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 신경숙 짧은 소설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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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안~주면 가나봐라~, 그~칸다고 주나 봐라~

 

한동안, 이 책을 읽고 내 입에서 시도 때도 없이 중얼거려진 말이다.

키들키들 거리면서 한 번씩 소리죽여 그 구절을 읊조릴 때마다 즐거움이 퐁퐁 솟아오른다.

 

옛날 옛날~하면서 시작된, 과부와 스님의 어이없는 줄다리기 한 판 이야기이다.

어쩌다 푸르디 푸른 몽골 초원에서 열 두 명이 여섯 명씩 편을 갈라 술병을 두드리며 한 편은 -안~주면 가나봐라~를, 다른 한편은 -그~칸다고 주나봐라~를 주거니받거니 하다가, 점점 염불소리처럼 장중해졌다.

한 외국인 여자의 원더풀, 원더풀 소리와 뭐에 홀린 듯한 얼굴 때문에 일행은 끝없이 반복해야만 했다는 이야기.

 

그 사이에 초원의 풀꽃들이 입을 다물고, 먼 길을 떠났던 말들이 돌아오고, 해가 저물고, 초원에 살던 몽골 소년은 밥 먹으러 집으로 불려들어가고, 달이 떠오르고 있었대.-160

 이야기에 곁들여진 달의 모습은 독자의 양손에 안겨주는 작가의 보너스다.

 

신경숙은 묘한 매력을 지닌 작가다.

그녀의 글을 읽을 때면 나도 모르게 내 속으로 자꾸만 빨려 들어가고, 급기야 더 이상 내려갈 곳 없이 침잠하고 만다.

내 안에 고치를 틀고 한동안 그 안에서 끙끙대야 한다.

한 뼘 자라고, 또 한 뼘 자라 우화할 때까지 고치 생활이 계속된다.

실로 칭칭 동여매어진 그 속에서 나는 내 영양분을 보충 해야 하고, 스스로 상처를 보듬어 안아보고, 핥아보고, 새살이 돋을 때까지 어루만져야 한다.

신열이 나도 참아야 하고, 온몸이 땀에 젖어도 어찌할 수 없다. 네 활개가 웅크려진 몸속에 가두어져 있어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신은 말짱하다. 날개를 달고 나가야 한다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그 하나만을 빛줄기로 삼아 기도한다. ‘어서 빨리 날개를 달고 나가게 해 주세요.’

 

<엄마를 부탁해>는 가족과의 관계에서 덜 자란 나를 성숙하게 만들었고, <바이올렛>, <외딴 방>, <깊은 슬픔>등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나를 찔러 대는 가시들이었다.

그런데, 이번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나를 드러내게 하는 이야기들이다.

작가가 한없이 관대하고 부드러운 시선으로 관찰하고 조망해온 삶의 이야기들이 ‘바로 내 이야기’인 듯 잔잔하게 서술되어 있다.

은은한 달빛 아래 그녀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은, 한 치 거스름도 없이 달이 차오르고 이지러지는 자연의 섭리에 맞춰, 내 가슴에 부드럽게 스며든다.

“아~하. 그렇구나.”

“그래, 그런 적이 있었지.”

“나도 아마 그랬을 거야. 그 사람의 입장이었다면, 나라도...”

한없는 수긍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빙그레 미소짓는 동안, 어느새 책장은 마지막 장을 남겨두고 있었다.

 

휘영청 떠오른 밝디 밝은 보름달 아래, 갈색 줄무늬와 어두운 청회색의 잔등을 가진 고양이 두 마리가 담벼락에 서로 기대어 앉아 있다.

신경숙은 두 마리의 고양이가 그러했을 것처럼 부드럽고 영리한 시선으로, 담벼락 아래 인간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고, 소곤소곤 얘기해주고 있다.

나도 모르게, 내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소리 내어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은 충동이 일게 말이다.

아이들을 붙잡고, “얘들아, 오늘은 말이야, 엄마가 맛있는 걸 만들었거든? 한 번 와서 먹어볼래?”

라든가,

“오늘은 일이 어땠어요, 힘들진 않았어요?”

라는 식으로.

