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차원으로 훅 떠나게 만드는 고양이 [후와 후와]
꽃이 너무 예뻐서 이렇게 책을 얹어서 찍고 싶어졌답니다.
문을 나서는 순간 온갖 봄꽃들이 반갑게 인사하는 통에 어느 곳을 먼저 찍어둘까...고민이 될 정도지요.
목련은 코끝을 찡하게 스치는 화려한 향기를 남기고 하얀 꽃잎을 툭툭 떨구었지만
라일락과 벚꽃은 이제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봄의 포근함을 닮은 '늙고 커다란 암코양이'를 동백에 살포시 얹고 보니 다른 나무에 얹은 그림도 욕심이 나네요.
하루키가 가장 좋아한다는 고양이는 늙고 커다란 암코양이라지요.
[후와 후와]를 읽으면 왜 하루키가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더불어 하루키의 추억도 살짝 엿볼 수 있지요.
비가 내려서 꽃잎이 다 덜어지기 전에 벚꽃도 담아볼까 해서
[후와 후와]를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편집 아닙니다. 이상하게 짜깁기 한 것처럼 어색하게 나왔네요. 워낙 사진 찍는 솜씨가 꽝이라~
봄을 담고 싶었지만 이렇게밖에 ...이게 최선...
고양이 눈이 저를 째려보는 듯...움찔움찔...
안자이 미즈마루가 그린 고양이가 부디 노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봄이야. 봄이니까 느긋하게 즐겨 주렴.
살살 달래가며 사진에 담아 봅니다.
해가 많이 기울었어요.
바람마저 살풋 불지만 그다지 차갑지 않으니 봄은 봄인가 보아요.
고양이도 비록 뒤돌아 앉아 있지만 가슬가슬한 털 위로 기우는 볕에 남아 있는 잔열을 듬뿍 담아보았으면 좋겠네요.
왠지 기분 좋아 가르랑거리는 것 같지 않나요?^^
하루키가 처음 만든 고양이 동화책.
작고 손에 쏙 들어오는 판형 때문인지, 폭신폭신한 표지 느낌 때문인지 손에서 놓기가 싫어지네요.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벌써 여러 번 페이지를 넘겨봅니다.
읽을 때마다 고양이의 눈을 쳐다보게 되는데요 항상 다른 말을 건네는 것 같아 보여요.
고양이는 표정이 풍부하다는 것이 실감이 납니다.
그림인데도요.
간결하지만 섬세하고 신비스러운 고양이 그림에
하루키의 글을 얹어 읽으니
금세 이 세상이 아닌 다른 곳.
다른 차원의 세계로 훅 떠나는 느낌이 드네요.
고양이의 털을 어루만져 본 게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 속에서 그 느낌을 끄집어 내는 게 좀 오래 걸리긴 했지만요
비슷한 느낌을 떠올려 보라면
우리 아이들 어렸을 적, 갓 목욕을 끝낸 후, 양 볼이 복숭아처럼 익어 있는 아이와 눈마주치며 수건의 올이 아직도 부드럽게 살아 있는
폭신한 수건에 싸서 들어올렸을 때의 기억이 겹쳐지네요.
눈앞에 아이의 귀에 서 있는 솜털이 삐죽삐죽 서 있는 것을 보고 숨죽여가며 손가락 끝으로 조심조심 쓸어보았었죠.
아기목욕 비누의 청결하고 산뜻한 냄새에 섞여 날아드는 비릿한 우유향. 세상 어느 것보다 가녀리고 약해 보이는 아이를 촘촘히 둘러싸고 있는
보호막 같았던 솜털들.
함부로 다루지 못하게시리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자동으로 발동되게 했던 존재의 유약함이 작은 아기에게서도, 야옹거리는 고양이게서도
느껴지는 것이죠.
고양이와 뒤엉켜 뒹굴던 기억을 소환하면서
하루키는
"그런 오후에는 우리 세계를 움직이는
시간과는 또 다른
특별한 시간이
고양이 몸 안에서 몰래 흘러간다."
라고 기록했습니다.
고양이의 털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금세 다른 시공간을 만나게 된 듯.
새롭고도 황홀한 기분에 빠지게 만드는 고양이는
요~ 물?^^
나이 먹어 하루키네 집으로 오게 된 늙고 커다란 암코양이 '단쓰'와의 이야기에
잊고 있었던 '나와 고양이의 추억'도 떠오릅니다.
봄과 고양이는 많이 닮았어요.
따사로운 봄볕처럼 포근한 기억을 담고 있으니까요.
올 봄 내내 [후와 후와]를 곁에 두고 자주 꺼내 보게 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