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쉽게 쓰여진 시

 

 

 

 

 

 

 

 

 

 

 

 

 

 

조약돌


 
 

조약돌은 정의하기에 쉬운 사물이 아니다.
단순한 묘사로 만족한다면 우리는 우선 조약돌이 바위와 자갈 사이의 돌의 형태나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이미 돌에 대해서 증명되어야 하는 하나의 개념을 의미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노아의 홍수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나를 비판하지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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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바위덩이들은 엄청나게 큰 하나의 선조로부터 분열되어 나왔다. 전설적인 이 몸체에 대해 한가지밖에 말할 수 없다. 저 세상을 벗어나면 허황한 얘기라는 것이다.
최후의 끈적끈적한 솟구침 사이에 무정형으로 퍼져 있는 그것을 이성이 잡는다. 이성은 세상만한 크기의 영웅의 세례식을 위해 잠을 깨고 죽음의 침상의 무시무시한 반죽통을 발견한다.
여기서 독자는 너무 빨리 지나치지 말아야 하고, 두껍고 음울한 표현 대신에 그 표현들을 조금이라도 투명하게 해주고 그 표현들로 완전히 흐려지지 않을 수 있는 진리의 위대함과 영광을 찬미해야 한다.
이처럼, 이미 광채를 잃고 차가운 위성 위에 지금은 태양이 빛난다. 그를 향해서 타오르던 어떤 위성도 더 이상 속이지 않는다. 모든 영광과 모든 삶, 보게 해주고, 살게 해주는 객관적 외양의 모든 원천이 태양에게로 되돌아갔다. 그로부터 나와서 그의 주변을 맴돌던 영웅들은 스스로 빛을 잃었다. 그들이 그 근원 자체를 위하여 그 영광을 마다하는 진리가 관중과 또 죽어버렸거나 죽어 가는 대상들을 유지하도록, 그들은 진리 주위를 맴돌고, 관객의 역할을 하기를 계속한다.
그런 희생, 이전에 그토록 영광스럽고 뜨겁던 자연 밖으로의 생명의 축출이 드라마틱한 내적 전복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우리의 소박하고도 멋진 거주지 지구의 회색 빛 혼돈의 기원이 있다.
이처럼, 이불 밑에서 요동치며 잠자는 육체와 같은 비틀림과 기복의 기간이 지난 후에 엄청난 구속의 힘에 의한 것처럼 자신의 의식에 굴복당한 우리의 영웅은 점점 더 드물어지는 내적 폭발로 점점 더 무거워지고 차거워지는 껍질을 부술 뿐이다.
죽어버린 영웅과 혼돈스런 지구가 오늘날 뒤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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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하는 능력과 더불어 하나의 온전한 개체로 다시 만들어지는 능력을 영원히 잃어버린 이 몸으로부터, 냉각의 느린 재앙 이래로 역사는 영속적인 붕괴의 역사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때 다른 일들이 벌어진다. 위대함은 죽어버렸고, 생명은 위대함과는 전연 상관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내 수많은 자원으로.
그런 것이 오늘날 지구의 겉모양이다. 세계만한 크기의 존재의 조각난 시체는 그보다 더 작고 더 덧없는 수없이 많은 존재들의 생명에 장식으로 쓰일 뿐이다. 그 무리들은 곳에 따라 너무 밀집해 있어서 자신들의 유일한 지주 역할을 해온 성스런 뼈대를 완전히 가린다. 그때부터 돌의 밀도를 본따는 데 성공하여 그 시체들에게 바위에 조금도 의지하지 않고 식물성 토양이라는 것을 통해 스스로 자신들을 복제하게 하는 것은 그 시체의 무한함이다.
게다가 내가 지금 다루고 있는 것만큼이나 오래 된 기원의 액체적 요소들은 상당히 넓은 지역에서 결합하여 그것을 덮고, 스치고, 계속적인 타격으로 그것의 침식을 활성화한다.
그래서 나는 산재하고 있고, 세상에 의해 천대받는 돌이 우리 눈에 보여주는 몇몇 형태들을 묘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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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으로나 다른 이유들로 거기에 뿌리를 내려 움켜쥐고 있는 식물들 아래로 거의 보이지 않는 포석들은 가장 큰 조각들로서 지구의 골격을 구성한다.
거기가 진정 사원들이다. 땅 위에 아무렇게나 올라간 건축물들이 아니라 세상에 그전에 진짜로 존재했고 옛날 영웅의 무심한 잔해들인 것이다.
이 신비로운 덩어리들을 뒤덮고 있는 숲의 어두움과 향기 사이에서 위대한 것들을 상상하는 인간은 정신으로만 그 아래에 그들의 연속성을 짐작한다.
같은 자리의 조금 더 작은 많은 덩이들이 그의 관심을 끈다. 그 신의 더러워진 손가락으로 반죽된 여러 다른 크기의 돌조각들은 시간에 의해 숲 속에 흩뿌려져 있고.
그들의 까마득한 선조의 폭발 이래로, 그리고 기력 없이 쇠잔한 하늘로 쏘아 올려진 이래로 바위들은 침묵했다.
더 이상 면도하지 않는 사람처럼 싹이 돋아 올라 침범당하고 부서지고 파헤쳐지나 움직이는 흙이 그 자리를 메워주어 어떤 반응도 보일 수 없게 된 그들 중 어느 하나도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들의 형상들과 그들의 육체에는 금이 간다. 경륜의 주름살 속에 순진함이 찾아와 깃들인다. 장미가 그들의 무릎 위에 와서 앉고 그들에게 순진한 독설을 가한다. 그래도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인다. 이전에는 엄청난 우박이 그들의 숲을 간벌해 주었고, 혼미와 체념 속에 그들의 지속은 영원하다.
그들은 주변에 수많은 꽃의 세대들, 그들의 살색보다 조금 더 생기 있는 살색을 띠고 있고, 그들의 회색만큼이나 창백하고 시든 장미색의 꽃의 세대들이 생겨났다가 스러져 가는 것을 보고 웃는다. 그들은 (말하는 수고를 하지 않으려는 입상들처럼) 이 색깔들이 지는 해의 하늘빛, 한결 더 눈부신 한 화재를 기념하여 매일 밤 시도되는 빛에서 그 색조를 빌려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굉장한 격변의 순간에 공중에 격렬하게 내던져진 그들은 놀라운 경악으로 마감되는 한 시간의 멋진 자유를 맛보았다. 거기서부터 머지 않은 곳에, 그들의 지친 여인들의 거품 이는 노력의 가장자리에서 거인 관객의 바위투성이 무릎을 한 바다는 자신이 간직한 덩어리를 몸에 꼭 껴안고 팔 속에서 떼어내고, 껴안고, 흔들어주고, 애지중지하고, 거듭하고, 짓이기고, 쓰다듬고, 윤을 내거나, 사탕처럼 입 안 한구석에 밀어두었다가, 입에서 꺼내어, 나지막한 경사의 다정스런 가장자리에 자신의 손에 닿는 거리에 이미 많은 무리 가운데 내려놓는다. 이는 이내 그곳에서 그것을 다시 취해 한층 더 큰 애정을 가지고 정열적으로 다루기 위함이다.
그렇지만 바람이 분다. 바람은 모래를 날려보낸다. 그리고 만일 우리를 사로잡는 대상의 최후의 가장 미세한 형태인 이 입자들 중의 하나가 우리들의 눈 속에 실제로 들어가게 된다면, 돌은 자신만의 특별한 눈부시게 하는 방법을 통해 벌하고 우리들의 명상을 끝나게 한다.
오랜 명상이 거기에 쌓은 지식들이 몇몇 원칙들을 이미 그에게 제공하지 않았다면 자연은 기억의 내부로 탐구해가는 순간이 올 때 우리의 눈을 감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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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외양에서 자양분을 얻어 개념을 찾아내고 싶어하는 정신에게 자연은 돌에 관해서는, 아마도 너무 간단히, 마치 하나의 동력에 의해 움직이긴 하나 매우 불규칙한 속도로 도는 바퀴들로 이루어지는 원리를 가진 시계처럼 보인다. 
