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잡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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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연히 <빅 픽처>를 읽지 않았다. 뻔할테니까. 그런데 우연히 <더 잡>을 읽고 나니 뻔한 것들 중에서도 돋보이는 건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반전 스릴러라고 소개는 하지만 모든 사건과 행동에 딱 떨어지는 개연성이 있는 건 아니다. 반전 소설에선 이 개연성이 핵심이지만, 이 정도면 훌륭하다.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그래서, 꽤 재밌다.


미국에서 출간되는 이런 장르 소설들을 읽다보면 어마어마한 클리셰들이 차곡차곡 포개져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인종과 문화 지리적 특성, 산업 등이 다양하다보니 그 배경과 인물을 적절히 변주하는 것으로도 클리셰들은 각인된 문화적 편견 속으로 은근슬쩍 스며든다. 미국은 저런가 보구나. 역시 미국이군! 헐리웃과 미국 출판계의 영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거대할 수 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이 소설은 딱 헐리웃에서 관심을 가질만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사실 클리셰라는 건 독창적 작품을 생산해 내려는 모든 작가들에게 일반적으로 쉽게 받아들여지는 수식이 아니다. 대개 그것은 모욕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산업과, 고객의 입장은 좀 다르다. 산업은 생산과 유통에 불리한 마스터 피스 보다는 그럴듯한 웰메이드를 원하고 대중들도 여러번 눈여겨봐야 알아챌 수 있는 섬세한 디테일이 가득한 복잡한 제품보다는 바로 사서 바로 쓰고 바로 버리는 제품들을 원한다. 클리셰는 그들에게 '친숙한' 것이다.


어쩌면, 팔리는 작가의 조건은 이 클리셰들을 조합하고, 너무 노골적이진 않게, 얇은 벨벳 천을 덮어 놓은 듯 은밀하게 드러내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이런데 능숙해지면 1년에 400페이지가 넘는 장편 소설을 한 권씩 써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메인 작가는 트리트먼트만 쓰고 보조 작가들이 실제 문장을 적는, 집단 창작도 가능할 것 같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뼈에 새길만한 교훈을 배운 적이 몇 번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사기의 기술에 대한 깨달음이다. 사기는 어떤 새로운 인물이 나로 하여금 그를 믿게 만든 뒤 행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미 믿는 사람이 나에게 행하는 범죄다. 범죄자들은 어떤 방법이 가장 효율적인지 영업 이익 200조의 초일류 기업보다 더 잘 알고 있다. 특히 범죄 대상을 선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위기에 빠진 사람들은 눈 앞의 지푸라기도 황금 밧줄로 보이기 때문에 절박한 대상을 찾아낼 수록 사기의 성공 확률은 높다. 그러니 당신이 어떤 곤란에 처해있고 누군가 그 곤란을 해결할 좋은 기회를 제안해 왔다면 그게 사기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법은 아주 쉽다. 그 기회가 당신이 가진 것에 비해 훨씬 큰 보상을 제안하는가. 그렇다면 그건 100% 사기다. 별 볼일 없이 수년간 같은 회사에서 B, C, B를 오락가락하며 평범하게 일해온 사람에게 전에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협력사 사장이 유망한 스타트업의 팀장 자리를 제안한다면? 이 경우 많은 사람들은 드디어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나왔다며 주먹을 꼭 쥔 채 속으로 눈물을 흘린다. 고심은 하겠지만, 마음은 이미 기울어 있다. 하지만 냉정해지자. 당신은 그런 제안을 받을만큼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네드 앨런은 그런 기회를 받아들인다.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거기서 빠져나오기까지는? 내가 제시한 예시와 달랐던 건 네드 앨런이 매우 유능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사기에 더 쉽게 빠져들게 만든다. 첫째는 그런 기회와 보상이 자신의 능력에 합당하다고 믿기 때문이고, 둘째는 자기가 그 일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은퇴한 은행장과 주식맨들이 대규모 금융 사기에 휘말렸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가? 사기는 논리적으로 완전무결하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 그는 사람이다. 고로 그는 죽는다. 의심할 여지 없는 이 삼단논법에는 사기가 가진 중요한 전략이 숨어 있다. 당연하게 내린 전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조건. 사기에 당하고 나서야 우리는 그가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처럼 판 자체를 뒤집는 기술이 바로 사기다.


