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저나 나도 참 귀여운 아이였네. 그녀는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쓸쓸했지만 아주 행복한 애였어. 지금도 쓸쓸한 것은 똑같지만, 나는 참으로, 참으로 쓸모없고 아무런 목적도 없이 살고 있구나. 그러자 지난 월요일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제라늄 화분을 내놓으려고 건물 옥상에 올라갔을 때였다. 난간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지금 딱 한 걸음 허공을 내디뎌서는 안 되는 이유가 하나라도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단 한 가지 이유도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 뾰족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날 옥상에 올라온 가버라는 젊은이가 그녀를 보고 "무슨 일이세요, 폴리팩스 할머니! 당장 뒤로 물러서세요!"라고 소리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일이다. 순순히 뒤로 물러스는 그녀를 보며 가버는 후들후들 떨었다. 의사에게는 할 수 없었던 이야기다.

인생에 변화가 필요했다. 안 그러면 이제 겁이 나서 제라늄 화분에 햇볕을 쏘이지도 못할 텐데, 부인은 하필 제라늄을 참 좋아했던 것이다. (p.13-14)


















폴리팩스 부인은 굳이 살아야할 이유같은 걸 찾을 수 없었다. 신체적으로 건강하지만 딱히 또래보다 더 오래 살고 싶은 욕망도 없었고. 부인이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는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이 뭐였는지 물어보고 폴리팩스 부인은 웃으면서 '스파이' 라고 답한다. 그런 그녀가 정말(!) 스파이가 되고자 한다. 살아갈 이유를 찾아보고자 한 것.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 그러나 하지 못했던 그 일, 스파이!


그렇게 그녀는 무작정 워싱턴의 CIA 본부로 찾아가 '나 스파이가 되고 싶어' 라고 말한다. 물론 스파이가 되고 싶다고 찾아온 사람을 바로 스파이로 취직시켜줄 순 없다. 그러나 타이밍과 오해가 폴리팩스 부인을 정말(!) 스파이로 만들어버리고, 그렇게 단조로운 삶을 살던 폴리팩스 부인은 중요한 임무를 띠고 멕시코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부인은 해외여행도 처음이고 비행기도 처음이다. 자식들이 다 커서 손주들까지 생긴 이 때야, 그녀는 비로소 비행기를 타고 멕시코로 날아가는 것이다!



폴리팩스 부인은 자신의 나이를 원망하기 보다는, 이만큼 살아온 자신의 나이만이 줄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안다. 그녀는 지혜롭고 다정하다. 19일에 방문해야 할 서점에 미리 방문하는 게 영 내 성격에 안맞았는데(왜 지시대로 하지 않는거야!!), 그러나 그마저도 그녀에겐 행운이었다. 그녀는 서투른 스파이었지만, 해야할 일을 정말 잘 해내는 것이다. 과정이야 어떻든간에!

그녀는 여행지에서도 좋은 친구들을 사귀고, 혼자인 시간도 즐긴다. 포로로 잡혔지만, 함께 포로로 잡힌 스파이에게 다정한 벗이 되어주고, 그녀를 포로로 잡고 있는 적들에게도 아주 좋은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고, 아픈 곳을 안마해주는 친절한 부인이 되어준다. 그녀의 따뜻한 마음과 지혜는 계속계속 쓸모있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스파이물처럼 거친 액션이 계속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는 걸 몹시 싫어하는 폴리팩스 부인이 자신의 탈출을 위해 적들을 어쩔 수 없이 아프게 한다. 심지어 총을 쏘기도 해! 할머니 스파이물이라니, 뭔가 거짓말 잔뜩에 가벼울 것 같지만, 정말이지 읽는 재미가 있다. 중간중간 삶에 대한 부인의 생각을 읽는 것이야말로 이 책을 읽는 묘미가 아닐까. 아마 부인도 그간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곳에서 다르게 펼쳐지는 일들을 맞닥뜨리며 더 많이 인생이라는 것의 재미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들이 나타나는 게 참 좋다. 



어쨌거나 누구의 인생에서건 미래의 모습이며 형태며 방향은 자기 손을 벗어난 것이며, 순전히 우연이나 운명, 또는 신의 뜻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때가 오게 마련이다. 이제는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저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결말은 누구도 몰라. 폴리팩스 부인은 생각했다. 바퀴 달린 침대에 누운 채 수술실 안으로 밀려 들어갈 때 보이는 천장을, 그리고 천장이라는 것 자체를 다시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P.243)




지혜롭게 나이들고 싶고 건강하게 나이들고 싶다.

내가 삶에서 원하는 것, 바라는 것은 그다지 큰 게 아니다. 맛있는 것을 먹고 마시고, 다정한 벗들과 함께하고, 먼 나라를 여행하는 일. 특히나 여행에 대해서라면 더 그러한데, 먼 곳에 가기엔 시간도 부족하고 돈도 부족하다, 라고 생각하며 '언젠가'로 미루다가는 아예 이루지 못하게 될 확률이 크니까. 시간과 돈이 생겼을 때는 내가 건강과 체력적으로 힘겹게 될지도 모른다. 갈 수 있는 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지금 당장 가서, 조금이라도 그곳을 보고 느끼고 오자고, 그런 자세로 살고 있다. 나중에 훨씬 더 나이들었을 때, '이제는 가고싶은데 갈 체력이 안되네' 같은 말을 하며 가지 못한 시간을 후회하고 싶지 않아.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하면서 살고 싶다.




폴리팩스 부인이 용감하게 혹은 무모하게 CIA 본부로 들어가 '나 스파이 하고싶어!' 라고 말하고 또 정말 스파이를 하게 되는 이 판타지(!)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좀 더 즐겁게 살고픈 욕망을 느꼈다. 나중에, 아주아주 나이가 많아졌을 때, '사실 이런거 하고 싶었는데' 같은 거 생각하며 젊은 날을 아쉬워하지 않아야지. 지금 당장은 알라디너 몇 명과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하는 거 진짜 너무 좋고!! 덕분에 계속해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더 들면 글자 읽기도 힘들어질 때가 올텐데, 지금 부지런히 열심히 읽어둘거다. 글도 열심히 열심히 쓰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술도 많이 마실거야. 요가도 놓지 말아야지. 그래야 좀 더 오래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유지하며 살 수 있을테니까. 가고싶어지면 휙- 하고 먼 데로 날아갈거다. 지금은 그게 가능하고, 가능할 때 해야지.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는 좋아한다는 말도 아주 수시로 해야지. 나중에 '그 때 내가 좋아했었는데..'같은 거 후회하지 않게끔. 



삶의 매 순간에 충실하며 그 순간순간을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성숙한 여성의 이야기라니, 정말 좋다.


˝어쨌든 당신에 CIA 쪽에도 쓸 만한 사람이 하나라도 더 있으면 좋지 않겠나? 능력 있는 젊은이 대신 목숨을 바칠 만한 사람 말이야. 좀 신파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난 목숨을 바쳐도 상관없어. 그런 각오가 없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거야.˝- P23

폴리팩스 부인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필사적으로 다리를 절며 뛰어가는 패럴의 뒷모습을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이토록 필사적인, 가엾은 인생이라니. 인간이란 어쩌면 이렇게 끈질기게 목숨을 붙들고 매달리는지, 살겠다는 일념으로 온갖 일을 해내는지! 그러니까, 몸뚱이에 붙은 목숨 말이다. 영혼의 목숨을 부지하기는 훨씬 까다롭고, 어렵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P317

지니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원래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무엇을 선택하든 알 수 없는 것에 도박을 거는 일이지요. 그리고 선택의 자유가 있으니 우리는 인간인 거고요. 우리에겐 미래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 인생이란 지도와 다를 바 없는 것 같습니다. 방향도, 경로도 끊임없이 선택해야 하니까요.˝- P352

문득 요란한 핏빛을 띤 붉은 해가 떠올라 그들이 지나온 절벽을 환히 밝혔다. 안개로 어둑했던 풍경이 선명해졌다.
˝새로운 아침이구나! 다시는 볼 수 없을 줄 알았어!˝
잠시 동안 부인은 인생이 얼마나 마법 같은지, 덧없는지, 그리고 얼마나 예측 불가능한지에 대해 생각했다. 부인은 새로 태어난 것만 같은 기분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멀리 눈 덮인 산꼭대기가 보였다. 그보다 가까이 있는 절벽은 짙은 보랏빛 그늘이 드리워진 황갈색이었다. 조금 전까지 회색으로 얼룩덜룩하던 안개는 빛을 받아 진주처럼 반짝이는 부드러운 연분홍색 구름이 되었다. 시원한 공기에서는 축축한 흙과 젖은 풀 냄새가 났다. 그들이 탄 배를 지나쳐 흐르는 강물에는 하늘과 태양과 강변의 모습이 모자이크처럼 반사되고 있었다. 폴리팩스 부인의 마음속에서 거의 신비스럽기까지 한 어떤 감각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느껴본 적이 없는, 아주 짜릿한 자유의 감각이었다. - P359

그 순간, 마치 세상의 모든 법칙과 관습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삶의 한가운데 서서 삶의 박동을 느꼈다. 부인은 자신이 태어나서 자란 대륙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낯선 나라에서 새벽을 맞았다.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여태 살아 있었다. 놀라움과 감사, 피로와 허기가 뒤섞였고, 위험 속에서 느꼈던 온갖 감정들과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결코 충족되지 않는 열망이 뒤섞였다.- P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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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번역 제목으로는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 인데, 나는 이걸 개봉당시 친구와 극장에 가 보았다. 2011년 영화라고 되어있는 걸 보니, 내 기억만큼 오래전은 아니었나보다. 어쨌든 그 당시에 첫장면부터 깔깔 웃으면서 보았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다시보니 도무지 웃을 수 없고 스트레스만 안겨주는 첫장면이더라.



