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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고쿠 닌자 이야기 - 60가지 주제로 알아보는
곽범신 옮김, 야마다 유지 감수 / 마나북스 / 2023년 9월
평점 :
핫토리 한조는 내 마음속에 '사무라이 쇼다운'의 검은 닌자로 남아있다. 플레이어를 끌고 하늘 꼭대기까지 올랐다가 머리부터 떨어뜨리는 커맨드는 우, 하, 우하단 강손. 딜캐는 하단 강손이 강력했다. 내 마음속의 닌자는 역시 핫토리 한조다.
한조는 실존 인물이었다. 원조는 아니었지만 닌자의 최전성기인 센고쿠 시대에서(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국을 두고 다투던 시대) 에도 초기까지 활약했다. 물론 혼자가 아니라 그 집안이. 핫토리 한조는 핫토리 가문의 당주를 일컫는 세습명이었다. 실제 닌자는 초대 한조뿐이고 이 대 때부터는 닌자 부대를 지휘한 사무라이였다고는 하나, 그 시절에 가장 이름을 떨쳤던 것은 분명하다.
닌자는 정규전을 벌이는 군대는 아니었다. 스파이와 특수부대가 결합된 형태라 볼만하다. 요인 암살, 정보 수집, 후방 교란, 여론 선동, 파괴 공작 등을 일삼았으니까. 센고쿠 시대에는 확실히 여러 다이묘들이 닌자의 필요성을 인지했던 것 같다. 실전에 투입되는 비율이 많다 보니 기술이 고도화하고 여러 장비들이 발명됐다. 여기엔 재미있는 것들이 꽤 많다.
우선 인술서라 불리는 비전은 실재했다. 그림자 분신술이나 나선환을 쓰는 법이 적혀있었던 건 아니다. 인술서의 핵심 내용은 '화약'을 다루는 방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화약은 최첨단 기술이었고 임진왜란이 증명하듯 조총이 전술과 전략의 대대적 변화를 이끌었다. 화약을 지배하는 자가 과연 전국을 손에 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평화가 지속된 에도 시대(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국을 통일해 도쿄에 근거지를 만든 시대)에 닌자들은 전공을 살려 '불꽃놀이 기술자'가 되었다.
인술과 체술의 수련도 거짓말은 아니다. 화둔이나 뇌둔이니 입에서 불을 뿜고 손에서 치도리를 날리는 건 아니었고 화약, 동물, 닌자 전용 도구를 이용한 도주, 은닉, 변장법에 일반적인 체력단련이 합쳐진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인상적인 것 몇 가지를 얘기해 보자.
우선 난바 보법. 보통 걷기는 팔과 다리를 엇갈려 휘두르는 게 일반적인데 이 경우 몸을 비틀게 되어 에너지 소모가 높다는 게 닌자의 관점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같은 쪽 팔과 다리를 동시에 움직여 걸었다. 현대에선 바보들이나 할 법한 이 행동을 너무 진지하게 얘기해서 웃기가 미안한데, 아무튼 이런 보법으로 마라톤 최강자 킵초게도 눈물을 흘릴 만큼 빠르게 달렸다 하니 믿어주자.
시력을 기르기 위해서 어둠 속에서 촛불을 바라보는 훈련도 했다. 불꽃을 보다 순간적으로 눈을 감아 암전에서 회복하는 시간을 줄이려는 노력이었을까? 안과 선생님이 들으면 기함할 것 같다.
청력 훈련도 중요했다. 여럿이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특정 인물의 목소리를 가려내거나 잡음 속에서 작은 소리를 포착하는 법을 훈련했다. 숫돌 위에 바늘을 떨어뜨린 뒤 그 소리만 듣고 몇 개인지 세기도 했다.
이런 훈련은 오후부터였고 오전에는 농업에 힘을 쏟았다. 주경야독이라고 해야 하나? 오래 매달리거나 성벽을 타고 오를 일이 많이 체중을 60kg 이내로 맞춰야 했다는데, 요즘 말로 갓생을 사는 게 바로 닌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