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선생님은 불같이 화를 내셨다. 지금도 그때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마스다 미리 어른 초등학생102)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 통틀어서 선생님이 크게 화를 내면서 눈물을 흘렸던 날이 세 번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5학년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이날 울었던 담임선생님들 모두 여자였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선생님들이 화를 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제자들이 너무 말을 안 듣는 모습에 선생님이 속상해서 화를 냈을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담임선생님은 1학기만 제자들을 가르쳤다. 출산 휴가로 당분간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그 당시 아이들은 선생님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임신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2학기가 개학한 지 얼마 안 된 날에 선생님은 학교 일을 쉰다고 제자들에게 말했다. 선생님에 정이 든 아이들은 선생님과의 이별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 시간에 대부분 아이가 눈물을 흘렸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그 선생님이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흘렸던 이유를 알았다. 그 날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데 무려 18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이미 배속에 아이를 가졌던 선생님은 학교 업무에 심한 압박감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아이들은 선생님의 속사정을 모르고 미운 짓만 골라 했다. 서러운 감정을 꾹 참고 있다가 어느 날 한순간에 폭발하고 만 것이다. 그 날 선생님은 말 안 드는 너희들 때문에 학교 일을 그만둘 거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선생님의 그 말 한마디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만들어진 기억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학교 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고 울먹거리면서 꺼냈던 선생님의 말씀을. 그때 교실 안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교실 안에 훌쩍거리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아이들은 풀이 죽은 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어떤 여자아이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선생님이 우는 이유가 자기들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반장, 부반장을 맡은 아이가 선생님에게 사과 인사를 했고, 그동안 자신들이 잘못했던 일에 뉘우치는 자세를 보였다. 이런 일이 있었기에 아이들은 선생님과의 갑작스러운 이별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만약에 나나 이 아이들이 조금 철이 든 중학생이었다면, 떠나는 선생님을 위해 선물 하나쯤은 마련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듬해 이와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5학년 담임선생님은 몸이 너무 안 좋아져서 1학기만 가르치고 휴직했다. 무슨 병인지 잘 모르지만, 선생님의 몸 상태가 정말 안 좋았다. 내가 살았던 집 바로 건너편에는 선생님의 친척이 살고 있었다. 선생님은 세 살짜리 딸을 이 친척 집에 맡기고 학교에 출근했다. 그래서 저녁 시간에 퇴근한 선생님이 딸을 데리러 오는 장면을 몇 번 목격하기도 했다. 우리 엄마가 선생님의 딸을 잠시 돌본 적도 있었다. 선생님의 딸이 내 방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선생님은 학교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들 정도로 건강이 안 좋았다. 몸과 정신 상태가 거의 최악인데도 선생님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결국, 일어나서는 안 될 상황이 일어나고 말았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혼내다가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선생님은 아이들 때문에 화가 나서 울었다기보다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서러워서 울었다. 점점 몸은 지쳐만 가는데, 학교 일과 육아를 감당하기 힘든 삼중고에 무척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중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은 초임 교사였다. 당시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남학생들만 다녔다. 초임 여교사 입장에서는 철부지 남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힘들다. 남학생들은 초임 여교사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선생님의 말씀도 잘 듣지 않는다. 제자가 선생님을 만만하게 대하는 상황이 이어지니까 선생님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선생님을 울리고 말았다. 그런데 남학생들은 선생님이 우는 모습을 보면 크게 뉘우치는 척하지,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말썽을 피운다.

 

혹자는 교사가 제자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화를 내는 모습이 보기 안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건 교사라는 직업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교사도 감정노동자다. 과거에는 교사들이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것에만 집중하면 됐다. 하지만 현재 교단에 서 있는 교사들은 기본적인 업무 외에 동료 교사, 학생, 학부모까지 상대해야 한다. 학교 교육이 교육서비스로 인식됨에 따라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눈치를 봐야 하고 설령 학생의 잘못을 지적하더라도 상담실로 따로 불러서 이야기해야 할 정도로 교직 생활은 민감한 환경에 처해있다. 학교에 여교사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화를 내다가 눈물을 흘리는 선생님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선생님께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생겼을까? 아이들이 선생님의 눈물을 악어의 눈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도 선생님이 갑자기 우는 이유를 잘 모른다. 차차 어른이 되면 알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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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6-06-28 12:33   댓글달기 | URL
수련 병원에서는 초보 의사들이 실수를 하지 않을 즈음이 그 병원을 떠나게 되죠.

