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부모님을 모시고 가 영화 <파묘>를 보았다.
영화가 재미있을 거라 딱히 기대하진 않았는데 나는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너무 좋았다. 너무 재미있었고 감탄했다. 김고은의 굿하는 장면에서는 와, 저 장면 찍고 기절하지 않았을까 놀랐고, 무엇보다 이야기적인 면에서도 뭉클한 것이 있었다.
이건 귀신을 믿냐 안믿냐, 무당을 믿냐 안 믿느냐와는 좀 다른 얘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굿을 믿을 수 도 있고 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믿는 것에 힘이 실린다고 생각한다. 만약 무당을 찾아가서 위로를 받는다면, 그 사람에게 무당은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엄마는 영화를 보다 중간에 두통 및 자리의 불편으로 인해 집에 가셨는데, 영화가 '다 뻥'이라고 하셨다. ㅎㅎ 엄마는 매주 교회를 충실히 다니시는 분이다. 아빠는 그냥 볼만했다 하셨는데 나만큼 감동을 받진 않으신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어느 지점에서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본걸까.
나는 무당을 찾아가본 적이 없고 아마 앞으로도 찾아갈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건 다 미신이야' 라며 강하게 주장할 생각도 없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그리고 꽤 열심히 다녔고 활동도 열심히 해서 국민학교 시절 전도도 하고 주보도 나눠주고 반주도 했지만, 열다섯살 갑자기 교회 다니기를 그만두었다. 가족과 교회 선생님의 설득 같은건 나한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도나 해러웨이가 자신의 책에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기독교를 믿었던 사람이 기독교를 제일 미워할 수 있다고. 그렇다면 내가 기독교를 미워해서 영화 파묘가 재미있었냐, 라고 한다면, 그런 것도 아니다(기독교 보다는 교회를 미워한다는 게 적확한 표현이다). 나는 요즘 '폴 존슨'의 [유대인의 역사]를 느리지만 천천히 읽고 있고, 도대체 종교는 무엇이고 신앙이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 생각하는 중이다. 역시나 믿는 사람에겐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거기에는 분명 힘이 실린다. 나는 내가 믿는 것과 다른 사람들의 믿음에 기대는 사람이다. 각설하고,
파묘가 재미있는 지점은 나에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묏자리를 알아보고 혹은 다시 파내고 또 굿을 하고 치성을 드리는 이 모든 것은, 결국 힘들고 아프고 억울한 존재를 위한 거라는 점이었다. 아픈 아이 살려야죠, 라는 말로 무당은 힘든 파묘를 결정하고 묘를 파내면서 묘한 생명을 죽인뒤 시름시름 앓고 있는 동료를 위해 지관은 다시 으스스한 무덤에 찾아간다. 물론 거기에는 큰 돈이 오가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분명 '노함', '억울함', '아픔' 이 있었고 그것으로부터 어떻게든 빠져나오게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거다. 일본 귀신 옆에서는 죄없는 사람들도 무조건 다 죽는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료를 살리기 위해 그 귀신을 불러내는 일은, 결국 인간이 다른 인간을 위해 하는 일이 아니던가. 그 힘든 굿을 하고 묘를 파내는 장면들이 내게는 울컥이게 하는 지점들이 있었던거다. 무당의 존재는 결국 인간의 위로를 위해서가 아닌가 싶었던 거다.
또 하나는,
흙이었다.
와-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스테이시 앨러이모'의 [말, 살, 흙]을 읽기를 잘했다고 오천번쯤 생각했다.
지관 최민식은 계속해서 땅과 흙에 대해 얘기한다. 좋은 땅이라 이곳은 좋은 묏자리가 될 수 있다는 풍수지리 적인 얘기 뿐만이 아니라, 인간은 결국 흙과 뗄려야 뗄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죽어 흙으로 돌아가고 그 흙에서 나는 것들을 우리는 다시 먹으면서 순환한다는 것. 아니, 여러분, 우리 이거 말,살,흙에서 읽었잖아. 농작물들을 땅에 심고 그 땅이 어떤가에 따라 그 농작물의 상태도 결정되며, 그리고 그 농작물은 결국 우리 몸을 구성한다는 것. 그 배설물만 땅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아니라 결국 그 몸도 땅으로 돌아간다. 파묘 보시기 전에 [말, 살, 흙]을 읽으면 좋습니다!!
영화속에서 지관 최민식의 딸은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우주공학을 연구한다고 했는데, 전혀 다른 일인듯 보이지만 최민식은 이 둘이 어차피 비슷한 일이라고 얘기한다. 우린 알고 있지 않나요. 결국 삶은 그리고 학문은 개별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모든 것들은 다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엔 이어서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를 들고왔는데, 아이고 어렵네요??
화이팅!!
책을 샀다.
[인공 낙원]은 정윤수의 책이라 샀다. 사실 정윤수 여행 에세이도 아직 다 안읽었는데.. 정윤수 뭔가 책은 많이 썼는데 딱히 막 내가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 없어? 그나마 제일 낫겠다 싶어 [인공 낙원] 골라봤다.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는 내내 벼르다가 이번에 샀는데, 책 사이즈가 너무 큰 거다! 헉 뭐야 나 큰 글자 도서 산건가? 하고 훑었지만 아니었다. 걍 이렇게 큰가보다. 깜짝이야..
[댈러스 보기의 즐거움]은 네덜란드 학자 '이엔 앙'의 작품. 정윤수가 정희진 오디오 매거진에서 언급했을 때 너무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서 급박하게 샀다. 엄청 급박하게 샀는데 아직 펼쳐보지도 않았네요...
[블랙하우스]는 왜 샀는지 모르겠어요.. 장바구니에 있었는데 왜 담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드웨이]는 잭 리처 시리즈중에 가장 별로였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잭 리처 마니아들은 이 책을 또 좋아한단 말이야? 다시 읽어볼겸, 그리고 요 시리즈로 모을 겸 샀다. ㅋ
[러브 온 더 브레인]은 '알리 헤이즐우드'의 로맨스 소설. 알리 헤이즐우드라면 [사랑의 가설]이라는 재미있는 로맨스 작품을 이미 읽어본 적이 있다. 아니,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신간이 나왔네요?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자마자 잽싸게 구입했다. 행동력 언제나 잽싼 사람..
[고잉 홈]은 문지혁 씨 신간이다. 문지혁 씨 신간이라 그냥 샀다.
[누굴 죽였을까]는 정해연의 작품. 정해연 처음 읽어보는데 이거 읽기도 전에 이미 [봉명 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 사뒀었고, [홍학의 자리] 지금 내게로 오고 있는데, [누굴 죽였을까] 다 읽은 지금, 나의 구매는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렇게 책을 많이 사려고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 다정한 알라디너 분이 '다락방 책탑이 어느 매거진보다 궁금하다' 고 댓글 달아주시는 바람에,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이렇게 책을 샀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여러분의 댓글이 저를 살게 합니다, 아니고 여러분의 댓글이 저를 사게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만 총총.
투비에 감자파이 올리러 가야겠다. 슝 =3=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