최동훈 감독의 <범죄의 재구성>의 마지막 장면에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사기란 테이블에 앉은 사람을 설득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 사람을 테이블에 앉히기까지의 과정이라고. 테이블에 앉는 순간 이미 게임 끝이다. 당신이 무능하든 유능하든, 사기는 모든 인간을 포용할 수 있는 완벽한 플랫폼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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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선택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박진세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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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에드 맥베인의 <사기꾼>을 읽으려다 배송이 늦는다는 말을 듣고 이 책 <살인자의 선택>으로 바꿨다. 둘 모두 87분서 시리즈 중 하나로 가공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형사들의 이야기다.


에드 맥베인은 애초에 이 시리즈를 '집합적 영웅'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구상했다고 한다. 요즘에야 한번쯤은 들어본 얘기일테지만 그 당시에는 신선하고 독창적인 구성이었다고 한다. 좀 더 자세히 말해주면, 87분서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시리즈 내내 고정된 배역을 맡는 게 아니다. 한 작품에서 주도적 수사를 맡았던 형사는 다음 작품에선 또 다른 인물에게 주역을 넘겨 주고 한 발 물러선다. 그렇게 돌아가며 모든 등장 인물들이 저마다 자신의 매력과 능력을 뽐내는 시리즈. 지금 들어도 그렇게 진부한 설정은 아닌 것 같다. 물론 그의 의도대로 됐더라면.


이 책을 읽자마자 나는 책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 하나를 깨우쳤다. 쓰여진지 오래된 범죄 소설은 읽지 말라는 것. 시대가 너무 동떨어지면 등장인물들의 수사 방법에 한숨이 나오기 시작한다. 스마트폰도 이메일로 인터넷도 없는 시대의 범죄 수사. 심문이나 추리 방법에라도 집중해야하는데 안타깝게도 이 책은 그런 재미를 선사하지도 않는다. 굉장히 하드보일드한(건조한), TV 시리즈를(그냥 흘러가는) 보는 것 같다.


사건은 어느새 스르륵 해결돼 있고 그 와중에 우리의 형사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의심이 든다. 범인을 찾는 과정은 너무나 간단하다. 259페이지. 출근 기차 안에서 가벼운 페이퍼백으로 읽을 법한 소설. 이런걸 보면 미국의 출판업은 타겟 유저의 설정에서부터 그들이 책을 읽는 환경까지 세심히 고려하는 것 같다. 분량은 적어야 해요. 한 시간 반, 길어도 두 시간이면 완독할 수 있게. 머리를 싸매고 플롯을 이해하는 게 아닙니다. 읽다가 깜빡 졸아도 연결에 문제가 없어야 합니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쯤엔 이미 페이지는 바닥이 나 있고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신문 가판대에서 이 책의 또 다른 시리즈가 독자를 기다리고 있어야 합니다. 아시겠어요?


외국 소설을 읽다보면 편집자와 작가 사이에 벌어지는 날카로운 신경전들을 목격하게 되는데, 진짜로 어마어마한가 보다. <살인자의 선택>에는 이와 관련하여 에드 맥베인이 남긴 인상적인 저자의 말이 있다. 물론 상당부분 농담이 섞여 있겠지만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몇 페이지를 알뜰히 활용해 "부패하고 열의 없으며 탐욕스러운 담당 편집자들"에 대해 얘기해준다. 앞서 말했다 시피 이 시리즈엔 정해진 주인공이 없었다. 그러나 편집자들은 에드를 "지하 감방으로 데리고 가 쇠고랑을 채운 다음 공중에 매달아 썩은 물과 구더기가 들끓는 빵만 먹였고" 그는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들이 원하는대로 스티브 카렐라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만들었고 그는 우주 대스타가 됐다. 덤으로 그의 아내까지.


