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에서
김훈 지음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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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씨의 리뷰가 불량합니다. 저항기가 있군요. C급입니다.”[1]

    

 

 

인생 여정의 중간 혹은 종착점에 이르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달려온 길이 고통스러워도, 현재의 삶이 가치 있다고 느끼면 뒤돌아보고 싶은 충동은 더욱 강렬하다. 부모님 세대는 청년기에 경험한 전쟁의 참혹한 기억을 잊지 못한다. 그 지옥의 시간은 이미 소설이나 영화 속 과거가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 그런 시대를 얼마간 편안한 마음으로 보며 추억하고 있다. 50~70년대 시절 부모님 세대가 겪었던 분산된 기억들을 끄집어내 영화와 소설이라는 문화적 메커니즘을 통해 조직하고, 그리하여 개인들의 체험이 보편적인 경험으로 확대되고, 세대 차원의 공통된 기억으로 자리 잡게 하는 의미가 있다. 우리의 근대사는 감히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볼 수 없었던, 힘의 논리와 저항으로 일관됐던 부자(父子) 관계의 연속이었다. 그것을 용서하기 위해서는 향수(鄕愁)의 힘이 필요했다.

   

공터에서는 마씨 집안의 삶을 통해 우리 시대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마동수는 6 25전쟁 때 이도순을 만나 고생 끝에 가정을 이룬다. 그들이 낳은 자식 마장세와 마차세도 시대의 그림자에 벗어나지 않았다. 마장세는 복역 중에 월남전에 파병되었고, 제대한 후에 괌으로 건너가 사업을 한다. 그는 자신을 가족으로부터 격리된 삶을 산다. 장남의 빈자리는 자연스럽게 마차세가 이어받는다. 마차세는 아버지의 사망과 가난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다. 학업을 포기하고 신문기자로 취업했지만, 언론통폐합 조치로 펜을 내려놓게 되고 물류회사에 재취업하여 오토바이 배달을 한다. 고달픈 시련 속에서 마차세는 박상희의 내조에 힘입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착실하게 살아간다.

     

작가는 현대사의 주요 계기들 속에서 무기력했지만, 묵묵히 시대를 감내하며 살아온 부모님 세대에 대한, 쓸쓸하면서도 애정 어린 연민을 보여준다. 소설에서 그려진 아버지상은 그런 역사의 질곡을 다시 바라보려는 과정에서 나온 타협의 산물이다. 이 소설이 불러일으키는 폭넓은 공감은 이 시대의 고통과 상처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해준다. 공동의 기억을 토대로 세워지는 상상의 공동체는 모든 세대를 하나로 묶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인간은 미래에 대한 전망보다 과거에 대한 공동의 기억으로 더 잘, 더 쉽게 하나가 되게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진부한 징후들 속에서 음습하게 스며 있는 구시대의 늙은 유령의 그림자를 함께 본다. 김훈은 소설을 통해 아버지와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그리려 했다고 말한다.[2] 그 표면적 서사 밑에 독자들, 특히 중장년층 남자 독자들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또 하나의 흐름이 들어 있다.[3] 인내심과 책임감 그리고 힘으로 상징되는 가부장제에 대한 매혹이 그것이다. 부모님 세대들의 영혼 깊은 곳에 유령처럼 스며들어 있는 건 전쟁의 공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부장제 사회에 대한 향수는 현대에 들어 힘과 권위를 상실해가고 있는 중장년층 아버지들의 어깨를 다독여주는 환상의 그림자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의아한 장면이 있다. 마차세가 일자리를 잃어 백수로 지내고 있을 때, 박상희가 그에게 집안일을 맡겼다. 마차세는 아내의 요구를 순순히 응한다.

 

박상희는 마차세가 실직한 동안에 집안일의 일부를 남편에게 맡겼다. 마차세는 가끔씩 빨래를 널고 유리창을 닦고 싱크대를 청소했다. 박상희는 그 사소한 노동으로 남편의 마음이 일상에 정착하기를 바랐다. 마차세는 아내의 마음을 짐작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195)

 

박상희가 미대 출신이라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여성으로 보일 수 있다. 이에 대한 반론은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착시에 가깝다. 그러나 국가가 가부장적 권위를 강요하던 사회적 분위기를 생각해보시라. 1970년대의 여성은 보수적 분위기로 인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흡수될 수밖에 없었다. 가부장적 가치관을 등에 지고서 억척같이 밖에서 일했던 아버지들은 이 장면을 어떻게 볼지 무척 궁금하다. 아버지들은 집안일은 '아내라면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내를 존중하는 마차세의 배려심에서 비롯된 것처럼 그려지지만, 아무래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페미니스트에게 호되게 당한 적 있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여성성을 강조하고 싶은 걸까. 작가 입장에서는 이런 표현을 시도해볼 수 있지만, 조금은 생뚱맞게 느껴진다.

     

세대 갈등은 아버지와 아들의 불화(不和)’에 비유되곤 한다. 오이디푸스 같은 서양 신화에도, 우리나라 소설에도 아버지 지우기의 사례는 등장한다. ‘아버지 부정(否定)’은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진통이다. 마차세는 아버지의 자리에 서면서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고 화해하게 된다. 박상희는 산파가 산모의 출산 과정을 돕듯, 마차세의 마음을 옥죄이는 아버지의 존재감을 떨쳐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런데 그녀의 역할은 마동수의 아내이자 마장세 · 마차세의 어머니 이도순의 존재감을 위축시킨다. 이도순은 숨 가쁘게 달려온 현대사의 그늘에서 인고와 희생으로 우리 가정과 사회를 지탱해온 우리네 어머니들의 원형이다. 70년대엔 인내 · 순종 · 희생의 어머니상이 지배적이었다. 이도순이 마장세에게 보낸 편지 내용은 유일하게 자신의 고통을 언어로 호소한 부분이다.

