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법을 잊었다
오치아이 게이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한길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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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기대하지도 않았던 책에서 큰 감동을 받게 될 때, 책과의 인연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자신의 반쪽이 될 사람을 우연처럼 발견하게 되었을 때의 감동처럼 말이다. 오치아이 게이코의 소설 <우는 법을 잊었다> 역시 내게는 그런 책이었다. 소설이라기보다 주인공 후유코가 적어 내려 간 간병일지나 다름없는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도록 하는 그런 책이었다.

 

 

"나는 좌절하지 않는다. 나는 굴복하지 않는다. 나는 죽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을 여러 의미에서 관리하고 운영하는 모든 기술과 능력, 지식과 지혜를 잃어버린 늙은 어머니를 남기고 딸이 먼저 죽을 수는 없다. 인지장애라는 증상으로 완벽에 가깝게 빼앗긴 어머니 자신의 삶에 대한 확인. 나는 어머니 삶의 대행업자가 되려는 것인가. 그건 가능한 일일까." (p.161)

 

 

소설의 주인공인 후유코는 치매와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자신의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와 7년째 함께 살고 있다. 일흔두 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의 후유코가 어머니를 간병하고 어린이책 서점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꾸려가는 모습은 왠지 모를 숙연함을 안겨주기도 했다. 후유코의 어머니는 혼외 자식으로 그녀를 낳았고 서로가 서로를 돌보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그들을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깨달았던 후유코는 어린 나이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힌다. 후유코에게 청개구리를 선물했던 친구의 남동생은 어느 날 물풀을 따다 주기 위해 늪으로 갔다가 시체로 발견되었고, 장례식장에서 힘없이 앉아 있던 그 아이의 어머니를 본 후 자신이 죽게 되면 혼자 남겨질 그녀의 어머니 역시 그런 모습일 거라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후유코가 어렸을 때부터 그녀의 어머니는 강박증에 시달렸다. 깨어 있는 내내 손을 씻고 또 씻는 바람에 액체 세제 한 통을 일주일 만에 다 써버리기 일쑤였던 어머니는 새 옷을 입으면 세균이 달라붙는다는 강박증세로 인해 옷을 갈아입는 것도, 목욕도 거부하는 등 불안정한 신경 증세를 보였다. 그러던 어머니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사랑했던 남자, 후유코 자신의 친부가 거의 동시에 죽음을 맞으면서 어머니는 당신이 겪던 긴 '겨울잠'에서 스스로 깨어나게 되었다. 힘들게 살아왔던 어머니. 후유코는 남들의 칭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어머니 같은 여자가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야말로 왜곡돼 있는 거죠.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어머니를 칭찬할 게 아니라, 저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바꿔가고 싶어요. 열심히 살아야 하는 사회 자체를 말이에요. 불필요한 열정을 개인에게 강요하는 사회를 저는 원하지 않습니다. 필요 이상 열심히 하는 것을 미담으로 삼는 사회와 인간관계에도 저는 이의가 있습니다." (p.58)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어머니를 위해 이모들과 사촌, 조카 등 가족들이 모두 모여 생일 파티를 하고, 대소변을 받아주고, 나날이 약해져 가는 어머니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기도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유롭게 살기를 원했던 어머니의 뜻에 반하여 후유코는 어머니의 간병을 도맡음으로써 어머니를 온전히 자신의 손에 의지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지만 그러한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7년 동안 돌보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후유코는 자신의 어머니가 자유로워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간병에서 벗어난 자신만 그렇게 믿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기도 한다. 일찍 남편을 잃고 홀로 네 딸을 키웠던 할머니. 좋은 집에 시집가서 편하게 살기를 바랐던 맏딸이 '아비 없는 자식'을 낳겠다고 했을 때 혹독한 말로 몰아세우며 모욕과 분노를 퍼부었던 할머니를 10년간 병수발을 들었던 어머니. 누군가의 어머니가 될 자신이 없었던 후유코가 독신으로 자유롭게 사는 것을 지지했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마지막 7년을 지켜보면서 후유코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서서히 벗어나게 된다. 책에는 자신이 한때 사랑했던 남자의 갑작스러웠던 죽음과 어린이책 전문서점 '광장'의 직원으로 오랫동안 근무했던 '미치코'의 남편의 죽음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후유코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한다.

