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삶, 그의 행운과 불운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작자 미상, 최낙원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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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10]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삶. 그의 행운과 불운

(※ 국내 번역본 표기는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생애’)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은 너무 배가 고파서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감옥에 갇힌다. 그는 당장 굶어 죽을 지경이 되어서 도둑질을 한 것이었기 때문에 죗값을 치러야 했다. 가석방된 첫날 밤 장발장은 어느 신부의 집에 묵는다. 밤중에 그 집에서 은그릇을 훔쳐 달아난다. 형사 자베르에게 잡혀 교회에 끌려왔을 때 신부는 “내가 은촛대까지 주었는데 왜 은그릇만 가지고 갔느냐?”고 반문했다. 장발장은 신부의 말에 감동해 회개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다.

 

빵 하나를 훔친 죄로 결국 19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장발장의 세상에 대한 분노는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굶주림은 사람의 인격을 비참하게 망가뜨린다. 훔친 행위는 부도덕이지만, 굶주림 때문에 도둑질한 것은 생존을 위한 유일한 자구책으로 볼 수 있다. 벽초 홍명희가 처음으로 《레 미제라블》을 소개하면서 제목을 ‘너, 참 불쌍타’로 지었다. 장발장은 빵을 훔친 절도범이지만, 프랑스 혁명 직후의 혼란기에 사회 밑바닥에서 몸부림치는 비참한 인물이다.

 

 

 

 

 

사실 장발장이 나오기 아주 오래 전에 굶주림을 못 이겨 부도덕한 행동을 일삼은 또 한 사람이 있다. 1554년 스페인에 발간된 작자 미상의 피카레스크 소설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Lazarillo de Tormes)》의 주인공 라사로다.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는 라사로의 실명. 라사로는 애칭) 피카레스크 소설은 16~17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기법으로 불량배나 건달 같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당대 사회상을 예리하게 비판한다. 라사로는 하층 계급 집안에 태어난 소년이다. 어린 나이에 벌써 손버릇이 나빠 도둑질을 하기 시작한다. 라자로의 부모는 빈곤한 형편 탓에 아들을 먹여 살리기 힘들었고, 소년은 장님의 보호 하에 생활하게 된다.

 

그런데 이 장님은 사기꾼이었다. 사람을 속이면서 돈을 구걸하고, 모은 돈으로 마련한 기름진 음식과 감미로운 포도주를 자기 혼자만 즐긴다. 지독한 구두쇠라서 라사로에게 자신이 먹는 음식의 반도 되지 않은 양을 준다. 그래서 장님이 먹고 마시는 것들을 맛보려고 속임수를 꾸민다.

 

 

 

 

 

 

두 눈이 보이지 않은 장님의 약점을 이용, 포도주가 담긴 항아리에 빨대를 대고 마신다. 하지만 장님은 라사로의 수법을 알아챘는지 손으로 항아리를 감싸 안아 자신의 품속으로 밀착시킨 채 포도주를 마신다. 라사로는 항아리 밑바닥에 빨대가 관통할 수 있는 크기의 구멍을 뚫어놓는다. 그는 구멍에 새어 나오는 포도주를 마시지만, 속임수는 금방 탄로 나고 만다. 단단히 화가 난 장님은 라사로의 얼굴 정면에 항아리를 힘껏 던질 정도로 가혹하게 혼을 낸다.

 

 

 

 

 

라사로는 더 이상 인성이 최악인 장님과 함께 살 수 없어서 혼자서 살아가기로 한다. 그는 자신을 괴롭힌 장님에게 통쾌한 복수를 날리는 심정으로 골탕 먹이고 달아난다. 그 이후로 라사로는 신부, 수도사, 면죄부를 판매하는 포교사, 화가 등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지만, 그가 처한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라사로가 장님을 버리고 떠난 후에 만난 신부는 장님보다 사악한 인물이었다. 기독교의 일곱 가지 죄악 중 하나가 탐식이다. 그런데 이 신부란 놈은 본인 입으로 탐식이 나쁘다고 말하면서도 매일 점심과 저녁에 고기만 먹는다. 심지어 장님처럼 라사로에게 고기 한 점도 주지 않는다. 라사로가 네 번째로 만난 수도사는 수도원 일에 관심 없고, 그저 세속적인 욕망을 추구한다. 면죄부 포교사는 면죄부 판매의 악습을 버리지 못한 구시대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면죄부 판매 행위를 ‘신의 뜻’으로 포장했고, 면죄부를 사들인 사람들은 포교사의 속임수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라사로는 비열하고, 부도덕한 수단을 동원하면서 살아가는 나쁜 놈들을 관찰하면서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이 작품에서 기독교 성직자들은 종교적 윤리를 지키지 않는 위선적인 인물로 등장하는데, 이것이 문제가 되어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가 금서 도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는 오로지 선한 방법으로 현실을 극복하는 영웅의 눈부신 활약을 그리지 않는다. 라사로는 보잘것없는 주인공이다. 게다가 장발장처럼 생존을 위해 비도덕적인 행동을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이 현실을 마주보고 인식하는 계기와 과정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장발장은 신부의 자비심으로 선악에 눈을 뜨면서 점차 순화되지만, 라사로는 자신보다 더 나쁜 놈들을 만나면서 이기주의가 만연한 현실의 냉정한 이면을 두 눈으로 확인한다. 그러면서 궁핍한 상황을 타개하는 자신만의 생존력을 터득한다.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를 읽은 독자들은 주인공이 장님을 속이고, 골탕 먹이는 행동을 비난하지 못한다. 라사로는 굶주림의 고통이 근본적인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독자들은 안다. 배고픔은 우리의 몸이 생존을 위해 보내는 신호라는 것을. 라사로보다 ‘더 나쁜 놈’인 장님이 주인공의 복수에 당하는 장면은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특히 ‘가장 나쁜 놈’인 성직자들을 비판하는 내용은 추락한 종교의 권위를 희화화한다. 라사로는 종교의 힘에 벗어나 현세를 중시하는 민중들의 정신이 반영된 ‘나쁜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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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6-09-26 1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반데니소비치,수용소의 하루에도 아침과 점심 각10분, 저녁5분,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유일한 목적이다~란 글이 있어요
굶주림은 인간을 가장 초라하게 만드는
천형의 하나임을 공감합니다.

