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너미’는 ‘Friend(친구)’와 ‘Enemy(적)’가 합쳐진 신조어다. 협력하면서 동시에 경쟁하는 관계를 뜻한다. 후기 인상주의의 대표적인 화가로 손꼽히는 반 고흐와 폴 고갱은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유명한 프레너미다. 진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였으면서 동시에 라이벌 관계였다. 두 화가의 성격과 창작 방식은 대조적이었지만 서로의 작품에 큰 영향을 주었고, 걸작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서양 미술사를 공부하게 되면 흥미진진한 프레너미를 만날 수 있다. 프레너미 관계를 형성한 예술가들은 지속적인 노력과 합당한 경쟁을 통해 훌륭한 걸작을 탄생시켰다.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마티스와 피카소도 그랬다. 창의적인 사람은 라이벌을 자기 진화의 스승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과 달리 자존심이 세서 종종 극단적인 상황을 연출하여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기도 한다.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자신의 귀 일부를 자른 고흐처럼 말이다. (최근에는 고흐와 고갱이 격렬한 언쟁을 벌이다 고갱이 홧김에 또는 자기방어를 위해 펜싱 검으로 고흐의 귓불을 잘랐다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었다)

 

 

 

 

 

 

 

 

 

 

 

 

 

 

 

 

 

 

 

 

 

 

 

 

 

 

 

 

 

 

 

고흐와 고갱 이야기가 많이 알려지다 보니 에두아르 마네와 에드가 드가의 관계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 두 사람도 평생 막역한 사이로 지냈으나 가끔 불편한 갈등 관계를 빚기도 했다. 마네는 인상파 그룹의 전시회에 한 번도 참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인상파 그룹은 마네의 참신한 기법을 지지했다. 마네는 인상파 그룹의 아지트인 카페 게르부아에 자주 드나들었다. 인상파 그룹의 정기적 모임을 통해 마네는 모네, 르누아르, 드가 등과 어울릴 수 있었다. 드가를 인상파 그룹에 처음으로 소개한 사람이 마네였다. 마네는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한 드가의 능력을 처음으로 눈여겨봤다.

 

그렇지만 드가에게 약점이 있었는데 지나치게 날카롭고 예민한 성격이었다. 드가는 서슴없이 동료 화가의 그림에 대해 독설을 하기도 했다. 그의 행동으로 인해 인상파 그룹에서 만나기가 껄끄러운 인물이 되었다. 그런데도 마네는 사귀기 쉽지 않은 드가의 예술성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이 둘 사이의 관계가 잠깐 냉각 상태가 된 사건이 있었다.

 

 

 

 

 

 

에드가 드가  「에두아르 마네 부부」 (1868~1869년경) 

 

 

 

드가는 마네의 부인 쉬잔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그 연주를 감상하는 마네의 모습을 그렸다. 완성한 그림을 마네에게 선물했고, 마네는 그 답례로 자두가 있는 정물화를 드가에게 주었다. 그런데 마네는 드가가 그린 쉬잔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부인의 얼굴이 나오는 부분을 캔버스로 세로로 잘라 내버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드가가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절반이 잘려나간 자신의 그림이 마네의 아틀리에에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한 드가는 불쾌한 마음에 그 그림을 들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마네가 선물한 정물화를 돌려주었다. 사실 마네의 행동은 경솔했다. 그림을 자신의 자식처럼 여기는 화가 입장에서는 자존심을 짓밟는 행동이다. 까칠하기로 유명한 드가 입장에서는 엄청 화가 났을 텐데 마네의 정물화를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돌려보낸 것은 다행한 일이다. 만약에 드가도 마네의 정물화를 훼손하여 돌려보냈다면 고흐와 고갱처럼 예전 관계를 회복하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드가는 마네의 정물화를 돌려보낸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행동에 후회했다고 한다.

 

이 일화에서 마네를 바라보는 드가의 본심을 알 수 있다. 드가는 자신의 그림을 먼저 알아주고, 인상파 화가들에게 자신을 소개해 준 마네를 늘 존경해왔고,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또 두 사람이 추구하는 예술 주제도 같았다. 19세기 파리의 풍속을 그림에 담으려고 노력했으며 특히 인상파 회화 형성에 영향을 준 보들레르의 사상에 심취했다. 드가는 보들레르의 글을 읽었고, 마네는 드가에게 빌려준 보들레르의 전집 중 한 권을 돌려달라고 편지로 부탁하기도 했다. 재미있게도 마네와 드가가 처음 만난 장소는 루브르 박물관이었다. 화가를 꿈꾸는 지망생들은 루브르 박물관을 찾아 걸작들을 모사했다. 마네를 처음 만났던 해인 1862넌에 드가는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모사하고 있었는데, 마네 역시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선호했다.

