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에 지하철 한 대를 놓친다는 건 단순히 그 한대의 몇 분만 잃는다는 게 아니다. 그로 인해 환승열차까지 놓치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사무실에 도착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을 놓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언제나 그 시간에 타던 열차, 그것을 탄다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그 열차는 때로 내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기도 한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늘 이시간대에 오는 것은 맞는데, 내가 5호선에서 내려 3호선을 갈아타기 위해 환승역에 도착하면, 잠시후 열차가 들어오곤 했었는데, 오늘은 아직 환승역에 도착하기 전,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데 열차가 도착해있고 문이 열려 있었던 거다. 저 열차다. 저걸 타야해! 저걸 놓치면 나는 십분 정도를 잃는다! 그래도 지각하진 않지만, 십분을 잃고 싶진 않아. 간혹 이런 일이 있던 터라 나는 늘 그랬듯이 뛴다. 계단에서도 후다다다닥 뛰고-라고 했지만 사실 멈춰있는 에스컬레이터였다-, 완전히 계단에서 내려온 다음에도 열린 지하철 문을 향해 뛴다. 나만 뛰는 게 아니다. 다들 바쁘다. 다같이 뛴다. 다 같이 뛰자 동네 한 바퀴. 그러다 보니 저쪽에서 뛰던 아저씨와 이쪽에서 뛰던 내가 쾅- 하고 부딪친다. 그 아저씨도 나도 동시에 어! 하지만, 그 아저씨는 나를 흘깃 보고는 지하철 안으로 탑승하고 나는 허우적허우적 휘청휘청 대다가 그만 슬라이딩- 해버렸다.



씨발.


저거 타야해. 벌떡 일어나서 후다닥 지하철 안으로 탑승하고 내가 타자마자 지하철 문이 닫힌다. 검정색 스타킹엔 이미 땅바닥의 먼지가 묻어 있고,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타자마자 옆칸으로 옆칸으로 옆칸으로 옮긴다. 이쯤되면 내가 넘어진 걸 본 사람이 없겠지. 그리고 빈 자리에 가 앉아 무릎을 터는데, 흑흑, 너무 아프다. 손바닥도 욱씬욱씬 무릎도 욱씬욱씬. 너무 아프다. 아파. ㅠㅠ 너무 아파. ㅠㅠㅠ 그런데 그 아픔보다 더 큰 크기로 쪽팔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게 뭐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덩치도 산만한 여자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다 큰 여자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넘어졌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 뭣이지, 이름이, 퍼기. 여튼 그 여자가 그랬는데. 다 큰 여자는 울지 않는다고. Big Girls don't Cry. 흑흑. 눈물이 핑 돌지만 울지 않는다. 그러다가 키득키득 웃음이 난다. 아 진짜 이게 뭐야. ㅠㅠ 이러면서 눈물이 나는데 웃기고 웃긴데 눈물이 나고 눈물이 나는데 웃기고..이걸 반복하다가 아, 이제 진정하고 책 좀 읽자, 하였는데, 그때 내가 왼 손에 들고 있던 책, 그러니까 넘어지면서도 들고 있던 책은 바로 이것이었다.

















하아-
야.
문학이 어떻게 데이비드 실즈의 삶을 구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이 책을 읽고 있건만, 이 책은 나를 넘어뜨리는 데 일조했다. 만약 내가 이 책을 손에 들고 있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나의 양손은 균형을 잡으려고 허우적대다가 결국은 균형을 잡지 않았을까. 내가 균형을 잡지 못해 허우적 대다 결국 넘어지고야 만건, 이 책이 한 손에서 무게를 불균형하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문학은 데이비드 실즈의 삶을 구했지만, 결국 나를 넘어뜨린 게 아닌가.

야.
나 출근 베테랑이야.
내가 아침마다 이 시간에 출근을 얼마나 많이, 얼마나 오랜 시간 한 줄 알아? 어떻게 이 내가, 이 내가, 넘어질 수가 있지? 어째서? 이 아침에? 다 큰 여자가? 왜? 어째서?
아...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멈추질 않는다. 
나 출근 베테랑인데...


오래전 노래, 고신해철의 <도시인>에서는 '직장이란 전쟁터' 란 가사가 나오는데,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에겐 직장에 가는 길부터가 전쟁터란 생각이 든다. 아, 나는 누구인가. 왜 나는 여기 있는가. 나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



'데이비드 실즈'의 다른 책,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를 재미있게 봤었다. 아주 재미있게. 진짜 키득거리면서 재미있게 봤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책만큼 재미있지 않고 처음엔 산만하다 느껴지기까지 한다. 나는 산만한 걸 딱히 좋아하질 않아, 흐음, 이건 읽지 말까 하고 포기하다가 이내 아주 재미있는 부분을 읽게 된다. 아, 너무 흥미로워서, 퇴근길 지하철에서 읽다가 길동역에 내려서는 계단을 올라가면서도 읽었다니까. 아, 이러면 안되는건데...
물론 책을 재미있다고 느끼는 건, 작가가 하는 이야기가 재미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많은 부분은 '내가 가진(생각하는) 어떤 것'과 겹치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이 에피소드도 마찬가지. 내가 아주 긴 부분을 굳이 옮기고자 하는 건, 내 경험과 어느 정도 맞물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 남자를 좋아하면서, 나는 그에게 '당신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자 그는 내게 (자기에 대한 글을 쓴)일기장을 보여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일기장은 보여줄 수 없는 것이다, 라고 대꾸했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데이비드 실즈는, 일기장을 본다. 읽는다. 그 일기를 쓴 여자 몰래. 그 방안에 숨어들어서. 아...오 갓. 신이시여. 그가 나의 일기장을 볼 수 없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ㅎㅎㅎ 여튼, 아주 길지만 한 번 옮겨 보겠다. 우리, 다같이 재미있어 보도록 하자. 특히 당신, 집중해 읽으시라.


나는 열아홉 살이었고, 아직 동정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레베카가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를 알고 싶어서 그녀의 일기를 읽었다. 그녀는 나의 작은 몸짓 하나, 사소한 행동 하나까지 열정적으로 묘사하고 진심으로 감탄했다. 우리가 키스를 하거나 헤엄을 치거나 길을 걸을 때면, 나는 한시바삐 그녀의 방으로 돌아가서 나의 어떤 말이나 내 몸의 어떤 움직임이 그녀의 일기에서 칭송되었는지 알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그녀의 침착하지 못한 손글씨가, 자줏빛 잉크가, 멜로드라마 같은 이 일 전체가 좋았다. 내 존재의 모든 측면을 나 자신에게 혹평 당하는 대신 다른 누군가에게 칭찬받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놀랍고 중독적인 휴식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썼다. "D. 를 사랑하는 것처럼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처럼 완전하고 완벽하면서도 집착없이 순수했던 적도 없다. 가끔은 그를 황금빛 물처럼 마셔버리고 싶을 정도다." 당신이라면 자신에 대한 이런 글을 읽은 뒤에 중간고사 공부를 하며 밀턴에 집중할 수 있겠는가.
가끔 그녀는 목욕 가운 바람으로 내 방문을 두드렸다. 책을 돌려주기 위해서, 아니면 그녀가 막 썼거나 읽은 글에 대한 내 반응을 듣기 위해서. 그녀는 잘 자라고 인사하고 몸을 돌려 자기 방으로 걸어 가려고 했다. 나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우리는 포옹했다. 처음에는 방 앞 복도에서, 잠시 뒤에는 내 방이나 그녀의 방에서, 침대에서. 나는 열두 살 이후 아무하고도 키스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고등학교 내내 끔찍한 여드름에 시달렸다), 레베카를 산 채로 삼킴으로써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려 들었다. 그녀의 입술에서 피가 날 때까지 깨물었고, 그녀의 얼굴을 핥았고, 그녀의 귀를 씹었고, 그녀를 공중으로 들어올려 그녀가 비명을 지를 때까지 쥐어짰다.
일기에서 그녀는 평생 이런 키스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나를 보고 난 뒤에는 늘 잠들기가 어렵다고 썼다. 나는 그녀의 가운 허리띠를 잡아당기면서 이불 밑으로 이끌었지만, 그녀는 거부했다. 내가 그녀 안으로 들어가면 자기 눈이 멀어버릴까 봐 걱정된다고, 정말로 그렇게 말했다. 그나저나 그녀는 이런 표현을 대체 어디서 배웠을까?
날씨가 완전히 추워지기 직전에, 우리는 산으로 하이킹을 갔다. 첫날 그녀는 배낭을 침낭 발치에 두었다. 우리는 몇 분 동안 부드럽게 키스했고, 그녀는 곧 잠들었다. 그러나 둘째 날 그녀는 배낭을 베개 삼아 머리 밑에 두었다. 나는 칠흑처럼 까만 하늘을 응시하면서 레베카의 머리 뒤 흙에 손가락을 파묻었고, 처음으로 두 번째로 세 번째로 네 번째로 그리고 아마도 열네 번째로, 거의 순식간에 절정에 올랐다.
그 후로 나는 차마 그녀의 글을 읽을 수 없었다. 이탈리아 여성의 40퍼센트는 자신이 흔히 오르가슴을 가장한다고 고백했다는 조사 결과를 읽은 적이 있었다. 레베카는 이탈리아 사람이 아니었지만-남부 유대인이라는 흥미로운 변칙 사례였다-몸을 잔뜩 뒤틀면서 신음과 교성을 냈다. 만일 그것이 연기라면, 나는 사실을 알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예전엔 이런 적이 없었다고 말하곤 했다. 
그녀는 매일 밤 다리로 내 몸을 휘감고 뭔가를 외쳤는데, 처음에는 독일어인 줄 알았다가 나중에야 "아, 내 아들"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 아들? 그녀에게도 자기만의 문제가 있겠지, 나는 짐작했다. 우리는 주피터 교향곡을 틀어놓고, 우리도 몰아치는 크레셴도에 맞추어 절정에 오를 수 있도록 속도를 조절하려 했다. 나는 그녀 위에 앉아 그녀의 입에 들어간 채, 그녀 방의 파란 벽을 응시하면서, 온몸이 짜릿하게 파래지는 것 같아 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내 위에 앉아 엉덩이를 돌리면서 소리를 지르다가, "그만" 하고 말했다. 나는 "그만?" 하고 대꾸하고 그만했다. 그녀는 내 뒤통수를 움켜잡으면서 "그만? 장난해? 그만하지 마" 라고 말했다.
학기 말에,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가서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려고 짐을 싸던 중, 레베카의 일기를 읽은 것에 대해서 갑자기 죄책감이 들었다. 그녀와 키스할 때마다 눈을 감으면 내가 그녀의 책상에 앉아서 일기장을 넘기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짓을 한 것이 후회스러웠지만, 그녀에게 사실을 말할 순 없었다.
"왜 그래?" 그녀가 물었다.
"보고 싶을 거야. 가기 싫어." 나는 대답했다.
나는 비행기에서 그녀에게 긴 편지를 썼다. 얼굴을 마주하고는 도무지 고백할 수 없었던 말을 편지에 다 털어놓았다. 쭉 그녀의 일기를 읽었다, 너무 미안하다, 우리 사랑은 여전히 순수하고 우리가 앞으로도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만일 그녀가 고든에게 돌아가고 나와는 두번 다시 말도 섞지 않기로 결정하더라도 다 이해하겠노라고. 
그녀는 답장을 보냈다. 애초에 내가 그녀의 일기를 읽음으로써 힘을 얻을 필요는 전혀 없었고, 일기를 내버렸으며 다시는 쓰지 않을 것이고, 나를 용서하고 싶지만 자기는 신이 아니고, 그래도 신보다 자기가 더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내가 그녀에게 다시는 거짓믈을 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내 말을 다 믿겠다고 했다. 그녀가 보기에, 우리 사랑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했다.
글쎄,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돌아온 날 밤, 그녀는 내 방문에 "나한테 와"라고만 적은 쪽지를 붙여두었다. 우리는 가을 학기의 분방한 방종을 흉내 내려 애썼다. 그러나 두어 주 전만 해도 지극히 본능적이었던 행위는 이제 괴로울 정도로 자의식적인 행위가 되었다. 관계는 급속히 냉랭해졌다. 심지어 그녀는 한동안 고든에게 돌아갔지만, 두 번째 시도도 그다지 오래가진 못했다.
이제 와서 보건대, 내 입장에서는 대단히 이상한 행동이었다. 나는 그녀의 일기를 읽어서 나 스스로 상황을 망친 뒤, 일기를 읽었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알림으로써 우리 둘 모두의 상황을 확실히 망쳐버렸다. 그냥 나 혼자만 사실을 알고서 차츰 수치심이 옅어지게 놓아둘 순 없었을까? 나라는 인간은 대체 뭐가 문제인-문제였던-걸까? 내게는 남보다 큰 자멸의 버튼이 있어서 남보다 더 세게 더 자주 그걸 눌러대는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는 내게는 사건에 대한 언어가 적어도 사건 자체만큼 에로틱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글을 읽지 못하게 되자, 예전만큼 굳게 그녀를 사랑할 수가 없었다. 이것이 이른바 비극적 결함 아니겠는가. (p.61-65)