'애니'는 운영하던 빵집이 장사가 잘 안되어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것은 자기에게 실패였다. 가끔 그 빵집 앞을 지나면서 문닫은 빵집을 보고 시무룩해한다. 가끔 만나는 남자는 자신을 단순히 섹스 파트너로만 여긴다. 구속은 싫다, 자유로운 관계가 좋다고 그가 번번이 말하는 바람에 애니 역시 그에게 뜻깊은 관계가 되자고 말하지 못한다. 그저 '나도 그래' 라고 억지로 동의할 뿐. 사실 애니는 그 남자를 만나고나서 한 번도 기분 좋았던 적은 없다. 그러나 친구들에게는 섹시하고 귀여운 남자라고 그를 얘기한다. 룸메이트는 월세날이 다가오자 애니에게 월세로 압박을 주고, 애니의 엄마는 애니에게 엄마 집에 와 같이 살자고 하지만 애니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 차에 단짝 친구인 '마야'가 애인으로부터 프로포즈를 받았다며 결혼소식을 전한다. 애니는 자신의 모든 것이 엉망인 것 같은 이 때에 가장 친한 친구마저 결혼하게 된다니, 축하한다고 말하면서도 온전히 기쁜 마음이 아니다.


애니는 엄마의 소개로 보석가게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약혼 반지를 사러 오는 남녀에게는 사랑이 영원하지 않을거라 말해 반지 파는데에 관심이 없고, 우정반지를 사러 온 소녀에게는 영원한 우정도 없다며 손님과 싸운다. 직업을 잃는 것은 그런 그녀에게 너무나 당연하다.


설상가상으로, 마야의 결혼식에 같이 들러리 서기로 한 '헬렌'이 아주 눈엣가시다. 자신이 내놓은 아이디어를 다 가로채고, 게다가 자신의 단짝친구인 '마야'와 자신보다 더 친하다고 드러낸다. 헬렌은 아주 예쁘고, 돈도 많고, 파티에 대한 감각도 탁월하며, 인맥도 대단하다. 뭐가됐든 애니보다 더 나은 걸 더 많이 가지고 있어서 애니로서는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그렇게 그녀는 질투심과 되는 일도 하나도 없다는 우울감이 폭발해, 결혼을 앞둔 파티에서 행패를 부린다.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인데.



애니의 엄마는 애니에게 누구나 바닥을 칠 때가 있다며 애니에게 애기했었다. 너도 아마 지금이 바닥일거라고, 그러니 다시 올라올 수 있을 거라고. 그러나 애니는 그 때 자신이 바닥을 친 게 아니라고 말햇었다. 그러나 친구의 결혼파티까지 망친 이상 자신이 바닥을 쳤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다.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며 다정하게 대해줬던 남자에게는 이미 실망감을 안겨준 터다. 섹스파트너에게 혹시나 싶어 결혼식 같이갈래 물었지만 거절당했고. 게다가 섹스파트너는 나중에 애니에게 '세번째 여자' 라고 하질 않나. 그렇게 애니는 친구도 잃고, 직업도 잃고, 월세를 못내 룸메로부터도 쫓겨나 엄마 집으로 짐을 싸가지고 들어오게 된다. 바닥을 치고 자존감을 잃었다. 



뭐가 먼저인지 모르겠다.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자존감을 잃은건지, 자존감을 잃어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던건지. 애니는 확실히 바닥을 쳤고 모든 일이 엉망진창이었고 그리고 자신을 못난 사람이라 취급했다. 보면서 힘들었던 건 바로 이부분에서였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사람은, 우선 본인이 가장 힘들겠지만, 주변을 너무 힘들게 한다는 거다. 매사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니 보석을 팔면서도 비아냥대고, 자신보다 잘난 사람이 친구랑 더 친하다는 생각에 파티를 엉망으로 만드니까. 워낙 자존감이 낮으니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는 남자까지도 몰아내고, 자신을 함부로 취급하는 남자를 올려친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주변 사람까지도 다 힘들게 만드는 거다. 내가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거, 나는 그보다 더한 대접을 받을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알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그 사람을 대우해주겠는가.


2011년에 내가 이 영화를 왜 재미있게 봤었는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다시 보았을 때는, '애니를 내 친구로 두고 싶지 않다'고 열번쯤 생각했다. 저렇게 매사에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기를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사람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한없이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차 가는 곳마다 상황을 엉망으로 만드는 사람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자존감 낮은 사람은 자신에게도 그리고 남에게도 너무 피곤한 사람이었다. 아, 정말 싫다, 보기가 너무 괴로워. 부자 여자사람과 자신을 비교할 때도 괴로웠고, 친구를 잃을까봐 전정긍긍하는 것도 괴로웠다. 물론, 그 점에 대해서는 나 역시 이해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섹파에게 당당하지 못한 것도 너무 괴로웠다. 섹파는 섹스를 끝내고난 후 '이제 가' 라고 말한다. 그러면 애니는 옷을 챙겨입고 자신의 집으로 가야해. 부르면 달려가고 가라 하면 얌전히 돌아서 가는.. 아,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미치겠어. 나는 진짜 이렇게 자기 자신을 바닥으로 깔고 가는 사람을 보는 게 너무 스트레스야.



모든 걸 망쳐서 집 소파에 앉아 침울하게 앉아 있는 애니에게, 놀랍게도, 정말이지 놀라운 존재 '메건(멜리사 맥카시)'이 찾아온다. 내가 이 영화에 멜리사 맥카시 나온다고 해서 봤다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메건 역시 마야의 결혼식 들러리라 알게된 사람에 불과한데, 이 사람이 글쎄 뜻밖에도 애니를 찾아온 거다. 그리고는 신세 한탄하는 애니에게 말한다.


"이거봐, 나는 여기 너에게 친구로 찾아왔는데 너는 친구가 없다고 말하네? "


이 때부터 분위기가 심상찮더니, 툭툭, 귀찮게 애니를 건드린다. 그리고 때리기 시작한다. 어마어마한 폭력이라기 보다는 탁탁 치는 강도인데, 그러면서 계속 그녀에게 말한다.


"난 인생이야. 나는 니 인생이지. 이렇게 너를 때리는데 가만있을거야?"


애니는 그녀가 때리는 걸 피하면서 하지말라고 하지말라고 자꾸만 말한다. 그렇게 몸을 웅크리며 맞기만 하다가, 드디어 그녀를 한 대 때린다. 그만하라면서. 그러자 인생, 그러니까 메건은, 아직 그렇게까지 나빠진 건 아니었다며 때리기를 멈춘다. 결국 애니는 다정한 남자와도 화해를 시도하고, 섹파를 버리고, 친구와 우정도 되찾고....



나는 메건의 등장이, 메건의 존재가 너무 놀라웠다. 일전에도 《아메리칸 셰프》란 영화를 보면서 조연으로 등장한 '스칼렛 요한슨'의 존재에 놀라워했었는데, 이건 그런 종류의 놀라움이었다.



