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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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랑은 완전했던가? 아니.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세상 그 어떤 사랑도 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세상 그 모든 사랑이 완전했다면, 우리는 평생 한 번의 사랑을 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완전한 그 사랑 하나만을 지키고 있을 테니까.

 

사랑을 더 하고 더 괴로워하겠는가, 아니면 사랑을 덜 하고 덜 괴로워하겠는가? 그게 단 하나의 진짜 질문이다, 라고 나는, 결국, 생각한다. (13페이지)

 

누군가의 사랑을,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듣게 되는 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노 작가가 기억을 소환해 써 내려간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하니, 인생의 회한이 차지하는 게 많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이미 오랜 시간이 흐른 후의 이야기이지 않은가. 그러니 이때쯤 되면 그때의 사랑뿐만 아니라, 세월이 흐르면서 쌓인 그의 인생도 같이 들려올 것이다. 그의 평생을 통틀어 그때의 사랑이 어떤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테지만, 처음 사랑을 겪었던 그 순간만큼의 크기나 무게는 아니리라. 18세의 소년이 이제는 죽음과 가까워진 나이가 되었을 텐데, 몇십 년 전에 겪은 사랑을 온전하게 기억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우리는 기억이란 것이 때로 희미해지고, 항상 온전하게 불려오지 않는다. 삭제되고 첨가되어 새로운 기억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기억을 불러오는 자만이 알 수 있는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가 변형되었다고 해도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당사자 양쪽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확인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폴은 부모님의 권유로 테니스클럽에 참가한다. 혼합 복식의 상대로 수전을 만난다. 18세의 폴과 48세의 수전은 그렇게 테니스 파트너가 되고, 운동 이상의 감정을 나누는 상대가 된다.

 

생각해보자, 서른 살의 나이 차이 커플의 모습을. 어머니라고 불려도 좋을 여자와 누가 봐도 아들이라고 생각할 관계의 연인이 상상되는가? 아니다. 내가 너무 과한 참견을 하는 것 같다. 누구나의 사랑은 지극히 사적이고 그들만이 아는 감정을 나누는 것일 텐데, 겉으로 보이는 연인이란 관계는 다 비슷비슷할지 모르지만, 개개인의 사랑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들의 모습을 다시 보며 읽게 된다. 폴과 수전이 어떻게 사랑을 해나가는지 지켜보고 싶어진다. 누가 봐도 위태로워 보이는, 도덕적으로 고운 시선을 보낼 수 없는 이들의 사랑을 끝까지 지켜보지 않고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 그 어떤 비난도 할 수 없다.

 

사랑에 빠진 이들의 모습 대부분과 비슷했다. 폴은 수전을 만나고 속절없이 빠져든다. 그가 하는 처음 사랑의 모든 것을 수전과 함께한다. 이제 좀 세상을 알아도 좋을 나이의 순수한 폴, 스스로 닳아버린 세대에 속한다고 믿는 수전.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두 사람의 만남은 처음부터 불안해 보였다. 이 사랑이 정말 사랑일까? 사랑이라면 이 사랑은 얼마나 지속할까? 생각해보면 나는 이 모든 상황에 불안과 의심부터 생겼다. 어쩌면 나는 폴이 아니라 지금 수전의 세상과 같은 느낌으로 사랑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내가 마흔여덟에 열여덟의 남자를 만날까?’라는 가정을 해보고, 혹여 만나더라도 ‘이 사랑에 모든 것을 걸을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할 테지. 결국, 나는 이 상황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을 것 같다. 이건 사랑이 아니며, 사랑으로 보일지 모를 이 선택을 나는 하지 않을 것이며, 타인이 이 사랑을 선택한다고 해도 모른 척하며 한 발 떨어져 있을 것이라고... 한 마디로, 나는 이 사랑의 주체도 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타인이 하는 이 사랑을 사랑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니 아닌 척하려고 해도 잘 안 된다. 이들의 사랑을 처음부터 불안하게 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어디를 봐도, 이들의 사랑은 세상의 눈으로 보는 ‘보편적인’ ‘평범한’ 사랑으로 보이지 않으니까. 그 보편적이고 평범한 사랑의 기준을 누가 어떻게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살아온 시간과 세상은 그런 시선을 고정해버렸으니까.

