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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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포크로 비행기 안에서 콩을 찍어 먹으며 파시즘을 걱정하는 사람.” 영국의 신문사 <선데이 타임스>가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에게 보낸 찬사이다. 이 문구는 에코의 산문집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뒤표지에 있다. 유쾌한 성격의 에코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이 책에서 에코는 자신이 겪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어리석은 세상을 비틀어 보고 있다. 그는 세상의 어리석음에 분노하는 것이라면 웃으면서 화를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세상의 그 모든 어리석음에 대해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은 어리석음의 목록을 더 늘어나게 해줄 뿐이다. 짧은 글로 이런 얘기를 쉴 새 없이 풀어내는 에코이지만 그 안에는 허를 찌르는 촌철살인의 웃음이 있다. 글 속에서 그는 여러 표정을 지닌 사람으로 나타난다. 그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엉뚱한 질문을 던지다가 피식 웃음이 나오는 대답을 한다.

 

에코는 악의적인 일이나 잔혹함에 화가 난다면 웃을 수 없다고 했다.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 요즘 들어 웃음을 줄어들게 만드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온라인에서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가짜 뉴스가 급속히 번지고 있다. 공인의 사생활이나 민감한 정책 현안은 물론, 국가 안보나 국가 원수와 관련된 턱도 없는 가짜 뉴스까지 나온다. 요즘의 가짜 뉴스는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넓고 빠르게 퍼진다. 이른 시간 안에 불신과 분열을 조장한다. 또 꼼짝없이 가짜 뉴스의 덫에 걸린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다. 가짜 뉴스는 표현의 자유 뒤에 숨은 살인자다. 우리는 악의적인 가짜 뉴스를 보고 웃으면서 화를 낼 수 있을까?[주]

 

에코의 마지막 소설 《제0호》는 에코 특유의 웃음을 생각하면서 읽을 수 없다. 잘 드러나 있지 않다가 어느 순간 일상을 파멸시키는 가짜 뉴스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가짜 뉴스에 현혹되는 과정, 또 그 가짜 뉴스를 만든 인물이 몰락하는 과정을 신랄하게 묘사한다. 안정적인 직업이 없는 글쟁이 콜론나는 창간을 앞둔 신문사 <도마니(이탈리아어로 ‘내일’을 뜻함)> 주필 시메이를 만나게 되면서 창간되지 않을 신문 <제0호> 제작 과정에 투입된다. <제0호> 제작을 위해 자금을 대는 사람은 ‘콤멘다토르 비메르카테’라는 세력가다. 세력가와 주필은 사회 거물들이 궁지로 몰 만한 가짜 뉴스를 만들려고 한다. 주필은 편집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대중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자극적인 기사 작성법을 알려준다. 에코는 이 소설에서 돈벌이나 정치적인 거래를 목적으로 가짜 뉴스를 만드는 황색 저널리즘의 실체를 해부한다.

 

에코는 20년 전부터 《제0호》을 구상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부패 정치 청산의 물결이 일던 1992년 이탈리아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 출간된 연도는 1992년이다. 재미있게도 이세욱 씨가 두 권의 책을 번역했다. 《제0호》를 읽으면서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을 느꼈다. 《제0호》에 콜론나는 신문을 함께 만드는 동료들에게 신문 기사를 반박하는 독자의 편지에 반박하는 기술을 알려준다. 그때 콜론나가 반박의 기술을 설명하면서 언급한 편지글은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의 『반박을 반박하는 방법』에 나왔던 글이다. 서양 고전문학 작품과 에코 자신이 과거에 썼던 글 일부를 패러디한 묘사는 독자들에게 쏠쏠한 재미를 안겨준다.

 

 

 

 

 

 

죽음을 앞둔 에코는 《제0호》를 쓰면서 익살스럽게 웃어보지만, 그 웃음이 죽음의 두려움을 달래는 자기 위안이었는지, 아니면 소설의 분위기가 너무 무거울까 봐 애써 웃어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소설에 간간이 나오는 에코의 유머를 보면 애잔한 마음마저 든다. 《제0호》는 에코의 웃음과 슬픔이 교차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세욱 씨는 《제0호》를 ‘음모론에 잘 빠지는 기자와 나쁜 저널리즘을 보여 주는 익살스럽고 풍자적인 이야기’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나는 소설에서 시도한 에코의 풍자를 웃으면서 볼 수가 없었다. 가짜 뉴스를 곧이곧대로 믿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헛소리하면 웃으면서 화를 낼 수 있지만, 가짜 뉴스로 인해 점점 더 파열음을 내는 현실을 보면 그저 화가 날 뿐이다. 가짜 뉴스가 지배하는 세상은 인간의 악의가 얼마나 잔혹하고 야비한지 보여준다. 나는 그런 세상을 향해 정색하면서 화를 내는 방법을 선택하겠다. 웃으면서 화내는 에코의 방식으로 여태 즐겨왔으니 이제는 정공법으로 진지하게 정색할 때다.