애니에게 다시 기운나게 한 존재, 지금 인생이 널 괴롭히고 있다고 주저앉을 거냐고 말한 존재, 그렇게 다시 기운 내서 싸우게 한 존재가 애니의 절친도 아니었고 가족도 아니었고 애인도 아니었다. 오히려 전혀 생각지 못했던 뜻밖의 존재였던 거다. 갑자기 바닥을 치고 있는 자신에게 나타나 '내가 니 인생인데 이렇게 맞고만 있을거야?' 라고 물으며 그녀를 다시 바닥으로부터 올라오도록 해준 존재가 당연히 그럴 수있을만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거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애니는 마야와 화해하고 다시 마야와 절친이 될것이다. 그리고 그간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미안하다며, 여자친구가 없었던 말야, 했던 헬렌과도 투닥거리며 사이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메건은 다시 만날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메건은 애니 인생의 이 시점에 갑자기 휙- 들어와서는 아주 강한 한 방을 선사해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각인시키고 그리고 다시 슝- 떠나버리는 거다. 와- 이런 존재가 있다면, 그러니까 바닥을 쳤다고 생각한 순간에 이렇게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고 나타난다면, 그러면 그 인생이 그렇게까지 바닥을 친 건 아니지 않나. 바닥에 오래 있지 않게끔 운명이 한 일일지도 모르고. 정말이지 굉장히 강한 존재였다. 내내 비호감에 괴짜였던 메건은 그 순간만큼은 대단한 존재였다. 앞으로 애니는 메건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위에 언급했지만, 영원한 사랑은 없고 영원한 우정도 없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변하게 되면서 단짝 친구는 안단짝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영원한 우정이 있을까? 영원한 사랑은? 이라고 내가 나에게 물었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영원한 우정..뭘까? 영원한 사랑..뭘까?



그렇지만, 인생의 어느 시점에 갑자기 등장하는 뜻밖의 중요한 인물이 있다는 것만큼은 잘 알겠다. 치고 빠지지만, 그 한 방이 엄청 중요한 사람. 이 영화에서는 메건이, 멜리사 맥카시가 그랬다. 되게 독특한 인물이야 진짜. 그렇지만 마지막 섹스신이 너무 비호감... 미안해요, 내가 이런 사람이라...... 그렇지만 섹스는 굉장히 프라이빗 한 것이고, 당신은 애니에게 너무나 중요한 사람이니, 우정은 또 값진 것이고...




자존감을 잃지 않은 것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누구나 인생에 바닥을 칠 수 있듯이 나 역시 그럴 수 있다. 바닥.. 까지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 바닥으로 한없이 떨어지는 기분을 느껴본 적도 있고. 그럴 때 내가 한 건 '어떻게든 올라가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뭘 어떻게 해야할까' 였다. 어쩌면 나는 애니만큼 바닥을 친 건 아니라서 이게 가능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일, 사랑, 우정 모든 걸 잃고 어떻게 자존감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어쩌면 그것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도와줄런지도 모르겠다. 흔히들 청소나 정리정돈을 하라고 얘기하는데, 나는 청소나 정리정돈이 더 나은 기분이 들게 한다는 걸 믿는다. 그보다 더 믿는 건 하루 세 끼 잘 챙겨먹는 것 그리고 매일 운동을 하는 거다. 저만큼이나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진다면 이 모든 걸 하기가 힘들겠지만, 하다못해 운동이라도 하면, 가급적 바깥으로 나가서 하는 운동이라면 내 자존감이 나를 두드려패는 지경까지는 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매일 운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런 말하면 우습긴 하지만, 나는 일주일에 2-3회 나가는 요가가 꽤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요즘에는 요가가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을 준다. 이건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와는 좀 다르다. 여전히 나는 요가를 못하고 나아지고 있는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몸을 움직여 순환을 돕고 근육을 괴롭힌다는 것은, 또르르 땀을 흘린다는 것은, 확실히 더 나은 기분을 갖게 한다.



자기애는 자존감이 아니다. 지나친 자기애는 오히려 타인에게 해를 입힐 수 있다. 지나친 자기애는 자기연민에 갇히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자존감은 다르다. 자존감은 다른 사람이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돕는다. 자존감은 아닌 상황에서 '아니'라고 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감히 인생이 나를 엎어치기 하려고 할 때, 애시당초 다가오지 못하도록 방어가 가능하게 돕는다. 내 책상은 여전히 지저분하지만 ㅋㅋㅋㅋㅋㅋ 곧 정리할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봤자 금세 또 난장 되겠지만.



잘 먹자.

잘 먹고, 바깥에 나가 운동도 좀 하고, 바람과 빛과 볕을 몸으로 받자.

그래서 섹스도 못하는 섹파따위, 거칠게 차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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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07-10 1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막... 나도 모르게.....
아멘!!하고 있네요^^

다락방 2019-07-10 14:38   좋아요 1 | URL
아멘까지야!! ㅎㅎㅎㅎ

우리 건강하게 지내요, 단발머리님. 서로에게 다정하고 소중한 사람이 되어주면서요.
:)

심술 2019-07-11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잘 받았어요. 고맙습니다.

다락방 2019-07-11 15:34   좋아요 0 | URL
넵!
 

아주 오래전 여름이었다. 친구와 나는 토요일에 만나 영화를 한 편 보았고 작은 전시회가 열리는 빌딩에 들어갔다. 전시회 이름은 기억이 희미하지만, 그곳에 들어가니 일반 서점에서는 판매하지 않는 책들을 몇 권 팔고 있었다. 그중에 한 얇은 잡지에는 한 영화감독의 인터뷰가 실려있다고 되어있더라. 나야 관심없는 영화감독이었지만, 그 당시 내가 좋아하던 사람의 최애감독 아닌가. 나는 얼른 그 잡지를 사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는 친구와 좀 더 걷고 맥주를 마셨다. 맥주를 거의 다 마셔갈 때쯤, 문자메세지가 왔다. 내가 좋아하는 그였다. 그는 예정에도 없이 불쑥 만날 수 있냐고 물었고, 나는 갑자기 너무 신났다. 응, 갈게. 그렇게 답했다. 아니, 이건 무슨 일이지, 그를 생각하며 사둔 잡지가 가방 안에 있는데, 그런데 마침 오늘 볼 수 있다니!


나는 친구랑 헤어지고 신나는 마음으로 그를 보러 갔다. 아직도 기억나는데, 후훗, 그 때 나는 편하게 나오느라 슬리퍼 차림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에게로 가면서야 내가 슬리퍼를 신었다는 것을, 땅바닥에 철푸덕 달라붙어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아, 모르겠다. 에헤라디여~


나는 그를 만나 활짝 웃고는 마침 내가 너를 주려고 이걸 샀지 뭐야, 하며 내가 준비해간 잡지를 내밀었다. 그는 기쁘게 받아들었고, 우리는 맥주를 시켜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분 좋은 토요일이었고 기분 좋은 마무리였다.



며칠후, 나는 그에게 그 인터뷰를 읽어봤느냐 물었다. 그는 '아, 그 잡지의 존재를 잊고 있었네' 라고 답했다. 그 잡지의 표지에서 그 감독을 발견하고 기뻤던 것, 그 잡지를 집어들고 설레이며 계산했던 것, 이걸 그에게 줄 수 있어 신나했던 것 모두가, 그 대답 하나에 비틀거렸다.


















무디는 자신이 누구보다도 펄에게 가장 실망했다고 생각했다. 결국에는 펄도 하고 많은 사람 중에 트립을 택할 정도로 경박했다. 물론 펄이 자기를 택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자신은 여자아이들이 반할 유형이 아니었다. 하지만 트립이라니, 그 점은 용서할 수 없었다. 깊고 맑은 호수로 알고 뛰어들었다가 그것이 무릎까지 차는 얕은 연못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 같았다. 그래서 무엇을 했나? 그래, 일어섰다. 진흙이 묻은 무릎을 씻고 진창에서 발을 빼냈다. 그 뒤에는 더욱 조심했다. 그때부터 무디는 세상이 예상보다 작은 곳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대수학 수업 중에 펄이 화장실에 가자 무디는 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타 펄의 책가방을 열고 몇 달 전에 자신이 펄에게 준 조그마한 검은색 몰스킨 수첩을 꺼냈다. 의심했던 대로 책등은 갈라진 자국 없이 말짱했다. 그날 저녁, 무디는 방에서 홀로 수첩을 한 움큼씩 찢어내 꼬깃꼬깃 구긴 다음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휴지통이 구겨진 종이로 수북해지자 무디는-옥수숫대에서 벗겨낸 겉껍질처럼 이제 속이 텅 비어 축 늘어진-수첩의 가죽 표지를 맨 위에 떨어뜨리고는 휴지통을 발로 차 책상 밑으로 집어넣었다. 펄은 수첩이 없어진 사실을 알아채지도 못했는데, 왠지 그것이 무디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다. (p.407)



무디는 펄이 항상 글을 쓴다는 걸 알고, 몰스킨 수첩을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펄에게 그걸 선물했다. 그러나 펄은 무디가 아닌 무디의 형에게 관심을 갖고 있었고, 무디는 자신의 형이 완전 형편없는 놈이라 생각했기에 그런 펄에게 실망했다. 그래서 펄의 가방에서 자신이 준 몰스킨을 다시 가져왔는데, 너무 마음아프게도, 펄은 그 수첩이 없어졌다는 사실 조차도 알지 못했다.




