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견뎌야 할 것을 묵묵히 견디다 보면 이따금 선물처럼 주어지는 게 남들이 흔히 말하는 행복일 테지만 더 거창하게 말하면 우리는 그 몇 번의 행복을 위해 전 인생을 건다는 거 아니겠어. 그렇지 않을까?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듯 보이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다 제 밥벌이를 위해서 하루를 겨우 견디는 것일 뿐, 고상하거나 우아한 일은 오직 우리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걸 알 만한 나이가 되고 말았어, 너나 나나.

 

하루가 오싹한 추위와 함께 저물어가고 있어. 이처럼 오래된 습관들에 젖어들다 보면 선(善)과 악(惡), 중(重)과 경(輕)의 구분이 모호해지곤 하지. 무엇이 아깝고 그렇지 않다거나 아름답거나 추한 것에 대한 구분도 말이지. 갓 태어난 아이의 눈에 비친 하루는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이겠어. 이 세상은 마치 천국과 같았을 거야. 그러나 수십 년을 한결같이 하루하루를 푼돈처럼 쓰다 보니 소중하다거나 아깝다는 생각이 더는 들지 않아.

 

방송인 허윤희의 산문집 <우리가 함께 듣던 밤>을 읽고 있어. CBS 라디오 <꿈과 음악 사이에>를 12년째 진행하고 있다네. 나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지만 말이야. 이따금 그리울 때가 있지만 워낙 볼 게 많은 세상에서 무언가를 듣기 위해 라디오를 찾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인 듯해. 날이 갈수록 사는 게 더 팍팍하고 힘들다고 느껴지는 건 아마도 나만의 착각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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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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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매년 12월이면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는 재미에 푹 빠져들게 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한 해의 풍경을 각자 다른 시선과 터치로 경쟁하듯 그려낸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여러 작가의 중·단편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아, 사람들은 2018년을 이렇게 살아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소설 속 풍경들에 저으기 안심이 되곤 한다.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작별>도 다르지 않았다. 수상작인 작가 한강의 <작별>을 비롯하여 수상 후보작이었던 강화길의 '손', 권여선의 '희박한 마음', 김혜진의 '동네 사람', 이승우의 '소돔의 하룻밤', 정이현의 '언니', 정지돈의 'Light from Anywhere(빛은 어디에서나 온다)'가 이어진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작품들. 소설에 드러난 2018년의 풍경을 읽으면서 나는 가슴께가 아릿아릿 저려왔다.

 

한강의 '작별'은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 존재의 삶과 스러짐에 대해 유려한 문체와 탁월한 구성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7살 연하의 가난한 남자와 연애를 하고 있는 그녀는 자신을 만나기 위해 광역버스를 타고 올 그 남자를 기다리다 천변의 어느 벤치에서 까무룩 잠이 들고 만다. 그 사이에 성근 눈이 내렸고 아무런 낌새도 없이 그녀는 눈사람으로 변해버렸다. 다만 왼쪽 가슴, 심장이 있던 자리만큼은 미미하게 따뜻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세 살에 결혼해 이듬해 아이를 낳았고, 올해 중학교를 졸업하는 그 아들을 십 년째 혼자 키우고 있는 그녀는 다니던 회사에서 얼마 전에 권고사직을 당한 터였다.

 

"직장인들로 빽빽하게 들어차 몸의 방향을 바꾸기도 어려운 지하철에서, 언제나처럼 그녀는 자신이 더 이상 자신의 몸에 속해 있지 않다고, 그 주변의 어떤 사물이라고 상상했다. 자신이 손목을 끼우고 매달려 있는 끈끈한 플라스틱 손잡이, 캄캄한 지하 터널을 향해 뚫린 검은 차창, 어깨에 매달려 있는 낡은 가방, 그 속에 소리 없이 담겨 있는 지갑이나 필통이라고 생각했다." (p.28 '작별' 중에서)

 

눈사람으로 변한 그녀는 늘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처지를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슬퍼하거나 놀라지도, 당황하거나 조급해하지도 않은 채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미래를 대비한다. 그러나 사귄 지 채 일 년도 되지 않은 남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녀가 다니던 마지막 직장의 인턴사원이었던 남자는 한 달만에 퇴사했고 차일피일 월급을 미루던 사장을 만나기 위해 회사로 찾아온 남자와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가까워졌다. 남자는 현재 장기간 실직 상태에 놓여 있다.

