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있다. 이 책을 읽은 덕분에 평화로울 수 있었던 금요일은 분노의 금요일이 되어버리고 말았어. 이 책은 단편집인데, 여기에 실린 <추앙>이란 단편을 읽다 보면 정신이 확든다. 아, 한남문학인이란 무엇인가.. 한남에게 문학을 주지말자.


대학생이자 습작생인 정원은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대학 강사이자 유명 시인인 B 강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다. 이에 B 강사에게 항의메일을 보냈는데, 그로부터 이런 답장을 받게 된다.





와, 어쩌면 이렇게 찐한남문학인의 글 같을까. 진짜 한남문학인이 쓴 글 같다, 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것은 단편소설집에 실린 '소설' 이니까. 그런 한편 아아, 얼마나 유치한가,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해 사과를 해야하는데, 저렇게 유체이탈화법을 쓰다니, 진짜, 글 왜배우냐. 어디서 쌉스런 글만 문학이라고 배웠냐, 하고 한심해 했다.



정원은 같은 과 선배인 '현석' 에게 이 일을 얘기한다. 현석은 여성성의 해방을 부르짖고 약자의 편에 서고자 하는 강직한 인물이다. 그는' 문학계에 뿌리박힌 여성혐오의 오랜 역사를 한탄(p.91)' 했지만, 가장 존경하는 시인에 B 강사의 이름을 적는다. 그 이유는


'그 시인들은 매 순간 시인이며 그들의 인생 자체가 시(p.91)'



이기 때문이었다. 결코 평등한 입장이 아닌 학생에게 입을 맞추려는 강사가 매 순간을 시적으로 살고 있었다니, 문학이란 무엇인가.



정원은 현석의 진심이 궁금했다. 성추행범을 욕하고 여성성의 해방을 부르짖으면서 동시에 성추행범을 추앙하며 그들의 가부장적이고 마초적인 성향을 찬미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걸까. 강직하거나 점잖다고 정평이 나 있는 수많은 교수와 시인 중에서 현석은 어째서 A교수와 B강사를 가장 존경하는 시인으로 꼽았을까.

사회적 변두리에 있는 것만을 지지하며 깨어 있는 젊은 지식인 행세를 하는 현석의 고매한 취향에 해임당한 적이 있는 교수와 가난하기로 소문난 B 강사가 가장 적합했던 것일까. 자유주의자 코스프레를 하며 반항아라는 가면을 쓰고 사는 그들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만으로도 현석은 자유롭고 반항적인 이미지를 지지하는 자의 이미지를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권위가 없는 척하는 것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그들의 권위를 지지하며 자신은 권위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p.93-94)




소설같지 않다, 너무 있을 법한 일이다, 너무나 생생하다 생각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한남에게 문학이란 무엇인가, 나는 계속 의문을 가졌었으니까. 왜 그들은 소설을 쓰든 시를 쓰든 여성의 젖가슴과, 자궁과, 제왕절개까지 가져오는가. 맥락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런 단어들을 가져다 쓰면 쿨해보이나. 그것이 문학적으로 인정 받는 길인가. 문학, 참 못하는 구나 한남, 이라고 생각했다.



다같이 냇물에 발 담그고 막걸리를 마시고 '이러면 안되는 거 아닌가'하는 기분을 학생들에게 들게 한 이 책 속의 A교수는 정원에게 남자 잡아먹을 상 이라고 말한다. B 강사와의 일을 알기 때문일테지. 성추행은 B 강사가 했는데, 그걸 학교에 신고하고 항의메일을 보낸 학생은 '남자 잡아먹을 년'이 되어 있었다. 그런 그들이 문학을 한다. 성추행범은 나쁜 거지만 매순간 시적으로 사는 그들을 존경한고 말하는 남자와, '너를 따먹고 싶었다'고 학생에게 말하는 강사와, 학생에게 남자 잡아먹을 상이라고 입을 함부로 놀리는 교수가,



문학을 한다.


문학을 하면서, 자신이 한 짓에 대해 '아마 이렇게 된 것이라고 보네' 라면서, 마치 자기가 자기가 아닌 듯이 뒤로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렇지만 너를 예뻐해, 너에겐 재능이 있지, 라고 쌉소리 하는 새끼가 하는게 바로, 문학이란 것이었다.



분노하며 읽다가, 아아, 이 생생한 소설을 어쩌면 좋아, 한남에게 문학은 독이다, 라고 생각하다가, 나는 이 소설의 끝에서 이런 덧붙임을 읽게된다.







그렇다.

저 메일, 저 유체이탈 화법을 쓴 메일은, 실제 있었던 일이었다. 문학을 한다는 사람이, 저런 글을 썼다. 저런 글을 쓰면서 학생을 가르친다고 한다. 한남에게서 문학을 빼앗아와야 한다. 한남에게 권력을 주면 안되고, 문학을 주어서도 안된다. 문학은 한남에게 주기에 너무 아깝다. 그들에게 가는 순간 아주 부끄러운 것이 되고야 만다.



존 스튜어트 밀의 위기의 순간에 문학이 있었다고 했다. 문학이 그를 살려주었다고 했다. 문학이 그의 감정을 건드려주었다고 했다. 문학이 하는 일은 작게도 크게도 누군가를 움직이는 일이었고, 내게도 역시 그렇다. 나는 문학을 사랑하고, 내가 문학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말이지, 문학이 부끄러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부끄러운 문학을 보고싶지 않다.


문학하는 남자들의 쌉소리를 읽고 싶지 않다. 저들끼리 추앙하는 것을 보고싶지 않다. 




