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하는 빗줄기에 더위는 제법 멀어진 느낌입니다. 불과 며칠 전의 일인데 죽을 것 같던 더위가 마치 까마득한 과거의 기억인 양 아득하기만 하니 사람만큼 간사한 종(種)도 다시 또 없을 듯싶습니다. 흩어지는 빗방울들 사이로 끝내 하나의 생각으로 이어지지 않는 올망졸망한 상념들이 나타났다 스러지곤 합니다. 커피잔을 들고 베란다로 나가보았습니다. 가을은 아직 멀었는가, 하릴없는 질문 한 방울이 잔 속으로 떨어집니다. 오지도 않은 가을에 나는 벌써 다가올 겨울 추위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잠시도 현재에 머물지 못하는 듯합니다. 떠나지 않는 걱정은 언제나 묵직한 지병처럼 어깨를 짓누릅니다.

 

오늘은 광복절. 과거의 어느 한때는 매년 삼일절과 광복절에 맞춰 태극기를 단 폭주족들이 도심의 밤거리를 장악하곤 했었습니다. 뉴스에서는 광복절 기념식이나 대통령의 기념연설보다 더 크게 보도되곤 했었지요. 그리하여 삼일절이나 광복절이면 으레 폭주족을 차단하기 위한 교통 경찰의 대비책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이제는 떼를 지어 도심의 밤거리를 활보하던 폭주족의 무리도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사라졌나 봅니다.

 

한반도의 안보가 위중한 요즘, 북한과의 연락 채널을 모두 끊었던 전 정권의 어이없는 행태가 작금의 사태를 불러온 게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지금 두 손 두 발이 묶인 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정치는 일개 감정풀이가 아님을 새삼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저급한 기분풀이여서도 안 되겠지만 말입니다. 현 정부와 대통령이 냉철한 이성으로 현 시국을 잘 풀어가리라 간절히 기대하게 됩니다.

 

여름 휴가와 휴일 등으로 여유로운 시간이 비교적 많았었는데 의외로 책을 읽은 시간은 형편없이 줄었습니다. 게으름만 늘어나는 요즘입니다. 더위를 핑계삼아서 말이지요. 이번 주 내내 비가 내리려나 봅니다. 어쩌면 나는 '일일부독서'의 핑계를 더위에서 비로 전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장마가 지려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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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고의 책
앤 후드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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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도 미처 알지 못하는 사이에 수많은 사건들이 마치 모래알처럼 자기 옆을 스쳐지나간다는 사실을, 그리하여 그 많은 사건들이 결국에는 나의 기억 속에서는 단 한 번도 깨어나지 못한 채 영원한 침묵으로 잠든다는 걸 종종 잊고 지낸다. 나를 스쳐간 많은 일들, 그러나 나의 기억 속에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그런 일들을 나는 어떻게 추억해야 할까. 아쉬움이란 결국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나를 스쳐갔지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것들이 시간 속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추는 동안 나는 온전한 작별 인사도 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나는 이따금 소설을 읽는 목적이 바로 거기에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내가 소설을 읽음으로써 의식에서 사라진 많은 것들을 다시 되살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살았던 그 시간 동안 부지불식간에 사라져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다시금 되새기게 되니까. 마음에 되새기는 횟수만큼 나는 조금씩 겸손해질 수 있으니까.

 

"시간에서의 이탈, 사차원이라는 개념이 지금 자기가 느끼는 것, 겪고 있는 것을 정확히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어느덧 어릴 적 침실로 돌아와 있었다. 릴리의 침대가 자기 침대 맞은편에 일년 동안 주인 없이 놓여 있었다. 시트와 얇은 여름용 싸개가 꾸깃꾸깃 뒤집혀 있었다. 마치 어린 그녀가 막 거기서 나왔거나 금방 다시 들어갈 것 같았다. 에이바가 무릎에 <클레어에서 여기까지>를 평쳐놓고 읽으며 그 책이 오로지 자기만을 위해 쓰인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그랬던 걸까? 지금도 궁금했다." (p432~p.433)

 

미국의 여류 작가 앤 후드는 그녀의 소설 <내 인생 최고의 책>에서 우리가 흘려보내는 시간의 잔물결을 좀 더 세밀한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의식 속에 가둬두지 못한 많은 일들이 바람처럼 사라져갔음을 상기시키면서 말이다. 책에 등장하는 에이바도 그런 실수와 아픔을 간직한 여인이다. 어린 시절 동생의 죽음으로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던 그녀는 설상가상 이혼의 고통까지 겪게 됨으로써 마음을 편히 내려놓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을 모두 잃고 만다. 그때 그녀의 친구 케이트가 구세주처럼 다가온다.