인종 차별이든, 성차별이든 또는 위 글처럼 선생님 노고, 부모님의 노고, 무언가를 철이 들어 인식할 때는 상황은 이미 멀리 떠나왔고, 그 상황에 처해있는 당사자는 알지 못하고 ... 그래서 갈등은 항상 있고. 뭐 그렇습니다.^^

cyrus 2016-06-29 09:20   URL
의사도 엄청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이죠. 인턴 시절이 제일 힘들다고 하더군요.

yureka01 2016-06-28 12:54   댓글달기 | URL
요즘 소위 말하는 갑질문화....신참 검사조차 갑질 상사에게 어려움 호소하고 자살로 내몰리는 사회..왜이렇게 배려가 없는 사람들이 많은가요..아고...

cyrus 2016-06-29 09:22   URL
어떤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교사에게 갑질을 합니다. 그런 부모를 보면서 자란 아이는 교사를 무시할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갑질문화를 따라 배우게 되는 거죠. ㅠㅠ

alummii 2016-06-28 21:01   댓글달기 | URL
전 아직도 저희 댄스 선생님 우시는 이유를 모를때가 있어요 @,@ 눈물이 아니라 땀이겠거니..한답니다ㅡㅡa회원들이 너무 못 추나봐요..풉...아님 너무 욱껴서 우시나...

cyrus 2016-06-29 09:24   URL
알루미님은 힙합뿐만 아니라 댄스도 배우시는군요. _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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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종이에 허무와 슬픔이 흠뻑 배어있다. 그 종이 속에 두 여자가 있다. 그녀들의 삶은 하얗다. ‘나’는 일상을 매일 쥐어짜는 극심한 편두통에 시달린다. 그녀에겐 태어나 두 시간 만에 죽게 된 언니가 있다. 따뜻한 어머니 품속 같은 흰 배내옷은 곧 싸늘한 수의가 된다. ‘나’는 얼굴이 흰 조그만 언니를 떠올리며 이 세상의 ‘흰 것’들을 하나씩 건져내기 시작한다. 65개의 조각 글은 한 편의 비가(悲歌)다. 흰색 톤의 ‘나’는 비현실적이면서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자꾸만 마음이 끌린다. 어떻게 보면 《흰》은 행동의 모호함과 혼란에 대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행동이 순수함을 향한 몸부림인지, 아니면 단순한 욕망의 표출인지, 그도 저도 아니면 사람들이 살아가며 일상적으로 겪는 고뇌를 표현한 것인지 규정하기 힘든 장면이 잇따라 등장하기 때문이다.

 

흰색이 검은색보다 언제나 순수하고, 하얀 눈처럼 순수함을 상징한다는 식으로 그려졌다면 이 소설은 도식적이고 심심해졌을 것이다. 우울, 희열, 평안을 오가면서 흰 것에 집착하는 ‘나’의 모습은 기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한강의 글은 불편하고 때론 괴롭지만, 소설 속 ‘나’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흰 것에 대해 마음껏 상상한다. ‘나’는 흰 것의 상징과 은유로 근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금만 벗어나도 과장스럽게 보였을 ‘나’의 글쓰기를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작가가 형이상학적 소재를 세심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는 흰 것에서 ‘죽음’을 대면한다. ‘달떡처럼 희고 어여뻤던 아기’가 죽은 자리에 태어난 ‘나’는 불현듯 죽음과 가까워지는 순간을 느낀다. 문득 자신을 덮칠 듯한 거대한 무색 공포, 즉 ‘죽음’에 몸을 떨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혼자다. 죽음처럼 완전히 혼자다. 태어날 때부터 ‘형의 죽음’이라는 상처가 그의 이름과 생일에 낙인찍혀버린 반 고흐처럼 말이다. ‘나’는 오랜 고통의 영향으로 ‘피 흐르는 눈’[주1]을 가졌다. 그 눈으로 들여다본 마음의 심연은 엑스레이 사진처럼 해골만 남은 채 텅 비어 있다. 마음의 심연이 붉게(살과 근육) 보이지 않는다. [주2]

 

 