 

 

 

 

 

 

에두아르 마네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 (1859년) 

 

 

 

 

 

에드가 드가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 (1875~1876년)

 

 

마네와 드가의 그림을 프레너미의 관점으로 비교해서 보면 두 사람 다 공통으로 추구했던 미학적인 관점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859년에 완성한 마네의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와 역시 같은 제목인 드가의 1876년 작 그림을 보라. 두 그림이 처음으로 살롱전에 출품했을 때 혹독한 반응을 얻었다. 관객과 비평가들은 살롱전에 어울리지 않은 주제에 심기가 불편했다. 마네의 「압생트」에는 주정쟁이가 앉아 있고, 그 옆에는 중독성이 강하기로 유명한 압생트 한 잔이 놓여 있다. 주정쟁이는 이 독한 술 한 병을 혼자서 다 마신 듯하다. 그의 얼굴을 봐서는 오랜 음주로 인한 취기가 아직 가시지 않았다.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빈 술병과 배경에 있는 주정쟁이의 그림자는 사회에서 소외당한 고독한 주정쟁이의 암울한 현실을 암시한다. 드가의 「압생트」도 마찬가지다. 두 남녀는 텅 빈 카페에 앉아 있다. 그런데 마네의 「압생트」의 주정쟁이처럼 두 남녀도 고독한 분위기에 지배당했다. 여자는 압생트를 받아놓고 무료한 듯 넋 빠진 표정을 지으면서 앉아 있고, 남자는 아예 여자 쪽에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다른 곳으로 향한다. 서로 아무런 소통도 못 하면서 말이다. 마네와 드가의 「압생트」는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보인다. 두 그림 속 화면 전체가 술 냄새로 진동하고 있다. 매혹적인 초록색 빛깔을 드러내는 압생트는 강렬한 도시의 고독을 잊으려는 도시인을 유혹한다. 근대 파리의 우울과 고독을 이만큼 잘 드러내주는 그림들이 또 있을까.

 

 

 

 

 

 

에두아르 마네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1882년) 

 

 

 

마네가 죽기 전에 완성한 그림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은 화려한 파리의 이면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대리석 바에 있는 리큐어와 샴페인은 파리지앵의 감각적 쾌락을 충족시켜주는 음료이다. 술집의 여급은 드가의 「압생트」에 나오는 여인처럼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녀의 표정은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딱 어울린다. 그녀 또한 마네의 「압생트」의 주정쟁이처럼 도시에 소외된 하층계급 시민이다. 거울 속에 비친 화려한 술집 내부의 광경은 술집에 갇혀 있는 동시에 유흥의 쾌락에 소외된 여급의 상태와 대비된다. 그림 배경으로 설정된 거울은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이중적 장치다. 현실에서 행복함을 찾고 싶은 여급은 자신도 화려한 파리지앵으로 사는 삶에 합류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녀의 소망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린다. 그녀가 바라보는 술집 광경은 도시가 만들어 낸 환상에 불과하다. 그녀가 집착하는 환상은 지난한 현실을 버텨내기 위한 일시적인 안락일 뿐이다.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왼쪽 위 끝에 공중 곡예사의 다리가 보인다. 그림을 자세히 보지 않으면 단번에 확인하지 못한다. 그렇다 보니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을 소개하는 미술 서적에서는 다리만 드러낸 공중 곡예사의 정체에 관한 설명을 간과한다. 마네는 왜 공중 곡예사의 다리를 그려 넣었을까? 그냥 관객의 주의를 끌기 위한 마네의 장난기 섞인 맥거핀일까?

 

 

 

 

 

에드가 드가  「페르낭도 서커스의 라라 양」 (1879년)

 

 

 

나는 마네가 의도적으로 그려 넣었을 거로 생각한다. 서커스는 근대 파리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며 인상파 회화에서 많이 다룬 주제이기도 하다. 파리에는 파리지앵의 몸과 마음을 풀어놓고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이 즐비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술집, 카페 그리고 서커스 공연장이었다. 폴리 베르제르는 술집, 카페, 서커스 공연장을 함께 운영하는 곳이었으니 공중 곡예사의 다리가 그림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 공중에 매달린 곡예사의 모습은 인상파 화가들을 매료시켰다. 드가도 서커스 공연을 자주 보러 갔는데 ‘라라’라는 이름의 여자 곡예사의 공연 장면을 그려냈다. 라라는 양 무릎과 발목이 묶인 채 그네에 매달려 대포에 불을 붙이는 묘기를 선보였다. 드가가 묘사한 그림 속 라라는 점점 공중으로 뜨는 것처럼 보인다. 아슬아슬하게 그네에 매달린 곡예사의 모습은 곡예와 같은 하루를 보내는 도시인의 고단한 삶을 상징한다. 마네가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에 공중 곡예사를 은근슬쩍 그려 넣은 의도는 쾌락의 환상을 애써 붙잡으려고 아등바등 매달린 채 괴로워하는 여급, 아니 파리지앵의 번뇌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영국 시인 앨프리드 테니슨은 ‘적을 만들어 본 적 없는 사람은 결코 친구도 만들 수 없다.’라고 말했다. ‘경쟁’의 이면에 자리 잡은 ‘우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진정으로 자신을 발전시키고 싶다면 라이벌만큼 소중한 존재도 없다. 마네와 드가는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뛰어난 안목을 가졌고, 서로에게 예술적 영감의 빛을 비춰주는 창작의 거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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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퀴즈. 두 사람 중에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를 제대로 읽은 사람은 누구일까?