 

삶의 슬픔. 그것은 그가 가끔 생각에 잠기게 되는 또 다른 난제였다. 어느 것이 올바른-또는 더 올바른-공식이었을까. ‘인생은 아름답지만 슬프다’, 아니면 ‘인생은 슬프지만 아름답다’ 둘 가운데 하나는 분명히 진실이지만, 어느 것이라고는 결코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368페이지)

 

하나의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끝나고 있는지, 있는 그대로, 감정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닿으면 폴이 이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나오는데, 그 부분을 읽으면서는 마음이 쓰라렸다. 그건, 비단 폴만의 경험이, 폴의 나이에 사랑해서가 아닐 것이다. 우리가 하는 사랑의 과정이 그대로 닮은 채로 서술되고 있음을 확인한다. 수전과 멀리 떠날 정도로 폴의 사랑은 열정적이었지만, 현실이 주는 불안과 결핍은 두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할 것이고, 마음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감정이 결국은 우리의 온몸을 갉아먹을 것이다. 술을 싫어하는 수전이 술에 위로받으려고 했던 게, 수전의 머릿속에 잠식한 몹쓸 것들이, 결국은 수전에게 소홀한 일상을 보내는 폴을 나무랄 수 없는 이해를 품는 내가 이상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저 그렇게,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 있는, 어떤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판단해야 할 것 같다. 상대의 이야기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게 이 사랑의 이해를 방해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폴의 입장에서 듣는 그의 사랑은 특별했던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일흔 즈음의 그가 굳이 기억해내고 싶은 느낌을 알 것도 같다. ‘그때, 나는 이런 사랑을 했었지.’ 수전 이후로 그가 다른 사랑을 안 한 건 아닐 것이다. 때로는 현실에 맞는 사랑을, 어쩌면 수전과 같은 상대로 미친듯한 사랑을 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처음 수전과 나누었던 사랑만큼 특별한 것은 없다고 믿어오지 않았을까? 느지막한 나이까지 그가 혼자인 삶을 이어온 것을 보면, 굳이 다른 사랑을 결혼으로까지 만들고 싶지는 않았을 것 같다. 뭐,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이지만 그가 기억하는 수전과의 사랑만으로도 그는 평생 담아두며 살아갈 수 있는 어떤 추억을 충분히 만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 소설은 장마다 시점이 다른데, 첫 번째 장에서는 폴의 1인칭 시점으로 그가 행복했던 순간을 그리며 그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그의 열정적인 사랑과 그의 진실한 모습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두 번째 장에서는 사랑이 시들고 그가 느낀 행복의 높이가 점점 낮아지면 찾아오는 고통을 2인칭 시점으로 들려준다. 가장 읽기 괴로웠던 부분이기도 하다. 마치 남의 일처럼 지켜보는 시선에 서늘함이 느껴진다. 세 번째 장에서는 모든 것이 고통이다. 누가 봐도 그들의 사랑이 끝난 것 같지만 마무리되지 않은 분위기가 더 씁쓸했다. 심지어 3인칭(‘그들’이라고까지 했다)으로 표현하면서 ‘이제 완벽한 이별만 남았군!’ 싶은, 마치 할 말을 하지 않은 것 같은 상태. 사랑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기록할 수 있을까? 어쩌면, 오랜 세월이 흘렀기에 그가 이 사랑을 다르게 기억하는 건 아닐까? 그 어떤 질문을 더 한다고 해도, 우리는 완벽한 답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흘러 들려주는 누군가의 기억이 맞고 틀림을 확인할 수 없으니까. 다만, 그가 들려준 그만의 사랑이 맞지 않는다고 틀렸다고 생각되더라도 미워하거나 오해하지는 말자고 말하고 싶다, 아직은. 이제까지 우리가 들은 건 ‘폴’의 사랑이지, ‘폴과 수전’의 사랑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아직 수전의 사랑까지 듣지 못했음으로, 폴의 일방적인(?) 이야기만 들었으니까, 그저 폴의 사랑은 이렇게 흘러갔구나 하는 것으로만 받아들이고 싶다. 그 사랑을 판단하기 위해서가 아닌, 그저 한 사람의 사랑을 들었을 뿐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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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김신회 지음 / 놀(다산북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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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나, 자기를 안심시켜주는 대답을 듣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누구나 그런 마음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확신에 가까운 믿음이 생겼다. 나의 불안과 세상을 향해 가지는 무서움에 안심할 수 있도록, 괜찮다는 말을 대신 보내는 눈빛이나 단어, 끄덕임 같은 제스처를 항상 확인하고 싶어 한다. 마음에 깊게 자리한 불안함이 나갈 수 있도록 말이다.