 

너의 아버지라는 사람은 무슨 헛것이 씌었는지 도통 밖으로만 싸지르고 두어 달에 한 번씩 집에 오는데, 왜 오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 인간하고 살을 섞고 살아서 너희들을 내지른 세월을 생각하면 내 가슴에서 벌레가 끓고 들불이 인다. 너는 힘들고 쓸쓸하면 너보다 더 쓸쓸한 이 어미를 생각해라. 그게 내가 하려는 말의 전부다. (170)

 

가부장제의 큰 피해자는 아내어머니의 역할을 맡은 여성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개인이 되지 못했고, 자기 언어를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여성을 무겁게 짓누르는 가부장제 사회에 도전하고, 반항하는 소수의 목소리들도 있었다. ‘가족이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가부장제의 압력 앞에서 개인의 존엄을 지켜내기 위한 목소리이다. 그런데 박상희는 힘들고 쓸쓸한이도순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소설 속 박상희는 마차세의 아내로서의 역할을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진보적 여성이 아니다.

 

박상희 : “어머니는 어땠어?”

마차세 : “그저 그래. 잠든 거 보고 왔어.”

박상희 : “어머니보다 당신이 더 가엾어.”

 

(245)

 

박상희는 치매에 시달리는 어머니를 홀로 돌보는 남편의 정신적 부담감을 이해한다. 그녀는 마차세를 어머니보다 더 가엾은 남편(아들)’으로 바라본다. 그녀의 시선은 홀로 사는 어머니와 가족을 충실히 돌보는 가장의 고통을 부각할 뿐, 어머니의 고통을 외면한다. 이러한 박상희의 시선은 사회적 가부장제의 전형을 보여준다. 바로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가 그대로 반영됨을 의미한다. 박상희는 무의식적으로 가부장제 유지의 정당성에 가담하고 있다.

 

아버지, 아들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가부장제 위계구조는 아들들을 또 다른 가부장으로 만든다. 마차세는 빈약한 물적 토대를 세워야하는 가부장이 된다.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 없이 쫓겨 다니는[4] 마동수와 마차세는 지금 현실에서 강력한 권위를 가진 가부장을 갈망하는 중년 남성들의 무의식의 초상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40대 남성 독자들이 김훈의 소설에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그렇지만 공터에서는 모든 독자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실패한 소설이다. 김훈은 과거 가부장제의 환상에서 깨어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는 이번 신작 소설을 통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지만, ‘여성도 슬퍼했고, 아팠다라고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1] 원문은 김훈 공터에서193쪽

 

[2] <소설가 김훈, 장편 공터에서출간 “70년간 갑질의 시대아버지와 내가 살아온 야만의 시대를 그렸다”> 경향신문, 201726일자

 

[3] <김훈 공터에서베스트셀러 종합 1“40대 남성 독자 지지”> 아시아경제, 2017224

 

[4] 나의 등장인물들은 늘 영웅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 없이 쫓겨 다닌다. 나는 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작가 후기, 공터에서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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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7 17:42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제 동원화랑에서 진행되는 박진형 시인의 신작시집 낭독회에 참석했습니다. 박진형 시인이 펴낸 시집 제목은 《고마 됐다》입니다. ‘고마’는 ‘그 정도까지만’의 방언입니다. ‘고마 됐다’는 ‘그 정도까지만 해라’ 또는 ‘그만 됐다’의 의미가 되겠습니다.

 

 

 

 

 

 

 

 

 

 

 

 

 

 

 

* 박진형 《고마 됐다》 (만인사, 2016년)

 

 

 

이 시집은 참말로 독특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고향인 경주에서 사용된 ‘신라 입말’을 발굴하여 시어로 만들어냈습니다. 신라 입말처럼 오래된 말일수록 ‘낮은 말’이 됩니다. ‘낮은 말’의 반대는 ‘높은 말’입니다. ‘높은 말’은 바른말, 고운 말 그리고 표준어인 거죠. 신라가 이 한반도를 지배했을 때까지만 해도 표준어는 신라 입말이었습니다. 나라와 정권이 바뀌면서 신라 입말의 존재는 점점 잊혔고, 연륜이 깊은 소수의 경주 토박이들만 아는 옛말이 되었습니다. 《고마 됐다》는 눈으로 읽는 시집이 아닙니다. ‘신라 입말’이 들어있는 시이기 때문에 입으로 소리를 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신라 입말의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고마 됐다》에 수록된 시를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입말로 이루어진 시를 여기에 인용하면, 눈으로 봐야 하는 ‘글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낭독회가 열렸던 장소는 동원화랑입니다. 동원화랑은 1982년에 문을 연,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화랑입니다. 이곳에 대구 출신 화가들의 작품이 걸려있습니다. 저는 어제 알았는데, 연예인 하정우, 구혜선, 조영남 씨의 그림 전시가 동원화랑에서 열리기도 했습니다.

 

시 낭독회가 시작하기 20분 전에 장소에 일찍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yrureka01님(유레카)’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여태까지 화랑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혼자 들어가기가 뻘쭘했습니다. 건물 안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유레카님이 오기를 기다렸어요. 유레카님이 도착하고, 같이 화랑 안에 들어갔습니다. 시 낭독회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앉을 자리가 없어서 시 낭독회가 끝날 때까지 계속 서 있었습니다. 힘들진 않았습니다. 저는 아직 젊으니까요! (찡긋) 오히려 서 있는 게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서 있었던 곳 바로 앞에 다과상이 차려져 있었으니까요. (개이득) 저는 시를 읽는 척하면서 다과상으로 차려진 쿠키, 육포, 과일 등을 야금야금 먹었습니다. 오래 서 있는 건 참을 수 있었지만, 배고픔은 참지 못했거든요. 음료는 물과 주스 그리고 포도주였습니다. 이 셋 중에 여러분은 뭘 마실 겁니까? 당연히 포도주죠! 포도주 반 정도를 비우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한 컵만 마셨어요. 화랑에 일하는 직원으로 추정되는 분이 제 근처에 서 있어서 술을 홀짝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다과상에 눈독 들이고 있었을 때, 유레카님은 시 낭독회의 생생한 현장을 사진으로 담고 있었습니다.