 

 

A: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정말 대단한 소설이에요.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뒷세이아》 이야기를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옮긴 조이스의 치밀한 이야기 구성에 감탄했어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더블린의 레오폴드 블룸의 동선과 평행하게 놓고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오뒷세이아》를 먼저 읽어보시면 《율리시스》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B: 이봐요, A씨! 당신은 《율리시스》를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것 같군요.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읽는 것도 좋지만, 그것만 읽는다고 해서 《율리시스》를 이해할 수 없어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읽어야 해요. 스티븐 디덜러스는 햄릿형 인간이니까요.  

 

 

 

 

 

 

 

 

 

 

 

 

 

 

 

 

 

 

 

아마도 이 글을 읽은 사람 중 대다수는 A를 선택했을 것이다. 《율리시스》를 한 번도 안 읽은 사람도 이 소설이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모델로 만든 작품이라는 사실을 상식으로 알고 있으니까. A씨는 《율리시스》를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제대로 읽지 않은 사람도 될 수 있다. 이유는 설명하지 않겠다. 이미 앞에서 언급했다. 《율리시스》를 읽지 않아도 누구나 《율리시스》를 제대로 읽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인터넷에 검색해서 찾은 《율리시스》의 작품 해설을 그럴싸하게 있게 말하면 된다.

 

그렇다면 B는 《율리시스》를 제대로 읽었을까? 《율리시스》가 《오뒷세이아》를 모티프로 만든 소설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B의 의견을 의아하게 여길 것이다. 그래서《율리시스》를 제대로 읽은 사람으로 A를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B도 《율리시스》를 제대로 읽었다고 볼 수 있다. 디덜러스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햄릿과 동등하게 인식하고 있다. 《햄릿》의 줄거리를 안다면 《율리시스》 9장 '스킬라와 카립디스' 편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스킬라와 카립디스'의 무대는 더블린 국립도서관이다. 여기서 디덜러스는 평론가인 존 이글링턴, 시인 조지 러셀(A.E), 도서관 관장 리스터와 함께 셰익스피어에 관한 토론에 참여한다. 스티븐은 《햄릿》을 포함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토대로 독특한 의견을 내세운다.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죽은 아들 햄넷, 독살당한 부왕은 셰익스피어, 햄릿의 어머니인 왕비는 셰익스피어의 아내 앤 해서웨이를 의미하는데 앤이 셰익스피어의 동생 리처드와 간통했을 거로 추정한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와 앤의 관계에 대해서도 재조명한다. 스티븐은 여덟 살 연상의 앤이 20살 되지 않은 숫총각 셰익스피어를 유혹하여 강제로 접근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거침없이 이어진다. 셰익스피어의 정체에서도 의문을 제기하며 《소네트집》에 나오는 흑부인의 정체까지 증명한다. 그러나 존 이글링턴과 조지 러셀은 스티븐의 셰익스피어론을 동의하지 않는다.

 

'스킬라와 카립디스'가 셰익스피어를 위한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이야기에서 인용되거나 언급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만 해도 스무 편 이상이나 된다. 《율리시스》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햄릿》이다. 현재 《율리시스》를 9장까지 읽은 상황인데 《율리시스》에 나오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다음과 같다. 여기서 지금까지 읽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몇 편이냐 있는지 한 번 세어보시라.

 

 

* 《베로나의 두 신사》
* 《말괄량이 길들이기》
* 《리처드 3세》
* 《실수연발》(전예원) / 《헷갈려 코미디》(아침이슬)
* 《사랑의 헛수고》
* 《리처드 2세》
* 《로미오와 줄리엣》
* 《한여름 밤의 꿈》
* 《존 왕》
* 《베니스의 상인》
* 《헨리 4세》
*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
* 《헨리 5세》
* 《줄리어스 씨저》
* 《뜻대로 하세요》(전예원) / 《좋을 대로 하시든지》(아침이슬)
* 《십이야》
*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
* 《자에는 자로》(지만지)
* 《오셀로》
* 《리어 왕》
* 《맥베스》
*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 《페리클리스》/ 《타이어의 공작 페리클리스》
* 《코리올라누스》
* 《겨울 이야기》
* 《심벨린》
* 《템페스트》/ 《폭풍우》
* 《헨리 8세》
* 《비너스와 아도니스》(서사시)
* 《루크리스의 능욕》(서사시)
* 《소네트집》

 

 

※ 괄호명은 출판사명, 작품은 발표 연대순으로 나열함.

 

 

'스킬라와 카립디스'를 집필하기 위해 조이스는 총 31편이나 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언급했다. 기억력이 비상해서 줄거리도 거의 다 꿰뚫고 있었을 것이다. '스킬라와 카립디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셰익스피어 전집 정도는 읽어줘야 한다.

