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의 시 질투는 나의 힘의 한 구절이다. 이때 시인이 말한 질투는 부질없는 짝사랑이요, ‘나의 힘이란 헛된 열망을 품은 어리석은 용기이다. 시인이 그렇게나 미친 듯이 찾고 싶었던 사랑은 젊은 날의 상처 같은 기억과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기형도가 스스로 내적 상처를 분석하여 거기에 보편적 의미를 부여한 시인이라고 평했다. [참고1] 역량이 부족한 시인은 자신의 감정적 상처를 과장되게 표현한다. 김현은 그런 시인들을 힘겨운 감상의 망토라고 표현했다. 이 구절은 기형도의 또 다른 시 비가 2 붉은 달(입 속의 검은 잎수록)에 있다. 기형도는 거추장스러운 감상의 망토를 벗어내는 데 성공했다.

 

시인 여림(본명 여영진)질투는 나의 힘같은 시를 읽고 무슨 느낌이 들었을까? 시 속에 있는 나의 생이 마치 자신의 자화상처럼 여겼을 것이다. 빨간 망토는 기형도를 오마주한 시가 분명하다.

 

 

빨간망토가 들어온다.

기형도는 어디에 있는 섬인가요

망연자실한 나를 버리고 빨간

망토는 유유히 망토 자락을 날리며 사라진다.

 

기형도는 어디에 쓰는 칼인가요

기형도는 무엇에 쓰는 지도인가요

 

그렇다

이 지상에 없는 너는

찾을 수 없는 섬이었고

써힐[참고2] 수 없는 칼이었고

나침반을 들고서도 찾을 수 없는 지도였다.

마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장미꽃처럼

호랑이 발톱같은 가시 네 개를 보여 주며

질투는 나의 힘이라고 말했을 뿐.

 

(여림 빨간 망토,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150)

 

 

빨간 망토는 시인의 분신이다. 여림은 자기 자신을 힘겨운 감상의 망토를 쓰고 있는 시인으로 여긴다. ‘빨간 망토를 쓴 시인은 자신에게 영감을 준 기형도를 찾으려고 한다. 허나 이 지상에 없는시인을 만나는 일은 불가능하다. 나를 포함해서 시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기형도의 시를 내가 좋아하는 시에 포함해 요란하게 소개한다. 하지만 기형도의 시는 어두컴컴하고 차갑다. 자기 연민이 점철된 서늘한 문장은 예민한 자의식이 아니고서는 쉽게 포착할 수 없는 정서다. 망토 자락을 날린 채 기형도를 찾아 헤매는 여림은 좋은 시인이 아닌 상태다. 그가 지금까지 써왔던 시들은 호랑이 발톱 같은 가시 네 개를 보여 주며내적 상처를 과장하고 있다. 젊은 시절의 여림은 어설픈 망토를 벗고, ‘기형도같은 시인이 되고자 하는 헛된 열망이 있었다. 그렇지만 여림은 자신이 쓴 것들이 오로지 종이 쪼가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여림의 질투는 시인으로서의 자존감을 보호하기 위한 유일한 무기다.

 

여림은 끝끝내 질투를 힘으로 변용시켜 힘겨운 감상의 망토를 벗었다. 그리고 자신이 무슨 시를 써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기형도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운명 속에 살다가 떠났지만, 여림은 운명에 대한 사랑을 충실히 느꼈다. 니체 식으로 말하자면 아모르 파티’(Amore Fati). 운명에 대한 사랑이란 단순히 체념을 뜻하는 게 아니라 내 운명이라면 당당히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어떤 고난이 닥쳤을 때 이게 내 운명이야.’라며 체념하는 것과 이것이 내 운명이라면 나라도 사랑하겠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여림은 어디에 쓰는 칼무엇에 쓰는 지도를 찾지 못했지만, ‘시원한 그늘이 드리우는 수풀()’이 되었다. ‘빨간 망토를 쓴 여영진에서 망토를 벗은 시인 여림으로 한 단계 성장하는 극적인 순간이다. 이 환희의 순간을 담담하게 노래한 시가 마음속의 나무.

 

 

혼자 히죽히죽 웃음을 흘릴 때가 있다.

, 내가 살아 있었구나, 하는 안도감과 불현듯 이

그제서야 혼자 깨어 있다는 뜻모를 우울함에 젖어서 말이다.

모두가 잠든 밤에 홀로 깨어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 자신의 치장하지 않은 내면세계와 정면으로 마주 앉아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단서도 붙이지 않고 아무런 치장도 하지 않은 마음.

살아오면서 마음밭에 어떤 시를 뿌리고 어떤 열매를 맺어 왔을까.

아니면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가 되어 그들의 곤한 몸을 편히 쉬게 했을까.

모두가 잠든 사이, 홀로 깨어 있는 사람은 넓고 지순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그 맑고 지순한 영혼의 물소리로 잠들어 있는 사람들의 영혼을 깨우고

노래를 한다.

삶이 답답하고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 어두울수록 그의 노래는 더욱 깊이를 더한다.

 

(여림 마음속의 나무중에서,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79~80)

    

    

 

혼자 깨어 있는 나무의 모습은 차라투스트라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긍정하는 삶의 지혜를 찾으려 평생을 헤맨 존재였다.

 

 

 

 

 

 

 

 

 

 

 

 

 

 

 

 

 

 

 

 

시인은 차라투스트라처럼 비탄과 불행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 앉아 바라보는 삶의 긍정을 꿈꾼다. 운명애는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창조하는 삶의 태도다. 운명애는 시인에게 스스로 보편적 의미를 부여하게끔 하였다. 여림은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를 생각했다. [참고3] 여림의 시는 고단한 일상에 눌려 있던 독자들의 영혼을 깨운다. 시를 좋아하는 독자님들, 이제부터 기형도가 어디 있는지 찾지 말자. 여림이 어디에 있는 나무()인지 물어보자. 그가 어디에 있다고? 찾기 쉽다. 신기하게도 기형도의 시 속에 여림과 닮은 존재가 있다. 그는 살아 있다. 그는 노래를 부른다.