cyrus 2016-09-27 12:25   좋아요 0 | URL
`배고픔`을 주제에 대한 글을 쓰기 전에 솔제니친의 노잼 소설을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yureka01 2016-09-26 17: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더더더 나쁜 놈들이 가식적인 놈들이죠..앞에서는 좋은 말 늘어 놓다가 뒤로는 온통 굳은 일저지르는 이중성이거든요..

cyrus 2016-09-27 12:26   좋아요 1 | URL
서울 한폭판에 있는 국회 닭장 속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나쁘죠.

아무 2016-09-26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명희 선생이 제목을 그렇게 지었다는 건 처음 알았네요 ㅎㅎ
왜 최고의 명장면인지는 그림만 봐도 알 것 같습니다..^^

cyrus 2016-09-27 12:29   좋아요 0 | URL
십 년 전에 스펀지에서 레 미제라블 번역명에 관한 에피소드를 소개한 방송을 봤어요. ^^

transient-guest 2016-09-27 0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사로..`가 한국어 번역본이 있네요. 전 98-99년엔가 3학기 분량의 유럽지성사를 들으면서 읽었어요. 마지막에 장님거지한테 한 방 먹이는 장면의 묘사가 압권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ㅎ

cyrus 2016-09-27 12:30   좋아요 1 | URL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알고 계시는군요. 이런 순간이 제일 기쁩니다. ㅎㅎㅎ
 

 

 

어제 저는 에드거 앨런 포의 시에 대한 페이퍼를 작성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9월 초에 작성된 에이바님의 두 편의 글 때문이었습니다.

 

 

* [에드거 앨런 포와 사랑의 시] http://blog.aladin.co.kr/769383179/8754783

(에이바님 작성)

 

* [에드거 앨런 포의 울랄룸] http://blog.aladin.co.kr/769383179/8751546

(에이바님 작성)

 

* [아프로디테님이 보고계서]

 http://blog.aladin.co.kr/haesung/8785364

(cyrus 작성, 오늘 오전 9시 30분에 내용 일부를 삭제했음)

 

 

※ 에이바님과의 약속대로 문제의 내용만 삭제했습니다. 삭제한 내용이 궁금하시면 에이바님의 [cyrus님께]를 보면 됩니다.

 

 

저는 [에드거 앨런 포의 울랄룸]과 [에드거 앨런 포와 사랑의 시]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에이바님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포의 시를 잘 소개해주셨고, 가독성이 좋았습니다. <율랄리>와 <울랄룸>에 ‘아슈타르테’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저는 그 단어를 보는 순간, 문득 잊고 있었던 것이 떠올렸습니다. 포의 소설에 ‘아슈타르테’가 있는 문장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머릿속에 스친 거죠. 그래서 저는 댓글로 이 사실을 밝혔고, 제 생각이 맞는지 확인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도서관에 가서 이미 읽었던 포 소설 전집들을 다시 봤습니다. 또 포의 시집도 읽었습니다. 에이바님이 소개한 아티초크 출판사의 시집도 보고 싶었는데, 제가 다니는 도서관에는 없었습니다. 아무튼 포 소설 전집들을 확인한 끝에, <리지아>라는 작품에 제가 생각했던 것과 조금 비슷한 단어가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아슈토펫’이었죠. 저는 이 사실을 에이바님에게 알리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글이 어제 작성한 [아프로디테님이 보고계셔]입니다.