 

 

 

 

[주] 이세욱 옮김,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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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12-14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 놓고 아직 읽지 못했어요. 저는 왜 딴 책만 보고 있을까요? ㅋ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무척 재밌게 읽어서 리뷰까지 썼었어요. 코믹한 글이 많지요. 그런 저자가 진지하게 소설을 쓰면 어떤 게 될까 궁금해서 구입했는데... 이 해가 가기 전에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내년으로 넘어갈 것 같은... 내년이 코 앞이네요.
 

 

 

몽테뉴(Montaigne)는 평생 “나는 무엇을 아는가(Que sais-je)?라는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 몽테뉴가 남긴 책이 우리에게 ‘수상록’이란 제목으로 알려진 <에세(Les Essais)>다. 1572년 공직에서 물러나 세상을 떠날 때까지 20년 동안 집필한 방대한 기록이 이 책이다. 몽테뉴가 살았던 시기는 지리학, 지도제작술, 항해술이 발전하고 있었다. 값비싼 물건들이 무역 항로를 통해 유럽으로 전해지고, 상업에 종사하는 시민들의 부는 축적됐다. 그리고 종교 개혁에 따른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대립 양상도 치열하게 전개됐다. 몽테뉴는 교회도, 이성적 학문도 신봉하는 태도를 멀리하고 세상의 온갖 문제에 찬찬히 생각하면서 글을 남겼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동서문화사, 2016)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동서문화사, 2007)

 

 

 

몽테뉴는 자신의 성에 은둔하면서 책을 읽거나 수상록을 쓰는 데 몰두했다. 그가 읽은 것 중에는 ‘미지의 땅’에 사는 원주민들과 그들의 풍습을 소개하는 책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책을 접하지 않고선 『식인종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글을 쓸 수가 없다. 몽테뉴는 원주민들의 식인 풍습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풍습이 아니면 ‘야만적인 행위’로 규정한 유럽인들의 사고방식을 지적한다.

 

 

 

 나는 이러한 행동이 흉측하고 야만적인 행위인 것을 주목하여 언짢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우리가 그들의 잘못은 잘 비판하면서, 우리의 야만스런 행위는 주목하지 못하는 일이 슬프다. 나는 산 사람을 잡아먹는 일이 사람을 죽여서 먹는 것보다 더 야만스럽다고 본다. 아직도 아픔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신체를 고문과 고통스러운 형벌로 찢고, 불에 달군 쇠로 지지고 개나 돼지에게 물어 뜯겨 죽게 하는 일이(우리는 이런 일을 글에서 읽었을 뿐 아니라 생생하게 우리 눈으로 보았고, 그것은 옛날이 아니라 우리 이웃 사람들, 같은 시민들 사이에서 일어났으며, 더 나쁜 일로는 종교의 경건한 신앙심에서 그런 짓을 하고 있었다) 사람을 죽인 뒤에 구워서 먹는 것보다 더 야만스런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식인종에 대하여』 중에서, 동서문화사, 2007년 판, 232쪽)

 

 

 

유럽인들은 변방에 있는 대륙에 식인종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로마의 박물학자 플리니우스(Plinius)가 쓴 <박물지(Historia Naturalis)>에 식인종을 언급한 내용이 있다.

 

 

 

 

 

 

 

 

 

 

 

 

 

 

 

 

 

 

* 콜럼버스 《콜럼버스 항해록》 (서해문집, 2004)

* 콜럼버스 《콜럼버스 항해록》 (범우사, 2000)

 

 

 

 

콜럼버스(Columbus)는 항해일지에 카리브해 식인종의 존재를 언급했다. 그는 자신이 상륙한 땅을 인도라고 생각했고, 이곳 원주민들을 인도의 군주 칸(Grand Khan)의 지배를 받는 부족으로 오해해 카니바스(canibas)라고 불렀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식인종을 실제로 보지 못했다. 그에게 식인종의 존재를 알려준 사람은 다름 아닌 카리브해 원주민인 아라와크족(Arawak)이었다. 콜럼버스의 진술이 알려지면서 식인종을 뜻하는 ‘카니발(carnival)이라는 단어가 생겼고, 원주민을 식인종으로 묘사하는 책들이 우후죽순 나왔다.

 

 

 

 

 

 

 

 

 

 

 

 

 

 

 

 

 

 

* 톰 닐론 《음식과 전쟁》 (루아크, 2018)

* [절판] 앤서니 그래프턴 《신대륙과 케케묵은 텍스트들》 (일빛, 2000)

 

 

 

 

1557년에 독일의 군인 한스 슈타덴(Hans Staden)은 자신이 목격한 남아메리카 원주민 투피남바족(Tupinamba)의 식인 풍습을 <포로로 잡힌 진짜 이야기>라는 책을 통해 생생하게 묘사했다[주1]. 이 책에 따르면 투피남바족은 인육을 구워 먹었는데 성대한 행사가 있는 날에는 삶아 먹는다. 또 투피남바족 어린이들은 인간의 내장으로 만든 스튜를 먹기도 했다. 원주민의 식인 풍습을 묘사한 책들은 ‘식인종은 야만인’이라는 관념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자신을 ‘문명인’이라고 생각한 유럽인들은 식인종을 미개한 원주민으로 봤다.