 

셰익스피어는 세계문학사의 최고봉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그의 생애에 아는 바가 많지 않다. 그래서 늘 셰익스피어를 언급할 때 항상 따라오는 것이 그의 정체에 관한 논란이다. 아시다시피 셰익스피어가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만들어 낸 가공 작가라는 설이 가장 널리 알려졌다. 조이스가 《율리시스》를 집필했던 20세기 초에도 셰익스피어의 정체를 둘러싼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실제로 '스킬라와 카립디스'에 셰익스피어의 정체를 추정한 여러 비평가의 의견이 언급된다. 델리어 베이컨이라는 미국의 여류 소설가는 자신을 베이컨의 후손이라고 밝히면서 베이컨이 셰익스피어라는 설을 처음으로 제기했다. 미국의 수필가인 이그너티우스 도넬리는 베이컨의 편지 속에 있는 암호 문구를 해석하여 델리어 베이컨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하지만 학계는 두 사람의 의견을 동의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베이컨 가설'을 정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조이스는 '스킬라와 카립디스'를 통해 셰익스피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한다. 더 나아가서 셰익스피어의 정체와 수수께끼 같은 생애에 대해서 과감한 주장을 선보인다. 그래서 《율리시스》 9장은 앞 이야기보다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특히 열띤 토론이 진행되는 과정 중에 스티븐의 친구이자 원수 같은 존재인 벅 멀리건이 갑자기 등장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고 9장을 읽게 된다면, 독자는 흥미진진한 토론을 제대로 관람할 수 없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셰익스피어 학회 토론이 될 수 있다. 또 셰익스피어의 모든 것을 《율리시스》 안에 담아낸 조이스의 천재성도 알아보지 못한다. 어디 가서 《율리시스》를 읽은 척하고 싶으면 이제부터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를 함께 언급하면 된다. 그나저나 《율리시스》 때문에 셰익스피어 작품도 읽어야 하다니. 거 조이스 형님,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 Re) 조이스 // 갈 땐 가더라도 셰익스피어 하나쯤은 읽어도 괜찮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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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 2015-05-24 16:32   댓글달기 | URL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언급하신 셰익스피어 작품 중 제대로 읽은 것은 채 여덟권 뿐이네요. 여기저기 이름은 많이 들었으나 만만치 않은 책이라는 새각이 들어 <율리시스>읽기는 먼 훗날로 미뤄놓고만 있습니다..

cyrus 2015-05-24 20:23   URL
저보다 많이 읽으셨는데요. 저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만 읽었습니다. ㅎㅎㅎ

연어덮밥 2015-05-24 17:58   댓글달기 | URL
평이 재미있네요. 사놓고 쟁여놓고 감히 읽을 엄두를 못냈는데.. 용기를 내보게 하네요 :)

cyrus 2015-05-24 20:27   URL
인내심이 많다면 <율리시스> 읽기를 도전하셔도 좋습니다. ^^

2015-05-24 1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24 2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금 행복하자 2015-05-24 21:55   댓글달기 | URL
오뒷세우스를 읽으면서 조이스의 율리시스랑 니진스키의 오디세우스를 생각했어요.... 읽어야 하나... 그냥 모르고 있을걸~~ ㅎㅎ

저는 b를 골랐어요.
세익스피어는 세보니까 13편 읽은것 같은데 제목이 낯선것도 있어 잘 모르겠어요~
 

 

 

지금으로부터 7년 전에 알렉스는 로맨틱 가이의 대명사였다.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파트너로 나온 신애의 발을 씻겨주고 노래를 불러준 장면에 젊은 여성들은 열광했고 알렉스는 인기 스타로 급부상했다. 그런데 이 장면이 방송의 전파를 타게 되자 알렉스는 인기와 함께 냉소 어린 비난도 들어야 했다. 촉촉한 목소리로 세레나데를 불러주고, 제 여자의 발을 씻겨주는 알렉스 같은 남자 없느냐고 여자의 아우성이 많아졌고, 발 씻겨주면서 노래를 불러달라는 아내의 요구가 많다면서 남편들이 원성을 높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알렉스는 한때 남자들 공공의 적이 되었다. 알렉스는 방송에서 보여준 자신의 로맨틱한 행동들이 다 연출된 것이라는 대중의 반응에 다소 심란했다고 한다. 그리고 연출된 이벤트가 아님을 강조했다. 촬영 후에 신애가 다리를 삐고 말았는데 미안한 마음에 다친 발을 씻겨주었다고 밝혔다.  

 

로맨티스트는 천부적으로 타고나는 걸까. 알렉스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알렉스는 여자의 마음을 잘 이해했다. 상대의 마음 읽기는 물론이요, 의미 없이 던지는 무언의 대화까지 이해하려고 했다. 사람이 지닌 가장 강력한 욕구 본능 중 하나가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인정 욕구’다. 가장 잘 이해해야 할 대상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할 때, 사람은 외로워진다. 만약에 이중섭 야마모토 마사코(한국명 이남덕)의 외로움을 몰라주는 괴벽스러운 화가였다면 우린 이중섭과 마사코의 애절한 사랑 편지를 읽지 못했을 것이다.

