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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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은 카스테라 이전의 소설, 그러니까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소설가가 몸 안에 피어오르는 독과 비관을 버무려 지었을 법한 우울한 소설이야. 페이소스를 섞되 결코 상큼한 유머를 잃지 않던 박민규가 어쩐지 제대로 비뚤어진 느낌이랄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소설이 출간된 2006년으로 돌아가보자.


2006년에는 김정일 조선노동당 총비서가 중화인민공화국을 비공식 방문했고 필리핀 마닐라의 한 경기장에서 압사 사고가 발생해 88명이 숨지고 280명이 다쳤으며 일본 시마네 현에서 다케시마의 날을 강행했고 아베 신조가 집권에 성공했고 롯데월드 아틀란티스 탑승객 1명이 숨졌으며 신촌에서 선거 운동을 하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피습됐고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교수형에 처해졌지.


와, 특별할 거 하나 없는 해였잖아!


몰이해와 전쟁, 정치공작, 안전불감증에 의한 사고, 그러니까 인간이 인간을 못 믿고, 미워하고, 죽이는 일 따위는 인류가 항상 해왔던 거잖아. 이제와서 특별히 우울해 할 일이 있느냔 말이지. 우울할 이유가 있다면 한가지 뿐이야.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


핑퐁! 


그래, 그래서 <핑퐁>이 나온 거라고, 나는 생각해.


<핑퐁>은, 말하자면, 카뮈적 부조리라는 빵틀에 사르트르식 실존주의로 기름칠을 하고 천 번, 만 번, 백만 번 지겹도록 치댄 맑시즘 반죽을 천 겹, 만 겹, 백만 겹으로 쌓아 270도로 예열한 포스트모던에 넣고 구운 겁나 맛있는 페스트리야, 라고 하는 건 8족 외계인이 7번째 발의 3번째 발가락으로 콧구멍을 후비는 것 같은 소리고, 그냥 재밌음. 한 번 읽어보삼.


박민규의 소설을 읽는 건 마치 격렬한 브레인스토밍 과정을 편집 없이 보는 듯한 느낌이야. 이리저리 복잡하게 뻗은 마인드맵 같지. 이를테면,


제목이 <핑퐁>이라 탁구 얘기가 나올 줄 알았지? 천만에, 탁구 얘기야.


미안.


물론 좀 다르지. 탁구 시합의 승패로 인류 문명의 종말 여부를 가리자는 얘기니까. 이쪽 편은 하루종일 뚜두려 맞는 게 일인 왕따 중학생 못과 모아이, 상대는?


당연히 쥐와 새지.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 법이니까.


법대로 하자면 불가능한 얘기야. 물론. 하지만 세끄라탱이야. 두 명의 주인공에게 탁구를 가르친 게. 세계 대회 참가를 위해 한국에 들렀다 그대로 눌러 앉은 외국인. 알고보니 탁구계의 간섭자더라고. 이 우주의 신이었던 거지.


우리도 컴퓨터가 느려졌다 싶으면 멋대로 하드를 밀고 다시 윈도우를 깔잖아. 좀 있다 싶은 사람들은 윈도우7 Ultimate K, 나같은 고인류(古人類)는 10년도 더 된 XP 씨디를 꺼내들겠지. 어쨌든 그럴 때마다 물어본 적 있냐는 거야. 이를테면 파워포인트나 워드 혹은 크롬 브라우저나 인터넷익스플로어, HWP 따위에게, 


포맷을 해도 좋겠냐고.


따지고 보면 냉혈한처럼 보이는 세끄라탱에게도 나름의 연민이 있었던 거지. 원칙도 확실하고. 그러니 너무 원망하지는 말자. 이기면 되잖아. 그 탁구 경기에서.


문제는 못과 모아이 연합팀이 경기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그들이 인류의 존속을 원할꺼냐는 거지. 매일매일 뚜두려 맞는, 60억 인류로부터 '배제'된 그 외로운 아이들이. 아이들은 뭘 원망할까? 자기들을 배제한 인류를? 왕따 같은 거 눈 하나 깜짝 않고 만들어 내는 인류의 사악한 본성을? 아니면 태어난 것 자체에 대해.


내 생각은 이래.


인간은 존재하는 한 사악해 질 수 밖에 없어. 그러니 태어나질 말아야지. Happy Birthday to you? 무슨 근거로 인간의 탄생을 축하하는지 모르겠어. 우리 중에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사람 있어? 탄생은 우발적 사고야. 삶은 그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 불과하고.