 

 

 

 

 

 

 

 

 

 

 

 

 

 

 

 

 

 

 

* 마빈 해리스 《문화의 수수께끼》(한길사, 2017)

* 마빈 해리스 《음식문화의 수수께끼》(한길사, 2018)

* [품절] 마빈 해리스 《식인과 제왕》(한길사, 2000)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Marvin Harris)《음식문화의 수수께끼》(한길사), 《식인과 제왕》(한길사)에서 잔인해 보이는 식인 풍습을 좀 더 폭넓은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가 쓴 ‘문화인류학 3부작’의 첫 번째 책 《문화의 수수께끼》(한길사)는 우리나라에서 문화인류학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가족제도와 재산, 정치 · 경제 제도, 종교와 음식 등의 진화 · 발전의 원인과 결과를 문화생태학적 측면에서 분석한다. 해리스가 바라보는 ‘문화’는 인류의 생존과 밀접하게 관련된 생활양식이다. 지역마다 인류의 생존방식이 다른 이유는 주어진 환경이나 물질적 조건 등이 문화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문화인류학 3부작’을 관통하는 해리스의 관점은 ‘문화유물론’이라고 한다. 문화유물론은 모든 문화현상이 자연환경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관점이다. 따라서 한 지역의 문화적 전통은 인간이 주어진 환경에서 효율적인 생존 전략을 찾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제각각 다른 삶이 서로 다른 문화의 결을 만들어 낸다. 문화에 대한 유물론적인 해석을 통해 해리스는 육식 금기, 성차별적 전통, 식인 풍습 등에 내재한 생태학적 원인을 파악하여 ‘문명-야만’의 이분법적 구도로 문화를 보는 서구중심주의의 허구와 한계를 비판한다. 인도에서는 소고기를 먹지 않고 무슬림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이러한 음식에 대한 종교적 금기는 그 땅의 기후와 생활 방식에 영향을 받으면서 생긴 것이다. 해리스는 무슬림을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돼지를 사육하기 위해 곡식이 많이 소모하기 때문이고, 인도인들이 소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소는 농사짓는 데 있어서 중요한 노동력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해리스는 식인 풍습을 ‘문화’의 형태로 보면서 그것이 성행하거나 사라지게 된 원인을 환경적 · 경제적 이유에서 찾고 있다. 해리스의 주장에 따르면 아메리카의 자연환경은 단백질이 많이 들어 있는 식용 동물들이 많이 살지 않을 정도로 척박하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영양원이 필요했고, 다른 부족과 전쟁하면서 잡은 포로를 잡아먹었다. 그들은 단지 인육을 먹기 위해서 전쟁을 한 것이 아니다. 원주민들에게 인육은 생존에 필요한 식량인 동시에 자신들의 용맹함을 보여주는 증표이기도 하다. 농사짓는 법을 알기 시작한 원주민들은 전쟁 포로를 노예로 삼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식인 풍습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 임호준 《즐거운 식인》(민음사, 2017)

* 이상희, 윤신원 《인류의 기원》(사이언스북스, 2015)

* 프랜시스 바커 외 엮음 《식인문화의 풍속사》(이룸, 2005)

 

 

 

그런데 1979년에 미국의 인류학자 윌리엄 아렌스(William Arens)는 식인 풍습 분석에 반기를 드는 도발적인 주장을 펼친다. 그는 <식인 신화>라는 책에서 식인 풍습에 대한 유럽인들의 기록은 모두 날조된 것이며, 각종 문헌에 언급된 식인종과 식인 문화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주2]. 그에 따르면 식인종과 식인 문화는 ‘신화’에 불과하며 야만과 문명의 차이를 과장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당연하게도 마빈 해리스를 포함한 인류학자들은 식인 풍습의 흔적으로 볼 수 있는 근거들을 제시하면서 아렌스의 입장을 비판한다. 지금도 식인 풍습을 연구하는 인류학자들은 아렌스의 입장을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여러 명의 학자가 식인종 담론을 분석한 글을 모은 《식인문화의 풍속사》(이룸)에 아렌스가 쓴 『카니발리즘을 재고하며』라는 글이 있다. 아렌스는 이 글에서 <식인 신화>를 공격한 인류학자들(마빈 해리스도 포함되어 있다)의 주장을 재반박한다.

