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에 대구 도시철도 3호선이 개통했다. 국내 처음 지상으로 운행되는 무인 모노레일이다. 모노레일을 직접 타봤는데 탁 트인 시야에,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승차감도 좋았다. 도시철도 3호선을 타면 1시간 이상 걸리던 거리를 40분 만에 이동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기관사 없이 운영되는 전동차에 안전사고가 일어나면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차량을 불연재로 제작했고, 화재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물이 분사되는 소화설비가 갖춰졌다고 하더라도 약간은 불안감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모노레일 구간은 대략 10m 정도 높이가 되는 지상에 만들어져 있다. 이제는 어딜 가면 도로 한가운데 수직으로 우뚝 솟아있는 모노레일 구간을 볼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모노레일 구간이 놓인 도로가 낯설다. 길을 지나가다가 모노레일이 지나가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그쪽으로 향한다. 모노레일이 지나가지 않을 때 바라보는 모노레일 구간은 땅에 박힌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 같다. 모노레일이 없었던 예전 도로의 모습을 지금의 모습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점을 느낄 수 있다. 도로 한가운데에 일렬로 쭉 세워진 구간 기둥이 건너편 보도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방해한다.

 

나는 버스를 타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기보다는 유리창 밖으로 펼쳐지는 도시 풍경을 본다. 버스를 타고 창밖 풍경을 쳐다보는 일이 즐겁다. 버스를 타다가 괜찮은 가게를 우연히 발견할 때가 있다. 도심을 조금 벗어나 교외로 접어들면 도시에서 볼 수 없는 고요하고 아늑한 전원 풍경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모노레일 구간이 생기면서부터 버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도시 풍경을 감상하기가 힘들어졌다. 내 눈에는 거대한 기둥이 풍경의 절반을 가린다.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는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답답하게 느껴진다. 대구 도시철도 관계자는 모노레일을 타면 경치 좋은 곳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을 설치하고, 도심 관광지를 한눈에 둘러보는 관광 프로그램을 만들 예정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버스 이용에 익숙해서인지 모노레일을 타면서 바깥 풍경을 즐기는 것이 낯설다. 버스처럼 좌석에 앉아서 창밖으로 편하게 보는 것을 좋아한다. 3호선 모노레일을 포함한 지하철 좌석은 중앙 통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서로 마주 보도록 배치되었기 때문에 창밖 풍경을 보기가 불편하다. 지하철 풍경을 제대로 즐기려면 지하철을 서서 타야 한다.  

 

 

 

 

 

 

 

 

 

 

 

 

 

 

 


 
일본 도쿄에 가면 지상 모노레일을 볼 수 있다. 히요리게다를 신고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던 작가 나가이 가후가 도쿄 시가지를 지나가는 모노레일을 봤다면 어떤 심정으로 글로 기록했을까? 하늘을 나는 것 같은 열차가 신기하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예전 도시 외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낯선 문명으로 변해버린 도쿄의 모습에 엄청난 충격에 빠졌을 것이다. 가후는 도시 아무 곳이나 자라나는 풀과 나무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것들도 도시 외관을 아름답게 만드는 풍경의 일부로 보았다.

 

 

일본이 이 땅에서 자라는 고유 식물에 대해 최소한의 심오한 애정이라도 갖고 있다면, 아무리 서양문명을 모방한다 할지라도 오늘날처럼 고국의 풍경과 건축을 함부로 훼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선을 잇는 데 불편하다는 이유로 아무 거리낌 없이 길가의 나무를 베고, 사랑받아온 풍광이든 유서 깊은 나무든 전혀 개의치 않고 붉은 벽돌집을 높다랗게 지어버리는 오늘날 작태는 실로 자국의 특색과 예부터 계승해온 문명을 뿌리부터 파괴하는 난폭한 행위다. (나가이 가후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 중에서, 48쪽)

 

 

가후가 걸어 다니면서 바라봤던 백 년 전의 도쿄는 서양문명을 모방하려고 과거의 미를 난폭하게 훼손하고 있었다. 가후는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원제: 히요리게다 / 정은문고, 2015)을 통해 도시가 발달할수록 자연 풍경의 미를 소중히 보존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도시 속 자연 풍경도 도시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랜드마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자연 풍경이 점점 사라지면 도시는 예전 모습을 되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한가롭게 걸으면서 풍류를 즐기는 자세마저 잊어버리게 된다. 가후는 산책의 미학을 아는 최후의 도시인이었다. 요즘 길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다. 자동차다. 도심을 걸어보면 수많은 신호등이 사람의 보행을 방해한다. 바퀴를 위한 길들은 넓고 단단하다. 목적지에 일찍 도착하기 위해서 땅 밑으로 지나가는 지하철을 이용한다. 발바닥을 위한 길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법정 스님도 개발 도상이 한창이던 시절에 시골의 정취가 사라지고, 보행의 반경마저 좁아지는 세상의 변화를 걱정했다. 《무소유》(범우사, 1999)에 수록된 ‘흙과 평면 공간’이라는 제목의 경수필은 1972년 중앙일보에 발표되었다. 스님에게 걷기는 단순한 몸의 동작이 아니라 활발한 사고 작용이 이루어지는 행위다. 즉 걷기는 온몸으로 표현되는 ‘생각하기’에 가깝다. 스님은 ‘수직 공간’에 속하는 아파트와 엘리베이터가 보편화할수록 우리 삶은 편리하게 되지만, 탁 트인 ‘평면 공간’을 걸으면서 흙의 기운을 느낄 기회가 사라진다고 말한다.