 

만약에 [에드거 앨런 포와 사랑의 시]와 [에드거 앨런 포의 울랄룸]을 보지 못했다면, 포와 관련된 글을 쓰지 않았을 겁니다. 에이바님이 쓴 두 편의 글이 저에게 영감을 준 것이죠. 그래서 제 글일 에이바님의 글을 일차적으로 참고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어서 에이바님의 서재 글과 ‘먼댓글 연결’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에이바님의 서재 글이 먼댓글 작성을 비활성화 상태로 설정해서 먼댓글 전송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맨 처음 글에 에이바님의 두 편의 글 링크 주소를 올렸습니다.

 

여기서부터 제 행동이 문제의 화근이 되었습니다. 제가 에이바님의 링크 주소를 연결하고, <리지아>에 대한 내용을 썼으면 아무 문제없었습니다. 그런데 글의 분량이 빈약하게 느껴져서 아슈타르테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아슈타르테가 누군지 자세하게 알고 싶어서 평소에 읽지도 않을 바빌로니아 신화 관련 서적을 참고했습니다. 도서관에 여러 책을 살펴보면서 부활절의 유래에 관한 내용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찾아보니까 에이바님이 기록한 글의 내용이 전부 맞았습니다. 저는 <율랄리>와 <울랄룸>의 아슈타르테와 프시케를 해석한 내용까지 썼습니다. 이 내용 또한 에이바님의 글에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제 글의 내용과 전개 방식이 에이바님의 글과 유사해졌습니다.

 

저는 에이바님의 글 링크 주소만 올리면 에이바님의 글을 참고했음을 밝힌거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게 심각한 문제가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 에이바님의 글을 보고 나서야 제 글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상대방의 글을 참고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링크 주소만 올리면 내용이 조금 비슷해도 문제가 없다고 본 거죠. 제가 안일하게 생각했습니다. 제 글이 에이바님의 글과 유사한 점이 있는데도 에이바님의 글에 참고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아슈타르테에 대한 소개와 <율랄리>와 <울랄룸>의 아슈타르테와 프시케를 해석한 내용 모두 에이바님의 글에서 참고한 사실을 밝혔어야 했습니다.

 

저는 이번 상황이 처음이라서 나름 신중하게 대응하려고 노력했지만, 에이바님에게 더 큰 실망감만 안겨줬습니다. 에이바님의 문제 제기를 인정했으면, 문제가 있는 내용을 삭제하고, 공개 사과문을 올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뒤늦게 사과문을 올리고 말았습니다. 다시 한 번 에이바님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번 일을 통해서 제 행동을 반성했습니다. 앞으로는 친한 이웃이 쓴 글이라도 참고한 사실을 좀 더 상세하게 알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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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4 18:22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4 18:42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4 18:54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9-24 18:54   좋아요 1 | URL
네, 저는 상대방의 글 링크 주소만 올리면 ‘상대방의 글을 참고했음을 밝힙니다’라는 의미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에이바님은 제 글이 본인 글과 무척 비슷하게 느꼈고, 참고를 밝힌 내용이 명확하게 언급되지 않아서 실망했던 것입니다. 에이바님은 정말 정성을 들여가면서 리뷰를 쓰시는 분입니다. 그런 분의 정성을 알면서도 제가 너무 성의 없게 링크 주소만 올렸습니다. 제가 일차적으로 잘못한 게 맞습니다.

이 문제는 저와 에이바님 둘 만의 문제이기 때문에 제가 잘못을 먼지 인정했더라면 심각한 분위기로 확대되지 않았을 겁니다. 정말 잘 참으셨습니다.

2016-09-24 18:58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9-24 19:03   좋아요 1 | URL
제가 요즘 매일 글을 쓰려는 생각에 취해서 기본적인 예의를 잊어버렸습니다. 이번 일로 제 행동을 되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 문제가 시끄럽게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yamoo 2016-09-24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에이바 님의 주관적 인상이 너무 강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본적 생각을 차용해 글을 써서 그 구조가 비슷해 졌더라도 사이러스님이 참고한 책 내용이 이미 에이바 님이 말한 것 속에 있었다면 그것 에이바 님도 그 책을 보았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 걸로 일일히 사과하면 유사성에 대한 글들 모두가 문제됩니다.

도대체 뭐가 사과를 해야 하는지 저는 도통 모르겠네요. 답답합니다. 에이바 님이 인용을 요구했다는 건 에이바 님 페이퍼를 보면 아는 사실인데요...인용 여부를 문제 삼고 사과를 요구하는 건 표절에 대한 항의 입니다. 인용 여부가 왜 문제가 되겠습니까? 표절 시비 때문에 그런 거 아닙니까? 인용표시 하고 글을 지우고 사과하라는 생각의 이면에는 내 생각을 표절했다는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그래서 사과하라는 것이죠.