이를테면, 


아, 네, 난자씨, 저는 정자라고 합니다. 제가 지금 거기 들어가면 사람 하나가 나오는데요, 어떻게, 괜찮겠어요? 라고 매너를 차리는 사이 후다닥 비집고 들어간 올챙이 한 마리가 난자를 강간해 나와 당신이 만들어진 거야. 창조의 순간은 이런 비매너와 폭행으로 얼룩져 있지. 그래서 생일을 축하한다는 건 폭력에 순응하고 협잡을 옹호하겠다는 의미일 수 밖에 없어.


한 가지 다행인 건 아주 가아끔, 매너를 차린 정자가 난자와 만나 아름다운 사랑을 나눌 때가 있다는 거야. 그럴 때 우린 박민규 같은 소설가를 얻지. 인간의 행위를 쑥쓰러워하고, 참회하는, 인간답지 않은 인간을.


참회하는 인간에게 세계를 포맷할 권한이 주어졌을 때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면 <핑퐁>을 읽어봐. 그러고 나면 당신도 당신의 탁구대에서 어떤 승부를 벌여야 할지 감이 올테니까. 준비가 됐으면 다함께 외쳐보자. 모쪼록 경쾌하고 상쾌한 게임이 되기를 바라며,


핑!

퐁!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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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가 반값 할인을 하길래 몇 번을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애거서 크리스티다. 


그런데 고민을 한다고?


첫째는 장르 자체에 대한 불신이었다. 작위적 구성, 무미한 문장, 명탐정의 예정된 승리. 특히 조커가 배트맨을 죽여주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에게 명탐정의 예정된 승리는 아베 신조의 장기 집권만큼이나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승자는 언제나 승리하고 패자는 언제나 패배한다? 부익부 빈익빈!


둘째는 고전에(이 책을 고전이라 말할 수 있다면) 대한 불신이었다. 고전, 고전 말은 많지만 고전이 정말 재밌는가? 나는 고전을 읽을 때마다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발굴된 고대의 집터가 떠오른다. 가까스로 남은 주춧돌 몇개와 불을 피워 그을린 흔적. 뭘 좀 아는 사람들이야 그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우고 벽을 만들고 지붕을 올려 근사한 집을 짓겠지만 나같이 상상력이 빈약한 사람에게 원형은 그저 앙상한 폐허일 뿐이다. 정교하게 갈고 닦인 현대의 내러티브가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진단 말이다. 그래서 결국 구매를 포기했다.


그런데 왜 이제와서 이 케케묵은 할머니를 다시 찾아왔느냐. 스스로에게 편견을 깰 기회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콩알만한 알 속이 세상의 전부라 믿고 사는 남자의 인생은 얼마나 불행한가!


수 많은 작품이 있지만 굳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택한 이유는 제목이 멋졌기 때문이다. And then there were none. 제목이 멋진 소설이 재미 없기란 죠스바를 먹은 혓바닥이 하얘지는 것보다 어려운 법이니까.


그러나 첫 30페이지까지 소설은 대실망이었다. 너무 많이, 파편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에 정신이 없었고 옛스런 문장이 지루했다. 번역마저 묘하게 긴장감을 끊었다. 번역가 김남주님은 주로 프랑스 문학을 통해 만났고 그 때마다 대단히 만족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분이 왜 영국 할머니의 작품을 번역한 걸까?


그래도 읽기는 계속됐다. 60페이지, 120페이지, 300페이지, 그리고 아무도 없을 때까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는 말만큼 추리 소설과 어울리는 표현은 없는 것 같다. 바다로 둘러쌓여 거대한 밀실로 변한 섬, 소름 돋는 시, 그 시의 내용에 맞춰 하나씩 사라져 가는 사람들. 지루한 인물 소개가 끝나고 나자 무서운 속도로 빨아들이는 이야기의 흡입력에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물론 사건의 전말이 모두 밝혀지고 난 뒤, 그러니까 겨우 한숨을 돌리고 나서야 작위적 구성과 연쇄살인마의 공감가지 않는 살해동기가 눈에 들어오기는 한다.


그런데 읽는 중에는? 


확실히 묘령의 사내가 있었다는 기억이다. 언제부터 나타났는지는 모른다. 연기처럼 스르륵 스며든 것도 같고, 원래부터 있었던 것도 같다. 평범한, 아니 무표정에 가까운 묘한 얼굴. 벽지에 그대로 녹아들 것 같은 옷차림. 눈에 띄는 건 손에 든 피리다. 그가 피리를 불기 시작했을 때 나 멍한 눈으로 그를 따라갔다. 내 앞에는, 그리고 내 뒤에는 이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의식하지도 못한 채 그저 피리 소리만을 쫓았다. 하나, 둘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져, 그리고 아무도 없을 때까지.