가족에게도 한 발짝 먼저 다가가 한결 나긋나긋해진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나로 변신시켜주는 마법의 가루가 달빛 속에서 흘러나오기나 한 듯이 말이다.

 

달에게 먼저 전해진 이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들이 가능하면 당신을 한번쯤 환하게 웃게 해주었으면 좋겠다-작가의 말

 

마음 먹은 대로, 글을 쓰고 그 글의 의도대로 이루어졌으니...작가님. 마음 놓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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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마음 씀씀이가 좋아지는 마법의 말 25 야마자키 다쿠미 시리즈 1
야마자키 다쿠미 지음, 김하경 옮김 / 에이지21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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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마음 씀씀이가 좋아지는 마법의 말 25>

개인의 개성을 살리는 멘탈 디자이너 야마자키 다쿠미 시리즈 1탄!

 

초등학생 아이를 두고 보니, 엄마들과의 모임이 잦아진다.

웬만하면 치맛바람 일색인 초등학교 엄마들의 모임에 끼기 싫었다. 그냥 조용히 아이 학교 보내고, 준비물 챙겨 보내주면 되려니...하면서 학부모 임원에도 끼지 않고 아이의 1학년을 시작했다.

그런데 엄마인 나는 조용히, 가만히 있는데, 워낙 활동적인 내 딸아이가 먼저 나서서 난리다. 왜 엄마는 아무 것도 안하고 학교 일에 신경을 안 쓰냐고.

다른 엄마들은 아침 학교 교통지도도 서고, 급식 검수도 하고, 하다못해 교실에서 급식 지도를 한다든지 청소를 해주는데, 엄마는 아무 것도 안하기냐고.

아이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엄마들과의 모임이 적으리라 생각한 교통 지도를 서기로 하고 “이제 됐지?”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한 발짝 담근 이상, 엄마들의 연락망에서 빠져 나올 수는 없었다.

운동회며, 봄 소풍이며, 어린이날 등등.

무슨 때만 되면 엄마들은 모임 날짜 잡기에 바빴다.

에휴~가서 할 말도 없는데, 무슨 모임은 맨날 모임이냐.

말주변 없는 내가 엄마들 모임에 끼어 조용히 쑥맥 마냥 있다가, 남들 하는 말에 상처입고 오기 일쑤여서, 남편은 모임 나간다는 나를 주저앉혔다.

“괜히 가서 우는 얼굴 하고 들어오지 말고, 그냥 집에 있지?”

“그럼 딸래미부터 달래든지...”

결과는? 딸래미 승.

나는 ‘울며 겨자먹기’ 로 엄마들의 모임에 나갔다.

 

 

엄마들끼리의 관계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있더라.

워낙 둔하고 눈치가 없어서 입에 발린 말, 인사치레 같은 것들을 잘 못하는데, 내가 선배맘으로 맘 속에 두고 있는 내 아이 친구 엄마(^^)는, 처세술이 상당했다.

곁눈질로 배우기에도 한계가 있고, 엄마들 모임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고민 중이었는데, 이런 유익한 책이 나와 나도 모르게 올린 환호성, 올레~

주목을 끄는 법, 이야기를 매끄럽게 시작하는 법.

등을 꼭 배워두고 싶었다.

 

책이 오자마자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읽는 시간은 30분 정도 잡으면 될 것 같다.

워낙 책이 아담하고, 포켓북 사이즈이면서 126페이지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뒷면을 펼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책은 2005년에 출간된 <내 주머니 속의 성공수첩>의 개증판이란다. 인기가 많은 책이었나 보다. 나같이 대화의 기술에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

 

제목이 무지무지 길지만 내용을 짤막하다.

1번부터 25번까지 마법의 말들이 나열되어 있다.

생활 속에서 응용하기 쉽게 짧은 대화를 통해서 알려준다.

주위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마법의 말은? 그거, 좋은데!

호의를 끌어들이는 마법의 말은? 정말 기뻐요!

상담에 응하는 마법의 말은? 앵무새 화법

그리고 내가 꼭 배우고 싶었던 말,

주목을 끄는 마법의 말은? 있잖아, 그거 알아?

이야기를 매끄럽게 시작하는 마법의 말은? 말을 꺼내기 저에 자신이 느낀 점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예를 들어, 어쩌면 이미 아실지도 모르지만-이라든지, 지금 무척 긴장됩니다. 등.