유사성 만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 것두 어떤 생각의 단초인데 말이죠. 저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이 유사성에 대한 사과는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유사성 만으로 인용을 해야 하고 사과를 해야하다니!

cyrus 2016-09-24 19:49   좋아요 0 | URL
제가 오늘 처음 에이바님의 글을 보고, 당황한 마음이 앞섰습니다. 에이바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다분히 주관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에이바님이 언급한 `유사성`이 표절로 동의한 의미로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에이바님의 두 번째 댓글을 보면서 제가 잘못 생각했다는 걸 알았어요. 에이바님은 제 글이 표절했다는 전제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저한테도 밝혔고요.

오늘 일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갈등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서로 간에 마음의 앙금만 생깁니다.

Agalma 2016-09-25 07:2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포의 저주인가요ㅜㅜ.... 포 때문에 에이바님 힘들게 했던 예전 제 일도 다시 봐야 해서 괴로웠습니다.
두 분 의가 상할까봐 걱정이 되어 생각 남깁니다. 누구 편도 들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생각했다는 걸 알아 주세요.
우선 먼댓글 문제인데....에이바님 글을 간단히 언급하고 cyrus님 본론이 곧장 나오지 않은 게 첫 문제였던 거 같아요. cyrus님이 <리지아> 에서`아슈토펫`이 `아슈타르테`라는 걸 발견해 글을 쓰려 한 의도였단 건 알겠습니다. 바빌로니아 신화 관련 서적 보셨고 에이바님 해석이 맞았다는 것도 아셨고요.
참고하셨다는 걸 밝히긴 했지만, 에이바님이 <율랄리>와 <울랄룸>, 아슈타르테-프시케 신화까지 엮어 해석하신 걸 cyrus님이 ˝아프로디테님이 보고계셔˝에 모두 담아버린 게 두 번째 문제죠. cyrus님은 에이바님이 <울랄룸>을 소개할 때까지 이 시의 존재도 모르고 계셨다고 했습니다. 즉 저 연결들은 애초에 에이바님 글의 기초였어요.
<율랄리>-<울랄룸>-아슈타르테-프시케 등을 연계한 에이바님의 글은 작성자의 고유함이 묻어나는 글이죠. 저는 이런 해석을 다른 데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내용이 cyrus님 ˝아프로디테님이 보고계셔˝ 3분의 2 이상 차지하죠. 신화 내용이 조금 추가되고 이 글의 본 주제였던 <리지아> ˝아슈토펫˝은 짤막하게 언급되는 정도라 에이바님 글 내용이 ˝아프로디테님이 보고계셔˝의 주된 내용이 된 상황.
꼼꼼히 따져 읽는 이가 아니라면 cyrus님 글이구나 생각하고 말 겁니다. 참고했다고 하는 걸 꼼꼼히 볼 사람 거의 없죠~_~; 두 분 문체가 달라 다른 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아슈토펫`에 대해 말하자면 에이바님과 같은 내용을 다루게 될 수밖에 없긴 할 텐데, 에이바님 접근 방식과 같았고 그걸 바탕으로 새롭게 전개된 게 별로 없어 상황이 이리 되어버린 듯....
참고자료라고 하기엔 ˝아프로디케님이 보고계셔˝가 에이바님 글의 핵심 줄기를 옮겨온 정도라 원글 쓴 분이 속상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소스가 비슷한 리뷰 글이 아닌 주관적 해석을 중점으로 담는 페이퍼 글이라 더 그럴 거고요. 여기 글 써서 책내는 분들도 많으신데 민감한 부분이죠.
cyrus님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겨 주신 건 다행입니다.
모쪼록 두 분 사이가 멀어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 글이 두 분 모두에게 또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하고요.
알라딘에서 싸움 말리다가 미움만 사고 제게 득될 일은 전혀 없었단 말입니다ㅜㅜ;;;

cyrus 2016-09-24 21:55   좋아요 2 | URL
포의 저주라... 하긴 재미로 포 소설 전집을 읽으려고 했는데 오역이 눈에 밟혀 몇 주동안 괴로웠어요. ㅎㅎㅎ

Agalma님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에이바님의 글 링크 주소를 맨 처음에 남겼어도 이거부터 먼저 보고, 제 글을 보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거예요. 게다가 `http` 주소 링크가 아닌 하이퍼링크로 설정했으면 북플에서는 링크된 글을 볼 수가 없어요.

제가 상대방의 글과 비슷한 내용을 안 쓰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어제 그 약속을 어기고 말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외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이 맞고, 당연히 에이바님께 사과해야 합니다.



2016-09-24 22:51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9-25 09:2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에이바님이 실의를 딛고 예전처럼 서재 활동을 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transient-guest 2016-09-27 0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진지한 자세로 글을 쓰고 읽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제가 유사성/표절논쟁이나 서친끼리의 이슈는 함부로 얘기할 수 없겠지만, 자신의 책읽기와 글을 그만큼 소중히 여기시는 분들이라서 위에 말씀하신 일도 발생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뭐랄까, 목숨을 건 글쓰기/책읽기의 진한 향기가 느껴지는 건 제가 좀 이상해서일까요??ㅎ 두 분 다 멋진 글 계속 올려주시길...

cyrus 2016-09-27 12:35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 A4 용지 한 장 반 이상의 분량의 글을 꾸준히 쓰시는 분들을 보면 책에 대한 감상을 허투루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글 쓰는 분들의 고민의 흔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 사실을 잊고, 실례를 했습니다.
 

