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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어서 밤새읽는 소립자 이야기
다케우치 카오루 지음, 조민정 옮김, 정성헌 감수 / 더숲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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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보여주려다가 엄마가 빠져서 읽고 있어요. 소립자의 세계를 발견한 과학자만큼이나 흥분해서 초롱초롱 눈밝히게 되네요. 힉스입자,초끈이론! 다 덤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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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다 하지 못한 - 김광석 에세이
김광석 지음 / 예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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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같은 목소리, 김광석 [미처 다하지 못한]

 

내가 김광석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에 대해 아주 친했다는 듯이, 많은 것을 함께 했다는 듯이

 

나는 아직도 그가 내민 잔에 푸르른 눈물 한 방울을 돌려주지 못했다. 그는 너무나도 재빨리 이 술자리를 뒤로한 채 집으로 가버린 것이었다. 아아, 광석이 형, 시바.

라고 뇌까리는 시인 류근이 있었고,

 

광석이 형이 쓴 일기장을 가만 보고 있자니 형이 글을 쓰고 싶어했던 것 같다는 생각을 이제 한다. (...)

그의 글씨는 부끄러움을 타서 때론 붉다

라고 회고하는 시인 이병률도 있었다.

그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시인들, 노래하는 가객들이 있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으며 피를 나누어 가진 딸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내가 뭐라고...

 

그의 사적이고 내밀한 메모로 가득한 일기를 들여다 본단 말인가.

이 세상을 뒤로한 지 오래인 그를 이제 와 추억해 보았댔자 다시 살아돌아올 것도 아니고, 내가 그의 글을 읽고 좀 아는 척해보았댔자 달라질 것도 없는데..

 

이렇게 시니컬하게 나열하는 이유는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더 커질 것을 염려해서이다.

이렇게 애써 그의 글을 밀쳐내는 이유는 그의 모습을 먼발치서나마 보고 싶어할 것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없다. 없다. 없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남아 있다.

나는 오직 그의 새벽 같은 목소리를 그리워할 뿐,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의 목소리에서 짙은 슬픔을,

때로는 사랑에 대한 무한한 공감을,

다정다감한 그의 심성을 느낄 뿐이다.

아무리 춥고 힘들어도 봄을 기다리던 그의 바람을 목소리에서 읽어낼 뿐이다.

 

가지 않은 길이 그렇게도 궁금하여 따라 나섰나요...

이제 다시는 푸근한 웃음과 나직하면서도 청량했던 그 목소리를 들을 순 없는 건가요.

오직 노래로만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건가요.

 

<사랑했지만>

김광석은 어느 날 참석한 모임에서 어느 할머니가 비 오던 날, 길 한복판에서 이 노래가 가게에서 흘러나오자 비를 맞으며 끝까지 들으시는 모습을 봤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는 마음을 고쳐먹고 노래를 더 열심히 불러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버스 안에서 누군가의 신청곡으로 DJ의 손에 의해 재생되는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들으면서도, 밤늦은 시각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눈물을 머금는다. 감정이 북받칠 때에는 엉엉 울어버리기도 한다.

사람의 귀를 잡아 끄는 은근한 매력이 있고 감정을 오롯이 전달할 줄 아는 진정성 때문에 그 눈물은 주체할 수 없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곱고 희던 그손으로

넥타이를 매어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막내아들 대학시험

뜬눈으로 지내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큰딸아이 결혼식날

흘리던 눈물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눈물을 기억하오

 

세월이 흘러감에

흰머리가 늘어가네

모두다 떠난다고

여보 내손을 꼭 잡았소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올 그먼길을

어찌 혼자 가려하오

여기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가사만 적었을 뿐인데도 또르르 흘러내리는 눈물.

