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리할 게 끔찍하게 많아서 왜 시작했나 후회했지만 끝내고 나니 후련하긴 하네요^ㅁ^)
재밌으려고 했다가 자기를 잡고 마는 나;;
새해 계획 : 계획적인 인간이 되자. 우로보로스, 뫼비우스의 띠 같은 다짐...


"아이들은 아직 마당에서 놀고 있었는데, 그중 나이가 어린아이가 가슴에 금박 별을 달고 있었다. 그 별은 나무가 평생 가장 행복했던 날 저녁에 치장했던 장식이었다. 이제 모든 것은 지나가 버렸다. 나무의 일생도 끝났고 이야기도 끝났다. 모든 이야기는 결국에는 끝이 나기 마련이다."
ㅡ 한스 안데르센 『성냥팔이 소녀』
"혼자가 아니라는 말은 얼마나 혼자였던 것"
ㅡ 임솔아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 「모래」
"침묵은 어딘가 발작적인 면을 숨기고 있으므로 자극해선 안 된다"
ㅡ 문보영 『책기둥』, 「못」
"문화는 차이를 강요하는데, 이 점에 주의해야 한다. 그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이른 바 "선천적 차이"에 집중함으로써 우리는 젠더 체제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고 부정하며 존속시킨다. 그러나 젠더 체제, 젠더라는 착상 자체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차이는 저절로 조화를 이룰 것이다."
ㅡ 케이트 본스타인 『젠더 무법자』
“신, 그것은 곧 인간의 외로움이다.”(장 폴 사르트르)
ㅡ 마르크 앙투안 마티외 『신신(DIEU DIEU)』

“시간이란 그토록 유용한 넘나듦”
ㅡ 김현 『입술을 열면』, 「조선마음 8」
"용기, 생존, 사랑, 이런 것들을 어떤 한 사람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지만"
ㅡ 리처드 플래너건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자기 기만이 없다면 희망은 존재할 수 없지만 용기는 사물을 이성적이고 있는 그대로 본다. 희망은 소멸할 수 있지만 용기는 호흡이 길다."
"역사는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보기에 의해 만들어진다."

"시인의 시는 동물원의 시가 아닐 수 없으며 동물원의 시는 인간사의 시를 뒤집고 누비고 돌려 보는 것이 아닐 수 없다.” ㅡ 이장욱『동물입니다 무엇일까요』, 에세이 「동물원의 시」
"단순한 망각이 어떻게 그런 잔인한 행동을 가장 소중한 동시에 그가 되찾고자 염원했던 것으로 만든 것일까?"
ㅡ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영웅들의 꿈』


"물 한 잔의 납득할 수 없는 고집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해줄 필요는 없다. 전 인류가 이해해주는 물 한 잔은 없다. 물 한 잔은 물 한 잔의 이상한 고집을ㅡ가상으로라도ㅡ체험한 사람만이 간신히 이해하고 같이 마셔준다. 못 마시더라도 못 마시는 그 시간을 지루하게 견뎌준다. 언제 나올까?"
ㅡ 김언 『한 문장』, 「물 한 잔의 시간에 담긴 물 한 잔의 노트」
“순간과 영원. 그것은 모든 움직이는 장소의 두 얼굴이다. 장소는 순간이므로 영원한 시간 속에 산다.”
ㅡ 김언『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 「장소」
“나의 말이 나의 기억을 불러오는군요”
ㅡ 손보미 『디어 랄프 로렌』
“어둠은 공포야. 그는 작은 집들을 향해 말없이 외쳤다. 어둠은 대조를 위해 존재한다고. 마땅히 두려워해야지! 이 세계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에드거 앨런 포를, 거창한 말을 멋들어지게 써낸 러브크래프트를 파괴하고, 핼러윈 가면을 태워버리고, 호박등을 없애버렸지! 내가 밤을 예전 모습으로 되돌려놓겠어. 사람들이 도시를 등불로 환하게 밝힐 수밖에 없었던 시절의 모습으로. 아이들이 어둠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로.”
ㅡ 레이 브래드버리 『온 여름을 이 하루에』,「지구에 마지막으로 남은 시체」
“누군가 살아남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그 사람이 영리해서가 아니라오. 총기난사범은 얼굴을 땅에 묻고 있는 여섯 사람의 머리를 쏘고 우연히 한 사람만 지나치지는 않아. 범인은 생존자를 선택하지. 의도적으로 놓치는 거요. 그런 사건에서 우연이란 거의 없소.”
ㅡ 매슈 설리번 『아무도 문밖에서 기다리지 않았다』
"언어는 사적일 수 없으므로 의미는 언제나 상호주관적이다. 즉 그것은 상징적 질서, 라캉적 대타자 안에 존재한다. 그러나 언어와 담론의 상징적 공간은 애매한 기표들로 구성된다. 기표들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은유적인 과잉 의미에 의해 ˝중층 결정된다.˝ 의미의 장 내부의 이 애매성은 이름에 의해 붙잡혀 고정된다. 지젝은 기술언어주의자들이나 반기술언어주의자들이 모두 명명에 함축된 근본적인 우연성을 간과한다고 주장한다. 지젝은 어떤 의미에서는 고유명사뿐 아니라 일상 언어에서의 모든 이름들이 순환적이고 자기 지시적인 계기를 함축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ㅡ 켈시 우드 『한 권으로 읽는 지젝』



“나는 몇 번이나 그런 어둠 속에 가만히 손을 뻗어보았다. 손가락에는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그 작은 빛은, 언제나 내 손가락 조금 앞에 있었다.”
ㅡ 무라카미 하루키 『반딧불이』 , 「반딧불이」
※스콧 피츠제럴드『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문장 “개츠비는 그 초록 불빛을, 해가 갈수록 우리들 앞에서 점점 멀어지는…(중략)…내일은, 더 빨리 뛸 것이고, 더 멀리 팔을 뻗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맑은 아침에ㅡ그러므로 우리는 흐름을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밀려나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와 매우 유사하다.
"그러고는 윙 하고 철컥하는 소리가 나더니 제니의 문이 활짝 열렸다. 안에는 찬 공기, 스테인리스스틸, 도자기, 그리고 오렌지주스 한 잔뿐이었다.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ㅡ겉에는 저런 아름다움과 인격이 있는데, 그 안은 차가운 無라니."
ㅡ 커트 보니것 『세상이 잠든 동안』, 「제니」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가까운 미래에 방대한 양의 행동 데이터가 인공지능 시스템에 입력될 것이다. 문제는 그 인공지능 시스템은 인간의 눈으로 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불투명한 블랙박스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런 과정이 이뤄지는 내내 자신이 ‘속한’ 부족이 무엇이며, 자신이 왜 그런 부족에 포함됐는지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할 것이다. 기계지능machine intelligence, 다른 말로 인공지능의 시대에 거의 모든 변수는 미스터리로 남게 된다. 시스템이 사람들을 이 집단에서 저 집단으로 끊임없이 이동시킴에 따라 부족은 매 시간 매 분 변화할 것이다. "
ㅡ 캐시 오닐 『대량살상 수학무기』

