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작가 아폴리네르

 

 

다치바나 다카시는 책방에 한번 나가면 3만 엔(당시 우리나라 월급쟁이 몇 달 치 월급) 정도의 거금을 들고사냥하듯 책을 사들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책을 산다기보다는 포획 하다는 말이 적절하다. 그래서 사들여서 잔뜩 쌓인 책을 보관할 수 있는 고양이 빌딩을 짓고, 수만 권의 책 속에 파묻혀 학문의 모든 영역을 넘나들며 지난 시절보다 더 왕성하게 글을 썼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청어람미디어, 2001년)를 읽으면 언감생심 그에게는 까마득히 못 미치지만, 그의 독서법에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 다치바나는 책은 꼭 돈을 들여서 사고 산 책은 버리지 않는 원칙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나 또한 그런 습관을 지니고 있는데 먼 훗날에 책으로 가득한 서재 같은 창고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 피도 살도 안 되는 100』(청어람미디어, 2008년)에 고양이 빌딩의 구조와 거기에 보관된 책들이 소개된다. 여기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라면 다치바나가 야한 내용의 책 위주로 따로 모아놓은 서재를 소개할 때이다. 성 관련 책을 빌딩 1층에 보관했다. 성 풍속, 선정적인 내용, 성행위를 과감하게 묘사한 책들까지 제목만 봐도 얼굴을 화근거리게 만든다. 사드의 소돔 120도 빠질 수 없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 피도 살도 안 되는 100에는 성 관련 책에 대한 다치바나의 소개가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에 비해 좀 더 상세하게 소개한다.

 

<러브호텔 문화지>, <게이 시장이라 불린 남자>, <성의 구조>, <일본에로사진사> 거기에 사드 후작 선집도 사들였다. 그뿐만 아니다. 허름한 서점 한 구석에 꽂혀 있을 법한 일반인들의 성생활 수기에서 가격이 꽤 비싼 호화본 우키요에 춘화(春畵)도 다치바나 서재의 도서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 피도 살도 안 되는 100에 일본 우키요에 춘화를 설명하는 내용이 열 페이지 정도 남짓 할애될 정도로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다치바나는 춘화를 야한 그림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가치가 있는 풍속화에 의미를 두고 있다. 춘화의 그림 스타일을 분류하고 예술로 볼 수 있는지 논할 정도로 말이다. 다치바나는 1979년에 <미국 성 혁명 보고>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을 읽은 잡지의 편집장이 내용에 감동받아 다치바나에게 스와핑 잡지를 매호 보내주었다고 한다.

 

성에 대한 호기심이 넘쳐나던 고등학생 때 엉뚱하게 야한 책을 소개하는 내용을 보면서 책을 모으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그 꿈(?)이 조금씩 이루어지게 되었다. 제목과 표지만 봐도 ‘19세 미만 독자 구독 금지뉘앙스가 느껴지는 책은 가장 눈에 띄는 책장에 꽂지 않는다. 아직 책의 권수가 많지 않아서 여닫이가 있는 책장에 따로 보관하고 있다. 거기에 책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족도 모른다. 거의 비밀에 가까운 보관이다. 일명 ‘19금 비밀 컬렉션이다.

 

 

 

 

 

 

 

 

 

 

 

 

 

 

 

 

 

‘19금 비밀 컬렉션에 보관된 책 중에서 일부 몇 권은 이미 소개한 적이 있다. 바로 기욤 아폴리네르의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문학수첩, 1999-품절)완역 돈쥬앙(2/ 보람, 1995-절판)이다. 성애문학에서 사드의 뒤를 이은 작가가 아폴리네르다. 그가 한동안 잊힌 사드의 작품들을 발굴하여 전집으로 소개했고,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완역 돈쥬앙에서도 사드를 뛰어넘으려는 상상 그 이상의 성 행위의 향연이 펼쳐진다

 

 

 

 

 

 

 

 

 

 

 

 

‘19금 비밀 컬렉션의 시작은 사드에서 비롯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 소개된 사드의 작품은 악명 높은 묘사로 인해 출간 수명이 짧았다. 1990년에 새터라는 출판사에서 처음으로소돔 120이 두 권짜리로 출간되었다. 여기서부터 희귀본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2000년에 고도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되었지만, 이 책 또한 빠른 시기에 절판의 운명을 맞았다. 이 때 사드라는 이름을 알고, 소돔 120을 구입한 독자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 때는 사드가 지금처럼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아서 판매 부수가 적었을지도 모른다. 2000년에 나는 초등학생 6학년이었고, 당연히 사드그리고 그의 이름에서 유래된 사디즘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야동의 세계에 입문하는 시기가 바로 이때였다)

 

 

 

 

 

 

 

 

 

 

 

 

    

 

사드의 소돔 120이 악명 높은 작품에다가 고가에 거래되는 희귀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것도 원작을 토대로 만든 영화 덕분에 알게 되었는데, 그 영화가 바로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살로 소돔의 120이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에 대학교 동기가 흥미진진한 외국 영화를 다운로드 받았다고 해서 같이 보자고 나에게 권했다. 그런데 하필 그 영화가 살로 소돔의 120이었다. 친구는 자기 혼자 영화를 보다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문제의 장면들이 너무 역겨워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자신이 혼자 당한 걸 아쉬웠던지 나에게도 그 영화를 권한 것이다. 나는 생각보다 비위가 강한 편이라서 영화를 끝까지 봤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파졸리니가 관객에게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기분이 찝찝했다. 영화 속 최악의 장면이 머릿속에 자꾸 남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의미를 알고 싶었다. 이 때가 바로 사드의 세계에 들어서게 된 결정적인 경험이었다

 

 

 

 

