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 케이스북 셜록 시리즈
가이 애덤스 엮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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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셜록. 어쩌다 우리가 홈스를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는가. 셜로키언들의 압사당할 정도의 주석과 멋들어진 삽화로 중무장한 고급 하드커버가 셜록 홈스의 ‘끝판 왕’이라고 생각했을 적에는, 적어도 그때는 그것이 추론의 과학을 예술로 승화시킨 모델에게 합당한 대우라고 여겼음에 다름 아니다. 환상보다 더 환상 같은 환상을 만들어낸 위대한 자를 단순히 ‘셜록’이라고만은 부를 수 없었던 것일 터다. 더욱이 밀레니엄을 지나오면서 몇 차례나 거듭된 셜록 홈스 이야기들과 더 이상은 새로울 것이 없었던 책들 또한 쏟아지기를 반복했는데, 그 중에서도 대중의 시각적인 측면을 즐겁게 했던 것은 가이 리치 감독이 연출한 영화 정도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러구러 봐줄 만하다고는 생각했으나 그것은 (자질구레한 각론은 차치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그러니까 ‘현대’라는 딱딱한 단어와는 달리 낭만을 추구한 멜랑콜리함이 버무려졌다는 딱 그 정도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What the hell are you doing?” “Boooored!” 사실 나도 좀 지겨웠다. 그리고 홈스에 대한 관심이 잉걸불처럼 조금씩 사그라지고 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 내 예상보다는 조금 빨리 ―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셜록 홈스가 등장했다. 두어 번쯤은 ‘재해석’이라는 무미건조한 명사를 들이밀며 매력적인 천재 소시오패스(사실은 정신 이상자)를 과거로부터 불러오리라고 말이다. 물론 21세기의 드라마로 현현된 홈스는 과거의 망령(이라면 불손할까도 싶지만)에서는 멀리 떨어진 인물로 돌아왔다. 지금 우리가 가죽 소파에 팬티 바람으로 앉아, 오프닝 시그널이 주는 ‘영국식 우울록’에 버금갈만한 멜로디 하나조차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누구나 어림짐작할 수 있는 그런 홈스가 아닌 전혀 다른 형태로.





소시오패스는 자신의 매력을 남을 이용하는데 종종 사용하며 지루함을 쉽게 느낀다. 어디 그뿐인가? 위험해 보이는 일에 흥미를 느끼며(당연히 흥미가 사라지면 금방 포기한다) 때로는 잔인한 취미도 서슴지 않는데다가 말을 교묘하게 구사해서 타인을 유혹하거나 착취하기도 한다.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은 채 남을 잘 속인다는 건 덤이라고 치고. 여기에, 지구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 중 대부분에 속할 게 빤한 우리(존)가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그런 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냥 받아들이고, 그들의 칭찬을 전적으로 신뢰해서는 안 되며 소시오패스를 이겨보겠다고 아득바득 애를 쓰는 것은 소모적인 전투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그들을 현실세계로 이끌면 이끌수록 우리(존)는 외려 거기에 이용당할 뿐이니까. 당연히 그들의 능력 또한 부러워할 게 못 된다. 그러니까 존은 이렇듯 항상 셜록의 비위를 맞추며 뛰어다닐 수밖에 없다.





BBC판《셜록》은 위에서 언급한 재해석을 과거 시점으로 보지 않고, 너나없이 보도블록 위에서 마음껏 프리 허그를 하고 스마트폰의 촉감에서 허우적거리는 현대라는 달콤하고도 팍팍한 현실로 끌고 왔다. 누구나 인정하다시피 결과는 실로 대단한 연착륙이었다. 셜록 홈스의 괴팍한 인물상은 물론이거니와 ― 미국의『피플』지는 다음과 같은 말로《셜록》에 대한 감상을 대신했다. “Is Benedict Cumberbatch the best-ever Sherlock Holmes? I think so.” ― 모리아티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마이크로프트의 인물 설정 또한 훌륭하며, 더군다나 시리즈 전반에 걸친 미니멀한 오프닝 시퀀스에다가 런던 날씨 같은 우중충함까지 그 영상미를 돕고 있다. 정말이지 칭찬해줄 만한 일이다. 짝짝짝.





