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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여행 - 헤세와 함께 하는 스위스.남독일.이탈리아.아시아 여행
헤르만 헤세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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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 헤세, 여행하다. 글쓰다. [헤세의 여행]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헤르만 헤세는 1877년 독일에서 태어났고 1962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국적은 스위스라고 한다. 독일과 스위스는 서로 이웃한 국가다.

 

 

 

그의 삶은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기보다 정처없이 옮겨가며 이어져 왔다. 어디가 그의 진정한 고향인지는 그 자신만이 짚을 수 있으리라. 꽤 오랜 기간동안 작가로 살아오면서 많은 글을 썼기에 그의 흔적을 알아보려면 그가 남긴 글들을 읽어보면 된다. 신기하게도 그가 지내온 이력들이 작품에 고스란히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헤세를 처음 만난 것은 사춘기 때였다. 나 뿐만이 아니라 청춘의 문을 막 들어서려는 시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헤세의 문장은 매혹 그 자체일 것이다.

<데미안>, <수레바퀴 밑에서>, <골드문트와 나르치스> 등등.

앞날이 막막하고 속시원한 대답이 내려지지 않은 채로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는 시기에 있던 나에게  헤세는 그 당시의 꽉 막힌 심정을 읽어주고 어루만져 주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의 글에 나오는 청소년들과는 이상하게 동질감을 형성할 수 있었다.  헤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첫사랑의 실패를 이야기했고  학교 안에서의 거친 반항을 실천했으며  동성간의 막연한 끌림도 문학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는 그 유명한 구절을 곱씹으며 아프락사스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게 되기도 했다.

만년의 헤세를 그대로 드러내는 <유리알 유희> 또한 헤세의 문학적 성취와 더불어 그 스스로 이룩한 사상의 완결체를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웬만큼 겪고 나서는 헤세에 자연스레 흥미를 잃게 되었고 딱히 그의 작품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열의도 사그라들었다.

최근, 헤세의 헤세이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읽게 되면서 소설가로서의 헤세, 나의 청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헤세가 아닌 인간적인 헤세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는 헤세는 ‘옷자락이 다 해져 올이 성긴 바지를 입은 왜소하고 보잘 것 없는 문학가'의 모습으로 내게 다시 다가왔다.

 

헤세의 진면목을 이로써 보게 되었다고 만족하던 그 때, <헤르만 헤세의 사랑>이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여러 편지와 문서를 찾아내 헤르만 헤세가 사랑한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 책이다.

나의 사상이나 예술관 때문에

내 인생에서, 혹은 여성들과의 관계에서 종종 어려움에 봉착한다.

나는 사랑을 부여잡을 수도, 인간을 사랑할 수도,

삶 자체를 사랑할 수도 없다.

-헤르만 헤세-

 

 

위대한 작가로서의 헤세, ‘옷자락이 다 해져 올이 성긴 바지를 입은 왜소하고 보잘 것 없는 문학가’로서의 헤세를 만날 수 있었던 전작과 달리, [헤르만 헤세의 사랑]을 읽으면서는 헤세를 거의 우러르기까지 했던 독자로서의 경외감이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여인들과 짝을 이룬 헤세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정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첫 번째 아내였던 마리아가 아이를 낳는 그 순간에도 여행을 떠났던 헤세.

 

이제 인간 헤세에 대해 실망했던 내게 "헤세의 여행"은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서 이 책을 읽어나갔다.

 

 

 

이 책의 맨 앞에 실린 1904년의 <여행에 대하여>라는 글에는 여행을 대하는 헤세의 심정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여행의 시학은 일상적인 단조로움, 일과 분노로부터 휴식을 취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우연히 함께 하고, 다른 광경을 관찰하는 데에 있다. -36

 

여행의 목적은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체험을 통해서 더욱 풍요로워지고,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발견하며 옛 진리와 법칙을 전적으로 새로운 상황에서 재발견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황무지에서의 목동의 눈초리나 피스토야의 소가족과의 경험 등 여행의 낭만주의라 부르는 것들도 첨가된다고...