아,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이 어린(젊은?) 시절의 데이비드 실즈를 떠올린다. 헤엄을 치며, 이 자세로 헤엄치면 나를 근사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라고 고심하던 청년을. 상대의 입술을 깨물며, 여기에 대해서는 일기장에 어떻게 적힐까, 라고 동시에 생각하던 청년을. 또한, 레베카를 떠올린다. 그와 포옹하고난 뒤 일기장을 열어 그날 하루를 다시 생각하며 적어내려가던 여성을, 그의 팔에 안겨 안도했던 느낌을 적어 내려갔을 여자를, 헤엄치던 그의 근육을 보며 가슴 떨리던 걸 다시 끄집어내는 여자를. 아, 무릇 일기 쓰는 여자는 사랑에 빠진 것인가. 여자가 일기를 쓰는 것은 내 삶의 중심에 그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고, 남자가 그 일기를 훔쳐보는 것은, 그녀의 삶에 자기가 중심임을 자꾸만 생각하고 싶은 것인가. 여자가 일기를 쓰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그'를 떠올리는 것이고, 남자가 그 일기를 읽는 것은 '그녀가 사랑하는 나(자기 자신)'를 보고 싶은 걸까. 아, 이것은 이 책을 통틀어(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 가장 재미있는 에피소드였다. 




암튼 이 책을 들고 나는 오늘 아침 출근길에 넘어졌으며, 지금 보니 왼쪽 손에 작게 멍이 들었다. 이게 다, 이 책을 들고 넘어져서 생긴 일이다. 왼 손에 들고 있었고, 책을 놓지 않고 넘어져서 멍이 든거야. 문학은 내 손을 멍들게 했어...




나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거창한 일을 열심히 실행하고 있지는 않다. 내가 하는 건 고작해야 텀블러를 들고 커피를 사는 일이고, 장바구니를 들고 쇼핑을 하는 일 뿐이다. 그러다가 한걸음 더 나아가자, 생각한 게 면(천)생리대 사용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생리기간 내내 가방에 넣고 다니고, 빨고 하는 일들이 번거롭게 느껴져, 항상 '다음부터' 라고 미루기만 했다. 나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은 영 아니었던 거다. 

그렇게 미룰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젊고 건강한 육체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환경호르몬에 맞서 열심히 싸워줬던 내 육체. 그러나 이 육체가 작년부터 젊음에서 약간 빗겨나간 것 같다. 환경호르몬에 맞서 싸우다 상처를 입었달까. 일회용 생리대가 나를 아프게 했고, 고통스럽게 했다. 해서, 쓰레기를 줄이자는 의도보다 더 먼저, '내 고통을 막기 위해' 면생리대 사용을 고려해야 했다. 그러자 회사동료 e 양이 본인이 준비해둔 면생리대 몇개를 내게 써보라며 주었는데, 그래 어디 한번 써보자, 하고 썼다가 오, 신세계를 만난 것 같았다. 면이 내 피부에 닿자마자 안정이 되는 거다. 이것은 어쩌면 그저 '이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 나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일회용 생리대보다 피부에 닿는 느낌이 더 좋았다. 아프지 않았다. 그래서 작년 여름부터 나는 면생리대를 쓰기 시작했다. 아직 생리기난 내내 면생리대를 쓰는 것은 번거롭게 느껴져, 일회용과 번갈아 사용하고 있는데, 여러가지 느낌 혹은 생각이 교차한다. 내 젊은 육체는 이제 서서히 지고 있는가, 왜 더이상 환경호르몬과 싸워 이기지 못하는가, 하는 씁쓸함. 쓰레기를 줄이고 싶어했다는 의도로 처음에 시작했으면 명분이라도 있을텐데, 이건 내 육체를 위해서였네, 라는 씁쓸함. 



오늘 아침 출근길, 양재역에서 회사까지 걸으면서, 이렇게 내 육체가 점점 더 시들어가는건가, 하고 생각하노라니 그 증거가 또 하나 생각났다. 바로 '손'이었다. 내 손은 길고 가늘어서 예쁜 손이 아니라, 고생하지 않고 잘 먹고 잘 자란 손 같아서 예쁜 손이다. 그러니까, 맨질맨질 주름도 없는 그런 손. 손만 보면 부잣집 딸같달까. 여튼, 그러므로 나는 내 손을 보호해야 할 필요를 거의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남들이 핸드크림 발라도 그따위, 하면서 콧방귀를 꼈달까. 이십대 중반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남자들 세 명과 술을 마시는데 그중 한남자가 모태솔로 였다. 그가 내 옆에 앉아 술을 마시다가 우연히 내 손을 스쳤고, 그러자 깜짝 놀라며, 오 여자 손을 이런거냐며 한 번만 만져보면 안되겠냐는 거다. 그래서 나는 그래 한 번 만져보렴, 하고 손을 내밀었고, 그는 자신의 두 손으로 내 한 손을 덥썩 잡고는, 와 엄청 부드러워, 여자 손은 이런거에요? 이러면서 진심으로 놀라고 감탄하는 거다. 그때 앞자리에 앉았던 남자 둘은 그게 웃기다고 낄낄대고, 뭔가 나는 애틋한 마음이 되어 아, 이십대 중반이 되도록 여자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남자라니, 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나는 '남자친구가 델러 왔어요 이제 그만' 하고는 일어나서 나왔다. ( ")

그런데 언젠가부터 설거지를 하거나 손을 씻거나 하면 손이 거칠어지는 느낌이 왔다. 아! 이건 뭐냐...그제야 나는 사람들이 핸드크림을 바르는 이유를 알게된 것이다. 이 거친거 잡아주려고 핸드크림 사용하는 구나. 그때까지 핸드크림 선물 들어오면 주변에 뿌렸는데-난 이런거 안써-, 이제는 내 돈 주고 내가 쓸려고 직접 핸드크림을 사기도 한다. 아- 이렇게 늙어가는 건가. 면생리대를 쓰면서, 핸드크림을 사면서... 



늙어가는 육체의 쇠잔함..




새로 나올 갤럭시 6 은 내 타임라인에서 보면 '아이폰 따라쟁이'의 느낌이다. 나 역시 보면서 '갤럭시는 그 긴 시간동안 아이폰이 되기 위해 노력한 것인가' 라는 생각만 들었는데, 비교사진을 검색해 동생에게 보여주려고 트윗검색창에 '갤럭시6' 넣었다가, 예쁘고 갖고싶다는 긍정적 트윗이 많아 깜짝 놀랐다. 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걸 예쁘다고 생각하고 갖고 싶어하는구나. 내 타임라인에서만 아이폰 따라쟁이었어. 확실히 트윗의 타임라인은 철저히 '내 위주'라 내 생각에 갇혀 있게 만든다. 나의 타임라인에서는 내가 원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될 것 같았지... 나는 이런 식으로 보고 싶은 것만, 한쪽 면만 보게되는 구나.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비판하면서, 나 역시 내 생각에 갇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타임라인을 보다가 들었다.




그나저나 오늘의 위로가 있다면, 출근길에 '남자'랑 부딪쳤는데 넘어진 건 '나'라는 사실이었다. 남자랑 내가 부딪쳤는데 남자가 넘어졌다면...그게 어쩐지 더 슬플 것 같으니까.