B강사는 대학 강사이자 유명 시인이었다. 정원은 대학생이자 습작생이었다. 가지고 싶었던 것을 가진 자와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한 자의 대화는 평등할 수 없었다. 정원은 일방적으로 들어야 했고, 일방적으로 수긍해야 했다. 정원은 매번 하고 싶은 말을 참아야 했고, 내 생각은 다르다는 말이 안에서 쌓여갈수록 그것을 말할 수 없다는 사실에 모욕감을 느꼈다. B강사가 취한 행동의 저변에는 자신이 ‘시적 영혼‘의 소유자라는 합리화가 깔려 있었다. 또한 ‘시적 영혼‘의 저변에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문학적 추종 그 자체와 현석과 같은 충직한 추종자들이 있었다.- P93

아프다는 게 뭔지 아니. 정상이 아니라는 거야.정상이 아니면 사람이 아프게 되는 거야. 정상이 되고 싶은 건 욕망이 아니라 균형감각이야. 인간은 항상 회복을 지향하도록 되어 있어. 정상일 때에는 자기가 정상인 데 둔감하지만, 비정상이 되고 나서는 정상이 무엇인지를 뼛속 깊이 생각하고 갈망하게 되는 법이야. 갈망이 신호를 보내는 게 아픔인 거야.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았다면 나는 내가 비정상이라는 것도 알지 못한 채로 살았겠지. 가장 나쁜 건 아픈 사람은 자기 아픈 것에만 골몰한다는 거야. 비정상인 상태가 괴로운 건 자기만 아프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래서 회복되고 싶었어. 아프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어. 아프지 않으려면, 정상으로 돌아가야 했어.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 P102

언니는 정상이 되고 싶댔지. 나도 언니가 생각하는 정상이 되고 싶어한 적이 있다는 걸 언제고 언니에게 꼭 말하고 싶었어. 정상이라는 것은 계급이고 권력이라고 생각해. 정상이라 여겨지는 그 영역 안에 종속되어야 안심이 되니까. 나는 비정상이어서 아픈 게 아니라 나를 거부하면서까지 정상이 되려고 애를 썼기 때문에 아팠어.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 P118

다음주에 팸플릿 인터뷰 잡았다. 대본은 내가 준비해뒀으니까 너는 하던 대로 간단하게 사진만 찍으면 돼.
제가 말하고 싶어요.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실장은 가방을 집으며 반쯤 감긴 눈으로 말했다.
무슨 소리야. 다 써놨는데. 그거 쓰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 지 알아? 너 이러는 거 노동력 착취다.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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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6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6 1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6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6 1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에 대한 부분을 오늘 아침 출근길에 읽었다. 이 책에 실린 저자들중 몇 안되는 남성인데, 그를 다룬 꼭지의 앞부분에는 그가 '빅토리아 시대 여성운동의 절정기를 이끈 지도자' 라고 되어있다. 그가 썼다는 책 《자유론》과 《여성의 종속》은 물론 일찍부터 사두었지만, 다른 많은 책들이 그러한 것처럼 아직 읽지는 않았...으니 이 책으로 예습을 해보자. 그러니까, 밀은 여성의 종속을 왜 썼고, 어떻게 쓸 수 있었으며, 어쩌다가 여성운동의 절정기를 이끈 지도자가 되었나. 남성이란 성별로서.


페미니스트를 지지하거나 혹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칭하는 남성들이 있어왔다는 걸 알고 또 앞으로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성'으로 태어나서 온전하게, '스스로' 페미니즘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은 가능한가. 밀이 다른 남성들과는 달리 이렇게 여성운동에 앞장설 수 있었던 동력은 어디 있었을까. 이 책을 읽노라면 그가 여성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본젹적으로 여성의 종속을 써낼 수 있었던 것은 '해리엇 테일러'라는 여성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언급된다. 오, 나는 그가 여성의 종속을 썼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가 그걸 써내는 배경에 다른 '여성'이 있었던 줄은 몰랐던 터라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1830년 스물다섯 살의 밀은 존 테일러의 부인인 스물세 살의 해리엇 테일러(Harriet Taylor, 1807-~58) 를 만나 첫눈에 "깊고 강한 감정, 투철하고 직관적인 지성, 그리고 남달리 명상적이고 시적인 성품을 가진 여성"임을 알아본다. 밀과 해리엇의 우정은 이십 년 동안 유지되었고, 결국 존 테일러가 죽은 지 2년이 흐른 1851년에 (밀의 가족의 반대를 감수한 채) 결혼에 이르렀다. 결혼생활은 1858년 해리엇의 죽음으로 마감된다. 이듬해 밀은 해리엇과 함께 저술해왔고 마지막 교정까지 함께 보려고 준비해두었던 원고를 정리해서 발표하는데, 이것이 『자유론』이다. 이 책의 첫머리에서 밀은 영혼의 반려자였던 해리엇을 기리며 "진리와 정의에 대한 높은 식견과 고매한 감정으로 나를 한없이 감화시켰던 사람, 칭찬 한마디로 나를 무척이나 기쁘게 해주었던 사람, 내가 쓴 글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그녀의 영감에게서 나온 것이기에 그런 글을 나와 같이 쓴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람, 함께했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추억 그리고 그 비통했던 순간을 그리며 나의 친구이자 아내였던 바로 그 사람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애정 어린 헌사를 남긴다. (p.89-90)



자유론을 먼저 쓰고 나중에 여성의 종속을 쓰게 되는데, 그러니까 그는 스물다섯에 알게된 여성과 깊은 우정을 유지하면서 생각과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는 거다. 그가 저런 헌사를 남길만큼 그녀의 영향력이 대단했던 바, 물론 밀이 원래 가진 여성에 대한 생각이 있었겠지만, 그것이 해리엇과의 대화들로 인해 팡팡 터지면서 화악 열린 것 같다. 밀은 그러니까 지금도 찾아보기 힘든, 보기 드문 개념남이지만, 그 혼자 스스로 개념남이 되었다기 보다는 단단한 조력자가 있었던 셈.