 

원래 시 낭독회가 참석하기 전에 《고마 됐다》를 읽어보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대구에 세워진 모든 공공도서관 중에 이 시집을 소장한 곳이 딱 한 군데 밖에 없었어요. 제가 사는 동네에 가까운 도서관이 ‘대구서부도서관’입니다. 이곳에 대구 · 경북 출신의 문인들의 책들을 따로 보관하고, 문인들의 유품까지 전시한 ‘향토문학관’이라는 장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서부도서관에는 《고마 됐다》가 없었습니다. 시집이 잘 안 팔리는 것도 서러운데, 공공도서관마저 홀대합니다.

 

《고마 됐다》 한 부 챙겨왔습니다. 무료로 받은 셈이죠. 이래도 되나 싶었어요. 하긴 안 팔리는 시집을 창고에 썩혀둘 바에 정말 시와 문학을 사랑하는 시인의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모든 이들을 위한 좋은 일입니다. 시인은 돈 몇푼 더 벌려고 《고마 됐다》를 쓴 것이 아닙니다. 시인은 신라 입말과 고향 사람들을 기억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시의 형태로 기록했습니다. 역사가들도 하지 않는 일입니다. 《고마 됐다》는 신라 입말을 빌어 기록한 ‘민중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되돌아보면 우리는 말과 글을 통해 세상을 만났고,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도 했어요, 태초의 입말이 단순히 과거를 알기 위한 증거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나’와 ‘우리’를 이루는 기본적인 말이기 때문에 소중합니다. 입말은 글말의 씨앗입니다. 입말은 사람과 삶에서 떨어질 수 없습니다. 즉 입말이 곧 사람이고 말하고 듣는 것이 곧 사람의 삶입니다. 이런 까닭에 입말을 이해할 수 있을 때야 우리가 사용하는 글말의 세계도 튼튼히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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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7-02-25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과 두분의 우정이 부럽네요.^^

cyrus 2017-02-25 14:20   좋아요 1 | URL
북프리쿠키님도 대구에 사시는 걸로 압니다. 다음에 유레카님을 뵙게 되면 그날 북프리쿠키님도 뵙으면 합니다. ^^

pek0501 2017-02-25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 낭독회, 예전에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간 곳은 주로 찻집이었는데...
다과상이 있는 시 낭독회의 분위기가 갑자기 그리워지네요.
좋은 소식 주셨습니다.

cyrus 2017-02-25 14:23   좋아요 0 | URL
예전에 제가 가본 시 낭독회는 테이블에 사람들 쭉 모여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시를 읽고, 자유롭게 수다를 떨었던 분위기였습니다. 저도 이런 분위기의 시 낭독회를 좋아해요. ^^

표맥(漂麥) 2017-02-25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 됐다... 고마해라~ 이 말 저도 많이 쓰는디... ^^

cyrus 2017-02-25 14:25   좋아요 0 | URL
영화 <친구>의 명대사 ‘고마 해라, 많이 묵었다 아니가’ 때문에 많이 알려졌을 겁니다. ^^

꼬마요정 2017-02-25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 해라... 많이 쓰는 말이지만 점점 안 쓰게 되는 말이기도 하네요... 시 낭독회.. 한 번도 안 가봤는데 꼭 가보고 싶습니다~^^

cyrus 2017-02-25 22:35   좋아요 0 | URL
생각해보니 진짜 ‘고마 해라‘ 쓰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영화 <친구>를 본 세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쓸 겁니다. ^^

yureka01 2017-02-25 15: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즐겁고 재미난 시간이었어요.ㅎㅎㅎ

고마 됐다...이걸 더 줄이면
마,,됐다.,,^^.

cyrus 2017-02-25 22:36   좋아요 0 | URL
역시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제일 재미있습니다. ㅎㅎㅎ

서니데이 2017-02-25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과 함께 다녀오셨군요.
cyrus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cyrus 2017-02-25 22:3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달걀부인 2017-02-25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이득!!! ㅋㅋㅋㅋ

cyrus 2017-02-25 22:37   좋아요 0 | URL
저녁 식사를 하지 않은 공복 상태라서 눈앞에 있는 다과상이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ㅎㅎㅎ

붕붕툐툐 2017-02-25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서 있는 건 참을 수 있지만 배고픈 건 참지 못한다는 말에 완전 공감하며, ‘낭독회‘에 꼭 가보고 싶네요~ 이런 정보는 어디서 얻으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cyrus 2017-02-25 22:42   좋아요 0 | URL
yrureka01님이 시인님을 알고 지내셔서 시인들 모임 소식을 많이 접합니다. 유레카님이 서재에 모임 일정을 알려주십니다. 유레카님의 서재를 즐겨찾기 하면 됩니다. ^^
 

 

 

 

셀카를 찍는 사람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많이 의식한다. 자신이 타인이 되어 지금 내 모습에 대해 끊임없이 확인하고 이를 자랑한다. 즉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보여주고 싶은 자기 노출 욕구가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상대방이 남에게 잘 보이려고 의도적으로 셀카를 찍는 것을 싫어한다. 이를 ‘셀카 패러독스(The Selfie Paradox)’라고 한다. 자신의 셀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상대방의 셀카에는 무관심한 이중적인 심리 현상을 의미한다.[참고]

 

의도성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셀카일수록 상대방의 거부감이 높아진다. 자신을 남들에게 솔직하게 보여주려고 셀카를 찍어도 상대방은 그 셀카를 자기 과시용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셀카에 ‘좋아요’를 많이 받도록 유도하는 방법이 있을까. ‘셀카 패러독스’를 입증한 연구진들은 명백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진을 올리는 것을 피하고, 누구에게나 웃음을 줄 수 있는 재미있는 사진을 올리라고 제안한다.