 

물론 식인 풍습에 대한 문화유물론적 분석도 한계가 있으며 비판받고 있다. 생태학적 원인만으로는 문화가 발전되는 과정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빈 해리스의 ‘문화인류학 3부작’은 추천도서 목록에 심심찮게 들어있을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1부, 2부(《음식문화의 수수께끼》) 개정판이 나왔다. 3부 《식인과 제왕》(한길사)만 개정판이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문화유물론은 유행이 지난 이론이 되었다. 마빈 해리스의 주장을 ‘확고한 정설’인 것처럼 받아들이면서 읽으면 문화 발전의 인과적 요인을 설명할 수 있는 다양한 관점을 놓치게 된다. 《음식문화의 수수께끼》의 역자 해설은 문화유물론의 특징뿐만 아니라 한계도 아주 잘 설명한 글인데, 우리나라에서 문화유물론의 한계에 주목한 글이나 문헌을 찾기가 쉽지 않다. 사실 인류학자들은 마빈 해리스의 식인 풍습 분석도 극단으로 보고 있다[주3]. 주류 학설이 아닌 셈이다. 아렌스의 입장도 동의하기 어렵지만, 식인 풍습을 둘러싼 인류학자들의 간의 논쟁을 크게 보려면 서로 정반대인 ‘극’과 ‘극’ 모두를 알아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마빈 해리스 신화’에 벗어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주1] 투피남바족의 식인 풍습을 증언한 한스 슈타덴의 저서와 여기에 실린 도판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책 : 《신대륙과 케케묵은 텍스트들》 (일빛), 《음식과 전쟁》 (루아크),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한길사)

 

[주2] 윌리엄 아렌스의 주장을 소개한 책 : 《인류의 기원》(사이언스북스), 《즐거운 식인》(민음사)

 

[주3] 《즐거운 식인》, 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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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8-12-14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교수님이 에세이가 몽테뉴의 에세에서 나온 거라고 강조하시던 게 생각나네요. 진짜 온통 밑줄 그어가며 읽었는데,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하네요. 다시 펼쳐봐야겠어요 ㅎㅎ

cyrus 2018-12-14 18:12   좋아요 0 | URL
수상록이 워낙 많은 분량이라서 한 번에 다 못 읽고, 생각날 때마다 읽습니다. ^^

2018-12-14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14 18:16   좋아요 0 | URL
승자의 기록을 비판하려면 양심만 있어서는 안 될 거예요. 비판의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와 인내심도 있어야 해요. 그래서 승자의 기록에 정면으로 맞서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에요. ^^;;

페크(pek0501) 2018-12-14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테뉴의 식인종에 대한 지적은 날카롭군요.

<수상록>을 두 권 가지고 있어요. 출판사가 다르죠. 예전에 산 책이 맘에 들지 않아 홍신문화사 걸로 다시 샀어요. 왠지 모르게 홍신문화사 책은 맘에 들어요. 글자가 짙고 종이가 넓어요. 사람으로 말하면 잘생겼어요.
 
마서즈 비니어드 섬 사람들은 수화로 말한다 한길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10
노라 엘렌 그로스 지음, 박승희 옮김 / 한길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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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서스 비니어드(Martha’s Vineyard)는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평온한 섬이다. 이 섬은 영화 <조스(Jaws)>의 촬영지였으며, 미국 대통령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이기도 하다. 지금은 외부인이 자주 드나드는 관광지가 되었으나 과거에 이곳은 청각장애인들이 많이 살던 지역이었다. 청각장애인들이 살았던 옛날 마서스 비니어드 섬의 공용어는 수화였다.

 

1640년대부터 영국의 켄트(Kent)라는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마서스 비니어드 섬에 이주해 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은 청각장애를 유발하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고립된 이주민들은 불가피하게 근친결혼으로 인구를 늘려갔고, 이로 인해 청각장애인들이 많이 태어났다. 유전학적으로 보면 지속적인 근친결혼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열성인자가 출현돼 예상치 못한 장애나 질병과 관련된 면역성 약화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마서스 비니어드섬에는 청각장애인뿐만 아니라 청각에 이상 없는 비장애인들도 살고 있었다. 이 섬에 사는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은 모두 수화를 사용했다. 섬사람들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불편한 장애로 인식하지 않았다. 또 그곳에서는 청각장애인에 대한 차별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서즈 비니어드 섬 사람들은 수화로 말한다(줄여서 마서스 비니어드[])는 섬사람들이 장애를 수용하는 사회화 과정을 추적한 책이다. 인류학자인 저자는 이 섬에 사는 75세 이상 노인들을 만나면서 얻은 구술 자료를 바탕으로 장애의 정의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넓힌다. 19세기 말에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은 섬사람들의 청각장애가 발생하는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직접 조사에 나섰지만, 확실한 결론을 얻는 데 실패했다. 벨은 전화기를 발명한 사람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전화를 발명하기 전 그는 청각 장애인 전문학교를 경영한 교사였다. 그는 수화 대신에 상대방 입술의 움직임과 표정을 보며 말의 맥락을 이해하는 독화(讀話)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마서스 비니어드 섬사람들처럼 수화를 언어로 사용하는 청각장애인 공동체가 많아질수록 청각장애 발병률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했다. 벨이 섬을 조사하던 당시에 학자들은 그레고르 멘델(Gregor Mendel)의 유전 법칙을 모르고 있었다. 20세기 초에 유전 법칙이 재조명받을 때까지 마서스 비니어드 섬사람들의 청각장애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현상이었다.