명작이라 불리는 추리 소설은 모두 피리를 분다. 선율은 한결같다.


'범인은 누구인가? 범인은 누구인가?'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는 건 당신의 의지와 무관하다.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1
조엘 디케르 지음, 윤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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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 글도 읽지 마세요

*책을 읽지 않았다면 그저 길고 지루한 글이 될 게 뻔합니다. 읽지 마세요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책을 읽는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내가 작가라면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다.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같은 책을 읽을 땐 더더욱 그렇다. 플롯이 치밀하다는 평을 듣는 책이다보니 그 플롯을 나름대로 구성해보는 것이 글쓰기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종의 '케이스 스터디(Case study)'다. MBA 학생이 기업의 성공, 실패 사례를 분석하고 경찰 후보생이 범죄의 수사 과정을 되풀이 하는 것처럼.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은 뒷 이야기가 궁금해 견딜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다. 대단한 재능이자 축복이다.


사건의 배경은 뉴햄프셔의 오로라. 작은 시골 마을이다. 해리 쿼버트는 33년 전 이곳으로 와 소설을 하나 쓴다. 소설은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고 오로라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15세 소녀가 모티브였다.


1975년 8월 30일 이 소녀가 실종된다.


그리고 33년 뒤 해리의 집 앞마당에서 소녀의 유해가 발견된다. 소녀의 가방 안에는 해리 쿼버트에게 부와 영예를 안겨준 소설의 원고가 들어 있었다. 해리는 체포 되기 직전 자신이 가장 아끼는 제자 마커스 골드만에게 전화를 건다. 


마커스 골드만은 나중에 <해리 쿼버트 사건>과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이라는 책을 쓰게 될 남자다.


나는 15세 소녀의(놀라 켈러건) 살해 용의자로 13명을 꼽는다. 그리고 이 용의자들을 각각의 특성에 따라 '조악한 미끼', '충격적 반전',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라는 세 개의 범주로 나눈다.




조악한 미끼



1. 비스트, 루터 케일럽


루터 케일럽은 미술에 재능을 가진 젊은이였으나 동네 불량배들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해 얼굴이 망가진 괴물이다. 변한 건 외모 뿐이었지만 사람들은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여유를 잃고 고개를 돌려버린다. 사람들은 괴물의 내면을 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한다.


재앙은 '아무에게도 사랑 받지 못하는 자'가 사랑에 빠졌을 때 시작된다. 루터 케일럽은 놀라를(살해 당한 소녀) 사랑한 게 분명하다. 매일 풀숲에 숨어 그녀를 지켜봤으니까. 그리고 루터 케일럽은 놀라가 해리를 사랑한다는 걸 알았다.


1975년 8월 30일, 루터는 놀라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놀라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거절의 상처로 마음이 격해진 루터가 놀라를 잡아챈다. 겁먹은 놀라가 도망친다. 당황한 루터가 놀라를 쫓을 때 그녀가 소리를 지른다. 루터는 가까스로 그녀를 잡아 진정시키려 한다. 단지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하려던 것 뿐이다. 그러나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그녀는 죽어 있었다. 루터는 놀라의 가방 속에서 해리의 원고를 발견하고 그녀를 해리의 집 앞마당에 묻는다.


루터 케일럽은 시작부터 '내가 살인자다'라는 팻말을 들고 소설에 등장한다. 내가 <소년 탐정 김전일>을 통해 배운 게 하나 있다면 너무 범인같은 사람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루터 케일럽은 미끼다. 작가라면 사람들의 시선을 이 미끼에 고정시켜 두고 뒤에서 은밀히 진범을 만들어야 한다.



2. 아메리칸 싸이코, 엘리야 스턴


이 남자는 오로라 인근의 대도시 콩코드에 거주하는 거부다. 부란 무엇인가? 불법을 은밀하게 행하는 권력을 지녔다는 의미다. 게다가 이 남자의 집에는 놀라의 누드 그림이 있다. 그의 밑에서 일을 하는 사람은?


루터 케일럽.


온갖 구린내가 풍기지만 문제는 이 남자에게 놀라를 죽일만한 동기가 없다는 것이다. 가능한 케이스는 <아메리칸 싸이코>다. 대중이 부자에게 갖는 전형적 편견이니까. 하지만 그가 싸이코패스라면 한 번의 살인으로 만족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싸이코패스는 연쇄살인마를 다루는 '스릴러'에는 적합하지만 진실을 찾아 떠나는 '미스테리'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엘리야 스턴은 절대 범인이 아니다.