 

문명이 편리해지고 좋아지면, 흙과 평면 공간은 잃어버리게 된다. 바퀴에 의지하지 않고 살던 시절 사람의 발가락은 돌과 자갈, 흙길의 촉감을 느낄 줄 알았고, 눈으로 자연 풍경을 확인해야 마음이 편안했다. 지상 모노레일이 전국에 개통된다면 스님이 불편하게 여겼던 현대 문명의 ‘수직 공간’이 도시를 지배하게 될 것이며 도시를 산책할 기회가 우리 삶에 더 멀어질 것이다. 두 발로 걸을 때 머리와 가슴은 자유로워진다. 걷기는 발바닥을 위한 아니, 가슴과 머리에 이로운 건전한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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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4-25 19:41   댓글달기 | URL
풍경도, 냄새도, 소리도 점점 미워져서 걷기보다 어서 차를 타고 빨리 들어가자 하는 여러 날이라 참 공감됩니다
 
작가란 무엇인가 1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파리 리뷰 인터뷰 1
파리 리뷰 지음, 권승혁.김진아 옮김 / 다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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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찬의 단편소설 『신성의 집』(1991년, 《문학사상 12월호》)에서 주인공의 직업은 소설가다. 주인공은 문학이 예전보다 영향력이 떨어졌다고 한탄한다. 과거에 문학은 인간의 외경이 만들어내는 신비스러운 감각을 지닌 ‘신성’으로서의 예술이었다. 많은 사람들(독자)은 문학이 스스로 발하는 신성한 빛을 믿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로 들어서면서부터 소설은 ‘화장을 잘해야 팔리는 상품’으로 전락했고, 작가는 잘 팔릴 수 있는 상품을 만들려고 머리를 굴리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 소설이 나온 지 십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문학의 현실은 어떠한가. 한국문학은 이제 점차 소멸하는 장르가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5개월째 한국문학은 베스트셀러 20위권 안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소설이 통 팔리지 않는다. 한국문학의 침체 현상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독자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작가들의 역량 부족부터, 급격한 사회변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현상이란 분석까지 다양한 진단들이 나온다. 시베리아 기단과 북서풍이 만나면 우리나라에 혹독한 한파가 찾아오듯이 경기침체와 도서정가제는 이미 차갑게 얼어붙은 국내 출판시장에 한파가 되어 찾아왔다. 기대했던 것과 달리 도서정가제는 시장의 한파가 되었고 밖으로 나와 서점을 찾는 독자의 발길이 줄어들고 있다. 도서정가제 한파는 독자의 지갑마저 얼어붙게 하였다.

 

하지만 국내 작가의 소설이 팔리지 않는 현상만 가지고 소설의 위기까지 말하는 것은 난센스다. 정확히 말하자면 ‘독서의 위기’라고 하는 것이 옳다. 국내 작가의 소설이 독자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는 상황은 출판시장 안쪽에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문학을 농락하고 교살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를 주도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공교롭게도 한때 책을 좋아했던 독자,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린 영화의 인기가 높고 24시간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즐기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영화와 인터넷이 문학으로 향할 독자의 발길을 빼앗고, 드라마와 웹툰이 문학적 감동을 대체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게다가 요즘 세상은 소설보다 한층 재밌다. 자고 일어나면 기상천외한 사건이 하나씩 일어난다. 세상 자체가 박진감 있게 변화한다. 세상의 변화 자체가 허구보다 더 짜릿하기에 굳이 소설을 찾을 필요가 없다. 누군가는 소설을 읽는 것을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허구적 요소로 이루어진 소설을 읽어봤자 지식을 습득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편견을 가진 사람들도 많아졌다. 이런 부정적 인식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소설의 위기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어 왔다.

 

이쯤 되면 소설이 벼랑 끝에 몰려 있다는 점을 감지했을 것이다. 발터 벤야민은 “미래의 문맹자는 글자를 못 읽는 사람이 아니라 사진을 못 읽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야기의 전달을 시각적 이미지에 의존하는 시대에 텍스트에만 의존하는 사람은 문맹자로 전락하고, 이미지의 홍수에 떠밀려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과연 소설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세계적인 작가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파리 리뷰’의 인터뷰집 《작가란 무엇인가 1》를 읽으면서 소설이 살아남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일단 소설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불식하기 위해서는 소설을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학창시절 국어 시간에 소설을 이렇게 배웠다. 사실 또는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허구적으로 꾸민 문학 양식이며 배경과 등장인물의 행동, 심리 따위를 통하여 인간의 모습이나 사회상을 드러낸다. 그런데 인간의 기억력은 비범한 두뇌를 가지지 않는 이상 뛰어난 수준이 아니다. 우리는 소설의 정의를 제대로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허구적 이야기’로만 기억하고 있다. 사실에 없는 일을 사실처럼 꾸며 만드는 것이 바로 허구다. 이렇다 보니 우리는 소설을 ‘조작’, ‘허위’, ‘거짓’에 가까운 의미로 인식한다. 소설의 허구성은 단순히 거짓말로 이해해서는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소설의 가치를 폄훼하는 수단으로 변질하였다. 우리는 어떤 것을 지어내거나 거짓말하는 인간의 행위를 가리켜 ‘소설을 쓰다’라는 말한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부정행위를 끝까지 숨기려 하거나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을 때 우린 그들에게 ‘소설 쓰지 마라’고 비난한다. 소설과 거짓말은 이렇게 오랫동안 불편한 동거를 했다. 작가 입장에서는 소설이 무시당하는 상황에 자존심이 상한다. 무라카미 하루키토니 모리슨처럼 매일 새벽 네다섯 시에 일어나 소설을 쓰는 작가의 노력도 무시하는 꼴이 된다. 작가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세상에서 가장 긴 분량의 거짓말을 만드는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여전히 소설을 사실과 거리가 먼 허구적 이야기, 거짓말로 치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폴 오스터의 말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 오스터는 작가가 지녀야 할 자부심이 무엇인지 독자에게 제대로 각인시킨다.