그 작품의 성공으로 한껏 고무된 작가는 편집자들의 부름을 받아 출판사를 찾는다. 이제는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에드는 생각한다. 지금까지 그들의 콧대를 충분히 세워줬으니까. 이쯤되면 계약의 충실한 이행자로서 작가의 권리를 더 보장받아야 마땅한 일 아니겠는가. 그러나 사무실에서 그가 들은 얘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말했다.


"스티브 카렐라는 당신의 영웅이 될 수 없어요."

"뭐요?" 에드가 말했다.

"당신의. 영웅이. 될. 수. 없다고요."

"이유가 뭡니까?"

"어쨌든 안 돼요."

에드는 가늘게 눈을 뜬 채 알을 밴 살모사보다도 교활한 편집자들의 입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를 영웅으로 만들라고 한 건 바로 당신들..."

"우리가 잘못 생각했어요."

"좋습니다. 그럼 이전 방식으로 돌아갑시다. 기억하시죠? 모두가 영웅이 되는..."

"우리는 단 한명의 영웅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스티브 카렐라를 주인공으로 만든 것 아닙니까?"

"그는 매력적인 인물이 아니에요."

"뭐라고요?"

"매력적이지 않다고요. 그는 유부남이니까요."

"오!"


그리하여 에드는 편집자들의 요구대로 "확실한 미혼에 여자들을 홀릴만큼 잘 생긴 영웅을 창조" 해내기로 마음을 먹는다. 하지만 그는 이 치욕적 결정에 소소한 반항을 감행한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직접 책을 읽어 확인하시길.


이 시리즈가 애초에 작가의 의도대로 기획됐다면 더 재미있었을까? 만약에 대한 질문은 늘 허무한 대답을 들려줄 뿐이다. 어떻게 기획됐다한들 사실 한국의 독자들이 딱히 매력을 느끼진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장기로 보이는 대사의 리듬감과 유머가 번역본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나의 판단은 냉혹할 수 밖에 없다. <살인자의 선택>은 책 자체의 내용보다는 '저자의 말'이 더 재미있는 독특한 책이다. <사기꾼>에게 한번 더 기회를 줄 생각인데, 기회가 늘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는 걸,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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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이시카와 야스히로 지음, 홍상현 옮김 / 나름북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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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웬 마르크스냐, 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미 패배한 사상을 알아서 뭐하게? 소련은 해체됐고, 중국은 배신했고, 북한은 망해가는 중인데. 마르크스? 공산주의? 당신 빨갱입니까?


공산주의라고 하면 대한민국 사람들은 으레 북조선 민주주의 인공화국을 떠올리기 때문에 그것이 진짜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도대체 너는 누구 편이냐?' 고 묻는 저급한 폭력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이런 폭력을 간신히 피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무지라는 더 큰 산을 앞에 두고 한숨을 쉬어야 한다. 내가 대학 시절 겪었던 얘기를 하나 해주겠다.


나는 영화를 공부했다. 친구들과 함께 영화 수업을 들었는데 영화 수업이란 대개 워크숍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에 다양한 토론이 오간다. 특히 시나리오를 발표하는 날은 굉장히 치열하다. 갑론을박, 이야기의 당위성을 방어하기 위해 매서운 말들이 쏟아진다. 어느 날 친한 놈 하나가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내용인즉, 공산주의자 히틀러가 여전히 살아 있다고 믿는(그의 죽음에 대해선 음모론이 많다) 주인공이 히틀러와 닮은 한 남자를 납치, 감금해 살해한다는 내용이다. 이 세상에 공산주의가 퍼지는 걸 막기 위해. 한 마디로, 자유를 위해!


이 얘기를 듣고 그 어떤 이질감도 느끼지 못한 사람은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를 잘 듣기 바란다. 나는 친구가 시나리오 낭독을 끝낸 순간 일반적인 대한민국 사람들의 머리 속에 '공산주의=북한=독재=전쟁=학살=나쁜 놈' 이라는 강력한 도식이 형성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전쟁을 일으키거나 민간인 또는 정적을 학살하고 독재를 하면 '공산주의자'인 것이다. 아직도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는가? 히틀러는 나치였다. 극우주의자란 말이다. 공산주의는 극좌, 즉 히틀러 집권 시절 그와 가장 치열하게 싸운 적이었다!!