 

 

 

 

 

 

 

 

 

 

 

 

 

 

 

 

 

 

 

 

 

 

 

 

 

 

 

 

 

 

 

 

* <율랄리> 

 

나는 홀로 살았다.

비탄의 세상에서.

그래서 내 영혼이 마치 괴어 있는 물 같았다,

마침내 곱고 상냥한 율랄리가

나의 수줍은 신부가 될 때까지―

마침내 금발의 어린 율랄리가

나의 미소하는 신부가 될 때까지―

 

아, 덜―훨씬 덜 밝았다.

밤하늘의 별들도,

그 해밝은 소녀의 두 눈보다는!

증기가 자주색 진주색

달빛―색조를 만들 수 있다지만,

정숙한 율랄리의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곱슬머리에 비하랴―

밝은 눈 지닌 율랄리의 아주 얌전하고 꾸밈없는

곱슬머리에 비하랴―

 

이제는 의심도―이제는 고통도

다시는 아니 찾아온다,

그녀의 영혼이 내 한숨을 한숨으로 지우며,

하루 종일토록

밝게 강렬하게 빛나기에,

하늘에 있는 아스타르테,

그녀 향해 한결같이 소중한 율랄리가

보모의 눈을 쳐들기에―

그녀 향해 한결같이 어린 율랄리가

보랏빛 눈을 쳐들기에―

 

 

I dwelt alone

In a world of moan,

And my soul was a stagnant tide,

Till the fair and gentle Eulalie

became my blushing bride —

Till the yellow-haired young Eulalie

became my smiling bride.

 

Ah, less — less bright

The stars of the night

Than the eyes of the radiant girl!

And never a flake

That the vapour can make

With the moon-tints of purple and pearl,

Can vie with the modest Eulalie’s

most unregarded curl —

Can compare with the bright-eyed Eulalie’s

most humble and careless curl.

 

Now Doubt — now Pain

Come never again,

For her soul gives me sigh for sigh,

And all day long

Shines, bright and strong,

Astarté within the sky,

While ever to her dear Eulalie

upturns her matron eye —

While ever to her young Eulalie

upturns her violet eye.

 

 

(<율랄리> 김천봉 번역. 《에드거 앨런 포》 70~73쪽)

 

 

 

 

* <울랄룸> 중에서 

 

우리들이 가는 길의 끝에는

액체와도 같이

성운(星雲)의 미광(微光)이 보얗게 태어나고

그 속에서 초승달이

기적처럼 신비하게

두 개의 뿔을 달고 떠오른다.

아스타르테의 다이아몬드 초승달이

또렷이

두 개의 뿔을 달고서.

 

At the end of our path a liquescent

And nebulous lustre was born,

Out of which a miraculous crescent

Arose with a duplicate horn —

Astarte’s bediamonded crescent

Distinct with its duplicate horn.

 

 

(<울랄룸> 중에서, 정규웅 번역. 《애너벨 리》 58~59쪽)

 

 

 

 

 

 

 

 

 

 

 

 

 

 

 

 

 

 

 

 

 

 

 

 

 

 

 

 

 

 

 

 

 

 

 

 

 

 

 

 

 

 

 

 

 

 

 

 

 

 

 

 

 

 

 

 

 

포의 고딕 단편소설 <리지아(Ligeia)>에도 아스타르테와 비슷한 여신의 이름이 언급된다. 이 소설도 죽은 버지니아를 잊지 못하는 포의 사랑을 읽을 수 있다. 리지아는 매우 똑똑하고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여자다. 하지만 그녀도 병에 걸려 죽음을 기다린다. 화자는 자신의 결혼생활이 불행한 이유를 고대 여신의 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And, indeed, if ever she, the wan and the misty-winged Ashtophet of idolatrous Egypt, presided, as they tell, over marriages ill-omened, then most surely she presided over mine. (원문)

 

사람들이 말하듯, 우상을 숭배하던 이집트인들의 풍요의 여신이자 흐릿한 날개를 가진 창백한 여신 아스다롯이 진정 불길한 결혼 생활을 관장했다면, 그 여신은 분명 내 결혼 생활도 관장했을 것이다.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2》 56쪽. 출판 전문 번역기업 ‘바른번역’)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만일 로맨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그 정신, 즉 우상숭배의 나라인 이집트의 여신인 애시토펫, 가냘픈 날개에 창백한 얼굴을 한 그녀가 불길한 결혼을 주재하는 게 사실이라면, 우리의 결혼을 주재한 이도 그 여신이었음에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26쪽. 전승희 번역)