충격적 반전



3. 필살의 카드, 놀라 켈러건


최강의 반전 카드다. 15세 소녀가 살해된 게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실존 인물이 아니라면? 오래 전에 죽은 해리의 첫사랑이라면? 반전의 충격이 클 수록 이야기는 더욱 정교하게 짜여져야 한다. 내 실력으론 엄두도 나지 않지만 책 한권으로 100만 달러를 버는 작가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놀라 켈러건은 말 그대로 필살의 카드다. 그런데 그 필살(必殺)의 대상이 '독자'가 될지, 아니면 '저자'가 될지는 오로지 작가의 실력에 달렸다.



4. 악의 기원, 해리 쿼버트


해리 쿼버트가 놀라와의 사랑에서 영감을 받아 쓴 소설의 제목은 <악의 기원>이다.


놀라는 해리 이외에도 여러 남자와 놀아난 것처럼 보인다. 경찰 서장과 오랄 섹스를 했고 누드 모델을 선 뒤 대가를 받았다. 진실을 알고 난 해리가 놀라를 죽였을까? 그렇다면 살인은 오히려 구원의 의미를 갖는다. 천사같은 소녀 놀라 켈러건의 추악한 비밀을 죽음과 함께 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다.


멜로치고는 꽤 근사한 주제다. 대중의 공감이 문제라면 쉬운 길을 택할 수도 있다. 위와 같은 고백을 질투에 눈이 먼 남자의 자기 합리화로 몰고가는 것이다. 이 경우엔 놀라를 자기 집 앞마당에 묻은 걸 두 가지 감정이 복잡하게 얽힌 결과로 풀어야 한다. 


하나는 죄책감이다. 누군가 자기의 살인을 밝혀 무거운 짐을 덜어주길 바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교묘한 트릭이다. 이것은 추리 소설의 아버지 '에드가 알렌 포'가 고안한 트릭이기도 하다. 숨기고 싶은 게 있다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라는 것.


이런 이중성은 <악의 기원>이라는 야릇한 책 제목과 묘하게 어울리기도 한다. 악은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혹시 악의 기원은 악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5. 포스트 모던, 마커스 골드만


놀라 켈러건은 1975년에 죽었다. 마커스 골드만은 1978년 생이다. 잠깐만 들어봐.


놀라의 유해가 33년 만에 발견됐다는 데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수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나이가 33세. 그는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지. 마커스 골드만은 놀라가 죽은 지 3년 뒤에 태어났고. 뿡야!


사실은 이런 구성을 생각해봤다. 


마커스 골드만은 <해리 쿼버트 사건>과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을 썼다. 따지고 보면 조엘 디케르가 썼고 내가 읽은 책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은 마커스 골드만이 두 책을 쓰는 과정에서 겪은 사건과 자료들을 모아 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 책을 쓴 건 '조엘 디케르'일까 '마커스 골드만'일까?


이 책의 진정한 저자가 '마커스 골드만'이라면 그에겐 놀라를 죽인 범인을 선정할 권력이 있다. 잠깐, 마커스 골드만에겐 이게 모두 '실제로 벌어진 일'인데 어떻게 범인을 고를 수 있다는 말이지? 하지만 생각해보자. <해리 쿼버트 사건>과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이 실제로 벌어진 일을 추적한 소설이라는 건 마커스 골드만의 주장일 뿐이다.


마커스 골드만이 우리에게 거짓말을 한 게 사실이라면(거짓말은 작가의 본분이다) 그는 놀라를 죽일 수도 심지어 죽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놀라는 죽었다. 마커스 골드만은 자기가 만든 캐릭터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 하겠지만, 


그들은 모두 꼭두각시에 불과하지 않은가!


책 속이 아니라 책 너머에서 진실을 발견하기. 포스트 모던.



6. 경찰답지 않은 경찰, 게할로우드 경사


게할로우드 경사는 33년 만에 재개된 놀라 사건의 담당 경찰이다. 그는 마커스 골드만과 함께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나간다. 그런데 왜 그는 마커스 골드만과 단서를 공유할까? 수사 중인 사건의 정보를 일반인과 공유하는 건 명백히 불법이다. 그런데 그는 마커스 골드만이 빌린 호텔 스위트룸에 수사 본부를 차리기까지 한다.