 

SNS나 블로그에 작성된 글도 ‘셀카 패러독스’의 영향을 피할 수 없다. 글의 주제와 의도에 상관없이 상대방은 자기 과시형 글에 거부감을 느낀다. 어쩌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 역시 누군가는 부정적으로 보고 있거나 아예 안 볼 수도 있다. 내 글은 ‘자기 노출형’ 셀카와 비슷하다. 책을 읽거나 어떤 사회 현상을 바라보면서 느낀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내어 상대방의 공감을 얻길 원한다. 나는 ‘자기 노출형’ 글을 좋아한다. 며칠 전에 모 알라디너 서재에서도 이런 댓글을 남겼다. “저는 지식을 멋있게 알려주거나 자랑하는 건 나쁘게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가 싫어하는 글은 ‘자기 방어형’이다. 자기방어는 상대방의 의견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태도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진실 된 비판 의견을 전달하면,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피드백(feedback)해야 한다. 그런데 자기 방어 성향이 강한 사람은 상대방의 피드백을 부담스러워 한다. 자신의 결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도리어 상대방의 의견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 박진영 《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 (시공사, 2013년)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주목한다고 착각한다. 이를 ‘스포트라이트 효과(spotlight effect)’라고 한다. 셀카를 자주 찍는 사람도 ‘스포트라이트 효과’의 착각에 빠진다. “내가 찍은 셀카는 마음에 들어. 그런데 남이 찍은 셀카는 별로야, 보고 싶지 않아.” 자신이 만들어 낸 환상의 스포트라이트에 취하면 남이 뭘 하는지 관심이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 알라딘 서재/북플에도 자신만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서재 활동을 하는 분들이 있다. 물론, 내 입장이 선입견에 가까울 수 있고,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그렇지만, SNS 환경상 누구나 상대방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과정에 크고 작은 선입견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 선입견에 괴로워하지 않으려면 관계에 대한 완벽주의를 버려야 한다.

 

 

 

 

 

 

 

 

 

 

 

 

 

 

 

 

* 박진영 《심리학 일주일》 (시공사, 2014년)

 

 

나도 ‘완벽한 관계’를 지나치게 믿어왔던 사람이었다. 여기 알라딘 서재를 만든 지 얼마 안 됐을 때 관계는 늘 항상 친밀하게 유지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상대방이 잘못해도 눈 감아 주었고, 친하게 지내는 알라디너의 글들을 다 읽으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관계에 집착하는 일이 정신적으로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 상대방에 엄청 기대했다가 실망한 적도 있었다. 좋은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내가 상대방에게 먼저 다가와서 물꼬를 트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고 다가서야 한다. 나는 그동안 상대방이 누군지 살피지 않은 채 다가섰고, 상대방이 내 글을 볼 거로 착각했다. 그렇다 보니 진정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잊어버렸고, 그저 남이 좋아할 만한 내용의 글을 썼다.

 

 

 

 

 

 

 

 

 

 

 

 

 

 

 

 

 

* 톰 밴더빌트 《취향의 탄생》 (토네이도, 2016년)

 

 

예전에 《취향의 탄생》이라는 책의 리뷰 끝에 나는 자신의 취향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자신의 취향을 모르거나 뚜렷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취향에 맞춰 따라가게 된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건 상대방이 자신의 취향을 선호하는지조차 모른다. 이런 사람은 내가 상대방의 취향을 이해해줬으니 분명 상대방도 내 취향을 이해할 거로 생각하며 ‘혼자만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상대방의 스포트라이트에 멀찌감치 벗어난 상태에서 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갈망한다.

 

나는 여러 심리학 책 몇 권을 읽어봤지만, 관계를 오랫동안 친밀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 더 알려고 하면, 관계에 더 집착한다. 내가 서재 활동을 하면서 얻은 결론은 이렇다. ‘확실히 내 취향과 맞지 않는 사람은 관계를 끊어야 한다. 억지로 관계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

 

요즘 들어 ‘친구 신청’하는 분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나보다 재미있고, 좋은 글을 많이 쓰는 알라디너가 많이 보인다. 새로운 알라디너의 등장은 반갑다. 혹시나 내게 ‘친구 신청’하는 분들께 다시 한번 알린다. 나는 로쟈님과 후애님처럼 신간 도서를 전문적으로 소개하거나 일상적인 이야기를 매일 공개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우왕님처럼 재미있는 사진만 올리는 사람도 아니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그에 대한 감상을 기록할 뿐이다. 이 행위 자체를 즐기고 있다. 내 글이 딱딱하고, ‘자기 과시’가 드러난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나도 내 글이 남들에게 인정받는 걸 좋아하며, 글이 잘못되면 고친다. 글을 짧게 쓰는 법이 없다. 그래서 북플로 보기가 불편하다. 스마트폰으로 내 글을 본다는 건 시력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내 글을 보는 일이 부담스러우면 안 보면 되고, ‘친구 해제’를 해도 된다. 절대로 잘못된 일이 아니다.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다. 여러분들의 취향이 존중되길 원하는 필자의 간곡한 부탁이다.

 

 

 

 

[참고] <“내 셀카는 좋지만, 남의 셀카는 싫어”… 이 심리는 뭐지?> 동아일보, 2017년 2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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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4 12:42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24 14:19   좋아요 3 | URL
제 생각과 비슷합니다. 하루에 이웃님들 글을 다 보면 적어도 10분은 걸립니다. 정독은 못 해도 어떤 내용인지 이해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한 달동안 보면 이웃님이 무슨 책을 좋아하는지는 알 수 있어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자주 보는 분들 의 글을 보는 게 효율적입니다. 그래도 관계가 소원하거나 애매하다 싶으면 포기해야 합니다.

