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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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은 온다. 행복을 위해 선택한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할 순간 말이다. 그 자리에서 멈추거나 다른 길을 걷기로 하거나 하는 선택으로, 행복이 아닌 순간을 살아가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만 하는 순간. 정세랑의 단편집 『옥상에서 만나요』 중 「이혼 세일」의 주인공 이재에게도 그런 순간이 온 것 같다.

 

"그냥, 결혼이 부동산으로 유지되는 거란 생각을 했어. 도무지 감당이 안 되는 금액의 집을 사고, 같이 갚으면서 유지되었을 뿐인 게 아닐까. 그래서 한동안 동산만 가지고 살아보고 싶어서." (「이혼 세일」중에서)

 

이재의 이혼 소식을 들었다. 친구들은 이재의 갑작스러운 이혼이 당황스러우면서도, 이재가 주최한 이혼 세일에 무엇을 사서 가지고 올지 기대가 크다. 학창시절부터 이재는 특이하게 매력적인 아이였다. 처음에는 잘 몰랐어도 한 학기만 지나면 이재는 학교의 남학생 절반이 좋아하는 대상이 되었다. 이재의 외모는 평범했는데, 무엇이 이재를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걸까?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별것 아닌 옷도 이재가 입으면 예뻤다. 그녀가 가진 찻잔 하나마저도 기품 있어 보였다. 친구들은 그런 이재의 인생이 부러웠다. 그리고 궁금했다. 그동안 이재의 주위로 사람이 끓고 이재가 가진 것들이 우아해 보이고 이재가 매력적으로 보였던 건 단지 그녀의 운이었을까? 여전히 그 답을 찾지 못한 채로 친구들은 이재와 교류했고, 이재와 가까이 지냈으며, 이재의 손끝에서 태어나는 아름답고 맛있는 것들로 행복했다. 그런 이재가 이혼을 하다니. 놀랄 수밖에. 더 놀라운 것은 이재가 이혼 세일을 한다는 거다. 이혼을 결정한 이재가 결혼생활 동안 사용하던 많은 물건을 판매한다고 했다. 그 소식에 친구들은 이재의 집에 모인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한 친구는 적금까지 깨고서라도 이재의 물건들을 살 거라고 했다. 여기까지 들으니 나도 이재가 궁금해진다. 이재는 누구인가, 이재는 어떤 사람인가...

 

처음 이 제목을 듣고 무슨 내용일지 궁금했는데, 이혼 세일이 펼쳐질 거라는 전개에 놀라면서도 흥미로웠다.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순간을 정리하는데, 보통은 마음으로만 정리하면 끝나는 거 아닐까 싶었는데, 눈앞에 보이는 물건까지 정리한다는 설정이 기가 막혔다. 나쁜 의미로 하는 말이 아니다. 이런 깔끔한 정리가 이재의 다음 행보를 어떻게 그려낼지 기대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 여러 인생의 순간이 있다면, 그 인생의 하나를 정리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이런 방식의 정리가 참 괜찮은 방법이구나 싶은 앎의 순간이다. 그 과정에서 여러 명의 친구가 이재의 집에 모여 이혼 세일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기까지의 심리가 담백하고 솔직하게 그려진 소설이다. 누구는 이재를 질투하고, 누구는 이재의 매력을 부러워했다. 그러면서도 이재를 사랑했다. 그러니까, 이재는 누군가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그 존재를 각인시킨 거다. 이재의 손맛을 따라갈 수 없어서 계속 노력하는 친구만 봐도 그렇다. 그 친구는 앞으로 이재가 없는 상황을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수시로 이재에게 부탁했던 밑반찬은 어디서 공수해오나? 이재의 손맛은 감히 흉내 낼 수도 없는데 그 입맛에 길든 입은 어떻게 달래줄 수 있을까?