또 내 마음을 훔치셨군요.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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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 최인호 유고집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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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유고집 [눈물]

 

그때였습니다. 우연히 거울을 본 순간 저는 제 얼굴이 변화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 얼굴이 서너 개의 표정을 거쳐 마치 하이드에서 지킬 박사로 변하는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변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신앙체험을 지금껏 아무에게도 털어놓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고백하여도 좋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33

 

마흔 셋에 천주교 신자가 되어 아침저녁으로 기도하고, 밥 먹을 때 성호를 긋고, 말할 때마다 걸핏하면 예수님과 회개와 부활 같은, 성경의 용어들을 즐겨 말하는 이른바 ‘예수쟁이’가 되어버린 최인호를 맞닥뜨렸을 때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내가 알던 최인호는 <잃어버린 왕국>에서 고구려와 백제 등의 역사를 힘있게 이야기하고, <상도>에서 자신의 길을 가는 거상의 이야기를 일구어낸 이야기꾼이었는데...

종교를 믿지 않는 내가 길거리에서 “예수 믿으세요.”하며 애를 들쳐 업고 내 팔을 부여잡는 아주머니를 만났을 때 얼마나 곤혹을 치르곤 했는데...

 

죽어 버린 육체의 거부할 수 없는 마지막 자백이라며 오랜 투병 생활 속에서도 끝까지 펜을 놓지 않았던 그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흔적 속에서 주저리 주저리 인용되는 성서의 구절과 “주님”을 영접하기엔 , 갑작스레 벌어져 버린 추억 속의 최인호와 유고 속의 최인호의 간극이 너무나 커서 , 나의 영혼은 삽시간에 얼어붙어 버렸다.

머릿속이 꽁꽁 얼어붙어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만나게 되는 “주님”들에 일일이 싫다는 반응을 채 표시하지도 못한 채 그저 멍하니...들여다 볼 뿐이었다.

그러나 책의 말미에 붙은 사회 각계각층 인사들의 추모글들을 보면서, “아~최인호였지.” “그래, 이 글을 쓴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최인호야.” 되뇌일 수 있었고, 어렴풋이나마 병마의 고통 속에서 그가 택한 이 길이 있었기에 끝까지 작가로 남을 수 있지 않았나...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고 어머니. 엄마. 저 글 쓰게 해 주세요. 앙앙앙앙. 아드님 예수께 인호가 글 좀 Tm게 해 달라고 일러 주세요. 엄마, 오마니!(...)

선생은 자신의 이런 기도를 막무가내 떼쓰기 기도라고 했다. 항암 치료로 빠진 손톱에 골무를 끼워 가며 매일 30매씩 손으로 써내려간 장편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바로 그 기도의 응답이었다. 선생은 늘 소설가로 죽고 싶다고 말했으니, 지금은 그의 소망이 마침내 이뤄지는 가을이다. 이젠 편히 쉬셔도 될 테지만, 아마 내가 아는 선생은 지금도 계속 소설을 쓰고 계실 듯하다. 거기가 어디든. -332

 

소설가 김연수가 최인호를 추억하며 쓴 글의 일부이다.

 

활달하고 다정하고 장난기 많은 최인호를 기억하는 수많은 이들의 추모하는 글 속에서 무수한 그리움과 존경과 애도를 읽었다.

짧고도 간결한 이 책의 제목은 [눈물]

작가 최인호의 눈물과 그를 추억하는 모든 이들의 눈물 방울이 합쳐진 값진 [눈물]이 아닌가 한다.

"주님이 오셨다"는 말과 함께 천사의 미소를 남기며 이세상을 하직한 최인호.

부디 평안하길.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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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적어 - 세상 사람들이 뽑은 가장 소중한 단어 50
정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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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목적어는 바나나?^^[내 인생의 목적어]

 

카피라이터가 아니라 이제는 작가로 불러도 무방할, 정철의 에세이.

카피라이터로서의 그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카피라이터 정철이라 써 놓은 걸 보니 꽤 인지도가 있는 사람인가 보았다. 

 

죽는 날까지 가져갈 당신의 단어는 무엇입니까?

바꿔 말해서,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 책에는 세상 사람들이 뽑은 가장 소중한 단어 50 개가 들어 있다.