지금행복하자 2017-02-24 13: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주로 북플로 보는데. . 별로 불편함 없이 보고 있습니다~^^

cyrus 2017-02-24 14:21   좋아요 1 | URL
말씀이라도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서재 활동 초창기에 비하면 글의 분량이 줄어든 겁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7-02-24 13: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셀카가 취향이라서... -_- ;

cyrus 2017-02-24 14:23   좋아요 1 | URL
곰발님의 취향을 존중합니다. 솔직히 발님은 다른 셀카족에 비하면 양호합니다. 셀카 사진을 많이 올리는 편은 아니고, 과시하려는 느낌이 나지 않아요. 어제 올린 셀카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

북프리쿠키 2017-02-24 14: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곰발님 볼에 풍선넣고 귀엽게 함 찍어주세요.^^;
웃는 표정으로다가 한번~

cyrus 2017-02-24 14:26   좋아요 1 | URL
곰발님의 셀카는 시크한 표정을 지을 때가 멋있습니다. ^^

2017-02-24 14:49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24 17:04   좋아요 2 | URL
저처럼 글을 길게 쓰는 분들이 많이 없어서 비교적 짧은 글은 훑어 읽거나 그냥 넘깁니다. 특별히 관심 있는 글이라면 정독을 하는 편이고, 제가 생소하게 느끼는 주제의 글은 훑어 읽습니다.

사실 정독해도 글을 제대로 이해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저도 글의 주제와 상관없는 엉뚱한 내용의 댓글을 달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은 글을 작성한 분 입장에서는 기분 나쁠 수 있습니다. 이웃님의 글을 잘못 이해했으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이 안 생겨요.

앤의다락방 2017-02-24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되는 글이네요^.^ 전 셀카 찍는 것을 즐기지않아요(사진빨이 안받는다 해두죠.ㅋ)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하루라도 젊을 때 모습을 담아두는게 좋겠단 생각을 하게 되네요.ㅋ 그렇지만 용기가 나질 않아요. ㅋㅋ

cyrus 2017-02-24 17:06   좋아요 0 | URL
저도 사진에 찍히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셀카를 찍으려고 해도 너무 어색하게 보여서 찍을 마음이 없습니다. 그래도 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젊은 모습을 담은 사진을 찍어두면 좋다고 생각해요. ^^

hellas 2017-02-24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되는 글이네요. :)

cyrus 2017-02-24 17:0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2017-02-26 09:31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 성민수 《프로레슬링 : 흥행과 명승부의 역사》 (살림, 2005년)

*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문예출판사, 2002년)

 

 

프로레슬링을 좋아한 지 십여 년이나 지났다. 중학생 때 친구의 권유로 케이블 채널에 중계한 WWE 경기를 보면서 레슬링에 ‘입덕’하기 시작했다. WWE 관련 소식을 전하는 국내 프로레슬링 전문 매체가 여러 개 있는데, 하루를 거르지 않고 꼭 챙겨본다. 관심 있는 레슬링 선수들이 무슨 경기를 했는지 확인하고, 경기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시청한다.

 

각설하고, 지난주 네이버 메인에 잠시나마 오른 레슬링 관련 뉴스 하나를 소개해본다. 뉴스의 주인공은 멕시코에서 레슬러로 활동 중인 미국 출신의 샘 폴린스키(Sam Polinsky)다. 나는 인디 단체 레슬링도 좋아하는 레슬링 덕후 수준이 아니라서 처음에 이 선수가 누군지 몰랐다. 샘 폴린스키는 본명이고, 링네임(ring name)은 샘 아도니스(Sam Adonis)다.

 

 

 

 

 

이 선수가 화제가 된 이유는 링에 입장하면서 상당히 ‘위험한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샘은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이 있는 성조기를 들고 오면서 관중이 보는 앞에서 ‘트럼프 지지자’라고 말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샘은 미국인이고, 멕시코 관중들이 보는 앞에서 경기를 뛴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과 트럼프의 국경장벽 공약 때문에 멕시코와 미국 간의 사이가 비틀어지는 중이다. 샘이 트럼프를 찬양할 때 멕시코 관중들은 온갖 야유와 욕설을 퍼붓는다. 이곳에서 샘은 멕시코 관중들이 싫어하는 ‘악당’ 같은 존재다. 그를 혼내주기 위해 멕시코 레슬러가 등장하고, 관중들의 열화 같은 응원에 힘입은 멕시코 레슬러는 미국인 악당을 무찌른다.

 

 

레슬링 경기를 안 보는 사람들도 다 안다는 명언이 있다. ‘레슬링은 쇼(show)다!’ 이 말 한마디로 WWE를 포함한 모든 전 세계 프로레슬링은 순수 스포츠 종목이 아닌 ‘가짜’라고 믿는 사람이 생겼다. 레슬링 경기가 어떻게 진행되고, 어느 선수가 이기는지 다 정해져 있으며 심지어 선수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것 또한 정교하게 짜인 각본의 일부이다. 그러나 선수들이 경기가 끝날 때까지 링 위에 구르고, 뛰고, 땀 흘리는 과정들은 ‘100% 가짜’가 아니다. 선수들이 링 위에 움직이는 모든 동작은 피나는 훈련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한 경기 다 뛰고 나온 선수들은 온몸에 몰려오는 통증에 시달린다.