 

미국의 가장 작은 주 로드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은 프로비던스 지역에 위치한 아테나이움 도서관의 아래층 방에서 매달 두 번째 월요일 이루어지는 북클럽 모임에 에이바가 가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북클럽은 해마다 주제를 달리하여 진행하는데 에이바가 가입했을 때의 주제는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책'이었다. 북클럽의 회원들은 8월과 12월을 제외한 열 달 동안 각자가 선정한 10권의 책을 읽고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에이바의 오랜 친구이자 사서로서 북클럽 모임을 주재하는 케이트는 회원들이 정한 책의 목록을 기초로 하여 각각의 달에 읽을 책을 선정한다. 12월에 새로 가입한 에이바가 고른 책은 로절린드 아든의 <클레어에서 여기까지>였다. 이 책은 물론 작가가 꾸며낸 가상의 책이지만 말이다. 다른 회원들은 <오만과 편견>, <위대한 개츠비>, <안나 카레니나>, <백 년 동안의 고독>, <제5도살장> 등 다양했다.

 

25년간에 걸친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른 후 가입한 북클럽이었기에 에이바는 처음 얼마간은 북클럽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오만과 편견>, <위대한 개츠비>의 경우에는 숫제 읽지도 않고 영화를 보는 것으로 대체하려다가 회원들에게 들켜 창피를 당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에이바는 북클럽 멤버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저자가 간담회를 해주기로 했다며 거짓말을 하고 저자와 출판사를 찾기 위한 여정에 돌입한다. 이러는 과정에서 에이바는 북클럽 멤버들의 사정을 하나씩 알아가게 되고, 남편과 아이들에 매여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살았던 지난 날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삼십 대 초반의 젊은 남성인 루크와 잠시 연인 관계를 맺기도 하고, 여섯 아이를 키워낸 루스의 부지런함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에이바와 같은 날 들어온 신입 멤버이자 사별한 아내를 그리워하는 존의 마음을 토닥이기도 한다. 책을 매개로 멤버들과의 교류가 잦아짐으로써 에이바는 점차 자신의 삶을 찾아간다.

 

에이바가 어렸을 때 그녀의 엄마 샬럿은 서점을 운영하면서 두 아이를 돌보느라 늘 바빴고, 보험회사 직원이었던 아버지는 무신경한 사람이었다. 엄마 샬럿과 비어트리스 이모는 서점을 같이 운영하며 샬럿이 바쁠 때는 비어트리스가 아이들을 돌보곤 했다. 재주가 많고 활동적이었던 릴리는 그날 높은 나무에 올라갔었고, 에이바는 그 밑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엄마 샬럿이 서점으로 출근하고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왔던 비어트리스 이모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릴리가 나무에서 떨어졌다. 구급차가 릴리의 시신을 수습했고,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 행크 빙엄이 왔고, 릴리의 사고 소식을 들은 샬럿과 아버지 테드가 왔다. 릴리가 나무 위에 올라가 있었을 때 그 누구도 릴리를 돌보지 않았다는 죄책감은 가족 모두에게 큰 상처로 남았다. 비어트리스 이모가 종적을 감추었고 엄마 샬럿의 차가 제임스타운 다리 위에서 추락했다. 유서도 없었고 시신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에이바는 엄마가 자살했다고 믿었다. 사실 샬럿과 행크 빙엄은 부적절한 관계에 있었고, 릴리가 나무에서 떨어지던 날도 그들은 함께 있었다.