 

이 책에는 1901년 최초의 이탈리아 여행을 시작으로 1904년 보덴 호 산책, 1911년의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등지의 아시아 여행, 1919년에서 1924년까지 테신 지역 소풍, 1920년 남쪽 지역으로의 방랑, 1927년 뉘른베르크 등지의 낭송 여행 등 24세부터 50세까지 헤세가 쓴 여행과 소풍에 대한 기록들이 주루룩 등장한다.

 

아름다운 목사관 앞을 지나가며 헤세는 그리움과 향수를 느낀다고 말했다.

밖에서만 보았을 뿐 그 안에 누가 사는지 알지 못하는 이 목사관에 대해 나는 언젠가 진짜 고향 같은 향수를 느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행복하게 지낸 곳에 대한 향수 같은 것 말이다. 이곳에서 15분 동안은 정말이지 아이였고 행복했으니까. -302

 

이 집에 산다 해도 목사로 살지는 못할 것이고, 지금처럼 정처 없이 무해한 방랑자로 살 것이다. 때로는 현실과 동떨어진 신학자가 되고, 때로는 미식가가 되고, 때로는 지극히 게을러져서 술독에 빠져 있기도 하고, 때로는 젊은 아가씨에게 빠져 있기도 하겠지. 때로는 시인이나 광대가 되고, 이따금 가난한 마음에 불안과 아픔을 담고 향수병을 앓을지도 모른다. -301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방랑자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현실을 여기서 살짝 엿볼 수 있다.

어린 시절 첫사랑에 실패하고 자살 시도를 한 후, 서점에서 일하다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 헤세는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고도 길고 긴 생애 동안 그의 곁을 지킨 아내는 세 명이나 된다.

고향을 그리워했지만 방랑자로서의 삶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얼핏 보면 모순 투성이의 삶 속에서 무척 괴로운 나날들을 보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별로 여행하지 않는 조용한 마을 주민이자 서재에만 틀어박혀 사는 문필가에게는 다다음달 12일에 이런저런 도시에서 마지못해 낭송회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끔찍한 일이다. (...)

작가는 빈둥거리며 불규칙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시간을 낭비하며 미심쩍은 인생을 보낸다. 규칙적이고 틀에 짜인 생활을 하는 이들은 그런 사정을 전혀 알지 못하리라!-388

 

 

무지 까칠한 작가였지만 그의 문체는 무척 아름답고 묘사는 섬세하다.

무수한 여행을 통해 그가 얻은 것들은 그의 문학 혹은 에세이 속에 그대로 녹아 들어 있다.

 

여행시기에 맞추어 그가 쓴 글들(여행기 외에 소설, 기고문 등)을 다 읽어보지는 못하지만 그의 여행기와 수기 등을 통해 그가 말하는 여행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었다. 괴팍한 성격의 인간 헤세와 문학작품 작가로서의 헤세를 연관시키는 일은 여전히 쉽지가 않다.

데미안의 작가로서의 헤세만 알았더라면...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오랜 인생을 산 작가, 혹은 인생 선배의 녹록지 않은 연륜이 들어 있는 글들에서 어딘가로 떠나는 "여행"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수 있어서 이 책을 읽은 것이 그리 후회스럽지는 않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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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꾸만 딴짓 하고 싶다 - 중년의 물리학자가 고리타분한 일상을 스릴 넘치게 사는 비결
이기진 지음 / 웅진서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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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찾은 나의 이상형[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

 

"무모하게 살아도, 어떠한 삶도, 삶이 된다."-237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기진의 말이다.'

라고 하면 인생선배로서 후배들에게 교훈을 주는, 묵직한 울림을 가진 말처럼 여겨진다. 금과옥조로 삼으리라...

 

하지만 물리학과 교수가 아닌  '딴짓의 고수 이기진'이 던진 말이라 생각하면, 더불어 그의  딴짓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에세이를 읽고 나면 같은 말이라도 유쾌한 생명력을 가진 말로 재탄생하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평범함을 거부하는 물건들과 그에 얽힌 이기진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의 '딴짓'에 빠져든다.