 

 

나무가 서 있다. 자라는 나무가 서 있다. 나무가 혼자 서 있다. 조용한 나무가 혼자 서 있다. 아니다. 잎을 달고 서 있다. 나무가 바람을 기다린다. 자유롭게 춤추기를 기다린다. 나무가 우수수 웃을 채비를 한다. 천천히 피부를 닦는다. 노래를 부른다.

 

나는 살아 있다. 해영(解永)의 강과 얼음산 속을 오가며 살아 있다.

 

(기형도 . . 바람 속에서중에서, 기형도 전집142)

    

 

    

 

 

[참고1] 김현 영원히 닫힌 빈방의 체험’, 입 속의 검은 잎137

[참고2] 시집에 실린 원문에는 '써힐'로 인쇄되어 있다. 문맥상으로 봐서는 '썩힐 수 없는'으로 되어야 한다. 이것이 인쇄 오자인지 아닌지 해당 출판사에게 직접 메일로 보내서 확인할 예정이다.  

[참고3] 여림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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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2016-08-30 20:54   댓글달기 | URL
아무 데나 펼쳐도 마음에 드는 시집 찾기가 쉽지 않은데, <입 속의 검은 잎>은 제게 그런 시집 중 하나입니다. 아직 다 읽진 못하고 군데군데 읽은 상태지만.. 아모르 파티의 태도가 마음에 드는데요. 백석의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도 생각나고..ㅎㅎ

yureka01 2016-08-30 21:08   댓글달기 | URL
근자에 들어 시집 리뷰로는 느낌이 푹 절여지는 기분....기형도 전집과 일전에 소개해준 여림의 유고시집 읽다 말다 또 읽다말다...흐물흐물해지더라구요....이달의 리뷰당선작 추가요^^.

또 봄. 2016-08-31 00:40   댓글달기 | URL
여림 유고 전집을 받긴 했는데, 선뜻 못 읽겠어요.
집에 있는 술이 모자랄까봐요. --;;
 
고통에 반대하며 - 타자를 향한 시선
프리모 레비 지음, 심하은.채세진 옮김 / 북인더갭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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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은 고대부터 인류의 전쟁에 동원됐다. 인간과 동물이 하나가 되어 전장에서 싸우기도 했고 수송·통신·적 탐지에 투입됐다. 한니발이 이끈 카르타고 제국의 코끼리 공격에 혼이 났던 로마군. 돼지의 등에 기름을 바른 뒤 불을 붙여 뜨거움에 악을 쓰며 돌진토록 해 코끼리들을 교란한 전술을 썼다. 제2차 세계 대전 때는 박쥐 폭탄 실험도 이루어졌다. 미국의 해병은 박쥐를 훈련해 가미카제 특공대를 만드는 계획을 세웠다. 박쥐에 폭탄을 달아 투하하면 적의 공장 등 시설물로 날아가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1943년 이 계획은 돌연 중단되었다. 몇 년 후에 박쥐 폭탄보다 무시무시한 위력의 무기가 등장했다. 그 무기는 바로 원자폭탄이다.

 

군에서 동물을 전쟁에 투입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감각이 인간보다 뛰어나며 먹이 외에는 인건비가 들어가지 않아 유지하기 쉽다. 하지만 군사적 효용성과는 별개로 이는 동물 보호론자들에게 많은 비판을 한다. 군사 목적으로 포획 당한 동물들은 훈련 과정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 상식적으로 동물은 당연히 감정을 느낀다. 동물을 키워본 사람에게는 당연한 소리다. 그러나 인간만이 지구상의 고귀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동물 학대나 착취가 용인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동물이 감정을 느낀다 하더라도 인간처럼 고귀한 감정을 느낄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강아지 공장’이라고 불리는 개 사육장의 끔찍한 실태가 최근 알려졌다. 개 100여 마리가 좁디좁은 철창 속에 빼곡히 갇혀 있다. 업주들은 이런 비위생적인 공간에서 어미 개들이 강제로 새끼를 배게 해 낳은 강아지를 반려견으로 내다 팔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보호’를 명문으로 개들을 가둬놓고 사실상 방치하는 ‘애니멀 호더(animal hoarder)’가 만든 사육장도 문제가 많다. 많은 개들이 함께 있다 보니 병들거나 서로 싸우다 죽는 일도 허다하다. 하지만 주인의 동의 없이는 긴급 구조가 불가능하다.

 

만약 프리모 레비가 개 사육장의 끔찍하고 참혹한 실태를 목격했더라면 ‘아우슈비츠가 동물을 대상으로 해서 부활’했다고 말했을 것이다. 프리모 레비는 제2차 세계대전 말 반 파시즘 운동에 참여해 악명 높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로 이송당했다. 단지 유대인이란 이유로 끌려온 수인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와 두려움에 떤다. 나치의 잔인한 학살행위 속에서 수인들은 생존을 위한 투쟁만이 유일한 목적이 돼버린 채 점차 동물화되어 간다.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빼앗겨버린 극한상황에서 수인번호로 인식되며 물건처럼 취급받는 그들.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터널에서 수인들은 고통과 욕구만 남긴 채 존엄성과 판단력을 잃어버린 ‘텅 빈 인간’이 되어버린다. 함께 일하던 동료가 교수형에 처하는 모습을 본 뒤에도 그들은 잠을 청하고 죽을 나누면서 배고픔이라는 일상적인 분노를 가라앉혔다.

 

사육장 우리에 갇힌 개들도 마찬가지다. 사육장은 도저히 살아있는 개들이 지내는 곳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위생적인 곳이다. 부패하는 사체 바로 옆에서 새끼들에게 젖은 물리는 개, 낳자마자 굶주림에 지친 개들의 먹이가 된 새끼들, 신체 일부가 잘려 불구가 된 채로 죽음을 기다리는 개. 그들은 배설물을 온몸에 뒤집어쓴 채 썩은 음식물 찌꺼기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아직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개들도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그렇게 그들은 인간이 만든 아우슈비츠에서 눈 뜨고는 못 볼 정도로 망가지고 죽어간다. 레비 또한 아우슈비츠 참상을 잘 알기에 말 못하는 동물들이 인간에게 학대당하는 모습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꼈으리라. 그는 <고통에 반대하며>라는 글에서 동물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물도 고통을 감지하는 존재이므로 고통을 일으켜선 안 된다. 레비는 곤충이 고통을 느끼는 존재인지 의심하고 있는데, 그들도 ‘타자’다. 머리에 서식하는 이(蝨)와 개의 생명까지도 가치 있게 여기는 이규보의 주장처럼 개와 이, 소와 양을 모두 똑같이 여기는 것은 생명의 가치에 대한 절대적인 태도다. 반대로 레비는 이들의 생명 가치가 서로 다르다고 보는 상대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한 사람만 손을 들기 어려운 문제다.