“끝없이 쏟아지는 "골드 카드로도 잠재울 수 없는 두려움과 떨림"류의 소설이 왜 심란한가 하면, 만약 대중문화와 학계와 지식인 세계의 격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훼손되지 않고 살아남은 오래된 믿음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성실하고 재능 있고 운 좋은 예술가는 시대를 불문하고 늘 변화를 가져오는 힘이 있다는 믿음인 것 같기 때문이다.”
ㅡ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하늘이 총명을 주는 것은 귀천이나 상하나 남북에 한정되어 있지 아니하니 오직 확충하여 모질게 정체(精彩)를 쏟아나가면 구천구백구십구 분은 도달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 나머지 일 분이 인력(人力) 바깥에 있는 것도 아니니 끝까지 노력해야만 하는 거라네.”
(추사가 석파 이하응(흥선대원군), 역매 오경석 같은 제자에게 수련을 강조하며 한 말)
ㅡ 유홍준 『추사 김정희』
"이야기는 구성을 지닌다. 즉,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다. 문명은 이런 의미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떤 문명이 끝났다고 하더라도, 흥망성쇠를 지닐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내러티브의 노예가 된 것이다."
ㅡ 존 허스트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
"젠더는 고정된 정체성도 아니고 다양한 행위의 내적 발생 장소도 아니다. 그보다 젠더는 시간이 흐르면서 반복적인 행동 양식을 통해 외부 공간에서 제도화되는 정체성이다. 젠더 효과는 몸의 각인에 의해 형성되기에 일상적인 몸의 제스처와 동작과 여러 행동 양식이 젠더 자아라는 환영을 구성할 뿐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ㅡ 록산 게이 『나쁜 페미니스트』
"침묵을 다시 데려오는 것, 그것이 사물들의 역할이다."(사뮈엘 베케트)
ㅡ 나탈리 레제 『사뮈엘 베케트의 말 없는 삶』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에만 관심을 촉구하거나 군국주의를 남성의 폭력성이 표출된 또 다른 방식으로만 치부하면 우리는 폭력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다룰 수 없으며 실행 가능한 저항 전략과 해결책을 이끌어내기도 어려울 것이다. (…)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 혹은 국가나 이 지구에 대한 남성 폭력의 심각성을 축소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남성과 여성 모두가 미국 문화를 폭력으로 물들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그러한 문화를 변화시키고 재창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전쟁이나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 아동에 대한 성인의 폭력, 십 대에 대한 폭력, 인종차별로 인한 폭력 등 어떠한 방식의 폭력이든 사회 통제 수단으로 폭력을 행사한다면 여남을 불문하고 반대해야만 한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을 종식하기 위한 페미니스트들의 노력은 모든 형태의 폭력을 종식하는 운동으로 확장되어야만 한다."
ㅡ 벨 훅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최근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한 국제 제재는 이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성이나 종교 차별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주의와 달리 이란의 대학이나 제품에 대한 광범위한 보이콧 움직임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인종이나 민족 차별에 비해 성적·종교적 차별은 여전히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는 듯하다."
ㅡ 피터 싱어 『더 나은 세상』 ,「문화적 차이는 간섭할 수 없는가」 :이란의 종교와 여성
"어떻게 그에게,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짧은 프랑스어로, 그의 아름다운 나라가 우리 난민들에게는 사막, 사람들이 ‘통합’이라든지 ‘동화’라고 부르는 것에 다다르게 위해서 우리가 건너야만 하는 사막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때까지 나는 어떤 이들은 끝끝내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ㅡ 아고타 크리스토프 『문맹』 ,「사막」
"나는 전날보다 조금씩 조금씩 더 더러워지고 더 너저분해지고 더 혼란스러워져서 차츰차츰 나 이외의 모든 사람들과 달라졌다. 그러나 공원에서는 자의식이라는 짐을 지고 돌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공원은 내게 문턱, 경계선, 내면과 외면을 구분하는 방법을 제공했다. 길거리에서는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을 다른 사람들이 보는 식으로 볼 수밖에 없었지만, 공원은 나에게 내면적인 삶으로 돌아가 순전히 내면적인 관점에서 나 자신에 전념할 기회를 주었다. 나는 하늘을 가릴 지붕 없이는 살 수 있지만 내면과 외면 사이의 평정을 확립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공원은 나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었다. 어쩌면 그곳은 정말로는 집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피난처가 없었던 내게는 그곳이 집이나 거의 진배없었다."
ㅡ 폴 오스터 『달의 궁전』


"언어 처리는 전체 언어에서 부수적인 면이고, 외적 표출에 의존하는 언어 사용, 그중에서도 의사소통은 훨씬 지엽적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결론은 의사소통에 대한 아무 근거 없는, 사실상의 도그마와 반대되는 내용이다. 또한 최근에 언어 진화에 관한 많은 추측이 의사소통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은 방향을 잘못 택했다는 이야기다."
ㅡ 노엄 촘스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수학은 네 번째 차원을 비롯하여 존재 가능한 세계를 얼마든지 탐구할 수 있지만, 차르는 오직 3차원에서만 전복될 수 있다!”(Vladimir Lenin, Materialism and Empirio-Criticism, in Karl Marx, Friedrich Engels, and Vladimir Lenin, On Dialectical Materialism (Moscow: Progress, 1977) 레닌은 ‘네 번째 차원’과 ‘복사이론’이라는 전쟁터에서 오트조비스트를 뿌리뽑기 위해 몇 년 동안 사투를 벌였다. 결국 그는 1917년에 목적을 달성하고 그해 10월에 역사적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러시아에 공산정권을 수립했다."
ㅡ 미치오 카쿠 『초공간』