아, 내 이상형은 바로 이런 사람이었어.

이제와서 땅을 치고 후회해 본들 무슨 소용 있으랴만...

평범한 일상에 매몰되어 같은 일만 반복하고 살던 내게 톡 쏘는 사이다같은 청량감을 안겨주는 독특한 일상을 구경하고 나니 내가 이제까지 누리던 일들이 시시하게 느껴졌다.

이미 내가 잡을 수 있는 기회는 날아가버렸으니

내 아들을 이런 '딴짓'하는 남자로 키워볼까나...하는 생각이다.

 

얼마 전 TV에서 <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그램을 볼 기회가 있었다. 미국 출신 타일러가 취업 스펙 9종세트까지 등장했다며 한국의 높은 스펙 경쟁을 꼬집었다. 학벌, 학점, 영어점수에 추가해 어학연수, 자격증,공모전 입상, 인턴 경험, 자원 봉사, 성형수술까지 총 9종.

외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의 모습이 이런 모습이라 부끄럽기도 했고 한편으론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 입장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고 키워나가야 하나 고민도 됐다.

 

그러던 차에 이기진 교수의 '딴짓'이 잔뜩 실린 이 책은 내게 자녀교육의 길을 찾던 내게 새로운 길을 제시해 주었다.

물론 현재는 대학교수로 있기 때문에 이 모든 딴짓들을 누릴 수 있지 않느냐,며 비판의 촉을 세울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그의 삶은 스펙 쌓기에 모든 것을 집중하는 요즘 아이들과는 다른 과정을 거쳐 목적지에 도착한 점이 다르다.

그는 영어유치원에부터 생애 첫 공교육을 가장한 사교육을 시작하는 아이들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비뚤어진 길을 그려나갔다.

처음 학교에 들어가 글을 못 읽는다고 담임 선생님께 야단맞은 소심한 소년은 학교를 그만둔다. 그 뒤 전학 간 학교에서 3년간 야구만 한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건이 아닌, 자기만의 아주 사소한 계기로 방향이 틀어질 수 있다. 내가 그랬다. 꼰대 같은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사실 하루에도 몇 번씩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만한 일들이 내 앞으로 다가오고 지나간다. 문제는 내가 그 순간을 인식하느냐, 아니면 그냥 보내느냐 하는 것이다. -202

 

공부를 특별히 잘한 것도 아니고 자랑할 만한 특기도 없었고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평범한 학생이 지치도록 야구에 매진하는 전성기를 누린다.

중학교 때부터는 꽤 정신을 차린 모양인지 호기심이 샘솟은 탓인지 책을 읽어 대고, 천체와 우주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고등학교 때 물리 선생님이 툭 던진 칭찬 한 마디 "어? 너 물리 잘하는데?"를 들은 덕분에 물리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후로 그는 열정적으로 연구를 했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다녔다.

한 번 열정에 사로집히면 앞뒤를 못 가리는  일종의 '몰입' 상태에 빠져드는 것 또한 그의 훌륭한 장점 중의 하나다.

 

# 큰 돈 드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남겨두지 않는다.

 

로봇을 만들고 나서 다음엔 의자도 만들어 봤다. 아니, 뭔가 만들고 싶은 게 있으면 다 실행에 옮겼다. 뭘 만들었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건 아니지만, 안 만들고 있으면 그대로 하고 싶은 일로 평생 남을 것이 아닌가.-41

 

# 일과 가족을 우선순위로 둔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가족은 함께 붙어 사는 것이 좋았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있는 경우엔 더욱 그렇다.-46

 

# 남들과 다른 자유스러운 생각을 하면서 '소외'를 즐긴다.

 

남을 의식하고 남과의 차이를 좁히려고 들 때 삶은 개성을 잃고 만다. 진정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고 대세를 따라가는 것은 자신의 개성을 없애는 일이다. -52

 

# 알리바바의 보물창고를 간직하고 있다.

 

아르메니아 공화국의 시장에서 녹색 에마야주와 녹이 잔뜩 낀 저울의 추, 양털로 짠 카펫

수건에 둘둘 말아 가지고 다니는 전용 백자 술잔, 알프스 산장 카페에서 산 유리잔

채린이의 밥그릇으로 쓰던 쇼와 시대 청화 도자기, 에도 시대 이마리 도자기 오차잔,

원래 주인은 이태리 사람이지만 파리 15구에 있는 자전거 숍에서 구입한 롤리 자전거

월리스 그로밋 피겨 라디오, 최고의 컬렉션이라 꼽는 '창성동 실험실'이자 한옥 갤러리...