어제 가만가만한 요가가 끝나고 매트에 누워 송장자세를 취하면서 아 행복하다, 라는 생각이 파고들었다. 행복하네, 요즘엔 요가가 이런 행복을 줘, 하다가 그 여름날의 토요일 오후가 떠올랐다. 그래 그랬었지, 하고 좋고 설렜던 기억들과 그 날의 햇빛이 떠오르다가, 그러다 며칠 후 그가 내가 준 잡지의 존재조차 몰랐었다는 걸 떠올리자 조금 슬퍼졌다. 조금.


그리고 이내 괜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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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7월 도서 《여성주의 고전을 읽는다》는 잘들 읽고 계십니까? 시작은 하셨습니까? 저는 시작은 했습니다..
















이제 2019년도 하반기만 남아 있는데요, 이에 8월부터 12월까지 읽을 책들의 목록을 안내할게요. 중간에 새로운 책이 나온다거나 하면 변경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일단 생각한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8월은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이야기》 나 '샬롯 퍼킨스'의 《허랜드》 중 한 권 택일로 할까 합니다.

내친김에 빡세게 '보부아르'의 《제2의 성》으로 갈까 했으나,

우리, 힘들었잖아요. 그동안..

8월은 날도 덥고(응?), 휴가도 좀 즐길겸, 좀 쉬어가자는 의미로 페미니즘 소설로 선택했습니다. 사실 아예 한 달을 쉬면 어떨까, 도 생각해보았지만, 그러다가 감을 잃을까 두려워, 읽기를 멈추지는 말자, 하고 그동안의 도서와는 다르게,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페미니즘 소설중 한 권 택일로 하였습니다.

8월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둘 중 한 권 읽고 뜨겁게 페이퍼 써주세요.








9월은 '코델리아 파인'의 《젠더, 만들어진 성》으로 할까 합니다.

어제 오늘 읽었던 '에머 오툴'의 《여자다운 게 어딨어》에서도 이 책을 강력 추천하더군요.

우리, 만들어진 성에 대해 읽어봅시다.













올해가 가기 전에 《제2의 성》은 반드시 읽어줘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명색이 페미니즘 도서 같이 읽기인데, 보부아르는 통과해 줘야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제2의 성은 아무런 공휴일도 없는 11월에 빡세게 가봅시다.

11월, 우리 제2의 성을 읽고,

그리고 가능하다면 11월에 우리, 그간 열심히 이 모임에 참여해 읽고 썼던 사람들끼리 조촐하게 오프만남도 가져봅시다. 그간 읽었던 책들에 대해 얘기하고 실컷 먹고 마십시다... (응?)

(제가 따로 다 연락 드릴게요. 다 알아, 다. 쟝쟝님은 SNS 로... ㅋㄷㅋㄷ)

우리 빡세게 읽고 썼잖아요. 여러분 고생 많았어요..(벌써 11월인듯)






일단 8,9,11 월의 도서를 선정해 보았고요, 10,12월은 생각나는대로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11월 만남이 성사된다면, 우리 그 때 이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모임을 2020년에도 계속할지 어떨지 의논도 해봅시다. 오케?


아무튼 빡센데도 불구하고 참여해주시는 여러분, 감사합니다.

여러분 덕에 저도 계속 읽을 수 있네요.

자, 힘내서 갑시다. 아자!




염두에 두고 있는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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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7-09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빡세게 먹고 마십시다 빡세게......🐷

다락방 2019-07-09 12:28   좋아요 0 | URL
진짜 빡세게 빡세게 빡세게!!!!! 불끈!!!!!

syo 2019-07-09 12:32   좋아요 0 | URL
열라 빡세게 논다. 집에 안 들어갈 거야 으오오오오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 이래? 나 왜 이래요? 지나치게 신났지??

다락방 2019-07-09 12:40   좋아요 0 | URL
그 날은 아무도 집에 들어갈 수 없어!!! 😤

단발머리 2019-07-09 12:58   좋아요 0 | URL
🤣 키햐아!!

단발머리 2019-07-09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반기 계획 너무 근사합니다.
특히 시몬 드 언니와의 만남과 11월 오프라인 모임이요~~ 기대됩니다^^

다락방 2019-07-09 12:28   좋아요 0 | URL
우리 이렇게나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만나서 건배 정도는 해줘야 되는 거 아닙니까. 으하하하핫.
만약 2020년에도 계속 같이읽기 하게되면, 그 때도 또 만나서 오프 해주고 말이지요. 으하하하핫.

단발머리 2019-07-09 12:29   좋아요 0 | URL
건배하고 축하하고 그래야죠~
우아앙~~ 힘들었찌요?!? 대단합니다!! 하면서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07-09 12:30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다같이 모여서 오구오구 우쭈쭈 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만세!

jsshin 2019-07-10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반기에는 꼭 참여하겠습니다!! 그간 게으름 부려 죄송합니다... ㅜㅜ

다락방 2019-07-10 14:37   좋아요 0 | URL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블랙겟타 2019-07-12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옷!? 하반기 계획표가!
그러고 보니 이미 하반기로 접어들고 있엇네요 ㅎㅎㅎ
거기다가... 오프가 있을수도?..( ๑˃̶ ꇴ ˂̶)♪⁺
그동안 꾸준히 안 지치고 따라 가겠습니닷! =͟͟͞͞( ∩ ‘ヮ‘=͟͟͞͞) ੭⁾⁾

다락방 2019-07-12 10:15   좋아요 1 | URL
제가 늘 고마워하고 있는 거 아시지요, 블랙겟타님?
부디 지치지말고 천천히 따라오세요. 함께 해주시는 게 저에겐 큰 힘이 됩니다.

그리고,

오프에서 봅시다. 꺅 >.<

블랙겟타 2019-07-12 11:20   좋아요 0 | URL
(V•̀ᴗ-)✰

공장쟝 2019-07-12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마거릿 애트우드 소설 넘나 ㅠㅠ 조아요’ㅜㅜ!! 저도 천천히 뚜벅뚜벅 따라갈게요 ㅋㅋ 책거리 해요 >.<

다락방 2019-07-12 11:33   좋아요 1 | URL
좋죠 좋죠! 이 아이디어는 단발머리님 께서 내주셨습니다. 역시 사람이 모여야 돼,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면 혼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좋은 의견이 막 나온다. 우리 8월에는 재미나게 소설도 읽어봅시다.

뚜벅뚜벅 잘 따라오세요, 쟝쟝님! 11월에 만나요!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공장쟝 2019-07-12 1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히히히 ❤️❤️❤️ 벌써 기대된다 -11월

다락방 2019-07-12 12:34   좋아요 0 | URL
저두요...(수줍)
 
















나는 겨드랑이털과 눈썹 왁싱을 해본 적이 있다. 특히나 겨드랑이털의 경우 너무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고, 그 날 친구를 만나서는 '다시는 안할거야,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어' 라며 부르르 떨었더랬다. 이 아픈걸 왜 해야하나. 왁싱으로 털을 제거한 후의 겨드랑이는 매끈했다. 매끈하고 깔끔했고 금세 털이 솟아나지도 않았다. 그런 며칠을 보내고나니, 그 고통은 감당할 수 있는 것으로 변해있었고, 나는 어리석게도 다음에 또 왁싱을 하러 갔다. 그리고 또 아파하면서 '제기랄, 조금만 이 아픔을 견디면 매끈한 겨드랑이를 가질 수 있어' 라며 참았다.


대체, 나는 그 고통을 참고 매끄러운 겨드랑이를 가지는 것을 왜 원했던가. 그게 나에게 왜 필요했을까.


자, 조금 더 솔직해보자. 내가 왁싱을 왜 했나, 뭣 때문에 했나. 매끄러운 겨드랑이를 왜 만들었나. 평소에 겨드랑이 털 제모를 하지 않다가 하게 되면 가끔 면도기로 밀곤 했다. 그런 내가 왜, 굳이 샵을 찾아가서 왁싱까지 하며 눈물을 찔끔 흘렸는가.


내가 그 때 남자를 만나러 갈 게 아니었다면 그 고통을 겪을 생각을 했을까?

고통은 겪을 가치가 있었다. 그 앞에서 팔을 들어올리는 것에 망설임이나 주저함이 없었으니까. 하아- (한숨 한 번 쉬고..)