 

 

"인생은 한 권의 책이다라고 쓴 시인이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오늘까지 나는 어떤 책을 써왔을까. 내가 살아온 일흔두 살이라는 나이의 책. 만약 그 책에 색이 있다면, 어떤 색으로 물들어 있을까. 단색은 아닐 테지만 어떤 색이 도드라질지 나는 생각해본다." (p.282)

 

 

작가 자신의 자서전일 수도 있는 이 책을 내가 때로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공감하며 읽었던 데에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아내의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들을 처가에 맡긴 후 내가 혼자 머물던 좁은 숙소로 내려왔던 아내. 나는 온전히 아내의 식사를 챙기고, 행여나 몸이 굳을까 하루에도 여러 번 손발을 주무르고, 아내를 부축하여 산책을 나가고, 산책 후에는 꼼꼼히 몸을 씻기고, 손톱과 발톱을 깎아주는 등 정성을 다했건만 아내는 겨우 일곱 달을 나와 함께 살았다.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내 삶의 무게를 조금쯤 덜어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산 자에게 삶의 무게가 가벼워진다는 건 곧 외로워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죽음 직전까지도 누군가를 걱정하고 책임을 지려 한다는 건 외로움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스스로의 어깨에 짐을 더함으로써 외로움에 저항하려는 작은 발버둥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상실과 슬픔 끝에 찾아오는 자유는 산 자의 몫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말할 수 있다. 삶에서 얻는 어떤 깨달음은 상실과 슬픔 끝에 찾아온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삶에서 겪는 상실의 고통은 깨달음의 완결이자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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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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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은 스스로의 생명력을 기반으로 왜곡되고, 뒤틀리고, 때로는 유리한 방향으로 적절히 가공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억의 뒤편에는 언제나 미숙했던 내가 있고,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간절히 묻고 싶었던 질문, "왜 그랬을까?"가 뒤따르게 된다. 때로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면서, 때로는 아쉬움과 탄식을 섞어.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후회나 자책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독백에 가까운 질문인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공무와 포옹하고 싶었다. 만약 내 옆에 모래가 있었더라도 나는 똑같은 충동을 느꼈을 것이다. 그애를 껴안아 책의 귀퉁이를 접듯이 시간의 한 부분을 접고 싶었다. 언젠가 다시 펴볼 수 있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그러나 스물둘의 나는 공무를 포옹하지 않았다. 다만 젖은 바위에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버둥거리며 비탈을 내려왔을 뿐."(p.158)

 

최은영의 소설집 <쇼코의 미소>를 읽고 나는 머지않은 시기에 그녀의 팬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작가의 글은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탄탄한 구성과 독자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탁월한 묘사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작가의 생각이 일치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등장인물과 작가의 불일치는 종종 책을 읽는 독자를 혼란에 빠트리곤 한다. 그러나 최은영 작가는 단 한순간도 소설을 읽는 독자의 생각을 소설 밖으로 내몰지 않았다.

 

"진희와 함께할 때면 미주의 마음에는 그런 식의 안도가 천천히 퍼져나갔다.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 그때가 미주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미주의 행복은 진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진희가 어떤 고통을 받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으므로 미주는 그 착각의 크기만큼 행복할 수 있었다."(p.196)

 

첫 번째 소설집 <쇼코의 미소>와는 달리 두 번째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은 십 대 후반이나 이십 대 초반에 자신이 겪었던 겪었던 일들을 세월을 훌쩍 건너뛴 삼십 대 중반쯤에 떠올린다. 젊고 순수했던 그 시절의 추억이 아련한 그리움과 아쉬움으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소설을 구성하는 흔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최은영 작가의 간결하고 매끄러운 문체로 인해 진부하다는 느낌은 잘 들지 않는다.