여성참정권을 핵심적인 의제로 삼고 밀고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여성의 종속』이 생생하게 웅변하는 바, 평등이 인간의 자유로운 삶에 필수적이라는 평생의 신념에서 나왔다. 이는 걸출한 여성 해리엇을 흠모한 영민한 청년 밀의 순수한 열정에서 싹텄고, 사회개혁이 진정으로 자유를 향유할 줄 아는 평등한 개인들에 의해 완성될 수밖에 없으리라고 믿으면서 그녀와 함께 『자유론』을 집필했던 원숙한 사상가 밀의 통찰에서 발전되어 온 것이다. 1860년대 말 영국의 여성참정권운동은 밀의 자유주의 사상 그리고 그것의 완성에 영감의 원천을 제공한 해리엇 테일러라는 탁월한 여성에게 철학적 원리를 빚진 셈이다. (p.93)




밀의 여성의 종속, 자유론에 대한 내용도 궁금해졌지만 해리엇과의 관계가 너무 흥미로웠다. 혹시 이것만 다룬 책이 따로 있을까? 해리엇이 지성을 가진 여성이었다는 것도 흥미롭고 다른 남자의 아내였다는 것도 그렇다. 무엇보다 밀이 그런 여성임을 알아보았다는 것도 그렇고. 그가 해리엇을 한눈에 알아보았는데 그것이 지성이나 감성 때문이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나는 지성과 감성에 반하는 사람들을 보는 게 너무 좋다. 지성과 감성에 반하는 사람들은, 그 지성과 감성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하고, 그렇게 변화될 수 있다는 것도 뜻한다. 밀이 그런 사람이었기에 해리엇을 만나 자신의 생각을 더 쭉쭉 뻗어나갈 수 있었지만, 만약 그렇지 않은 다른 보통의 남자들이었다면, 해리엇 백명하고 우정을 지속해봤자 자기 사고의 테두리안에 머물렀을 것이다. 뭐, 그런 남자라면 해리엇이 우정을 지속할 리도 없었겠지만.



해리엇의 남편은, 자신의 아내가 20년이나 밀과 우정을 지속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남편인 자신이 아니라 다른 남자와 생각과 사상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고 의견을 교환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해리엇은 남편이 있으면서 다른 남자와 우정을 지속하는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역시나 값싼 호기심인걸까? 나는 이들이 그 우정을 지속했던 그 시간동안 닥쳐왔을 감정의 변화가 너무 궁금하고 그 얘기들을 들어보고 싶다. 아울러 그 시간동안 유지했던 결혼생활에 대해서도. 그들은 이십년동안 '우정'을 지속했다 말하지만, 해리엇의 남편이 죽고나서는 결혼을 하잖아. 결혼은 십년도 채 안돼 해리엇의 사망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밀이 자유론에 그런 어마어마한 헌사를 쓸만큼, 그렇게나 지성을 나누는 우정(혹은 사랑)관계를 가진 사람의 마음 상태는 어떤 것이었을지도 궁금하다. 나는 지성을 나누는 파트너가 섹스 파트너 구하기보다 이천배쯤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것이겠지만, 내 경우에는 섹스 없이 살아도 삶에 별 지장은 없지만 지성을 나누는 파트너가 없으면 너무 외로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밀은 나름의 행복을 충실히 쌓으면서 살았던 게 아닐까.... 라고 혼자 너무 멀리 나가고 있나.......




지성을 가진 여성을 알아본 것처럼, 밀은, 우정에 대해서도 인지한다. 어쩌면 이런 것들을 인지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고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했던 사람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밀이 그리는 이상적인 부부관계는 "높은 수준의 능력과 소질을 비슷하게 갖추고 그 생각과 지향하는 목표가 똑같은 두 사람이 상대방에 대해 일정 정도 비교 우위를 지닌 까닭에 서로를 바라보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특혜를 누릴 뿐 아니라 자기 발전 과정에서 한편으로는 지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도받는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는 상태이다. (p.104)



밀이 꿈꾸는 이상적인 결혼생활은 자유로운 두 영혼이 결합하여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 발전하도록 보살피는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잠자리에서부터 재산관리에 이르는 결혼생활의 모든 국면에서 일방적인 권력행사에 위한 억압, 복종, 희생이 추방되고 상호합의를 기반으로 한 신뢰, 배려, 호혜가 통용되는 관계를 추구한다. 이렇게 완벽한 평생의 반려자와 맺는 관계는 아마 최고 수준의 우정일 것이다. (p.106-107)




이렇게 우정과 평생의 반려, 그리고 결혼까지 그는 오래 생각하고 들여다본 것 같지만 '비혼 여성에 대해 철저하게 무심하다(p.108)'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고, 밀이 19세기에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한 이상, 그에게 완벽한 개념남이 되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밀은 아마 자신이 가진 한도 내에서 생각할 수 있는 한껏 생각하고 할 수 있는 한껏 말했을 것이다. 그는 애초에 열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남자였고, 그래서 해리엇을 만나 열릴 수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 남편과 아내 역시 그런 평등한 관계여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가장 좋은 반려가 어떤 건지도 알았지만, 그러나 비혼에 대해서는 무심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걸까. 우리는 누구나 자기가 관심을 가진 분야에 대해서만 열렬히 생각하게 될거다. 밀의 주변에 해리엇이 있어서 밀이 자유론과 여성의 종속을 저술하고 참정권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면, 그가 좀 더 나아가기 위해서, 그러니까 비혼에 관심을 갖기 위해서는, 아마도 또 그의 사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른 비혼 여성이 있어야 했을 수도 있다. 아, 비혼 여성은 그런 삶을 살고 있어? 하고 그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그가 '더' 개념남이 되기 위해서는 또다른 조력자가 필요했던게 아닐까. 우리가 볼 수 있는 데까지 보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더라도 분명 부족하고 인지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가급적 오류를 잡아내며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만, 시간이 지나야 드러나는 오류도 있으니까.



밀의 비혼 여성에 대한 관심의 한계, 여성관의 한계 같은 걸 잡아낼 수 있는 것도 그 시기를 지난 후에야 가능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때문에 밀은 '후대의 비평가들에게 표적이 되었(p.109)'다는데, 후대의 비평가들이 할 일이 바로 그런 거 아닐까. 앞서 나왔던 생각들의 오류를 잡아내고 보완해서 앞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것.



밀에 대한 부분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밀의 삶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본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그의 삶이 즐거움의 연속은 아니었겠지만, 그가 존경하는 여성이 있었다는 것, 그녀가 그의 생각과 사상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게된 건 이 책을 읽으며 얻은 큰 수확이다.


메리 울스턴트래프트, 존 스튜어트 밀, 시몬 드 보부아르, 베티 프리단,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을 읽었고 아우구스트 베벨, 프리드리히 엥겔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뤼스 이리가라이, 주디스 버틀러가 남았다.