그렇지만 보지털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브라질리언 왁싱은 도무지 시도할 엄두가 안났다. 아마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르고 자기의 한계가 다르겠지만, 브라질리언 왁싱은 내 상식선을 넘어가는 일이었다. 일전에도 여동생과 브라질리언 왁싱에 관해 얘기하면서 여동생이 '언니, 그건 미성년의 성기잖아?' 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다 자란 성인이 털이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인데, 왜 굳이 그걸 없애서 다 자라지 않은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그것이 너무 기이한거다. 겨드랑이털은 밀어놓고 나는 그러나 보지털에 대해서는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아'로 생각했었는데, 이런 생각 자체가 모순인건 아닐까. 왜 어떤 털은 되고 어떤 털은 안되는가. 이 털은 선을 넘고 저 털은 선을 넘지 않는다는 생각 자체가 이상하지 않은가. 왜 나는 겨털을 밀면서 보지털은 안되지, 라고 생각했나.



나는 브라질리언 제모와 처녀모 제모가 불편했다. 여성에게 털이 없어야 한다는 규범이 도를 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 자신이 거기 동참하고 있으면서 화를 낼 수 있겠는가? 그게 핵심이었다. 열두살짜리 딸에게 면도기를 사주는 것과 제모 숍을 예약해주는 것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단 말인가? 다리털이나 겨드랑이털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음모만은 여성적이고 용인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p.210)





어느날 나는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읽었고, 필연적으로 이런 구절을 만난다.

















거기 있는 털, 그걸 음모라고 그러나, 그걸 좋아하지 않으면 거기도 사랑할 수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거기 있는 털을 좋아하지 않아. 내 전 남편은, 남편이라고는 그 사람밖에 없었지만, 내 털을 혐오했어. 그게 비비 꼬여 있어서 더럽다고 하더군. 그래서 거기 있는 털을 밀 수밖에 없었지. 남자들 수염 깎듯이 나도 거기 털을 밀어버려야 했어. 어떡해? 싫다는데!

털을 밀어버리니까 우습더라고. 맨숭맨숭한 언덕배기 같은 것이 꼭 어린 계집아이의 거시기 같았지. 그런데 그게 그 남자를 흥분시키나봐. 우리가 섹스를 할 때 내 보지는, 아마 남자들 턱수염을 비벼대는 것 같았을 거야. 자기가 비벼대기는 좋았을지 몰라도 난 끔찍하게 아팠어. 꼭 모기에 물린 곳을 긁어대는 꼴이었지. 불이 나는 것처럼 화끈화끈거렸어. 섹스를 하고 난 후면 여기저기 빨갛게 부풀어올랐지. - 버자이너 모놀로그 中



《여자다운 게 어딨어》의 저자 '에머 오툴'은 자신의 몸에 난 털들을 제모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겨드랑이털을 무성히 기르면서, 그러나 그 털이 보이게 옷을 입는 것을 쉽게 하지는 못했다. 털을 면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밖으로 알리지는 못하는 긴 시간이 흐르고, 그것을 드러낼 수 있었을 때는 모두가 자신을 손가락질하고 수근댔다. 그녀는 털을 면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강간하겠다는 협박 메일까지도 받는다. 그렇게 털을 기른채 살다가 이제 그녀는 다른 여자들처럼 온 몸의 털을 싹 다 밀어보기로 한다. 브라질리언 왁싱까지 포함해서.



다음은 외음부였다.

외음부.

외음부.

오 씨발 신이시여.

에이샤는 위쪽 음모를 제거할 수 있도록 배를 위로 잡아당겨 피부를 팽팽하게 만들라고 했다. 그는 이윽고 뜨거운 왁스를 내 몸에 붙이고 충분히 굳을 때까지 토닥였다. 그러고는 왁스를 떼어냈다.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느낌이었다. "하느님 맙소사!" 나는 비명을 질렀다. 에이샤는 다시 "흠흠" 소리를 냈다. '알아요, 고통스럽죠?'로 번역되는 이 소리는 아마 연대의 표현으로 해석되어야 마땅하겠으나, 지금 내 상황에서는 내가 직전에 보인 자만심을 놀리는 게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키니라인 구역은 나쁘지 않았지만 대음순 부위는 고문이었다. 피부를 팽팽하게 당길 수가 없어서 왁스를 그냥 떼어내야 했다. 타는 것처럼 찢어지는 감각이 내 몸에서 가장 민감한 부위를 집어삼켰다. 겨우 숨을 고르고 있을 때, 에이샤가 타액과 싸우며 말했다. "고통을 참아낼 가치가 있을 거예요." 세상의 어떤 것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가치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의혹을 제기할 시간은 없었다. 에이샤가 이번엔 반대쪽에서 왁스를 떼어냈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머지 미치광이처럼 웃으며 소리를 질렀다. "여자들은 정말 용감해요! 우린 정말 용감 하다고!" (p.366-367)



나 역시 묻고 싶다. 이만한 고통을 참아낼 가치가, 대체 어디에 있는가. 세상의 어떤 것이 이런 고통을 참아내도록 한단 말인가. 왜 그 고통을 참아가면서 아이같은, 자라지 않은 보지를 만들어야 하는가. 에머 오툴 역시 그것이 어른의 것이 아님을 인지한다.



마친내 나는 방 안 거울 앞에 서서 팔을 벌리고 외음부를 드러냈다. 모든 부위가 붉게 달아오르고 화끈거렸다는 걸 무시하면, 내 몸이 이런 모습이었던 건 열세살 때가 마지막이었다. 허벅지 사이의 접힌 조개껍질 같은 분홍빛 피부는 매우 아이 같고 매우 연약해 보였다. (p.367-368)




며칠전에 여자1과 브라질리언 왁싱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여자1의 친구가 브라질리언 왁싱을 정기적으로 받고 있는데, 그것은 '위생' 때문이라는 거였다. 위생. 위생 뭘까? 계속해서 제모하는 삶을 살고 있는 여성들은 자꾸만 위생 때문이라며 자기합리화를 한다. 나 이거 자기 만족이야, 내가 이게 편해, 털을 미는 게 깔끔하잖아, 라고. 어떤 상황을 오래 지속하고 있을 때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당연히 기분 나쁘다. 게다가 그걸 인정하는 것은 더더욱. 그래서 우리는 자꾸만 자기 변명, 자기 합리화로 숨는다.

그러나 위생. 정말 위생 때문인가.



위생이란 자신의 신체를 청결하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 아닌가. 여성의 다리털은 남성의 다리털보다 결코 덜 위생적이지 않다. 체모가 비위생적이라는 주장은 곧 우리 사회에서 대다수의 남성이 항상 지저분하게 박테리아를 달고 다닌다는 주장과 같다.

우리의 다리털에 배설물이 덕지덕지 묻어 있거나 겨드랑이털에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거주하는 것은 아니다. 진짜로 위생이 문제라면 나날이 많은 화학물질과 박테리아를 묻히고 다니는 머리털부터 밀어버려야 할 것이다. 아니면 세균이 득실대는 손을 잘라야 할 것이다(조금 불편하리라는 것은 인정한다). 여성의 체모에 불결한 요소는 없으며, 여성이 체모를 제거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건강이나 위생과 관련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p.211-212)



만약 체모가 실제로 체취와 땀을 증가시킨다고 치더라도, 여성이 지구상에서 자기 존재의 후각적 증거를 완전히 지워야 할 다위성은 어디 있는가? 설령 체모가 실제로 사람들의 체취를 증가시킨다고 치더라도, 남성의 체취는 용인되는 반면 여성의 체취는 용납 불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의 신체가 이렇게 많은 난처함과 수치스러움에 둘러싸여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자도 사람이다(이게 급진적 페미니스트의 생각이라는 것, 나도 안다). 여자도 털이 난다. 여자도 땀이 난다. 여기에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다. 잘못된 것은 우리가 타고난 신체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도록 길들여졌다는 것, 그리고 그 때문에 우리의 건강과 행복이 공격받고 있다는 것이다. (p.212-213)



손을 잘라버려야 할거라는 건 너무 나간것 같지만.

내가 여행을 앞두고 수영복을 챙기면서 겨털을 제모하지 않겠다고 하자, 여자2가 내게 그랬다.


"악, 너무 지저분해. 네 털이 빠져서 수영장 물에 떠있을 거 생각하면 너무 더럽잖아."


그래서 내가 그랬다.


"나는 털 빠지면 안돼? 수영장의 그 많은 남자들은 아무도 제모 안해서 죄다 빠지는데? 나 혼자 수영장물 깨끗하게 쓰면 뭐해? 남자들 털이 다 빠지는데?"


그러자 여자2가 헉, 소리를 냈다.


"맞네. 남자들은 아무도 겨털 안밀고 오는데..."