식물, 동물, 기체, 액체는 죽어가고 되살아나면서 조금 빠르게 또는 덜 빠르게 돌아간다. 돌의 큰 바퀴는 우리에게는 실제로 움직이지 않는 것 같고, 비록 이론적으로라도 우리는 그것의 오랜 풍화의 단계의 한 부분만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돌을 인간의 눈에 지속과 무감동의 상징으로 삼는 일반적 의견과는 반대로, 돌이 실제 자연 속에서는 스스로를 다시 형성해 나가지 않고, 끊임없이 죽어가는 유일한 사물이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계속적으로 생명을 받아들이는 존재의 입을 통해서, 그리고 상당히 짧은 기탁 기간 동안 돌이 자신이 깃들이고 있는 장식의 파괴할 수 없는 단단함을 부러워한다고 믿게 할 때라도 실제로 그 돌은 이 장식의 계속되는 풍화에 동참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그에게 드라마틱해 보이는 행동의 통일성이 있다. 돌은 스스로 영원히 부활할 수 있다고 느끼면서도 그의 지주가 어느 날 없어질 수 있다고 혼돈스레 생각한다. 살아 움직이기를 포기하고 폐허로 변할 것만을 생각하는 장식 속에서 그 생명은 부활만을 생각하며 염려하고 불안해한다.
돌 자체가 때로 불안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조약돌, 자갈, 모래, 먼지의 돌의 마지막 상태 때에, 돌은 용기의 역할, 생명이 있는 사물들의 지주 역할을 더 이상 할 수 없다. 근원적 덩어리로부터 떨어져 나와 돌은 구르고, 나르고, 지면에 자신의 자리를 요구하고, 일생 동안 절망의 광란이 그를 흩었다가 다시 모으는 넓은 언덕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간다.
모두 돌의 진화의 어느 상태를 표현하는 그 모든 형태들이 동시에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매우 중요한 원칙으로 지적한다. 여기에는 세대들도 없고, 멸종된 것들도 없다. 사원들, 반신(半神)들, 경이들, 맘모스들, 영웅들, 선조들이 매일 그들의 손자들과 이웃한다. 인간은 자기 정원에서 이 세상의 모든 가능성을 직접 만져볼 수 있다. 개념은 없고 모든 것이 존재한다. 또는 차라리 천국에서처럼 모든 개념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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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좀더 주의깊게 돌의 특이한 형태들 가운데 하나를 검사하기를 원한다면, 그 형태의 완전성과 내가 쥘 수 있고 내 손에서 뒤집을 수 있다는 사실이 조약돌을 선택하게 한다.
또한 조약돌은 바로 개체의 시대, 개인의 시대, 즉 말의 시대가 시작하는 시기의 돌이다.
그가 직접 유래하는 바위층과 비교했을 때, 조약돌은 이미 조각난 돌이며, 거의 비슷한 수많은 사람들로 갈고 닦인 돌이다. 한결 작은 자갈과 비교했을 때, 조약돌은 인간이 그것을 실용화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발견되는 장소에 의해, 야생적인 돌이며, 적어도 길이 든 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실용적인 질서 속에서는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하는 채 남아 있는 며칠 동안이라도, 이 이점을 살리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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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수많은 물결 중의 하나에 의해 운반된 조약돌, 그 후 물결들은 빈 화물을 부리는 소리만 내고 있는데, 조약돌은 그의 과거의 형태 더미와 미래의 형태 더미 위에 쉬고 있다.
풀이 난 땅이 그의 오랜 선조들을 아직 덮고 있는 장소에서 머지않은 곳에, 그의 바로 위 부모들의 사랑의 행위가 벌어지는 바위덩이 아래에 그는 같은 것들의 낱알로 형성되어 있는 땅, 토목장이 물결이 그를 찾고 그를 잃어버리는 곳에 자신의 보금자리를 틀고 있다.
그러나 바다가 일상적으로 쫓아보내는 이 장소들은 공인 받기에 가장 부적합한 장소들이다. 그 인구들은 그 지역만 알고 있는 가운데 그 곳에 산다. 각자는 그 곳에서 잊혀졌다고 여긴다. 왜냐면 그는 번호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자기를 고려해주기에는 너무 맹목적인 힘들만을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래서, 그런 무리가 쉬는 곳 어디에서나, 그들은 실제로 모든 바닥을 덮고 있으며, 그들의 등은 발을 딛기에 그리고 정신을 딛기에 불편한 바닥을 형성한다.
새도 없다. 그들 사이로 풀잎이 삐죽 나온다. 도마뱀들이 그들을 헤집고 다니고, 함부로 돌아다닌다. 메뚜기들은 팔짝팔짝 뛰면서 조약돌들을 재기보다는 서로들을 재어본다. 인간들은 때로 그들 중의 하나를 멀찌감치 집어던진다.
그러나 마지막 조금 남은 이 대상들은, 마른 풀들, 해초들, 낡은 병 뚜껑들, 인간의 생필품의 온갖 쓰레기들로 인해 손상된 고독의 한복판에서 무질서하게 버려진 채, 대기의 엄청난 소용돌이 가운데서도 꼼짝 않고 있으면서, 맹목적으로 숨을 헐떡이며 모든 이성을 저버리고 모든 것을 쫓아가는 이 힘들의 광경에 말없이 참관하고 있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 지역 어느 곳엔가에 남아 있다. 나무를 뿌리채 뽑아내고 건물을 파괴할 만큼 힘센 바랍도 조약돌을 옮길 수는 없다. 그러나 바람이 주변의 먼지를 날려보내기 때문에, 때로는 태풍의 손길이 수세기 전부터 모래의 두텁고 한시적인 층 아래의 어느 한 자리로부터 우연히 그 돌들 중의 하나를 파내기도 한다.
그러나 반면에 미끌미끌하게 하고, 자신이 완전히 감쌀 수 있는 모든 것에 액체의 성격을 전파하는 물은 때때로 조약돌들을 유혹하고 끌어당긴다. 왜냐하면 조약돌은 무정형의 돌의 괴물 위에 가해진 무정형의 이 괴물의 노력으로 그가 태어났다는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개체는 아직도 액체가 수차례 발라져야만 완성될 수 있기 때문에, 조약돌은 본래 영원히 물에는 유순하다.
밤에 비해 낮이 밋밋하듯이 땅에서는 밋밋한 조약돌을 파도가 다시 뒤덮는 순간, 물은 그를 반짝이게 한다. 그리고 물이 내부에 작용할 수 없지만, 그리고 매우 섬세하고 밀집된 돌덩이를 가까스로 침투할 뿐이지만, 액체의 매우 활발하나 가냘플 접착성은 돌의 표면에 눈에 띄는 변화를 야기한다. 물이 돌을 다시 윤을 내고, 그들의 이전의 사랑으로 입은 상처들에 붕대를 감아주는 것 같다. 그래서 잠시 조약돌의 외면은 그 내면과 닮는다--조약돌은 그 육체 위에 젊음의 눈을 가진다.
그렇지만 완전에 이른 그의 형태는 두 가지 환경을 견딘다. 그 형태는 바다의 무질서 속에서는 태연자약하다. 그러나 물에서 나올 때는 좀더 작아져서, 그러나 흠 없이 나온다. 그리고 또한 크게라고 말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돌의 크기는 양으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에서 나온 조약돌은 이내 마른다. 그에게 가해졌던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액체의 흔적은 그 표면에 남을 수 없다. 조약돌은 아무런 수고 없이 그 흔적을 날려버린다.
마침내 매일매일 조금씩 적어지나 늘 자신의 형태에 대해 자신만만하고, 맹목적이고, 단단하고, 메마른 내면의 조약돌의 성격은 그래서 뒤섞이게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물로 자신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또한 굴복하여 모래가 되었을 때에도 물은 먼지에 파고들 듯 모래에 파고들지는 않는다. 모래 위에 다른 것들이 새겨놓는 흔적들을 지우는데 머무는 액체의 흔적을 제외하고 모든 흔적들을 간직하면서, 모래는 모래를 가지고 진흙을 만들 수 없어 그 깊이 속에서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온 바다가 그 사이로 지나가게 한다.
 