 

"그때의 여자의 나이가 되어 혜인은 생각한다. 여자는 어쩌면 자신에게 삶의 무거움을 미리 알려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자신이 세상과 인간에 대해 미리부터 겁을 집어먹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고. 그저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그렇게 행동했는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p.231)

 

책에 실려 있는 소설은 레즈비언 커플 이경과 수이의 만남과 헤어짐을 담은 '그 여름',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과 멸시를 받는 옆집 친구 효진의 모습을 나의 시선에서 포착한 '601, 602',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아웅다웅 싸우면서 자랐던 두 자매 윤희와 주희의 뒤늦은 이해와 사랑을 다룬 '지나가는 밤', 고등학교 시절 통신 친구로 만났던 세 친구 모래, 공무, 나(나비)의 사랑과 그 엇갈림을 그린 '모래로 지은 집', 고등학교 시절 세 명의 단짝 친구였던 미주, 주나, 진희, 그러나 진희의 커밍 아웃과 함께 우정이 깨지고 하늘나라로 떠난 진희에 대한 책임 소재만 남아 있는 현재를 그린 '고백',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삼촌 집에 보내져 따뜻했던 숙모의 손길 속에서 자란 혜인이 삼촌의 사망과 함께 숙모와 갑자기 헤어지면서 느끼게 된 애증의 이야기가 그려지는 '손길', 우연처럼 찾게 된 아치디에서 우연처럼 찾아왔던 랄도와 하민의 사랑을 그린 '아치디에서'이다.

 

최은영의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을 읽다 보면 우리는 꿈과 이상만 있고 현실에 발을 딛지 못해 뭔가 불안한, 그렇지만 가능성과 희망으로 가득했던 학창 시절의 추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기성세대와, 또는 현실과 화해하지 못한 젊음은 언제나 반항적이고 그래서 더 외롭다. 그러나 그런 마음의 격랑이 가라앉을 나이가 되면 어제와 하등 다를 바 없는 오늘이 새삼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외롭다는 게 죄는 아니지. 알면서도 왜 네가 그러고 지내는 모습을 견디기 힘들었을까. 너에게서 내 모습이 보여서였나봐. 그게 너무 지긋지긋해서 그랬나봐. 나도 그랬으니까. 나는 그저 그 마음을 억눌렀던 것뿐이었으니까."(p.94)

 

우리가 헤어졌던 건 그 시절의 다정했던 사람, 사랑했던 사람이 아니라 행복했던 어느 순간과의 이별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그리워하는 건 결국 지금은 곁에 없는 누군가가 아니라 지나간 삶의 어느 한 부분이었던 게 아닐까. '또 하루 멀어져 간다'고 노래했던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우리는 주어진 시간을 향해 끝없이 손을 흔들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보다 더 자신만만했던 지난날의 나를 하냥 그리워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나 우리가 저마다의 상실의 아픔을 품고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건 그 시절에 만나 사랑했던 누군가가 지구 상의 어느 곳에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는 안도감 때문일 것이다. 오늘 한낮의 가을 햇살이 따뜻했기에 다가올 한겨울의 추위가 두렵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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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잠깐 짬을 내어 친구의 병문안을 다녀왔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병원을 찾는 일은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다. 코끝에 전해지는 진한 소독약 냄새와 분주히 움직이는 의사와 간호사들, 그리고 병문안을 온 듯한 내방객의 어두운 얼굴들. 이러한 조합은 흐리고 을씨년스러웠던 오늘의 날씨만큼이나 진한 그림자를 드리우게 했다. 젊은 시절이라면 모른 채 지나쳤을 듯한 삶의 이면을 몰래 훔쳐본 느낌이랄까. 암튼 나이가 들수록 병원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은 그 강도가 더해진다.