이 책이 처음에 마케팅을 어떻게 한건지 모르겠지만, 당시에 내가 이 책을 사둘 때에는 '제모를 선택하지 않은 발랄한 페미니스트의 에세이'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제모하지 않은 여성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제모를 선택하지 않기로 결심하기 전과 또 행동하고 난 후의 이야기는 이 책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에머 오툴은 이 책에서 자본주의와 언어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강간은 말할 것도 없고, 철학자들의 얘기도 수시로 등장한다. 18살에는 여성혐오의 꼭대기에 있었던 자신의 경험을 반성하며, 그 후에 공정하지 않고 공평하지도 않은 것들을 인식하고 스스로 바꿔나가고자 애쓴다.


에머 오툴은 자신이 젠더 퀴어라고 밝힌다. 동성과도 이성과도 연애를 하는데, 자신을 양성애자로 규정하고 싶진 않다고. 그녀는 삭발도 했었고 겨드랑이를 비롯해 다리털까지도 제모하지 않았다. 집에 가면 가사노동에 전혀 신경을 안쓰는 아빠와 오빠에게 잔소리를 퍼부었고, 그런 그녀를 오빠의 친구는 '쟤 남자친구는 있냐'며 혀를 차곤 했다. 남자들이 생각하는 여자의 최고 가치는 '남자친구의 유무'인가보다. 남자친구를 사귀지 않는 상태의 여자는 가치없고 초라하며, 남자친구를 사귀는 여자는 예쁘고 아름다운 여자.


그런 그녀지만 강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섹스를 하기로 한 남자가 지독하게 괴롭혔던 것. 전희 없이 쑤셔넣기로도 괴로웠는데 콘돔을 안쓰겟다고 우기기까지 했다. 결국 콘돔을 끼기는 했는데, 아무런 상의없이 항문에 삽입을 한다.



"씨발, 너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물었다. "너야말로 뭘 하는 건데?" 그가 말했다. "여자 젖꼭지를 뒤틀고 때리다가 갑자기 항문에 넣다니 말이 돼?" 나는 가까스로 목소리를 냈다. "콘돔 때문이야." 그가 말했다."콘돔을 끼고 하면 사정을 못한다고." 나는 최대한 숙녀다운 말투로, 그러나 출판사에서 편집할 게 분명한 어휘를 사용해서, 그쪽의 사정능력은 내가 알 바 아니라고 말했다. 방패처럼 내민 베개 뒤에 숨어 화를 내는 내 모습에 그는 당황한 듯했다. 내가 합의 없는 항문성교를 즐길 거라고 추측한 이유가 도대체 뭐냐고 묻자, 그는 대답했다. "다른 여자들은 좋아하던데." 그리고 덧붙였다. "너도 딱 날라리 같아서 좋아할 줄 알았는데, 침대에선 형편없네."

다른 여자들은 좋아한다고? 아니, 아니다. 절대 좋아할 리 없다. 여성의 몸은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여자들이 포르노 배우처럼 윤활유도 없는 항문성교를 좋아할 수 있다면 남자들은 전부 제임스 본드처럼 차를 몰 수 있을 거다.

말이 난 김에 덧붙이자면, 그후로 사흘 동안 대변을 볼 때마다 피가 났다. 연극은 2주 동안 상영되었고, 나는 그 행복한 항문 강간마 씨와 매일 상당한 시간을 함께 보내야 했다. 그는 아직도 종종 페이스북에서 내게 친구 신청을 한다. 나는 거절한다. (p.276-277)



콘돔을 끼면 사정을 못하는 건 남자지만, 그래서 합의 없이 강제적으로 항문에 삽입을 시도했지만, 그러나 그 남자는 여자에게 '침대에서 형편없다'고 말한다. 세상 찌질한 새끼...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침대에서 형편없는 여자가 되지 않으려고 싫은 것들을 참아내고 견디고 있는가. 에머 오툴도 싫었지만 견뎌냈던 적에 대해 이 책에서 언급하는데, 하아- 이 부분을 읽는데 나라고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마 남자와 연애를 하는, 했던 여성이라면 그런 경험은 누구나 있지 않을까. 싫었지만 상대가 좋아하기 때문에 억지로 해야만 했던 것들, 좋지 않았지만 좋은 척 했던 시간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그 때 그건 정말 싫었는데' 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런데 했어. 내가 왜 그러고 살아야 했을까. 왜 내게 그런 시간이 있었을까. 사실은 어느 순간들에는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고, 이 남자는 지금 뭐하고 있는거냐' 하는 생각을 섹스 중에 하기도 했다. 어떤 이와의 섹스는 후회만 찾아와. 나의 여자친구들은 '지가 되게 잘하는 줄 알아' 라는 말을 수시로 했고, '남편과 섹스하는 거 한 번도 좋았던 적 없어' 라고 말한 친구도 있다. 에머 오툴도 이 책을 통해 얘기하는데, 여자들은 성적 쾌감에 있어서도 항상 상대를 우선시한다. 마치 자신의 쾌감은 언제나 뒷전이라는 듯이. 속쓰려...




책 전체에 밑줄 긋고 싶었다. 밑에 인용해두겠지만, 다들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나는 단지 털과 섹스만 가져왔지만, 작가가 역할 놀이에 대해 그리고 언어에 대해 말하는 것도 아주 좋다. 깊이 생각하고 또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며 또 얼마나 좋은가. 이미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확신하는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모르는 내용은 하나도 없지만, 그러나 이 책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알아채는 것은 분명 기운 나는 일이다.



다른 책들에 대한 언급도 수시로 나오는데, 일단 이 책.


이 책이 다루지 안은 것에 대해서도 간략히 짚고 넘어가야겠다. 이 책은 남녀의 두뇌 차이에 관한 과학서적이 아니다. 해당 주제에 대해서는 시중에 훌륭한 책이 여럿 나와 있는데, 특히 리스 엘리엇Lise Eliot의 『파란색 뇌, 분홍색 뇌』Blue Brain, Pink Brain 와 코딜리아 파인Cordelia Fine의 『젠더, 만들어진 성』Delusions oif Gender 을 추천하고 싶다. 두권 모두 신경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딴 여성 저자가 철저한 연구를 바탕으로 쓴 재미있는 책이다. (p.14)
















위에 14페이지 읽다가 얼른 내 책장으로 갔다. 분명히 코딜리아 파인의 책이 내 책장에 있었던 것 같아서. 아니나다를까, 예쁘게 꽂혀있었다. 읽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후훗. 그래도 있으니까 기분이가 좋군. 음화화화핫. 찾아보니 리스 엘리엇의 책은 아직 번역된 게 없는가 보다. 코딜리아 파인의 『젠더, 만들어진 성』은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로 선정해도 좋을 것 같다.


주디스 버틀러도 수시로 등장한다. 버틀러는 싫든 좋든 한 번쯤 읽어봐야 하는 게 아닐까.
















이만 총총.



그러나 원피스를 입기 위해 야생동물 같은 다리를 가려줄 깨끗한 스타밍과 흉포한 겨드랑이를 가려줄 카디건을 찾아 고군분투하는 지금, 나는 의복의 자유가 얼마나 허상이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내게는 피부를 드러낼 자유가 있었지만, 규범에 맞는 여성적 의상을 입을 때 드러나는 나의 신체 부위들은 '여성화'되었을 경우에만 노출에 적합하다고 평가받았다. 그리고 여성화 과정에는 종종 돈과 시간을 들여야 했다-미용산업의 주머니를 내 돈과 시간으로 배불려야 했다는 말이다. 만약 내가 여성화에 순응하지 않은 신체 부위를 노출한다면-가령 크롭톱 아래로 드러난 배가 충분히 날씬하지 않다거나 치마 아래로 뻗은 다리에 털이 숭숭 나 있다거나-나는 사회적 맹비난과 개인적 수치심으로 이중의 불쾌감을 겪어야 할 것이다.
여성성은 여성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구매해야 하는 것이다. (p.226-227)


나는 왜 스스로를 굶기고 있었을까? 자기 자신에게 굶주림을 강요하는 것은 외부자의 시선으로 보면 신체에 대한 자기학대와 다름없다. 만약 내가 반년 동안 매일 1,000칼로리 이하만을 섭취한 것이-그래서 월경이 끊기고, 손발이 파래지고, 두피보다 학교 점퍼 어깨에 붙은 머ㅣㄹ카락이 더 많아진 것이- 우리 부모님 탓으로 보였다면, 학교 선생님들은 아마 사회복지사에게 연락했을 것이다. 명백히 학대이기 대문이다. 그렇다면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굴러가는 우리 사회에서 스스로 굶기를 선택하는 것은 자기혐오나 자해와 동등하다고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P15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그 자체를 위해 욕망할 수 있는 것은 행복이 유일하다고 주장한다. 왜 돈을 벌고 싶냐는 질문에 누군가는 ˝다이아몬드를 사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다이아몬드를 사고 싶은 이유를 물으면 ˝아름다우니까요˝라는 대답이, 아름다워지고 싶은 이유를 물으면 ˝날 행복하게 해주니까요˝라는 대답이 돌아올 수 있다. 그러나 왜 행복해지고 싶냐는 질문은 말이 되지 않는다. 행복은 궁극적인 목적이기 때문이다. 다른 무엇이 아니라 온전히 그 자체를 위해 욕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행복이다.- P16