내가 조지 부시에게서 경멸하는 모든 특징은 내가 나 자신에게서 경멸하는 특징이다. 그는 나 자신이 최악으로 구현된 존재다. 세상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G.K. 체스터턴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요." (p.27)

이윽고 나는 알게 된다. 무디가 수치심을 느끼는 진정한 이유는 자기 주변의 추행의 신호가 넘쳐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내가 극복할 수 없는 건 바로 이것이다. 일련의 그 추악한 범죄에 내가 공모했다는 부끄러움." (p.48)

(<사랑과 고통> 이라는 영화에 대해 언급하다가)
두 사람의 관계는 영화 내내 덜컥인다. 해가 나는가 하면 비가 내린다. "나에 대해 뭘 배웠어?" 릴라가 묻는다. "당신이 나를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거요." 사랑에 빠진 그가 대답한다. (p.72-73)

로미오와 줄리엣이 계속 살았다면 어땠을까? 열네 살이라는 무르익은 나이인 그들은 머지않아 누가 식기 세척기에서 그릇을 꺼낼 차례인지를 두고 입씨름을 벌였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남녀가 밤새 껴안고 있었다고 암시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럴 수 없다. 우리는 몸을 떼고, 돌아눕게 마련이다‥‥‥ (p.73)

(`로리 무어`의 《애너그램Anagrams》을 인용)
"네 블록 떨어진 곳에서 보니 새 떼에게는 일종의 집단적 생명, 뚜렷하게 드러나는 지성이 있었다. 새들의 무작위적인 날갯짓에는 틀림없이 패턴이 있었지만, 저 검은 새들 중 어느 한 마리 혼자서는 그게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우리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각자 혼자라면, 새들도 제 머리를 벽에 박을 것이다." (p.79)

(바셀미의 소설 《형제The Brothers》를 언급하면서)
책의 마지막에 이런 문장이 있다. "공기가 마치 우리 몸에 딱 맞춘 장갑처럼 우리를 감싸는 밤이었다." 이런 생각은 참 좋지 않은가- (p.135)

우리를 구별하는 것은 우리에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겪는 일은 대부분 상당히 비슷하다. 출생, 사랑, 못생기게 찍힌 운전 면허증 사진, 죽음. 우리를 구별하는 것은 우리가 각자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점이다. (p.151)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 사실상 프롤로그나 다름없는 해설적 첫 장은 책의 나머지 부분과 그가 쓴 다른 모든 글을 부질없게 만든다. 나는 이 공개적인 명상을 위해서 살고 죽겠다. (p.176)

소셜 네트워크/블로그가 좋은 책을 낳을 수 있을까? 이 경우(병신같지만 멋지게)처럼 극히 드물게는, 그렇다.
책은, 살아남기를 원한다면, 현대 문화와 공존하고 그 에너지를 문학을 위해서 쓸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곧장 급소를 찌르는 것, 이것이 오늘날 읽고 쓰는 방법이다. 적어도 내가 오늘날 읽고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p.189)

1987년에 (전미 도서상)픽션 심사 위원단이 토니 모리슨을 수상자로 지정하지 않자, 그녀느느 당시 위원장이었던 내 옛 스승 힐마 월리처Hilma Wolitzer 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다. "내 인생을 망쳐줘서 고맙군요." 내 인생이 고작 몇 사람이 점심을 먹으면서 선정하는 상을 받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다면, 내 인생에는 뭔가 문제가 있다.(p.197)

톨스토이에 따르면, 예술의 목적은 한 사람의 마음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다. (p.199)

이듬해, 누나가 말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좋은 소설이지, 나름대로 대단히 좋은 소설이야, 하지만 이제 《아홉 가지 이야기》로 넘어갈 때가 됐잖니.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다. 내가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의 시모어에게 어지나 감정 이입을 했던지, 어머니가 친구인 심리학자에게 나를 데려가서 몇 번 면담을 잡았을 정도였다. <에스메를 위하여, 사랑 그리고 비참함으로>는 지금까지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편 중 하나다.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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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3-05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게 읽히는 다락방님의글.^^

다락방 2015-03-05 16:13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히히히

blanca 2015-03-05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요. 이 책, 나도 그 전 책만큼 재미없다 하면서 접근했는데 의외의 즐거움이 있죠! 면생리대 ㅋㅋ 저도 있어요. 그런데 화장실에 그 잔해를 미처 숨기지 못했을 때 누군가 보면 굉장히 놀라더라고요--;; 세척의 고통이. 그래도 분명 종이보다 훨씬 내 몸에 그리고 환경에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저도 작년에서 올해로 넘어오는 시점에서 어떤 `늙음`을 느껴요. 다크서클에 나이가...모든 게 너무 반가워요. 지하철이 언제나 다락방님을 기다려 주면 좋을 텐데...

다락방 2015-03-05 16:17   좋아요 0 | URL
전 역시 이 책 보다는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쪽이 훨씬 좋네요, 블랑카님. 저 에피소드는 정말 재미있었지만 말예요. 면생리대는 역시 세척이.. ㅠㅠ 그래서 저도 일회용생리대랑 같이 쓰게 되더라고요. 부지런하기가 싫어서.. ㅠㅠ 몸에도, 환경에도 좋다는 건 알겠지만 말예요. ㅠㅠ

저도 이번해에 다크서클이 유독 진해진 느낌이 들던데..이것도 늙음..때문인가요, 블랑카님? 하아- 가는 세월을 막고만 싶어요. 전 이러다 금세 폐경올것 같아 무서워요. ㅠㅠ

무스탕 2015-03-05 1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발 달린 짐승도 넘어지는데 사람은 발이 두개밖에 없잖아요. 넘어져도 괜찮아요. 다치지만 않았으면..
정성이 말이 아이폰은 갤럭시를 닮으려고 하고 갤럭시는 아이폰을 닮으려고 한다더군요.
서로가 롤모델이라고요. ㅋㅋ

다락방 2015-03-05 16:17   좋아요 0 | URL
(끄덕끄덕) 그렇네요. 두개 밖에 없으니까..그치만...남들보다 두꺼운 다리라면 더 잘 버텨내야 하지 않나요? ㅎㅎㅎ

단발머리 2015-03-06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 인용 감사해요. 너무 좋았어요. (엥?)
저도 이 책은 읽을꺼예요.
저도 한 무게 나가서, 저 책이 저를 구해주지는 못할거지만, 그래도 너무 관심 가네요.

넘어지지 마세요...... .... 천천히, 천천히...

다락방 2015-03-06 10:24   좋아요 1 | URL
오늘도 또 열차가 와있는 바람에 뛰었는데, 뛰면서, 안돼 천천히 뛰어 라고 스스로에게 다짐시켰어요. 그렇지만 뛰었다능. 근데 뛰면서 무섭더라고요. 이런게 트라우마!! ㅎㅎ

책이 전체적으로 재미있진 않았고, 사실 무슨 말인지 저는 잘 이해되지 않기도 했는데, 그래도 저렇게 인용할만한 문구가 많더라고요, 단발머리님. 헤헷 :)
 


내가 나의 마니아가 되었다.





이게 뭐여..

좋아해야 하는지 싫어해야 하는지..내 기분이 어때야 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아무리 내가 자기애 쩔기로서니, 나의 마니아라니.



오, 나는 나의 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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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5-03-04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또 무슨...ㅋ

다락방 2015-03-04 16:2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니데이 2015-03-04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도 이유경님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계실 가능성이 있다는 거겠죠(사정을 모르면 그렇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저는 이미 알아서)^^

다락방 2015-03-04 16:34   좋아요 1 | URL
네, 아마도 그렇겠죠. 그래서 본의 아니게 이런 일이...하하하하하

2015-03-04 2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05 0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5-03-04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핫..좋은데요^^ 자신에게 오는이들에게 충실하다..는 뜻 같아 보여요. 저에겐..

다락방 2015-03-05 10:00   좋아요 1 | URL
생각해보면 그렇죠.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하니까 내가 나의 마니아가 되는건 당연한 거에요. 그쵸? ㅎㅎ

[그장소] 2015-03-05 10:04   좋아요 0 | URL
그럼요~^^♥나에게 충실함이 있고나야 타인에게도 그럴 수있고
그래야 공허한 일이 아니게 되는것 같아요.그러니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봐진다니까요.^^
아부성이..아니라. 제가 뭘 위해 그러겠어요. 그쵸?

붉은돼지 2015-03-04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소크라테스 선생께서도 말씀하셨잖아요 ㅋㅋㅋㅋ

다락방 2015-03-05 10:00   좋아요 0 | URL
˝너 자신을 알라.˝ ㅋㅋㅋㅋㅋ

2015-03-04 2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05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05 1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5-03-04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받을 일인데요. 다락방님이던지 이유경님이던지, 암튼 좋으시겠당~~

다락방 2015-03-05 10:02   좋아요 0 | URL
좋은지 싫은지 잘 모르겠어요. 뭐 당연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말이지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무스탕 2015-03-05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니 아는 사람`이 `마니아` 맞나요? ㅎㅎㅎ

다락방 2015-03-05 12:12   좋아요 0 | URL
아마도 그런게 아닐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상상력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모두 굉장히 특별한 능력이라고 인정한다. 하나의 세계를 자신의 룰로 만들어내다니, 이 얼마나 멋지고 대단하단 말인가. 그러나 그 멋지고 대단한 것이 내게 '좋은지'는 별개의 문제다. 나는 누군가 만들어낸 이야기, 그동안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대단하다 말할 수 있고,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를 창조해낸 걸 보면 우와- 하고 탄성을 내지를 수 있지만, '그래서 좋아' 라고 내 마음을 주지는 못하겠다는 얘기다. 쉽게 예를 들자면, 내가 빈번하게 예로 들었던 영화 [아바타]가 그것인데, 감독이 만들어내고 보여준 세상은 분명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대단한 세계임이 틀림없다. 저런 종을 만들고, 저런 세상을 만들고, 저런 비쥬얼을 만들고, 저런 언어를 만든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가. 그렇지만, 내게는 '거기까지'인 것이다.


나로서는 그런 신비한 마법의 나라를 보여주는 것에 큰 흥미가 없다. 그보다는 있을 법한 별 거 아닌 일들에 있어서 한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보는게 좋다. 그 사람이 성장하는 게 보이면 더 좋다. 이런 것들이 내 가슴을 뛰게 하고 나를 움직이게 하며 '아 참 좋다' 하게 된다. 내게는 누군가의 감정이, 생각이, 그로 인한 행동들이 이야기 거리가 된다. 안나 카레니나가 브론스키를 기차에서 마주쳤을 때의 그 설레임 같은 것들, 레오의 답장을 기다리는 에미의 초조함 같은 것들, 나랑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여자를 사귀는 프라납 삼촌을 보는 엄마의 질투 같은 것들. 나에게 이야기는 바로 한 사람의 감정이었고, 사연이었으며, 행동이었다. 그래서,

















이 책, 《민들레 소녀》가 재미없다. 표제작인 <민들레 소녀>부터 이 책에 실린 짧은 단편들중 그 어떤 것도 나는 이야기 속의 인물이 될 수가 없다. 나는 이야기속의 그 누군가가 될 수 없으면 좀처럼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내가 이야기 바깥에 존재하면 통 재미가 없단 말이다. 이 모든 이야기들에서 나는 바깥에 존재하는 인물이며, 관찰하는 인물이며, 독자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그저 책일 뿐이다. 한 권의 책. 다른 사람들에게는 대단하다 칭송받을지도 모를, 그냥 한 권의 책.


미안하다, 재미없다.. 

이런 나라서 미안하구나.



표제작 <민들레 소녀>를 기대했는데, 엥? 뭐여...하고 좀 시시해했다. 이건 '온다 리쿠'의 무슨 소설과 비슷하게 닮았는데..뭐더라. 《라이언 하트》였나..뭐, 그건그렇고. 실린 단편들중 <파란 모래의 지구>에서 아주 인상 깊은 이야기를 봤다. 



다음 날 아침, 밖으로 나온 선장은 24개의 맥주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맥주나무를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고,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앞에는 수확하기 직전의 과일처럼 맥주병들이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몇 개의 맥주병은 제자리에 없었고, 갓 생긴 과수원 안에서는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과수원의 테두리를 따라 솟아 있는 흙무더기들을 봐서 더 많은 씨앗이 심어진 모양이었다.