말도 안돼!


가능한 경우는 게할로우드가 마커스 골드만에게 잘못된 단서를 제공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는 것이다. 그가 진실에서 되도록 멀어지길 바라면서. 그게 아니라면 작가는 게할로우드의 경찰답지 않은 행동에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실수라고 하기에 이는 너무 큰 구멍이다.



7. 오 나의 사장님, 버나스키


버나스키는 미국에서 제일 큰 출판사의 사장이다. 마커스 골드만과 계약을 해 그의 첫 번째 책을 성공시켰다. 문제는 두 번째 책이다. 사실 그는 마커스가 두 번째 책을 쓰지 못하고 슬럼프에 빠질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33년 전 놀라를 죽여둔 것이다. 그 사건이 마커스에게 책을 쓸 동기를 마련해 줄 뿐만 아니라 어마어마한 돈이 될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버나스키가 정말 이런 이유로 놀라를 죽인거라면 그는 신이다. 신에게 죄를 묻지는 말자.



8. 악령의 나라, 기타 등등


악령이나 악마가 범인인 건 어떨까? 데이비드 핀처의 <나를 찾아줘>인줄 알았는데 제임스 완의 <컨저링>이었던 거지. 


글을 쓰다보면 가끔 미칠 때가 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9. 오랄 섹스, 프랫


그는 놀라의 실종 당시 수사를 지휘한 경찰 서장이다. 놀라는 어느날 프랫을 찾아와 다짜고짜 오랄 섹스를 한다. 그 다음엔 프랫이 놀라를 불러 강제로 시킨다. 여기까지가 사실이다. 


프랫이 놀라를 죽인 거라면 이런 가정이 가능하다. 


세 번째 만남을 가졌을 때 놀라는 프랫의 오랄 섹스를 거부하며 도망쳤고 이를 쫓던 프랫이 실수로 그녀를 죽이고 만다.


이렇게 결론을 내면 사람들은 내 소설에서 '오랄 섹스'만 기억할 것이다. 난 오랄의 아이콘이 되는 거고.



10. 초동 수사, 트래비스 던


놀라 실종 당시 처음으로 현장에 도착한 경찰관이다. 그는 제니 퀸을 사랑한다. 루터 케일럽을 증오한다.



11. 금발의 미녀, 제니 퀸

해리 쿼버트를 사랑했으나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여자. 루터 케일럽을 성추행으로 고소한 바 있다.



12. 복수의 화신, 태머라 퀸


제니 퀸의 엄마. 해리 쿼버트를 사위로 맞을 꿈을 꿨으나 그가 놀라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자. 감히 내 딸을 무시하고 열다섯 살 짜리 어린애에게 눈독을 들인다고? 해리 쿼버트는 변태성욕자다. 태머라 퀸은 그의 파멸을 원했다.



13. 카이저 소제, 로버트 퀸


태머라 퀸의 남편이자 제니 퀸의 아버지. 와이프에게 눌려 사는 소심한 남자지만 가족을 사랑한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는 남자다. 


그는 소설을 통 털어 해리 쿼버트의 차 쉐보레 몬테카를로에 관심을 보인 유일한 사람이다. 이게 왜 중요하냐고? 쉐보레 몬테카를로는 놀라 실종 당시 범인이 타고 도주했다고 알려진 차니까. 그럼 해리를 의심해야지! 하지만 생각해보라, 그건 우리가 걱정하지 않아도 경찰이 알아서 조사해줄 것이다. 사고가 나자마자 인근 지역의 몬테카를로 차주를 조사할 테니까. 우리는 경찰이 놓칠만한 부분을 꼬집어야 한다. 무슨말이냐 하면 로버트 퀸이 쉐보레 몬테카를로를 렌트해 범행을 저질렀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고작 대사 하나로?


과대망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뛰어난 작가는 결코 이유 없는 대사를 시키지 않는다.


물론 로버트 퀸의 단독 범행으로 몰고 가기엔 개연성이 너무 떨어지는 면이 있다. 그렇게 되려면 로버트 퀸이 놀라를 강간이라도 해야한다. 오랄 섹스에 강간, 포르노 잡지에나 어울리는 줄거리로 100만 달러를... 벌 수는 있지만 작가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로버트 퀸은 어떤 식으로든 다시 활용할 여지가 있다. 그 시작은 분명 쉐보레 몬테카를로가 될 것이다.



14. 그래서 누가?