*
 
나는 더 이상은 말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기호들의 사라짐에 대한 이 생각은 너무 말에 의존하는 문체의 결점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다만 시작으로 조약돌을 선택해서 너무 행복할 뿐. 왜냐하면 현명한 사람이라면 미소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나, 나의 비평가들이 "돌에 대한 묘사를 쓰려고 시도해놓고, 그는 스스로를 옭매고 말았다"고 말할 때 그는 충격을 받을 것이다.






ㅡ프랑시스 퐁주


 


 

 

 

 

 

 

 

 

 

 

 

 

 

 

 

 



§
하이데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죠. 신전을 만드는 재료가 아닌 돌로 인해 만들어진 저 詩의 신전은 무어라 말해야 좋을까요.
프랑시스 퐁주가 제시한 돌을 보고 돌 하나가 구성하는 우주를 생각하며 아득했습니다.
프란시스 퐁주는 다른 시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시인은 결코 사고를 제시해서는 안되고 대상을 제시하여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사고조차도 대상의 모습을 띠도록 해야 한다.
시는 특별히 인간을 위해 만들어져 놓인, 인간에게 제시되는 즐김의 대상이다. 이러한 의도를 시인은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김민정 시인과 프랑시스 퐁주가 말하는 돌, 그 방식은 돌 만큼 많은 다양성에 해당될 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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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꿈꾸지만 불멸할 수 없다는 걸 아는 형태와 상태...

시인들이 말하는 돌보다 돌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해야 내 말도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에 갑자기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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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5 1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거서 2016-10-25 15: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약돌 하나로도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고, 다시 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다니 감탄해 마지 않습니다! ^^

AgalmA 2016-10-25 15:29   좋아요 1 | URL
네. 퐁주 사물시들은 거의 단편소설 분량이죠^^; 충격에 충격을 주는 시들 가득해요. ˝물˝시도 엄청 좋아하는데 이웃에게 스트레스를 줄까봐 안 옮기겠습니다^^;;;

양철나무꾼 2016-10-25 15: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Agalma님, 제가 몹쓸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고로,
전에 언젠가 조약돌 애기를 했을때,
이 프랑시스 퐁주 소개해 주셨던 거 기억해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전 왜 퐁듀가 연상되는 것인지~--;

저의 `좋아요`는 프랑시스 퐁쥬를 향한 것이 아니라,
님의 이 페이퍼를 향한 것입니다.
거의 실시간인걸요, 이렇게 빠른 먼댓글이라니, `쫌` 멋진거 아녜요?
마음 같아서 백만개의 하트를 `뿅뿅~=3` 날리고 싶지만,
푼수는 이쯤에서 물러갑니다요~^^

AgalmA 2016-10-25 16:47   좋아요 1 | URL
퐁듀ㅎ 그 말 하시니 저는 듀퐁이..ㅎ;;
양철나무꾼님 뜸하게 나타나셔서 언제 대화 나눌지 몰라 제가 얼마나 급하게 먼댓글 썼는지 아세요ㅎ 그래서 생각 정리도 못하고 급하게 올려서 제 생각이 저 모양으로 뚝 끊김ㅋ;;
날 쌀쌀한데 건강 조심하시고 곧, 또^^/

cyrus 2016-10-25 19: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솔출판사, 청하출판사에 나온 시집들은 헌책방에 만나기 어려운 레어본입니다. 퐁쥬의 시가 어렵다고 해도 저 두 권의 시집을 만나면 살 겁니다. ^^

AgalmA 2016-10-25 19:04   좋아요 2 | URL
시에 워낙 관심이 많아서 저는 실시간 겟~해서 샀죠^^ 솔 출판사와 청하에서 나온 국내 시인, 세계 시인선은 정말 다 명작들이죠. 헌책방에서 발견하시면 무조건 사셔야 합니다!

ICE-9 2016-10-25 23: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아, 반갑네요. 저도 청하에서 나온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 시집 가지고 있는데. 고향집 책장 한켠에서 지금도 조용히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있을텐데, 참으로 오랜만에 사진을 통해 보니 반가워서 이렇게 댓글 남기네요.
글도 잘 읽었습니다^^

AgalmA 2016-10-25 23:45   좋아요 1 | URL
어, 저도 반갑네요. 헤르메스님^^ 지금 보면 세계문제시인선집이라니 그 타이틀에 웃음이 나기도ㅎ;;...니체도 그렇고 청하에서 좋은 책 많이 나와서 많이들 가지고 계시죠. 실비아 플라스도 청하 시집으로 만나게 됐을 때 정말 좋았죠.
퐁주 시는 직접 타이핑해서 많이 가지고 있는데 길어서 정말 애먹었어요ㅎ; 하지만 이렇게 같이 추억 나누게 되어서 좋네요. 감사합니다^^

[그장소] 2016-11-30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라하는 책세상의 책들이 보인다는! ^^

AgalmA 2016-12-01 16:58   좋아요 1 | URL
예전엔 책세상 책 많이 봤는데, 요즘은 그때 퀄리티의 책들이 잘 안 나오는 듯해요?