 

인류는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절대빈곤에서 벗어났지만, 인간성의 가치가 퇴색되어 타자를 연민하는 어진 마음을 잃었다.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는 풍토가 만연해 있고, 특히 동식물의 아픔과 괴로움에 대해서는 감수성이 마비되었다. 동물들은 인간의 삶을 위해 기계 부품처럼 죽어가고 또 그만큼 채워진다.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하지 못하는 자들은 폐기 품처럼 가차 없이 제거된다. 동물이 학대받는 사회에서는 인간도 학대받는다는 사실을 왜 모를까.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나치의 민간인 대량 학살을 두고 “우리는 ‘이름 없는 범죄(a crime without a name)’에 직면해 있다”고 표현했다. 불행하게도 나치와 아우슈비츠가 사라진 지금도 ‘이름 없는 범죄’가 벌어지고 있다. 겨우 반세기 전에 제노사이드(genocide)의 비극을 겪은 민족이 세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향해 대량 학살극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살려는 마음으로 가득한 생명과 함께 살아가는 생명이다. 목숨을 무엇보다 존중하는 문명을 이뤄가야 한다.” 슈바이처 박사가 우리에게 던진 이 말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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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2016-08-30 14:38   댓글달기 | URL
나치가 수용소에서 가장 중점을 둔 게 수용소 포로들을 짐승만도 못한 존재로 전락시키는 거였죠. 숟가락을 일부러 제공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서.. 사육장도 마찬가지 논리일 겁니다. 대상도 동물인지라 비판을 피하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겠죠..

cyrus 2016-08-30 18:35   URL
네, 맞습니다. 인간은 동물을 인간의 하부 존재로 봤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위한 동물의 희생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북프리쿠키 2016-08-30 15:09   댓글달기 | URL
라즐로 네메스의 영화 <사울의아들>에서 시체처리반인 존더코만도가 떠오르네요
˝침묵과동조˝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cyrus 2016-08-30 18:38   URL
우리나라에 불법 반려견 사육장이 엄청 많을 겁니다. 대대적인 단속이 필요한데, 인적이 드문 곳에 세워져 있어서 감시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무원들은 불법 사육장 실태를 알면서도 관리를 미루고 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30 15:30   댓글달기 | URL
필리핀은 철거용역들이 쥐에 기름을 부어 불을 붙였다고 합니다. 쥐가 판자촌으로 들어가면 집이 불타니 반항하는 철거민들을 그리 다뤘다고..

cyrus 2016-08-30 18:40   URL
그런 야만적인 짓이 우리나라에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사람 목숨마저 경시하는 짓입니다.

붉은돼지 2016-08-30 16:21   댓글달기 | URL
제가 요즘 <유럽사산책>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요.....아우슈비츠를 포함해 수천만명이 죽어나갔다는 그 어마무시한 제2차 세계대전 말입니다....정말 그 엄청난 학살과 살육을 보고 있으면 그저 입이 딱 벌어져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인간이란 과연 어떻게 생겨먹은 종족인가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저는 돼지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꿀꿀꿀

cyrus 2016-08-30 18:42   URL
˝살찐 돼지보다 책이 배고픈 붉은돼지님이 돼라˝

붉은돼지님을 위한 말입니다. ^^

yureka01 2016-08-30 17:11   댓글달기 | URL
지구라는 모순은 단세포가 인간으로 진화시킨 지구의 욕망 탓이겠죠..
지구라는 행성의 자기모순이 바로 인간인듯..

사람만 없으면 지구는 그 스스로가 참 견딜만했을지도 모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소리가 터무니 없다는 게 인간의 역사는 아닐까 싶더군요...

지구야 넌 인간이 나온게 너의 최대 실수일꺼야..라고 지구의 자책성 소리가 들리는 거 같습니다.

cyrus 2016-08-30 18:45   URL
한쪽에서는 인류 멸종을 초래하는 인간들이 있는 반면, 또다른 쪽에 인류 멸종을 피하기 위해서 고심하는 인류가 있는 걸 보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오늘이 전태일의 생일이다. 그는 1948826일 대구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청계천 7가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과 함께 분신한 그의 최후 때문인지 그를 서울 출신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1954년 대구를 떠나 서울로 올라왔으나 극심한 가난 때문에 제대로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지금은 폐교되어 사라진 남대문 초등공민학교(후에 남대문초등학교로 변경, 폐교되었음)에 편입하여 처음으로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학교생활은 전태일에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던 시간이었지만, 학업을 중단하고 생계를 위한 노동 현장에 투신해야 했다. 1963년 대구의 청옥 고등공민학교(현재 명덕초등학교) 야간반에 잠시 다녔으나 이 또한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전태일이 남긴 메모 중에 존경하시는 대통령 각하로 시작되는 글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려다 불발에 그친 탄원서다. 그래도 이 메모는 아주 중요하다. 대통령의 장기 독재집권과 인권탄압보다도 경제성장을 공적으로 더 앞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전태일의 메모는 여공과 미성년자들까지 흘린 피땀 위에 이뤄진 한강의 기적을 알 수 있는 생생한 증언이다.

 

 

근로기준법의 혜택을 조금도 못 받으며 더구나 2만 여명을 넘는 종업원의 90% 이상이 평균 연령 18세의 여성입니다. 기준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써 어떻게 여자에게 하루 15시간의 작업을 강요합니까? 또한 2만 여 명 중 40%를 차지하는 시다공들은 평균연령 15세의 어린이들로써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장기에 있는 이들은 회복할 수 없는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타격인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저 착하디 착하고 깨끗한 동심들을 좀 더 상하기 전에 보호하십시오. 근로기준법에선 동심들의 보호를 성문화하였지만 왜 지키지를 못합니까?

