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 갈수록 신경이 예민해지는가 아니면 무뎌지는가 하는 문제를 이따금 생각해보게 된다. 내 주변에도 명예퇴직을 한 친구들이 더러 생겨나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의 신경은 예민할 대로 예민해져서 말 한마디 한마디가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말이 더러 사달이 나는 경우도 종종 있고, 그들의 사정은 이해하지만 정도가 너무 심한 게 아닌가 하는 불만도 불쑥 터져나오게 된다. 이런 상황을 여러 차례 겪다 보면 인간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인간관계에 있어 점점 더 예민해진다는 결론에 이르곤 한다. 물론 인간이 태어날 때 선한 것이냐 악한 것이냐를 놓고 성선설이 옳다 성악설이 옳다 하면서 결론도 나지 않는 무의미한 논쟁을 계속하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어떤 통계를 낼 수 없으니 인간은 각자 다 다르다는 게 맞을지도 모르지만. 세월에 따라 점점 무뎌지기도 하고 예민해지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마다 달라지기도 하고...

 

그러나 산업화 시대를 겪어온 우리 세대는 지금 젊은 친구들이나 어린 학생들에 비해 경제적으로는 조금 힘들었다고 할지라도 빠른 변화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조금 덜 받지 않았을까 싶다. 그 당시에는 큰 변화라는 게 적어도 한 세대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었던 까닭에 사회 구성원들이 그 변화에 적응하고 학습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변화의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미처 적응도 하지 못했는데 또 다른 변화가 닥쳐오는 까닭에 변화에 적응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그로 인해 사회 구성원이 받는 스트레스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기 때문이다. 어린 학생들이나 젊은 친구들이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접는 까닭도, 될 대로 되라지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을 갖는 까닭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전에 눈이 조금 내렸다. 아들은 방학이 무색하게 쉬는 날도 없이 학원을 나가고 있다. '희망'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요즘, 세월이 가면 갈수록 사람들은 신경이 무뎌지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사회의 변화를 따라갈 수 없어 자포자기하는, 그런 인간들이 늘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신년인데 희망을 말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어쩌면 그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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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윤성희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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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인간의 존재 이유를 감지하는 데서 온다. 그러므로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유지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데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고, 그 나름의 역할이 있다고 어떤 확신을 갖고 믿는다는 건 타인을 존중하기 위한 최소한의 근거가 된다. 예컨대 그와 같은 믿음이 있는 사람은 적어도 자신의 이해득실이나 체면 따위와는 상관없이 타인을 존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에서 주어진 나의 역할과 존재 이유가 타인의 그것과 같을 수도 없으며, 우리가 보는 수많은 역할들이 어느 건 고귀하고 어느 건 천하다고 평가할 수 없는 까닭도 각각의 역할들이 그 빛깔을 조금씩 달리 하며 스스로 빛나기 때문이다.

 

"죽을 때까지 마리아에게 은밀한 기쁨이 하나 있었다면 그건 태극기를 팔러 가는 일이었다. 살기 위해 무엇이든 떼다 팔던 시절, 마리아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태극기 꾸러미를 리어카에 싣고 팔러 다닌 적이 있었다. 그러다 무엇에 홀린 듯 태극기의 매력에 사로잡히고 말았는데 그건 어쩌면 열아홉 살의 마리아가 미지의 나라 독일로 출발하는 순간에 보았던, 태극기가 무수히 펄럭이던 장면의 뒤늦은 효과인지도 몰랐다." (p.59)

 

'2019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권여선 작가의 단편 소설 <하늘 높이 아름답게>는 마리아의 죽음과 남겨진 사람들의 평가를 통해 인간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드러낸다. 살아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마리아의 존재가 그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새롭게 부각되었던 까닭은 그녀의 삶이 두드러지게 헌신적이었다거나 이웃을 위해 희생적인 삶을 살았다거나 남들이 하지 못하는 위대한 업적을 남겨서가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로 그녀의 삶은 너무나도 미미했고, 있는 듯 없는 듯 남들 눈에 띄지  않는 위치에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하다 떠났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집안에서 가장 사소하고 미천한 존재인 막내 마리아는 자라면서 가능한 한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도록 자기 존재를 감추고 무화하는 법을 터득했다. 숨어서 공부했고 숨어서 성당에 나갔고 숨어서 일을 꾸몄다. 그 은신술이 얼마나 뛰어났던지 마리아가 파독 간호사를 지원해 독일로 떠난 후 사흘이 지나도록 집안에서 그녀의 부재를 눈치챈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죽기 전까지도 숨어서 약을 먹고 주사를 놓았으므로 마리아가 죽을 만큼 아프다는 것을 눈치챈 이웃이나 성도는 아무도 없었다." (p.44)