“나는 사람들이 모험을 하게 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믿을 수 있는 정보는 그중 하나다. 다른 두 가지는 충분한 보상과 실패했을 경우의 대비책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그 세 가지가 다 부족하고, 평범한 사람과 기업들은 모험을 극히 꺼린다. 그 결과 역동성이 점점 사라지고 우리 공동체가 계급사회 같은 모습으로 굳어지는 중이다. 상속, 혼인, 시험과 같은 이벤트가 아니면 신분을 바꾸기 어려운.”
ㅡ 장강명 『당선, 계급, 합격』
"밤중에 숲속에서 강도의 칼에 맞아 살해당할 위기에 처해 있는 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어요. 그러한 희망을 가지는 예가 허다하지 않나요? 그런데 열 배나 편히 죽을 수 있는 이 마지막 희망을 〈분명히〉 빼앗아 가버린다는 얘기입니다. 바로 사형 선고가 그렇게 한다는 뜻이지요. 피할 수 있다는 희망이 분명히 없을 거라는 사실 속에 처참한 고통이 있는 겁니다. 이보다 더 심한 고통은 이 세상에 없어요. 전쟁터에 있는 병사를 끌고 와서 바로 대포 앞에다 세워 두고 그에게 대포를 쏘아 보려고 해보세요. 그래도 병사는 희망을 버리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이 병사에게 사형 선고문을 〈분명하게〉 낭독해 보세요. 그 병사는 미쳐서 울부짖기 시작할 겁니다. 인간이 미치지 않고서도 그러한 고통을 참아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누가 말했지요? 무얼 하려고 그처럼 추악하고 불필요한 욕설을 내뱉었지요? 어쩌면 사형 선고를 받고 고통을 당한 뒤 〈가라, 너를 용서해 주겠다>는 말을 듣고 풀려 나온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요. 바로 그러한 사람은 상세히 얘기해 줄 수 있을 겁니다. 그러한 고통과 처참함에 대해서는 그리스도도 말했어요. 정말이지, 인간을 그렇게 대해서는 안 됩니다."(미쉬낀 공작이 시종에게)
ㅡ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백치』(상)
"종교적 감정의 본질은 그 어떤 이성적 논리로도 접근할 수 없어, 그 어떤 과실이나 범죄, 그 어떤 무신론도 그걸 붙잡을 수 없지. 그런 것들과는 무언가 틀려. 영원히 틀릴 거야. 거기에는 무신론이 영원히 포착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는 영원히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거라고.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 가장 선명하게 러시아 인의 가슴속에서 가장 자주 발견된다는 것이야. 그것이 바로 나의 결론이라네!"(미쉬낀 공작이 로고진에게)
ㅡ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백치』(하)
“어쩌면 나는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경우의 수로 존재했다가 그중 가장 낮은 확률의 나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내가 되지 못한 무수한 또 다른 나를 떠올리다 보면 그들도 어딘가에서 지금의 나를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나로부터 한참 떨어진 뒤에도 내가 되지 못한 것을 두고 후회하고 그것으로 소설도 쓰고 그러는 걸까. 진짜 그렇다면 거기도 뭐, 별거 없네. 그 별것 아닌 것으로 나를 너무 낭비했다.
그럼에도 만약, 내가 나를 미리 알고 다른 가능성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그때도 나는 여전히 내가 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지금의 나에게 조금 미안해진다.
대신 미래의 나는 평범하고 성실하게 늙어가면서 앓는 질병과 처방받은 약품의 성분으로 나의 많은 부분을 설명하려 할 것이다. 주의를 기울여 수도꼭지의 온도를 조절하느라 오랜 시간을 허비할 것이고, 매번 왼쪽부터 먼저 닳는 신발이라든지, 길 한가운데 버려진 양말 같은 것을 발견하며 이건 또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렸나 궁금해할 것이다. 어딘가 서로 닮은 것들을 바라보며 ‘너무 나 같네’ 하고 적적해하겠지. 아니더라도 내게 없던 장면들을 상상하고 나랑 비슷한 누군가를 등장시키며 무언가를 써보려고 할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쓴 거의 대부분의 것들도 이미 그렇게 쓰인 셈이다.”
ㅡ 『2018 제9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 <임현 작가 노트>
"슬플 때, 불안할 때, 화가 날 때, 누군가가 내 마음을 쥐고 흔들 때, 나는 그 이름들을 그저 간절하게 불렀고, 그들은 어느 정도까지는 현실의 고통에서 나를 분리시켜줬다. ‘원시지구’로 시작해서 ‘여러 종류의 발굽이 있는 동물’까지 중얼거리고 나면, 내가 그들의 이름을 부른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의 이름을 불러준 것 같았다. 그럴 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ㅡ 최은영 『쇼코의 미소』,「한지와 영주」
“내가 얼마나 메말랐기에 너는 그처럼 밀려오는가”
ㅡ 신철규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해변의 진혼곡」
“우는 사람과 입을 맞추는 기분이야”
ㅡ 유희경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빈집」
※ 이 시집을 한 마디로 말하면 저 문장이다.
“결국엔 내가 맞았지? 울면서 웃는 해준의 얼굴을 보았고, 사직구장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야구를 보는 혜인과 내가 있었다. 슬픈 것과 사랑하는 것을 착각하지 말라고, 슬픈 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을 착각하지 말라고 생각했고, 아무래도 아무여도 좋을 일이라고 잠시 생각했다. 상상만으로 이미 나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지만, 가능 세계를 그려보는 일은 예전만큼 즐겁지 않았다. 내가 된 나를 통과하는 사람들, 슬픔과 불안에서만 찾아왔던 재미와 미 역시 내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김봉곤 「시절과 기분」)
‘내가 된 나’라는 것은 여러 명의 사람을 통과하고 나서일 것이다. 지금의 내 모습도 여전히 최종 버전은 아니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유동적이고 그것은 타자와의 만남과 결속을 통해 계속 변해가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은 다시 서울과 해준에게로, 현재의 공간과 연인에게로 돌아가며 ‘또 한 번 내가 될 시간’을 맞지만 ‘뛰는 심장의 무늬를 구별하고 싶지 않았다’라고 중얼거린다."
ㅡ 《Axt 2018. 5/6》 , 김성중 「슬픈 것과 사랑하는 것을 착각하지 않으려면」

"하지만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자 하는 욕망은, 어쩌면 무엇보다도 먼저, 조화로운 질서와 〈점잖은 기품〉(당신의 용어를 빌려 말합니다)을 지향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감춰진 갈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요? 젊음이란 이미 그것이 지니고 있는 열정만으로도 순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관점에서 보면, 젊음의 열정이 뿜어 내는 폭발적인 광기에는 어쩌면 바로 조화로운 질서에 대한 갈망과 진리를 향한 탐구 정신이 내포되어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많지 않은 수의 동시대 젊은이들이 자신들이 그런 것을 어떻게 믿게 되었는지도 모를 그런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사안들을 접하는 과정 속에서 이러한 조화와 진리를 겨우 발견하게 되는 것은 도대체 누구의 잘못이겠습니까! 한 가지 덧붙인다면 과거에는, 그렇다고 아주 오래 전은 아니고 약 한 세대쯤 전에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이 그렇게 동정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에 그들은 거의 언제나 결과적으로는 우리 나라 최고의 문화 계층과 아주 성공적으로 결합할 수 있었고, 그것과 융합하여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를 들어, 그들이 자신들의 활동의 첫 무대에서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무질서한 점이나 불안함, 그리고 가정 환경에서도 좋은 바탕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 또 훌륭한 가문적 전통과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교양의 배경이 없다는 점을 인식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전혀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그들 스스로가 직접 그것을 추구할 수 있었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차차 그러한 것에 적응하고 그 가치를 존중할 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약간 다릅니다. 그들이 나중에 융합할 수 있는 대상이 지금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니콜라이 세묘노비치의 편지)
ㅡ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미성년』(하)

