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 보는 서양미술 살림지식총서 176
권용준 지음 / 살림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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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우리는 왜 그림을 보는 것인가 

 

어떤 그림을 명화라고 하자. 그런데 왜 우리는 이 그림을 보는 것인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세계적인 명화라는 데 이견을 표명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림이 어떤 기준으로 명화가 됐으며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보고 싶도록 만드는 그 매력이 무엇인지 설명하라면 명쾌하게 답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미술 교과서는 모든 것을 얘기해주지 않는다. 우리가 그림을 보면서 한번쯤 궁금하게 여길 법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도 찾을 수 없다. 미술의 역사적 흐름과 장르를 설명하는 데는 과잉 친절을 베풀지만 그것이 나타나게 된 사회, 경제, 문화적 배경에 대해선 말을 아낀다. 그래서 우리가 그동안 미술을 어렵게 느꼈던 걸까.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미술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 사이에선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전설처럼 내려왔다. 마치 대학 교재처럼 딱딱하고 무거운 느낌의 제목과 판형 그리고 분량은 독자의 기를 죽인다. 그러나 어쩌랴. 일생에 한 번은 읽거나 최소한 집에 두고 가끔 제목이라도 감상해야 할 책이거늘.

 

이 책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 모든 미술을 소개하는 책의 원형이자 뿌리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영감을 받았을 것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여전히 서양미술에 입문하는 초보자에게는 곰브리치의 책은 잠을 오게 만드는 유용한 베개가 되고 만다. 저자의 서문 이상을 읽어나가 것이 쉽지만 않다.

 

그러한 독자를 위해서 추천하고 싶은 책이 살림지식총서세트 176번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이다. 서양미술을 이해하는데 꼭 알아두어야 할 기본적인 내용이 이 얇은 책 속에 들어있다. 서양 미술과 그 역사 그리고 그 조류를 이해하는데 유용하다. 만약 미술을 위해서 한 권의 책밖에 읽을 여유가 없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그런 가치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서양미술사 책에서 볼 수 있는 연대기적 서술 양식을 지양한다. 저자는 그림 속에 숨겨진 테마, 그동안 그림을 보면서 발견해내지 못한 상징적 의미를 중심으로 서양미술을 소개하고 있다.

 

 

 

 Scene #2  서양미술을 움직인 다섯가지 테마

 

여기서 저자가 소개하는 서양미술의 테마는 크게 다섯 가지다. ‘인간의 발견과 절대미(美)’, ‘신(神)’, ‘죽음’, ‘향락’, ‘감성’이다. 좀 더 쉽게, 즉 서양미술사의 연대기적 개념으로 이 다섯 가지 테마를 풀이하자면 고대 그리스 미술과 르네상스 미술, 중세, 바니타스(Vanitas) 미술, 로코코 미술, 낭만주의 미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각각의 미술사조를 대표하는 명화도 소개하고 있어서 서양미술의 주요 테마를 쉽게 이해하도록 구성했다. 

 

첫째는 인간의 발견과 절대미. 회화의 기원설은 여러 가지 내용이 있다. 수천 년 전부터 이 문제를 두고 이집트인들과 그리스인들은 서로 자기들이 먼저라고 아옹다옹해댔다. 로마의 학자인 플리니우스는 그 유명한 그림자 모사설을 주장한다. 도공의 과년한 딸이 코린트의 한 청년을 사랑했는데 그가 전쟁에 나가게 돼 미래를 기약할 수 없었다. 그녀는 어떻게 하면 그가 저세상 사람이 되더라도 영원히 추억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다. 애타는 갈구가 통했던 것일까. 그녀에게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마지막 만남의 날 청년을 자신의 집으로 안내해 벽에 비친 그의 그림자를 목탄으로 그렸다. 플리니우스와 그의 동시대인들은 그녀의 추억하고자 하는 욕망,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에 항거하고자 하는 욕망이 회화라는 장르를 탄생시켰다고 봤다.

 

 

 

라스코 동굴 벽화

 

 

그러나 서양인들이 수천 년 동안 철석같이 믿었던 ‘회화는 그림자의 윤곽을 그린 데서 탄생했다’는 설은 20세기에 들어와 폐기 처분의 운명을 맞는다. ‘그림자 모사설’의 종말을 가속화한 것은 원시 동굴 벽화의 발견이었다. 알타미라, 라스코 동굴의 벽에 그려진 수많은 야생동물은 코린트 도공의 솜씨를 무색하게 했다. 그 생생한 묘사를 낳은 저변에는 많은 사냥물을 포획하고자 하는 원시인들의 욕망과 종족 번성의 기원이 담겨 있다. 이제 곰브리치의 책을 비롯한 대부분의 미술 입문서는 그림의 기원을 더 이상 그림자 모사설에서 찾지 않는다. 

 

그러나 그림자를 따라 그림을 그리는 대신 자연을 모방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미메시스(Mimesis)’라는 어원이 등장했다. 플라톤이 현실을 모방한 미술은 가치가 없는 허구라고 비판했지만 미술의 진보는 멈출 수 없었다.

 

그리스 미술은 종교과 결부되어 주문에 따라 신과 영웅의 상들을 창조하였는데 종교상의 제약을 받지 않았다. 순수한 인간적인 것에다 뿌리를 내리고 자발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했다. 그 창작의 산물이 인체비례법과 조각의 제1원리인 콘트라포스토(Contraposto)이다. 콘트라포스토는 무게 중심을 실어 땅바닥에 내디딘 다리와 그 반대편의 발걸음을 옮기는 다리 사이의 힘의 불균형을 바로 잡으려 하면서 만들어지는 자연스러운 자세를 말한다. 우리가 오른쪽 어깨에 가방을 메면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같은 쪽 어깨를 위로 들어 올리고 반대편 어깨는 아래로 낮추듯이 말이다. 콘트라포스토는 움직이는 신체가 안정감을 유지하기 위해 취하는 균형의 미학이다. (그리스 미술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은 독자라면 살림지식총서 114번 『그리스 미술 이야기』를 참고하면 된다)

 

 

 

 
산드로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1484~1486년

 

 

그리스인들에게 아름다움이란 인간의 이성으로 발휘하고 느낄 수 있는 선(善)의 관념이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최상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리스 미술은 다분히 인간중심적이다. 이러한 고대 그리스의 미적 이상은 14~16세기 르네상스에 다시 활짝 꽃을 피게 된다. 이 중심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등장한다. 르네상스의 미술 역시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신화의 장면을 묘사하면서도 인간적으로 해석했다. 르네상스는 한동안 잊혔던 인간을 미술에서 재발견한 것이다.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와 르네상스 시기 중간에 위치한 미술은 어땠을까? 누군가는 서양사 또는 서양미술의 역사를 중세 이전과 이후를 나누기도 한다. 중세 이전은 마지막으로 화려한 창작의 열매를 맺었던 헬레니즘 문화의 로마 제국을, 중세 이후를 르네상스로 보고 있다. 중세는 ‘암흑시대’라는 긍정적이지 못한 수식어가 따라올 정도로 중세 이전의 고대 그리스 미술과 헬레니즘 미술과는 확연한 차이의 특징이 있다.