 

그녀들이 부러워했던 이재의 결혼이 끝났을 때, 모두가 궁금했던 그 이혼 사유를 듣는다. 운이 좋았지만... 이제는 이혼의 이유를 말하면서 그녀가 운이 좋았다고 한다. 그게 운이 좋은 것이었나? 이재의 할 말은 더 남아있지 않았을까? 그녀가 미처 다하지 못한 말들이 더 듣고 싶은 이유가 있다. 남들은 모르는 그녀의 인생이 궁금했다. 타인의 시선으로 보면 그녀에게는 온통 부러운 것들뿐인데, 그녀의 이혼으로 이제 더는 부러움의 대상이 아닌 게 될 것인지도 궁금했다. 이재를 바라보는 친구들의 시선 속에 감춰진 진심들은 더 남아있을 것만 같다. '어디서나 위험한' 여자의 인생에서 조금 비켜 간 이재의 미래를 위해 친구들이 고사를 지내준 것이 이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결말처럼 들려서 아프기도 했다. 그리고 다짐하듯 이어지는, 이재가 놓치지 않고 달려와서 전해주었던 장아찌 누름돌. 삶의 맛을 전하기라도 하겠다는 듯 간절하게 전해지던 장아찌 누름돌이, 이제는 그 힘을 발휘하고자 하는 이에게 전해졌다. 장아찌의 맛을 결정짓는 것은 이재의 손맛도 아니고, 무의 종류도 아니고, 간장 때문도 아닌, 누름돌 때문이었다는 걸. 이럴 수가! 정말 찾아야 할 것을 든제야 찾은 느낌이다. 친구들이 부러워하던 이재의 매력이나 생활, 인생은 결코 운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무언가를 만들 때, 그 맛을 가장 중요하게 결정짓는 게 무엇인지 바로 알고 살아가게 될 때, 그때 가장 완벽한 맛을 낸다는 것을. 그러니 우리 인생의 안전도, 삶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도 운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었음을...

 

이혼 세일은 무사히 끝났다. 너무 저렴한 가격으로 이재는 자신의 생활공간에 있던 많은 물건을 정리했다. 이재는 남김없이 떠나고 싶어서 좋았고, 친구들은 부러워하던 이재의 모습을 하나 가져온 것 같아서 좋았다. 이재의 손이 닿았던 많은 물건으로 그녀들은 또 다른 흔적으로 이재를 기억할 것이다. 언젠가 이재가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마치 그렇게 길었던 여행의 공백은 없었던 것처럼 마주하겠지. 인생의 큰 구멍 하나를 메우고 밟으면서 단단하게 다지는, 짧지만 시원한 느낌에 삶의 두려움 하나 지우고 건너가는 느낌을 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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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싸움에서 밀려난 자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차지한 자가 왕이 되는 거로 생각하면 단순한데, 뭐든 그 순서와 절차가 자연스럽지 못함을 발견할 때는 복잡해진다. 그럴 때마다 의심하고 불합리한 뭔가를 찾아내고 싶어질 테지만,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에서 왕의 독살을 의심해본 적도 있을 테지만, 아무도 그 독살에 대해 입을 열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사의 기록으로만 만났던 조선왕의 순서별 이름만 외우려고 노력했지 그 기간과 왕권 교체 순간의 내밀한 이야기는 두루뭉술하게 흘려들었다. 저자가 말하는 조선왕의 독살은 그래서 더 궁금하고 흥미롭다.

