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정지돈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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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읽고 나에게 문학을 해석할 틀이 전혀 없음을 깨달았다. 뒤늦은 깨달음이긴 하지만 어렴풋이 인지해온 바이기도 하니 공공연하게 떠돌던 구조조정 소문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거라고 보면 된다. 나는, 지금껏, 문맹이었다.


해석의 틀이 없다는 건 독자일 때보다 쓰는 사람일 때 더 치명적이다. 소설은 그냥 이야기로 끝나선 안 되니까. 이야기 속에 뭔가를 담아야 하는데 틀이 없으면 차곡차곡 일관성 있게 담기지 않는다. 그래서 내 글은 구멍 투성이. 곰곰히 들여다보면 엉터리 방터리다.


어찌해야하나? 고민이다. 앞으로는 평론을 좀 읽어볼까 싶다. 틀을 짜는 법을 배우면 이야기 짓기가 지금보다는 훨씬 쉬워질지 모른다.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구매 결정하는데까지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우선 대상 수상자가 83년생이다. 자극이 됐다. 동시대, 비슷한 나이대의 소설가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얘기할까. 이것은 그 쪽 바닥에 발 붙일 길 없는 나같은 외인에게 대단히 궁금한 얘기다. 소설가들이 자주 모이는 카페 구석에 앉아 홀로 자몽에이드를 홀짝이며 그들이 떠드는 말을 엿듣는 기분으로.


대상 수상작 <건축이냐 혁명이냐>의 처음 몇 페이지는 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페이크 다큐 풍의 이 소설은 역사와 허구를 교묘히 섞어 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문체 또한 진지한 나레이터의 모습을 하다가도 어느새 코미디언이 되어 소설을 스탠딩 코미디로 만든다.


가장 흥분되는 건 이 소설에 소설같은 느낌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건축이냐 혁명이냐>는 확실히 이야기에 가까웠다. 그냥 이야기. 뜨끈뜨끈한 타이어 위 버스 좌석에 앉아 집에 도착할 때까지 들려주는. 흔들리는 전철의 손잡이를 잡고 서서 방금 앞에 생긴 공석을 서로 사양하다 "얘기하기 불편해 그냥 서서 가자"하며 나누는 것. 여기에 무슨 놈의 상징이 있고 대단한 진리가 있겠는가.


그래서 <건축이냐 혁명이냐>의 제목은 기가막힌다. 틀을 만들어 아래서부터 차곡차곡 소설을 지을 것인가 아니면 틀이고 나발이고 깡그리 부숴버려 그 위에 앉아 동네 사람들을 불러 놓고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그야말로 건축이냐 혁명이냐.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혁명이다.


건축을 모르고 건축이 힘들고 그래서 혁명으로 도피한다는 의혹의 눈초리를 받을 수 있다. 정색하고 부정할 일은 아니다. 정말로 나는 건축을 모르니까. 다행히도 소설의 끝에는 한 편의 평론이 짝꿍처럼 붙어 있다. 언제나 소설 뒤에 설 수 밖에 없는 이 짝꿍이 나는 가끔 안쓰럽다. 그러나 이 짝꿍 덕분에 어떤 기회를 얻었나? 건축이냐 혁명이냐, 이 진지한 물음에 대답할 기회. 나는 정말로 혁명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니 모르겠다. 이제와서 딴 소리를 하면 어떻게 하나? 추궁해도 어쩔 수 없다. 아직은 모르겠다. 정말로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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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물 이야기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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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은 미야베 미유키였다. 오랫동안 헤매다 드디어 길을 찾았다. 장르 소설이지만 문장을 허투로 쓰지 않는다. 이야기가 촘촘이 짜여져 있다. 책을 읽어 나갈 때마다 그 부드러움이 눈 끝에 와 닿는 것 같다. 이 사람이라면 명성과 판매부수가 이해된다. <오사카 소년 탐정단>과는 차원이 달랐다.


9개의 단편이 연작으로 늘어선 책이라 대단한 스케일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건 아니다. 소소하다. 분량 탓에 고조되던 미스테리가 어이없이 툭 꺽이기도 한다. 추리 미스테리 장르의 압도적 긴장감을 느끼고 싶은 사람은 100% 실망한다. 그러나 <맏물 이야기>를 읽어본 뒤 나는 확신하게 됐다. 이 사람의 두꺼운 장편들이 결코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리라는 것을.