선장은 혼란스러워졌다. 아무리 지구의 흙이 다르다고 해도 어떻게 하룻밤 새 빈 병이 맥주나무로 자랄 수 있을까? (파란 모래의 지구, p.162-163)



그러니까 화성으로 돌아가기 전의 선원들은 선장의 허락을 받고 맥주를 마셨으며, 잠들기 전에 맥주병을 휙- 버린거다. 그런데 다음날 그 빈 맥주병이 떨어진 자리에 맥주나무가 자란 것. 우앙- 맥주나무래. 짱 멋지다. 이에 선장은 지구의 땅은 이런것인가, 하고 설레어하며 지폐를 묻는다. 그러나...지폐는 나무로 자라지 않는다. 결국 선장도 위스키를 심는데, 위스키는 나무가 되어 열리더라. 에헤라디여~

돈이 자라지 않으면 어떤가. 벌면 되지. 게다가 맥주도 위스키도 나무가 되어 열린다면, 그러면 술 사는 돈은 절약할 수 있으니 좋지 않은가. 나라면...맥주나 소주 나무가 아닌 와인 나무를 만들겠다. 움화화화핫. 그러면 와인 살 돈으로 양질의 안주를 사는거야. 움화화화핫. 아..삼겹살 먹고 싶다 ㅠㅠ



그리고 마지막의 단편에서 아주 찌질한 캐릭터를 만났다. 처녀상을 등반하는 남자 '마틴'이 바로 그인데, 그는 첫번째 책으로 세상을 들썩이게 할만한 유명 작가가 되었다. 그러다 여자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게 되었고, 두번째 책은 첫번째 책으로 인한 기대로 조금 팔렸지만 세번째 책은 망해버렸다. 근데 그는 이걸 아내탓, 결혼탓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새 책은 최악이었다. 『내 사랑이여, 눈을 떠요!』에서 사람들을 열광시킨 그의 개성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좋은 생각이 나지 않았고, 설령 생각이 떠올라도 그는 그걸 어떻게 써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이런 저조한 기분을 만든 건 결혼이 일조했다고 생각했다. 뚜렷하게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결혼과 렐리아가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데 장애물이 된다고 여겼다. 여기까지 생각이 도달한 그는 렐리아가 신부로서 모든 걸 갖췄지만 부족한 게 있다고 생각했다. 마틴은 그것이 무엇인지 밤낮으로 고민했다. (화강암의 여인, p.250)



이긍..찌질하다 찌질해. 못났다. 좋은 글을 쓸 수 없는 것에 대해 결혼과 아내 탓을 하다니. 찌질해.. 하여간 찌질한 인간들이 남탓 한다니깐. 이긍.. 



아, 근데 찌질로 따지자면 나도 거의 챔피언급이라 뭐 더이상 말할 게 없다. ㅠㅠ 누가 누굴 욕해. 내가 찌질한데 ㅠㅠ




아빠랑 애기가 나오는 프로그램에서 엄태웅이 누나 엄정화한테 영상전화를 걸었다. 조카랑 함께 통화를 하고 나서 전화를 끊기 전, 엄정화가 엄태웅에게 그랬다.


"사랑해."


그런데 엄태웅은 이렇게 답했다.


"알았어."



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놈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랑한다는데 알았어가 뭐냐. 

하긴, 내 남동생도 내가 사랑해, 라고 하면 '그래' 라고 답하곤 했지. 이놈들. ㅠㅠ

사랑해, 라고 말했을 때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모르는 머저리들.

늬들보다 소주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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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5-03-02 1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늬들보다 소주가 낫다... 이 말에 먹던 물 뿜었슴다..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5-03-02 15:39   좋아요 0 | URL
소주보다 낫기는 힘드니까요, 비연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주는 늘 제곁에 있잖아요. 하하하하하

에르고숨 2015-03-02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주나무@.@!
사랑해, 라고 말했을 때 어떻게 답해야 하나요?
소주보다 낫기가 과연, 가능할는지 말입니다.ㅋㅋㅋㅋ

다락방 2015-03-02 15:41   좋아요 0 | URL
맥주나무 짱이죠!
이야기를 만들려면 맥주나무 정도는 등장시켜줘야죠! ㅎㅎ

사랑해, 라고 말했을 때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사실 제가 정답을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제 입장에서 바라고 기대하게 되는 답은 있지요, 측근님.
이를테면 `맥북을 사줄게` 라든가, 와인을 한 박스 사줄게, 라든가... =3=3=3=3=3=3=3=3=3=3=3=3=3

비로그인 2015-03-02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해 다음에 어떤 대답??생각해보다가 소년에게 사랑해~했어요
(아주 다정하고 심하게 사랑스럽게)나도 사랑해 엄마~
소주가 낫다 시기가 올까요ㅠ

다락방 2015-03-02 15:42   좋아요 0 | URL
그거죠, 아른님, 그거요.
소주가 낫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게끔, 사랑을 잘 표현해주는 어른으로 자라길 바라봅니다, 아른님.
아유, 소년 예뻐라 ♡

moonnight 2015-03-02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조카아이도 요즘 제가 사랑해~하면 네~하고 끝 ^^; 예전엔 고모 나도 사랑해요~해주더니 좀 컸다고 부끄러운가봐요. ㅎㅎ

그나저나, 동생에게 사랑해라니 저로서는 꿈도 못꿀 일입니다.-_-;;;

다락방 2015-03-02 15:44   좋아요 0 | URL
저는 심지어 `이모 싫어!` 도 숱하게 들어봤습니다, 문나잇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모는 타미 좋은데, 라고 말해봤자 타미는 이모 싫어! 막 이러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전 거절당하는 이모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래도 어제는 통화중에 이모 보고싶어 라고 했어요. ㅠㅠ 감동 ㅠㅠㅠ


저도 사랑해란 말을 잘 안하는데-사실 뭐 사랑해란 말을 할 사람도 거의 없죠, 가족이 아닌 사람한테 이 말 한 적 없는듯??- 여동생과 남동생, 조카들에게는 잘합니다. 제가 정말 사랑하거든요, 그들은. 그래서 계속계속 표현해요. 동생들한테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 제겐 어렵지 않아요. 헤헷 :)

유부만두 2015-03-02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에서 `민들레 소녀`만 읽었는데... 얘기가 촌스럽죠? ㅋ

다락방 2015-03-03 11:46   좋아요 0 | URL
네 뭔가 대단한 이야기일줄 알았다가...그래서 비블리아 고서당 주인에게 실망 ㅋㅋㅋㅋㅋ 뭐 있는것처럼 해놓고 ㅋㅋㅋㅋㅋ

마태우스 2015-03-02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주가 열리다니 멋지군요 것참.... 글구 `알았어`란 답을 보니까 생각나는 것이, 조카들은 제가 문자 보내면 `네`라고 답을 합니다. 지------------ㄴ짜 성의없어 보여요...

다락방 2015-03-03 11:47   좋아요 0 | URL
남자 아이들의 경우에는 그렇게 간단한 답들을 주로 하는 것 같더라고요. 보내는 사람 마음도 좀 생각해주지. 흑 ㅠㅠ
맥주가 열리는 나무라면 제가 기꺼이 마태우스님께 선물해드리고 싶지만, 마태우스님은 술을 안드시니까...그거 손님 접대용으로 한그루 키우셔요.
 

 

 

 

 

 

 

 

 

 

 

 

 

 

 

'소피 마르소' 주연의 영화 《어떤 만남》에서 소피 마르소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남자는 유부남이다. 남자와 소피 마르소 모두 서로에게 반하게 되지만 한 명이 기혼자인 마당에 그 사랑을 쭉쭉 뽑아나가기는 쉬운 게 아니다. 소피 마르소는 자신이 그에게 빠져있음을 자신의 친구에게 얘기하는데 친구는 그녀에게 '그는 유부남이니 네가 절대로 그와 사랑에 빠져서는 안된다' 라고 말하는 대신, 그를 붙잡으라고 말한다. 진행하라고, 사랑에 풍덩 빠지라고 말한다.

 

사랑에 빠지는 건 예정에도 없이 찾아온다. 그러니 이미 내 옆에 누가 있는데도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그러고 싶진 않지만 나에 대해서도 단언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이건 모두에게 마찬가지.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야, 라고 말해도 그 사람이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는거다. 그러나 내 주변에 누군가가 그런 사랑에 빠져 있다고 할 때, 내가 그 사람에게 '사랑이란 쉽게 찾아오는 게 아니고 그토록 강렬하게 빠질 수 있는 상대가 또 있는 것도 아니니 거침없이 그 사랑을 마음껏 진행해' 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사람이 누구든 '절대 그러면 안된다' 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사랑과 연애는 오로지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랑 해, 해, 질러버려!' 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영화 《어떤 만남》에서의 남자와 여자 주변의 친구들을 보는게 꽤 놀라웠고 신선했다. 그들에게는 지켜야 할 도리 혹은 관습보다는 사랑이 우선인 것 같았다. 사랑은 그 모든 제도와 가치 위에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줬다. 그런데,

 

 

'에릭 오르세나'의 소설, 《오래오래》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쯤되면 사랑을 모든것의 가장 위에 놓는 것이 프랑스 사람 모두의 속성인가 싶을 정도인데, 소설 속에서 이미 아내가 있던 남자가 이미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데, 맙소사, 주변인 모두가 그들의 사랑을 응원하고 지켜보며 도와준다. 그들중 어떤 누구도 '그 사랑을 하지말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또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뜨거운 사랑이 찾아오는 게 쉽지 않다고 한들, 어째서 단 한명도 그들의 아내나 남편에 대한 동정표를 주지 않는걸까? 일순간의 충동일 뿐이니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단 한명도 없을까? 어째서 처음 보는 사람도, 늘 알아오던 사람도, 심지어 남자의 친아버지 조차도 그들의 사랑을 응원할까??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한 것이어서, 만약 그들이 세상으로부터 비난 받았다면, 내가 그들의 편이 되어, 사랑에 빠지는 게 잘못이냐고, 너무 늦게 그들이 서로를 발견했는데 그럼 대체 어쩌란 말이냐고, 한사람하고만 살아야 한다고 약속하는 결혼이란 제도가 불합리한거 아니냐고 말하겠지만, 모두가 그들의 '혼외 사랑'을 응원하는 걸 보노라니, 나는 남자의 버려진 아내의 편에 서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것보세요들, 당신들은 당신들의 사랑에 몰두한 나머지, 남겨진 사람의 슬픔과 고통을 모른척 하는건가요? 하고. 

 

남자와 여자가 사십년간 혼외 사랑을 유지하며 결국은 함께했다는 이, 어찌보면 아름다운 이야기에서, 나는 세상 사람 모두가 그들의 사랑을 응원했다는 데에 갸웃해진다. 진짜 그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배우자가 있는 상태에서 프랑스의 한 정원에서 마주친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다. 사랑에 빠진 그들은 서로의 사랑을 전설로 남기고자 아이를 만들고, 영국에서 스페인에서 만남을 갖는다. 벨기에에서는 365일간 동거를 하기도 한다. 사실 이 벨기에에서의 동거는 내게 꽤 낭만적으로 느껴졌는데, 언젠가부터 나는 저기의 그와 여기의 내가 거기에서 만나 잠깐 함께하는 것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책속의 엘리자베트 처럼, 이런 제안을 살면서 한번쯤 해보고 싶어졌다.