「그건 어느 의사가 오래 전에 내게 들려준 이야기와 똑같군요.」 장로가 지적했다. 「그는 나이가 지긋하고 대단히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당신이 했던 이야기와 똑같은 이야기를, 비록 농담이긴 하지만, 가슴 아픈 농담을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말하기를, 나는 인류를 사랑한다,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해 놀라게 된다. 왜냐하면 내가 인류를 사랑하면 할수록 개별적 인간, 다시 말해서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공상을 할 때는 흔히 인류에 대한 지극한 봉사 정신에 빠져 들기도 하고, 만일 갑자기 그럴 필요가 생긴다면 사람들을 위해 실제로 십자가를 걸머지겠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단 이틀도 같은 방에서 어떤 사람하고든 함께 지낼 수 없으며, 이것은 내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바이다. 어떤 사람이 나와 가까이 있게 되면, 그의 개성은 바로 나의 자존심을 짓누르고 나의 자유를 구속한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하루만 지나면 나는 그를 증오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식사 시간에 너무 오래 먹는다는 이유 때문에, 또 다른 사람은 감기에 걸려 계속 코를 풀어 댄다는 이유 때문이다. 일단 나를 아주 조금이라도 건드리게 되면 나는 사람들의 적이 되고 만다. 그래서 개별적 인간을 증오하면 할수록 인류에 대한 나의 보편적 사랑은 한층 타오르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ㅡ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1권)
"우리 본성의 가장 강렬한 감정들과 움직임들 중 많은 것들을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는 터득할 수 없으니, 이것에 현혹되지도 말 것이며 이것이 그대의 어떤 것을 정당화해 줄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말 것이니, 이는 영원한 재판관은 그대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그대에게 물을 것이기 때문이며, 그대는 몸소 이 점을 확신할 것이며 그때 가면 모든 것을 올바로 보게 되어 더 이상 논쟁을 벌이지 않을 것이다. 이 지상에서 우리는 참으로 방황하고 있는 것이니, 만약 그리스도의 귀중한 형상이 우리 앞에 없었더라면, 우리는 대홍수 직전의 인류처럼 파멸하여 완전히 길을 잃었을 것이다. 지상의 많은 것이 우리로부터 감추어져 있지만, 그 대신 우리에게는 다른 세계, 드높은 천상의 세계와 우리 사이에 맺어진 생생한 관계에 대한 은밀하고 소중한 감각이 주어졌고, 더욱이 우리의 생각들과 감정들의 뿌리는 이곳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 있노라. 바로 그렇기 때문에 철학자들은 지상에서는 사물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느님이 다른 세계에서 씨앗을 가져와 이 땅에 뿌렸고 그분의 정원을 가꾸었으니, 싹을 틔울 수 있는 모든 것은 싹을 틔웠지만 자라고 있는 것은 오로지 다른 신비스러운 세계와의 접촉의 감각을 통해서만 살아가고 또 이로써만 살아 있는 것이 되는 셈이다. 만약 그대의 내부에서 이 감각이 약해지거나 없어진다면, 그대의 내부에서 자라난 것도 죽을 것이다. 그때는 삶에 무관심해질 뿐만 아니라 그것을 증오하게 될 것이다. 내 생각은 이러하다."
ㅡ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2권), 6편 「러시아의 수도승」
“‘과연 누가 카라마조프 집안사람들을 두고 제대로 잘잘못을 가려낼 수 있겠는가, 아무도 자기가 누군지 이해할 수도, 정의할 수도 없는 것이 이 어처구니없는 카라마조프 가의 특성인데, 도대체 누가 누구한테 빚이 있다는 건가’라는 거였다. 공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범죄의 비극에 관해서 그는 그것이 농노제의 낡아 빠진 풍습, 그리고 적절한 제도의 부재로 인해 고통받고 심한 혼란에 휩싸인 러시아가 낳은 산물이라고 기술했다.”(재판장에서 변호사)
ㅡ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3권)
"멍청이가 정말 날 피곤하게 한다고! 어떤 견해를 퍼뜨리려면, 내가 볼 때 가장 공정하고 가장 강력한 방법은 전혀 아무 견해도 갖지 않는 거야.” (데로리에)
ㅡ 귀스타브 플로베르『감정교육』1권
"보니까, 너도 정치에 있어 온건해진 것 같네?"
"나이 탓이지." 하고 변호사가 말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자신들이 살아온 삶을 간략하게 돌아보았다. 사랑을 꿈꾸었던 이도, 권력을 꿈꾸었던 이도, 둘 다 실패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곧장 직선으로 달리려 한 게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지.” 하고 프레데릭이 말했다.
“네 경우는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난 그와 반대로 그 무엇보다 더 강력한 많은 부수적인 일들은 고려하지 않은 채 지나치게 방향 수정을 많이 해서 그르친 거야. 난 너무 논리적이었고, 넌 너무 감정적이었지.”
그들은 우연과 환경과 그들이 태어난 시대를 탓했다.
프레데릭이 다시 말을 이었다.
“옛날 상스에 있었을 때 우리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었어. 그때 너는 철학에 대한 비판적 역사를 쓰고자 했었고, 나는 프루아사르에게서 주제를 찾아내 노장을 무대로 방대한 중세풍 소설을 쓰고자 했었어. 브로카르 드 페네스트랑주 전하와 트루아의 주교가 외스타슈 당브르시쿠르 전하를 습격하는 이야기였지. 기억나니?”
젊은 시절을 되살리며 두 사람은 한 마디씩 할 때마다 묻고는 했다.
“기억나니?”
“모두들 죽음으로부터 다시 한 번 / 튕겨 나와 / 무언가로 죽음을 내리치고 있었다”
ㅡ 이수명 『물류창고』, 「이디야 커피」
“아버지는 왜 그랬을까?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그러면 안 될텐데, 패트릭은 생각했다.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그러면 안 될텐데.
겨울철에는 물웅덩이가 얼어 표면 아래 기포들이 갇힌 것을 볼 수 있었다. 공기가 얼음에 잠겨 나오지 못하고 밑에 붙들려 있는 것이다. 패트릭은 그게 싫었다. 그건 너무 불공평했다. 그래서 항상 얼음을 깨뜨려 기포를 자유롭게 해 주었다.”(패트릭)
ㅡ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 『괜찮아』
"자연선택은 경제적이고 설득력 있고 우아한 해답일 뿐 아니라, 지금까지 제시된 것들 중 제대로 작동하는 유일한 대안이다. 지적 설계는 우연과 똑같은 반론에 시달린다. 그것은 통계적 비개연성이라는 수수께끼의, 설득력 있는 해답이 아니다. 그리고 비개연성이 높아질수록 지적 설계는 더욱 설득력이 없어진다. 잘 보면 지적 설계는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설계자 자신(그/그녀)의 기원이라는 더 큰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ㅡ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데이터 혁명의 위험은 우리 삶의 점점 많은 부분이 정량화되면서 이러한 대리 판단이 우리 생활에 더 깊숙이 파고들어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더 나은 예측은 더 감지하기 어렵고 더 비도덕적인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
더 나은 데이터 역시 또 다른 형태의 차별, 즉 경제학자들이 ‘가격차별 price discrimination’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업은 제품이나 서비스에 얼마의 가격을 매겨야 할지를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고객들이 기꺼이 지불하려는 최대 금액을 청구하고자 한다. 이런 식으로 이윤을 가능한 최대로 남길 것이다.”
ㅡ 세스 스티븐슨 다비도위츠 『모두 거짓말을 한다』
"‘블로거에게 떠넘기기’는 어떤 면에서 정치인들에게 거짓말을 허용해주는 무임승차권과 같다. 다른 사람의 주장을 인용하는 사람을 비난할 수 있을까? 비난해야 한다. 보통의 블로거들과 달리 공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만큼 정치인들에게는 과학에 관한 한 더 높은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어리석고 터무니없고 몹시 위험한 헛소리를 그대로 옮기는 행태를 제대로 지적하면 다방면에서 유익한 결과를 볼 수 있다. 낙태와 관련된 잘못된 정보가 퍼지는 것을 막으면 극단주의적인 폭력사태를 줄일 수 있고, 기후학에 대한 신뢰를 쌓아올리면 사람들의 행동을 촉구해 말 그대로 세계를 구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
ㅡ 데이브 레비턴 『과학 같은 소리 하네』
"사실 우리가 선천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대개 학습으로 얻어진 것들이다. 다시 말해 음식에 대한 감각적 단서들은 학습을 통해 배운 것이다. 이런 학습은 각각의 감각들이 우리가 무엇을 먹는지(그리고 어떤 생리적 보상이 따르는지) 뇌에 신호를 보내기 때문에 가능했다. 바삭함과 오독함은 신선함과 새로움 그리고 계절에 맞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학습된 것이다"
ㅡ 찰스 스펜스 『왜 맛있을까』

