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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재나 ㅣ 마르틴 베크 시리즈 1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2월
평점 :
이 소설은 정말로 신비하다. 전개만 보면 진작에 책장을 건너뛰며 후루룩 넘겼을 게 분명한데, 이상하게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평범하고 지루한 이야기가, 짧지도 않다. 형사는 대단한 추리력도, 체력도 없다. 그는 아내에게 잔소리를 듣고, 전철로 출퇴근을 하며, 택시비를 걱정하는 소시민이다. 그가 이 사건의 해결에 기여한 점이라고는 그저 끝까지 견디며 자리를 지킨 것뿐이다.
저자는 두 사람이다.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 한 회사에서 서로 다른 잡지를 담당하던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전기가 통했고, 연인으로 발전했다. 셰빌에게는 아이가, 발뢰에게는 아내가 있었기에 두 사람은 발뢰의 이혼 후에야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결혼제도에 대한 불만으로 부부가 되진 않았지만 발뢰가 죽을 때까지 두 사람은 함께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썼다.
소설을 같이 쓴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내 눈에는 갈등과 싸움의 광경만이 끝없이 펼쳐진다. 줄거리는 누가 짓고 인물은 누가 만드는가. 모든 걸 같이? 아니면 서로 나눠서? 이 힘든 일을 두 저자는 시리즈의 마지막까지 해냈다. 무려 10권이다. 발뢰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두 사람의 작업은 비로소 매듭을 지었다.
셰발과 발뢰는 처음부터 10권을 생각했고 그때부터 완전한 의견일치를 보았던 게 분명하다. 이야기엔 분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한 필의 비단처럼 매끈하다. 두 사람이 기자 출신이라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현실의 경찰이 현실의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 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사실을 엮어내면 된다. 취재를 나눠하기도 좋고, 이야기를 붙이는데도 문제가 없다. 이게 바로 <로재나>의 핵심이다.
<로재나>는 소설이지만 마르틴 베크의 사건 일지, 혹은 일기, 혹인 관찰기의 성격을 띤다. 사건은 간간이 들어오는 단서를 기점으로 약간의 진전을 보이지만 여전히 느릿느릿 움직인다. 다만 우연을 다루는 방식이 절묘하다. 피해자가 찍힌 사진이 나타나고, 8mm 필름이 발견되고, 거기에 용의자가 찍혀있고, 순찰을 돌던 순경이 우연히 용의자를 발견하고. 전혀 극적이지 않아 이야기의 풀을 죽일법한 고약한 우연들이 아주 매끄럽게 붙어있다. 오! 하는 느낌과 함께 독자는 마르틴 베크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부분이 정말로 신비롭다.
<로재나>는 1965년에 출간 됐다. 당시 스웨덴에서는 이언 플레밍의 007 같은 시리즈가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 장르의 틈바구니에서 이런 가미되지 않는 맛이 어떻게 독자의 입맛을 사로잡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출간 즉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중장년 층은 당혹스러웠고 젊은 세대는 열광했다고 한다. 외부에는 부르주아 복지 국가로 알려진 유토피아 스웨덴. 그 그늘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건조한 소설은 도대체 어떤 힘을 숨기고 있는 걸까?
두 작가가 이 장르를 선택한 이유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바라서였다고 한다. 골치 아픈 기사는 눈에서 멀리하고 싶지만 같은 얘기도 소설로 풀어내면 여름휴가에도 따라갈 수 있다. 이 영리한 작가들의 위대한 시작이,
바로 <로재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