 

우리 역사에서 이어져 온 각 나라의 왕조가 보통 200~300년을 이어온 것에 비하면 조선이 50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정말 긴 세월이라고 한다. 어떻게 이 긴 세월 왕조를 이어올 수 있었을까? 혹시 조선의 오랜 역사를 이어올 수 있게 했던 것은 왕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조선의 왕권은 절대 권력이라고 하는 중국 왕권과 이름뿐이었던 일본 왕권의 중간쯤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조선의 신하는 왕을 위해 존재하기보다는 당파를 위해 존재하는 당원으로서의 신하였다고 하는 게 맞을 듯하다. 자신이 소속된 당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런 행동이 올바른 나라를 이끌어가고자 애쓰는 왕의 신하 된 도리를 다하는 것 다음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기 때문에 조선의 신하는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크게는 당파를 위해 작게는 개인의 안위와 권력을 위해 태도를 보였던 것 같다. 그러니 자기 당파의 이익과 존재를 위협하는 왕이 등장했을 때, 그 왕의 재위 기간을 단축하게 할 방법을 연구했겠지. 혹은 허수아비 왕을 세울 방법을 찾았거나. 그런 순간에 필요했던 게, 아무도 모르게 왕을 끌어내리는 독살이라는 확실한 방법을 이용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조선의 왕은 4명 중 한 명이 독살당했다고 한다. 적은 숫자가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피를 봐야 했다는 건지도 모른다. 태어나면서 왕족이 되고, 언젠가 왕이 되는 이가 있을 테다. 하지만 왕이 되지 못한 왕족을 생각하면 그 권력을 모른 척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그래서 왕의 자리는 안정적이지 못하다. 항상 목숨을 위협받는 자리였을 거로 추측한다. 보이지 않는 적(?)이 너무 많아서 밤에 잠이나 제대로 잤을까 싶다. 그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위험도 불사할 수 있다는 걸, 조선왕 독살사건으로 알게 된다. 철저한 보안, 왕의 잠자리를 옆에서 지키고 대변까지 확인할 정도의 호위를 하는 곳이 궁궐이다. 그런 곳에서 독살할 수 있었다고 하는 걸 보면 완전한 곳은 아니었으리라. 한두 번도 아니고, 조선의 왕 여러 명이 그렇게 죽어갔다는 건 궁궐은 왕을 위한 곳이 아니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곳은 권력을 쥔 자와 권력을 쥐려는 자의 싸움터일 뿐이다.

 

처음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한 번 읽고, 개정판이 출간되었을 때 읽고, 이번 특별판이 세 번째다. 한 권으로 출간되었던 책이 개정판을 거치면서 두 권으로 늘어난 이유는 독살 의혹을 하게 된 조선왕의 숫자가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인조반정 이후의 조선 후기 역사에 근거하여 시작된 글은 문종의 독살설을 의심하면서 두 권 분량으로 늘어났다. 그러니 조선왕의 독살설은 조선 후기에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거다. 그렇게 이 책에 기록된, 독살된 조선왕은 문종, 단종, 예종, 연산군, 인종, 선조, 소현세자, 효중, 현종, 경종, 정조, 효명세자, 고종까지, 오랜 세월 조선의 역사를 이어오면서 독살된 왕도 많았다는 비례적인 숫자다. 자연사라고 믿어왔던 문종이 수양대군에 의해 처리되었다는 의심, 단종과 예종의 의문사까지 이어진다. 연산군이 폭군이라는 말에 어머니 폐비 윤 씨의 복수라고만 생각했는데, 오히려 다른 내용이 펼쳐진다. 연산군은 자기가 처벌한 사대부들의 재산을 빼앗고 독식했기 때문에 신하들이 반정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이 바꿔놓은 기록의 분위기가 연산군 이미지를 만드는데 한몫한 건 아니었을까. 인조반정으로 소현세자가 사라지고, 소현세자의 동생인 효종 역시 의문사로 사라졌다. 북벌을 꿈꾸었다던 효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의혹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어의가 침을 잘못 놓아 죽었다니...