 

휠체어를 탄 친구의 모습은 낯설었다. 시골 부모님 댁에 다녀오던 길에 신호대기를 하고 있던 자신의 차를 누군가 강하게 추돌했고, 정신을 잃고 얼마 동안 쓰러졌다가 일어나 보니 부서진 차 안에 쓰러져 있는 자신이 보이더라는 것이다. 휴대폰도 찾지 못한 채 간신히 밖으로 빠져나오자 지나던 차들이 사고를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를 했기에 망정이지 2차 사고라도 났더라면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고 했다. 사고를 낸 운전자는 도주를 했다가 이틀이 지나서야 자수를 했단다. 사고 차량은 책임보험만 들었을 뿐 종합보험에도 가입되지 않았다고 했다. 게다가 야간에 뺑소니까지...

 

친구의 차는 결국 폐차를 했고, 인대가 파열된 친구는 6주 진단을 받고 누워 있는 신세가 되었다. 어쩌면 그만 한 게 다행인지도 몰랐다. 여기저기 분주하게 쏘다니던 사람이 침대에 누워 하루하루를 소진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있게 마련이지만 가슴을 쓸어내리는 이런 일들을 접할 때마다 인간의 생명이 참으로 가볍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삶은 더 소중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날이 차다. 갑자기 변한 날씨. 무작정 겨울로 향하는 듯한 이러한 돌진이 다소 무모해 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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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게 - 기시미 이치로의 다시 살아갈 용기에 대하여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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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마흔이라는 나이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의 수명을 어림잡아 팔십 언저리로 보았을 때 마흔은 그 절반에 해당하는 나이니까 말이지요. 그러나 바쁜 현대인에게 있어 마흔이란 나이는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가장 바쁘고 왕성하게 활동해야 하는 시기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까닭에 느긋하게 자신의 반평생을 되돌아보기는커녕 하루하루의 일과를 분주히 처리하느라 힘에 겨워 비명을 내질러야 할 판이지요.

 

베스트셀러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 역시 비슷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들러 심리학'의 일인자이자 '플라톤 철학'의 대가이기도 한 그는 정신의학병원에서 청소년들을 상담하거나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후 도호쿠 각지에서 강연하며 실의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하는 등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책무에 최선을 다해 임하다가 오십의 다소 이른 나이에 그는 열 명에 두 명은 죽게 된다는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그는 심장에 대체 혈관을 연결하는 대수술을 받고 겨우 회복하였다고 합니다. 기시미 이치로의 신작 <마흔에게>는 그와 같은 동기로 쓰인 책입니다.

 

"당시 제 나이는 오십이었습니다. 딸은 고등학생이고 아들은 대학에 막 들어간 참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사는지 끝까지 지켜보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죽음이란 어쩌면 이리도 허무하단 말이냐'라고 느낀 것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합니다." (p.59~p.60)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이 듦'은 곧 자신의 가치가 하락한다고 믿게 됩니다. 그러나 저자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타자 공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존재함으로써 누군가에게 기여를 하고 기쁨을 주는 까닭에 가치가 소멸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 듯합니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젊었을 때 할 수 있던 많은 것들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노화는 단순히 변화일 뿐 쇠퇴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신체의변화는 피할 수 없지만 변화에는 단지 적응이 필요할 뿐 좌절이나 도피와 같은 움츠림이 요구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을 좋아하라고 해도 갑자기 그렇게 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일단은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행동부터 그만두면 어떨까요? 서로의 과거를 비교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 있는 상대에 관심을 기울이면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던지는 질문과 대화 내용도 저절로 변하게 됩니다." (p.192)

 

저자는 그의 나이 예순 살에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2년 동안 꾸준히 공부한 덕에 한국어 책을 읽을 수 있게 됐고, 짧은 서평도 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십도 되기 전에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와 인지증을 앓던 아버지에 대한 경험도 들려줍니다. 그의 어머니는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병상에서 독일어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셨다가 그마저도 여의치 않자 그가 학창 시절에 즐겨 읽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싶다고 해서 저자는 날마다 침대맡에 앉아서 책을 읽어주었다고 말합니다.