이렇게 하면 ‘마음 속에 있는 말’과 ‘실제로 하려는 말’사이에 균형이 잡혀 이야기가 매끄럽게 흘러간단다.

 

대인관계에서 자신감을 갖지 못해 나처럼 모임을 회피하려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 알려주는 기술들은 하나같이 “배려”의 묘미를 제공한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독특한 성공법칙 중 하나는 남을 편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란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 마음이 깔려 있을 때, 마법같은 말들이 효과를 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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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첫 번째 Jazz - 전설적인 재즈 아티스트와 매혹적인 명곡을 만화로 만나는 재즈 입문서
강모림 글.그림 / 컬처그라퍼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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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인생 첫 번째 Jazz>

 

꺄~하하.

내가 좋아하는 강모림 작가가 책을 냈다.

그것도 나에게는 생소하기만 한 Jazz에 관한 책을...

 

 

 

그렇지만, 강모림 작가가 소개해주는 책이니, 감사히 읽으련다.

두근두근 기대로 설레는 맘이 반이요, 어려운 내용이어서 혹시나 중간에 책을 덮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반이다.

 

 

ㅋㅋ~ 아무나 받는 저자 친필 사인이 아니라오~

 

 

쿵짝 쿵짝. 이 아닌가....음, Jazz의 리듬을 어떻게 살려야 하지?♩♪♬~그래, 이게 딱이다.

첫 장을 넘기는 순간, 내 걱정은 기우였음이 판명되었다.

강모림 작가의 책을 읽다가 덮다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있어서도 안되는 일인 것을...

두 아이 엄마가 되고서부터 항상 듣는 음악이라고는 동요에 전래동화 CD들 뿐이었으니, 그동안 내 귀가 얼마나 혹사당했나..

새삼, 아이 키우던 세월이 휘리릭~ 지나가면서 “나는 그동안 뭐하고 살았나”하는 신세한탄이 스물스물 새어나오려 한다.

그러니까. 지금 Jazz에 대해서 책 좀 읽고 음악의 향기를 맡으며 살아보자는 거 아니냐...진정, 진정.

아이들이 없던 꽃같던(!) 시절에도 배*수의 <**캠프>에서 흘러나오는 팝음악들을 사랑했던 터라, Jazz란 장르는 한없이 낯설기만 하다. 유명한 재즈 넘버는 아주 가끔, 들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책의 앞부분에서도 밝히고 있는 바, 이 책은 

 

-전설적인 재즈 아티스트와 매혹적인 명곡을 만화로 만나는 재즈 입문서-

 

인 것이다.

 

나처럼 Jazz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주저 없이 이 책을 집어 들어, 일단 펼쳐 보고 일독하길 권한다.

절대, never, 실망할 일은 없을 터이니.

글은 안 읽더라도, 그림만으로도 영혼의 배고픔은 채워질지어다.

내가 귓등으로 얻어들은 재즈 아티스트들은 누가 있었던가. 기억을 떠올리기도 전에 첫 머리에 “루이 암스트롱”이 나온다. 만화의 형태를 빌렸으나, 실물의 판박이인 듯한 모습에 일단 감탄을 먼저 하고 본다.

 

 

“수십억 년의 우주 시간 중에서 같은 우주, 같은 은하계, 같은 태양계, 같은 행성, 같은 나라, 같은 도시, 바로 여기에서 만난 사람, 당신이야말로 신이 내린 축복이다.”

-칼 세이건,<코스모스Cosmos> 중에서                                        -10

 

이 구절은 책을 펼친 그 순간부터 책을 덮는 마지막까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명문이다.

++루이 암스트롱을 필두로, 빌리 홀리데이, 냇 킹 콜, 스탄 게츠 등 Jazz역사에 있어 길이길이 이름을 남길 유명 재즈 아티스트들의 이야기가 먼저 펼쳐진다.

 

뭐냐, 저 할배는...

툭 하고 튀어나오는 강모림식 유머.

그 때마다 나는 내 배꼽을 그러쥐어야 했다.

 

 

++그 다음은 영화속 재즈

내가 몰랐던 것 뿐이지, 영화 속에 삽입되었던 재즈들이 이렇게나 많았나, 싶다.