 

개인적으로 죽음이 아쉬웠던 왕이 정조다. 개혁 군주라고 불리던 그가 조금만 더 조선을 이끌었다면, 저자의 말처럼 정조가 아마 10년만 더 살았더라면 조선의 운명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정조가 꿈꾸었던 개혁이 좀 더 활발하게 이어져 오늘의 대한민국까지 이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그때 정조가 계속 조선을 이끌며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했다고 해도 어떤 결과를 얻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항상 놓칠 수 없는 부분은 '만약'이라는 가정일 것이기에 말이다. 만약에 그때 정조가 조금 더 조선의 운명을 바꿔놓았더라면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운명도 다른 모습의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하는 가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미 지나온 역사에 만약은 없다. 지나간 역사가 더 아쉽고 안타까운 부분이 존재하는 이유다. '만약'이 없기에,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지나왔기에, 나라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정권이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반성 없는 역사에는 미래가 없으며, 미래가 없는 역사는 어디에도 쓸 데가 없다고. 의심의 부분을 드러내놓고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지나간 조선의 역사 속에서 조선왕 독살설이 들추어내는 게 무엇인지, 그것들을 보고 확인해야 할 것을 강조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남겨진 자의 역사가 아니라 그 순간을 보면서 찾아내야 할 것들을 들려주며 역사에 필요한 것은 반성이라고 말한다. 반성과 함께하는 역사만이 이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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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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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여러 가지 중에서도 가장 호감을 끄는 것은 먹는 것과 관계된 것이 아닐까 싶다. 먹교수 이영자 님의 말씀에 따르자면 음식은 세 번 먹는 것이라고 했다. 눈으로 먹고, 냄새로 먹고, 입으로 먹고. 그러니 그 맛을 음미하는 즐거움도 더 커지지 않을까?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충분하다며, 굳이 배가 고프지 않으면 음식을 입에 대지 않던 나도 요즘에는 세끼를 다 챙겨 먹는다. 밖에 있을 때도 먹고 싶은 것 찾아서 잘 챙겨 먹는다. 그렇다고 해서 하루 세끼를 채우는 일이 나를 행복하게'만'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 결과로 체중 증가라는 불행을 얻었으니... 다만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저절로 지어지는 미소는 숨길 수가 없다는 건 확실하다. 나도 모르게 젓가락이 먼저 나가고, 음식을 입에 넣으면서 씹고, 목으로 넘어갈 때의 그 기쁨. 맛있게 먹는 행복이 뭔지 이제야 조금 알겠다. 마음의 허함을 먹을 것으로 채우는 일도 마찬가지고, 너무 좋은 일이 있을 때도 먹을 것을 앞에 두고 사람들 불러 모아 함께 나누고, 속이 상하는 일이 생길 때도 뜨겁고 매운 음식으로 슬픔을 식히려고 하는 걸 보면, 음식이 우리 인생의 희로애락을 같이하는 것은 분명하다.

 

대책 없는 인생을 사는 듯한 모리 마리에게도 음식은 행복과 가까이 닿아 있다. 부유한 환경에 공주처럼 자랐던 그녀가, 두 번의 이혼과 가난해진 살림에 어떻게 적응하고 살아갈까 싶었다. 태생부터 공주처럼 자라온 그녀의 삶이 이렇게 바뀔 줄 생각도 못 했을 텐데, 집안에 방치된 꽃들로 저절로 드라이플라워를 만드는 그녀가 직접 만들어가는 살림이 어떨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걱정은 그녀의 몇 문장으로 바로 사라진다. 씻은 듯이 없어진다. 그녀의 상황을 보면서 걱정을 하는 우리가 어리석게 보일 정도로, 그녀는 태평하게 화려한 찻잔에 홍차를 달여 마시는 일상을 보낸다. 타인의 시선 의식하지 않고 그녀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180도로 뒤바뀐 환경이 그녀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럴 수가 있나? 하아. 그럴 수가 있더라. 모리 마리에게만 허용된 것 같은, 그녀만 가능할 것 같은 일상을 하나씩 풀어내는 이 이야기에 푹 빠져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그녀의 일상 속으로 같이 들어가고 싶어질 정도로 긍정 마인드가 뿜어난다. 그녀의 일상 안에 도대체 무엇이 있기에?