<맏물 이야기>는 에도 시대 서민들의 사건 사고를 다룬다. 주인공은 모시치. 오캇피키다. 에도 시대 도쿄 한 구역의 파출소장 쯤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부하는 두 명을 거느린다. 어리고 성급하지만 빠르고, 정보를 수집할 때 만큼은 인내심을 발휘하는 이토키치. 느리고 덩치까지 어마어마해 소라고 불리지만 범인을 제압할 땐 신속한 무력을 발휘하는 곤조. 경험 많고 냉철한 대장 밑에 행동파 부하 두 명이다. 자로 잰듯 균형을 갖춘게 도리어 전형적으로 보이는 면도 있지만 이 조합만으로도 벌써 이야기가 기대된다. 거기다 건달 가쓰조와 의문의 무사 출신 요리사, 도력을 갖췄다고 알려진 아이가 추가된다. 저마다 독특한 내력이 있음은 당연하다. 이어지는 단편은 떡밥을 던지듯 조금씩 조금씩 단서를 흘린다. 그 한 조각을 입에 문 순간 작가의 챔질에 독자는 입이 꿰어 속절없이 끌려갈 수 밖에 없다. 이런걸 보통 몰입이라고 부르지. 


잘 만들어진 캐릭터는 대개 등장하는 순간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종이 위에 있지만 살아 있는 생명체다. 작가 자신도 이야기를 말하는 게 자신인지 아니면 캐릭터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된다. 이들을 보고 있으면 그렇다. 작가의 존재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맏물 이야기>의 강점은 튐 없이 매끈하게 빠져나가는 부드러움이다. 특히 이야기에 억지가 없다. 대개의 추리 소설은 현실에선 도저히 가당치 않은 범죄를 일으키고 보통의 인간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트릭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사람들은 명탐정의 천재적 추리 능력에 감탄하지만 사실은 범인의 천재성에 감동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한다. 명탐정의 추리력도 범죄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범죄가 천재적으로 벌어지지 않는 이상 추리도 천재적일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에도 시대의 서민이고, 그래서 사건 또한 서민적이다. 있을 법하고 현실적이다. 추리 또한 오랜 경험에 의한 직관, 정황을 수집해 직조하는 추론이 잘 어우러져 타당하게 흐른다. 어찌보면 심심하다 할 정도로.


에도 막부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어지는 삼장군 시대의 마지막에 해당한다. 도쿄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오사카를 기반으로 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잔당을 쓸어내고 세운 일본 최후의 막부다. 이후 약 200년간 전국은 평화를 유지했다. 그런데 이게 아이러니다. 세계는 바야흐로 태평의 우상향 곡선을 그리는데 개개의 삶은 여지없이 흥망성쇠를 되풀이 한다. 평화의 시대에도 인간은 있고 인간이 있으면 욕망이 있고 욕망이 있으면 사건이 있다. "바람 냄새도 향긋한 오월"에 가다랑어 회를 썰어 먹으며 모시치는 범죄의 전말을 추리한다. 평화와 파멸의 묘한 공존. 그 분위기가 이 책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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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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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라는 소릴 듣고 "재작년에 내가 본 건 뭔데?" 라고 생각하며 사들었다. 읽고 보니 9년 만에 내놓은 단편집이라는 얘기였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괜찮게 됐어. 나는 단편을 좋아하거든.


하루키의 장편은 대개 두꺼웠었다는 기억이다. 그래서 지루하면 더 참을 수 없었다. 단편집은 하나가 지루해도 조금만 참으면 또 다른 하나가 나온다. 핵노잼의 지옥에서도 기대의 꽃은 피는 것이다.


이 책에는 전부 일곱 편의 단편이 실린다. 당연하게도 모두 단편이지만 한국에서 통용되는 200자 원고지 800장 내외의, 천편일률적인 1만 6천자 짜리 소설은 아니다. 일본 출판계에도 이런 규칙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하루키가 그런 걸 지킬 이유는 없겠지. 문학상 공모전에 원고를 내진 않을테니까 ㅋㅋㅋ. 어쨌든 그래서 어떤 건 좀 길고 어떤 건 그거 보단 좀 짧고 그렇다. 바꿔말하면, 어떤 건 뭐 이런 얘기를 이렇게 길게 써 하는 게 있고 어떤 건 야 여기서 이렇게 끝내선 안돼 더 이야기를 들려줘 라는 게 있다는 말이다.