내가 그 얘기를 해주자 친구는 전혀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히틀러처럼 나쁜 놈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면 도대체 누가 공산주의자란 말인가? 녀석의 멍청한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교수님이 그 점을 정확히 지적해줬음에도 녀석은 수업 내내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노려봤다. 물론 그 놈은 2차 시나리오 발표 때 내용을 대폭 수정하긴 했다. 녀석은 히틀러가 공산주의자라는 내용을 완전히 삭제했다. 대신 유대인 학살을 이렇게 정의했다. 유대 자본이 세상을 지배하는 걸 막기 위한 과감한 혁명. 자본주의=돈=유대인=물신숭배=사치=향락=IMF=나쁜 것 이라는 도식이 히틀러를 자본으로부터 이 세계를 구원하려 한 순교자로 만든 것이다. 나는 학기 내내 그 놈의 무지를 모욕하고 영화 내용의 오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 놈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놈은 온갖 모욕을 참아내며 끝끝내 영화를 완성한다. 영화는 그 해 중앙대학교 영화제에서 금상을 수상, 100만원의 상금을 받는다. 무지의 심연은 이토록 깊고, 또 어둡다.


하나의 사상이 세상을 통째로 바꿔버렸다. 관념(생각)의 힘은 이토록 놀랍다. 그런데 그 사상의 주인공이 관념보다 실재를 중시했던 유물론자 마르크스라는 사실은 우리를 놀랍게 한다. 어쩌면 마르크스의 사상은 그 본질에서부터 오해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유물론자'의 '관념'이 세상을 혁명한다. 그 사상은 스탈린과 마오쩌둥을 거쳐 교조주의적 정치 강령으로 변했고 정적을 제거하는 명분과 독재의 구실이 되었다. 마르크스는 일부 자본가들이 독점하는 생산 수단을 국유화해 자본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을 막고, 그 생산의 결과물을 모두가 골고루 나눠 가진 뒤, 짧아진 노동 시간으로 생긴 여가를 자기계발과 취미에 투자하는 창발적 사회를 만들길 원했다. 그것이 바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였던 것이다.


그나마 공산주의라는 말이 살아있을 땐 그걸 호환마마 보듯 하더니 막상 자본주의가 세상을 지배하고 나자 사람들은 다시 마르크스를 찾기 시작했다. 아마 한국인의 99%는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가 크게 잘못됐으며 뭔가 대단한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 세계가 곧 자멸할 것이라 말할 것이다. 끊임없이 오른쪽으로 질주하는 자본에 고삐를 달아 왼쪽으로 끌고올 힘이 필요한 시대. 우리는 우리 스스로 쓰레기통에 버렸던 마르크스를 다시 찾는 중이다.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은 자본론, 공산주의는 커녕 마르크스라는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책이다. 물론 인용문의 번역이 별로라는 점, 또 마르크스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너무 너무 싱거울 수 있다는 건 아쉬운 점이다. 제목 그대로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에 충실한 책. 그러나 책의 두께와 디자인에 대해선 두 엄지를 백번을 치켜세워도 모자랄 정도로 훌륭하다. 이 책은 들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디자인을 갖고 있다.


사상과 철학을 골치아파 하는 사람이라도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크게 잘못됐다는 건 쉽게 인지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삶을 산건 우리가 처음이 아니었다. 100년 전, 자본주의가 처음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그 시점에 우리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똑같은 고통, 아니 어떤 면에선 훨씬 큰 고통을 받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을까? 그들의 노력이 실패했기 때문에 우리가 여전히 힘든 삶을 사는 거 아니냐, 는 회의주의에 빠질 필요는 없다. 그들의 삶을 조금만 지켜봐도 역사가 진보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멈추지 말아야 한다. 현실 세계 곳곳에서 우리는 최저 임금 인상에 실패하고, 고용 안정화에 실패하고, 대량 해고를 막지 못하는 듯 보이지만 이는 우리를 포기하게 만들려는 저 높은 곳의 계략일 뿐이다.