 

그녀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었다. 저녁을 먹으러 간 남자와 헤어져 아들 윤이를 만났고, 그렇게 아파트 현관 복도에서 아들과 예전처럼 끝말잇기를 하고, 멀리 떨어져 사는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했다. 그러는 사이에 그녀의 뺨과 눈과 콧날의 윤관기 조금씩 녹아, 돌이킬 수 없이 변형되고 있었다. 그녀는 같이 있겠다는 남자를 혼자서 생각을 하고 싶다며 돌려보내려 한다.

 

"그녀는 혼자 있고 싶었다. 그녀 자신의 삶이라고 불렸던 몇십 년의 시간에 대해, 잠시라도 제대로 생각을 하고 싶었다. 정말로 집중할 수 있다면, 평소라면 떠오르지 않았을 기억들을 좀 더 되찾게 될지도 모른다. 삼 남매가 회전목마를 타며 서로의 작은 몸들을 껴안았던 순간, 젖먹이 윤이가 깨어나 스물네 살 난 엄마를 고요히 바라보던 여름 아침 같은 순간들을 더." (p.52~p.53 '작별' 중에서)

 

모든 것이 녹아 층계참에 흥건한 물웅덩이로 남는 상상을 하던 순간, 아들 윤이로부터 걸려온 전화. 사랑한다는 상투적인 작별 인사를 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남자와 여자는 키스를 한다. 남자가 차가움을 견디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입술과 혀가 녹는 것을 견딘다. 하늘에서는 진눈깨비가 내리고 그녀는 빠르게 녹아내린다.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마지막 순간들이 사라져 간다.

 

존재의 사라짐에 대해 소설이라는 도구를 통해 이토록 아름답게 설명할 수 있는 작가는 많지 않다. 자유주의 시장경제 논리에 따라 철저하게 사물화 되어가는 소시민의 우울한 삶과 허술하기 짝이 없는 관계들. 그 속에서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사라지는 많은 생명들. 작가는 침묵이 내려앉은 한밤중에 눈사람처럼 녹아내리는 우리들 각자의 삶에 대해 조용히 반추하도록 한다.

 

밖에는 소설 속 한 장면처럼 눈이 내리고 있다. 흰 눈이 분분한 거리에서 폐지 줍는 노인 한 분이 힘겹게 수레를 밀고 있다. 우리는 비록 단 하루의 삶도 확실하게 보장받지 못한 채 삶과 죽음의 아슬아슬한 경계 속에서 살고 있지만 흩날리는 저 눈발이 누군가의 삶을 복원하고 새로운 관계를 이어주는 촉매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소멸하는 존재가 하는 작은 기도는 끝내 어딘가에 닿지 못한 채 눈송이처럼 스러진다. 우리의 삶은 눈송이가 낙하하는 그 순간처럼 가벼웠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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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추워진 날씨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 겨울 날씨가 으레 춥게 마련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반갑기만 하다. 미세먼지가 싹 사라졌기 때문이다. 속이 다 시원할 정도로. 멀리까지 탁 트인 시야가 어찌나 좋던지 가급적 차를 타지 않고 종일이라도 걷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이런 날씨와는 달리 언론에 보도되는 전임 법관들의 행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전범 기업을 돕기 위해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부 전체, 나아가서 전 정부의 책임자들이 모두 발을 벗고 나섰던 걸 보면 도대체 이 나라는 지금도 일본의 식민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 했다. 나치에 협력했던 전범기업을 돕기 위해 이스라엘이 국가 차원에서 동원되었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스라엘을 온전한 국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무리 돈과 권력이 좋기로서니 자신의 양심마저 미련 없이 팔 수 있는 것인가.

 

오늘 어느 방송국의 뉴스를 보니 자유당의 한 국회의원이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에 앞서 한국전쟁이나 KAL기 폭파 등에 대한 사과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면 같은 논리로 일본의 총리는 식민 지배와 무수히 많은 살상에 대한 사과는커녕 더 심한 말도 거침없이 내뱉고 있는데 아베 총리에 대한 비판의 말은 왜 한마디도 하지 않는가. 더구나 그는 같은 민족도 아닌데 말이다. 아베가 괴변을 늘어놓을 때마다 광화문 광장에 나가 일인 시위라도 해야 옳지 않은가. 적어도 보수의 품격을 지키려면 말이다.