 

"남은 인생은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이 사실은 바꿀 수 없습니다.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의식뿐입니다. 늙어가는 용기, 나이 든 '지금'을 행복하게 사는 용기란 인생을 바라보는 눈을 아주 조금 바꾸는 용기인지도 모릅니다." (p.93)

 

저자는 이 책에서 철학적 언급보다는 많은 부분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질병과 죽음에 집착하여 인생을 망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남은 생을 더욱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에 대해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조언을 아끼지 않습니다. 은퇴 후 부부 사이의 관계에 대해, 나이 든 부모를 간병하는 문제에 대해 매사 불평불만을 늘어놓기보다는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라는 조언입니다. 생산성이나 성공의 관점에서 본다면 노화는 곧 실패와 진배없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부모님이 살아 계시다는 생각만으로도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질 때가 있는 것처럼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생존 그 자체만으로도 누군가에게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용기, 그것뿐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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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리아민의 다른 삶 - 제8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전혜정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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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처음 접하는 작가의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장점보다는 단점에 더 주목하게 된다. 이상한 일이다. 익숙한 작가의 작품이었다면 눈에 보이지도 않았을 문제점들이 이것저것 불거져 나오는 것이다. 마치 일부러 작심하고 꼬투리를 잡으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럴라치면 일석점호를 맡은 일직사관이 작심한 듯 흰 장갑을 끼고 등장했던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동안 잘 모르고 지냈던 내 성격이 무척이나 까탈스럽고 부정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전혜정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었다. '제8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라는 문구가 사람들의 시선을 은근히 잡아끌기는 했지만 제목이 던지는 의미의 모호성이 책을 읽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의 강한 호기심을 자극했던 게 사실이다. 제목인 즉 <독재자 리아민의 다른 삶>. 제목만 보아서는 도무지 어떤 내용일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야기는 소설가 박상호가 독재자 리아민으로부터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출생의 비밀을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첫 작품이었던 <그곳에 당신이 있었다>가 대박을 친 후 첫 작품에 버금갈 만한 뛰어난 작품을 내놓지 못하던 박상호가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대통령 관저로 불려 갔던 것이다. 박상호에게 던져진 제안은 리아민과의 인터뷰를 통해 제공된 리아민의 지난 삶을 재구성하여 전기를 써달라는 것이었다. 박상호는 권력자 리아민의 전기를 집필함으로써 소설가로서의 명성을 회복하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속셈으로 그 제안을 수락한다.

 

"대통령 리아민은 속물이었고, 부도덕했으며, 독재의 견고한 발판을 만들기 위해 나의 알량한 재능을 활용하려던 지극히 계산적인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리아민을 재기의 발판으로 사용하려던 나의 계산된 글쓰기는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을 터였다. 물론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나의 치부를 결코 인정하고 있지 않았지만." (p.266)

 

이후 박상호는 리아민의 호출이 있을 때마다 대통령 관저를 수시로 드나들게 된다. 그 과정에서 박상호는 리아민으로부터 사실인지 거짓인지조차 구별할 수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을 듣게 되고 박상호는 자신이 과연 리아민의 전기를 다 쓸 수 있을지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박상호는 대통령의 기자회견 자리에 있던 정치부 기자 정율리를 만나 불같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시간은 저 홀로 잘도 흘러가고 있었다. 벌써 저녁 아홉 시가 막 지났다. 그동안 정율리 기자와 출판사 사장과 책임편집자 오가진 그리고 이기성 작가와 그 외 수십 명의 기자들이 내 휴대폰에 부재중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나는 사장과의 전화를 끝으로 어느 누구와도 연락을 주고받지 않고 있었다." (p.158)

 