그래서 직접 원작을 읽고 싶었으나 헌책방과 인터넷 서점에서 너무 비싼 가격에 팔고 있던 터라 그저 침만 삼키고 있어야 했다. 대신 사드의 단편을 모은 사랑의 죄악(장원, 1993-절판), 미덕의 불운(열린책들, 2011), 사드의 규방철학(도서출판 비, 2005-품절)을 구입하면서 드디어 어두컴컴한 사드의 세계 속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다가 오랫동안 어둠에 가려졌던 문제작 소돔 1202012년에 출간되었다. 그런데 이 책이 출간되는 과정이 순탄치가 않았다. 이 때 한창 성 범죄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러웠던 때라서, 성 관련 서적이 때 아닌 핍박을 받아야 했다. 결국 소돔 120이 청소년 유해 판정물보다 한 단계 높은 처분을 받게 되어 출간 정지를 당하게 된다. 이 책이 음란물로 규정된 것이다. 출판사가 모든 책을 수거해서 폐기시키는 바람에 한동안 동서출판사 소돔 120이 판매가 금지되었고, 이미 책을 산 사람은 가격을 뻥튀기해서 인터넷 중고서점에서 파는 풍경이 연출되었다. 판금조치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자, 간행물윤리위원회 재심을 통해 청소년유해간행물로 변경되었다. ‘19세미만 구독불가표시를 하고 비닐로 포장해 판매하게 되었다. 이 결정을 계기로 고도출판사의 소돔 120이 알라딘 중고서점에, 거기에 고가가 아닌 부담 없는 가격으로 한정판으로 판매될 수 있었다. 이 때가 정말 고도출판사의 소돔 120이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이 책이 다섯 권씩 있는 꽂혀 있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사드 동시대 또는 그 이전과 그 이후에도 음란 서적 출판이 성행했다. 이름 없는 무명의 작가들이 쓴 포르노 작품은 독자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읽혀졌고, 심지어 궁정의 왕족들까지도 포르노의 대상이 되었다. 소문으로 전해 내려오는 궁정의 섹스 스캔들은 왕족의 무능함에 지친 대중들과 그들 세력을 비판하려는 반정부주의자들에게는 흥미로운 먹잇감이었다. 특히 18세기 중엽 프랑스에서 왕족들을 섹스의 화신 혹은 성불능자로 만들어 희화화시킨 시와 노래 그리고 소설이 유행했다. 그래서 왕족이나 정부는 이를 판매 금지시키고, 제작하거나 배포하는 사람 또 읽는 사람들마저도 처벌을 내렸다. 정부는 은밀하게 유통되는 음란물이 국정을 혼란시킬 수 있는 방해물로 인식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음란물을 수거시켰고, 제작·배포한 사람들은 바스티유 감옥에 수감되었다.

 

 

 

 

 

 

성애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존 클레랜드의 내 사랑 패니 힐(예림미디어, 1999-절판)을 알고 있어야 한다. 원제는 ‘Fanny Hill: Memoirs of a Woman of Pleasure’로 영국에서 1749년에 출간되었다. 출판 연도 시기는 사드의 소돔 120보다 무려 40여 년 전이다. 소돔 120은 프랑스 혁명의 포탄이 터지기 시작할 즈음에 사드가 집필한 것이다.

 

 

 

 

 

 

 

 

 

 

 

 

 

 

 

피터 박스올의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1001』(마로니에북스, 2007년)에 나오는 설명에 따르면 내 사랑 패니 힐이 영문학 사상 가장 에로틱한 소설로 꼽고 있다. 참고로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1001도서목록에 사드의 소돔 120미덕의 불운(원제는 ‘Justine, or les malheurs de la vertu’, 우리말로 풀이하면 쥐스틴, 혹은 미덕의 불운이다)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지만, 사드와 클래렌드의 작품 간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두 사람이 쓴 작품의 주인공은 음탕하다. 허나 결말에서 차이점이 드러난다. 사드 작품 속 주인공은 악덕에 대한 대가를 받게 되어 불행하면서도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지만, 클래렌드의 내 사랑 패니 힐의 주인공이자 창녀인 패니 힐은 자신의 성적 편력을 마음껏 즐기면서 결혼 생활을 하게 된다. 패니 힐은 자신의 성적 매력을 신분 상승을 위한 전략적 무기로 사용한다. 반면 사드의 작품 주인공들은 섹스를 오직 성적 쾌락을 얻기 위한 자신만의 도구로 인식하고 있다.

 

 

 

 

 

성애문학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알렉상드리앙의 에로틱 문학의 역사(한술출판사, 2005-품절)은 고대부터 현대의 초현실주의까지 에로틱 문학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토머스 월터 라커의 섹스의 역사(황금가지, 2000-절판)은 섹스가 고대부터 현대까지 움직여 온 인간의 역사와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보여준다. 저자가 수집한 다양한 텍스트와 그림을 통해 독자는 섹스에 대한 인식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

 

 

 

 

 

 

세계성풍속사(세명문화사, 1988-품절)은 일본인 저자(한자어로 복전화언’)가 쓴 성 풍속사를 다룬 책인데 제목은 거창하게 보이지만, 실상 내용은 짤막한 에피소드를 나열한 것이다. 꽤 낡은 책이지만, 역사책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은밀한 성 풍속과 동서양을 아우른 독특한 성 문화를 볼 수 있다. 알라딘에 성 픙속으로 검색하면 관련 서적들이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몇 권은 절판되고 말았지만. 그 중에 임명수라는 저자의 역사로 보는 세계의 성풍속(어문학사, 2004-절판)은 내가 가지고 있는 세계성풍속사과 같은 내용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역사로 보는 세계의 성풍속에 소개된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다. 시대별로 고대 편’, ‘중세 편’, ‘근세 편’, ‘근대 편’, ‘현대 편으로 구분한 목차의 특징이 두 책 다 비슷하다. 그리고 역사로 보는 세계의 성풍속고대 편아리스토텔레스의 피임법이라는 항목명이 있는데 이 내용은 세계성풍속사에도 나온다. 굳이 두 책을 직접 비교해보지 않고 일부 소개된 목차만 봐도 얼추 두 책이 이름만 다른 서로 같은 내용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역사로 보는 세계의 성풍속의 저자가 한국 사람인 것으로 보아서는 일본 저자가 쓴 책을 그대로 자신이 쓴 것처럼 교묘하게 이름만 바꾼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언젠가 도서관이나 헌책방에서 역사로 보는 세계의 성풍속을 발견하게 되면 좀더 자세하게 내용을 비교하고 싶다.

 

 

 

 

 

    

 

우리나라는 옛날에 비해 성 문화와 인식이 개방적으로 변화되고 있다지만, 아직도 서적만큼은 무조건 야하다고 생각하면 음란하고 불온하게 보는 인식은 여전한 것 같다. 이런 책을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읽으려면 용기를 가져야 한다. 성 관련 서적은 성에 대한 깊은 관심이 있는 소수의 독자만 읽을 뿐이지, 대체적으로 잘 팔리지 않는다. 또 재출간될 가능성도 장르문학만큼 희박하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생각의나무 출판사에서 나온 이병주의 에로스 문화 탐사(2, 2002)은 워낙에 좋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재출간되지 않은 점에 아쉽기만 하다. 서양과 동양의 에로스문화가 시대별로 정리되어 있으며 도판 목록도 화려하다. 보티첼리, 루벤스, 김홍도, 신윤복 등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다 아는 예술가들이 그린 춘화들을 볼 수 있다.

 

 

 

 

 

 

 

 

 

이런 책을 사 모으고 읽는 독자를 이상하게 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이런 책을 많이 읽어서 이성을 잃어버린 괴물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섹스를 제대로 알아야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을 악덕으로 이용하는 괴물에 당하지도 않으며, 그러한 괴물로 되지도 않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성 교육이 중요한 거다. 뜬금없이 웬 성 교육 드립이...?