 

 

 

 

치마부에  「옥좌 위의 성모」 13세기경

 

 

그리스 미술이 인간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인간중심적이라면 중세 미술은 인간의 관념 그리고 신성(神性)을 묘사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중세는 신 중심 사회다. 로마 제국 멸망을 시점으로 서양문화는 헤브라이즘(Hebraism)의 종교 문화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중세 미술은 시각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보다는 하느님의 말씀, 즉 성서의 내용이나 교리를 전달하는 것이다.


 

 

 

 

 

한스 홀바인  「대사들」  1533년 / 비스듬한 위치에서 바라본 두개골의 모습

 

 

르네상스를 지나면서 이러한 관념적인 경향은 16세기에 다시 발현된다. 르네상스 때까지만 해도 예술가들은 인간의 이성을 찬사하는데 아끼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죽음 앞에서 부질없는 인간의 존재, 그 허무함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 때 등장해서 유행했던 미술이 바로 바니타스(Vanitas) 미술이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의미의 바니타스는 인간의 허영심과 세속적인 욕망을 경계한다. 바니타스 미술에 등장하는 오브제는 죽음 또는 유한성을 의미한다. 해골, 불이 꺼진 촛불, 멈출 수 없이 시간만 흘러가는 모래시계, 시든 꽃, 금방 건들면 터지고 마는 비눗방울. 바니타스 그림은 회화적으로 죽음이라는 관념을 상기시켜 준다.

 

 

 

 

프리고나르  「그네」  1766년

 

 

어둡고 엄숙한 바니타스 미술의 시대가 지나가고 18세기부터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은 귀족 문화가 성립된다. 귀족들만의 풍요와 향락이 느껴지는 로코코(Rococo) 시대가 등장한다. 르네상스의 단정하고 우아한 고전양식에 비하여 장식이 지나치게 화려할 정도로 감각적이다. 그래서 세련된 아름다움은 귀족들의 눈을 즐겁게 만들 정도로 사치스러운 느낌이 난다.

 

 

 

테오도르 제리코  「메두사호의 뗏목」  1819년

 

 

로코코 이후에 르네상스처럼 고귀한 인간의 속성을 표현하려는 신고전주의 미술이 등장했으나 그 유행의 틈 사이에 앵그르를 필두로 하여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려는 낭만주의라는 새로운 꽃이 피었다. 예술가들은 삶 속에서 느끼게 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들(사랑, 환희, 죽음, 고통 등)에서 영웅주의의 광기와 절망에 이르기까지 인간 본성의 여러 측면들을 그려냈다.

 

 

 

  Scene #3  그림을 눈으로 보는 것도 힘든데 머리로 보고 읽으라고?

 

모든 미술 작품은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고, 미술가는 작품을 통해 시대가 부여하는 목적의식을 표현한다. 서양미술을 발전하게 만든 테마에는 당시 예술가들의 목적의식이 들어있다. 그렇다면 이제 미술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다. 그림을 눈으로 보는 것도 힘든데 이제 와서 머리로 보고 읽으라고? 관념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어렵게 느껴지는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눈으로만 봐서는 불가능하다. 눈으로 보는 미술은 시각적인 만족을 채워줄 뿐이다. 머리로 읽는 미술은 우리가 그림 앞에서 머뭇거리게 만든 지적 호기심을 풀 수 있도록 한다. 사실 오늘날의 현대미술을 보면 알 수 있다. 시대가 변할수록 미술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니 기본 지식이 없다면 예술가의 회화적 목적뿐만 아니라 그러한 의식들이 모여서 움직이는 한 시대의 흐름마저도 조망할 수 없게 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미술은 그렇게 변하고 있다.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은 선사시대부터 20세기 현대미술까지 서양미술의 역사를 개관한 것이 아니다. 문고본의 한정된 분량상 헬레니즘 미술과 신고전주의 미술을 표피적으로 언급하고 (서양미술사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인상주의 미술과 관련된 테마를 설명하지 않은 것이 아쉽지만, 그럼에도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방대한 서양미술의 기본 테마를 쉽게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한 책임에 틀림없다. 이제 막 서양미술사를 입문한 독자라면 이 책으로 간단하게 워밍업으로 굳어진 머리를 유연하게 만든 상태에서 곰브리치의 미술사라는 커다란 산봉우리에 오르면 좋을 것이다. 무턱대고 서양미술사의 산봉우리에 오르다가 중간에 지쳐 졸면 곤란하다.

 

 

 

 

 



 
 
 
살림지식총서 예술-인간 정신의 위대한 발현 세트 - 전5권 - 플라톤 아카데미 행복한 책날개 선정도서 살림지식총서
권용준 외 지음 / 살림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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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톤 아카데미 행복한 책날개 선정도서 -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 (권용준 저, 살림지식총서 176)

 

 

 

 Scene #1  우리는 왜 그림을 보는 것인가 

 

어떤 그림을 명화라고 하자. 그런데 왜 우리는 이 그림을 보는 것인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세계적인 명화라는 데 이견을 표명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림이 어떤 기준으로 명화가 됐으며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보고 싶도록 만드는 그 매력이 무엇인지 설명하라면 명쾌하게 답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미술 교과서는 모든 것을 얘기해주지 않는다. 우리가 그림을 보면서 한번쯤 궁금하게 여길 법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도 찾을 수 없다. 미술의 역사적 흐름과 장르를 설명하는 데는 과잉 친절을 베풀지만 그것이 나타나게 된 사회, 경제, 문화적 배경에 대해선 말을 아낀다. 그래서 우리가 그동안 미술을 어렵게 느꼈던 걸까.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미술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 사이에선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전설처럼 내려왔다. 마치 대학 교재처럼 딱딱하고 무거운 느낌의 제목과 판형 그리고 분량은 독자의 기를 죽인다. 그러나 어쩌랴. 일생에 한 번은 읽거나 최소한 집에 두고 가끔 제목이라도 감상해야 할 책이거늘.