 

 

전태일의 분신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장시간노동에 시달리던 평화시장 여공들의 실상을 지식인과 정치권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노동자들의 죽음은 전태일로 그치지 않았다.

 

 

 

 

 

 

 

 

 

 

 

 

 

 

 

 

 

 

1979년 신민당사에서 농성 중이던 YH무역 김경숙을 거쳐 박노해 시인이 손무덤이라는 시의 소재로 삼을 정도로 저임금과 장시간의 노동으로 시달리던 경동산업 노동자들의 89년 집단분신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죽음을 택해야만 했다.

 

전태일의 희생이 근로자들의 근로조건 개선과 함께 민주화에 기여한 것으로 뒤늦게나마 인정됐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전태일 기념관을 세우자는 얘기가 나오면 그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여기서 말하는 그 사람들은 뉴라이트를 의미한다. 뉴라이트는 역사 교과서가 경제성장기의 노동운동을 조명하는 점을 불편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전태일의 분신을 박정희 시대의 폐해로 짚지 않는다. 전태일이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비관해서 자살했다고 주장한다. 전태일의 분신에 숭고가 붙고, 역사적 의미를 찾으려는 현재의 평가를 부정하고 나선다.

 

워마드는 전태일을 비하했다. 그들은 전태일의 분신을 모욕적으로 비하한 태일하라는 혐오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참고] 전태일을 모욕한 워마드의 행위는 전태일을 좌빨로 규정하여 무시한 일베의 행위와 다름없다. 1960년대 여공들은 낮은 연령과 여성, 가난이라는 세 가지 요소에 의해 생활환경이 극히 열악했다. 전태일은 불평등한 노동구조 속에서 크게 고통받는 여공들의 모습에 가슴 아파했던 사람이다. 만약 전태일이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여성 노동운동에 앞장섰을 것이다. 그의 여동생 전순옥은 오빠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어받아 평화시장 노동자 자녀들을 돌보는 탁아소와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공동체를 운영했다. 전태일은 당연하고 정당한 주장을 알리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말하지 못했고, 누구도 듣지 않았던 근로자들의 절망과 분노를 대변했다. 지금도 노동권은 노동자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전태일이 꿈꾸었던 사람이 일할 만한노동현장은 아직 생기지 않았다. 여전히 죽음의 무게마저도 차별하는 땅에서 전태일의 업적을 외면하는 것은 마땅히 누려야 할 인간다운 자유를 갈구한 그의 정신을 무시하는 일이다. 전태일 정신을 깎아내리는 자들에게 묻고 싶다. 편하게 물려받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는지를.

 

 

 

[참고] <넘지 말아야 선을 넘은 그녀들에게 인간의 도리가 있는가?>

(만화애니비평님의 글, 2016823일 작성,

http://blog.aladin.co.kr/775792147/8715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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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8-26 18:58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이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
옛날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야.
어떻게 전태일 같은 사람을 조롱할 수가 있니?
도대체 그 근거가 뭐냐?
남녀를 떠나서 저질이다.ㅠ

cyrus 2016-08-27 14:10   URL
생각이 없고, 상대방을 비하해서 관심 받고 싶은 관심종자들입니다. 초딩부터 시작해서 어른까지 다양합니다.

루쉰P 2016-08-26 21:38   댓글달기 | URL
전태일 평전을 읽으며 얼마나 주먹을 불끈 쥐었는지 모릅니다 시루스님의 글처럼 그는 여공들을 위해 일어서서 싸웠습니다
배고픈 여공들에게 자기 차비로 떡을 사준 후 걸어오기도 여러번 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 저렇게 말하는 자들은 용서할 수가 없네요

cyrus 2016-08-27 14:16   URL
학교 역사 수업에 전태일을 가르치는 시간이 많지 않을 겁니다. 전교조 소속 선생님들이 전태일을 비중 있게 가르치겠지만, 거의 소수에 불과하죠. 그런데도 뉴라이트는 역사 교과서에 전태일을 빼고 이병철, 정주영을 넣으려고 합니다. 기업인들은 <전태일 평전>을 금서로 취급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 젊은 세대는 전태일이 누군지 모릅니다.

우끼 2016-08-26 23:59   댓글달기 | URL
전태일 ㅠㅠ 아름다운 사람인데요..

cyrus 2016-08-27 14:17   URL
네,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yureka01 2016-08-27 08:46   댓글달기 | URL
후진적일수록 아동과 여성, 노인들이 학대당하다 시피 저임금에 시달리는데,
전태일열사는 어린 여공의 처지와 저임금 장시간의 노동에 울분을 토로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어린 여공들을 위해 죽어간 열사를,
˝셀프**˝이라는 표현을 보고 기절하는줄 알았습니다.

결국, 이는 뭔가 서로가 서로를 반목하게 만들고
서로를 혐오하게 만드는 왜곡몰이작전에 빠진거 아닌가 싶습니다.

심지어 안중근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정신마져 왜곡시키는 것을 보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은 뭔가에 휘둘리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도저히.ㅠ.ㅠ

cyrus 2016-08-27 14:21   URL
워마드가 만든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일베가 했을 법한 그릇된 행동을 버젓이 하고 있었어요. 몇 년 전부터 일베의 혐오발언, 상대방을 비하하는 행위 등 문제점이 부각되었을 때 제재를 했어야 했습니다. 일베 문제를 방관하는 바람에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ㅠㅠ

yamoo 2016-08-27 17:23   댓글달기 | URL
워마드가 뭔가요? 그리고 뉴라이트들이 전태일을 비하하다니...
아, 진짜 짱나는 넘들입니다..게썅 소리가 절로 나는 넘들..

cyrus 2016-08-27 17:40   URL
워마드가 메갈리아에서 분리되어 나온 회원들이 조직한 여성우월주의 단체입니다. 남성혐오가 심한 곳입니다.