그가 말한 자유는 남성과 여성을 아우르는 ‘인간‘의 자유였다. 밀은 법조항 속에서 ‘사람‘으로 통용되던 단어인 ‘man‘을 중립적인 단어 ‘person‘으로 교체할 것을 주장했다. ‘인간‘이라 써놓고 ‘남성‘으로 읽는 구습을 정면에서 비판한 드문 남성지식인이었다.- P88

밀은 세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고전어, 역사, 문학, 철학, 경제학을 배웠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일종의 영재교육을 받은 셈이다. 이는 당연히 밀 개인의 놀라운 재능에 대한 주석이지만, 나아가 밀의 시대가 누렸던 비옥한 지적 풍토를 암시한다.- P88

유망한 저술가들과 토론회를 주도하면서 런던 지식인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할 무렵, 밀은 심한 신경쇠약을 앓게 된다. 이때 무기력과 우울을 문학의 힘으로 극복했다는 일화는 『자서전』의 가장 유명한 대목 중 하나인데, 그는 이 시기가 인생 최대의 위기였으며 문학을 통해 ‘감정‘에 눈뜨지 못했더라면 이 위기를 넘길 수 없었으리라고 술회한다.-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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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7-26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 멋쟁이... 밀 잘 써... <자유론> 밀나좋음...

다락방 2019-07-26 12:43   좋아요 0 | URL
나 자유론 있지롱~~~~ ㅋㅋㅋㅋㅋ

syo 2019-07-26 13:05   좋아요 0 | URL
읽었나요? 읽었나요? 읽었나요?

다락방 2019-07-26 13:36   좋아요 0 | URL
안읽었다!!!!!!!!!!!!!!!!!!!!!!!!!!!!!왜!!!!!!!!!!!!!!!!!!!!!!!!!!!!!!!!!!!!!!!!!!(내가 안읽고 내가 분노한다)

잠자냥 2019-07-26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존 스튜어트 밀에게 저런 별과도 같은 존재가 있었군요. 처음 알게된 사실입니다. 그리고 저도 늘 읽기만 해야지 했던 밀의 <자유론>과 <여성의 종속>을 이 참에 꼭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감사한 포스팅.

그나저나 지성 파트너가 섹스 파트너 구하기보다 이천배쯤 어렵다고 생각한다는 다락방 님 말씀에 저도 이천배 동감합니다! (혼자 너무 멀리 나간 이야기 늘 그렇듯 재밌어요 ㅋㅋㅋㅋㅋ)

그럼 즐거운 불금토일 되시길.

다락방 2019-07-26 16:43   좋아요 1 | URL
우앙. 제가 긴 포스팅을 한 보람이 느껴지는 댓글이네요.

저도 밀에 대해 알게된 게 너무 재미있고 좋았어요. 책을 읽는 일은 그래서 좋은 것 같아요. 몰랐던 것을 알게 되잖아요. 저도 사두었지만 안읽은 책을 일단 어디있나 찾아봐야겠어요. 하하하하. 분명히 자유론 샀는데... 아하하하. 아닌가? 모르겠다. ㅋㅋㅋㅋㅋ

저는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다 보니까 자꾸 멀리 멀리 가게 되는데, 이렇듯 재미있게 읽어주시니 기쁩니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글쓰기는 계속됩니다.


잠자냥 님도 즐거운 불금토일 되세요. 우리는 곧 또 만납시다. 잠자냥 님의 글로 그리고 제 글로.
:)

공장쟝 2019-08-03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론은 실제로 해리엇이 없었다면 나오지 않았을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ㅠㅠ 아 그런 여성들 진짜 천지 삐까리겠죠?? 맴찢....
밀과 해리엇의 ‘여성의 종속’ 이 될때까지 !!!
 

안쓰시는 분, 저 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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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5 1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9-07-25 18:2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조카들이랑 라이온킹 볼겁니다. 히히히

2019-07-25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9-07-25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안주셔도 됩니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어떤 감정을 갖게될지는 그 책을 읽기 전까지 아무도 모른다. 소문난 고전이라고 해서 그 책을 읽고 감동받으리란 법도 없고, 뻔한 구절이 가득한 책이라 해서 당연히 실망하리라는 법도 없다. 사람을 만나도 마찬가지...라고 쓰려다가 또 쓸데없이 길어질까 이쯤하고.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읽는대신 단발머리 님 방식대로, 원하는 사람들을 먼저 골라 읽기 시작했다. 메리 울스턴 크래프트,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시몬 드 보부아르를 읽었고, 오늘 아침엔 베티 프리단을 시작했다.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 1921~2006)은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 1934~)과 더불어 1960년대 이후 미국 여성운동을 이끈 가장 유명한 지도자로 손꼽힌다. 프리단이 이 역할을 맡게 된 것은 1963년에 출간된 『여성성 신화』가 불러일으킨 엄청난 성공과 반향에 힘입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 쏟아진 엄청난 관심과 열광적 평가는 짧은 지면에 다 소개할 수 없을 정도다. 앨빈 토플러는 이 책을 일컬어 역사의 방아쇠를 당긴 책이라 격찬했는데, 역사의 방아쇠까지는 아닌지 몰라도 여성운동에서 한 새로운 단게의 출발을 알린 책인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은 미국 근대 여성주의의 가장 중요한 전화점이 되어주었다고 평가되기도 하고 1960년대 후반에 일어난 서구 여성주의 운동 (이른바 여성주의 제2의 물결)을 이끌어낸 기폭제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프리단이 2006년 2월 사망했을 때 『뉴욕타임스』지의 부고기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하였다. "여성주의의 십자군 용사이자 1963년 현대 여성운동을 작열시킨 뜨거운 첫 저서 『여성성 신화』의 저자이며, 그 결과 미국과 세계 각국의 사회구조를 영구히 변화시킨 인물인 베티 프리단이 사망했다." (p.315)



메리 울스턴 크래프트도 죽었다. 파이어스톤도 죽었다. 보부아르 역시 마찬가지. 그러니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살아있지 않은 저자들을 만나왔는데, 그런데 어째서인지 오늘 아침에는, '베티 프리단이 사망했다'는 구절에서 왈칵- 치밀어 올랐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심지어 나는 베티 프리단의 책은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그런데 왜 그녀가 사망했다는 구절에서 왈칵했을까. 모르겠다. 나는 가만, 처음으로 돌아가 그녀의 태어난 날과 사망한 날을 다시 보았다. 얼만큼을 살다간 것인가.