 

 

 

설문을 해서 얻게 된 1위에서 44위까지 그리고 순위 밖 여섯 단어를 합쳐 총 50개의 인생의 목적어가 이 책에 실려 있다. 가족, 사랑, 너, 나, 우리, 엄마, 아버지 외에 열정, 도전, 자유 그리고 돈 등등에다가 순위 밖의 여섯 단어 그러나, 굳은살, 자식, 술, 스무 살, 그냥 까지...

 

이 단어들을 거울로 놓고 나를 비춰 본 다음, 나만의 목적어를 찾는 것이 이 책을 덮기 전에 할 일이라고 했지만, 나는 솔직히 말해서 아직 찾지 못했다.

한 번 쓰윽 보아 넘기기만 해도 되는 것들이지 않아? 하고, 대충 보면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단어 하나하나를 꼼꼼히 되짚어 보면 하나만 가지고 생각하는데도 여러 날, 혹은 여러 달이 걸릴 수도 있다.

저자는 특히나 언어의 구사에 있어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므로 저자의 말을 따라 술술 읽어가다 보면 훅~ 하고 홀리고 만다.

 

죽는 날까지 가져갈 당신의 단어는 무엇입니까?

바꿔 말해서,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

 

 

같은 말도 이렇게 잘도 뒤집어 다른 말로 바꾸는 재주.

 

 

애초에 그 단어 하나에 내가 기대하고 있던 생각들을 훨씬 뛰어넘어 가버리는 그의 말에 내 단어의 가치는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저자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세계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서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리뷰는 50개의 단어에 대한 나만의 의미를 적어두는 것이 될 테지만, 저자의 언설을 뒤집을 만큼 반짝반짝한 뒤집어 보기가 안 떠올라서 책을 덮었는데도, 그저 표지의 고릴라가 바나나를 들여다보듯이 멍하니 책만 들여다보게 된다.

^^

내인생의 목적어가 바야흐로 바나나로 정해지는 순간이다.

 

그럼, 진짜 내 꾸을 만날 때까지 내가 할 일은 무엇일까? 없다. 그냥 공부하고 친구 만나고 영화 보러 가고, 늘 하던 일 그대로 열심히 하면 된다. 늘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또 그렇게 하면 된다. 세상 그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 많지 않다.

그러다 운명의 어느 날이 온다. (...)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이거였어! 바로 이거였어! 하는 탄식이 나오는 그 순간, 호흡이 빨라지고 가슴이 방망이질을 한다. -39

 

지금 당신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책입니다. 책은 말을 거는 물건입니다. 문학이라 분류되는 책은 조금 돌려서 멋있게 말을 걸고, 실용이라 분류되는 책은 직선으로 말을 겁니다. 인문이라 분류되는 책은 조금 어려운 말로 말을 걸고, 어린이라 분류되는 책은 가장 쉬운 말로 말을 겁니다. 책 한 권을 산다는 것은 그 책이 당신에게 말을 거는 것을 당신이 허락한다는 뜻입니다. -98

 

스무 살

264페이지에서 말하는 스무 살에 해야 할 스무 가지 일은, 나도 시간을 두고 20가지를 작성해서 내 딸에게, 내 아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목록들로 가득하다.

사랑, 실연, 인생의 첫 번째 책 선정, 멘토 만나기, 논쟁하기, 무대에 오르기...

당신이 이미 서른이나 마흔이라면? 스무 살에 하지 못하고 지나 온 것들이 몇 개나 되는지 헤어 보라. 아직 늦지 않았다. -271

 

아직 늦지 않았다고 위무해 주는 말. 이 말이 고팠다.

 

생각

 

책상 위에서 저지른 생각

 책상 위에 있는 용구들도 생각의 싹이 되어줄 수 있다. 그들을 한데 싹 엮은 글 하나를 써 내려가는 저자.