 

소설은 마리아가 일흔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 생전에 가깝게 지내던 성당의 성도들이 그녀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신장암을 앓던 마리아가 혼자 진통제를 투여하며 죽음의 고통과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정부 수립 무렵 완고한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난 마리아가 체득한 생존 전략이 최대한 자신을 숨기는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고단한 노동과 고독 속에 살다 세상을 떠난 마리아에 대한 뒤늦은 이해와 연민의 감정은 결국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성도들로 하여금 '고귀한 삶'에 대한 탐색으로 이어지게 한다.

 

"베르타는 가을 저녁의 찬 기운에 오싹함을 느꼈다. 자신이 왜 그들과 계속 만남을 이어왔는지가 분명히 이해되었다. 참 고귀하지를 않다, 전혀 고귀하지가 않구나 우리는…… 베르타는 카디건 앞섶을 여미고 종종걸음을 쳤다. 한 계절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 왔다. 마리아의 말대로라면 새로운 힘이 필요할 때였다." (p.67)

 

성당의 가을 바자회가 끝나가는 파라솔 아래서 죽은 마리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은 마리아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는 자신들의 무관심을 자책하며, 마리아가 돌보던 어린 소피아의 입양을 앞다투어 주선할 듯이 떠들어대지만 현실에서의 그들은 당장 내일, 아니 바자회가 끝나는 그 시간이 지나면 누구도 마리아의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자신의 고독이나 고통을 드러내지 않은 채 평생을 일관되게 살았던 마리아와 남들 앞에서는 언제나 선한 척, 고고한 척 살아가는 우리들 중 과연 누구의 삶이 고귀한 것인가? 작가는 소설 속 인물 베르타의 입을 통해 우리들에게 묻고 있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라고 말했던 마리아. 자신의 운명과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고자 했던 마리아의 일관된 태도는 이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되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계절을 살아내기 위해 내가 가진 힘 중 필요한 힘을 쏟아붓고 있는가.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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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례(가명) 할머니를 만나던 날은 투명한 겨울 햇살이 사방에 가득했었다. 무겁지 않은 철대문을 지나면 잘 가꾸어진 잔디밭이 나오고 누르스름한 잔디밭의 가장자리를 따라 키가 낮은 자두나무가 듬성듬성 자라 있었다. 한낮에도 햇살을 시샘하는 바람이 강하게 불었고 차에서 내린 나는 소슬한 추위를 느꼈다.

 

낯선 이방인을 맞았던 건 이 집의 주인이 아닌 반려견 누리였다. 잔디의 누런 빛깔과 흡사한 털을 가진 누리는 마당 한켠에 기척도 없이 누워 있다가 이방인의 출현에 짖지도 않고 조용히 다가왔던 것이다. 나는 커다란 덩치의 누리에게 겁을 먹었던 탓에 뒤로 한 발짝 물러섰고, 때 마침 현관문을 열고 나온 김순례 할머니를 향해 어정쩡한 인사를 했던 듯하다.

 

"어서 오세요. 춥지요?"라고 묻는 할머니의 인사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답을 미룬 채 누리를 향한 경계 태세를 여전히 풀지 않고 있었다. "괜찮아요. 안 물어요. 누리야, 이리 와!" 할머니의 다정한 부르심이 반가왔던지 누리는 이방인에 대한 경계를 풀고 주인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때 내가 누리의 뒷모습에서 발견했던 것은 뒷다리 두 개 중 하나는 쓰지 못하고 단지 누리는 세 개의 다리로만 걷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누리가 나이가 많은가 봐요?" 하고 묻자, 할머니는 "많지요. 많고 말고요. 그래도 쟤가 집을 나갔다가 3년만에 돌아온 애예요." 타령을 하듯 대답을 하던 할머니는 우리를 따라 현관에 들어서던 누리를 어루만지며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내가 눈을 치켜뜨면서 "그래요?" 하고 놀랍다는 듯 묻자 할머니는 누리의 지난 삶을 조곤조곤 들려주셨다.