 

가끔 오후의 나른함을 참지 못해 심하게 졸릴 때가 있는데, 잠깐 졸거나 낮잠을 자도 괜찮을 순간인데도, 낮잠을 자는 걸 피한다. 이상하게 낮잠을 자고 나면 기분이 좋지 않다. 이 시간이 잘 시간은 아닌데 왜 그랬지? 싶은 후회. 보통은 잠깐의 낮잠 후에 개운함이 찾아와야 하는 거 아닌가? 어느 날, 친구의 집에 놀러 갔다가 늦은 점심을 먹고 둘이 잠깐 잠이 들었는데, 친구는 개운하다고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났는데, 나는 눈을 뜨고 나서 괜한 불안함을 느꼈다. 친구가 하는 말이, 그냥 여건이 되면 낮잠도 잘 수 있는 거지, 뭘 그런 걸 언짢아하느냐고... 그랬다. 살면서 오후의 졸음을 그대로 소화하며 낮잠을 잘 수도 있는 건데, 누가 방해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닌데, 낮잠을 자서는 안 될 것 같은 긴장감이 들 때가 많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세상에서 감히 낮잠이라니!

 

요즘 나는 계속 화가 난 상태였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이유를 생각하고 찾아낼 기력이 없을 뿐 이유 없는 분노가 어디 있을까. 막연히 불안하고 짜증이 나면서 대체 왜 이러나 싶은 날들이 이어졌다. '전체적으로 기분이 안 좋은 상태'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시기. 그럴 때는 꼭 그렇게 방어적이 된다. 하지만 정작 나는 내가 그러고 있다는 걸 모른다. (138페이지)

 

다들 비슷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나를 독촉하면서, 걷지 말고 뛰라고.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도착해야 숨이라도 편히 쉴 수 있는 세상에서 어떻게 걸어갈 수가 있단 말인가?! 휴식은 우리 자신에게 많은 것이 주어졌을 때, 여유롭게 뭐가 많이 채워졌을 때, 내일의 걱정이 없을 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마다의 이유로 계획에 없던 휴식은 찾아오고, 경제적으로 여유를 갖지 못한 상황에서도 더 악조건을 맞이하게 된다. 모든 것이 완벽해진 순간이 아니라, 내가 예상하지 않은 순간에 찾아온 휴식이 마음을 편하게 할 리 없다. 저자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왔다. 확실하지 않은 게 아무것도 없고, 일을 쉰다고 계획하지도 않았던 그때, 본의 아니게 쉬어야만 했던 시간에 겪은, 마음의 기록이다.

 

저자는 휴식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봤던 그 말, 놀아본 사람이 놀 줄 안다고... 쉬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갑자기 주어진 시간에 멘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일하고, 바쁘게 움직이고, 빠듯하게 시간을 쪼개며 살아온 사람에게 1년여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동안 익숙했던 몸의 바쁨과 조급증은 어떻게 해치우고 1년을 보냈을까?

 

아무것도 안 하는 얼마간의 휴식을 보내게 되면서, 휴식의 진정한 의미를 찾게 됐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어쩌면 이런 감정은 우리 스스로 겪고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말 그대로, 나를 내버려 두는 것, 나를 좀 관대하게 바라보는 것. 내 안의 감정 속속들이 바라보는 건 타인이 아니라 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들의 시선 때문에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가둬두기만 했다는 것을 이제야 비로소 보게 된 거다. 달리지 않고 걷는다고 뭐라고 할까 봐, 때로는 그냥 뒹구는 게 욕먹을 짓일까 봐, 게으르다는 핀잔을 들을까 봐. 타인에게 들려오는 많은 말과 시선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을 자책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공감의 일탈이다. 이런 휴식을 일탈이라고 표현해야 하는 게 불편하지만, 마땅히 어울리는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 단지, 이게 일탈이라면, 이런 일탈로 우리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자꾸만 삶에 대해 미련이 는다. 딱히 가진 것도 없으면서 잃을 게 많은 사람처럼 벌벌 떨게 된다. 그렇다고 모르는 게 아니다. 나중에 더 긴 시간이 지나면, 그때는 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웅크리고만 있었는지를 후회하게 될 거라는 것을. 하지만 그 생각을 하면서도 움직이는 게 두렵기만 한 걸 어쩜 좋을까. 이럴 때마다 내가 철들었다는 걸 느끼고, 그런 내가 별로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오늘도 똑같은 자리에서, 멋진 사람들을 흘끗거리며 부러워하기만 한다. (262~263페이지)

 