 

거기에다가 그림에 취미를 가진 그는 이 책의 모든 삽화를 직접 그렸고 동화책과 만화책을 이미 여러 권 낸 작가이기도 하다.

 

아~ 다른 건 몰라도 이 정도의 스펙이라면 충분히 나의 이상형이라 할 수 있겠다.

9종 스펙을 굳이 갖추지 않아도 언제든 원하는 것이 있을 때 몰입할 수 있는 열정을 가진 아이.

일과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아이.

자기만의 취미를 가지고 있는 아이.

 

지금 내가 혹시 변진섭의 <희망사항>에서 말하는 그런 이상형을 바라고 있는 건가?

아니, 아니, 아니다.

그 이상형은 존재하고 있고 이렇게 책도 펴냈으니 절대, 네버, 불가능한 이상형은 아닌 것이다.

다만, 이기진을 이렇게 자랄 수 있게 만든 제 2의 신사임당 같은 어머니가 되기에 내가 너무 부족할 뿐.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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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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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을 철저하게 애도하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삶의 계단을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중이다.

텀벙텀벙 건너 뛴 계단도 있고, 잠시 주춤하였는데 꽤 오래 머물게 된 계단도 있다.

젊은이다운 호기를 부리다가 뾰족구두 뒤축이 계단에 걸려 삐그덕, 와장창 무너져 내렸을 때처럼 엄청 넘어지고 깨지면서호되게 앓았던 적도 있다.

기고, 앉고, 서고, 걷고, 뛰고.

단계를 밟아가며 성장해 온 어린 아이가 이제 중년이 되었다.

계단은 이미 많이 지나온 것 같지만 사실은 아직 한참 많이도 남았다.

세상은 너무도 살기가 어려운지  "힐링"에 열광하거나 쉽고 가볍게 삶의 단계를 통과하기를 바라마지 않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렇지만 한바탕 가슴앓이를 해야 할 때는 해야 하고, 실컷 웃을 때는 웃어야 한다.

대충 얼버무리고 뭉개려다가는 뒤에 몰아서 겪어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가는 중에 만나게 되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

나는 아직 이것을 겪어보지 못하여 정신적 성숙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저만치 그 "상실"의 아픔을 겪게 해줄 계단이 보이고 있는데 마냥 시간아 느리게만 가라...하고 빌고 있는 중.

 

마침 맞은 시기에 예방접종 맞는 기분으로 이 책을 손에 들었다.

 

 

"어떤 이유로든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정을 딱 끊어야 합니다."라고 법륜 스님이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건 슬픈 일이지만, 그 슬픔을 놓아버려야 더 이상 그 슬픔과 괴로움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떠난 사람에 대해 좋은 기억은 할 수 있지만 집착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

오욕칠정이 들끓는 인간으로 태어나 살면서 이렇게 산뜻하게 인간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일정 기간의 장례기간동안 의식을 치르면서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고 비탄에 잠기기도 하면서 남아 있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자각하고 자신을 추스르게 된다.

그러나 머리로는 정리가 된다 하더라도 마음 속에서 강하게 연결되어 있던 그 사람과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네의 "49제"라는 상징적인 애도의 기간 동안에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사람에 따라 혹은 그 사람과의 관계의정도에 따라 기간은 다소 달라질 수 있지만 어쨌든 애도의 기간이 필요한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줄리언 반스는 문학 에이전트이자 평생의 문학적 동지였던 아내 팻 캐바나를 '애도'하는 과정을 아름다운 글로 남겼다.