 

이 책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 모든 미술을 소개하는 책의 원형이자 뿌리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영감을 받았을 것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여전히 서양미술에 입문하는 초보자에게는 곰브리치의 책은 잠을 오게 만드는 유용한 베개가 되고 만다. 저자의 서문 이상을 읽어나가 것이 쉽지만 않다.

 

그러한 독자를 위해서 추천하고 싶은 책이 살림지식총서세트 176번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이다. 서양미술을 이해하는데 꼭 알아두어야 할 기본적인 내용이 이 얇은 책 속에 들어있다. 서양 미술과 그 역사 그리고 그 조류를 이해하는데 유용하다. 만약 미술을 위해서 한 권의 책밖에 읽을 여유가 없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그런 가치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서양미술사 책에서 볼 수 있는 연대기적 서술 양식을 지양한다. 저자는 그림 속에 숨겨진 테마, 그동안 그림을 보면서 발견해내지 못한 상징적 의미를 중심으로 서양미술을 소개하고 있다.

 

 

 

 Scene #2  서양미술을 움직인 다섯가지 테마

 

여기서 저자가 소개하는 서양미술의 테마는 크게 다섯 가지다. ‘인간의 발견과 절대미(美)’, ‘신(神)’, ‘죽음’, ‘향락’, ‘감성’이다. 좀 더 쉽게, 즉 서양미술사의 연대기적 개념으로 이 다섯 가지 테마를 풀이하자면 고대 그리스 미술과 르네상스 미술, 중세, 바니타스(Vanitas) 미술, 로코코 미술, 낭만주의 미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각각의 미술사조를 대표하는 명화도 소개하고 있어서 서양미술의 주요 테마를 쉽게 이해하도록 구성했다. 

 

첫째는 인간의 발견과 절대미. 회화의 기원설은 여러 가지 내용이 있다. 수천 년 전부터 이 문제를 두고 이집트인들과 그리스인들은 서로 자기들이 먼저라고 아옹다옹해댔다. 로마의 학자인 플리니우스는 그 유명한 그림자 모사설을 주장한다. 도공의 과년한 딸이 코린트의 한 청년을 사랑했는데 그가 전쟁에 나가게 돼 미래를 기약할 수 없었다. 그녀는 어떻게 하면 그가 저세상 사람이 되더라도 영원히 추억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다. 애타는 갈구가 통했던 것일까. 그녀에게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마지막 만남의 날 청년을 자신의 집으로 안내해 벽에 비친 그의 그림자를 목탄으로 그렸다. 플리니우스와 그의 동시대인들은 그녀의 추억하고자 하는 욕망,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에 항거하고자 하는 욕망이 회화라는 장르를 탄생시켰다고 봤다.

 

 

라스코 동굴 벽화

 

 

그러나 서양인들이 수천 년 동안 철석같이 믿었던 ‘회화는 그림자의 윤곽을 그린 데서 탄생했다’는 설은 20세기에 들어와 폐기 처분의 운명을 맞는다. ‘그림자 모사설’의 종말을 가속화한 것은 원시 동굴 벽화의 발견이었다. 알타미라, 라스코 동굴의 벽에 그려진 수많은 야생동물은 코린트 도공의 솜씨를 무색하게 했다. 그 생생한 묘사를 낳은 저변에는 많은 사냥물을 포획하고자 하는 원시인들의 욕망과 종족 번성의 기원이 담겨 있다. 이제 곰브리치의 책을 비롯한 대부분의 미술 입문서는 그림의 기원을 더 이상 그림자 모사설에서 찾지 않는다. 

 

그러나 그림자를 따라 그림을 그리는 대신 자연을 모방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미메시스(Mimesis)’라는 어원이 등장했다. 플라톤이 현실을 모방한 미술은 가치가 없는 허구라고 비판했지만 미술의 진보는 멈출 수 없었다.

 

그리스 미술은 종교과 결부되어 주문에 따라 신과 영웅의 상들을 창조하였는데 종교상의 제약을 받지 않았다. 순수한 인간적인 것에다 뿌리를 내리고 자발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했다. 그 창작의 산물이 인체비례법과 조각의 제1원리인 콘트라포스토(Contraposto)이다. 콘트라포스토는 무게 중심을 실어 땅바닥에 내디딘 다리와 그 반대편의 발걸음을 옮기는 다리 사이의 힘의 불균형을 바로 잡으려 하면서 만들어지는 자연스러운 자세를 말한다. 우리가 오른쪽 어깨에 가방을 메면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같은 쪽 어깨를 위로 들어 올리고 반대편 어깨는 아래로 낮추듯이 말이다. 콘트라포스토는 움직이는 신체가 안정감을 유지하기 위해 취하는 균형의 미학이다. (그리스 미술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은 독자라면 살림지식총서 114번 『그리스 미술 이야기』를 참고하면 된다)

 

 

 

 
산드로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1484~1486년

 

 

그리스인들에게 아름다움이란 인간의 이성으로 발휘하고 느낄 수 있는 선(善)의 관념이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최상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리스 미술은 다분히 인간중심적이다. 이러한 고대 그리스의 미적 이상은 14~16세기 르네상스에 다시 활짝 꽃을 피게 된다. 이 중심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등장한다. 르네상스의 미술 역시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신화의 장면을 묘사하면서도 인간적으로 해석했다. 르네상스는 한동안 잊혔던 인간을 미술에서 재발견한 것이다.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와 르네상스 시기 중간에 위치한 미술은 어땠을까? 누군가는 서양사 또는 서양미술의 역사를 중세 이전과 이후를 나누기도 한다. 중세 이전은 마지막으로 화려한 창작의 열매를 맺었던 헬레니즘 문화의 로마 제국을, 중세 이후를 르네상스로 보고 있다. 중세는 ‘암흑시대’라는 긍정적이지 못한 수식어가 따라올 정도로 중세 이전의 고대 그리스 미술과 헬레니즘 미술과는 확연한 차이의 특징이 있다.