리아민이 들려준 그의 이야기는 참으로 황당무계한 것이었다. 행실이 난잡했던 리아민의 어머니가 열다섯의 어린 나이에 그를 낳았다는 것과 무책임한 어머니를 대신해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는 것과 남들보다 영특했던 유년 시절의 에피소드나 중 고등학교 시절 노총각 문학 선생에 의해 문학 소년으로 성장했다거나 대학 시절에 만난 첫사랑 유영과의 로맨스와 군 복무 시절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위해 첫사랑을 배신하고 사단장의 외동딸과 결혼했다는 이야기 등 리아민의 이야기는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보았을 듯싶은 뻔한 이야기이거나 황당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뿐이었다. 게다가 박상호의 눈에 비친 영부인 최세희의 행동 또한 정상이 아니었다. 박상호를 유혹하는 듯한 행동과 어느 날 그녀가 성장했던 시골 마을로 박상호를 꾀어내어 자신의 출생 비밀과 리아민과 결혼에 이르게 된 과정을 자세히 알려주는 등 뜬금없는 일이 벌어진다. 얼굴은 예뻤지만 다섯 살 수준의 지능으로 성장했던 최세희의 어머니가 열여섯 살의 나이에 성폭행을 당한 후 자신을 낳았고, 이후 그녀의 어머니가 아무도 모르게 집을 나가는 바람에 외할머니와 함께 성장했으며 자신도 마을 사람들 여러 명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리아민도 최세희도 출생 단계부터 불행했고 두 사람 모두 외할머니에 의해 키워졌다는 것인데 우연도 이런 우연이 또 있을까.

 

"세상의 모든 중독자는 여간해선 쓰레기 같은 과거에서 헤어나오기는커녕 더욱 진창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데 영부인은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했다. 비록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긴 했지만, 나는 그 사연에 과연 얼마만큼의 신빙성이 있는지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결국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한다고 하더라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기억의 왜곡과 조작을 피할 수 없을 터였다." (p220~p.221)

 

리아민은 헌법을 개정해가면서 자신의 장기 집권 계획을 차례차례 진행시켜가던 중 드론에 의해 피습을 당한다. 다행히 리아민은 목숨은 건졌지만 한동안 병원에 입원했던 까닭에 전기를 완성할 만큼 충분한 정보를 확보하지 못했던 박상호는 인터뷰 대신 글로 써서 자신에게 제공해줄 것을 요구했다. 리아민이 보낸 글은 가관이 아니었다. 결국 박상호는 자신의 생각했던 대로 글을 써 내려간다. 말하자면 리아민의 전기가 아닌 리아민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게 된 것이다. 이를 읽어본 정율리는 그에게 다시 쓰는 게 좋겠다고 충고하지만 박상호는 이를 거절하고 두 사람은 끝내 결별하고 만다.

 

"그리고 대중들이 진실만을 원할 것 같아? 절대 아니야. 아무도 그런 건 원치 않아. 우리가 원하는 건 이 나라를 통치하는 지도자의 틀에 걸맞은 하나의 이미지일 뿐이야." (p.250)

 

박상호가 쓴 전기는 결국 리아민에 의해 최종적으로 거절된다. 그리고 한 달 열흘이라는 촉박한 기한 내에 다시 쓸 것을 요구한다. 박상호가 이를 거절하면서 사건의 전말이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리아민의 전기 작가로 자신이 선택된 배경이 밝혀지고 박상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리아민과 그의 수하들에 의해 마련된 애초 계획에 의해 일이 진행된다.

 

"가당치 않은 뜻을 존중해주었더니 오히려 두려움을 느끼는 미친 세상이 바로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었다. 어찌 보면 수석비서관의 생각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진한 예술가 박상호로 사는 것이 이 기묘한 세상을 보다 잘 살아갈 수 있는 방편이 될 수도 있었다." (p.319)

 

소설에 등장하는 리아민과 최세희의 삶이 현실에서 있을 것 같지 않은 황당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었다는 걸 작가 스스로도 모르지는 않았을 터, 그렇다면 작가는 왜 그런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들로 소설의 상당 부분을 채웠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읽는 재미를 위해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권력과 부를 쫓는 미치광이들 틈바구니에서 우리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걸 때때로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가의 생각도 거기에 있지 않았을까. 과장되고 허무맹랑해 보이는 인물을 설정함으로써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볼 것을 주문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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