많은 여성들에게 읽히고 자극을 준 책, 여성주의의 기폭제가 된 책을 쓰기 위해서 베티 프리단은 의문을 가졌고, 설문조사를 했고, 집필을 했다. 그렇게 열정적 삶을 살아서 업적을 남긴 사람이지만, 결국은 죽었다. 죽는다는 것은 인간이 결국 닿게 되는 종착지일텐데, 문득 '인생은 무엇인가', '왜 사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버리는 거다. 우리는 결국 죽을텐데, 왜이렇게 살고 있을까. 세상이 뒤죽박죽이고, 어어 이 세상 이상해, 그렇다면 이상한 이유가 뭘까?, 내 생각엔 이래서 이런것 같아, 라는 치열한 사고를 거쳐 세상에 알렸건만, 죽었다.


좋은 작품을 쓰고 위대한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더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변방에서 책을 읽으며 회사를 다니는 평범한 나라고 해서 일찍 죽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누가됐든 사람은 태어났고 태어난 이상 죽게된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인데, 새삼, 어떤 삶을 살든 죽어야 한다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픈 거다.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 우리는 왜 죽어야할까.




태어났고 태어난 이상 살아가고, 그리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한 과정을 겪어내야 하는거라면, 그 과정을 어떻게 살아야할지는 자기의 몫일 것이다. 치열하게 사는 사람이 있고 평온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 함께하는 사람들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내가 죽더라도 내 뒤에 살아갈 사람들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삶의 절대가치 혹은 상대적 가치를 평가하는 건 누구의 몫일까.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하나의 위대한 저작을 냈다고 해서 평생을 위대한 사람으로 살다 죽는 것도 아니다.  이 책에서도 잠깐 언급되지만『백래시』에서도 베티 프리단이 오히려 페미니즘에 역행하는 책을 쓰기도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게다가 동시대에 인기를 끌었던 글로리아 스타이넘을 질투했다는 얘기도. 인간은 태어난 이상 죽어야하고, 그 개인으로 들여다보면 무수히 많은 복잡한 감정들에 휩싸여있다. 어마어마한 저작을 냈으니 그것만으로도 어깨힘 뽝주고 살아가도 됐을텐데, 아마도 더한 것, 더 높은 것을 바랐던 것일까. 책을 쓰기 전에는 그 책이 이렇게나 큰 반향을 일으킬지 몰랐을 것이고, 그 어마어마한 책을 써낸 뒤에는 더 높은 곳에 닿고 싶다는 바람이 생길지도 몰랐겠지. 인생은 아주 많이, '이럴 줄은 몰랐어' 를 내뱉으며 살게되는 게 아닐까.



어쩌면 어제 엄마랑 노화에 대해 얘기를 나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엄마와 둘이 시장에 가면서 엄마의 팔에 핀 검버섯을 보았다. 검버섯은 손에도 있었다.



엄마, 나도 곧 그 검버섯이 내 몸에 깔리겠지.

응.

나 벌써 시작된 것 같아.

누구나 그래. 신경쓰지마. 늙으면 검버섯 생기는 건 당연한거야.



나는 늙어가고 죽음에 이르겠지. 나도 그냥 한 명의 인간일 뿐이니까. 다른 사람과 똑같은.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할까. 베티 프리단처럼 큰 반향을 일으키는 책을 쓰지는 못할거다. 내가 살면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그리고 내 온전한 행복을 위해서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내가 바라는대로 살 수 있을까?



죽기 전에 『여성성 신화』는 읽어야겠다. 검색해보니 2018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남편인 칼은 부인의 활동을 격려하고 적지 않게 지원해주기도 했지만 지적이고 독립적인 부인에 대해 부담스러워하기 시작했고, 의견 마찰이 있을 때는 부인을 구타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결혼관계는 결국 1969년 이혼으로 끝났다. 칼은 얼마 후 가정적인 여성과 재혼해서 아주 만족스러워했으며, 베티와 같이 지적인 여성은 존중하기는 해야 할 테지만 그러한 여성과 결혼할 것은 아니라고 극구 주장하기도 했다. (p.320)



맙소사.. 베티 프리단의 남편도 아내를 때렸다니. 세상에 아내를 때리지 않는 남자가 있기는 한건가요? 그리고 왜, 남자들은 지적인 여자를 싫어하는가.. 왜 지적인 여자랑 결혼하기 싫어하는가. 나는 이거 너무 이상하다. 사람들이 대부분 똑똑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나? 토요일에 남동생 부부랑 저녁 식사 하면서 '애인에게 용납 안되는 한가지' 화제가 나왔는데, 나는 '멍청한 남자는 질색팔색' 이라고 했단 말이야? 누구나 다 멍청한 사람 만나기 싫어하는 거 아닌가? 왜 남자들은 자기보다 똑똑한 여자를 기를 쓰고 싫어하지? 그런데 대부분 다 자기보다 똑똑할 수밖에 없는데.. 아아, 모를 일이다.




남동생 부부와 바깥에서 저녁을 먹고 2차로는 남동생 부부의 집으로 갔다. 텔레비젼을 틀어서 보며 술을 마시다가, 채널을 돌리고 잠깐 무슨 밥상 차리는 프로를 보게 되었다. 프로그램 제목은 생각이 안나는데, 여자가 지역 특산물로 밥을 차려내고 있었다. 닭장 육수로 떡국을 끓이고, 보쌈을 준비하고, 토하(새우)젓을 준비해 상을 차려냈다. 차려진 상에 밥을 먹기 위해 남자 셋이 몰려들었다. 한 명은 남편인것 같고 다른 두 명은 모르겠는데, 일단 준비과정부터 여자 혼자 하는 걸 봤던 터라 몹시 기괴한 장면. 나는 한마디 하려다가, 아아 지금 분위기 좋은데 걍 입닫고 있자, 괜히 남동생 부부 앞에서 욕하지 말자, 하고 있었단 말야? 그런데 남자가 '토하에서는 특유의 향이 난다' 고 하는 거다. 여자는 '그게 싫지 않지?' 하는데 남자가 대답을 안해..아아, 나는 나를 참을 수 없었다.



"차려주는대로 쳐먹기나 하지, 가만히 앉아서 밥상 받는 주제에 말이 많어 개새끼가."