[그장소] 2016-12-01 17:12   좋아요 1 | URL
아.. 신간 소식을 Agalma님 통해 보니, 작년엔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기억이 모락모락,
그래도 가져온 책은 얼마 안되었지만 .. 여기 책은 종이가 넘 맘에 들어요 . 손에 착 감기는 맛이있어서.. ^^
 
난도질당한 제목들

 

 

 

 

 

 

 

 

 

 

 

 

 

 

 

 

프란츠는 갑자기 이 대장정이 끝에 다다랐다는 인상을 받았다. 침묵의 구경꾼들은 유럽으로 좁아들었고, 대장정이 완수되는 공간은 지구 한복판에 있는 조그만 연단에 불과하게 되었다. 한때 연단 밑에 몰려들던 군중은 이미 오래전부터 외면한 터였고, 대장정은 관중이 없는 고독 속에서 계속되었던 것이다. 프란츠는 생각했다. 그렇다, 세상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대장정은 계속되었지만, 그것은 신경질적이고 과민한 어떤 것으로 변해 버렸다. 어제는 미국의 베트남 점령에 반대하며, 오늘은 베트남의 캄보디아 점령에 반대하며, 어제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오늘은 팔레스타인을 위해서, 어제는 쿠바를 위해, 내일은 쿠바를 반대하며, 항상 미국에 대항하며, 매번 학살에 반대하며, 또한 매번 다른 학살을 지지하면서 유럽은 행진을 계속했다. 하나의 사건도 빠뜨리지 않고 리듬을 따라가기 위해 그 발걸음은 더욱더 빨라졌고, 그래서 대장정은 빠른 발걸음으로 행진하는 바쁜 사람들의 행렬이 되었다. 마침내 무대는 더욱더 좁아져서 어느 날 면적 없는 한 점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중략)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것 외에 다른 일도 할 수 있지 않은가? 이보다 좋은 다른 뭔가가 그들에게 남아 있을까?

프란츠의 생각이 옳다. 프라하에서 정치범의 사면을 위한 서명 캠페인을 벌였던 기자에 대해 나는 생각해 보았다. 그 사람은 이 캠페인이 정치범을 돕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진정한 목표는 정치범의 석방이 아니라 아직도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다. 그가 했던 것도 구경거리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가능성이 없었다. 그에게는 행동과 구경거리 사이에서 선택할 권리가 없었다. 그에게는 한 가지 선택밖에 없었다: 구경거리를 제공하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 인간이 구경거리를 제공할 수밖에 없게 선고된 상황이 있게 마련이다. 침묵하는 권력(강 건너의 침묵하는 권력, 벽 속에 숨겨진 조용한 도청장치로 변신한 경찰)에 대항하는 그의 전투란 군대를 공격하는 연극단원의 전투인 것이다.

프란츠의 눈에 소르본 대학의 친구가 주먹을 치켜들고 강 건너의 침묵을 위협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통역관은 세 번째로 메가폰에 대고 소리쳤다.

그에 대한 대답은 역시 침묵뿐이었고, 그것이 갑자기 프란츠의 고뇌를 광적인 분노로 바꾸어버렸다. 그는 태국과 캄보디다 사이의 다리로부터 몇 발짝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다리로 뛰어가 하늘을 향해 끔찍한 욕설을 퍼붓고는 요란한 총성 속에서 죽고 싶다는 엄청난 욕망에 사로잡혔다.

프란츠의 이러한 돌연한 욕망은 우리에게 뭔가를 기억나게 한다. 그렇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극단들이 서로 가까워져 거의 닿을 지경이 되어 고상한 것과 천한 것, 천사와 파리, 신과 똥 사이에 더 이상 아무런 차이점이 없게 되는 꼴을 차마 보지 못하여 고압이 흐르는 철조망에 달려가 매달린, 스탈린의 아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대장정의 영광이 행진하는 사람들의 코믹한 허영심으로 축소되고, 유럽 역사의 장대한 소란이 무한한 침묵 속으로 실종되어 역사와 침묵 간에 더 이상 아무런 차이점도 없게 되는 것을 프란츠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대장정이 똥보다 더 무겁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천칭에 자기 목숨까지도 기꺼이 올려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전혀 증명할 수 없다. 천칭의 한쪽 접시에는 똥이 있었고, 스탈린의 아들은 몸뚱이 전부를 다른 접시 위에 올려놓았지만 천칭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총을 맞고 죽는 대신 프란츠는 고개를 숙이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렬로 서서 버스로 돌아갔다.

 

 

 

 

*

ㅇ님의 '구경거리'에 대한 단상에 먼댓글로 쓴 글이었는데 비공개 처리하셔서 이 글도 이상한 구경거리가 되고 말았.....

이 글은 그냥 놔두기로 했다. '구경거리'로 시작해 구경거리로 끝나게 되는 글의 운명을 잠시 생각했다.

우리의 감정과 생각과 행동들을 따져 보면《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이 책 제목은 언제나 진리처럼 느껴진다.

ㅇ님을 짐작한 투사가 아니라 내 얘기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다시 책장에 꽂고 나는 다른 책으로 돌아간다. 디아나의 저주로 사슴으로 변한 악타이온이 자신의 사냥개에게 물어뜯기며 동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던 일화가 스쳐 지나갔다. 그는 길을 잃었다. 그것은 죄가 아니라 이유였다. 디아나의 목욕을 보게 된 건 그의 뜻이 아니라 뜻밖의 사건과의 조우였다. 이 일화는 원인과 결과가 정합적인 게 아닌 걸 알려준다.

우리의 곤란은 이 혼란 상태 때문이지 않을까. 모두가 잃음의 상태를 앓고 있다. 진정한 사실은 그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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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2016-10-23 09: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잠든 사이에 이런 일이.... 제 불찰로 Agalma님의 글이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가 됐었네요ㅠㅠ 어제 자기 전에 다시 읽어보니 이상한 문장이 너무 많아 아침에 수정하려고 비공개로 해놓은 것인데... 죄송합니다ㅠㅠ 지금은 수정해서 다시 공개해놓았어요^^;;

제가 조만간 꼭 읽고 말겠다고 벼르고 있는 작가 1순위가 쿤데라예요. 여태 한 권도 읽어보지 못해서.. 책은 계속 사서 꽂혀 있는데, 자꾸 읽는 책 수가 늘어서 12월 전에 읽지는 못할 것 같아요ㅠㅠ 그래도 언제나 마음 속엔 1순위로 남아있습니다 ㅎㅎ 다른 건 몰라도 이 책은 읽고 난 뒤에 꼭 리뷰를 쓰는 걸로...^^

AgalmA 2016-10-23 12:12   좋아요 1 | URL
저도 자고 일어나 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ㅎ;;
그랬군요. 글을 다 쓰고 올렸는데, 아무님 글이 없...(@@)>...무슨 사정이 있어 비공개 처리를 한 것일 텐데 제가 괜히 이런 댓글을 남긴 바람에 아무님 입장도 이상하게 되어 버려서 저도 미안했어요^^;; 위에 원인과 결과와 혼란 얘기했다시피 상황이란 게 참 그래요... 아무님이 미안하실 일은 아닌 거 같아요^^;
많은 분들이 그렇듯이 아무님도 밀란 쿤데라 읽으시면 쏙 빠지실 거라 장담ㅎ~
 

 

 

 

 

 

 

 

X-Japan HIDE는 참 그리기 재밌는 모델이었다.

 

 

 

 

 

 

 

신해철은 잘 그려지지 않아 속상했다.
분향소 갔을 때 팬이 신해철 그린 거 갖다 둔 거 본 것 같은데...

정신이 없어 나는 뭘 가져가야 한다는 생각도 못 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것과 똑같은 것들이 세월의 흔적과 함께 거기 있던 게 꿈같았다.