프랫, 트래비스 던, 퀸 가족 이 다섯 명은 따로따로 놓고 볼 땐 범인이라고 단정 짓기 어려운 인물들이다. 하지만 다섯을 하나로 합쳤을 땐? 난 이 책을 손에 든 순간 놀라의 살인에는 마을 사람 전체가 연루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가졌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


<오리엔트 특급 살인>까지는 아니더라도 복잡한 플롯은 필수다. 그렇지 않으면 무슨 수로 400쪽이 넘는 책 두 권을 채우겠는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 부터 다시 생각해보자. 결정적인 오해는 거기서부터 나오니까.


특히 프랫과 트래비스 던. 두 사람은 놀라 실종 당시 수사를 지휘한 핵심 인물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두 사람의 말을 믿은 게 아닐까? 놀라 실종 당시 초동 수사는 이 두 사람만이 관여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걸 밝힐 방법이 전혀 없다는 거 아닌가!


프랫에게는 놀라를 죽일 근거가 있다. 하지만 트래비스는? 프랫이 놀라를 살해했고 트래비스는 단순히 목격했다. 프랫은 경찰 서장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트래비스에게 침묵을 강요한다? 33년 간 입을 다물고 있기에 이는 너무나 큰 짐이다. 침묵이 강제성을 띄려면 트래비스 던도 놀라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개입 해야 한다. 그 연결 고리가 뭘까? 퀸 가족이 열쇠가 될 수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그저 작가가 제시해 주는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책은 점점 더 재미있어 졌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을 때, 


포기야말로 모든 죄악 중에 최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려움과 떨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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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노통의 대표작은 <살인자의 건강법>이나 <적의 화장법>이 아니라 <이토록 아름다운 세살>, <사랑의 파괴>, 그리고 이 책 <두려움과 떨림>이라고 누차 얘기해 왔다.


25세에 데뷔. 이후 1년에 한 권씩 미친듯이 책을 써내는 노통은, 그러나 그 열망과는 달리 작품의 질이 고른 편이 아니다. 어쩔 땐 자기와의 약속(1년에 한 권)을 지키기 위해 억지로 책을 쓰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엉망인 작품도 많다. 그래서 노통의 책을 고를 땐 이 한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그 소설이 노통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했는가 그렇지 않은가. 전자는 대개 '두려움과 떨림'을 안겨줄 만큼 압도적 재미를 선사한다. 후자는, 나 같은 나부랭이가 이런 위대한 작가에게 할 수 있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쓰레기다.


<두려움과 떨림>은 1990년대 초 일본의 '유미모토'라는 회사에 근무하게 된 노통의 이야기를 다룬다.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최강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고 싶다면 1990년대 초의 일본을 보라고. '텐노 헤이카 반자이(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적의 항공 모함으로 달려들던 상명하복의 후예 답게 일본 국민은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에 묵묵히 따랐다. 아무런 의문도 갖지 말 것. 이 개미 군단의 질주가 패전의 핏물이 가득한 땅 위에 세계 최강의 경제를 일으켰다. 


그러나 상명하복, 무조건 적인 복종, 경직된 조직 구조로 대표되는 일본 경제의 핵심은 자유와 자유와 자유의 가치를 누려온 백인 여자에게 개미 지옥과 마찬가지였다. 노통은 그곳을 지옥이라 말하지만 택도 없는 소리! 쇠락한 서구 사회의 백인 여자가 어찌 감히 최강의 일본을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패배자가 숨겨온 복수의 칼날은 새디스트의 채찍이 되어 어리석은 백인 여자에게 태형을 선고한다.


노통은 이 수치스런 형벌을 받아들인다. 왜? 일본을 사랑했으니까.


일본 사람들에게 근대화의 역사는 서양 침략사와 일치한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패배의 추억. 일본은 이 트라우마를 '텐노 헤이카 반자이'(2차 세계 대전)로 치유하려 했으나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떨어진 거대한 성기에 강간을 당함으로써 다시 한 번 무릎을 꿇는다. 수 십년간 부들부들 치욕에 떨었던 패배자들, 그들이 경제를 통해 비로소 세계 정복을 완수했으니 그 복수심이 얼마나 대단했겠는가.


반면 노통은 1967년 생. 승자의 기억을 단 한톨도 공유하지 않은 전후 세대다. 그녀는 일본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평생 기억하며 그 곳에서 매료된 압도적 미의식을 평생의 자양분으로 삼는다.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고통을 받아야 하는 운명. 고통을 받을 걸 알면서도 사랑을 할 수 밖에 없는 자의 아이러니.


후부키는 이런 아이러니가 그대로 형상화된 캐릭터다.