남동생은 "누나가 뭐라고 할 줄 알았다" 면서, "저거 여자가 혼자 차렸고 치우는 것도 여자 혼자 치울 거 아냐"며 거들었다. 으으...



자, 다시 베티 프리단으로 돌아가면,




한동안 이런 생활을 하던 여성들이 표현할 수 없는 심적 고통과 고뇌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잔디밭 깔린 좋은 집과 가구, 온갖 가전제품, 착한 아이들이 있고 사이좋은 이웃들과 환한 얼굴로 담소하며 유행따라 멋진 옷을 갖춰 입고 취미생활까지 하며 사는 여자들이 정신과 진료를 받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감적이 격해져 울거나 집을 뛰쳐나가 거리를 헤매거나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다. 신체적으로도 징후가 나타나 손과 팔에 큰 물집이 생겨 터져 피가 흐르기도 했다(세척제 문제가 아님). 이런 문제를 안은 여성들은 현모양처가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하며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으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여성들이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성적 요구를 하고 이를 통해 "살이 있음을 느끼고자 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인들은 성적 동물이 되어갔고 남편들은 부인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여자들이 어머니로서의 존재 확인을 위해 끊임없이 임신하고 아이를 낳는 것도 이 현상의 특징이었다. (p.337-338)



나는 이 부분을 읽다가 정확히 이 부분에 해당하는 구절이 나오는 소설, 『마담 보바리』 생각이 났다. 보바리 부인도 자기 안에 그 감정 때문에 교회를 찾아가지만, 너에게 부족한 건 없고 그런건 다른 가난한 여자들이나 갖는 감정이다, 라는 말을 듣게 되지.




「사실」 하고 그는 엠마 곁으로 되돌아와서는 커다란 사라사 손수건을 이빨로 물어 펴면서 말했다. 「농민들은 정말 불쌍해요」

「그들 말고도 또 있어요」하고 그녀가 말했다.

「물론이지요! 예를 들어서 도시의 노동자들이 그렇죠」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실례지만 말입니다, 내가 아는 불쌍한 가정의 어머니들은, 정숙한 여성들은, 정말이지 거의 성녀라고 해도 좋을 사람들인데 빵 한 조각 없이 헐벗고……」

「하지만 저어……」 하고 그녀는 말을 받았다(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입술 양쪽 끝이 일그러졌다). 「신부님, 빵은 있어도 여전히 뭔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여자들이……」

「겨울에 불이 없는 여자들」하고 신부가 말했다.

「아니! 그런 거야 아무려면 어때요?」

「뭐라고요! 아무려면 어떠냐고요? 내가 보기엔 사람이란 몸 따뜻하고 배불리 먹기만 하면……왜냐하면……결국……」

「아아 어쩌면 좋아. 어쩌면 좋아」 하고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p.167)




인생 뭘까.

인생 왜 사는 걸까.

난 모르겠다..




현대의 생물학자, 사회과학자, 심리분석학자들은 인간적 성장의 요구(need)나 충동(impulse)이 섹스 못지않게 원초적인 인간적 요구이며, 기본적인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1940년대 메국에서 프로이트 이론은 여성의 비정상성, 열등성, 인간적 결함을 설명하는 근거 역할을 했다. 여성은 자신이 남근을 가지지 못한 존재임을 깨닫는 순간부터 남근을 부러워하고 남성성을 원하게 된다는 것이야말로 프로이트가 여성에 대해 적용한 기본 관념이었다. 게다가 여성은 본래적 결핍인 남근의 결핍에서 비롯되는 남근 선망을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초자아를 발전시키기 어렵고 본능을 승화시키는 능력도 더 약하다고 프로이트는 보았다. 그는 여성은 남성 성기에 대한 갈망을 자녀에 대한 갈망으로 대체하고자 한다고 주장했다.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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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9-07-22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웠던 보관함에... <여성주의 고전을 읽는다>를 넣습니다... 곧 구매 예정.

다락방 2019-07-22 11:38   좋아요 0 | URL
술술 빨리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 비연님. 저 이번달 안에 이 책 끝마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하하하하

비연 2019-07-22 11:41   좋아요 0 | URL
흠.. 그렇다면 전, 완전 굳게 맘먹고 시작해야겠네요 -.-;;;

공장쟝 2019-08-03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티프리단 남편 진짜 극혐 ㅋㅋㅋㅋ 그런 여상과 결혼 하지 말라닠ㅋㅋㅋㅋ
넷플릭스에서 지금은 내려갔지만 <분노할 때 그녀는 아름답다> She’s Beautiful When She’s Angry 라는 다큐가 있는 데 거기 베티프리단이 나와요~ 우리가 읽었던 수잔브라운 밀러도 나온다지요. 저자들이 나와서 자신의 페미니즘 운동 증언 하는데 너무 반가웠어요. 책에서 now나 witch의 활동 나올때 그 다큐에서 본 기억이 나서 생생했어요. 언제 기회되면 한번 보세요 🔥🔥
 
쾌락독서 -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유쾌한 책 읽기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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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잘난척 하기 좋은 위치에 있는데 잘난척하지 않는다. 이미 이름난 독서가이고 책을 냈던 사람이니 독서란 이름 붙여 책을 쓸 거라면 온갖 유명한 철학자나 인문학자 끌고 와서 내가 이런 책들을 읽었소~ 할 수 있을텐데, 문유석은 전혀 그러지 않는다. 순정만화부터 김연수까지, 그저 정말 자신이 재미있게 읽었던 작가들에 대해 얘기하는 게 좋았고, 인상적인 건 하루키의 유머 감각을 언급한다는 점. 하루키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역시 하루키의 유머감각은 재미있어~ 하는데, 그게 참 좋았다. 하루키에 대해 최근에 좀 아아, 가슴 집착남... 같은 거 생겨서 실망했지만, 하루키 유머감각은 나도 항상 깔깔대며 웃었던 바, 이 책에서 문유석이 언급한 하루키 유머 부분은, 까페에서 읽다가 빵터져버렸다.



내가 아는 한, 비틀스의 <예스터데이>에 일본어로(그것도 간사이 사투리로) 가사를 붙인 인간은 기타루 한 사람밖에 없다. 그는 목욕할 때면 곧잘 큰 소리로 그 노래를 불렀다.