 

모리 마리의 아버지 모리 오가이는 나쓰메 소세키와 쌍벽을 이루는 대문호라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모리 마리라는 작가도, 모리 마리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도 처음 알았다. 이런 대단한 이력을 가진 아버지를 둔 모리 마리의 성장이 어땠을지 기대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앞에서 그녀를 두고 '공주'라고 칭했는데,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면 그런 수식어가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세상에 둘도 없는 예쁜 딸로 자라온 게 그대로 보일 만큼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모든 사랑을 넘치도록 주었다. 하지만 그런 사랑이 그녀 인생에 계속 넘쳐흐르지는 못했다. 두 번의 이혼과 가난한 살림이 그녀 앞에 놓인 순간이 온 거다. 집안일은커녕, 부엌에 들어가기는커녕, 볕이 좋은 정원에서 우아하게 찻잔을 기울일 것만 같은 그녀의 인생이 뒤집어진 거다. 극과 극의 환경. 이때부터 그녀의 삶을 눈여겨보게 된다.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나갈까 싶은 궁금증에 계속 확인하고 싶어진다. 그녀가 그 순간을 어떻게 벗어나게 될지를.

 

그 답을 어느 정도 예상하게 되는 건 이 책의 제목 때문이기도 하고, 그녀가 이 책에서 들려주는 일상의 기록 때문이기도 하다. 절대 쉽지 않은 인생을, 아름답고 우아하게 채웠던 그녀의 일상을 듣다 보면 어느 순간 틈을 비집고 들어온 작은 우울마저 털어내게 된다. 모리 마리는 탐식과 미식에 관심이 많은 작가다. 그녀의 취향대로 듣다 보면 세상 모든 음식을 간단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말하는 음식은 원래의 레시피 그대로 한다면 더없이 우아해지고 보기부터 맛있는 음식이 될 것이다.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것은 그녀만의 방식대로 새롭게 태어난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지나칠 정도로 단순한 방법으로 본격적인 요리의 느낌을 내는 것'(61페이지)이 그녀의 요리법이니까. 이것만 봐도 그녀가 어떤 성격인지 보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확인했던, 그녀가 오늘을 사는 모습이 그대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단순하게, 그러면서도 본연의 맛은 사라지지 않게, 그 음식과 함께했던 추억도 놓치지 않을 정도라면 충분하다는 듯이. 음식이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지만, 그 이상의 힘을 가진 것이라는 잊지 않게 강조하는 것만 같다.

 

책의 뒤표지에 강조하듯이 써진 말이 있다. "괜찮아, 먹고 싶은 건 매일 있으니까!" 이 신조대로 살아가는 그녀라는 걸 확인할 수 있는 건, 소박하게 보이는 그녀의 식탁 모습에도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느낌 때문이다. 조금 서툰 인생도 맛있는 음식 앞에서 순식간에 근사해질 수 있다는 게 뭔지 알 것 같아서다. 좋고 싶은 것의 구분이 명확한 그녀다. 맛없는 음식을 받아들고 화를 내기도 하고, 그녀만의 치유 방식으로 음식의 메뉴를 선택하기도 한다. 그녀가 들려주는, 오래전부터 그녀의 인생을 돌이키며 들려준 유년 시절의 추억부터 현재의 생활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이 음식과 함께 들려오는 순간이 생생하다. 그녀 스스로 미식가라고 하지만, 그 미식의 진짜 의미를 아는 사람이어서 좋다. '음식에 관해 많이 알고 음식을 대하는 사람보다 좋아하는 음식과 먹을 때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훨씬 행복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진정한 행복이 뭔지 아는 그녀 때문에, 그녀가 들려주는 이 이야기들에 푹 빠져서 읽었다. 그래, 누구에게나 지나간 시간 속의 이야기가 있고, 음식을 대하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을 여기서도 확인하게 되는구나, 싶은 공감에 괜히 배가 부르기까지 하다.