잠자냥 2016-08-29 10:44   댓글달기 | URL
휘유... 링크 타고 건너가서 문제의 글 대충 훑어만 봐도 머리가 어질어질하네요.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딱 떠오릅니다. 메갈이니 워마드니(오늘 여기서 처음 알았습니다만) 페미니즘 운동에 찬물 끼얹는 행동 좀 고만했음 좋겠네요. 자신이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임을 모르는 사람들(전태일은 공돌이 그러니까 난 달라하는 사람들), 자신이 여자이면서도 메갈이나 워마드에서 저러고 있는 여자들 다 무뇌충들 같습니다.

cyrus 2016-08-29 12:57   URL
페미니스트마저 피곤하게 만드는 세력입니다. 워마드는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빌려 써서 타자를 비하하고 있습니다.

transient-guest 2016-08-30 00:16   댓글달기 | URL
저는 작금의 편가르기 사태는 또 하나의 분열책동이 아닌가 의심합니다. 진보-보수-수구, 나이, 계층, 지역, 학벌 등등의 경로에 하나가 더 추구되어 이젠 남-녀로 분열되는 것이죠. 얼마나 좋겠습니까, 90%가 갈라져 싸우는 형국이...진짜 페미니즘이라면, 다른 인권운동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귀한 만큼 남 귀한 줄 알아야죠. 언제부터 페미니즘이 혐오주의로 바뀐 건지 모르겠네요.

극단적인 편가르기는 결국 `편`만 중요하고, 그 사람이나 단체의 과거는 중요하지 않은 쪽으로 가는 것 같아요. 솔직히 김종인 같은 사람이 뭐라고 민주당에 들어와서 실권을 잡고 좌지우지 할 수 있나요? 책사라는 점에서는 필요한 사람이란 생각도 하지만, 사실 이것도 적의 적은 나의 편이라는 논리가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어요.

무식하면 용감하거니와, 이런 극단의 시대를 살아가는 참 힘든 일이네요..

cyrus 2016-08-30 11:26   URL
편 가르기가 너무 편해서 문제입니다. 일단 먼저 적과 동지를 구분하면 되거든요. 동지들과 어울려서 동질감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아무 불편함 없이 살아가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죠. 늘 비슷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면 동지 이외의 타자에게 관심을 가지지 못합니다. 편 가르기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마저 피해를 주는 양상입니다.
 

 

 

 

 

 

 

 

 

 

 

 

 

 

 

 

 

 

아토다 다카시의 <공포의 연구>에 등장한 다지마 케스케는 문예 평론을 쓰면서도 공포문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다. 다독가이기도 하는데, 그의 모습에서 에도가와 란포가 연상된다. 공포와 추리. 언뜻 정반대 편에 있는 듯 보이는 이 두 장르는 사실 본질에서 맞닿아 있다. 바로 비이성과 광기의 산물인 범죄를 종착역(공포) 또는 출발점(추리)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다지마 게스케는 인간이 공포심을 느끼는 원인을 초자연적인 현상에서 찾지 않는다. 그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기분을 거스르는 소리가 사람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한다.

 

어른이 귀신 영화를 보고 정말로 무섭다고 생각하는 것은 귀신이 휙 하고 얼굴을 드러낼 때가 아닙니다. 정말로 무서운 것은 아무런 소리도 없이, 아무도 없어야 하는데 갑자기 미닫이문이 슬그머니 열린다거나... 혹은 관 안에 넣었음에 분명한 방울이 으쓱한 밤중 어딘가에서 찰랑찰랑 하며 울려온다거나... 그런 것이 정말 무서운 겁니다.” (<공포의 연구 - 혹은 에필로그풍의 소품> 중에서, 436~437)

 

공포는 상상의 산물이다. 학습된 기억과 경험으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고, 무서움이라는 감정으로 사람을 불안에 떨게 한다. 귀신이 등장하지 않아도 귀신이 나올 다음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공포를 느낄 수 있다. 아토다 다카시의 공포소설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심리적 공포에 초점을 맞춘다.

 

다지마 게스케가 밤중에 울리는 관 속의 방울소리를 언급하는데, 사실 아토다 다카시가 이 기묘한 현상을 소재로 손바닥 소설을 쓴 적이 있다. 이 소설은 정태원 씨가 번역한 공포특급 6이외에도 수많은 괴담집에서 소개되었다.

    

 

 

방울 소리 (아토다 다카시, 정태원 번역)

 

 

, 이것이 미라의 무덤인가?”

 

비석에 조각된 글을 확인하면서 남자가 말했다. 침엽수가 높이높이 자라고 있어서 황혼에 가까워진 햇빛은 거의 지상에 닿지 못하고 있었다. 비석은 이끼가 잔뜩 끼여서 조각된 글조차 확실히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여자가 물었다. 두 사람은 N산 깊은 곳에 오래 전 밀교의 절터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하이킹을 겸해서 물어물어 찾아온 것이다. 오래 전 역사책에 이름이 남아 있는 고찰도 지금은 겨우 주춧돌 흔적만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아무래도 이 비석이 산을 개척하신 고승의 무덤 같군.”

 

그게 미라야?”

 

그래.”

 

산 속은 너무나 고요해서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옛날의 고승들은 산 채로 흙 속에 묻혀 미라가 되는 것을 인생의 마지막 고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래?”

 

이 분도 기록에 의하면 7×7, 49일 간의 질식 끝에 떡갈나무 관에 넣어져서 이 무덤 아래 묻혔다는 거야.”

 

잔혹하구나.”

 

수행이니까 어쩔 수 없지. , 손에는 방울을 쥐고서 죽통으로 공기구멍을 만들어 두지. 살아 있는 동안은 이따금 방울소리가 들려오는 거야.”

 

두 사람이 얘기하고 있는 사이에도 황혼이 더욱 짙어가고 있었다.

 

기분이 어째 안 좋네. 그만 돌아가자.”

 

이미 3백 년 전의 일인걸 뭘. 파보면 멋진 미라가 나올 거야.”

 

싫어, 그런 얘기 그만해...”

 

두 사람은 무덤을 뒤로 하고 방금 왔던 길로 돌아섰다. 순간, 남자의 발이 멈췄다. 여자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등 뒤의 땅 속에서, 딸랑, 희미하게 방울소리가 들렸다.