 

 

감이 오는가?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

냇 킹 콜의 Stardust, 레이 찰스의 Over the rainbow, 루이 암스트롱의 A kiss to build a dream on,

"As time goes by"등등.

당장, 이 영화를 다시 봐야겠어!

 

++쉽게 읽는 재즈 히스토리

재즈의 역사가 이어져 있다. 하나도 머리 아프지 않다. 작가의 그림과 함께 읽어내려간다면...

 

 

그 뒤를 이어, ++마이 재즈 플래닛,++ 단번에 좋아지는 재즈 8, ++재즈 카페를 찾아서. 등.

Jazz 초보들을 위한 작가의 다양한 시도가 좋았던 책이다.

 

 

 

작가의 블로그에서 전국의 재즈 카페에 대한 자료를 모은다는 공고문을 본 적이 있다. 그 때, 도움을 준 듯한 몇 분의 이름도 책에 친절히 언급되어 있다.

세세한 부분 하나까지 신경을 써서 만들어진 책임에 틀림없다.

작가의 인생에서 7년의 세월을 차지하고 작품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Jazz.

어느 따스한 봄날, 내게 다가온 Jazz를 나는 이제 놓지 않으련다.

왠지, 시내 뒷골목을 뒤져 숨겨진 Jazz아티스트의 명반을 찾아내고 싶은, 1人, 여기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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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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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너의 목소리가 들려>

 

봄인데, 바람이 많이 분다.

따뜻한 남쪽 지방이라 벚꽃이 빨리 피고, 벌써 다 져버렸다. 더이상 흩날리는 벚꽃의 장관을 못 보겠지, 했는데, 이번 바람에 꽃잎을 틔웠던 꽃줄기가 맥없이 스러진다. 바람의 소용돌이 속에서 뱅글뱅글 춤을 추며 떨어지는 꽃줄기들의 향연.

바람이 우수수.

하는 통에

내 마음도 우수수다.

거기에 더해,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주인공 제이도 우수수...

 

원나라 말기의 항저우에서 있었던 놀라운 마술. 이븐 바투타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우리는 이렇게 읽고 있다.

 

마술사는 사라진 어린 조수를 찾아 밧줄을 타고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다.잠시 후, 마술사 역시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아득한 하늘이 문득 무겁게 느껴진다. 허공을 우러르는 사람들의 목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그때 갑자기 저 높은 곳에서 어린 조수의 팔, 다리, 머리, 몸통이 차례로 떨어져내린다. 둔탁한 소리가 나고 신선한 피가 튄다...잠시 후, 양손에 선혈이 낭자한 마술사가 밧줄을 타고 다시 내려와 여기저기 널브러진 조수의 몸뚱이들을 화가 덜 풀린 얼굴로 양동이에 주워담는다 ...뭘 더 바라는 거요? 그런데 그때 마술사의 뒤에서 뭔가 소리가 들린다. 양동이를 덮은 거적을 들추고 아이가, 마치 긴 낮잠에서 깨어나기라도 하듯, 눈을 비비며 걸어나오는 것이다. -8

 

섬뜩하면서도 놀라운 마술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끝날 때까지 이 마술의 여운을 그대로 품고 있다.

그 소년이 제이였을까...

읽기 전에 문득 궁금해졌고, 읽는 동안 내내 궁금하고, 다 읽고 나서도 끝내 궁금함은 풀리지 않았다.

목소리만을 남겨두고 홀연히 ‘승천’해 버린 제이.

 

수천 대의 버스가 엇갈리고 수십만의 사람들이 드나드는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어린 엄마의 몸을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난 제이는 돼지엄마의 보호 아래 유년기를 보냈으나, 곧 버림받고 만다. 시설의 보호마저도 박차고 나와 나름의 세계를 구축하며 길거리 생활을 시작하는 제이는 특이함, 그 자체다.

어린 시절 선택적 함구증으로 말을 못했던 동규와 가정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밖을 헤매던 목란이 제이를 그나마 가까이 겪어보았던 사람이다.

이런 저런, 여러 가지 이유로 집과 가족이 있어도 제발로 걸어나온 동규와 목란.

그리고 처음부터 길에서 살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난 제이.