 

 

 

 

 

A4 용지 위에 커피를 흘렸다. 나이가 들수록 실수가 잦다. 휴지를 드는데 전화가 왔다. 잘못 걸려온 전화다. 세상 여기저기에서 실수가 벌어지고 있다. 액자사진을 본다. 젊었다. 이번엔 거울을 본다...340

 

단어들로부터 길어 올린 깊은 생각들이 책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순간순간 놀라고 순간순간 뜨끔한다. 고여 있는 내 생각들에 돌멩이를 사정 없이 던진다. 찰방찰방...출렁출렁. 내 생각들은 이 단어들로 인해서 깨어나 한동안 활동을 시작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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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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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집필 노트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바깥 날씨는 코끝을 쨍하게 하는 시린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는데, 지금, 여기. 이윤기의 책[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를 읽고 있는 방 안은 난데없는 열공 모드로 후끈하다. 어려운 말 하나 없고, 오히려 신선하고 팔딱팔딱 살아 숨쉬는 단어들만이 가득한 이 책을 읽는데도 나는 왜 이렇게 열이 나는가. 자칭 조르바 같은 자유인이라 일컫는데도, 어투에서 묻어나는 연륜 때문인지, 나이 지긋한 선생님을 앞에 모셔두고 그 분의 마지막 말씀을 듣고 있는 듯한 마음이 들어서이다.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건만 괜시리 옷깃을 여미어야 할 것 같고, 헛기침 조차도 조심스럽게 숨죽여 해야 할 것만 같은 무게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아무도 없이, 단 둘만의 독대. 따뜻한 차 한 잔만을 두 손에 모아 쥐고 한 마디 한 마디에 귀 기울이느라 귓불이 붉어지고 열기가 차 오른다. 각기 다른 시각에 쓴 글들이 모여 있어도 그의 말은 하나다. “글쓰기란 바로 이런 것이다.”라는 것.

 

소설가, 번역가, 신화 전문가.

책에서는 이윤기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다.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번역가로 이윤기를 처음 접했었다. 너무나도 유명하여 안 읽은 이가 없을 것 같던 그 책<그리스인 조르바>를 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끝내 외면하고 있었는데, ‘읽어야 해, 조르바를 모르고 이생을 살아나가기는 틀린 것 같지 않아?’ 라는 마음 속의 꼬드김에 넘어가 결국 조르바를 집어 들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는, 왜 이 책을 안 읽고 있었던 거냐? 라고 물었을 때, 그 이유는 아마도 <희랍인 조르바>로 번역되었던 책의 제목 때문에 내 마음 속에 거부감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참으로 고지식한 답변이 튀어나왔다. 다른 무엇보다도 “희랍인”이라는 말 하나가 손톱 옆에 자리한 거스러미처럼 신경에 거슬려서 백 마디의 찬사로도 모자랄 고전을 나이 서른이 넘어서야 읽게 되었다는 것이 나자신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지만...그랬다.

제목의 번역 때문에 책을 집어 들기 조차도 싫었던 것이다.

<희랍인 조르바>는 안되고, <그리스인 조르바>는 되고.

죽을 때까지 조르바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었는데, 이윤기가 내 마음의 장벽을 스르륵 벗겨내었던 것이다.

“희랍인”을 “그리스인”으로 바꾼 것은 그야말로 내게는 작은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제목 하나로도 책을 만날 수 있게도 없게도 하는 번역가의 힘이 그렇게도 중요한 것임을 이윤기를 통해 알게 되었었다.

 

둘이서 벌인 사업이 거덜난 날 우리는 해변에 마주 앉았다. 조르바는 숨이 막혔던지 벌떡 일어나 춤을 추었다. 그는 중력에 저항이라도 하는 듯이 펄쩍펄쩍 뛰어오르면서 소리를 질렀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되살려내고 싶었던 자유인의 모습이 이윤기의 번역을 거쳐 내 앞에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번역은 한마디로 ‘말의 무게를 다는 것’이다. 저울의 한쪽에 저자의 말을 얹고 한쪽에는 번역어를 올려놓는 일이다.”-133

 