어제는/내일의 그저께고

그저께의 내일이라네 (p.141-142)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 에 나온 부분이라는데, 나도 그거 읽었는데 왜 기억 1도 안나지? ㅋㅋㅋ 아무턴 어제 까페에서 이 책 읽으면서 어제는 내일의 그저께고 그저께의 내일이라네, 여기 읽다가 혼자 소리내서 웃어버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놔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오래전에 썼던 단편소설도 생각났다.  하루키답게 썼었어.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 뭔가 리뷰가 또 산으로 가는데, 아무튼 잘난 사람은 굳이 잘난척하지 않아도 잘난 게 다 드러난다...를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아아, 뭔가 초딩 감상문이다 ㅋㅋㅋㅋㅋ)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정독도서관의 독소교실에 다니게 되었다. 가고 싶어서 간 건 아니었고, 인근 학교들에 몇 명씩 인원이 배정되어 강제 차출된 것이었다. 책이야 각자 알아서 읽으면 되는 거지 독서교실은 무슨 놈의 독서교실이람. 툴툴거렸지만 어차피 나는 불의를 질끈 잘 참는 아이였다.- P39

흥미로운 것은 당연히 개인적일 수밖에 없는 얘기를 할 때도 굳이 ‘개인적으로‘를 덧붙이는 강박증도 자주 관찰된다는 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크림 파스타를 좋아해.˝ 이런 얘기를 길게 듣다보면 나는 개인적으로 하품이 나고 개인적으로 소변이 마려워진다.- P77

생각해보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선조 남성들은 이천년 동안 끝도 없이 ‘남자가 온 세상을 떠돌며 방탕하게 놀고 다니는 동안 아름답고 순수한 처녀는 고향에서 지고지순하게 그를 기다리다가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타락한 남자를 구원에 이르게 한다‘ 유의 철면피스러운 이야기들을 재생산해온 것 아닐까. 파우스트와 그레트헨, 페르귄트와 솔베이지, 오해로 돔아간 신랑을 평생 초록저고리 다홍치마 입고 앉아 기다리다 매운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는 서정주의 [질마재 신화] 새색시까지.- P105

누구에게나 결핍은 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누리는 타인의 존재를 편하게 받아들일 만큼 수양이 된 사람은 많지 않다. 꼭 누구를 착취하고 부당한 방법으로 부자가 된 사람이 부를 만끽하는 모습만 꼴 보기 싫은 게 아니다. 정당하게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자신의 성취를 누리는 당연한 자유가 누군가에게는 의도적인 과시로 비쳐 증오를 낳을 수도 있다.
그건 부조리하다고 생각했지만, 인간 세상은 원래 부조리하다. 논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세상 모든 것은 결국 연결되어 있다. 나 홀로 관계로부터 단절되어 세상과 영향을 주고받지 않고 사는 건 불가능하다. 관계의 촘촘한 거미줄 속에서 나는 원하든 원치 않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받으며, 또는 도움을 주거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 P127

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은 채 남들 하는 대로, 관습에 따라, 지시 받은 대로, 조직논리에 따라 성식하게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류 역사에 가득한 악의 실체였다. 흑인과 같은 화장실을 이용하면 병균에 감염된다고 진심으로 믿은 미국 남부의 숙녀들, 유대인을 가스실에 보내는 일이 많은 바 행정절차인 뿐이라고 믿은 독일 공무원들, 미국 한 주보다도 작은 나라에서 호남 사람들은 다 뭐가 어떻고 저떻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킬킬대며 지껄이는 사람들, 여자의 ‘노‘는 ‘예스‘니까 남자가 좀 터프하게 밀어붙여야 된다고 믿는 남자들. 누군가에게는 좋은 부모고, 자식이고, 친구였을 평범한 사람들이 누군가에게는 악마였다. 타인의 입장에 대한 무지가 곧 악인 것이다.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습니다˝라는 이경규의 말을 들으며 웃을 수 없는 이유다.- P192

정치, 젠더, 환경, 교육... 거의 모든 이슈마다 양쪽 극단에서 가장 큰 소리들이 쏟아져나온다. 목소리가 크고 공격적인 이들이다. 중간에 있는 이들은 눈살을 찌푸린다. 왜 저 사람들은 저렇게 공격적이고, 유연하지 못하고, 비합리적이고, 시끄럽지? 하지만 그 소음 속에는 귀기울여 들어야 할 진짜 신호들이 있다. 그건 대부분 ‘힘들어 죽겠어....‘ ‘아파....‘ ‘억울해....‘라는 비명이다.
성폭력을 겪은 이들이 어떻게 온건하고 예의바르게 성차별과 혐오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알바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젊은이가 어떻게 최저임감 인상이 거시경제에 미칠 영향까지 걱정할 수 있을까.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ㄴ인이 어떻게 안보에 대해 지나칠 만큼 예민하지 않을 수 있을까.- P194

줄다리기는 양끝에서 몸을 던지는 이들이 아니라 중가에 맨 손수건이 약간 움직이는 것으로 승패가 결정된다. 중간에 있는 이들이 제자리에서 튼튼하게 버텨주지 않고 시늉만 하고 있으면 줄은 한쪽으로 확 끌려가고 만다. 중간자들은 성실한 독자여야 한다. 들어야 할 진짜 목소리를 듣고, 작응ㄴ 한걸음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내디뎌야 한다. 양끝에서 몸을 던지는 이들이 이를 악물고 외쳐대는 욕설 때문에 이들을 비웃어서도 안 된다. 결국 가장 먼저 넘어져 뒹굴고 흙투성이가 될 것은 양끝에서 몸을 던지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한다. 지금 내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중립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다면, 그건 나의 현명함 때문이 아니라 나의 안온한 기득권 때문임을.
- P194

비행기를 예약해두지 않았어도 마음속으로 나는 언제나 이전 여행과 다음 여행 사이에서 스톱오버중이었다. 다음 여행을 꿈꾸고 있으면 지금 일상에서 부딪히는 일들에 좀더 관대해진다. 여행자가 굳이 아등바등할 이유가 없으니까. 여행자답게 가능하면 좀더 친절한 사람이 되려 애쓸 뿐이다. 어쩌면 이번 삶 전체가 다 스톱오버일지도 모르겠다. 그전, 그후에 뭐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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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9-07-21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정곡입니다!ㅎㅎ