그들의 삶은 너무 아리다.

이야기로 풀어놓을라 치면, 책 수십권은 될 거다...하는 나의 삶도 그들의 삶 앞에선 그냥 쭈그러져 있어야 하는 조그만 보따리에 불과하다.

 

어린 시절, 내가 그렇게도 읽고 싶어하던 명랑소설 대신에, 아빠는 줄기차게 소년소녀 가장들의 생활수기 모음집을 그렇게 사다 나르셨다.

재미도 없고, 눈물만 나는 그런 책들을 왜 사다 나르시냐고...

어린 나이에 그런 책들을 읽는다는 건....정말 교육적이지 않다고, 소리쳐 말하고 싶었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아빠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만약, 만약에 아빠가 버팀목이 되어 주지 못한다 해도, 살아야 할 이유는 있다.’ 정도를 알게 해주고 싶으셨던 거겠지.

부모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으니, 문득 내 부모님이 생각나고, 내 아이들이 생각난다.

광복절 폭주를 뛰는 길거리로 내몰린 아이들아...집으로 돌아가거라.

이제, 너희들의 정신적인 지주, 제이는 없다.

 

“제이가 바로 저예요.”

“그게 무슨 소리야?”

...

“요즘 들어 자꾸 제이 목소리가 들려요.”

“뭐라고 하는데?”

“새로운 말은 없어요. 예전에 걔가 했던 말이 마치 녹음기라도 틀어놓은 것처럼 다시 들려요.”

“가장 자주 듣는 말은 뭐니?”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만다, 예요.”

“제이가 했던 말이지? 그런데 그게 무슨 뜻이야?”

“뜻은 모르겠어요. 그치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어쩐지 제이가 저를 용서한다는 느낌이 들어요.”-246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길거리로 나와서 오토바이 폭주를 뛰는 아이들이나, 버젓한 의사니 교수니 하는 직업이 있어도 마음이 뿌듯이 채워지지 않아서 할리 데이빗슨과 가죽 점퍼로 차려입고 질서정연한 바이크를 하는 어른들이나....

마음 기대고 쉴 곳이 없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이 고스란히 드러난 소설을 읽고 깊은 한숨을 내쉰다.

가정의 중요성.

만들기도 어렵고, 꾸려가기도 어렵고, 지키기도 어렵다.

제이같은 자유로운 영혼을 보면 저도 모르게 뒤따라가서 동참하고 싶어지는 나약한 영혼을 가진 인간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어린 시절 제이의 가냘픈 등 뒤에 솟아난 날개가 날 자리같았던 뼈.

너는 천사였니, 악마였니?

부디...나에게는 제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이 가슴 아픈 소설의 뒷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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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교과서 - 여자는 전혀 모르고 남자는 차마 말 못하는 것들
명로진 지음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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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남자의 교과서>

여자는 전혀 모르고 남자는 차마 말 못하는 것들

 

왜 여자가 전혀 모른다고 생각할까?

^^

여자도 남자에 대해 알 건 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지만, 서로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라면 같이 울고, 웃고, 사랑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아마, 이 책의 집필의도에는 요즘 같은 과도기의 세상, 즉 남성 중심에서 양성 평등으로 넘어가는 이 세상에 예전같이 남자의 힘을 과시하지 못하고 풀죽어 사는 남성들에게 보내는 위로의 의미가 짙게 깔려 있지 않나 싶다.

그건, 여자인 나도 동감한다.

일하느라, 돈버느라, 가족을 등한시하다가 차츰 가족들에게서 소외되어 가는 쓸쓸한 남자들이 많다는 거. 그들은 위로받아야 마땅하다는 거.

남자들이여! 과거의 영광과 위용을 되새기고 곱씹으며, “아~옛날이여! 다시 한 번!”을 외치고 싶을 때가 불쑥불쑥 찾아들 때 이 책을 꺼내 읽으며 위로를 받으라.

 

요즘 한창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는 드라마 <직장의 신>을 보면 마초 군단과 초식남 군단이 나온다.

씁쓸한 양분법이긴 하지만, 정말 드라마를 보면서도 “요즘 진짜 저래?”를 연발하긴 하지만, 실제 현상을 반영하는 것이 드라마이다 보니, 없는 얘기 지어낸 것 같진 않다.