 

제대로 된 성 교육의 중요성은 누구나 다 잘 아는 내용이기에 그냥 넘어가고, 일단 이러한 책을 사고 읽는 것은 결국 인간에게 섹스는 절대로 때려야 땔 수 없는 자연스러운 행위이며 좀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문화와 역사를 창조하는 힘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래서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어떻게 섹스가 인간의 역사를 만들었는지를. 단순하게 말하면 섹스를 착하게 또는 나쁘게 이해하고 그 본능에 따르느냐에 따라서 행동이 나누어진다. 그래서 섹스는 인간에게 있어서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쾌락을 선사하면서도 그것이 악용되면 반인륜적 행위로 이어지니까.

 

 

 

 

 

 

 

 

 

섹드립 같은 야한 농담에 부끄러워도 상관은 없지만, 섹스를 심도 있게 설명하고 분석하는 책을 읽는 것에 대해서는 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책을 읽는 사람을 변태로 취급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그것을 수줍어하고,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는 당신이야말로 음란한 마음을 품고 있을 수 있다. 건강한 성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는 정신 건강에 해롭지 않다. 그래서 ‘19금 비밀 컬렉션을 위한 수집은 계속 할 것이다. 나도 다치바나 못지 않을 정도로 성에 대한 관심이 많다. ( ͡° ͜ʖ ͡°)

 

 

 

 

 

 

 

 

 



  1. 야설작가 아폴리네르
    from factory 2014-10-29 18:50 
    만약에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작가가 ‘야설’을 썼다고 상상해보자. 기존에 썼던 작품들과 다르게 작가의 ‘야설’은 포르노에 가까울 정도로 노골적인 성 묘사로 가득하다. 책 표지 앞에 ‘19세 미만 구독불가’라는 글씨가 박혀 있다. 작가의 작품을 즐겨 읽었던 열혈 독자라면 상당히 난감하다. 작가의 문학성을 믿고 야설을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 일부 독자는 삼류 작가의 펜에 나오는 졸작이라고 비난하면서 크게 실망할 수도 있다.
 
 
 
자전거여행 1 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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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수단이었던 잃어버린 자전거를 찾아 헤매다 자전거를 훔친 안토니오. 도둑으로 몰려 모욕을 받지만, 다행히 경찰서행은 면한다. 아들과 함께 해 지는 로마 거리를 허탈하게 걸어가는 그들의 모습. 이탈리아의 감독 비토리아 데 시카의 영화 ‘자전거 도둑’은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피폐한 로마 거리를 통해 가난과 사회적 모순을 고발한다. 이렇듯 자전거는 멀고 험난한 인생길을 가는 데 꼭 필요한 동력(動力)이자 동반자로서 해야 할 역할이 되어 왔다. 자전거는 사람의 힘만으로 움직인다. 연료가 필요치 않으니 경제적이고 환경파괴가 없으니 도덕적이다. 자전거만큼 기계와 사람이 하나 되는 물건도 없다. 자전거를 균형 잡는 것은 몸으로 자연스레 체득된다.

 

누구나 어린 시절 자전거로 인생의 페달을 밟기 시작한다. 기어 다니다 걸을 만하면 제일 먼저 타는 것이 세발자전거다. 그걸로 열심히 발힘과 균형감각을 길러 두발자전거를 탈 때쯤 초등학교에 간다. 이후 자립의 길로 접어들 때 자전거가 인생의 친구가 되기도 한다.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 배우는 동요도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자전거가 나갑니다.”이다. 그러나 자동차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면서 자전거는 뒤로 밀려난다. 그러다 언제부터 자전거를 오랜 추억들로 가득 찬 창고 같은 가슴 속에 다시 꺼낼 때가 온다. 

 

그렇지만 자전거를 생각하면 늘, 마음 한구석에서 한숨이 새어 나온다. “자전거를 저어서 나아갈 때 풍경은 흘러와 마음에 스민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 2권에 나오는 첫 구절) 대체 풍경이 흘러와 마음에 스미는 것은 어떤 일일까? 나이 스물 넘어 다 큰 어른이 된 나는, 두발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 어릴 적 자전거를 타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키가 미치지 못해 한쪽 다리를 꺾어 빗장처럼 지르고 쉴 새 없이 두 다리로 페달을 밟았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 손으로는 안장을 감싸고 한 손으로는 핸들을 움켜쥔다. 대롱대롱 매달려 가는 모습이 얼마나 우습게 보였을까 싶다. 결국 자전거에 대한 나의 기억은 바퀴 하나 떼어내지 못한 채 세발자전거에서 슬프게 끝이 나고 말았다.

 

밟는 대로 나갈 수 있는 자전거. 누군가 그 장점을 대라니 이렇게 얘기했다. “자전거는 이동에 제한이 덜하고, 속도제한이 없으며, 무면허 운전을 해도 잡아가지 않고, 아직은 음주운전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농이 반은 섞인 얘기지만 자전거가 얼마나 자유로운 탈것인지를 잘 나타내는 얘기인 것 같다.

 

날마다 단조롭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우리의 감각과 인식은 타성에 젖어 생생한 활력을 지니지 못한다. 일상은 감흥을 주지 못하고, 우리는 진정한 의미를 묻지 못한 채, 존재와 세계를 그저 지나쳐 간다.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이런 되풀이 속에서 삶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삶은 일상 속의 나만이 아니라, 일상 밖’ 감추어져 있는 나의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밖에 있는 나를 찾고 싶을 때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그래서 산악자전거 ‘풍륜’(風輪)과 자유롭게 동행하는 김훈의 여행이 부럽다. 그 여행은 자동차의 엔진에 몸을 편안하게 의탁하고 눈의 즐거움만 느끼는 우리네 여행과 크게 나뉜다. 풍륜은 도심 한복판을 달리지 않고 인간들의 냄새가 나는 골목을 찾아들지 않는다. 봄 들판이나 눈 덮인 겨울 산맥을 망망한 우주의 일엽편주처럼 넘어간다. 그럴 때 작가의 몸은 아무런 억압도 방어기제도 없는 순결한 몸이 된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몸은 세상의 길 위로 흘러나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과 길은 순결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결되는데, 몸과 길 사이에 엔진이 없는 것은 자전거의 축복이다. 그러므로 자전거는 몸이 확인할 수 없는 길을 가지 못하고, 몸이 갈 수 없는 길을 갈 수 없지만, 엔진이 갈 수 없는 모든 길을 간다. (‘프롤로그’ 중에서, 12쪽)

 

여행에서 작가의 몸과 풍륜은 거의 윤아일체(輪我一體)를 구축한다. 나아감과 멈춤을 반복한 끝에 몸과 길이 엔진을 매개하지 않은 순결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만났다. 그리하여 풍륜에 들러붙은 몸의 지체는 산천의 풍경을 절실하게 만끽하는 권리를 부여받는다.