 

벨은 섬사람들이 수화를 쓰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섬사람들은 외부인이 듣지 못하는 것을 장애라고 생각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 섬에서 청각장애는 일상생활을 불편하게 하는 특이한 질병이 아니었다. ‘얼마든지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섬사람들은 청각장애를 불행한 일로 생각하지 않았다. 외부인, 특히 비장애인들은 마서스 비니어드 섬을 청각장애인들이 모여 사는 고립된 지역으로 본다. 그러나 이 섬에서 청각장애는 사회로부터의 격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섬에 사는 비장애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영어와 수화를 같이 배우면서 자랐다. 그도 그럴 것이 적어도 한둘의 청각장애인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서스 비니어드 섬의 비장애인들은 수화를 평범한 언어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마서스 비니어드 섬에 살았던 최후의 청각장애인은 1952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나이가 많은 섬사람들은 수화로 말했던 시절을 기억했다. 그들은 청각장애인을 특별한 장애인으로 여기지 않았다. 과거를 기억하는 섬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그들[청각장애인-cyrus ]에 대해서 아무것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같았어요. 당신이 그것을 생각한다면, 그 섬은 살기에 대단히 좋은 장소일 거예요.”

 

(마서즈 비니어드 섬 사람들은 수화로 말한다220)

 

 

비장애인은 어딘가 몸이 불편해 보이고, 무언가 남들과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장애인으로 성급하게 판단한다. 그래서 장애를 개인이 극복해야 할 문제로 여긴다. 마서즈 비니어드는 장애란 결코 장애인 개인의 문제도, 극복해야 할 대상도 아님을 보여준다. 즉 장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문제이며, 장애인은 장애인이라서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바로 차별받아서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수화를 쓰지 않는 사회에 청각장애인은 장애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다.

 

이 책의 역자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서스 비니어드 섬사람(원문은 'hearing people'이다)건청인(健聽人)이라고 옮겼다. 나는 이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건청인이라는 표현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강한 사람으로 이해하면,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은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인가. 그냥 청인이라고 썼으면 어떨까 싶다.

 

126쪽 저자의 주석에 이런 내용이 있다.

 

 

 자신의 자녀가 청각장애인의 여부를 알기 원하는 사람들이 유능한 의학적인 유전학자를 찾을 수 있도록 격려해야만 한다.

 

 

저자의 말에 동의하기 힘들다. 아직 태어나지 않는 자녀가 장애인인지 아닌지 알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장애인을 아프고 건강하지 않은 사람으로 타자화하는 인식이 생기기 쉽다. 래디컬 페미니즘 관점에서 볼 땐 장애 여성 또한 자신의 몸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만약 장애인 태아를 양육할 수 없다면 임신 중지(낙태)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장애학을 공부한 여성주의 철학자들의 비판을 피하지 못한다. 태아의 장애 여부를 알 수 있는 유전자 분석 기술이 도입된다면, 장애인은 태어나선 안 되고,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존재라는 편견을 형성할 수 있다. 모든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유전자 분석을 통해 예상 수명과 장애 여부를 판정하여 태어나야 할 존재태어나지 말아야 할 존재로 분류하는 것은 우생학과 다를 바 없는 발상이다.

 

 

 

 

 

[리뷰 제목 주] 이 책의 8장 제목이다.

 

 

[]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마서스 비니어드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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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12-11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애와 비장애, 건강과 비건강, 그런 것들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는 없는데도, 현실에서는 차별과 구분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읽었습니다.
cyrus님, 따뜻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cyrus 2018-12-12 16:48   좋아요 0 | URL
상대방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편협한 기준을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합니다. 저도 이런 오류에 종종 빠지곤 합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8-12-11 2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싸이러스 님 보면서 항상 알라딘계의 쓰는기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에 한두 글을 올리는 게 쉬운 게 아니죠. 더군다나 꽤 공들인 글들인데 말이죠..

cyrus 2018-12-12 16:57   좋아요 1 | URL
책 한 권을 다 읽으면 책의 핵심 내용이라든가 관심 있는 내용을 한글 파일에 입력해서 저장해요. 보통 이런 작업을 평일에 퇴근하고 나서 하는 경우가 있지만, 시간이 많은 주말에 많이 하는 편입니다. 평일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 밤 12시나 1시에 잠을 청합니다. 카프카처럼 생활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카프카는 낮에 보험회사 사무직에서 일하고, 밤에 글을 썼어요. 밤에 글 쓰는 데 집중하기 좋은 시간이죠. 카프카는 밤새면서 글을 쓰면 다음 날에 출근하지 않았다고 해요. 결근하고 싶으면 회사에 몸이 아프다면서 핑계를 둘러댔어요. 사실 저도 카프카처럼 그런 거짓말을 한 적이 있어요.. ^^;;

雨香 2018-12-12 0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서즈 비니어드》는 장애란 결코 장애인 개인의 문제도, 극복해야 할 대상도 아님을 보여준다. 즉 장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문제이며, 장애인은 ‘장애인이라서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바로 ‘차별받아서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수화를 쓰지 않는 사회에 청각장애인은 ‘장애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다. ˝

예전에 장애운동에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하면서 많이 이야기한 부분이 바로 사회구조의 문제였습니다.