모든 저항은 '앎'에서 시작한다. 뭔가가 잘못됐다는 건 느끼지만 그걸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모른다면 그 잘못이 생산되는 구조를 면밀히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 철학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을 바꾸고 싶지만 그 방법을 몰라 발만 동동 구르는 사람이라면 이 책으로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깨달음은 호기심으로, 호기심은 더 많은 깨달음으로, 더 많은 깨달음은 더더더더더더 많은 호기심으로 이어져 결국 우리를 거리로 나가게 만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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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해부 - 나치 전범들의 심리분석
조엘 딤스데일 지음, 박경선 옮김 / 에이도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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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평범하다"는 유명한 구절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기웃거린지 벌써 10년이다. 내가 선뜻 이 책을 선택할 수 없었던 이유는 딱 하나다. 번역. 몇 번이나 시도해봤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어려운 철학책을 번역서로 읽는다는 건 1급 발암물질을 식수로 사용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걸 의무로 읽어야하는 전공자들에게 깊은 애도와 존경을 보낸다.


<악의 해부>를 손에 들고 첫 문장을 읽었을 때 느낌이 왔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같은 내용을 다루되 번역이 완벽한 책이라는 느낌. 예상은 적중했다. 번역의 훌륭함뿐만 아니라 저자의 글쓰기 능력도 대단했다. 특히 좋았던 부분은 실제 전범들과의 대화록이 풍부하게 실렸다는 점이었다. 이런 종류의 책일수록 대화록은 아주 중요하다. 책은 그 대화록을 분석한 저자의 판단이기 때문이다. 그가 어디에 초점을 두고 상대의 말을 해석하는가, 혹시 그가 왜곡을 하는 건 아닌가, 이런 의문을 끊임없이 검증하고 비판하게 만드는 게 바로 대화록의 역할이다. 이런 과정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책을 읽어도 결국 주입식 교육에 불과하다. 책을 읽는다는 건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힘을 키우기 위해서라는 점을 언제나 명심해야 한다.


내가 나치 전범들의 심리분석에 관심을 가져온 이유는 "악은 평범하다"는 사실을 매일 매일 체감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사태 때 보여준 일부 담당자들의 안이한 태도와 박근혜 정부 시절의 맹목적 추종을 보며 "어떻게 저럴 수 있지!"라며 분노를 쏟아내지만 나는 우리 중 대다수가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그들과 똑같이 행동했을 거라고 확신한다. 악은 생각만큼 특별하지 않다. 그들은 특별히 게으르고, 무책임하고, 타인의 감정에 둔감하고, 누구보다 악해서가 아니라 특정 사건이 벌어졌을 때 공교롭게도 그와 관련된 어떤 행동을 해야만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악을 저지른다. 오해는 마시라. 나는 이들이 악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악은 매우 자연스럽게, 그게 악이라는 걸 인지하지도 못한 채로 스르륵 흘러나온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우리의 세상 살이가 힘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모두 악인이고 우리가 뿜어내는 무의식적 악행에 24시간 상호 노출된다. 악을 경험한 사람은 바로 내가 경험했다는 그 주관적 특수성 때문에 필연적으로 악의 원천을 타인에게서 찾게 된다. 이러한 경험이 거듭될 수록 내 몸에서 흘러 나오는 악에 대해선 점점 둔감해지고 자기는 선한 피해자로 남아 끊임없이 타인을 악으로 물들이게 된다.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자신을 객관화 하는 게 중요하다. 나에게서 한 발 떨어져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 내가 나치 전범들의 심리를 들여다보는 이유는 거기서 나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나의 거울이고, 아마 거의 완벽하게 내 모습을 비춰줄 것이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악의 해부>가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는가에 대해선 일말의 의심이 남는다. 이 책은 악을 해부하겠다는 거창한 제목을 달고는 있지만 그들이 어떤 행동을 어떻게 했는지에만 초점을 맞추지 왜, 어떤 이유로 악이 탄생했는지에 대한 탐색에선 헛손질을 거듭한다. 그리하여 이 책은 악이라는 거대한 우주로 야심차게 탐사를 나서 반짝이는 별들과 쏟아지는 은하수를 목격한 뒤 지구로 돌아와 그 경이로움을 찬탄하는 '일기'가 되버린다. 네 시작은 창대했으나 그 끝은 미약하리라.


