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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꿈인 동시에 생시 ㅣ 여백과 결 1
강우근 외 지음 / 출판사 결 / 2025년 8월
평점 :
예를 들어보자. 줄리언 반스의 소설 <시대의 소음>은 '그 일은 기차역에서 일어났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소설을 읽는 독자는 그 일이 과연 무엇인지 전혀 아는 바가 없다. 그럼에도 작가는 성격이 급한 독자들을 향해 약간의 실마리, 이를테면 '전쟁이 한창이던 때'라는 시간적 배경과 '주위를 둘러싼 끝없는 평원과 다르지 않게 흙먼지가 날리는 평지였던 기차역'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제시함으로써 '나머지 얘기는 차차 들려줄 테니 너무 조급하게 굴지 말아요'라고 달랜다. 그렇게 다시 쓰게 된 첫 문장은 '그 일은 전쟁이 한창이던 때, 주위를 둘러싼 끝없는 평원과 다르지 않게 흙먼지가 날리는 평지였던 기차역에서 일어났다.'로 바뀐다. 성격 급한 독자도 이제 안심하고 책을 읽을 수 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이야기 속으로 깊이 침잠하게 된다. 겉으로 드러난 현실은 내 일이 아닌 양 잠시 내팽개친 채. 일반인의 독서는 대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인연을 떠나보낸다. 비가 오지 않는데도 제멋대로 화락 펼쳐지는 장우산처럼, 내 속도 있는 대로 펼쳐지던 때가 있다. 바야흐로 사랑의 우기였다. 그럴 때에 나는 해가 쨍쨍 드는 거리에서 혼자만이 커다란 장우산을 쓰고 가듯 종종걸음으로 걷는다. 어디 구석에다가 이 거추장스러운 속마음을 버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 기어코 접어지지 않는 커다란 장우산을 쓰고 내가 걸어왔던 거리를 그대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마음의 빗살을 하나하나 다시 가누고 우산을 접듯 속마음을 접어둘 수가 있다. 언제 비가 올지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우산을 어딘가에 기대어놓고 깜박 잊은 척 다시 길을 간다. 갑자기 비가 오는 날 누군가는 내가 깜박한 우산을 쓰고 비를 피할 수 있으리라. 나는 어디든 놓고 올 수 있는 우산 하나를 장만하는 마음으로 시를 쓴다." (p.122 '호접몽' 중에서)
시인이 쓴 에세이를 좋아한다. 우리가 책을 읽는다는 건 우리가 바라는 꿈의 외피를 현실에 두른 채 남에게 들키지 않은 속마음을 은밀한 곳에 새긴 타투처럼 언제고 잊지 않는 일이다. 독서는 그렇게 꿈과 현실을 모호하게 한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끝없이 지워나가기 위해 나는 틈이 날 때마다 책을 읽고, 내 마음을 혹은 내 꿈을 잊지 않기 위해 메모를 한다. 두려워서 내게 주어진 잔여 시간은 계산하지 않은 채, 나는 시선을 과거로 돌려 지금 지워지고 있는 현재의 시간을 끝없이 바라본다. 지워지는 현재를 끝없이 지켜보다 보면 언젠가 덜컥 하고 허방을 짚는 날이 반드시 올 테고, 나는 끝도 없는 심연 속으로 사라질 테지만 그때까지 나는 꿈과 생시를 오가며 마르지 않는 현재를 지워갈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어설픈 호랑이처럼 등을 굽히고 파고 들어가는 일이 주어진 삶이 아니었을지 싶다. 나를 굽히고 숙인 채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서, 나를 스치는 꿈의 파편에 다치는 일. 불현듯 어느 파편으로 인해 그것을 쥐고 동굴 밖까지 기어이 가지고 나가고 싶다는 마음." (p.87 'cave dream' 중에서)
강우근, 여세실, 조온윤, 차유오, 차현준 등 다섯 명의 시인이 쓴 산문집 <이것은 꿈인 동시에 생시>는 시와 산문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 채 시인 각자가 지닌 개성을 저마다의 문장 속에서 뚜렷이 드러낸다. 시인이란 본디 현실을 잊고 꿈을 좇는 사람들인 까닭에 그들이 쓰는 문장은 때로 환상의 외피를 입고 출현하는 경우가 다반사, 현실밖에 모르는 우리는 환상을 번역하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자 한 자 꼼꼼히 읽다 보면 우리도 시인처럼 현실을 잊고 한 발 한 발 환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시의 효용이란 바로 그 지점에 있지 않을까 싶다. 현실의 삶이 물리거나 지겨울 때면 '레드 썬!' 하는 외침과 함께 최면에 빠져드는 것처럼, 시인이 전하는 문장 하나하로 인해 꿈을 꾸듯 천상을 거니는 듯한 효과를 볼 수만 있다면 시인의 언어를 번역하고자 하는 우리의 작은 노력도 전혀 힘들지 않을 것이다.
"꿈이 아닌 현실이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 마련이다. 꿈의 증발이 조금 더 빠를 뿐, 현실도 미래와 과거라는 이름의 조수 간만에 차츰 지워지고 있으니까. 이때 과거는 당연히 썰물 때를 의미할 테다. 과거를 떠올리면 세월에 가려지고 옅어졌던 옛 문장들이 희미하게 드러나기에. 간혹 그곳 해안으로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낯선 물질로 된 알갱이들이 쓸려오기도 한다. 그것은 자칫 모래알과 똑같아 보여 한데 섞이면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흐릿해진 탓에 그 기억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게 된다." (p.113 '매몽과 몽매' 중에서)
꿈을 꾸듯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면 또렷하던 현실이 조금쯤 뿌옇게 보이기도 한다. 다시 또렷해진 현실을 보기 위해서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드넓은 평원을 달리는 기차가 기차역에서 잠시 머무르는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책을 읽는다는 건 '꿈인 동시에 생시'의 경험을 끝없이 반복하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시인은 가장 간결한 언어로 우리를 꿈의 세계로 안내한다. '레드 썬!' 하면 최면에 걸리는 것처럼. 주말 오후의 하늘에 알록달록한 빨래를 널듯 누군가의 꿈이 이름표도 없이 걸렸다. 가을이 오려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