소개해주신 책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제가 읽지는 않고, 읽어서 도움이 될 분들에게 선물할 것 같기는 합니다.)

cyrus 2018-12-12 16:59   좋아요 1 | URL
지난달에 페미니즘 독서모임 선정도서로 <거부당한 몸>을 읽었어요. 독서모임에 자주 참석하는 페미니스트들 멤버들이 아니었으면 이 좋은 책을 읽을 기회가 없었을 거예요. 이 책을 읽을 계기로 장애에 관한 다른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장애학과 장애 운동에 관심을 가진 지 얼마 안 된 초짜입니다.. ^^
 

 

사람은 누구나 불의의 사고로 다치거나 병이 들면 법률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장애인이 된다. 내년이면 우리나라에 ‘장애인’이라는 용어가 나온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81년에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제정되면서 처음엔 ‘장애자’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일부에서 ‘자(者)’가 ‘놈’을 뜻한다며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면서 1989년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돼 현재 ‘장애인’이 공식 용어가 되었다.

 

1987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라는 단체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친구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장애우’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장애우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정식으로 기재되지 않은 용어이다. 그런데도 지금도 여전히 언론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는 이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장애우’는 장애인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을 만든다. 비장애인은 ‘장애우’의 의미를 ‘비장애인에게 도움받아야 하는 친구’ 정도쯤으로 가볍게 인식할 수 있는데, 이러한 인식에는 장애인이 비주체적이고 의존적인 존재라는 전제를 담고 있다. 그리고 ‘장애우’는 장애인 자신을 표현하는 1인칭으로 쓸 수가 없다. 장애인이 ‘나는 장애우입니다’라고 말하면 ‘장애가 있는 나’를 표현한 건지, 아니면 ‘장애가 있는 친구’를 표현한 건지 알 수 없다. ‘친구’는 혼자가 아닌 상대가 있어야 쓸 수 있는 것인데, ‘나는 장애우입니다’라는 말은 문법상 맞지 않다.

 

 

 

 

 

 

 

 

 

 

 

 

 

 

 

* 수전 웬델 《거부당한 몸》 (그린비, 2013)

 

 

 

장애인들은 무심코 들리는 말 한마디에 깊은 상처를 입는다. ‘비장애인들도 하기 힘든 일을 장애인이 해냈다’라는 찬사 속에도 ‘장애인은 비정상이다’ 또는 ‘역경을 극복하지 못한 장애인은 불행하다’라는 편견이 들어있다. 《거부당한 몸》(그린비)은 장애인을 대하는 비장애인들의 편협한 인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책이다. 장애인들이 무언가를 해냈을 때 언론과 미디어는 그들을 ‘인간 승리’ 또는 ‘역경을 극복한 영웅’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면서 칭송한다. 이런 ‘장애인 영웅 신화’는 1%의 ‘성공한 장애인’과 그렇게 되지 못한 99%의 장애인들 간의 거리감을 느끼게 만든다. ‘장애인 영웅 신화’에 익숙한 비장애인들은 ‘장애’를 모든 장애인이 극복해야 하는(극복할 수 있는) ‘장벽’으로 잘못 인식한다. 장애인은 신체적으로 불편함을 가진 사람일 뿐 평생 고통 속에 살아가는 불행한 사람이 절대로 아니다.

 

 

 

 

 

 

 

 

 

 

 

 

 

 

 

* 수전 손택 《은유로서의 질병》 (이후, 2002)

 

 

 

‘기형’을 장애의 의미에 결부시켜 쓰는 경우가 많다. 기형은 의학적인 용어로 신체의 선천적 형태 이상을 가리킨다. 의학계에서는 기형이란 용어 대신 ‘선천성 이상’ 또는 ‘희귀난치성 질환’이라는 표현을 권장하고 있다. 그런데 선천적 질환(illness)으로 인해 생긴 장애를 ‘질병(disease)과 구분 없이 사용하면 장애 경험이 없는 비장애인은 장애를 ‘건강하지 않은, 치유가 어려운 상태’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비장애인은 질병과 장애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느낀다.

 

내 몸에 있는 질병은 몸 전체가 느끼는 생생한 고통이지만, 나와 무관한 질병은 단어로만 존재하는 관념일 뿐이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질병은 ‘은유’를 동반한다. 불행을 동반하는 불치병일수록 은유는 부정적인 어휘가 된다. 그래서 장애는 ‘건강하지 않은’ 개인의 문제로, 건강은 당위가 아니라 욕망이 된다. 건강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가 무서워서’ 건강해지고 싶은 것이다.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자신의 책 《은유로서의 질병》(이후)에서 ‘질병은 질병일 뿐, 질병은 저주가 아니며, 신의 심판도 아니므로 곤혹스러워할 필요가 없으며,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녀는 암 투병을 계기로 그녀는 암이라는 질병이 죽음의 은유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암이 누구나 올 수 있는 평범한 질병으로 바뀐 오늘날, 이러한 은유의 무게감을 가장 많이 느끼는 이들은 아마 장애인들일 것이다. 비장애인의 편견 속에서 장애는 질병 자체와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실제로 많은 장애가 통증이나 합병증을 수반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질병과 그에 따른 통증을 장애에 무조건 끼워 맞춰서 설명하는 것은 장애인을 타자화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의 몸은 ‘병들고 아픈 몸’으로 남게 된다. ‘병들고 아픈 몸’은 ‘질병과 장애가 없어서 건강한 정상인의 몸’의 범주에 속하지 않으며, 비장애인은 ‘정상인의 몸’을 가지기 위해 장애와 질병을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여기서 장애는 ‘질병’이라는 은유로 바뀐다. 장애인은 태어날 때부터 건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아픔과 불편함을 참으면서 살아야 한다. 그래서 비장애인은 질병을 극복하지 못한 장애인을 볼 때마다 측은지심을 느끼고, 보호자나 간병인 없이는 혼자 살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들은 장애가 있는 삶을 ‘살아갈 가치가 없는 삶’이라고 믿는다. 이렇듯 현실을 추상화하고 결과로서의 은유는 장애 경험과 장애인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역효과를 일으킨다.