아이히만은 전쟁 후 아르헨티나에 숨어 평온한 생활을 영위하다 이스라엘 정보부 '모사드'에 납치되어 예루살렘으로 잡혀간다. 정상적인 범죄인 인도가 아니었다는 점에 주목하라. 모사드의 첩보원들은 아이히만에게 약을 먹인 뒤 만취한 승객으로 가장해 예루살렘 행 비행기에 태워 마침내 야훼의 심판장 위에 세운다. 실로 영화 같은 얘기가 아닌가. 나도 이렇게 납치되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게 가고 싶다. 잠깐의 기대는 실망으로 끝났지만, 일말의 잠재력을 보여준 이 팀이(출판사와 번역가) 언젠가 나의 바람을 실현시켜주길 바란다.


*이 책이 다루는 사건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이다. 전쟁 후 즉각 체포된 사람들, 거물로는 제국원수 헤르만 괴링과 부총통 루돌프 헤스가 있다. 아이히만은 없다는 얘기다. 이미 언급했지만 아이히만은 납치되어 '이스라엘'에서 재판을 받는다. 따라서 나치 전범들의 심리를 다양하게 확인하기 위해선 뉘른베르크와 이스라엘을 모두 왕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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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시장
김성중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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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다크 나이트>를 히스 레져의 유작으로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의 진정한 유작은 테리 길리엄 감독의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 극장>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다행히 히스 레져가 죽기 전에 영화를 끝마쳤고 그의 죽음으로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누렸다. 그러나 테리 길리엄은 영화를 반도 찍지 못한 상태에서 주연 배우가 세상을 떠나는 불운을 손에 쥔다. 계속 가기엔 남은 길이 아득하고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와 버렸다. 감독은 기지를 발휘해 주연 배우 셋을 더 캐스팅한다. 영원한 캡틴 조니 뎁, 영국산 바람둥이 주드 로, 아메리칸 마초 콜린 파렐. 네 명의 배우는 파르나서스 박사가 여행하는 다섯개의 세상을 사이좋게 나눠 여행한다. 좋은 아이디어, 완벽한 배우, 처참한 실패.


'처참한 실패'에 대해선 사람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저 말은 객관적 흥행 기준을 토대로 한 말이지 내 개인적 감상을 섞은 말이 아니다. 나는 이 영화를 사랑했다. 테리 길리엄은 이야기의 신이었고 나는 그의 신도였으니까.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을 보면 일군의 신도들이 나온다. 그들은 이상 야릇한 동굴(기억이 잘 안 난다)에 모여 끊임없이 이야기를 낭독한다. 단 일초라도 이야기가 끊기는 순간 이 세계가 멸망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 때 악마 하나가 그들의 본거지에 쳐들어온다. 악마는 최고 성직자와 논쟁을 벌이며 이야기가 사라져도 세상은 그대로일 거라고 도발한다. 당연히 성직자는 악마의 말을 무시한다. 그 와중에도 신도들은 계속 이야기를 낭독한다. 그 순간 악마가 모든 신도들의 입을 봉해 버린다. 공간을 지배한 침묵. 악마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귀를 기울인다. 어때? 이게 세상이 멸망하는 소리인가? 천만에. 세상은 멀쩡하다. 악마가 맞았다. 너희들은 잘못된 믿음을 가진거다. 악마는 패배를 자인하는 목소리를 듣기 위해 우두머리 성직자의 입을 열어준다. 그가 말한다. "역시 제 생각이 맞았군요. 이 세상엔 우리 말고도 이야기를 낭독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겁니다."


크아!!!


내가 테리 길리엄의 신도였다면 테리 길리엄 본인은 이야기의 신도였다. 그와 우리 모두에게 이야기는 신이고 우리 모두는 이야기를 믿는다. 성직자의 한 마디는 공간을 급속도로 수축시켜 이야기를 믿는 우리를 하나의 점으로 응축시킨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고, 외롭지 않고, 절대 패배하지 않는다.