 

릴리와 엄마를 잃고 슬픔에 빠져 있을 때 누군가로부터 받았던 책이 <클레어에서 여기까지>였다. 에이바는 그 책을 통해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남편 짐을 만났고, 아들 윌과 딸 매기를 낳았다. 누구보다도 성실한 아들 윌과는 다르게 딸 매기는 약물과 남자 문제로 부모의 속을 썩이던 아이였다. 짐과 헤어졌을 때 윌은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산악 고릴라 연구를 하고 있었고, 매기는 미술사를 공부하겠다며 피렌체로 유학을 떠나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매기는 학교를 그만두고 독일인 남학생을 따라 파리로 향한다. 파리에서 매기는 마약과 섹스에 취해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한다. 가족들과의 연락도 끊은 채 죽음 직전까지 이르게 되었던 매기는 결국 경찰에 의해 구조된다. 매기의 상태가 걱정되었던 에이바는 짐에게 연락하였고 파리에 갔던 짐으로부터 무사하다는 소식을 전해듣는다. 그리고 작가 로절린드 아든을 찾는 과정에서 에이바는 자신의 과거와 연결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제5도살장>을 인생의 책으로 선정했던 존은 이렇게 말한다.

 

"책이라는 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데 솔직히, 오늘 밤 독서 모임 때문에 이 책을 다시 읽는데 시간 여행이니 뭐니를 생각하니까 기분이 한결 나아지더라고요. 저도 이제 뭔가를 좀 이해했나보죠?" (p.436)

 

인생의 어떤 순간에 벌어진 일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억 속에 착 달라붙어 삶의 발걸음을 더디게 하는 경우도 있고, 기억에도 없던 어떤 일이 한참이나 지난 어느 순간에 내 삶 속으로 파고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계획하여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 우리는 시간의 경과에 따른 달라진 환경에 그때그때 적응만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에서 오는 충격으로 인해 우리가 잠시 방향을 잃고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할 때 책은 종종 마음의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마음을 닫고, 두 눈마저 질끈 감았던 어느 날, 마음을 다잡고 읽었던 책은 내가 다시 사람들을 향해 마음을 열게 하고, 감았던 눈을 뜨게 한다. 그 순간에도 여러 일들이 내 곁을 스쳐지나갔음을 상기시키면서 말이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가을의 기미가 느껴지는 것처럼 지난 여름을 스쳐간 많은 일들이 잘게 부서지는 오후, '내 인생 최고의 책'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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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담장을 따라가다 보면 직선으로 꺾이는 모퉁이에 등나무 정자가 있고 그곳으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자귀나무가 한 그루가 서 있다. 나는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정자와 자귀나무의 조합이 어쩐지 낯설고 영 어색하게만 느껴지곤 한다. 정자 옆에 자귀나무를 심자고 했던 건 도대체 누구의 발상이었을까. 20년도 더 된 오래된 아파트인 이곳으로 내가 이사와 살게 된 건 기껏해야 5년 남짓이니 새내기와 다름없는 내가 그 이전 상황을 알 길은 없지만 그곳에 자귀나무가 심어진 전후 사정이 왠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아파트가 처음 지어질 때 조경을 담당했던 업자의 손에 우연히 어린 자귀나무 한 그루가 들어왔던 것인지, 건설회사의 담당 소장이 유난히 자귀나무를 좋아하여 그곳에 자귀나무를 심도록 강권했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이사오기 몇 해 전에 아파트 관리소장의 직권으로 자귀나무가 심어진 것인지...

 

우리 사회에도 이처럼 영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어색한 조합들이 수도 없이 많다. 언론인과 기업인, 검사와 기업인 등 일반인이 생각하기에는 두 그룹이 서로 반목하며 소 닭 보듯 데면데면 지내는 게 당연하다 싶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들은 상식을 깨고 오랜 세월 비교적 친밀하게 지내왔던 것인지 엊그제 언론에 보도된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내용을 보면 이게 도대체 21세기 대한민국의 모습이 맞는지 의심부터 들었다.