그보다 오래전,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그녀는 뼈들의 다양한 이름에 매혹되었다. 복사뼈와 무릎뼈, 쇄골과 늑골, 가슴뼈와 빗장뼈, 인간이 살과 근육으로만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이상하게 다행으로 느껴졌다. (‘흰 뼈’ 중에서, 89쪽)

 

 

생각도 고통도 없는 해골이 된다는 것은 무척 슬픈 일이다. 하지만 기막히게 좋은 일이 될 수 있다. ‘흰 뼈’라는 제목의 글은 마치 삶의 유한성을 일깨우는 ‘바니타스(Vanitas)’ 회화 속 해골을 연상시킨다. 다소 우울하지만, ‘나’가 자신의 엑스레인 사진을 보는 행위는 ‘진정한 삶을 찾기 위한 과정’에 참여했음을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화된 바니타스를 탐구하는 것이다. 바니타스의 구현은 모든 것이 헛되기 때문에 허무주의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다. 진실한 의미를 찾지 않으면 무의미한 일상에 반복되는 헛됨에 사로잡힐 수 있음을 알려준다. 우리가 보는 것들은 진실일까? 허상일까? 진실이라 믿고 있었던 것들이 거짓으로 밝혀졌거나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은 현실이 진실임이 드러날 때가 있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 다 진실은 아니다. 과연 검은색만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 듯한 꺼림칙한 기분을 주는 색깔일까. 한강은 각인된 인상에 비롯된 허상을 좇는 독자들에게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흰색에도 ‘덧없는 삶’,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이라는 이면의 진실을 감추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 몸 그 자체 속에 들어 있는 해골이다. 우리가 몸속에 있는 해골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죽음’이라는 진실을 들여다보지 못하면서 살아간다. 해골을 소재로 한 글은 독자에게 자신의 진실한 내면과 만나는 기회를 제공한다.

 

<입김>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나’가 차가운 겨울 입술에서 피어나오는 흰 입김을 보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입김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생명의 형상으로 허공에 퍼져나가는 기적이라고 표현한다.

 

 

어느 추워진 아침 입술에서 처음으로 흰 입김이 새어나오고, 그것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 우리 몸이 따뜻하다는 증거. 차가운 공기가 캄캄한 허파 속으로 밀려들어와, 체온으로 덮혀져 하얀 날숨이 된다. 우리 생명이 희끗하고 분명한 형상으로 허공에 퍼져나가는 기적. (‘입김’ 전문, 89쪽)

 

 

65개의 글 전체에 슬픔과 고통만 있는 것이 아니다. 차가운 죽음과 따뜻한 삶 사이에서 삶 쪽으로 퍼져나가는 소중한 기적도 있다. 그것이 바로 ‘살아있음’을 눈으로 확인하는 확연한 증거이자 흔적이다. 비록 입김 또한 삶이 덧없다는 것을 뜻하는 바니타스 상징으로 볼 수 있지만, 따뜻한 입김의 조그만 조각도 누군가의 몸속으로 전달되어 생명의 날숨이 되어주는 소중한 매개체다. 따라서 이 글 속에서 ‘나’는 마음속으로부터 삶을 갈망하는 욕망도 얼핏 읽을 수 있다.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는 《흰》을 읽으면 무의식 속에 방치했던 기억들이 재생되고 숙연해진다. 《흰》에서 여러 종류의 사유를 발견할 수 있지만, 유독 많이 보이는 것은 삶이라는 의미와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극대화된 허무이자 절대적인 죽음의 앞에서 절망하지만, 근본적인 회의를 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죽지 마라. 제발’ 이 독백은 어찌 보면 하나뿐인 생명력이 회복하기를 원하는 간절한 외침이 아니었을까. 한강은 형용하기가 어려웠고, 두려웠을 소재를 곱씹어서 65개의 글로 종이 위에 토해냈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잠깐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한강 작가가 고맙다.

 

 

 

 

※ 주1) 한강의 시 「피 흐르는 눈」 1연 1행 (‘나는 피 흐르는 눈을 가졌어’,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52쪽)

 

※ 주2) 한강의 시 「피 흐르는 눈」 5연 1행 (‘마음의 심연이 붉게 보이지 않는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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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6-06-27 21:19   댓글달기 | URL
참 좋은 페이퍼입니다. 감사합니다.

cyrus 2016-06-28 11:35   URL
별 말씀을요. 책에 대한 제 개인적 느낌만 적었을 뿐입니다.