 

도시에서 아파트에 살았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누리의 비만이 걱정이 되어 시골로 이사를 결심했다고 했다. 시골에 집을 짓고 이사를 한 후 누리가 마음껏 뛰어놀도록 목줄을 하지 않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누리가 사라졌고, 놀란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백방으로 누리를 찾았지만 결국 찾을 수가 없어 반 포기 상태로 지내셨단다. 그런데 3년쯤 지난 어느 여름날 바짝 마른 체구의 누리가 집으로 돌아왔고, 심하게 하혈을 하는 누리를 살리기 위해 곧바로 동물병원을 알아보고 자궁을 들어내는 큰 수술을 했다고 했다수의사로부터 가정집에서 웬 새끼를 그렇게 많이 뽑았느냐는 잘 알지도 못하는 타박과 꾸지람을 들어가면서 누리를 살렸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누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그 여파로 누리는 뒷다리 한쪽을 영영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겨울이 싫어져. 땀을 뻘뻘 흘려도 여름이 좋지 겨울은 정말 싫어. 며칠 전에는 제주도를 다녀왔는데 거기는 가는 곳마다 꽃이 만발한 게 봄이야, . 그래도 거기는 섬이라 짠내가 나고 사람 살기에는 좋지 않더라. 그냥 며칠 다녀오는 건 괜찮지만 말이야." 누리의 이야기를 마친 할머니는 슬쩍 다른 이야기를 하며 방한 조끼를 꺼내 입으셨다. 자신의 얘기인 줄 아는지 현관에 턱을 괴고 누워 있는 누리는 큰 눈을 껌벅이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귀를 쫑긋 세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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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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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실내화에 쓴 검은색 매직 글씨의 이름처럼 도무지 지워질 것 같지 않은 기억들이 있다. 그러나 웬걸. 한여름 강가 바위에 썼던 물글씨처럼 너무도 쉽게 말라버린 기억들 탓에 한때 치매를 의심했던 적도 더러 있게 마련. 여름 햇살이 힘들게 쓴 물글씨를 지우는 것처럼 흐르는 세월이 사람의 기억을 지운다고들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오래된 기억을 잊기 위해 으레 또 새로운 경험을 시도하는지도 모른다. 실연의 아픔을 잊는 데는 새로운 사랑이 특효약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소설가 한지혜는 오래 묵힌 자신의 낡은 기억들로부터 책을 시작한다. <참 괜찮은 눈이 온다>는 책의 제목에서 풍기는 시적 낭만과는 별개로 작가가 들려주는 기억은 그닥 낭만적이지도 않고, '그땐 그랬지' 하는 식의 갈색 추억이라고 말할 수도 없으며, 기발하거나 예외적인 경험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것은 단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불편등한 환경에 내던져진 한 인간의 고난 극복기쯤으로 읽힌다. 그럼에도 나는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으며, 내가 거쳐 왔던 신림동의 가파른 산동네의 풍경을 아련한 추억으로 회상할 수밖에 없었다.

 

"살면서 내가 정말 최선을 다해 무언가 한 일이 있다면 그중 하나는 그날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 일일지도 모른다. 늘 흥얼거리던 유행가 몇 곡이지만 열심을 다해 불렀다. 그렇게 부르고 있자니 고인 시간도 흐르는 것 같고, 막힌 벽도 무너지는 것 같고, 일찍 늙은 청춘도 아직 살 만한 것 같았다. 인생에는 원래 그런 순간이 있는 법이다. 아주 사소한 진지함으로 태산 같은 막막함을 훌쩍 뛰어넘는 순간." (p.59)

 

내게도 눈에 대한 몇몇 특별한 기억이 있다. 경희대에 다니는 친구의 자취방에 놀러 갔던 어느 날, 서울에는 눈이 하염없이 내렸고, 폭설로 인해 지하철이 연장 운행을 한다는 친구의 말만 굳게 믿고 1호선 열차를 탔던 친구와 나는 2호선으로 환승을 하는 신도림역에서 강제 하차를 당하고 말았다. 2호선 열차는 이미 끊긴 지 오래. 역사 밖으로 나오자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이 택시를 잡기 위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눈은 여전히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친구와 나의 주머니를 톡톡 털어서 나온 돈은 고작 삼천 원 남짓.두당 오천 원을 외치는 택시기사의 달콤한 유혹을 뒤로한 채 우리는 눈발이 날리는 서울 거리를 무작정 걸었다. 신도림에서 신림동의 서울대 근처까지의 거리와 방향을 전혀 가늠하지 못한 채. 그날 우리는 맘씨 좋은 어느 택시기사의 배려 덕분에 미터기에 찍힌 요금만 겨우 내고서 신림동 하숙집으로 복귀하는 데 성공했지만 힘들어하는 내게 '동이 트기 전에 신림동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했던 친구의 위로는 얼마나 황당했던가.