평소에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키고 반성해보자는 말만 하는 건 아니다. 안쓰러운 나를 보듬어주자는 의미가 더 강하다. 우리 이제껏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어떻게 십 년 이십 년을 보내면서 살아왔는지, 무엇을 위해서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을 용서하지 못하면서' 일상을 지켜냈는지 묻고 싶게 한다. 그렇게 저자는 1년여의 시간을, 일을 생략한 평소와 같이 보냈다. 사람들을 만나고, 평소 자기 말과 행동도 여전했고, 때로는 무료한 하루를 보내기도 했을 테지. 그때마다 하나씩 눈에 보이는 것들을, 자기가 느끼는 감정을 적어나갔다. 왜 그랬을까, 혹시 그때 잘못 말한 건 아닌가, 그동안 해왔던 모든 것이 이렇게 다르게 보이기도 하는 순간들의 기록. 하지만 그것도 틀린 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나를 마주 본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문득문득, 저자의 말처럼 내 마음을 들여다보곤 했다. 특히 나의 바람이나 생각과는 달랐던 말과 행동을 떠올렸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러지 않을까 하는 공감을 구하게 되면서 읽게 되는데, 우리가 살면서 자주 하게 되는 자기 단속. 특히 타인을 대하면서 나를 단속하는 순간이 많았다. 이런 말을 하지 말고, 이런 표정으로 속을 드러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나를 탓하고 단속하는 게 맞는 거라는 순간들을 떠올렸다. 왜 자꾸 나만 다그쳤던 것일까, 왜 나에게만 그렇게 너그럽지 못했던 것일까, 그 순간 가장 상처받고 아픈 사람은 나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쉰다는 것은 나 자신을 돌본다는 것과 같다. 나의 몸과 마음, 기분이나 생각을 스스로 돌보면서, 내 맘과 같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를 입력해야만 한다. 그동안 우리 자신을 괴롭히면서 장착하려고 했던, 조바심이나 기대치는 잠시 넣어두고, 세상의 유일한 내 편인 나 자신을 누구보다 먼저 생각하기로 한다.

 

때로는, 시체처럼 잠들었다가 일어나는 휴일의 오후가, 집으로 들어가는 저녁에 손에 쥔 매운 떡볶이 한 봉지가, 개운하게 씻고 난 후 맥주 한 캔이 우리에게 내일을 버티게 한다. 내일도 모레도, 오늘과 같은 소소함이 우리를 살게 하는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런 소박함이 나를 관대하게 만들어주는 건 아닐까? 한밤중의 야식에 살찔 걱정을 하지만 먹는 순간 행복하고, 늘어지게 자고 오후에 일어난 순간 휴일이 다 가버린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생각해보니 오늘 아무것도 안 했는데 하루가 이렇게 끝났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별일 아니라는... 내일 또다시 달리면서 안심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불안하지 않게 느껴도 괜찮다고.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도, 횡단보도를 사이에 둔 건너편의 누군가도 이러고 사는구나,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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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숙제 때문에 밀려있는 책이 많은데도...

여전히 신간에 눈 돌리고 있는 나 자신이 참... ㅠㅠ

습관처럼 산다.

안 읽어도 산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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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책을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또 헌법 책을 고르고 있자니 복잡하다.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좀 난감하다. 어렵다. 어떤 헌법 책을 사야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까?

그래도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마음 먹으니, 어떤 책이든 일단 골라야 하긴 할 것 같다.

서너권을 장바구니에 넣고 조금 더 살펴보고 있다.

내가 나로 살기 위해, 이 나라에서 인간다움을 챙기며 살기 위해 헌법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게 다 김제동 때문이다.

평소 그가 하는 말을 호감으로 듣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그는 나에게 딱 이정도다.

좋지도 싫지도 않은, 저런 방송인이 있구나 싶은, 그는 저렇게 말을 하는구나 하는 정도,

나와 생각이 같구나 다르구나 하는 차이를 느끼게 하는, 그냥 딱 그 정도의 존재감이었다.

굳이 관심 두지 않았던 대상이라고 하는 게 가장 솔직한 표현일 듯하다.

그런 그가 헌법 독후감을 썼다고 해서 내 관심 안으로 들어오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읽다가 보니 저절로 느끼게 된다. 그의 이번 책을 읽지 않았다면 참 많이 후회했을 것 같다고...

 

 

 

 

 

 

 

 

 

그는 왜 헌법을 읽기 시작했을까?