 

보도에 따르면 아들의 입사 청탁을 부탁했던 CBS 전 간부, 삼성의 광고액을 늘려달라고 부탁했던 문화일보의 간부, 자신을 사외이사로 뽑아달라고 청탁했던 서울경제의 전 간부, 삼성의 면세점 사업을 도와줄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알려달라는 매일경제의 한 기자, 이건희 회장의 성매수 사건을 두둔하는 듯한 연합뉴스 관계자, 삼성에 근무하는 사위의 인도 파견을 요청하는 임채진 전 검찰총장 등 문자 메시지 내용과 문자를 보낸 주체자들의 직업은 다양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장 사장과의 친밀함을 내보이는 한편 '사장님의 하해와 같은 배려와 은혜를 간절히 앙망하오며'와 같은 듣기에도 민망한 저자세의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말이다.

 

새로운 정부가 세워진 지 불과 3개월 남짓, 짧다면 짧은 이 기간 동안 우리는 우리 사회 곳곳의 부적절한 관계를 정말 많이도 보아왔다. 이와 같은 일들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그들은 누구누구와 친하다는 게 마치 자신의 위세를 드러내는 한 사례인 듯 어깨에 힘을 주며 말했을지도 모른다. '나 이런 사람이야'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니 최고권력자인 대통령과 친밀했던 최순실과 알고 지낸다는 건 얼마나 큰 위세였겠는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마치 권력과 위세의 상징인 양 치부되었던 구시대의 풍경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그저 부러운 눈으로만 보아왔던 게 아닌지 나부터 반성해본다. 정자와 자귀나무처럼 부조화는 부조화로 바라보는 게 옳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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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 원고지를 앞에 둔 당신에게
금정연 지음 / 어크로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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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로부터 '대체로 그렇다.'는 말을 듣게 될 때 나는 조금 슬프다. 그렇지 않은 어떤 것, 세상의 평범에서 슬쩍 비껴선 어느 별종, 다름에 이르기 위한 저만의 과정에 있는 어느 주체, 그의 자존심, 그의 별남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폄훼하거나 깎아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평범을 거부하는 어느 소수자의 몸짓이 때로는 딱해 보이기도 하지만 다수의 편에 서서 그들 자체를 숫제 지워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대체로 그렇다.'고 누군가 말해버린다면 그나마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그들의 노력마저 허사로 만드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생계형 서평가 금정연의 글은 왠지 짠하다. 2010년 초봄, 온라인 서점 MD로 일하며 쏟아지는 신간 속에서 책을 읽지도 못한 채 책과 싸우는 날들을 거듭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려고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저자. 8년차 프리랜서인 그의 세 번째 서평집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원고지를 앞에 둔 당신에게>는 글쓰기 책은 아니다. 전문 서평가로서 첫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기록인 동시에 생계독서가인 그의 눈에 띄었던 34개의 멋진 문장을 그의 삶에 견준 책이다.

 

"나는 서평가, 다른 이들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우스꽝스러운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내 서평은 한 권의 책이 아닌 하나의 문장에서 시작되었다. 혹은 둘. 셋. 어쩌면 다섯.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뭐라도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문장이거나, 리처드 웬트워스의 말처럼 마음에 들어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문장이거나, 이 책은 그렇게 쓴 글들을 모은 것이다." (p.10)

 

저자가 건져올린 하나의 문장은 베르나르 키리니의 단편 '첫 문장 못 쓰는 남자'나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 장 그르니에의 '섬', 마루야마 겐지의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한승태의 '인간의 조건', 찰스 부코스키의 '글쓰기에 대하여' 등 다양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저자가 발견한 멋진 문장에 감탄하기보다는 그 문장에 슬몃 끼어든 저자 자신의 이야기(때로는 푸념)에 더 눈길이 간다. 저자에 대해 그저 '찌질하기는...'이라고 생각하면서 때로는 혀를 끌끌 차기도 하고, 웬지 모를 우월감에 우쭐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잡문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결국 그것 때문에 인생의 낙오자가 되었지만 거기에는 어떤 낭만적인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고 썼던 폴 오스터의 에세이를 생각할 때 저자 또한 그런 게 아닌가 싶어 저자의 사정을 무작정 딱하게만 여길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문득, 나는 이집트를 탈출하던 히브리 노예들을 생각했다. 그들 앞에 하얗게 쏟아지던 '만나'를 생각했다. 창밖에는 올겨울의 첫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아직도 내겐 도망쳐야 할 거리가 남아 있는 모양이라고. 써야할 서평이, 글들이 좀 더 남은 모양이라고. 나는 비록 신자는 아니었지만 게을렀고, 내가 게으른 한 앞으로도 적지 않은 불편함을 참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하는 일이었다." (p.235)