 

요즘 많이 듣는 말이 '소확행'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주는 즐거움을 느끼면서 사는 것. 그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말하곤 한다. 그 말을 아주 부정하지는 않겠다. 순간순간 나에게 주어지는 작은 행복에 그 순간이 행복하다는 건 맞는 말이니까. 하지만 인생 오늘 하루만 사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그 소확행이 먹는 약이라면 그 약효는 오늘 하루 어느 순간의 잠깐이라는 생각에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때가 많았다. 지금만 괜찮으면 어쩌란 말인가 싶어서 말이다. 아마 내가 모리 마리였다면, 인생의 화려했던 시절이 자꾸 떠올라 오늘의 초라한 현실을 즐겁게 누리지는 못할 것 같다. 고통스럽고 매 순간 좌절할 것 같다. 그런데 그녀는 형편없는 솜씨지만 요리를 하거나, 맛있는 것을 먹으며 즐거워하거나, 홍차와 장미를 앞에 두고 사치(?)를 즐긴다. 내일에 또다시 찾아올 불행한 일들이 아니라, 오늘 자기를 확실한 행복으로 만들어주는 것으로 인생을 채우는 것을 택했다. 가만히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그녀 말처럼 먹고 싶은 건 매일 있으니까 괜찮은 거지 싶다. 자기 취향대로 먹고 싶을 것을 먹는 일이 가장 솔직한 행복을 만드는 일이라는 걸,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것이 인생을 근사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듯하다. 소소하게 만드는 행복이 모이면, 인생 전체의 시간을 아우르는 행복도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는 깨달음 같다.

 

 

요리의 맛은 봄이나 여름 등 계절의 변화, 그날그날의 날씨 상태, 선선하거나 덥거나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또 먹는 사람의 기분에도 변화가 있으므로 숟가락으로 몇 숟가락, 몇 개, 몇 그램이라는 식으로 융통성 없이 만들 수 없는 법이다. (69페이지)

 

행복의 주체가 '나'가 되는 시간을 사는 것이 가장 최고의 행복이고, 최고의 인생이라는 걸 그녀만의 방식으로 전하는 게 재밌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 분명하게 찾아가는 시간을 열어준 것만 같다. 때로는 아이처럼 철이 없는 말과 행동을 보이는 것 같은 그녀지만, 조금은 뻔뻔해지는 인생도 행복해지는 방법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행복해지는 게 꼭 한 가지 길만 있는 건 아니잖아?! 행복에도 융통성이 있을 테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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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피아노 -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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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동안 너무 뜨거웠다. 저녁 무렵 어스름이 들고 바람이 분다. 갑자기 대책 없이 서글퍼진다. 이 여름이 밉다. 그래, 미워한다는 것, 그 또한 사랑이고 생이리라…… (107페이지)

 

저녁 내내 무엇을 했는지 기억에 없는데, 늦은 밤 동네를 산책한 것 말고는 한 게 없는데 어영부영 자정이 거의 다 되었다. 다른 소음 하나 없이 주변이 조용하다. 쌓아둔 책 옆으로 틀어놓은 라디오만 자기 목소리를 낸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골목의 고요함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봤다. 서늘하다. 춥고 입김이 나온다. 겨울인가? 오후에 잠깐 걸었던 시간 내 등에 흐르던 땀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몇 시간 차이로 다른 계절을 살고 있다. 매일 한낮의 햇살에 아직은 가을이구나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가을을 느끼는 그 시간은 길지 않다. 오후 서너 시를 넘어가면서 겨울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만 같다. 하루에 겪는 두 개의 계절은 서로 가까운 거리를 두고 있는 듯하지만, 닮지 않았다. 조금은 따뜻하고, 조금은 춥고. 삶과 죽음도 비슷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내 몫의 삶을 묵묵히 이어가면서 세월이 흐르고, 그 삶의 끝에 마주하게 되는 것 또한 내 몫의 죽음일 테지. 하나로 연결되어 계속 흐르고 있는데, 같은 선을 걸어가는 듯한데, 끝과 끝에 삶과 죽음을 놓고 가는 길. 누구나 비슷하다. 누구나 같은 길을 밟는다. 하지만 막상 눈앞에 다가오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김진영. 읽다가 만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 역자로 기억한다. 그를 수식하는 더 많은 이름이 있을 테고 철학자로 그가 이뤄낸 많은 의미와 말들이 있을 테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기억할 수밖에 없는 건 아마도 그가 역자로 이름 올린 『애도 일기』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의 죽음을 기억하는 기록과 저자 자신이 자기 투병의 시간을 기록하는 것은 너무 닮았으면서도 달랐다. 당연하다. 타인의 죽음을 보는 것과 자기의 병든 육체를 바라보는 게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저자가 하는 말이 크게 다르게 다가오지는 않더라. 아마도 그가 기록한 이 책의 문장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기록을 읽기라고 불러도 좋다면, 그가 적은 이 일기는 솔직해서 더 가슴에 들어오는 말들이다.