빠르릉 2016-06-27 22:24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어른 초등학생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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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순수함이 찬란히 빛나던 어린 시절, 세상은 온통 이해할 수 없는 일로 가득했다.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삶이란 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많은 것을 가르치게 마련이지만 가끔은 당장 밝혀내지 않고는 도무지 못 견디게 만드는 일이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 인간은 누구나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저절로 아이가 어른이 된다면 그것은 신체적인 현상일 뿐이다. 어른이 되면 자신이 속해 있는 이 세계 속에서 책임져야 할 부분이 많아진다. 아이의 눈으로는 볼 수 있었던 많은 것들이 사라진다.

 

어른 마스다 미리가 그림책 스무 권을 읽었던 어린이 마스다 미리를 만났다. 그녀에게 스무 권의 그림책은 어릴 적 각별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소중한 타임머신이다. 어른 초등학생은 한마디로 단순한 아름다움을 지닌 책이다. 마치 엄마 앞에서 초등학생 아이가 자신의 하루를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소박한 내용이 들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독자를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다. 독자가 이 책을 읽는 동안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마음속 어린아이와 아주 가까워진다. 어린 시절의 추억과 그림책이라는 공감대가 이 둘을 묶어 놓는다.

 

책을 읽으면서 맛볼 수 있는 기쁨이 있다. 작가의 흥미진진한 추억담을 읽고 있으면 어느덧 어린 시절 엄마의 존재, 아련한 추억들이 담겨 있는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이를 통해 다양한 추억들이 눈앞에 투영된 듯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어떤 것들은 한 번 접한 것만으로도 두 번 다시 잊지 못하게 된다. 깊숙한 기억의 호수 밑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의 보물이 숨어 있다. 호수에 풍덩 빠져서 보물을 발견하면 눈망울은 금방이라도 눈물에 젖어버린다. 아니나 다를까. 그럴 일이 벌어졌다. 작가는 여섯 살 때 읽은 그림책의 표지 그림을 보자마자 눈물을 글썽였다. 말 그대로 찰나의 그때에만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감동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 떨리는 순간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누가, 언제 그 순간을 경험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일 뿐. 이런 행복감이 없었다면 작가는 이렇게 감동과 웃음이 넘치는 그림을 그릴 수 없었을 것 같다.

 

몸이 자랄수록 기억의 호수는 점점 깊어져만 간다. 돈을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동안 순수함을 간직했던 것들이 조용히 가라앉는다. 그런데 가라앉은 추억의 파편은 사라지지 않고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한다. 역설이다. 사실 이게 우리의 바람이다.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러나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대상에 유통기한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하는 시간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른이 된 우리는 이 시간이 제일 두렵다. 어른 초등학생은 잃어버린 삶의 순수만 들려주는 책이 아니다. 마스다 미리는 마음에서 지워버리고 싶지 않은 유한의 존재를 알려준다. 어른의 기억 속으로 다시 되돌아오지 못하는 진짜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상기시킨다. 이 책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는 그 과정에서 어떻게 변해가는가라는 모두의 고민에 맞닿아 있다.

 

마냥 행복해도 좋을 어린 시절과 이별하는 것은 분명히 아프다. 그러나 동시에 진짜 세상을 만난다는 기대감에 들뜬다. 어린이는 얼른 어린애다움을 벗고 싶어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거운 짐을 지는 공포이며 순수함을 상실하는 슬픈 일이지만,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고 한 발짝씩 걸어가는 것 아닐까. 결국,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성장의 기쁨과 삶의 비애를 알아버린 슬픔의 경계다. 순수했던 동심의 는 어쩔 수 없이 성장을 위해 우리가 기억의 호수에 버려둔 우리의 분신이다. 나의 찬란한 분신! 널 영원히 잊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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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6-06-27 00:02   댓글달기 | URL
아 놀랬습니다. 초딩이 나와서 :-) 좋은 밤 되세요~

cyrus 2016-06-27 00:31   URL
초딩은 일찍 잠을 자야 키가 큽니다. 얼른 주무세요. ㅎㅎㅎ

2016-06-27 0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6-27 19:43   URL
나이 한 살 더 먹을수록 좋은 기억들마저도 사라지는 것 같아요.