 

장애는 저주가 아니며, 불행을 안겨주는 질병도 아니다. 건강한 몸으로 장수를 누리면서 살 수 있다면 그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만 우리의 몸은 분명히 한계가 있다. 우리 모두는 영원히 젊고, 아프지 않고, 팔팔한 몸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장애에 대한 상투적 표현이나 은유에 물들지 않으려면, ‘장애를 가진 다양한 몸’과 그 몸에 대한 여러 가지 경험을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장애’를 이야기하면서 ‘몸의 차이’가 ‘차별’로 구조화된 인식을 해체할 수 있는 좋은 연구들이 많이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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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2-11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우린 누구나가 다 장애인이 될 수 있습니다!

cyrus 2018-12-11 17:05   좋아요 1 | URL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공부하는 통합 교육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이를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구분해서 가르치면, 비장애인 학생은 장애에 무지한 상태로 자라게 됩니다. 장애를 낯설어하고, 장애인과 대화하는 것을 어려워해요. 제가 그런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지 장애인 친구를 알게 되기 전까지 그렇게 장애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장애인의 경험에서 나오는 지식이 정말 중요합니다. 비장애인으로 살다가 장애인이 된 사람들에게는 그런 지식이 ‘삶의 지혜‘가 되거든요. ^^

카알벨루치 2018-12-11 17:15   좋아요 1 | URL
미국이나 선진국은 그런 교육적 환경이 가능한 것 같은데 , 그것도 교육한다고 무조건 되는건 아닌 것 같고 학부모의 인식과 의식의 변화가 가장 중요한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의 학부모의 의식이 그런 배려가 생길려면 무거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학부모나 교육의 일선에 선 사람들, 아니 모든 이에게 필요한 것 같아요!

이전에 어떤 분이 장애인화장실에다 물건을 쌓아 창고로 활용했던 경우를 본 적이 있었는데 장애인학교 교사가 그걸 목격하고는 항의를 하더라군요 그때 제가 깜짝 놀랬지요 장애인에 대한 생각을 전혀 못하고 무심하게 넘겼던 저의 무신경함을 반성했더랬어요!

cyrus 2018-12-11 17:33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사회가 빨리 변하기 때문에 장애인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것도 신중하게 해야 하고, 정책 하나 생각하는 것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려요. 또 살면서 익숙하게 느꼈던 인식을 확 바꾸는 것도 쉽지 않아요.

2018-12-11 1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11 17:1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장애학을 공부하면 내 몸의 한계를 이해하게 되고, 장애인을 ‘차별받고, 사회에서 분리해야하는 존재’로 만드는 사회구조 전체를 볼 수 있어요. 정말로 이런 사회구조를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장애’라는 말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장애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2018-12-12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12 17:01   좋아요 1 | URL
<거부당한 몸>을 읽기 전에는 장애인들에게 ‘영웅’이라고 찬사를 보내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 않았어요. 저는 그냥 그런 찬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을 보면서 제가 장애와 장애인을 너무 막연하게 생각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전자책을 만드는 1인 출판사 페가나북스클라크 애슈턴 스미스(Clark Ashton Smith)의 대표작인 조티크(Zothique)연작을 출간했다. 스미스는 크툴루 신화(Cthulhu Mythos)러브크래프트(Lovecraft)코난 연대기(Conan Saga)로버트 E. 하워드(Robert Ervin Howard)와 동시대에 활동한 미국 장르문학의 거장이다[1]. 그의 작품은 이미 선집 형태로 출간된 적이 있다. 러브크래트트 전집의 특별판으로 소개된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걸작선(황금가지)은 총 1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선집을 통해 소개되었던 조티크 연작은 다섯 편이다. 조티크 연작 중 하나이자 좀비(Zombie)가 등장하는 Necromancy in Naat나트에서의 마법이라는 제목으로 좀비 연대기》(책세상)에 선보였다.