"쥐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쥐 살림에, 희망밖에 무엇이 있었겠는가"
ㅡ 이영광 『끝없는 사람』, 「덫」
"평화는 생사가 갈린 이후 잠시 반짝이는 적막이다." ㅡ
김중식 『울지도 못했다』 , 「도요새에 관한 명상」
“너는 단 한 벌의 육체였다./ 벗고 나면 거울에 /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그리하여 어느 날 텅빈 거울에는/ 너만 빼면 천의무봉인 세계가/ 환히 비칠 것인가."
ㅡ 최승호 『그로테스크』 , 「발바닥 속의 거울」
"이 꿈이 불러일으킨 불쾌감이 너무 커서 그녀는 그 이유를 알아내려고 애썼다. 그녀를 이토록 혼란에 빠뜨린 것은 꿈이 현재 시제를 없애 버렸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의 현재에 치열하게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미래 아니면 이 세상 무엇을 준다 해도 현재와는 맞바꾸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꿈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꿈은 한 인생의 각기 다른 시절에 대한 수용하지 못할 평등성과, 인간이 겪은 모든 것을 평준화하는 동시대성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꿈은 현재의 특권적 지위를 부정하며 현재를 무시한다. 마치 지난밤 그녀의 꿈에서처럼. 그녀 삶의 모든 폭이 무화되었다."
ㅡ 밀란 쿤데라 『정체성』
“실은 아로헤나가 나를 거의 설복시킬 뻔한 적도 있었다. 내가 믿는 하느님의 본성과 속성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녀는 하느님이라는 신은 인간의 최고의 선과 지혜, 힘에 대한 관념의 표현에 불과하며, 그토록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관념을 더욱 생생히 발현시키기 위해 사람들은 그 관념을 의인화해서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인간은 우연히 일어나는 사태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신을 개인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신성을 찾을 수만 있다면 바로 그 신성을 인간이 숭배해야 한다고 했다. 계속해 ‘하느님’이란 인간이 신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방식에 불과하며, 정의와 희망, 지혜 등이 모두 선함의 부분이기 때문에 하느님이란 모든 선함과 모든 선한 힘을 포용한 표현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정의가 실제로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정의를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듯이 하느님의 객관적인 인격을 믿는 것을 멈춘다고 해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않으며, 따라서 그들은 하느님을 보기 전까지는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ㅡ 새뮤얼 버틀러 『에레혼』
“하지만 그에게는 그것 말고도 생각할 문제들이 있었다. 세상이 ‘위기’에 처해 인류가 재앙을 향해 가고 있고, 연안도시가 바다에 잠기고 흉작이 들면 수억 명의 이재민이 가뭄, 홍수, 기아, 폭풍우, 고갈 자원의 쟁탈을 둘러싼 끊임없는 전쟁을 피해 나라에서 나라로, 대륙에서 대륙으로 몰려갈 거라는 무모한 억측에 마음이 흔들리지도 않았다. 구약성서의 악성종기나 개구리 재앙을 연상시키는 경고는 수 세기 동안 인류의 마음 깊은 곳에서 전해 내려온, 자신이 종말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믿으려는 성향에서 비롯된다. 세상의 종말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면 자신의 죽음도 납득할 만한 것, 최소한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겨질 테니까. 하지만 세상의 종말은 결코 실현되는 일 없이 환상의 베일을 쓴 채 늘 임박해 있으며, 막상 때가 되면 종말은 닥치지 않고 곧바로 새 문제, 새 날짜가 등장한다. 세상은 선동적 폭력으로 정화되고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피로 깨끗이 씻긴다. 기독교 천년왕국파에게 그것은 믿지 않는 자들의 죽음이었다! 소비에트 공산주의자에게는 쿨라크(제정러시아의 부농)의 죽음, 나치와 천 년 동안 이어져온 그들의 망상에 의하면 유대인의 죽음이었다. 그리고 진실로 민주적인 현대인들에게 그 재앙은 전면적인 핵전쟁에 의한 인류 전체의 죽음이었다! 하지만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고 소비에트 제국도 내부 모순으로 붕괴되면서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지긋지긋한 세계적 빈곤 이상의 압도적인 걱정거리가 없는 가운데, 인류의 종말론적 성향이 또 다른 괴물을 불러낸 것이다.”
ㅡ 이언 매큐언 『솔라』
“이 갈등을 하나의 선을 기준으로 이편과 저편에 깔끔하게 도열한 두 부대 간의 일로 상상할 경우 우리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성 문화와 여성 간의 ‘전투’가 가진 뒤얽힌 성격을, 옴짝달싹 못하게 꽉 붙들고 있는 그 악력을 놓치게 된다. 즉, 반격이 가진 대응이라는 본질, 다른 힘에 대한 반응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그 본질을 놓치게 된다.”
ㅡ 수전 팔루디 『백래시』
“주체는 지식의 자율적이며 투명한 근원이 아니다. 오히려 언제나 힘 관계들과 배제들을 섞어 짜 넣는 사회적 실천들의 연계망 속에서 구성된 것이다.”
ㅡ 요하나 옥살라 『How To Read 푸코』
"외향성/내향성이 성격 특성에서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성격 전문가들이 밝힌 다섯 가지 주요 특성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점이다. 외향적인 사람이 둘 있는데, 성격의 나머지 네 요소가 서로 다르다고 생각해보자. 개방적이고 친화력 있고 성격이 안정된 외향적인 사람과, 폐쇄적이고 반친화적인 데다 신경과민인 외향적인 사람은 무척 다르다. 한마디로, 성격을 둘러싼 정책을 이야기할 때는 외향성 외에 다른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
ㅡ 브라이언 리틀 『성격이란 무엇인가』
"직업은 시간을 파는 것이며 사업에도 시간을 팔아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추월차선의 목표는 당신의 시간과 수입을 분리시키는 것이다.”
ㅡ 엠제이 드마코 『부의 추월차선』
“케인즈주의자들이 국가 지출 정책과 경기 부양책을 강조한 반면, 신자유주의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더 작은 국가, 더 많은 자유, 국민들의 더 많은 결정”을 강조했다.
ㅡ 하노 벡, 우르반 바허, 마르코 헤르반 『인플레이션』
"우리의 정체성은 항상 타인과 일치와 구분이라는 양 극단의 긴장 지대에서 형성된다."
ㅡ 파울 페르하에허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 가는가 - 신자유주의적 인격의 탄생』
“납이나 철, 수은 등의 흔한 금속으로 가장 완벽한 금속인 금을 만들어내는 것이 서양 연금술이 추구한 목표라면, 중국의 연금술은 영생을 누리는 신선이 되기 위한 도교의 ‘연단술’로 발전했다”
ㅡ 이성규 『조선과학실록』 , 「종이로 은을 만든 조선의 연금술사」
“이 세상 안에서 생을 부여받은 사람을 한 명이라도 제외한다면 역사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헤겔이 말했듯 절대정신이 변증법으로 발전한다는 식의 단순한 흐름을 취하지 않아요. 역사는 훨씬 복잡한 현상입니다. 타인의 마음이 되어 생각하는 것, 타인을 추체험하는 것을 얼마나 거듭했느냐에 따라 역사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역사는 아날로지를 통해 이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직 젊으니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를 것입니다. 헤겔이나 마르크스처럼 강력한 세계관에 기초해서 역사를 역동적으로 독해하는 수법에 매력을 느끼리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러한 철학이나 신학이 어딘가에서 구체적인 인간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는 염려하고 있습니다.”(후지시로 다이조)
ㅡ 사토 마사루 『흐름을 꿰뚫는 세계사 독해』
“스태그플레이션이 심각해지는 가운데 미국, 유럽, 일본의 기업들은 노동력이 저렴한 구식민지의 신흥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며 다국적화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려 했다(다국적기업의 증가). 동시에 제3차 산업혁명(IT혁명)으로 인터넷이 보급되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며 지구화의 움직임이 강해졌다. 그 결과 국가의 틀을 넘어선 지구 규모의 수평 분업이 진행되었다. 세계은행과 다국적기업이 글로벌경제의 중심 행위자가 되고, 세계 규모의 네트워크화가 진행되어 자본주의 경제의 형태가 크게 바뀌었다.” “세계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뒤에 미국이 구상했던 단일 세계와는 다른 글로벌경제로 움직였다. 요컨대 아시아의 신흥국에서 공업화가 진전되면서 아시아 경제가 부상하는 시대가 되고, 미국・유럽 등 선진 공업국의 우위가 흔들렸다. 세계의 경제사를 조망하면 자금은 성장지역으로 흘러가는 것이 철칙이다.”
ㅡ 미야자키 마사카츠 『흐름이 보이는 세계사 경제 공부』
“인간의 지적 능력은 얼마나 많은 방법을 알고 있느냐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느냐로 알 수 있다.” (존 홀트 John Holt) ㅡ 정재승 『열두 발자국』
"관념은 잠시 왔다 잊혀지지만 이야기는 오래 남는 법이다."
"인간의 마음은 생물학의 포로로 수감된 처지여서 정교한 탈출 계획 없이는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다."
ㅡ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블랙 스완』