나느 ‘여자애‘나 ‘여자‘라는 단어는 모욕으로, ‘남자‘라는 단어는 칭찬으로 쓰이는 것을 들었다. 섹스 파트너가 여러명인 여자를 일컫는 단어는 헤픈 년, 걸레, 잡년, 문란한 여자, 흘리고 다니는 여자, 끼 부리는 여자, 헐렁한 년, 쉬운 여자, 갈보, 화냥년, 창녀를 비롯해 수도 없이 많았으나 섹스 파트너가 많은 남자를 칭하는 단어는 ‘바람둥이‘ 뿐으로, 어쩐 일인지 항상 유머러스한 업적을 암시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주 나쁜 말, 최고로 심한 욕설이 ‘보지년‘cunt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여성의 성적 행동과 신체를 남성의 그것들과 다르게, 즉 열등하게 일컫는 법을 배웠다.- P24

오랫동안 자각하지 못했지만, 계속되는 어른들의 외모 칭찬은 내게 분명히 스며들었다. 그로써 나는 남들이 내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나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는 법을 배웠다. 예쁨과 소녀다움에 기반을 둔 가치를. 더 나이가 들면서 나는 칭찬을 선뜻 받아들이는 법 또한 배웠다. 나아가 이런 관심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나 자신에게 만족하려면 외모에 대한 칭찬이 필요했으므로, 칭찬을 얻어낼 수 있는 행동에 착수했다. 두말할 것 없이 패션, 화장, 다이어트, 몸치장에 관련된 행동들이었다. - P37

나는 내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보다 큰 사회구조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10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나는 마침내, 열등한 사회적 지위에 놓여 있으면서도 아주 예쁜 신발을 신을 수 있다는 데에서 행복감을 얻는 것을 거부하는 법을 배웠다. 나 자신과 세계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법을 배웠다. 그다음 10년 동안 나는 젠더 연기를 다르게 해보기 시작했고, 과거 나의 행동들이 내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가 평생 리허설을 해온 연기에 불과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읊어온 반페미니스트적 대사들이 내가 스스로의 논리로 생각해낸 게 아니라 가부장제에서 요긴하게 써먹는 단골 대사들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부끄러웠고 그만큼 화가 났다. - P83

남성과 여성 사이에 신체적 차이가 있긴 하지만, 문화가 발전하면서 이러한 차이들의 의미는 뿌리째 달라졌다. 그럼에도 남녀는 여전히 사회에서 전혀 다른 역할을 맡는다. 쌘드라 벰은 역사상 처음으로 남녀가 거의 모든 일에서 똑같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대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많은 기관들이 부모 노릇과 직장생활을 병행하기를 몹시 어렵게 만들어놓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이 역설 뒤에 숨은 역사와 전통을 설명한다. 임신의 주체는 여성이며 육아 역시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로 여겨져왔기 때문에, 노동시장을 떠나야 하는 것은 항상 여성이다. 벰이 보기에 이는 여성과 남성의 능력이 아니라 권력, 역사, 전통의 문제다.
아직도 재생산 기능이 있는 신체를 지닌 여성들이 공적 영역에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전문용어로 멍청이라고 부른다.- P170

쎄미포르노 출판물의 (대다수가 남성인) 편집자, 사진가, 주주 들은 자신의 신체적 편안함이나 자유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성들의 성적 쾌락을 위해 가슴을 노출한 젊은 여자들의 사진을 팔아서 부를 쌓았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묵직한 정치적 금기가 덧붙은 여성의 몸은 사업가들의 수익을 올려주는 상품이 된다. 상업화를 통해 금기는 강화되고, 여성이 남성만큼 신체의 자유를 누리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아직 어리고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남성들은 벗은 여성의 사진들을 구매하면서 여성의 신체가 돈을 내고 소비할 수 있는 상품이라는 것을 배운다. 이미 꽤 명백해던 권력 역학은 갈수록 강화된다.- P181

많은 친구들이 브라질리언 왁싱과 할리우드 왁싱을 받고 자신의 은밀한 곳이 포르노에 나올 만큼 얼마나 근사하게 바뀌었는지, 남자친구의 반응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그 감촉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부드러운지 자랑했다. 그래서 나도 예약을 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통화 중 그 얘기를 꺼내자 엄마는 이렇게 물었다. ˝대체 왜 그런 짓을 하는 거니?˝나는 대답했다. ˝다른 애들도 다 하니까요.˝ 그러자 엄마가 말했다. ˝얘, 다른 사람들이 절벽에서 떨어지면 너도 따라 떨어질 거니?˝ 나는 다섯살 때부터 나를 격파해온 엄마의 논리에 또 한번 패배하여, 제모 숍에 전화해서 예약을 취소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사실 브라질리언 왁싱을 받고 싶은 마음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는 내 음모에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수많은 친구들이 음모를 역겨운 것으로 취급하자 압박을 받았던 것이다. 그뿐이었다.- P208

머리로는 학부생 때부터 구조와 행위주체 개념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면도를 그만둔다는 결정을 내린 뒤 나는 처음으로 사회적으로 조건화된 젠더 행동을 선택한다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실감했다. 나는 결코 면도하기로 ‘선택‘한 적이 없었다. 내가 열세살 무렵 다리를 난도질 하기 시작한 까닭은 그것이 당시 내가 절박하게 꿈꾸던 여성성으로의 도약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겨드랑이에 털이 좀 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겨드랑이에 면도기를 들이대기도 했다. 내가 성인으로 지내는 인생 내내 다리와 겨드랑이를 아이처럼 매끈하게 유지하려 노력할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업었다. 나는 소녀였고, 어른이 되면 성인 여성들이 으레 그러듯 면도를 할 터였다.- P222

그러나 원피스를 입기 위해 야생동물 같은 다리를 가려줄 깨끗한 스타밍과 흉포한 겨드랑이를 가려줄 카디건을 찾아 고군분투하는 지금, 나는 의복의 자유가 얼마나 허상이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내게는 피부를 드러낼 자유가 있었지만, 규범에 맞는 여성적 의상을 입을 때 드러나는 나의 신체 부위들은 ‘여성화‘되었을 경우에만 노출에 적합하다고 평가받았다. 그리고 여성화 과정에는 종종 돈과 시간을 들여야 했다-미용산업의 주머니를 내 돈과 시간으로 배불려야 했다는 말이다. 만약 내가 여성화에 순응하지 않은 신체 부위를 노출한다면-가령 크롭톱 아래로 드러난 배가 충분히 날씬하지 않다거나 치마 아래로 뻗은 다리에 털이 숭숭 나 있다거나-나는 사회적 맹비난과 개인적 수치심으로 이중의 불쾌감을 겪어야 할 것이다.
여성성은 여성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구매해야 하는 것이다.- P226

자본주의 체제는 우리에게 여성성은 우리가 구매해야 하는 것이라고, 남성과의 차이를 과장하는 방향으로 몸치장을 하지 않으면 올바르게 성별화될 수 없다고, 여성성이라는 임의적 개념에 맞춰 스스로를 부호화하지 않으면 여성적일 수 없다고 가르친다. 그러면서 동시에 선택의 주체는 우리라고 세뇌시킨다. 나는 체모를 기르기 시작한 뒤에야, 몸의 문제에서 내게는 조금도 선택권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P227

언어를 변화시키면 가능성과 자유가 태어난다. 차별적인 세계관이 더는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예컨대 이사장을 ‘they‘라고 칭하면, 현실적으로 남자가 그 자리에 앉을 가능성이 더 높긴 해도, 이사장이 여성일 수 있는 언어적 공간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내가 돌보는 어린아이를 ‘they‘라고 칭하면 그 아이에게는 어린 나이부터 기대되는 성역할 바깥에서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 내가 데이트하는 사람을 ‘they‘라고 칭하면 사람들은 더이상 내가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 추측할 수 없을 것이고, 성소수자들에게는 다양한 기회가 주어진다.- P266