 

 

 

 

 

 

 

 

 

 

 

 

 

 

 

 

아내에 대한 이중섭의 사랑은 극진했다. 일본 유학 시절에 처음 만났고, 1945년 원산에서 결혼했다. 하지만 한국전쟁의 소용돌이는 둘의 사랑에 비극성을 부여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그해 12월 가족과 함께 월남했던 이중섭은 부산, 제주도 서귀포 등지에서 생활했지만, 생활고 때문에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냈다. 1953년에 어렵사리 일본으로 건너가 그렇게 그리던 마사코를 만났지만, 두 사람이 함께 보내는 데 주어진 시간은 단 일주일이었다. 훗날을 기약하고 이중섭은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는데 그게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이야. 이중섭은 아내와 가족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담은 편지를 쓰고 보냈다. 편지 속에는 아내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잔뜩 배어있다. 삶의 압박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그였지만 그림에는 다시 만난 가족이 원을 그리며 춤추거나 과일을 먹으며 즐기는 모습을 그려 보냈다.

 

편지글에 자주 등장하는 ‘발가락 군’, ‘아스파라거스 군’은 마사코의 애칭이다. 발가락이 못생겼다고 이중섭이 마사코에게 두 개의 애칭을 붙였다. 이 애칭들은 두 사람이 한창 연애하던 시절부터 생겼다. 부부가 되어서도 이중섭은 연애 시절의 애칭을 그대로 사용했다. 비록 사람들의 눈에는 마사코의 발이 못생겼어도 이중섭의 눈에는 그저 사랑스러운 여인의 발이었다. 그 발에 몇 번이라도 뽀뽀하고 싶다는 말을 편지에 쓸 정도로 발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 있었다.

 

 

 

 

 

이중섭  발을 치료하는 남자」 (1941년)

 

 

그런데 이중섭은 왜 마사코의 발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이중섭과 마사코가 둘이서 거리를 걷던 중, 마사코가 발가락을 다쳤다. 상처가 난 마사코의 발가락에는 출혈이 일어났고, 이중섭은 마사코의 다친 발을 어루만지면서 지혈을 했다. 이때 당시 상황을 잊지 않았던 이중섭은 「발을 치료하는 남자」라는 그림을 엽서 뒷면에 그렸다.

 

이중섭은 마사코의 콤플렉스까지도 사랑한 로맨티스트다. 연애 시절부터 사용하던 애칭이 있어서 그런지 결혼한 부부가 쓰는 편지라기보다는 이제 갓 연애를 처음 시작한 연인 사이의 풋풋한 연애편지 같은 느낌도 난다. 고단하고 궁핍했지만, 그 처연하고 빈 곳을 사랑으로 채우던 가장 ‘따뜻한 시절’에 대한 기억의 모든 것은 오롯이 그림과 엽서에 남아 있다.

 

“사랑스러운 당신이 보고 싶소. 어서 당신의 모든 것을 껴안고 싶은 거요. 나는 몸 성히 잘 있소. 당신의 예쁜 발 사진을 빨리 보내주시오.”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1916-1956》 중에서, 51쪽)

 

오늘은 부부의 날. 정성스런 손길의 발 마사지는 아내의 피로를 단번에 해결하면서도 그동안의 고마움을 표현할 기회가 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더불어 두 사람의 부부 애정지수도 높아질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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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5-22 11:41   댓글달기 | URL
오, 이중섭의 그림 중에 저런 그림이 있었구나.
그 역시 자신과 맞딱트린 장면중에 떠오르는 영감을 가지고
그림을 그렸군.

알렉스가 남자들의 공공의 적이 된 적이 있었군.
우결은 내가 안 봐서 그런가 보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데
여전히 하는 걸 보면 인기 프론가 봐.ㅠ


cyrus 2015-05-23 23:20   URL
이중섭의 <발을 치료하는 남자>를 맨 처음 봤을 땐 그냥 발을 어루만지는 남자를 그린 그림인 줄 알았어요. 이 그림에 숨은 사연을 알게 되니까 그림이 좋아보였어요. 이중섭 같은 남자라면 멋지지 않습니까? ^^

우결이 지금도 방영하고 있는 걸 보면, 신기해요. 출연진이 바꿀 때마다 우결 인기 다 떨어졌으니 폐지하라고 말이 많았는데 막상 방송하면 시청자들이 좋아하더라고요.

야나 2015-05-24 10:08   댓글달기 | URL
나중에 자네는 발 마사지 엄청 잘해줄듯_
참고로 자네 매형은 발 맛사지 대가다. ㅋ

이거 사고 싶다, 괜히 읽었다 킁킁

cyrus 2015-05-24 15:38   URL
귀차니즘만 없다면 매일 마시지 할 자신이 있습니다. ㅋㅋㅋ
 
독한 것들 - 슬프도록 아름다운 독의 진화
정준호.박성웅 외 지음, EBS 미디어 기획 / Mid(엠아이디)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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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경쟁이 생겼고, 누군가는 패배의 불명예를 안아야만 했다. 하지만 패배자에게도 부활의 가능성만큼은 열려 있는 게 세상살이다. 험한 경쟁일수록 독해야 살아남는다. ‘어떻게든 끝을 보겠다’는 독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흔히 담배를 끊는 사람을 보고 독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강한 의지가 있어야 금연은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독하다’라는 표현은 다의어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맛, 냄새를 표현할 때 사용하며(“술이 독하다”) 마음이 성격이 모진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그의 성미가 독하다”).