 

김훈이 자전거를 예찬하는 핵심은 그 동력원이 바로 자신의 몸이라는 사실이다. 마치 초가 불에 타들어가 빛을 발하는 것처럼 자전거도 자기 몸을 연소시켜야만 나아갈 수 있는 물건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기 발로 걷는 것만큼이나 진솔하다.

 

말이나 여타 짐승을 타는 행위와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생각해보면 그런 간단한 기계장치로 아무런 추가 동력원 없이 하루에 최소 100km 이상 갈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물론 그 대가는 자동차의 속도를 포기하는 것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전거 여행의 장점은 바로 그 저속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풍경들이다. 그는 그런 길을 자신의 몸을 ‘갈아서’ 나아간다고 썼다. 자전거는 ‘빨리빨리’를 외쳐대며 삶의 속도를 올리는 세상에서 그가 유일하게 감당할 수 있는 탈 것이다. 몸의 연장(延長)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연필을 쥔 손을 움직여야만 원고지는 채워지는 것처럼 부지런히 페달을 굴려야만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여러 지역을 지나간 김훈은 이 땅에 내장된 역사와 사람살이의 흔적들을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문체로 사유했다. 남해안의 경작지에서 농부와 함께 들었던 이 흙의 노래가 어떤 과정을 통해 나오게 되는지를 다음과 같이 눈부시게 묘사한 문장은 십여 년이 지났는데도 막 방금 땅 위로 돋아난 새싹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땅 위의 눈을 녹인 초봄의 햇살은 흙 표면의 얼음을 겨우 녹이고 흙 속으로 스민다. 흙 속에서는, 얼음이 녹은 자리마다 개미집 같은 작은 구멍들이 열리고, 이 구멍마다 물기가 흐른다. 밤에는 기온이 떨어져서 이 물기는 다시 언다. 이때 얼음은 겨울처럼 꽝꽝 얼어붙지 않고, 가볍게 언다. 다음날 아침에 다시 햇살이 내리쬐어서 구멍마다 얼음은 녹는다. 물기는 얼고 녹기를 거듭하면서 흙 속의 작은 구멍들을 조금씩 넓혀간다. 넓어진 구멍들을 통해 햇볕은 조금 더 깊이 흙 속으로 스민다. 그렇게 해서, 봄의 흙은 헐거워지고, 헐거워진 흙은 부풀어 오른다. 해가 뜨기 전, 봄날의 새벽에 밭에 나가보면, 땅속에서 언 물기가 반짝이는 서리가 되어 새싹처럼 땅 위로 돋아나 있다. 이것이 봄 서리이다. 흙은 초겨울 서리에 굳어지고 봄 서리에 풀린다. 봄 서리는 초봄의 땅 위로 돋아나는 물의 싹이다. (23쪽)

 

 

 

경북 영주시 부석사로 가는 길에서 작가는 고단한 풍경을 마주한다. 일상의 뒤안길에 감춰진 삶의 단면을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다. 그는 자전거만이 발견할 수 있는 시각으로 이웃의 숨결을 기억한다. 고추 값이 정말 싸 품삯 댈 길 없어 고추를 거두지 못하던 차에 서리가 내렸다. “더 말라비틀어지면 걷어내서 군불이나 때야겠다”는 농부가 진 지게 짐은 농부 키보다 높다. 작가는 “지쳐서 쓰러지는 사람에게 기운 내라고 말하는 것이 도덕인지 부도덕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고 회상한다.

 

길 위의 만남은 가볍다. 작가가 본 농부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풍경의 일부에 불과하다. 아무리 따듯한 말을 공유해도 다시는 만나지 못할 인연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길 위의 만남은 밀도가 높다. 길 위의 사람들은 외롭고 사람이 그립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이이기 때문에 마음을 열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작가가 생각하는 삶의 영원한 본질인 아날로그에 가깝다. 사소한 만남은 특별한 만남으로 기록되는 문장이 되어 책을 통해 새롭고도 특별한 풍경이 된다.

 

작가는 자전거로 떠나는 여행을 ‘세상을 관찰하는 노동’이라고 했다. 자전거로 전국의 아름다운 산하를 눈에 담는 것도 좋지만 사람 사는 모습을 놓쳐서는 안 되며, 인간의 삶을 제대로 관찰할 때 완전한 여행이 된다는 의미다.

 

나날의 삶에 지칠 때, 살아 있음의 기쁨이 잘 느껴지지 않을 때, 나는 기꺼이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펼쳐 든다. 나는 풍륜만 보면 그 곳으로 가고 싶다. 꽃피는 해안선이 있는 여수 돌산도 향일암을 거쳐 '지옥 속의 낙원' 소쇄원 식영정을 지나 광주 망월동을 찾는다. 그리고 이름 없는 오지와 분교들도. 풍륜이 지나간 흔적은 땅의 풍경에 그 자체로 인간의 흔적이 된다. 그리그 그 흔적은 원고지 위의 문장이 된다. 이처럼 오늘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기록을 읽는 시간은 복 받은 것이다.

 

 

 




 
 
 

 

 


[서평 이벤트]

 1. 모집 기간: 10월 28일(화) ~ 11월 4일(화)

당첨자 발표 : 11월 5일(수)

서평단에 선정되신 분은 11월 9일(일)까지 개인정보를 비밀 댓글로 적어주세요!

11월 9일(일)까지 확인이 되지 않으면 선정이 자동 취소됩니다.

서평 기간 : 11월 12일(수)~11월 23일(일)


2. 인원: 5명 (최종 응모자 수에 따라, 추첨 인원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3. 참여 방법

- 응모 방법: 이 책을 읽고 싶은 이유와 스크랩 주소를 댓글로 남겨주세요.

- 서평 방법 : 서평 기간 동안 알라딘 계정으로 서평을 작성 후, 

<만물의 공식> 서평단 발표 포스팅에 알라딘 개인 블로그 및 그 외 블로그나 

외부 채널에 남기신 서평 링크를 댓글로 달아주셔야 완료됩니다.



 

알고리즘으로부터 삶의 통찰력을 얻어야 하는 시대,

만물의 공식은 어떻게 구성되고, 작동하며, 인간을 정의하는가?

 

 

 

인간이 알고리즘을 정의하는가, 알고리즘이 인간을 정의하는가?

 

세상이 숨 가쁘게 변화하고 있다. 얼마 전 SF 영화나 소설 속에서 본 것들이 어느새 눈앞의 현실로 나타난다. 손 안의 컴퓨터가 되어버린 스마트폰, 음성이나 안면 인식으로 오픈되는 출입문, 피 한 방울로 온갖 질병을 알아내는 시대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기억하는가? 2054년의 워싱턴을 배경으로,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이를 예언하는 선지자들에 의해 범죄를 막고 예비 범죄자에게 벌을 주는 범죄예방국 이야기다. 참으로 인상적이었던 이 영화는, 제목과는 달리 메이저급 히트를 쳤다. 영화가 개봉된 2002년 당시에는 미리 범죄를 예측한다는 것이 먼 미래의 이야기로만 생각되었다. 그러나 <만물의 공식>의 저자는 이것이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한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처럼 홍채와 얼굴을 인식해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며 친근하게 광고하는 세상이 멀지 않았다는 말이다.  