180cm가 넘는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우아한 곡선이 아름다운 일본의 고대활을 닮은, 눈부실 정도로 예쁜 여자. 유미모토 사의 유일한 간부급 여직원 후부키는 처음엔 이 낯선 외국인에게 관심과 애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비극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다. 건방진 백인 여자가 유제품 부서의 '덴시'씨를 위해 기가막힌 보고서를 써준 것이다.


입사한지 한 달도 안된 햇병아리가 감히 수 년에 걸쳐 쌓아올린 나의 커리어를 단번에 앞질러 가겠다고?


'눈보라'라는 이름의 후부키는 양눈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품고 이 건방진 백인 여자를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이쯤에서 나는 '두려움과 떨림'이라는 제목이 갖는 다의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1980년대와 90년대를 경험한 보통의 서양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떨림'은 할미꽃 사이에 핀 해바라키 만큼이나 명확하다. 그것은 일본에 대한 두려움. 한 때는 보잘 것 없던 패배자가 어느새 거대하게 자라 과거의 승자를 잔인하게 짓밟으러 다가올 때마다 지표를 울리는 떨림이다.


그러나 노통에게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이상 행동에는 대개 어린 시절의 기억이 연루되어 있다. 노통은 일본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일본의 미에 완전히 매료됐다. 결코 드러내려 하지 않지만 불가항력으로 뿜어져 나오는 우아함. 한 겨울 대나무 위로 소복히 쌓이는 눈 소리 같은 미. 그토록 필사적으로 '모던'을 추구했던 서구 문명이 결코 흉내낼 수 조차 없는 간결함의 정수들. 자라지 못한 정신에 새겨진 미의 얼룩은 아무리 문질러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무늬를 남겼다. 이 무늬가 지긋지긋할 정도로 답답하고 끔찍할 만큼 잔인한 나라에 몇 번이고 돌아오게 만든다.


노통은 결국 일본을 떠난다. 아픔을 잊으려 소설에 몰두했고 성공을 거뒀다. 다시 승자가 된 노통은 이제 모든 걸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옛 사랑의 이름을 듣는 순간 철렁, 가슴이 내려앉는다.


1992년, 내 첫 소설이 출간되었다.

1993년, 나는 도쿄로부터 편지 한 장을 받았다.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아멜리 상,

축하해요.


모리 후부키


이 말은 내가 기뻐할 만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어떤 점 때문에 내 심장이 멎었다.


이 말은 일본어로 씌어 있었다. (p147~148)


이것은 상처 투성이 사랑을 닮았다. 이 사랑은 두려울 정도로 아픈 상처를 주지만 그 사랑이 살갗에 닿는 순간 전율이 일 정도의 떨림을 느낄 수 있다. 이 압도적 아름다움은, 두려움이자 떨림이다.



 
 
바람돌이 2015-01-04 21:24   댓글달기 | URL
처음 읽은 아멜리 노통브의 책이 <살인자의 건강법>이었는데 딱 손을 놓았어요. 아 이 작가는 내 취향이 아니구나...
이후에도 계속 책이 나오고 많은 사람이 찾는걸 보고 참 사람들은 나랑 다르네 했는데, 다른 책은 또 다르단 말이군요.
다시 한 번 노통브에 도전해볼까 하고 살짝 보관함에 책 담아갑니다.

WiredHusky 2015-01-06 13:38   URL
헉! 그럼 사실 이 책도 그렇게 마음에 들진 않으실텐데요... 굳이 노통에 입문하시겠다면 이 책 보다는 <이토록 아름다운 세살>을 추천합니다.
 
코핀 댄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2 링컨 라임 시리즈 2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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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순수하게 재미만을 쫓고 싶다. 사고를 정지시킨 채 그저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정해진 곳에 도착하기. 그 아무리 고귀한 문학도, 철학도 무용지물로 느껴지는 순간.


잘 만들어진 장르 소설을 찾기 위해 노력해온 건 꽤 오래된 일이다.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과는 달리, 사실 나는 '헐리웃 블록 버스터'의 광팬이다. 특히 개성 있는 캐릭터들을 좋아하고 그 캐릭터들이 초능력이라도 쓰는 날엔 거의 환장할 수준에 이른다. 이런 점에서 제프리 디버의 <코핀 댄서>는 나의 선택을 받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전 FBI 소속의 천재 범죄학자 '링컨 라임'과 역시 그 바닥에선 천재라 불리는 암살자 '코핀 댄서'의 두뇌 싸움. 슈퍼 히어로와는 좀 다른 느낌 아니냐고 물을 수 있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슈퍼 히어로를 '현실'이라는 체에 거른 뒤 유니폼을 벗기고 일상의 옷을 입히면 '링컨 라임'과 '코핀 댄서'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은 거의 초자연적 힘에 가까운 능력을 발휘해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군계일학. 닭장 속의 여우. 쉽게 말해 사기캐.