 

레슬링 선수들이 관중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면 ‘기믹(gimmick)’을 갖춰야 한다. 기믹이란 선수가 연기하는 캐릭터이다. 쉽게 말해서 드라마의 배역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기믹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관중들에게 환호받는 선역 기믹, 반대로 반칙을 일삼으며 나쁜 짓만 골라서 하는 악역 기믹이다. 샘 폴린스키는 악역 기믹 선수이다. 그가 트럼프를 찬양하고, 미국을 싫어하는 멕시코 관중들을 비난하는 행동은 실제 본 모습이 아니다. 그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국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을 뿐이다. 악역을 맡은 선수들은 심하면 입에 담지 못할 욕설까지 듣지만, 관중들의 관심을 얻은 것에 만족한다. 악역인데도 관중들의 반응이 썰렁하거나 반대로 환호를 보내면 그 선수의 기믹은 실패한 것이다.

 

여전히 ‘레슬링은 쇼’라고 믿는 일부 사람들은 각본대로 진행되는 레슬링을 무슨 재미로 보냐고 핀잔준다. 당연히 그들이 기믹에 맞게 연기하고, 링 위에 뛰는 모습 하나하나가 재미있어서 보는 거다. 레슬링 경기를 시청하는 것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과 닮았다. 드라마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 악인이 착한 주인공을 괴롭히면 분노를 드러내고, 반대로 악인이 궁지에 몰리는 ‘사이다 전개’를 보면서 통쾌감을 느낀다. 드라마 줄거리 전개 방향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시청자의 감정 상태를 ‘카타르시스(Katharsis)’를 느낀다고 말한다. 카타르시스, 즉 배설은 쾌락을 가져다주며 눈물도 그중 하나라고 정의한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는 《시학》에서 비극은 관객들로 하여금 숭고한 인물이 불행해지는 과정을 보면서 눈물이라는 카타르시스를 통해 정서의 순화작용을 일으키게 한다고 설명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억눌려 있지만, 인간의 감정을 비극의 힘을 빌려 자연스레 분출하도록 함으로써 사회적인 윤리를 유지해 나가는 하나의 방편으로 비극을 생각했다. 오늘날의 영화나 드라마는 비극의 역할을 대신 해주고 있다. 드라마에 볼 법한 요소가 들어간 프로레슬링도 마찬가지다. 미국 최대 레슬링 단체인 WWE의 약자가 ‘World Wrestling Entertainment’이다. WWE는 프로레슬링에 ‘오락’을 부여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독특한 개성의 선수들이 링 위에 등장했다. 레슬링 관중들은 그 선수들을 응원하거나 야유를 보내면서 가슴 속에 쌓인 응어리를 한 번에 푼다.

 

 

 

 

WWE에서 악당으로 인정받는 선수들 대부분은 관중이 싫어할 만한 언행을 하며 자기중심적인 성격이다. 예를 들면 ‘밀리언 달러맨(The Million Dollar Man)’으로 잘 알려진 테드 디바이시(Ted DiBiase)는 ‘재수 없는 갑부’ 기믹으로 80년대 최고의 악역 선수로 자리 잡았다.

 

 

 

 

 

WWE는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라면 ‘애국심’도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한다. 걸프 전쟁이 한창이던 90년대 초에 서전 슬로터(Sgt. Slaughter)는 미국을 배신하고 이라크 편에 선 반미주의자로 등장하여 ‘무적 선역’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헐크 호건(Hulk Hogan)과 메인이벤트 경기를 가졌다. 두 선수들은 8, 90년대에 활동한 최고의 악역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선역 선수를 만날 때면 무기력하게 패배당했다. 이 장면에서 관중들에게 주는 카타르시스는 배가 된다. 특정 선수 간의 대립을 통해 최후의 승자가 가려지는 이야기 전개는 매번 똑같아 보이지만, 결국 그런 과정이 관중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WWE 프로레슬링이 인기를 얻는다.

 

카타르시스가 느끼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카타르시스를 억지로 만드는 것은 이야기 몰입을 방해하는 독이 된다. 갈수록 답답한 전개로 이어지는 ‘고구마 드라마’처럼 요즘 WWE를 보면 관중들이 공감할 수 없을 정도로 선수 간의 대립이 ‘고구마’ 전개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실 ‘선역’과 ‘악역’이 명확히 구분되어 양 선수가 갈등을 빚는 설정은 식상하다. 오죽하면 관중들은 선역 선수에게도 심한 야유를 보낸다. 월드 챔피언을 지낸 존 시나(John Cena)와 로만 레인즈(Roman Reigns)는 WWE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인데도 관중들의 야유와 욕설이 많이 나온다. 이 상황은 마치 답답한 행보를 펼치는 드라마 속 선역 주인공을 싫어하는 시청자들의 반응(MBC 주말 드라마 ‘내 딸, 금사월’)과 동일한 맥락이다. 분노를 표출하여 정서를 순화시키는 카타르시스의 효과가 모든 사람에게 전부 적용되는 건 아니다. 카타르시스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려면 작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덧붙인 이야기를 만들지 말고, 그 이야기를 보게 될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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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2 20:53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23 17:29   좋아요 1 | URL
김일, 당연히 알죠. 역도산, 안토니오 이노키도 알아요. ‘프로레슬링은 쇼다’ 발언 이후로 국내 레슬링 산업이 한순간에 폭망한 건 아니었지만, 프로레슬링을 진짜 스포츠 종목으로 여겼던 팬들 입장에서는 충격적인 발언이었죠. 프로레슬링을 스포츠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 발언을 근거로 내세웁니다.