그의 글은 열기구를 열망하는 19세기 실존 인물 프레드 버나비와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 사진가 나다르의 이야기로 득특하게 전개되다가 마지막 3부에서 아내를 잃은  비탄, 애도, 슬픔을 두루 경유하는 자전에세이 형식으로 마무리된다.

 

글 전체를 통틀어 강렬한 인상을 남긴 한 구절.

 

그래서 기분이 어떠냐고?

가령 몇 백 미터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떨어지는 내내 의식이 있는 상태였고, 장미 화단에 발로 착지해 무릎까지 파묻히는 바람에 그 충격으로 내장기관이 파열되어 몸 밖으로 다 터져 나왔다면 어떨까. 기분이 그러한데, 무슨 이유로 그러지 않은 것처럼 보여야 하는가. -127

 

사랑하는 이를 잃은 그의 상실감이 손에 잡힐듯이 전해져 온다.

모든 사랑의 이야기는 잠재적으로 비탄의 이야기라는 그의 말에 공감한다.

자유를 대변하는 기구는 바람과 날씨의 권력에 영합하는 자유라고 했다.

사랑의 시작이야 어떠했건 간에 사랑의 끝은 바람과 날씨에 좌우되는 열기구처럼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나는 단순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134

 

아내와의 사별 이후 5년간 숙성된 "애도"는 독특한 간명함을 품은 채 세상에 나왔다.

그의 글을 읽으며 눈물을 함께 흘릴 거라 예상했지만 나의 사랑은 아직 "진행형"이라 그의"애도"에 공명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커다란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아직 오르지 않은 저 너머의 계단에 도사리고 있을 상실의 아픔을 생각하노라니, 문득 "죽음"에 대한 의미 또한 내게 희뿌연 안개와도 같은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생각하기 이전에 나의 죽음, 더불어 나의 삶도 반추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죽음이 완전한 소멸은 아닐진데...

법륜 스님의 말처럼 죽은 사람에 대한 정은 딱 끊어야 할 것은 맞지만 그 사람의 죽음이 의미 있는 방식으로 나의 삶을 연장하게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줄리언 반스가 마음 속에 그의 아내를 품어왔기 때문에 아내를 쉽고 자연스럽게 밖으로 드러낼 수 있었다고 말했던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를 내면화함으로써 새로운 계단으로 발을 디딜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더불어 "무엇이 가치있는 삶인가?"

한 두 시간의 숙고와 한 두 줄의 요약으로 답을 얻을 수 있는 질문이 아니기에 책을 덮으면서 아주 오랜 동안 여운이 남았다.

아마도 이 생을 마칠 때까지 중얼거리게 될지도 모를 질문.

생과 사의 경계는 아득히 멀지만 , 아직 인생 반도 못 살았지만, 때때로 허공에다 던지게 될 질문 하나 품어 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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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라디오 - 오래 걸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
정혜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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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라디오]

 

마술같은 책이 라디오의 애잔함을 잔뜩 머금고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병아리의 삐약거리는 소리를 내던 노란 종이는 샛노란 병아리가 볏이 나고 부리가 튼튼해지며 퍼드덕거리는 날개에 힘이 생긴 닭으로 성장해갈 때 털빛이 퇴색해가는 것처럼 점점 옅어진다. 정혜윤의 마술에 빠져들어서 이야기를 따라 울고 웃다가 병아리가 닭으로 변해가는 것을 책이 끝나고서야 알았다.

이제는 닭이 알을 낳을 시간이다.

 

지직, 지직.

안테나를 세워 주파수를 맞춘 다음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가 손도, 눈도 꼼짝 않고 귀만 열어 놓았었다. 귀는 말랑말랑했으며 베개에 닿은 한쪽 귀는 따뜻하기도 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잡아놓은 라디오는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들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풍문으로 들었소, 하고 흘려보낼 수도 있었을 이야기들을 내 귀로 흘러들게 했다.

그렇게 흘러든 이야기들엔 슬픈 사연도, 기쁜 사연도 있었다.

 

눈으로 보지 않고 소리로만 접했을 때, 마음 속에서 그려지는 풍경의 화폭은 엄청나게 커진다.