그 뒤에는, 어머나! 번역가로 알고 있던 이윤기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펴냈더랬다. 궁금한 마음에 혹은 아는 이름에 반가워서 덥석 그의 책을 사보았다. 중학생 때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단숨에 읽어 제끼며 그 길었던 이름들과 헷갈리는 그리스식, 로마식 이름들을 따로따로 구분하며 외느라 힘들었었지만, 신화의 황홀함은 그 번거로움까지도 달콤하게 만들었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한 권으로 축약해서 읽었던 신화 속 신들의 이야기에 살을 붙여 좀 더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실제 답사로 담아낸 사진들이 크게 한몫했고, 생생하게 전달해주는 이윤기의 입말이 신들을 가까이 느끼게 해주었다. 그가 강조하는 껍진껍진한 입말 그대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영어판을 중역한 것인데, 철학자 강유원 박사로부터 오역을 260여 군데 지적받고 바르게 손보았다 한다. 번역자로서 아픈 지적이었을 텐데도 오독과 오역을 번역가의 숙명으로 알고 받아들이는 겸손한 자세를 견지했던 이윤기. 그는 글쓰기에 있어서 실패를 축하하고 거기에 더해 바닥을 박박 기어보라고 조언한다. ‘메덴 아간’이라는 그리스어를 ‘만사에 지나침이 없게 하라’라고 번역하는 데 그치지 말고 ‘과유불급’이라는 잘 익은 우리말로 옮기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말한다. 문학을 하지 않을 수 없어서, 인생이 그렇게 풀려서 글을 썼으나, 그는 이렇게 자조한다.

 

나에게 이 세상 삶의 현상은 거대한 원어 텍스트, 내가 부리는 언어는 ‘원어를 고스란히 재생새킬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역어’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의 선조적 언어로써 원에 가까운 원융한 진리의 세계를 그려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나는 단지 한 점만을 건드리고 지나갈 수 있을 뿐이다. -25

 

나는 기껏해야 이윤기의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 로마 신화>, <장미의 이름>을 읽었을 뿐이라 이윤기를 뭐라 평가할 수가 없다. 그저 내가 읽은 텍스트 안에서 그를 이해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언어 천재라 불리는 그의 집필 노트를 읽고 나니, 참으로 대단한 작가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평생 자신의 언어를 부리며 살아가야 하는 글쓰는 이, 작가들에게 영혼과 글쓰기의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그는 우리 시대 최고의 글쟁이라 일컬을 만하다.

 

책을 읽고 그저 줄거리를 나열하거나 짤막한 감상만을 곁들이며 글을 완성할 뿐인 나의 서평은 이제 걸음마인데, 넓은 세계를 안으로 들이기 위해 번역에 힘쓰면서 올바른 번역의 방법을 모색하고 거기에 철학까지를 더하려고 했던 이윤기는 글쓰기의 전범, 달인, 고수를 뛰어넘어서 이제는 “신”이 되고 말았다. 뛰어넘을 수 없는 산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지상에 발붙이지 않고 있어서 우리는 그가 남긴 집필 노트를 바라보며 배움을 청할 수밖에 없다. 이윤기는 자유인 조르바를 꿈꾸며 펄떡이는 말에 집착했다. 나도 따지고 보면 무작정 책 속으로 파고들어 달래기만 하려고 했던 내 마음 속의 울분을 터뜨리고 싶어서 서평을 쓰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글을 쓰다 보면 불쑥불쑥 터져나오는 그것들을 조금씩 다스리고 단련시키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그렇지만 넘어지고 깨지면서, 마침내는 바닥을 기어 봐야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이윤기의 충고가 그 길고도 길게 이어질 것 같은 단련의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줄 것 같다. 내 마음에 반창고가 되어줄 것 같다.

 

정적에 휩싸인 채 숨죽여 듣던 일대일의 수업이 끝나자 내 마음엔 반창고 하나가 남았다.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가 이제야 제대로 귀에 들린다. 휘잉~ 휘이잉~. 스산하고 을씨년스러운 바람이지만 나는 아무 것도 무섭지 않다. 귀한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저절로 뿌듯한 탓이다. 따뜻했던 차는 애저녁에 식었다. 책장을 넘기면서 긴장하면 솟아나는 땀 때문에 땀을 닦아내기를 여러 번. 방 안은 따뜻했는데도 손끝은 차다. 다시 보글보글 물을 끓여 차 맛을 음미하고 손을 데워야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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