 

똑같은 물을 마시더라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된다(牛飮之爲乳 蛇飮之爲毒)’는 말이 있다. 똑같은 재료라 할지라도 가공과정이나 사용 목적에 따라 그 효과가 천차만별이라는 뜻이다. 인간은 부정적인 면을 표현할 때 짐승에 비유하곤 한다. 표독스러운 사람은 “독사와 같다”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으로 간 사이코패스》(RHK, 2007년)를 쓴 심리학자 폴 바비악은 사이코패스를 ‘양복 입은 독사(Snakes In Suits)’라고 비유했다. 지금까지 언급된 사례만 봐도 우리가 독성생물을 악독한 존재로 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된다’라는 말을 과학적 관점으로 따져보면, 이 말은 독사에 관한 잘못된 선입견에서 비롯된 억견(Doxa)이다. 과학자들은 이미 강력하고 무서운 살무사의 독을 추출해 관절염이나 당뇨병 치료제로 만들려는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벌침의 독이 통증이나 염증에 탁월한 효과가 있어서 관절염 등의 치료에 쓰인 지는 오래되었다. 동물의 독이건 식물의 독이건 조물주가 만든 독 중에는 독으로만 끝나지 않고 약으로 쓰일 때가 있다. 자연이 만들어낸 독은 이렇게 독과 약의 양면성을 가진다.

 

TV에 방영한 EBS <다큐프라임> ‘진화의 신비-독’ 편을 책으로 옮긴 《독한 것들》(Mid출판사, 2015년)은 독성생물을 향한 인간의 억견을 깨뜨리는 데 도움이 되는 유용한 책이다. 인류가 자연의 독을 사용한 역사는 무척 길다. 오랜 옛날부터 인간은 독이 있는 동ㆍ식물을 알았으며 이 독으로 사람이나 짐승을 죽이기도, 병든 이를 고치기도 했다. 독 하면 개구리독도 뱀독에 못지않다. 남미에는 독화살개구리가 있는데,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이 화살촉을 이 개구리에 문지르면 살상용 독화살이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독화살개구리와 같은 독성생물은 보통 다른 종들과는 다른 외양을 가지고 있다. 보통의 동물들은 배경 속으로 녹아들어 포식자나 사냥감의 눈에 잘 띄지 않도록 하는 의태와 보호색을 가지도록 진화했지만, 이들은 자신이 가진 독성을 강렬한 경고색으로 표현한다. 경고색은 두세 가지의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색상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자신은 강한 독을 가지고 있으며, 건드리면 위험하다고 색으로 말하고 있다. 독화살 개구리의 경우 경고색의 패턴이 매우 다양하며 무척 화려하다.

 

독성생물의 생태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라는 그들의 강인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자신을 공격하는 곤충들에게 화상을 입힐 정도의 독성물질을 분비하는 벌레가 있다. 이 벌레는 폭탄먼지벌레라 불린다. 폭탄먼지벌레는 위험이 닥치면 1,2초라는 아주 짧은 시간에 몸 안의 체액을 급속히 가열, 뿜어낸다. 이 체액의 정체는 히드로퀴논이라는 화학물질과 과산화수소가 섞인 것이다. 생쥐 같은 것이 폭탄먼지벌레에 다가오다 속수무책으로 화상을 입게 된다. 찰스 다윈은 이 폭탄먼지벌레를 관찰하려고 손으로 잡아 입안에 넣었다가 입천장을 온통 데기도 했다. 이처럼 일부 생물은 진화과정에서 독성물질을 발달시켜왔다.

 

하지만 이에 맞서 독에 대한 저항력이 강한 종들도 살아남는다. 더욱 강한 독을 가진 개체들이 유전자를 후대에 전승하고 있을 때, 그들과의 경쟁에 살아남으려고 더 강한 저항력을 이어받은 개체들이 태어난다. 영겁의 레이스가 계속되는 진화의 과정은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붉은 여왕의 달리기와 같다. 붉은 여왕은 쉼 없이 뛰지만, 주변의 모든 것이 함께 움직이고 있어 늘 제자리이다. 같은 자리를 지키려고 해도 계속 달릴 수밖에 없다. 다른 곳에 가려면 최소한 두 배는 더 빨리 뛰어야 한다. 모든 생명체가 끊임없이 진화하지만, 환경도 빠르게 바뀌기 때문에 진보가 둔화한다는 진화생물학 이론이 ‘붉은 여왕 효과’이다. 이 ‘붉은 여왕 효과’가 독성생물의 진화 과정에도 여지없이 적용된다. 독은 개체 간에 벌어지는 쫓고 쫓기는 ‘독한’ 게임에 살아남기 위한 생물의 방어 전략이다. 러닝머신(자연) 위에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계속 달려야 하듯 독성생물은 진화에 맞서 독성을 키워야 했다.