눈으로 보는 풍경은 TV의 사양에 따라 흑백일 수도, 컬러일수도, 16인치일수도, 50인치일 수도 있지만, 소리로 듣는 풍경은 내 멋대로이다.

작은 프레임에 가두고 싶은 슬픈 이야기들은 작아지고, 넓고 깊은 울림을 가진 이야기들은 작게 상상해도 점점 커진다.

내성적이었던 나는 내 이야기를 밖에다 대고 하는 것에 서툴렀다.

그나마 내 속마음을 털어놓는 곳은 하얀 여백으로 들어찬 일기장 뿐.

그러면서 한없이 밑으로 밑으로, 안으로 안으로 침잠해 들어만 가려 했던 내 무거운 어깨를 쓰윽 잡아 일으켜준 것은 라디오 속 이야기들이었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라디오에서 들었음직한 이야기들이 가식적인 옷을 벗어던진 채 정혜윤의 책 속에서 다시 나타났을 때, 왠지 모르게 따뜻한 두 줄기 눈물이 흘러 내 귓바퀴에 고여들었다.

책을 읽고 있을 때의 내 자세 때문이기도 하지만...눈물이 두 볼을 , 턱을 적시지 않고 귓바퀴에 고여들었을 때 그 차갑고 축축한 느낌을 내가 많이도 그리워했다는 것을 나는 알아차렸다.

 

이제는 왠만한 일에 끄떡도 않는 천하장사 아줌마가 되어 이런 일은 이렇게 저런 일은 저렇게 넘겨버릴 수 있는 강심장이 되었지만, 그 때는 왜 그렇게 유리의 심장을 가졌었는지.

라디오가 들려주는 청취자들의 사연이 그렇게 눈물겨울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한쪽 귀를 베개에 댄 채 누워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댔는지, 다음 날 아침이면 베갯잇에 하얗게 말라붙은 소금자국이 이불에 그린 오줌지도처럼 선명하게 그 흔적을 드러내었었다. 참, 민망하기도 하지.

 

정혜윤의 [마술 라디오]가 그동안 잊고 살았던 그처럼 눈물겨운 이야기들을 다시 들려주자, 나는 "소녀"로 되돌아갔다.

끝도 없이 연결되며 뒤집어도 뒤집어도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이야기 주머니를 장착한 정혜윤은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는 도깨비였던 것이었다.

도깨비의 장난 중에 말끝을 잡아채어 똑같이 따라하는 재미난 장난이 있었지.

나는 그 도깨비가 되어 정혜윤의 말을 따라하고 곱씹고 꿀꺽 삼켜버렸다.

그녀가 던진 질문을 토씨 하나 빼지 않고 따라말하며 내 마음 속에 차곡차곡 접어넣었다.

왜? 나와 어느 한구석이 통하는 누군가와 만나면 나도 이런 질문을 던지며  길고 긴 이야기를 한 번 만들어보려고.

 

어부는 어떻게 부모의 부재 같은 슬픈 과거, 쓸쓸한 과거를 미래에 대한 약속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었을까? 그는 어떻게 그렇게 오래 고마움을 간직하고 살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는 어떻게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 있었을까?-78

 

내게 진짜 어두운 것은 심연이 아니고 표면이고 얕음이에요. 두려운 것은 무한히 반복되는 얕음이죠. 제 인생의 질문 중 하나예요. 어떻게 깊어질 수 있으려나? 어떻게 사랑하는 것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을까?-186

 

카뮈가 자신의 젊은 날 맨 처음 쓴 글에 '안과 밖'이란 제목을 단 이유는 뭐였을까? '안'이 '밖'을 만든다는 것은 아니었을까?-281

 

여러 가지 이유로 편집되어서 결코 방송에 나가지 못한 이야기. 그런데도 이상하게 잊히지 않고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이야기들이 마술라디오에 들어 있다.

티켓 다방에서 일하는 아가씨를 사랑했으나 끝내 잡아두지 못하고 두 갈래 길에서 방황하던 어느 청춘의 이야기.