 

 

「당신에게 1년을 제안하겠어요. 우리 함께 살아요. 프랑스에서 말고, 그렇다고 멀리 가지도 말고. 하지만 아주 같이 사는 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p.363)

 

 

물론 여자는 자신의 위치에서 어느 정도의 힘이 있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운 편이었다. 남자도 마찬가지. 언제 여자로부터 연락이 올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의 기다림은 일로 채워졌고, 그러므로 그도 자신의 일에서 단단한 위치를 잡아두고 있던 터다. 그러니 여기가 아닌 다른 나라에 터를 정하고 살아가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을 거다. 그들은 그렇게 벨기에에 집을 구하고 짐을 싣고 함께 이사를 온다.

 

 

그들 앞에 둘만의 아늑한 공간과 시간이 펼쳐져 있었다. 이제껏 섬 같은 공간과 시간만을 경험해 온 그들에게 갑자기 거대한 대륙이 나타난 셈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이사 온 집에서 해야 하는 갖가지 일들에 몰두했다. 그러면서 되도록 소음을 적게 내려고, 특히 상대방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썼다. 그들은 무대 공포증과 비슷한 일종의 울렁증과 맞서 싸우면서 조금씩 서로 다가갔다. 그러다가 마침내 나란히 놓인 팔걸이의자에 앉았다. (p.370-371)

 

 

 어제 텔레비젼에서 아빠와 딸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그중 배우 조재현의 집이 인상적이었는데, 딸이 아버지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항상 방문을 열어두고 있는것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조재현과 그의 아내가 친구처럼 다정하다는 데 놀랐다. 딸은 인터뷰에서 '엄마와 아빠는 친구처럼 친하게 지내고 와인도 같이 마신다' 라고 했는데, 그런 모습을 아마 자주 봤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날도 그랬다. 이틀밤을 바깥에서 보내고 돌아온 조재현의 대본 연습을 아내가 도와주고, 연습이 끝나고난 후에는 같이 텔레비젼을 시청하며 나란히 앉아 와인을 함께 마시는 거다. 늦은 밤이었고, 안주는 만두와 김치였고, 장소는 그들 집의 거실 테이블 이었다. 와- 이 장면이 진짜 엄청 좋은 거다. 부부가 갖추어야 할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랑한다는 이유로 결혼했음에도 가끔 후회하고 싸우고 이혼도 하고 이렇게 살아야 하나 고민도 하는 것일텐데, 그렇게 자신들의 일과를 끝내고 나란히 앉아 같은 프로그램을 보고 대단치 않은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함께 마실 수 있다는 게 너무나 완벽해 보이는 거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저렇게 와인을 마시는 저 자리에 딸이 함께여도 될텐데? 라는 생각이 당연히 들었다. 딸은 스물네살이고 술을 마셔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나이. 본인의 의지로 안마시는지는 내가 알 수 없지만, 저자리에 딸도 함께 모여서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잔을 부딪친다면 좋을텐데. 그 장면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니 책속에서 자신의 '평생의 여자' 라고 부르는 여자와 함께 살 수 있게 된 남자는 얼마나 좋았을까. 매일매일 침대위에 그녀가 있다는 사실이 그에겐 기쁨이다. 그러나 이 '평생의 여자'를 만나기 전, 그때도 그는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어져서 결혼하지 않았었나. 여자 역시 마찬가지. 그러고 싶어서 한 남자와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낳고 살았던 게 아닌가. 왜 시간이 지나고나서 그들은 지금 이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이토록이나 간절히 원하게 된걸까. 그들은 사십년간 그들의 사랑을 지속한다. 어쩌면 그들이 함께 살지 않았으므로-벨기에에서 1년을 같이 살았지만- 그 관계, 혹은 그 사랑이 유지됐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사랑은 뭘까? 도대체 사랑이 뭐길래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게 만들며, 또 기다리게 만들까? 대체 그것이 뭐길래 시간이 지나면 다른 사람을 원하게 만드는 걸까?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삶의 한 영역이다. 이 영역에서는 경험이 많아도 아무 쓸모가 없다. 경험이 도리어 방해가 될 수 있다. 새로운 것에서 느끼는 감동, 그 아찔한 기분이 사랑의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상대를 만날 때마다 세상의 첫날 아침을 맞는 기분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을 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p.333)

 

 

새로운 것에서 느끼는 감동이 사랑이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 이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해 사랑이 시작 되는 걸까? 그러나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Take this waltz》에서도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가. 지금 헌것도 처음엔 새것이었다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미도리'가 말했던가. 마음이란 불완전한 거라고. 어차피 사랑도 마음이 하는 거라면, 사랑 역시 불완전한 것이 아닐까. 이 사람에게 영원을 맹세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다시 영원을 맹세하게 만드는 게, 그게 결코 완전하다고는 볼 수 없는 게 아닌가. 마음도 사랑도 불완전하고, 마음과 사랑의 주체가 되는 인간 역시 불완전하다.

 

 

「당신의 의도가 정확히 뭐죠?」

당황한 가브리엘은 우스꽝스러울 만큼 진지한 어조로 대답했다.

「언젠가, 아마도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뒤의 일이겠지만, 제가 당신의 팔을 잡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생애가 다하는 날까지 서로 헤어지지 않고 함께 걸어갈 것입니다.」(p.558)

 

 

어느 날 저녁의 일이었다. 그들은 인근의 대학에서 오승은의 『서유기』를 각색한 공연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들은 함께 걷는 것을 여전히 크나큰 행복으로 여기고 있었다. 주위에 사람은 많아도 팔짱을 끼고 함께 걸을 사람은 없던 고독한 시절은 갔다. 함께 걷는다는 것은 푸근하고 즐겁고 황홀한 축제였다. 그들은 침대에서 각자의 자리를 정해 놓고 매일 같은 자리에서 잤던 것과 마찬가지로 걸을 때도 항상 가브리엘이 엘리자베트의 오른쪽에서 걸었다. 함께 걷는 것은 하나의 의식이었다. (p.586)

 

 

엊그제였나. 남동생과 둘이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며 술을 마셨다. 그러다가 좀 추워서 남동생에게 넌 춥지 않니? 물으니 춥다는 거다. 그러면 수면 양말 신어, 라고 했더니 가지러 가기 귀찮단다. 어디있는데? 내 침대 위. 내가 가져다 줄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남동생 방에 들어가 침대에서 수면양말을 가져다 주었다. 남동생은 그 틈에 텔레비젼 화면을 정지시켜 놓았더라. 여기있어, 라고 주면서 야 정지시키지 않아도 되는데, 라고 하자 남동생이 말했다.

 

누나 이거 좋아하잖아. 저녁 먹는거 보는 거.

 

아유 ♡ 이쁜 녀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를 너무나 잘아는 녀석이다. 어제는 아빠,엄마,남동생,나 이렇게 넷이 치킨을 시켜놓고 술을 마시는데, 우리 다같이 뭐볼까, 하면서 또 《나는 자연인이다》를 봤다. 이 프로그램은 남동생의 페이버릿인데, 보다가 또 저녁 먹는 장면이 나오자 남동생이 말했다.

 

누나 좋아하는 거 나온다. 밥먹는 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러더니 엄마와 아빠를 돌아보며 말한다. 이 누나 밥 먹는 거 보는거 되게 좋아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사람들이 맛집 찾아다니며 먹는거 보는건 별로 흥미도 없고 관심도 없는데, 생활하면서 밥 만들어 먹는 거 보는 건 진짜 좋다. 나는 자연인이다 라는 프로그램도 별 관심없는데 저녁 만들어 먹는 건 보는 게 좋고, 걸어서 세계속으로 에서 그 나라 그 지역 사람들이 밥 먹는 거 보는 것도 참 좋다. 저 사람들 뭐 먹나, 어떻게 먹나, 맛있게 먹나, 이런거 보는게 너무 좋아! ♡

 

좀전에도 남동생과 얘기했다. 삼일절이 내일이었으면 오늘도 술마실 수 있는데, 하면서. 오늘을 술마시지 않고 내일을 맞이 해야 한다는 건 슬픔이다. 흙 ㅠㅠ

 

 

그나저나 오랜 시간이 걸려 《오래오래》를 다 읽었는데, 자, 다음 책은 뭘 읽지? 이거 고민 하는 순간이 진짜 행복하다. 이히히히히히히히히.

 

 

 

 

「세상에, 새벽빛이 밝아 오고 있어요!」
그런 외침과 함께 그녀는 몸을 빼냈다.
갑자기 찬 공기가 느껴졌다. 그는 입을 벌렸지만 공기를 들이마실 수가 없었다. 그녀를 붙들고 싶었지만 손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달려가서 그녀를 붙잡으려 했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홀로 버려진 기분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자기가 곧 죽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기분을 맛보아야 하는 거라면, 차라리 지금 죽어 버리는 게 낫겠다 싶기도 했다.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사람이 정말 불행하다고 느끼면, 살아 있어도 얼마든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살아있어도, 자기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죽고 모든 것이 꺼지고 모든 것이 얼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p.105-106)

인생은 언제나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p.122)

나는 할아버지로서 그대에게 크나큰 애정을 품고 있고, 그대가 조금만 아파도 엄청난 불안을 느낄 것이다. 그런 내가 그대에게 사랑의 고통을 느껴 보라고, 정말 절절하게 아픔을 느껴 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오로지 고통만이 자기 안에서 유랑 부족처럼 떠도는 감정들의 실체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그런 경험이 없다면 사랑의 감정이란 그저 모호하고 불안정한 감정일 뿐이다.
병 주고 약 주는 격이지만, 나는 그대에게 사랑의 고통을 느껴 보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그 치료약을 알려 주고자 한다. 사랑의 고통에는 걷는 것이 약이다. (p.464)

그는 정원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머리를 들었다. 그러다가 나를 보자마자 늘 그랬던 것처럼 안색이 창백해지도록 감격스러워했다. 내 자랑을 하려는 게 아니라, 사실 그대로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마주 앉아 냅킨을 펼치자마자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존재를 잊어버렸다. 상세르산 백포도주를 따라 주던 튀니지계 종업원은 허공 속으로 스러져 버렸고, 바스크 지방 출신의 사이클 애호가인 뚱보 주방장 역시 자취를 감추었다. 빨간 벽지며 마른 꽃들이며 유명한 운동선수들의 사인이 들어간 사진들도 마찬가지였다. 레스토랑은 가뭇없이 사라졌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우리 공간의 외부에 있었다. 우리는 두 명의 사람이 아니라 텅 빈 바다 한복판에 떠있는 하나의 섬이었다. 살갗, 말, 영혼, 성애, 웃음, 고통, 계획, 추억 등과 같은 미묘한 요소들로 이루어진 섬이었다.
우리가 함께 있을 때면 터무니없는 자신감이 밀려온다. 우리 사랑의 명명백백함 앞에서 현실이 기를 못 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금 그렇게 생각했다. 현실은 정정당당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우리에게 모든 자리를 내주었다.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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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ri 2015-03-02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책 고민 행복에한표~^^

다락방 2015-03-02 10:20   좋아요 0 | URL
다음책을 골라 읽었는데 재미 없었어요... (시무룩)
그렇지만 그 다음책을 또 골랐습니다. 하핫.