 

만일 로맨스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그런 정령이 있다고 하면, 그러니까 만약 우상숭배를 좋아하는 이집트에서 저 파리하고 안개 같은 날개를 가진 아슈토페트 여신이 존재하여 사람들의 말처럼 불길한 결혼을 주재한다 하면, 분명히 나의 결혼도 그 여신이 주재하였으리라. (《포 단편집》 136쪽. 김정민 번역)

 

게다가 로맨스라는 이름의 정령이 존재한다면, 그리하여 소문대로 저 우상 숭배국 이집트의 안개 날개를 매단 말라깽이 아슈토펫이 불운의 결혼을 관장한다면, 내 결혼을 주무른 것도 분명 그 신의 짓이리라. (《더 레이븐》 201쪽. 조영학 번역)

 

 

사람들은 불길한 결혼에는 '로맨스'라는 이름의 영(靈)이 깃든다고들 합니다. 우상을 섬기는 이집트에서는 불길한 결혼에 안개처럼 창백한 날개의 '아스토펫'이 깃든다고 합니다. 이런 말들이 맞는다면, 우리의 결혼에도 분명히 그런 영이 깃들었을 것입니다. (《붉은 죽음의 가면》 188쪽. 김정아 역. '생각의나무' 구판)

 

 

 

‘Ashtophet’은 포가 아스타르테를 모티프로 만든 여신이다. 코너스톤 판에는 ‘아스다롯(Ashtoreth)’으로 되어 있는데, 성경에서는 아스타르테를 아스다롯으로 부른다. <리지아>를 번역한 역자들은 ‘Ashtophet’에 대한 각주를 이슈타르와 동일한 여신이라고 설명했는데, 독자의 오해를 부른다. 아스타르테의 여러 가지 이름 중에 ‘Ashtophet’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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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yrus님께
    from a garland for his head 2016-09-24 09:51 
    어제밤, cyrus님이 올리신 ‘아프로디테님이 보고계셔’를 보고 쓰는 글입니다. 이 글은 cyrus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글을 쓰시는데 들인 시간과 노력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글에 대한 애정, 자료 조사에서 오는 수고로움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cyrus님의 글을 보고 좀 많이 놀랐습니다. cyrus님의 글과 제 글들의 내용과 구조에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페이퍼는 cyrus님의 ‘아프로디테님이 보고계셔’와 제 글인 ‘에드거
 
 
syo 2016-09-23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작살나는 운율은 포의 특징입니까, 아니면 저 시절 영미시라면 기본적으로 다 갖추고 있는 형식입니까?

cyrus 2016-09-23 18:45   좋아요 0 | URL
둘 다입니다. ㅎㅎㅎ 특히 포의 시가 음악적인 운율로 유명해서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 원문도 소개했습니다. 사실 포의 시는 원문으로 읽어야 운율을 느낄 수 있습니다.

syo님. 혹시 제 글을 북플로 보신다면 제일 위에 있는 두 편의 시 제목이 보입니까? 제 북플 화면에는 시 제목이 뜨지 않습니다... ㅡ.ㅡ;;

syo 2016-09-23 19:22   좋아요 0 | URL
안뜨네요. 이런 현상 몇 번 본 것 같아요. 그냥 편집상의 실수시려니 했는데.......헐북플

cyrus 2016-09-23 19:27   좋아요 0 | URL
확인하고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하필이면 오늘 오류를 확인해서 다음 주 월요일에 서재지기님에게 알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금요일에 오류를 발견하면 짜증납니다..

syo 2016-09-23 19:41   좋아요 0 | URL
북플이 또 한걸음 앞으로 나가겠군요.

yureka01 2016-09-23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드가 알랜 포. 아고 상당히 불행한 삶을 살았던 작가였더군요. 영문학스켄들 이라는 책에 나오더라구요.

cyrus 2016-09-24 11:03   좋아요 0 | URL
포가 버지니아 이외에 다른 여자들을 좋아했는데, 끝내 사랑으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cyrus 2016-09-24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슈타트테에 대한 설명 그리고 프시케에 대한 해석은 에이바님의 글을 일차적으로 참고했음을 밝힙니다. 앞으로도 알라딘 서재 글을 참고할 때, 참고한 내용을 상세하게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에이바님께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2016-09-24 17:06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9-24 20:35   좋아요 1 | URL
네, 아직 지울 생각은 없습니다. 일단 제3자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제가 어제 글을 작성한 이유는 포의 시 <율랄리>와 <울랄룸>에 나오는 아스타르테와 <리지아>의 아스토펫의 연관성을 설명하고 싶어서 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이바님의 글은 제 글에 영감을 준 것이고,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에이바님의 글 링크 주소를 올렸습니다. 에이바님의 두 편의 글을 수정하고 증보하기 위해서 작성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오로지 <리지아>의 아슈토펫에 초점을 맞추면서 쓰려고 했는데, 제가 아스타르테와 프시케에 대한 내용을 쓰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에이바님의 글 내용과 형식이 유사해졌습니다.