<유리 동물원>을 함께 보았던 첫사랑을 배신한 한 남자가 '요리 없이 사랑 없다'는 말에 요리사가 되었다는 이야기.

경영난으로 지금은 문을 닫은 통영의 '이문당 서점' 과 기이한 인연을 쌓은, 글귀를 가슴에 새긴 장승 깎는 노인 이야기.

탈출을 꿈꾸는 아들 빠삐용을 생각하며 울먹이는, 제주도에서 만난 한 낚시꾼 이야기.

버섯에 부채질하는 시장상인을 비롯해서 '슬픈데도 행복하니까 강한 인간이다'라며 웅성웅성 파도타기처럼 말을 이어가는 노점상 아주머니들이 있는 시장 이야기.

 

 

단 한 번도 자기 목소리로 말해 보지 못한 것 또한 비참한 일이라고 했던가.

내가 살아온 동안의 이야기도 결코 평범한 이야기는 아니었을 텐데...

나는 내 목소리로 말해보지 못했다.

이제 정혜윤의 마술에 걸렸다는 핑계로 내 이야기를 한 번 만들어볼까 한다.

보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오늘밤은 마술에 걸린 행복한 기분으로 불면의 밤을 꼬박 새게 생겼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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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 방황]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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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롱라패스 5416M에서 하울링 [히말라야 환상 방황]

 

 

 

 

정유정, 그녀가 편하게 훌러덩 벗어 놓은 옷을 주섬주섬 집어 들어 입었더니, 그녀의 옷이 내게 꼭 맞았다.

이상하게 그녀의 전생, 아니 과거의 기억들이 옷을 통해 내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들었다.

부모님과 두 남동생 이야기, 집안을 짊어지고 가야했던 젊은 처자의 가혹한 성장기,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들의 이야기까지 그녀는 히말라야 높은 고지대에서 하나씩 보따리로 만들어 “영차” 내게 던졌다.

"그래, 높이 오르려고 고생하는 동안 많이 무겁고 버거웠을 짐을 내려놓으니 이제 좀 가벼워지셨나요?" 하고 물어보고 싶다.

눈이 새까만 새끼 하마를 품에 안고 있는 어미 하마라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야무지고 당차면서 속이 꽉 찬, 단단한 차돌같은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단단한 차돌같은 그녀일지라도 쉽게 덜렁거리고 어질러놓기 대마왕인 그녀의 진면목이 여행기의 첫날부터 쏟아져나오는 대반전을 선사하기도 한다. 에세이가 아니라면 어디에서 반전매력 덩어리인 그녀를 만날 수 있단 말인가.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로 세계청소년 문학상 -그것도 제1회-을 수상하며 등단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원하는 방식을 하고 싶어서 [내 심장을 쏴라]에 도전하여 제 5회 세계문학상을 거머쥔 그녀. 그렇게 쓰기의 영역을 넓힌 그녀는 [7년의 밤]과 [28]로 연이어 히트를 쳤다. 기나긴 습작의 기간 동안 혹독한 쓰기 훈련을 했다고 알려진 그녀의 문장은 살아 있는 동물의 거친 숨소리와 더불어 뒷덜미의 곧추세운 털, 불끈거리는 혈맥 밑으로 꿀렁꿀렁 흐르는 피의 요동소리까지 느낄 수 있을 만큼 팔딱팔딱 뛰는 문장으로 나를 매료시켰다.

그런 그녀가, 이른바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다.

[28]을 쓰는 동안 여러 번 포기하고 싶었고, 초고도 두 번 이나 쓴 데다가 슬럼프도 겪었던 터라 좀 쉬고 싶기도 했을 것 같다.

후배가 내놓은 처방은 여행이었고, 그 처방을 덥석 받아든 그녀는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를 오르는 여러 코스 중에서 환상종주(Circuit) 코스를 골랐다.

소설가 김혜나를 동반자로 선택한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준비가 진행됐다.

그리고 드디어 17일간의 히말라야 환상종주가 시작되었다.