 
 
아, 나 정말 열심히 그림 그리던 학생였는데... 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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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6-10-17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galma 님, 일본 대중문화 세례를 많이 받으셨군요~ 이 말이 일면 모순스러운 게, 솔까 한국인 치고 일본 문화 세례를 안 받은 사람이 거의 없으니까요. 저 또한 (그렇게 많이 보지는 않았습니다만) 학창 시절부터 (한국보다 거의 100여 년을 앞서간) 일본 만화의 상상력에 깊게 영향받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한국인은 음주가무나 주색잡기 쪽으로 나가야 승산이 있지 않을까 봅니다. 노벨 과학상은 상상력과 토론과 논쟁의 유전적 요소가 없으면 거의 불가능한 꿈이죠. 한국인한테는 토론과 논쟁을 본능적/유전적으로 기피하고 적대시하는 속성이 있죠. 노벨 과학상에 목매지 말고 늘 하던 대로 음주가무나 주색잡기에 집중하는 게 우리 한국인들 적성에는 잘 맞을 것 같습니다. 해서 노벨 문학상 하나쯤은 우리한테도 가능할지 모릅니다. 딴따라/환쟁이/영화판은 물론이고 문학판에 음주가무와 주색잡기에 능한 인재들이 많으니까요.

AgalmA 2016-10-17 14:13   좋아요 1 | URL
qualia님 안녕하세요/
흥미로운 댓글입니다. 한국 전반에서 일본 문화 영향을 안 받은 사람 있을까 싶긴 합니다. 문화 자체가 제국주의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소화해내는가가 관건이겠죠. 일본은 다른 문화를 자기 걸로 소화해내는데 뛰어나죠. 한국은 그런 부분에선 참 경색되어 있었죠. 요즘은 살아남아야 되니까 어떻게든 해 보려고 하는 거 같은데........식민지와 전쟁, 군부 독재 여러가지 탓을 하긴 쉽지만 자신과 다른 걸 잘 받아 들이지 못하는 게 외부 환경탓이기만 할까요. 그래서 qualia님이 사회적이라 말하지 않고 본능적/유전적이라 말하시는 걸 이해합니다.
제가 이 땅에 태어났고 살기 때문에 더 애정을 기울이고 사람들의 삶을 걱정하지만 한국이라는 국가가 무슨 상을 받든 관심이 없고 그런 대리만족은 원하지 않습니다. 어느 나라가 되었든 모두를 위한 성과를 내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음주가무와 주색잡기도 창의력이 필요하죠. 잘하기만 해서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기술만 익혀서 되지 않는다는 거 다 아는 바 아닙니까. 한국의 문화 콘텐츠들에서 늘 아쉬운 게 소프트웨어적인 거 아니던가요. 시스템도 시장중심이고 한국은 천재 주도형도 안 통하죠. 득달같이 달려 들어 뜯어 먹으려거나 깎아내리기 바쁘니까요. 앞으론 협업이 더 중요한 시점인데 총체적인 난국입니다.

커피소년 2016-10-17 0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엑스제펜... 히데...

넥스트.. 신해철...

그림을 정말 잘 그리십니다..^^

동영상 음악도 공통점이..^^

옛날 추억에 빠져들 수 있었던 좋은 글이네요.. 감사드립니다..ㅎㅎ

AgalmA 2016-10-17 09:53   좋아요 1 | URL
김영성님, 주말 잘 보내셨는지요.
알라딘 서재는 그림 그리기에 취미가지시려는 분들 많아서 좋던데요^^
예전 그림이나 들춰보지 말고 지금! 열심히 그리려 노력해야 겠지요. 칭찬 감사합니다/

커피소년 2016-10-19 01:51   좋아요 1 | URL
알라디너의 관심분야가 매우 다양하더군요..ㅎㅎ 사진, 그림, 음악 등등 ㅎㅎㅎ

그 중 그림에 취미를 가지시려는 분들도 꽤 있을 겁니다..ㅎㅎ

예전 그림을 들춰보는 것..ㅎㅎ 상당히 의미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저도 과거를 많이 추억하니까요...

그림으로 추억을 남기는 것 ... 상당히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ㅎㅎ

저는 예전에 그린 그림이 하나도 남아 있지가 않아서 말이죠..ㅎㅎ

그림을 그리지 않은지도 오래 되었으니.. 당연한 일일 겁니다..

그림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네요..

AgalmA 2016-10-19 05:55   좋아요 1 | URL
초딩 때 일기장이랑 미술대회 가서 상 받은 그림, 제가 스토리 짜서 그린 만화 그런 걸 다 잃어버려서 저도 아까운데, 김영성님은 하나도 안 가지고 계시다니 더 서운하시겠습니다.
종이 양이 꽤 되어서 이사 때마다 짐이 되긴 하지만 죽을 때까지 가지고 다니긴 할 거 같아요. 다시 그리라고 해도 똑같이 나올 그림이 아니니까....
그림 그리기에 폭 빠져 있는 시간 참 좋죠.
가족과 함께 가을 소풍 가서 수채화로 단풍 담아 보세요 :)

커피소년 2016-10-19 10:41   좋아요 1 | URL



하도 이사를 많이 다녀서 그럴 겁니다..ㅎㅎ

초딩 때 일기는 언젠가 읽은 적이 있었는데 읽고서 너무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네요.

제가 책을 안 읽은 것은 아닌데 책을 읽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은 별개더군요.

어렸을 때는 글을 더럽게 못 썼거든요..ㅎㅎ



저도 미술대회 나가서 상 받은 그림도 없어지고.. 상장도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네요..ㅎㅎ

만화도 그리고 그랬는데... 그것도 어디로 갔을까요..ㅎㅎㅎㅎ

집에서 오래된 물건을 잘 버립니다..ㅎㅎ 제 동의 없이요..ㅎㅎㅎ



진짜 아쉬운 것은 아갈마님 말대로 절대로 그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없거든요..

지금은 그 때의 풍부한 상상력도 없고.. 이제는 그림 그리는 것이 정말 좋아서 행복한 감정을 실어서.. 즐겁게 그릴 수 있는 정신 상태가 아니니까요..ㅎㅎㅎㅎ



“그림 그리기에 폭 빠져 있는 시간 참 좋죠.
가족과 함께 가을 소풍 가서 수채화로 단풍 담아 보세요 :) "


그런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오랜만에 그림에 대한 이야기 하니까 좋네요..
.

여러모로 아갈마님은 저에게 과거의 추억을 꺼내 볼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시는 것 같습니다..ㅎㅎㅎ


다락방 2016-10-17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갈마님, 그림에 엄청 재능 있는 분이셨군요!! 저는 그림은 영 젬병이라 정말 부럽습니다. 그림 잘 그리시는 분들은 진짜 멋있어요. @.@

AgalmA 2016-10-17 13:10   좋아요 0 | URL
제 주변에 그림 잘 그리는 사람들이 많아 저는 기가 죽어 있는 상황^^;;;.....글은 개성이나 다양성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많지만 그림이나 음악은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할까....
끝없는 상대성 되겠습니다~

양철나무꾼 2016-10-17 17: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그림체는 전의 것들과는 또 다르네요.
왕년 X-Japan 팬으로 한말씀 드리자면 정말 캐릭터를 잘 잡아살렸습니다여.
아웅~, 좋네요, 좋아.