 

 

 

 

치마부에  「옥좌 위의 성모」 13세기경

 

 

그리스 미술이 인간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인간중심적이라면 중세 미술은 인간의 관념 그리고 신성(神性)을 묘사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중세는 신 중심 사회다. 로마 제국 멸망을 시점으로 서양문화는 헤브라이즘(Hebraism)의 종교 문화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중세 미술은 시각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보다는 하느님의 말씀, 즉 성서의 내용이나 교리를 전달하는 것이다.


 

 

 

 

 

한스 홀바인  「대사들」  1533년 / 비스듬한 위치에서 바라본 두개골의 모습

 

 

르네상스를 지나면서 이러한 관념적인 경향은 16세기에 다시 발현된다. 르네상스 때까지만 해도 예술가들은 인간의 이성을 찬사하는데 아끼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죽음 앞에서 부질없는 인간의 존재, 그 허무함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 때 등장해서 유행했던 미술이 바로 바니타스(Vanitas) 미술이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의미의 바니타스는 인간의 허영심과 세속적인 욕망을 경계한다. 바니타스 미술에 등장하는 오브제는 죽음 또는 유한성을 의미한다. 해골, 불이 꺼진 촛불, 멈출 수 없이 시간만 흘러가는 모래시계, 시든 꽃, 금방 건들면 터지고 마는 비눗방울. 바니타스 그림은 회화적으로 죽음이라는 관념을 상기시켜 준다.

 

 

 

 

프리고나르  「그네」  1766년

 

 

어둡고 엄숙한 바니타스 미술의 시대가 지나가고 18세기부터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은 귀족 문화가 성립된다. 귀족들만의 풍요와 향락이 느껴지는 로코코(Rococo) 시대가 등장한다. 르네상스의 단정하고 우아한 고전양식에 비하여 장식이 지나치게 화려할 정도로 감각적이다. 그래서 세련된 아름다움은 귀족들의 눈을 즐겁게 만들 정도로 사치스러운 느낌이 난다.

 

 

 

테오도르 제리코  「메두사호의 뗏목」  1819년

 

 

로코코 이후에 르네상스처럼 고귀한 인간의 속성을 표현하려는 신고전주의 미술이 등장했으나 그 유행의 틈 사이에 앵그르를 필두로 하여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려는 낭만주의라는 새로운 꽃이 피었다. 예술가들은 삶 속에서 느끼게 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들(사랑, 환희, 죽음, 고통 등)에서 영웅주의의 광기와 절망에 이르기까지 인간 본성의 여러 측면들을 그려냈다.

 

 

 

 Scene #3  그림을 눈으로 보는 것도 힘든데 머리로 보고 읽으라고?

 

모든 미술 작품은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고, 미술가는 작품을 통해 시대가 부여하는 목적의식을 표현한다. 서양미술을 발전하게 만든 테마에는 당시 예술가들의 목적의식이 들어있다. 그렇다면 이제 미술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다. 그림을 눈으로 보는 것도 힘든데 이제 와서 머리로 보고 읽으라고? 관념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어렵게 느껴지는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눈으로만 봐서는 불가능하다. 눈으로 보는 미술은 시각적인 만족을 채워줄 뿐이다. 머리로 읽는 미술은 우리가 그림 앞에서 머뭇거리게 만든 지적 호기심을 풀 수 있도록 한다. 사실 오늘날의 현대미술을 보면 알 수 있다. 시대가 변할수록 미술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니 기본 지식이 없다면 예술가의 회화적 목적뿐만 아니라 그러한 의식들이 모여서 움직이는 한 시대의 흐름마저도 조망할 수 없게 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미술은 그렇게 변하고 있다.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은 선사시대부터 20세기 현대미술까지 서양미술의 역사를 개관한 것이 아니다. 문고본의 한정된 분량상 헬레니즘 미술과 신고전주의 미술을 표피적으로 언급하고 (서양미술사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인상주의 미술과 관련된 테마를 설명하지 않은 것이 아쉽지만, 그럼에도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방대한 서양미술의 기본 테마를 쉽게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한 책임에 틀림없다. 이제 막 서양미술사를 입문한 독자라면 이 책으로 간단하게 워밍업으로 굳어진 머리를 유연하게 만든 상태에서 곰브리치의 미술사라는 커다란 산봉우리에 오르면 좋을 것이다. 무턱대고 서양미술사의 산봉우리에 오르다가 중간에 지쳐 졸면 곤란하다.



 
 
 

 

 

 

 

“내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있다면 모두 ‘사단법인 맑고향기롭게’에 주어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토록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으려 하니, 부디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주십시오.”

 

이 같은 유언을 남기고 법정 스님이 입적한 지 4년이 지났다. 스님 입적 후 맑고향기롭게는 출판사와 스님의 저서를 절판키로 합의했다. 2011년 1월 이후 스님의 책은 일체 유통 판매가 중지되었다. 스님의 입적 소식에 평소 스님이 세상에 전하고자 한 이야기를 다시 듣고 보려한 사람들이 스님의 저서에 몰려들었다. 법정 스님이 세상을 떠난 직후부터 그가 자신의 책들을 절판하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말이 흘러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독자들과의 인연을 잘라내려는 싸늘한 칼날에 상처 받은 느낌이었다. 이제 서점에서 법정 스님의 책이 사라질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마침 그가 쓴 책들이 있다면 사람들은 그 책을 사러 서점으로 가곤 한다. 전국의 크고 작은 서점들은 고인이 쓴 책들을 모아 특별 코너를 만들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책을 고르며 추모의 마음을 서로 나누게 된다. 나도 여기에 동참하고 싶었다. 스님의 입적 소식이 들었을 때 서점에 가서 스님의 대표작 『무소유』를 구입하고 싶었지만, 당장 살 수가 없었다. 그 때 군 복무 중이라서 부대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스님이 입적한 날이 2010년 3월 11일. 병장 3호봉(3개월째)이었는데 2011년 1월까지 스님의 책을 구입할 수 있어서 5월에 전역할 때 구입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대구에 있는 대형서점이라 할 수 있는 교보문고에서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땐 책을 못 구해서 크게 아쉬운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스님의 글을 중학생 때부터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서 참 좋아했지만, 직접 구입해서 읽어본 적은 없었다. 갑자기 스님의 유언 소식을 듣고 책을 찾는데 혈안이 된 내 모습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마치 평소에 거들떠보지 않았던 하찮은 물건이 갑자기 사라진다거나 혹은 경제적 가치가 높아질 때 갖고 싶은 일종의 속물근성. 읽기 위해서 책을 사는 것이 아니라 가지기 위해서 책을 사는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후자의 독자였다. 스님이 강조한 ‘무소유’ 정신을 위배하고 있었다.