 

세수도 못하고 용변도 못 본 채 아침을 대충 때우고 길을 나서야 하는 날의 반복, 반복.

사남매의 맏이 근성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강인함’을 발산하는 정유정으로 자존심을 세우는 그녀가 왠지 안쓰러웠다. “나”를 잠시 벗어놓고 떠나는 여행인데, 아직 여행 초반이어서인지 그녀의 “나”는 지나치게 꼿꼿하게 살아 있었다.

하긴, 그게 그렇게 쉽게 벗어지면 도통한 것이지...암.

커피믹스와 마살라 없는 볶음밥으로 배를 채우는 그녀의 매 끼니는 참으로 눈물겹다. 같이 떠난 혜나는 카레도 마살라 든 음식도 잘도 먹던데..

내가 여행기를 적었다면 아침 점심 저녁 메뉴만 쓰고 땡일 텐데, 그녀의 17일은 참으로 다채롭기 그지없다.

주 활동 인물은 그녀와 혜나와 베테랑 가이드인, '뷰에 살고 뷰에 죽는' 검부 라이가 전부이지만 히말라야를 정복하면서 만나게 되는 길 위의 사람들과 음식점 혹은 작은 호텔의 주인들이 소설 속 주인공처럼 확실한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 나중에는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을 은근히 기대하게 될 정도였다.

특히 그녀가 전해준 쉬운 한국말 , “까자”, “뭐라꼬?” “까꽁” 3종 세트는 유머러스함의 서막에 불과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패턴의 트레킹일지라도 정유정의 입심을 만나면 군데군데 포복절도할 일이 생긴다.

아마도 유머는 그녀의 힘?

드디어 10일째 되는 날, 안나푸르나의 환상종주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점인 쏘롱라패스 등반의 날이 밝았다.

아침부터 세 번의 흉통을 느꼈고, 손전체가 짙푸르게 변하는 말단청색증까지 겪었지만, 한 발짝에 관세음보살, 두 발짝에 옴마니밧메훔 해가면서 앞으로 나아갔더니,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개, 쏘롱라패스에 도달할 수 있었다.

 

나는 세상으로 돌아가 다시 내 인생을 상대할 수 있을까.

어떤 목소리가 답해왔다.

죽는 날까지. -186

 

세상을 홀릴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는데, [내 심장을 쏴라]의 승민이 앓고 있던 망막색소변성증의 증상을 구현해낼 수 없었던 그녀. 절박함에서 용기를 짜냈다는 그녀는 달도 별도 없는 캄캄한 밤에 맹수 중의 맹수 호랑이의 하울링을 들으며 야간산행을 감행했고, 승민은 호랑이의 포효 속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쏘롱라패스를 정복한 소감이 화장실이 급하다며 뛰어가는 모습으로 살짝 눙쳐지긴 했지만, 나는 분명히 보았다.

겨울왕국의 엘사여왕이 폭풍처럼 회오리치는 바람의 하울링을 정면으로 맞받아서 두 손 부르쥐며 당찬 시선으로 세상을 향해 Let it go를 외치던 그 모습과 한치 어긋남 없는 모습으로 그녀가 5416M의 쏘롱라패스를 밟고 있는 것을.

 

‘네팔병’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한 번 히말라야에 다녀오면 반드시 또 가고야 만다는 불치병이란다. 여정의 험난함과 육체적 고통 속에서 누리는 영혼의 자유로움, 온전히 자기 자신과 만나는 특별한 순간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304

 

현재의 내가 납득되지 않아서 험난한 여정 속으로 발걸음을 내딛어야 했을 만큼의 절박함으로 시작한 히말라야 환상종주가 결국은 올바른 선택이었던 것일까.

한층 홀가분해진 듯한 그녀의 에필로그에 괜시리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나는 꿈속을 거닐다 온 듯한 기분으로 읽었지만 그녀에게는 지독히도 현실적인 여행이었을 터.

“정유정 작가님, 저도 작가님의 책 다 읽어보았고, 다 좋았었답니다.”

이 말이 그녀에게 또 글 한 줄 더 써나가는 데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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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4 12: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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