이『셜록: 케이스북(Sherlock: The Casebook)』은 지금까지 방영됐던《셜록 시즌 2》까지의 보고서이자 기록물이다. 다음 작품이 기획되었다는 소문이 돌자마자 인터넷 곳곳에서 촬영지 사진이 떠돌아다니는가하면 아예 드라마에 나왔던 셜록의 휴대 전화 문자 알림음까지도 제 전화기에 다운로드받아 설정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이니,《셜록》의 인기는 정말이지 대단하다고 밖에는 할 수 없을 듯하다. 책을 열면 첫 장부터《셜록》의 탄생이 시작된다. 마이크로프트로 분했던 마크 게이티스(방송작가이자 연기자)의 말 한마디는 그것을 오롯이 설명해 준다.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결국 화제에 오르는 건 늘 셜록 홈스였다.” 이러니《셜록》이 만들어지지 않을 수 있었겠나? 한 가지 약간 징그럽다고(?) 느꼈던 부분은 그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유일하게 떠오른 인물이었다고 언급한 점이다. 이거야말로 신을 믿지 않는 자라도 어쩔 도리가 없는 디렉터의 ‘촉’일 것이다. 다음 말은 더 가관이다. “일단 베네딕트를 셜록에 낙점하자 ‘연기를 잘하는 사람’을 뽑으려던 기준이 ‘누가 베테딕트와 잘 어울릴 것인가’로 바뀌었다.” 마틴 프리먼은 이렇게 조금은 허무맹랑한(?) 캐스팅의 희생자로 낙점되었다. 땅. 땅. 땅.





‘분홍색 연구’라는 파일럿으로 시작했지만 결국《셜록》의 한 시즌은 거의 영화 세 편으로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 제3화 ‘잔혹한 게임’에 나오는 사건들 중 하나만 잘 손봐도 너끈히 한 편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걸 셜록이 단 15분 만에 해결한다면 굉장히 훌륭할 것이라는 마크 게이티스의 기상천외한 착안에는 살짝 움찔했지만. 물론『셜록: 케이스북』에는 우리가 텔레비전만을 통해 접했던《셜록》의 비화나 아기자기한(실로 깨알 같은) 주석까지도 엿볼 수 있다. ‘분홍색 연구’에서 택시 기사 제프를 추격했던 셜록과 존의 동선이라든지, ‘벨그레이비어 스캔들’ 편에 등장하는 셜록의 ‘그 여자’ 아이린 애들러와의 문자 메시지 내용, 셜록과 존이 살고 있는 허드슨 부인의 집에 들여놓은 갖가지 물건들 ― 이를테면 임대보증금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듯 벽을 향해 난사한 총탄(스마일 엠블럼으로 가려놓긴 했지만), 황소인지 버팔로인지 알고 싶지도 않은 박제 머리에 걸친 헤드폰이라는 21세기의 물건, 셜록의 생각으로 허드슨 부인이 수프 육수를 만드는 데에 사용할 것이라 의심치 않는 ‘빌리’라는 이름의 해골, 부엌을 채운 각종 화학약품과 현미경 그리고 플라스크 따위, 죽은 후 일어나는 침의 응고 시간을 재겠다고 냉장고에 넣어놓은 잘린 사람의 머리…… 이러니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셜록이란 인물을 우리가 사랑하지 않으며 추앙하지 않고 어찌 배길 수 있으랴.