 

게다가 바미당의 언년이는 연일 자유당에 대한 애정 공세를 늘어놓고 있다. 그 정도면 구걸에 가깝다.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도 안쓰럽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에 바라건대 한 사람 구제하는 셈 치고 자유당이 받아주면 좋겠다. 날씨가 무더운 것도 아닌데 나사가 한껏 풀린 정치인들이 바퀴벌레처럼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듯하다. 날씨도 추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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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사일런스
외이뒤르 아바 올라프스도티르 지음, 양영란 옮김 / 한길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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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하찮은 인생이 꾸역꾸역 이어져나가는 걸 참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모든 걸 끝장내려는 사람들도 있고', 자신의 삶이 야금야금 줄어드는 걸 마냥 안타까운 눈으로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고 보면 삶이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공기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게 분명하다. 침묵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작가 외이뒤르 아바 올라프스도티르의 소설 <호텔 사일런스>에 등장하는 주인공 요나스는 자신의 삶을 끝장내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나는 늘 한 해의 다섯 번째 달이 나의 마지막 달이 될 것이며, 5라는 숫자는 가령 5월 5일, 5월 15일 또는 5월 25일, 이런 식으로, 나의 마지막이 될 그날에 반드시 한 번 이상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나의 생일 달이니까. 그때쯤이면 오리는 짝짓기를 끝냈을 테고, 오리 말고도 검은 머리물떼새와 주홍도요새도 연못에 드나들 것이다.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리고, 봄기운이 그득한 세상에 밤이 찾아오지 않을 그 무렵이면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p.21~p22)

 

49세의 남성 요나스는 어느 날 아내로부터 "우리 딸은 사실 당신 자식이 아니다."라는 황당한 고백과 함께 이혼을 통보받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친딸이라고 굳게 믿었던 님페아가 그의 딸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치매에 걸린 노모는 엉뚱한 말만 반복한다. 모든 일에 무력해진 그는 자신의 삶이 남루하고 구차하게만 느껴진다. 친한 친구 스바누르에게 권총을 빌렸던 그는 권총 자살로 자신의 삶을 끝내보려 하지만 단 한 번도 총을 쏘아본 적 없던 그로서는 그마저도 힘들었다. 물론 탄알도 없는 권총이었지만. 결국 그는 자신이 갑자기 죽어도 누구 한 사람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장소를 물색하여 여행을 떠난다. 그가 찾아낸 장소는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이제 막 휴전이 성사된 위험한 나라였다. 그는 자신의 회사를 매각하고, 매각 대금을 님페아의 계좌에 입금하도록 조치하는 한편, 자신의 집안 곳곳을 정리한 후 간단한 공구함을 챙겨 마지막 여행길에 오른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용케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호텔 사일런스의 손님은 요나스를 포함해 단 세 명. 요나스와 여배우, 그리고 전쟁의 혼란기를 틈타 한몫 잡으려는 한 명의 남자. 요나스는 그가 계획했던 일주일 동안 하루 중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 도대체 무엇을 하며 소일할 것인지 궁리한다. 그러던 중 요나스의 눈에 비친 호텔 곳곳은 당장 누군가의 수리가 필요한 듯 보였고, 요나스는 자신의 공구를 이용하여 간단히 손볼 수 있는 것들을 수리하기 시작한다. 여행이 목적이라는 요나스가 갑자기 수리를 하고 나서자 호텔을 관리하던 메이와 피피는 그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님페아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메이는 어린 아들 아담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고, 그녀의 남동생 피피는 틈틈이 호텔 곳곳을 손보면서 손님들의 수발을 들고 있었다.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요나스는 점점 삶의 의욕을 되찾고 삶을 이어갈 용기를 회복한다.

