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모든 것 안녕, 내 모든 것
정이현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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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모든 것>Bye 혹은 Hello?

 

나와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작중인물들이라 소설 속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세미, 준모, 지혜

 

서울의 한 보습학원에서 중등사회를 가르치던 지혜가 어느 날, (정확히는 2011년 12월 19일) 자신을 찾는 전화가 왔다는 동료의 말에 눈앞이 아뜩해지는 그런 장면으로부터 소설은 시작한다,

 

기억할 수 있는 학창시절을 오롯이 함께 한 세 명의 아이들.

각자의 집안 사정과 각자의 개인적인 생각들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들은 조금씩 성장해간다.

 

부모의 이혼으로 부자인 조부모 집에 들어가 살게 된 세미. 부자로 살았던 아버지라는 사람은 너무도 나약해 빠져서 사업이 실패하고 사람들이 들이닥치자, 일단 이혼으로 눈앞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엄마를 미국으로 떠나보내고 세미는 할머니댁에 맡겨버린다. 그러고선 동남아의 휴양지 어딘가로 골프여행을 떠났다던가...성적이 중간쯤이라 IN서울 대학은 갈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하는 나이에 덩그러니 남겨진 세미는 존재를 고민해야 하며 낯선 조부모와 그저 발랄한 부잣집 딸로 유유자적하는 고모에게 적응해야 하기도 했다. 그나마 시원시원한 고모에게 정을 줄 무렵, 고모는 마담 뚜가 추천하는 김 검사에게 시집을 가버린다. 할아버지의 사망 이후 급격히 기울어진 가세로 남은 사람들은 으르렁...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세미는 무뚝뚝하고 무섭기만 했던 할머니에게 정이라도 생긴 건지...할머니를 위해 한동안 봉인해두어야 할 비밀을 만들게 된다.

 

뚜렛 증후군을 앓는 이유로 끊임없이 욕설 틱을 중얼거리며 사람들에게 불쾌한 시선을 받아야 하는 준모.

점점 심해지는 틱을 받아 줄 친구를 겨우 만나 우정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 우정이 사랑으로 변할 즈음 남모를 사랑의 아픔을 껴안고 덴마크 유학을 결심한다.

 

교수 부부의 딸로 태어났고, 기억력이 비상하게 좋지만 그걸 숨기려고 항상 조용하게 지내는, 그러나 친구 세미 앞에서는 무지무지 많이 떠드는 지혜. 늘상 싸워대는 부모의 험담을 하곤 하지만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부모를 미워할 수 없는 아이. 남의 눈에 띄기 싫어 수능 시험에 잠을 자서 시험을 일부러 망친 아이. 그러나 친구 셋이 같이 만든 봉인된 기억의 그 날 이후, 재수를 하고는 대학에 들어간다. 재수학원에서 광고용으로 쓸 만큼 확연히 오른 점수를 가지고...

 

이 셋은 1994년 김일성의 죽음과 한여름의 기록적인 폭염,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시간을 함께 했고, 1995년 대구 지하철 폭발 그리고 삼풍백화점의 붕괴까지, 요동치는 90년대 중반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사이이다.

그러던 그들이 1996년 5월의 어느날, 기억 속에 봉인해 버려야 할 비밀을 만들어야 했던 날. 그 이후로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안녕, 내 모든 것.

 

기억의 봉인이 끝끝내 풀리지 않기를 그들은 빌었을까? 아니면, 어서 빨리 해제되어 폐부 깊숙이로부터 큰 한숨을 들이쉬고, 내쉰 다음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밝은 태양을 바라보고 싶었을까? (사실, 지혜는 평소에 시커먼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다니긴 한다.)

지혜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지혜는 세미와 만났고, 과거는 다시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안녕, 내 모든 것.

내가 걸어온 길들이 두려워 되돌아보지 않았더니, 이 책이 다시 나의 과거를 돌아보게 한다. 안녕의 의미가 Bye~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네. Hi, Hello~였네.

준모가 뚜렛 증후군 치료 겸 유학 차 떠났을 덴마크의 언어로는 각각 파르벨, 고다그...였던가.

 

90년대의 나는 반짝반짝 빛났던가?

아니면 거짓으로 덕지덕지 치장된, 차마 찬란한 실없이 흘리고 다녔던가.

아프고, 고통스러운 과거. 기쁘고 달콤했던 과거.

쌉쓰름한 치커리가 들어있는 샐러드를 달콤한 허니 머스터드 소스에 버무려 먹는 듯.

달콤 쌉싸름했던 나의 과거가 되살아난다. 이를 어쩌나...

 

어정쩡하게 책을 읽어서 갑작스레 마주친 나의 과거의 기억은 확실히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어렴풋하게나마 90년대의 추억이 떠오르면서, 이제는 나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던가 싶기도 하다. 속시원히 밝히지 못할 가정사로 인해 항상 주변 언저리에서 빙빙 돌며, 책 속으로 한없이 침잠해 들어가기만 했던 그 때. 친구들은 나를 말없는 아이로 기억하고 있겠지만, 아줌마가 된 지금은 동네 아낙들과 수다 떨 때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아마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나를 못 알아볼지도 모르겠다. 조용하고 음울했던 책 뒤에 가려진 아이가 밝고 시원한 웃음을 웃으면서 자기를 툭 치며 아는 체를 하면, “누구세요?”..할 걸?, 아마도...

그 시절의 가리고 싶고, 숨기고 싶은 기억들은 세미와 준모와 지혜가 봉인해버린 그 사건과도 맞먹을 것이다. 나는 지금 그 봉인해버린 기억들을 그들처럼 공유하고 있지 않기에, 나 혼자 마음속으로 떠나보내는 의식을 했고,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털어놓았고, 조금은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살고 있다.

안녕, 내 모든 것.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할 것들을 빨리 떠나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이해야 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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