 

 

소설은 허구입니다. 따라서 (그 용어의 엄밀한 의미에서 보자면) 소설은 거짓을 말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소설가는 거짓을 통해 세상에 관한 진실을 말하려고 애를 씁니다. (《작가란 무엇인가 1》 중에서, 165쪽)

 

 

움베르토 에코는 거짓말을 인간의 고유 능력이라고 말한다. 이런 능력을 악의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아서 문제지만, 거짓말은 인간의 창작 활동에 절대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만약에 나에게 작가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맛있는 빵을 소설로, 제빵사를 작가로 비유하면서 독자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열심히 만드는 제빵사라고 대답하고 싶다. 거짓말은 효모와 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 빵, 맥주를 만드는 데 유용한 효모와 식품을 부패시키는 효모도 있다. 제빵사는 착한 효모로 먹음직스러운 빵을 만들듯이 작가는 창작에 유용한 거짓말을 원고지 속에 발효시켜 세상의 진실을 듬뿍 담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독자는 작가가 만든 건강한 이야기인 소설을 맛있게 읽으면 된다. 작가는 맛있는 소설을 써야 한다. 맛있는 소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낯선 조합에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라. 우리는 빵이 맛있어서 먹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소설이 재미있어서 읽는다. 결국, 맛있는 소설이란 독자를 사로잡아 이야기의 매력에 푹 빠지게 한다. 필립 로스는 맛있는 소설은 무엇이며, 맛 좋고 정신 건강에 좋은 소설의 매력을 아는 최고의 독자가 누구인지 알려준다.

 

 

제가 원하는 것은 독자들이 제 소설을 읽을 때 소설에 푹 빠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다른 작가들이 하지 못하는 그런 방식으로 독자를 사로잡고 싶습니다. 그러곤 그들을 소설을 읽기 전의 그들 그대로, 그들 외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바꾸고 설득하고 유혹하고 조절하려고 애쓰는 그런 세상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겁니다. 최고의 독자는 이런 소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소설이 아닌 다른 모든 것에 의해 결정되고 둘러싸인 의식을 풀어주기 위해 소설의 세계로 오는 사람들입니다. (《작가란 무엇인가 1》 중에서, 279쪽)

 

 

소설의 세계는 작가가 지어낸 가공의 세계가 아니다. 그곳은 세상 혹은 그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어떤 면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거대한 진실의 거울이다. 독자는 이곳을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보지 못했던 깊은 진실의 자리를 탐사한다. 텍스트가 재현하고 있는 세계의 현실 속에 독자가 발견하는 것은 사회의 모순일 수도 있고 본능의 진실이거나 영혼의 전율일 수도 있다. 작가는 자기의 진실한 체험, 사상, 느낌을 녹여 전달하고 독자들은 여기에 정서적 반응을 보인다. 즉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 자신이 생각하는 인생이나 현실 세계를 발견하면 기뻐하고, 자기 삶에도 당당한 의미가 있음을 작품을 통해 확인하며 안도한다. 또 일반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세계관이나 인생관을 만나면 놀라거나 분노한다.

 

세상이 빠른 속도로 변화할수록 독자들의 관심이 문학에서 멀어져 가는 현상은 심화될 것이다. 이런 변화의 흐름 속에 작가는 독자의 흥미를 돋는 새로운 서사의 문법을 만들기 위해 고심한다. 그 중에 문학적 상상력을 더욱 깊고 넓게 하여 변화한 시대상을 제대로 담아내려는 노력을 꾸준히 하는 작가들이 있을 것이며 반면 저속함과 상업성에 굴복하는 사이비 작가도 나올 것이다. 소설의 위기설이 나돌더라도 작가는 자신이 소설을 써야 할 의미, 작가로서의 존재 이유를 자문해야 한다. 자신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작가는 좋은 소설을 써낼 수가 없으며 소설을 읽지 않는 독자들 앞에 위축되고, 불행해질 수 있다. 오스터는 작가의 작업에 동감하고, 소설을 훌륭하게 만들기를 원하는 사람이 작가가 믿을 만한 독자라고 말한다. 진정한 독자는 소설이 어떤 세계보다도 흥미롭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소설의 위기는 기우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그 소명을 다 한 것인지 이에 대한 논의는 전문가들의 몫이므로 그쪽으로 넘기자. 일단 우린 작가가 만든 소설의 세계를 믿고 즐기면 된다. 물론 맛있는 소설과 맛없는 소설을 구분하고, 칭찬과 비판을 아끼지 않는 자격을 갖추는 것은 당연하다. 명쾌한 해결책은 나올 수 없지만 《작가란 무엇인가》 시리즈를 읽으면 어느 정도 실마리를 발견하지 않을까 싶어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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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4-25 03:08   댓글달기 | URL
미래의 문맹자는 글자를 못 읽는 사람이 아니라 사진을 못 읽는 사람이 될 것” 이라는 말을 벤야민이 했군요. 전 진중권이 말한 줄 알았습니다. 진중권이 인용한 문구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21세기는 벤야민`인 것 같습니다.