그래서, <직장의 신>을 보면서도 배꼽잡고 웃긴 하지만, 남자들의 사는 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긴 하다고 나름, 인정하는 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작가가 돌아가고 싶은 그 시절이 바로, 마초 남들의 시절이 아닌가?

진정한 갑이 되는 법!

첫 번째 이야기부터 뭔가, 남자들의 힘을 불끈 자극하면서 여자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제목.

 

<남자의 교과서>는 일, 가족, 섹스, 취향, 꿈에 대한 남자의 단어들을 뽑아 재기발랄하게 엮어간다.

46가지의 본심이라고나 할까...

 

Work-가오가 뭐길래 배고픔도 잊을 수 있나, 참을 수 없는 ‘욱’의 가벼움, 그 누구에게도 당신의 생각을 말하지 말 것.

등의 챕터에선 참, 남자로 살기도 힘들구나...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동정을 금치 못했다.

 

Family-엄마를 넘어서야 진짜 남자가 된다, 맞는 말씀. 식구들 때문에 피곤한 남자들, 여자도 그렇거든. 생리 중인 여자는 무조건 옳다. 절대 찬성. 진짜 맞는 말이다. 이 좋은 책을 왜 여자들은 보지 말라고 한 거지? 여자들이 이 책을 읽고 남자 앞에 들이대면서 시위라도 할까봐? 여자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구요...

 

Sex-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여자는 세상에 없다. 그럼요. 없고 말고요. 여자가 생각하는 그런 남자도 세상에 없지요. 예쁜 여자 좋아하는 게 뭐가 어때서. 맞아요. 예쁜 남자 좋아하는 거랑 똑같지요. 이해합니다. 암요~금요일 밤의 하이라이트, <뮤직뱅크>를 같이 보면서도 동상이몽이라는 거, 알지요. 남편은 걸그룹의 치마 길이를 보고, 저는 남자 아이돌들의 싱싱한 젊음과 귀여운 얼굴들을 사랑한다는 거.

 

Favorites-끊지 말고 참으세요. 금연하기 힘든 거 잘 압니다. 그렇지만, 요즘은 아내들의 잔소리보다 아이들의 잔소리를 더 못견뎌 하실 겁니다. 영리한 요즘 아이들, 아빠 담배 냄새 진짜 싫어하거든요. 포기할 수 없는 나만의 사치-시계, 가방, 옷. 순서대로 탐닉해가는 우리 남편. 참아줘야죠. 여자들도 나름의 포기할 수 없는 사치가 있다는 걸 이해해주기만 한다면야.

 도대체 남자들은 왜 야동을 볼까. 같이 본다면 나도 넘어가 줄 용의가 있다. 여자를 제끼고, 아내들의 경쟁상대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면 너그러운 여자들은 얼마든지 허용해줄 수 있다. 쯧, 벌벌 떨기는...

 

Dream-마흔, 아직은 흔들려도 괜찮아. 아내와 함께 갈 생각을 해야지...혼자 가면 너무 외롭지 않을까? 진짜 친구는 미안해하지 않는다. 남자의 친구 관념...사람마다 다른 것 아닐까...여자들도 진짜 의리파가 있는 반면, 이라이저처럼 과시용으로 매달고 다니는 친구들을 친구라고 하는 여자도 있다.

 

남자의 본심이 담겨있는 46개의 단어들-권력, 돈, 가오, 욱, 잔소리, 눈물, 섹스, 남성해방, 컬렉션, 야동, 만족, 꿈, 자유 등등-을 보니 왜 이 책의 제목이 <남자의 교과서>가 되었는지 알겠다. 그렇지만, 세상의 거의 반은 남자, 나머지 반은 여자라는 거. 답답한 심사를 풀 길 없는 남자들은 한 번씩 이 책을 보면서 위로받는다고 뭐라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평생 여자를 외면한 채, 남자들 위주로 세상을 살아가려고 한다면, 뭐랄까...너무 불쌍한 인생이 아닐까.

최선을 다하며 사는 김에 여성을 배려하는 삶을 사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남자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여자들의 입장도 한번쯤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내 남자는 내가 간수해야지.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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