다. 그런데 문제는 급한 용변 때문에 화장실 업자에게 돈을 내는 것이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 몰래 볼일을 보는 것이 더 간단했다. 이러니까 거리나 강 주변에 분뇨가 여기저기 방치되고 말았다. 따로 분뇨를 모아 놓은 구덩이가 있었지만, 오늘날의 분뇨처리장과 같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곳에서 발생하는 가스가 파리의 대기 상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또한, 분뇨구덩이 주변에 있는 우물도 오염되었다. 파리를 대표하는 센 강에서도 오물이 흘러들었다. 위생에 무지한 파리지앵들은 분뇨로 오염된 물을 식수로 사용했다.

 

 

수많은 분뇨 구덩이에서 오염된 공기가 뿜어져 나온다. 밤에 분뇨 구덩이의 오물을 수거하면 구역 전체로 오염이 확산되고, 불쌍한 사람들이 몇 명씩 목숨을 잃는다. 분뇨 구덩이들은 엉성하게 만들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라서 이웃 우물로 오물이 흘러들기도 한다. 항상 우물물을 쓰는 빵장수가 그런 이유 때문에 우물물을 안 쓰지는 않는다. 분뇨 수거인들 또한 시 밖까지 오물을 운반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 새벽에 하수구나 개천에 쏟아버린다. 이 가공할 찌꺼기는 천천히 길을 따라 센 강으로 향하고, 강가를 오염시킨다. 아침이면 물장수들이 강가에서 물동이에 물을 긷고, 무감각한 파리인들은 그 물을 마실 수밖에 없다. 더욱 믿을 수 없는 것은, 젊은 외과의사들이 해부학 실습을 하려고 훔치거나 산 시체들이 많은 경우 토막나서 분뇨 구덩이에 버려진다는 사실이다. 이런 분뇨 구덩이를 파보면, 때로는 끔찍한 해부용 시체 토막에 충격을 받고, 때로는 중범죄가 떠오른다. 오, 위대한 도시여! 그대의 성 벽 안에는 어찌나 많은 역겨운 공포가 감추어져 있는지! (《파리의 풍경》 1권, 93~94쪽)

 

 

분뇨 가스와 시체 토막이 썩는 냄새가 한데 어우러진 파리의 공기. 도대체 사람들은 이런 곳에서 어떻게 태연하게 살았던 것일까. 그들은 악취를 참고 살다 보니 위생상태에 너무 무감했다. 화장실이 없었던 베르사유 궁전에 귀족들은 정원이나 커튼 뒤에 숨어서 볼일을 봤다. 궁전 안에 진동하는 악취를 제거하기 위해 향수를 마구 뿌려댔고, 내부 인테리어도 자주 바꿨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도시 파리는 역겨운 악취의 공포를 감추려고 점점 화려하게 변신했다. 아름답고 쾌적한 풍경이 있는 신작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메르시에는 신작로를 ‘도시개발의 상징’으로 보았다. 알고 보면 프랑스는 역으로 말해 세상에서 가장 더럽게 지냈기에 최고급 향수와 멋진 신작로, 그리고 호화로운 베르사유 궁전을 만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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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5-08-27 23:01   댓글달기 | URL
프랑스에서 향수가 발달한것은 말씀하신대로 악취를 제거하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귀족들이나 왕조차 세수같은 것을 거의 하지 않고 간단히 물수건으로 얼굴등을 데충 닦은뒤 몸의 냄새를 가리기위해 향수를 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글쓰신대로 파리시내가 온통 오물투성이여서 여성들의 경우 똥구덩이를 피하기위애 높은 굽의 신발을 신었는데 이게 오늘날 하이힐의 원조라고 할수 있지요^^

cyrus 2015-08-28 16:52   URL
맞아요. 그 때 당시 사람들은 목욕을 잘 하지 않았었죠. ‘향수’에 초점을 맞춰서 글을 쓰다 보니 하이힐의 발명을 깜빡 잊고 있었어요. ^^

인디언밥 2015-08-28 01:32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도 처음에 알고 엄청 충격을...ㅠ 와 그런데 이런 식으로 책 읽으면 소설이 더 생생하게 와닿을 것 같아요. 교양서도 더 잘 들어올 것 같고.. 우와

cyrus 2015-08-28 16:56   URL
옛날 배경으로 쓴 외국소설이 지루하게 느끼는 이유가 배경에 너무 낯설기 때문입니다. 저도 처음에 유럽의 중세, 계몽주의 시대 문화가 낯설어서 힘들었습니다. 과정이 번거롭지만, 시대 상황이나 문화, 풍속을 설명해주는 역사책을 참고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이야기가 훨씬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

transient-guest 2015-08-28 03:51   댓글달기 | URL
베르사이유 궁전 내부에 화장실이 없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이런 인간들이 나중에 조선에 와서 더럽다고 욕하고 다녔다니 기가 찰 노릇이네요.ㅎㅎ 신나게 먹고 마시다가 계단 난간에서 불대포를 쏘았을 궁정시대의 귀족이 떠오르네요.ㅎㅎㅎ

cyrus 2015-08-28 16:59   URL
맞습니다. 잘 보면 서양인들도 몇 가지 약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때 자신들을 우월한 민족으로 여겼어요. 파리 토박이인 메르시에도 문명인이라고 자부하는 파리 사람들이 한심스러웠던 거죠. ^^

Stella.K 2015-08-28 14:07   댓글달기 | URL
난 향수를 영화로 봤는데 거기서 첫 장면이 그거였지.
그 장면이 어찌나 충격적이던지. 지금도 생각난다.

우리나라도 저때의 프랑스와 다르지 않았을텐데
다른 것이 있다면 향수를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거라고 해야할까?ㅋ
그래서 신발의 굽이 높은 것도 그 이유라잖아.ㅎㅎ

cyrus 2015-08-28 17:04   URL
영화 <향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땔 수 없는, 충격적인 장면이 압권이에요. 저도 영화 시작 장면을 보면서 아이를 혼자 출산하는 그루누이 엄마의 모습이 안쓰러웠어요. 누님 말씀을 듣고 보니, 조선 시대의 위생 상태가 궁금해요. ^^

해피북 2015-08-28 15:50   댓글달기 | URL
조선시대에도 한양인근이 오물로 넘쳐났다는 글을 본적 있는데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향수를 만들지 못했는지 앗. 저두 stella.k님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네요 ㅎㅎ

cyrus 2015-08-28 17:07   URL
ㅎㅎㅎ 우리나라가 향수를 못 만들었다고 해서 프랑스와 비교하면서 열등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조선 시대 생활사를 잘 알지 못하지만, 나름대로 위생을 청결하게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을 겁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의도하지 않게 뜻밖의 물건이 탄생될 수도 있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