 

물론 영화에서와 같은 선지자는 없지만, 우리에게는 알고리즘이 있다. 알고리즘은 우리 주변 곳곳에 파고들어 있다. 흔히 알고 있는 인터넷 검색뿐 아니라 오락, 연애, 결혼, 이혼, 법률을 비롯해 영화, 음악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을 모두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알고리즘과 얽혀 있다. 곧 인간의 창조성과 정체성, 인간관계까지도 알고리즘이 규정할 날이 머지않았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측정한다 고로 존재한다

 

우리는 알고리즘을 단순히 수학과 기계의 문제로만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알고리즘은 어디에나 있고, 무엇이나 한다. 이를테면, 알고리즘을 통해 엄청난 양의 문서를 빠른 시간 내에, 훨씬 정확히, 값싼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다. 그래서 초급 변호사들이 하던 소송의 사전 심리 절차인 증거 개시를 이제는 알고리즘으로 해결한다. 2012년 애플 대 삼성의 특허 소송에서도 사람의 손이 아닌 알고리즘으로 문서를 처리했다. 리걸줌이라는 자동문서조합시스템은 유언장, 회사 정관 등을 헐값에 작성하게 해준다. 위보스라는 이혼 서비스는 이혼 절차를 좀 더 매끄럽게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술을 마신 사람이 운전을 하지 못하도록 감지하는 자동차가 개발되고, 구글에서는 무인 자동차를 개발하고 있다. 또한 알고리즘은 안면 인식 기술로 테러리스트를 가려내기도 하고, 의료 보험이나 식량 배급표의 혜택을 주기도 한다.

 

이런 생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예술에서도 알고리즘은 점점 인간의 창의성을 대신하고 있다. 에퍼고직스는 어느 영화가 성공을 거둘 것인지 분석해주고, 심지어 시나리오의 어느 부분을 보완하면 되는지 조언해준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구글 번역은 쓸 만한 수준이고 점점 나아지고 있다. 미술의 진품과 위작을 판별하는 자동미술비평 알고리즘도 개발 중이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이아모스라는 음악생성 알고리즘이 작곡한 음악을 연주했다.

 

그렇다면, 이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일까? 알고리즘이 모든 일을 대신할까?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알고리즘은 완벽하지 않다. 일률적인 법 적용은 규칙과 기준의 문제를 제시한다. 8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려서는 안 된다는 법을 규칙으로만 적용한다면, 도로나 운전자의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범칙금을 물릴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무인 자동차가 대신한다면, 아무리 급한 환자가 있어도 구급차는 8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릴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의료 보험을 적용하거나 식량 배급표를 배부할 때도 일률적인 규칙만 따른다면 수많은 예외 상황을 적용하기 어렵다. 알고리즘에 맞춘다면 점차 법률은 단순화되고 일률적으로 변해야 할 것이다.

 

예술의 문제는 좀 더 미묘하다. 과연 오리지널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닐 것인가?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하는 알고리즘이 듣기 편하고 보기 좋은 작품을 생산한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를 감동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 저자는 우리에게 판단을 맡긴다.

 

 

알고리즘의 미래,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알고리즘이 여전히 고전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특히 인간에 맞먹는 인공지능의 연구에서 알 수 있듯이, 자동화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럴 수 없는 일이 있다. 아직도 인간에게는 너무도 쉽고 당연한 것들은 어렵고, 어려운 것은 쉽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지능을 필요로 하는 일, 즉 의학적 진단이나 처방, 법률적인 조언은 인공지능이 뛰어난 부분도 있다. 그런데 오히려 교육 여부와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혹은 동물이라도 할 수 있는 일들, 이를테면 명암을 구별하든가, 혼잡한 지형을 통과하든가, 컵을 컵으로 인식하는 것은 아직도 인공지능에는 부족한 부분이다. 그렇다면 주식 분석가나 공학자, 가석방 심사위원은 알고리즘으로 대체될 수 있을지 몰라도 정원사나 요리사, 안내원 등은 대체될 수 없는 직업이 될 것이다.

 

물론 앞으로의 사회에서 알고리즘은 많은 일을 대신할 것이다. 알고리즘을 생성하는 컴퓨터과학자와 수학자는 법률을 결정하거나 문화적 결정권을 획득하게 될 것이다. 알고리즘이 인간보다 더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작업 공간에서는 아주 적은 수의 인간만이 노동하고 나머지는 모두 알고리즘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다. 알고리즘이 작업에 드는 비용을 낮추면서 일자리도 줄어들 것이다. 어쩌면 더 이상 인간은 노동하지 않고도 살 수 있을지 모른다. 반드시 자발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세상은 SF 소설이나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디스토피아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대규모의 구조조정을 겪게 될 것이다.

 

멜빈 크랜즈버그가 “기술은 좋지도, 나쁘지도, 중립적이지도 않다”고 말했듯이, 알고리즘은 좋지도, 나쁘지도, 중립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알고리즘을 설계한 이의 편견과 성향은 반드시 알고리즘에 반영된다. 그러므로 알고리즘이 적용되는 방식 또한 객관적일 수는 없다. 물론 알고리즘이 가치 판단을 내리지는 않지만 말이다. 문제는 알고리즘이 미치는 영향력이 무척이나 광대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알고리즘은 너무 복잡해서 사실 이를 만들어낸 엔지니어조차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이해하지 못하는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이는 세상에서 윤리적, 성찰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알고리즘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인간을 분석하고 분류하려 드는 알고리즘의 시도를 방해하거나 끊어내는 전술을 개발한다. 그러려면 현대의 가장 귀중한 수단을 포기하고 공적 담론에서 소외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굳이 그런 불편을 감수하기보다는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불투명성 문제에 집중하고, 만물의 공식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 우리의 인간다움을, 인간성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일 수 있겠다.

 

 

 

 

지은이와 옮긴이

 

지은이 루크 도멜

 

컬럼리스트이자 영화 제작자이다. 《애플 혁명》을 썼다. 〈패스트 컴퍼니〉, 〈더 챕〉, 〈컬러오브맥〉 등의 잡지에 글을 싣고 있다. 대중문화와 과학의 접목에 관심이 많으며 다양한 세상문제를 예리한 저널리스트의 눈과 학자적인 풍성함으로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게 펼쳐내,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언 매캘런과 알랭 드 보통을 비롯한 출판계․방송계 인사들과 수많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여러 편 감독하기도 했다.