단발머리 2015-03-02 0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이 책으로 말씀드릴것 같으면, 저도 읽은 책으로서, 아무개님도 좋은 책이라 하셨으나, 아... 저는 아직 리뷰를 못 썼으며, 다락방님의 멋진 리뷰를 읽었으니, 더 이상의 소원은 없는 것으로~~~

2. 저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설로 만들기 위해, 아이를 만드는(?) 장소와 시간을 물색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네요. 읽으면 읽을수록 가브리엘의 아내와 엘리자베트의 남편이 안 됐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내겐 운명일테지만, 그 사람에겐 어이없는 이별일 테구요. 그렇다고 의무감에 같이 사는 건... 그건 또 아니구요. 산다면, 같이 산다면 조재현 부부처럼 살면 좋겠죠. 하루 일과를 마치고, 와인을 마시며 그날 있었던 이런 저런 이야기를 친구처럼 나눌 수 있다면요. 저는 가브리엘과 엘리자베트가 오랫동안 사랑을, 사랑의 감정 또는 느낌을 간직할 수 있었던 건 둘이 함께 한 시간이 적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주말부부의 끈끈한 사랑처럼요. 여왕 같은 엘리자베트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도 한 몫 했겠지만요.

3. 저는 도발적이고 창의적인 미용실 씬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아, 카톡 사진에 올려두었던 이 책의 표지를 단박에 내렸답니다. 아... 읽으면서 정말... 더 이상의 코멘트는 어렵네요. 그래서 제가 리뷰를 못 썼나봐요. 그 장면 때문에요.

4. 재능기부는 참 옳으며, 바르고, 좋은 생각이예요. 물론 장정일이 장정일이지만, 다락방님도 다락방님이잖아요.*^^*

다락방 2015-03-02 10:25   좋아요 0 | URL
1.아무개님은 좋은 책이라고 하신 건 아니고, 제게 읽어봐달라 하셨습니다. 아무개님은 읽지 않으셨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 저는 아이와 손자에게 자신들 사랑의 전설을 기록하는 임무를 띠게 한다는 설정은 좀 싫지만 이해됐어요. 왜냐하면 저 역시 간혹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나중에 손녀가 생기면, 손녀가 처녀가 되었을 때 앞에 앉혀두고 내 사랑이야기를 잔뜩 들려줘야지, 하는 그런 생각이요. 이거 되게 좋을것 같아요. 그렇지만 제게는 손녀가 아마도 없을 확률이 높네요. 자식이 없으므로.. ( ˝)
저는 그들이 영국과 스페인에서 만나는 게 좋았고, 벨기에에서 함께 사는 게 좋았어요. 결국 중국에서 여생을 함께 보내게 되는 것도 좋았고요. 그리고 단발머리님이 말씀하셨듯이, 그들이 자주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랑이 오랜 시간 유지되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사는 부부였다면-남자는 그러길 희망했지만-, 아마 곧 다른 부부들처럼 평범한 사이가 되었겠죠. 그들이 그토록이나 입이 닳도록 주장하는 `사랑의 전설` 대신에 말입니다. 사랑의 전설이라니, 그런 전설은, 함께 살면서 만들어내긴 힘든 것 같아요.


3. 미용실 씬은 제게도 충격이었는데, 그건 엘리자베트니까 허용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저같은 경우에는 그 미용실에서 뛰쳐나왔을 것 같아요.. -0-

4. 저도 제 생각이 훌륭했다고는 생각하지만...시간이 좀 지나고나니 후회가 밀려들더라고요. 재능 기부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 하는건데, 내가 뭘 믿고 이런 오만한 생각을 했지? 하고 말이지요. ㅠㅠ 부끄러워요. ㅠㅠ

아무개 2015-03-02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넵 저는 읽지 않았습니다.
다락님이 읽으면 어떻까 싶어서 읽고 리뷰 써달라고 조르기만 했어요. ㅎㅎㅎ

2.<사랑에 빠지는 건 예정에도 없이 찾아온다.>.....
어딘가에서 읽었던가 봤던가 아무튼
현재 곁에 누가 있는데 다른 사랑에 빠지게 되는건
사랑이 갑자기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뿅 나타나는게 아니고
내가 무의식적으로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다른 사랑을 찾고 있기때문에
그렇게 된다고 하더군요.
저는 이거 맞는말 같아요....

3.그런데 이 주인공 두사람은 어떤 이유로 처음부터 함께 살지 않고
그렇게 오래오래 바람피는 상태를 유지하는 건가요?

다락방 2015-03-02 15:39   좋아요 0 | URL
1. 나쁘지 않은 책이었는데 저한테는 아주 좋은 책도 아니었어요. 이 커플은 이상하게 몰입이 잘 안되는데, 그건 아마도 그들이 사랑에 대해 최상의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요. 벨기에에서 동거하는 건 좋았지만..아니, 벨기에 동거라니. 근사하지 않아요? 그들은 벨기에 사람이 아닌데 말입니다.

2. 틀리지 않은 말 같아요. 그게 백프로 정답은 아닌것 같지만 말이죠. 이를테면 저의 경우, 사실 다른 남자한테 눈을 아주 잘 돌리는 편인데(응?), 어떤 경우에는 다른 남자들이 전혀 눈에 안들어오기도 하니까요. 어떤 경우냐하면 그러니까.....킁킁. 패쓰.

3. 여자는 가슴속에 법도를 품고 사는 여자여서 그렇습니다. 이혼하지 않아요. -_-
오래오래 바람피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건 그들이 아주 가끔 만나기 때문이지요. 아주 가끔. 물론 그들이 서로에 대해 뜨거운 사랑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현관에 작은 바다 그림이 하나 걸려 있다. 노르망디에 있는 옹플뢰르 항구의 썰물 때 풍광을 그린 그림이다. 언젠가 생일 선물로 받은 것이다. 황토색과 연노랑과 푸르스름한 빛깔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설령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 그림 역시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p.263)
















꺅 >.<

오늘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저 부분을 읽다가 급반가웠다. 설연휴가 시작하던 날, 나는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전시회에 다녀왔고, 그 전시회의 주제가 '노르망디' 였던 거다. 게다가 옹플뢰르 라면, 그 전시회에서 빈번하게 마주쳤던 이름이 아닌가. 썰물 때 풍광을 그린 그림이라는데, 나는 '밀물'이란 제목의 그림을 본 것이 떠올랐다. 그런데 썰물 이란 제목의 그림도 있었던가? 갸웃갸웃. 여튼 내가 '아는' 무언가 나온것 같고, 그게 내가 알지 못하는 분야인 '그림'과 관련있다는 사실이 무척 기뻤다. 오, 역시 아는게 많을 수록 보이는 게 많구나. 그저 스쳐지나갈 문장인데, 나는 그날 전시회를, 옹플뢰르를, 밀물을 떠올렸잖아. 그 전시회에 나보다 먼저 다녀온 동료가 '외젠 부댕'이란 화가의 이름을 기억하게 됐다고 해서 나와 대화를 나눴었는데, 아, 저 소설속 등장하는 그림은 외젠 부댕의 것이 아니란 말인가. 노르망디, 옹플뢰르, 썰물, 황토색, 연노랑....이건 외젠 부댕이잖아? 그래서 해당하는 그림이 무얼까 폭풍검색질을 해보았다. 




황토색과 연노랑, 그리고 무엇보다 '썰물'이란 단어가 들어가니 아마도 이 그림이지 않을까, 싶긴한데, 으음, '푸르스름한 빛깔'이 이 그림엔 적지 않나? 이 그림이 아닌가? 일단 가장 확률은 높아 보인다.



이것이 내가 전시회에서 보았던 '밀물' 이었다. 




이건 '해안에서' 라고 되어있으니 항구의 풍경을 그렸다는 인용문과 좀 어긋나지만, 황토색과 푸르스름한 색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나는 저 맨 위의 썰물녘 풍경보다 이 그림이 더 좋다. 

이번 전시회에서 느낀건데, 나는 그것이 그림일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사람'이 드러나는 게 좋다. 사진을 봐도 그림을 봐도, 내게는 사람이 중요했고, 인물이 들어간 것들만이 내 흥미를 끌었다. 아무리 멋진 풍경이어도 그 안에 인물이 없다면 내 흥미를 끌지 못하는 거다. 그림 속에서 인물들이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며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어울렸을까를 들여다보는 게 나로서는 흥미로운데, 인물이 없다면 나는 생각할 무엇도 없는 거다. 나는 '그림'을 보고싶은 게 아니라, 그저 인물을 보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외젠 부댕은 풍경을 많이 그렸고, 나는 그래서 외젠 부댕의 이름을 딱히 외우지 않았다. 동료는 외젠 부댕이 전시회 내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이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책 속 인용문에서 드러나는 황토색과 연노랑의 비율이 좀 적지 않나 싶다. 그래도 멋진 그림임에는 틀림없지만. 



내가 이 전시회를 가고자 했던 이유는 이 전시회의 포스터 그림을 보고 싶어서였다. '비토리오 마테오 코르코스(Vittorio matteo corcos)'란 화가의 「작별(Farewell)」이 그것인데, 와- 너무 근사한거다. 나는 페어웰, 이라는 제목조차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이건 뭐, 제목 하나로 한 방에 끝나잖아? 이 그림이 너무 보고 싶어서 굳이 전시회를 갔던건데, 전시회에서 가장 좋은 그림이 이 그림이었다. 이 그림은 중간을 좀 지나서 볼 수 있었는데, 처음부터 이 그림을 보고 싶은데 좀처럼 나오질 않아 막 초조했더랬다. 이 그림 언제나오지? 나는 친구에게 자꾸만 물었던거다. 그리고 이 그림을 마주쳤을 때, 아, 얼마나 좋았던지. 손과 양산까지 섬세한 디테일하며, 정면에서 얼굴의 표정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누군가와 이별중인 표정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이 그림이 너무 좋아서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끝까지 전시된 그림을 다 본 후에 친구에게 '우리 그 그림 한번만 다시 보자' 하고는 다시 돌아가 이 그림 앞에 섰다. 그림은 내 생각보다 컸고, 그 큰 그림이 좋았다. 만약 내가 집에 그림을 걸어두게 된다면, 그건 이 그림이었으면 싶었다. 