헌법을 읽으면서, 그는 어딘가에 기댈 곳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이런 기분이지 않았을까. 막연하게 생각해보게 되는데. 아주 어렸을 적에,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엄마가 나타나서 보듬어주고 다 해결해줄 것 같은, 맹목적인 든든함 같은 것을 떠올렸다. 물론 헌법이 엄마와 완전히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우리는 또 법으로 규정한 것을 따르며,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할 테니까. 사적인 감정 뚝뚝 묻어나는 엄마와의 관계와 법이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

 

어쩌면, 그는 뭔가 자기를 지켜줄 것을 찾아다니면서 헌법에 이른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개그맨인 그가 개그 무대보다는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곳에서 자주 보이곤 했다. 어느 시위 현장, SNS, 어느 강의 무대에서 그는 움직였다. 그가 잘 짜인 개그보다는 삶의 현장에서 보고 듣고 같이 힘을 냈던 시간이 그에게 만들어준 무엇 때문이지 않았을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이런 일에 사람들은 무너지고, 이런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보니 다다른 곳. 우리의 존재 이유와 우리가 속한 국가가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헌법에 저절로 가 닿았다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렇게 그가 닿은 헌법에, 그만의 방식으로 재해석된 풀이에, 독자가 공감하지 않을 이유가 없더라.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헌법 37조 1항)

 

헌법 37조 1항을 보고 마치 연애편지의 한 구절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른여섯 가지 사랑하는 이유를 쫙 적어놓고 마지막에 추신을 붙인 거죠.

“내가 여기 안 적어놨다고 해서 널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야.”

법 조항이 그렇게 감동적일 수 있는지 그때 처음 알았어요.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 5페이지)

 

헌법을 연애편지라고 소개하는 것부터 ‘법’에 관한 두려움을 없애준다. 법이 우리를 지켜준다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았다. 법의 판단 아래 우리가 보호받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우리의 기본권을 응원해주는 듯한 헌법 이야기를, 그것도 쉬운 말로 한번 풀이된 상태로 듣게 되니 그의 말처럼 감동적이다. 그가 진행하는 토크쇼 보는 느낌이다. 저절로 TV 앞으로 고개가 빨려 들어가는 시선 그대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동안 너무 몰랐구나 하는 생각만 가득하다. 그래서 더 집중해서 읽게 된다. 우리의 권리를 찾아서, 우리가 억울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 법이 우리를 통제하고 우리의 행동에 제한을 두기 위해 테두리를 쳐 놓은 그물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가 들려주는 헌법은 그 딱딱함과 두려움을 없애줬다. 우리가, 국민이 국가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적어놓은 ‘국가 사용 설명서’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했다.

 

헌법은 사회 갈등을 조화롭게 만들기 위해 모두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만들어낸 가장 간결한 문장이잖아요. 그걸 통해서 우리가 치유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헌법이 법조문을 넘어서서 시나 음악처럼 우리들을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 149페이지)

 

딱 그거였다. 살면서 우리가 안심할 수 있는 도구, 혹은 문서 같은... 내 것이라는 등기권리증 같은 문서를 보는 기분이 들더라. 아무리 은행 지분이 많더라도 내 것임을 확인해주는, 직인이 쾅쾅 찍힌 문서를 코앞에 두고 몰랐던 것 같다. (한글도 아는데 이걸 몰랐어!!) 법이 나를 보호해주는, 그 기본 중의 기본을 언급한 게 헌법이었다. 나의 존엄을 그대로 명시해준 문서였다. 그의 말처럼, 헌법을 읽다 보면 그동안 우리가 체결한 계약서를 잘못 이해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국민이 ‘갑’인 계약서인 거였는데, 몰라서 그 계약서의 기능을 활용하지도 못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우리 생활 곳곳에 묻어있는, 헌법에 근거한 일상의 많은 부분을 이제야 보게 됐다. 더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이 아니었다면 헌법에 관한 관심조차 두기 어려웠을 것 같다. 2017년 3월의 판결 때문에 조금은 들어본 기억이 있지만, 정치적인 문제로만 생각했다. 우리 같은 일반 시민과 헌법을 연결해서 생각하지 못했다. 누구에게나 어떤 계기가 필요한 경우, 이렇게 힘을 내서 공부하게 되는 것 같다. 그가 헌법에 관심을 두고 읽게 된 게 그냥은 아니었을 테니까. 그가 거리에서 마이크 잡고 외치는 일이 없었다면, 바쁜 농사일 접어두고 거리로 나오는 어르신들을 못 봤다면, 고사리손 호호 불어가면서 그 추운 겨울 광장으로 나오는 아이들이 없었다면, 그에게 헌법이 이렇게 빨리 친해질 기회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주권자이며(1조), 인간다운 삶을 살고(34조) 쾌적한 생활을 할 권리(35조)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특수 계급을 만들어(11조 2항 위반) 나라를 혼란하게 만든다면, 그를 끌어내릴 권리(65조)가 있습니다.