AgalmA 2016-10-17 22:54   좋아요 1 | URL
그림체도 열심히 그릴 때와 설렁설렁 그릴 때 차이가 나요. 글 안 쓰다보면 좋은 글 잘 안 나오듯이^^;;
양철나무꾼님은 누구 팬이었습니까ㅎ X-Japan도 참 드라마 같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서 짠하죠. 보컬 토시가 나가서 팀이 해체되었잖아요. 팀과의 불화설 등 말도 많았는데, 내막이 황당하더군요. 사이비 교주가 사주한 여자가 애정에 굶주린 토시를 꾀어내 전재산 다 날리고 그토록 원한 사랑도 다 가짜가 되는.... 철저히 이용만 당하고 요시키 도움으로 다시 X-Japan으로 돌아오게 된....
X-Japan을 그런 사이비 교 때문에 잃었다니 속상하더군요.

북다이제스터 2016-10-17 22: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X-Japan 엄청 팬 이었습니다.
그런 음악 또 언제 들어보나 싶습니다. ^^

AgalmA 2016-10-17 23:03   좋아요 2 | URL
제겐 X-Japan에 대해선 아주 특별한 추억이 있습니다.
당시는 일본에 문화 개방을 안한 상태여서 비밀리에 들여온 음반을 사야 했지요. 보통의 CD 값 3배를 부르길래 너무 비싸다고 투정하니 주인 말이 예술~ ˝그 값 만큼 열심히 들으면 되지 않느냐?˝ 그 말에 바로 긍정하고 시디를 샀죠. 최근에 그 시디 중고로 팔았지만, 15년이나 지난 이 CD를 아직도 사는 팬이 있다는 것에 또 홀로 감동!

북다이제스터 2016-10-17 23:08   좋아요 2 | URL
저도 비슷한 추억 있습니다.
전 친구 소개로 알게 되었는데요.
이런 음악도 모른다고 핀잔 많이 들었습니다. ㅎ
오늘 밤 자며 들을 음악 이미 딱 정해 졌네요, 자동으로... ㅋ 감사합니다. ^^

AgalmA 2016-10-18 00:57   좋아요 1 | URL
endless rain, tears, say anything, forever love 등이 있긴 하지만 토시의 고음과 거의 들썩들썩 사운드인 걸 생각하면 북다이제스터님 잠자리가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하네요...ㅎ;
굿 수면되시길.... 요즘 제겐 이게 가장 문제라....

커피소년 2016-10-19 0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갈마님 글과 댓글 덕분에 엑스 제펜 노래를 다시 듣고 있습니다..ㅎㅎ

다시 들어도 역시나 좋네요..^^

엑스 제펜의 음악은 저에게도 추억의 음악이지요..

엑스 제펜의 음악을 계기로 일본 음악을 듣기 시작하였죠..

AgalmA 2016-10-19 05:57   좋아요 1 | URL
저도 X-Japan으로 시작했는데 추억이 같네요~ 저도 생각나서 어제 다시 들어봤어요^^

커피소년 2016-10-19 10:33   좋아요 1 | URL
아고.. 엑스 제펜에 대한 글과 댓글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어제 정말 간만에 행복하더군요...

평소에 불면증에... 수면장애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 엑스제펜 노래를 들으면서 옛날에 좋았던 추억 떠올리고 하니..

잠도 편안하게 잘 오고.. 오늘 일어났는데.. 개운하더군요...

엑스제펜... 저에게는... 꿈과 희망을 주던 아티스트였거든요..^^

일본 음악을 접하고 나서 삶이 아주 긍정적으로 바뀌었으니까요..

고맙고 정말 고맙습니다....

2016-10-19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9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9 2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6-10-22 0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어젠가 그젠가 침대에 누워서 봤는데 재밌게 꼼꼼히 잘 봤답니다. 댓글은 이제야 씁니다.
저는 연필화를 개인 지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인물화가 가장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주로 정물화를 그렸어요.
책 위에 커피 잔을 놓은 것, 접시에 담긴 과일, 배추와 양파 등.
그리고 풍경화 그릴 때 눈 오는 풍경은 지우개로 지워 나가면 눈 쌓인 땅이 되는 게 신기했고
비 오는 풍경은 사선을 그어 비를 나타내는 게 재밌었죠.
아갈마 님의 멋진 페이퍼를 또 한번 잘 감상하고 갑니다.

AgalmA 2016-10-22 01:23   좋아요 1 | URL
인물화 정말 어렵죠^^;
수채화에서 색겹침으로 명암과 채도 조절하는 거 보고 뭐야! 신세계! 했던 생각이 나네요^^ 물감끼리 겹치며 풍부한 그라데이션 만드는 것도 환상적이었고.
크리스마스 카드 만들 때 각종 재주 부리며 그리던 일도 신났었는데 말이죠.
요즘은 악기 공부 못 한 게 너무 아쉬워요... 새해 계획으로 추진해 봐야 할 듯~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은...

 

 

  Vincent Gallo - When

https://youtu.be/aEAakQH7iYA

 

.

.

.

 

 

밥을 먹는 동안 그곳에 못 갈 거라는 걸 몰랐다. 그저 밖에 눈이 장관으로 내린다고 생각했을 뿐.

 

 

 

 

 

그다음은 비였다. 서리 낀 버스 속에서 우리가 정작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어리둥절함은 우리 주위를 한동안 떠다녔다.

걸음마를 익힌 아이처럼 우리는 풍경 속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저런 걸 공중에 띄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참 대단하기도 하지.

이 사람 아직 피라미드를 못 봤군. 흥.

 

 

 

 

 

이리 오너라~

어느 양반이 아침부터 시끄럽게!

(벌컥)

어머, 햇님이셨네~

나는 싹싹한 하인처럼 해가 준비한 잔치 떠날 채비를 서두른다.

 

 

 

 

 

거짓말 같은 날씨.

사람은 이래서 천국을 그렇게 쉽게 믿는구나 했다.

그래서 일단 자고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고 하는구나 했다.

도시 삶에서는 이렇게 다시 시작하는 느낌을 쉽게 받을 수 없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들이 너무도 협소하다.

여행지에서 나는 매일 한 살이 되어 하루만 산다.

 

 

 

 

 

茶 한 잔 하고 가실래예?

 

 

 

 

 

 

茶보다 풍경에 더 취해……

 

 

 

 

 

 

 풍경이 나를 마시는 중인 지도 몰랐지.

 

 

 

 

 

 

까꿍~ 이 시골에 이런 예술가가 있는지 몰랐지롱!

 

 

 

 

 

 

세상의 아름다움은 나를 미치게 만든다.

나는 얼마나 간절해지는지.

 

 

 

 

 

그곳에 연연해 말고 이리 오렴.

 

 

 

 

 

 

언제나 너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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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1-30 0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진과 함께한 나레이션...멋찐데요^^..

AgalmA 2016-01-30 23:12   좋아요 1 | URL
사진이 보여주는 이미지를 충분히 글이 나타내주지 못하는 부족함에 무릎을 꿇을 뿐입니다. 흑

서니데이 2016-01-30 0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갈마님, 좋은밤되세요.^^

AgalmA 2016-01-30 23:13   좋아요 2 | URL
또 밤^^; 우리는 밤에 만나는 사람ㅎ;;

2016-01-30 2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피북 2016-01-30 09: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목에서부터 `그래서 사람들이 천국을 쉽게 믿는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와 사진들 모두 참 멋져요. 한 편의 에세이집을 읽고 본 기분이 들었어요. 엄지척!