 

지금 내게 주어진 건 남겨진 시간들이다. 그 시간도 흐른다. 사는 건 늘 새로운 삶을 꿈꾸는 것이었다. 남겨진 시간, 흐르는 시간, 새로운 시간, 그 한가운데 지금 나는 또 그렇게 살아 있다. (28페이지)

 

베란다에서 세상의 풍경을 바라본다. 또 간절한 마음이 된다. 한 번만 더 기회가 주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46페이지)

 

현재 상황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남겨진 시간을 더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가끔은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지기를 바라게 된다. 그게 인간이니까. 그런 마음이 솔직하게 들려와서 더 매력적이다. 괜찮은 척하지 않고, 작게 읊조리더라도 기어코 내뱉고 마는 말이다. 괜찮지 않다. 흐르는 시간 속에 새로운 시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만이 지금 할 수 있는 전부 같지만, 조금은 더 남겨진 시간의 양을 크게 재보고 싶다.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풍경을 계속 볼 수 있기를, 행복했던 시간을 더 많이 느낄 수 있기를, 아직 다 하지 못한 많은 것을 계속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데 그런 마음만 갖고 있기에는 오늘과 내일의 새로운 시간이 너무 값없이 흘러갈 것만 같다. 슬픔을 극복하려고 하면 끝이 없다. 슬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일이 더 의미 있기에, 그의 문학과 철학과 미학의 문장들로 채워진 이 일기가 그의 모든 삶의 기록으로 남는다. 그의 말처럼 '모든 일상의 삶들이 셔터를 내린 것처럼 중단된' 경험을 하는 이 순간, 그가 전에는 만나지 못했던 사랑과 감사를 배우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미처 보지 못했던 다른 사람과 세상에 대해 눈을 뜰 수 있는 시간이었을 거라고, 나이와 경험이 주는 연륜을 여기서 또 한 번 배우는 듯하다. 그가 살아온 시간과 그가 경험한 많은 순간이 채워놓은 기록이 되었다.

 

어제를 돌아보면 후회가 있고 내일을 바라보면 불확실하다. 그 사이에 지금 여기의 시간이 있다. 몹시 아픈 곳도 없고 깊이 맺힌 근심도 없다. 짧지만 온전히 나에게 주어진 시간 - 이 사이의 시간들은 내가 존재하는 한 사라지는 일 없이 또한 존재할 것이다. 끝없이 도래하고 머물고 지나가고 또 다가올 것이다. 이것이 생의 진실이고 아름다움이다. (139페이지)

 

지금이 가장 좋은 때다. 지금이 가장 안전한 때다. 지금은 '아직 그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 오지 않은 것은 힘이 없다. 지금 여기가 아닌 것은 힘이 없다. 지금과 그때 사이에는 무한한 지금들이 있다. 그것들이 무엇을 가져오고 만들지 지금은 모른다. (252페이지)