 

옮긴이 노승영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 인지과학협동과정을 수료했다. 컴퓨터 회사에서 번역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환경 단체에서 일했다. ‘내가 깨끗해질수록 세상이 더러워진다’고 생각한다. 옮긴 책으로 《측정의 역사》, 《통증 연대기》, 《동물과 인간이 공존해야 하는 합당한 이유들》, 《흙을 살리는 자연의 위대한 생명들》, 《이단의 경제학》, 《게놈의 기적》 등이 있다. 직접 ‘만물의 공식’ (http://socoop.net/TheFormula)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독자와 소통하고자 한다.

 

 



 
 
 

 

 

 

 

 

 

 

 

요즘 헌책방이나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면 황금가지 출판사의 ‘환상문학전집’ 시리즈를 구입한다. 2002년에 환상문학전집 첫 번째 책인 E.T.A. 호프만의 『악마의 묘약』을 시작으로 고딕문학에서 현대 SF까지 총 40여 권 이상의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하지만 초창기에 나온 시리즈 일부는 절판되어 헌책방에서도 구하기가 쉽지 않은 희귀본이라서 온라인 중고서점에 정가보다 엄청 높은 가격으로 책정되고 있다. 정말 그 책을 읽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거금을 지르는 결단력을 내리기도 있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고작 책 한 권으로 터무니없는 가격을 지불하는 것은 어리석은 판단이다. 그래서 아주 싼 가격에 책을 구입하게 되면 정말 운이 좋은 것이다. 이런 걸 요즘 유행하는 말로 표현하면 ‘개이득’이다.

 

 

 

 

 

 

 

 

 

 

 

 

 

 

 

 

 

 

(※ 왼쪽은 1998년에 나온 구판) 

 

 

 

환상문학전집 세 번째 작품 에드거 앨런 포의 『아서 고든 핌의 모험』은 올해 구입한 책들 중에서 운이 많이 따라줬다. 두 달 전에 포의 단편 전집을 읽고 있을 때 알라딘 대구점에서 구입했다.

 

『아서 고든 핌의 모험』(줄여서 ‘아서 고든 핌’)은 1838년에 발표한 포의 장편소설이다. 단편소설과 시를 많이 남긴 작가의 이력이 장편소설의 가치를 가리고 있지만, 단편소설에서 보여준 괴이한 공포 분위기와 그 속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인물의 심리 묘사는 장편소설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간략한 작가 이력 소개에 보면 『아서 고든 핌』을 포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라고 썼는데 이는 잘못된 내용이다.*1) 1840년에 포는 『The Journal of Julius Rodman』라는 잡지에 연재되는 모험소설을 썼기 때문이다. 『The Journal of Julius Rodman』은 1792년에 처음으로 로키 산맥을 넘어 미국 서부 황야 지역을 탐험한 Julius Rodman의 일기를 소설로 재구성한 내용이다. 이 작품은 미완성으로 남게 되어 오랫동안 잊히고 있었다가 1947년에 재출간되어 빛을 보게 되었다.

 

 

 

 

 

 

 

 

 

 

 

 

 

 

 

『아서 고든 핌』은 환상소설의 특성을 가미한 모험소설이다. 1830~1840년대 모험소설은 독자들로 하여금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도전 정신을 고취시키는 통속적인 내용이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포의 『아서 고든 핌』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 공포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남극으로 가는 긴 바닷길을 장시간 항해를 하면서 겪게 되는 불의의 재난 사고와 이성이 말살되는 끔찍한 살육 현장은 여행의 긍정적 호기심과 도전 정신에 감춰진 어두운 단면이다. 특히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파괴하는 거대한 폭풍과 파도 앞에서 두려워하는 핌의 심리는 『아서 고든 핌』발표 3년 후에 나온 단편 ‘소용돌이 속으로 떨어지다’를 예고한다. 이 작품에 포는 무시무시한 소용돌이 파도의 위력을 묘사했다. 

 

여기에 『아서 고든 핌』의 간략한 줄거리를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알라딘 책 소개에 아주 친절하게도 줄거리가 요약되어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아서 고든 핌과 나머지 생존한 동료들이 바다 한가운데서 만나는 공포의 난파선이다. 어렸을 때 아동도서에서 많이 나오는 미스터리 에피소드인 ‘유령선’ 이야기가 생각나는 장면이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독자가 가장 몰입하게 되는 장면이 바로 ‘죽음의 제비뽑기’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핌과 동료들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자 제비뽑기로 ‘음식’이 될 희생자를 정하게 된다. 이 잔인한 장면은 비록 4쪽에 불과하지만 생존의 한계에 부닥치는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광기를 강렬하게 보여준다.

 

어렸을 때 아동용으로 만들어진 미스터리 모음집을 즐겨 본 사람이라면 『아서 고든 핌』의 ‘죽음의 제비뽑기’ 장면을 떠올리는 실제 사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1884년에 영국의 미뇨넷 호라는 배가 희망봉 앞바다에서 난파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때 살아남은 선원은 단 4명. 이들은 작은 구명보트에 탑승한 채 열흘 이상 표류하게 된다. 하루하루 구조를 기다리지만, 점점 식수와 비상식량이 줄어들고 있었다. 구조선을 만나지 못하면 4명의 선원들도 굶어죽게 될 판이었다. 어느 날, 가장 나이가 어린 선원이 병에 걸려 몸이 약해지자 선장인 더들리는 나머지 두 명의 선원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바로 제비뽑기를 해서 한 사람을 희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 명의 선원은 선장의 제안을 거절한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어찌 동료를 죽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선장 더들리는 자신의 제안을 동의한 선원과 함께 어린 선원을 살해하고 그의 인육을 먹게 된다. 표류 24일 만에 더들리 선장과 두 명의 선원은 구조되었으나 영국으로 귀국한 후 그들은 계획된 살인이라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그 후에 미뇨넷 호의 생존자들은 특사에 의해 6개월 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생존자들은 단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극단적인 선택이라고 항변했으나 그 당시로서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생존을 위해 인육을 먹은 것이 죄가 되는지 논란이 되었다. 하지만 미뇨넷 호 사건이 흥미로운 화제가 된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서 고든 핌』에 나오는 ‘죽음의 제비뽑기’ 내용과 아주 흡사한 점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미뇨넷 호에 희생된 어린 선원의 이름이 소설 속에서 희생된 인물의 이름과 같다는 것이다.*2)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면 소설은 제비뽑기에 걸린 선원이 살해되었고, 미뇨넷 호 사건의 경우는 제비뽑기 제안이 거부당하자 병이 들어 생존할 가능성이 희박한 선원을 살해했다. 단지 희생자의 이름이 같다는 우연한 사실에 지금까지도 포의 소설과 미뇨넷 호 사건의 연관성에 주목하고 있다. 미뇨넷 호의 생존자들은 여태까지 『아서 고든 핌』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으며, 포가 누군지도 몰랐다고 한다.*3)

 

『아서 고든 핌』의 초반부는 갑판 밑 창고에 숨은 핌이 밀실 공포와 악몽에 시달리고, 배가 난파되어 표류되는 상황을 그렸다면, 후반부는 영국 리버풀의 제인 가이 호에 구출되어 살랄 섬이라는 신비스러운 곳에서 겪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살람 섬에 대한 묘사는 이 소설에서 포의 상상력이 가장 돋보이는 내용이다. 핌은 살랄 섬 해안 부근에 정체불명의 육지 동물의 시체를 발견하고, 여러 가지 빛깔을 띠는 특이한 물을 신기하게 여긴다. 이에 대한 묘사는 문학작품 속 환상적인 장면을 모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상상 동물 이야기』(까치, 1994년-절판)에도 소개되고 있다.