국가가 국민이 행복을 추구하지 못하게 했다면 헌법 10조 위반이고, 저는 그것이 내란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 106~107페이지)

 

특히 이 책의 두 번째 챕터에 마음이 많이 머문다. 소시민으로 사는 우리와 가까이 닿아있는 사례들이 그의 입을 통해 무게를 가진다. 날씨 수당 100원을 더 지급해달라는 맥도날드 배달 청년의 피켓 시위(10조)는, 최소한의 존엄을 지켜달라는 말이라고 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영장을 가지고 와서 나를 끌고 가라’고 말하는 것도 헌법에 명시되어 있으며(12조 1항, 2항,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12조 4항)로 나의 말을 대신해줄 사람을 둘 권리가 있다. 사생활의 자유를 존중받을 권리가 엄연히 있으며(16조, 17조, 18조), 그가 가장 싫어한다는 36조 1항과 2항은 결혼과 가족생활에 관한 내용이다. ^^ 선거에 관해 언급한 24조 25조를 말하면서 그는 선거 연령이 낮아져야 하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출마 연령 제한도 폐지되어야 한다고 했다.

 

정치 자체는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라고 말하잖아요. 더러운 이들에게 주면 더러운 것이 되고, 깨끗한 이들에게 주면 깨끗한 것이 되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국민의 권리로 반드시 좋은 투표를 해야 하고, 정책도 꼼꼼히 살펴보면서 정치인들을 국민의 하인으로 잘 부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 187페이지)

 

헌법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글. 그는 누구나 헌법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우리가 헌법의 ‘진짜 주인’이 된다고 했다. 지금껏 모르고 살았던 우리의 상속 문서라고도 했다. 그랬다. 오랫동안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 존재했던 헌법을 우리가 모르고 살았던 거다. 그의 헌법 독후감으로 헌법의 내용을 듣고, 우리의 존엄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동안 법을 믿을 수 없다, 법이 잘못된 거다, 라는 불신이 가득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법이 잘못된 게 아니라, 그 법을 가지고 더럽게 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거였다. 그러니까. 잘못했다고 손가락 끝을 향해야 하는 대상이 잘못 지정된 거였다. 헌법을 제대로 알고 그 의미를 우리의 일상에 적용한다면, 우리가 불행해지는 일은 적어질 것 같다. 우리에게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도 있다. 그 행복을 위해 헌법이 우리 뒤에 든든히 자리하고 있다는 걸 기억한다면, 우리의 존엄은 더 가치 있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공부였다. 헌법을 공부하고, 그 의미를 제대로 알려고 노력하는 일.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뭔가를 확인하고 질문하고 상대방을 귀찮게 했던 경우는 싸우기 위해서이거나 내게 돌아올 혜택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이런 거. 아버지가 갑자기 심장 시술을 받고 병원에 한 달 동안 있게 되면서 만만치 않은 병원비가 들어갔을 때, 국민건강보험의 여러 가지 제도를 찾아본 적이 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재난적 의료비’였다. 입원으로 병원비 200만 원이 넘어갔을 경우, 그 절반을 국가가 되돌려주는 거다. 물론 자격 조건이 되어야 하는 거지만, 그런 제도를 몰라서 비싼 의료비에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기억해두어야 할 제도인 것 같다. 특히 공공기관 이용하면서 당한 불편함이 너무 커서, 웬만해서는 온라인 검색이나 해당 기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내가 필요한 내용을 확인하거나 적어서 방문하곤 한다. 담당자가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몰라서 나의 민원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걸 너무 많이 겪어서 화가 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제껏 한 번도 연체한 적 없이 꼬박꼬박 세금 내면서 사는데, 왜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으며 일하는 사람이 기본도 안된 자세로, 오히려 민원인의 요청을 귀찮아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런 내용은 없다니까?’ 하는 말투와 표정으로 민원인을 대하는 걸 보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이런 일을 한번 두 번 겪다 보니, 나 나름의 자세가 생긴 것 같다. 저자가 헌법을 읽기 시작한 이유도 비슷할 거로 생각한다. ‘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 사는 게 옳지 않음을 의심하면서, 우리를 지켜줄 수단을 스스로 찾아다니면서가 아니었을까?