 

“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끼리도 돌볼 새 없이 들뜬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무소유’, 27쪽)

 

육신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스님의 책을 향한 소유 관념을 버림으로써 나는 아무것도 갖지 않은 빈손의 독자가 되었다. 언젠가는 스님의 책, 아니 스님의 글이 다시 독자들이 볼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믿으면서.

 

그런데 인간의 역사가 소유사(所有史)인 것처럼 마찬가지 우리 삶도 우리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하나라도 더 가지려는 소유사인 것은 분명하다. 절판 소식 이후에 온라인 서점이나 헌책방에 가면 스님의 책이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그 가격이 상식을 넘어선다. 새 책 이나 다름없는 깨끗한 상태의『무소유』의 가격만 해도 1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뿐만 아니라 스님이 저자의 이름으로 출판되었다가 절판된 책들도 가격이 높게 책정되어 있다. 인지도 높은 저자가 쓴 책이 절판본이 되면 서점에서 다시는 판매되지 않고, 쉽게 구할 수 없다. 그 가치로 환산한다면 판매자는 가격을 정가보다 높게 책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일부는 너무 터무니없이 가격을 높게 책정한다. 알라딘 중고샵을 검색하면 싼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으나 대부분 약간의 낙서나 사용한 흔적이 있는 ‘중’ 상태의 품질이다.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 (故 김수환 추기경)

 

김 추기경의 말씀처럼 아이러니하게도 가격이 비싸더라도 『무소유』을 포함한 스님의 책들은 소유하고 싶은 게 독자의 마음일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알라딘 온라인 중고샵에서 정가보다 비싼 가격으로 스님의 책을 구입한 적은 없지만, 작년 말부터 최근까지 스님의 책을 헌책방이나 알라딘 중고샵 매장에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했다.

 

 

 

 

 

 

 

 

 

 

 

 

 

 

 

 

 

사실 스님의 책을 다시 한 번 구입하기 시작한 것은 2011년부터였다. 그 때 스님이 번역한 고대의 불교 법전 『숫타니파타』를 반값할인으로 교보문고 매장에서, 『오두막 편지』는 동네에 있는 공공도서관에서 진행된 세일 행사에서 운 좋게도 딱 한 권 남아있는 것을 구입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무소유』마저 구입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지금까지 스님의 책을 구한 것만 해도 정말 나는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고 본다. 살면서 여복(女福)은 지지리도 없지만, 책복(冊福)만큼은 좋은 것 같다. 재미있게도 이 저자의 책만큼은 꼭 구하고 싶은 마음 혹은 소유욕이 들면 기가 막히게도 그 책이 내 눈앞에서 발견된다.

 

 

 

 

 

 

 

 

 

 

 

 

 

 

법정 스님의 책을 몇 권 더 구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대구에서도 열린 알라딘 중고샵 매장 덕분이었다. 가끔 스님의 책이 하루에 한 권에서 많게는 세 권 정도 고객이 이곳에 팔곤 한다. (이 글을 통해서 대구 중고샵 매장에 스님의 책을 파는 이름, 얼굴 모르는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진리의 말씀, 법구경』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알라딘 중고샵 매장에서 직접 구한 것이다. 『법구경』은 올해 초에 대구시청 근처 헌책방에서 구했다.

 

 

 

 

 

 

 

 

 

 

 

 

 

 

 

알라딘 중고샵 매장을 남들보다 자주 들리는 편이라서 나름 큰 수확(?)을 거두지만, 여러 권 놓치는 경우도 꽤 많았다. 고객이 금방 판 책, 특히 시중에 구할 수 없는 스님의 책은 매장을 찾는 다른 고객들의 눈에 안 띌 수가 없다. 중고샵 매장에서 판매되는 스님의 책은 대부분 A 서가에 꽂혀 있다. ‘종교’ 분야의 책이 진열되는 B 서가나 에세이의 C 서가에 꽂혀 있다면 고객의 눈에 띌 확률은 적다. 그러나 항상 고객들이 많이 지나다니고, 다른 사람이 방금 매장에서 판 책들을 파는 A 서가에 꽂혀 있으면 모 아니면 도다. 검색해서 책이 판매되는 사실을 알고 나서 당장 매장으로 간다 해도 이미 다른 고객이 벌써 구입한 뒤다. 특히 『무소유』는 세 번의 허탕 끝에 중고샵 매장에서 구한 것이다. 다행히 내가 구입한 『무소유』는 A 서가가 아닌 에세이의 B 서가, 특히 고객의 시선이 많이 닿지 않는 가장 제일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 운이 좋게도 『무소유』옆에는  『일기일회』도 있었다.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버리고 떠나기』『서 있는 사람들』은 대구가 아닌 울산 알라딘 매장에서 구입했다. 지난 2월 말에 4박 5일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여행의 출발지가 울산이었다. 울산 버스터미널에 그 곳에서 4박 5일 여행에 동행하는 지인을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해버리는 바람에 약속시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래서 도보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울산 알라딘 매장에서 책을 구입하지 않고(!) 책만 읽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웬걸. A 서가에 법정 스님의 책, 그것도 세 권을 발견했다. 4박 5일 일정을 고려해서 여행 개인 경비를 쓰면 안 된다고 마음으로 다짐했건만,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안 사놓으면 여행가는 내내 후회할 것 같았다. 결국 세 권을 구입했다. 짐이 가득해서 비좁은 큰 배낭에 스님의 책 세 권을 넣은 채 나는 순조롭게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다. 이상하게 짐은 무겁지 않았다.

 

‘무소유’를 소유한다. 그동안 스님의 책을 구입한 이유는 스님의 글이 좋은 것도 있지만 솔직히 소유욕을 버리지 못한, 이 못된 기질도 한 몫 하고 있다. 지금도 스님의 책을 펼치거나 가끔 책장에 따로 꽂혀 있는 스님의 책들을 보면서 일종의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과연 나는 책으로서 갖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로 이 책을 갖고 싶은 것인가? 소유하고 난 뒤에서야 소유욕을 경계하는 마음이 든다.