전시회가 끝나고 엽서를 사는 시간을 나는 너무 좋아하는데, 당연히 이 엽서를 사야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없더라. 아, 전시회 마지막 날이라 다 팔렸는가보다 하고 시무룩해하며(다락방이 시무룩, 다무룩) 꿩대신 닭인 엽서를 몇 장 사들고 계산대로 가, 페어웰 엽서는 다 팔렸나요? 물었다. 뻔히 안보이는데도 물었던 건 일종의 아쉬움 때문이었는데, 아뇨 그건 저작권문제 때문에 엽서로 만들지 못했어요, 라는 대답을 들었다. 아, 그렇구나. 묻길 잘했구나 싶었다. 뭔가 안도하게 됐달까. 하하


그래서 이 비토리오 마테오 코르코스의 화집을 사고 싶어졌는데, 알라딘에서는 당연히 검색되질 않았고, 그래 간만에 아마존주문 들어가주자, 하고 검색했는데 영어로 써져있어서 뭔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제기랄, 화집을 파는게 아니라 죄다 그림을 따로 파는 것 같더라. 어떤 그림에 대해서 사이즈별로 금액이 다르게 책정되어 있는걸 보니 그저 그림을 파는거였고, 화집은 눈에 띄질 않아서 또 다락방이 시무룩..


알라딘은 비토리오 마테오 코르코스의 화집을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나는 떠날 것이야.







내가 이 영화를 보기 훨씬 전에 책을 읽고 엄청 빡쳐하며 리뷰 썼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그 리뷰는 여기 ☞ http://blog.aladin.co.kr/fallen77/5788327) 그러므로 나는 이 영화도 당연히 나쁠걸 예상하고 갔다. 다만, 야한 장면들을 화면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나, 외로워..


이 영화를 다 보고난 후 옆에 앉았던 내 친구는 '마치 인간중독의 송승헌을 보는 것 같아 몰입이 안된다' 라고 했는데, 나는 빵터져서 웃으며 말했다.


미안해, 난 몰입됐어.


그러자 친구가 그러냐며 놀랐다. 이게 다른 사람들 평 보니까 아주 난리가 나게 욕들어먹던데, 나는 뭐, 재밌던데? 책보다 영화가 나았다. 음, 물론 가장 많은 영향을 차지한건 영화가 책보다 잘 만들어졌다거나 한 이유가 아니라 역시나 '타이밍'의 문제인데, 이 영화를 내가 반년전에 보기만 했더라도 아마 욕이란 욕은 다 해줬을지도 모른다. 잘못했다고 벌을 주는 남주라니, 세상에 이런 괴물같은 남자가 어디있단 말인가. 이런 변종 괴물 그레이야!


책에서는 도무지 내가 알지 못했던 변태행위(?) 같은게 나와서 놀랐었는데-구슬을 이용한 거였다-, 영화에서는 그런 가학적인 행위가 많이 소프트해져서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묶고 때리고 하는 것들이 섹스 전에 잠깐 등장하고 그것도 강도가 세지 않아 '흐음, 저렇군.' 하며 보았으니까. 아마도 사람들 힘들지 않게 보라고 일부러 소프트하게 한게 아닐까 싶었다. 많은 대중에게 보여지려면 하드코어여서는 곤란할테니. 게다가 여자주인공인 아나스타샤의 음모도 수시로 등장하는데, 그 음모를 보는 것도 생각보다 충격이 덜하더라. 그걸 보는게 힘들지도 않고. 다만, 아나스타샤만 너무 많이 보여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들었다. 야, 그레이는 왜 엉덩이만 보여주냐!


잠깐, 이 음모에 대해 얘기하다보니 또 어제 출근길에 《오래오래》읽다가 음모 관련 글이 나왔던 게 떠올라 옮겨보겠다. 부질없나.. 

책 속에서 엘리자베트는 세비야에 도착해 낯선 소녀의 손에 이끌려 미용실로 향한다.



상반신만 보이는 여자들은 자기들끼리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어요. 그녀들 속에 끼일 생각을 하니까 덜컵 겁이 났죠. 그 와중에도 나를 보더니 입을 다물더군요. 아마 1초밖에 안 되는 아주 짧은 동안이었을 거예요. 그래도 그 짧은 동안에 침묵 사이로 도시의 소음이 파고들었어요. 자동차 소음, 아이의 외침, 포석 위에 놓인 카페의 철제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 따위가 들려왔죠. 그러고 나서 여자들의 수다가 다시 시작되었어요. 처음에는 가만가만 이야기를 하면서 상냥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기도 하고 나무판에 마지막으로 하나 남아 있는 구멍을 가리키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이내 본성이 되살아나서 리듬이 빨라지고 다시 속사포가 되었죠. 물론 나는 망설였어요. 하지만 한 도시가 우리에게 열어 주는 문들을 거부한다면, 그 도시를 여행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나는 구멍 속으로 들어갔어요. 나 역시 그녀들처럼 반신상이 된 거죠. 그러자 곧 탤컴파우더를 바른 것처럼 아주 보들보들한 손 하나가 내 다리를 벌렸어요. 나는 거들을 입고 있었어요. 한여름의 스페인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속옷이죠. 그래서 그것을 벗기려는 손길을 주저 없이 받아들였어요. 내 허벅지 위쪽에 뭔가 차가운 것이 와 닿더군요. 쇠붙이 같은 것이었어요. 미지근한 물과 비누도 닿았어요. 비누 거품이 살을 따끔거리게 하는 느낌이 들었죠. (p.168-169)



그 뒤의 부분들을 인용하지 않겠지만, 여자가 찾아간 미용실은 음모를 다듬어주는(?) 곳이었다. 작업이 끝나고 미용실을 나설때, 직원이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부군께서 만족하실 겁니다.> (p.170)



자, 다시 그레이 얘기로 돌아가서. 나는 그레이를 보면서 많이 웃었다. 물론 친구가 말한 것처럼 그레이는 어색하다. 인간중독의 송승헌처럼 연기를 못하는데, 그래도 송승헌보다는 낫다. 그레이는 뭐 때리는 것 말고 별달리 하는 건 없어보여서 딱히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래도 많이 웃었다. 나에게 로맨스는 없다, 고 말하면서도 아나스타샤를 향한 끌림으로 어쩔 줄 모르는 남자라니. 하여간 남자들은 통 자랄줄을 모른다. 나이가 몇이든간에 애라니까. 지가 지 감정을 잘 몰라. 나는 이런사람이야, 하는 규정에 자기를 넣고는 그대로 행동하려고만 한다. 얘야, 좀 더 크렴.



영화도 책처럼 시리즈로 제작된 줄은 미처 몰랐다가 영화의 마지막이 책의 1부처럼 끝나버리자 멘탈에 붕괴가 왔다. 헐. 뭐여...이거 2부, 3부 다 보러 오란 말이냐, 나한테? 나는 반지의 제왕도 시리즈라 안봤는데? 해리포터도 안봤는데? 그런 내가 그레이를 보라고?? 뭐, 트와일라잇을 봤으니 볼 수도 있겠지만..여튼 두시간오분이나 보여주면서 1부의 끝이라니. 아니, 그레이가 1,2,3부 나눠서 만들 정도로 뭐 할 말 많은게 아니잖아? 흐음.



영화의 마지막, 아나스타샤는 그레이를 이해해보고 싶다며 그레이가 하자는대로 한다. 즉, 벨트로 맞는 걸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아픔과 비참함에 눈물을 펑펑 흘린다. 그리고는 그레이에게 말한다. 네가 보고싶었던 게 이거냐, 너는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싶었냐. 왜 이런 방식으로 너는 쾌락을 얻냐. 결국 아나스타샤는 그레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로부터 받은 선물을 다 내려놓은 채 그레이를 떠난다. 아아- 나는 아나스타샤가 울 때 같이 울고 싶어졌어. 나란 여자, 왜 아나스타샤에게 이입됩니까. 왜죠? 

그건 아마도, 머리 묶은 아나스타샤가 나와 닮았기 때문일거고,




그건 아마도, 다크 서클과 눈밑 지방이 닮았기 때문일 거야.




 

아, 언젠가 나의 어여쁜 조카는 내 눈의 다크서클을 가리키며 '이모 여기가 왜 초록색이야?' 한 적이 있었더랬지... 

아나스타샤는 예쁘다. 나는 아나스타샤에게 몰입됐다. 이 두 문장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나스타샤는 예쁘기 때문에 나는 아나스타샤에게 몰입됐다, 는 문장은 절반만이 사실이다. 킁킁.



영화를 보고 돌아가는 길, 친구에게 그레이 영화 재미있어서 아주 많이 웃었다고 깔깔대고 얘기하는데, 친구가 아주 중요한 질문을 내게 던졌다. 그렇게 혼내고 때리는데 아나스타샤는 왜 그레이 옆에 있는거야? 라고. 그래서 나는 까불거리던 목소리에서 장난기를 싹-, 싸악- 뺀 채 답했다.



아나스타샤는 그레이를 사랑합니다.



크- 명답이다. 아나스타샤는 그레이를 사랑한다. 그래서 가장 심한 행위-벨트로 맞는 것-를 하고 그를 이해해보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길과 다름을 알게 되고 울면서 떠난다. 

나는 이 책을 1부만 읽고 더이상 읽지 않았는데, 이 책의 흐름상 2,3부에서는 아나스타샤가 그레이랑  재회해 같이 변태가 된다, 는 이야기로 진행되는 게 아니라,

그레이가 아나스타샤를 통해 변태행위로 부터 벗어나 정상적인 성생활을 즐기는 사람이 되는 쪽으로 흐를 것 같다. 나는 이런 식으로만 쾌감을 얻어, 나는 사랑을 나누는 게 아니라 섹스를 해, 라고 말하는 그였지만, 결과적으로는 고통을 주며 즐기려는 게 아닌, 사랑을 나누는 그레이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레이가 결국 그렇게 변했다면 그 이유도 역시 마찬가지일테다.



그레이는 아나스타샤를 사랑합니다.




재미있는 영화였다. (응?) 그리고 스틸컷 찾다가 이런 사진을 봤어. 아, 에드워드도 그렇고 그레이도 그렇고, 왜 영화판을 벗어났다하면 이렇게 사람들에게 깨알웃음 주시나요?




그레이야, 네가 내 남자가 아니라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  그 수염..안어울려... -0-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있고 또 그렇기에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을 느끼고 매력을 느낀다. 그레이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고 나에게는 아웃오브안중인데, 아나스타샤는 그레이에게 어마어마한 사랑을 느낀다. 그건 그래서 의미가 있다. 우리 모두가 그레이를 좋아한다면 이 세상에 그레이 아닌 사람들은 어떻게 살겠는가. 다만, 


노트북 고장났단 말에 노트북 보내주고(애플꺼였어..)

오래된 차를 보고는 자가용 한대 보내주고...


그러는 그레이는 좀 좋더라. 



칠봉이와 통화하다가 내가 말했다. 그레이가 아나스타샤에게 차를 사줬다고, 자가용을. 그래서 멋졌다고. 그러자 칠봉이가 말했다. 내가 너에게 사줄수 있는 건 녹차뿐이라고... 하아- 이걸 드립이라고 치다니........