cyrus 2015-04-25 17:38   URL
벤야민의 글을 읽으면 미래사회를 예견하는 통찰력에 놀라게 됩니다.


Stella.K 2015-04-25 10:42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나도 작년에 읽었는데 리뷰 쓸 엄두가 안 나더군.
게을러서 시기를 놓쳐버린 걸까? 아무튼 좋긴 했어.

소설이 그렇게 폄훼되지 않더라도 소설은 여러모로 불리한 태생을
지녔다는 생각이 들어. 지난 목요일 로쟈님의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강의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군.
많은 독자들이 소설을 일종의 유희로 읽는다는 거지.
하지만 쿤데라나 로버르트 무질 같은 사람은 소설을 인식론의 경지까지
끌어 올린 사람이야. 그래서 좀 어렵지.
난 속으로 그렇지. 소설이 언제까지 그렇게 하찮게 봐야하는 거냐고 나름 긍지 같은 걸
가져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어려운 책은 나부터도 꺼려지거든.
유희를 생각하면 소설을 읽느니 영화를 보는 게 나을 것도 같고.ㅠㅠ

cyrus 2015-04-25 17:45   URL
누님 말씀을 듣고 보니 소설을 쓰는 작업도 시를 쓰는 작업 못지않게 힘든 것 같습니다. 독자가 읽을 수 있게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들어도 그런 소설로 인해서 문학이 가벼워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반면에 조이스나 무질처럼 기존의 소설을 뛰어넘는 실험적인 창작을 시도하면 문학을 너무 어렵게 만들어서 독자들이 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5개월째 베스트셀러 순위에 한국소설이 단 한 권도 없다는 뉴스를 보면서 쓸데없이 많은 생각을 했어요. 저는 외국소설을 너무 선호하는 편이라서 한국문학의 위기를 운운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소설을 읽는 것 자체를 천박하게 여기는 풍조는 이해할 수 없었어요. 아무튼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

conviction 2015-04-25 17:09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느 행성의 탄생같은 글들, 감성과 지성의 교차가 끈끈히, 잘 얹혀진 글을 읽습니다. 부럽습니다.

cyrus 2015-04-25 17:48   URL
과찬의 말씀입니다. 알라딘에서 다른 분들의 글을 읽으면서 많이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 - 가후의 도쿄산책기
나가이 가후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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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길을 직접 걸어가는 도보여행을 좋아하는가 아니면 비행기를 타고 창밖 바깥 풍경을 내려다보는 여행을 좋아하는가. 짧지 않은 길이지만 사색을 하며 걷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여행이 된다. 온몸이 욱신거릴 만큼 고단한 도보여행을 통해 높은 정신의 경지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반면에 비행기 여행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멀리멀리 유랑하는 꿈은 생각만 해도 설렌다. 구름 위에서 바라보는 드넓은 대기의 풍경과 고도에서 바라보는 대지의 모습은 비행기에서만 볼 수 있는 멋진 풍경이다.

 