 

지금도 스님의 책은 어디선가 판매되고 있다. 이 정도면 이미 ‘거래’인 동시에 ‘장사’다. 서글픈 아이러니다. 스님은 평생 무소유를 설파했지만, 정작 스님이 떠난 자리는 소유욕으로 넘쳐나고 있으니 말이다. 스님께서는 버리라 하는데 나는 더욱 더 쥐려한다.

 

사랑이니 무소유니 하는 진리를 말하긴 쉽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법정 스님은 한평생 자신에게 칼날처럼 엄격하며, 단순하게 검소하게 살기를 원했고,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소유와 관계의 노예가 되지 않는 자유로움을 얻고자 했다.

 

이 세상 ‘말의 공해’에 일조한 것 같아 조금이나마 말을 거둬들이는 차원에서 절판을 생각했다는 스님, 글과 말의 덧없음을 절판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깨우쳤던 스님. 그러나 중생은 여전히 마지막 길에 자신의 책들을 거두어간 스님이 야속하기만 하다. 『무소유』가 처음으로 중생들 앞에 등장했던 바로 오늘. 다시 한 번 『무소유』를 펼쳐보면서 표지를 쓰다듬어본다.

 

스님은 ‘베풂’보다는 ‘나눔’이란 말을 더 좋아했다. 도움을 주고도 얼굴이나 이름을 알리지 않는 ‘무상보시’ 원칙을 마음속에 새기고 실천하다 조용히 갔다. 마지막까지 자신을 버리고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기원했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삶이냐』에서 물질적 소유와 탐욕의 소유양식에서부터 창조하는 기쁨을 나누는 존재양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유와 탐욕을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면 창조하는 기쁨을 통해 삶의 양식을 나누고 싶다. 스님이 떠나간 지 지금, 이 책들 가지고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을 해보려고 한다. 스님이 풀어놓은 말을 많은 사람들이 같이 읽고, 함께 생각하고, 또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 독서의 단상을 쓸 생각이다. 스님이 남긴 좋은 문장을 발췌해서 소개하고, 문장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 쓸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내가 죽을 때까지 스님의 책이 다시 판매되지 않는다면 그 때가지 구입한 책들을 ‘맑고향기롭게’ 재단에 기부할 것이다.

 

 




 
 
 
살림지식총서 예술-인간 정신의 위대한 발현 세트 - 전5권 - 플라톤 아카데미 행복한 책날개 선정도서 살림지식총서
권용준 외 지음 / 살림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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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톤 아카데미 행복한 책날개 선정도서 - 그리스 미술 이야기(노성두 저, 살림지식총서 114)

 

 


 Scene #1  그림의 기원은 그림자다

 

램프 하나가 어둠을 밝히고 있는 방 안에서 옆모습의 여인이 남자 쪽으로 몸을 비스듬히 기대고 있고, 반쯤 앉은 자세로 여인을 부둥켜안은 남자의 얼굴은 위로 젖혀져 있다. 오른쪽에 있는 램프 불빛으로 여인의 옷과 목덜미가 환하게 빛나고 있고, 여인의 옆얼굴과 남자의 몸은 절반가량 어둠에 잠겨 있다. 왼편 벽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데, 여인은 연인의 등 너머로 벽에 비친 그림자의 윤곽선을 따라 남자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이별을 앞두고 자기 애인을 그림으로나마 간직하기 위해 벽에 비친 연인의 그림자를 그대로 따라 그리고 있는 여인은 고대 그리스의 도공 부타데스의 딸이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학자인 플리니우스는 저서 『박물지』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보조물로 그림자를 잡아두는 여인의 이야기가 서양회화의 시초를 알리는 것이라고 전한다.

 

‘실제 대상-그림자-회화’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 속 일련의 과정에서 우리는 그림 그리기, 나아가 예술적 표현과 관련하여 두 가지 중요한 전제를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예술적 표현은 사적 욕망의 구체화라는 것,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욕망의 대상에 다가가고자 하면 할수록 그 대상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시간의 퇴적 속에서 예술적 표현의 방식이 보다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면서 이제 우리는 예술에 대한 원초적 욕망을 그저 희미한 화석으로만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Scene #2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제욱시스의 포도 그림 주위로 날아다니는 새들을 묘사한 상상도

 

 

어느 문명,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과거에는 미술가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낼 때 ‘실물처럼 생생한’이라는 표현을 써 왔다. 신라시대의 화가 솔거에 대한 기록을 보면 황룡사 벽에 늙은 소나무를 그렸는데 각종 새들이 진짜로 알고 날아들다가 부딪쳐 떨어지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일견 상투적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동물이든 사람이든 간에 관객의 눈을 속일 만큼 사실적으로 재현해 내는 화가나 조각가의 놀라운 기술을 강조하는 이러한 일화들은 동, 서양 미술의 역사에서 자주 발견된다.

 

고대 그리스 화가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의 경쟁 이야기는 서양 미술사에서 특히 유명하다. 제욱시스는 포도를 너무도 잘 그려서 새들이 쪼아 먹으려고 달려들 정도였다고 하는데, 이를 두고 너무나 자랑을 하자 파라시오스는 제욱시스를 불러다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그림 위에 천이 드리워져 있어서 이를 걷으려던 제욱시스는 천 자체가 파라시오스의 그림인 것을 뒤늦게 알고 감탄하면서 새를 속인 자신보다 화가를 속인 파라시오스가 한 수 위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그림들 모두가 현재 우리들의 눈에도 실물로 착각될 정도로 세밀하고 정확하게 묘사되었던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화가는 대상으로부터 그것을 그것이게 만드는 것, 즉 대상의 본질을 뽑아내 화폭 위로 끌어온다. 그리고 대상에 우연히 덧붙여진 부수적인 요인들을 걸러내 제거한다. 본질이 아니면, 가장 인상적이고 강렬한 것, 그것을 미메시스(mimesis)는 드러낸다. 무명으로 알려진 도공의 딸부터 시작해서 고대 그리스 화가들은 가상의 공간 속에 현실을 옮겨놓는 예술적 미메시스를 시도했다.