 

 

    

괴담집을 보면 초반에 으스스한 분위기로 시작하다가 막판에 허무한 웃음을 주는 이야기 한 두 편은 꼭 있었다. 아토다 다카시가 쓴 것으로 알려진 <저주의 나이프>는 재미있는 반전이 있는 이야기다. 어렸을 때 <저주의 나이프>와 흡사한 이야기를 괴담집에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이 어렸을 때 접했던 괴담 대부분은 전문 작가가 만든 것이다. 그래서 창작 괴담은 그저 그런 시시한 창작물이 아니다. 창작 괴담은 공포소설로 확장되는 진정한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저주의 나이프 (아토다 다카시, 정태원 번역)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을 믿다니... 좀 더 진지하게 부인과 헤어질 생각을 할 수 없나요?”

 

어느 맨션 안. 여자가 소파에 몸을 비스듬히 누이고 이마에 내려온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남자에게 핀잔을 주고 있다. 여자는 27, 8. 남자는 40세 정도 되었을까?

 

그렇게 간단하지 못한다는 걸 잘 알잖아! 그보다 말이야, 마누라가 죽어준다면 얘기는 훨씬 간단하지.”

 

여자가 코웃음을 쳤다.

 

, 정말로 죽어준다면 말예요. 저주가 내려서 죽다니, 도대체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다니요?”

 

아니라니까, 이것은 진짜 정통 집시들이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방법이라니까. 지금까지 성공했던 예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 그러니까 내가 그 많은 돈을 투자해서 이 나이프로 빌려오지 않았겠어?”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가방 속에서 가느다란 나이프를 꺼냈다. 나이프 날에 서로 뒤엉킨 두 마리의 뱀이 조각되어 있었다. 예리하게 날이 선 칼끝이 괴이한 빛을 발하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군데군데 기분 나쁜 핏자국까지 있다. 과연! 이 혼자만 본다면 지금까지 수명의 생명은 거뜬히 저주하며 죽였을 것 같기도 하다. 여자는 전혀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나이프를 건네받고 이리저리 살펴봤다.

 

이 나이프로 어떻게 할 거야?”

 

죽어줬으면 하는 사람의 사진에다 이 칼을 사정없이 꽂는 거지. 마침내 사진이 피를 흘리면 그걸로 끝장이야. 그 사람은 3일 이내에 몸에서 피가 모조리 빠져서 죽는다는 거야.”

 

말도 안 돼.”

 

어때? 해볼 만하잖아? 마누라 사진까지 준비해 왔다니까. 일단 해보자고. , 그럼 내가 들고 있을 테니까 찔러봐.”

 

여자는 여전히 코웃음을 치며 나이프를 손에 들고 계속 바라보고 있더니 갑자기 남자가 들고 있는 사진의 가슴 언저리를 노리고 힘차게 푹 찔렀다. 다음 순간, 여자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입술이 공포로 부르르 떨렸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사진의 가슴께에서 붉은 피가 뚝뚝 번져나오기 시작했다. 여자가 몸서리를 치며 소리질렀다.

 

아악!”

 

그때 남자가 말했다.

 

~ 손수건 없어? 내 손등이 찔렸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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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8-26 13:23   댓글달기 | URL
cyrus님 덕분에 알라딘 리뷰의 지평이 넓어지는 느낌이랄까요.^^...

cyrus 2016-08-26 15:12   URL
이달의 뜬금없는 댓글로 선정합니다. ㅎㅎㅎ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서 그렇지 알라딘에 조용히 활동하면서 서평을 잘 쓰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스24에도 수준 높은 글을 쓰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카스피 2016-08-26 22:20   댓글달기 | URL
오 돌아가신 정태원님의 번역이네요.참 추리소설에 애정이 많으셨던 분이시지요.

cyrus 2016-08-27 14:23   URL
작년부터 정태원님이 번역한 책을 모으고 있습니다. 알라딘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책들도 있었어요. 잊힌 그분의 업적을 알라딘 서재에서의 기록으로나마 복원하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기록하지 않으면 영원히 잊히니까요.

카스피 2016-08-28 21:57   URL
그러시군요.저도 정태원님이 번역하신 책을 좀 갖고 있는데 역시 추리소설에 애정이 많으신 탓에 다른 번역가들이 번역한 책보다 수월하게 읽을수 있는것 같습니다.
 

 

 

 

 

 

이틀 전에 서재 지수의 문제점을 서재지기님에게 알렸습니다. 서재지기님의 답변을 오늘 확인했습니다.

 

서재 지수에 왜 그렇게 집착하느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제가 서재 지수를 많이 받아서 ‘주간 서재의 달인’ 순위 상위권에 오르려고 북플 사용자들의 활동을 위축시킨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 관심도 가지지 않은 서재 지수에 혼자서 끊임없이 태클 거는 제 모습이 정말 쪼잔 해 보이긴 합니다. ㅎㅎㅎ

 

저는 제 눈에 보이는 문제점을 그대로 밝혔을 뿐입니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의문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서재 지수에 집착하지 않아요. 제가 서재 활동을 하면서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서평 이벤트입니다. 1등에 당첨되기 위한 집념으로 글을 씁니다.

 

더 이상 길게 쓰지 않겠습니다. 말이 길어지다가는 꼰대 소리까지 듣게 될 것 같습니다. 저의 공개적인 불만에 공감해주시는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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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8-25 15:57   댓글달기 | URL
책을 추가한다고 지수가 올라가는 것이었군요..ㄷㄷㄷㄷ
읽은 책 구매한 책 읽는중인 책 이게 다 지수화하였다니....
빨리 고쳐야될 부분이었네요....ㄷㄷㄷㄷ

cyrus 2016-08-25 15:59   URL
네. 제 예상이 맞았습니다. 지금까지 저나 유레카님은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서 뻘짓하고 있었습니다. ㅎㅎㅎ

yureka01 2016-08-25 16:13   URL
이날까지 북풀에서는,
구입한 책, 다 읽은 책을 등록했죠,
읽지도 않고 등록할 수는 없었거든요.
구입한 책도 다 못읽은 것은 양심에 가책이 없도록
읽지도 않고 등록한 적이 없었거든요.ㅎㅎㅎㅎ

북풀의 책등록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양심에 따라
부끄러움없이 등록했었는데......