겨울호랑이 2017-02-22 22: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는 헐크호건과 워리어, 마초맨이 있었던 90년대 WWF때가 기억이 나네요 ㅋㅋ 교실에서 책상 밀고 친구들과 로얄럼블 재연했던 리즈시절이 그리워집니다. ㅋㅋ

cyrus 2017-02-23 17:33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 학창 시절에도 교실에서 레슬링하는 친구들이 있었군요. 저도 중딩 때 애들이랑 레슬러 흉내 내면서 놀았어요. 그땐 더 락과 스티븐 오스틴, 트리플 H를 선호하고, 따라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

transient-guest 2017-02-23 0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국레슬링은 80-90년대 말, 그리고 2000년대 초반까지가 좋았죠. 그래도 91년 레슬메니아 기믹은 욕 많이 먹었습니다, 전쟁을 이용한 돈벌이라고; 사람들의 정신이 좀더 살아있던 시절이죠.. 2000년대 중반 이후로 WWE가 단체를 통합한 다음에는 완전이 entertainment노선으로 가면서 재미가 떨어졌어요. 같은 ‘쇼‘라도 연기하는 사람까지 이를 ‘쇼‘로 취급한다는 느낌이 나면서 combat개념이 너무 떨엉지더라구요. 요즘은 미국레슬링은 거의 안 보고, 가끔 유투브으로 예전 전일본이나 신일본 걸 봅니다. 좀 살벌하게 치고받는, 종합격투기 이전 사실상 종합격투기를 표방하던 시절이 그립네요.ㅎㅎ 미국의 MMA는 BJJ와 tough guy 대회 같은데서 발전했다면 일본의 MMA는 사실 프로레슬링과 레슬러들이 원조니까요.ㅎㅎ 간만에 추억이 쏠쏠 돋네요.

cyrus 2017-02-23 17:44   좋아요 0 | URL
t-guest님이 저보다 ‘레잘알’이시군요. 전일본, 신일본 경기를 보는 분을 여기서 만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ㅎㅎㅎ

서전 슬로터가 반미주의자 기믹으로 활동했을 때 살해 협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반미주의자 기믹을 포기했고, WWF에서의 선수 경력이 많지 않아요.

지금도 WWE가 선수들과 관련된 굿즈 상품과 페이퍼 뷰로 수익을 얻고 있다지만, 8, 90년대 WWE를 보는 관중과 지금의 관중의 시선을 비교하면 많이 달라졌어요. 지금 관중들은 이제 여전히 오락 위주의 WWE를 지루하게 느끼고, 존 시나나 로만 레인즈 같은 선역 선수들을 싫어하게 됩니다. WWE는 경기력 있는 선수보다는 상품성 있는 선수들을 밀어주죠.

캐모마일 2017-02-23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재밌게 읽고 갑니다. 예전에 세상의 이런 일이 프로그램에 아주머니 한 분이 주인공으로 나오셨는데, 우연히 본 레슬링에 심취하신 경우였어요. 제작진이 왜 레슬링이 그렇게 재밌으시냐 여쭤보니까, 거기에도 선역과 악역이 있고 드라마가 있다시면서 선수 이름과 줄거리를 막힘 없이 이야기 하셔서 말 그대로 세상의 이런 일이구나 ㅎㅎㅎㅎ 하고 놀랬습니다. 기믹과 카타르시스로 설명해 주시니 이해가 갑니다. 주인공 아주머니는 평소 식당일 열심히 하셨지만 마음 한켠에 무료함과 공허함이 있던 와중에, 레슬링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셨네요.

캐모마일 2017-02-23 07:39   좋아요 0 | URL
오래 전 본 영화라 가물가물하지만 김지운 감독 연출 송강호 씨 주연의 영화 반칙왕이 떠오르네요. 극중에서 주인공 임대호가 상사과 실적이 치이는 소심한 샐러리맨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상사가 심심하면 헤드락을 거는 통에, 무언가 탈출구와 도전이 필요했던 임대호가 레슬링을 혹독하게 배워서 복면을 쓰고 레슬링 무대에 섰었나 했어요...종반부에 악역 기믹을 맡은 임대호가 주인공 기믹에게 지는 설정이었는데, 샐러리맨의 비애와 분노가 순간 밀려오면서 각본 없는 레슬링이 펼쳐지는 줄거리였습니다. 어렸을 적엔 웃음과 재미, 감동으로 봤지만 지금 보면 애환과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거 같아요. 고 장진영 씨도 그립네요.

cyrus 2017-02-23 17:50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에서도 WWE 중계를 보는 할머니가 고민거리로 출연한 적이 있어요. 그분도 레슬링을 보면서 공허한 마음을 풀 수 있어서 좋다고 말씀하셨어요. 프로레슬링을 자주 보면 사람 성격이 폭력적으로 변한다고 하던데, 그런 경우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저는 비폭력주의자입니다. ㅎㅎㅎ

<반칙왕>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요. 이 영화가 나왔을 때 제가 초딩이었는데, 그땐 제가 레슬링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시절이었어요. 이제는 오래된 영화라 케이블 채널에서도 보기 힘들어졌어요. ^^;;

2017-02-23 18:22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23 18:46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밤의 화학식 문예중앙시선 45
성윤석 지음 / 문예중앙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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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성서》 창세기 3장 19절)

 

 

 

어떤 것은 빨리 썩고 어떤 것은 느리게 분해된다. 물렁물렁한 것은 빨리 찢기고, 딱딱한 것은 천천히 마모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사라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썩어야 생기는 원소를 먹고 산다. 분자로 이루어진 먼지가 더욱 나누어져야 그곳에서 생명의 필수영양원소가 나온다. 썩는 것을 학술적인 용어로 분해라 한다. 형체가 있는 것에서 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아주 작은 존재로 부서지는 과정이다. 생물체의 모든 성분은 빠짐없이 흙 속에 들어 있는 성분과 같다. 모든 생물체는 화학적으로 성분을 분석하면 흙이다. 따라서 생명을 잃은 존재는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성윤석 시인의 시집 《밤의 화학식》의 ‘화학식’은 우리가 학창시절 과학 수업 시간에 배웠을 그 ‘화학식’이 아니다. 시인은 화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그는 원소에 의해 생명이 생성되어 소멸하는 자연의 순리를 화학적 원리로 접근하여 시적 언어로 표현했다. 시적 대상으로서의 원소를 경험적 현실로 인식하고, 나름의 상상력으로 구성된 ‘자연의 순리’를 독자들에게 펼쳐 보여 주고 있다.