 

 

 

 

우리는 또한 호손 나무처럼 붉은 열매가 달린 관목도 건져 올렸으며, 이상하게 생긴 육지 동물의 시체도 건져 올렸다. 길이는 90센티미터였지만 키는 180센티미터였고, 아주 짧은 네 다리가 있었는데, 발은 산호같이 선명한 진홍빛이었다. 몸은 곧고 순백색의 비단 같은 털에 덮여 있었다. 꼬리는 쥐처럼 서 있었고 45센티미터 정도였다. 머리는 귀를 제외하고는 고양이를 닮았는데, 귀는 마치 개의 귀처럼 꺾여 있었다. 그리고 이빨은 발과 마찬가지로 선명한 진홍빛이었다. (『아서 고든 핌의 모험』 중에서, 175쪽)

 

 

『아서 고든 핌』의 결말은 이야기가 도중에 끊겨버리는 것처럼 급작스럽게 끝나버리고 만다(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포다운 결말이다. 포는 결말마저도 수수께끼를 남겨두었다. 이러한 방식은 주인공이 미지를 개척하는데 성공하게 된다는 기존의 모험소설 결론과 차별화되는 시도이다. 포가 어떤 수수께끼를 남겨두었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직접 읽어볼 것을 권한다.

 

포의 수수께끼 결말은 수많은 모험소설을 써서 유명해진 쥘 베른(1828~1905)을 매혹시켰다. 포에 의해 사라진『아서 고든 핌』의 결말을 상상하여 ‘빙원의 스핑크스’라는 제목의 속편을 썼다. ‘빙원의 스핑크스’는 황금가지에 나온 『아서 고든 핌』에 수록되었다. 황금가지 판본이 희귀본이 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장편을 주로 쓴 베른의 짧은 이야기라는 점 그리고 다른 책에서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다.

 

 

 

 

 

황금가지판『아서 고든 핌』이 다시 서점에 등장할 확률은 희박하지만, 혜원출판사 세계문학전집 21번째 책인 『검은 고양이』에 ‘아서 고든 빔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왜 ‘핌’ 아닌 ‘빔’이라고 표기했을까? 원어명은 ‘Pym’이기 때문에 ‘핌’이라고 해야 한다.

 

 

 

 

*1) 한국판 위키피디아의 ‘에드거 앨런 포’ 항목에 나오는 작품 목록에 보면 ‘The Unparalleled Adventures of One Hans Pfall’를 장편소설로 소개하고 있다. 우리말로 옮기면 ‘한스 팔의 환상 여행’이다. 『우울과 몽상』에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의 분량은 50쪽도 채 되지 않는다. ‘장편’이라기보다는 ‘중편’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2) 『아서 고든 핌』의 ‘죽음의 제비뽑기’에서 희생된 인물 그리고 미뇨넷 호에 희생된 실제 인물의 이름을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다. 만약에 이름을 언급했다면 책을 읽지 않은 독자에게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3) 이지성의 『꿈꾸는 다락방』1권 서문에 『아서 고든 핌』의 ‘죽음의 제비뽑기’와 미뇨넷 호 사건에 관한 미스터리 에피소드가 언급된다. 저자는 꿈을 글로 기록해서 시각화하면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기 위한 사례로 이 미스터리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서 “포가 미래의 어떤 사건을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바라보듯 생생하게 꿈꾸면서 그것을 글로 적었다”(9쪽)라고 썼다.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인용하는 것은 좋으나, 사실인 것처럼 쓴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소설 속 장면과 미뇨넷 호 사건에서 어느 부분 일치한 점은 있지만, 그것은 그저 우연에 불과할 수도 있다. 포라는 인물 자체가 특이한 기행(奇行)에, 시대를 앞서가는 상상력을 구사하는 위대한 작가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포가 마치 미래에 일어날 일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예언하듯이 소설을 썼다는 저자의 주장은 과장에 가깝다. 그리고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소설 속 희생자와 미뇨넷 호의 희생자의 이름만 같을 뿐이지 살해되는 과정은 다르다. 이지성은 미뇨넷 호의 희생자가 소설의 내용처럼 제비뽑기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썼는데 이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다. 심지어 소설 제목도 ‘아서 고든 빔’으로 잘못 썼다.

 

 

 

 



 
 
 
젊은 장인, 몸으로 부딪쳐! - 열혈 청춘을 위한 진로 이야기
강상균.조상범 지음 / 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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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자신에게 자기 인생을 건 젊은 장인들

 

‘물건 만드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 장인(匠人)의 사전적 의미다. 이처럼 사전에는 딱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 사전적인 의미와는 달리 우리들에겐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동안 내공을 가지고 묵묵히 일하는 존경 받을 만한 사람들에게 붙는 영예스런 칭호다. 보통 ‘장인’의 칭호는 나이 지긋한 분들이 많지만 2, 30대도 ‘장인’으로 불릴 만한 사람들을 찾을 수 있다. 남들과 차별되는 아이디어와 도전하는 정신으로 무장한 젊은 장인들이 있다.

 

『젊은 장인, 몸으로 부딪쳐!』(줄여서 ‘젋은 장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젊음을 불태우는 열혈 청춘 장인 6명의 인생 스토리를 담았다. 방송사를 그만두고 유럽여행을 하다가 수제노트의 매력에 푹 빠져 수제노트 1인 기업 복면사과노트컴퍼니를 설립한 김영조 대표, 파스타를 파는 포장마차로 이름을 알리고 지금은 건대 근처 심야식당으로 유명해진 ‘소년상회’의 채낙영 셰프, 국내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손으로 만드는 자전거’ 장인 김두범, 최연소 장제사(裝蹄師, 말의 편자를 만들고 발굽에 부착하는 사람) 윤신상 & 장원, 최연소로 대목수 시험을 합격한 김승직 대목수. 이들은 일상의 궤도를 벗어나면서 자신의 열정을 바칠 수 있는 대상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 순간 엄청난 노력가로 변신했다. 타자가 아닌 자신에게 자기 인생을 걸었다. 평탄치 않은 삶 속에서 자신의 열정을 진정 하고 싶은 일에 바쳤다.