 

글쓰기를 그만두는 작가를 이해할 수 없다며 그건 심장을 파내어 변기에 넣고 똥과 함께 내려버리는 것과 같다면서 자신은 마지막 숨이 넘어갈 때까지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던 일흔 살의 노장 찰스 부코스키의 말을 새삼 인용할 필요도 없이 금정연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된다. 사는 모습은 '대체로 그렇다.'의 편에 선 다수의 사람과 흔적이나 자취마저 쉽게 지워지는 소수의 몸짓으로 구성된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나는 기억한다, 초등학교 시절 이불 속에서 손전등을 켜놓고 읽던 책들을. 나는 기억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밤새 글을 쓰고 맞던 아침을. 나는 기억한다, 내가 처음으로 받은 원고료를. 그때 나는 평생 이렇게 먹고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부터 그 생각을 후회하기 시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기억한다, 이게 다 뭐 하는 짓인지 이해해보려 했던 것을." (p.220)

 

요 며칠, '살인적인 더위'라는 말이 한낱 문학적 수사에 그치는 말이 아님을 실감하였다. 설마 했던 일들이 어느 순간 거리를 좁혀 우리의 뒤통수를 후려치기 전까지 우리는 그 실체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제 차도 없이 외출을 했던 나는 '더위 때문에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쓴다는 것, 굶는 한이 있어도 글 쓰는 재미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우리가 체감했던 더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면 우리가 들었던 사실은 '설마'이거나 '대체로 그렇다'로 나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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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의 가까운 곳에 산이 있다는 건 크나큰 자산이다. 물론 그 산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체감하는 효용도 크게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우리집 근처에 그런 산이 있었어? 하면서 마치 처음 들어보는 소리라는 듯 화들짝 놀라는 사람도 있을 테고, 이따금 가기 싫다는 아이들을 대동하고 산을 찾은 바람에 산을 오르는 내내 뚱한 아이들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수다를 늘어놓는 사람도 있을 테고, 등산로 한켠에 놓인 벤치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온종일 지켜보는 사람도 있을 테고, 나처럼 아침 동이 트기도 전에 집을 나서서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는 숲을 온몸으로 만끽하는 사람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생각은 산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을 매우 제한적으로 해석하게 한다. 주기적으로 산을 찾음으로써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육체적 건강 또한 우리가 산으로부터 받는 혜택 중 하나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것 외에도 우리는 많은 것을 산에 의지하고 있다. 이를테면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고민이나 말 못할 비밀, 심지어 자신의 생각으로조차 꺼내서 확인하는 게 꺼려지는 여러 일들도 우리는 숲의 나무들에게, 반짝이는 눈을 데굴거리는 청설모에게, 먹이를 찾아 쉼 없이 비행하는 새들에게 흉금을 터놓고 다 이야기할 수 있다. 우리가 하는 고민은 대개 문제의 해결책을 본인이 알고 있다. 그러나 그 해결책과 마주하기 어려울 뿐이다. 산은 우리에게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않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해결책을 향해 피하지 않고 시선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제공한다.

 

입추를 하루 앞둔 오늘, 한반도로 향하던 태풍 노루는 마침내 일본으로 방향을 틀었고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휴일 오후, 허공에 생채기라도 내려는 듯 말매미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하루를 살아낸다는 게 마치 전쟁처럼 힘겹고 아득한 일일 수 있겠지만 입추가 지나고 아침 저녁으로 거짓말처럼 소슬바람이 불어오면 산에는 탐스럽게 여문 밤송이가 지난 여름을 그리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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