“『역사의 연구』가 『사기』보다 더 훌륭한 역사라고 할 수는 없다. 『사피엔스』를 『역사서설』보다 발전한 역사라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그 책들은 모두 훌륭하다. 다만 서로 다를 뿐이다.”
ㅡ 유시민 『역사의 역사』
“역사가가 이야기할 때만 사실은 말을 한다. 어떤 사실에게 발언권을 주며 서열과 순서를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게 역사가다.”
ㅡ E. H. 카 『역사란 무엇인가』
"인류가 직면한 커다란 질문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고통에서 벗어나느냐"이다"
ㅡ 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보일러가 우리 사회를 근대화시킨 주역”이며 보일러와 철근콘크리트가 우리 공간과 경제의 빅뱅이었다고 주장하는 대목이 충격의 절정이었던 책
ㅡ 유현준 『어디서 살 것인가』(※ 올해 내가 본의 아니게 별점 테러 한 책 중 하나;)
“영화를 사랑하는 첫 단계는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영화평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단계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 이상은 없다.”(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
이 멋진 말을 요즘말로 옮겨보면 이렇다. ‘성덕’(성공한 덕후)과 ‘덕업일치’(덕질과 직업이 일치하다. 자기 관심사를 직업으로 삼다). 다시 말해 관심 분야의 소비자나 향유자로만 머물 게 아니라 생산자, 창조자가 돼라는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자기 관심 분야를 사랑하는 최고 단계, 즉 ‘성덕’의 경지라는 뜻이다.
(중략)
트뤼포 감독이 말한 첫 번째 단계, 즉 같은 영화를 두 번 이상 보는 것이 우리가 무언가에 푹 빠지는 경험을 뜻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단계, 즉 영화평을 쓰는 것은 평론가가 되라는 것이다. 평론가가 할 일이란 무엇일까. 잘한 점, 아쉬운 점, 앞으로 더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점을 매의 눈으로 파악하고, 비전문가가 해당 분야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ㅡ 대도서관 『유튜브의 신』
“무작위성이란 계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우리가 그 계를 생각하는 방식에서 드러나는 수학적 속성인 것이다.” ㅡ 마이클 브룩스 『우연의 설계』
“성평등이 남성에게도 이득이 된다.”(손아람) ㅡ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 x 민주주의』
“소유물로서 존재했던 여성이 스스로 뭔가를 소유하고, 그와 관련된 힘을 갖게 되는 상황은 아직도 그리 자연스럽게 여겨지지 않는다. 언뜻 생각하면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젠더 질서를 해체하는 것으로 보인다. 성별에 상관없이 능력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페미니스트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신자유주의에서 성별은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 계급, 세대, 학력 및 학벌, 지역, 가족, 섹슈얼리티, 장애 여부 등 다른 차별 원리들과 한층 유연하게 교차하면서 확장되어 재구성된다. 남성들 간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오늘날 여성들의 유명세와 소유가 종종 여성 혐오 발화의 대상이 되는 현상이 그 좋은 예다. 2000년 중반 이후 한국 사회에서 일반화된 ‘명품녀’나 ‘된장녀’라는 명명은 여성이 공적 노동의 대가로 버는 돈과 소비에 대한 적의를 드러낸다.”
ㅡ 김은실 외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 김신현경 「5장 여자 아이돌/걸 그룹과 샤덴프로이데: 아이유의 《챗셔》 논란 다시 읽기」
“우리가 밤낮으로 투쟁해서 얻어야만 하는 권력, 그 진정한 권력은 사물에 대한 권력이 아니고 인간에 대한 권력이지.”(오브라이언)
ㅡ 조지 오웰 『1984』
“인터넷은 단지 도구에 불과해요. 인터넷이 사람 또는 사물을 정의롭게 혹은 사악하게 만드는 게 아닙니다. 살인을 한 것은 칼이 아니라 그 칼을 쥔 사람, 그리고 살인자의 손을 움직이게 만든 악의인 것처럼요. 누리꾼이라는 라벨을 붙이는 건 현실을 회피하는 변명일 뿐입니다. 누구나 인간성 속의 이기적인 면, 욕심 많은 면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기 죄를 뒤집어씌울 희생양을 찾게 됩니다.”(아녜)
ㅡ 찬호께이 『망내인』