 

'아침의 피아노. 베란다에서 먼 곳을 바라보며 피아노 소리를 듣는다.' 그가 사랑했던 아침의 한 장면으로 시작한 문장은, 마지막 장의 '내 마음은 편안하다'와 길게 연결되어 있다. 아픈 몸을 가진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포근하고 편안하게 시작한 문장이었다. 그의 기록이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궁금해하면서 첫 페이지를 펼쳤는데, 어느 순간 그 무엇을 찾는다는 게 무의미해졌다. 때로는 짧게, 때로는 길게. 어느 페이지는 단 한 줄, 어느 페이지는 몇 개의 문장으로 이어진 글에서 그의 사색을 듣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했다. 하루하루 삶이 소멸해가는 순간에 나온 말들은 진심이고, 솔직하고, 깊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철학자로 살아온 그가 온 생을 채워온 문장들이지 않은가. 짧은 문장의 아포리즘에 우리는 어느새 그의 사유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앞에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생각하면 현재와 내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서, 아직은 생의 시간을 살고 있는데도 죽음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알 것도 같다. 죽음에 닿아있다는데 오늘의 지금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하지만 저자는 그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이며 다른 오늘과 내일을 살았던 이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은 삶에 강하게 닿아 있다고 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다다르면서 무기력해지고 많은 것을 내려놓을 것 같지만, 저자는 오히려 바쁘게 보낸 것 같다. 강의하고, 글을 만지고, 자기 안의 사유를 더 깊이 끌어내는 시간. 자기를 위한 글이 아니라, 그가 떠나도 남겨진 이들을 위한 글로 만들기 위해 애를 썼던 시간이었을 테니. 사랑과 감사에 대해 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말하게 하기 위해, 그는 마지막까지 썼다. 그렇게, 이 책으로 그는 소멸하지 않고 남아 있다.

 

흐른다는 건 덧없이 사라진다는 것, 그러나 흐르는 것만이 살아 있다. 흘러가는 '동안'의 시간들. 그것이 생의 총량이다. 그 흐름을 따라서 마음 놓고 떠내려가는 일 - 그것이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자유였던가. (51페이지)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에, 또 한 번 그의 철학적 사유를 듣는 시간이었다. 세상이 아름답다고, 인생은 깊다고, 살아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었으니, 바람아 불어오라고... 평소 그가 썼던 칼럼을 다시 언급하기도 하고, 다른 책의 문장을 들추기도 하면서, 그가 걸어온 시간의 자세를 그대로 비춘다. 그 안에서 그가 생각하는 생에 관한 긍정적인 태도를 놓치지 않고 전달한다. 어쩌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를 이 책이, 저자의 말처럼 존재의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위안으로 남을 수 있기를 읽으면서 나도 같이 바라게 된다. 지금 내가 보내는 이 밤이 나에게 무엇으로 남을지 살짝 기대된다. 어제까지도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갔던 하루의 밤인데, 오늘 흐르는 이 시간은 다르게 남을 것 같다는 저자의 긍정 바이러스가 전해지는 듯하다. 짧은 문장에서 전해지는 큰 위로가 오늘 밤의 이 고요함을 가득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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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8-11-03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을 앞두었을 때 무언가 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갑자기 죽을 수도 있잖아요 어느 정도 살면 그때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아파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때 마음이 편안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려면 지금을 살아야겠지요


희선

구단씨 2018-11-05 23:00   좋아요 0 | URL
저도요. 그런 상황을 앞에 두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되네요.
언젠가 다가올 나의 죽음이 갑자기는 아니었으면 싶다는 바람...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예약으로 구매하면 표지가 다르군...

가을이니까
추우니까
차분하게 귀에 들어오는 문장이 좋으니까...

그러니까 한번은 펼쳐봐도 좋지 않을까 싶지만
이상하게
첫 책처럼 끌리지는 않은...

그래도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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