yamoo 2016-09-24 19:06   좋아요 0 | URL
유사성 만으로 사과를 강제 받는 것은 정말 어의 없는 일입니다. 비슷한 책을 참조할 수도 있는 일이구요. 저는 사이러스 님의 페이퍼가 전혀 문제가 없는 글로 보입니다. 사과는 잘못한 것이 있을 때에라야 하는 것인데, 뭐가 잘못인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링크 : http://bookmid.com/bbs/board.php?bo_table=midevent&wr_id=2046

 

 

 

 

니콜라스_표지입체.jpg



 

***

 

‘어쩜 이렇게 끔찍한 질병이 있을 수 있을까’, 애밀린 산티아고 볼커는 수술실 밖 대기실에서 그녀의 아들을 기다리며 치를 떨었다. 다른 환자 가족들도 근처에 앉아 있었지만, 그들의 긴장한 눈빛은 이곳에 있는 것 자체가 그들에겐 두렵고 새로운 특별한 경험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애밀린과 4살짜리 소년 닉에게 위스콘신 어린이병원 수술실은 새로울 것이 없이 익숙한 곳이었다. 2009년 초까지 그곳을 방문하는 것은 이들 모자의 일상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고통스러운 일상.

 

***


 

 

이 책은 어린 꼬마 '니콜라스 볼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이 어린 꼬마의 인생이 참 기구합니다.

어려서 희귀병에 걸려 약 사 년을 병원에서 보내다가,

'유전체 치료(genomic medicine)'의 최초 수혜자가 되었거든요.

 

게놈 해독이 어떤 의미인지, 

우리 몸을 분자 수준에서 이해한다는 것이 어떤 힘을 가지는지,

앞으로의 의료 체계는 어떤 식으로 발전해나갈 것인지.

위와 같은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으시다면,

MID의 첫 책인 《천 달러 게놈》을 재밌게 읽으셨다면,

혹은 끔찍한 질병에 맞서 싸우는 두 살짜리 영웅과

그 영웅을 과학과 의학의 힘으로 보조하는

조력자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이 책을 읽으시기를 강력 추천합니다.


이번 도서는 15명의 서평단을 모십니다.

 

기한 내에 서평 작성이 가능하신지 신중히 생각해보시고

신청 부탁드려요.

 

 

<니콜라스 볼커 이야기>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최정예 서평단 15분을 모십니다.

모집기간은 9/23(금) - 9/29(목) 이고요.

9/29(목) 발표와 동시에 배송이 이루어집니다.

 

서평 마감일은 10/12(수)이며, 우수서평 마감일은 10/7(금)입니다.

10/7까지 서평을 남겨주신 분들 가운데,

우수서평자 한 분을 선정하여

읽기를 원하시는 MID 도서 한 권을 선물해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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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9-23 2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대가분들의 적극적인 참여필수 ㅋ^^.
 
인간 존재의 의미 - 지속 가능한 자유와 책임을 위하여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 지음, 이한음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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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을 사랑하라’로 요약되는 이타심은 종교의 영역에만 존재하는 것인가? 그렇지만 일상생활에서도 이타적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볼 수 있다. 대가가 없어도 헌혈을 하고, 불우이웃을 돕는다. 심지어 타인을 구하려다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들까지 있다. 이런 걸 보면서 “엄마, 세상은 참 따뜻한 거죠?” [주1]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인간 중에 원래 남보다 좀 더 선한 사람이 있다든가, 인간은 원래 선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성선설에 따라 인간은 선하기 때문에 이타적 행동을 한다는 설명은 너무 단순하다. 이 논리로 인간사회의 이타적인 행위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인간은 대개 이기적이다. 이기심은 인간의 생물학적인 본성인 동시에 인간 행태를 탐구하는 기본 전제이기도 하다. 다행스럽게도 이기적 인간들 사이에서 이타적 인간이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아 면면히 맥을 이어왔다. 상반된 이기심과 이타심의 공존하는 세상은 흥미로운 관찰 거리다. 인간이 아무 대가 없이 남을 도울 수 있을까, 아니면 무엇을 바라고 돕는 것일까? 수많은 학자가 인간 사회의 용기 있는 자기희생을 설명하기 위해 매달렸다. 대표적인 이론이 혈연선택설(kin selection)집단선택설(group selection)이다.

 

혈연선택설에 따르면 혈연으로 연결된 개체들에 대해서는 희생을 아끼지 않는다. 혈연선택설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속담으로 요약된다. 궁극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상호 협력하거나 이타적인 혜택을 베푼다. 반면 집단선택설에 의하면 개체들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 희생한다. 이타적 행동을 하는 개체가 많은 집단일수록 생존율이 높다. 결국, 이타적 행위자가 많은 집단이 살아남는다.