 

지난겨울의 끝 무렵에 보일러가 고장이 났다. 서비스센터에 접수할까 하다가 보일러 사용설명서를 먼저 읽었다. 고장 증상을 살펴보면서 원인을 확인하고, 서비스를 접수해야 하는 건지 내 손으로 설명서를 따라 하면서 고칠 수 있는 건지 고민하게 됐다. 결국은 서비스 접수가 필요한 고장이라는 걸 알았다. 그때 알게 된 사실들 때문에 다음번에도 같은 증상이 보이면 처음처럼 당황하거나 놀라지는 않을 것 같다. ‘아, 그때 이 증상은 이런 원인 때문이었지. 전원을 끄고, 이렇게 저렇게 하면서, 서비스 접수하고 기다리면 되겠군!’ 하는 일련의 과정과 자세를 배웠다고 해야 할까. 저자가 확인한 헌법도 마찬가지다. 헌법은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법’이라는 단어에 두려움부터 생기고, 어려울 거라는 선입견에 다가가기를 주저하고는 했던 지난 시간에 미안해질 만큼, 그가 전하는 헌법 이야기는 쉽고 재미있다. 내가 국가를 사용하는 방법, 내가 나로 살아가면서 존엄을 지키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헌법이라는... 헌법 조항 하나하나 기억하고 살펴보면서 그 의미를 내 안에 새기는 일이, 우리 일상의 헌법 사용설명서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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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산사 순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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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봉정사, 부석사, 통도사. 한국의 산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소식은, 산사를 잘 모르는 나도 들뜨게 했다. 우리나라의 산사만이 가지는 특징, 혹은 느낌이 전해지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아서다. 지난봄에는 금산사에 갔었다. 노래와 흥으로 무장한 관광객들을 뒤로하고 막상 걸어 올라간 금산사에서 본 것은, 제법 큰 법당에 모여든 사람들이 간절하게 바라면서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종교의 의미를 떠나서, 절은 그 자체로 사람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고요하게 하며, 마음속 간절함을 표현하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아마도 여러 나라에 그 나라 고유의 그런 장소가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산사를 따라올 곳이 있을까 싶다. (내가 본 곳이 우리나라만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 오래전부터 산사를 예찬해왔다는 유홍준 작가의 마음이, 이번 산사 순례 답사기로 다시 확인하는 것만 같다.

 

이미 만나본 독자도 있을 테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는 너무도 유명한 베스트셀러이고, 마니아 독자는 1권부터 주제별로 따로 출간된 것까지 다 만나봤을지도 모른다. 이미 선보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뽑아낸, 한국의 산사 20여 곳을 소개한 책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기념으로 출간된 책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산사만을 소개했다는 점에서 이 분야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는 요점정리 해주는 느낌이기도 하다. 산사만을 돌아보겠다는 계획을 세워도 좋을 것처럼 각 산사의 특징과 매력을 이야기하듯 펼쳐 놨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를 포함해서, 등재되지는 않았지만 놓치면 아쉬울 산사를 빼곡히 담아냈다. 특히 북한의 산사를 소개한 부분은 의외였다. 통일되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을 곳이라고 생각했던 장소까지 소개해주다니!

 

 

우리나라 산사 건축은 진입로부터 시작된다. 산사의 진입로는 그 자체가 건축적·조경적 의미를 지난 산사의 얼굴이다. 약 반 시간 걸리는 이 5릿길 진입로는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속세와 성역을 가르는 분할 공간이자 완충 지역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산사에는 반드시 저마다의 특징을 가진 진입로가 있다. (73페이지, 순천 선암사)

 

저자는 산사의 진입로부터는 걸어서 간다고 했다. 요즘에는 길을 많이 정리해놔서, 절의 입구까지 차를 타고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나부터도 다리가 아프니 차로 갈 수 있는 곳까지 가자고 말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저자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그동안 산사를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진입로 따위는 무시하고 지나가지 않았나 싶다. 그러니까, '그곳'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쌩~ 지나가 버리는 일이 참 가벼워 보이지 않았을까 싶은? 어딘가로 들어갈 때, 대문이나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는 (혹은 똑똑 노크를 하는) 일을 생략한 것만 같다. 그곳을 방문하는 예의를 갖추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아주 많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저자는 '여기서부터는 구석구석 잘 보고 들어가야 여기를 제대로 보는 거다'라는 의미를 담고 말했다. 이곳과 저곳의 구분 짓는 선을 넘어서 들어가니, 무엇이 다르게 느껴지는지 확실히 알 것이라는 예고, 혹은 충고 같은 말. 이 문장을 들으면서 다짐했다. 다음에 다시 산사에 가게 된다면, 절대 진입로를 걸어서 들어가리라.