추리 소설하면 응당 매력 만점의 탐정이 등장하는 게 당연하지만 그 중에서도 '링컨 라임'은 아주 독특한 존재다. 우선 그는 척추를 다쳐 팔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이다. 오로지 약간의 고갯짓과 대화만 가능. 말 그대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어 입으로 바람을 불어 전동 휠체어를 몰고 다니는 남자. 불행히도 범죄 현장을 직접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그는 증거물에 집착한다. 그것도 먼지, 종이 부스러기, 모래 따위의 미량 증거물을.


미량 증거물은 상당히 많은 연결고리를 거쳐야만 그것이 지시하는 실체에 닿을 수 있다. 긴 시간 동안 깊은 사유가 필요한 일이다. 팔다리가 멀쩡해, 그래서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이는 커다란 장벽이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생각' 밖에 없는 라임에게는? 이것이 과연 장벽이 될 수 있을까? 이 순간 링컨 라임의 치명적 장애는 궁극의 장점으로 변태한다. 가만히 누워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범인을 향해 미량 증거물이라는 빛타래를 엮어 나가는 링컨 라임. 그는 마치 미시 입자의 운동 상태를 확인해 우주라는 궁극의 어둠을 파악하려는 물리학자를 닮았다.


<코핀 댄서>를 읽으며 왜 사람들이 추리 소설에 열광하는지 알 수 있었다. 문장에는 수 없이 많은 암시와 단서 복선이 존재한다. 독자는 이 부스러기들을 긁어 모아 짧게는 두 세 문장, 길게는 몇 백 쪽 뒤에 제시될 '해답'에 앞서 추리를 해야 한다. 정답을 맞췄을 때 주어지는 보상은 '링컨 라임'과 '독자'의 동일시다. 이 동일시는 '추리-정답 확인'이라는 피드백 과정을 더 빠른 속도로 회전 시키고 회전을 통해 생성된 구심력이 독자를 소설의 핵심으로 끌어당긴다. 이 힘에 빠져든 사람은 두 번 다시 밖으로 빠져나올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추리 소설은 책이라는 매체의 한계를 뛰어 넘은 거의 유일한 장르가 아닐까 싶다. 문제가 제시되면 독자는 그것을 풀어야 한다. 마음 같아선 다 풀었을 때만 책장을 넘기고 싶지만 궁금해 못 참겠으면 뒷 장을 훔쳐본다(치팅). 정답을 확인해도 이해가 안될 땐 앞 장을 들춰 단서를 다시 수집해야 한다. 수집된 단서를 들고 새로운 문제에 맞선다. 이건 완전히 아이템을 얻고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다 최종 보스를 무찌르는 RPG 게임을 닮아 있지 않은가? 더 놀라운 건 이런 상호 작용이 다른 매체의 도움 없이 오로지 '종이'와 '문장'이라는 책의 본질만을 이용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그런데 여기 명탐정의 딜레마가 있다.


반전은 그 누구도 맞출 수 없을 때가 아니라 누구나 맞출 수 있지만 그렇지 못했을 때 발생한다. 아마도 추리 소설 작가들은 그 어떤 독자도 자기가 만든 탐정보다 뛰어나기를 바라지 않는 것 같다. 그리하여 그들은 오로지 탐정에게만 중요한 단서를 귀뜸해 준다.


그래서 나에겐 갑자기 '짠'하고 나오는 탐정의 결정적 추리가 명탕점의 뛰어난 재능이라기 보단 작가가 탐정에게 드러내는 편애의(독자보다 탐정을 사랑하는) 결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의심은 추리 소설 전체에 던지는 중대한 의문을 잉태한다.


탐정은 사건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사건이 탐정을 위해 존재하는가?


우리는 <코핀 댄서>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링컨 라임이 사건을 해결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오히려 링컨 라임이 해결할 수 있도록 사건이 벌어진 건 아닐까? 이런 의문이 드는 순간 독자-범인의 싸움은 독자-작가의 싸움으로 변질되고 만다. 문제는 이 변질이, 단단하게 묶였던 몰입의 끈을 허무하게, 너무나 허무하게 풀어버린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