 

20여 년의 세월 동안 다양한 매체를 통해 써온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는 이 책은 총 4개의 골목으로 나뉘어 있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첫 번째 골목, 이웃과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두 번째 골목, 세상과 시류에 대해 쓰고 있는 세 번째와 네 번째 골목이 그것이다. '인생의 풍요로움은 꿈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르겠다.(p.86)'고 썼던 작가의 꿈은 자신의 글이 많은 곳에 닿아 작가 자신과 같았던 마음들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희망으로 이어진다. 작가의 글을 사랑하는 많은 독자 중 한 사람인 나로서는 작가의 첫 번째 산문집이라는 이 책이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이 아닌,  번째 세 번째로 이어지는 첫 발자국일 뿐이라고 믿고 싶다.

 

"이제 이 글이 어디까지 어떻게 닿을지 모르겠다. 많은 곳에 닿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와 같았던 마음들을 만났으면 좋겠다. 혹여 다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러나 나는 언제나 실패에서 출발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것이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음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시간의 힘을 믿는다. 생존이란, 삶이란 순간이 아니라 영속성을 가진 시간을 가리키는 거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당신들, 살아갈 당신들이 저마다의 힘으로 끝내 버티기를. 나는 가늘고 길게 쥔 펜으로 앞으로도 계속 당신들을 쓰고, 나를 쓰고, 이 삶을 기록해볼 작정이다." (p.283)

 

경자년 새해가 시작된 지 벌써 보름이 지났다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나는 금세 '벌써 한 해가 다 가버렸구나.' 하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아무런 반성도 없이 말이다. 나는 이렇듯 지금 시점에서는 닿을 수 없는 아주 먼 곳을 바라볼 테고, 때로는 이룰 수 없는 아주 큰 꿈을 가볍게 말하기도 할 것이며, 지금과 같은 순간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고 믿게 될지도 모른다. 작가의 글은 이따금 처연한 슬픔으로 읽히기도 하고, 따뜻한 위로로 읽히기도 하고, '맞아. 그렇지!' 하는 공감으로 읽히기도 한다. 유난히 눈이 귀했던 올 겨울, 사락사락 내리는 눈송이처럼 2020 1월의 시간이 자박자박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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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의 대표주자가 방탄소년단(방시혁이 탄생시킨 소년단: BTS)이라면 K-Movie의 대표주자는 봉탄배우단(봉준호가 탄생시킨 배우단: BTB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BTA라고 해야 할까?)이 아닐까 싶다. 하나 다른 게 있다면 방탄소년단의 방시혁 대표는 뒤로 빠진 채 전면에 나서지 않지만 봉준호 감독은 여러 시상식에서 배우들보다 훨씬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는 점이랄까. 그래도 암튼 송강호를 비롯한 박소담, 조여정 등 영화 '기생충'에서 봉준호 감독과 함께 작업했던 여러 배우들이 영화의 메카인 미국에서도 유명세를 타는 걸 보면 왠지 뿌듯한 느낌도 들고, 한국인의 저력이랄까 잠재력이랄까 뭐 그런 게 있는가 보다 하고 생각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국민의 우수성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닌 듯하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종합우승은 말할 것도 없고, 케이팝을 비롯한 한류 현상은 전 세계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다만 국민의 우수성에 비해 정치인들의 역량은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혹자는 이승만이나 박정희, 전두환 등 독재를 일삼았던 정치인들 덕에 우리나라가 이만큼 잘살게 되었다고 말한다. 소가 웃을 일이다. 이런 헛소리를 공공연하게 떠벌리는 작자들을 가만히 살펴볼라치면 그들의 머릿속에는 국민 개개인의 우수성은 숫제 존재하지 않거나 인정하려 들지 않고 정치인들에 대한 우상화만 가득하다. 박정희를 반인반신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반인반수라면 모를까.

 

채 백 일도 남지 않은 총선. 우리는 또 어떤 정치인들을 뽑고 자신의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싶다는 후회를 하게 되지나 않을까. 선거 때가 되면 박정희의 망령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전두환에 대한 헛된 충성심이 국민 개개인의 뇌를 흔들어놓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국민들의 의식 수준은 나날이 높아지는데 정치인의 수준은 나날이 퇴보하는 듯해서 하는 말이다. 미세먼지 탓인지 가슴만 답답했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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