 

플라톤은 예술적 미메시스가 현상을 모방해서 사람을 현혹하게 만든다고 부정했으나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메시스를 왜곡의 속임수로 여기지 않고, 미메시스의 원리 속에서 회화 창작의 본질을 밝혀주었다.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림 자체에 머무르지 않고, 추론하여 그림을 건너 대상 자체로 간다. 대상과 그림의 동일성을 파악하는 순간, 감상자는 그림이 포착한 대상의 본질을 배우며, 그림에 대한 미학적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Scene #3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다

 

 

 

 

 

(왼쪽) 벨베데레의 아폴론 / (오른쪽) 폴리클레이토스  「큰 창을 든 남자」

그리스 고전기 조각의 걸작인 밀로의 비너스는 벨베데레의 아폴로와 함께 이상적인 인체비례로 유명하다. 즉, 고전기의 걸출한 조각가인 폴리클레이토스가 ‘카논(canon)’이라고 부른 황금비율(0.618:0.382)이 적용된 것이다. 이는 비너스 상의 머리에서 배꼽까지가 전체 신장의 0.382, 배꼽에서 발끝까지가 0.618에 이르는 비율이다.

 

초기 그리스 조각은 수직적이고 딱딱한 이집트 조각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집트 조각은 지나치게 규칙이 엄격하고 자세가 경직돼 그리스 조각가들의 표현 욕구를 만족시키기 어려웠다. 이집트 조각도 인체의 수와 비례관계를 정해두고 설계도에 있는 그대로 똑같이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다 보니 예술가의 순수한 창작욕을 마음껏 발산할 수 없었다.

 

이집트식 카논대로 조각을 만들었던 그리스 조각가들이 입장에서는 더욱 답답했을 터. 그리스 조각가들이 원하는 것은 조각에서 느낄 수 있는 ‘움직임과 생명’이었다. 그들은 여인의 조각상을 진짜 살아있는 여인이 되기를 비너스 여신에게 소원을 빌었던 갈라테이아가 되고 싶었다.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였던 그리스인들은 이집트 조각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자유로운 자세의 조각상을 만들려고 했다.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상』에서 소크라테스는 조각가를 ‘조각에 살아숨쉬는 듯한 생명력을 부여하는 자’라고 언급한다. 그리스 조각가의 능력을 넘어서 세계 미술의 진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식 카논을 높이 평하는데 적합한 최고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가 새와 사람을 속일 정도로 생동감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면, 무명의 그리스 조각가들은 눈속임을 넘어서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을 줄 알았다. 표현의 자유를 무한대로 확장시키는 동시에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그리스 조각가들은 끌과 망치를 가지고 자신의 확신을 이처럼 아름다운 조각 작품으로 실현했다. 후대의 미술가들이 밀로의 비너스를 보면서 닿지 못할 아름다움의 영원한 이상이 지상에 구현되었다고 찬사를 보낸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Scene #4  한 인간에게는 작은 그림에 불과하지만 인류에게는 큰 도약이다

 

그리스 미술을 빼놓고 서양미술사를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르네상스 이후 서구의 예술가와 미술애호가들은 그리스 미술을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간주, 후대의 미술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그리스 미술에 대한 숭배와 향수, 그리고 이에 대한 반발과 전복의 욕구야말로 서양미술사를 움직여온 원동력이다. 그리스 미술은 이처럼 서양미술사에서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 미술은 근대 서양인에 의해 미화되고 왜곡된 대표적인 예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대체로 그리스 미술을 아름다움이라는 관점에서 관찰되었다. 그러므로 비너스나 많은 여신의 나신상들은 단지 옷을 벗은 여인의 아름다운 조각상만으로 받아들여졌고 파르테논 신전 같은 건축물들도 구조, 기둥모양, 비례 같은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건축적인 요소만이 부각되었다.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자국에 불과하지만 인류에게는 큰 도약이다’, 달에 첫 발자국을 남긴 닐 암스트롱의 말을 떠올려 보자. 도공의 딸이 연인의 그림자를 보고 따라 그린 것이 한 인간에는 작은 그림에 불과하지만 인류에게는 서양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큰 도약이다. 모방이라는 첫 발걸음을 시작해서 생동감이 느껴지게 만드는 카논까지 고대 그리스 미술은 작지만 큰 여러 번의 도약을 통해서 미술은 물론이고 뛰어난 문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고대 그리스 미술 또한 그렇다. 무명의 예술가들은 단순히 상상력에 기대지 않고, 실제로 자연을 관찰하고 비교함으로써 예술의 가능성을 실험했다. 그리고 새로운 표현 가능성을 모색했다. 이러한 높은 수준의 미술은 서양 미술 문명의 기본적인 틀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스 미술 이야기 살림지식총서 114
노성두 지음 / 살림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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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그림의 기원은 그림자다

 

램프 하나가 어둠을 밝히고 있는 방 안에서 옆모습의 여인이 남자 쪽으로 몸을 비스듬히 기대고 있고, 반쯤 앉은 자세로 여인을 부둥켜안은 남자의 얼굴은 위로 젖혀져 있다. 오른쪽에 있는 램프 불빛으로 여인의 옷과 목덜미가 환하게 빛나고 있고, 여인의 옆얼굴과 남자의 몸은 절반가량 어둠에 잠겨 있다. 왼편 벽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데, 여인은 연인의 등 너머로 벽에 비친 그림자의 윤곽선을 따라 남자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이별을 앞두고 자기 애인을 그림으로나마 간직하기 위해 벽에 비친 연인의 그림자를 그대로 따라 그리고 있는 여인은 고대 그리스의 도공 부타데스의 딸이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학자인 플리니우스는 저서 『박물지』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보조물로 그림자를 잡아두는 여인의 이야기가 서양회화의 시초를 알리는 것이라고 전한다.

 

‘실제 대상-그림자-회화’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 속 일련의 과정에서 우리는 그림 그리기, 나아가 예술적 표현과 관련하여 두 가지 중요한 전제를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예술적 표현은 사적 욕망의 구체화라는 것,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욕망의 대상에 다가가고자 하면 할수록 그 대상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시간의 퇴적 속에서 예술적 표현의 방식이 보다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면서 이제 우리는 예술에 대한 원초적 욕망을 그저 희미한 화석으로만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Scene #2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제욱시스의 포도 그림 주위로 날아다니는 새들을 묘사한 상상도

 

 

 

어느 문명,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과거에는 미술가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낼 때 ‘실물처럼 생생한’이라는 표현을 써 왔다. 신라시대의 화가 솔거에 대한 기록을 보면 황룡사 벽에 늙은 소나무를 그렸는데 각종 새들이 진짜로 알고 날아들다가 부딪쳐 떨어지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일견 상투적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동물이든 사람이든 간에 관객의 눈을 속일 만큼 사실적으로 재현해 내는 화가나 조각가의 놀라운 기술을 강조하는 이러한 일화들은 동, 서양 미술의 역사에서 자주 발견된다.