AgalmA 2016-01-30 23:15   좋아요 1 | URL
해피북님 프로필 사진이랑 같이 보니....수고했어. 자, 한 잔 하게로 읽힘ㅎㅎ 감사요 :)

나와같다면 2016-01-30 1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딱 이런 마음이였어요.. 그냥 내릴 생각안하고.. 고속버스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그 공간이 주는 진동과 소음이 그리웠어요..

AgalmA 2016-01-30 23:16   좋아요 1 | URL
그럴 때 있죠. 그냥 쭈욱 가고 싶단 기분... 그 선택으로 무엇을 만날지 겁도 없이요...

비로그인 2016-01-30 1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agalma님! 책임 지세요.. 여행 하고 싶게 하셨으니.. ㅎㅎ

AgalmA 2016-01-30 23:17   좋아요 1 | URL
흔적님은 여행이 무척 필요하신 분이죠! 자발적으로 책에 파묻혀 주이상스 속에 계셔 뭐라고 하지도 못 하겠고ㅎ;;

비로그인 2016-01-31 07:26   좋아요 1 | URL
아. 네.... 저를 잘 읽으신 글입니다....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16-01-30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일 많이 춥대요.
오늘 저녁도 꽤 추워요.
따뜻하게 입으세요.^^

AgalmA 2016-01-30 23:28   좋아요 2 | URL
겨울은 겨울다워야ㅎ 내일도 출근인데, 사무실은 따뜻하니까...그렇지만 힝)
서니데이님도 따뜻하게 지내세요^^
 
꿈꿔라, 문학하는 주체를

십중팔구 너희들은 고급독자가 될 뿐일거다 일갈했던 어느 교수님 생각을 종종 합니다. 
그걸 비웃던 누군가는 잘 나가고 못 나가고를 떠나 작가가 되고, 겁먹었던 누군가는 우울한 직장인이 되고 그랬지만 그건 예언은 아니었죠. 성과는 아쉽지만 모두 열심히 살았습니다.

* 사회라는 관점으로 봤을 때 문학은)
문학에게 혁명이란 사명을 덧씌우는 건 종교적인 데가 있어요. 
만병통치약(=해결사) 혹은 마지막 수송선으로 보는... 짐짓 이성적인 듯 문학의 대의를 논하며 비난하고 공격하는 자가 사실 가장 심하다는 게 아이러니.
그  저변엔 '구원'을 바라는 심리가 깔려 있어요. 문학 뿐이겠습니까. 정치학이든 경제학이든 과학이든 인간관계든.
자기계발서를 읽으면 성공의 길이 열릴 거 같은 심리도 '구원'을 바라는 현실적인 변형입니다.
자기계발서를 비웃지만 책은 늘 참고서처럼 이용되어 왔고 우린 이 심리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글을 쓰는 것도 구원을 바라는 심리가 깔려 있죠. 일단 나부터라도 구하고 싶고, 나를 만족시키고 싶은. '자기 치유'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습니까. 진리 추구니 역사적 사명이니 하는 거대 담론은 그 다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미난 지점은 글쓰기가 사회와 시장이라는 메커니즘에 속하기 때문에 혁명이니 참여니 하는 요구들이 치고 들어온다는 거죠.
현실과 동떨어진 현학성과 지적 배출 같은 공허함을 왜 양산하느냐 하는 공격이. 
지금은 구닥다리 취급당하는 초현실주의가 당시엔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던 건 흥미로운 일였죠. 
시대마다 요구하는 바가 약간씩 달라질 뿐였습니다. 무수한 사상의 흐름, 문예 사조들도 그 역학에서 나온 거라고 봐요. 
실존주의를 철학이라기보다 문학운동으로 평가하기도 하는 건 그래서고요.
출판되는 순간부터 글은 전적으로 작가의 것이 될 수 없죠. 나를 떠난 글은 내 것이 아니라는 말을 흔히 하듯이. 
나혼자 생각하고 쓰고 보고 끝낼 거면 그런 공격에 아랑곳하지 않고 써도 되죠. 
자기 죽고 나서 작품이 되든 화장실 휴지가 되든 상관 않는다면. 
전쟁통에 남의 집 화장실 휴지로 쓰이던 이상의 글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건, 기적입니까, 행운입니까, 운명입니까. 아, 이 모든 추상적인 표현!
살아 남으면 이런 대우도 받는 거죠. 그래요.
카프카가 왜 자기 손으로 자기 작품을 처리하지 못했습니까. 일말의 소통을 바랐던 모든 사람, 작가들에게 저는 같은 인간으로서 연민을 가집니다. 
큰 테두리에서 보면 모든 인간은 종교적이죠. 무신론자도 무신을 믿는 거니까요.
결론적으로 저는 문학이 혁명이든 아니든 상관 않고 좋아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문학이 자유롭길 바랍니다. 내 추구와는 별개로 내가 그러고 싶듯.


* 개인 대 개인이라는 관점으로 봤을 때 문학은)
독자/작가 두 진영 다 공감을 바라지만 쌍방에게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게 늘 딜레마입니다.
지금은 자본주의 시장이라는 거대 도매상까지 끼여 있으니 말예요. 
팔릴 거 같고 통할 거 같은 말만 하고 써라! 열라 머리 굴리는 작가들...아, 딱해라.
저는 오늘도 절판된 책을 여러 권 샀지요. 저는 독자이면서 구조자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책을 접할 때마다 합니다.


종말은 어떤 변화의 시작이 나타나기 전엔 말해지지 않죠. 그래서 저는 종말 소릴 들을 때 차라리 출발 신호로 독해합니다.
길게 늘인 과거와 미래 사이에 순간의 현재들을 어찌저찌 모아보고 말하기 바쁜 인간이 ˝종말˝을 말하는 건 오만같기도 하고요. 
"고급 독자˝ 소리에 비웃거나 겁먹었던 이들처럼 "종말"을 말할 때의 사정도 딱 그 짝인 듯.


(먼댓글) 꿈꿔라 문학하는 주체를 http://blog.aladin.co.kr/inkriver/818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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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6-01-25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말이 그렇다니까요?! 문학이란 이야기일뿐이고 허구로 지어낸 재미일뿐이지, 거기서 뭘 인간의 구원을 찾고 철학이 나오고 하냐고요 ㅋㅋㅋㅋ (문학비평가란 최고급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는 일인)

AgalmA 2016-01-26 01:36   좋아요 0 | URL
만병통치약 단어를 쓰면 만병통치약님이 나타나신다ㅋㅋ!
혼자 그러는 거야 누가 말리겠습니까마는, 어느 분야든 의미들 좀 과도하게 만들지 말았으면 합니다. 어차피 인간들이 다 만든 거잖아요~
결국은 막을 수 없겠죠. 그래왔듯이...

2016-01-25 2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5 2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5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5 2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6 0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6-01-26 17:41   좋아요 1 | URL
사사키나 탕기님 글에 대한 반론이나 태클이 아님을 우선 밝힙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럴 능력도 없고요.