가짜로 마구잡이로 올릴 거 같으면 하루에 수백권씩 등록이 가능하거든요.
검증시스템이 없는 이상..이것은 순전히 유저 스스로의 마음에 따라야 하는데..
아놔...뻘짓했다니 ㅎㅎㅎㅎ

cyrus 2016-08-25 21:47   URL
예전에 별점 없이 읽은 책을 추가하는 북플 시스템에 대해서도 지적한 적이 있었습니다. 너무 편해도 문젭니다.

Theodora 2016-08-25 17:06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의 이런 자세 존중공감 합니다

cyrus 2016-08-25 21:49   URL
그렇게라도 말씀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좋아요` 받는 것보다 말 한 마디 듣을 때가 좋습니다.

transient-guest 2016-08-26 01:39   댓글달기 | URL
이런 건 누군가 나서서 해야하는 일인데, 사이러스님이 해주셨네요.ㅎ 좀더 보완되어서 클릭질 외에 별로 활동이 없는 북플회원들은 좀 덜 exposure을 받았으면 합니다. 좋은 글이 올라오는 걸 바로 보는게 북플을 사용하는 이유인데, 맨 `좋아합니다`와 `읽었습니다`로 도배되니 짜증이 나더라구요.

cyrus 2016-08-26 11:09   URL
분량에 상관없이 글을 쓰는 분들 입장에서는 ‘읽은 책’을 추가하는 회원들을 보면 김빠집니다. ‘읽은 책’, ‘읽고 싶은 책’에 ‘좋아요’가 많이 받는 상황 또한 그렇습니다. 저는 그런 편한 방식으로 ‘좋아요’ 받고 싶지 않습니다. 그게 서재 지수에 반영되면 불공평한 일입니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혼자서 묵묵히 리뷰를 쓰는 회원들이 불리합니다.

잠자냥 2016-08-26 09:25   댓글달기 | URL
저는 서재지수가 이런 식으로 운영된다면... 좀 더 그러한 게, 북플 보면 어떤 분이 1000권의 책을 읽었다고 쳐요. 그래서 그분은 어떤 책을 읽었나 궁금해서 읽은 책 리스트를 훑어보다 보면 잉? 합니다. 책만이 아니라 dvd, 영화, 음악도 다 읽은 책 리스트에 포함되더라고요. 이런 분을 여럿 발견한 뒤로 저는 읽은 책 리스트도 신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읽은 책이라면, 책만 추가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는 제가 추가한 읽은 책(책만 했습니다 ㅋㅋ)리스트만 기준으로 알라딘에서 89번째로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고 나오더라고요. 근데 그 평가(?)를 보면서 ㅋㅋ 제 앞에 계신 많은 분들 가운데 여럿은 `책만 추가한 게 아니잖아` 볼멘소리를 하곤 합니다. ㅋㅋㅋ

cyrus 2016-08-26 11:20   URL
북플 시스템을 살펴보면 사소한 문제점이 많습니다. 솔직히 북플 통계가 만들어서는 안 될 시스템이라고 생각해요. 글 쓰고, ‘좋아요’ 누르고, 댓글 쓰는 활동이 수치화되고, 순위로 매겨지는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져요. 저는 북플 통계를 공개 상태로 설정했습니다만, 이게 과연 정확하게 집계됐는지 의문이 들어요.

잠자냥 2016-08-26 09:37   댓글달기 | URL
게다가 사실 저는 알라딘에서 책만 사고 서재 활동은 거의 하지 않다가 작년인가, 북플 시스템 생긴 거 보고 읽은 책 정리도 할 겸 시작한 거였거든요. 근데 북플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서재지수 활동에 댓글이나, 좋아요 등 친목 도모 지수도 무시 못한다는 걸 읽고는 ㅋㅋㅋ 읭? 했습니다. 어디서나 친목 위주 평가를 싫어하는데, 책 마저 그런가 싶어서요. 이렇게 말하면 뭐하지만 `좋아요` 다는 사람들 중에 정말 긴 글을 다 읽고 다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고요. 뭐랄까 인스타처럼 사진 위주 친목 도모 SNS 같아서 북플 기준에 참 의아한 점이 많습니다... ㅎㅎ

cyrus 2016-08-26 11:29   URL
댓글 달기, ‘좋아요’ 누르기 등 활동을 하지 않고, 혼자서 리뷰를 쓰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서재에 달린 댓글 수와 ‘좋아요 수’가 적어요. 서재가 썰렁해요. 제 서재도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글을 많이 써도 다른 회원과의 교류 활동이 없으면 서재 지수 상승 폭이 적어요. 마이리뷰는 천 편 이상 썼는데 서재 지수가 적은 회원의 서재를 많이 봤습니다. 사실 제가 서재 지수를 많이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친목 활동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길게 쓴 글이라도 끝까지 읽으려고 합니다. 정성 들여 쓴 글은 ‘좋아요’를 눌러줍니다. 글에 대한 생각이 떠올리면 솔직하게 댓글로 표현하고요.

블랑코 2016-08-26 16:31   댓글달기 | URL
전 읽은 책 정리를 한곳에 몰아서 해야겠단 생각으로 북플을 시작했는데요. (사정상 전자책만 읽으니 눈에 보이는 게 없더라고요. 종이책은 서가에 꽂힌 걸 보면 눈에 딱 들어오는데 말이죠) 서재라는 게 생긴 걸 알고 놀랐습니다. 서재지수니 뭐니 그런 것도 사이러스님 글 보면서 알게 됐고요. ^^

전 그냥 신경 안 쓰고 제가 읽은 책 정리합니다. 진짜 마음에 들거나 시간 있을 때 리뷰 쓰고, 가끔 읽었지만 감상 남기기 싫으면 별점만 주고, 긴 글 쓰기 귀찮으면 100자평만 남겨요. 그래서 힘들게 시간, 노력 들여가며 리뷰 쓰시는 분들 존경합니다. 하지만 북플만이 제공하는 SNS스러운, 뭔가 인스턴트 같은 기능이 편하기도 합니다. 리뷰를 보는 것도 시간이 드는 일이라서요. ^^; (내가 관심있어 추가한) 남들이 무슨 책을 읽고 싶어하는지 뭘 읽는 중인지 보는 것도 큰 자극이고요.