 

 

 

 Scene #2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진로 이야기  

 

 

 

 

 

 

『젊은 장인』속 이야기는 2005년에 나온 일본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의 『청춘표류』(예문, 품절)를 떠오르게 한다. 『청춘표류』는 다치바나 다카시가 11명의 젊은이를 만나 인터뷰를 나누고 쓴 책이다. 원숭이 조련사, 산속에서 매를 부려 사냥하는 수할치, 레코딩 엔지니어, 나이프 제작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젊은이들이 등장한다.

 

다치바나 다사키는 자신의 꿈을 쫓아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 선배다운 충고를 한다. 자신 있게, 그리고 대담하게 살라고. 인생에서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는 시기는 그리 길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몸은 청춘이면서도 정신은 '노인'이 되어버린 청년들을 따갑게 질책한다.

 

반면, 『젊은 장인』은 젊은 독자들을 향해 훈계하는 책이 아니다. 그렇다고 방황하는 청춘을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우는 달콤한 사탕 같은 책도 아니다. 『젊은 장인』의 공동 저자는 뻔한 진로희망을 위해 취업 준비하는 청춘들에게 또 다른 인생의 진로가 있음을 보여준다. 단순히 독자에게 청년 장인들의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독자가 직접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인터뷰 픽션’이라는 생소한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6명의 청년 장인들과의 인터뷰를 소설의 전개 방식으로 변형시켜 한 편의 이야기를 보는 느낌이 든다. 한창 진로에 고민을 많이 하게 될 고등학생 3학년 수험생인 주인공 민우는 6명의 청년 장인들을 만나 진짜 꿈에 대한 의미를 찾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청년 장인들이 걷는 길에 흥미가 있는 도전적인 독자를 위해 직업 관련 정보도 소개하고 있다. 책 제목처럼 새로운 진로에 흥미를 느낀 독자들이 장인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 직접 몸으로 부딪힐 수 있게 도와준다. 이처럼 『젊은 장인』은 민우와 같은 고등학생 독자에게 유용한 교육 도서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경력이 있는 스토리텔링 전문가와 <타짜, 신의 손> 시나리오 작가가 의기투합하여 만든 재미있는 진로 이야기다. 

 

 

 

 Scene #3  내가 걷고 있는 길이 진짜 '진로'(進路)일까, '험로'(險路)일까? 

 

진로를 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진로는 곧 어른이 되기 위한 어려운 관문을 지나가기 위한 길이기도 하다. 진로라는 길은 혼자 가기에 순탄하지 않다. 도전의 패기가 넘치는 청년이 창업하겠다면 “대기업 취업이나 해라”고 핀잔을 듣는다. 가족부터 한사코 뜯어말린다. 가족은 자식이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는 것을 원한다. 그럴싸한 아이디어를 내도 사회에서 푸대접을 받기 일쑤다. 정부는 “창업이 창조경제의 핵심”이라고 강조했지만, 한편에선 창업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은 부실한 보상체계와 지원 탓이 크다. 실패에 대한 부담이 큰데도 그에 따른 사회의 평가와 대가는 형편없다는 인식에 기반을 둔다. 이렇다보니 창업의 ‘도전’이 사라지고 있다.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은 실업의 공포에 떨며 안정된 직장을 붙잡는데 사활을 건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승부해야할 젊은이들이 너나없이 공무원 임용과 대기업 취업에만 목을 매는 사회는 미래가 어두워진다.

 

우리 청년들은 꿈을 잃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당연하면서도 쉬운 생각임에도 우리는 어렵고 무모한 도전으로 치부한다. 우리는 ‘취업진로’라는 길에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렸다. 조금만 더 주위를 돌아보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이 있는데도 차마 그 쪽으로 발을 내딛는 것을 꺼려한다.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내가 가고 있는 ‘취업진로’를 향해 직진만 할 뿐이다. 벌써부터 자신에게 찾아오지 않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내가 서 있는 이 길이 ‘진로’(進路)가 맞는지 고민해야 한다. 고민도 없이 남들이 가고 있는 ‘진로’를 따라 간다면 내가 원하는 직업이라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까? 똑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아 지나갈 틈이 없다. 시간만 허비하고 발전은 더디게 된다. 어른들은 이것을 미래를 위한 성장통이라고 위로를 하지만, 그것이 우리 인생을 더 방황하게 만드는 험로(險路)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취업진로’를 지나가고 있는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젊은 자전거 장인 김두범은 청년들이 선택하는 진로가 진짜 좋아하는 길인지 아니면 험난한 길인지 스스로 고민해보라고 조언한다.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면 그것이 올바른 길인지 고민이 시작될 거야. 그게 중요해. 그냥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건 무책임할 수 있거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 버는 게 즐거울 수도 있어.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며 부자가 되는 게 바람직한 일일까? 언제낙 자신도 당할 수 있는데? 결국 옳은 일을 하지 못하면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모두 무의미해지는 거야. 남들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 그 길을 맞지 않는다고 얘기하고 싸우고 흔들어 깨울 수 있어야 해. 그러니까 내가 그런 길을 가고 있는지 항상 자신을 돌아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지.” (124~125쪽)

 

누군가는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고 말한다. 이미 세상을 발을 내딛는 어른도 아이처럼 늘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다 흔들리기 때문에 도망치거나 망설이거나 휘둘리지 말고 정확하게 바라본 뒤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라고 한다. 그렇지만 어른의 진동은 자연스럽게 생각하면서도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아닌지 스스로 흔들려고 하지 않는다. 자전거 장인의 말처럼 자신을 솔직하게 돌아본 뒤에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어떻게든 붙잡고 흔들어야 한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길을 걷는 나를 대담하게 한 번이라도 제대로 흔들어야 좋은 직업을 가진 어른이 될 수 있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을 확실하게 정했다면 이제 두려움 없이 직진하면 된다. 실패를 미리 겁먹을 필요 없다. 도전에는 실패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실패를 영원한 실패로 치부하면 낭비다. 실패 경험은 미래 성공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다. 실패한 이도 지원을 받을 기회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우리 사회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라고 수없이 강조하지만, 실패를 성공을 위한 경험의 밑거름으로 보지 않는다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싹 틔우기가 어려운 황무지로 남을 것이다. 실패해도 자유롭게 다시 도전해 성공을 꿈꿀 수 있다. 실패를 통해 얻는 노동의 가치는 소중한 발전을 위한 자산이 될 뿐만이 아니라 훗날 1인 창업을 위해 도전하는 청년들을 위해 길을 밝혀주는 빛나는 자산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