발터 벤야민은 텍스트를 이해하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서 도보여행과 비행기여행을 비유로 든다. 텍스트를 읽는 행위를 비행기를 타고 가는 사람이라면, 텍스트를 베껴 쓰는 행위는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다. 비행기를 탄 사람은 풍경에 길이 어떻게 뻗어나 있는지 볼 뿐이다. 그 사람의 눈에는 거대한 전경이 들어올 뿐이다. 전경을 내려다보는 방식은 텍스트를 죽 눈여겨보는 것과 같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자신과 세상 사이에 놓인 길을 가볍게 보지 않는다. 고불고불 작은 길목에 사람들의 사연이 쌓인다. 길에는 마을의 역사가 녹아들고, 이 길을 찾은 낯선 이에겐 새로운 풍경을 선사한다. 이런 풍경은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저절로 마음이 편해진다. 벤야민은 길을 걷는 사람만이 길의 영향력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공간을 빚어내는 사소한 풍경에 몰입하면 마음이 정화된다. 텍스트를 베껴 써야지만 텍스트에 몰두할 수 있다. 텍스트는 텍스트에 몰두하는 사람에게 명령을 내린다. 그 순간, 텍스트를 눈으로 읽음으로써 파악하지 못했던 매력을 실제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가이 가후는 100년 전 도쿄의 풍경을 완벽하게 베끼는 데 성공한 유일무이한 작가다. 『히요리게다(目和下駄)』는 가후가 텍스트의 풍경들로부터 명령을 받아 작성된 책이다. ‘근대화’라는 거대한 너울을 뒤집어쓴 제국주의가 도쿄 땅을 덮치고 있을 무렵에 가후는 근대화의 그림자에 가려질 위기에 처한 에도 시절의 흔적을 꼼꼼하게 기록한다. 가후가 산책하기 전에 반드시 하는 절차가 있다. 히요리게다라는 일본식 나막신을 신어야 하며 맑은 날씨에도 박쥐우산을 들고 다녀야 한다. 가후는 한결같은 복장을 고집하면서 도쿄 구석구석을 어슬렁어슬렁 걷는다. 생소한 거리를 지나가기 위해서는 지도가 있어야 하는 법. 그렇지만 가후는 현대식 축적법과 지도기호가 있는 도쿄 지도가 아닌 옛날 에도 지도를 품에 넣고 다닌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도쿄 지도는 기하학이며 에도 지도는 무늬다. 도쿄 지도는 옛 지도보다 정확하지만, 기호와 축적을 표시하는 숫자는 지도 보는 맛을 떨어뜨린다. 에도 지도는 벚꽃이 피는 곳까지 알려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정확성은 떨어져도 지도를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  이미 사라지고 이름만 남은 옛 도쿄의 흔적은 세상 풍진으로 인해 퇴색된 빛바랜 무늬와 비슷하다. 가후는 오늘날 도쿄 거리 모습과 옛 도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에도 지도와 직접 대조한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한때 아름다웠고 흔했던 에도 도쿄의 무늬를 복원하려고 노력한다.

 

가후는 자신이 목격하고, 발견한 에도 도쿄의 아름다운 무늬(이미지)를 텍스트화해서 베껴 옮긴다. 사당, 나무, 골목, 공터 그리고 이름 모르는 가난한 서민들의 삶까지 텍스트로 변하는 풍경이 된다. 그렇지만, 풍경들은 가후에게 명령을 내리기 전에 너무나도 빨리 사라져버린다. 근대화의 그림자는 낡은 에도 시절을 상징하는 것들을 덮치고, 심지어 도쿄 시민에게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해주었던 나무들마저도 위태롭다. 그 자리에 서양식 건물이 들어서고, 여기에 어울리는 서양 나무가 심어진다. 유럽에 체류한 적이 있는 가후는 도쿄마저 이국땅처럼 변하는 과정을 무척 안타까워한다. 가후가 바라보는 에도 도쿄의 무늬는 과거에 대한 추억으로 채색되어 있다. 옛것이 사라지면 추억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어제의 꽃도 오늘은 꿈’이 되는 덧없는 세상의 이치 앞에 가후는 비애에 잠긴다.

 

여행은 텍스트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텍스트를 읽으면서 느낄 수 없는 현장의 분위기를 행을 통해서 체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적은 주위 사방의 지형과 풍경을 함께 둘러보아야 그 참모습을 명쾌하게 인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저장용량이 많은 컴퓨터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여행의 잔상은 하나둘씩 사라진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우리보다 똑똑한 스마트폰으로 현장의 모습을 사진으로 저장하여 오랫동안 기억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당신이 사진으로 여행의 참모습을 찍는 순간, 아우라는 사라져버린다. 사진은 더 이상 흉내 낼 수 없는 정서적 분위기가 사라져버린 복제된 무늬에 불과할 뿐이다.

 

만약에 가후가 박쥐우산 대신에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고 상상해보자. 『히요리게다』는 텍스트만 있는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텍스트와 이미지가 혼합된 ‘감상하는 책’이 되었을 수도 있다. 사진으로만 남아있는 100년 전의 도쿄 풍경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선보인 『히요리게다』는 ‘감상하는 책’이다. 에도 도쿄의 흔적을 전혀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책 뒷부분에 부록으로 가후가 걸어 다녔던 지명을 소개한 지도와 사진이 실려 있다. 부록 덕분에 독자는 100년 전 그가 걸었던 가후의 도쿄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독자가 느끼는 일반적 감상(感想)이다. 『히요리게다』를 읽으면서 느껴야 할 진짜 감상(感想)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가후가 거리를 산책하면서 홀로 느꼈던 감상(感傷)이다. 서양식으로 변하는 도쿄를 바라보면서 느꼈을 가후의 비애감. 텍스트로 변신하고 싶은 풍경이 내린 명령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어야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아우라다. 시간의 바람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풍경들이 기사회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텍스트로 변신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들을 기록해줘야만 한다. 이들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적임자가 바로 가후다.  