“이를테면 그는 자기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말하려고 하는 주체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말해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버틴다는 식의 상상을 했다. 바꿔 말하면 주체는 어떤 말을 하려고 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말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이중 감정 상태에서 혼란을 겪는다는 식이었다. 혹은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려고 한다고 할까.
그런데 그것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그러고 보면 이것은 수학자들만의 영역이 아니라 심리학자들의 영력이기도 한 것 같다. 수학심리학 혹은 심리수학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은가.”(「말하려 한 것과 말해진 것 사이의 거리」)
“예컨대 사랑을 시작하기 위해서든 끝내기 위해서든 자기의 마음을 달래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마음을 달래는 데에 효과적인 것은 합리화와 속임수다.”(「합리화 혹은 속임수」)
ㅡ 이승우 『만든 눈물 참은 눈물』

“살면서 가장 슬펐을 때가 언제냐고 물었더니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사람은 왜 그런 걸 궁금해하냐고 해요. 나는 몇 번 째냐니까 몇 가지 떠오르는 일이 있나 봅니다.”
ㅡ 유진목 『식물원』 , 「32」

"그러니까 너는 그 이야기를 믿지 않은 거구나."
"어떤 이야기요?"
"가운데 길이 어디로도 갈 수 없다는 이야기 말이야."
"정말 바보 같은 이야기예요. 그 길을 가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잖아요. 제 생각에는 누군가 갔던 길보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 더 많을 것 같은데요.“
ㅡ 잔니 로다리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어떤 글을 찬찬히 베껴 쓰면, 그 글의 특징과 구조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는 기회가 될 때도 분명 있다.
그렇지만 나의 경우에는 베껴 쓰는 일에만 몰두하다가 정작 글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상상하는 일을 방해할 때가 많고 소모되는 힘과 시간도 너무 컸다. 무엇보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글을 베껴 쓰기만 하는 일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는데도, 그런 무의미한 일을 하면서도 뭔가를 손으로 쓰고 있으니까 마치 열심히 무언가를 한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는 점이 가장 나빴다. 글쓰기를 하려면 내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그것은 하지 않고 남의 글을 생각 없이 베껴 쓰는 것만으로 ‘뭔가 했다’는 핑계를 주어 일을 피하고 미루게 만드는 것 같았다.”
ㅡ 곽재식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특수작전을 연구하면,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전쟁에서 사람들이 바라던 일과 실제로 해낼 수 있었던 일의 한계를 일부 알아볼 수 있다.
특수작전은 특히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기사도와 군사적 현실 사이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이상적인 소재다. 이 주제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전쟁사 연구에서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위징아와 킬고어를 비롯한 일부 학자들은 기사도 문화가 당시의 군사적 현실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에 군사작전 수행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했다고 주장한다. 군주들과 기사들은 입으로만 기사도라는 이상을 주워섬기며 전쟁의 끔찍함을 그럴싸하게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데 이용했다. 전쟁과 기독교 사이의 틈을 메우는 수단, 가신들에게 충성심을 고취시키는 수단으로 기사도를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전쟁이 벌어지면 이상이 승리에 방해가 될 때마다 기사도의 제약은 옆으로 밀려나버렸다.
반면 최근 수십 년 동안 대부분의 학자들은 기사도 문화의 지속적인 가치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기사도가 전쟁의 적절한 가치관과 규범이 형성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전투원들은 여의치 않을 때에도 이런 규범을 지키려고 노력할 때가 많았으며, 기사도에 따라 ‘반칙’으로 규정된 행위를 자제하려고 했다. 비록 승리가 가져올 엄청난 이득 때문에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규범을 악용하거나 어기는 전투원들이 종종 있었지만, 규범을 떠받치는 가치관 자체에 의심을 품는 사람은 드물었다. 특히 기사도의 이상인 명예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를 통틀어 귀족 남성들의 정체성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둥이자 중요한 군사적 가치라는 자리를 고수했다."