 

고대 그리스 화가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의 경쟁 이야기는 서양 미술사에서 특히 유명하다. 제욱시스는 포도를 너무도 잘 그려서 새들이 쪼아 먹으려고 달려들 정도였다고 하는데, 이를 두고 너무나 자랑을 하자 파라시오스는 제욱시스를 불러다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그림 위에 천이 드리워져 있어서 이를 걷으려던 제욱시스는 천 자체가 파라시오스의 그림인 것을 뒤늦게 알고 감탄하면서 새를 속인 자신보다 화가를 속인 파라시오스가 한 수 위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그림들 모두가 현재 우리들의 눈에도 실물로 착각될 정도로 세밀하고 정확하게 묘사되었던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화가는 대상으로부터 그것을 그것이게 만드는 것, 즉 대상의 본질을 뽑아내 화폭 위로 끌어온다. 그리고 대상에 우연히 덧붙여진 부수적인 요인들을 걸러내 제거한다. 본질이 아니면, 가장 인상적이고 강렬한 것, 그것을 미메시스(mimesis)는 드러낸다. 무명으로 알려진 도공의 딸부터 시작해서 고대 그리스 화가들은 가상의 공간 속에 현실을 옮겨놓는 예술적 미메시스를 시도했다.

 

플라톤은 예술적 미메시스가 현상을 모방해서 사람을 현혹하게 만든다고 부정했으나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메시스를 왜곡의 속임수로 여기지 않고, 미메시스의 원리 속에서 회화 창작의 본질을 밝혀주었다.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림 자체에 머무르지 않고, 추론하여 그림을 건너 대상 자체로 간다. 대상과 그림의 동일성을 파악하는 순간, 감상자는 그림이 포착한 대상의 본질을 배우며, 그림에 대한 미학적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Scene #3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다

 

 

 

 

 

(왼쪽) 벨베데레의 아폴론 / (오른쪽) 폴리클레이토스  「큰 창을 든 남자」

 

 

그리스 고전기 조각의 걸작인 밀로의 비너스는 벨베데레의 아폴로와 함께 이상적인 인체비례로 유명하다. 즉, 고전기의 걸출한 조각가인 폴리클레이토스가 ‘카논(canon)’이라고 부른 황금비율(0.618:0.382)이 적용된 것이다. 이는 비너스 상의 머리에서 배꼽까지가 전체 신장의 0.382, 배꼽에서 발끝까지가 0.618에 이르는 비율이다.

 

초기 그리스 조각은 수직적이고 딱딱한 이집트 조각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집트 조각은 지나치게 규칙이 엄격하고 자세가 경직돼 그리스 조각가들의 표현 욕구를 만족시키기 어려웠다. 이집트 조각도 인체의 수와 비례관계를 정해두고 설계도에 있는 그대로 똑같이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다 보니 예술가의 순수한 창작욕을 마음껏 발산할 수 없었다.

 

이집트식 카논대로 조각을 만들었던 그리스 조각가들이 입장에서는 더욱 답답했을 터. 그리스 조각가들이 원하는 것은 조각에서 느낄 수 있는 ‘움직임과 생명’이었다. 그들은 여인의 조각상을 진짜 살아있는 여인이 되기를 비너스 여신에게 소원을 빌었던 갈라테이아가 되고 싶었다.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였던 그리스인들은 이집트 조각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자유로운 자세의 조각상을 만들려고 했다.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상』에서 소크라테스는 조각가를 ‘조각에 살아숨쉬는 듯한 생명력을 부여하는 자’라고 언급한다. 그리스 조각가의 능력을 넘어서 세계 미술의 진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식 카논을 높이 평하는데 적합한 최고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가 새와 사람을 속일 정도로 생동감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면, 무명의 그리스 조각가들은 눈속임을 넘어서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을 줄 알았다. 표현의 자유를 무한대로 확장시키는 동시에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그리스 조각가들은 끌과 망치를 가지고 자신의 확신을 이처럼 아름다운 조각 작품으로 실현했다. 후대의 미술가들이 밀로의 비너스를 보면서 닿지 못할 아름다움의 영원한 이상이 지상에 구현되었다고 찬사를 보낸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Scene #4  한 인간에게는 작은 그림에 불과하지만 인류에게는 큰 도약이다

 

그리스 미술을 빼놓고 서양미술사를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르네상스 이후 서구의 예술가와 미술애호가들은 그리스 미술을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간주, 후대의 미술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그리스 미술에 대한 숭배와 향수, 그리고 이에 대한 반발과 전복의 욕구야말로 서양미술사를 움직여온 원동력이다. 그리스 미술은 이처럼 서양미술사에서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 미술은 근대 서양인에 의해 미화되고 왜곡된 대표적인 예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대체로 그리스 미술을 아름다움이라는 관점에서 관찰되었다. 그러므로 비너스나 많은 여신의 나신상들은 단지 옷을 벗은 여인의 아름다운 조각상만으로 받아들여졌고 파르테논 신전 같은 건축물들도 구조, 기둥모양, 비례 같은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건축적인 요소만이 부각되었다.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자국에 불과하지만 인류에게는 큰 도약이다’, 달에 첫 발자국을 남긴 닐 암스트롱의 말을 떠올려 보자. 도공의 딸이 연인의 그림자를 보고 따라 그린 것이 한 인간에는 작은 그림에 불과하지만 인류에게는 서양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큰 도약이다. 모방이라는 첫 발걸음을 시작해서 생동감이 느껴지게 만드는 카논까지 고대 그리스 미술은 작지만 큰 여러 번의 도약을 통해서 미술은 물론이고 뛰어난 문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고대 그리스 미술 또한 그렇다. 무명의 예술가들은 단순히 상상력에 기대지 않고, 실제로 자연을 관찰하고 비교함으로써 예술의 가능성을 실험했다. 그리고 새로운 표현 가능성을 모색했다. 이러한 높은 수준의 미술은 서양 미술 문명의 기본적인 틀을 만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