다락방 2019-07-21 12:49   좋아요 1 | URL
굳이 잘난척 하지 않는데 참 잘나셨더라고요. 하하하하하.

hnine 2019-07-21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으로 올리신 마지막 페이지는 시간절약을 위해서? ^^
인도에 다녀온 유일한 저희 집 식구인 제 아들 말에 의하면, 웬만한 환경에서 군소리하는 편이 아닌 녀석임에도, 인도는 정말 가보라고 권하기 어려운 나라라고 하더군요. 단순히 청결하지 않아서가 아니라면서요.
아직 문유석 판사님의 책을 못읽어본 저로서, 다락방님의 이 리뷰가 굉장히 읽어보고 싶게 만드네요. 그렇죠. 무슨 척 한다는 것, 어떻게 보이고 싶어하는 티가 난다는 것은 일단 그 수준에 못미친다는 것이지요. 뭐, 못봐줄 일도 아니지만요.

다락방 2019-07-22 07:44   좋아요 1 | URL
저 마지막 하나의 인용문을 두고 타자 치기가 너무 귀찮아지더라고요. 아아 더이상 치기 싫다..이래서 사진 찍어 올렸는데, 사진 찍어 올리는 것도 만만찮게 귀찮았어요. ㅎㅎ

인도가 추천할 만한 나라가 아니었다, 생각보다 실망이었다, 라는 구절 때문에 찍은 건 아니고요, 그렇게 기대를 품고 갔는데 아니었다면서 ˝류시화씨, 싸울래요?˝ 한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 구절 때문에 인용했는데, 저 구절이 재미있기 위해서는 앞 구절들이 필요해서.. ㅎㅎ


살면서 아주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잖아요. 친구로서 연인으로서 이웃으로서 그리고 온라인 공간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게 되고요. 그럴 때 ‘나는 ~ 하는 사람이다‘ 라고 자신을 어필하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 이라기 보다는 ‘남들에게 그렇게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의로운 사람, 용감한 사람, 잘난 사람은 딱히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고 드러내지 않아도 그 행동으로 알게되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재미있었어요, 나인님.

clavis 2019-07-21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딩같지 않아요.아아,그렇구나 했는걸요.락방님 저는 왜인지 이 글을 보다가 울고 말았어요. 언어의 한계때문에 저능아처럼 그냥 밥만 먹고 연습만 하는 것 같아요. 밤에도 우리말 유투브든,라디오를 켜놓고 있어요.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아들을 수 있으니까...이렇게 사람다운 생각을 할 수 있는 우리말이 참 그립고 좋습니다. 좋은 책, 좋은 글 소개해주셔서 늘 고마워요 락방님♡

다락방 2019-07-22 08:02   좋아요 1 | URL
으아아 멀리서 외롭지요, 클래비스님? 오랜 연습과 우리말을 듣기 위한 유튜브라니..
클래비스님, 말하고 쓰기도 중요한 것 같아요. 말할 수 없다면 쓰는 거라도 부지런히 해요. 매일매일 짧은 일기라도요. 여기에 못쓴다면 작은 노트에 써도 되고요. 제 경우에는 쓰기가 저를 참 많이 지탱하게 해주거든요.

지치지마요!

clavis 2019-07-21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길가에 거지들이 누워있는데, 오르간은 큰소리가 나는 악기니까, 선생님께 배운 대로 소리를 만들고 치면서도 나에겐 고국과 가족을 맞바꾼 이 피같은 시간들이 한량 놀음 같이 보여서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겠지 속으로만 생각했는데 락방님의 글에서 저자의 글을 접하고, 어제 내가 얼마나 고민하면서 소리를 줄였는지,또 소리를 키워야했는지 위로받는 기분이 들어서 참 고마웠습니다. 늘 연습을 안하고 있을 때는 백퍼 아, 연습해야 하는데..로 마음 불편하게 사는 이 길로 접어들면서 오늘은 마음 편히 쉬려고 락방님네 놀러왔어요. 내일은 또 초긴장 속에 연습과 연주 준비를 해야하기에 늘 제 기분을 잘 맞춰줘야 해요. ㅠㅠ락방님 글 덕에 많이 울고 많이 웃을 수 있어서 늘 고맙습니다.

다락방 2019-07-22 08:04   좋아요 1 | URL
저 역시 누군가로부터 열등감을 느끼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제 글을 보면서 혹은 제 삶을 보면서 괜히 열등감 생기기도 할 거라는 생각도 해요.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니, 누군가의 존재 만으로도 안정감을 얻기도 하고 짜증도 나고 하겠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또 우리가 생각하고 가야하는 길을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해야할 일을 해야 하고요.

벌써 날이 바뀌었네요. 연습과 연주 준비 잘 하고, 기분도 잘 맞춰요, 클래비스님!
저는 오늘 아침 일어나니 기분이 괜찮아요. 사무실 책상 위에 간식이 많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인가봐요. 클래비스님도 간식 먹으면서 해요!

비연 2019-07-22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었는데.. 정말 겸손한 말들이 즐비했으나 이 분은 잘난 분이다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더군요.

다락방 2019-07-22 11:18   좋아요 1 | URL
잘난 사람들은 티가 나는것 같아요, 비연님.... 아무리 따라하려고 해도 따라할 수 없는 본연의 잘남.....

비연 2019-07-22 11:21   좋아요 0 | URL
쩝 ㅠㅠㅜ

얼음장수 2019-07-22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자 없는 남자들>의 저 대목이 기억나요. ‘예스터데이 간사이 사투리‘는 킥킥거리면서 봤거든요. 잘난척하지 않는 자의 미덕을 논하는 글에, 잘난착을 해버렸네요 ㅋㅋ

다락방 2019-07-22 14:15   좋아요 0 | URL
이런 잘난척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얼음장수님!
더운데 잘 지내고 계십니까?

유부만두 2019-07-22 1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문유석 판사의 예전 독서책을 읽었는데
심하게 자기자랑을 해서 밉상이었습니다.
ㅎㅎㅎ

같은 작가 다른 인상

다락방 2019-07-23 07:48   좋아요 0 | URL
독서책이 다른 게 또 있군요? 저는 이거 하나 뿐인줄 알았어요.
저는 최근에 제가 생각한 열등감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