 

유려한 번역문에 이를  이미지가 있다고 한들 우리는 『히요리게다』를 지배하는 슬픈 아우라를 복원할 수도 없고, 제대로 느낄 수 없다. 『히요리게다』를 감명 깊게 읽은 도쿄 사람들도 가후처럼 도쿄를 산책한다고 해서 100년 전 가후의 심정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벤야민이 말한 대로 원본에 있는 아우라를 복제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도 도쿄 내부에 에도 시대를 떠올릴만한 옛것이 남아 있다고 해도 수없이 지나가 버린 세월의 변화를 무시할 수 없다. 어제의 꽃은 오늘의 꿈이 되기보다는 레테의 강(망각의 강)을 건너면서 허무하게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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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04-23 23:09   댓글달기 | URL
사야겠네요^^;;;

cyrus 2015-04-24 13:07   URL
책의 목차를 직접 훑어보신 후에 구매를 결정하시는 것이 낫습니다. 저는 에도 도쿄의 풍경을 묘사하는 내용이 조금은 낯설었습니다. ^^;;

야나 2015-04-23 23:14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제 읽기 시작해서 리뷰는 나중에 읽겠습니다. 일단 좋아요~ 꾸욱~

cyrus 2015-04-24 13:08   URL
책은 직접 읽어본 후에 좋은지 안 좋은지 판단하는 것이 좋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4 04:10   댓글달기 | URL
캬. 리뷰 좋군요. 확실히 발터 벤야민`은 소설가가 되었어도 대성공했을 겁니다. 정말 아쉬운 죽음입니다.

cyrus 2015-04-24 13:11   URL
가후가 산책예찬론자라서 벤야민이 자동적으로 떠올렸습니다. 저도 벤야민의 죽음을 아쉽게 생각해요. 미국 망명이 성공했으면 아케이드 프로젝트가 완전체로 완성되었을 겁니다.

transient-guest 2015-04-24 06:34   댓글달기 | URL
멋지 리뷰네요. 저는 아직 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가이 가후의 책은 그전에 묵동기담을 읽었는데, 다른 제목으로도 나와있네요.

cyrus 2015-04-24 13:14   URL
책에 대한 guest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묵동기담>도 읽어보려고 합니다. ^^

붉은돼지 2015-04-24 09:05   댓글달기 | URL
요즘 도서구입 지출이 많아 이 책은 관심은 가지만 패스할려고 했는데..
..`책성애자`(ㅎㅎㅎ) 님의 리뷰를 읽어보니 이것도 사야할 듯 합니다. ㅎㅎㅎ

cyrus 2015-04-24 13:19   URL
책의 목차나 뒷편에 해설을 읽어보신 후에 구매를 결정하셔도 좋습니다. 가후의 글은 꾸밈이 없어서 담백하게 느껴집니다. 그냥 자신이 봤던 도쿄의 모습을 상세하게 기록합니다. 이렇다 보니 백년 전의 도쿄 풍경을 묘사한 내용이 낯설어서 조금은 지루했어요. ^^;;

2015-04-24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24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24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이바 2015-04-24 13:52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입니다. 제목부터 <어제의 꽃이 레테의 강으로 떨어진다>니 cyrus님의 문장력이 놀랍습니다. 책에 대한 흥미를 넘어, 제가 그 감성에 젖어드네요...

cyrus 2015-04-24 14:05   URL
겉멋만 잔뜩 낸 글인데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쓴 서평보다 책이 더 좋습니다.

해피북 2015-04-24 18:09   댓글달기 | URL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 `나가이 가후`라는 이름이 언급되서 이 책이 떠올랐어요 글을 읽으니 함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했는데 낯선 지명들이 자주 등장한다니 cyrus님 말씀처럼 함 살펴보고 결정해야겠어요^~^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ㅋㅡㅋ,

cyrus 2015-04-24 21:34   URL
좋은 글이지만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이질감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고요. 에세이 한 편 분량이 길지 않으니까 마음에 드는 글을 골라서 천천히 읽으시고 구매를 결정하셔도 좋습니다. ^^
 

 

 

 

MID출판사는 신간도서를 출간할 때마다 서평단 모집을 합니다. 운이 좋아서 이곳 출판사 서평단에 몇 번 선정된 적이 있습니다. 신간 또는 과학도서에 관심이 많은 이웃님이 있을까봐 제가 직접 출판사 홈페이지에 있는 서평단 공지사항을 복붙(복사하기+붙여넣기)했습니다. 제가 원래 이런 일을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 성격인데 이웃님들도 서평단 활동 혜택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 정보를 알려봅니다. 출판사 회원으로 가입해야만 신청 댓글을 달 수 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당부합니다. 스크랩을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스크랩을 한다고해서 여러분도 스크랩을 하는 불필요한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출판사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신청 댓글만 달면 됩니다, 뭐 굳이 스크랩을 하고 싶다면 복붙하셔도 됩니다. 홍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출판사 입장에서는 개이득이니까요...)

 

회원 가입을 귀찮더라도 해주시면 좋아요. 출판사 회원에 가입하면 서평단 모집 공지사항을 이메일로 받을 수 있으니까요. 서평단 신청사유를 성심껏 써야 선정될 확률이 높습니다. 진지하게 썼음에도 불구하고 선정되지 못한다면 제가 여러분들을 위해 책임을 지겠습니다라고 말할 줄 알았죠? 아쉽겠지만, 다음 기회에...

 

 

MID출판사 서평단 모집 링크

(여기를 클릭하세요! 그런데 북플에서는 링크 클릭이 불가능합니다. )

 

 

 

 

 

사이언스칵테일_홈피배너.jpg

 

 

 

 

여러분 안녕하세요!