 

 

 

 

 

 

 

 

 

 

 

 

 

 

 

 

 

 

 

 

 

 

 

 

 

 

 

 

 

 

 

 

 

 

*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조티크(페가나북스, 2018)

*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조티크 (샘플 북)(페가나북스, 2018)

*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걸작선(황금가지, 2015)

* 정진영 옮김 좀비 연대기(책세상, 2017)

 

   

 

 

조티크는 스미스가 창작한 가상의 대륙 이름이다. ‘고대를 뜻하는 앤티크(Antique)의 운을 따서 만든 명칭이라고 한다. 조티크는 과학 기술과 종교가 완전히 사라진 지구 최후의 대륙이다. 그곳에는 악마를 숭배하는 밀교와 고대 마법만이 남아 있다. 스미스는 조티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조티크 연작은 단편 16, 1, 희곡 1으로 구성되어 있다. 페가나북스는 조티크 연작 전부 번역했다. 페가나북스 판과 황금가지 판에 수록된 조티크 연작은 다음과 같다. 스미스의 작품 대부분은 환상소설과 공포 문학을 주로 소개한 펄프 픽션 <위어드 테일즈(Weird Tales)>를 통해 발표되었다.

 

 

 

 

* The Empire of the Necromancers (19329, <위어드 테일즈>)

마법사들의 제국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걸작선

조티크

 

 

* The Isle of the Torturers (19333, <위어드 테일즈>)

고문자들의 섬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걸작선

조티크

 

 

* The Voyage of King Euvoran

(1933, 스미스의 단편집 <이중 그림자>에 수록, <위어드 테일즈> 19479월 호에 게재)

에우보란 왕의 항해

조티크

 

 

* The Weaver in the Vault (19341, <위어드 테일즈>)

지하묘지의 방직공

조티크

 

    

* The Witchcraft of Ulua (19342, <위어드 테일즈>)

울루아의 마법

조티크

 

 

* The Charnel God (19343, <위어드 테일즈>)

납골당의 신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걸작선)

시체를 먹는 신 (조티크)

 

 

* The Tomb-Spawn (19345, <위어드 테일즈>)

무덤 속 괴물

조티크

 

 

* Xeethra (193412, <위어드 테일즈>)

지트라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걸작선

조티크

 

 

* The Dark Eidolon (19351, <위어드 테일즈>)

검은 곡두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걸작선)

검은 신상 (조티크)

 

 

* The Last Hieroglyph (19354, <위어드 테일즈>)

마지막 상형문자

조티크

 

 

* The Black Abbot of Puthuum (19363, <위어드 테일즈>)

푸툼의 수도원장

조티크

 

 

* Necromancy in Naat (19367, <위어드 테일즈>)

나트에서의 마법 (호러 연대기)

나트의 강령술 (조티크)

 

 

* The Death of Ilalotha (19379, <위어드 테일즈>)

일라로타의 죽음

조티크

 

 

* The Garden of Adompha (19384, <위어드 테일즈>)

아돔파의 정원

조티크

 

 

* The Master of the Crabs (19483, <위어드 테일즈>)

게의 지배자

조티크

 

 

* Zothique (1951, 시집 <검은 성>에 수록)

조티크

조티크

 

 

* The Dead will Cuckold You (1951년에 쓴 것으로 추정됨, 1989년에 공개됨)

죽은 자가 부정(不貞)을 저지르리라

조티크

 

 

* Morthylla (19535, <위어드 테일즈>)

모르틸라

조티크

 

 

 

 

스미스의 작품 속 인물들은 현실보다는 환상, 삶보다는 죽음에 가까운 곳에 서 있으며, 비이성과 광기의 세계를 대변한다. 그들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속에서 헤매거나 꿈과 환상 속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 세계에는 기괴하게 생긴 괴물들이 나타난다. 이번에 처음으로 소개된 마지막 상형문자는 러브크래프트에서 영감을 받은 코스믹 호러(cosmic horror) 분위기를 제대로 담아낸 작품이다. 아돔파의 정원은 인간의 신체 일부와 식물을 접붙인 괴물이 등장한다. 게의 지배자는 스미스가 절필한 지 10년 만에 발표한 작품이다. 조티크 연작에서 유일한 1인칭 소설이며 흥미진진한 모험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

 

조티크 연작을 읽기 전에 무료로 구매할 수 있는 샘플 북을 꼭 챙겨 보는 것이 좋다. 이 샘플 북에는 조티크 연작 일부만을 수록하고 있는데,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 ‘샘플 북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를 정도로 스미스의 생애, 조티크 연작에 대한 상세한 설명 등이 채워져 있어서 내용이 알차다. 샘플 북이 아니라 해설서이다.

 

다시 한 번 언급하자면 이 책을 만든 출판사는 페가나북스이다. 1인 전자책 전문 출판사이다. 번역, 출판물 제작, 홍보 등 모든 업무를 엄진이라는 분이 다 하고 있다. 2014년에 처음으로 페가나북스를 알게 됐는데, 매년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한편으론 종이책으로 나와도 잘 팔리지도 않는) 장르문학 작품들을 소개하는 엄진 님의 노고에 이 글로나마 감사를 표한다.

 

 

 

 

[] 스미스와 러브크래프트의 관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필자가 쓴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걸작선> 리뷰를 참고하면 된다.

http://blog.aladin.co.kr/haesung/9659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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