극중 그레이의 엉덩이가 자주 나오는데 작고 예뻤다. 그레이가 몸의 근육이 멋지던데, 운동을 즐기는 남자들의 엉덩이는 저렇게 작고 이쁜걸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됐다.


아, 맞다. 그레이 영화속 노래들이 다 좋던데 사운드트랙 살까..














(중요하게 덧붙이는 말: 영화 《그레이의 오십가지 그림자》를 재미있다고 한건 '지극히 사적인 이유' 때문이므로, 아 재미있다니 보러갈까, 하는 생각은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럼 이만. 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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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5-02-27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타임라인에서도 다락방 님이랑 비슷한 의견이 꽤 있더라고요. 그레이가 생각보다 소프트하고 생각보다 재밌다는.
그런데 전 책을 안 읽었으므로, 아마도 안 보게 될 것 같군여. (하지만 좀 궁금하다.....)

다락방 2015-02-27 12:25   좋아요 0 | URL
오! 저는 이 세상에서 그레이 재미있다고 한사람 저 밖에 없는 줄 알았어요. ㅋㅋㅋㅋㅋ 저는 너무 웃으면서 봐가지고 ㅋㅋㅋㅋㅋ 코믹한 영화도 아닌데 막 웃으면서 재미있게 봤거든요. 하핫.
책을 읽고 안읽고를 다 떠나서도 이 영화는 치니님의 취향이 절대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치니님의 취향이 아니라는 데 오천오백원 걸겠습니다!

(방금 치니님을 취니님이라고 쳤었어요. ㅋㅋㅋㅋㅋ)

아무개 2015-02-27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나스타샤의 어느 부분에 감정이입을 한겁니까?
차를 선물 받는 아나스타샤?
그레이를 사랑하는 아나스타샤?
아님 다크써클? ㅋㅋㅋㅋ

저 구슬이야기는 정말 충격이였나봐요.
저는 근데 그런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 한국영화를 본 기억이 있어요.
차마 그때 말은 못했지만^^:::::::::::::::::::

다락방 2015-02-27 12:27   좋아요 0 | URL
아나스타샤의 어느 부분에 감정 이입을 한건지는 우리, 영원한 숙제로 남겨둡시다. (읭?)

네, 저 구슬이야기는 저한테 진짜 충격이었어요. 되게 폭력적이라고 느껴졌거든요. 끔찍하고 혐오스러웠어요. 처음 그레이 읽었을 때보다 저는 조금 더 늙었으니 지금에 와서 입장차이가 생길까? 잘 모르겠지만, 여전히 구슬은...제게 너무나 하드코어에요. 구슬을 사용하자는 남자라면, 그게 누구든 저는 그 남자랑 갈라설것 같아요. 구슬 생각하면 머리까지 아파요. -_-

레와 2015-02-27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야한 영화였다면 당장 보러 갔을텐데, 소푸트하다니.. 영..

나한테 완전 야한 영화 좀 추천해봐요. 락방.

다락방 2015-02-27 12:28   좋아요 0 | URL
소프트 하다는 건 변태행위가 소프트 하다는 거였지 섹스가 소프트 하다는 건 아녔다요. ㅋㅋㅋㅋㅋ
근데 이거 레와님이 좋아할 것 같진 않아요,
라고 말하고 생각해보니 이 영화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생각나질 않네. 나밖에... ㅋㅋㅋㅋㅋㅋㅋㅋ


<루시아> 봤어요? 이거 야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개 2015-02-27 13:41   좋아요 0 | URL
<루시아>가 다락님에겐 정말 야한 영화 였나봐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라로 2015-02-28 0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역시 괜찮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 볼까 생각해요,,
더구나 제 동료 데이빗씨까지 재밌던데라고,,,그는 인간은 좀 별로지만 영화는 잘 알거든요,,
다른 건 몰라도 두 배우의 캐미가 잘 맞더라는;;;암튼
저도 야한 영화 추천좀 해주세요~~~.ㅋㅋㅋ

라로 2015-02-28 12:34   좋아요 0 | URL
방금 보고 왔어요~~~ 전 좀 지루했어요~~ㅠㅠ 여배우는 부모의 미모를 물려받아 이쁘더군요~~~. 하지만 남자 배우는 양쪽 눈 동공의 차이 때문에 전 집중하기 어려웠어요~~~엉엉
근데 영화보기전에 예고편에서 SPY라는 영화를 해줬는데 제이슨 스테텀이 나와요!!!!!!!완전 말씀을 터프하게 하는 분으로 나와서 넘 기대되더라고요!!!!ㅋㅎㅎㅎㅎ 잼있을 갓 같아요~~~ 그 영화에 주드 로도 나오니까~~~!! 다락방님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ㅋㄷㅋㄷ

다락방 2015-02-28 17:07   좋아요 0 | URL
앗 나비님 보고 오셨군요! ㅎㅎ 저도 저 혼자 웃는 포인트가 많아서 그렇지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영화일거란 생각은 들질 않더라고요. 그렇지만 저는 많이 웃으면서 봤어요. 그런데 그레이가 양쪽 눈 동공에 차이가 있는지는 저 전혀 몰랐어요.
그런데 재이슨 스태덤의 영화 [spy] 라고요? 오호. 지금 검색해봤는데 정보가 별로 없네요? 한국에선 1월에 개봉한 걸로 되어있는데 말입니다. 나중에 굳 다운로더로 봐야겠어요. ㅎㅎ

그런데 아나스타샤가 멜라니 그리피스의 딸이라고요?? 저 나비님 덕에 처음 알았어요. 정말 예쁘죠? 저도 보면서 연신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크- 예뻤어요.

야한영화는 저는 [루시아] 밖에 추천을 못드리겠어요. 전 이게 정말 야했어요. 하핫.

2015-02-28 0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28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ingri 2015-02-28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림 한가득 포스팅. 넘 좋아요. 작별땜에 화가의 다른 그림도 다 보고싶을정도네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그림이 뭐였을까 추리하는 게 미야베미유키같다거나 요네하라마리같이 재밌네요ㅋ 포스팅보는것만으로 생전 첨 알게된 외젠부댕 이름 단박에 외움 ㅋ

다락방 2015-02-28 17:09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작별 때문에 코르코스의 다른 그림도 다 보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렇지만 화집을 살 수 없는 슬픈 현실. 흑 ㅠㅠ

외젠 부댕 이름은 한 번 들으면 좀처럼 잊힐것 같지 않은 이름이죠. 외젠 부댕이 그린 그림을 외울 수는 없지만 외젠 부댕이란 이름만큼은 기억할듯요. ㅎㅎ

달걀부인 2015-02-28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전 예전에 황신혜나오는 <산부인과>라는 영화를 봤는데 ..아마도 고딩때쯤. 영화엔 산분인과를 둘러싼 여러 인간군상들이 나오거든요. 거기서 한 중년부인이 몸 안에 들어간 ˝골프공˝을 빼러왔다는 에피소드가 있어서 멘붕이었어요. ㅜ ㅜ 물론 처음으로 여성의 배를 가르고 쌍둥이를 꺼내는 출신의 과정을 가감없이 보면서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다락방 2015-02-28 17:10   좋아요 0 | URL
몸안에 골프공이..왜 들어갔을까요? 누가 넣었든간에 무슨 생각으로 그걸 넣었을까요? 뺄 수 있는 걸 넣어야죠. 골프공은 그냥 동그랗잖아요.. 아..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하아-

벌써 토요일도 다 가고 있어요, 달걀부인님. 잘 보내고 계신가요? 주말이 가는건 언제나 아쉽네요. ㅠㅠ

moonnight 2015-02-28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도 책보다는 나을 것 같아요. ^^;; 아침에 그레이만든 감독(여감독이더군요@_@) 인터뷰 한 거 읽었는데, 제 느낌만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책도 싫어하고 영화도 맘에 안 들어하는거 같았어요. ㅎㅎ안젤리나 졸리랑 구스 반 산트 감독도 감독 후보였다던데 그분들이 찍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해요@_@; 저는 나중에 vod 올라오면 볼까말까 싶네요. ^^

moonnight 2015-02-28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롬님 글보고 궁금해서 찾아보니 아나스타샤가 멜라니 그리피스 딸이었네요. @_@; 아랫입술 깨물고 있는 사진 많네요.ㅎㅎ 책에 아랫입술 깨문단 표현이 하도 많이 나와서 경기할 지경이었었는데 영화에도 자주 나오는지 궁금-_-;

다락방 2015-02-28 17:15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문나잇님. 어떻게 만들어도 영화는 일단 책보다 나을 거라고요. 책이 진짜 엉망진창이라서. 허구헌날 입술 깨물고 허구헌날 얼굴 빨개지고...뭐 문학에 기대할 수 있는 그 무엇도 없는 것 같은 어처구니 없는 책이었죠. 영화에서도 아랫 입술 깨무는 거 나와요. 근데 되게 예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게 반전 ㅋㅋㅋㅋㅋㅋㅋㅋㅋ초반에 연필 뒷부분으로 입술 누르는 부분이 나오는데 여자인 제가 봐도 너무 매혹적이더라고요. 하아- 나도 연필 혹은 볼펜 이런걸로 입 자주 건드리는데...역시 비쥬얼이 중요하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 ( ˝)
얼굴 빨개지는 건 표현할 수 없었는지 눈에 띄게 얼굴 빨개지고 이런건 없었고요. 아나스타샤가 너무 예뻤어요. 뭘 입어도 예쁘더라고요. ㅜㅜ

어쩐지 졸리나 구스 반 산트가 감독이 아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여자감독이라서 장면들이 소프트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보면서 힘들거나 역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아름다운 섹스쪽으로 방향을 살짝 튼 것 같은 느낌? 졸리였다면 아나스타샤에게 더 집중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구스 반 산트였다면(악 좋아!!) 가학적인걸 가감없이 그렸을 것 같고요. 그렇지만 역시 그들이 찍지 않아서 어쩐지 좋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 느낌은 뭐죠? ㅎㅎㅎㅎ

달걀부인 2015-02-28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골프공이 구슬의 역할을 한 셈이겠죠. 암튼 저도 이 영화 기대작이었으나 올라온 후기들을 보고 그냥 기다렸다가 집에서 보기로 했어요. 만원 굳었으요. ^^

다락방 2015-02-28 17:16   좋아요 0 | URL
ㅎㅎ 달걀부인님은 굳 다운로더 나오면 그때 보시면 될듯요.
아, 오늘 친구가 알려준건데요 멕시코에서 이 영화 보던 여성이 극장안에서 자위행위 하다가 체포됐대요. -0-

달걀부인 2015-02-28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얘기 인터넷에서 봤어요. 이런 얘기엔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쩝... 옹호를..아님 비난을?! 난감해요.

다락방 2015-03-01 18:35   좋아요 0 | URL
저는 어쩐지 이해도 됩니다, 달걀부인님.
옹호나 비난 같은 반응이 아닌 그저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하는 정도의 반응도 뭐 괜찮지 않을까요?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