 

 

수덕사는 결코 볼거리가 많은 절은 아니다. 문화재를 찾는다면 대웅전 하나로 끝이다. 그 밖에 오층석탑이니 뭐니 있지만 대수로운 것이 못 된다. 그러나 덕숭산의 사계절과 그 자연 속에 살았던 인간의 이야기와 전설이 있기에 우리의 가슴속에 젖어오는 감성의 환기가 있고 이성의 일깨움이 있다. (186~187페이지, 예산 수덕사와 서산 개심사)

 

사람들은 국보나 보물이라는 명칭 때문에 문화유산의 가치와 멋을 그런 데에서만 찾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봉암사에서 진실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절집의 자리앉음새이다. 경내 어디에서 보아도 우뚝 솟은 희양산 준봉들이 봉암사를 호위하듯 감싸고 있다. 깊은 산속에 이처럼 넓은 분지가 있다는 것이 차라리 이상할 정도다. (247페이지, 문경 봉암사)

 

뭔가 유명한 볼거리가 없어도, 우리가 산사를 찾는 이유 중의 하나를 콕 집어서 말해주는 것 같아 많이 공감했다. 이름 있는 문화재나 특징 있는 다른 것을 찾아보는 즐거움도 있겠지만, 산사 특유의 고즈넉함과 침잠하는 분위기 때문에 찾게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산에서 뿜어대는 사계절의 바람과 변화하는 색들,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줄기 하나에도 우리는 종종 특별함을 느낀다. 아니, 오히려 그 고요함과 자연이 그대로 있는 곳을 찾아가는 목적일 때도 있다. 이건 뭐라고 분명하게 설명하기는 좀 어려운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아니면 그 마음 조금은 다독여주는 시간을 만들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인위적으로 만든 배치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그렇게 만들어진 모양 그대로 그 자리에 자리한 구조들이 특이하기도 하다. 아니면 저자가 말한 봉암사의 위치처럼, 주봉들이 호위하듯 감싸고 있는 배치라니 참 놀랍다. 오랜 시간, 그 중심에 있는 봉암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산사를 유지해왔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북한에도 절이 있고 스님이 있다는 데서 조금 놀랐다. 당연히 있을 수도 있는 일인데, 나는 '북한'이란 나라에 많은 부분이 폐쇄되어 있다고 생각했기에,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절과 스님이란 단어를 떠올리지 못했다. 북한에도 우리나라와 같이 오랜 시간 같이 해온 역사가 있었을 텐데, 그 안에서 자리한 절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아마도 김씨 일가의 우상화를 먼저 떠올리다 보니 다른 종교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저자가 1997년 9월에 찾아간 보현사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특별하게 들린다. 보현사가 북한에서 가장 큰 절이라고 한다. 금강산 4대 사찰 중의 한 곳인 표훈사가 금강산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사찰이라는 것도 놀라움과 아쉬움이 동시에 밀려온다. 표훈사는 금강산의 핵심처고, 금강산의 복부에 해당하는 곳이라고.

 

 

책으로 수없이 보아왔고, 해마다 한국미술사 시간이면 슬라이드로 비추며 보아온 이 보현사 8각13층석탑은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준수하게 잘생겼다. 생각만큼이나 크고 세부의 묘사에도 게으름이 없고 마감질에 불성실은커녕 추녀마다 풍경, 북한말로 바람방울을 무려 104개나 달아매는 치밀성을 보여주고 있다. (372페이지, 묘향산 보현사)

 

작가가 전국을 돌면서 본 많은 산사 중에서도 특히 애정이 묻어나는 곳을 이렇게 들려준다. 여기에서 언급하지 않았다고 해서 볼 게 없는 산사는 없을 터였다. 전국 어느 산을 가더라도 만나게 되는 게 산사다. 우리나라만의 전통인 산사의 아름다움을 이렇게나마 전달하면, 이 내용을 접한 독자는 알아서 더 많은 산사와 절의 자태, 산사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으리라 생각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우리나라의 산사가 등재된 게, 세계에 우리나라 산사의 아름다움을 더 많이 알리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우리가 산을 찾을 때 절의 모습, 지붕의 이음선 하나, 기둥 하나, 배치, 그 땅에 뿌리내린 나무 등 산사를 이루는 많은 것을 보는 눈이 달라졌기를 바라게 된다. (나부터!) 종교를 떠나서 그냥 그곳에 자리한,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이 되어온 산사를 느끼는 것이면 충분하다. 저자가 이 책으로 전하고 싶은 말도 같은 의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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