작품간 편차라는 건 있을 수 밖에 없고 하루키도 인간인 이상 그 한계를 보여주는 건 당연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여자 없는 남자들>을 읽고 나면 이 사람이 진정 어마어마한 이야기의 대가구나 하는 생각에는 대부분 공감하게 될 것이다.


특히 나는 익숙한 평범의 세계를 걷다 문득 불가해의 샛길로 빠져드는 하루키 소설 특유의 황당함이 진짜 좋다. 이를테면 <1Q84>,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해변의 카프카>처럼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초자연의 세계로 도약하는 것들 말이다. 이럴 때 이 소설들은 무시무시한 흡입력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이러쿵저러쿵해도 하루키의 매력은 바로 이거다. 강렬한 이야기의 흡입력. 상징이니 문학성이니를 떠나서 그냥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매력.


이 단편집을 읽으며 나는 오랫동안 멈춰 있어 녹이 슨 내 대뇌의 한 영역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한 동안 솟아나지 않던 새 소설에 대한 구성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온 것이다. 하루키의 소설에서 모티브를 얻은 게 아니다. 평범한 얼굴의 그의 소설이 갑자기 낯선 이면을 휙 드러내듯 그냥 그렇게 뜩 나타난 것이다. 아무런 연고도 인과도 필연도 없이 생성된 생각의 무리들. 나는 이 생각의 무리를 소중히 안아들고 책장을 덮었다.


이 책에서 단 한 편의 소설을 꼽으라면 <기노>를 들고 싶다. 위에서 충분히 얘기한, 내가 좋아한다는 그런 류의 소설이다.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하나를 더 꼽자면 <드라이브 마이 카>다. 얼핏 지루한 이야기가 50페이지 넘게 이어지지만 그 지루함의 껍질 사이로 솟아나온 이면의 가시들과 그 가시들을 한 칼에 쳐내 그대로 드라이브 쓰루하는 능력은, 이 이야기의 드라이버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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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의 국가와 역사
시오노 나나미 지음, 오화정 옮김 / 혼미디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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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라는 이름만 듣고 덜썩 구매한 게 잘못이었다. 수 천년의 역사를 양 손에 쥐고 주물러온 여자다. '국가와 역사'에 대한 심사숙고, 특유의 쿨한 문체로 써내려가는 혜안을 기대했는데, 그냥 여기저기 널려 있던 글을 짜집기한 책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글 사이사이 등장하는 편역자의 참견은 사족도 그런 사족이 없어. 만드느라 애쓴 사람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시오노 나나미에게 최고의 남자는 마키아 벨리였고 마키아 벨리에게 최고의 남자는 체사레 보르자였다. 이 세 사람을 하나로 꿰뚫는 문장은 이거다.


"뭔가를 지키고 싶으면, 때로 그것의 근본정신에 어긋나는 일도 감히 하는 용기를 갖지 않으면 안된다."


예컨대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자들이 이를 위해 민주적 방식만 고집하다간 결국 비민주적인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몰락한다는 것이다. 정의와 이상은 현실에 비하면 한 줌에 불과하다. 그걸로 원하는 바를 거머쥘 수 없고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다면 그 정신이 아무리 숭고한들 쓰레기에 불과한 것이다. 극단적 실용주의와 철저한 현실 인식. 자신의 주장을 내뱉음에 있어 한치의 주저도 없는 자신감. 시오노 나나미에게 마음을 뺏긴 사람은 대개 여기에 꽂힌거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여자를 적으로 만나고 보니 그 쿨함이 섬뜩함으로 다가온다. 작가가 아닌 일본인, 특히 그 일본인이 자국의 외교에 대한 견해를 피력할 때 한국인인 나의 가슴은 증오와 경멸로 날카롭게 벼려진다. 이럴 때 이 할머니는 영락없는 극우파 싸이코패스의 모습을 한다.


"유럽은 무려 천 년 동안 서로 전쟁을 했습니다. 바로 그런 것에 대한 반성으로 '최소한 전쟁은 하지 말자'며 EU를 만든 겁니다. 그런데 아시아는 섬 이름이니 바다 이름, 신사 참배 같은 체면 문제로 옥신각신하고 있으니 안타깝습니다."