이 얘기를 왜 하냐면, <국경시장>의 김성중이 우리들 사이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그녀도 역시 이야기를 신으로 섬기는 것 같다. 게다가 그녀는 꽤 높은 등급의 성직자로 보인다. 여기에 실린 8개의 소설은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다. 제사가 끝나고 나면 우리는 이 이야기를 나눠 가져 하나씩 입에 넣고 삼켜야 한다. "받아 먹으라. 그리고 땅 끝까지 이르러 이 말씀을 전하라."


세상이 팍팍해진 시기와 문학에서 서사가 사라지기 시작한 시기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그건 원인과 결과를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한 덩어리의 혼합물일 수도 있다. 세상이 팍팍해져서 서사가 사라진 건지, 서사가 사라졌기에 세상이 팍팍해진 건지. 과거엔 아파트 한 동 조차 끊임없이 서사를 낳는 이야기의 보고였다. 103호의 누구는 점심에 짜장면을 먹다 체했고, 204호의 누구는 와이프가 던진 맥주병을 맞아 이마가 깨지고, 403호의 누구는 올해 딸이 서울대에 입학했다더라. 그들은 103호나 204호나 403호에 모여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시시콜콜 그런 얘기를 떠들었다. 이야기가 그들을 하나로 엮어줬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오늘날 비인간적 주거 형태의 전형으로 지탄 받는 아파트에서도 이런 일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서사가 사라진 이유는 환경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목구멍에 고여 있던 이야기를 스스로 뱉어냈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야기들은 종종 단순한 재기로 치부되곤 한다. 깊이가 없다는 취급. 입담이 좋다. 훌륭한 소재다. 그러나 그걸로 끝. 문학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지 않겠는가. 문학이란 그렇게 가벼운게 아니... Bull Shit이다. 문학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여야 한다. 이야기가 없는 문학이야말로 공허한 껍데기에 불과하다.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원인과 결과를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역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문학이 죽어간 시기와 문학에서 이야기가 사라진 시기에 대해 말이다.


<국경시장>은 작가의 말까지 다 더해도 245 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 얇은 책이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소설은 바다처럼 거대하다. 개인적으론 현실의 냄새가 덜 나는 것들이 훨씬 좋았다. 환상과 상상의 관능적 교접. 책 제목이기도 한 '국경시장'은 그 중에서도 백미다. '쿠문'은 기묘한 이야기의 교과서고 '관념 잼'과 '에바와 아그네스'는 다소 모호하긴 하지만 그 희뿌연 안개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필멸'은 로알드 달의 성인용 소설 같다. 그리고 마지막 소설 '한 방울의 죄'는 이 작가가 조만간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소설을 한 권으로 엮어 우리를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낳게 한다.


김성중은 책의 말미에서 자신이 언제나 거대한 서사에 매료되어 왔음을 고백한다. 멜빌과 마르케스 같은. 그리고는 자신의 소설이 그에 닿지 못함을 자조한다. 욕심도 참 많다. 내 보기에 그녀는 이미 내해에 나가 돛을 올리고 순항 중이다. 수평선 너머의 대해가 코 앞인 것 같은데. 그 배에 나도 태워가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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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제 2017-09-19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경시장을 읽은터라 끌리긴 하는데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 극장>를 검색해보니 쉬운 영화는 아니네요. 그래도 추석 때 보게될 것 같아요.ㅎ 궁금한건 또 못참아서^^;;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deadPXsociety 2017-09-19 19:38   좋아요 0 | URL
그나마 대중적인 작품은 <12 몽키즈>인데요, 이 영화도 괜찮은 편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영화는 아니에요. 매니아들의 영화긴 하지만 ㅋㅋ

리제 2017-09-23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 몽키즈>는 오래전에 봤어요.ㅎㅎㅎ 오홋, 왠지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 극장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ㅎ

deadPXsociety 2017-09-24 09:40   좋아요 0 | URL
네 테리 길리엄은 고정 팬이 많은 훌륭한 감독이에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감독의 영화를 즐겨봤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