2016-06-27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7 1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7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터넷 상에서 ‘짤’이 없으면 재미가 없다. 글에 첨부된 이미지를 ‘짤’이라고 일컫는다. 보통 TV나 영화, 만화의 한 부분을 가져와 새롭게 편집해서 사용한다. 짤은 글쓴이의 감정을 나타낸다. 원하는 말이나 감정을 표현하고 싶으면 문자 텍스트 없이 하나의 짤만 보여주면 된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에는 재미있는 그림이 많다. ‘웃긴 짤’로 쓸 만한 재료들이 꽤 있다. 가끔 글을 쓸 때 마스다 미리의 짤을 사용해야겠다. 짤의 용도로 쓰기 전에 미리 일부 장면의 출처를 밝힌다. 

 

 


* 최악의 상황을 나타날 때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46쪽)

 

 

 

 

 

 

 

황금 같은 주말에 집에 쉬지 못한다면 정말 화가 난다. 자기보다 직급이 높은 분이나 선배가 주말에 만나자고 하거나 특별한 일을 부탁하면 쉽사리 거절하지 못한다. 회사 전무가 일요일에 집들이하는 사실을 알리자 마이코는 불길한 기운을 느낀다. 전무의 집에 가서 집들이를 도와줘야 할지도 모른다. 마이코의 표정은 웃는 것이 아니다.

 

 

 


* 아무 생각 없이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있을 때 (《주말엔 숲으로》 18쪽)

 

 

 

 


* 화가 났을 때 (《주말엔 숲으로》 36, 72쪽)

 

 

 

 

 

 

하야카와의 친구 세스코는 ‘감정 노동’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그녀는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화가 났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분을 삭인다. 화가 난 마이코의 표정이 둘 다 비슷해 보여도 잘 보면 미세한 차이점이 있다. 72쪽(아래쪽 사진) 마이코의 이마에 찌푸려진 미간이 보인다. 

 

 

* 아주 재미있는 장면을 봤을 때 (《주말엔 숲으로》 155쪽)

 

 

 

 

* 책 냄새 맡기를 좋아하는 ‘책성애자’ (《어른 초등학생》 77쪽)

 

 

 

 

 

마스다 미리는 어렸을 때 읽은 동화책을 찾기 위해 체코의 고서점을 방문했다. 드디어 그곳에서 동화책과 감동적인 재회를 했다. 오래된 종이 냄새를 맡아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무 제지에 바닐린이라는 성분이 들어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 분해된다. 이때 특유의 책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향은 기억을 상기시키는 강한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오래된 서적들에서 퍼지는 향 역시 책을 찾으며 즐겨 읽는 기쁨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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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쥐 2016-06-25 16:56   댓글달기 | URL
저 알라딘에서 인정한 마스다미리 마니안데...(그래봤자 두자리 수입니다) 싸이러스님이 짤방까지 만드시는 것 보니까 뭔가 부끄러운데요?ㅎㅎ
장르는 아니지만 마스다 미리의 책은 `여성 힐링 만화` 아니면 `여성 공감 만화`라는 요상한 딱지를 붙이더라고요. 물론 엄청 공감 되긴 하지만... 리뷰보면 한컷 한컷 감정이입을 심하게 잘 하는데 확실히 남자분들은 짤방을 만드시는군요ㅎㅎ

cyrus 2016-06-26 16:14   URL
짤방 만드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냥 재미있는 장면을 사진이나 캡처로 잘 찍어서 글을 쓸 때 이미지를 올리면 됩니다. ㅎㅎㅎ

제가 마스다 미리 백일장 이벤트에 응모하려고 2주 동안 마스다 미리의 책을 여러 권 읽었습니다. 저도 뽈쥐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마스다 미리의 책을 여성 독자만 겨냥해서 홍보하는 출판사의 홍보를 좋지 않게 봅니다. 마스다 미리의 글과 그림에 다루는 소재들은 어른이라면 누구나 겪고, 생각할 수 있는 내용들이거든요. ^^