벚꽃은 벌써 지고, 여름이 다가오나 싶을 정도로 따뜻한

4월 21일, 오늘은 '과학의 날'입니다.



과학의 날을 기념하여 각종 행사들이 열리고 있는데요!

MID에서는 과학의 날을 기념해 강석기 작가님의 신간,

<사이언스 칵테일>의 서평단을 모집하려고 합니다!



<과학 한 잔 하실래요?>, <사이언스 소믈리에>, <과학을 취하다 과학에 취하다>에 이어

<사이언스 칵테일>까지. 이제 강석기 작가님의 과학카페 시리즈도 벌써 네 권째!

시리즈가 늘어날수록 나날이 발전해가는

작가님의 글솜씨를 이번 책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는데요,

서평단 신청하시고 최신의 과학 이야기를 시사와 엮어 풀어내는

강석기 작가님의 실력을 다시 한 번 느껴보세요 :)


 


이번 <사이언스 칵테일>에는 에볼라와 위밴드 수술 등의 핫한 시사내용을 다루고 있는데요,

그 외에도 깨알같은 과학지식들을 쉽게 접하실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아래에 목차를 첨부하니 확인해 주세요 :)

 

 

 

PART 1 핫이슈
1-1 1976년 에볼라 역병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1-2 잘 되면 제 탓, 못 되면 엄마 탓?
1-3 위를 줄인다고 비만이 해결될 수 있을까?
1-4 회춘은 과학이다!
1-5 새로운 DNA염기쌍 이용하는 생명체 탄생!

PART 2 건강/의학
2-1 근육예찬
2-2 젖가슴, 자연사와 부자연사
2-3 단식의 과학
2-4 해장술은 정말 숙취해소 효과가 있을까?
2-5 동면의 과학

PART 3 식품과학
3-1 커피는 정말 피부의 적일까?
3-2 글루텐을 위한 변명
3-3 사카린은 설탕을 대신할 수 있을까?
3-4 사과 다이어트 효과는 프리바이오틱스 작용 때문
3-5 맥주에서 ‘소독약 냄새’가 난다고?

PART 4 인류학/고생물학
4-1 고古게놈학 30년, 인류의 역사를 다시 쓰다
4-2 호모 하빌리스, 당신은 누구인가?
4-3 존재의 이유, Y염색체의 경우
4-4 요즘 아이들은 왜 이렇게 클까?
4-5 50년 미스터리 공룡 데이노케이루스 실체 드러났다

PART 5 심리학/신경과학
5-1 악몽과 개꿈의 과학
5-2 샤넬 No.5는 염소 페로몬에서 영감을 받은 향수일까?
5-3 기억과 망각의 철학과 생명과학
5-4 우리가 정말 행복했을까?
5-5 뇌는 정말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구별하지 못할까?

PART 6 문학/영화
6-1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진실은 어디까지?
6-2 뇌전증(간질)의 과학
6-3 태양보다 150배 더 무거운 별이 있을까?
6-4 휴머노이드, 에이바가 아닌 헬렌을 꿈꾸며…
6-5 양자역학 도약 이끈 슈뢰딩거방정식은 간통 덕분?

PART 7 물리학/화학
7-1 태양계에서 고리를 지닌 다섯 번째 천체 찾았다!
7-2 바나나 껍질을 밟으면 미끄러지는 이유
7-3 우리 몸에 없어서는 안 될 스물여덟 가지 원소는?
7-4 수영장에서 ‘쉬’하지 마세요
7-5 아세요? 암모니아 합성에 인류 에너지의 2%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PART 8 생명과학
8-1 해면의 진실
8-2 제비가 인가(人家)에 집을 짓게 된 사연
8-3 생쥐를 너무 믿지 마세요
8-4 물고기 복지에 대한 고찰
8-5 2014 노벨생리의학상은 노르웨이 퀴리 부부에게

Appendix 과학은 길고 인생은 짧다

 

 


 

이번에도 서평단은 총 30분을 모십니다!
모집기간은 오늘(4월 21일)부터 4월 26일까지이며,
발표는 4월 27일에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우수서평은 5월 4일까지 서평을 남겨주신 분들 중 선정할 예정이며,
서평의 기한은 5월 9일까지로
서평단 분들은 이 기한 내에 서평을 남겨주시길 바랍니다!

서평단 신청시에 명심하셔야할 아래 내용! 꼭 확인하세요 :)



<사이언스 칵테일>의 서평단으로 선정되신 분들은

1) <사이언스 칵테일>의 증정본을 무료로 받으시고,

2) 배송받으신 도서를 즐겁게 읽고 느낀 내용을
인터넷 서점(교보문고,YES24,알라딘,인터파크 등)과
개인 SNS(블로그,페이스북,트위터 등) 중 2개에 글로 남겨주시고,

3) 서평단 선정작업이 끝난 이후 만들어질 서평 완료 알림페이지에
서평의 완료사실을 알려주시면 됩니다.
 