 

 

 

 

한 호흡

 

이즈음의, 이즈음의 한 호흡

 

사는 것은 죽어가는 것

 

길고 긴 목포행 완행열차처럼 생의 과정들을 죽 늘어놓고

 

빛나는 것은 소멸한 것, 소멸해가는 것

 

 

(『산소 O』 중에서, 34~35쪽)

 

 

 

 

산소는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원소다. 호흡을 통해 몸 안에 유입된 산소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 때 사용된다. 하지만 산소가 항상 우리 몸에 이로운 것은 아니다. 산소도 동전처럼 양면성이 있다. 신체의 대사과정에서 불안정한 상태로 변한 ‘활성산소’는 인체에 해를 끼친다. 우리 세포막과 세포 속 유전자를 공격해 몸을 늙고 병들게 한다. 활성산소는 대사과정에서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한다. 다행히 우리 몸은 스스로 활성산소의 양을 조절할 능력이 있다. 그렇지만, 소멸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자연을 유기체로 보는 동양 전통의 자연관에 따르면 본래 자연의 모든 것은 상호작용을 하면서 살아간다. 즉 인간은 산소를 소비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배설물을 쏟아내며, 죽어서 육신을 땅에 되돌려줌으로써 식물의 번성에도 기여한다. 우리가 죽어서 마지막으로 뱉어낸 ‘한 호흡’은 또 다른 누군가의 ‘생의 과정’ 일부가 된다,

 

 

얘야, 실제로 무서운 건 우리가 낱낱의 알갱이로 떨어져

서로의 입자들을 다 잃고 난 뒤겠지.

그리고 추운 세상이 올 거야. 넌 혼자가 될 거야.

네가 아닌 사물들이 널 들여다보겠지.

사물들의 뒤편엔 이웃들의 사유들이 먼지처럼 쌓일 거야.

 

(『먼지의 화학식 2』 중에서, 66~67쪽)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사물들은 감정도 없고, 자기표현 방법도 없으니 무생물이다. 그러나 생각을 뒤집어서 사물들에게 감정을 부여한다면, 우리의 존재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시도이다. 시인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원소인 주석을 하나의 실체로 인식한다. 그의 ‘우스꽝스러운 질문’은 진지하다. 시인은 눈에도 보이지 않는 조그마한 주석의 실체를 탐구하며 생존 욕구를 가지고 환경에 반응하며 변화해 가는 과정 전체를 관찰한다.

 

 원자번호 50번. 이 지방에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극한의 추위란, 여기에 없을 테니까. 주석이 극한으로 내려가는 기온 속에서 회색 가루로 변할 동안 사람들도 얼어 부서져버릴 테니까. 스스로 가루가 되어버렸던 사람들을 본다. 눈에 뭔가 자꾸 보였던 것. 눈에 뭔가가 자꾸 보일 때, 시간은 스스로를 묶고 사람이 어디로든 되돌아올 때를 기다린다. 주석 같은 사람들을 안다. 빛나는 술을 담아낼 줄 알지만, 때가 오면, 희미한 가루로 남던 사람들. 당신은 어디에서 어떤 상태로 있는가? 당신을 묻는 내가, 너무 진지한가. 아니면 우스꽝스러운가. 세계가 침묵하는 동안 나는 가루가 되어버릴 것 같다.

 

(『주석 Sn』 39쪽)

 

 

사람은 죽어서 먼지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은 우주공간에 흩어진 원소들로부터 유래되었고, 생명체가 죽으면 그 구성 물질은 분해되어 먼지가 된다. 그런데 우리의 뇌세포에 의식이 있어서 당연한 운명을 두려워한다. 아무리 많은 연구가 있어도 인간 스스로 소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에 대해 아무런 이의제기를 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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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2 14:00   좋아요 1 |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22 14:22   좋아요 1 | URL
원효 대사가 해골 물을 마셨던 상황과 비슷하군요. ㅎㅎㅎ
이번 주 금요일에 일찍 퇴근할 수 있습니다. 그 날 일찍 가겠습니다. ^^;;

북프리쿠키 2017-02-22 14: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물의 근원은 원자라고 말한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와도 연관이 있겠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7-02-22 17:40   좋아요 1 | URL
제가 읽은 시집의 100자평으로 잘 어울리는 명언입니다. ^^

양철나무꾼 2017-02-22 15: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의 백 뮤직은 이윤수의 ‘먼지가 되어‘로 하겠습니다.
김광석도 있고 로이킴도 있는데, 이윤수를 안다고 자랑하고 싶은 이 마음이라니...ㅋ~.
연식이 들통나 버릴텐데도 완전 우쭐합니다.
님께도 강.권.합니다~ㅅ!

cyrus 2017-02-22 17:41   좋아요 0 | URL
저는 김광석 버전을 좋아합니다. 이윤수 버전을 안 들어봤어요. 유튜브 영상 올리려고 했는데, 귀찮아서 안 했어요.. ^^;;

캐모마일 2017-02-23 07:45   좋아요 0 | URL
이윤수는 처음 들어본 가수인데, 한번 그 분 버전의 먼지가 되어를 들어봐야겠습니다.

캐모마일 2017-02-23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독특한 시집이네요. ㅎㅎㅎㅎ 마치 화학시간에 인문학과 감성이 풍부한 문과 학생이 하나하나 원소와 개념을 배우면서 시로 승화시킨 거 같아요. 말씀처럼 상상과 받아들임이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로 귀결되는 사색의 여정이요. 이런 말씀 드리면 시인에게 누가 될런지요.

cyrus 2017-02-23 18:21   좋아요 1 | URL
화학에 대한 지식 없이도 읽을 수 있어요. 그런데 몇 편의 시들은 난해했어요. 저는 제가 이해하기 쉽고, 좋은 시가 많다고 느껴지면, 그 시집의 평점을 높게 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