또 하나《셜록》에서 건져낼 수 있는 것이라면 모리아티의 재발견이라는 것을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책에는 모리아티 역으로 분한 앤드류 스콧의 인터뷰 역시 실려 있다. “로시니의 <도둑까치>를 들으며 춤을 추는 장면이 기억난다. 사실 이 장면은 대본에도 나와 있지 않다……사람들은 크림색 넥타이를 매는 악당이 어디 있느냐며 걱정들을 많이 했다…… 난 모리아티의 약점을 조금도 내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런. 그는 천성이 능글맞은 건지도 모를 일이다. 모리아티 역을 연기했던 다른 배우들에 대해 사전 조사를 하기는커녕 그저 대본만 주구장창 77번씩이나 읽었다니. 그러나 셜록의 진정한 숙적은 그의 형 마이크로프트가 아니라 짐 모리아티였으니 그의 캐릭터는 셜록만큼이나 퍽 중요한 셈이었다. 배트맨과 로빈…… 아니 배트맨과 조커처럼. 심지어 나는 ‘sherlock’과 ‘moriarty’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유튜브 페이지를 검색한 결과 누군가가 게시한 아래의 영상을 찾아낼 수 있었다. 언뜻 보면 셜록의 팬이 만들었으리라 생각되지만, 영상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리아티가 함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모리아티는 셜록이란 인물의 중요도에 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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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드라마의 짜릿한 흥미로움을 배가시키는『셜록: 케이스북』은 다양한 재미를 갖추고 있다. 모리아티의 휴대 전화 착신음이 왜 하필이면 비지스의「Staying Alive」로 채택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대체 누구에게 물어볼 것인가? 심지어 셜록이 애들러의 금고를 열 때 외쳤던 ‘바티칸 카메오스(vatican cameos)’가 무슨 뜻인지는 또 어떻게 알아낼 거고(나는 셜로키언은 아니라서 설명해 주지 않으면 모른다). ‘배스커빌의 사냥개들’의 원문 ‘The Hound of Baskervilles’를 ‘The Hounds of Baskerville’로 S자 하나만 옮긴 것은(이것 역시 눈치 채지 못했다)? 《셜록》이 가상의 병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하우스》와 묘하게 크로스 오버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 나는 셜록과 하우스 둘 다 약물에 중독된 것으로 묘사된다는 점, 그리고 셜록의 하숙집은 221번지 B호인데 하우스의 아파트는 221B호라는 것 따위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러나 책에 따르면 또 다른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의도적으로 홈스(holmes)와 발음이 비슷한 제목(home과 뜻이 같은 house)을 사용한데다가,《하우스》에 등장하는 제임스 윌슨과 존 왓슨의 이니셜이 동일하다는(J.W.) 점 등등. 아, 내가 무릎을 쳤던 놀라운 것 하나 더. 존은 코난 도일의 원작『주홍색 연구』에서는 어깨에 총상을 입었지만『네 개의 서명』에서는 상처가 다리로 옮겨가는가하면 나중에는 그저 ‘사지 중의 하나’에 총상을 입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미안하다, 이것도 몰랐네). 그래서《셜록》에서는 이 사항을 존이 팔과 다리에 모두 총상을 입은 것으로 보이게 묘사했고, 정신적인 요인 때문에 절름거리는 것으로 그렸다고 한다. 셜록이 “Afghanistan or Iraq?” 하고 묻는 것도 그래서였다고.





자. 까칠하고, 안하무인에, 인간미도 없고 사회성마저 제로다. 그러나 예리한 날붙이같이 움직이는 두뇌와 기네스북 선정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이 다루어진 인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셜록 홈스는 가뿐히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출연했던 배우들이 말하는 비하인드 스토리와 함께 코난 도일의 원작과 비교해 볼 수 있는 페이지, 그리고 셜록과 존의 대화를 포스트잇으로 풀어놓은 감각 있는 편집까지(한글과 매치되는 서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셜록 홈스를 좋아하고 드라마까지 섭렵했으며 다음 시즌 방영분을 기다리고는 있지만 아직『셜록: 케이스북』은 읽지 않은 자, 그대에게 화 있을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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