서평완료 사실을 알려주시면 엠아이디에서는
4) 우수서평자의 서평을 엠아이디의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등에 노출시키고,

5) 우수서평자 중 두 분을 선정하여
엠아이디의 출간도서나 다음에 출간될 도서(선정자가 선택)
1부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청하실 분들은 아래 내용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비회원인 분들은 먼저 회원가입을 해주세요)

1. 이름
2. 휴대폰번호
3. 이메일 주소
4. 우편번호+주소
5. 서평단 지원 사유
6. 기존의 서평 링크(있을 경우에만, 없다면 개인 SNS 링크)


* 우수서평자는 도서배송 이후, 5월 4일까지 서평을 완성해 주신 분들을 기준으로 선정하겠습니다. 서평은 5월 9일까지 완성해 주셔야 차후 불이익을 받지 않으니 이 점 숙지해주시기를 바랍니다.

** 서평단은 선착순이 아니라 기존의 서평활동 참가 기록과 지원사유를 잘 적어주신 분들을 기준으로 선정합니다 :)

*** 엠아이디에 <한국의 전통과자>의 서평단으로 참가하셨으나 서평을 남기지 않으신 분들은 죄송하지만 이번 서평 이벤트에 참가하실 수 없습니다.

서평단 참여 후 서평기간 (5월 9일) 안에 서평을 남기지 않으신 회원님께서는 차후 서평단 참여가 1회 제한되며, 3회 이상 도서를 제공받고 서평활동을 하지 않으신 분들은 앞으로 서평단 활동 참여가 불가능하니 이 점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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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다이제스터 2015-04-22 18:15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transient-guest 2015-04-23 02:08   댓글달기 | URL
저는 해당사항이 없지만, 많이 도전해보시면 좋겠네요.ㅎㅎ
 

 

 

 

 

 

 

 

 

 

 

 

 

 

 

 

 

신부의 얼굴은 완전히 그늘 속에 잠겨 있으나, 그의 뒤로부터 저물어 가는 햇빛이 그의 움푹 팬 관자놀이와 두개고의 곡선을 감촉했다. (173쪽)

 

⇒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나오는 문장을 인용한 내용. '두개고'를 '두개골'로 고쳐야 한다.

 

 

스티븐은 또한, 교장의 성의(聖衣)의 스치는 소리를 듣는데, 이는 도란 신부와 그의 회초리에 대한 초기의 장면을 반영한다. (173쪽)

 

⇒ '교장의 성의가 스치는 소리를 듣는데'라고 고쳐야 한다.

 

 

 

 

 

 

졸라 작의 『결작』에서 센 강의 풍경 묘사와 비교하라 (175쪽)

 

⇒ 괄호에 들어있는 문장이라서 읽는 과정에 그냥 지나치기 쉽다. 『L'Œuvre』은 프랑스 자연주의 소설가 에밀 졸라가 쓴 루공마카르 총서 6번째 작품이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작품', '걸작'이다.

 

 

 

 

 

 

조이스의 이전 - 작가인 도스토옙스키는 그의 『백지』에서 당나귀의 울음소리를 "가청적 에피파니"로, 조이스의 이후 - 작가인 카뮈는 그의 『이방인』에서 목사의 설교하는 모습을 "가시적 에피파니"로 각각 매개한다. (184쪽)

 

⇒ 도스토예프스키의 유명한 소설 제목을 잘못 적은 것은 심각하다. '백지'가 아니라 '백치'다.

 

 

헤인즈는, 그러한 암시에 의하여 솔직히 좌절되어 있으며, "책임을 저야 할 것은 역사인 것 같아." (220쪽)

 

⇒ '책임을 져야 할 것'으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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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04-21 22:48   댓글달기 | URL
오타도 오타지만 문장도 매끄럽지 못한데요. 두개골의 곡선? 감촉했다 ?? 원어가 뭔지 모르겠지만 더 자연스러운 우리말이 오면 좋을 것 같네요.

cyrus 2015-04-22 16:07   URL
생각의나무 출판사에서 나온 김종건 역 <율리시스>를 읽고 있는데, 직역을 해서 그런지 읽기가 불편했습니다.

fledgling 2015-04-21 22:55   댓글달기 | URL
어문학사 안되겠네!~ 교정검열 제대로 안하고 책내나요... 좀 많네요ㅋ

cyrus 2015-04-22 16:10   URL
오자가 생각보다 너무 많습니다. 아직 읽지 않은 장수도 있는데, 하루에 <제임스 조이스 문학 읽기>를 읽으면 오자가 최소 다섯 개 이상은 발견합니다. 문장도 이상하고요. ^^;;

transient-guest 2015-04-23 02:09   댓글달기 | URL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은 경우에 따라서 이유가 있을수도 있지만, 오자는 좀 심하네요.

cyrus 2015-04-23 16:23   URL
<율리시스> 한 장씩 읽을 때마다 해설서도 같이 읽는데, 오자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습니다. ^^;;


Agalma 2015-04-23 05:55   댓글달기 | URL
작품 오자는 정말 기본도 안되어 보입니다.
저는 개정판 [안티 오이디푸스] ˝펠릭스 과타리˝ 표기를 보고 슬펐습니다ㅜ 남미 과일 이름 같고 흑흑.. 그동안 가타리라고 불렀던 건 다 뭐가 되는 건지...

cyrus 2015-04-23 16:25   URL
과타리가 국제학술대회에서 사용되는 표기법이라고 한다해도 오히려 예전 표기가 더 자연스럽고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