북깨비 2016-06-25 18:00   댓글달기 | URL
오래된 종이냄새 좋아요 ㅎㅎ (앗, 오래된 책일 경우에만요... 써놓고 돌아서서 이 부분을 확실히 해야할 것 같아서 다시 돌아왔어요 ㅋㅋ)

cyrus 2016-06-26 16:15   URL
새 책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약품 냄새가 나요. 저도 그 냄새를 좋아합니다. 새 책을 사면 일단 냄새를 맡아봅니다. ^^;;

yureka01 2016-06-25 20:12   댓글달기 | URL
짤짤이에 동전같은게 짤방 사진^^.ㅎㅎㅎ

cyrus 2016-06-26 16:18   URL
짤짤이! 옛날 사람 용어입니다. ㅎㅎㅎ

alummii 2016-06-25 21:57   댓글달기 | URL
어른초등학생 읽어봐야겠어요 ㅎㅎ책성애자 ㅋㅋ

cyrus 2016-06-26 16:18   URL
<어른 초등학생> 진짜 재미있습니다. ^^

나비종 2016-06-26 01:42   댓글달기 | URL
카톡계의 이모티콘이군요ㅎㅎ
향이 기억을 상기시키는 강한 연결고리라는 생각에 공감합니다. 음악이나 그림이나 맛, 감촉도요. 그러고보면 감각이 생각보다 기억에는 더욱 강렬한 역할을 하나 봅니다^^

cyrus 2016-06-26 16:21   URL
카톡에 사용하는 이모티콘도 짤방을 응용한 겁니다. 그런데 저는 이거 자주 써서 그런지 질립니다. 그리고 맨날 새로 나오는 카톡 이모티콘을 사는 데 나오는 요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감각 하나만으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일을 기억해내는 건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 짜릿한 순간이 오게 되면 엄청 기분이 묘해지면서도 좋습니다. ^^

transient-guest 2016-06-26 01:54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침 일찍 서점에 가면 퍼지는 커피향과 책냄새가 참 좋습니다.ㅎ
짤방하면 이소룡이죠..ㅎㅎㅎ 옛날에 유행하던...형님말씀체와 함께

cyrus 2016-06-26 16:23   URL
제가 고딩 때 ‘웃대’라는 유머 관련 사이트를 자주 들어갔는데, 그 때 이소룡 짤방이 유행이었습니다. 오랜만에 그분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싱하형! ㅎㅎㅎㅎ

고양이라디오 2016-06-26 13:13   댓글달기 | URL
마스다 미리의 책, 전에는 즐겨봤었는데, 다시 읽어봐야겠네요ㅎ.

cyrus 2016-06-26 16:24   URL
어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아서 정말 좋았습니다. ^^

pek0501 2016-06-27 13:04   댓글달기 | URL
요즘 알라딘에서 마스다 미리의 책에 대한 글이 왜 많은 거죠?

짧은 문장에 의미가 담뿍 담겨서일까요?

cyrus 2016-06-27 20:00   URL
사실 이번 달에 마스다 미리 백일장 대회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책 읽고 글을 썼습니다. 이벤트가 아니어도 예전부터 마스다 미리 책 서평을 많이 봤습니다. 만화 속 내용이 우리가 살면서 겪는 상황과 비슷해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습니다. ^^
 

 

 

 

 

 

 

 

 

 

 

 

 

 

 

 

 

 

 

 

 

아름다워지고 싶은 것은 인간의 오래된 욕망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아름다움의 기준은 절대적이지 않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아야 하는 보통사람들이 동시대가 규정하는 아름다움의 조건에서 자유롭기는 쉽지 않다. 특히 대중매체가 뿜어내는 강력한 영상에 나만의 빛깔로 대항하기란 역부족이다

 

외모도 실력의 일부라고 받아들여지는 외모지상주의는 연령이나 성별과 관계없이 우리의 생활과 소비행태에도 큰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갈수록 외향적, 자기만족적으로 바뀌고 있다. 누구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외모를 통해 인정을 받고 자신감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보석을 연마하듯 자신을 갈고닦는 부단한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시간 내에 목적을 이루려는 성급한 마음에 있다. 외모 지상주의와 상업주의에 의해 여성들에게 은연중에 다이어트를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가 큰 문제다. 외모지상주의를 자극하는 광고와 기사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을 중심으로 성형외과 차원에서 얼굴과 몸에 조금만 손질을 하면 당당하게 살 수 있다라고 끊임없이 권유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이렇게 성형을 권하는 사회에서는 외모가 사회적 능력이요, 곧 경쟁력이다라는 이데올로기적 사상이 팽배해져 있다.