 

우리에게는 그저 해로운 독성생물들의 삶을 알고 보면 종족을 유지하고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생존전략일 때가 많다. 자연을 무대로 펼쳐지는 ‘독한’ 생존게임에 영원한 승자는 없다. 사실 독성생물들은 자기방어나 생존을 위한 먹이를 잡을 때만 독을 쓰지 함부로 아무 때나 쓰진 않는다. 그러므로 독성생물을 지구상에 사라져야 할 해로운 존재로만 보는 시선을 거둘 필요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독은 사람이 만든 독이다. 주방용 세제와 플라스틱 식기류, 식품 포장용 랩 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물건에 포함된 환경호르몬은 사람의 몸에 들어가 내분비계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한다. 환경호르몬이 생물체의 몸 안에 들어오면 아주 적은 양으로도 다음 세대의 발육과 성장 및 생식·면역기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앞으로도 인간은 점점 더 독해질 것이다. “인간만이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는 레이첼 카슨 여사의 개탄이 더욱 크게 귓전에 울린다.

 

 

 

 

※ 오탈자: 코모도왕도마뱀이 이렇게 몸집이 거대해진 이유는 섬이라는 고립된 환경에 살며 접차 몸집을 불리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37쪽) → '점차'로 바로잡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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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5-19 22:51   댓글달기 | URL
침을 쏘면 내장이 빠져 나가 죽는다는 벌처럼, 독을 공격성에 방점을 두기보다 생존과 보호 수단으로 더 이해해야겠죠.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된다` 의 단순화를 잘 지적해 주셨네요.

말씀처럼 인간은 독을 광범위하고 무차별하게 퍼트리고 있지요. 오늘도 후쿠시마 원전으로 인한 아동 갑상선 환자 발생 소식을 들었는데, 체르노빌에서도 갑상선암으로 아이들이 제일 피해를 많이 봤던 걸 생각하면 착찹합니다.
우리나라는 고리원전 재가동 하니 마니, 아무 대책도 없이 저러고 있고....

cyrus 2015-05-21 16:46   URL
맞아요. 환경 재난사고도 인류가 만들어 낸 독 때문에 발생한 겁니다. <독한 것들>에서도 아갈마님이 지적하신 내용과 유사한 사례가 나옵니다. 미나마타병이 발생했을 때도 오염된 물을 마시고 사망하거나 불구가 된 아이들이 많았었죠.

지금 행복하자 2015-05-20 05:58   댓글달기 | URL
독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게 또 쉬운일이 아니더군요. 독하게 구는 사람들도 보호수단으로 그 독을 사용하는 걸까요? 그렇게 이해해야할까요? 어째든 그 독으로 다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죠~~

이렇게 멋진 리뷰를 쓰시는 분들을 보면 대단하다~ 생각들어요. 논리적인 글쓰기가 가장 어려워요~ ^^

cyrus 2015-05-21 16:51   URL
독한 사람들이 지나치게 독기를 가지게 되면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다치게 됩니다. 저는 <독한 것들>을 읽으면서 ‘독하다’라는 표현을 되도록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가지 않으면서 자신의 목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강인한 인내심을 가진 사람에게 좋은 의미에서 ‘독하다’라고 표현하고 싶어져요.

제 글을 자세히 읽어보면 논리적이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오늘 쓴 글을 다음 날에 읽어보면, 부족한 게 보이게 되더라고요. 특히 어법이 맞지 않은 문장을 많이 발견하곤 합니다.

달걀부인 2015-05-20 08:12   댓글달기 | URL
오탈자 지적해주면 책한권 서비스로 주면 좋겠어요. 맨날 꽁책만 바라는... 곧 대머리아줌마 되겠어요.

cyrus 2015-05-21 16:52   URL
예전에 오탈자 지적해주면 책 한 권을 받는 일이 흔했다던데 저는 아직까지 뜻밖의 혜택을 받지 못했어요. ㅎㅎㅎ

2015-05-20 0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21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pek0501 2015-05-20 14:59   댓글달기 | URL
흥미롭게 잘 읽고 갑니다.

cyrus 2015-05-21 16:55   URL
답변이 늦었습니다. 고맙습니다. pek님.

2015-05-20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21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금 행복하자 2015-05-21 17:41   댓글달기 | URL
그런 독함 .. 갖고 싶어요.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 문학의전당 시인선 28
문인수 지음 / 문학의전당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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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은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게 만드는 마음의 중력이다. 잠시나마 떨어져 있을 땐 기다림이 있고, 그것도 참을 수 없을 때는 어디든지 찾아갈 수 있다. 목소리만이라도 듣고 싶을 땐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전하면 되고, 속삭이는 감정을 편지에 담아 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고 싶어도 기다려도 볼 수 없는, 느낄 수도 없는 사람이 없다면 그리움이란 더욱 애절하다. 특히 어머니는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이다. 문인수 시인의 제2시집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는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의 대상들을 한자리에 모아 엮은 소중한 창고와 같다. 그것은 진솔하면서도 견고한 서정으로 드러난다.

 

 

먼 수풀은 따뜻하고 부드러워요.

새들은 왜 건너건너 날아가고 있나요.