돌이켜보면 내 행동의 바탕에는 내 쾌락이 상대의 쾌락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믿음이 깔려 있었다. 미디어, 포르노, 심지어는 의학 및 과학 문헌에서 남녀의 성적 쾌락을 묘사할 때 취하는 태도를 감안하면 놀랄 일은 아니다. 1장에서 적었듯 여성들에게 남성의 승인을 갈망하는 경향, 자기 자신의 필요를 남성보다 적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을 염두에 두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나 자신이 부끄럽다. 현실세계에서는 과격한 평등주의자인 내가 어째서 침실에서는 순종적으로 되는 걸까?- P295

강간은 이 스펙트럼의 가장 추한 극단이지만, 합의된 섹스에서도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것을 원할 경우 자신의 쾌감을 위해 상대의 불쾌감을 무시하는 일은 흔하다. 상대가 거절 의사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 핑계가 된다. 여성이 자신의 쾌락을 상대의 쾌락보다 덜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는 문화에서 섹스는 결국 남성이 원하는 행위의 모방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문제는 그 행위가 폭력적인 포르노와 여성의 성기능에 대한 보편적 무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P296

진실을 말하자면, 나는 점잖은 페미니스트 앞에서는 인정하지 않을 성적 판타지와 이상성욕 들을 품고 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특별히 노력하거나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나이가 들고 전보다 정치화되면서 내 욕망은 조금씩 변화하는 중이다. - P298

살면서 유일하게 평등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있다면, 널따랗고 탄력 좋은 침대 위에 아름다운 몸과 더불어 누워 있는 순간일 것이다. 그런데, 페미니스트인 내가 연인들에게 몸을 결박당하고 말 못할 행위의 대상이 되는 걸 즐겨도 괜찮은 걸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당연히 괜찮다˝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확신이 없어진다. 성에 대한 이분법적 이해(남/여, 톱/보텀, ‘돔/써브 등)는 사회의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명백히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침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사회적 현실과는 별개라고-주종관계에 기반을 둔 섹스는 가부장제의 산물도, 가부장제의 생산자도 아니라고-주장하는 사람들의 논거에는 논리도 설득력도 부족하다. 나는 믿고 싶다. 정말로 그렇ㄱ ㅔ믿고 싶다. 그러나 불가능하다. 섹스는 성별화된 사회의 일부이며 강력한 힘을 지니기에, 우리가 젠더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에 막강한 영향을 미친다.- P302

젊은 여성들은 섹스 및 포르노 업계에 걸맞은 미학의 의상을 입도록 조건화되지만, 강간이라도 당하면 그런 옷을 입은 게 잘못이라고 책임을 뒤집어쓴다. 여성들은 자신의 신체를 혐오하고 상대의 성적 쾌락에 우선적인 가치를 두면서도 성적으로 해방되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표면상으로는 누구든 좋은 사람과 섹스를 할 자유가 있지만(‘능력남‘ 대신 ‘창녀‘ 소리를 듣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면), 우리가 성해방을 수행하는 의상과 안무는 우리의 성숙한 신체를 수치스러운 상징으로 바꿔놓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우리를 폄하하고 상처를 입힌다.- P306

우리 여성들이 성역할을 수행하는 데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고 또한 그들에게서 사랑을 돌려받고 싶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아주 크다. 이 동기는 손가락질을 받아선 안 된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또다른 이유는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감정적으로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서다. 때때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거나 화나게 만들지 않고서 성역할을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그러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예측 가능한 갈등에 맞설 전략을 세워두는 편이 좋다. 솔직히 말하면 ‘예전의‘ 당신을 더 좋아했던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고서 성역할을 다르게 수행할 방법은 없다. - P350

긍적적인 면은, 과거와 달리 화장을 하면 더 예뻐 보인다는 미적 판단에서 벗어났다는 점이었다. 이건 놀라운 일이었다. 과거에 나는 매일 화장을 했으며, 어느 시점에는 화장을 하지 않고서는 집 밖으로 한발짝도 나갈 수 없다고 느끼기까지 했다. 그러나 지금은 거울을 보고 불그스레한 피부를 보면 내가 내 피부의 부드러움과 생명력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깨닫는다. 이제는 피부를 빈틈없이 완전무결한 베이지색으로 물들이고 속눈썹을 검게 칠하는 것이 꺼려졌다. 전과 달리 화장은 미모를 향상시키는 게 아니라 한낱 변화를 낳는 행위로 느껴졌다. 화장을 한 나는 더 예뻐진 것이 아니라 그냥 달라진 것이었다. - P372

그러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슬픈 진실은, 음부가 가렵고 아침을 먹을 시간이 사라졌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하루 이틀 간의 정신적 적응기가 지나고 나니 규범에 맞는 성별화된 의상을 입은 덕분에 일상이 너무나도 수월해졌다는 것이다. - P373

할리우드 제모의 경험이 내게 남긴 유산은 여성의 미용 의례 가운데 제모야말로 미친 짓이라는 확신이었다. 막 털을 뽑은 닭 같은 모습에서 벗어나자 사흘간으 피부가 매끈했지만, 그다음엔 발진이 돋기 시작했다. 곧 외음부 전체가 작고 성난 뾰루지로 뒤덮였다. 걸을 때마다 피부가 가려웠고, 캐나다에서 새 직장을 구한 첫주 동안 나는 주기적으로 화장실에 숨어들어 외음부를 벅벅 긁어야 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팬티를 벗어던지고 옴 붙은 딱한 짐승을 찬물로 다독이곤 했다. 할리우드 제모를 받은 다른 여자들에게 혹시 비슷한 증상이 있었느냐고 묻자, 몇명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아, 털이 다시 날 때는 원래 그래.˝ 뭐라고? 이 미친듯한 가려움과 흉측한 발진이 음모 제모의 평범한 부작용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세상에 체모보다 발진을 더 섹시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겠는가? 우리가 언제부터 수두성애자들의 사회에서 살고 있었는가?- P373

우리가 무력한 행동체계에 갇혀 있는 이유는 우리의 생각, 느낌, 행동이 미묘하게 강암적인 체제(구조)의 산물임에도 우리가 그것들을 선택(행위주체)으로 경험하기 때문이다.- P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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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7-09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털털하게 살자구요. 하하하

다락방 2019-07-09 11:08   좋아요 0 | URL
좋아요, 털털하게!!

단발머리 2019-07-09 11:14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저두요!!!!

심술 2019-07-09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라질리안 제모가 그런 거군요. 방금 알았네요.

지금까지는 1)브라질에서 대대손손 이어온 전통 제모법 내지는 브라질 누군가가 발명한 제모법

이나

2)브라질에서만 나는 동식물을 원료로 삼아 만든 제모약을 써서 털 없애는 법

이라고 막연하게 생각만 할 뿐
정작 어떤 건지 찾아볼 만큼 궁금한 적이 전혀 없었거든요.

헐리우드 제모라는 건 첨 들어보는데 이름만 들어도 대충 짐작이 가네요.

그러고 보니 어느 여성이 쓴 글이 하나 기억나네요.
어디서 읽었는지는 잊었는데
‘내가 속옷 때문에 불편하다고 하자 누가 추천해서 남자 속옷을 입어 보라 해서 해봤는데 아주 편했다.
나는 여자로 태어난 죄로 비싸고 불편한 속옷만 입어 온 지난 세월이 억울했다.
아울러 못 한 게 아니라 싸고 편하게 여자속옷도 만들 수 있으면서도 안 한 속옷회사에 화가 났다.‘
는 거였죠.

그거 읽고 여자들은 정말 별별 작은 일에서부터 쓸데없는 괴로움을 겪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락방 2019-07-09 15:04   좋아요 0 | URL
왜 고통을 참아가면서까지 제모를 해야하는걸까요. 아 너무 짜증나요. 에머 오툴도 제모하지 않기로 결심은 했지만, 제모하지 않은 겨드랑이를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거든요. 자유롭게 옷을 입지 못하는거죠. 저도 제모하지 않으면서 겨드랑이 가리고 다니는 건, 도대체 제모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나 싶기도 해요. 여자들만 있는 곳에 가도 다들 제모하고 있는데 저 혼자 안한걸 알면 거기에서 자연스레 아무렇지도 않은 듯 드러내기가 쉽지는 않더라고요.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는 제모 압박을 받고 살아왔나 싶더라고요. 어휴, 지쳐요 정말.


저도 남자 속옷 입고 다니는데 세상 편해요. 다시 여자 속옷으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인생........

심술 2019-07-10 16:33   좋아요 0 | URL
아, 락방님도 남자속옷 입으시는군요.

방금 휴대전화로 문자 왔는데 락방님이 보내신 책 오늘 안으로 온다고 하네요.

번번이 고맙습니다.

다락방 2019-07-10 20:38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읽으셔요! :)

심술 2019-07-11 14:07   좋아요 0 | URL
그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