 

 

 

 

 

에드워드 윌슨은 집단 선택설을 옹호한다. 그는 집단의 가치를 중시하고 인간의 사회 행동과 문화도 동물의 본성으로 풀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윌슨이 말하는 동물의 본성이란 진사회성(eusociality)을 의미한다. 윌슨은 이미 《지구의 정복자》(사이언스북스. 2013년)는 인간이 개미와 같은 진사회성 동물이라고 주장했다. 즉 인간은 여러 세대로 이뤄진 집단 구성원들이 분업하여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동물로 진화했다는 얘기다. 윌슨은 《인간 존재의 의미》에서도 집단선택설을 줄기차게 주장하면서 혈연선택설의 한계를 콕 집어 지적한다. 윌슨의 주장에 맞선 리처드 도킨스가 도발한다. “여러분, 윌슨의 책을 있는 힘껏 집어 던지세요!” [주2]

 

이 세상에는 이런 이론들로 명확히 설명될 수 없는 일들이 가득하다. 어떤 이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불길로 뛰어든다. 숭고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의로운 희생들이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의로운 희생을 추모하는 일을 위선적이라고 생각한다. 경쟁을 최적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신자유주의의 독주에 따라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챙기는 것이 미덕이라는 이기심의 원리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현대는 경쟁 사회다’라는 명제에 반론을 제기하기는 쉽지 않다. 협력하고 이타적인 행동을 하면 손해 보고, 경쟁하고 남을 이용해야 성공한다는 주장이 뭔가 불편은 하지만 말이다. 윌슨은 인간의 감정이 시시때때로 변하고, 동시에 나타나기도 하는 ‘감정의 불안정성’이 인간 조건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관건으로 본다. 복잡한 감정 반응을 이해하면 합리적인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데, 윌슨은 우리가 직면하게 될 상황을 돕기 위해 ‘인문학’이라는 열쇠를 건넨다. 인문학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 물음에 대한 의미 있는 답을 제시하는 데 도움을 준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융합한 인간 지성은 환경의 위기와 지구 생명 전체의 미래에 대한 성찰을 지향한다.

 

인간은 순수한 돕기 능력에 있어서도 독보적이다. 이런 풍성한 이타적인 형질이 인류라는 종을 지구에서 가장 번성한 동물로 만든 핵심 요소가 되었다. 그러나 협력은 결코 안정적인 전략이 아니다. 협력은 배신과의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의 하나다. 한편으로 인간 사회를 진사회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윌슨의 시선이 걱정스럽다.

 

 

인간 행동의 특징인, 또 하나의 유전되는 형질은 애초에 집단에 소속되려고 하는 압도적으로 강한 본능적인 충동이다. 이 충동은 대다수의 사회성 동물에게도 나타나는 것이긴 하다. 사회성 동물 개체를 강제로 홀로 지내게 하면 계속 고통에 시달릴 것이고 결국에는 미치고 말 것이다. 자신이 어느 집단의 일원인가 여부는 정체성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또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집단은 구성원에게 우월감을 제공한다. 심리학자들이 지원자들을 무작위로 집단을 나누어서 단순한 게임을 시키자, 각 집단의 구성원들은 곧 자기 집단의 구성원들이 상대편 집단의 구성원들보다 더 유능하고 더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35쪽)

 

 

집단을 우선으로 여기는 이타적 본성이 때로 다른 집단에 무서운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극우 민족주의가 대표적인 예이다. 집단의 이타적 본성이 이기적 본성으로 변질하면, 다른 집단에 대한 공격으로 자기 집단의 영속성을 유지한다.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와 달리 집단 속에 있게 되면 평소와는 사뭇 다른 행동을 하게 마련이다. 많은 군중이 모이게 되면 혼자서 도저히 할 수 없는 과감한 선택을 하게 되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집단의 구성원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다른 집단과 차별화함으로써 소속감과 만족감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다른 집단과 더 차이가 나는 극단적인 의견을 내놓는다. 인간은 사회성 동물이지 진사회성 동물에 가까운 수준은 아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실망한 글이 <외계 생명체의 초상>이다. 이 글에서 윌슨은 인간 본성의 특징을 토대로 외계 생명체의 특징을 상상하는데, ‘외계인은 사회적 지능이 높다’라는 주장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이 말을 사회생물학의 논리로 보면 외계인도 유전자의 힘으로 사회적 행동을 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윌슨은 사회생물학이 인간으로까지 확대하는 것에 무척 조심스러워했다. 동물의 사회적 행동 메커니즘을 외계 생명체에도 적용하는 스승의 생각을 제자 최재천 교수는 어떻게 생각할까?

 

 

 

[주1] 1993년부터 사용한 MBC 구 로고송. 원전은 ‘엄마 세상은 참 따뜻한 거죠. 우리 문화방송’. 내가 초딩 때 이걸로 패러디한 유머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엄마 세상은 참 따뜻한 거죠. 미친놈아, 겨울이다’

[주2] 《인간 존재의 의미》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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