"과학의 핵심은 확실성이 아니라 지속적인 불확실성이다(카를로 로벨리)"
ㅡ 존 브록만 기획/엮음 『우주의 통찰』(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 4)
"나는 우리가 생각해온 진화가 지나치게 단순화되어왔다는 점이 문제라고 봅니다. 이 행성의 대다수 생물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세계만을 늘 보아왔기 때문이지요. 생물의 대다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속해 있어요. 바닷물 1밀리리터에는 세균 100만 마리와 바이러스 1000만 마리가 있어요. 여러분은 한 시간 동안 이 방의 공기에서 적어도 1만 종류의 세균과 10만 종류의 바이러스를 들이마시고 있는 겁니다. 나는 사람들이 무엇을 내뿜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옆에 앉은 사람을 자세히 들여다보곤 합니다. 여담이지만, 우리는 공기 유전체 계획도 실행하고 있어요.
이것이 우리가 사는 생물 세계입니다. 우리는 기린 대 코끼리 대 캥거루의 종분화 수준에서가 아니라 우리 행성의 대사 활동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는 수천만 종들의 수준에서 매분 단위로 일어나고 있는 진화를 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호흡ㅎ는 공기는 그런 생물들로부터 나오지요. 지구의 미래는 이 생물들에 달려 있어요. 따라서 문제는 이겁니다. 이 생물들의 설계를 찬탈한다면, 그 균형이 어떤 식으로든 바뀔까요? 아니면 생물들의 일부만 영향을 받아서 살아 있는 행성이 아니라, 산업 과정에만 여향이 미칠까요?"(크레이그 벤터)
ㅡ 리처드 도킨스 외 『궁극의 생명』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 5)
"스푼이나 풍선은 자기들이 해야 하는 대로, 우리가 그에 대해 아는지 모르는지와 전혀 상관없이 물리 법칙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물들의 운동에 대한 예측 가능성과 불가능성은 그것들의 정확한 상태를 우리가 아느냐와는 상관없습니다. 관련이 있는 것은 우리와 상호작용을 하는 사물의 한정적인 특성의 수준입니다. 이 특성의 수준은 우리가 스푼이나 풍선과 상호작용을 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집니다. 따라서 예측 가능성은 사물 자체의 진화와도 관련이 없습니다. 다만 사물이 다른 사물과 상호작용을 할 때, 사물이 가진 특성의 각 부분이 얼마나 어떻게 진화하는지와 관계가 있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우리가 이 세상을 질서 있게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개념들은 자연과 깊은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가 시간의 흐름을 인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세상의 모호함 덕분이기 떄문이지요."
ㅡ 카를로 로벨리 『모든 순간의 물리학』
"유동성의 감소는 다시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하는 등의 경제적 타격이 일어나고, 그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정부의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가장 먼저 논의할 점은, 경제학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에 대경실색하고 있을지 몰라도 일부 행동경제학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로버트 실러는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이미 그것을 적절하게 예측했다는 것이다.(1) 심지어 초기 단계에서도 예리한 관측자들은 부동산 가격이 (일테면, 매입가격과 임대가격의 비율을 토대로) 과도하게 부풀었고, 1997년에서 2006년 사이의 집값 상승이 과거의 추세에 크게 부합하지 않으며, 그러한 투기적 거품 현상의 중심에는 미국이 있었음을, 그리고 그 거품이 결국에는 터질 것임을 확신했다. 이 책에서 논의한 인간의 세 가지 속성, 즉 제한적 합리성과 자기통제력의 결여 그리고 사회적 영향력이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ㅡ 리처드 H. 탈러, 캐스 R. 선스타인 『넛지』
"지금까지 현대사상이라고 하면 프랑스의 구조주의와 포스트 구조주의를 떠올리는 것이 통례였다. 하지만 이제 사회학을 빼놓고는 현대사상을 말할 수 없게 되었다. ‘현대사회를 어떻게 파악하느냐’가 현대사상의 중심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현대의 사회학에도 현대사상의 주제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단적인 사례가 ‘근대의 변화’를 둘러싼 논쟁이다."
ㅡ 오카모토 유이치로 『현대 철학 로드맵』
“점점 더 영문을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가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마침내는 전혀 영문을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어도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아무 이유 없이, 괜히 농장 구석에 도랑을 하나 파, 누가 뭘 하고 있는지 물으면 보다시피 땅을 파고 있다고 하고, 뭘 파고 있는지 물으면 지금 파고 있는 것이 뭘로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도랑을 파고 있다고 하고, 누가 왜 도랑을 파는지 물으면 쓸데없이 파고 있다고 하거나 대답을 못 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이 넓은 텍사스에 아무 이유 없이, 괜히 도랑을 파는 사람 하나 정도는 있어도 되지 않겠느냐는 말은 안 해도 좋을 것이었다. 그리고 어디에서 뭘 하건 뭔가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고, 말이 안 되는 것을 하나쯤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느냐는 말 역시 안 해도 좋을 것이었다.”
ㅡ 정영문 『강물에 떠내려가는 7인의 사무라이』
“장의사 인부가 뼈를 추려 곱게 갈아서 어머니의 마지막 유해를 철제 상자에 담았다. 나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았다. 기차가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서 킬로그램당 1코루나에 팔릴 굉장한 화물을 싣고 떠났을 때처럼. 그 순간 머릿속에는 칼 샌드버그의 시구만 맴돌았다. 사람에게서 남는 건 성냥 한 갑을 만들 만큼의 인燐과, 사형수 한 명을 목매달 못 정도 되는 철이 전부라는.”
ㅡ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아이는 무無에서 와서, 형태를 띠고, 사랑을 받고, 언제든 무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어. / 다만 그렇게 빨리 돌아갈 거란 생각을 못했던 거지. / 아니면 우리보다 먼저 돌아갈 거라는 생각을. / 덧없는 두 일시성이 서로에게 감정을 가지게 된 거야. / 잠깐 피어오른 연기 두 개가 서로 좋아하게 된 거지. / 나는 아이가 견고한 것이라고 착각했고, 이제 그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어. / 나는 안정적이지 않고 메리는 안정적이지 않고 여기 이 건물과 묘석들은 안정적이지 않고 큰 도시는 안정적이지 않고 넓은 세상은 안정적이지 않아. 모두 변하고, 지금도 변하고 있어, 매 순간. / (위로가 돼?) 아니.”
ㅡ 조지 손더스 『바르도의 링컨』
“누군가 흙이 드러난 자그마한 동그라미 하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 옆에 작은 돌멩이 하나가 돌멩이만큼의 눈을 짊어진 채 놓여 있을 것이다 바로 거기에서부터 시작된 거대한 곡선 하나가 저 멀리 지붕들 위로 휘어져가는 것을 나는 고개를 돌려가며 영원히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ㅡ 김소연 『i에게』, 「동그란 흙」
“우리는 빗방울만큼 떨어져 있다 오른뺨에 왼손을 대고 싶어져 마음은 무럭무럭 자라난다 둘이 앉아 있는 사정이 창문에 어려 있다 떠올라 가라앉지 않는, 生前의 감정 이런 일은 헐거운 장갑 같아서 나는 사랑하고 당신은 말이 없다”
ㅡ 유희경 『오늘 아침 단어』, 「내일, 내일」


“르나르의 사주를 받아쓴 그의 증언은 내 책상 위에 펼쳐진 채로 있었다. 상투적인 가톨릭 신자의 말투를 읽으면서 나는 그가 정말로 불가사의하다는 생각을 했다. 〈진위를 결정할 수 없다는〉 수학적인 의미에서 정말 신비스럽다는 생각을…….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연극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건 확신한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거짓말쟁이가 그에게 연극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리스도가 그의 마음속에 찾아올 때,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그의 뺨에 눈물을 흘리게 할 때, 그것은 여전히 그를 속이고 있는 적이 아닌가?
이 이야기를 글로 써내는 일은 죄악이나 기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ㅡ 엠마뉘엘 카레르 『적』
※ 하태완 『모든 순간이 너였다』 는 옮길 문장이 전혀 없었다. 올해의 책 순위에 올라간 게 정말 이해 안 되는 책 중 하나