 

"가진 거라곤 목숨밖에 없는 이 젊은 여자에게 차마 난 이미 끝났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게 아니면, 인생이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고 말해야 할까?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남들처럼 사랑도 하고, 울기도 하며, 괴로워하기도 한다고 말한다면, 어쩌면 그녀가 나를 이해해줄지도 모른다." (p.247)

 

요나스가 처음에 계획했던 체류 일정은 일주일에서 조금씩 늘어져만 간다. 그리고 메이와 한 팀이 되어 일하면서 끔찍했던 전쟁의 참화와 그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애썼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들끼리 모여 한 건물에서 함께 살기로 했다는 희망적인 소식도 듣는다. 요나스는 결국 생존자들이 함께 살기로 한 건물마저 수리하기에 이른다.

 

"그이는 사흘 만에 숨을 거두었어요. 나중엔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우리는 그이가 옷 속에서 차츰 해체되어가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죠. 그를 뒤로하고 피란길에 오를 때까지 말예요."

"미안합니다." 내가 다시 한번 사과의 말을 전했다. 메이에게 나도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고백한다면 더 고약해질 테지. 메이는 의자에 앉아 있고, 나는 그녀 옆에 자리를 잡는다.

"슬픔은 마치 목 안에서 깨지는 유리잔 같은 거죠." (p.249)

 

세상이 온통 구질구질하고 하찮게만 보였던 요나스에게 폐허 속에서 어떻게든 삶을 개척하려는 호텔 사일런스의 식구들은 희망의 메신저와 다름없었다. 요나스는 자신의 삶에서 잠시 길을 잃고 헤맸을 뿐이다. 인생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길을 잃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의 인생은 제 자신만을 위해 쓰기에는 과분하게 긴 시간일지도 모른다. 요나스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처럼 말이다. 세상의 흥미 있는 일을 모두 경험해봄으로써 삶이 마감되는 것이라면 49세라는 요나스의 나이는 꽤나 오래 산 축에 들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의 삶은 나뿐만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책임의식으로 꾸려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요나스를 통해 엿보게 된다.

 

타인에 대한 책임을 모두 내려놓고 절망 속에서 헤매던 요나스가 전쟁의 포화 속에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돌보면서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되살릴 수 있었던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자신의 어깨가 가벼워진다는 건 죽음에 한발 다가섰다는 걸 의미한다. 선의에서 비롯된 누군가를 향한 책임감, 그것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자신의 삶을 기꺼이 지속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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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첫날. 늦은 오후의 께느른한 햇살이 거실 한쪽을 겨우 밝히고 있다. 탁한 대기와 빗물 자국 가득한 유리창을 통과하여 거실 바닥에 겨우 도착한 나른한 빛으로 인해 그나마 푸근했던 하루. 초겨울 햇살과 숨바꼭질을 하듯 이 방 저 방을 오가며 이국종의 <골든아워>를 읽었다. 외과 의사라는 그의 직업이 무색할 정도로 잘 다듬어진 문장. 이렇다 할 문학적 소양이라고는 없는 나에게도 독서의 재미를 느끼게 했다.

 

누나와 형으로부터 어떻게 지내느냐? 는 안부 문자를 받았다. 그냥저냥 잘 지내고 있노라며 짧은 답장을 보냈다. 최근에 나는 초겨울의 여린 햇살처럼 최소한의 온기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의욕이 없기 때문이다. 생명의 기운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90대의 노인처럼 나는 도통 기운이 없다. '희망을 말하지 않고, 희망을 세우지 않고, 가짜 희망에 기대지 않고, 희망 없는 세계를 희망 없이 돌파하는' 듯한 그런 나날들이 무의미하게 흐르고 있다.

 

낮에는 지인의 우격다짐으로 칼국수를 한 술 떴다. 식욕이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내가 걱정이 되었던지 잘하는 칼국수집을 안다며 나를 막무가내로 끌어내는 바람에 나는 예정에도 없던 칼국수를 먹게 되었다. 지인의 말처럼 칼국수집은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맛도 모른 채 겨우 한 술 뜨고 나니 식욕은 저 멀리 달아나버렸다. 머쓱해진 나는 아침을 늦게 먹은 탓이라며 거짓을 말해야만 했다.

 

기운 없던 햇살도 사라지고 어둑신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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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18-12-02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욕이 없으신게 이렇게 멋져보이다니.....
잘쓴 글의 힘인가봐요....
짧은 소설 한편을 읽은 듯한 느낌이네요~

꼼쥐 2018-12-07 17:55   좋아요 1 | URL
아이고, 이런~~
부끄럽습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