 

매스컴에서 외모지상주의로 인한 폐해를 끊임없이 보도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외모지상주의가 단순한 사회적 현상이 아닌 심각한 정신과적 질환임을 경고하고 나섰다. 페미니스트들은 외모지상주의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조언한다. 외모로만 평가하는 잘못된 가치관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외모에 대해 자신 있고 당당하게, 그리고 긍정적이고도 사랑으로 대하라. 그런데 내면적 아름다움을 강조하여 외모집착풍토에 반하는 목소리들이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고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이다. 벨 훅스는 마땅한 대안 없이 외모 차별,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하는 이미지를 비판하기만 하는 담론을 비판한다.

 

페미니즘 운동이 여러 종류의 친여성적 잡지들을 창간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중에 모든 여성들에게 대안적 미의 비전을 제공하는 페미니스트 자본의 패션 잡지는 없었다. 대안을 제공하지 않고 성차별적 이미지들을 비판하기만 하는 것은 불완전한 개입이다. 비판이 그 자체로 변화를 이끌어 내지는 않는다. 미에 대한, 수많은 페미니즘적 비판은 건강한 선택이 무엇인지에 관하여 여자들에게 혼란을 일으킬 뿐이다. (85)

 

지금까지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해온 내 입장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외모지상주의를 한없이 부풀리는 사회적인 분위기의 해결책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외모지상주의에 갇힌 사람들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해결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사실 벨 훅스도 대안적인 아름다움이 어떤 건지 언급하지 않았다.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매스컴에서도 외모지상주의로 인한 폐해를 끊임없이 보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선 조건이나 자격보단 뛰어난 외모를 더 선호하고 우선시하고 있다. 외모지상주의와 반 외모지상주의가 충돌하는 지점에 끼여 버리면 제일 나은 선택을 고르기가 어려워진다. 결국, 다른 사람들 속에 섞여 다른 사람과 함께 만들어진 미의 기준과 가치관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 사회에서 미를 바라보는 다양한 기준들과 이러한 기준들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상위의 새로운 가치관의 확립이 정착되지 않는 한 외모지상주의는 영원한 난제로 우릴 괴롭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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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6-06-24 21:55   댓글달기 | URL
영혼에도 얼굴이 있다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저 사람의 영혼은 어떤 이미지일까 상상해보기도 하죠. 육체의 나이를 거스르는 미묘하고도 신비로운 아우라가 느껴져 궁금해지는 사람이 있거든요.
시대마다 시간을 따라 달라지는 미의 기준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기 위해 중요한 것은 자존감과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약간의 잘난 척^^;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나를 어여삐 여기지 않으면 누군들 아름답게 여기겠냐며, 이 정도면 그런대로 썩 나쁘진 않다며ㅎㅎ

cyrus 2016-06-25 16:07   URL
정말 좋은 말씀하셨습니다. 상대방의 외모를 평가하는 사람들은 남의 외모를 자신이 소유한 것처럼 말합니다.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외모를 보면 마음에 안 든다는 식으로 불평을 드러냅니다.

북깨비 2016-06-25 06:33   댓글달기 | URL
단시간내에 목적을 이루려는 성급한 마음에 한표 던집니다. 내면의 미라는 것이 가꾸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릴 뿐더러 상대가 발견하는데도 만만찮은 시간이 소요되니 안타깝지요. 위에 나비종님 댓글처럼 영혼에도 얼굴이 있다면 좋겠어요. 그냥 척 보고 알 수 있게. 설마 제 영혼의 얼굴이 육신의 얼굴보다 못할 리.. ㅡ_ㅡ;; 영혼의 얼굴은 그냥 없는게 나을까요..

cyrus 2016-06-25 16:11   URL
맞습니다. 외모 가꾸기를 과하게 시작하면 일단 건강이 악화될 수 있습니다. 근육 만드는 운동도 심하게 하면 근육이 망가지는 심각한 병이 생길 수 있다고 합니다. 다이어트를 한다고 해서 금식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잘못 하면 식이조절 장애에 시달릴 수 있고, 지나친 금식은 통풍을 유발합니다. 금식도 통풍의 원인이 됩니다. 굳이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외모를 가꾸고 싶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