 

강 건너로 가서 살고 싶어요 어머니.

 

얘야, 내 귓속에 들여다 보아라

 

찬바람 드나드는 갈대숲 말이냐 추운 저

새소리 말이냐 얘야.

 

(「겨울 강변에서」, 13쪽)

 

 

고단한 현실에 저항하는 힘은 ‘어머니’로부터 나온다. 어머니는 자식을 잉태하고 출산하고 젖 먹여 인간 되게 키워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불멸의 힘을 가지고 있다. 여러 편의 시에서 어머니는 좌절과 절망 속에 빠진 시인의 자아를 끌어올려 주고 있다. 그녀의 구원으로 인해 시인의 삶은 살아볼 만하다. 삶의 아픔을 치유할 방법을 모성에서 찾는다.

 

 

  오랜만에 고향엘 다녀왔다.

 

  대구에 가면 이런 거 흔하고 흔합니다 헐하고 헐합니다 하고 말렸으나 어머니는, 나도 많이 늙었다 오래는 더 못 살겠다 하시면서, 무우말랭이며 머위나물 매운 풋고추 같은 걸 자꾸 챙겨 주셨다. 이만큼 전송 나오시다가 또 쫓아들어가 다른 거 한 보퉁이 들고 나오셨다.

  무릎 앞에다가 이것들을 끌려놓고 깊이 냄새를 맡는다 어느덧, 여름밤 천지에 가득하고 그윽한 먼 별 빛,

 

  긴 바람의 젖을 물고 나는...

 

 

(「젖」, 20쪽)

 

 

이 세상 모든 어머니는 아무리 퍼내도 바닥이 드러나지 않는 정의 샘물을 가지고 산다. 자식을 위하는 일이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은 열정에 타오르기도 한다. 그런 탓에 혼자 힘으로는 일어설 힘을 잃은 의족이 필요한 자식도 생긴다. 그들은 자신을 지탱해줄 받침목을 잃고서야 넘쳐나는 사랑에 눈을 뜨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가슴 속에 외로움의 잡초만 무수히 키우고 사는 어머니를 보면서도 따뜻한 정감의 눈길 한 번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일을 바쁜 탓으로 돌려 핑계 대고 싶어 한다.

 

고향은 떠나왔기에 그리운 향수의 공간이요, 지금의 나를 만들었기에 풍요로운 서사의 공간이다. 동시에 언젠가는 죽어서 되돌아가야 할 영혼의 귀착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향은 ‘존재의 집’이다. 시인의 가슴 한구석에는 언제나 마음이 되돌아가 안기는 고향이 있고, 시를 통해 그리움으로 글썽이는 희미한 기억들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가을이 되었네.

담쟁이 이파리들이 뚝 뚝 뚝 듣네.

 

고향에게 미안하네.

 

그동안

사방 헤매었던 길들이 그루터기 쪽으로

내게로 다 흘러들면서

나도 이제 지하수처럼 한 줄기 깊이 흐르네

 

밤 어두울수록 이리 눈물 닿아 좋은 곳.

 

 

(「고향에게 미안하네」, 45쪽)

 

 

 

인류는 오랫동안 두 가지 상반된 꿈을 마음속에 품어 왔다. ‘고향’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꿈과 ‘미지의 세계’를 향해 훌쩍 떠나고자 하는 꿈이 있다. 전자가 없다면 방랑과 방황에 지쳐 길을 잃게 될 것이며, 후자가 없다면 현실에 안주한 채 무기력한 삶을 지속하게 될지도 모른다. 고향과 미지의 세계를 향한 갈망은 우리 삶에 팽팽한 긴장력을 부여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이 긴장을 잃어버렸다. 삶이 지속하는 한 사유의 항해도 지속하여야 한다.

 

  길이 막히거든 노숙을 해봐라.

 

  달빛 아래

  나무의 낯선낯선 이파리들이 눈앞을 저어 가면서 가장 먼 별들이 귓전으로 가슴으로 스며 내리면서 풀벌레 소리들 번져 에워싸면서

  그대 겨드랑이에다가 하염없이 짜넣는

  그 달빛이 무엇이 되는지

 

  팔 벌리고 누우면 허수아비 같고

  돌아누우면 좀 춥고

  몸 웅크리면 섬같이 되어서

 

  날고 싶을 것이다.

 

  달빛 아래

  그 어디로 길이 열리는지

  먼 타관으로 가서 노숙을 해봐라.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 81쪽)

 

 

사유의 항해 끝에는 늘 집, 고향이 있고, 어머니와 아버지에게로 돌아간다. 그래서 노숙은 종국에는 회귀의 과정으로 귀결된다. 깊고 따뜻한 대상에의 시선과 쉽고 편한 언어로 맑고 순하게 써내려간 시들은 편편이 흘러내리며 가슴을 따뜻하게 적셔주고 정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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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5-17 21:23   댓글달기 | URL
고즈넉한 일요일 저녁에 가만히 읽을수록 참 좋군요. 시도 님의 리뷰도. 담아갑니다. ^^

cyrus 2015-05-18 22:33   URL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