예, 종교적인 것도, 구원적인 것도 문학에서 분리할 수 없는 성질인 걸 압니다. 아니 느낀다고 하는 게 더 맞겠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강력한 글과 책이 성경인 것만 봐도 그렇죠. 경전들이 없었다면 종교가 이만큼 강력했을까요?

글에 대한 내 욕심, 문학에 대한 내 욕심으로 번민하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제 치열함보다 덜해 보이는 글엔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꼴사납게도..

문학이 제 것으로서 나오는 게 아니라 문학의 힘이 제게서 나오길 바랍니다. 창조성,˝문학의 혁명성˝은 이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옥타비오 파스가 시인을 영매로 말한 게 이 지점이라고도 생각하고요.
그래서 모리스 블랑쇼나 바타유 등이 보는 사람이 지칠 정도로 끌고 나가던 사유의 경로를 경탄하며 바라보았습니다.
그 ˝혁명성˝은 외부를 위해 열려 있는 게 아닌 내부의 길인 거 같단 말이죠.

제가 말하고 싶었던 건 문학의 혁명적인 힘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변혁할 무엇으로 혁명을 끌어내야 한다는 목적성에 우려를 표한 겁니다. 사르트르와 블랑쇼가 대립한 지점이기도 하고.
그렇게 목적의 욕심에 얼룩져 만.들.어.지.는 글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언젠가 흔적님과의 대화가 생각나네요. 그러나 찾고자 하는 그 욕망과 노력에서 성숙하고 어떤 결과에 도달할 수도 있지 않느냐 하셨던. 사실 구도에 가깝죠. 저는 문학을 신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처를 믿는 게 아니라 자신이 부처가 되어야 하듯이. 문학 너머에 도달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이 모든 언어의 때들에서 자유롭고 싶습니다. 어찌 보면 제가 더 광신도일 지도.... 모리스 블랑쇼에게서 저는 그 치열함을 가장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언어 앞에서 우린 구원보다 사실 좌절과 절망의 쓴맛을 더 느끼지만 그 속에서 행복해 합니다. 참 이상한 일이죠. 그리고 종교와도 닮은 경로...


문학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기도 하죠. 그래서 누군가에겐 안 봐도 그만인 하찮은 글쪼가리고, 누구에겐 무엇과도 바꾸기 싫은 보물이죠. 언제나 말하는 거지만 기운내세요. 문학과의 사랑에서 자신이 변절하거나 문학이 그를 끝없이 건져 올리거나 아니겠습니까.
문학의 죽음은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부에서 오겠죠. 내가 죽으므로 나라는 외부의 총체가 허물어지듯이.

이 글을 쓰고 저는 또 얼마나 아픈지요...이럴 땐 제가 끔찍하게 싫어져요....

2016-01-26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6-01-26 18:31   좋아요 1 | URL
혁명에 대해 외부/ 내부적 관점을 세심하게 구분해 말하지 않아 그 점이 오해와 상처를 드린 거 같다...지금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런 구분을 한다면 제가 또 틀을 만드는 것이기도 해서....언어를 가지고 말을 한다는 건 참 어려워요...
탕기님과 님이 이해를 해주셔서 이 글에 대한 제 아픔은 좀 나아졌습니다.

하지만...문학에 대한 생각은 늘 아프죠. 상처의 덧남이죠. 언제나.

2016-01-27 1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7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7 2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탕기 2016-01-26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galma님의 생각과 저도 비슷한데 누군가가 위에 `반론`이라고 말씀하신 모양입니다.
사실 저도 글에서 사사키와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뉘앙스를 계속 던졌고요. 어떻게 동의할까요;;

이 글을 읽고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코멘트 제목이야 <문학에게 뭘 바라는가>라고 했지만 agalma님이 분명 바라는 게 눈에 보이거든요.
[나의 글]이 [남의 글]이 되는 메커니즘은, 뭐 글 쓰는 분들이라면 다 아실 테고요.
제 생각에 사사키는 아마 그런 점을 혁명이라는 곳까지 끌고 가려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질적이죠. 그 말에 수긍을 해야 할 것 같지만, 동의는 하지 못하는 정도? 가능성만 살짝? 사례가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은 문학은 그렇지 않은 걸로 생각하고, 그래도 나머지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도 있고요.
사사키를 읽고 나서 요즘 심란합니다.

문학은 뭐다, 이렇게 딱 결정 짓는 건 오만이라 생각합니다.
문학은 그냥 문학이다, 문학은 혁명이다, 양쪽 다요. 스팩트럼이 얼마나 넓은데 말이죠.
뭔가 해보려는 것이든, 취향에 따라 읽는 것이든, 독서도 범위가 넓고요.

요즘 스베틀라나의 글을 읽으면서, 언제 써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합니다.
읽는 건 다를 수 있겠지만, 작가는 언제 뭘 써야 하는지, 쓸 수 없는지를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읽으면서, 아 내 글은 다 배설이구나, 이런 절망도 했어요...

단언하는 순간부터는 게임 끝이라는 건, 원리주의든 맹목이든 어떤 의미에서든 안타까운 사실이죠.
아, 어렵네요. ㅎㅎ
덕분에 이미 던져버린 글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

눈이 얼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추운 겨울인데 건강하게 지내세요!

AgalmA 2016-01-26 18:40   좋아요 0 | URL
사사키 글에 대해 반응이 극과 극이라...블랑쇼에 대한 평가도 그렇지만....도대체 왜 그럴까 흥미를 좀 가지긴 했는데 제 읽기 목록에 잘 들어가지지 않아서 답답한 채 늘 궁금해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 글을 통하는 거보다 제가 직접 보는 게 가장 좋겠죠.
탕기님의 읽기는 그런 분석이 세심해서 감사했습니다. 동의와 비동의의 접점도 잘 보여 주셨고요.

보편을 끌어내는 건 필요하기도 하지만 꼭 이 답이었어야 했나...보는 입장에선 늘 양갈래의 심정을 남기죠. 사람의 언어, 생각 회로는 이런 식이니...탕기님도 엣지재단 책들 많이 보셨으니 이 부분도 저랑 비슷한 심경이실 듯.

스베틀라나 <체르노빌의 목소리> ...읽다가 멈춘 상탠데, 탕기님 심정 조금 알 거 같아요. 제가 위에서 혁명에 대한 목적성ㅡ정치성에 거부감을 표했지만, 스베틀라나는 스스로 찾고 건져올린 정치성을 보여준다는 걸 문장을 읽으며 계속 느꼈습니다. 언젠가 하인리히 뵐을 처음 접했을 때랑 비슷한 감격.
이런 개별로서 지난하게 끌어올린 혁명성은 인정하지만, 사명을 놓고 그 틀에서 직조하는 혁명성을 저는 거부합니다. 그런데 참 미묘하기도 해요. 그의 의도와 다르게도 타인을 움직일 수 있다면 긍/부정을 떠나 성질로서만 보면 그 또한 혁명성을 가지니까...편협한 정치성으로만 판결될 수도 있지만 결과는 모르죠. 의미에 대한 평가는 늘 뒤에, 각자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니...
문학 자체의 혁명성과 외부적 혁명성을 명확히 가르지 않고 말하는 걸 양해해 주세요. 그것을 명확히 가르기가 저는 어려워서.

탕기님께 실례가 안 되었으면 했는데, 다행히 좋게 봐 주셔서 감사드려요. 어디서든 따뜻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