그래서 마음에 든 글에만 좋아요를 누릅니다. 읽고픈 책 남이 읽고 있으면 좋아요 누르고요. 댓글도 마음에 들면 좋아요 눌렀는데 그게 점수로 반영되는진 몰랐네요. 알면 알수록 오묘한 북플/서재의 세계로군요.

cyrus 2016-08-26 17:24   URL
북플 이용의 장점은 친구로 맺은 회원의 글을 쉽게 볼 수 있고, 사진이나 짧은 글을 올릴 수도 있어요. SNS 기능과 같은 거죠. 북플 등장 이후로 일 년에 올라오는 글의 수가 많아졌고, 회원들의 댓글 교류 빈도가 높아졌을 거예요. 그런데 친교 위주의 서재 활동이 서재 지수 가중치를 높이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글 한 편 쓰지 않고, 아무 회원의 글에 ‘좋아요’ 누르기나 댓글 쓰기를 1,000회 넘게 해서 서재 지수가 급상승하는 회원이 있었고요, 알라딘도 문제점을 인정했습니다.

저도 블랑코님처럼 마음에 든 글이나 관심 있는 책의 서평에 ‘좋아요’를 눌러요. 100자평, 사진만 있는 게시물, 문장만 인용한 게시물은 안 봐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선호하지 않는 게시물을 남기는 분들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사진만 올리지 마라, 인용문 좀 그만 올려라. 나처럼 진지하게 써봐라’는 식으로 말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 주장은 글쓰기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입니다. 제 주장에 오만한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느낀 분이 단 한 명이라도 나오면 공개 사과할 생각입니다. 저는 북플 시스템 위주로 돌아가는 서재 지수 반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제 의견 때문에 회원들이 서재 활동 하는데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블랑코 2016-08-26 17:40   URL
맞아요. 북플과 서재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말은 서재지수라고 하고 북플 점수가 더 크게 반영되는 게 문제라고 봅니다.

추천 북플러나 관련글, 인기글 보여주기 기능을... 지수, 점수, 순위에서 탈피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줄세워서 높은 사람부터 보여주지 말고, 이쪽은 문외한이지만 이왕 하는 거 알고리즘을 잘 짜서 내가 관심있는 책과 관련된 책 읽은 사람 리뷰라든가.. 내가 읽고픈 책과 많이 겹치는 사람이라든가.. 뭐 그렇게 보여줬음 좋겠어요.

전 전자책만 보니까 꼭 전자책을 찾아 읽은 책에 등록하는데 종이책, 전자책 별점 따로 보여주는 것도 맘에 안 들고... (제가 읽은 책을 종이책으로 읽으신 분의 글을 클릭하면, 제가 읽은 걸로 표시가 안 돼요.) 다행히 리뷰는 같이 보여줘서 좋은데... ^^

차차 개선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개선되는데 큰 기여를 하시는 분들이 바로 부지런하게 글로 알리고 문의,요청하는 사이러스 님 같은 분들 덕분이고요.

cyrus 2016-08-26 18:05   URL
제가 생각하는 블랑코님의 서재의 매력은 전자책, 특히 장르문학 분야의 책의 리뷰를 많이 쓰는 활동입니다. 블랑코님은 서재 활동을 하는 회원 중에 특이한 포지션에 있습니다. 남들이 보지 않는 책을 읽고, 리뷰로 소개하는 분들이 많아야 하고, 다른 회원들에게 많이 알려져야 합니다.

블랑코님 말씀대로 북플 친구 추천에 공개되는 회원들이 서재 지수 순위별로 보여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마이리뷰’와 ‘마이페이퍼’를 쓰지 않는 북플 회원이 ‘서재 활동을 많이 하는’ 회원으로 추천되는 황당한 상황이 생기거든요.

그리고 똑같은 내용의 종이책과 전자책 서평을 올리는 분도 있어요. 그러니까 1권당 리뷰 2편을 올리는 셈이죠. 저는 비슷한 내용의 리뷰를 두 편 올려서 서재지수를 받는 것 또한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아무튼 서재지수 반영에 대해서 자잘한 문제점을 열거하면 끝이 없습니다. 저만 자꾸 문제를 제기하면 제가 서재지수에 집착하는 사람처럼 보여질까봐 두렵기도 합니다.


키미리키 2016-08-26 21:59   댓글달기 | URL
단 한번의 태클만을 제기하고 씨러스님도 뒤돌아서서 까먹었으면 그냥 유별난 사람이였을겁니다. 제가 한국인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태클도 일관되게 꾸준히 하지않으면 유별나고 쓰잘데기없는 걸로 치부해 버리는데 저랑 비슷한 분이 알라딘에 계신듯ㅋㅋ

cyrus 2016-08-27 14:26   URL
옛날 알라딘 서재만 있었던 시절에 저보다 유별난 분들이 많았다고 들었어요. 태클은 기본이고, 댓글 논쟁이 지금보다 많았어요. 그러다가 회원 탈퇴하거나 조용히 잠적한 회원도 있었고요. 지금 알라딘 서재 분위기는 예전에 비하면 평화롭고 조용한 편입니다. ^^

카스피 2016-08-26 22:14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한때 서재지수에 집착하고 방문횟수에 집착했는데 더위를 먹았나 요즘은 다 부질없단 생각이 들더군요.그래선지 알라딘 서재에도 잘 안들어가는 것 같아요^^;;;

cyrus 2016-08-27 14:29   URL
카스피님은 알라딘에 오래 활동하셔서 서재지수가 엄청 높던데요. 리뷰와 페이퍼 각각 천 편 가까이 쓰는 분들이 대단해요. 저도 나름 많이 쓴 것 같은데 천 편에 도달하지 못했어요. 리뷰와 페이퍼의 수를 합하면 천 편 넘지만요. 제가 2010년에 알라딘 서재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때 만났던 분들의 활동이 뜸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