유럽이 EU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런 것에 대한 반성"이 전범국의 철저한 반성과 화해의 노력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총리의 신사 참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단지 개인의 의사 표현에 불과한가? 한 나라를 대표하는 자가 전범의 위패 앞에서 고개를 속인다. 그 순간 총리가 떠올리는 생각은 무엇인가? 전범국으로서의 반성인가? 아니면 전쟁 패배에 대한 반성인가?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부르면 독도는 다케시마지 더 이상 독도가 아니다. 독도가 아니라면 그 섬이 한국의 것일 수 없다. 이름은 단순한 겉치레가 아니다. 이름은 권력을 반영한다. 소유권이 있는 자만이 명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름을 바꿔 부르면 소유를 뿌리서부터 흔들 수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기본적으로 일본을 전범국으로 간주하는 것 같지도 않고 타인의 고통에 매우 둔감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전쟁의 잘못은 자신들이 저지른 비인륜적 행위가 아니라 그 전쟁에서 패배한 거라고 여기고 있다. 이러한 태도로는 일본의 외교가 얻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실제 일본은 아베 총리 취임 이후 전세계적 왕따가 되어 외교의 장에서 자취를 감췄지 않은가?


남의 나라 남의 역사를 얘기할 땐 쿨하고 대범한 실용주의를 펼치지만 내 나라 얘기가 나오자 평범한 노인네의 뻔한 '곤조'가 드러난다. 나는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곤조를 지키고 싶으면, 때로 그것의 근본 태도에 어긋나는 일도 감히 하는 용기를 갖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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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imoon 2015-07-12 20:48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감상평이십니다..저는 시오노 나나미를 군국주의자로 생각합니다..

WiredHusky 2015-07-16 13:07   URL
시오노 나나미는 힘에 대한 의지가 어마어마한 사람 같습니다. 패권주의자에 군국주의자 같은 느낌이 있죠.
 
행복만을 보았다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지음, 이선민 옮김 / 문학테라피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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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게 현대 프랑스 문학의 특징이고, 또 그래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한다는데, <행복만을 보았다>는 그 전형을 보여준다. 아무래도 요즘 사람이 쓴 거니까. 


1, 2, 3부로 나뉜 구성 중 1부는 오로지 화자의 내면 고백만으로 진행된다. 말투는 무심하지만 그 속에 미지의 우울을 숨겨둔다. 미지의 것에 독자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감지된 위험은 옅은 긴장을 두른 채 앞으로 나아간다. 그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141p까지 걷다 보면 독자의 감각도 역치에 다다라 더 이상 위협을 감지하지 못한다. 위험이 일상이 되면 더 이상 위험이 아니니까. 그 순간 이 작가가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했으면 한다. 치명적 일격을 가하기 위해 맹수는 인내하고 또 인내한다.


"영혼의 근간을 흔드는 작품"이라거나 "삶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하는 소설"인지는 잘 모르겠고 평범해 보이는 삶 속으로 깊이 헤엄쳐 들어간 공허와 우울을 땅 위로 건져 올렸다는 점에서 감탄할만한 소설이다. 이제 그 우울과 공허는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말라 비틀어질 것이다.


삶을 파괴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정말 우연히 찾아오나? 재앙을 당하는 사람은 그저 운이 없었던 것 뿐일까? 이것들이 언제 어떻게 나타나 우리를 집어 삼키는지 알고 있는가? 가끔 뉴스를 보면 지나칠 정도로 성실했던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미친짓을 벌이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보통의 샐러리맨, 성실했던 아버지가 초등학교 앞에서 상습적으로 성기를 꺼내 가정을 파멸시킨다. 두 눈 가득 사랑을 담아 갓 태어난 아이를 바라보던 엄마가 아이를 목 졸라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단순한 일탈, 혹은 특정 사람만이 갖고 있는 특수한 정신 결함으로 치부하기에 그것의 겉모습은 몸서리쳐질 정도로 평범하다. 


당신은 <블레이드 러너>의 릭 데커드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평범과 똑 닮았지만 실상은 평범의 가면을 쓴 발작을 찾아내야 하는. 당신이 정말 릭 데커드라고 생각한다면, 한 가지만 더 생각해줬으면 한다. 안드로이드를 체포하려는 당신 조차 안드로이드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똑같은 발작을 지니고 산다. 그것은 평범의 얼굴을 한 우울과 허무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난다. 평생 한 번도 그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방식으로 나타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특정한 사람들만이 가진 특수한 정신 결함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이라는 종 자체에 내재된 원초적 결함이다. 그레구아르 들라쿠르가 힘겹게 낚아 올린 거대한 물고기를 유심히 쳐다보라. 그리고 당신 마음 속 깊숙히 헤엄쳐 들어가 그것과 똑 닮은 물고기를 작살로 찍어 물 위로 올라오라. 그것이 우리를 파괴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것을 파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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